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날 힘들게 하나

‘코로나 블루’ 실태와 해법…신경인류학자 박한선 인터뷰

세상은 왜 날 힘들게 하나

정신의학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가 지난 10일 서울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박사는 “감염병 대유행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심화하고, 집단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시민은 연대와 협력으로 확산을 막고, 정부는 신뢰성과 포용성을 갖고 다양한 ‘부적응적 반응’을 보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국가적·집단적으로 결속했던 사람들이 이후 부정·회피·반대행동 보이기도 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극단적 상황의 정상적 반응…악마화할수록 부정적 반응만 강화”

우울은 언제나 있었다. 사람들은 무심코 “아, 오늘 우울해”라고 말하곤 했다. 코로나19 시대의 우울은 다르다. 보다 구체적이다. 근본적 원인(바이러스)이 존재하고, 실질적 고통 또한 존재한다. 문제는 원인을 제거할 길이 없다는 거다. 한때 회자되던 ‘포스트(post) 코로나’를 이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위드(with) 코로나’라는 말이 떠돈다. 그렇다면, 우울도 함께 갈 수밖에 없는가?

정신의학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44)에게 ‘코로나 블루’에 직면한 마음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물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감염병을 연구해온 그는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임의,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과장을 거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의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공중보건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및 사회심리 영향 평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수도권 거리 두기 2.5단계’로 텅 빈 서울대 캠퍼스에서 이뤄졌다. 박 박사는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러 학교에 나온 참이었다.

-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며 시민의 우울감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을 때는 국가적·집단적 결속이 강화됐습니다. ‘K방역’ ‘힘을 합쳐 극복하자’ 했지요. 그러나 이런 흐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진행하게 되거든요. 지금이 그런 시기입니다. 초기에는 손 잘 씻고 마스크 잘 쓰고 거리 두기도 잘했습니다. 대구에 대유행이 왔을 때 길거리에 사람이 안 보였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방역수칙 지키는 일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는 척만 하고요. ‘고조된 긴장 반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 고조된 긴장 반응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첫째, 부정입니다. 이건 감염병이 아니야, 혹은 감염병이지만 위험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둘째는 회피입니다. 현실을 안 보게 됩니다. 셋째는 반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평소보다 더 밀접한 접촉을 하는 등 과장된 행동을 합니다.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극단적 상황에서 보이는 정상적 반응의 하나입니다. 이런 식으로 방역지침을 어기는 사람들을 조리돌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요. 그 사람들을 악마화하면 할수록 부정적 반응만 강화됩니다.”

- ‘코로나 블루’의 고위험군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선, 확진자와 그 가족, 자가격리자들입니다. ‘죽는 거 아냐?’ 하는 실존적 불안을 느낍니다. 두 번째, 의료인입니다. 희생과 헌신으로만 버틸 수가 없어요. 세 번째는 노인입니다. 감염에 덜 취약한 학생은 비대면 수업을 하고, 젊은 직장인과 공무원도 상당수 재택근무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취약한 노인들은 집단감염이 우려되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그대로 있어요. 만약 5세 미만 어린이의 코로나19 치명률이 20%였다면, 전 세계가 일제히 셧다운에 들어갔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에게는 너무 무관심해요. ‘감염되면 너덧 명 중 한 명 죽는다는데, 이 사회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생각이 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회적 신뢰가 붕괴됩니다. 코로나19는 현대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었습니다. 감염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는 겨울철을 앞두고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 우울감이 깊어지면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요. 스스로 혹은 가족이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는 무엇인가요.

“자살 시도는 물론이고 ‘죽고 싶다’는 의사표명이 있으면 즉시 전문의에게 가야 합니다. 식욕 저하, 수면 장애, 불면, 체중 감소 등 생물학적 증상이 나타날 때도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심하게 짜증을 내고 심통을 부리는 등 ‘타해(他害)’가 심각해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2주 미만 지속되는 가벼운 우울감은 정상적 반응에 속합니다.”

- 모임이 줄어들며 집에서 ‘혼술’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감정적 불편감을 술로 달래려는 경향을 느끼면 상담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잘 모르겠으면 배우자나 지인들에게 음주 습관을 털어놓고 판단을 받으세요. 이야기 안 해도 배우자들은 대부분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습니다.”

- 우울감이나 불안감에도 순기능이 있습니까.

“인류학적으로 볼 때, 우울감은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고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숙고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는 건 확산을 방지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합니다. 불안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위협에 대한 방어 반응인데요. 손을 자주 씻고 낯선 사람 안 만나는 건 순기능이 맞습니다. 다만 감염병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만큼 악화돼선 곤란합니다.”

- 불안이 감염병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불안은 진화의학적으로 ‘BIS(Behavioral Immune System·행동면역체계)’ 반응입니다. 면역에는 선천적 면역·후천적 면역·행동면역이 있는데, 세 번째 행동면역은 감염 위험성을 가진 개체에 대한 본능적 거리 두기로 이어집니다. 일정 부분 효과적이지만, 나를 제외한 타인에 대한 무작위적 행동면역 반응은 역기능을 부릅니다. 모두가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면 감염병에 걸려도 증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은폐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사태는 특정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낳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 구조의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사는 중국동포, 비주류 종교인, 대구 지역민, 노인, 젊은이, 성소수자, 콜센터 등 비정규직 노동자…. 그러나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누구나, 어디서나 감염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 혐오의 언어가 끊이지 않는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과거 사회에선 혐오와 차별이 감염병을 막는 방법이었습니다. 치료약도, 백신도 없던 시절에는 일말의 가능성만 있어도 감염원과 거리를 두는 게 효과적이었어요. 우리 뇌 속에는 감염원을 혐오하는, 확고부동한 진화적 본성이 있습니다.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본성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을 뿐이죠. 현대사회에선 혐오와 차별이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 진단·치료 방법이 있는데, 원시적 행동 패턴으로 감염병을 막겠다는 건 시대착오입니다. 연대와 협력으로 확산을 막고, 취약계층을 돕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현대인이 할 일입니다.”

