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김순덕 논설위원

“똑똑한 여학생은 너무 많은데….”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개탄하듯 말했다. 채용 기업으로 보나, 나라 장래로 보나 박수칠 일인데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토익이나 학점, 말주변도 남자들이 여자 못 따라간다. 간신히 성별 안배해 뽑고 나면 여직원들은 주로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인데 남자들은 아니다. 아예 지원을 안 하는 모양이다.”

“그럼 똑똑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내가 묻자 옆에 있던 교수가 말했다. “외국유학이나 다국적 기업을 가지요.”

아니나 다를까 LG전자가 4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지난주엔 일본에서 엘리트 엔지니어와 유학생들을 초청해 글로벌 연구개발(R&D) 인재 영입 행사를 열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특명에 따라 모셔온 S급(슈퍼급) 인재들 역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경영학석사(MBA)다. 산업화시대의 유학생은 학위만 따면 조국에 돌아와 봉사하는 걸 영광으로 여긴 애국선배였다. 요즘은 다르다. 웬만하면 안 오려고 해 임원들이 삼고초려해야 할 판이다.

2007년 동아일보는 ‘5년 뒤 한국과 5대 도전’이라는 창간 87주년 기념특집 중 ‘엘리트를 길러라’ 편에서 ‘평준 고교에 대충 대학…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걱정했다. 당시 포스텍 박찬모 총장은 “5년 뒤 고급인력이 없어 한국 경제의 엔진이 멈출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 우려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4년 전 신문기사 “두뇌유출 우려”

노무현 정부야 평등을 최고가치로 삼은 좌파정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치자. 그러나 ‘글로벌 창의인재 육성’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가 교육정책의 최우선을 사교육 억제로 돌리면서 인재들의 해외 탈출을 증가시킨 건 납득도, 용서도 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유학생 최다 배출국이 됐다. 초·중등생 빼고 외국 대학 석·박사 과정까지의 유학생은 2004년 15만 명이 안 됐지만 2009년엔 18만 명으로 늘었다. 국력의 상징이 아니라 ‘교육 엑소더스’다. 세계경제포럼(WEF) 교육경쟁력 순위에서 고등교육체제의 질은 2007년 19위에서 2010년 57위로 추락했다. 정부는 2009년에는 과학고 입시에서, 2010년엔 모든 대학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올림피아드 성적을 못 쓰게 시시콜콜 간섭했다. 덕분에 그 전까지만 해도 늘 5등 안에 들던 우리 고교생들의 국제 수학올림피아드대회 성적이 올해는 13등으로 북한(7등)에도 뒤지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에 남겠다는 이들이 늘어난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두뇌유출지수를 보더라도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출 정도가 더 심해졌다.

글로벌 인재들이 귀국을 원치 않는 주된 이유도 교육에 있다. 교수로 가고 싶은 국내 대학엔 철밥통 교수들이 버티고 있어 가기 어렵다. 국책연구소라도 갈라치면 “애들 학교 때문에 안 된다”고 아내가 결사반대다. 귀국할까 말까 하던 미혼 석·박사들도 교포 여성들에게 생포당하면 차라리 잘됐다며 주저앉기 십상이다.

인재 부족에 정보기술(IT) 빅뱅까지 겹치면서 삼성 같은 기업만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두뇌유출지수인 이탈리아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이탈리아는 중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도 않고 무시험 대학 입학에, 전 대학의 학위를 동일 평가하도록 강제한 반(反)실력주의 정책을 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육과 닮았다. 그 결과 생산성 경쟁력은 추락했고 오늘날 청년실업률 27.8%에 디폴트(국가부도) 위기다. 똑똑한 남자가 사라지는 나라에선 여자들 고생도 심해진다. 당장 한국에서도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신랑감을 못 구하는 비극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년 3월 1일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가 10대 미혼모 증가(19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낙태만 줄어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던 전 전 장관에게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신지 묻고 싶다. 낙태 금지는 임신기간이 열 달이어서 벌써 비극적 정책 결과를 목격했다. 교육정책은 MB 취임 때 학생이었던 세대가 죽을 때까지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어 더 무섭다.

