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난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너가 나를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조차 모른다. 지금 너는 그 때 일이 생각나면 낄낄 웃으며 '그런 멍청한 년이 있었어' 라고 말할 것만 같다.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언이였다. 내 핸드폰 번호를 온갖 욕으로 저장해놨지. 싸울 때만 말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미안하다고 화해를 하고나면 영원한 친구, 절친 등으로 수정했다. 그게 난 너무 웃겼다. 그리고 안심했다. '내일은 평화롭겠지'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너와 놀아야 했고, 다른 친구와는 놀지 말아야했으며 이상한 트집을 잡혀도 난 그렇게 '내가 다 잘못했어' 를 자처하며 1년 반을 보냈다. 난 그 1년 반동안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너무 힘들어서, 분해서, 당하고 사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 때 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그냥 작은 소설에도 뻔한 영화에도 쉽게 슬픔에 공감했다. 있잖아, 그 때 넌 무려 초등학교 4학년이였어. 네가 가고나서도 너와 내가 같이 다니던 친구들을 보면 아직도 불안에 떤다. '찌질이' 라고 욕이 들려올 거 같다. 그래도 물어보고 싶다. 내 앞에 없는 너에게. "그 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7년 전여름 날 오후, 저물어가는 햇살에 주황빛 페인트를 묻혀 학교를 주황빛으로 만들어가던 그 시간.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고교시절의 평생 갈 거라 굳게 믿었단 우정이 그저 단단해 보이는 유리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서로 그리도 쿵쾅쿵쾅 난리를 쳐 댔으니, 지금에서야 깨어져 유리파편이 되어 서로를 찔러버린 것에 오래도 갔구나, 하고 마냥 그렇듯 여겨야하나 싶은 그런 감정. 다시 너를 마주 보았다. 일그러진 표정이 참 거울을 보는 듯 했다. 어쩐지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한 느낌에, 바보같이 다시 묻고 말았다.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어? 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 듣지 않았다고 해야 옳은거겠지. 7년 전언젠가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린 너의 앳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둥글둥글 크단 눈망울에 잔뜩 서린 물안개와 힘을 꾹 주어 주름진 턱. 입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털어낼 듯 바르작거리며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이, 아아, 그 눈빛이 나를 옭아매었더랬다. 너는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봐? 이렇게까지 너를 나락으로 떠미는 나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봐? 그 때, 너 나한테 왜 그랬어. 그것은 네가 나한테, 내가 너한테 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 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7년 전"그 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긴장에 얼룩져, 분노로 물들어 떨리고 있는 주먹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무표정한 네 얼굴 앞으로 화사한 벚잎이 떨어진다. 무자비한 폭행을 받던 그 날, 나는 과거를 잃었고, 현재를 없앴으며 미래가 부서져 버렸다. 바람이 분다. 속눈썹을 간지럽히는 모래바람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너를 보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7년 전이건내실환데 혼자 좋아할때도, 사귈때도, 사귀고 나서도 아프게한 너를 나에겐 애증 이라는 단어만 남긴채 고백하고다니고 결국 또 사겼,사귀는 너를 며칠전에 봤어 그때도 머리가 띵하고 아무생각도안났다? 나한테 고백했던날처럼 너는 날못본거같더라 나는, 너 냄새를 기억하는데 옆에 친구만 없었다면, 말했을거야 그때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더라.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지워지진 않아도 희미해지긴 하겠지, 시간이 약 이란 그 말 믿고 일 년 이년 수 없이 많은 날을 만나고 허무하게 보냈다. 근데, 도저히 지워지질 않더라. 잊을 수가 없더라. 그렇게 허무하게 당한 내가 전에는 불쌍해서. 이젠 분하고 억울해서 네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7년 전오래전부터 가지던 의문이었다. 다 지우지 못한 채 남아있는 상처가 보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언제나 입안에서만 맴돌던 그 말. 생각할 때마다 괜히 입안이 꺼실거리는듯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지워버리곤 했다. 