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방법

람이든 모두가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었기에 평등한 걸식을 하 셨을 것이며 이는바로 자비일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일생은 어떠하셨던가요?그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으시려는 모습으로 일관하신 생애이셨습니다. 성행이 거친 제자나, 법규를 어긴 제자나, 모두를 개과천선하도록 버 리지 않으시고 지도하셨습니다.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는 손수 재비를 내리시어 천도하게끔 하셨는가 하면, 입문하자마자 곧장 떠나 갈 사람 도 일지(□之)라는 법명을 내리시는 자비를 보이셨고, 창녀들도 불성은 같다 라고 하시어 제도의 문을 크게 열어주셨던 모습은 모두를 살리는 대인접물의 자세이며 주소일념 중생을 제도하시는 위대한 마음입니다. 버리지 않으시려는 대 자비의 법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애로점을 이해하여 주는 사람을 향하여 의존하게 됩 니다. 때문에 어떤 능력 이전에 들어주는 자세는 자비의 첫 걸음이기도 합니다. 그 좋은 예가 미카엘 엔테가 지은《모모》라는 책을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모모는 한 걸인 아이였습니다. 말이 없고 미소만 짓는 한 걸인에 불 과했습니다. 그러나 모모 주변의 모든 사람은 그를 좋아 했습니다. 그 것은 그가 누구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든 대상에게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는데 노력을 합시다. 그리고 구원의 일념으로 접근하여 줍시다. 신의나 순리를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나를 버리는 일이 있어도 나는 결코 그를 버리 지 않는 것이 신의이며 불보살들이 하나같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541 공자께서 도적의 수뇌인 도척을 교화한 것이나, 예수께서 당신을 버 린 유다를 교화한 것이나, 석가께서 당신을 죽이려한 조달을 교화한 것 ㅍㅇ 신의가 변함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순리를 좇 아 그 일을 해결하여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대인접물을 할 때 용서하고, 구원하고, 신의 있게 살되 순 리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게을리 말아서 부처와 중생의 간격을 좁혀 보도록 갇이 노력해 본시다 넷째, 부처와 중생은 진리면에서 자이가 있습니다. 진리의 근본자리에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곤 하지만, 있는 면에 서 보면 차이는 또 뚜렷해집니다. 부처와 중생의 커다란 차이점은 깨달 음의 여부와 완전성의 여부에 있다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다시 강조할 필요를 느낍니다. 불지품 10장을 보면 공부가 최상 구경에 이르고 보면 세 가지로 통함 이 있는데 \"그 하나는 영통(靈通)이라,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천지만물의 변태와 인간 삼세의 인과보응을 여실히 알게 되는 것이요, 둘은 도통(道通)이라,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 · 비 · 이 · 해에 능 통하는 것이요, 셋은 법통(7去;m)이라, 천조의 대소유무를 보아다가 인간 의 시 · 비 · 이 · 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 정하는 것이니, 이 삼통 가운데 법통만은 대원정각(大圓正覺을 하지 못 하고는 얻을수 없나니리?'고 하셨습니다. 진리면에서의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이러한 깨달음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55 깨달음을 크게 나누면, 인간의 시 · 비 · 이 · 해를 깨닫는 사통(事通) 과 천조의 대소유무를 깨닫는 이통(理通)으로 구분이 되는데 어떻든 중 생이 중생의 탈을 벗고 범부가 범부의 껍질을 벗자면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부처와 중생의 근본적인 차이가 이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그 무엇ㅇ로도 부정할수 없습니다. 부처와 중생이 이와 같은 만큼 일쳬를 깨달음에 초점을 맞추어 스스 로 부처와중생의 사이를 좁히고 또 좁혀 가야만할 것입니다. 서산 대사는 생사를 두고 '생은 어느 곳을 좆아 오는 것이며, 죽음은 어느 곳을 향하여 가는 것인가, 생이 한 조각구름이 일어난 것이라면 죽음 은 한 조각의 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니, 구름 자쳬가 본래 없듯이 낳고 죽음의 변화가 또한 이와 같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곱씹어 봐야할 말입니다. 