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쌀밥을 주실까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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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댓글 3~4개 정도만 달려도 안묻힘

졸라 늦게 써서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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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슬비의 방에 들어와서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그녀의 얼굴과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복장은 흡사 명작 소설중 하나인 '셜록 홈즈'의 주인공인 셜록 홈즈의 복장과 흡사했다. 체크무늬가 그려져 있는 갈색 사냥모자에 망토가 달린 코트,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엔 상당히 잘 만들어진 플라스틱 파이프 장난감까지 들려있었다. 유니온에서 나온 봉급을 틈틈히 모아서 산걸까.

제이에겐 지금 그 복장을 입는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른바 세대차이라는걸까? 슬비가 입고 있는 신비로운 복장들이 그녀의 행동력, 혹은 추리력, 아니 하다 못해 위상력이라도 올려주는걸까?  슬비는 앞에 제이가 있다는것을 잠시 잊은듯 플라스틱 파이프를 입에 물고 눈앞에 있지도 않는 자신의 조수에게 뭔가를 지시하는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주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자세일까... 제이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었다.뭐라고 대답을 해줘야하는걸까. 잘 어울린다? 아니면...

아마 누군가가 본다면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한심한 어른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놀릴것이다. 애당초 제이가 검은양팀에 들어온 이유중 하나로 애들 맨탈관리가 있었다.실제로 아이들이 절망에 빠질것 같은 상황에서 몇번이고 아이들의 머리속을 환기시켜주고 그들을 일깨워준게 바로 제이였다. 그런 아이들이 다시 한번 자신과 같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어제... 정확히 말하자면 몇시간 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어찌보면 제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일이였다. 소년이 아닌 어른이 되어서 이런일이 닥치자 나름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맨탈이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것을 확인한 제이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저 한때의 헤프닝으로 넘어갈 일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임하는거 아니냐 라고 말할것이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어떻게 본다면 개인적인 감정이 우선되는 일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비록 저 아저씨는 맨날 골골거리고 썰렁하다못해 빙하기가 올 정도로 재미없는 개그만 날려대는 사람이지만 믿을 수 있을 때 가장 신뢰가 가는 사람 으로 기억해준다면 제이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램스키퍼의 모든 여성진은 물론이고 남성진들마저도 제이에 대해 안좋게 보고 있다. 술만 취하면 사람을 습격하는 야수. 그게 제이의 이미지였다.

특히 방금 그... 유정의 구데기 발언은... 당장이라도 입안과 위장을 알코올로 세척하지 않으면 버티질 못할것 같았다. 하지만 또 그런식으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남아있던 제이의 이미지는 알코올 증발하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슬비를 찾아 온 건데...

"어...대장?"

제이의 짧은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슬비가 고개를 훽 돌려서 제이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그제서야 잠시나마 탐정들이 주로 활동하고 범죄자들이 안개가 자욱한 런던으로 떠났던 슬비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입이 세모 모양으로 변하고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가 덜덜덜 떨리며 위 아래로 진동하고 있었다. 제이는 말 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였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얼굴이 빨개진 슬비는 그제서야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를 급하게 빼내어서 코트의 안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하지만 복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상황을 나름 즐기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제이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과 뇌속을 가득메운 열기를 빼내기 위해 슬비는 몇번 헛기침을 하곤 제이를 보며 말했다.

"사...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제이씨. 그런데 어째서 저를 찾아 오신거죠?"

들어오라고 했을때 탐정 복장을 입고 있다는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소리인걸로 아는데 대체 그녀는 지금 무슨말을 하고 있는걸까. 제이는 자신의 조금 흐트러진 선글라스를 고쳐썼다.
제이는 자신이 정말로 맞게 찾아온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거 같았다. 그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방을 나가서 혼자 일을 해결하는게 나아보일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슬비는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이 처음 들킨것에 내심 당황해서 이러는것 같아 보였다.

그래 일단은 그렇게 믿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제이는 한숨을 푹 쉬고 슬비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오는 제이를 본 슬비가 조금 몸을 움찔하긴 했지만 램스키퍼의 다른 여성진들과는 다르게 크게 호들갑을 떨거나 요란스럽게 행동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제이의 선택은 옳은것 같았다. 제이가 슬비를 보며 말했다.

"대장은 내가 뭐... 무섭거나 혹은 음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거 같군."

"아무리 정황이 그렇다고 해도 전 평소의 제이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어요. 뭔가 이번일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요."

