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서문

오늘날 여성운동에서 가장 오랜 기간 널리 퍼진 이론은 십중팔구 가부장제 이론이다. 가부장제 이론의 외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통된 관념이 있다. 바로 남성 지배나 성차별은 단지 자본주의의 산물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뒤로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이 관념을 통째로 거부하는 주장을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러나 각종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 차별과 가족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계급에 따라 차별이 얼마나 다른지를 다루는 개념도 없다. 그저 이런저런 형태의 “가부장제”가 여성 차별의 근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서구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 즉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사회나 소련, 중국, 쿠바, 동유럽 등 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에도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부장제 이론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가부장제 이론은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 여성운동은 가부장제에 맞서 싸우는, 서로 분리된 투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여성운동 내에 널리 퍼져 있다. 투쟁을 분리하자는 논리는 이제 미래 사회에서 각 성의 사회적 발전을 분리하자는 데에로 이어진다. 물론 가부장제 이론을 옹호하는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부장제가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차별한다’는 의미라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부장제를 극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필자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자 한다. 필자는 가부장제 개념을 거부한다. 가부장제 개념은 기껏해야 그저 여성 차별을 뜻하며 혼동을 일으키는 용어일 뿐이고(이런 때조차 여성 차별을 설명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물질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완전히 관념론적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성 차별로서 ‘득’을 보는 쪽은 남성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필자는 가족이 어떻게 변해 왔고, 그와 함께 여성들의 자기인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속되는 여성 차별이 ‘남성들의 공모’(또는 남성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동맹)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곳에서 계급사회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임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이어서 필자는 이른바 ‘사회주의’ 나라들이 사회주의와 무관하고, 마찬가지로 여성해방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던져지는 문제제기 하나를 다루고자 한다. 엥겔스 등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가족은 부르주아 가족과 달리 사유재산이랄 것이 없으므로 사라질 것이라고 본 문제이다. 이 생각은 명백히 틀렸다. 그러나 필자는 가부장제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가족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는 보지 않으므로, 무엇 때문에 가족이 계속 존속하는지를 세밀히 살펴볼 것이다.

가부장제 이론의 여러 형태들

가부장제 이론의 특징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부장제 이론이 여성운동의 이러저러한 부문에서 애용되는 이유는 유물론적 분석보다는 “느슨한 감정”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부장제라는 낱말의 정의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부장제는 아버지(“가부장”)가 가족 내의 여성뿐 아니라 어린 남성들마저도 지배하는 특수한 사회를 가리킬 수 있다. 이런 사회는 부분적으로라도 가내 생산에 기반을 둔 농업·수공업 생산에 의존하는 사회다. 가부장의 권력은 생산된 부와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가부장제 용어는 대체로 이런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심지어 용어를 가장 느슨하게 쓰는 가부장제 이론가들조차 오늘날 사회가 농업 사회는 아니라고 보며, 그들의 관심사도 농업 사회가 아니라 오늘날의 여성 차별을 다루는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부장제 이론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첫째, 가부장제를 순전히 이데올로기적 용어라고 보는 유형이다. 예컨대 줄리엣 미첼은 다음과 같이 두 영역을 엄격히 구분했다. “우리는 두 개의 자율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 양식이다.” 1 샐리 알렉산더와 바버라 테일러도 《가부장제 이론을 옹호하며》라는 책에서 비슷한 주장을 폈다. 2

그런데 경제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이렇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모름지기 사회의 경제적 토대와 그 사회에서 형성되는 사상은 연관성이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둘을 각각 자율적인 영역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일찍이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역사를 사상들의 지배나 교체의 결과로 보면 사회 발전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왜 특정 사상이 지배적 사상이 되는 것일까? 왜 지배적 사상이 바뀔까?

여성의 지위가 (남성 우월적) 신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종교적 관념을 거부한다면, 인간과 세계의 관계, 그리하여 인간 상호 간 관계 속에서 인간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물질적 조건들을 찾아야 한다. 다른 사회 현상의 기원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 차별의 기원도 이 물질적 조건들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차별 정당화 사상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맞서야 할지를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1845년에 쓴 다음의 말은 다른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 차별을 분석할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의 인간에 접근할 때 그 인간이 말하고 상상하고 인지한 것으로부터 또는 그 인간에 대해 서술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인지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활동하는 현실의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인간의 실제 생활 과정을 기초로 하여, 그 생활 과정을 반영하고 반복하는 이데올로기의 발전을 설명한다. …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 이데올로기 일체와 그 이데올로기들에 상응하는 의식 형태들은 더는 자립적 겉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역사도 없고 발전도 없다. 자신의 물질적 생산과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는 인간만이 자신의 현실과 함께 자신의 사고와 그 사고들의 생산물을 변화시킨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3

