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원본

이 글에서는 두 책을 함께 리뷰하겠다. 

먼저,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의 원제는  Does the Richness of the Few Benefit Us All? 이다. 마강래의 지위경쟁사회의 경우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는가?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원제, 부제만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고 하고 싶지만 책에 대해 어디선가 한 마디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몇 마디는 해야겠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자본주의 비판

저자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다양한 저서에서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소비주의,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근데 그 비판이 아아주 매섭다.

2000년 기준 전세계에서,

상위 1퍼센트가 부의 40퍼센트를 차지

상위 20퍼센트가 부의 85퍼센트를 차지

하위 50퍼센트가 부의 1퍼센트를 차지

미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229퍼센트 증가

하위 50퍼센트의 소득은 6퍼센트 증가

책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두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부의 분배가 양극화 되어 있고,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분배 문제는 너무나 해묵은 논쟁이고 한국에서 그 논쟁은 흔히 도돌이표를 반복해 싸움질로 이어진다. 한 쪽은 부의 재분배를 사회주의라고 욕하고 다른 쪽은 사회 정의라고 외친다. 둘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뭐 이 세상에 틀린 말이 있기는 한가 다들 저마다의 논리와 가치로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고민을 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꿈꾸고 그 이상향을 향해 살아갈 테니까. 그리고 그 개인이 모여 이 세상을 만들테니까.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 걸까?

대기업 변호사의 아들과 하급 공무원의 아들은 둘 다 같은 교실에서 학교생활을 똑같이 잘하고 똑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아이큐까지 같다고 해도,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미국 내 상위 10퍼센트의 부자에 포함될 수 있는 액수의 봉급을 받을 가능성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27배나 더 높았다.

카네기 재단의 연구다. 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의 분배는 DNA보다는 출생배경이 더 큰 상위로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장래는 그 아이의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현실이 그래'라는 신기루

우리는 위의 이야기를 보며 '현실이 그래.' '현실이 다 그런거야'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걸까? 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현실적인 마인드로 자기 계발에 목메야만 하는 걸까? 이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다. 자본주의는 승리했고 사회주의는 패배했다고. 자본주의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유방임주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진화해왔다고. 자본주의. 이것이 우리 시대의 최고 시스템이라고. 우리는 이 말을 곧이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신조인 무한 자유 경쟁과 소비주의를 현실로 여겼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사회주의의 패배 이후 혼자 남은 자본주의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해명을 거부하고, 온갖 문제들을 싸잡아 단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해명은 세계 경제학에서 한국 경제학으로, 그리고 우리의 교과서로 내려왔다. 

우리의 교과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현실'이라는 신기루로 포장해 불변의 진리, 자연의 섭리로 만들었다. 우리를 어릴 적부터 그 벽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지만 막상 그 벽에 앞에 섰을 때는 분노했다. 그러나 시스템의 의도대로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잘 화풀이의 희생양을 찾았다. 

지위경쟁사회: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는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가 미국을 필두로 한 세계 자본주의 비판이었다면, 지위경쟁사회는 우리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위경쟁사회는 대한민국이 왜 헬조선이 되었는지 노동, 소비, 학벌,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한다. 책은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더 나은 지위를 획득하려는 우리들의 고통받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그 상위에 존재하는 상대평가 시스템에 대해 비판한다. 새로운 통찰이 있지는 않고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풍부한 통계자료와 팩트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고 한편으로는 정말 끔찍하다.

한 방송국에서 ‘난쟁이 행렬’을 만들어 보았다.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난쟁이 행렬이고, 1분에 한 명씩이 등장한다. 평균 월소득 264만원을 170 cm로 가정했을 때, 이 평균 키를 지난 사람은 40분 즈음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5분 동안 50 m, 100 m의 거인이 등장했다. 이들은 연봉 10억 원 혹은 20억 원이 넘는다. 

세계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은 아직은 그래도 계층 이동이 자유롭고 양극화가 심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비교의 대상이다. 더 최악을 달리고 있는 국가와 비교해 우리가 낫다고 위로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어떤 사람들 말대로 미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대한민국은 부와 학벌이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5년 기준으로 상위 20%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학생이 서울대 신입생의 88%를 이룬다.

믿을 수 없어서 관련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서울대가 2007년 장학금을 받기 위해 건강보험 납부확인서를 제출한 신입생 14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구 소득이 하위 50%에 해당하는 학생은 전체 신입생의 17.8%였다. 학년마다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재학생은 17~1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162156475&code=940401#csidxf5e3ecb0881b77f8a4dab9c731d498e 

"8일 서울대가 학생들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한 ‘장학복지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신입생들이 제출한 건강보험 납부액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입생 1,463명 중 소득 수준 상위 10%에 들어가는 신입생이 39.8%로 나타났다. 또한 상위 20% 학생의 경우는 신입생의 절반을 넘는 61.4%로 서울대 입학생의 20% 안에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소득 수준 하위 30% 가정에 해당되는 신입생은 전체의 10.4%였고, 하위 10% 가정의 자녀는 단 2.8%였다. 신입생 중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역시 25명에 그쳤다.상위 10% 소득 가구에 속한 학생의 비율이 가장 많은 단과대는 수의대로 56%로 나타났고, 경영대(46.2%), 법대(45.5%), 미대(42.1%)가 그 뒤를 이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RINT/208121.html 

2007년 자료가 저렇다면 지금은 더 심화됐을 확률이 높다. 지난 10년 간 대한민국에서 부의 양극화는 심해졌고 지역 별 명문대 합격률은 더 큰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너!

돈, 학벌, 배우자. 이 세 가지는 한국에서 가장 경직된 시장이다. 세 부분에서 계층 이동은 매우 힘들고 세 부분은 밀접히 연관되어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계층이어도 소비주의의 마법을 피해갈 수는 없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세 가지 지위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고 결코 가질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더 비싼 것, 더 좋은 학벌, 더 좋은 배우자는 계속 등장한다. 자본주의의 강령대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사야만 한다. 우리가 절대로 살 수 없는 최상위의 소비는 99%의 사람에게 박탈감을 불러일으킨다. 최상위 1% 사이에서 이 소비 경쟁은 더 세분화되어 있다. 이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이고 구조적으로 절대적 승자가 있을 수 없는 구조이다. 

TV에서 뉴스에서 문제는 경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문제는 경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한 푼 더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대 소비주의와 소비구조의 불평등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우리가 더 못 가졌을 때 느끼는 박탈감을 내가 못나서,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만으로 돌리지 말고, 이것이 혹시 사회구조적 모순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에 특히 심화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상대평가 시스템과 등급에 따른 보상의 극단적 차등화는 구성원들을 서로 경쟁하고 반복하게 만든다. 우리 교과서는 자본주의 자유 경쟁 시스템에 대해 그만 찬양하고, 제도는 상대평가 시스템과 줄세우기의 이점을 그만 홍보하고, 경제학은 그 말도 안되는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놀이를 집어 치워야 한다. 대신 공생과 협력을 가르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아 물론 자본주의 틀에서 말고 그 밖에서. 그게 현실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변치 않는 현실 같은 것은 애초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