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제목 차범근에 대해서 정리해드립니다. 글쓴이 mintwish(58.233.136.189) 추천 7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번호 131781 날짜 2006-03-07 01:29:15 조회수 2994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박찬호와 차범근의 비교 이전에 일단 차범근에 대해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과거 제가 이곳에 작성했던 글 다시 올려드립니다.

박찬호도 정말 좋아하는 저의 최고의 선수이지만 차범근을 구지 비교하면서 깎아내리기에는 차범근의 명성은 정말 대단한 선수이고 전설이였답니다..

물론 박찬호 선수도 저에겐 최고의 선수입니다. 이런 사랑스런 선수들을 뛰는 운동자체가 다른데 비교한다는것도 가슴아프네요?^^

---------------------------------------------------------

예전에도 차붐에 대해서 실력을 깍으셨던 분과 논쟁할때 제가 마지막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아직도 이런 논쟁이 있다니 조금 어이가 --; 참고바랍니다.
-----------------------------------------------------------------------------------------

1. 차범근의 포지션
당시 포지션은 현대 축구처럼 명확히 스트라이커, 포워드, 홀딩형수비미들, 앵커수비미들등으로 구분짓지 않았습니다. 포워드는 포워드였고, 미드필드는 미드필드라고 불리는것이 통설이였지요.
일단 차범근은 팀내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동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방합니다. 이 말은 그가 원탑 혹은 투탑형 스트라이커로 활동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차범근이 뛴 포지션은 투탑에서 약간 처진 포워드형이고 윙에서도 윙포워드에 가까운 포지션을 소화했습니다.

그는 최전성기를 84-85시즌 포워드로 뛰면서 17골을 몰아넣으며 득점 4위에 랭크되는 등, 구가하지만 안타까운 상대 수비의 고의태클로 인해 1985년 오른쪽 발목인대 수술을 하게 되고, 그 이후 87-88 시즌부터는 공격형 링커로 전환하게 됩니다. 즉 이때는 포워드가 아니였지요. 그 이전까지는 포워드와, 윙을 소화했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비슷하나마 설기현선수의 위치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스트라이커의 활용도 충분하면서도 윙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해 윙포워드의 역할을 맡은 선수라는 것이죠.

포지션이 현대 축구에서 뭐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서 독일 최고선수였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아직도 헷갈리시나요?
그의 본 포지션은 현대적으로 본다면 윙이 맞고, 그럼에도 뛰어난 득점력을 갖춘 윙포워드급(FM이나 CM에선 FW인데 RL 포지션을 가진 선수라고 할수
있겠죠) 이였으며, 당시에는 구분하는 포지션이 공격수는 모두 포워드로 적었기 때문에 포워드로 생각하고 전해졌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 이후로 그가 보여준 윙으로서의 엄청난 득점력과 어시스트능력은 그를 센터포워드로 불려도 전혀 손색없다는 소립니다.
축구전문가 프리델 라우쉬는 “차범근은 내가 경험한 선수가운데 단연 제일 강한 포워드다”라고 밝혔고 당시 바이에르 위르딩겐의 호르스트 부츠 코치는 “차범근은 지금까지 독일축구에서 보지 못했던 포워드의 역할을 몸소 실천한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라는 말로 그의 포워드나 스트라이커로써의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뿐 아니라, 윙으로써의 그는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됩니다.

예를 들면, 긱스나 베컴과 같은 위치에서의 역할을 소화했지만 홀딩형 어시스트가 아닌 돌파를 선호했고, 득점력도 센터포워드와 비슷한 수준의 가공할만한 윙플레이어라는게 정답입니다.

2.챔스리그
챔피언스리그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언급해주셨지만 지금처럼 대단한 대회는 아니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는 축구를 좀더 활성화시키자는 의도에서
각 리그 1위팀만 나가는 제도에서 출발했죠. 챔피언스리그라는 정식 명칭이 생긴것도 92년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1955/56 시즌 때부터 생긴 '유러피언 챔피언스 클럽 컵'으로 개최되었던 것이고 이 리그에는 그다지 많은 서포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관심은 아마 지금의 유럽챔피언과 남미챔피언이 붙는 이벤트식 경기 토토컵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군요.
그보다는 사실상의 최강팀들이 모인 유에파컵에 출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지요.
유러피언 컵은 또한, 유럽 축구연맹이 개최한 행사도 아닙니다.(네이버에서 찾아보시면 나올거에요)
제가 찾아본 결과물에 따른 내용을 짧게 소개해드릴게요.
'(중략)이런 와중에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인 '레키프'와 당시 편집자였던 가브리엘 아노는 유럽 전역을 망라한 클럽 대항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아노는 동료인 자크 페랑과 더불어 수요일에 야간 경기로 치러지는 토너먼트를 기획했다. '레키프'가 고안한 이 대회는 참가 팀 자격을 각 국 리그의 우승팀으로 제한하지 않은 대신, 많은 팬들이 열광할 만한 팀들을 위주로 초청팀 명단을 작성했다. 16개 팀의 대표자들이 1955년 4월 2일부터 이틀동안 모임을 가졌고, '레키프'의 아이디어는 만장일치로 승인을 얻었다. 첫번째 유러피언 컵 대회는 리스본에서 열렸다. 당시 클루베 드 포르투갈은 FK 파르티잔과 맞붙어 3-3으로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벨그레이드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FK 파르티잔이 승리했다.

