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버는 과학적 지식이 객관성을 보장받기를 원했을까

<어느 민주주의자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 이종보(양철북)

5년 동안 인천국제고등학교 학생들과 한 달에 한 권 고전 읽기 수업을 하면서 얻었다는 결과물이 2016년 4월 초판으로 나왔다. 책 읽기는 역동하는 현실과의 상호작용으로, 지식을 끊임없이 현실로 불러내어 답을 구하기를 주저해 온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신적 빈곤이라 저자는 말한다. 소개하는 서울대 권장도서는 한국문학 17권, 외국문학 31권, 동양사상 14권, 서양사상 27권, 과학기술 11권이다. 고전을 자기 삶과 사회에 비추어 생각하며 읽으면 절대로 따분할 수 없다. 영혼이 흔들릴 만큼 자극을 주는 책들이 우리 곁에 쌓여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성인이라면 상당한 비판적 의심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모든 불의를 세심하게 찾아내어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적 사고에 바탕을 둔 100권의 서평에 전기적 충격을 받은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하게 움츠러든다. 예리한 분석과 핵심을 찌르는 논리이면서도 매우 일정한 분량으로 정리해놓았다. 비판적 사고와 논리에 흠뻑 세례를 받고 난 후의 의문은 과연 실천적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혹시라도 탁상공론에 그치는 대안은 아닌 지도 모르겠다. 하지, 서울대학교가 창조적 지성인이라면 읽어야 한다고 선정한 책들의 가치는 분명하다. 우리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깊은 성찰을 유도하며 보다 새롭고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작품 전부를 요약해본다.

국가 / 플라톤(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인간의 정의로운 삶이 가능한 정치 공동체의 조건에 대해 폭넓게 성찰한다. 중심주제는 정의로운 국가이고, 지식 국가를 지향하며 지혜를 중시한다. 국가는 지혜로운 자인 철인이 통치해야 이상적 운영이 가능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기업 이윤에 밝은 나라일 뿐, 기업 경영 지식은 기업에 한정될 뿐으로, 국가는 기업 이윤보다 사회정의가 앞서야 한다. 걱정 없이 자기 일에 신명 나게 몰두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이다. 

리바이어던 / 토마스 홉스(국가는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가)


유럽 신구교도 간의 30년 전쟁이 끝난 직후 1651년에 출간.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였다. 사람들은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사회계약을 맺고 모든 권력을 군주에게 양도한다. 국가를 성경에 나오는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하여, 국가가 오히려 인민에게 위협 요인이 됨을 말한다. 인민은 사회의 갈등이나 개인 간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과도하게 국가나 사회 권력에 맡기다 보니 그 권력들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인민의 생명과 평화는 인민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정부론 / 존 로크(사회운동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시론'이 부제로 붙어있다. 인류 공동의 자연물에 노동을 투여하면 개인의 소유로 귀속된다는 로크의 이론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사회계약에 의한 통치자에게 일부 권력을 양도했지만,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권 행사가 필요하다. 인민의 저항으로 수립된 새로운 정부는 말 그대로 시민정부이다. 로크의 주장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반영되었다. 사회운동이 활발하면 대표자는 긴장하고 인민의 권리와 대표자의 의무관계가 명확해진다.

군주론 / 마키아벨리(권력을 어떻게 다룰까)

군주론이 쓰일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강력한 지도자와 통일국가가 절실했다. 강력한 권력의 창출을 강조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악한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 말한다. 시민형 군주국을 지향하면서, 기독교 윤리를 탈피하고 신의 섭리와 도덕규범과는 구별되는 현실 정치의 원리를 제시한다. 군주는 귀족을 견제하고 인민을 보호해서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 인민은 통치자에게 인민을 위하도록 집요한 압력을 행사해야 하고, 통치자는 기존 권력을 압도하고 인민의 의시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목민심서 / 정약용(통치자는 권력으로 권위를 얻을 수 있는가)

'목민'은 지방 수령인 목민관이고, '심서'는 마음으로부터 국가 행정이 개혁되기를 희망'하여 쓴 책이라는 의미이다. 지방 행정 병폐를 해결하고 유교적 도덕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지방 수령이 부임해서 물러날 때까지의 주요 지침을 소개한다.

맹자 / 맹자(소통하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소통 정치학의 교과서로, 인(仁)의 마음으로 의(義)를 실천하라 말한다. 군주는 군자가 되어 선한 본성을 발휘하는 왕도정치를 해야 한다. 패도정치를 질타하고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는 데 만약 듣지 않으면 얼마든지 군주를 바꿀 수도 있다.

감시와 처벌 / 미셀 푸코(통제 사회에서 어떻게 해방될까)

감옥 제도를 매개로 한 권력이 통제 기술이나 전략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다룬다. 17세기 이후 교도소, 공장, 학교, 병원 등 사회 전반에 규율 권력이 확장되고 있어 인간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열 체계를 활용한 위계질서적 감시, 개인 편차를 측정하여 개별화를 지향하는 규범화된 상벌 제도 등 개인의 효율적 복종을 원하는 권력이다. 모든 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고, 자유인이 되고 싶으면 계급, 신분의 위계, 성 위계, 지식의 위계 등 모든 권력 위계를 거부해야 한다. 불평등한 위계 사회에 동조하는 사람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해자로 복무한다. 

인간 문제 / 강경애(억압 공간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일제 강점기에 소작농의 자식이 삶의 터전과 유리되어 도시 노동자가 되고 계급성을 자각하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즘 소설. 일상생활이 구조적 권력관계 아래 놓여 있는 탓에 인간은 생활의 작은 개선이나 공간 이동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는 현실에서 억압 권력을 혁파할 때 획득된다. 자유를 원하면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공간과 관계 속으로 진입해야 한다.

광장 / 최인훈(살기 좋은 나라를 찾을 수 있을까)

'광장'은 진정한 자유 공간이다. 광장을 남과 북에서 발견하지 못한 명준은 북한군으로 참전하여 전쟁 포로가 되고 송환 과정에서 남과 북 각자의 자랑을 듣고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중립국을 선택하는 명준은 가는 도중 배에서 바다로 투신자살한다. 남쪽은 이기적 자유와 부정부패, 성의 상품화로 점철된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로 상호 간의 믿음이 없고, 북쪽은 기계적 명령과 복종만 있는 잿빛 공화국으로 개인 창의성이 말살되는 자유가 압살된 광적 믿음이 가득한 곳이다. 살기 좋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판단되며,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나라는 이상일뿐이다. 사회 모순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로 새로운 탐색을 이어갈 때 모순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국가 안에서 어떻게 자유를 확보할까)

전제정, 군주정, 공화정을 구분하고 독재 권력을 비판한다. 행정권, 사법권, 입법권으로 나눠 서로 감시하는 삼권분립 제제가 필요하다. 성직자 신분은 정치체계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사회 세력들 사이의 감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법은 신의 계시가 아닌 자유로운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주요 국가기관의 권한이 확대되고 중복되면서 삼권이 서로 공유되어 각 기관의 경계도 모호해지는 바람에 삼권분립 제도는 권력기관 간의 정치적 야합 행위를 막지 못 했다. 그만큼 시민의 자유는 위축되는 것이다. 시민이 자유를 되찾으려면 정치 참여 운동을 통해 국민 입법, 자치 행정, 배심원 제도 같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인민의 의지가 국가기관을 움직이지 못하면 국가기관의 의지가 인민을 움직이게 된다.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 알렉산더 해밀턴 外(결사의 자유를 어떻게 다룰까)

독립전쟁 이후 연방국가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연방주의자들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책으로,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대의제와 상하원 혼합정을 비롯해, 파벌 권력을 억제하고 소수 세력의 정치력을 보장해주는 공화주의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려다 파벌이 권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계를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세계로 확장하여 경계 없는 지구적 자유와 만나게 해야 한다. 

삼국유사 / 일연(종교의 정치 세력화를 어떻게 볼까)

고조선, 위만 조선, 삼한부터 삼국과 가야, 고려 이전까지의 건국신화와 흥망성쇠를 그리고 불교에 대해 기록하면서 종교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종교의 정치 세력화는 종교의 본분을 잊는 것이고 민주적 사회 공동체에게는 해가 된다. 과학적 합리주의에 밀려난 종교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교단 조직을 확대한다. 집단 조직 체계를 갖추고 세속적 목표를 추구하며 사회의 어떤 집단보다 권력화되어버렸다. 복음을 정치화하여 사회 공동체 위헤 권력체로 군림하고, 교세를 확장하려는 욕망은 배타적 공격성을 지니고 가시적 정치 세력화로 나타난다. 배타적이고 독선적 교리를 설파하는 배경에는 종교 조직의 세속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교의는 인간 지식을 초월하는 등 종교는 성격상 이성적으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에 해로운 면이 있고, 세속화된 종교인의 정치적 선동은 교의나 계시로 둔갑하여 현실 정치를 혼동 상태로 빠뜨리기도 한다. 정치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세속적 행동은 신도들의 맹신적 믿음을 바탕으로 한 지지에 고무되어 세속 정치인보다 더 충동적일 수 있다. 마녀사냥, 종교 간 전쟁 등 종교가 정치 세력화되면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고 전체주의의 근원지가 되기도 한다. 종교는 합리성에 밀려난 윤리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신적 위로와 위안을 주는 동시에 세상의 지표가 되어야 하고, 사회 공동체 합의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 종교가 세상에 집착하여 격렬한 사회적 투쟁과 갈등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정치 세력화는 장기적으로 종교를 강화하기는커녕, 존재 근거를 스스로 파괴하고 만다.