이와 달리 가부장제를 “이데올로기 양식”으로 보는 관점은 사상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수많은 남녀 노동자들의 일상적 관심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물질적 착취에 맞선 투쟁과 관계 없는 것이 된다. 그 대신 알렉산더와 테일러가 주장했듯이, 사회 변화와 무관하게 사상을 바꾸고자 하는 문화적 투쟁이 돼 버린다. 이로부터 여성운동 자율성 사상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사상이 경제적 착취와 무관하다면 여성 차별에 맞서는 투쟁도 자율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 일부 여성들은 이런 모순을 인식하고는 유물론적 가부장제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남성이 (모두) 여성 차별로 득을 보는데, 그것은 양성 간 근본적인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여기에 가부장제의 토대가 있다는 것이다. 로버타 해밀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페미니스트의 분석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주장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 지배 여성 종속 시스템으로 규정되는 가부장제 양식이다. 그러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 저먼] 양성 간 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하며, 자체의 역사적 토대를 제공한다.” 4

크리스틴 델피는 《주적主敵》이라는 책에서 급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유물론적 주장을 펼친다. 5 하이디 하트만도 마르크스주의 범주들을 사용해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6 필자는 하트만의 주장을 상세히 살피고자 한다. 하트만류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인다면 “가부장제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모두 실패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가?

하트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가부장제는 “물질적 기초를 가진 남성들 사이에 형성된 일련의 사회관계이다. 이 관계는 위계적이지만,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도록 해 주는 남성들의 상호의존이나 유대를 확립하거나 창출한다.” 하트만은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한다. “가부장제가 발 딛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질적 토대는 남성의 여성 노동력 통제이다. … [이는 ― 저먼] 가족 내 육아뿐 아니라, 남성이 여성 노동을 통제하게 해 주는 사회 구조 일체를 기초로 한다.” “그 통제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생산적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제약함으로써 유지된다.” 7

여성이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남성들이 자본과 동맹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남성이 자본과 동맹을 맺는다는 증거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데,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응해 보호입법[여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광산업 등 일부 산업에서 여성 고용을 금지하는 법]과 가족임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트만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남성 노동자들이 보호입법과 가족임금을 위해 싸운 것은 여성을 집안에 묶어 놓아 자기 뒷바라지를 시키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득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가내 생산이 붕괴했고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도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노동계급의 재생산에 재앙적 악영향을 끼쳤다. 유아 사망률이 정말이지 끔찍한 수준으로 높아졌는데,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보여 줬듯이) 어머니들이 집 밖에서 아주 긴 시간 동안 노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이 서로를 돌봐야 했다. 보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조용히 시킨다며 독주나 아편을 섞은 약물을 먹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기계를 다룰 수 있을 정도 나이가 되면 공장 생산에 투입됐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노동과 노동자를 대거 밀어내며 등장한 기계는 곧 임금노동자를 늘리는 수단으로 변모했다. 기계는 노동자 가족의 구성원들을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모두 자본의 지배 하에 밀어넣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묘사한 것처럼 초기 공장의 현실은 참으로 끔찍했다. 8 공장 시스템이 도입되며 전前 자본주의적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 구성원이 모두 임금노동자가 됐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렇게도 잔혹했지만, 무산자無産者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남녀가 평등을 이룰 수 있는 기초를 놓았다. 남녀 노동자 모두 임금노동에 기대야만 살 수 있었고, 남성은 가산家産을 모두 잃었다. 엥겔스는 바로 이 점[재산 소유 여부]이 부르주아 가족과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차이라고 봤다. 노동계급 가족은 사라지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이 점에서는 엥겔스가 옳았다.

그러나 엥겔스는 공장제 생산이 노동자 재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선진적인 공장제 생산이 도입된 맨체스터에서는 첫돌 미만 영아가 10만 명당 2만 6125명 꼴로 사망했다. 9 이는 산업화되지 않은 몇몇 지역들의 세 배에 달하는 비율이었다. 지배계급 중 장기적 안목을 지닌 이들은 미래에 공급돼야 할 노동력이 파괴되고 있음을 걱정했다.

바로 이런 조건 하에서 보호입법과 가족임금 요구가 등장했다. 이 요구는 자본주의의 새 필요와도 꼭 맞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삶, 안전한 임신과 출산, 자녀의 건강, 청결한 집을 바라는 노동계급 남녀의 실질적 관심사와도 맞닿아 있었다.