교육과 R&D에 평등은 없다

내 자식은 엘리트가 못 되더라도 나라에는 엘리트가 있어야 국민이 먹고살 수 있다. 삼성이 밉더라도 이 나라에 삼성 같은 기업은 있어야 한다. IT 빅뱅시대를 살아남으려면 고학력 고숙련 인력이 필수인데도 정부부터 공부 열심히 하는 걸 죄악시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비영리 교육단체인 벨웨더교육의 창립자 앤드루 로더햄은 “대학교육이 계층 상승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했다. 이 정부는 좌파교육의 비극을 겪고도 더 못한 교육정책을 편 죄를 어떻게 갚을 작정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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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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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대한민국 남자들이 사라졌다. 가정에서도 학교, 사회에서도 여자에 가려 남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신문을 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상 최초’ ‘역대 최대’란 수식어가 붙은 여성 활약상을 소개하는 기사가 넘친다. 초·중·고교에서 여학생 득세 현상은 새삼스러운 뉴스가 아니다.

여성이 무섭게 영역을 확장하는 사이 남성은 점점 사회의 주변부로 사라지고 있다. 최근 10년 여성의 약진이 양적 확대였다면, 이젠 곳곳에서 수장 자리를 꿰차며 질적인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안주하던 남성은 ‘알파걸’이라는 강자의 출현 앞에 점점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이젠 남과 여가 아닌 새로운 종족으로 분류해야 할 판이다. ‘알파 걸’에 복종하는 신인류 남자는 ‘베타보이(bettamale·지도자 자리를 노리는 남성)’와 ‘오메가보이(omegamale·지도자를 따르는 순종형)’라고 불린다. 그나마 공격 본능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베타보이’에 비해 ‘오메가보이’는 아예 공격성을 상실했다. 돌진하는 여성을 향해 맞서 싸울 자신도 없다. 전투력의 한계가 빤하기 때문이다. 남녀 고시준비생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은 2만3000명(2006년)에서 5년 만에 3만6000명으로 늘어난 반면 남성 고시준비생은 같은 기간 3만9000명에서 3만10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여자 고시준비생이 더 많다. DNA에 새겨진 남성성과 공격 본능을 써먹을 곳은 컴퓨터 게임밖에 없다. 사이버 전장에서 유닛을 움직이며 그들은 자조적으로 읊조린다.

“요즘엔 여자들이 훨씬 용감하고 똑똑해.”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법시험 여성 합격률이 40%를 넘나들고 있는 사이 8년째 고배를 마시고 있는 한 남성 고시생의 고백을 먼저 들어보자.

“독한 여자들을 배웠어야 했다”

내 나이는 33살이다. 아들은 아빠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나는 엄마의 등을 보고 자랐다. 두 형제 중 장남인 나는 엄마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다. 중학교 때 폭력 사건에 휘말렸을 때도 엄마는 담임선생님에게 맞서가며 나를 보호했다. 말하자면 ‘치맛바람’ 몰고 다니던 극성 엄마였다. 동생은 늘 내 그늘에 가려서 자랐다. 지금도 미안한 일 중 하나는 엄마 생신이라고 동생과 내가 저녁을 차린 적이 있었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굽다가 나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음식은 동생이 다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만 칭찬해줬다.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장남” “우리 아들”이었다.

동생은 엄마에게 관심 밖이었다. 엄마는 동생에 대해 “똘똘하고 영악하니 혼자서도 잘 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나이 들어 엄마를 책임져줄 사람은 ‘우리 장남’이라고 말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갑자기 엄마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사고뭉치에 골골대느라 병원을 들락거리며 자주 학교를 빠졌지만 엄마의 지원 덕분인지 다행히 성적은 좋았다.

중학교 때부터 과목별로 과외 선생님을 붙여 주었다. 동생은? 알아서 혼자 공부했다. 엄마의 기대대로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엄마는 대학에 입학하자 무리해서 16평 오피스텔을 사주고 차까지 뽑아줬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광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반찬을 해다 나르고 청소까지 해줬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가 짜증을 내자 엄마는 크게 상처를 받은 듯했다.

