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 생각나지않고 다 지나서야 할 말이 생각이 날까

사라지다

전석순

왜 그때 생각나지않고 다 지나서야 할 말이 생각이 날까

    “그래서 넌 죽어서까지도 꼭 부부여야 한다는 거야?”
    언니는 찻잔을 요란하게 내려놨다. 오가는 말에 뒤섞일 수 없을 만큼 자못 날카로운 소리가 우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찻잔 안에서 커피가 출렁거렸다. 커피가 잔잔해질 때까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커피는 민숭민숭하고 달기만 했다. 그래도 말하는 사이사이 부지런히 입에 댄 것 같은데 커피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커피를 마시려고 잔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딱히 할 말이 없거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잔을 들었다. 그런다고 잔을 내려놓을 때쯤 명쾌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매번 그랬다. 모두의 커피 잔 사정이 비슷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한 번 더 잔을 들어 입술을 적셔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언니가 대뜸 말을 이었다. 잔잔해지던 커피는 다시 조금 출렁였다.
    “알잖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집에서 엄마 혼자 지내셨어. 너나 나나 누구도 다 싫고 혼자 살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잖아. 그새 잊었어?”
    “그거야 아버지가 그리우니까 그랬던 거지. 그러니까 아버지랑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한 거 아니냐고, 내 말은.”
    “…엄마가 아버지를 뭐? 그리워했다고?”
    준수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준수 표정을 살피고 있자니 그 사실을 나만 몰랐던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는 정말 아버지를 그리워했을까. 정말 그래서 혼자서라도 거기서 살았던 걸까.
    준수는 엄마가 아버지와 살던 집에 살았다는 것에 주목했지만 언니는 달랐다. 언니는 엄마가 혼자 살고 싶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똑같은 얘기가 몇 번씩 오가더니 어느새 둘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생각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커피 잔을 한 번 더 들어 볼 뿐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누구도 다 싫고’였다.
    “왜 빤히 보이는 엄마 맘을 그렇게들 몰라?”
    “너야말로 엄마를 그렇게 모르겠어? 너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지? 하긴, 그러니까 명절 때마다 사들고 오는 게 그 모양이지.”
    “그럼 누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잘 안다고?”
    커피는 잔을 들었다 놓지 않아도 이제 맘껏 흔들리고 있었다. 식탁이 한쪽으로 기우는가 싶으면 반대편에서 힘이 들어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렇게 좀 버티는가 싶더니 일순 엉뚱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기울었다. 그 와중에도 커피는 간신히 쏟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팔이 욱신거릴 정도로 식탁을 꼭 붙잡고 있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는데 어느 순간 흔들거리던 게 뚝 멈췄다. 언니와 준수가 또 동시에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번엔 너는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묻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잔을 들었다. 이번 사고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엄마가 당뇨를 앓고 있었던 것도 몰랐을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일어서 있던 둘은 동시에 느릿느릿 앉았다.
    벌써 세 번째 모인 자리였다.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금방 엄마를 모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좀 달랐다. 나는 다툼으로 번지기 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무엇인지 헛갈렸다. 아버지 옆에 모시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따로 모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나도 분명 생각한 바가 있었을 텐데 준수와 언니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더 헛갈리기만 했다.
    “대체 엄마는 언제까지 얽매여 있어야 하니.”
    언니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결정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까지 엄마를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다.
    모두 한꺼번에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커피에 닿은 입술이 시렸다.

*

    누군가 또 나를 찍었다. 이번엔 사람이 드문드문 모인 좌판에서였다. 수레를 끌고 다니며 커피나 녹차를 파는 아줌마를 찍고 있을 때 내 생각은 좀 더 분명해졌다. 내가 어떤 것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나도 찍히고 있었다. 아마 온전한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카메라로 반쯤 가린 얼굴, 그나마도 초점을 맞추느라 잔뜩 찡그린 것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그게 내 얼굴의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카메라를 뺏어 사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나를 찍는다는 확신만 들었을 뿐 누가 찍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내가 찍은 것만 따라서 찍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때 펑,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터지는 순간을 찍지 못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도 한 번 더 찍힐까. 그 생각에 닿자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뻥튀기를 보는 것도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가 꽃잎처럼 보였다.

