사회가 희소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연구한다

사회가 희소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연구한다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경제학에 대한 설명을

"사회가 희소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연구하는 학문"

(여기서 희소자원이란 희토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자원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자원은 그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경제학의 핵심을 10개로 나누어 불과 15페이지로 요약해 두괄식으로 설명한다.

이 요약이 경제학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리 1 :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원리 2 : 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원리 3 :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원리 4 :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원리 5 : 자유거래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

원리 6 : 일반적으로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다.

원리 7 : 경우에 따라 정부가 시장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

원리 8 : 한 나라의 생활수준은 그 나라의 생산 능력에 달려 있다.

원리 9 :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는 상승한다.

원리 10 :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 상충관계가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원리들 조차도

제1원칙인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에 대한 부가 설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원리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회가 희소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연구한다

만화작가가 이 경제법칙을 알고 차용했는지까지 그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의미는 동일하다.

경제인이라면 기회비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친근할 것이다.

기회비용의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선택을 위해 포기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아주 작은 범위로 보자면

대포냐 버터냐 (guns or butter)라는 아주 유명한 군비와 사회보장비

효율성과 평평성

환경규제와 물적 확장 같은 1대 1의 상충관계부터

어떤 개인이 한 행동을 할 때 지불되는 현금, 시간, 포기해야 하는 차선과 잠제적 임금소득 같은 복합적인 관계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면 "기회비용"이라는 용어는

원리 2 : 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에 등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언듯 보기에 이 비슷해 보이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와 "기회비용" 사이에는 매울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1원칙을 기반으로 설명하자면

필자가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화" 라는 행동의 대가는 화를 내지 않았을 때의 전개될 상황과 화를 내고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선택지 모두를 그 대가의 범위에 넣을 수 있다.

물리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또한 대가이며 내가 화를 내지 않았을 때의 상황과 그 상황의 작용과 반작용까지도 그 대가 범위에 넣을 수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혀 보자.

고속도로를 깐다고 치자

그 대가는 뭐가 있을까.

대지, 재료비, 장비비, 연료비, 인간비 같은 각종 비용들.

하지만 저 "대가"라는 단어에는 이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존재한다.

땅을 파내면 거기에 살고 있던 미생물들의 생명 또한 대가이며 그 생명체들이 일구고 있던 토양 또한 대가이다.

산을 깎으면 그 산에 살고 있던 풀과 나무.

그 풀을 뜯어먹고살던 동물과 곤충들.

그 동물들을 잡아먹고살던 동물들의 목숨들 또한 그 대가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깐다고 하면 그 경로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a라는 경로가 있을 것이고 b라는 경로도 있을 수 있고 1도 있을 수 있고 2도 있을 수 있고

말 그대로 고속도로 하나에도 선택지는 무수히 많다.

거기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선택받지 못한 모든 선택지들은 기회비용에 들어간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들"이 기회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a라는 선택지를 택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죽어간 미생물만큼 대지는 썩을 것이고 죽어간 식물들 만큼 대기는 황폐화될 것이다.

인간이 이 모든 반작용 들을 계산할 수 있을까?

절대로 계산 할 수없다.

그 계산들을 대가에서 제외시키기 위한 것이

제3원칙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다.

이 원칙에서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생물학자들이 이 글을 보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인간은 매우 매우 비합리적이며

그 어떤 동물들 보다도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에어컨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정말 합리적이라면 애초에 에어컨이 발명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위험성을 모르고 발명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 위험성을 인지한 이상 에어컨을 쓰던 사람도 안 써야 맞으며 없는 사람은 추가 구입이 없어야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경제학에서 보는 합리성 이란 언제나 그 중심이 자신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철저하게 DNA의 행동원칙에 지배된다고 볼 수 있다.

행동원칙 1 : 자기 자신(DNA)의 보호

행동원칙 2 : 자기 자신(DNA)의 분열

행동원칙 3 : 자기 종(자신과 비슷한 유전형질들)의 번영

행동원칙 1은 절대적이라 볼 수 있다.

어떠한 인간도 자신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 행동원칙 1이 보장된 범위 내에서 행동원칙 2를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가족의 부양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행동원칙 2의 안정이 확보돼야 행동원칙 3 인간종 전체를 볼 수 있다.

이 경제학적 합리성이란 생물학적 행동원칙 1에 귀속된다.

즉 생물학적 행동원칙1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행동들을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합리성이란 이 행동원칙을 거스르면서 까지 행동해야 합리적이라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생물학적 관점이 경제학적 관점보다 거대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희소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연구한다

게임

프로스트 펑크 두 번째 에피소드 [방주]의 클리어 조건을 보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새로운 보금자리] 미션에서 영하 150을 넘나드는 혹독한 추위로부터 겨우 도시를 지켜냈더니 두 번째 미션에서는 사람 따위 안중에 없고 3개의 종자 보관소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미션은 35명의 과학자들이 종자 보관소를 지키는 스토리이다.

도시의 온도는 -80에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얼음 폭풍 직전에 미션은 끝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들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이미 그 전 미션에서 영하 150도에 육박하는 추위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위에 떨며 굶주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어 죽을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다.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포위 전이 있을 당시 레닌그라드에는 씨앗 보관소인 바빌로프 연구소가 있었다.

900일 동안 이어졌던 이 포위전에서

바빌로프 연구소를 지키고 있던 약 50명의 연구원들은 쥐들이 씨앗을 먹지 못하게 교대를 서면서 까지 씨앗을 지켰고 결국 31명의 연구원은 아사하고 만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씨앗에 손을 댄 연구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떤 것이 합리적일까.

종자의 씨앗들을 꺼내 땔감으로 사용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합리적일까?

아니면 굶어 죽더라도 종자를 지켜야 할까.

독자 자신이라면 굶어 죽더라도 종자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까지 그 종자들을 지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비 합리적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아사한 31인의 머릿속에 있던 지식의 전승보다 그들이 지킨 종자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일까.

레닌그라드에서는 인류가 모두 멸망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만약 프로스트의 배경처럼 전 인류가 멸종할 정도의 아포칼립스가 온다면 그들의 지식과 종자를 저울질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올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합리적일까.

합리적 판단을 내리더라도 인류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까?

자 이런 골치 아픈 생각들을 제한하는 것이

경제학의 네 번째 원리

"인간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이다.

경제적 유인이란 처벌 가능성이나 보상과 같은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그 행동에 따른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심지어 어떤 경제학자는 오직 "사람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며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은 길게 하지만 사실 그냥 "본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어떤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가를 계산하며 이 "득"이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국환 된다고 볼 수 있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설령 있더라도 인간은 DNA의 행동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호의를 베푼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이득을 돌보지 않고 나누는 사람을 우리는 호구라고 부른다.

그렇다.

경제학의 합리성 이란 인간 본연이 갖고 있는 비합리적 본능을 인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벌어지는 제한적 합리성만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의 제1원리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라는 문구를 사용하기 위해 부가 설명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이란 이 모든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그 본능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