미국의 민주주의 / 알렉시스 드 토크빌(민주주의 체제에서 평등이 왜 중요할까)

프랑스 하원의원이었던 저자는 프랑스 혁명을 경험하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상을 찾기 위해 미국을 여행한다. 살인과 약탈, 폭력을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물질적 사익 추구를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평등과 자유가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평준화를 보여주는 미국 사회에서 충격을 받기도 하고, 민주주의 허점을 발견하여 시민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한다.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났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는 양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바탕으로 자유를 지향한다. 토크빌이 본 미국의 평화로운 민주사회의 근거는 특권 질서의 부재, 평등하고 자유로운 타운 공동체, 높은 수준의 교육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생활습관이다. 사회 양극화는 평등 정신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악화시킨다. 경제 불평등이 지속되면 정치는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고 만다.

자본의 시대 / 에릭 홉스봄(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민주주의인가)

부르주아의 정치 세력화와 자유민주주의의 기획을 통찰한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에 주목했다. 19세기 중반의 대호황의 영향으로 부르주아가 보수세력과 연합한다. 부르주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법과 제도로 국가 영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 덕분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성장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투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한 결과이다. 산업혁명의 자본주의가 시민혁명의 민주주의를 압도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아닌, 부르주아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에서 출발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이념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가 함께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 페르낭 브로델(자본주의는 자연적 질서인가)

방대한 사료와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한 경제 역사서다. 인간의 경제생활을 일상생활(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삼층 구조로 설명한다. 독점적 자본주의는 국가권력과 공모해 원거리 무역을 통한 시장을 조종한 결과이다. 자본주의는 인위적으로 위계화된 지배질서이고 시장경제의 다양한 관리양식 가운데 하나이며. 시장경제가 원거리 무역으로 확대되면서 활성화된 시장경제 위에 군림한다. 시장경제를 평등하게 규율할 질서가 탄생하면 더 이상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잉여 생산물을 평등하게 관리하는 공동체 정신과 제도가 필요하다. 돈의 위계, 국가의 위계, 사회적 특권의 위계, 문화의 불균등을 없애는 사회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민주적 시장질서는 가능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신성한가)

왜 유럽에서만 합리적 근대자본주의가 성립했을까. 그 이유를 종교적 신앙과 직업윤리의 친화성에 주목하여,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된 노동윤리와 검약의 생활방식 등 신교도 집단이 설파한 논리에서 찾는다. 칼뱅 파는 예정설과 금욕주의와 함께, 현세에서의 충실한 행동이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의무라고 가르쳤다. 그에 따라 신도들은 노동을 자기 삶의 목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칼뱅주의는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추진하게 만든 힘을 제공했다. 노동의 신성함은 노동자에게 노동 강제, 신에 귀의하게 하는 강력한 지베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여,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를 양산하고 불평등한 분배까지도 신의 섭리로 정당화한다. 노동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노동의 신성함이라면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노동관계를 개선하여 노동의 불평등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탐욕을 지원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변신 / 프란츠 카프카(누가 일중독으로 내모는가)

인간의 고독과 실존의 허무를 보이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

경제적 가치가 가정에 침투하면 인간은 존재감을 상실하기 쉽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감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평가된다. 가족을 위한 노동이 점차 가족에서 소외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마니, 삶의 필수적 복지 수준이 향상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부론 / 아담 스미스(개인 노력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나)

'여러 국가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가 부제. 부의 원천을 밝혀 국부를 증진할 방법 모색. 개인의 이기적 경제활동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됨을 밝히다. 국부란 생활용품의 양이며 재화는 인간 노동의 대가이다. 국부를 증진하려면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분업이 매우 효과적이다. 자유무역은 분업의 세분화를 자극했다. 단순히 방임적 자유시장이 아닌 공정한 시장에서만 국부가 증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점 가격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독점 기업이 배타적 특권을 인정하면 공공의 풍요는 파괴된다. 상호의존적 경제를 이해한다면 타인의 노동과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노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질적, 문화적 풍요의 기원이 노동착취에 있으면 풍요를 누리는 태도 자체가 부도덕한 것이 된다. 

자본론 / 칼 마르크스(상품화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연구가다. 상품 분석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연구. 상품의 본래 가치는 인간 노동에 있으나 교환 과정에서 노동은 은폐된다. 화폐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입해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자본이 되며, 자본가는 노동자의 임금 가치 이상으로 노동을 유도해 잉여가치를 획득한다. 자본가의 속성은 이윤과 자본의 계속적인 축척으로,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기계를 도입하여 실업자를 양산한다. 노동력의 공급과잉으로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관계가 지속되어 노동자는 궁핍해지고 계급의식이 고무됨으로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노동 생산물이 상품으로만 보이면 인간의 노동가치는 무시된다. 상품끼리의 비교만으로 규정되어 상품이 인간의 손을 떠나면 인간이 상품을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당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마르크스는 이를 물신숭배라 부른다. 모든 사물과 지식이 화폐 단위로 측정되는 시대, 사람도 개별 상품이 되어버릴 수 있어 인간 존재감은 약화된다.

청구야담(상업적 관계를 신뢰할 수 있나)

조선 후기 대표 야담집으로, 현실에 기초하면서 상상을 통해 재구성해 낸 것들이지만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둔 부분이 적지 않다. 주요 화제는 부의 변동이다. 가난한 양반의 존재가 많이 부각되고 중인, 평민, 천민의 부의 획득 사례가 많이 제시된다. 경제력에 따른 신분변화가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가운데 근대사회에서 무너져가는 도덕성을 엿볼 수 있다. 상업적 관계는 부의 위력이 지배하는 탓에 경제적 약자를 양산하고 결국 인간성을 파괴한다.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는 데는 자유와 평등 같은 민주적 가치보다는 부의 이동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돈의 위계가 신분위계를 대체하는 것이다. 청렴마저 경제적 빈곤 앞에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및 문화적으로 대립을 심화시켜 테러 등의 비극을 양산한다. 상업적 관계가 신뢰를 얻으려면 돈의 위계가 낳은 새로운 신분질서도 해체되어야 한다.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자유는 왜 소중한가)

다수의 횡포, 여론의 압력으로 대표되는 자유 침해 문제를 주목했다. 인간 내면을 드러내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어느 사상도 영원히 정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사회적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개인의 존엄성을 높이고 개인과 사회에 모두 이롭다. 다수 의견에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개인의 가치는 훼손될 수 있으며, 다수와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수결 원리가 오류는 줄이지만 절대적일 수 없는 이유이다. 소수 의견이 오류라도 옳은 의견과 대비되어 명확한 진리를 드러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융화와 단결을 사회 이상으로 추어올리면 개인 의견이 말살되어 창의성이 사라진다. 세계 변화를 이끈 창의적 사고는 다수 의견을 자유롭게 의심하고 비판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관용적 사회가 필요하다.

제자백가의 사상 / 공자 外(이념과 사상의 혼란을 어떻게 볼까)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사상을 살펴본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76년까지가 100여 개국의 제후들이 다툰 춘추시대이고, 기원전 475년부터 기원전 221년 제, 연, 진, 초, 위, 조 7개 국의 패권다툼이 있었던 시대가 전국시대이다. 도덕적 자각과  품성의 함양을 통한 덕치를 나타낸 공맹사상인 유가, 겸애라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 묵가, 강력한 법적 통치술인 한비자의 법가, 자연상태에서 자유를 누리는 노장사상인 도가 등의 제자백가 사상이 존재한 시절이다. 다양한 사상이 혼재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를 간결한 원리로 재구성하면 획일적 폭력이 나타난다. 사회가 굴러가는 데에는 특별한 내비게이션이 존재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는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보잘것없거나 해로워 보이는 사상도 주류 사상에 밑거름이 되거나 자극이 된다. 무리한 사상 통일은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좋은 세상에 이르는 길은 명료하게 우리 앞에 펼쳐져 있지 않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는 그 자체로 새롭고 좋은 세상일 수 있다.  

마의 산 / 토마스 만(자유가 지상 최고의 가치일 수 있는가)

마술적 힘에 이끌리는 세계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회적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애와 사랑을 위해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죽음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자유의 극한은 타락과 죽음일 수 있다. 자유 지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는 사회 양극화와 사회 분열을 조장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에는 관심이 없다. 자유로움의 관성 때문에 자유 이외의 가치를 모르고 사회적 제도의 문제에 둔감하며, 개인의 자유에 갇혀 공동체적 지혜와 연대의 힘을 모른다. 자유는 소중하지만 극한적 자유 경험으로 몰아가면 희열은 희석되고 사회는 피폐해진다.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성숙한 시민은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를 맹신하지 않는다.