    얼마 전 선배는 앞으로 사라질 것들을 찍어서 이번 특집으로 싣자고 했다. 며칠 만에 나타나서 던진 소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라지던 선배였지만 이번엔 좀 길었다. 그래서 선배는 내가 회사에 나오지 못할 상황인데 어쩔 수 없이 마감 때문에 잠깐 나온 것도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주에나 출근할 것이었다.
    휴가를 냈다는 건 나중에 건너 들었다. 그동안 선배는 고향에 갔다 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낯섦만 잔뜩 짊어지고 와서 그런지 선배는 피로해 보였다. 역전에 있던 다방이나 마주보며 경쟁하던 구멍가게도 시내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서점도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그게 사라질 줄은 몰랐지.”
    나는 뭘 두고 하는 얘긴가 싶어 선배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눈이 마주친 선배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일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시선을 거두지 않자 그 자리엔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 생겼다고 했다. 언젠가 선배의 고향으로 놀러 갔을 때 역전에서 찍은 사진이 떠올라 보여줬다. 선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우지 않고 컴퓨터 안에 남겨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씩 일그러지는 선배의 표정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좀 묽어졌다. 왜 그러냐고 묻지 못할 만큼 선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 영정사진을 마주했을 때 내 표정이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알게 모르게 사라진 것들이 있었을 텐데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때 선배가 처음 말한 것은 오일장이었다. 닷새마다 장이 서는 것도 이제는 사라질 거라고 했다. 맞는 얘기긴 한데 거창한 기획의 첫 장소로는 좀 싱거운 면이 있었다. 그걸 시작으로 사라질 기차역이나 건물, 버스 같은 것이 툭툭 던져졌다. 선배는 내게도 사라질 게 뭐가 있는지 물었다. 생각나는 거라곤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빵집까지 나왔을 땐 더는 마땅한 게 없어 보였다. 차라리 시장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마침 멀지 않은 지역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오일장이 있었다. 선배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일장은 금방 사라질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다녀오겠다고 해버렸다. 집에 있는 것보단 그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이틀 후 선배는 막 나서려던 나를 붙들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그러더니 카메라를 내주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셔터를 눌렀다. 순식간이라 말릴 새도 없었다. 선배는 다시 카메라를 건네주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
    “일단 너부터. 예전의 너도 사라졌고 지금의 너도 사라질 거야.”
    그제야 주변에서 사라지는 게 많았을 텐데도 몰랐던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내 안에서도 무언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밖으로 나서는 나를 향해 선배는 손을 흔들어 줬다. 그걸 놓치지 않고 나는 카메라를 선배 쪽으로 향했다. 놀란 선배는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내가 좀 더 빨랐다. 언젠가 사라진 선배의 모습이라고 보여줄 작정이었다. 선배의 사진을 보니 그동안 엉뚱한 것만 찍고 다닌 것 같았다.

    마지막 장날인데도 한산하다 싶었는데 순대나 떡볶이를 파는 쪽으로 가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어디 앉을 데나 있을까 싶어 돌아나가려는데 마침 국물을 마시던 남자가 일어섰다. 마치 내가 그쪽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남자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엉덩이를 한 번 들썩이자 온기가 좀 가신 듯했다. 온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잠깐 생각해 봤다.
    떡볶이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남자는 출입구 근처에서 주춤하고 있었다. 계속 들이닥치는 무리에 밀려 나가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뒷모습을 훑어보니 어깨에 매달려 있는 카메라 가방이 보였다. 나를 찍었던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서는 오일장을 찍으러 온 사람들일 것이었다. 기자만 있는 게 아니라 주민이나 여행 중인 사람들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 노을이 질 때의 풍경까지 담으면 얼추 쓸 만한 자료가 모일 것 같았다. 이제껏 찍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자가 겨우 밖으로 나가자 또 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선배 말마따나 요즘은 너무 빨리 바뀌고 있어서 일단 아무데나 찍어만 두면 그 사진이 몇 년 후엔 귀한 자료가 될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누구라도.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건너편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에 시선을 던지는데 옆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전자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나를 찍은 건지 아니면 떡볶이를 뒤적거리던 아줌마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내들을 찍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휴지를 찾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전자음이 울렸다.

