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한다더니 무슨 고문인지 기분만 좋잖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유난히 계단이 많아 아침마다 가벼운 등산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계단 군데군데에 누군가 재미있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계단을 조금 오르다보면 “20㎉를 줄였습니다!”라는 반가운(!) 문구가 밝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떤 계단에는 보다 심각하게 “수명이 10분 연장되었습니다!”란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고문한다더니 무슨 고문인지 기분만 좋잖아

재치있는 격려문구라고 감탄하다가 문득 수명이 연장된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아마도 이 문구는 현재 흡연자가 담배를 끊으면 수명이 몇 년 연장된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상관관계’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접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문구는 개인의 수명에 대해 결정론적으로 예측한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평균수명에 대해 통계적으로 예측한 결과라는 점이다. 여기서 개인에 대한 결정론적 예측이 아니라는 말은 각자의 수명이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정해진 수명이 우리가 평생 행하는 자질구레한 일에 의해 조금씩 줄거나 느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이렇다면 염라대왕은 너무 바빠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음, 이 친구가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시네. 5분을 수명에서 감해야겠군. 어,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열심히 운동을 하잖아. 그럼 3분을 더해줘야겠네.’

통계적 예측이란 내가 속한 집단이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평균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 요인에 대한 과학 연구가 정확히 이런 예측에 들어맞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예측에 대한 증거는 소금 섭취량이 상이한 두 집단을 놓고 관찰한 결과를 통해 얻어진다. 이런 통계적 증거는 염분이 우리 몸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를 통해 보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조차 우리 몸에 작용하는 인과적 요인이 너무도 많기에 염분이 특정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포탄의 궤적처럼 결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평생 담배를 피우고도 폐암에 걸리지 않고 장수했다는 사람과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단 관리도 잘했는데 단명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통계적 예측의 특성상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예외적 현상에 불과하다.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아니라 집단 사이의 평균적 차이에 주목할 것이다. 재생 타이어를 사용하는 버스가 항상 사고를 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용연한 이내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버스에 비해서는 분명 더 많은 사고를 낼 것이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정부라면 당연히 공공의 안전을 위해 타이어 사용연한을 규제할 것이다.

통계적 지식의 활용에서 준거집단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공산품을 생산하는 한 공장을 생각해 보자. 이 공장의 한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면 그 기계에서 생산된 제품은 공장 전체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해 불량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이 기계에서 생산된 불량품에 대해 전체 생산품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이 정도의 불량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명백한 통계적 오류이다. 전체 공장이 아닌 그 기계에서만 나온 생산품을 준거집단으로 삼아 불량품이 나온 원인을 찾았어야 제대로 된 통계적 예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적 오류는 생산 관리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작동한 기계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근본적 문제점을 발견하고 불량률을 낮출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흔한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발언을 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런 주장은 준거집단을 잘못 설정한 초보적인 통계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도 세월호 참사는 총체적 관리 부실과 우리 사회의 관행적 병폐가 원인으로 작용한 병리적 사고였다. 이런 병리적 사고를 발생시킨 수많은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어차피 일어나기 마련인 흔한 사고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불순해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990년대 초의 어느 날, 고위 공무원들과 함께 도로 개통식 테이프커팅을 위해 거리에 나온 서울시장의 눈에 자그마한 도로변 공지가 들어왔다. 그는 즉흥적으로 가볍게 한 마디 던졌다.

“저런 데에는 잔디나 뭐 이런 것 좀 심으면 보기 좋지 않나?”

고문한다더니 무슨 고문인지 기분만 좋잖아

상사의 말이라면 한 마디도 허투루 듣는 법이 없는 성실한 공무원들은 며칠 후 그곳을 잔디밭으로 만들었다. 시장의 말뜻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경관 개선과 토사 유출 방지에 도움이 되는 여러 식물 중 하나를 선택해 심어라’ 정도가 될 터이나, 관제(官製) 해석은 그런 최소한의 ‘창의’도 용납하지 않았다. ‘시장이 언급한 것은 잔디뿐이니, 임의로 다른 식물을 심었다가 만약 시장의 맘에 들지 않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공무원다운 해석이었다.