하트만 같은 가부장제 이론가들은 남성이 자본과 공모해 여성을 몇몇 직종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숙련 수공업 노동자들은 노조를 이용해 자신들의 업종에서 여성들을 밀어냈다. 그런데 여성만이 배제 대상인 것은 아니었다. 미숙련 노동자 자녀와 이주민 자녀도 여성 못지 않게 견습직을 얻기가 어려웠다. 즉, “무경력자”들도 배제됐다. 이를 하트만처럼 “백인 남성 우월주의”라고 하는 것은 가부장제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시켜 우스꽝스러울 지경으로 만드는 일이다. 여성과 이주민뿐 아니라 대다수 “내국인” 노동자도 차별당했으므로, 차라리 “백인 숙련 남성 우월주의”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

게다가 여성을 배제한 가장 중요한 영역 중 일부는 노조가 약하거나 없어서 그 노동자들이 누구를 배제하네 마네 할 처지가 아니었다. 여성이 특정 산업에 고용되는 것을 막은 합법적 배제는 부르주아 의회가 시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남성 노동자들이 제기한 대안이 있었을까? 첫째, (남성) 노동계급은 하트만의 가정과 달리 매우 잘 조직돼 똘똘 뭉친 집단이 결코 아니었다. 대다수 노동자는 미조직 노동자였다. 차티스트 운동의 쇠퇴 이후 오랫 동안 노동자들은 일반적 성격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여성 차별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포함해 자본주의의 관념과 사고 틀을 받아들였다. 다른 작은 요구를 내걸고 싸우지 않는 노동자들이 육아의 사회화 같은 큰 요구를 내걸고 싸우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둘째, 당시 노동계급 여성에게는 위험하면서도 잦은 출산이 문제였다. 오늘날 사실상 모든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혹은 아예) 낳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에게 피임은 (아무리 부적절한 방식일지라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성행위 절제 말고는 잦은 임신(흔히 원치도 않는 임신)을 평생 피할 방도가 없었다. 노동계급 남녀 모두에게 출산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당시 상황에서 남녀 노동계급은 여성이 보호받을 수 있기를 원했다. 이런 설명이 왜 여성이 결혼 후 공장을 떠났고 왜 남성이 가족임금을 받게 됐는지를 남성 공모론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게 말해 준다.

물론 보호입법과 가족임금 도입이 여성들이 종속적인 사회적 지위를 극복하는 데 타격을 입힌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평등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이 가능성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여성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집안에 갇혀 원자화됐다. 여성이 할 일은 남편과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여성은 재정적으로 독립적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상적 가족’이 노동계급 여성 모두의 현실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노동계급 여성들은 언제나 임금노동에 종사했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사상은 가족의 신성성을 선전하고, 부르주아 가족의 정형定型을 노동계급 가족에 투영해, 노동계급 가족을 재생산 유지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그리고 노동계급 남녀는 자기 개인의 현실과 어긋나더라도 부르주아 가족의 정형을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다수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오늘날에조차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은 많이 약화됐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 여성이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피임법 개발이나 여성 고용 증가 등의 효과에 힘입어 상당히 개선됐다. 이처럼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성 차별을 불가사의하게도 결코 변하지 않는 남성 우월적 이데올로기가 낳은 결과로 보는 주장은 반박된다.

하트만은 남성들이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 득을 본다고 주장하며 “누가 여성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보는가?” 하고 묻는다. [당시 여성을 집안에 묶어 두는 조처가 시행된 것은] 해당 산업의 노동조건이 다음 세대 노동자를 창출하는 데 해로웠기 때문이다.(직접적으로는 임신부가 일을 하다 태아가 해를 입을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여성이 너무 오래 일해 아이를 제대로 사회화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을 공장에서 배제한 추진력은 “가부장적 남성”이 아니라 자본의 장기적 필요라는 관점에서 나왔다.

하트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가족임금 ― 자신과 가족을 모두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을 남성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 ― 으로 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들이지만 남성도 확실히 득을 본다. 남성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집안에서 [여성의] 사사화私事化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그 서비스의 내용과 수준은 계급·민족·인종에 따라 다양하지만, 남성이 수혜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남성은 사치재 소비, 여가시간, 사사화된 서비스 면에서 여성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누린다.” 10

물론 여성들이 집안에서 육아와 가사노동의 큰 부담을 진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의 노동으로부터 “득을 본다”고 할 수 있을까? 노동 분업은 결국 남성과 여성이 공장에서든 집에서든 서로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용접이 가사노동보다 쉬운 일이다 힘든 일이다 하는 식으로 보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이고 측정 불가능한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여가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더 엄밀한 의미의 노동시간에 맞춰 노동하듯이 더 사회적인 경향(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축구를 하는 것처럼)이 있으며, 더 엄밀한 의미의 여가를 보낸다. 그러나 남성의 여가 시간이 더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저 남성과 여성의 여가가 다를 뿐이다.