*

    엄마는 큰돈을 쓸 때마다 돈을 헐어 쓴다고 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표정도 목소리도 같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니 뭘 좀 사달라고 할 때 엄마가 “그러면 이 돈을 헐어야 하잖니.”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그게 돈을 줄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엄마는 돈이든 뭐든 한번 허물어지면 금세 사라진다고 했다. 그럴 때 엄마의 목소리는 손에 쥐면 흩어질 것처럼 희미해지다가 나중엔 아예 울음까지 섞였다. 그러면 언니와 나는 준수가 먼저 돈을 허물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준수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거봐, 엄마는 절약하는 걸 좋아했다니까. 지금도 자리 하나 더 만드느라 허투루 돈 허무는 거 원치 않을 거야.”
    준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언니는 “좋아서 그랬겠니? 그게 다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라니까!”라고 맹렬하게 받아쳤다. 문제가 좀 헐거워질 수 있을까 해서 꺼낸 말이었는데 매듭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언니의 말에 잠잠하다 싶던 준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뭔가 대단한 거라도 생각난 듯 당찬 걸음으로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식탁이 흔들렸다. 나는 커피가 쏟아질까 봐 식탁을 붙잡았다. 하지만 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두 바퀴쯤 돌던 준수가 우뚝 멈추더니 언니를 쳐다봤다. 걸음에 비해 목소리는 흐리멍덩했다.
    “엄마는 물건을 살 때도 하나 더 붙은 걸로만 골라 샀어. 그건 다들 알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 준수를 바라보는데 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고개를 숙여서 그런지 목소리에는 제법 묵직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평소에도 그만큼 둘이 있는 걸 좋아했다는 거지.”
    언니는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게 묶인 게 싸니까 그랬던 거고.”
    목소리는 여전히 누가 밟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준수는 어느새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준수는 앉자마자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가 싶더니 입에 잔이 닿기도 전에 도로 내려놓았다.
    “바로 그거야! 엄마가 얼마나 알뜰했어? 아마 따로 하느니 같이 해서 절약하는 걸 원하고 있을 거야. 안 그래?”
    준수는 나를 보며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보면 싼 것도 아니던데…….”
    나는 잔을 입에 가져가며 슬쩍 언니를 쳐다봤다. 준수도 언니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언니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미간 사이에 잡힌 선명한 주름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준수에게 한마디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언니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온몸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엄마를 아버지 산소에 덤으로 끼워 넣자는 얘기야 뭐야? 지금 우리가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준수와 언니는 동시에 일어나 얼굴을 붉히고 으르렁거렸다. 둘이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데 나는 아무 말도 끼워 넣지 못했다. 오가는 말에 보탤 건 보태고 뺄 건 빼고 싶은데 점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 살겠다는 엄마의 고집은 만만찮았다. 게다가 우리 셋 중 누구 하나 엄마를 모실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다. 언니의 집엔 남는 방이 없었고 준수는 신혼이라 올케의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혼자 사는 내 원룸에 모시기도 마땅찮았다. 엄마의 고집이 먼저였는지 우리의 형편이 먼저였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헛갈렸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몇 번 더 엄마를 모시겠다고 했다. 그때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시선을 옮겼다. 결국 엄마의 고집에 못 이기는 척 슬쩍 넘어갔다. 대신 자주 찾아뵙는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걸로 얼마간 불편한 맘을 좀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자주 찾아뵙는다는 게 세 명으로 쪼개지니 종종이나 가끔으로 변했다. 그나마도 나중엔 ‘시간 날 때마다’쯤이 됐다.
    가끔 엄마가 먼저 언제 오냐고 물어 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언제 가봐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그런 게 아니라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떨 땐 엄마한테 최근 외출했던 날이 언제였는지 물어서 사실 그날 찾아갔었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그걸로 우리 셋이 자주 찾아뵙는 것 중에 내 몫은 해내고 있는 줄 알았다. 몇 번 넘어가던 엄마가 한 번은 “너네는 어쩜 날을 골라도 꼭 집 비운 날만 골라서 한꺼번에 몰려드니? 엄마 없으면 못 산다던 시절은 다 어디 갔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한동안 너나할 것 없이 엄마에게 자주 찾아가 보기도 했다.
    막상 집에 가보면 엄마는 누가 들여다보지 않아도 잘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기껏 찾아갔는데 동네 사람들이랑 여행 중이거나 친구들과 외출 중일 때도 있었다. 얘기를 들어 보면 외할머니 산소에도 맘껏 다녀오는 눈치였다. 그렇다 보니 나중엔 누가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어서 잘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어느새 발길이 또 뜸해졌다.
    집 안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반들반들하고 윤이 났다. 엄마는 자장면도 시켜 먹고 화초도 여러 개 키웠다. 집 안의 변화에 둔한 준수도 화초가 늘어난 걸 눈치 챌 정도였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버지와 있을 땐 못 해봤던 걸 하나씩 해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예전의 엄마도 함께 없어져 버린 셈이었다. 그게 아버지가 사라진 게 후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버지를 잊으려고 그런 건지는 몰랐다. 준수와 언니도 이걸 두고 말하는 게 달랐다. 그때 둘은 엄마가 달라졌다고 했지만 나는 우리가 몰랐던 모습일 뿐 그것도 엄마라는 걸 알아채려고 했다. 그래야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엄마가 변했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 나도 그렇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엄마는 혼자 산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동물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는 왜 하필이면 동물원 앞인지 의아했지만 그걸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응급실로 옮겨진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딱히 손을 써볼 새도 없었다.
    우리는 얘기할 힘이 없는 듯 병원에서 마주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 돌아가신 엄마를 모실 때쯤 돼서야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엄마를 발음했을 때 나는 뒤로 조금 물러섰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 것처럼 생경했다. 내가 “저기……”라고 하자 준수와 언니가 몸을 움찔했다.
    “너 목소리가 왜 그러니?”
    내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언니가 먼저 물었다. 나는 뒤에 “누구세요?”라고 물으려던 걸 꾹 눌러 삼켰다.

    장롱까지 드러냈을 때도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싱크대 안까지 살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니 엄마가 어디에 묻히고 싶어 하는지는 오로지 우리 셋의 짐작에 달려 있었다. 그나마 엄마가 죽어서 화장하는 건 싫다고 했던 걸 기억해 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때 얘기를 좀 더 끌고 나가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까지 알아내야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물어보고야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언니와 준수는 남은 힘은 여기에 모두 쏟아버리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인지 둘은 내가 잠깐씩 회사에 갔다 오는 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아마 둘이 진짜 못마땅한 건 따로 있을 것이었다.
    의견이 모이지 않고 점점 분리될수록 나는 혹시 엄마가 하나가 아니라 셋인 건 아닌가 싶었다. 모두에게 각자의 엄마가 따로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세 명의 엄마 중 진짜 엄마가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언니의 표정이 구겨지고 준수의 입이 계속 움직이는 걸 보면 아직 어떤 것도 결정된 게 없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둘의 목소리는 귓속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뭉개졌다.
    언젠가 내 차례가 되어서 엄마의 집에 갔을 때였다. 처음엔 가구의 위치가 싹 바뀌어서 다른 집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 아버지가 없으니 이런 것도 마음대로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앞으로 아버지 얘기는 하지 말라며 돌연 화를 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아버지에 대해 얘기해도 듣고만 있었고 어떤 말도 끼워 넣진 않았다. 그러다 얘기가 길어지면 아버지를 몰아내듯 우리들에게 다른 얘기를 던졌다. 싫어해서 그랬던 건지 자꾸 생각나서 그랬던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혼자 중얼거렸다고 생각했는데 둘은 이미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곧 마주 보고 시선을 주고받았다. 고개를 기울던 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야 목소리가 조금씩 윤곽을 잡아 갔다.
    “역시…… 아버지가 그리우니까…… 자꾸 생각날까 봐 그런 거겠지?”
    언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받아쳤다.
    “아니지. 싫으니까 그런 거지. 아버지가 싫으니까!”
    둘은 다시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엄마가 왜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둘의 얘기를 듣고 보니 다 그럴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확실하게 물어보는 건데. 나는 별 수 없이 잔을 입에 가져갔다. 립스틱 자국이 안 묻은 곳이 거의 없었다. 둘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준수는 머리를 부여잡고 거의 고함처럼 내뱉었다.
    “아, 정말 엄마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미치겠네.”