전문가들은 챔스리그는 사실상 90년대들어서 중흥기를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일클럽팀들이 챔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못냈다는 것도 잘 모르는 소리입니다. 다음은 역대 챔스리그 우승팀들입니다.

2003 AC 밀란 0-0(pk) 유벤투스
2002 레알 마드리드 2-1 레버쿠젠
2001 바이에른 뮌헨 1-1(pk) 발렌시아
2000 레알 마드리드 3-0 발렌시아
1999 맨체스터 Utd. 2-1 바이에른 뮌헨
1998 레알 마드리드 1-0 유벤투스
1997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3-1 유벤투스
1996 유벤투스 1-1(pk) 아약스
1995 아약스 1-0 AC 밀란
1994 AC 밀란 4-0 FC 바르셀로나
1993 올림피크 마르세이유 1-0 AC 밀란
1992 FC 바르셀로나 1-0 삼프도리아
1991 크르베나 0-0(pk) 올림피크 마르세이유
1990 AC 밀란 1-0 SL 벤피카
1989 AC 밀란 4-0 부쿠레스티
1988 PSV 0-0(pk) SL 벤피카
1987 FC 포르투 2-1 바이에른 뮌헨
1986 부쿠레스티 0-0(pk) FC 바르셀로나
1985 유벤투스 1-0 리버풀
1984 리버풀 1-1(pk) AS 로마
1983 함부르크 SV 1-0 유벤투스
1982 아스톤 빌라 1-0 바이에른 뮌헨
1981 리버풀 1-0 레알 마드리드
1980 노팅엄 포레스트 1-0 함부르크 SV
1979 노팅엄 포레스트 1-0 말뫼 FF
1978 리버풀 1-0 클럽 브뤼게 KV
1977 리버풀 3-1 뮌헨글라트바흐
1976 바이에른 뮌헨 1-0 AS 생테티엔느
1975 바이에른 뮌헨 2-0 리즈 Utd.
1974 바이에른 뮌헨 1-0 AT 마드리드
1973 아약스 1-0 유벤투스
1972 아약스 2-0 인터 밀란
1971 아약스 2-0 파나시나이코스
1970 폐예노르트 2-1 셀틱
1969 AC 밀란 4-1 아약스
1968 맨체스터 Utd. 4-1 SL 벤피카
1967 셀틱 2-1 인터 밀란
1966 레알 마드리드 2-1 FK 파르티잔
1965 인터 밀란 1-0 SL 벤피카
1964 인터 밀란 3-1 레알 마드리드
1963 AC 밀란 2-1 SL 벤피카
1962 SL 벤피카 5-3 레알 마드리드
1961 SL 벤피카 3-2 FC 바르셀로나
1960 레알 마드리드 7-3 프랑크푸르트
1959 레알 마드리드 2-0 스타데 데 렝
1958 레알 마드리드 3-2 AC 밀란
1957 레알 마드리드 2-0 피오렌티나
1956 레알 마드리드 4-3 스타데 데 렝

위의 결과에서 보듯, 총 대략 분데스리가팀은 12번에 결승에 올랐는데, 약 4년에 한번골로 결승에 올라간 것입니다. 또한 차범근이 뛰었던 당시의 챔스리그를 통해 보면, 당시는 현재 세리에나 라리가 등의 유명한 클럽등은 보기 힘든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최고 클럽의 대열에는 세리에는 끼기 어려웠고, 최고의 리그로는 분데스리가, 그 바로 밑 혹은 비슷한 리그는 잉글랜드리그였으며, 네덜런드리그 역시 수준급이였습니다. 자 주목해 볼만한 것은 74년부터 84년까지 분데스리가팀은 결승에 7번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독무대라는 소리죠^^

3.분데스리가의 수준
차범근이 뛰었던 당시 분데리그엔 어떤 선수들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루메니게등이 타리그로 간 것은 나중일입니다. 당시엔 독일 선수로, 루메니게, 마가트,흐루베시,알롭스,아브라함직,피셔,
부르그스뮐러,푈러등이 있었고 외국인 선수로 우드콕, 차붐, 키건등이 있었지요. 아 지몬센도 있군요.

호나우두나 피구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겁니다.
당시 분데스리가를 위협하며 맹추격하는 리그는 잉글랜드 리그였는데, 그 당시 우드콕(토니)은 리버풀의 달그리시라는 선수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혔습니다. (거너스 공식 인정)
영국하면 독일 이상으로 자존신 강하기로 유명하죠. 분데리가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맹추격하고자 했던 아스날의 대스타 우드콕은 영국의 스타였습니다. 그런 그가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싶다" 라고 하고 옮긴 곳이 분데스리가 였습니다.
키건이란 선수는 유럽최우수 선수를 두번이나 수상한 명실상부 최고급 스타였고,바로 이러한 선수대열에 차범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는건 지금 보이는 선수들과 지금 볼수 있는 경기들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당시 랭킹에서 차붐은 이들을 앞질러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런 외국인 선수 (지금 말하자면 앙리나 오웬정도가 분데스리가로 가서 차범근과 경쟁했다는 것입니다. ) 보다 더 많은 골을 터뜨린 외국인 선수고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고 약팀을 일약 강팀으로 만든 리더가 바로 차범근이란 소리죠.

