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물리학과 첨단기술 (2020.12.17) 블랙홀 정보손실문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저자약력 ------------------------------------------------------- 염동한 교수는 2011년 KAI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서강대학교, 교토대학, 국립대만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신진연구그룹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블랙홀 정보손실문제와 양자우주론 및 강한 중력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Black-hole Information Loss Problem: Past, Present,
and Future ---------------- ---------------------------------------------------------------------------------------- 이렇게 블랙홀은 오늘날 물리적 실재로 인정받고 있지만, 동시에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이 바로 이 블랙홀의 내부에서 모순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아주 흥미로워 보인다. 이 글에서는 블랙홀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정보손실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이 논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조망해보고자 한다.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 정보가 보존된다는 것, 또는 다른 말로 확률의 합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은 양자 역학의 유니터리성(unitarity)이라고 불리며, 양자 역학의 예측 및 검증 가능성을 담보한다는 의미에서, 양자 역학이 과학 이론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은 이러한 양자 역학의 유니터리성이 블랙홀에서는 위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1970년대 중반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일단 블랙홀이 중력 붕괴에 의해 형성된 뒤에는, 블랙홀의 질량, 각운동량, 전하량을 제외하고는 중력 붕괴를 야기한 천체의 모든 정보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너머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처럼 몇 가지 보존 물리량 이외에는 블랙홀을 구분하는 다른 물리량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무모 정리(no-hair theorem)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정보가 블랙홀 내부에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킹이 1975년 발표한 그의 기념비적 업적에 따르면, 블랙홀은 양자 효과에 의해 입자를 방출(Hawking radiation)하며, 따라서 블랙홀 자체가 유한한 시간 안에 증발해서 사라져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블랙홀이 증발을 한다면, 블랙홀의 증발은 사건 지평선의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보였으므로, 결국은 블랙홀의 질량, 각운동량, 전하량을 제외한 모든 양자 역학적 정보들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1) 만일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블랙홀은 정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을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information loss problem)라고 한다.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는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만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즉 양자중력이론이 만들어내는 미해결 문제의 하나로 우리에게 남아있으며, 우리가 어떤 시점에 정합적인 양자중력이론, 즉 이른바 궁극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완성하게 된다면, 이 이론이 정보손실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부정적으로 보자면, 즉 블랙홀에서 정보가 근본적으로 손실된다면, 중력을 포함한 양자 역학, 즉 예측 및 검증 가능한 이론으로서의 양자중력이론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으며, 자연은 근본적으로 예측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돈 페이지(Don N. Page)에 의하면, 정보손실문제를 최초로 주장한 호킹의 1976년 논문은 “중력 붕괴 과정에서 예측 가능성의 실패(Breakdown of predictability in gravitational collapse)”라는 제목이었는데, 사실 저널의 심사를 거치기 전의 원 제목은 “중력 붕괴 과정에서 물리학의 실패(Breakdown of physics in gravitational collapse)”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호킹이 본래 의도했던 의미였을 것이다. 정보를 나타내는 방법: 페이지 곡선 사실 정확히 말하면,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를 ‘정의’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으며, 이것은 각자가 선호하는 양자중력이론의 방법론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정보의 손실이 일반 상대론적 관점에서 특이점(singularity) 및 사건 지평선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보의 보존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공간 전체를 결정할 수 있는 초기 조건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코시 면(Cauchy surface)의 존재가 될 것이며, 따라서 특이점을 양자중력이론으로 해결하기 전까지는 정보손실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손실을 양자 역학적 얽힘(entanglement)의 사라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보의 보존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얽힘을 복원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실험적이고 실제적으로 구성 가능한 양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두 주장이 모두 뜬구름 잡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물리량을 실험적으로 측정해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일종의 보존되는 양인가?2) 이러한 혼란스러운 맥락에서 페이지의 1993년 논문은 지금까지도 블랙홀에서 정보의 방출을 기술하는 데에 근본적인 