정의상 가사노동은 공장이나 사무실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부과하는 속도에 따라 일하는 노동이 아니다. 가사노동은 특정 시간 집중적으로 일한 뒤에 다음 번의 업무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사노동은 공장에서 하는 노동과 달리 얼마만큼의 노동이 투입됐는지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 단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공장 노동이든 가사노동이든 둘 다 몸을 크게 갉아먹는 일이라는 점이다. 공장에서 일하다가는 직업병에도 걸리고(이 때문에 예를 들어 만성 기관지염 같은 질병은 가정주부보다 남성 노동자가 훨씬 더 많이 앓는다), 심각한 부상도 당하고, 급성 피로에도 걸리고, 흔히 일찍 죽는다. 다른 한편 가정주부는 그들대로 의기소침, 고립감, 불안증 등 의사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런저런 질병에 걸린다. 가정주부들이 가장 불리한 점은 남성에게 착취받는 것이 아니라 원자화돼 있고 집단적 행동에 참여하지 못해 체제에 맞서 싸울 자신감을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남성 노동자가 본다는 ‘득’이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때는 “남성은 노동자” 여성은 “가정주부”라는 노동 분업의 전형이 깨질 때이다. 기혼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있지만, 많은 여성들은 직장에서 하루 종일 노동하면서도 여전히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여성들은 가사노동도 겸해야 하므로 노동력을 회복할 시간이 남편들보다 훨씬 적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조차 남편이 얻는다는 이득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사노동에서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은 육아 관련 일들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에서 큰 “기생충”은 육아다. 그러나 여성의 육아가 남편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그 덕에 미래에도 잉여가치를 얻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공장과 사무실에서는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집에서는 잉여가치의 미래 원천을 재생산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남성 노동자들이 지는 하나의 부담[임금노동]을 작은 일로 보면 안 된다.

요컨대 남성들이 여성의 가사노동에서 득을 보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득을 보는 것이다), 남성과 자본이 공모해 여성을 경제적 생산으로부터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대다수 선진국의 여성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노동한다. 여성이 하는 일은 남성이 하는 일과 다르고, 이런 면에서 성별 노동 분업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임금보다 훨씬 적다. 이는 여성들이 (대체로는) 여전히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고(수십 년 전보다는 덜하지만), 직장에서 일하더라도 육아의 주된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는 기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의 직업 구성은 남성들의 공모보다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자본주의 발전이 어떤 상태(특히 서비스 부문의 팽창)에 있었느냐와 더 관련 있다. 여성의 직업 구성과 이주민 남녀 노동자의 직업 구성을 비교하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두 집단 모두 (주조 공업 같은 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청소, 운송, 출장 음식 서비스업, 경공업, 식품 가공업 등의 업종에 집중돼 있다. 이는 두 집단이 비슷한 시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일자리가 편중돼 있는 것은 여성이 가족에서 하는 역할 때문이 아니다. 여성의 일자리가 모성motherhood이나 가사노동을 반영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완두콩 통조림을 만드는 일은 집안일의 연장이 아니다. 은행 창구, 타자, 문서 정리, 전화 교환, 현금 출납 업무도 마찬가지다.(사무실에서 특권층 엘리트의 비서만이 (남성) 임원의 아내 역할을 대신한다. 하지만 사무직 노동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또한 여성들이 대규모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이유가 현재의 경기침체 때문은 아니다. 하트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성 실업이 위기로 여겨지지 않은 것은, 그것이 남성 지배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 1930년대 대규모 실업에 대처하는 방식의 하나는 여성을 모든 부문의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이었다. 한 가구당 한 개의 일자리만 있었고, 그 일자리는 남성이 차지했다.” 11

이건 완전히 틀린 말이다. 1930~1940년 미국의 노동을 연구한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여성들은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임금노동에 종사했다. 12 새뮤얼 곰퍼스 같은 노동조합 관료 등 몇몇 남성들은 이와 다른 주장을 했지만, 많은 여성이 임금노동에 종사한 것은 경제 위기의 영향을 반영한 결과였다. 대불황에 빠져 있던 독일도 비슷했다.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기혼 여성들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종용했지만, 전체 노동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928년 35.3퍼센트에서 1932년 37.3퍼센트로 상승했다. 이것은 기혼 여성 고용이 증가한 덕분이었다. 13 남성 노동자들이 전통적 산업에서 쫓겨나면서 여성들이 얼마를 받든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물론 자본이 친여성적이고 반남성적으로 바뀌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 경향이 뜻하는 바는, 자본이 여성이 있을 곳은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여성에게 저임금, 낮은 노조 조직화,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가부장제 이론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자본과 남성이 실제로 동맹을 맺고 있다면 직장에서 쫓겨난 여성 노동자들의 자리를 실업자가 된 광원이나 금속 노동자나 항만 노동자가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은 변하지 않는가?