다행히 동생이 고3이 되면서 엄마의 관심이 잠깐 멀어졌다. 내 오피스텔은 친구들 아지트로 변해 매일 술판이 벌어졌다.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를 가면서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엄청난 관심 속에서 과외와 학교 생활에 지쳤던 나는 모처럼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달리 할 일은 없었다. 엄마가 정해준 스케줄에 길들여진 탓인지 내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할 일은 게임밖에 없었다. 집에는 사법시험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말뿐이었다. 공부는 하기 싫었다.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엄마는 내가 열심히 시험준비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사법시험에 응시를 하기는 했지만 성적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알아서 공부 잘했던 동생은 서울대에 갔다. 솔직히 동생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엄마의 관심이 동생에게 옮겨가는 것이 보였다. 사시 준비한다고 집에 잘 가지도 않는 장남보다 공부도 잘하고 아르바이트로 용돈도 알아서 벌 만큼 똑똑한 동생이 당연히 믿음직해 보였을 것이다.

몇 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군대 갈 타이밍도 놓쳐 버리고 아무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을 보냈다. 친구들이 모두 군대 갔다 온 뒤에야 뒤늦게 군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엄마는 펑펑 울었다. 먼저 군대에 간 동생에게는 “얘는 원래 어디서든 잘하니까” 하며 웃으면서 보냈던 엄마였다. 하긴 나도 내가 걱정되기는 했다. 엄마의 힘이 또 한번 발휘됐다. 엄마는 온갖 친척을 동원해 편한 곳에 배치받게 해주었다. 덕분에 군생활은 편했다. 제대하고 보니 벌써 26살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림동으로 방을 옳겼다. 마침 동생도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해서 나란히 독서실에 가고 학원에 다니는 생활을 반복했다. 2년 만에 동생은 보란 듯이 합격했고 나는 1차 시험에도 계속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었다. 고시생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면서 여자친구도 사귀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게임도 했다.

당시 동생, 여학생 한 명과 함께 셋이서 ‘생활 스터디’를 만들어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나를 빼고 둘이선 그야말로 목숨 걸고 시험 준비를 했다. 그때 함께 공부하던 여학생은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친구였다. 늘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떡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결국 한 해 만에 사시에 붙었다.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합격 축하파티를 하자며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그 여학생이 내게 말했다. “너는 공부를 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버리지 못해 떨어지는 거다.” 그렇게 말한 여학생은 연수원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판사가 됐다.

26살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해서 올해 33살이니 8년째다. 그동안 1차 시험조차 한 번도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요즘은 집에도, 동생에게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면목이 없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새삼스럽게 내가 왜 사시를 준비하려 했는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뭐였는지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생각보다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엄마의 기대에 맞춰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 같았다.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 경력 한 줄 없이 취업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말들이 변명처럼 들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한참 동안 우울해 하다 이렇게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심정이 들었다. 다른 일을 찾기엔 너무 늦었다. 계속 시험을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잃을 것도 없으니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봐온 여자들이 생각났다. 남자는 몇 번씩 떨어지는 장수생이 많은 반면 여자는 몇 년 끌지 않고 시험에 합격해서 고시촌을 떠났다. 그만큼 독한 여자들이었다. 머리는 질끈 묶고 하루 종일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독한 여자들이 학원이나 독서실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런 여자들을 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보통 두 부류다. 한 부류는 경쟁심을 느끼고 열심히 공부하는 쪽, 다른 한 부류는 “저렇게 독하게 해야 하나” 경멸하는 경우이다. 나는 후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지독하게 공부만 하는 여자들이 싫었다. 요즘도 공부만 하는 여자에 대해 남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지만 그땐 더 심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여학생들은 시험 성적 1점에 울고불고했다. 여학생도 다양한 부류가 있긴 했다. 지독하게 공부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여자라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부류였다. 아파서, 일이 있어서, 온갖 핑계를 대면서 노트 필기를 빌려가고 정보를 알아갔다. 문제는 그런 이기적인 여자들도 결국 나보다 먼저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고시촌의 여자들은 무섭다. 이기적이든 독하든 나도 둘 중의 하나는 했어야 했다. 아니 이제라도 해야 한다.

“뽑을 만한 남자가 없다”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일러스트 유현호

33살 고려대 법대남(男)의 고백이 어떠셨는지. 그간 우리 사회에서 무슨 변화가 진행 중인지, 좀 깜깜했던 분도 이제는 감을 잡았을 거다. 알파걸과 오메가보이가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장 중 하나는 신입사원 면접장이다. 기업으로 들어가 보자.

요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들어간 면접관들은 모두 “뽑을 만한 남자가 없다”고 호소한다. 여성 지원자는 하나같이 자신감 있고 대답도 잘하는 반면 남성 지원자는 어리숙한 데다 질문을 던져도 동문서답이라는 것이다. 필기시험 성적도 뛰어나고 면접 점수도 월등하니 성적대로라면 전부 여성 지원자를 뽑아야 할 판이다.

