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물을 인지하는 데 시각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인간은 사물을 인지하는 데 시각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아름다움은 인류의 보편적 반응이자 동시에 개별적 반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란 말 없는 사기다.”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말이다. 인간의 여러 유형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철학자다.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영 평가가 박하다. 사실 아름다움만큼이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면서, 동시에 충돌하는 가치도 드물다. 꽃밭에서 연신 탄성을 지르는 군중을 보노라면,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지 여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누가, 무엇이 더 아름다운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정말 미의 기준은 모두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왜 어떤 것이 아름답고,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리고 왜 각자 미에 대한 기준이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른 것일까? 

인간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가?

인간은 사물을 인지하는 데 시각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니코 틴버겐은 동물 연구를 통해 인간이 만든 모조품에 더 큰 자극을 받거나 뻐꾸기 알을 품는 숙주 의 행태를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옥스퍼드대 제공

인도의 물리학자이지 신경과학자인 고팔라사무드란 나라야나 라마찬드란 박사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일종의 초정상자극이다.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자극에 이끌리는 신경학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종종 과도한 자극에 대하여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상 수준을 넘는 자극, 즉 초정상자극이다. 


예를 들어 붉은 색의 꽃에서 주로 꿀을 따는 벌이라면, 붉은 색의 자극에 쉽게 흥분하는 뉴런을 발달시키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따라서 일반적인 꽃이 보이는 붉은 색의 평균값보다 더 선명한 붉은 색에 신경이 더 강하게 탈분극되는 경향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꽃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꽃, 혹은 그림으로 그린 꽃이라도 상관없다. 충분히 붉은 색을 띄고, 꽃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으면 벌떼가 달려든다. 속은 것이다. 


이를 신경미학에서는 '피크 시프트 원리(peak shift principle)'라고 한다. 과장된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대상이 가진 여러 패턴 중에서 강력한 신경학적 반응을 유발하는 특정 자극을 강조하여 감정적인 느낌을 더 강하게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용어를 모르더라도 예술가들은 이미 이 원리를 널리 활용해왔다.


예를 들어 고흐의 작품을 보자. 디테일은 엉터리다. 자연의 세계와 그리 닮지도 않았다. 하지만 뇌의 시각 중추는 이러한 ‘인상파’ 작품을 더 ‘인상적’으로 인지한다. 실제 해바라기보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분명한 ‘해바라기’ 느낌을 주는 이유다. 고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떤 자극이 더 강렬하게 경험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순적 반응이 일어난다. 자연 풍경을 옮긴 것이 그림인데,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이상한 감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림이 제공하는 정도의 초정상자극’을 주는 멋진 풍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초정상자극이 유발되는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연선택과 성선택에 의한 결과다. 그림에 숨겨진 미적 의미를 찾는 것은 수풀 속의 포식자를 찾아내려는 경향, 대칭성을 추구하는 것은 온전하고 감염되지 않은 성적 파트너를 추구하려는 경향, 번식력이 왕성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모방하는 둥글고 붉고 윤기 있는 대상에 대한 선호, 배경의 시각적 잡음에서 필요한 먹이를 채취하기 위해서 색을 분리하고 대비하며 혹은 그룹을 지어 인지하는 경향, 그리고 특정 자극(어머니의 모습) 등이 주는 유리함을 감정적 선호와 연결 짓는 경향 등 다양한 적응적 인지 모듈이 미적 인지와 관련된다.

인간의 미감, 동물의 미감

아름다움을 인간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복잡하고 미묘한 상징적 언어 능력을 통해 대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이를 다시 아름다운 인공물로 재현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인간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다. 동물도 대상에 대한 호오의 감정 반응을 보이는데, 대상이 생존 상의 직접적 이득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아마 침팬지는 바나나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기쁨을 느낄 것이다. 침팬지는 바나나 그림과 실제 바나나를 구분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바나나 그림을 보면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심지어 이미 바나나를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른 침팬지라고 해도 말이다.


원래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기원은 자연환경이다.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새의 날갯짓이나 오색찬란한 비늘을 가진 물고기다. 열대 지방의 조류나 어류가 보이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분명 인간을 겨냥해서 진화한 것은 아니다. 대개는 성선택을 통해 빚어진 형질이다. 암컷을 유혹하려는 수컷의 오랜 적응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아름다운 빛깔의 꽃도 그렇고, 탐스러운 과일도 그렇다. 각각 꿀벌을 유혹하거나 포식자를 유혹하려는 것이다. 유혹에 성공해야만 수분에 성공하고, 씨앗도 널리 퍼트릴 수 있다. 유혹의 대상은 각자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과장된 색깔, 과장된 모양, 과장된 향기다. 테오프라스토스의 말마따나 ‘미는 말 없는 사기다’. 물론 나쁜 의미의 사기는 아니지만. 