어느새 혼자서 또 탐정모드로 돌아간 슬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마지막에 나온 그 말이 제이가 가지고 있던 심리적 부담을 확 덜어내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였다. 슬비가 누구인가. 검은양팀들 중 가장 법과 규칙을 잘 지키며 모든 일을 원칙에 따라 해결하려고 하는 모범생중에 모범생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오히려 슬비야말로 앞장서서 제이에게 쓴소리를 날려야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만이 유일하게 제이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슬비는 제이에게 구석에 있는 빈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어째서 이런곳에 의자가 하나 더 있던걸까. 뭐 사소한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제이가 의자에 앉자 슬비는 이번에 코트 품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제이도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탐정놀이에 본격적으로 어울려주기로 했다.

어쩌면 이렇게 협력하는게 일이 더 쉽게 풀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것을 슬비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어젯밤, 제이는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야할 하늘이지만 신서울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있어서 그런지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이상하게 제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뭔가 울쩍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이였다. 이런 쓸쓸하고 비참한 기분이 들게 된 건 말이다. 믿었던 동료의 배신, 그리고 최악의 형태가 되어버린 옛 동료와의 만남... 복잡한 마음에 제이는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램스키퍼 안을 서성거렸다.

마침 예전에 트레이너에게 잠시나마 술을 먹는걸 허락 받은 기억이 있다. 내일 아침 조금 속이 쓰리겠지만 언제 술 먹을때 그런걸 생각하면서 먹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그는 어느새 식당에 들어갔고 마침 제이의 눈 앞에 매력적인 여성이 보였다.

늑대개팀 맴버 중 하나인 하피였다.

비록 제이의 마음속에 있는 여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그때 눈 앞에 있던 하피는 확실히 매력적이였다. 솔직히 그녀의 외모를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평소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손버릇도 나쁜 여자지만... 지금은 같이 이야기나 하면서 술을 먹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제이의 모습을 본 하피가 눈웃음을 지으며 제이를 유혹했다. 아니 그걸 유혹이라고 받아들이는건 너무나도 음흉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녀도 오늘따라 울적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제이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제안에 맞춰서 그녀 옆에 앉아 말없이 술을 따르고 서로 건배를 한 뒤 잔을 비웠다. 그게 다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은 계속해서 술잔을 비워갔다. 빈 술병이 하나, 둘 쌓여가기 시작했다.

흐릿하게나마 제이가 기억한 마지막 장면은... 제이와 하피가 서로 얼굴을 붉힌채 웃으면서 제이의 방으로 들어간거였다. 선글라스 너머로 본 하피의 눈은 신비롭지만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잡아먹을것 처럼 보였다. 눈 앞에 있는 순진한 양을...

"아마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한... 저, 대장. 제대로 듣고 있는거지?"

제이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문득 고개를 들어 슬비를 쳐다보았다. 과연 눈 앞에 있는 이 탐정양반이 억울한 피해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갈색 사냥모자가 조금 움찔거렸다. 슬비의 귀는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녀의 손은 수첩위를 화려하게 춤추고 있었다. 제이는 부탁이건데 제발 그의 기억에 없는 다음 내용을 그녀가 멋대로 작성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였다.


한동안 요란한 펜시위가 이어지고 난 뒤 슬비의 손이 멈추었다. 슬비는 전체적인 상황을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어젯밤, 제이는 울쩍해진 기분이 들어서 술을 마시기로 했고 그러던 중 하피를 만났다. 두 사람은 술자리에 관해선 묘하게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같이 술을 마시기로 했고 분위기도 나름 무르익었었다.

마지막으로 제이와 하피는 같이 제이의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제이의 기억이 끊어졌다. 공백의 시간이 흐르고 제이가 일어나보니 방은 어지럽혀져 있었고 그의 옆에서 하피가 알몸으로 자고 있었으며 그 광경을 검은양팀과 늑대개팀, 그리고 김유정이 봤다.

정황상 제이와 하피가 그렇고 그런 일을 치뤘다고 믿는게 아마 정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제이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일을 치르고 바지를 입었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슬비는 펜끝을 입에 물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결국 이 일을 해결하는데에는 과학적인 분석도 중요하지만 먼저 제이와 하피의 말을 각자 들어보는게 어찌보면 사태해결에 가장 적합한 일 일것이다. 그러나 하피가 참여해줄리가 없었다. 그때 언뜻 슬비는 하피의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묘하게 이 일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뜨거운 밤을 보냈기에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녀는 도둑이며 장난꾸러기였다. 혹시 그녀가 단순히 제이를 골탕먹이려고 그런건 아닐까?

