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어느 병사의 죽음 - 로버트 카파作

2008. 7. 14. 09:20

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어느 병사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 로버트 카파作

"만약 당신의 사진이 문제가 있다면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 로버트 카파로버트 카파 사진, 설명(@Magnum)


[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41. 로버트 카파 '어느인민전선파병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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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총 맞고 쓰러지기 직전 모습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 알려

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화려한 플라멩고와 열정적인 투우. 스페인 하면, 우리는 '정열의 나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열 뒤에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같은 광기와 신비, 극도의 분열로 인한 내전을 겪으며 나타난 우울과 비극의 역사가 숨어 있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이웃나라가 19세기 시민혁명을 경험하며 근대 시민사회로 나아갈 때, 스페인은 여전히 전 국토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 교회와 절대적 권한을 가진 왕족과 귀족의 폭정과 부패로 신음했다. 20세기에도 과거에 대한 보수적인 집착,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극심한 지역 갈등으로 끝없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1936년 선거를 통해 공화정부가 들어서자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화정부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은 의용군을 조직해 이에 저항한다. 히틀러가 프랑코를 지원하면서 이 '스페인 내전'은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라 파시즘·나치즘과 이에 대항하는 유럽 자유 시민사회의 대결로 확대되었다.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을 전 세계에 알린 한 장의 사진이 로버트 카파(1913~1954)가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1936)이다. 돌격하기 위해 참호 속에서 뛰쳐나가는 순간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기 직전의 병사 모습이다. 줌렌즈도 없이 표준렌즈로 촬영한 사진은 실존 인물이 죽어가는 순간을 바로 앞에서 본 듯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사진 역사상 이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은 없었다.

이 작품은 다음해인 1937년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로 이어져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매개가 된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카파의 사진에 영감을 얻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헝가리 태생의 유태인 카파는 어린 시절부터 나치의 폭력을 경험했다. 중일전쟁, 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 태평양전쟁의 격전지를 누빈 카파는 베트남에서 사망한 첫 번째 미국 특파원이었다. 무력으로 인한 참혹함을 고발하고 인간의 양심과 세상의 진실을 기록해 나가는 그의 태도를 우리는 '카파이즘'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해변에 떠내려 온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시신 사진 한 장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유럽의 양심을 일깨우기 이미 오래 전, 카파의 저 사진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결정적 순간'이었다.

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이욱상

부산영상예술고 교사


헝가리 출신 로버트 카파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스페인 내란 당시 사진이다.

ⓒRobert Capa1936.09.05

#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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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연출된 사진이란게 중론이다.

이 사진의 제목은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당시 찍은 사진으로 미국 라이프지에 실렸고, 잘 알려진 대로 로버트 카파의 사진이다.

카파이즘이라는 저널리즘 용어가 생길 정도로 유명한 사진이지만 연출된 사진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몇 년전 뉴욕타임즈는 스페인의 파이스바코스 대학의 언론학자인 호세 마뉴엘 스페레구이 교수가 오랜 조사 끝에 이 사진은 사진이 찍힌 장소라고 알려졌던 무리아노에서 35마일떨어진 에스페호 마을에서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 했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당시 전투가 없었던 지역인데다가 카파의 사진이 담긴 롤필름 마지막 컷 단체사진에 이 인물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연출된 사진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진은 이미 전설이 되었고, 사진을 소장하고 관리하는 로버트 카파의 동생 코넬 카파는 이러한 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침묵의 사진이 되어버렸다.

로버트 카파는 왜 이 사진을 연출 했을까?

카파가 공화파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 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출세에 대한 욕망이 더 컸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젊은 나이에 내전에 뛰어든 분쟁사진가들의 대부분이 그런 동기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인 인생 나머지는 분명 카파이즘에 합당한 행동을 보였고, 특히 2차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사진들은 카파의 대표적인 사진들로 소위 '카파이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최근에는 이 사진들 역시 연출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는 하다.)

연출된 사진이라는 의혹으로 유명한 또 하나의 사진은 이오지마에서의 전투' 사진이다.

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이오지마 전투후 성조기를 꽂는 미 해병대 (조 로젠탈)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223일 이오지마에서 일본군을 제압한 미 해병대 병사들 중 6명이 그 섬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을 AP통신 사진기자 조 로젠탈이 찍은 이 장면은 해병대의 용맹성과 조국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진 역시 연출 된 사진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래 처음 이오지마 섬에서 성조기를 게양 할 때 찍은 사진은 어느 아마추어 사진가 (아마도 부대원중의 한명이 아니었을까?)가 찍은 아래의 사진인데, 마침 이 사진을 찍을 때 자리에 없었던 조 로젠탈이 해병대원 6명을 데리고 나중에 연출하여 찍은 사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오지마전투에서의 성조기 게양사진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카파 어느 병사의 죽음
원래 성조기 게양사진

물론 조 로젠탈은 죽을때까지 이를 부인했고 그래서 명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 역시 연출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쉽게 사진에 찍혀있으면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신뢰 하는 감각이 시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진실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믿으려 조차 하지 않는 아집속에 사는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모든 보이는 정보진실인가?

고작 그 옛날 흑백 사진 한 장에서도 보여주고 싶은 것만 연출하고 편집해서 보여주었던 힘들은 오늘날에는 더 많은 기술과 시각효과로 우리를 현혹하고,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진실을 위협하는 중이다.

사족

모든 형태의 가짜뉴스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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