올해 공채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25%였던 H공사의 한 간부는 면접을 끝내고 나와 “여자들이 훨씬 똑똑하고 말도 잘하더라. 남자들은 전부 어리버리하더라”라고 전했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 207명을 대상으로 채용시장에서 여성 강세 현상을 묻는 질문에 70%가 “체감한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수한 지원자가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이 많나”라는 질문에는 “여성”이라는 대답이 55.2%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우수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간조선만 해도 그렇다. 최근 3년 새 네 차례 신입기자를 뽑았는데 모두 여기자가 뽑혔다. “여기자만 뽑아서는 나중에 조직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최준석 편집장은 이제 여기자를 뽑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면접장을 나온 뒤 한숨을 내쉬며 뱉은 말은 “여자를 뽑을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었다.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MBC PD, 기자 등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참가한 권석 예능1부 부장은 “남성 인력이 소수세력이 되다 보니 면접에 들어가면서 남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들어갔다. 똑부러지는 여성과 어리숙한 남성의 대비가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역시나 여자는 눈빛부터 달랐다. 여자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에, 말은 어찌 그리 조리있게 잘하는지, 이에 반해 남자는 산만하고 면접관과 쓸데없는 기싸움을 벌이다가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여초사회에서 생존법을 고민하는 남자들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교육 현장을 보자. 초·중·고 대학교를 불문하고 공부 잘하고 똑똑한 여학생들 세상이다. 서울 초등학교 학생들의 남녀 학력을 비교해 보면 국어의 경우 여학생은 우수한 학생이 49.5%이고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이 15.2%인 반면, 남학생은 ‘우수’가 36.1%, ‘기초학력 미달’이 26.7%였다. 고등학생의 경우 남녀 학력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국어의 경우 ‘우수’ 여학생은 40.4%, 남학생은 25.2%이고 영어는 30.5% 대 25.1%로 차이를 보였다.<그래프 참조>

성적뿐 아니라 학생회장도 여학생들 차지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중학교 여선생은 “학기 초 학급 회장을 선출하려고 보면 뽑을 남학생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남녀공학인 신목중학교는 2학년 18학급 중 15학급의 회장이 여학생이다. 육군사관학교는 올해 사상 최초로 여생도가 수석졸업을 차지했다. 경찰대학도 지난 2009년에 이어 올해도 수석졸업생이 여성이었다. 서울대의 경우 올해 각 단과대학의 수석졸업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대학 동아리방도 여성 회장들이 주도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여학생을 찾기 힘들었던 고려대의 태권도부·펜싱부도 여학생이 회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 서울대 커뮤니티 게시판 스누라이프(www.snulife)에서는 한 남학생이 올린 글로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필명숨김’이라는 아이디로 올린 글의 제목은 ‘여초(女超) 학과에서 스트레스 안 받고 생활하는 방법’.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군대도 가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거리낄 것도 없어서 사대나 인문대에 들어간 남자후배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여초집단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뒷담화의 대상화가 되고, 좀 못하면 당연히 까인다. 여기서 욕을 안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성으로서 매력이 없거나 잘난 점이 없으면서 그냥 착하게 지내면 된다. 문제는 어느 정도 남자로서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을 때는 조금만 잘못해도 까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방법이 세 가지다. 첫째, 철저하게 친해져라. 그룹 간의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두루 친하거나, 아니면 눈에 띄게 쎈 그룹이 있다면 거기에 동화돼라. 여자들이 남자 얘기할 때 맞장구 쳐주고, 놀러갈 때 스티커 사진도 같이 찍고 그래라. 그렇게 군대 갈 때 까지만 버티면 된다. 갔다 오면 리셋된다.’