자, 또하나.
80년대 초 가장 높은 이적료는 어떤 리그에서 탄생했는줄 아십니까?
본 호프라는 선수가 81년 뮌헨과 계약하며 당시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차후 깨지긴 합니다만) 이 선수는 바르셀로나에서 옮겨온 선수입니다. 나중에 차범근은 밀란에게서 어마어마한금액을 금액을 제시 받았다고 하지만 난 독일이 좋다라고 해서 거절한 것 역시 사실이지요. 이전 펠레는 700만달러에 미국MLS에 이적하며 기록을 세웠었지요. 그런것만 봐도 당시 분데스리가의 수준을 알수 있고 타 리그와의 격차가 짐작할수 있습니다. 차후에, 마라도나가 바르셀로나에 이적하지만 510만달러밖에 안되는 금액으로 이적하고, 80년중후반 분데스리가가 몰락하고 세리에리그와 프리미어리그등이 급부상하면서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갑니다. 마라도나 역시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몸값이 오르지만 다시 이 기록은 바죠의 1700만 달러에 의해 금방 깨집니다.(첨부하였음)

참고로,
연대별 대륙리그의 랭킹을 알려드리겠습니다.


7,80년대


1.독일 분데스리가
2.네덜란드리그
3.영국프리미어리그
4.프랑스리그
5.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지금의 프랑스리그 취급받음)


당시 아약스라는 거대한 클럽과 뛰어난 네덜런드 선수들로 인해 네덜런드 리그는 엄청난 발전을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 독일은 당시 최강이였
고 클럽시스템과 풍부한 자원력을 바탕으로 굳건히 1위를 고수했습니다.

물론 타리그의 팀들 역시 뛰어난 팀들이 몇 있었으나 리그의 랭킹은 뛰어난 한두팀의 성적만으로 측정하지 않지요. 그렇게 따진다면 현재의 분데스리가는 슈투트가르트, 바이에르뮌헨등이 있어서 3위급에 들수 있지만, 현재 분데스리가는 상하위간 격차가 벌어져 랭킹에서 떨어져 있듯 당시에는 다른 리그에는 뛰어난 클럽들이 많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예


80중후반-90년대

1.이태리 세리에A
2.영국 프리미어 리그
3.프랑스리그
4.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5.독일 분데스리가


밀란등이 앞서며 리그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특급스타들을 이때부터 대량으로 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발전시킨 프리미어 리그도 활성화가 되기 시작하고 말이죠. 분데스리가가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되는데 당시 독일 정치.경제적 이유와도 맞물려있습니다.
프리메라 리그는 그 당시도 프랑스리그를 따라잡지는 못한 것으로 기록되있으나 서서히 격차를 따라잡고 있었죠.90년대 중,후반에는


1.이태리 세리에A
2.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3.영국 프리미어 리그
4.프랑스 리그
5.독일 분데스리가

로 되었으며 90년대 말


1.영국 프리미어리그
2.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3.이태리 세리에 A
4.프랑스 리그
5.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리그와 사실상 격차는 없음)

2000년대


1.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2.영국프리미어리그
3.이태리 세리에A
4.독일 분데스리가
5.프랑스 리그

가 됩니다. 분데스리가가 다시 부활의 몸짓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보았을때, 당시 분데스리가는 최고의 리그라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터키에서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면 터키리그가 최고가 되나요?^^ 프랑스리그에서 특출한 팀 몇이 챔스나 유에파에 좋은 성적 내면 최고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대 얼만큼 강한 클럽들이 같은 리그에 존재하며, 각 팀간 격차, 선수보유, 자금등이 주요 측정원인이죠.

좀 더 역사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면, 프리메라리그는 50년후반부터 60년대초반 레알마드리드의 강력한 클럽을 바탕으로 군림했고, 잉글랜드는 85년에 리버풀-유벤투스 결승에서 35명이 죽으면서 챔스출전금지가 되면서 잠시 쇠락했었다가90년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라는강자가 등장하고 92년 프리미어 리그가 정식 탄생합니다.세리에A가 뜬것 역시 90년대부터라고 전문가들은 봅니다. 그것은 80년 중후반부터 특급선수들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시작된 리그부흥작전이 90년에 꽃을 맺게 되면서 우리가 말하는 세븐시스터스, 즉 일곱개의 강팀이 조직되면서 부터죠.