남성 지배는 사회 변화와 무관하게 늘 있었다는 것이 가부장제 이론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지속될 것이고, 가부장제에 맞선 투쟁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이론에서 이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로 환원된다. 이 주장의 논리적 결론은 남성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쉽게 반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국에서 그다지 영향력도 없다.

이보다 영향력 있는 주장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서로 다른 두 세력이 여성에 대항해 동맹을 맺고 있다고 보는 하트만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다. 하트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 풋내기인 자본으로선 대적하기 힘든,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해 온 가부장적 사회 세력의 강력함과 그래서 자본이 이 세력에 순응해야 할 필요성을 과소평가했다.” 14 하지만 이 주장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가족이 변함없이 고스란히 자본주의로 이어졌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계급사회에는 노동과 가족이라는 두 생산양식이 있다는 하트만의 전체 주장의 일부다. 여기서 노동은 ‘생산양식’이고, 가족은 ‘재생산양식’에 해당한다. 하트만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하 《기원》) 초판 서문을 인용한다. 15 “역사에서 규정적 요소는 … 직접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 한편으로는 생활수단, 즉 의식주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의 생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그 자체의 생산, 즉 종족의 번식이다. 특정한 역사 시기의 인간들이 생활하고 있는 사회조직은 이 두 가지 생산에 의해 규정된다.”

하트만은 이 두 ‘양식’을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본다.(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 생산만을 생산양식으로 본다고 비판한다.) 또한 “생산의 한 측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다른 측면에서 일어나는 변화 사이에 필연적 연관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16 달리 말해, 생산’양식’은 재생산양식과 무관하게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폐지돼도 가부장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항상 이와 상당히 다르게 주장해 왔다. 엥겔스는 《기원》 서문에서 계급사회가 발전할수록 두 양식이 공존할 가능성은 줄어들며, 결국에는 “가족관계가 소유관계에 완전히 종속된 사회”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17 자본주의가 하나의 총체로서 세계 체제로 발전하면서, 가족을 포함해 전자본주의 구조들을 모두 집어삼키고 변화시켰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의 성격도 바뀌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가족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행은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낡은 생활양식과 오랜 가내 생산방식이 파괴됐고, 여성이 남성에게 평생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무너졌으며, 이것들이 일반화된 임금노동으로 대체됐다. 물론 생활의 재생산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가족은 역사가 흘러도 계속된다. 생물학적 과정은 여전히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생산의 사회적 관계는 완전히 바뀐다. 가족의 새로운 형태는 지배계급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창조된다. 자본주의가 창출한 새로운 가족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주장하는 것은 물질적 조건이 사회의 사상이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실라 로보섬이 자본주의 가족은 봉건적 생산양식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양식 내의 또 다른 생산양식”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했다. 18 물론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잔재가 자본주의에서도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이전과 똑같지는 않다. 군주제는 봉건제의 잔재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완전히 바뀌어 이전에 했던 구실을 더는 수행하지 않는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예전과 똑같아 보일지라도(그런지도 의문이지만) 가족의 역할·기능과 그 기반은 자본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 가족을 통한 재생산은 별도의 양식이 아니라 자본주의 상부구조의 일부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가 폐지되면, 즉 자본주의 사회가 혁명적으로 전복되면 자본주의 재생산 체제인 가족도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하트만은 “사회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더라도 여전히 가부장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계급 사회의 철폐와 함께 이뤄질 육아와 가사의 사회화는 자본주의 가족의 물질적 토대가 파괴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 이후에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러시아 노동계급이 이런 일들을 추진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 혁명과 내전은 남녀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좇아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노동계급 투쟁이 실패하면서 끝내 러시아 혁명은 패배로 끝났다. 이로 말미암아 여성의 지위 또한 심각하게 후퇴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초기 몇 년 동안 낡은 사회를 혁명적으로 전복한 덕분에 평등한 노동, 가사노동의 사회화, 훨씬 자유로운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힐끗 볼 수 있었다.

이른바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여성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부장제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축적에 기반을 둔 사회가 육아의 사회화에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 대신 여성들이 짊어진 부담은 서구의 여성만큼이나 크다. 탁아소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널리 퍼진 육아 방식은 할머니에게 의존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쓰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이런 방식들에 자본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익숙한 얘기 아닌가? 이른바 ‘사회주의’ 나라들이 서구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낫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면 가부장제 이론마저 받아들이게 된다. 그 나라의 여성들이 불평등을 겪는다면 그것은 경제체제가 아니라 남성들 때문이라고 볼 것이니 말이다.

