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 가 일 을 더 잘 하오

게시판 분위기도 뜨겁고, 날씨도 뜨겁고 해서 누런소, 검은소 유머 2가지!

*첫번쨰

조선시대 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이 젊은 시절에

검은소와 누런소가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떤 소가 더 일을 잘 하오?"

그러자 농부가 달려와서는....

"밤일은 내가 더 잘하오"

잠시 후 황희의 귓속으로 농부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혀가 파고 들었다.

[기승전게]

*두번째

조선시대 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이 젊은 시절에

검은소아 누런소가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떤 소가 더 일을 잘 하오?"

갑자기

세종대왕 나타나 말씀하시길

"니가 제일 잘해"

라 말씀하셨다.

세종 9년 좌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4월 20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12월 7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7년 영의정부사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8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2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3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황희노예]

끗.

조선시대 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이 젊은 시절에 

검은소와 누런소가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떤 소가 더 일을 잘하오?" 

라 묻자

세종대왕 나타나 말씀하시길

"니가 제일 잘해" 

라 말씀하셨다.

세종 9년 좌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4월 20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12월 7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7년 영의정부사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8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2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3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소 가 일 을 더 잘 하오
 

황희가 길을 가다 농부에게 물었다
"황소와 검은소중 어느소가 일을 더 잘하오?"
그러자 농부가 황희 옆에 와 귓속말로 뇌까리길
"낮일은 황소가 잘하고... 밤일은 내가 잘하오."
황희가 그제서야 아차 싶어 튀려 하는데, 농부가 우악스런 손으로 황희의 팔을 나꿔체는 게 아닌가?
 

멀리선 보이지 않던 팔의 심줄이 황희의 팔을 나무뿌리 마냥 얽어맸다.
"그럼, 보여드리겄소!"
푹짝푹짝 틴틴틴!
황희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조선시대 재상으로 유명한 황희정승이 젊은 시절에 

검은소와 누런소가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떤 소가 더 일을 잘하오?" 라 묻자

세종대왕 나타나 말씀하시길

"니가 제일 잘해" 라 말씀하셨다.

어느 소 가 일 을 더 잘 하오

세종 9년 좌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4월 20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4년 12월 7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7년 영의정부사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18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2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세종 31년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허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소 가 일 을 더 잘 하오

1437년 세종 19년 세자에게 업무를 이관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나 거절당한다

그후 3월에도 세자에게 업무를 이관할 뜻을 비추었으나 대신들의 만류와 상소로 그만두다.

1439년 세종 21년 병을 말하며 세자로 하여금 강무를 대행하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신하들이 완강히 반대하다. 

1442년 세종 24년 첨사원을 두어 세자가 직접 국가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다. 최만리는 이의 부당함을 아뢰는 상소를 올리다. 

1443년 세종 25년 세자에게 서무를 섭행시키다. (왕이라서 결국 성공)

임금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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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이 소 두 마리를 부리던 늙은 농부한테 어느 놈이 일을 더 잘 하
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늙은 농부가 정승의 귓속에다 검정소라고 소곤거렸
다. 황희가 늙은이에게 왜 귓속말로 하느냐고 물었다. 늙은이가 옆에 있는
황소가 들으면 서운해 할까 보아 그런다고 했다. 이에 황희 정승이 뉘우친
바가 많았다는 고사를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32만 교사들
한테 성과상여금 지급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황희 정승이 만났던 농부가
그 말을 들었다면 무어라 했을까? 하여튼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끼리 경쟁하게 하면 우리네 교육 현실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한 것부터
마땅치 못하다는 느낌이다. 교사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지 남과 경쟁해야
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래서 교사는 먼저 自明하고 修身하면서 날마다 새로
운 지식을 쌓아 가야 한다. 교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다른 교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향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성
과상여금 같은 것으로 교사를 독려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단견일 뿐이다. 비
난이 잦자 지급 시행을 일시 보류한다 하나 차라리 없었던 일로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자명하라. 스스로를 밝게 하라 함이다. 수신하라. 이는 자신을 낡게 버려
두지 말라 함이다. 옛날 훈장은 자명하고 수신하여 학동의 거울이 되게 하
려고 스스로 애를 썼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읽고 사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훈장은 학동과 학부모들로부터 신용을 얻
고 존경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명하고 수신해
야 하는 것이다. 요새 말로 하자면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자기 계발
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성실하
고 충실하게 마련이다.