컴퓨터 CPU(Central processing unit·중앙처리장치)가 386에서 486을 살짝 딛고 펜티엄급으로 치닫던 때, 어느 공공기관에서 컴퓨터 100여대를 한꺼번에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계약에서 납품까지 절차를 밟는 동안 486시대가 지나가 버렸다. 업체 담당자는 같은 가격으로 펜티엄급 컴퓨터를 납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공공기관 담당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486 컴퓨터는 곧 무용지물이 될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공무원이 명확히 인지한 자기 책임은, 계약서에 쓰인 대로 물품을 비치해 두는 것뿐이었다. 새로 장만한 컴퓨터들이 곧바로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그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착오 없이 실행하는 미덕은 때로 이런 코미디를 연출한다. 그런데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은 오히려 적다. ‘시키는 대로’ 하는 미덕은 대개 희극보다는 비극을 낳는다. 당장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충실히 따른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그뿐 아니다. 지금의 교육부 장관도 차관도 국사편찬위원장도 ‘국정 역사교과서는 후진 독재 국가에서나 쓰는 것으로서, 현재의 검인정 체제도 장차는 자유발행제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생각에 무슨 소신이니 지론이니 하는 이름을 붙일 이유는 없다. 이는 현대 세계인의 극히 평범한 상식이자 교양일 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몰상식하고 무교양한 지시를 내리자마자, 이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이자 실행자가 되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신념으로 말미암아, 상식과 교양은 몰상식과 무교양 앞에 하릴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최근에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조작사건 재심 재판에서 검찰 지휘부의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한 검사 한 명이 ‘심층 적격심사’를 받고 있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부당함이 정당함을, 파렴치가 염치를 심사하는 꼴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공직사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갑을 관계에서 주로 ‘갑’의 위치에 서는 사람들은 종종 “나도 시키는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며 배부른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늘 남을 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종종 또는 일상적으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에서건 학교에서건 그 밖의 다른 조직에서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이미 한국인들의 보편적 도덕률이다.

어떤 집단에서나 가장 흔한 질책은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라고 그랬냐?”이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보편적 도덕률인 사회에서는, 상식과 교양과 염치와 도덕이 몰상식과 무교양과 파렴치와 부도덕의 지시를 받는 일이 수시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시키는 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능력은 사람보다 기계가 훨씬 뛰어나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믿음은, 사람을 성능이 떨어지는 기계처럼 취급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런 믿음이 그리는 바람직한 사회는, 단 한 사람의 지휘자와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는 나머지 전체로 구성되는 기계 사회이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실행했을 뿐입니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남긴 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말에서 평범성에 깃든 악마성을 발견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만이 미덕인 사회가 대량생산하는 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내버리고 그 자리에 기계의 마음을 채워 넣은 평범한 악마들이다.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 ‘어떤 현대사’를 연재한다. 시기는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로 안 선생이 겪었던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과 전쟁 속에 부대낀 한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 특히 지역운동사를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이게 비행기? 고문