자, 그 사이에 바로 분데스리가의 최고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서독과 동독의 라이벌, 훌륭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쏟아지던 독일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시절이였고, 그들은 월드컵도 우승하면서 그야말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죠. 독일인만으로 충분하다는 자부심으로 리그의 팀은 논이유가 아닌, 논 독일인은 세명만 보유할수 있게 된다는 조항은 참으로 대단한 조항입니다. 그래서 차후 많은 유명 선수들이 타클럽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다른 리그들의 성장을 촉진하게 되는 셈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대단한 리그들에 대해서 살펴보죠.
물론 각 리그는 당시 세계대전으로 인한 흉흉한 민심과 국가의 정책탓에 선수이동이 활발하지 않았고, 각국의 최고스타는 자기나라에서 뛰도록 유도하던 시절이였습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말자체는 92년부터 나온것이고, 영국팀은 유에파에서 68년에 첫 우승할만큼 강한 리그가 아니였습니다. 당시 리버풀이 강세를 떨쳤으나 위에 썼듯이 차후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5년동안 챔스리그에도 못나가게 되고, 90년대 들어서 강력한 발전을 하죠.
마드리드가 과거부터 최고의 팀이였던 라리가는 스테파뇨와 푸스카스가 있던 마드리드시절을 황금기로 이끌었고, 덕분에 60년대 강팀이였습니다. 또, 77-82년 리그 5연패를 하게 되죠. 그런데 그런 강력했던 레알보다 74-84년의 챔스리그에서 독일클럽팀들이 대부분 결승에 오르게 되는 걸 알수 있습니다.
(10번중 7번) 역시 라리가는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감독이 되면서 90년초 강팀으로 급부상하며 라이벌관계로 인해 선수를 대폭 사들이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한층 발달하게 됩니다. 세리에의 독보적인 팀이였던 유벤투스를 볼까요? 그들이 첫 챔스리그 우승을 한 것은 역시 85년이며, 유에파 역시 77년에 한번 이후 90년에 우승을 합니다. 박찬호님께서 말씀하시는 플라티니는 바로 이 팀의 소속이였고 그들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팀이) 당시는 세리에가 부활을 조직하며 선수를 수급하던 시기인 동시에 분데스리가가 10년의 독보적인 위치에서 몰락하던 시기라고 분명히 써드렷습니다. 그들이 조직되고 나서도 유에파나 챔스리그 정상을 가지는 시기는 바로 85년이였습니다. 위에 리그랭킹에 써드렸듯 분명 분데리그는 그당시부터 몰락합니다.

4.차범근의 명성 그 수준에 대하여.

그 당시 독일 대표팀은 최강이었으며 분데스리가 역시 그러했습니다. 나중에 떠난 스타 루메니게는 그래서 이탈리아행을 거부했고 독일축구가 더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동시대 루메니게와 비교되던 차범근 역시 그런 이유로 끝까지 독일리그를 지켜서 독일인들은 그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70년대와 80년 초반의 매스컴 수준에서 자국스타를 제외한 스타, 그것도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독일에서 차범근을 알려면. 어느정도의 수준이어야 할까요? 그저 조금 잘하면 될런지~ 아닙니다. 그 당시 매스컴수준에서 일반 축구팬들이 축구선수를 기억하기 위해선 에이스였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메스컴도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기에 경기로써 보여줘야 할수밖에 없지요. 80년대 초 브라질의 지코와 소크라테스를 모든 언론이 알듯 차범근도 역시 그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5.마라도나도 차범근 수준인가?
차범근을 비난하는 분들은 차범근이 뛰어났으면 왜 유에파에서만 성적을 내고 뻐기느냐라고 하십니다. 그야말로 무식이 통통튀는 소리요~ 당시 리그는 하나도 모르는 분들의 말주변이니 대답하기도 귀찮지만^^
지금처럼 한 클럽이 좋은 선수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선수들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트로피나 특정한 정점엔 오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요.
축구의 신이라 불리우는 마라도나, 그가 뛴 클럽은 나폴린데, 그곳에서 그가 가져온 트로피중에 챔스리그컵이 있습니까? 세라에 우승 한번, 유에파 한번뿐입니다. 클럽 경력으로 보자면 아하~ 차범근보다 하수겟군요?^^

6.당시의 제약
타국인에게 차별적이여서 에이스가 아니면 뛸수조차 없는 분데스리가의 제약은 말할것도 없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EU NEU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냥 비독일인선수3명이 보유한도였고, 뛰는 선수는 고작 한명밖에 안됩니다. 그런 곳에서 그는 두말할 것없이 그 어떤 팀을 가도 주전을 차지하고 베스트에 속하는 선수였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줄 아십니까? 보스만 룰이나 논이유 제도는 아실거라 믿습니다.
현재는 유럽이 아닌 타유럽 선수는 각 리그마다 3-5명만 보유하도록 되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이것조차 굉장히 불평등한 조약이라 생각되지만 당시엔 독일이 최고였기에 독일인들은 독일선수가 아닌 모든 나라 선수를 세명만 보유할수 있다는 소리였고 경기엔 한명 투입이 됩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레알마드리드에서 이런 룰로 스쿼드를 짠다면 피구,지단,베컴,호나우두,중 한명밖에 못나온다는 소리지요. 이러한 자존심이 차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외국인들을 떠나게 한 이유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런 시스템을 갖춘 나라에서 차범근은 팀의 에이스였고, 어느 팀에 가더라도 베스트맴버였으며, 그러한 최고의 리그에서 팀을 강팀으로 이끌었을뿐 아니라 돈에 팔려가지 않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 그야말로 외적,내적으로 독일인들과 축구인들에게 감동을 준 선수였던 셈입니다. 그는 약팀을 이끌고 강팀을 꺾기를 즐겨했고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팀을 이끈 정신적 지주였는데 레알소시에다드의 이천수가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 역전골 동점골 역전 어시스트등을 해나가며 MVP , 그리고 현재는 챔스리그가 최고이니 챔스리그 우승등을 일궈내는데 일등공신이 되고 10년 이상 활약해준다면 차범근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차후에 돈에 팔려가지 않는다면 인격적으로도 비슷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차범근입니다.

차범근이 부상과 월드컵 당시 동료 선수들의 패스도 안해주는 따 현상에서도 차범근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고전분투합니다. 휘슬이 울리자마자 루게리가 동료와 더블팀으로 차범근을 막지 못해 고의파울을 하고 경고를 받지요. 그 당시 그의 나이 34살이였습니다.