기준점이 되고 있다.3) 페이지는 정보를 정의함에 있어서, 그 전에 알려진 로이드와 페이겔스의 논문을 따라, 열역학적 깊이(thermodynamic depth)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원리적으로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느냐 아니면 정보를 전혀 인식할 수 없느냐 하는 것은, 그 상태의 볼츠만 엔트로피(Boltzmann entropy)와 폰 노이만 엔트로피(von Neumann entropy) 사이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엔트로피는 물론 양자 역학으로 기술되는 계에서는 원리적으로 잘 정의될 것이며, 전자는 후자보다 항상 크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4) 그리고 이 양자 상태가 완벽한 열평형 상태에 있다면, 즉 이 상태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5) 열역학적 깊이는 반드시 0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열역학적 깊이가 0보다 큰 값을 갖게 된다면, 이 상태에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양을 실험적으로 측정해야 할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원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정보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성 1: 정보가 손실된다. 즉, 정보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이 네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1. 가능성 1: 정보가 손실된다 2. 가능성 2: 호킹 복사가 정보를 담고 있다. 오늘날 다수의 끈 이론 학자들은 (최소한 점근적으로 반-드지터 공간(anti-de Sitter space)에서는) 정보가 보존된다는 사실 자체는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홀로그래피 원리(holographic principle)와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Anti-de Sitter/Conformal Field Theory correspondence)에 따라, 중력 현상에 대응되는 유니터리한 양자장론이 존재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 방향을 따르는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일반 상대성 이론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 자체도 많은 난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지평선 부근의 저에너지 현상에 대해 왜 플랑크 스케일의 고에너지 이론인 끈 이론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은 비국소적 대응관계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정보손실을 부정하는 인물 중 하나인 엇호프트는 끈 이론에 바탕을 둔 해결책에도 역시 반대하고 있다. 3. 가능성 3: 정보가 호킹 복사 이외의 다른 곳에 남는다 4. 가능성 4: 정보는 보존되지만 유한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이른바 계산적 복잡성(computational complexity)의 한계를 통해 유한한 계산 능력을 가진 외부 관찰자는 정보를 인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프레스킬(Preskill)을 포함한 일군의 물리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유효장 근사 원리가 어느 단계에서는 붕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성을 따르는 끈 이론 학자들 중 일부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경계면 등각장론의 관점에서 블랙홀의 내부를 구현하려고 하면, 등각장론의 입장에서 아주 복잡한 작용소(operator)를 고려해야 하며, 이것이 경계면 관찰자의 입장에서 계산의 복잡성에 의한 한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수정되어야 하는가? AMPS 논문을 따라 자연 법칙들 사이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보자.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순수 상태(pure state)로 거대 블랙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자. 거대한 블랙홀의 지평선 부근에서는 곡률이 작기 때문에 국소 유효 장이론을 쓸 수 있다고 하자. 여기에서 호킹 복사란 블랙홀 지평선 부근의 진공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론의 등가 원리에 따르면, 큰 블랙홀의 지평선 부근에서는 평평한 공간과 다른 특별한 일이 생길 이유가 없다(no-drama condition). 따라서 진공에서 생성된 입자는 오직 그 상대 반입자와만 서로 최대로 얽혀 있어야 한다. 초기 순수 상태가 유니터리하게 진화한다면(즉, 블랙홀이 증발하는 과정이 유니터리하다면) 계속 순수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고, 따라서 블랙홀과 호킹 복사를 양분된 계로 생각하면 그 둘의 얽힘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둘이 같다는 사실은 시간에 무관하다. 그 다음, 호킹 복사는 거대한 블랙홀에 대해 매우 작은 영향을 끼치고 단열적으로 배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앞의 가정을 따라 호킹의 계산이 그대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호킹 복사를 지속함에 따라 블랙홀의 면적은 감소하게 되는데, 블랙홀의 면적이 볼츠만 엔트로피에 비례한다고 가정하면, 호킹 복사의 얽힘 엔트로피(=블랙홀의 얽힘 엔트로피)도 어느 순간부터 감소해야 한다.12) 즉, 호킹 복사의 얽힘 엔트로피가 페이지 곡선을 따르게 되고, 페이지 시간 이후에는 얽힘 엔트로피가 감소해야 한다. 페이지 시간 이후에 얽힘 엔트로피가 감소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페이지 시간 이후에 방출되는 호킹 복사가 페이지 시간 이전에 방출된 호킹 복사와 이미 얽혀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얽혀 있던 입자들을 모으면 모아진 입자들과 나머지와의 얽힘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그렇다면, 페이지 시간 이후에 방출된 호킹 복사는 그 상대 반입자와만 최대로 얽혀있으며, 동시에 페이지 시간 이전에 방출된 입자와 얽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관찰자가 존재해서 호킹 복사가 (양자 역학에서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너무 ‘많이’ 얽혀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13) 이러한 논의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리들은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를, 즉 모순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14) 원리 1: 양자 역학의 유니터리성. 즉, 정보가 보존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중에서 어떤 자연 법칙을 틀렸다고 말해야 할까? 1. 