그러는 중 10시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린다. 그 소리는 밖에선 먼 소리로 들려서 어쩌면 낭만스럽기까지 했는데, 바로 울리는 사이렌 바로 밑에서 듣게 되니 창문까지 울려 우악스럽기 그지없다.
둘은 바로 누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얼마 안 되어 밖에 유치장 문을 여는 덜컹 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울린다. 그리곤 저벅저벅 구두소리가 나더니 바로 우리 감방 앞에 멎고 문 따는 소리가 철커덕 했다. 그리고 순사 하나가 얼굴을 쑥 밀고,
“안재구, 나와!”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다.
순사는 나를 앞세워 나갔다. 나는 오후에 조사받았던 곳으로 무작정 갈 수밖에 없었다. 그쪽으로 가는 복도에 들어서자 순사는 구령쪼로 명령한다.
“아니야, 오른쪽으로 가!”
나는 뒤로 힐긋 한번보고 명령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바로 앞에 난 계단을 내려갔다. 안에서 불빛이 나오는 방이 있었다. 문이 열려 있기에 그냥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은 콘크리트로 된 것이고 벽은 나무판자 벽인데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가죽인지 고무인지 모를 길다란 것이 벽에 친 굵다란 못에 걸려있다. 섬뜩하고 기분 나쁜 방이다. 방은 반 지하실이다.
나를 데리고 온 순사는 나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더니 웃옷을 벗겨 저만치 내던지고 벽에 걸려있는 군고구마 굽는 아저씨들이 쓰는 벙어리장갑을 벗겨 내 손에 끼웠다. 벽에 걸려있는 굵다란 포승을 끌러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목을 뒤로 돌려 결박하고 포승으로 허리와 팔꿈치 위 팔뚝을 감아 허리와 가슴을 몇 번이나 감아 묶었다. 그리고 천정에 매달린 기다란 밧줄 끝에 있는 고리에 나를 묶은 포승 끝을 끼워 묶어 놓았다. 그 다음 나의 발목에 두터운 걸레쪽 같은 것을 감고 발목을 모두 감아 꽉 묶었다. 그리고 벽에 세워 벽에 있는 고리에 나를 묶은 포승을 걸어 땅겨 나를 꼼짝도 못하도록 해 놓고 아무 말 없이 휭 나가버렸다.
나는 어마지두에 당한 일이라 넋이 나가버렸다.
그놈이 나가자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아! 이제는 당하는구나.”
겁이 났다. 실로 어린 나에게는 엄청난 공포였다. 그러면서 한편 오기도 났다.
“그래, 이놈들, 어디 한번 해보자!”
마음을 그렇게 다잡아먹으니 가슴 저 밑에서 따뜻한 무엇이 치밀어 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졌다.
나를 데리고 온 순사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순사와 함께 앞서 한 놈이 들어왔다.
나는 숙였던 얼굴을 들고 똑바로 보았다. 바로 그 놈이다. 손기용 선생님을 잡아가던 형사였다. 정해돈이다.
정해돈은 벽에 있는 고리에 걸려있는 내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제 놈이 신은 슬리퍼를 한 짝을 벗더니 나의 양쪽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때리기만 했다.
나는 뺨을 맞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왜놈 때 왜놈 선생에게 많이 맞아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그것보다 훨씬 더하다. 그래도 이를 꽉 물고 맞았다. 이윽고 입에서는 피비린내가 났고 입안이 터져 피가 목젖을 넘어갔다. 코피도 터졌다. 처음은 그대로 넘겼지만 차츰 입안에 고였다. 자꾸 맞는 가운데 피는 더욱 많이 나왔고 숨결도 급해졌다. 그래서 숨을 내쉴 때 입안에 고인 피도 함께 뱉어냈다. 에라 모르겠다.
“푸앗, 푸앗.”
뱉은 피는 그놈의 얼굴에 튀었다.
“어! 이 자슥 봐라. 이 〇할 놈의 자석, 쪼만 놈이 일부러 이러는 아이가?”
“어이, 이 순경, 이 자석 입을 수건으로 묶엇!”
“예!”
순사는 걸레쪽 같은 수건으로 내 입을 막아 뒤로 묶었다.
그리고 때리던 일이 지겨워졌는지 그놈은 내 앞에 멀찌감치 놓인 책상으로 가서 걸상에 앉았다. 때리는 데 힘이 들었는지 놈도 숨을 씩씩거렸다.
그대로 나를 세워 둔 채 말을 걸어왔다.
“야, 이 자슥아. 아까 낮에 곱게 이야기할 때 다 털어놨으면 이렇게 안 당하지. 안재구 이 자슥아, 이제 경찰서 맛이 어떤지 알겠나. 그쯤 맛 봤으니 이제 털어 내봐. 나도 어린놈을 때리기 좋아 할 놈이 아니야. 어이, 술술 불고 빨리 끝내자. 우리가 니 한테 우짤끼고. 삐라 붙이라고 한 사람이 누구고? 그리고 어디서 삐라를 만들었노? 또 누구하고 만들었노? 어서 말하고 들어가거라. 그러면 내일 집에 보내줄게.”
이놈은 나의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아 놓은 채 똑같은 소리를 수없이 주절댔다. 그리고 담배를 한 가치 피우고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수건을 풀어주었다.
힘이 빠져 밑으로 숙여진 나의 얼굴을 턱을 받쳐 들고,
“이제 이야기할 꺼지. 이야기한다면 묶은 것 풀고 책상 앞에 가서 조서를 꾸미자, 응.”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재차 또 턱을 받쳐 들고 재촉했다.
나는 그놈 얼굴을 보고 말했다.
“보소, 나는 낮에 다 말했소. 삐라는 내 혼자 만들었고 내 혼자 붙였소. 낮에 다 이야기했소.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어이,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다 불어버려. 그러면 니 속도 편할 끼다. 남 애태우지 말고 어서 말해.”
“.....”
더 이상 나는 대꾸를 하지 않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결국 이놈은 화가 잔뜩 났다.
“허어, 이 자슥 봐라. 이제 말대답도 안 하네. 아이라고 봤다간 큰일 나겠다. 오야, 이 〇할 놈아, 그렇다면 니가 죽어나가지 별 수 있나!”
“어이, 이 순경, 이놈 아 비행기 태워!”