의무론 / 키케로(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행동할까)

시민의 최고 덕목은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도덕적 선과 영예는 지혜, 용기, 인내, 정의의 네 가지 덕목에서 나오며, 도덕적 선과 유익함은 공존한다. 도덕적으로 선해야 반드시 유익하다. 국가 정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면 사회적 편익이 개인 이익으로 고르게 분배되어 도덕적 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확신시킬 수 있다. 사회적 이익 추구가 개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해야 사회적 이익 추구가 설득력을 얻는다. 불공정한 규율에 따라 교활한 소수에게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어 정의롭지 못한 것이 항상 유익한 것이라면 도덕적 선을 따를 자는 없다. 정의 추구가 개인에게도 유익하도록 만드는 사회 체제가 필요하다.

카인의 후예 / 황순원(갈등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해방정국에서 북한의 토지개혁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갈등을 그렸다. 땅의 소유권을 두고 인간 사이의 복수극을 종결지으려면 땅을 자연의 품으로 돌리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토지개혁과 개발은 토지를 공공재로 보는 발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벚나무 동산 / 안톤 체호프(우리는 평화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갈매기', '바나 아저씨', '세 자매'와 더불어 체호프의 4대 희곡 작품이다. 지배를 허용하고 싶지 않으면 누구도 자기를 밟고 지나갈 수 없도록 의욕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는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무기력하게 살면 의욕적인 사람의 지배를 허용할 수 있다. 시민이 온순해질수록 권력자들은 강력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은 의지 있는 자들의 것이다.

간디 자서전 / 마하트마 간디(비폭력주의는 진리인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 무소유, 채식과 단식, 금욕부터 정치적 실험까지 진리 실험과 경험을 기술한다. 일방적 폭력을 배제하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간디다. 비폭력적이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비폭력주의가 진리가 되어 폭력을 죄악시하면 저항정치는 탈정치화와 급진적 폭력의 분출이라는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 정치가 교착 상태에 이르면 시민은 탈정치화되기 마련이고, 급진주의자의 폭력을 자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폭력주의를 추방한다면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도 제거되어야 한다. 오늘날 비폭력주의는 저항의식은 사라지고 무기력함만 남았는지 검토해봐야 하며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일반인은 사회 범죄에 책임이 없는가)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인간의 본질 문제를 거론한다. 방탕한 표도르와 그의 사생아 스메르자코프. 첫째 드리트리는 아버지와 그루센카를 두고 반목하고, 둘째 이반은 지식인이며 무신론자이고, 셋째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걷는 청년이다. 어느 날 표도르가 살해되고 드미트리가 살인자로 주목받지만 이반의 영향을 받은 스메르자코프가 저지른 일이고 그는 곧 자살한다. 드미트리는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고 시베리아 유배길에 오른다. 마음속으로 범죄를 바라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세 아들은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공유한다. 사유와 욕망 차원에서 악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다. 범죄자는 일반인의 욕망을 구현하고 일반인은 그로 인하여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범죄자를 영웅시 할 수는 없지만, 일반인 역시 선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범죄자와 닮은 점을 숨기고 범죄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범죄자 응징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자기 기만일 수 있으며, 누구도 죄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본인도 깨닫고 있다. 본인은 사회 범죄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범죄를 방임한 탓에 공범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회 범죄는 곧 나의 문제일 수 있다.

무정 / 이광수(전통 질서를 거부하면 근대적 자아가 확립되는가)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이다. 근대적 자아는 자연의 불안과 위험을 극복하고 기존 사회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할 줄 알게 되었다. 자아 확립은 전통 질서를 거부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진정한 근대인은 문명 교육의 자극을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습득한다. 자기 각성이 일상생활에서 사회로 확장되어야 하고 근대적 자아의 확립은 책임 있게 사고하고 행동할 때 가능하다. 

마음 / 나쓰메 소세키(서구 근대성은 비서구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나)

일본 국민 작가의 대표적 근대문학이다. 선생은 부모를 잃고 숙부가 속이는 바람에 상속 재산을 잃어 고향을 떠나 한 하숙집에 거하면서 친구와 동시에 하슥집 딸을 사랑하고, 친구 몰래 하숙집 주인에게 그의 딸과의 혼인을 성사시키는 데 그 사실을 안 친구가 자살하고 선생 역시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에 자살을 택한다. 근대화는 인간 존엄성에 뿌리를 두고 합리성과 주체성에 입각한 사고와 행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근대성은 물신주의와 이기심도 배양된다. 서구의 근대성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했지만, 경제적 합리주의는 이익 지상주의가 되어 회의적으로 변한다. 근대 합리성이 국가 차원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지상 목표로 삼았기에 비서구 사회에서는 이익 지상주의로만 굴절되었다. 비서구 사회에서의 합리성은 경제성장 체제를 합리화하는 논리와 부국강병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자신의 부를 위해서는 비인간적 행동도 합리화하고, 강압적 근대화로 인하여 주체성을 잃고 만다. 더군다나 자기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기까지 하며 전통적 우애와 협력 같은 연대마저 해체해버리고 말았다. 현대사회는 탈근대화되었지만, 성장주의나 민족주의 같은 것이 변형되어 여전히 비인간적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

탁류 / 채만식(전근대성과 근대성은 대립하는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의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을 상징하는 소설이다. 과거의 전근대적 속성을 지닌 인물의 왜곡된 근대성을 볼 수 있다. 가난, 싸움, 투기, 간통, 흉계, 횡령, 탐욕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근대 도시. 전근대성과 근대성은 실제로 혼재하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와 성적 억압주의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접목된 식민지 근대화 개념은 사회 모순을 심화시켰다.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 동시에 필요하다.

고향 / 이기영(근대화가 파괴한 공동체를 어떻게 재건할까)

일제강점기 계급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근대화는 화려한 물질문명으로 포장되지만 계급 분화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공동체도 시대에 맞는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계급의 위계적 균열을 정당화한 근대화를 성찰하고 기존 공동체의 전근대성을 극복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의 경계를 근대사회보다 넓히고 내용과 절차 면에서도 민주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 / 아이스킬로스(애국주의는 사회 공동체를 위한 신이 될 수 있을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고, 아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한다.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의 비극적 종말을 표현했다. 근대국가 이후 애국주의는 국가 중심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애국주의는 폭력적 통합성을 지닌 탓에 개인 인권을 침해하고 분쟁을 유발한다. 애국주의에 동조하는 이들이 세력화되면 국가 지도자의 인권 유린 행위조차 허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애국주의가 팽배하면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것으로 전락하여 용광로처럼 다양한 입장 차이를 녹여버린다. 애국주의는 국가 간 적대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숭고한 희생정신의 이미지와 겹쳐 보인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에 대한 불합리한 억압적 속성을 애국주의를 활용하여 은폐할 수 있다. 국경이 지리적 표현에 지나지 않을 때 세계 시민사회로의 발전이 가능하다.

양철북 / 귄터 그라스(파시즘의 역사는 끝났는가)

주인공 오스카를 통해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사회를 성찰한다. 태어날 때부터 성인 두뇌의 오스카는 세상의 거짓과 기만을 파악하고 다시 자궁 속으로 들어가려 하나 탯줄이 잘려 포기한다.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고 지하실 통로에서 추락을 시도하여 성장판이 닫혀버린다. 세상의 부조리를 볼 때마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는 오스카. 전쟁이 끝날 무렵 나치 당원이던 아버지가 소련군에 의해 사살되자, 오스카는 양철북을 묻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혹 달린 불구자 신세로 전락하고 정신병원에 갇혀버리고, 그 안에서 세상을 생각해본다. 광기 어린 세계에 대해 경계를 늦추면 일산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전체주의적 야만성은 다시 살아난다. 무비판적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소시민들이 전체주의를 초래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권을 파괴하는 어떤 변화가 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의 순간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소시민적 행태야말로 전체주의 체제를 확고하게 만든다. 오늘날 파시즘은 위축되기보다 비가시적 형태로 교묘하게 존재한다. 파시즘은 특별하지 않고 보편적이며 대중의 내면에 자리한다. 특정 사회 세력을 비이성적으로 혐오하고 특정 통치자를 맹목적으로 지지하여 국가 정책이 추진된다면 그게 바로 파시즘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비판정신은 사회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 위태로운 사회를 건지는 역할을 한다.

토지 / 박경리(개인 삶은 역사적 운명에 종속되는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삶의 풍부함을 표현한 대하소설이다. 삶의 강한 생명력을 개인 의지와 사회적 연대가 엮어낸다. 구한말 몰락하는 최 참판댁, 조준구 일가가 최 참판댁 재산을 차지하고 고아가 된 최 참판댁 아씨 서희는 간도로 이주하여 하인 길상과 공노인의 도움으로 큰 부자가 되어 조준구에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는다. 서희는 길상과 결혼, 두 아들을 두고, 길상과 두 아들은 독립운동을 한다. 두 아들이 부유한 환경에 부담스러워하자 공허함을 느끼는 서희. 길상은 출옥하여 관음보살의 탱화 걸작을 남긴다.