이 글에는 100건에 가까운 댓글이 붙으면서 게시판을 달궜다. 댓글 중에는 반박하는 글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진짜 심금을 울리네요’ ‘너무 공감’ 등 여초 집단에서 살아가는 남성의 고충을 호소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성은 이제 여성의 밑에서 생존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여성이 조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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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3대 고시는 오랜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다. 남성이 절대우위를 점했던 고시 영역에서 여성세가 급신장하고 있고, 좀 심하게 얘기하면 남성은 이제 ‘멸종위기의 종’이 되어가고 있다. 수적 증가뿐이 아니라 ‘금녀의 영역’도 깨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여검사 임용 비율이 60%를 넘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월 개청 이래 최초로 남성의 성역이었던 공안 1부와 강력부에 여검사를 배치했다. 특수 1부에도 7년 만에 여검사가 배치됐다. 남성 검사가 여성 특수부장의 발길에 정강이를 차일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외무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50%(2010년 65.7%)를 넘어선 지 오래이고 행정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도 2011년 38.8%를 기록, 하락세로 꺾이긴 했지만 2005년 이후 50%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한동만 외교통상부 국제통상 국장이 1985년 외무고시에 합격했을 때 동기생 18명 중 여성은 2명이었다. 현재 외교부 과장 76명 중 여성은 9명이다. 당시 외무고시 합격자 중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과장급이 되기까지는 보통 18~20년이 걸린다. 2000년만 해도 여성 합격자 비율이 20%였다가 최근 5년여 전부터 성비가 역전됐다. 한동만 국장은 주간조선에 “여성 비율이 늘면서 남성 권위주의적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사실 외무부가 보수주의적 집단인데 많이 유연해지고 탄력적으로 변했다. 일을 시켜 보면 여성이 창의적이고 도전의식도 강하다. 회식문화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여성 외교관이 늘어나면서 조직 운영 변화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월 5일 외교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지희 북미통상과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여성 외교관들을 대표해 해외공관 근무 때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전달했다. 대통령 앞에서까지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거론된 것이다. 여성 과장의 건의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외교도 중요하지만 출산, 육아도 중요하다. 가임기 여성 외교관의 경우 국내 근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등 빨리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지금은 여성 외교관이 과장직을 휩쓸고 있지만, 이들이 대사 보직을 받는 15년여 후가 되면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국에 나가는 외교관의 얼굴은 여성으로 대거 바뀐다. 주한미국 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슨과 같은 여성 대사가 줄줄이 나올 예정이다.

외국계 기업에서도 여성 임원의 약진이 거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을 받은 한국화이자제약이 대표적이다. 직원의 54%가 여성이고 임원 12명 중 절반이 여성이다. 과장급 이상 여성 비율도 36%에 이른다.

한국화이자 대외협력부 황성혜(40) 상무는 “여성을 특별히 우대해서라기보다 성별 구분 없이 무조건 똑똑한 인재를 뽑다 보니 여직원이 많아진 것뿐이다. 무엇보다 실력을 발휘하고 인정받는 여성 임원이 많아지면서 젊은 후배들이 ‘나도 열심히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기부여만큼 자신에게도 조직에도 강력한 에너지가 있겠나. 회사에서는 그런 여직원을 위해 근무시간 선택제, 임산부 건강관리 등을 통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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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신임검사 임관식. 95명의 신임검사 중 여성 검사가 54명이었다.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민간 영역에서 여성 두뇌 진출이 활발한 한 영역은 증권사 리서치센터. 국내 10대 증권사 리서치센터 소속 연구원 558명 가운데 여성은 140명으로 25.1%에 이른다. 7~8년 전만 해도 여성 연구원은 채 5%가 안됐다. 특히 남성 영역으로 분류되던 자산운용사 공모펀드 매니저도 여성 비율이 15%를 넘어섰다. 국내 자산운용 1위인 삼성자산운용은 대형 운용사로는 처음으로 올 1월에 민수아 여성본부장을 전격 발탁했다.

국내 최초의 애널리스트 출신 리서치센터장 이원선(43) 토러스투자증권 이사는 취임 이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여잔데 잘할 수 있을까. 아직은 이른 것 아닌가’란 시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리서치센터는 자본시장의 한가운데서 시장과 기업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여성의 손끝에서 주가 화살표가 오르락내리락 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정치권은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 주요 정당의 대표가 여성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통합당에는 한명숙 대표, 통합진보당은 이정희·심상정 공동대표가 맡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이다. 올 1월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형민 관장을, 서울시립미술관은 김홍희 관장을 임명, 두 곳 모두 개관 이래 최초로 여성 수장이 탄생했다. 지난해 2월에 임명된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까지 국내의 대표적 국공립박물관과 미술관을 모두 여성이 맡게 된 셈이다.

똑똑한 여자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도대체 남자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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