---------------------------------------------------------------------

참 궁금합니다.
일본인들은 나카타를 옷팔아주면서 계약하는 선수라고 폄하하지 않습니다. 나카타가 공격당할때 그들은 "또띠보다 나은 선수"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그 당시 안정환이 나카타보다 낫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평가가 있던 시절입니다.

차범근은 참고로 피파가 선정한 축구 역대 베스트 100위중 선정된바 있는데,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않고도 뽑힌 스타로 볼때 이는 대단한 것이죠. (긱스가 차범근보다 하위순위에 랭킹. 그 이하로 볼때 이외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타로는 네덜런드대표팀으로 각종 우승을 이끈 누만, 다비즈, 잠머, 긱스, 오웬, 수케르, 로이킨, 라울, 피구,스토이코비치,루이코스타등이 있습니다. )

차범근과 홍명보는 우리나라에서 자랑할만한 대스타이고, 월드컵에서 빛을 보지 못한 차범근은 아시아최고는 물론 세계최고의 스타가 분명합니다. 자부심을 가지시죠 이제그만?

당시 독일리그에는 공식적인 MVP가 없으니 당시 언론이나 유력한 기관에서 뽑은 MVP는 무효고 인정할수 없다는 주장은 그저 생떼처럼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식 공식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최근 키커지(이건 아시죠?) 에서 독일 팬들의 투표를 근거로 전문가들이 선정한 독일 역대 공격수 랭킹이 나왔습니다.
현재 독일 팬들은 차범근을 잘 모를텐데도 불구 그는 아래에 랭킹되어 있습니다.

1. Gerd Muller(FC Bayern. 60,3%)
2. Uwe Seeler(Hamburg SV. 15,9%)
3. Klaus Fischer (Schalke 04. 5,1%)
4. Ulf Kirsten (Leverkusen. 4,9%)
5. Stephane Chapuisat(Dortmund. 3,3%)
6. Giovane Elber (FC Bayern. 2,7%)
7. Horst Hrubesch (Hamburg SV. 1,8%)
8. Klaus Allofs (Koln. 1,7%)
9. Bum-Kun Cha (Leverkusen.1,6%)
10. Karl Heinz Riedle (Dortmund.1,4%)
11. Dieter Muller(Koln. 1,3%)

7. 기타 여러가지 의견에 대한 문답

*문:
독일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았던 선수가 이적료는 지코의 1/10에도 못미치는 액수를 받나요. 그건 분데리그가 그정도란 소리 아닌가?
(모유저님의 당시 질문)
답:축구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없으면 이런 말씀을 할수 있지만,지코의 이적료나 다른 대스타들이 분데스리가를 버리고 거액의 이적료로 이적한 시기는 80년대중반부터입니다. 자신의 돈을 위해 세리에로 대거 이적하면서 당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푼 세리에에게 갔던 시점입니다. 자료를 찾아보시면 차범근 역시 밀란에게 거액을 제의받았다고 되있으나 그는 '분데스리가가 최고다' 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스타들이 빠져나갔음에도 독일리그를 지켜준 최고의 선수에게 독일인들은 아직도 애정을 잊지 못합니다.

문:
그럼 당시엔 왜 지금처럼 여러 빅리그들이 이슈화되는것처럼 독일리그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가?
답: 당시 지금과 같은 빅리그가 활성화 되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74-84 를 기점으로 분데스리가가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것은 어떤 축구팬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 나올겁니다

문: 분데리그가 뛰어났다면 왜 타국의 대스타들은 모두 뛰지 않았느냐? 독보적 리그였으면 모두다 독일에서만 뛰어야지.
답:이런 분들이 대개 언급하는 인물중 하나가 플라티니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위에 작성되었지만,
과거시대에는 자국리그에서 아주 뛰어난 스타들은 붙잡아 두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전쟁도 잦았던 시기고 애국심이라는 것도 남달랐지요. 그래서 각국의 아주 뛰어난 스타들 한두명은 자국 리그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봤을때 독일은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60년대 유로컵에 전쟁때문에 3번이나 불참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고, 타국인에 대한 배척도 심해서 경기에서 외국인이 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였죠. 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일리그는 당시 최고였습니다.초특급 외국인 선수들이 자국리그에 소속되어 있다면 독일리그도 그렇겠지요? 그런 와중에 독일리그가 최고였다는 것이구요. 성적이 뒷바침 해줍니다.
그런 현상은 구지 독일리그뿐 아니라 각 리그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그럼에도 독일리그가 최고였다는 것이고, 선수를 사들이기 시작하고 경쟁체제에 돌입한 이태리(세븐시스터즈를 비롯) 프리미어리그 도입을 위해 재부활을 하던 영국, 그리고 레알을 중심으로한 라리가, 특히 세리아리그에서 대도약을 하면서 선수들을 마구 사들이던 시기는 분데스리그가 몰락하던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이라고 보시면 될듯 합니다
자 그럼 설명을 드리죠. 각국리그들에서 각국이 보유한 특급선수들은 한두명 있었다면, 그럼에도 왜 자국선수중심으로 한 분데리그가 가장 뛰어났을까요? 당시 차범근이 뛰던 시대에 독일 선수들은 마가트,흐루베시,알롭스,아브라함직,피셔,루메니게, 부르그스뮐러,푈러등 엄청난 선수들이 포진해있었고,마테우스까지 나오게 됩니다. 또한 분데스리가는 플라티니는 아니였지만 그정도 급의 외국인 선수들까지 있었습니다. 지몬센,토니우드콕,키건등이 대표적 예인데 이선수들에 대해선 한번 찾아보세요. 어떤 선수들이였는지 아실겁니다. 우드콕은 지금까지도 아스날 역사상 최고로 꼽힙니다.(지금의 앙리,비에이라가 아니라구요^^)
여기서 볼수 있듯이 당시 분데리가들의 자부심이 얼만큼 대단했는지 알 수 있지요.

