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왜 일곱째 달을 첫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절기

레23:2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유대인은 왜 일곱째 달을 첫
가을이 시작 되는 9월은 유대인들에게 분주한 시기이다 .
호주는 이 때 봄을 맞이 하지만 유대 월력을 따르는 이스라엘은 신년을 9월에 맞이 한다.
‘로쉬 하샤나’라고 부르는 이 절기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고,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예배를 올려드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들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해 알려주신 에덴 동산의 축복과 출애굽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가 매해 2월 경 구정을 신년으로 맞이하고, 새해엔 고향을 찿아가고, 성묘를 함으로 조상의 넋을 기리 듯 그들은 우리의 명절처럼 그들의 절기를 지킨다. 종교가 그들의 문화가 되고, 그들의 전통과 습관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화에는 그들의 종교성과 시대적인 관습과 전통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것이 각 나라의 문화와 특색을 결정 짖는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특별한 종교가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풍습과 문화가 되었다. 이것은 서구 문화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주일을 지키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되고 감사절에는 큰 종교적 행사와 더불어 가족과 사회가 축제의 절기로 지키는 것과 같다. 서양 달력의 절기와 휴일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형성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쉬하샤나는 대체로 9월과10월 사이에 절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또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자신들을 돌아보는 절기 이다. 이 때를 나팔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팔은 이스라엘의 모든 총회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소통기구이며, 권위를 상징한다. 메시야가 오실 때 (레23:24, 민29:1)에 나팔이 울려 퍼지는 웅대함 앞을 나타내고, 또한 전쟁에 적군과 원수를 물리치는 승리의 선포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우리가 목욕을 하고 새옷을 입듯이 반나절 금식을 하고 목욕을 함으로 정결의식을 행한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이들이 신년행사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을 돌아 보는 회개의 일이다.  우리가 설날이 되면 떡국과 설빔을 먹 듯 이들은, 사과에 꿀을 찍어먹는 전통이 있다. 이는 새해에는 사과 열매처럼 풍성하고, 달콤한 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예배에 나아가서 그들은 창조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한 심판의 하나님을 노래하며 자신의 지난해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고 나팔을 불벼 신년을 맞이하게 된다.

유대인은 왜 일곱째 달을 첫
로쉬 하샤나 절기가 지나면 곧 그들이 지내는 절기가 하나씩 반복적으로 펼쳐지는데, 히브리, 티슈리월 10일 째가 다음 절기인 대속죄일에 (욤키푸르-Yom ki Pur) 그들의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욤 키푸르는 대 속죄일이라 불리는 절기 이다. 이 절기는 말 그대로 그들의 죄를 속해 달라고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절기 이다. 이들은 레위기 23:27-29에 근거하여,  속죄일에는 하루 동안 아무일도 하지 않고, 금식 하는 것을 따른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올 때 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회개하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레위기에는 아사셀 염소에 흰 줄을 드리우고 골짜기와 광야를 지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한 것을 확인 하고, 동물을 잡아 피를 흘리는 제사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해 놓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아사셀 염소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인간의 죄가 사해지는 대속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은 회당에서, 우리가 드리는 것과 같은 예배를 통해 그들의 죄가 사함 받도록 세시간 이상의 시간을, 기도하고 통회의 구절들을 시편에서 그리고 요나서의 대부분을 다시금 읽는다.
나는 요나서는 읽는 것이 상당히 궁금해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선지자 요나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회개 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그들에 대한 미움 마음을 풀지 않고 있었던 것 처럼, 지금 이시대에도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유대인들이 회개의 절기인 대 속죄일에, 이방인들에 대해 선한 마음을 갖지 않은 것을 그들의 절기에 회개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그 대답을 통해서, 다른 문화와 이방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생각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지 힌트를  얻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이방 세계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세계관을 가졌다.
우리는 흔히 그들이 폐쇄적이며, 또한 율법적이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들 모두를 평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랍비와 만나고 회당 지도자들과 만나 얘기해 보면,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것을 쉽게 발견 하곤 한다. 물론 그들이 처음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경계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많은 기독 단체들이 친교를 말하면서 나중엔 개종을 요구하고, 친절을 베풀다 그들이 변화 하는 것 같지 않으면, 금새 등을 돌리고 관계를 단절하고, 폄회하곤 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역사 안에 자행했던 일들이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그것에 수 세대를 걸쳐 마치 뜨거운 불에 데인 것 같은 쓰라린 기억들이 있다. 할아버지로 부터 또 그  이전 세대로 부터 옛날 얘기 듣 듯, 그들 안에 DNA에 각인된 것 같은 내재한 피해의식이 있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당하는 핍박과 거절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이 대 속죄일에 이방에 대한 마음을 회개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은 왜 일곱째 달을 첫
같이 사는 부부가 싸움을 해도 흔히 양 쪽 이야기를 다 들어 봐야 한다고 말하 듯, 우리는 사실 그들에게서 그들의 변명을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아예 전무 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그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너무도 적다. 현재의 유대인들의 삶,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율법, 그들의 문화와 전통과 세계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연구된 그들 편의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우리의 단편적인 생각, 서구의 편견, 타 종교로 부터 전해들은 왜곡된 시각으로 그들 전부를 판단 하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 우리는 다른 중동 국가들을 위해서는 미 전도 종족이라는 이유로 기도를 하곤 한다. 많은 헌신된 선교사들이 배출 되고 지원비도 보내고, 단기 선교와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선교사를 보내고 그 곳에 재정 지원을 하고, 그들의 평화와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자문해 보면 참으로 너무나도 많은 교회 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너무나도 관심이 없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절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은 신년을 시작하며 십여일을 회개하고, 기도 하고 하루를 금식하고 그들의 죄가 사해 졌음을 선포한다. 양각나팔을 불며, 하나님 앞에 모든 총회가 나아와 선포의 소식을 듣고 기뻐 하고 자신들의 죄가 사해 졌다고 외친다. 그들은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죄가 사해지는 절기로 대 속죄일을 지킨다. 그리고 그들은 대속죄일에 타인을 위하여 구제의 헌금을 드렸다. 그들의 절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에 대한 회개와 타인에 대한 선행의 결단과 다짐이다.
모든 이방이 이방 신을 섬기고, 육체의 쾌락을 탐닉하며 살고 있을 때,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죄 사함을 위해 회개 하는 민족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죄에 대해서 깨닫고 그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에 대해 고할 줄 알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죄를 사 하시는 분인 것을 일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죄가 사해졌다는 것과 죄사함의 기쁨으로 타인을 위해 드리는 구제의 헌금이 무엇인 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방은 여전히 죄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죄에 대해서 무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이다.

유대인의 신년과 욤키푸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원일 목사 (Christians for Israel – National Director. Korea)

베다니 사역 본부 대표, 키비 호주 대표(문화 교류학 박사 과정 중)

0410-430-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