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

한 벤처캐피털 전문가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위한 경쟁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리카이푸 전 구글차이나 대표도 에서 “중국 기업에는 ‘시장 중심’이 가장 우선이고 가장 중요하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제품이든 만들고, 어떤 사업모델이든 다 받아들이고, 어떤 사업에든 뛰어들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바트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

마크 저커버그 미국 메타(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왼쪽)와 마윈 중국 알리바바 창업자가 2016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개발포럼’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24시간 내, 세계 72시간 내 배달.’

2018년 7월 방문한 중국 남송의 고도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의 본사 전시관에는 이런 문구가 내걸려 있었다. 알리바바의 정광밍 홍보담당자는 “마윈 회장이 지난해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5년간 156억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했다”며 “아시아에선 쿠알라룸푸르와 홍콩, 유럽에선 벨기에 리에주와 모스크바, 그리고 중동의 두바이를 글로벌 물류 허브로 선정했다”고 소개했다. 알리바바는 이런 배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창고에 로봇 배치를 확대하고, 세계 주요 도시에는 전세기를 투입한다고 했다. 세계 주요 시장을 3일 배달권으로 만들겠다는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세계전자무역 플랫폼’(eWTP)을 구축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디지털 자유무역지대(FTA)’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세계 전자상거래시장의 중심에 서겠다는 것으로, 이 프로젝트는 창업자 마윈이 2016년 9월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주창해 공동성명으로도 채택됐다. 알리바바의 야오야오 국제정부사무 이사는 “우리는 물류혁신과 신속한 통관, 저렴한 결제, 빅데이터를 이용한 고객연결 등을 지원함으로써 여기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보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시아에선 말레이시아·타이, 유럽에선 벨기에, 아프리카에선 르완다·에티오피아가 가입한 상태다.

알리바바는 금융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모바일 결제수단인 알리페이 가입자는 6억명을 넘어선 상태였으며, 소상공인 대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알리바바 관계자는 ‘310대출’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대출 신청에 3분, 승인에 1초, 사람의 개입 0’을 뜻한다고 했다. 알리페이를 통해 확보한 개인사업자의 거래내역과 신용정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런 신속한 대출이 가능하며, 이미 700만명이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생소했던 사업이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사업들은 ‘천하에 어려운 장사가 없게 하자’라는 모토로 창업한 마윈의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꿈이 과했던 것일까. 알리바바는 2020년 10월부터 중국 당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마윈이 중국의 금융을 ‘전당포 영업’에 비유하며 후진적인 금융감독 방식을 공개 비판한 게 화근이 됐다. 마윈은 그해 10월24일 연설에서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을 두려워한다”며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듯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관리해나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혁신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고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혁신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제로'(0)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흘 뒤인 11월3일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의 금융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전격 중단시켰다. 공모금액 340억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가 상장을 이틀 앞두고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마윈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4월에는 반독점 위반 혐의로 알리바바에 벌금 182억위안(약 3조1000억원)을 물렸으며, 알리바바 주가는 1년 반 사이 약 70%나 폭락한 상태다.

중국에 알리바바가 있다면 미국엔 아마존이 있다. 미국 서부 해안도시 시애틀의 온라인서점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1억개가 넘는 상품을 판매하는 ‘에브리싱 스토어’(만물상)를 넘어 이제는 인공지능·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기술의 세계적 강자로 부상했다. 첨단 물류망과 엄청난 규모의 소비자 데이터, 그리고 저가 전략이 무기다. 제프 베이조스 회장은 젊은 시절 월가의 헤지펀드에서 ‘정글 자본주의’를 익힌 탓인지 미국에서도 인정사정없는 자본가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아마존이 진입한 시장에선 거의 예외없이 기존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책·음악·장난감 등 시장에서 100년 넘게 군림했던 경쟁자들이 나가떨어졌다. 약국·소상공인대출·식료품·결제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보험·스마트홈·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에도 진출했다. 더 나아가 우주사업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인공위성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사업인 ‘프로젝트 카이퍼’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말부터 5년간 지구 저궤도에 소형 군집위성 3236개를 쏘아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은 100억달러에 이른다. 베이조스가 창업한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은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유인 우주여행 시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미·중을 대표하는 빅테크로, 이들의 미래는 두 나라가 신산업에서 얼마나 혁신에 성공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아마존이 알리바바에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이 최근 두 회사를 비교한 자료를 보면, 아마존의 지난해 글로벌 전자상거래 매출액은 4076억달러(약 518조원)로 알리바바의 989억달러(약 126조원)보다 4.1배 많았다. 다만, 알리바바는 총거래규모(GMV)가 아마존의 약 2배, 월간 사용자 수는 3배 가까이 많아 성장잠재력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클라우드 부문에서는 아마존 매출이 622억달러로 세계 1위(시장점유율 33%)이며, 알리바바는 111억달러로 세계 4위(6%)다. 대신증권은 자율주행·로봇 등 신산업과 관련해 “아마존은 뚜렷한 미래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알리바바는 아직 초기 투자 단계”라고 평가했다.

미-중의 빅테크 대전은 흔히 ‘가파(GAFA) 대 바트(BAT)’로 일컬어진다. 가파는 구글·아마존·메타(페이스북)·애플을, 바트는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를 일컫는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화웨이 또는 샤오미를 덧붙여 ‘가팜(GAFAM) 대 바스(BATH), 바츠(BATS)’로 부르기도 한다. 두 나라 빅테크들은 빅데이터·인공지능·전기차·클라우드 등 신산업에 맹렬히 투자하고 있다. 미국 5대 빅테크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은 1549억달러(약 197조원)였다.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사 500대 기업 중 공시로 확인 가능한 224곳의 연구개발 투자액 60조원의 3.3배에 이르는 규모다. 개별 기업으로 비교해봐도 아마존이 561억달러로 알리바바(87억4000만달러)의 6.4배다. 구글은 315억6000만달러로 비슷한 사업모델인 바이두(39억1000만달러)의 8.1배다.

물론 이런 투자규모만으로 두 나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중국 기업들은 인프라·금융·수요창출 등 많은 부분에서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두의 연구개발 투자는 구글에 훨씬 못 미치지만 자율차 개발에서 구글을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부 개입이 투자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중국 산업의 성장사는 이와는 사뭇 달랐다. 중국 벤처기업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중국의 벤처투자 시장을 모두 경험한 한 벤처캐피털 전문가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기 위한 경쟁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리카이푸 전 구글차이나 대표도 <에이아이(AI) 슈퍼파워>에서 “중국 기업에는 ‘시장 중심’이 가장 우선이고 가장 중요하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제품이든 만들고, 어떤 사업모델이든 다 받아들이고, 어떤 사업에든 뛰어들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보다도 생존경쟁이 더 치열하며, 이런 점이 그동안 중국 산업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최근 2년간 민간기업에 대한 개입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점은 무시 못할 변수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마윈의 ‘설화 사건’ 이후 반독점, 금융안정, 개인정보보호 등을 명분으로 ‘빅테크 길들이기’에 본격 나섰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8월 공동부유 정책을 내세운 뒤 이런 기류는 더 강해졌다. 정부가 빅테크의 독점이나 불공정 행위를 규율하는 건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 아마존의 베이조스가 우주를 무대로 마음껏 활보하는 상황에서 마윈 같은 혁신적 기업가가 1년 반 넘도록 공개 석상에조차 등장하지 못하는 건 중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못한 신호다.

바트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