문: 차범근이 왜 밀란의 오퍼를 거절했느냐. 돈을 많이 받으면 좋은거 아닌가?
답: 차범근이 밀란의 오퍼를 거절한 것은 물론 독일리그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이 된 것이죠. (당시 그는 최고급의 오퍼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한국에 오면서 집을 독일에 모두 기증하고 왔습니다. 그는 독일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을정도입니다. 뭐 이건 차범근씨 개인적 이유였을테니 우리가 따질필요 없다고 보며 이해가 안되는것도 없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 있는 세리에와 같은 곳에서 뛰지 않았고, 우리는 당시 분데스리가를 못보니 그 당시 분데리가를 폄하하고, 그가 결국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해 대스타가 아니다라면, 이렇게 반박해드리겠습니다. 펠레는 왜 미국리그에서 뛰었습니까? 왜 펠레를 타 리그에서 데려가지 않았죠?
세리에 분데스, 라리가 모두 데려가지 않았지요. 요한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LA로 간 것은 아십니까? 그가 LA로 갔다고 LA가 명문팀이 된건가요? 베켄바우어 역시 독일에서 뛰다가 뉴욕으로 갑니다. 플라티니도 아주 오랜시간 낭스에서 뛰다가 차후에 이적을 하죠. 낭스가 그당시 유명팀인가요? 반면, 전술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뮐러는 왜 독일리그에서 마감을 했죠? 에우제비오는 벤피카,뉴저지라는 팀에서 왜 선수생활을 마감할까요? 야신은 왜 모스크바에서 선수생활을 했을까요? 그런 식으론 아무것도 따지지 못합니다.
차범근보다도 약한팀과 약한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우리가 지금 기억할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국가대표에서 보여준 능력과 당시 국가대표팀 성적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기적을 일으켰던 북한과 같이 16강 8강까지만 갔더라도 차범근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전설적 스타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문: 차범근이 밀란의 오퍼를 거절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대체 왜 안간것이냐 ? 그정도로 형편없는 팀이였는가?
답: 차범근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는 페널티에어리어안에서 반칙을 유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지만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유난히도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선수였고 감독이였습니다.
그런 그는 이런 말을 남겨 유명하기도 하죠. 당시 자신의 전성기 시절 자신의 발을 1년동안이나 못쓰게 만든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상대팀 선수에게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를 용서합니다." 라고 말이죠. (이 당시 난리였답니다. 상대 선수 테러위협까지 갔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그에게 당시의 밀란은 절대로 갈 수 없는 팀이였습니다.

유럽타리그가 발전한것은 85년 이후부터고 (대선수들의 이적시기와 맞물려 세븐시스터즈의 탄생이 이때입니다.) 80년대 말부터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가 안간 것은 AC밀란이 조작사건으로 강등되었다는 것이 (1980년) 바로 그 이유입니다. 페널티안에서 일부러 넘어져 페널티킥 유도하는 것조차 웃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차범근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죠. 그런데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당시 AC밀란은 엄청난 거금들을 투자하면서 스타들을 영입했고, (인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1986년에 구단주가 바뀌게 되구요. 그래서 팀 재건차 차범근등 대스타들을 영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곧바로 그 다음해 87년 우승했답니다~

문: 그렇다면 독일리그가 그렇게 존경받았다면 차범근이 독일에 남겠다는 말 말고 다른 스타들이 독일리그를 추앙하거나 이적료가 많았다는 증거를 대라
답: 80년대 최고의 이적료가 어디서 탄생했을까요? 본 호프가 (74월드컵 우승 주역) 바르셀로나에서 뮌헨으로 오면서 받은 100DM입니다. 그리고 차범근이 밀란에서 제시받은 금액은 이보다 더 많지요.
아스날 역대 최고 선수 우드콕이 분데스리가로 가면서 욕을 더럽게 얻어먹으면서도 옮겼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는 키건이 분데스리가에 성공한 것을 보고 자신감(이 말이 웃기죠? 영국 최고의 선수이자 역사상 아스날 최고의 선수가 분데리가를 겁냈다는것이) 을 얻고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선수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비에이라 앙리. 쉐브첸코만을 내세우고 그들보다 차붐이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독일리그에서 뛴 이런 역대 외국인 대스타중에는 지몬센, 키건 우드콕등과 더불어 차범근이 합류해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자체 평가한 평점에서 이들을 앞서 9위에 있죠( 독일과 외국인 포함한 전 선수 랭킹)

문: 세계축구선수 역대 랭킹에 피구보다 차붐이 위에 있는데, 이건 못믿겠다.
내가 믿는 랭킹은 월드사커지에 나온 425명의 랭킹인데 거기엔 차범근은 없다.찾아봐라 http://www.englandfootballonline.com/TeamHons/HonsWldSocPlyrsCent.html(처음 질문한 유저가 한 소리였습니다.)
답: 이 사이트는 월드사커지에 실린 내용이 아니고 인터넷 폴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또한 방식이 한명이 몇번의 투표가 가능하며 , 폴의 분석을 읽어보면 대부분이 잉글랜드사람들이 참여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랭킹을 자세히 보시면 영국인들이 대부분임을 알수 있죠^^ 그래서 공식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월드사커에서 내놓은 세계축구스타 100인, 세계축구선수100인에는 모두 차범근이 들어가 있으며, FIFA가 선정한 축구스타 100인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는 누구나 쉽게 찾을수 있을겁니다.