아Q정전 / 루쉰(어떻게 굴종에서 벗어나 진실하게 살 수 있나)

중화 의식에 도취되어 근거 없는 승리 의식을 갖고, 실제로는 노예근성에 젖어 있는 중국인의 우매성을 아Q라는 인물에 집약시켜 냉철하게 비판하는 소설이다. 아Q는 변발을 한 일반적 중국인을 상징한다. 가장 학대받는 최하층 사람들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어떠한 혁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강조된다. 아Q는 패배와 굴욕을 오히려 자기 비하나 허풍적 망상으로 위안하며 허망한 정신적 승리에 도취된다.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는 자기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어 어디서부터 왜 발생했는지 객관적으로 추적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객관적 자각은 삶의 구조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굴종의 삶을 끝내기 위해서는 치열한 반항의식이 필요하다.

천변풍경 / 박태원(대중적 삶은 무기력하기만 할까)

1930년대 청계천 변에 사는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모더니즘 소설이다. 역사적 삶과 일상의 삶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층위가 다른 맥락에서 작동한다. 대중적 삶이 무기력해 보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고 역사적 삶으로 등장하기에 앞서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서민의 안정된 삶은 정치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향이다.

사기 / 사마천(역사에서 정의는 승리하는가)

130편 중 70편이 열전이다. 다양한 사회계층, 각 방면의 중요 인물 및 이민족을 포함한 주변 국가의 역사를 기술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정치권력의 횡포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하층 인물의 정의로운 삶을 발굴하여 찬미한다. 그런 내용은 국왕 중심의 역사서에서는 찾기 힘들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해답을 제시하고,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정의로운 인물을 우선적으로 제시하고 평가한다. 기회주의자는 정의의 완벽한 승리가 가시적 현실로 드러날 때에야 정의로운 행동에 부분적으로 동참한다. 역사에는 정의가 결핍되어 있다.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은 정의를 확신한다. 정의의 희소성이 정의의 가치를 의심하거나 부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정의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라면 부단히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홍루몽 / 조설근(인과응보설은 낡은 사상인가)

중국 문화를 폭넓게 표현한다. 중국식 정원을 상징하는 '대관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귀족 가문의 이야기다. 가보옥, 임대옥, 설보차를 둘러싼 사랑의 비극과 가씨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욕망의 비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과응보설은 결과론적 한계를 보이는 데, 악행으로 피해받은 사람을 보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다. 인과응보설은 역사에서 논리뿐만 아니라 직접적 사실로 입증되면서 옹호되고, 언급 수준은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한다. 인과응보설이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악행 처벌과 덕행 보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역사 / 헤로도토스(과거를 실증적으로 탐구하며 역사왜곡을 막을 수 있을까)

역사를 지칭하는 'Historia'는 그리스어로 '조사하다'라는 뜻이다. 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밝히기 위해 저술된 책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전술이 뛰어났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오만이 주요 패배원이라 말한다.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주체가 누구이며 어떤 사실을 어떤 이유로 해석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진리를 알 수 없다. 역사적 평가는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구조는 역사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반복되는 역사왜곡은 극우적 성향이 지배하는 정치사회 지형과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전범자들이 정치권력을 유지한 탓에 침략 역사를 옹호하고 있다. 역사왜곡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현재를 올바른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예술과 사회는 어떤 관계인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서구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서술했다. 구석기시대부터 중세까지 예술에는 사회적 실용성이 영향을 미쳤으나, 르네상스와 근대를 거치며 사회적 실용성에서 벗어난다. 근대사회는 예술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었고, 현대사회는 예술의 풍요와 상업화로 인한 위기가 동시에 드러난다. 예술과 사회는 변증법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진정한 예술은 사회적 규정에 갇힌 사고를 해방시켜 사상의 자유를 획득하는 일을 수행한다. 예술을 전문가 영역으로 국한하거나 특정 인간만이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사회를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픽션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정보화 시대에서 무한한 정보를 어떻게 다룰까)

열일곱 개의 탈근대적 성향의 단편집이다. 정보의 축적, 선별, 가공 등과 같은 방법을 비교하여 가장 적절한 지식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고 개념화하여 일반화시키는 일이다. 둘 이상의 정보를 조합하여 문제 해결에 필요한 수단으로 가공할 수 있을 때 정보는 지식이 된다. 문화적 다양성이 결여된 지식으로는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다. 지식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이해하고 본질적 요소를 공유해야 한다. 중요 요소를 공유할 때만이 정보사회는 지식사회로 변화한다.

미디어의 이해 / 마셜 맥루언(미디어테크놀로지는 인간문화를 어떻게 바꾸는가)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인식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미디어 자체의 영향력을 부각시켰다. 미디어 내용은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 기술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디어 기술도 인간 신경 기관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는 미디어가 인간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현대인은 미디어를 신체의 일부처럼 활용하고, 매체의 특성을 이용하여 감각기관을 확장하기도 한다. 영상미디어는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사고하게 하고 문자 형식의 미디어는 논리적 언변을 강화한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통합적 네트워크가 '지구촌'과 같은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든다. 인터넷은 인간사회를 통합하는 촉수이며 사회를 통합시키기도 하고 저해시키기도 한다. 권력적 위계를 구성하려는 인간 의식은 미디어의 기술 발달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사회통합은 단순히 미디어 기술 체계의 구성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의 내용으로 통합할지에 대한 정치적 문제이다.

주역(미래를 예측하는 의의는 무엇인가)

우주 만물의 질서를 풀어내는 철학서다. 도형 부호인 괘를 나열하고 괘를 언어로 풀어낸 괘사, 괘사를 설명한 효사로 구성되는 역경과, 역경 원문에 후대 사람들이 붙인 설명인 역전으로 구성되었다. 기본 관점은 자연을 그대로 본받고 있다. 하늘의 운행이 땅에 영향을 주고 땅은 그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바꾸는 동시에 그 영향을 다시 하늘에 끼치는 순환이 연속되어 나타난다.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요인을 검토하여 제거하는 목적이 있다.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점에서는 비합리적 행동을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고백론 / 아우구스티누스(인간은 어떤 세상을 모색하며 살아야 하는가)

방탕한 젊은 시절을 참회하고 그리스도교로 거듭난 신앙고백이다. 신이 창조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신에게 벗어나 본래의 선한 자신을 버리고 천한 데로만 떨어지는 개인 의지의 탓이다. 신은 오직 의로운 사람의 즐거움이 되어준다. 인간은 신에 귀의하여 그 안에서만 평안을 느낄 수 있다. 신의 품 안에 살려는 사람들이 신의 품에 집착하여 인간사회를 신의 경계 밖으로 내몰았다. 지상의 세계를 신의 뜻에 따라 바꾸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신의 나라가 어떤 나라일지 현실과 영혼을 오고 가며 끊임없이 통찰해야 한다. 종교인이 신의 의지를 따르려면 단순한 포교 활동이 아니라, 신의 뜻을 헤아려 지상 세계에서 신의 나라를 만드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파니사드(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인간 존재는 무기력한가)

힌두교 경전 중 하나로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근본원리, '아트만'은 개인에 내재하는 근본원리, '범아일여'는 자신을 비우고 자연과 융합된 삶 속에서의 깨달음, '카르마'는 나쁜 업보, '윤회'는 카르마 때문에 겪는 다시 태어나야 하는 생의 고통이다. 자신의 참된 뿌리를 멸하지 않는 아트만에 두면 더 이상 물질과 같은 소멸할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세상 이해는 자기 밖이 아니라 자아(소우주)에서 찾을 수 있으며, 브라흐만도 아트만에서 찾아진다. 삶은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고, 참된 자아는 삶과 죽음을 압도하는데 죽음을 끝으로 보면 죽음은 항상 자아에 승리할 수밖에 없다. 참된 자아를 존귀하게 인식하려면 정신적 훈련이 필요하여 요가와 명상 같은 것을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자아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삶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라는 생각이 세상의 근원적 진리이며, 진리는 자아를 키우는 데서 시작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 제임스 조이스(사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도 성장할까)

유아기부터 청년까지의 성장 과정과 정신적 탐험, 예술가로서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사랑에 대한 책임, 신과 종교에 대한 헌신, 가족과 사회 및 조국에 대한 의무가 자유 영혼을 억압한다. 자아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고, 삶 전체에 걸쳐 사회적 압박과 충돌하며 성장한다. 사회 요구를 비껴가거나 제거해서 자기 삶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을 채우려 할 때 자아를 성취할 수 있다. 내 의지가 시대정신과 부합할 때 시대를 주도하는 자기 삶이 된다. 자아가 성장하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고,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도전이 필요하다. 사회가 일러준 대로 인생을 사는 게 편한 사람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데 무감각하다.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과도 맞서서 자기를 탐색할 때 자기 내면의 진실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변신인형 / 왕멍(인간의 삶을 유형화할 수 있을까)

문명 교육을 받은 신지식인의 가정 이야기. 변신인형처럼 사람은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다. 인간은 모순적,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에 특정 유형으로 분류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간접적이고 피상적 인간관계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삶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유행이나, 그것은 복합적 인간에 대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인간을 단편적으로 오해하니 서로에게 적대적이 된다. 인간 개조론이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을 특정 유형으로 편입시키려는 데 있다. 모순적 인간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성을 정형화하면 다양한 개인의 견해를 억압하게 된다.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바라려면 복합적이고 모순된 개인부터 이해해야 한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 호메로스(모든 영웅은 존경할 만한가)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의 영웅담과 모험담. 영웅은 상당 부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면서 말이다. 영웅은 국가 내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영웅 만들기는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친다. 특정인을 영웅으로 만드는 정치 세력은 맹목적 추종자를 양산해 세를 불린다. 영웅화 작업 뒤에는 영웅을 중심으로 사회 구성 원리를 재편하려는 이념적 의도가 숨어있다. 사화 발전의 자신감을 상실한 사회가 영웅 만들기에 몰입한다. 건전한 동력을 찾아야 한다.