*

    내가 전화로 더 찍을 게 있느냐고 물었을 때 선배는 머뭇거리기만 했다. 뭔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 전화를 끊으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거하는 장면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특집은 여전히 허술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 소란한 음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음악 사이에 누군가가 격앙된 목소리로 지역 이름이나 사람 이름을 불렀으나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귓속을 비집고 들어오는데 막상 어떤 이름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긴 이제 투표는 집에서 컴퓨터로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다음 투표 때부터 당장 그렇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것도 찍어 두자.”
    선배는 이제 모든 것을 사라질 것인지 아닌지로 가늠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앞으로 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젠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게 뭐가 있을지에 대한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바뀐 생각인데 이제야 눈치 챈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 누군가 내 눈을 손으로 가렸다. “내가 누굴까?” 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간드러지게 퍼졌다. 분명 내가 아는 목소리인데 다른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이렇게 그냥 불쑥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럼 다시 사라지기 전에 물어볼 수도 있을 텐데.
    “넌 내 목소리도 모르냐?”
    선배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내 옆에 앉았다. 언제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종일 따라다니며 몰래 찍었던 사람이 선배인 모양이었다. 내가 찍는 게 불안하니 따라다니면서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선배에게선 카메라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짐을 두고 왔느냐고 물으니 밤에 올라갈 생각이라 짐은 따로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짐은커녕 차도 아예 두고 왔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또 사진이 찍혔다. 이번엔 선배와 함께 있는 모습일 것이었다. 누군지 돌아보려는데 목소리가 먼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잘못 눌렀어요.”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선배가 말을 받아쳤다.
    “아, 뭐. 괜찮습니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선배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사진 속에서 우리 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잠깐 떠올려 봤다. 혹시 아까도 나를 찍은 거냐고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한 후보는 연설을 하고 있고 반대편에는 다른 후보의 홍보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둘 사이에 거리가 좀 있다고는 해도 소리가 겹쳐서 어느 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길가엔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보니 선명한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티셔츠는 색깔이나 무늬뿐만 아니라 크기도 모두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헐렁한 것이 끄트머리에 선 사람에게는 작아 보였다. 마지막에 선 사람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티셔츠가 작았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손을 흔드는 사이사이 한쪽으로 늘어진 걸 바로잡느라 귀찮은 눈치였다. 그때 선배가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찍어 두라는 신호였다. 나는 선배를 보지 않고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선배는 정말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투표하는 당일 풍경도 찍어 두는 게 좋겠지?”
    선배는 뒤에 서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른 소리에 묻혀 잘 안 들릴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알아들을 순 있었다. 그 뒤로 선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좀 더 우렁차게 연설하는 목소리나 볼륨을 높인 음악소리에 묻혀 내가 못 들은 것일지도 몰랐다.
    한참 사진을 찍는데 이번에는 선배가 옆구리를 찔렀다. 또 뭘 찍으라는 건가 싶어 카메라에서 얼굴을 뗐다. 내 앞에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흰 면장갑을 낀 손을 흔들었다. 키가 좀 작은 여자에게 티셔츠는 허벅지를 반쯤 덮을 지경이었다. 얼굴은 희미하게나마 웃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서 나도 따라 손을 흔들고 웃어야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자니 웃는 게 아니라 찡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선거홍보물을 들고 있었다. 지금 연설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저 사람이 맞는 것도 같고 어딘지 모르게 반대편에 선 사람을 닮은 것도 같았다. 그 사이 여자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쥐어짜 내는 것 같은 표정을 얹고 있었다.
    “재래시장 꼭 살리겠습니다.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네, …근데 저는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닌데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줬던 홍보물을 다시 빼앗아갔다. 뒤돌아선 여자의 손목엔 소형 카메라가 매달려 있었다. 가느다란 손목에 매달려 있으니 제법 무거워 보였다. 혹시 그 카메라에 나도 찍하지 않았을까. 그때 여자가 다시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무언가를 따지러 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걸음은 힘차고 당당했다. 여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표정은 아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 아버지나 어머니는요? 부모님도 여기 사람이 아니세요?”
    “그게…….”
    “어디 있어요?”
    마지막 질문은 내가 한 건지 여자가 한 건지 헛갈렸다. 누가 했든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찍어 두기 전에 벌써 사라진 건 아닌지 조급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자 여자는 어떤 확신이 들었는지 홍보물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꼭 전해 드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자는 나중에 확인해 볼 사람처럼 두 번이나 내 대답을 듣고서야 뒤돌아갔다. 몇 걸음 가서는 손목에 매달려 있던 카메라를 들고 연설하는 후보를 찍었다. 그리고 옆에 늘어선 사람들을 한 번, 그리고 홍보물을 들고 있는 나를 한 번 찍으려고 했다. 순간 나는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제야 홍보물을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을 찍을 때 브이를 하던 모습이 곧 사라질 것이 아니길 바랐다. 오늘 찍힌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건 여자의 카메라에 있을 것이었다.
    연설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선배는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들리기나 할까 싶어 관뒀다.