지식을 달달 외어 전달하는 교사보다 가르치는 일을 성실히 하려고 스스
로 탐구하는 교사가 더 소중하고 귀중하다. 스스로 탐구하는 교사는 힘들
게 마련이다. 그러니 먼저 사회가 참다운 교사를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다. 옛날 마을은 정말로 마을 서당의 훈장을 모시고 대접해 어린 것들을
잘 가르치도록 마음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대접은커녕 학교에서 학생을 가
르치는 교사들로 하여금 마치 학원에서 입시지도를 하는 강사처럼 돼라고
강요하는 꼴이 우리네 교육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이런 교육현장은 분명 교
사들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사들로 하여금 입시지도만 하도록 토끼
몰이 하듯이 해서야 어찌 가르칠 맛이 나겠는가 말이다. 하기야 학교의 교
사와 학원의 강사를 단순비교해서 내놓고 학원강사 쪽이 낫다고 주무장관
이 공언했던 사건마저 있었으니 황희 정승을 뉘우치게 했던 고사가 무슨 소
용이 있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교사들로 하여금 가르칠 맛이 나도록 하려고 성과상여금 지
급이라는 생각을 냈다면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따면 성과상여금
을 주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그런 발상
은 백화점에서 경품을 내거는 속셈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교사는 교육하
는 사람이지 승패에 매달려야 하는 운동선수가 아니다. 운동선수는 상대와
경쟁해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 승패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제안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교사끼리 서로 경쟁하게 하
는 분위기로 몰아가면 갈수록 교육현장은 마치 지뢰밭처럼 될 수도 있다.
교사는 어느 직장인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교사의 사기를 높이려면 무엇보
다 교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자기 계발을 스스로 하
는 당사자인 까닭이다. 교사가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리듯이 한다면 부끄럽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지 경품을 내걸고 교사끼
리 경쟁을 붙이려는 발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견이다.

진정한 교사는 날마다 자기를 변화시키려는 당사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학
생들에게 날마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는 교사라면 어찌 연구와 탐구를 게
을리 하겠는가. 왜 [周易]은 生生하라 하고, [詩經]은 維新하라 하며, 왜
공자는 日新하라 하고, 노자는 日損하라 하였는가? 이 말씀들은 모두 다 스
스로 자기를 변화하게 하라 함이다. 교사가 날마다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노
력해야만 교육현장에 설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해 왔다면 자녀 교육 때문
에 이민간다는 지경은 되지 않았을 터이다. 교육이 잘 되는 나라에 가보면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을 즐겁게 여기면서 자기 계발에 철저함을 목격하게
된다. 학생의 미래를 열어주는 데서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돋아난다는 교육
현장이 부럽기만 하다.

교육의 자율성과 교사의 존엄성을 살리지 못한 탓으로 지금 우리네 교육현
실이 낡은 옷을 걸치고 선 허수아비 같다는 두려움이 앞설 때가 많다. 제자
리 걸음만 하는 교육현실은 교육정책을 관장해온 주무관서의 탓이라는 생각
을 버릴 수 없다. 교육을 잘 하는 나라 치고 중앙집권적으로 교사한테 이래
라 저래라 간섭하는 나라는 없다. 제발 교육 때문에 이민간다는 지경이 더
는 안되게 살아 있는 교육을 하게 교사들 스스로 자기 계발을 통해 즐겁게
가르치도록 했으면 한다. 소를 밭고랑 위에 세울 수는 있어도 억지로 밭갈
이를 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황희를 부끄럽게 했던 농부는 밭갈이 하는 소
를 모실 줄 알았다.

*본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이나 논지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윤재근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