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당시 몇 자

사라진 글자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김선미 기자


한글은 몇 글자일까? 어떤 사람은 24개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28개라고 대답한다. 사실, 둘 다 옳은 정답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총 24글자이다. 그렇다면 28글자라는 두 번째 정답은 무엇 때문이며, 나머지 네 글자는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네 글자

1443년, 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훈민정음은 새로운 문자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를 기록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이름 때문에 생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해례본은 한문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례본의 일부를 한글로 번역하여 배포한 책이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바로 이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에 답이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몇 자
▲ 훈민정음 언해본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서문에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맹가노니”라는 구절에서 훈민정음이 28글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한글과 훈민정음의 글자 수에 차이가 있을까? 바로 사라진 네 글자 때문이다.

▲ 사라진 네 글자

어떤 글자가 사라졌나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글자에는 아래아(ㆍ), 반치음(ㅿ), 옛이응(ㆁ), 여린히읗(ㆆ)이 있다. 차례대로 네 글자에 대해 알아보자.

*아래아: 아래아는 ‘ᄒᆞᆫ글’, ‘ᄒᆞᆫ저ᄋᆞᆸ서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비교적 익숙한 글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네 글자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글자이다. 아래아는 16세기부터 점차 음가가 사라졌지만 문헌에는 계속해서 쓰이다 1909년에 이르러서야 국문연구소에서 처음 폐지가 논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발표하면서 아래아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여린히읗: 여린히읗은 순우리말의 초성에는 쓰인 적이 없어 음가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문헌에서는 네 글자 중 가장 빠른 15세기 초부터 문헌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반치음: 반치음의 음가는 15세기에 소멸되었지만 이후 이응과 혼용되다가 15세기 후반에는 거의 사라졌다.

 *옛이응: 옛이응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이응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는데, 16세기부터 이응과 혼용하다가 17세기 문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 세 글자 여린히읗, 반치음, 엣이응과 아래아는 15~17세기에 걸쳐 서서히 자취를 감추다가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면서 기존 28자에서 쓰임이 적은 4글자를 제외하여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글 24자가 완성된 것이다.

네 글자의 쓰임새와 의의
그렇다면 지금 쓰이지 않는 네 글자는 그 당시에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을 “어디로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 쓸 수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다양한 소리를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조선시대 역관들은 생소한 외국어 학습을 위해 28자의 훈민정음을 활용해 외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었다고 한다. 반포될 당시의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글자를 사용한다면 <표2>와 같이 더욱 정확한 영어 발음과 표기도 가능하다. 만약 사라진 네 글자가 지금까지 사용되었다면 외국어 공부가 훨씬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네 글자가 나머지 24자에 비해 적게 쓰였기 때문에 이 글자들이 사라진 것은 시간에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훈민정음을 사용한 외래어 표기. 출처: 역사채널e,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문자, 훈민정음”

우리가 이 네 글자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는 훈민정음의 완성도다. 현재 사용하는 24자로도 다양한 표현과 발음이 가능하지만, 네 글자와 두 자음이나 모음을 나란히 쓰는 방법(병서), 자음을 위아래로 이어 쓰는 방법(연서)을 활용한다면 어떤 언어도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무려 약 570년 전 만들어진 글자가 지금 사용되는 소리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오늘은 언제나 당연하게 쓰는 우리 글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상은 문맹퇴치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으로, 이 상의 이름에 세종이라는 이름을 딴 것은 세종이 만든 한글이 그만큼 배우기가 쉬워서 문맹을 없애는 우수한 글자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글의 과학성은 우선 그 창제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한글은 ‘독창적인 원리’로 만들었다. 한글은 다른 문자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발음 기관과 천·지·인 삼재를 본떠 독창적으로 창제한 문자이다. 자음의 경우에는 발음 기관을 상형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만 보고서도 그 글자의 음가를 짐작할 수 있다.

초성의 기본 글자는 다섯 자인데,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꼴을, 혓소리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꼴을, 입술소리 ㅁ은 입 모양을, 잇소리 ㅅ은 이의 모양을, 목소리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 기관을 상형하여 만든 세계 유일의 소리글자인 것이다.

중성의 기본자는 ‘ㆍ, ㅡ, ㅣ’ 세 글자인데, 하늘의 둥근 모양을 본떠 ㆍ를 만들고, 땅의 평평한 모양을 본떠 ㅡ를 만들고,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ㅣ를 만들었다. 초성 다섯 자(ㄱ, ㄴ, ㅁ, ㅅ, ㅇ)와 중성 세 자(ㆍ, ㅡ, ㅣ)를 바탕으로 가획, 병서, 연서, 합용 등의 방법으로 더 많은 글자들을 만들 수 있다.