*

    “어때? 이렇게 되면 엄마가 왜 동물원 앞에서 가다 사고가 났는지도 설명되잖아.”
    “어째서?”
    “생각해 봐.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대부분 한 쌍으로 있어. 엄만 그걸 보러 간 거지.”
    언니와 나는 눈만 마주쳤을 뿐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준수는 집 안에 한 쌍으로 있었던 것을 모조리 늘어놓았다. 나중엔 숟가락과 젓가락이 정확하게 한 쌍으로 맞춰져 있다는 얘기까지 꺼냈다. 준수의 말이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게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를 모시는 일이 더 늦춰져선 안 됐다. 이 집도 계속 이렇게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언니는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아니면 이제 힘이 빠졌는지 계속 잠자코 있었다.
    우리는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점점 더 팽팽해지기만 했다. 조금만 더 당기면 어디로든 툭 끊어질 것만 같았다.
    준수는 예로 들 수 있는 게 점점 희박해지는지 목소리가 점점 엷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볼펜도 꼭 한 쌍으로 가지고 다니던 게 생각나서 그 얘기도 보태 줄까, 싶었다.
    그때 언니가 벌떡 일어섰다. 작아지던 준수의 목소리는 아예 딱 멈췄다. 언니는 준수를 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뚜벅뚜벅 갔다. 그 사이 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한 쌍인 게 생각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언니가 자리에 없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언니는 얼음물이 담긴 컵을 나눠준 뒤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단번에 물을 들이켜곤 컵을 내려놨다. 컵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 금세 밑에 고였다.
    준수는 그때까지도 별말이 없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게 어색해서 이제라도 볼펜이 한 쌍이란 얘기를 할까, 하는데 언니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넌 엄마가 선보라는 걸 왜 한 번도 안 봤니?”
    언니는 나를 거의 노려봤다. 왜 얘기가 그쪽으로 튀는 건가 싶은 것보다 한 번쯤 억지로라도 나가 볼 걸, 하는 생각이 앞섰다.
    엄마에겐 짝을 못 찾고 있는 자식이 나뿐이었으니 선보라고 재촉하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만날 때마다 남자 사진을 들이미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선배라도 불러서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선보라는 얘기는 없어지겠지만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꼬치꼬치 캐물을 게 빤해 그만뒀다. 그저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건성으로라도 훑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들뜬 표정을 숨기고 애써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 남자 어떠냐고 물어 왔다. 나는 그냥 알아서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봐, 엄마가 작은누나한테 결혼하라고 그렇게 닦달한 것도 알고 보면 다 쌍으로 된 걸 좋아해서 그런 거라니까. 혼자 사는 누나 볼 때마다 엄마가 얼마나 측은하게 생각했어? 그러니까 엄마는 당연히 아버지 옆에 모셔야지. 안 그래?”
    가만히 있던 준수가 고개를 치켜세우고 활기찬 목소리를 냈다. 이어서 큰누나가 지금 들고 있는 컵도 한 쌍이라고 말했다.
    “…그래. 그런가 보다. 네가 맞다. 미운 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미운 정…….”
    언니의 목소리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는 정말 한 쌍으로 있는 걸 좋아해서 나에게도 한 쌍이 되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죽어서도 아버지와 한 쌍으로 남고 싶은 게 맞을까.
    언니와 준수는 거의 그쪽으로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언니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않고 벌써 잔을 정리했다. 준수도 바짝 당겨 앉았던 자세를 느슨하게 풀고 긴 숨을 내쉬었다. 둘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기에 동의한 걸로 생각하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내일 오일장에 다녀와야 할 일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언니가 잔을 겹쳐서 쟁반 위에 올려놓을 때 불쑥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엄마가 나 결혼하라고 성화였던 건 맞아. 그런데…….”
    언니는 쟁반을 들고 어기적거리며 주방 쪽으로 향하다가 멈췄다. 준수는 여전히 비스듬하게 앉은 채로 시선만 내 쪽으로 틀었다.
    그날도 엄마가 사진을 내보였다. 엄마가 친목회 가는 날인 걸 알고 과일이나 좀 두고 가려고 온 길이었는데 엄마는 멀쩡히 집에 있었다. 꼼짝없이 저녁까지 먹고 가야만 했다. 어쩌면 엄마는 자식들이 엄마가 집을 비운 날만 골라 오는 걸 진즉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내민 사진은 다섯 장이었다.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엄마는 이 중에 하나는 무조건 고르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아예 사진은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앉았다. 엄마는 내 얼굴에 대고 사진을 하나씩 보여줬다. 나는 고개를 비틀며 버티고 있었다. 이슥해질 때까지 실랑이가 끈질기게 이어졌다. 둘 다 지쳐 갈 때쯤 나는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해버렸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지어서 말을 끝맺었다.
    다 들은 엄마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진을 내밀 때 돌던 생기나 당차던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엄마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때처럼 엄마 얼굴을 꼼꼼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던 엄마의 얼굴은 반쯤 사라지고 거기엔 다른 얼굴이 번져 있었다. 혹시 거짓말인 걸 알고서 그러는 건가 싶을 때쯤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다음 바로 말을 꺼낸 게 아니라 숨을 고르다가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엄마가 뭐랬는데?”
    “아무리 급해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했어.”