진정한 생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참 된 생을 위하여 노력과 정성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부 처와중생의 차이를 좁히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생에서 부처라는 이름을 동경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자 신이 동경의 대상이 되도록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될 것을 서원하고 또 서원하였으면 합니다. 56 - 일상생활속에서의 자비 《대종경》불지품 1장에서 소태산 대종사님은 \"이 세상에 크고 작은 산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 가장 크고 깊고 나무가 많은 산에 수많은 짐 승이 의지하고 살며, 크고 작은 냇물이 곳곳마다 흐르나 그 중에 가장 넓고 깊은 바다에 수많은 고기가 의지하고 사는 것 같이, 여러 사람이 각각 세상을 지도한다고 하나 그 중에 가장 덕이 많고 자비가 너른 인 물이라야 수많은 중생이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다 같이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의 정신과 불교의 사상이 무엇인가를 말할 때 우리는 간단명료 하게 대자대비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불교에 입문하여 부처님의 법을 배워 부처님처럼 살고자 한다면 대자대비를늘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대자대비는 부처님 정신과 사상의 기본이요, 불법의 진수며, 묘의이 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대자대비를 가르치는 방법으로 사 무량심(四無量心)을말합니다. - 57 사무량심은 자심(慈心), 비심(悲心), 희심(喜心), 사심(捨心)으로 자심 ㅇㅍ 인자한 얼굴로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비심은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 는 마음이며, 희심은 다른 이의 기쁨과 슬픔을 내일같이 기뻐하고 슬퍼 하는 것이며, 사심은 좋고 나쁘고 간에 집착을 버리는 공평한 마음을 말합니다. 대자대비는 자비라는 말로 줄여 사용되며, 자비의 어원을 보면 자능 여락 비능발고(慈能與樂 춘.能拔苦)를 줄인 말로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덜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대종경》불지품 3장에서 자비를 다음과 같이 말 씀해 주셨습니다. \"대자(大慈)라 하는 것은 저 천진난만한 어린 자녀가 몸이 건강하고 충실하여 그 부모를 괴롭게도 아니하고, 또는 성질이 선량하여 언어동 작이 다 얌전하면 그 부모의 마음에 심히 기쁘고 귀여운 생긱이 나서 더욱 사랑하여 주는 것같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을 보실 때에 그 성질이 선량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하고 스승에게 공경하며, 이웃에 화목하고 빈병인(貧病人)을 구제하며, 대도를 수행하여 반야지를 얻어가며, 응용에 무념하여 무루의 공덕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기뻐하시고 사랑하시사 더욱 더욱 선도로 인 도하여 주시는 것이요, 대비(大悲)라 하는 것은 저 천지분간 못하는 어 린 자녀가 제 눈을 제 손으로 찔러서 아프게 하며, 제가 칼날을 잡아서 제 손을 상하게 하건마는 그 이유는 알지 못하고 울고 야단을 하는 것 을 보면 그 부모의 마음에 측은하고 가엾은 생각이 나서 더욱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는 것같이 부처님께서도 모든 중생이 탐 · 진 · 치에 끌려서 58 1 제 스스로 제 마음을 태우며 제 스스로 제 몸을 망하게 하며, 제 스스로 악도에 떨어질 일을 지어 제가 지은 그대로 죄를 받건마는 천지와 선영 ㅇ ㅇ1 1-11--츤-】1-ㅝ -10==--T亡7=r나n 1-p ㄹ ㅇ {ㅇ111닝ㄱ1--0=「=1 六1--=(-,치이 巨ㅇ 】ㅢ 7 1 rㅐ -ㄱ 뺑1】 /딪 -=】츤ㅢ > 1 -ㄱ 1」 겯r 긴i닝 0「ㄴ너, 尾」걷 '겯r 노-/지 뉴그 =1/기 겯꽈시 0 V지-」스 겯 쌍히 여기사 천만방편으로 제도하여 주시는 것이니, 이것이 곧 부처님 의 대차와 대비디라\" I 〃I ' ㅣ lI ' I ㅣ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좋은 세계로 인도 받지 못하거나 제도의 은 혜를받지 못한다면 실로 그같이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붐무에 귀의하 사락우 너와 나름 붐무하고 모두가 서도로 이도릅 받 고 제도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법회에는 자비가 일상생 활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가를 살펴 우리 모두가 자비를 갖춘 사 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불법의 요쳬이며 부처님의 깊은 사상이 대자대 비이며, 대자와 대비가 서로 나누어져 해석된 것만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대자와 대비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자가 있으 F1너! ㄴL1ㅒJ H비V기I .