-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혐오·차별·배제·낙인찍기에 빠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뭔가요.

“우리는 자기 마음에 거울을 비추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내 마음속 생각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할 거라고 여긴다는 거죠. 혐오와 차별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나를 혐오·차별할 거라 생각하게 됩니다. 내게 혐오·차별의 마음이 있다 해도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6278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 전체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6431명)과 비슷하지만, 여성 자살률은 7.1%포인트나 증가했다. 박 박사는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선, 여성이 기존 취약계층에 더 많이 분포돼 있을 가능성입니다. 여성 일자리는 단기·저소득·비정규직 비율이 높습니다. 특수고용직·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고요. 모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분야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 감정을 다독이는 경향이 큽니다. 거리 두기가 여성에게 더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 가벼운 우울을 느끼는 경우 스스로 치유하거나 경감시킬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이 있습니까.

“신체 활동을 줄이면 안 됩니다. 사람이 드문 산이나 공원 같은 데서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대신 미디어 접촉은 줄이세요. ‘코로나19 소식은 밤 9시 뉴스에서만 접하겠다’ 식으로 정해놓으면 좋습니다. 일반 시민이 전 세계 방역 상황을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또 비공식 채널을 통한 음모론을 피하고, 공인된 정보를 들으세요. 영상통화나 카카오톡 등 비대면 네트워킹이 권장되지만, 사실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안전이 확인된) 가족·친지들과 더 가깝게 접촉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자책감이 들 때는 도움 될 팁이 있습니다. 주변의 힘든 사람을 위해 아주 작은 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남을 돕는 일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줍니다.”

- 우울해하는 가족·동료에게 ‘바로 지금’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요.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왜 힘드냐’ 물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힘들어하지 마. 별일 아냐’ 하지 마세요. ‘너 힘들구나’ 한마디만 해주면 됩니다. 힘든 사람은 수용과 공감을 바랍니다.”

- 정부에선 어떤 심리방역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국가트라우마센터(nct.go.kr)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센터에선 감염병 심리사회방역지침이나 재난대응인력을 위한 소진관리 안내서, 코로나19 심리지원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합니다.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나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를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앞으로 정부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감염병 대유행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심화하고, 집단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방역 조치를 무력화시키는 집단적 저항도 종종 나타납니다. 여러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정부가 신뢰성과 포용성을 가지고 다양한 부적응적 반응을 보듬었으면 합니다.”

- 온건한 대응에 반발하는 이들도 생길 텐데요.

“코로나19 대유행이 한두 달의 엄격한 조치로 해결될 상황이라면, 공권력 사용이 효과적일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몇 년 이상, 아니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제2, 제3의 감염병도 찾아올 거고요. 국가는 방역의 엄격한 집행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촉진자라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한 행위자로서의 국가’라는 경험을 만들어나가는 건 절실한 과제입니다.”

■집 안에서도 별도의 전용 공간을 확보하세요

박한선 박사가 제시한 재택근무·원격수업 원칙


세상은 왜 날 힘들게 하나

2020년, 올해의 단어를 꼽는다면? 코로나19를 제외한다면 ‘비대면’ ‘언택트’ ‘재택’이 유력 후보에 오를 터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일반화하면서, 집집마다 고민이 크다. 업무·학습을 수행하며 동시에 심리적 건강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박한선 박사가 제시한 기본 원칙은, 집안에서도 업무와 학습을 위한 별도 공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공간을 재배치할 수 있다면, 방 하나를 업무·학습 전용으로 만드는 게 좋다. 침실에서 홈오피스 공간까지 너덧 걸음 거리라 해도,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화상회의나 온라인 수업 뒷배경에 벗어둔 옷가지나 먹다 남은 음식이 등장해선 곤란합니다.”

박 박사는 “도무지 공간이 나지 않으면, 침실과 거실 중 하나를 포기하라”며 접이식 침대를 사용해 주야간에 다른 환경을 만들거나, 소파와 TV 중심의 거실을 책상·책장 위주로 바꿀 것을 권했다.

하지만 공간 재배치를 상상하는 일이 사치인 사람들도 있다. 박 박사가 이들에게 건네는 팁은 이렇다. △공간을 나누기 어려우면 시간을 나눠라. 만약 주방의 식탁에서 일이나 공부를 해야 한다면, 해당 시간엔 다른 가족이 주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아무나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여는 환경에선 효율이 오르기 어렵다. △근무 시간을 정하라.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휴식해야 한다. ‘어차피 집이니까 오늘 밤에 하지 뭐’ 식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은 방학 때 하루 시간표를 작성한다. 어른들이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학습·업무 상황을 상호 확인하라. 물론 주변인의 시선이 없는 걸 선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누가 보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효율이 오르지 않으면, 비상수단이 필요하다. “직장 상사나 담임 교사의 얼굴이라도 출력해 책상 위에 붙여놓아라.”

박 박사는 ‘시행착오’가 불가피함을 강조한다. 산업혁명 이후 사무실과 학교는 집단근무·집단학습이라는 ‘공장형’ 시스템을 차용했고, 이는 잘 작동해왔다. 재택근무·학습이 오랫동안 검증된 시스템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1~2년의 적응기가 지나면,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과거의 전면적 ‘대면 시스템’으로 돌아가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