    언니가 쟁반을 내려놓는 소리와 준수가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엄마가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가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부터 떠올랐다. 아침에 분명 있었던 아버지가 한 달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건 그보다 더 잦았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아버지도 집을 비운 사이 훌쩍 커버린 우리들을 봤을 때 한 명씩 또박또박 이름을 불러 줬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우리는 아버지가 집에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내기를 하기도 했다. 누구 하나 계속 이긴 적이 없는 내기인 걸 보면 누구도 아버지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랬다.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이번에도 며칠쯤, 길어 봐야 한 달 후엔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지 몇 달쯤 지나서야 아버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저기 맴돌았던 눈물은 그때 쏟아졌다.
    아예 사라질 줄 알았으면 아버지도 미리 찍어 두는 건데. 언제 찍었는지 모를,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한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둘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작정을 하고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고 따졌을 때 아버지가 내민 사진이었다. 영정사진은 아버지가 손으로 그린 브이를 잘라내느라 얼굴이 지나치게 꽉 차 보였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어깨 아래 손가락이 조금 보였다.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브이는 아직 남아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매순간 사라지고 다시 낯선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다섯 시가 넘어갈 때까지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 나타나면 더 늦기 전에 온전한 모습을 한번 찍어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진을 나중에 보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런 얼굴을 하고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울 수도 있고 지워내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사라질 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는 게 좀 덜 고단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같은 이유로 하루하루가 더 지칠 수도 있겠다. 엄마나 아버지는 어느 쪽이었을지 궁금했다.
    사라지는 걸 붙잡아 두는 게 좋은 건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은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 두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순간 한꺼번에 잊는 게 좋을지. 내가 사라질 때 누군가 있던 자리에 붙잡아 주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때부터라도 내버려두는 게 좋을지. 엄마라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우리가 짐작한 게 얼마나 들어맞았을까.
    시장 사이사이엔 벌써 몇몇 알전구가 켜졌다. 야시장이 열릴 모양이었다. 선거유세를 하던 두 사람이 한꺼번에 시장 안으로까지 들어와 시끌벅적해졌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 틈틈이 징소리가 꽂혔다. 곧 남은 알전구까지 모조리 켜졌다. 셔터를 누르는 소리는 묻힐 법도 한데 주변 소리가 조금이라도 잦아들면 어김없이 도드라졌다. 이제는 찍히면 어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오늘 찍힌 사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파에 밀리기 시작하자 내가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건지도 헛갈렸다. 사람들은 점점 조밀해지더니 이젠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누군가 내 어깨를 짚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 사이 어깨에 올린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 싶은데 그마저도 힘들었다. 손은 어깨를 더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호두과자를 파는 곳을 지나니 좀 한산해졌다. 막 뒤를 돌아보려는데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았는데. 아주 근사한 곳을 찾아냈다.”
    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보니 선배가 있었다. 만나면 내가 먼저 어디 있었냐고 묻고 싶었는데 한발 늦었다. 오히려 내가 선배에게 이제껏 어디에 있었는지 설명해 줘야 했다. 선배에게는 내가 사라졌나 보다.
    선배는 나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얼마 걷지 않아 시장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가까운 데 출구를 두고 근처를 계속 헤맨 모양이었다. 꽹과리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새 해는 완전히 기울었다. 이젠 선배의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만 더 선명하게 들릴 뿐이었다.
    “여기 철도가 곧 없어질 거래.”
    “철도요?”
    “응. 동네 사람들한테 들었는데 이미 지난달부터 기차는 다니지 않는 모양인가 봐. 이것도 찍고 가자. 여기서 아주 가깝더라고. 철도까지 찍으면 충분하겠지?”
    목소리만 들었을 땐 선배가 아주 가까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같았다. 철도만으로도 뭔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려는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주변도 일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잠깐 선배의 얼굴이 드러났다 가뭇없이 사라졌다. 선배는 내가 아니라 엉뚱한 곳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막 밝아지는 순간 급히 시선을 내게로 틀었다. 선배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주변이 밝아지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가 연거푸 났다. 그때부터는 흙바닥과 선배의 얼굴이 수선스럽게 밝아지다가 다시 어두워질 틈도 없이 또 밝아졌다. 소리는 규칙적이지 않고 크고 작은 소리가 여러 겹으로 뒤섞였다.
    불꽃놀이였다. 모양이나 색깔을 생각할 틈도 없이 사라지고 또 다른 무늬가 하늘에 퍼지다가 금방 수그러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위를 보고 있었다. 몇몇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활짝 핀 불꽃을 놓쳐버릴 것이었다.
    나도 카메라를 꺼냈다. 선배가 찍으라고 할 게 분명해 보였다. 옆을 힐끔 보니 선배는 벌써 카메라를 꺼내 찍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히는 소형 카메라였다. 아까도 선배에게 카메라가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낯익은 전자음이 들렸다. 같은 소리가 옆에서도 났다.