차범근의 실력은 누가봐도 불세출의 스타였습니다.
단지 우리가 접할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너무나 하향평가되고 있으며, 축협과 언론에서 외면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접받지 못한 선수이자 감독입니다.
이런 논쟁은 없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제가 불펜에서 여러분들과 논쟁하면서(아마도 스포츠넷이엿던거 같기도..) 작성하고 정리한 글이니다. 퍼가시면 출처 밝혀주시구요.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차범근이란 선수가 훌륭한 선수이긴 하지만,
띄우기 수준이 상상외군요.
차범근이 서독서 뛸때 매스컴서 그의 활약을 접했었고,
종종 그의 경기 모습을 봤읍니다만,,,,

솔직히 넘 심하게 띄우시네요.

(220.86.63.108)
2006-03-07 01:42:39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크레이지군단:
솔직히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 전력도 막강해야하는데.... 1위를 개나소나 모인 팀이 하는 건 아니니...

챔피언스리그 못나갔으니 허접이다는 좀 아닌듯...

그러면... 월드시리즈는 밟아보지도 못한 제프 베그웰은 안습이네요...

(211.51.39.2)
2006-03-07 01:49:29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분데스리가의 수준에 대해선 밑에서도 계속 얘기했읍니다. ㅎ
메이져리그랑 비교대상은 아니라구요.

에~ 그리고, 궁금한게 있는데,,,
차범근 서독서 경기하는 것 보신적 있나요???

(220.86.63.108)
2006-03-07 01:49:30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뤼브롱산에서:
70년대와 80년 초반의 매스컴 수준에서 자국스타를 제외한 스타, 그것도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독일에서 차범근을 알려면. 어느정도의 수준이어야 할까요? 그저 조금 잘하면 될런지~ 아닙니다.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같은 실력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주목받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동양인은 오로지 차범근 밖에 없었으니까요. nba에서 야오밍이 주목받듯이

(220.121.74.224)
2006-03-07 01:51:45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지존페인: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같은 실력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주목받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용병제한이 한명인데 출전시킵니까??

(61.47.239.30)
2006-03-07 01:56:20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크레이지군단:
대충...주공격수로 쓸정도면... 질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굳이 허접인 선수를 썼을리는 없구..

갑자기 우리나라 프로축구 초기의 대스타 피아퐁이 생각나는 건 나뿐인지..^^

(211.51.39.2)
2006-03-07 01:58:49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우선은 당시 분데스리가를 메이져리그에 비교하는게 어불성설이구요.
이문제에 대해선 여러번 얘기했읍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의 주전급 공격수였고, 98골을 넣었다.
요건 사실이죠.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할 얘기들입니다. ㅎㅎ 아닌가요?

(220.86.63.108)
2006-03-07 02:04:07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밑에는 85년에 MVP를 받았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리고, 본문 7번에 대한 답은 누가 한 건가요???

(220.86.63.108)
2006-03-07 02:05:53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추운늑대:
차범근이 가장 뛰어난 아시아 선수라는 건 맞는 말 같구요..

하지만 올린 자료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는데... 반박할 자료를 가져올 필요는 없죠..
글을 올린 사람이 자료의 신빙성을 증명하는게 맞다고 보이네요..

아무튼 확실한 건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엇다는 것이고... 축구라는 경기가 워낙 스탯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니..... 20년 전의 선수를 지금의 박찬호나.. 박지성과 비교해서 어떠니.. 하는 건 참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듯..

(125.177.209.40)
2006-03-07 02:13:08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sack artist: mintwish님,....2002년에 쓰신 거죠?....
직접 이렇게 쓰신거니,...내공이 상당하십니다,....
좀 길어서 80% 정도만 읽었는데,....그저 감사할 따름,...^^

근데,..안타까운 것은,...
늦은 새벽녘에 이해불가의 댓글 다는 몇몇 유저들이랑,...
아까운 시간 보내시는게,.....눈물 날 정도입니다,...
그냥 맘 비우시고,...즐팍하시길,...

(58.121.110.87)
2006-03-07 02:33:10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이런 생각이 드네요.

20년후에 어떤 유저가
마조니가 신재웅 띄웠던 기사를 근거로 들면서,
신재웅은 톰글래빈 급 투수였다라고 주장한다면,,,,

(218.146.13.23)
2006-03-07 02:38:01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nail7:
어쨌건, 글 쓴 분이랑 핀트는 틀렸네요.
밑에서 당시 분데스리가랑 메이져리그랑 같은 수준이란 얘기를 보고,
그게 이 글의 댓글까지 이어졌으니.

어쨌거나,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의 주전급 공격수였고.
98골을 넣었읍니다.