양자 역학의 유니터리성: 정보의 보존 vs. 정보의 손실 2. 양자장이론의 특성: 국소성 vs. 비국소성 예를 들어, 서스킨드와 말다세나는 서로 얽혀있는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쌍들(Einstein-Podolski-Rosen pairs) 사이에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가 대응된다고 주장했다(ER=EPR 추측).17)18) 블랙홀의 경우에 이 가설을 적용하면,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가 (좀 더 정확히는, 페이지 시간 이전에 방출된 호킹 복사와 이후에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 반입자가) 서로 인과적 관계를 가지게 되어 블랙홀 상보성에 제기되었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끈 이론에서 이러한 추측이 동작하는 몇 가지 예를 제시할 수 있지만, 비섭동적인 효과가 있는 경우에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와 양자 얽힘 사이에 정확한 대응 관계를 말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19) 따라서 이러한 원리가 일반적인 블랙홀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근래에 말다세나 등에 의해 제안된 레플리카 웜홀(replica wormhole)및 엔트로피의 섬(island)에 대한 연구는 ER=EPR 추측의 ‘철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해주는 중요한 연구업적일 수 있다.20)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추측을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의 관점에서 본다면, 등각장론 쪽에는 국소적 인과율이 유지되지만 반-드지터 공간의 블랙홀에는 비국소적 현상이 있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 중력 이론에서의 인과율의 위반이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3. 일반 상대성 이론: 특이점을 제외하고는 항상 성립 vs. 특이점이
아니더라도 성립 안할 수 있음 그러나 만일 일반 상대성 이론이 지평선 부근에서 위반된다면, 확률은 낮더라도 그 효과가 블랙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21) 이러한 경우에는 방화벽의 효과를 이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방화벽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 없는 이상, 이 가정이 의미 있는 가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마수르(Mathur)는 지평선 부근이 이른바 솜털공(fuzzball)이라는 수많은 기하학적 구조의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장하였고, 이를 통해 정보손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22) 엇호프트는 지평선의 반대편을 일체화시키는 시공간의 위상 변화를 통해 지평선 내부를 변경하고자 하였다.23) 이러한 접근법들은 지평선 부근에서부터 일반 상대론의 정합성을 수정하려는 시도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적용 범위가 일반적이지 않거나 어떻게 이러한 구조들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구성적 설명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4. 엔트로피: 블랙홀의 면적에 비례 vs. 블랙홀의 면적과 상관없음 5. 정보를 인식하는 관찰자: 존재 vs. 부재 레플리카 웜홀과 얽힘 엔트로피의 섬 말다세나와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페이지 시간 이후에는 블랙홀 내부의 자유도 중에서 일부가 실제로는 블랙홀 외부의 자유도에 기여해야 한다. 이렇게 공간적으로는 블랙홀의 내부에 있지만, 엔트로피 상으로는 블랙홀의 외부에 기여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얽힘 엔트로피의 섬(island)이다. 기존의 기술에서는 얽힘 엔트로피의 섬에 해당하는 부분을 블랙홀의 내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얽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 섬을 블랙홀의 외부로 간주하면 얽힘 엔트로피의 감소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얽힘 섬의 존재는 한 차원 더 높은 공간에서 본다면 기존의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에서 잘 알려진 류-타카야나기(Ryu-Takayanagi) 공식과 같다는 것이 규명되면서,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7)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섬’이란 공간적으로 블랙홀의 내부에 위치해 있지만, 양자 역학적으로는 블랙홀의 외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 내용에 대한 한 가지 설명 방법은 다음과 같다. 유클리드 공간에서 얽힘 엔트로피를 경로 적분으로 계산하면, 로렌츠 공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이른바 레플리카 공간(replica geometry)이 새로운 안장점(saddle point)으로 기여하게 되는데, 이 항들이 블랙홀의 내부와 외부를 유클리드 웜홀(레플리카 웜홀)을 통해 이어준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ER=EPR 추측의 철학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일종의 비국소적 효과에 의해 블랙홀의 내부에서 외부로 정보가 전달될 수 있고, 최종적으로 호킹 복사가 성공적으로 정보를 담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설명이 일반적인 블랙홀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마롤프와 막스필드의 연구에 의하면, 레플리카 웜홀을 사용해서 설명하는 방식은 정보의 보존을 설명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정보의 보존은 파동 함수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파동 함수 일부에 대한 것, 즉, 초선택(superselection)에 의한 결과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28)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접근 방법이 오히려 파동 함수 전체의 유니터리성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즉 파동 함수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력 이론에서 로렌츠 공간이 아니라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경로 적분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다. 얽힘 엔트로피의 섬과 관련된 연구 결과는 얽힘 엔트로피 자체를 넘어서 블랙홀의 상태 함수는 어떻게 주어지는가와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알려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정보손실문제의 미래 필자 중 한 명(이상헌)은 원리 1이나 2 또는 3을 부정하는 대안을 선호한다. 