슬비는 위상능력자이지만 시간을 뛰어넘어갈 순 없었다.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그럴까...

제이는 차분하게 슬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그가 신뢰할 사람은 리더인 이슬비 밖에 없다. 슬비는 그런 제이의 표정을 보니 이 일을 더욱 더 올바르게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슬비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때, 슬비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방 구석퉁이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까처럼 코트 안쪽에 넣어두었던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지만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것처럼 그녀는 파이프를 흡 하고 들이켰다.
그리곤 제이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제이씨. 방법을 찾았어요. 잠깐 같이 가주실 곳이 있어요."

"정말? 하지만 어떻게..."

그 말에 슬비는 대답하지 않고 제이의 손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덥썩 잡았다. 그 행동을 본 제이는 별 수 없이 이 어린 소녀탐정의 행동에 따라주기로 했다. 그녀가 뭔가를 찾은것일테지. 두 사람은 이내 슬비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장면을 슬비의 방 천장 구석퉁이에 박혀있는 카메라도 같이 보고 있었다.


슬비와 제이는 함교 중앙에 있는 검은 물체 앞으로 이동했다. 이것은 벌처스에서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찰용 기계 '뻐꾸기'였다. 현재 이 뻐꾸기와 연결되어 있는 AI는 13세대 인공지능이며 램스키퍼 전체를 조율하고 조종하는 '쇼그'였다.

그렇다. 그날 밤 제이와 하피의 밀회를 보고 있던 사람... 아니 이것을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어쨋든 쇼그라고 하는 인격체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램스키퍼는 어떻게 보면 쇼그의 뱃속과도 같은 곳 이니까. 그녀는 램스키퍼 전체를 관리한다. 램스키퍼의 관리인이 어제밤 일어났던 일을 모를까? 아니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날 일어났던 일의 진실을...

이것이 슬비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였다. 슬비와 제이가 온 것을 확인한 뻐꾸기가 공중에서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 먼저 슬비가 입을 열었다.

"아...안녕하세요. 쇼그씨."

[어서 오십시오 이슬비 요원님. 무슨 일이십니까?]

기계적이면서 상투적이고 지극히 접대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투로 인해 슬비는 오히려 더 확신이 섰다. 쇼그는 기계였다. 하지만 한없이 인간에 가까워지려는 존재이기도 하다. 즉 그녀는 기계와 인간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슬비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쇼그씨. 혹시 램스키퍼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기록하고 계신가요?"

[물론입니다. 어제 밤만해도 이슬비 요원님이 드라마를 보며 분노에 찬 상태로 방안에 있는 팽귄 인형을 마구 두들겨패는 모습을 똑똑히 기록해두었습니다]

제이는 살짝 슬비를 쳐다보았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제이는 앞으로 슬비한테 조금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이 숙취때문에 헤롱거리는 모습이라던가 세하가 회의중 게임을 하고 있다던가 유리가 멍청하게 똑같은 말을 3번이나 해줬음에도 못알아먹는다면 어김없이 혼자 있을때 방에서 불쌍한 팽귄 인형이 두들겨 맞을테니까

그냥 얻어맞겠는가? 염동력의 늪에 붙잡힌 팽귄인형에게 무지비하게도 슬비는 방안에 있는 배게를 마구 던져댈것이다. 염동력때문에 피하지도 못하는 팽귄 인형은 불쌍하게 계속해서 얻어맞겠지. 불쌍한 팽귄. 잠시 팽귄 인형에 대해 묵념의 시간을 가진 제이는 다시 슬비와 쇼그를 바라보았다. 슬비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쇼그의 발언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부질없지만 말이다.

"그럼 쇼그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어제 밤 제이씨랑 하피씨, 두분은 같이 제이씨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 뒷부분을 보고 싶어요."

잠시 뻐꾸기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이윽고 뻐꾸기한테서 사무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습니다. 그 부분이라면 저도 흥미롭게 지켜봤으니까요. 참으로 놀라우면서 신비로운 광경이였습니다. 제가 요즘 배우고 있는 인간세계에서 배운 흥미로운 말과 연결되는 모습이더군요]

슬비와 제이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이 의외로 술술 잘 풀리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못된 검은 기계는 선물을 바라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불길하고 안좋은 말을 건네주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검은 기계는 그들에게 조건을 걸었다. 그 조건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것 이였다. 쇼그는 대답을 원했다. 쇼그가 말했다.