괴델, 에셔, 바흐 /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흐의 음악('카논'의 조바꿈), 에셔의 그림(석판화인 '폭포'), 괴델의 수학(불완정성 원리)에서 이상한 고리 현상을 찾다. 사람의 두뇌와 마음까지 적용하여. 사람의 뇌와 마음은 서로 다른 층위로 구분되지만 이상한 고리로 엉켜 있다. 마음과 기계 장치의 연계 고리를 찾을 수 있고, 인공지능의 가능성도 내다볼 수 있다. 의식과 의식하는 대상 간의 위계질서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항상 모호하다. 인간의 의식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아의식을 이해하려면 의식을 낳은 배경을 끊임없이 추적해야 하고,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끊임없는 재귀이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총체적 여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관계해 온 모든 사회적 망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때 자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조건 / 앙드레 말로(생각할 수 있으면 인간인가)

행동적 휴머니즘을 웅변한다. 인간적 세상이 되려면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말은 확산되기 쉽지만 잊히기 쉽고, 행동은 따르기 어렵지만 영혼까지 전염된다. 언어와 사유로 사는 방식은 삶에 무기력하거나 관조하게 되지만, 실천하는 삶의 양식은 활력이 있고 삶을 건설적으로 만든다. 말은 행동보다 쉽게 바뀌기 때문에 행동 위에 사는 사람이 존엄하다. 존엄함은 또한 전염된다.

논어 / 공자(인간답게 살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을까)

공자가 논하고 말한 내용을 제자들이 옮겨 적다. 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인(仁)은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이념이다. 생황에서 인에 이르는 방법론으로 예(禮)를 강조한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 예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현대인은 물적 자산이나 지위를 보고 예의를 취한다. 이유는 현대사회가 경쟁사회라는 데 있다. 무한 경쟁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볼 수 없는 눈먼 사회이다. 정치적, 경제적, 자산의 차이에 따라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는 인간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삶의 관계망을 어떻게 관리할까)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결혼.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로 구성. 고위 관료 부인인 안나는 청년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져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착하는데 브론스키는 부담스러워하고 질투와 정신불안의 안나는 자살하고 만다.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가 있는 키티와 결혼한 레빈은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사회 관계망과 극단적으로 단절하는 안나, 타협적으로 대응하는 레빈이다. 지나치게 좁혀진 사회 관계망은 삶을 불안하게 한다. 관계망을 너무 많이 확장하면 부담이 커져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관계 속에 자기를 속박하게 된다. 관계망은 자신이 진정으로 대할 수 있는 만큼 유지해야 한다. 사회 관계망은 자아의 동반자로, 쉽게 버리거나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주체적 삶이 고립되거나 방해받지 않는 수준에서 관계망을 다루어야 한다.

삼대 / 염상섭(세대 간 갈등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통적 유교 사회가 근대사회로 변모하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대지주인 할아버지 조의관, 미국 유학 다녀온 기독교 신자 조상훈, 지식청년인 조덕기. 봉건적 구시대 전형인 할아버지, 이중적 삶의 아버지, 그 둘의 갈등을 바라보는 조덕기. 세대 갈등은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신구 세대의 정치적 대립은 자기 세대의 불합리한 경험조차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비성찰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세대 묶음' 대신 '고통 묶음'으로 세상을 가르는 게 현실적이다. 다른 세대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고통을 공유할 때 제한적으로나마 진정성 있는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열하일기 / 박지원(사물을 어떤 자세로 볼까)

청나라 사절단에 참여한 기행 일기로 평론, 소설, 시, 르포, 수필 등 다양한 글로 구성되었다. '호질', '허생전' 같은 소설과 과학, 기술, 정치, 경제, 천문, 지리, 종교, 음악, 언어 등 주제도 매우 다양한다. 중화사상에 물들어 청나라 선진 문물에 둔감한 조선 사대부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청나라의 기와 조각이나 똥 무더기에도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볼 수 있다. 편견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보고 믿는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속도 경쟁 사회에서는 사물의 전체성, 복잡성, 역동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편견을 양산하기 쉽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요약된 지식을 중요시하고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과정을 축약하고 단편적 정답만을 찾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한 의심은 없고, 누군가 새로운 진리라 선언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하려는 경쟁적 현상이 유행한다. 호기심을 억제하고 편견만 양산된다. 공식적 정답은 다른 지식을 배제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물의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장자 / 장주(이분법적 사고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부분 우화로 구성, 통속적 고정 관념과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것을 권유한다. 사물을 다양한 각도나 변화된 의식 상태에서 볼 때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자유로운 삶은 거대한 변화와 초월을 가져올 수 있다. 하늘과 땅은 하나일 뿐 대립하지 않고, 대립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분법은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하여 공존의 합리적 모색을 어렵게 한다. 어떠한 주장도 특수한 사회적 환경에서 형성된 임의적, 주관적 규범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중용 / 자사(중용의 미덕을 어떻게 현실화할까)

공자 손자 자사의 작품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하늘에서 인간에게 심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고, 도를 닦는 것이 교(敎)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거나 모자라기 때문이며,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 자가 성인이다.(和而不流) 중용이 중간 지점의 기회주의적 속성과는 전혀 다르다. 개인의 존엄과 사회적 전체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공성에 뿌리를 두면 중용의 덕은 실현된다. 사회적 관계의 적대와 모순을 인정하고 극단을 허용해야 중용에 이를 수 있다. 

실천이성비판 / 임마누엘 칸트(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법칙으로서의 행의의 동기를 강조한다. 이익이 아닌 도덕법칙에 기초한 의지에 따라 행동하면 그것이 바로 선이다. 도덕법칙은 이성이 자기에게 스스로 부과한 규범이고, 이 규범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에 '정언명령'(정해진 언어의 명령)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로 정언명령을 준수할 수 있으며, 자율성은 인간 존엄성의 근거다 된다. 이익이나 손해를 고려하기 전에 도덕법칙에 따르려는 선의지가 인간에게는 존재한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정언명령에 따라 나타난다. 각성된 시민의 존엄성 지키기 운동이 인간 사회를 인간적으로 만든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왜곡된 사회 양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미국 사회를 풍자한 문제작. 학습된 사회의 위선적 도덕과 인간의 보편적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헉에게 각성이 일어난다. 사회의 요구는 양심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사회 규율이 인간 존엄성을 해치면 순응하지 말고 극복해야 한다. 왜곡된 사회 양심을 인간의 보편적 원리에 따른 건전한 양심으로 바꾸는 데 자유주의적 태도는 한계가 있다. 방법론적 대안은 사회연대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보편 가치에 어울리는 관계의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성숙한 사회는 사회 양심이 인간적이어야 하고 인간 존엄과 자유평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건전한 마음이 왜곡된 양심을 이기려면 건전한 마음의 연대가 중요하다.

주홍글자 / 너새니얼 호손(사회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게 합리적인가)

엄격한 종교 윤리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 청교도 사회의 위선을 낱낱이 비판한다. 헤스터 프린이 딤스데일 목사와 몰래 사랑에 빠져 펄을 낳고 간음(Adultery)의 약자 'A'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형벌을 받는다. 펄의 아버지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헤스터. 실종된 줄만 알았던 남편이 나타나 복수를 결심하다. 딤스데일 목사는 비겁하고 위선적 보습을 드러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모든 사실을 밝히고 죽는다. 헤스터는 불행한 사람들을 돕다가 여생을 마친다. 사회적 낙인의 목적은 통제에 있다. 지배질서에 반대하는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일부를 솎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배질서가 원하는 '정상인'을 광범위하게 규정하기도 한다. 사회적 낙인 계속될수록 인간의 개성과 자유의지는 몰살된다. 사회적 낙인이 찍힌 사람도 얼마든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A'를 능력(Able)과 천사(Angel)의 의미로 전복시키는 헤스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고인 물을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지배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사유와 행동이 분열과 소란의 주범으로 비판받기만 한다면 인간 역사의 발전은 없다.

춘향전(사회적 약자의 인권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기생집 여자이나 남의 집 첩이 되기를 거부하는 춘향. 이몽룡의 일편단심을 약속받고 글로써 백년가약을 맺는다. 수절이나 정정이 기생에게 무엇이냐는 이방에게 춘향은 많은 기생의 충요열녀 본보기를 내세운다. 사회적 약자는 권력의 우월적 힘을 비판하고 동등한 존엄성을 지속적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춘향은 사회적 차별에 맞서는 용기를 발휘하여 인간의 평등성을 확보한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어 공적 영역에서도 인정될 때 비로소 '인권'이라 부를 수 있다. 사회적 약자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모순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법 질서와 사회윤리를 내세우며 수청을 강요하는 변사또, 지조를 강조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자기 인권을 변호하는 춘향. 인권을 침해한 권력의 위협에 맞서 그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사회적 공감을 확장할 때 인권은 탄생한다.