*

    남아 있던 얼음이 녹아 컵에 물이 찼다. 언니는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그걸로 부족한지 준수 앞에 있던 컵까지 들었다. 색만 다르고 똑같은 컵이었다. 언니는 입안에 얼음도 몇 개 넣었는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무 소리도 없을 때보다는 좀 나은 것 같았다. 밖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어쩌면 한 번 더 모여야 할지도 몰랐다. 그럼 엄마는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어떤 쪽으로든 매듭을 짓는 게 나았다. 아까 했던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어서라도 같이 계시는 게 낫다니까…….”
    준수가 흐물흐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꽤 오랫동안 사라진 후 나타났을 때 냈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 말해 주고 있었다. 준수는 아버지가 자주 사라지는 바람에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다는 얘기도 꺼냈다.
    “그러니 죽어서라도 아예 떼어 놓고 자유롭게 해드려야지.”
    얼음을 다 깨물어 먹던 언니가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선 둘 다 이제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도 굽히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는데 언니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귓가에 “넌 왜 그런 얘기를 해서…….”라고 속삭였다. 딱히 힘을 주는 목소리가 아닌데도 단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두드러졌다. 얼음을 깨물어 먹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한쪽 귀가 서늘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엄마는 앨범을 꺼내 한 장씩 넘겼다. 혹시 앨범 사이에도 선 볼 남자 사진이 끼워져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다. 불쑥 “그럼 이 남자는 어떠니?” 할 것 같은 밤이었다. 아버지 사진이 나왔을 때야 나는 따지듯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럼 왜 엄마는 그런 사람이랑 결혼했느냐고. 부부 속사정이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은 별 탈 없이 살아온 부부인 줄 알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싫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건 또 뭔가 싶었다.
    “그래도 결국엔 다 살아져.”
    기껏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이 그랬다. 마흔쯤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엔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때 찍은 사진이 드물었다. 엄마는 몇 안 되는 사진을 아껴 가면서 봤다.
    “지금 보면 이때 아가씨였는데 그땐 왜 이렇게 늙었냐고 서러웠는지…… 다 살아지는데.”
    단칸방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을 보고서도 결혼했을 때나 계곡에 놀러 갔을 때 사진을 보고서도 돌아보면 결국 다 살아진다고 했다.
    나는 그게 어찌 됐든 그래도 결국엔 다 살게 된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좀 헛갈리는 구석이 있었다. 혹시 결국 ‘살아져’가 아니라 ‘사라져’인 게 아니었을까. 그걸로 버틸 수 있었던 건가.
    아버지 때처럼 너무 젊었을 때 엄마 사진을 써야 할까 싶었는데 엄마의 집에서 최근에 찍은 영정사진이 나왔다. 언니는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다 지나가는 말로 “넌 사진 찍는다는 애가 엄마는 한 번도 안 찍었니?” 했다. 그 질문이 내 몸을 헤집어 놓았다. 그때부터 헛갈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걸 얘기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건 사라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럼 누나는 매형 죽으면 옆에 안 묻히고 딴 데 묻힐 거야?”
    “지금 멀쩡히 살아 있는 매형 얘기가 왜 나와?”
    “말이 그렇잖아. 그렇게 부부로 엮이는 게 싫으면서 가족은 왜 만들어?”
    밖은 빈틈없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언니와 준수는 대답 없이 질문만 계속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사이사이 동시에 나를 보는 일도 없었다. 창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가로등이 켜졌다. 그래도 가장자리가 손바닥만큼 희끄무레해졌을 뿐 실내는 여전히 어두웠다. 이제 서로 표정도 알아볼 수 없었다. 엄마가 결국엔 다 살아진다고, 어쩌면 사라진다고 말했던 걸 얘기하면 문제가 좀 나아질까.
    앨범을 넘기다 외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을 때, 엄마는 “그래도 엄마랑 있을 때가 제일 좋았는데.”라고 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가족은 거추장스러운 게 아닐 수도 있었다. 단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딸로 남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 혼자 사실 때 외할머니 산소에 자주 다녀오셨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럼 혹시 거기를 염두에 두신 걸까. 이 얘기를 꺼내는 게 나을까.
    얘기를 하더라도 일단 형광등부터 켜야 했다. 벽을 더듬거리는 사이에도 둘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겨우 스위치를 찾았는데 막상 켜보니 베란다 불이 켜졌다. 남은 건 하나뿐이니까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언니의 것인지 준수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엄마 옆에 있는 걸 좋아할까?”
    스위치를 올리자 순식간에 주변이 환히 드러났다. 눈을 찌푸린 채로 가만히 서 있자 언니의 옆얼굴과 준수의 뒤통수가 드러났다. 둘은 말을 멈추고 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눈물이 조금 맺혔다. 깜깜해서 몰랐을 뿐 모두의 눈이 조금씩 붉었다. 아버지 때 그랬던 것처럼 길을 잃고 헤매던 눈물이 이제야 쏟아지려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언젠가 엄마가 말했던 ‘엄마 없으면 못 산다던 시절’로 막 돌아온 것 같았다.
    지금도 우리는 살아지고 동시에 사라지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카메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