아름다움의 폭주

인간은 사물을 인지하는 데 시각을 얼마나 이용하는가

미에 대한 인간의 선호는 그에 대한 독특한 행동 반응을 유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름다움은 폭주한다. 진화적 줄달음이라고 하는데, 생존 상의 손해를 무릅쓰고 특정한 형질이 과도하게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장 흔한 경우는 역시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의 여러 형질이다. 수컷 공작의 길고 아름다운 꼬리는 이미 진화이론을 접한 독자라면, 진부한 예로 생각할 정도로 잘 알려진 사례다. 종종 수컷은 수명을 갉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아름다워야만 교미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럼 암컷은 왜 그러한 아름다움에 집착할까? 아름다운 아들을 낳아야, 아들도 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를 이은 폭주가 시작된다. 수컷은 점점 과장된 색, 과장된 모양을 가지도록 진화한다. 


일부 진화학자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미술작품, 실용성이 부족한 멋진 건축물, 감동적인 문학작품 등이 다 이러한 폭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수한 두뇌마저도 성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섹시한 뇌를 가진 남자가 짝을 많이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처럼 섹시한 뇌를 가진 아들도 많이 낳았을 것이다. 점점 영리한 두뇌를 가진 이가 많아졌다는 가설이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인간의 우수한 두뇌는 단지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과도하다. 우리는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천재적인 두뇌가 반드시 높은 생존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녁 끼니를 걱정하는 빈궁한 소설가,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가난한 화가가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대학에서 연구하다보니, 주변에는 온통 똑똑한 사람이 넘쳐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살림살이가 한심하다. 중년이 되어서도 값싼 학생식당을 애용해야만 하는데, 이끔되면 우수한 두뇌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냥 뇌는 잠시 꺼두고, 막노동을 하는 편이 일신의 안녕에는 더 유리하다. 


성선택은 생존 상의 유리함을 기반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고, 줄달음 현상은 암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도 일어난다. 엄마는 귀여운 아기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귀여운 아기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신처럼 귀여운 아기를 낳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귀여운 아기를 좋아하는 애착 본능이 아기의 귀여움과 공진화했다. 아이는 마냥 귀여워지고, 우리는 귀여운 대상에 ‘환장’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모듈은 이내 다른 대상에서도 ‘귀여움’을 찾게 된다. 그런 이유로 점점 귀여운 개를 사육하고, 귀여운 고양이를 육종했다. 인형과 장난감 같은 인공물도 점점 귀여워진다. 심지어 중년이 넘은 사람도 어떻게든 더 어려보이고, 더 귀여워 보이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


미에 대한 인간의 선호는 그에 대한 독특한 행동 반응을 유발한다. 우리의 뇌는 주변 사물에서 어떤 자극을 받으면, 이러한 경험을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여 분류한다. 이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활용한다. 수많은 꽃, 수많은 나비, 수많은 과일은 각각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분류체계에서 시작한 것이다. 보통 아름다운 대상은 더 세밀하고 자세하게 분류되고, 추한 대상은 대략 듬성듬성한 카테고리로 뭉뚱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분류 욕구(taxophilic)라고 한다. 인류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에 의하면, 이러한 욕구는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에 버금가는 기본적 욕구로 발전했다. 우리는 세상을 구분하고 나누고 이름을 붙이려는 본능이 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세기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대상에게 이름을 붙이려는 본성이 있다. 김춘수의 싯구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일반적이고 애매한 자극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름다움은 인류의 보편적 반응이자 동시에 개별적 반응이다. 대상이 주는 아름다움은 다양한 진화적 기전으로 끝없이 폭주하고, 따라서 대상의 특징은 점점 과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세세하게 분류하고 나누려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각자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튤립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장미가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며, ‘저런 형편없는 심미안 같으니’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사실 둘의 마음은 똑같다. 고흐의 작품과 고갱의 작품은 분명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두 작품이 전달하는 신경미학적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개인차가 다른 종의 개체차보다 두드러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아마 그냥 자로 재보면, 사실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다른 동물에 비해 개체 간 형질의 분산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대상을 단지 무게와 길이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대상의 차이점을 식별하도록 고도로 진화했고, 이를 통해서 분명 인간은 점점 세상을 더 다채롭게 지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보편적 심리가, 역설적으로 복잡다단한 미적 평가 기준으로 분화한 것이다. 각각 다른 대상의 아름다움에 감탄의 탄성을 지르는 두 명의 심미안은 분명 다르지만, 동시에 같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