양자 역학은 측정의 문제와 연관 지어 보면 여전히 불완전해 보이며(관측자는 고전적인가, 아니면 양자 역학적인가? 양자 역학은 다중 우주의 분화를 가져오는가? 등등), 등가 원리는 국소적 및 고전적 개념이기 때문에 대체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어떤 원리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물리 이론 체계는 예측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순되는 상황을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대체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엇호프트와 같이 양자 역학도 수정해야만 하지 않을까? 필자 중 다른 한 명(염동한)이 지지하는 대안은 정보를 인식하는 관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가능성 4를 따르는 것, 또는 원리 5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인식하는 관찰자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정보가 보존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주 전체를 기술하는 파동 함수는 정보를 보존하지만, 우리(준고전적 관찰자)는 파동 함수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정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파동 함수 전체를 보는 전지한 관찰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우리는 정보의 손실을 사실상 경험하게 될 것이다.29) 근래에 끈 이론 연구자들이 발견한 한 가지 중요한 초점은, 정보의 보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동 함수의 비섭동적 효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섭동적인 효과가 반드시 섭동적인 호킹 복사에 반영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비섭동적 효과가 준고전적 관찰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해서는 사실 좀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30) 향후 연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는 양자중력이론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이며, 또 이 문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양자중력이론에 많은 진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향후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와 양자중력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 호킹 복사, 또는 이와 유사한 효과, 예를 들면, 언루 효과(Unruh effect)는 실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것은 정보손실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은 되지 못하겠지만, 호킹 복사와 같은 굽은 시공간에서의 양자장이론을 검증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근래에 모사 블랙홀(analog black hole)과 관련한 몇 가지 실험들이 제안 및 실행되고 있고, 여기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몇 가지 문제를 극복하게 된다면, 양자중력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강력한 실험적 기반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정보손실문제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 비섭동적 효과는 관찰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마도 섭동적 효과, 즉 호킹 복사만으로는 블랙홀의 정보손실문제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섭동적 효과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호킹 복사에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호킹 복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는가? 그리고 우리와 같은 준고전적 관찰자는 섭동적 및 비섭동적 효과를 모두 볼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중의 일부만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바로 앞의 질문과 깊은 관련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 특이점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이 질문은 블랙홀의 내부로 들어간 관찰자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과 관련된다. 반-드지터/등각장론 대응이 블랙홀의 유니터리성을 설명해준다고는 하더라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점근적인 관찰자가 정보의 보존을 관찰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 관찰자(유클리드 시간이 아니고 로렌츠 시간을 경험하는 관찰자)가 무엇을 경험할 것인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상대론이 옳을 것인가, 아니면 일반 상대론이 지평선 부근에서 위반될 것인가? 특이점 부근에서는 관찰자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고전적 시공간인가, 아니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파동 함수인가? ◀ 일반 상대론, 양자 역학은 어디까지 사용 가능한가? 일반 상대론은 고전 이론이므로 언젠가는 양자 역학적 체계로 대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양자 역학도 새로운 역학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상과는 다르게도, 그리고 놀랍게도 양자 역학은 매우 정교한 이론이어서, 근본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아닌 이상, 간단히 수정할 수는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플랑크 스케일 근처에 이르기까지 양자 역학은 성립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면은 일반 상대론의 다양한 변형 가능성과 대비되는 양자 역학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면 때문에 끈 이론 물리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론 물리학자들은 일반 상대론의 수정을 좀 더 선호한다. 하지만 엇호프트와 같이 양자 역학에 대한 근본적 수정을 추구할 수도 있다. 정보손실문제가 양자 역학의 수정을 요구할 것인가? 이 질문은 아마도 양자중력이론의 완성과 연결되는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나오는 글 각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