한중록 / 혜경궁 홍씨(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영조의 며느리, 사도세자의 남편,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그가 사도세자빈으로 간택된 뒤 보낸 50년의 궁중생활을 회고한 기록이다. 영조는 사도세자 친모와 불화를 겪은 후 아끼던 화평옹주가 죽자 사도세자에 무관심해진다. 한국 여성의 삶은 남성의 권력에 종속되어 왔다. 여성이 주체적 반전을 이루기 위해선 남성 권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단념해야 한다. 여성은 인류 역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유대인보다 훨씬 오래도록 폭력과 억압의 희생양이었다. 여성이야말로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스완네 집 쪽으로 / 마르셀 프루스트(시간이 지나가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총 7권으로 구성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되새긴다. 시간의 지나가지만 기억 덕분에 소멸되지 않고 삶을 구성한다. 기억할 수 없으면 삶은 허무하다. 자기 혼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에서 건져주는 것은 기억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억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만들 긍정적 자양분으로 변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을 밀도 있게 축약적으로 사는 것은 기억할 수 있는 삶을 압살한다.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느리게 살아야 한다.

정지용 시집 / 정지용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감각적인 언어의 시다. 허무감은 맹목적 소유욕과 관련이 있다. 잃어도 얻어도 허무감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상실감은 그리움을 자극하지만 역설적으로 생명력이다. 그렇게 상실감은 허무함과는 다르다. 조국이나 자식을 잃은 사람들은 생계도 버리고 저항한다. 허망하기 때문이 아니라 잃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게트(기다림은 희망적인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오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다림 자체가 목적이 된다. 기다림은 궁극적으로 삶을 해체해버린다. 무언가를 꼭 기다려야 한다면 일상생활을 성실히 해야 한다. 기다리기보다는 현실을 충실히 사는 게 낫다. 이상을 기다리기보다는 찾아 나서고, 찾는 것보다는 만드는 것이 더 낫다. 막연한 기다림보다는 현실을 바꾸는 게 낫다.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권태로운 현실과 낭만적 꿈의 괴리를 어떻게 볼까)

리얼리즘 대표 소설. 안정된 삶의 조건에도 스스로 새롭게 규정한 감각적 행복을 찾다가 불행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 시골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한 엠마, 기대화는 따분한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 레몽이라는 청년과 교제하다가 레몽이 법 공부를 위해 떠난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에 불만인 엠마는 호색한인 로돌프와 교제하다 그의 배신으로 결별한다. 우연히 레몽을 다시 만나 정열을 불태우는 엠마는 낭비와 탈선으로 많은 빚을 지고 파산하여 자살에 이른다. 이상에 빠져 현실과 괴리를 낳을 수도 없고, 권태로운 현실에 기댈 수도 없는 인생은 삶 자체가 딜레마다. 왜곡된 상상력은 현실의 불만을 강화한다. 허구의 꿈이 현실을 왜곡하면 현실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 열정으로 꿈과 현실을 교차시키고 서로를 교정해야 한다.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테스(이상주의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며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근대소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변혁 의지는 전투적으로 단련하고, 구체적인 실천은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수행할 때 세상을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다. 복고적 이상주의는 이상주의의 타락한 형식으로 변화가 과거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상이 합리성을 지니면 현실을 딛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갈 수 있다.

황무지 / 엘리엇(문명은 축복인가)

434행의 장편시. 황무지는 생명이 깃들 수 없는 문명을 뜻한다. 현대 문명과 사랑에 대해 절망적으로 말하면서 변화를 촉구한다. 현대인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단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지만, 더 큰 욕망을 만들어 항상 불만족스럽게 살아야 한다. 이제는 우주 밖으로 새로운 식민지를 찾으려 하지만 현존하는 문명을 성찰하지 않으면 그 어디서도 생명을 얻지 못한다. 미래 공포는 더욱 극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서 무기력한 인간을 양산하게 된 현실은 가장 무서운 문명의 복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서양 문명은 합리성을 지녔는가)

그리스인들은 우주가 신을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대지가 티탄족을 낳았다. 서양 문명의 폭력성의 기원도 서양 문명의 정신적 유산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부모, 자식, 친지 사이의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 이야기는 식민지 약탈을 연상시킨다. 서양 문명은 지나치게 미화된 경향이 없지 않다. 선교사 보호와 자국 기업의 피해 보상을 내세워 국가 공권력을 제공하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서구 세계를 만든 헬레니즘 문화는 지배와 탐욕 및 폭력으로 구성된다. 야만성이 서양 문명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에밀 / 장 자크 루소(문명 교육은 인간 능력을 향상시키는가)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아동 스스로 경험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루소. 진리나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하여 호기심과 애정을 갖게 유도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유아기(1 ~5세)에는 신체의 자유로운 발육을, 아동기(6~12세)에는 감각의 훈련에 치중하고, 소년기(13~15세)에는 이성의 훈련과 지성의 기초를 이루는 훈련을, 청년기(16~20세)에는 종교적, 도덕적 감성을 성숙시켜 영혼을 완성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에밀의 아내가 될 소피의 교육은 순종적 여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문명 교육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훈련시켜 계몽하려 했고 그 결과로 자연적 인성을 훼손하면서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은 인간성을 파괴하여, 승리자는 군림하고 지배하는 습성을 익히고 패배자는 자책감과 비굴함을 경험하게 한다. 지배와 착취의 비인간적 양태는 경쟁 교육을 통해 배양된 것이다. 교육 방향이 기존 사회에 적응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아동에게 삶을 스스로 연출하고 감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벌적 잠재력을 믿고 그 현상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슬픈 열대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문화를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충분한가)

구조주의의 창시자의 글이다. 문명인이나 원시인이나 인간 정신은 보편적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한다. 현대인은 자기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옹호하여 '문명'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 문명은 인간적 유대가 파기되고 기계적 관계가 지배하여 스스로 불완전성을 드러냈다. 각 문화는 보편적 인간성을 표출하여 구조적인 면에서 일치한다. 문화의 우열은 있을 수 없고 문화의 발전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원시 부족 문화는 인간의 호혜성이 발견되기에 현대 물질문명을 성찰하는 준거가 될 수 있다. 현대 문명인은 지금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고전 시가 전집(사람들은 왜 자연을 찾을까)

고대가요, 향가, 한시, 고려속요, 악장, 가사, 시조 등의 고전문학들은 다양한 자연물과 자연현상에 삶의 희로애락을 녹여내었다. 인간은 자연세계의 일부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변함없는 벗이다. 자연에 기대어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사회의식을 강조한 작품이 많다. 삶의 균형을 잃고 방황할 때 자연을 접하면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삶을 자연에 비추어 성찰하는 자세가 자연을 보는 올바른 태도이다. 자연을 삶의 동반자로 삼으면 삶을 의연하게 지킬 수 있다. 

당시선(낭만은 배부른 자의 향연인가)

당나라 시기의 왕유, 이백, 두보는 중국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중국인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읽어야 한다. 낭만은 물질문명 세계의 가치관에 반발하여 자연정서를 바탕으로 개인의 감성적 가치를 중시한다. 비인간적 현실 사회가 낳은 산물이 낭만이다. 물적 가치를 가장 앞세우는 태도는 합리성으로 포장해도 비인간적 행태를 숨길 수 없다. 출세 등의 경쟁은 타인의 몰락을 기본으로 한다. 낭만주의는 사실주의에 비해 현실 비판은 소극적이다. 허무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판정신과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날 선 무기로 현실세계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이기기는 어렵다. 낭만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무한한 가능성일 수 있다. 

백석 시선집 / 백석(현대인은 왜 정겨운 옛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가)

사투리를 구사하거나 토속적 소재들을 시어로 채택하여 농촌 공동체의 정겨운 정서를 표현했다. 문명 세계로의 급격한 전환은 인간적 유대를 단절시켰다. 도시인은 옛 생활의 정겨운 정서를 스스로 밀어내고 파괴했다. 물적 풍요만을 추구한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전통적 삶을 비합리적이라고 규정한다. 도시 문명생활에 집착하여 도시인은 종속되었다. 정겨운 생활을 곁에 두기보다는 가끔씩 접속하여 관음적 시선의 대상으로 옛 정서를 즐길 뿐이다. 현대인은 이웃의 정겨운 도움을 불편해하며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다. 

백 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현대인은 왜 고독한가)

서구 문명의 함리성과 식민화가 낳은 주체성을 강탈한 모습을 폭로한다. 문명인의 고독은 제한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핏줄과 민족에 갇혀 넓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 고독해진다. 물질문명에 집착하는 한 모든 국가는 고독하다. 세계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어도 고독해진다. 문명 세계에 비판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인종, 성, 종교, 지역, 국가의 차별 없이 세계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할 때 문명 세계의 숙명적 고독이 정화될 수 있다.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괴테(인간은 욕망을 이성적으로 추구하는가)

시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진 희곡이다.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절망하는 노년의 대학자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쾌락과 영혼을 맞바꾸자고 제안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다. 젊어지는 몰약을 먹은 파우스트는 청순한 소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고, 그레트헨의 어머니와 오빠가 사랑에 연루되어 죽고 교도소에 갇힌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의 구출을 거부하고 신의 구원을 받는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신화 속의 헬레네와 결혼, 아들을 낳지만 아들은 죽고 헬레네는 저승으로 내려간다. 파우스트는 향락으로 이루지 못한 욕망을 공익적 행동으로 충족하려 불모지를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맹인이 되고 숨을 거둔다. 사회 공동체의 생존 환경을 무너뜨리는 욕망은 추구할 가치가 없다. 욕망을 추앙하면 욕망이 개인도 사회도 집어삼킨다. 욕망 충족은 타인과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욕망에 무한한 허기를 느끼는 인간은 이성을 잃기 쉽다. 사적 욕망의 추구를 공익적 행동이 주는 정신적 만족으로 돌려야 한다.

