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전석순 “그래서 넌 죽어서까지도 꼭 부부여야 한다는 거야?” * 누군가 또 나를 찍었다. 이번엔 사람이 드문드문 모인 좌판에서였다. 수레를 끌고 다니며 커피나 녹차를 파는 아줌마를 찍고 있을 때 내 생각은 좀 더 분명해졌다. 내가 어떤 것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나도 찍히고 있었다. 아마 온전한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카메라로 반쯤 가린 얼굴, 그나마도 초점을 맞추느라 잔뜩 찡그린 것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그게 내 얼굴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카메라를 뺏어 사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나를 찍는다는 확신만 들었을 뿐 누가 찍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선배는 앞으로 사라질 것들을 찍어서 이번 특집으로 싣자고 했다. 며칠 만에 나타나서 던진 소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라지던 선배였지만 이번엔 좀 길었다. 그래서 선배는 내가 회사에 나오지 못할 상황인데 어쩔 수 없이 마감 때문에 잠깐 나온 것도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주에나 출근할 것이었다. 마지막 장날인데도 한산하다 싶었는데 순대나 떡볶이를 파는 쪽으로 가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어디 앉을 데나 있을까 싶어 돌아나가려는데 마침 국물을 마시던 남자가 일어섰다. 마치 내가 그쪽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남자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엉덩이를 한 번 들썩이자 온기가 좀 가신 듯했다. 온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잠깐 생각해 봤다. * 엄마는 큰돈을 쓸 때마다 돈을 헐어 쓴다고 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표정도 목소리도 같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니 뭘 좀 사달라고 할 때 엄마가 “그러면 이 돈을 헐어야 하잖니.”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그게 돈을 줄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엄마는 돈이든 뭐든 한번 허물어지면 금세 사라진다고 했다. 그럴 때 엄마의 목소리는 손에 쥐면 흩어질 것처럼 희미해지다가 나중엔 아예 울음까지 섞였다. 그러면 언니와 나는 준수가 먼저 돈을 허물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살겠다는 엄마의 고집은 만만찮았다. 게다가 우리 셋 중 누구 하나 엄마를 모실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언니의 집엔 남는 방이 없었고 준수는 신혼이라 올케의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혼자 사는 내 원룸에 모시기도 마땅찮았다. 엄마의 고집이 먼저였는지 우리의 형편이 먼저였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헛갈렸다. 장롱까지 드러냈을 때도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싱크대 안까지 살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니 엄마가 어디에 묻히고 싶어 하는지는 오로지 우리 셋의 짐작에 달려 있었다. 그나마 엄마가 죽어서 화장하는 건 싫다고 했던 걸 기억해 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때 얘기를 좀 더 끌고 나가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까지 알아내야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물어보고야 말았을 것이다. * 내가 전화로 더 찍을 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선배는 머뭇거리기만 했다. 뭔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전화를 끊으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거하는 장면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특집은 여전히 허술해 보였다.
한 후보는 연설을 하고 있고 반대편에는 다른 후보의 홍보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둘 사이에 거리가 좀 있다고는 해도 소리가 겹쳐서 어느 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길가엔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보니 선명한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티셔츠는 색깔이나 무늬뿐만 아니라 크기도 모두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헐렁한 것이 끄트머리에 선 사람에게는 작아 보였다. 마지막에 선 사람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티셔츠가 작았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손을 흔드는 사이사이 한쪽으로 늘어진 걸 바로잡느라 귀찮은 눈치였다. 그때 선배가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찍어 두라는 신호였다. 나는 선배를 보지 않고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선배는 정말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 “어때? 이렇게 되면 엄마가 왜 동물원 앞에서 가다 사고가 났는지도 설명되잖아.” * 다섯 시가 넘어갈 때까지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 나타나면 더 늦기 전에 온전한
모습을 한번 찍어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진을 나중에 보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런 얼굴을 하고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울 수도 있고 지워내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사라질 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는 게 좀 덜 고단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이유로 하루하루가 더 지칠 수도 있겠다. 엄마나 아버지는 어느 쪽이었을지 궁금했다. * 남아 있던 얼음이 녹아 컵에 물이 찼다. 언니는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그걸로 부족한지 준수 앞에 있던 컵까지 들었다. 색만 다르고 똑같은 컵이었다. 언니는 입안에 얼음도 몇 개
넣었는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무 소리도 없을 때보다는 좀 나은 것 같았다. 밖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엄마는 앨범을 꺼내 한 장씩 넘겼다. 혹시 앨범 사이에도 선 볼 남자 사진이 끼워져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다. 불쑥 “그럼 이 남자는 어떠니?” 할 것 같은 밤이었다. 아버지 사진이 나왔을 때야 나는 따지듯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럼 왜 엄마는 그런 사람이랑 결혼했느냐고. 부부 속사정이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은 별 탈 없이 살아온 부부인 줄 알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싫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건 또 뭔가 싶었다. “그럼 누나는 매형 죽으면 옆에 안 묻히고 딴 데 묻힐 거야?” * “가족사진도 찍어 둬. 어쩌면 가족제도도 곧 사라질지 몰라.” ===== 작가와 6문6답 =====
누군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빚을 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설 속 문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거나 그 배경이 아니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으로 떠나거나 그 인물이 아니라면 좀처럼 말을 붙이지 않았을 사람에게 싱거운 인사를 던질 때였습니다. 그쯤엔 소설을 쓰는 일이 그 빚을 조금씩 갚아 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걸로 조금이나마 빚을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엄마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인사가 막 도착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책을 내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보름 정도 춘천과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갔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키고 주말이 되면 모두 모여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두서없이 옛날 얘기가 오가다가 길게 침묵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신호처럼 짧게 목소리를 내면 그걸 시작으로 또 얘기를 나누던 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딱 한 번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만큼은 뒤에서 할머니도 피식 웃은 것만 같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갈등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아마 그때 구상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농담은 살아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헛갈리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업은 작업실에서 하거나 도서관 열람실에서 하는 편인데 어디서든 음악을 듣지는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공간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할 때는 음악을
찾습니다. 자잘한 소음은 작업에 탄력을 주지만 의미를 품은 목소리는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가 있는 공간에서는 그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니 작업할 때 듣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목소리를 가려 줄 어떤 소리라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얼마 전에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는데 최근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다양한 빗소리를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줄거리 정도를 얘기해 주거나 막히는 부분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있지만 발표하기 전 소설 전체를 보여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변에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 제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늘 고마운 일입니다 – 부끄럽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직 완성이 덜되었다는 얘기로 말을 돌렸는데 이제는 선명한 부끄러움에 대해 고백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또렷한 윤곽을 잡고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 질문을 되새겨 보니 억지로 틀을 만들어 두고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글쎄요”나 “저도 궁금합니다” 정도로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다음날 저는 같은 질문에 또 다른 답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은 틀을 거두고 나서 성실하게 지켜보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아니면 바닥에 스며드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디론가 흘러가는지.
거짓말에도 공식자격증이 있고 거짓말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생기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거짓말을 혐오하면서도 어느 순간 거짓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철거를 앞둔 건물 안에 사는 세 여자와 그들을 감시하는 또 다른 여자에 대한 것입니다. 서로 악다구니 써가면서 의심하고 눈을 흘기지만 한 명이라도 건물을 나가는 순간 철거가 진행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를 방에 가둬 두려는 사람과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하는 사람 사이를 오가며 서성이는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문장웹진
8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