[전...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 혹은 '좋아한다'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차례로 검색해본 결과 그 단어들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개념이 다르더군요. 여기에 대해 이슬비 요원님과 제이 요원님이 생각하고 계신것을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말씀하지 않으시면 그 영상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전 대답을 못해주시는 장면도 보고 싶습니다. 제이 요원님이 여성들이 보낸 경멸의 시선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것도 나름 재미있어 보이니까요]

참으로 악독하다. 어쩌면 칼바크 턱스는 13세대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인간을 기만하고 농락하는 짓을 저지른다는것을 예언했을까.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진실은 앞으로 한발자국만 남아었으니까 한동안 제이와 슬비는 뻐꾸기 앞에서 말 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인채 나름의 답을 정리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강철의 교수님이 그들의 대답을 들었을때 대체 어떤 점수를 내놓을까. 먼저 슬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의 행동에 대답하듯 뻐꾸기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제가 알기론 사랑은 쇼그씨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많은 정의를 가지고 있어요. 공통점이라면 모두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소한 일로 싸운 뒤, 감정이 틀어져서 다신 그 관계를 회복 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르다고 생각해요. 서로 이해하고 곁에 있어주고 싶다면 사소한 다툼이라고 해도 먼저 양보하고 손을 내밀며 화해할 수 있겠죠. 부모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좀 복잡하지만 에전에 부모님이 살아계셨을때 전 부모님과 서로 싸우고 나서도 어쩔땐 부모님이 먼저 와서 다시 잘해보자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그땐 저도 제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했죠. 으으... 결론은 쇼그씨가 말한 사랑의 공통점은 그 사람 곁에 계속 있고 싶다. 라는 의미에요."

[...제이 요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쇼그의 말에 제이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 차이... 그걸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줘야하니까 제이는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대장이 말한것 처럼 사랑이란건 어떤 사람을 아껴주고 지켜주고 싶어하는것이지.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잖아? 그 사랑이 변하면 누군가를 집착하게 되고 다치게 만들지. 사랑이 증오로 변한다. 너도 알고 있을거야."

[그럼 사랑이란건 어떻게 보면 안좋은것이군요]

"그건 비단 사랑만 그런게 아니지.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지나치면 안좋은거야. 하지만 난 사랑이라는 힘의 위대함도 알고 있지. 단지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마음가짐이 인간이 낼 수 있는 힘 그 이상을 내기도 하지. 아마 사랑이란게 없었다면 우리 검은양 팀원들은 강남사태를 이겨낼 수 없었을거야.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우린 그날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싸웠어. 그래서 지켜낼 수 있었지. 또 사랑은 생명을 창조해. 생명이란건 99%의 순수한 사랑에 1%의 지저분한 사랑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쇼그. 아직 넌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뻐꾸기가 제이의 말까지 듣고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비와 제이가 말한 말들을 혼합이라도 하고 있는걸까? 마치 실험실에 있는 조합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듯 뻐꾸기는 위 아래로 마구 흔들리다가 또 양 옆으로 요란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슬비는 저러다가 램스키퍼가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내 뻐꾸기가 작동을 멈추었다. 검은 기계가 열리고 뻐꾸기로부터 작고 기다란 뭔가가 튀어나왔다. 쇼그가 말했다.

[제가 원하는 답은 아니였지만 이슬비 요원님과 제이 요원님의 말을 듣고 난 뒤 두분의 말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그래야만 전 더욱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유익한 대답의 시간이였습니다. 보상으로 여기 그 시간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찍혀 있는 영상입니다. 아 원하시면 바로 여기서 볼까요?]

쇼그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뻐꾸기의 윗부분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커다란 렌즈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영사기처럼 변한 쇼그는 램스키퍼의 벽에 그 날밤에 있었던 은밀한 밀회를 제이와 슬비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이건!" 슬비가 놀라서 소리쳤다. 모든 진실이 풀렸다.


곧바로 검은양팀과 늑대개팀 모두, 그리고 트레이너와 김유정이 쇼그 앞에 모였다. 슬비는 요원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계속 탐정복장을 입고 있었다. 하긴 지금이야말로 탐정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진실이 들어나는 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슬비는 명탐정 이슬비여야만 했다.

슬비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한번 여유롭게 플라스틱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슬비의 옆엔 억울한 피해자인 제이가 서 있었다. 제이는 슬쩍 여성진들을 선글라스 너머로 살펴보았다. 아직도 제이의 곁에서 구데기가 기어나오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진실은 밝혀진다. 과연 저들이 제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특히... 하피는 어떻게 반응할까. 슬비는 곧바로 쇼그가 그날 있었던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영상을 재생하려고 했다.