위대한 유산 / 찰스 디킨스(상류층이 되면 모든 것을 얻게 되는가)

'신사'가 되려는 사회적 신분상승 욕망을 다뤘다. 신사는 귀족의 지배력과 부르주아의 경제력이 결합된 계층이다. 핍의 신사수업은 진정한 교양을 갖추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 준 사람이 탈옥수 매그위치란 사실에 충격받는 핍. 매그위치는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핍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큰 병에 시달린다. 매형 조가 찾아와 극진히 간호하고 빚도 갚아준다. 냉대했던 조의 진실한 인간상을 본다. 책에서의 신사의 삶은 속물적이다. 허영심과 물욕이 지배하고 쾌락만 추구한다. 타락한 상류사회가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신분상승 욕망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면서 상류사회를 떠받들기 때문이다. 신분상승이 목적인 사람은 자기 주변의 환경에 냉혹해진다. 배타적 지배 속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속물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의명분을 쥐어짠다. 상류층 진입을 위해 사용한 노력과 비용을 보상받으려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 다른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탐색할 때 삶을 평등하게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조법어 / 지눌(지식 공부로 탐욕적 습성을 바꿀 수 있을까)

자기 마음 밖 다른 곳에서 부처됨을 찾는 이들을 질타한다. 인간 성품의 바탕에는 본래부터 번뇌가 없고 절대 지혜의 성품을 갖고 있다고. 그래서 본성이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단번에 깨닫고(돈오), 깨달음을 얻는 후에는 끝없이 수행해야 한다.(돈오점수) 마음의 본성을 다스리는 수행법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지적 욕망과 감성적 욕망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욕망을 확장한다. 마음공부는 욕망을 버리는 행동이고 비움을 지향한다. 탐욕을 비우고 인간성을 채우며 지속적 수양으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매 순간 사물을 대하면서 마음을 비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꿈의 해석 / 지그문트 프로이트(욕망을 억제하기만 해야 할까)

무의식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을 표출하는 꿈을 연구했다. 욕망이 현실적으로 좌절되거나 스스로 잠재된 욕망을 억제하는 탓에 실제 꿈에 나타나는 것은 잠재된 것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드러난 꿈을 소재로 잠재된 욕망까지 추적한다. 꿈은 왜곡은 다양한 양상으로 작동한다. 마음속으로 욕망을 검열하기 때문이다. 꿈의 본질은 미래를 예언하는 게 아니라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꿈에서 성취된 것은 억압된 욕망이다. 욕감을 이해하려면 꿈의 분석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억제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인 꿈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욕망을 억제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하려던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욕망을 이해하지 않고 부정한 데 있다. 욕망을 직시해야 조절도 가능하다.

구운몽 / 김만중(욕망을 어떻게 다룰까)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깨달은 인생관이다. 당나라 시기,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 이야기다. 팔선녀를 희롱한 성진, 성진과 팔선녀는 윤회의 업보를 짊어진다. 성진은 양소유로 환생하고 팔선녀도 환생하여 양소유의 첩이 된다. 꿈에서 깬 성진은 꿈의 내용이 육관대사의 가르침이란 걸 안다. 성진과 선녀들은 불도에 정진하여 극락세계로 들어간다. 욕망은 물질과 가치를 소유하려는 심리이다. 욕망의 무상함은 성진처럼 모든 욕망을 성취한 자에게나 깨달음을 준다. 금욕주의도 욕망처럼 무상하다. 욕망 대상과 관계없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모든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욕망을 다루는 현실적 방법은 욕망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욕망이 삶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삶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함경 / 샤카무니 붓다(삶의 고통이 아프기만 할까)

붓다는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은 자이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전한 깨달음을 기록한 경전들의 모음집이다. 불교의 근본사상인 '연기사상'을 담았다. '연기'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해 있다는 의미이다.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따라야 한다. 바른 견해, 뜻, 말, 행위, 생활태도, 노력, 생각, 선정이다.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원인을 파악하여 고통과 연계된 삶의 근원적 작동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고통은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탐욕적 습관을 경고하여 삶의 전환을 유도한다. 탐욕의 무상함을 이해해야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다. 욕망에 집착하는 삶의 형식을 조금만 바꾸어도 고통은 줄어든다.

신곡 / 알리기에리 단테(고통을 회피해야만 할까)

지옥, 연옥, 천국의 여정을 통해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이야기다. 지옥은 고뇌와 고통의 상징적 공간으로 죄의 무게에 따라 층위를 나누고, 연옥은 고통을 경험하고 영혼을 정리하는 곳이다. 천국에서는 시공간을 넘어 숭고하고 절대적인 신의 사랑을 깨닫는다. 삶의 진리를 위해서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성찰해야 진리를 얻는다. 천국에 이르는 구원을 받기 위해 고통을 적극적인 의지로 성찰한다. 고통을 경험할 때 삶의 목적으로서 고통 없는 세상을 지향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경험하는 일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구원의 기회이다. 안락한 길만 찾는 사람은 현존하는 고통을 외면한다. 고통 없는 세상이 되려면 고통을 알고 공감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고통은 경험할 만하다.

햄릿 / 셰익스피어(악행을 응징하는 사람은 선한가)

악행을 처벌하는 행위 자체가 선행이라고 찬양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악행 처벌 조치를 파괴할 필요는 없다. 선과 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상대주의가 절대 가치로 둔갑한다. 악행을 강력한 의지로 종결짓지 않고 불씨를 살려 놓으면 불의의 역사는 뒤엉킴 속에서 되살아난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은 악행을 처벌하는 행동만 하되 저주하지 않고 인간 존엄성과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퇴계문선 / 이황(성선설이 도덕성의 타락을 해결할 수 있는가)

성리학에서의 이(理)는 원리와 이치이며, 기(氣)는 사물의 질료나 재료이다. 주리론을 근거하여 '이기이원론'을 발전시켰다.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 이가 발단하여 생기는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고, 기가 발동하여 생기는 것은 칠정(喜, 怒, 哀, 懼, 愛, 惡, 欲)이다. 인간 본성은 선하며 성선설은 선한 인간 본성에 기대어 악행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이황은 개인 수양으로 부족한 심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지만, 악행이 빈번한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도덕성의 타락을 사회의 산물로 이해하지 못 했다. 개인 수양보다는 더 적극적인 제도적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회의 양면성을 수용해야 한다.

율곡문선 / 이이(도덕성을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이(理)와 기(氣)를 일체로 보는 '주기론'을 강조한다. 사단과 칠정 모두 기의 발동이라고 본다. 이는 절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탓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기가 움직일 때 이가 올라탈 수 있다. 학문의 목적은 지식 습득이 아닌,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을 바르게 잡는 공부로 인격을 완성하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도덕적 마음이 변질되면 교육적 훈계와 정치적 지도로 바르게 정립할 수 있다. 유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 유교의 지배질서를 사회에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누군가 도덕성을 관리할 성인군자를 찾기 힘든 문제점이 있다. 국가가 도덕성 관리를 주관하면 권위주의적으로 흘러 비도덕적 행위를 양산한다. 도덕성은 치열한 논의를 거쳐 사회에서 합의하는 수준에 따르는 게 합리적이다. 

도덕 계보학 / 프리드리히 니체(도덕을 당연히 지켜야 할까)

도덕 개념 및 가치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여 분석했다. 도덕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인식하는 절대적 관념을 비판한다. 도덕은 삶의 조건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을 좋음과 나쁨의 대립으로 접근하자고 한다. 죄와 양심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요구하는 것이다. 금욕적 이상은 인간의 건강한 삶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킨다. 권력에 대한 의지를 지니는 강한 인간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도덕적 가치를 근원적으로 의심할 때 뒤에 은폐된 비도덕적 폭력과 야만을 드러낼 수 있다. 도덕을 넓게 봐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극단적 온순함에 집착하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의 강력함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사랑의 진정성을 어떻게 찾을까)

근대 일본의 서정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눈 내린 온천 마을의 환상적 분위기에 인간 심리를 겹쳐 놓아 신비적 애수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살려낸다. 현실 논리에 경도되어 이상적 사랑을 삶의 중심부로 불러내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은 부정되고 삶에서 소멸된다. 현실과 이상으로 대상화시키고 불규칙적으로 교류하는 사랑 경험은 삶의 불안정성만 심화시킨다. 타인의 시선이나 낡은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책임과 자율의지에 따라 사랑을 하면 이상 세계에 고립된 사랑을 건져 낼 수 있다. 인격체는 알려고 하면 할수록 새롭기 때문에 전인격적 사랑은 삶을 충만하게 한다.