언제나 입안에서만 맴돌다 저 편으로 보내버린 말들을, 차마 내 입 밖으로 꺼내 보이지 못 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그 순간 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그 때 넌 나한테 왜 그랬니.' 넌 그랬다. 마음은 혼자 다 주고는 혼자 마음 아파하고. 결국 내가 이렇게 너에게 마음 다주고 마음 아파하게 만들어 놓고는. 왜 떠난거니. 니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믿지 못했다. 이렇게 쉽게 떠나기에는 너무 나에게 잘해주었던 너였기에. 여태까지 잘해준게 아까워서라도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파랗게 여전했고, 내 맘도 아직 여전하다.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너에게는 닿지 않겠지. 니가 떠나고난 이제서야 니가 떠난 이유조차 모르는 이름만 친구인 내가 물어본다. "그때 너는 나한테 왜 그랬니." 이렇게 그리워하라고 그런거니. 그립고 그리워하다 널 향해 매일 눈물지으라고 그런거니. 7년 전초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다리도 후들거린다. 그저 너의 얼굴만 멍하니 보았다. 빨간색이 어울려서 일까 곤히 감긴 너의 얼굴이 예뻐서 일까. 앞이 흐린건지 캄캄한건지 너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고 오로지 올라오는 너의 향기에만 후각을 곤두 세웠다. 점점 핏기가 없어지는 너의 모습에 살며시 웃다 금세 울어버렸다. 그러길래, 왜 그랬어. 그때 왜 그런거야. 손에 힘이 풀린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쳐버리고 바닥에 마찰된 물건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골목안을 채워줄 뿐이다. 나는, 잘못한게 없다. 너만 그 소릴 안했다면 괜찮았다. 그때 너는 나한테 왜그랬어? 신발코를 적시는 새빨간 물을 걷어차며 그자릴 벗어나왔다. 7년 전 '그때 너 왜 그랬어'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 애를 쳐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이미 나의 손을 떠났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쩌면 친구라는 이름보다 더 가깝게. 날 아주 특별하게, 소중하게 대하던 그 애는 이젠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너, 나한테 왜그랬니, 정말 나한테 왜그런거야.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건 널 만난 이후로 쭉 올곧은 진심이었어. 나는 네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했다는 걸 너도 알잖아. 모든 걸 너에게 맞춰 장식한 그곳은 너만의 낙원이었어. 좋지 않았어? 아니지. 좋다고 그랬잖아. 내가 칼로 네 허벅지를 지긋이 눌렀을 때, 분명히 다 좋다고 그랬잖아! …나는 널 믿었어. 이 더러운 새끼. 아니야… 미안해. 사랑해. 진심이야. 여긴 너무 답답해. 꺼내줘. 구해줘. 내 구원자는 너 하나야. 내가 다 잘못했어." 이해가 안돼ㅜ 둘다 얀데레야??아닌가 이게 뭐지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그 한마디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흔한 미안하다는 말 조차도 도저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돌덩이 마냥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 너도 나처럼 괴로워했으면 좋겠어. " 작은 나이프를 들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마치 바람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낙엽이였다. 나는 네 분노를 모를거야. 설령 지금 네가 내 동생을 내 앞에서 죽이더라도 너에 대한 분노는 한 줌 모래처럼 사라지듯 존재하지 않을거야. 7년 전죽은 내 동생을 붙잡고 내 입에서는 오직 한 단어만 맴돌았다.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나 때문에 죽어서 미안해. 내 동생에게 할 말,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할 말. 두 의미가 뒤섞여 내 눈물로 흘러 나온다. 지금 이 아픔은 그 아이보다 못할거다 그때 난, 내게 왜 그랬을까. 7년 전 그 때의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목에 가시가 박힌듯 답답하고, 따가웠던 것 같다. 넘기려 해도 넘길 수 없었고, 뱉으려해도 뱉을 수 없었던 커다란 가시를. 그 가시가 내 목을 너무 아프게 찔러와서 그 가시를 넘기려고 뱉으려고 노력했었다. 물을 마시면 넘어 갈 것 같아 물을 마셔도 보고, 다른 음식을 삼켜 넘겨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제 존재를 알리듯 나를 아프게 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더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가시로 인한 아픔은 점점 무뎌졌고, 무뎌지는 통증은 가시에 대한 존재를 잊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가시를 넘긴줄로만 알았다. "오랜만이다?" 