그러자 이 순경이 내 곁에 와서 등 뒤에 고리에 걸어놓은 것을 풀더니 나를 방 가운데로 밀었다. 발목이 모두 감겨 있는지라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 순사놈이 벽에 있는 손잡이를 휘휘 돌려 천정에 매달린 밧줄을 감아올리자 나는 일으켜 세워졌고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겨우 발끝이 땅에 닿을 만치 매달았다.
그러자 정해돈은 나를 빙그르르 돌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발을 땅에 대어보려고 했고, 그러면 저절로 용을 쓰게 되어 그 힘이 팔에 어깨에 미쳐 가슴까지 빠개지는 듯 했다. 얼굴은 시뻘겋게 되었고 목의 핏줄은 불거져 나왔다. 나중에는 눈앞이 부옇게 되었고 의식이 몽롱해졌다. 그러면 줄을 내려준다. 발바닥이 땅에 닿았다. 숨결이 펑 소리가 나게 틔었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수없이 맞는 따귀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몇 번인지 돌자 나는 거의 탈진이 되었다. 나중에는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도 깨닫지 못했다.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무슨 꿈인지 아리숭 하는 가운데 누가 얼굴을 흔드는 기척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 진 구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어디를 잡은 것 같은 느낌으로 정신이 돌아왔다. 그럴 것이 방바닥은 물로 흥건하고 나는 그 가운데 완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기절을 하자 바께쓰에 있는 물을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정신이 돌아오자 순사 놈은 묶은 것을 모두 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정신이 좀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정해돈은 없었다.
순사 놈은 널브러진 나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포승을 풀면서 계속 욕질이다. 나를 보고하는 욕은 아니었다. 고문하는 뒤치다꺼리에 화가 난 것 같다. 다 풀고 나자 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나는 그대로 스러졌다. 몇 번을 일으켜 세워보았지만 나는 오금이 펴지지 않아 그대로 쓰러지기만 했다.
“〇발, 비행기를 태워도 적당히 해야지. 영 못 걷잖아. 에이 〇발 안되겠다.”
라고 투덜거리며 나갔다. 잠시 후에 순사 하나를 더 데리고 와서 나의 양쪽 어깨죽지를 하나씩 걸고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나는 걸을 수가 없었다. 거의 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으니 완전히 탈진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질질 끌려 유치장으로 갔다.
감방으로 끌고 가자 문을 따고 자는 사람들을 깨웠다. 모두 잠을 깨고 끌려오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나는 감방 한 가운데 완전히 해파리처럼 퍼졌다.
“이 사람 재구, 우째 됐노?”
박희병 선생은 내 머리를 자기 무릎에 두고 들여다보았다. 곁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놈의 손들, 아이를 완전히 걸레로 만들었네!”
박 선생은 내 얼굴을 흔들면서 애타게 말했다.
“재구 이 사람, 정신 차리게.”
나는 박 선생님을 보고 마음이 놓여 편안해졌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비행기를 하도 많이 타서 걸을 수 없지만 자고 나면 낫겠지요. 걱정하지 마이소.”
“오야, 알겠다. 기운 내거라.”
“오늘밤은 천상에 똥찜을 쓰야 하겠네. 그래야 내일에는 거뜬히 일어나지. 이 사람들아, 똥통 위에 담요를 깔아라. 자네, 오늘은 거기에서 자게.”
똥통인지 무언지 아무 생각 없이 드러누웠다. 스르르 잠이 퍼붓듯이 온다. 나른하고 편안한 잠이었다.
그 다음부터 하루걸러 고문을 당했다.
세 번째부터는 꽤도 나왔다. 맞을 때 그리고 물을 먹일 때 빨리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도 알았고, 특히 맞을 때는 힘을 완전히 빼버리면 그저 퍽퍽 소리만 낫고 아픈 감각은 남지 않는다는 것도.
이렇게 근 열흘을 당했다.
놈들은 나로부터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5월 하순에 들어서자「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었다.「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자 소련 측 대표가 제일 먼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리하여 미군정은 많은 정치범을 석방하게 되었다.
당시 밀양경찰서는 나를 소년원에 송치하려고 했지만 나는 아직 만 14세 전이라 송치할 수 없었다. 나를 고문해서 손기용 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민주인사를 연루시켜 사건을 확대하려 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했다.
정치범 석방이 있자 그날로 박희병 선생은 석방되어 나가셨다. 그러나 나는 내보내지 않고 의사를 불러 진찰을 하고 타박상을 없애기 위해 약을 바르고 먹이고 법석을 떨었다. 이 바람에 할머니는 아침부터 밀양경찰서에 와서 야단을 쳤다. 멍 자욱이 어지간히 가셔지자 이틀 후에 석방했다. 18일간이다. 몇 달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 밀양경찰서장은 박찬현이다. 학병을 자원해 나갔던 청도의 지주의 아들이다. 나중에 박정희 유신정권 때 「유정회」 국회의원도 했고 문교부 장관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