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대체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사업을 하는 고교 동창생이 사건을 의뢰하려고 얼마 전 사무실을 방문했다. 졸업 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강원도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몇몇 친구의 근황을 알게 되었고, 한번 모이자는 이야기로 발전했다. 동창회라는 모임의 격의 없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생각과 정서가 달라져서 불편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임을 찾지 않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이 모임에는 기대가 생겼다. 네 사람이 유서 깊은 특급호텔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 만났다. 한 친구는 가끔 연락을 하는 사이인데, 몇 년간 못 본 사이에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진했다. 다른 한 친구는 우리가 만난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그 친구는 총지배인이 된 뒤로는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호텔을 벗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체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옛일과 세상사를 두서없이 나누는 도중에, 총지배인이 문득 고교 시절의 일화를 꺼냈다. 그는 나처럼 당시 서울의 가장 변두리였던 상암동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았고, 형제 많은 집의 막내였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낮이나 밤이나 책을 손에서 안 놓는 모습이었다. 학업성취가 두드러진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의지력이 대단하다고만 생각을 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이미 육십에 가까운 노모가 울고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날 선생님을 만났는데, 친구의 실력으로는 2년제 대학도 못 갈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자극을 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수 있겠지만, 노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날 친구는 어떤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는 무사히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 무렵에는 생소하던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이 호텔에서 이른바 ‘호텔보이’로 일을 시작했고, 30년 후 총지배인이 되었다. 곧 그 호텔의 대연회장에서 딸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고, 우리는 참석하기로 했다.

원래 성대한 행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모르던 사연을 알게 돼 이번에는 남다른 감흥을 받았다. 신부와 신랑은 낭만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선남선녀였고, 형제들이 부르는 축가는 정겨웠다. 친구 자녀의 결혼식은 처음이었는데,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며 나 또한 행복에 감염되었다. 나는 연회장을 장식했던 눈부신 꽃 중 한 다발을 얻어 가슴에 안고, 토요일 오후의 어수선한 도심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사실 그런 화려함에 이질감과 어색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엄혹했던 대학 시절의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르쳐준 사회비판적인 관점과 정서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게 성공, 자본주의, 거창한 예식, 사회적 지위 따위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주었고, 나는 그런 세계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과 감정 속에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 어정쩡하게 불편해했지만, 자주 타협을 하며 살았다. 다른 이들처럼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세상과 실제로 현존하는 세상의 괴리 속에 내면이 찢어진 삶을 살았다고 할까. 현존하는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결국 그 세계의 문법을 그럭저럭 수용하는 삶을 살았다. 내 삶의 안녕을 원했고, 아이의 행복을 열망했다. 돈을 모아 아파트를 샀고, 경쟁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비판적 사고를 하고, 세상을 위한 노력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모를 생각하며 평생 특급호텔을 일터로 삼고 지켜온 친구의 삶보다 내 삶이 더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떤’이다. 내가 감동한 것은 친구의 ‘성공’ 자체가 아니라, 그의 성공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 쓴 이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성적인 것, 그것은 현실적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것, 그것은 이성적이다.” 아이러니한 이 표현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아리송했고, 지금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이 말을 “이성적인 것은 현실화될 수 있고, 현실화된 것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소박한 의미로 바꾸어 생각하고는 한다. 나는 예전에는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를 모두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인간세계와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존재하는 세계라 하여 그대로 비판 없이 수용할 생각은 여전히 없으나, 주어진 현실의 질서 속에서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이해심을 가지려 한다. 아니, 내 친구에게 느끼게 된 것과 같은 존경심도 기꺼이 가지려고 한다. 나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세계를 승인하고 그 속에서 낙오하지 않으려 발버둥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가난한 동네의 소년이 노모의 눈물을 생각하며 오로지 성실함으로 한 세상을 헤쳐나간 이야기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작가 앙드레 말로는 언제인가 ‘꿈같은 세계의 사실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모험가이기도 한 그가 모험을 정의한 표현이리라. 나는 말로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표현이야말로 우리가 겪는 세상의 참모습을 가장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가 덧없는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든 모순덩어리라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가 이 세계를 모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은 사실주의적이다. 친구는 감탄스럽게도 이 한바탕 꿈같은 세계에서 어떤 실재를 만들어냈다. 그가 해낸 것이 무엇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삶을 지지한다.