둘째, 한글은 ‘이원적 구성’으로 만들었다. 훈민정음 28글자를 제각각 만든 것이 아니고 먼저 몇 개의 기본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해 가며 나머지 글자를 파생시켜 다른 글자들을 만들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자음은 17자인데 기본자 다섯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 파생 글자를 가획의 원리에 의해 만들었으며, 모음은 11자인데 기본자 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 파생 글자를 만들었다.

모두 28글자를 만들었지만 자음 다섯 글자와 모음 세 글자를 바탕으로 나머지 글자들은 가획의 원리에 따라 획을 더 그어가며 파생된 것이므로 글자를 쉽게 익힐 수가 있다.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 “슬기로운 이는 아침먹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우칠 수 있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원적 구성에 의한 글자의 창제는 글자의 체계를 매우 체계적으로 해 줄 뿐만 아니라 문자 학습에 있어서도 기억 부담량을 줄여 주어 배우고 활용하는 데에 매우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여기에서 가획의 원리를 적용하는 데 있어 글자를 형성하기 위해 단순히 가획만 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도 의미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창제자가 기본자와 그 밖의 글자들 간의 음성학적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자 ‘ㄱ’에 획을 더하여 ‘ㅋ’을 만들었는데 단순히 획을 더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획의 의미가 있어서 ‘소리가 세진다’는 것이다.

‘놓고’라는 말을 발음해 보면 [노코]로 소리나는데, ‘ㅋ’은 ‘ㅎ’과 ‘ㄱ’이 합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ㅋ’은 ‘ㄱ’보다 ‘ㅎ’만큼 소리가 세다는 뜻이다. 또한 모음의 경우에도 기본자 ‘ㆍ, ㅡ, ㅣ’를 서로 조합하여 ‘ㅗ, ㅏ, ㅜ, ㅓ’를 만들고, 여기에 ‘ㆍ’를 하나씩 더하여 ‘ㅛ, ㅑ, ㅠ, ㅕ’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획을 하나씩 더한 의미는 반모음‘ㅣ’가 더해진다는 뜻이다.

셋째, 한글은 ‘계열적 구성’을 이룬다. 즉, 음성적으로 같은 계열에 속하는 것이면 그 글자의 모양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묶었다. 자음의 경우 ‘ㄴ, ㄷ, ㅌ’는 설음[혓소리]인데 글자의 모양에 있어서도 글자마다 혀가 윗잇몸에 붙는 꼴인 ‘ㄴ’이 있어서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고, 순음[입술소리] ‘ㅁ, ㅂ,ㅍ’에는 입모양을 본뜬 ‘ㅁ’이, 치음[잇소리] ‘ㅅ, ㅈ, ㅊ’에는 치아의 모양을 본뜬 ‘ㅅ’이, 후음[목소리] ‘ㅇ,ㆆ, ㅎ’에는 목구멍의 모양을 본뜬 ‘ㅇ’이 각각 있어서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모음의 경우 ‘ㅑ, ㅕ, ㅛ, ㅠ’는 반모음 ‘ㅣ’가 앞서는 이중모음인데 글자 모양에 있어서도 ‘ㅣ’나‘ㅡ’를 중심으로 각각 점이 두 개씩 찍혀 있어서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넷째, 한글은 ‘모아쓰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는 음소 문자[자질 문자]이면서도 음절 문자처럼 모아쓰기 방식으로 글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즉 유한한 수의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이를 조합해 쓰는 모아쓰기 방식을 취함으로써 거의 무한에 가까운 글자를 만들어 내어 문자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창제 당시에는 지금은 없어진 자모 4자( ㆆ, ㅿ, ㆁ, ㆍ)와 중국어 표기용 6자 등을 합해 조합하면 무려 399억 자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쓰이고 있는 자음과 모음 24자만으로도 11,172개의 음절을 나타낼 수 있다. 정인지가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한 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컴퓨터는 한정된 수의 자음과 모음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모아쓰기 형태의 글자를 생성해 내기 때문에 한글이 컴퓨터를 염두에 두고 창제되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로마자 공세에 살아남은 워드프로세서는 오직 한글뿐이며,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률이 세계에서 으뜸인 것 또한 한글의 이러한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한글의 과학성은 정보화 사회에서 한글이 생존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기본 글자에서 다른 글자를 파생시키고, 이 자음과 모음을 합해 글자를 이루고, 글자에서 낱말을 만들어 내는 한글의 구성 원리는 컴퓨터의 계산 원리와 비슷하다. 또한, 모음의 경우 한 가지 소리로만 발음되고 묵음자가 거의 없다. 문자와 소리의 이러한 일치성은 기계 번역이나 음성 인식 컴퓨터를 만드는 등의 한글의 정보화에도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한글은 이 같은 과학성과 우수성으로 인해 글이 없어 말까지 사라져 가는 3,500여 소수 민족들에게 한글을 보급해 주고, 10억으로 추산되는 문맹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영문자가 우리 한글을 위협하는 요즘, 한글의 과학성을 발판으로 한글이 세계로 향해 나아갈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