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의 통신시장은 2개의 기업

지난 16일 열린 당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공동부유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개방 정책과 민영 경제 장려·지원·지도 등의 추진을 거론했다. 이는 국유기업이 약진하고 민영기업이 후퇴한다는 ‘국진민퇴(國進民退)’정책으로 개혁개방 기조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시대, 민간기업 대신 국영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국진민퇴’ 경향이 강화되면서 빅테크를 포함한 기업 규제로 민영 부분이 크게 위축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민영 기업, 민간경제는 중국의 젖줄 격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는 빠르게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중소 민영기업들이 등장했다. 중소 민영기업은 중국 시장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중국 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날로 커지고 있다.

어느 국가의 통신시장은 2개의 기업

[사진 AP통신]

중국인도 잘 모르는 가장 ‘잘’ 나가는 민영기업?

92%. 중국 민영기업이 중국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민영기업 수는 4457만 5천 개로, 2012년 1085만 7천 개에서 3.1배 늘었다. 민간 부문에서 생산되는 국내총생산(GDP)의 규모는 60%에 달한다. 또 세수의 50%, 기술혁신의 70%, 도시화의 80%, 시장 주체의 90%를 차지한다.

특히 민영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광둥성이다. 광둥은 중국의 최대 경제 규모를 지닌 곳으로, 중국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2021년 가치 높은(Most Valuable) 중국 민간기업 500》 중 광둥성 민영기업이 87개로 가장 많았다.

지난 12일 광둥성 기업연합회와 광둥성 기업가협회는 《2022 광둥성 500대 기업 발전 보고서》를 비롯해 ‘광둥성 100대 민영기업’, ‘광둥성 100대 제조업 기업’, ‘광둥성 100대 서비스업 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광둥성 500대 기업의 영업수익 총액이 처음으로 17조 위안(약 3353조 4200억 원)을 넘어섰고, 명단 진입 문턱이 처음으로 23억 위안(약 4537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광둥성 100대 민영기업의 영업수익은 7조 4천억 위안(약 1460조 원)을 초과했고, 명단 진입 문턱이 102억 6천만 위안(약 2조 239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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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시는 광동성의 주요 경제 도시 중 하나다. [사진 셔터스톡]

그렇다면 100대 민영기업 상위 3위권에 든 기업은 어딜까. 광둥에서 탄생해 민영 기업의 기둥으로 자리 잡은 화웨이와 텐센트는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화웨이는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중국 민영 기업 및 제조업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이 급격히 축소된 화웨이는 매출이 전년 대비 28% 감소하며  2위로 내려섰다.

화웨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기업, 바로 정웨이그룹(正威集團·Amer International Group)이다. 정웨이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7227억 5400만 위안. 2위 화웨이의 매출은 6368억 위안으로 격차가 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웨이그룹은 ‘광동 민간 기업의 맏형’ 타이틀을 쟁취한 것과 더불어 10년 연속 세계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도 정웨이그룹은 76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위를 차지한 정웨이그룹은 한국은 물론 중국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다. 2013년, 글로벌 500대 기업 중 387위를 기록한 정웨이그룹에 당시 선전시장이었던 쉬친(許勤)은 “정웨이가 어느 회사냐”, “왕원인(王文銀)은 또 누구냐” 등 의문투성이의 질문을 던졌다. 정웨이는 어떻게 광둥 민영 기업의 맏형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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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웨이그룹]

수천억 매출의 비밀, 세계의 ‘구리 왕’에 있다

바로 이들의 ‘핵심 사업’ 덕이다. 정웨이그룹의 핵심 사업은 ‘구리’다. 해당 그룹은 구리 전선 제조 및 반도체 칩 생산업체로, 구리 등 비철금속을 취급하는 기업으로는 세계 1위이다. 1999년 케이블·플라스틱·구리 가공 공장에서 시작한 이들은 금속 채굴, 제련, 가공 전 단계를 담당할 수 있는 그룹으로 성장했으며, 직원 수가 3만여 명에 달한다.

정웨이는 중국 광물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장시 간저우(江西,贛州)지역의 광물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으며 구리와 텅스텐, 주석, 비스무트를 비롯한 희토류, 중금속 등 공급가가 매우 비싼 금속을 중국 내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또 중국 내 40여 개의 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스위스, 미국, 싱가포르에도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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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웨이그룹 창업자 왕원인(王文銀). [사진 바이두]

정웨이그룹 창업자 왕원인(王文銀)은 ‘세계의 구리왕(銅王)’, ‘중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호’ 등의 칭호를 갖고 있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가 발생했고, 경기 변동의 영향으로 당시 구리 광산 가격이 폭락했다. 왕원인은 채광(採鑛), 제련 시장에 진입해 전 세계 300여만 톤의 광물자원을 인수·저장했으며 2005년에는 1천묘(畝: 면적 단위·1묘는 약 666.67㎡)의 구리 제조공장 건설을 준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며 글로벌 수요 약화로 비철금속 시장은 가격은 폭락했다. 구리 가격은 1톤당 2817.25달러로 급락하며 역사적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시 왕원인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십 개의 광산을 인수했다.

그렇게 오늘날 북미, 남미 및 아프리카를 포함한 2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 정웨이그룹의 광산이 있다. 중국 경제 매체 제몐(界面)에 따르면 정웨이그룹이 보유한 총 구리 매장량은 약 2400만~3000만 톤이며, 확인된 광물 자원 매장량의 총 가치는 10조 위안(약 1967조 원)을 넘어선다. 《2022 후룬 세계 부호 순위》에서 왕원인은 1000억 위안의 순 자산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며 120위에 올랐다.

화웨이 게 섰거라, 이제는 ‘반도체’까지 섭렵하는 정웨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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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웨이그룹의 핵심 반도체 재료가 공식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다. [사진 정웨이그룹]

단순 광물 사업을 넘어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웨이그룹은 지난해 반도체칩 핵심 재료인 '나노미터 단결정 구리' 기술을 자체 개발해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중국 관영 매체 CCTV에 따르면 20억 위안을 투자해 반도체칩 핵심 재료를 생산하는 정웨이 장삼각 전자통신사업센터 1기 프로젝트가 지난해 완성되며 저장성 원저우시 핑양현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갔다.

나노미터 단결정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재료다. 그러나 중국 자체 기술이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하던 이른바 차보즈(卡脖子·목을 조르는 핵심 기술) 중 하나였다.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수입제는 원가 부담이 컸으나, 이를 구리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서 수입 제품 가격의 절반 수준에 생산이 가능케 됐다. 정웨이그룹에 따르면 공장 1기 생산능력은 연간 500만 개(릴)로 본격 가동하면 중국 국내 수요 10%를 충족시킬 수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신소재 육성을 두고 미국과 중국은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미·중 경쟁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 초미의 관심사다. 팽팽하게 견제 속에서 중국은 기술 자립을 가속하기 위해 정웨이그룹과 같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중국 기업이 세계적인 제조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저렴한 인건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연구개발을 통한 부단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왕원인 정웨이그룹 회장은 줄곧 ‘기술보국(技術報國)’을 주창해왔다. 또 정부의 지원도 중요시했다. 왕원인은 반도체 분야 자원의 합리적 배치, 우수기업 지원·육성, 성숙한 제품 집중, 핵심 기술 공견(攻坚·난제 돌파) 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산업투자, 산업 뉴타운 개발, 전략적 투자와 재무 투자, 거래 플랫폼 등의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정웨이를 필두로 중국 민간 산업의 판도가 바뀔 수 있을까.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