친구의 딸은 미술가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예식 중간에 마이크를 잡은 친구는 신랑에게 딸이 결혼하더라도 ‘그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딸에게는 ‘위대한 화가’가 되라고 격려했다. 나도 그 딸이, 또 내 딸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염원한다.

“자꾸 다툼이 생겨요.”

전업주부로 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오십대 중반의 제자가 괴로움을 토로한다. 아이 낳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시부모 봉양하고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죽 살아왔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사회학을 시작했는데 공부할수록 그동안 잘 지내왔던 주변 사람들과 자꾸 부딪힌다. 그들이 여자에게 바라는 삶은 명확하다. 현모양처. 다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이기적인 존재로 몰아붙인다. 개인의 목소리를 도저히 낼 수가 없다.

대체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한 지방대생 엄마가 떠오른다. 어릴 때는 남녀 차별을 잘 모를 정도로 남자애들과 어울려 지냈다. 집에서도 큰 차별을 못 느끼고 자랐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때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윽박지르는 아버지에게 못 이겨 인문계를 포기하고 상고에 진학했다. 가부장이 진짜 가부장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족을 온전히 경제적으로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생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버지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가족 안에서 절대 권위를 휘두른다. 맞서 봐야 좌절감만 느낀다.

상고 진학 이후부터는 가부장제 아래 여자에게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살았다.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1년 연애 후 스물두 살에 결혼하고, 첫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며 전업주부로 지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돈 벌러 나가야 했다. 현모양처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남편의 경제 능력이 변변찮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내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처음에는 말단직원에 불과했지만 점점 인정을 받고 나중에는 거의 오너 위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진짜 오너는 아니었다. 오너와 마찰이 생겨 결국 10년 이상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전도하러 온 사람을 따라 종교를 믿게 됐다. 힘을 얻어 다시 일을 구했다. 그곳에서도 성실하게 일했더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망이 감사로 바뀌었다.

이제 삶을 되돌아보니 큰 후회 없이 모두 다 잘되었다.

“살아가는 거 중에 그냥 하나하나 지나가는 것들이 그냥 우연 같지만 다 필연이라는 거지. 어떤 한 시점에서 이 과정들을 쭉 봤을 때. 그 과정이라고 생각해.”

행운의 신정론! 내 의지나 행위와 무관하게 얻은 행운의 비합리성을 합리적 언어로 정당화한다. 과거 힘들 때를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눈물겹도록 행복하다. 그런데 이 행복이 사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얻게 된 행운에 가깝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자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왔더니 결국 인생 중후반에 행운이 깃든 것이다. 지금은 살아온 날들 중 어느 때보다도 좋다.

“이제 나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까 그것도 좋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좋아. 하루를 잘 살고 싶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딸들이 격하게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행운의 신정론에 빠져 있는 엄마들은 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부조리하다거나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을 이해하려면 우선 주어진 세계를 넘어 이상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긍정적 언어를 창출해야 한다. 그 언어를 준거로 해서 이 세상의 질서를 보아야만 현실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사회과학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페미니즘 책들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 그만큼 딸들이 자신들이 받는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해 달라는 거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CEO 총장이 장악한 대학에서는 페미니즘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취업이 존재 이유가 된 대학은 기업이 싫어하는 인재를 키울 수 없다며 그나마 있던 페미니즘 강의마저 없앴다. 어느 여대에서는 여성학을 여성지도자 과정으로 슬그머니 바꿔쳤다. 이러는 사이 젠더 분리주의와 남녀혐오라는 부정적 언어가 기승을 부린다. 행운의 신정론에 올라탄 악한 가부장제 습속이 일상을 지배한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긍정적 언어를 제대로 가르쳐 일상의 ‘평범한 악’과 다투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