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는 어느 나라 제품

구찌 는 어느 나라 제품

2020 F/W The Ritual @pradaxmo by @pradaxmo

구찌 창립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이지만 영국 런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00년대 초반인 10대 시절, 사보이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면서 우아한 상류층의 취향을 엿보며 영감을 얻었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여행 가방을 포함한 아이템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1년 구찌라는 가죽 매장을 오픈했는데 그 시절에는 승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가방과 마구 등 가죽 제품이 중심이었다. 구찌는 최고의 소재와 장인을 찾아내고 고품질로 명성을 얻어 사업을 확장해갔지만 이내 세계대전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많은 물자의 유통이 통제되고 가죽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구찌는 이런 변화에 대응해 코팅 캔버스로 만든 가방을 내놓는다. 가죽으로 흥했던 브랜드가 가장 잘하는 걸 할 수 없게 되자 임시변통으로 선보인 것이었지만 가죽보다 다루기 쉽고 로고도 분명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었다. 캔버스 가방은 지금까지도 구찌의 대표적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이 끝나자 구찌는 최초로 글로벌 슬로건을 내놨다. “가격이 잊힌 후에라도 품질은 기억된다.” 1947년에 선보인 대나무 손잡이를 사용한 뱀부 컬렉션, 1952년의 구찌 로퍼 등 지금까지 회자되는 제품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잘나가던 시절인 1953년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구찌는 재산 분쟁, 상표권 다툼으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네임 밸류가 특히 중요한 고급 패션 브랜드의 경우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렵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최신의 패션을 찾는 사람들이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1990년 구찌는 미국 텍사스 출신의 톰 포드를 여성복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그는 곧 브랜드 전반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전통의 이탈리아 브랜드를 미국인 디자이너가 맡게 되자 반발도 있었지만 이후 구찌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메탈릭 장식, 벨벳, 새틴 등등 반짝거리는 소재와 로라이즈 팬츠, 남성용 G 스트링, 매혹적인 섹스어필, 제트 세트의 화려한 삶을 대변하는 브랜드가 된다.

구찌는 이렇게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고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1990년대 패션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2004년 톰 포드가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구찌를 떠나자 다시 위기가 닥쳤다. 이후 몇 명의 디자이너가 교체되었다가 톰 포드 시절 핸드백 디자인 분야의 디렉터로 구찌에 들어왔던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가 브랜드를 이끌기 시작했다. 톰 포드 시절의 구찌가 새롭고 파격적인 모습에 집중했다면 프리다 지아니니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에 기준을 뒀다. 예컨대 1960년대에 나온 플로라 프린트 등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다시 활용했다. 또 노골적이었던 톰 포드 시절의 섹스어필보다는 여성의 자신감, 카리스마를 표현하고 실제 사용 측면을 중시했다. 구찌 최초의 여성용 향수도 내놓고 다시 가죽 제품을 늘리면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구찌의 기존 이미지에 방점을 뒀다. 이렇게 구찌는 다시 스스로의 전통을 주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계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밀레니얼 세대, Z세대가 본격적으로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고급 패션의 주요 구매자도 젊은 세대로 옮겨가면서 스케이트보드, 서핑, DJ, 힙합 등 스트리트 문화가 서브컬처에서 주류 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행 아이템 또한 스니커즈, 티셔츠, 푸퍼 등 편안하고 실용적인 일상복으로 바뀌면서 하이패션 전반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사람과 문화가 바뀌면서 가치관도 달라졌다. 특히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반발, 성별의 다양성,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 자기 몸에 대한 긍정주의, 지속 가능한 패션 등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었다. 패션에서도 지금까지 주류 패션이 기대고 있던 남성, 여성의 전통적 역할과 그러한 가치를 강화시키는 옷차림에 대한 변화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변화가 시작되었을 때 구찌는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를 선택했다. 로마 출신의 이탈리아인으로 톰 포드 시절 구찌에 들어와 프리다 지아니니와 함께 일했으니 내부 발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톰 포드 영입 때만큼이나 상당히 다른 이미지의 브랜드로 변신을 꽤했다. 2015 F/W 시즌부터 그의 구찌 컬렉션이 시작되었는데 로고를 특히 강조하면서 화려하고 복잡한 색의 조화, 레트로, 젠더리스, 서브컬처 등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전면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럭셔리 패션이 지닌 틀을 완전히 깨버렸고 브랜드의 이미지는 한층 영해졌다. 다양한 요소가 한데 융합되어 낯섦과 낯익음이 동시에 섞인 모습은 보자마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구찌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또 컬렉션의 혁신과 함께 여러 협업도 진행했다.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이나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 등 젊은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컬렉션이나 광고 캠페인 등에 반영했다. 특히 트레버 앤드루Trevor Andrew나 대퍼 댄Dapper Dan과의 작업이 눈에 띈다. 트레버 앤드루는 프로 스노보더이자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구찌고스트Gucci Ghost’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구찌의 GG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해 곳곳에 그라피티를 남긴 인물이다. 대퍼 댄의 경우 1980년대 뉴욕 힙합 신에서 고급 브랜드 로고 패턴을 활용한 옷을 만들었는데 저작권 소송으로 1990년대 이후 활동을 중단한 디자이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브랜드와 대립각을 세우던 아티스트들의 독창성을 높이 사며 협업 컬렉션을 내놓고 연합 매장도 오픈했다. 구찌는 이렇게 모조품과 진품의 경계를 오가며 현대사회에서 고급 패션이 지닌 아이러니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관광지에서 팔던 조악한 모조 제품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로고 프린트 티셔츠와 스니커즈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5년에 치른 그의 데뷔 컬렉션에 선 모델들은 거의 백인이었고, 특히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 2016년에는 너무 마른 모델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영국에서 광고가 금지를 당했다. 또 2019년에는 블랙 페이스를 떠올리는 발라클라바로 논란을 일으켰고 시크교도의 전통 복장인 터번을 제품으로 내놓았다가 종교의 상징물로 돈벌이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유럽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고급 패션 브랜드들이 무심코 선보인 인종적 편견과 농담,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이제 전 세계에 걸친 반발은 물론이고 불매 시위까지도 일으킨다. 문제는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구찌의 경우 다양성과 포용을 책임지는 글로벌 디렉터 자리를 신설했다. 특히 브랜드 구성원의 인종 편향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이에 맞춰 다양한 나라 출신의 신임 디자이너들을 채용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플랫폼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여성의 권리 확대를 위한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 캠페인 등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가 시대를 따라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이패션은 치열한 경쟁의 세계이고, 살짝만 삐끗해도 힙, 최신, 트렌드 리더 같은 자리에서 휘청거린다. 결국 패션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이해하고 주도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만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기존 고객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용인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기존 고객이 떠나갈 정도로 변신했는데 새로운 고객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구찌의 경우 변화가 필요할 땐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의 과감한 변화를 주저 없이 실행해왔다. 시대를 이해하고 그걸 넘어서 주도하려는 유연하고 강력한 태도가 이 오래된 브랜드를 여전히 하이패션의 최전선에 자리하게 만드는 힘이다.