가족이라는 재생산 제도는 역사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 발전에 따라 변화해 왔다. 그뿐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도 가족은 고정불변이 아니었다. 20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가족은, 무산자無産者인 자유 임금노동자 계급을 창출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이 변화는 남녀 관계를 평등하게 바꿀 잠재력을 창출했다. 엥겔스가 여성해방과 관련한 많은 논쟁적인 글들에서 지적한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공장 체제가 지배적 생산 형태가 되기 전인 자본주의 초기의 가내 공업 체제에서는 남녀 노동자들이 공통의 생산자로서 일했다. 이 시기는 결코 황금기가 아니었으므로 이상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여성들은 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남성의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런데 공장 체제가 등장하면서 개별 임금노동자들은 더는 자신의 작업을 통제할 수 없게 됐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생하게 묘사했듯이, 노동계급의 재생산 체제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 21

그리하여 보호입법 가족임금과 함께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개선됐다. 이것들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지만, 노동계급 남녀 모두가 여성이 공장에서 떠나는 것을 반긴 것도 사실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족은 다시 한번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 커지고, 피임과 합법적 낙태의 도입 등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역시 증진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태도들이 생겨났다. 결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혼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남녀 모두 결혼 제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결혼이 삶에서 필수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재생산을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을 이룬 상황에서 여성이 파트너를 한 명 이상 만날 (또는 독신 가정이 증대하는 것으로 봐서 한 명도 없을) 가능성이 생겨났다. 22

동유럽을 포함해 거의 모든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출산에 바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주는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옛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특정 산업들이 팽창하면서 남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산업 중심지로 이주해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 수요를 채운다. 이런 변화는 가족에 대한 사상을 포함해 전통적인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족은 여전히 숨막히고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곳이다. 여기서 가족 구성원들이 사회적 태도와 역할을 배우고 가르치며, 편견과 낡은 가치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가족은 자본주의의 필요에 맞게 변화하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을 사라지게 하려면 가족 밖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가족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그러면 오늘날 가족은 왜 유지되고 있는가? 남성의 물질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가족이 유지되는 데에는, 여러 부차적인 요인들 외에도, 두 가지 근본 요인이 있다.

첫째, 우리는 가족의 유지와 결부된 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의 노동력과 미래 세대의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데서 가족이 하는 구실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이 풍부히 다룬 바 있다. 23 가족임금(오늘날에는 가족임금으로는 가족의 재생산을 감당할 수 없어서 국가의 복지급여와 여성들의 파트타임 노동을 통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 할지라도)과 가내 무급노동 덕분에 재생산 비용이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수십여 년 동안 경제적 팽창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가족이 수행하던 경제적 기능이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대체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아이린 브뢰겔이 잘 지적했다시피, 가사와 육아가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임금노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래서 여성을 모두 “자유롭게” 하여 자본을 위해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자본주의는 총잉여가치를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24 그러나 재생산을 이런 방식으로 재조직하기 위해서는 새 보육 시설을 짓고 주택 공급을 완전히 재편하는 투자에 엄청난 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지금과 같이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체제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특히 실업자인 산업예비군은 체제의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가족과 여성 차별이 계속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어머니로서 그리고 양육자로서 여성이 맡고 있는 역할이 그들의 전 생애에 아로새겨져 있다. 파트타임 노동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서 파생된 문제다. 임금이 불평등하고 대체로 낮은 이유는 여성을 가족 부양자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삶은 시작부터 남성과는 다르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모성과 결혼은 여성이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성취로 여겨진다.