(218.146.13.23)
2006-03-07 02:40:06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mintwish:
리그성적에 대한 것을 구체적 자료로 입증해드리자면 (RSSSF자료 인용)

유러피안컵:
유벤투스
75/76' 16강전: 뮌헨글라드바흐에 2:4 패.
77/78' 준결승: 브루헤에 1:2 패.
78/79' 32강전: 레인저스에 1:2 패.
81/82' 16강전: 안더레흐트에 2:4 패.

AC밀란
79/80' 32강전: 포르투에 0:1 패.

인터밀란
80/81' 준결승: 레알 마드리드에 1:2 패.
컵위너스컵:
77/78' 32강전: AC밀란, 세비야에 2:3 패.
78/79' 8강전: 인터밀란, 베베렌에 0:1 패
79/80' 4강전: 유벤투스, 아스날에 1:2 패.
80/81' 32강전: AS로마, 예나에 3:4 패.
81/82' 16강전: AS로마, 포르투에 0:2 패.

UEFA컵 최종성적.
77/78': 피오렌티나(64강)·인터밀란(64강)·라치오(32강)·토리노(16강)
78/79': 나폴리(64강)·토리노(64강)·비젠차(64강)·AC밀란(16강)
79/80': 토리노(64강)·인터밀란(32강)·나폴리(32강)·페루자(32강)
80/81': 유벤투스(32강)·토리노(16강)
81/82': 인터밀란(32강)
82/83': 피오렌티나(64강)·나폴리(32강)·AS로마(8강)
83/84': 베로나(32강)·인터밀란(16강)

이에 대한 독일리그 팀들 성적은(79~83까지만 보더라도, 그 이상은 위에 기록)

유러피안컵: 함부르크 80' 준우승, 83' 우승. 바이에른 뮌헨 82' 준우승,
컵위너스: 뒤셀도르프 79' 준우승, 예나(Jena) 81' 준우승.
UEFA컵: 프랑크푸르트 80' 우승, 뮌헨글라드바흐 79' 우승 - 80' 준우승, 함부르크 82' 준우승.

합산하면 유러피안컵: 우승 1회 준우승 2회,
UEFA컵: 우승, 준우승 각각 2회, 컵위너스컵: 준우승 2회

(220.93.70.159)
2006-03-07 10:35:32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mintwish:
AC밀란 안간걸 이해못하면서 마치 차붐의 팀보다 좋은팀처럼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차범근이 직접 밝힌 또다른 내용이 있는데, 원래 레버쿠젠을 가기 직전 가려했던곳이 밀란인데 가기 1주일전에 외국인선수 규정이 나왔다라고 했습니다. 또 밀란은 승부조작으로 2부리그로 떨어졌고,승격한뒤에도 베로나나 나폴리한테까지도 밀린 7위권의 팀이였지요 -_-

마지막 레퍼런스로는, 차범근자서전, 쿤트네처자서전, 월드컵의 역사(마쓰오카히로시) 월간축구,Soccer Yearbook 2004/5 (David Goldblatt 저),각종 신문매체와 미디어, 사커월드(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네요), 월드클럽랭킹발표, FIFA 기록, 챔스기록, UEFA기록등 많은 자료들이 모인것이고 몇몇 감정적 단어나 글을 제외하고 수치가 들어가있는것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자료입니다.

(220.93.70.159)
2006-03-07 10:42:40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isimi:
글 잘 봤습니다.

전 야구팬이고, 차범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글만 읽어봤을 때는, nail이나 뤼브롱은 한가지라도 객관적인 사실로 반박해주긴 바랍니다. 특히 뤼브롱... 80%가 구라라고 했으니 단 1%라도 객관적인 사실로 구라라는 사실을 밝혀주길 기대합니다.

단지 내가 모르는 사실은 믿을 수 없어...라고 한다면 야구 좋아하는 초딩으로밖에 안보이니...

(61.110.115.120)
2006-03-07 23:39:38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차범근 아니 왜 그걸 못해
mintwish:
베른트 슈스터에 대한 답을 마무리로 해드리죠. 슈스터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그는 라리가에서 레전드였습니다. 독일에서 경력을 소화하였다가 이적한케이스가 아니구요.제가 알기로 1-2년 활동을 했을당시 사생활(아내의 포르노데뷔문제)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국가대표를 때려치고 온갖 욕을 하며 독일을 떠나 지금도 스페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였지만 그가 독일을 오고싶어도 못왔답니다. 물론 사생활문제때문에 자기가 버린 국가가 독일이라 대표로도 활동못할정도로 독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80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지만 타리그로의 자국리그 선수 출입제한이 78년 도입되었기때문에 그는 다른곳을 가고 싶었다 해도 못간것이죠. 또 그가 라리가로 간 경우도 실력이나 그런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배경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사실적 관계는 전혀 모르시고 분데스리그만 까시고 무조건 감정적인 말로 상대를 격분시키는 토론태도를 자제해주시기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그리고 님의 아이디가 예전에 뭐였으며 저에게 무슨 반론을 제시한 사실이 있는지 명확히 해주시길 바라며 님께서 정말 박찬호를 좋아하는지 메이저리그만을 좋아하고 박찬호는 별로라 하는지도 명확히해주시길 바랍니다. (58.233.136.189) 2006-03-08 00

http://mlbpark.donga.com/board/ssboard.php?bbs=b_bul&no=160875&s_work=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