누군가에게 “오늘 컨디션 어떠냐”고 물었는데 “구찌(GUCCI)”라고 답하더라도 명품을 떠올리면 안 된다.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다’ ‘멋지다’는 의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망할 것 같았던 이탈리아 명품 구찌. 지금은 ‘밀레니얼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지난해 구찌 전체 매출의 55%는 35세 이하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왔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44.5%, 27.4% 올랐고, 주가는 18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올 1분기 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9% 늘었다.

명품업계는 그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소유보다 경험, 브랜드보다 개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구찌의 부활은 그만큼 극적으로 평가된다. 기업들이 앞다퉈 ‘구찌 배우기’에 나선 이유기도 하다.

구찌 는 어느 나라 제품

죽은 브랜드 되살린 밀레니얼

구찌는 2014년까지 위기였다. 5년 넘게 매년 매출이 20%씩 줄었다. 2015년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온 마르코 비자리는 ‘밀레니얼’에서 답을 찾았다. 임원 회의 대신 ‘리버스 멘토링’이라는 새로운 회의부터 도입했다. 35세 이하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였다. 새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피 사용 금지, ‘구찌와 함께하는 여행 앱(응용프로그램)’ 제작, 중성적 디자인 적용 등이 여기서 나온 결과물이다. 친환경, 경험, 재미와 개성 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파격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화려한 꽃무늬와 커다란 벌, 호랑이, 뱀 등이 구찌의 핸드백에 그려졌다. 구찌(GUCCI) 로고를 GUCCY, GUCCIFY 등으로 변형하기도 했다. 남성복에 리본과 레이스를, 여성복에 투박한 장식을 더했다. 디지털을 강화하고 온라인 한정판, DIY 코너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도록 매장은 밝게 꾸몄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했다. 광고 모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플루언서를 썼다. 17세의 래퍼 릴 펌프는 온몸을 구찌 제품으로 두르고 ‘구찌 갱’이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빌보드차트 3위까지 올랐다. 기존 소비자들은 “구찌가 미쳤다”며 화를 냈지만 밀레니얼은 열광했다.

명품 브랜드는 잇달아 ‘구찌 벤치마킹’에 나섰다. 발렌시아가와 생로랑은 비슷한 전략으로 올 1분기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다. 버버리는 20년 만에 로고를 바꿨고, 루이비통은 뉴욕 출신 젊은 흑인 디자이너를 남성복 수장에 앉혔다.

100년 기업 ‘꿈틀’…소비재 지각변동

밀레니얼의 소비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 식품과 생활용품에서 그런 특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건강과 유기농에 다른 어느 세대보다 관심이 많다. 하인즈 케첩보다 동네 청년이 만든 유기농 토마토케첩을 찾는 식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수억원의 마케팅 예산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 SNS의 지지를 등에 업은 작은 브랜드들이 성장하면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10대 대형 소비재 브랜드 매출은 220억달러(약 24조6224억원) 감소했다. 시장 점유율도 3%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위기는 기업들을 바꿔놨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의 폴 폴먼 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에 닥쳐올 가장 큰 위협은 밀레니얼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도브, 바세린 등을 생산하는 유니레버는 지난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 6개를 내놨다. 친환경 샴푸와 샤워젤 시리즈다.

작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도 늘고 있다. 112년 역사의 켈로그와 150년 역사의 캠벨수프는 지난해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네슬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육류회사인 타이슨푸드는 식물성 단백질로 육류 대체품을 생산하는 비욘드미트에, 주류기업 AB인베브는 지난 2년간 세계 각국의 수제 맥주 회사 20곳에 투자했다. 마크 슈나이더 네슬레 CEO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밀레니얼 세대는 곧 그들의 인생 그래프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구간을 지나가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하는 게 소비재 기업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