이론상으로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육아와 그 많은 가사노동을 다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재생산이 개인에게 떠넘겨지고 성별 노동분업이 엄격한 데다가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은 현재의 세계에서 대다수 가족에게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이 때문에 집에 머물러야 할 사람이 여성인 ‘합당한 이유’가 생기며, 악순환도 계속되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에서 가사노동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 즉 남성이 ‘가정주부’의 역할을 맡는 것은 여성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숙련 노동자여서 남성과 비슷하게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경우에도 여성 불평등에 바탕을 둔 사회의 사상들에 맞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그와 같은 역할 분담은 순전히 공상적 이상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이 지닌 물질적 중요성은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통해 강화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들이 모두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지위에 계속 두고 싶어 하는 남성 우월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그런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오히려 가족은 이 체제를 결속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접착제 기능을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발전의 단계마다 피착취자들을 자본주의에 묶어 둘 구조들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동학이 새로운 구조를 요구하게 되는 그 다음 발전 단계에서도 계속된다. 가족은 이런 구조들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 통합돼 있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이용한다. 즉, 집에서 고립돼 산업 생산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더 넓은 사회적 집합체로부터 단절된 채로 있는 가정주부는 ‘사회에서 각자가 맡은 자리’라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사상을 더 잘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남편에게 의탁하고 있는 가정주부는 모든 사회 변화가 가족과 그 구성원들의 안위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그 구조는 다음과 같은 방식에도 의존한다. 즉, 남성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의 안위까지 걱정하기 때문에 파업이나 점거 또는 반란에 참가하기를 주저한다. “가족 수호” 슬로건은 노동 대중을 현상 유지에 머물도록 하는 슬로건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과거의 가족제도와 연관된 구조에서 일부 요소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거대한 압력이 없을 경우에는 그 요소들을 포기하지 않는다.(예컨대 경쟁국으로부터 자국을 지킨다며 수백만 명 규모의 군대를 확보할 필요가 이제는 없으므로 낙태금지법이 더는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 법을 폐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요소들은, 비록 핵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라도, 노동자들을 오늘날의 사회에 결속시키는 구조를 허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오랜 기간 호황을 누릴 수 있다면 이 체제는 현재의 가족을 유지하는 구조를 대체할 새로운 이데올로기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조건이 형성돼 있지 않다. 오늘날 지배자들은 자본주의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남부의 마피아나 북아일랜드의 오렌지당the Orange Order(1795년 아일랜드 신교도가 조직한 비밀 결사) 같은 오래된 조직들이 자본주의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게다가 가족 같은 구조는 경제적 도움을 주기 때문에 포기하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 가족 이론은 여성 차별이 지속되는 이유를 여성이 출산과 육아의 담당자라는 맥락에서 설명한다. 하트만은 마르크스주의가 ‘성별에 무지’하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사람들이 왜 차별받는지는 설명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여성인지는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그 이유를 제공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명한다. 즉, 여성 차별은 재생산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상황이 계속되고, 이런 상황이 여성의 삶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을 낳는 물질적 조건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사상 ─ 가족과 육아가 자연스럽고 여성이 집에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생각 ─ 을 끝장낼 사회주의를 이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육아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지도록 하면 그런 변화를 실제로 이룰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것이고 우리 모두가 새 사회에서 평등하게 살게 해줄 것이다.

결론

사실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해방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가부장제 이론은 자본주의 하 여성의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조야하게 생물학적으로 따지는 데서 출발한다. 가부장제 이론은 어떻게 하면 여성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가부장제 이론이 이토록 큰 인기를 얻게 됐을까? 먼저 여성운동이 1960년대 후반 이래로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변화한 결과로 여성운동이 등장했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임신 통제 수단이 증대되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역할, 경력, 염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고등교육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그 새로운 생각들이 강화되고 발전했다. 비록 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차별받지만 고등교육 덕에 여성들이 처음으로 명목상으로는 균등한 임금을 받고 비교적 고임금인 전문직에 종사하게 됐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이런 변화는 그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에 견주면 엄청난 진전이었다.

여성에 관한 낡아빠진 통념들은 점차 현실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실제로 섹스와 성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성을 아내로 또 어머니로 보는 낡은 관점은 지속됐다. 온갖 종류의 법적 차별조항들이 있어서 여성이 물건을 할부로 구입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아동이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여전히 광고는 현실 세계와의 접촉이 거의 없이 집에만 있는 이상화된 여성상을 묘사했다.

경제적·사회적 현실과 낡은 사상 사이의 갈등에서 여성해방이라는 사상이 터져 나왔다. 여성은 자신들이 여느 남성과 비슷한 존재라는 점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가족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으면서 대부분의 남성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여성운동 초기에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1968년 투쟁의 여파로 급진화된 사람들은 여성운동 사상의 경청자가 됐다. 여성운동 내에서 (대체로 교육수준이 높은 전문직이었던) 여성들이 주장했던 여성해방 사상들이 노동계급 여성들에게도 와 닿았다. 의식의 변화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대중적 여성잡지 《여성》이나 《여성 자신》의 지난 15년치 훑어보면 스타 배우와 왕족을 다룬 기사 말고도 성, 실업, 탐폰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룬 기사를 볼 수 있다. 여성운동과 노동계급 여성 사이에는 늘 큰 간극이 있었고 접촉도 적었지만, 적어도 여성운동은 노동계급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오늘날의 상황은 좀 다르다. 지난 5년 동안 경제적 투쟁이 전반적으로 적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정치적 자신감 역시 많이 하락했다. 그 결과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에 급진화했던 여러 부문에서 사기저하가 일어났다. 여성운동이 특히 이런 사기저하를 겪고 있다. 오늘날에는 《갈빗대》[1972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페미니즘 잡지]의 지면에서는 최근의 여성 노동자 파업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고, 남성과 성관계를 맺지 않으려면 독신 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기사가 있을 따름이다. 사회주의 조직이나 노동조합 운동(흔히 남성 위주로 조직된)이 없었더라면 존 코리[1979년에 낙태금지법을 제출한 보수당 국회의원]에 반대해 낙태권을 방어하는 운동은 전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리 청바지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2백 명이 벌인 점거는 여성운동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사회 전체를 바꾸자는 담론들은 사라지고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자는 권고만 남았다. 사회운동 대신에 추상적 도덕주의, 즉 여성해방 사상을 받아들이는 소수의 남성(과 여성)들에게 사회를 바꾸려는 대신에 ‘일탈 행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남았다. 마치 자본주의가 아니라 남성이 문제인 것처럼 보며 남성의 태도를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이면에 있는 논리였다. 바로 이런 관념들에서 가부장제 이론이 발전했고, 그 다음에는 가부장제 이론이 이런 관념들을 강화했다.