    “가족사진도 찍어 둬. 어쩌면 가족제도도 곧 사라질지 몰라.”
    선배의 목소리는 터널 안에서 제멋대로 울려 어디서 말하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뒤에서 들리기도 하다가 옆에서 들리기도 했다. 어떨 땐 머리 위에서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 사이 내가 이미 늦었다고 했던 대답은 어둠에 묻혔다.
    안에 들어설 때만 해도 금방이라더니 터널은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게 마땅찮다 보니 한참을 걸은 것 같기도 하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도 같았다. 내가 선배를 따라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에서 선배가 따라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벽을 더듬는 촉감과 팔에 닿는 서늘함뿐이었다. 그래도 선배가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해 얘기해 주니 좀 나았다. 그때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두워서 선배 눈엔 제대로 안 보일 것이었다.
    민박집에서 잠깐 쉰 다음 일찍 일어나 철도와 투표하는 모습을 찍어 두면 작업이 끝날 것이라고 했다. 선배가 앞으로 사라질 게 또 뭔가 있는지 자꾸 물었다. 나는 이 터널이 어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대답 뒤엔 이러다간 우리도 사라질 거라고 했다. 선배가 호탕하게 웃더니 곧 터널이 끝날 거라고 했다. 웃음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일부러 크게 낸 웃음소리인지 아니면 울려서 그렇게 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퍼지던 웃음소리가 겹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앞이나 옆에서 함께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섬뜩해져 선배 옆에 바짝 붙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가 어디에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걸음을 빨리해야 선배랑 가까워질지 느리게 해야 가까워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선배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선배가 “여기야!”라고 했지만 여전히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막차도 이미 떠났고 택시를 잡기도 마땅찮아 민박집까진 걷기로 했다. 마냥 걸어가면 먼 거리지만 지름길로 가면 금방이라고 했다. 선배가 말한 지름길이란 게 곧 사라질 철도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만약 기차가 오면 어쩌죠?” 라고 물었지만 선배는 기차는 이제 다니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는 아무거나 찍어도 다 자료가 되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제대로 된 것을 빼놓고 있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어쩌면 앞으로 사라질 것은 특집으로 다루기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결국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면 그건 조금도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터널 안이 환해졌다. 이제 밖으로 나온 건가 싶었는데 단지 안이 밝아졌을 뿐 출구는 여전히 멀게 보였다. 그때 선배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플래시를 터뜨렸다. 내 모습이 드러났다가 금방 어둠에 숨었다.
    터널 안은 점점 환해지고 있었다. 빛은 내 뒤에서부터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림자도 급히 길어졌다. 누구의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 멀리, 하지만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분명한 기차소리만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힘껏 선배를 불렀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기차소리에 섞여서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선배는 또 어딘가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나타났을 때 내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나중엔 누군가 내 옆에서 함께 뛰고 있는 것 같았다. 기차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숨소리와 기차소리 사이로 틈이 생길 때마다 디지털카메라의 전자음이 뒤섞였다. 누군가 나를 찍었다면 왜 그랬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이런 나도 언젠간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사라지는 게 결국 살아지는 거라는 것도. 내게 누군가가 사라졌듯 누군가에겐 내가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서로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제야 사라진 것 중 미처 찍지 못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걸 못 찍었으니 계속 자료가 부족해 보였던 것이었다.
    다음에 모였을 땐 엄마를 어디에 모실지 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할 건지도 따져 봐야 했다.
    그 사이에도 기차소리는 줄기차게 커졌다.

===== 작가와 6문6답 =====
 

1. 우선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밝혀주세요.

  누군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빚을 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설 속 문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거나 그 배경이 아니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으로 떠나거나 그 인물이 아니라면 좀처럼 말을 붙이지 않았을 사람에게 싱거운 인사를 던질 때였습니다. 그쯤엔 소설을 쓰는 일이 그 빚을 조금씩 갚아 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걸로 조금이나마 빚을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엄마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인사가 막 도착한 기분이었습니다.

 

2. 이 작품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나요?

  처음으로 책을 내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보름 정도 춘천과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갔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키고 주말이 되면 모두 모여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두서없이 옛날 얘기가 오가다가 길게 침묵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신호처럼 짧게 목소리를 내면 그걸 시작으로 또 얘기를 나누던 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딱 한 번 농담을 주고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만큼은 뒤에서 할머니도 피식 웃은 것만 같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갈등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아마 그때 구상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농담은 살아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헛갈리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 글을 쓸 때 특별히 듣는 음악이 있다든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면요?

  작업은 작업실에서 하거나 도서관 열람실에서 하는 편인데 어디서든 음악을 듣지는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공간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할 때는 음악을 찾습니다. 자잘한 소음은 작업에 탄력을 주지만 의미를 품은 목소리는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가 있는 공간에서는 그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니 작업할 때 듣는 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목소리를 가려 줄 어떤 소리라고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얼마 전에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는데 최근까지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다양한 빗소리를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4.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줄거리 정도를 얘기해 주거나 막히는 부분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있지만 발표하기 전 소설 전체를 보여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변에 그럴 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 제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늘 고마운 일입니다 – 부끄럽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직 완성이 덜되었다는 얘기로 말을 돌렸는데 이제는 선명한 부끄러움에 대해 고백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5. 평생 또는 두고두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또렷한 윤곽을 잡고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 질문을 되새겨 보니 억지로 틀을 만들어 두고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글쎄요”나 “저도 궁금합니다” 정도로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다음날 저는 같은 질문에 또 다른 답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은 틀을 거두고 나서 성실하게 지켜보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아니면 바닥에 스며드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디론가 흘러가는지.

6. 지금 막 쓰고 있는 (또는 품고 있는) 작품의 예고편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거짓말에도 공식자격증이 있고 거짓말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생기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거짓말을 혐오하면서도 어느 순간 거짓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철거를 앞둔 건물 안에 사는 세 여자와 그들을 감시하는 또 다른 여자에 대한 것입니다. 서로 악다구니 써가면서 의심하고 눈을 흘기지만 한 명이라도 건물을 나가는 순간 철거가 진행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를 방에 가둬 두려는 사람과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하는 사람 사이를 오가며 서성이는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문장웹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