"하...하지만 슬비야. 그...그건 너희들이 보기엔 너무..."

유정이 조금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마 그녀는 아직도 제이와 하피가 그 날 밤 불장난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였다. 하지만 슬비는 트레이너와 유정에게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말했고 트레이너는 이 이상 팀원들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것은 작전에 제한이 올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 영상을 재생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승인을 받은 쇼그의 렌즈로 부터 빛이 뿜어져 나와 벽면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상이 시작되고 3초 정도 지나서 제이와 하피가 같이 방에 들어왔다. 방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먼저 방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이는 자신이 가져온 안주거리들을 꺼내었고 하피는 어느새 몰래 훔쳐온 술들을 꺼내들었다. 이럴때만 보면 참으로 찰떡궁합이였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중간중간 하피가 제이에게 안주를 먹여주는 모습이 나오고 제이가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어디서 빠직, 와직 소리가 나는것 같았지만 제이는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아니 무시해야했다.

쇼그가 앞부분은 불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비디오가 넘어갔을까 제이가 술을 지나치게 먹었는지 얼굴이 벌게졌고 하피가 그를 향햐 천천히 끈적거리는 포즈를 취하며 다가갔다. 거미가 먹이를 먹으려는것처럼 그녀의 움직임은 농밀하며 위험했다.

그 순간, 제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침대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간 뒤, 빳빳히 선 나무막대마냥 침대에 고꾸라져 버렸다. 하피가 당황한채로 잠시 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소리를 낮음으로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에선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큰 코골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지금 아저씨 뻗은거지?" 세하가 놀라서 말했다.

그렇다. 그 날 밤 제이는 술을 이기지 못하고 하피보다 먼저 뻗어버렸던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하피는 쿡쿡하고 웃고는 그대로 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어 버린 뒤 알몸인 상태로 제이옆에 그냥 누워버린것이였다.

즉, 밤은 불타오르지도 않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으로 심심하고 한심한 결말이였다. 영상이 끝나고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제이는 슬비를 보며 웃었다. 그는 무죄가 입증되었고 명탐정 슬비는 첫 사건을 무사히 해결했다. 두 사람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제이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 자리에 모여있던 유정,유리,레비아를 바라보았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간 그들은 과연 제이에게 어떤 말을 전했을까

물론 쇼그의 마지막 말은 제이에게 또 한번의 큰 상처를 전해주었다.

[인간들은 이런 상황을 가리켜 '줘도 못먹는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거 같군요. 유익한 시간이였습니다.]


뭐... 그렇게 끝났어. 나중에 하피에게 물어보니 그냥 조금 장난을 치고 싶었다. 라고 하더군. 술을 먹고 옷을 훌러덩 벗는건 자기 버릇이고 말이야.제길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앞으로 하피랑 술을 먹을땐 꼭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먹어야겠어. 영상 봤지? 몸짓이... 에이 설마...

어찌되었던간에 난 그녀를 용서했어. 악의가 있던건 아니니까. 이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더군. 아 신기한게 뭔 줄 알아? 그 깐깐한 양반이 나한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더군. 부하관리를 잘못했다고 말이야.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 사람이면 다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근데 조금 통쾌했어.

다른 여성진들도 다 미안하다고 했지. 특히 빛나양은 나에게 무료로 물질 변환을 이용시키게 했어. 뭐 별로 좋은 물건은 안나오더군. 눈동자라... 이걸 어디다 써야할지 모르겠어.

아 한명은 내가 아직 용서를 안했어. 구데기라니 너무하잖아. 사람한테 구데기가 뭐야 구데기가...
그래서 그녀한테도 한가지 제안을 걸었지. 별거 아니야. 여기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어. 데이트지 데이트. 아! 저기 그녀가 오네. 급해서 그런지 평소와 똑같은 코트에 똑같은 머리, 똑같은 포즈... 정말 수수하고 담백한 여자야.

근데 난 그런 그녀가 좋더라. 언젠가 쇼그한테 했던 말을... 그녀한테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날이 오겠지. 아마도

그럼 일단 이 제이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난 이제 즐거운 데이트를 하러 가야하거든

데이트의 끝에 뭐가 있을진 너희들이 판단해. 뒷 이야기는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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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웃기지도 않고 진지하지도 않고 에로하지도 않고 밍숭맹숭하게 끝나버렸구만요

질질 끌고 온거치곤 허무하게 끝나서 ㅈㅅ합니다

쨋든 이제 일상편 하나 쓰면 100회다.

구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