필자가 앞에서 말했듯, 가부장제 이론은 어떻게 하면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비활성 상태의 다수는 그대로 놔둔 채 소수에게 이론적 올바름을 요구할 뿐이다. 오늘날 일부 여성들은 이 이론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자본주의 내에서 분리된 생활 ─ 남녀가 따로 살고, 학교도 같은 성별끼리 다니고, 사회생활도 따로 하는 것 ─ 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해결책’은 물질적 존재와 의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의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굉장히 엘리트주의적이다. 그런 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일정 수준의 주거지를 확보할 수 있고, 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할 수 있고, 아이들도 어느 학교에 보낼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 여성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다. 하트만은 계급 간에 이혼율이 균등해졌다고 말했지만, 수세대 동안 이혼을 할 수 없었던 노동계급 남녀의 비참한 삶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혼이 훨씬 쉬워진 오늘날에도 물질적 조건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부부가 매우 많을 것이다.(이혼하면 둘이 따로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공공임대주택을 구하고, 아니면 값싼 민간 주택을 구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에게 이런 해법은 순전히 공상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가부장제 이론과 이 이론이 수반하는 온갖 관념론적 얘기를 단지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와 소외로부터 인류 모두를 해방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가부장제 이론의 근저에 있는, 여성에 대한 분석이 빈약한 개념들 역시 거부해야 한다. 조운 스미스가 말했듯이, 그런 빈약한 분석은 “집안에 있는 여성, 전쟁터에 나간 남성” 같은 이미지를 가정한다. 25 이런 이미지는 노동계급 전반의 현실과 맞았던 적이 없다. 이런 이미지는 “임시직 노동자, 잡역부, 이주 노동자” 가족보다는 ‘은행가, 중간관리자, 산업 자본가와 비서, 일부 숙련 노동자들”의 가족과 비슷하다. 26

이런 이미지는, 그 때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여성의 현실과도 터무니없이 다르다. 오늘날 전형적인 여성은 성인으로서 삶의 대부분을 임금노동으로 보낸다. 오늘날 여성은 아이를 낳아서 학교에 갈 때까지 잠시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전일제 노동에 종사한다. 심지어 5세 이하의 아이를 가진 여성 중 20퍼센트도 시간제 일자리를 갖는다. 여성은 전업주부라는 가정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인구 중 40퍼센트가 여성이고, 여성은 남성보다 이른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노동조합 가입 속도도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빠르다.

여성은 전업주부라는 환상은 자본에게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 이런 환상은 여성들에게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긴 노동시간을 강요하는 데 이용된다. 또, 이런 환상 때문에 여성들은 임금노동이 그들의 ‘본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잘 조직되지 않으며, 실업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런 환상은 여성들에게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종용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여성이 홀로 집안일을 하는 가정주부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성원으로 볼 경우 우리의 대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조직된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여성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나아가 전복할 수 있는 응집력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목표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전복하도록 지도력을 제공할 수 있는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이 노동력의 핵심 부분으로 포함되는 노동계급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흔한 주장과 달리, 이런 태도를 견지한다고 해서 당원 중에 혹은 혁명 이후 남성 중에 성차별적인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차별을 계급투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계급투쟁의 핵심적 일부로 볼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해결책은 달라진다.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의 전략이 혁명정당과는 분리된 자율적인 운동을 추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당을 건설해야 하고,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계급의 요구로서 여성의 염원과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이것은 여성 차별의 현실, 즉 그 어떤 종류의 정치생활에도 참가하기 힘들게 만들고 육아와 가사노동에다 임금노동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지우는 여성 차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여성이 겪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특별 기구, 여성 신문, 여성 모임, 여성 당원이 당의 모든 영역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여성들이 직면한 실질적 문제를 직시하고, 훈계가 아니라 유물론적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가부장제 이론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거나 남성을 여성운동의 적으로 여기게 되면 여성해방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사회의 현상만을 잘못 짚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사회주의 혁명, 즉 계급사회의 폐지만이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