너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빠지던 동창회를 처음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너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이게 몇년 만이냐며 살갑게 인사를 하는 너를 보자마자 다시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깨달았다. 이 가시는 무엇으로도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었지만 계속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목에 박힌 이 가시는 그저 내 손으로 직접 빼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난 그저 겁쟁이일 뿐이라서 살갑게 구는 너를 보며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통증은 너무나도 아프고 커다란 것이여서 통증을 잊기 위해 앞에 놓인 술을 계속 들이켰다. 그렇게 술을 계속 들이키다 언뜻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중인 너와 눈이 마주쳤다. 그 때와 다름없는 눈빛, 그래 나는 그 때도 겁쟁이였다. 가시를 뺄 때의 통증이 무서워 미련하게 가시를 내버려두던. 어차피 안고 가야할 통증이라면 묻고싶다. 도대체 왜 나에게 그랬던 거냐고. 친구라는 이름을 방패삼아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어야 했던 거냐고. 그때 너, 나한테 정말 왜그랬어? 목에 박힌 커다란 가시로 인한 통증에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7년 전"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라고 묻고 싶었다. 내 눈 앞에서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아이에게. 너무 반갑다며 내 손을 잡고 흔드는 이 아이에게. 처음으로 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알려준 이 아이에게. "연희 너, 호진이 좋아한다며?" 수저를 든 손이 벌벌 떨려왔다. 난 그때 당시 불과 9살밖에 되지 않았다. 어린 아이의 비밀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진다는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같이 어린 아이들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급식을 먹고 있는 내게 정아는 다가와 말했다. 호진이 좋아해? 왜? 너가 뭔데? 더럽고, 가난한 너가 왜 호진이를 좋아해? "호진이는 나 좋아해. 나도 호진이 좋아해. 호진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잔 적도 있다?" 유치한 어린 아이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나는 끝까지 울지 않으려했고, 정아는 계속 해서 자신과 호진이 사이가 돈독하는 것을 강조했다. 정아 옆에는 호진이가 있었다. 호진이도 정아 말을 들으며 웃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했다. 그러고 싶었다. 급식을 먹고 있던 모든 아이들이 수저를 내려 놓고 우리를 지켜봤다. 선생님들도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말리려들지않았다. 일어났다. 아직 밥은 한참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난 망설이지않고 쓰레기통에 밥을 버렸다. 식판과 수저를 가지런히 내려놓으며 급식소를 나갔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교를 하며 생각했다. 오늘 아침엔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밥을 곪았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아빠가 있으리라. 저녁도 먹지 못하겠지. 배가 고파왔다. 7년 전정아는 여전히 나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웃음이 참 보기 좋았다. 내 손을 붙들고 있는 정아의 손도.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가 이뻤다. 단발의 9살 소녀가 긴 생머리를 찰랑이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다. 나는 그대로였다. 나는 웃었다. 그런 정아를 보며. 여전히 내가 절망적이길 바라는 정아를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때서야 정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고의 복수였다. 7년 전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사랑을 준 적도 없는데 거절당했다. 순간 내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돼버린 듯, 그렇게 내 모든 사고도 멈춰버렸다. 그를 볼 수조차 없었고, 그를 향해 웃어보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이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니. 나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았다는 걸 너도 알았으면 좋겠다. 7년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