변신 이야기 / 오비디우스(사랑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신이나 인간이 자연물로 변하는 사랑 이야기이다. 다프네는 월계수로, 레우코토에는 향나무로, 클리티에는 해바라기로, 비블리스는 샘으로, 미르라는 몰약 나무로, 에코는 메아리로, 나르키소스는 수선화로 변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삶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사랑 감정이 소유관계로 변질되면 자기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파괴한다. 현대인은 권력, 재산, 직업, 외모 등의 '사랑 자본'으로 사랑을 주고받는다. 물적 재화의 우열 관계만 남는다. 인격체는 소유되지 않는다. 사물로 채워지지 않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사랑이다. 상대를 자기 삶의 욕망 안에 구속하지 않고 상대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돕고 각자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삶도 풍요롭게 변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최선의 삶이란 무엇인가)

최선의 삶이 될 수 있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와 덕에 관해 언급하고 정의, 중용, 인간다움, 우애, 쾌락 등의 논의를 거쳐 행복에 대한 종합적 견해를 제시한다. 인간 특유의 덕(arte)은 탁월성이다. 타인의 행복을 고려하여 실천할 때 최선의 삶에 이른다. 그래서 정의로운 행복 추구가 필요하다. 윤리적 정의는 정의로운 행동을 반복하여 습관화할 때 완성된다. 호혜주의적 품성이 집단주의에 갇혀 활용되면 사회 공동체의 행복을 저해한다. 정의의 성격과 내용이 얼마나 보편적일 수 있는가가 문제다. 협력과 우애가 성, 인종, 지역, 국가 등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 비로소 정의로운 행복 추구가 될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이성적 품성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따르고 그 실천도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때 최선의 삶이 된다. 

과학고전선집 / 홍성욱 편역(과학적 창의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16, 17세기 유럽 과학혁명 시기에 나온 핵심적 논문 모음이다. 과학혁명의 출발점인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갈릴레오의 '대화'(지동설 옹호)와 '새로운 두 과학'(낙하법칙 증명), 메르센 신부의 '과학의 진리'(자연은 정량적으로 예측 가능), 데카르트의 '세계'(자연의 변화는 물질 변화에 따른다), 하비의 '동물의 성장과 피의 운동에 대한 해부학적 논고'(피가 인체를 순환함을 처음 밝힘),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과학적 창의를 탄생시킨 세 가지 도전은, 관습적 상식에 대한 거부와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도전,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사실을 입증하려는 용기다. 

과학혁명의 구조 / 토머스 새뮤얼 쿤(과학 지식을 어떻게 발전시킬까)

과학자들이 자연을 보는 방법, 문제 제기 방법, 문제 해결 방법의 관념들이 서로 질서 있게 세워진 체계나 구조가 패러다임이다. 자연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패러다임을 통해는 과학자는 본다. 과학의 역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역사이다. 영원히 객관적인 과학은 없다.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현상이 과학혁명이다. 과학은 기존 지식을 축적하여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경로를 밟지 않았다. 과학 지식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믿음은 철회되어야 한다. 기존 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정상 사회의 경계를 벗어난, 기존 사회적 관성을 벗어난 사람이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다. 

방법서설 / 르네 데카르트(누가 그리고 어떻게 진리를 탐구할까)

'자기 이성을 바르게 인도하고 모든 학문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서설이며, 그리고 그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대기학, 기하학'이라는 책의 첫 부분이다. 인간 이성의 자율적인 사용법을 제시하여 중세의 지적 관습을 해체하고 근대적 사유를 찾아내는 지적 여정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이성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 사람들의 견해 차이는 이성의 차이가 아니라 이성을 사용하는 방법의 차이이다. 논리학을 바탕으로 이성의 올바른 사용 규칙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명증성, 분석 가능한 단위로의 분해, 단순 사실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종합, 나열된 모든 사고의 검사이다. 진리를 찾기 위한 의심은 방법론의 과학성에서 진리 탐구의 정치성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성을 과학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기관 / 프랜시스 베이컨(근대의 과학적 탐구 방법이 우상을 해체했는가)

'자연 해석과 인간 세계에 대한 조언'이 부제다. 자연 현상을 분석하여 삶에 유용한 지적 자원으로 삼기 위해선 네 가지 우상의 편경을 제거해야 한다. '종족의 우상'(목적과 의지), '동굴의 우상'(주관적 판단), '시장의 우상'(주고받는 말의 현혹), '극장의 우상'(생활관습이나 학문적 전통)이 그것이다. 경험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귀납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성철과 논리를 관찰과 경험으로 대체했다. 과학에 대한 맹목적 숭상은 자연환경 변화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했고, 실용적 가치가 윤리적 가치위에 군림하게 했다. 과학은 미신과 독단에서 벗어나도록 도왔지만, 과학이 신이 되면 그의 오류를 극복할 수 없게 된다. 과학의 객관성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반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객관성의 칼날 / 찰스 길리스피(객관성의 경계는 제한이 없는가)

과학자의 객관적 지식 체계를 구성하는 역사에 대한 저술이다. 과학의 본질을 객관성에서 찾는다. 객관성은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방식으로 대립된다. 과학과 사회 정치적 연계성은 과학의 본래 목적과는 무관하다. 무지와 미신에 맞설 유력한 무기가 과학이다. 객관적 사고와 감상적, 윤리적 사고는 대립된다. 객관적 방법론은 인간 사회 전체를 포용하지 못한다. 피상적 지식, 잘못된 예측, 자연 파괴, 인간성 훼손의 결과를 낳았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객관적 지식과 사고의 공백은 인문 사회학이 채울 수 있다. 과학의 합리적 방향은 사회를 종합적으로 이해하여 설정되어야 한다.

부분과 전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과학기술은 사회와 무관한가)

원자와 분자 구성하는 입자(전자, 양성자, 중성자)를 역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인 양자역학을 정립하고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한 본인의 생애와 사상을 저술했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특정한 인과율에 따른 결과로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는 근대 과학의 인식 틀을 뒤흔든다. 비결정론적 관점은 자연 세계를 더욱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한다. 그의 과학은 철학, 정치학 등과 결부되어 있다. 자연 세계 전체를 연구하려면 직관 같은 비합리적인 부분도 수용해야 한다. 오늘날 과학은 인문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누구보다 공공성을 지녀야 하는 과학자이고, 과학은 실험실 밖의 세상과 밀접하게 소통해야 한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 로알드 호프만(과학의 폐해가 두려워 과학을 거부해야 할까)

화학세계는 대립적인 측면이 양립해서 혼란스럽다. 생황을 편리하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화학 연구는 분석과 합성, 발견과 창의가 섞여 있다. 순수와 응용, 과학과 정치 등과 같은 범주를 넘나든다. 화학자는 무한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유용성에 경도되지 말고 위험성도 적극 알려야 한다. 수많은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매몰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 일반 시민도 화학의 유익함만큼이나 폐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지구의 생명은 지속될 수 있는가)

'열역학 법칙'을 사회과학에 융합했다.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엔트로피. 인류의 현대 물질문명은 엔트로피 의 증가를 가속시킨다. 자원의 낭비와 오염을 줄여 엔트로피 증가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할 때이다. 친환경적 정책이 지지 받을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필요하다.

종의 기원 / 찰스 다윈(진화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체의 존재를 신의 창조가 아닌 진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자연선택에 의해 변이, 적응, 유전을 통해 유리한 형질을 보유한 종이 살아남아 진화한다. 사회진화론은 진화론을 사회관계에 적용하여 사회 차별을 정당화했다.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위대하다.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가 생존에 성공할 수 있다. 단일 민족보다는 다문화 사회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진화론의 의의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다양성의 포용과 혁신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인간은 유전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진화 단위를 유전자로 보았다.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자연 세계의 비정한 경쟁이나 다툼은 자신의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많이 후세에 남기려는 유전자 때문이다. 인간 문화에 적용되는 유전자 단위를 '밈'이라 불렀다. 정보의 단위, 양식, 유형, 요소가 밈이다. 밈은 모방을 통해 복제되고, 유행이나 문화 전승을 가능케 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타적 밈의 확산 전략이 필요하다. 인간 유전자를 조작할 께 아니라 유전해야 할 내용과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카오스 / 제임스 글릭(복잡한 세계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이해할까)

카오스 이론의 전개 과정을 정리했다. 우주가 생기기 전의 혼돈과 무질서 상태의 카오스. 예측이 불가능한 매우 불규칙적인 상태에서도 논리적 법칙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 예측 불가능성, 비선형 과학 등을 내세운다. 나비효과, 프랙털, 이상한 끌개(상태 공간에서 시간이 나지 어느 한계적 기하학 구조로 모아지는 수렴 구조)와 같은 개념을 고안했다.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카오스 이론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소홀히 다루었던 미세한 변화에 주목하여 세계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접근하도록 자극한다. 미시와 거시, 행위와 구조, 현상과 본질, 사실과 이론, 개인과 사회를 교차시키는 유연성을 지녀야 세계를 종합적으로 분석 가능하다. 섣부른 일반화는 무질서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