ㅇ/.^]-ㅋu- ㄷ' 1ㅒI ~-비I -'캬I ㅇAk]-ㅇ-[--녀i! 대teil챠' -I '기I.. 챠' I 여1: 저i-ㅇ--ㄹ-D - ㅇA.),]E느- 거iA(''기I '기I 떼L1I무7E《.' 계II 대자대비는 떨어져 따로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제부터는 자비를 하나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비란 자마 못하는 마음입니다. 차마 못하는 마음은 애틋하고 안타까워서 감히 어찌하지 못하는 것 ㅇE 뜻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길모퉁이에 찬바람을 피하여 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마음이나나를찾아 적선을 요구하는사람을차마 I 59 뿌리치지 못하는 마음, 이것을 자비라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손바 닥을 보듯이 손해를 당하는 줄을 알면서도 저 사람의 손해 보는 것이 안 타까워 때로 눈감고 지나쳐 버리는마음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옛날 수도승들은 짚신을 아주 성글게 삼아 신었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길을 다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밟혀 죽는 뭇 벌레가 불쌍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마못하는마음의 깊은 세계입니다. 여름이 되면늘 생각나는 우화한 편이 있습니다. 여름날 해질녘 쯤 해서 시어머니 모기가 외출을 하면서 며느리 모기 에게 이같이 당부했습니다. \"얘야, 내 저녁밥은 하지 마라.\" 며느리 모기는 웬일인가 싶어서 물었습니다. \"왜요 어머님.\" 시어머니 모기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며느리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 합니다. '까음씨 좋은 사람 만나면 잘 얻어먹을 것이고, 모진 놈만나면 맞아 죽을 것이니 내 저녁밥은 짓지 말라는 것이다.\" 저마다 모진 놈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귀찮게 구는 모기를 후려치려다 이런 우화가 생각나면 슬며시 손을 내리는 사람들 의마음, 이런마음이 자마 못하는마음인 것입니다. 자비란 무한한 관심입니다. 관심이란 어떤 대상을 향하여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마음이 떠나지 않는마음을말합니다. 자칫하면착심으로 생 60 1 각될수도 없지 않지만측은하고 가엾어 머무는마음은곧자비입니다. 저는오후 9시경에 퇴근합니다. 때로는 11시가 넘어서 집에 가는 경우 도 있습니다. 육교 어느 곳에서든볼수 있는 일이지만 제가 오가는 육교 계단에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몸쳬를 떨며 적선을 요구하는맹인이 있 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일이기에 남들이 하는 것처럼 주머니의 잔돈을 조그만 그릇에 놓아 주는 것으로 그쳤는데. 연일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눈에 뜨이자 너무도 가엾어 매일같이 동전을놓아주기 로마음먹고차에서 내리면주머니에 손을넣어 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날은좀 더 많은돈을 넣어 주려니 하고 마음을 먹었 는데 계단을 올라 다시 내려오기까지 그들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 다. 저는 그곳으로부터“ 집에 이르기까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빠가 아파서 누운 것은 아닐까?혹시 어제 그 매서운 추위를 못 이 겨 죽은 것은 아닐까?하고 자리에 눕기까지 생각이 끊이지 않더니 다 음날 저녁 퇴근에 그들을 대할 수 있게 되자 그 반가움은 마치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을만난 것과 같았습니다. 친하다거나 친하지 않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 음이 머물고 머물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서로 모르고 지낼 때는 그 사 람이 길에 넘어져 있든, 잠자든, 굶든, 죽든 간에 마음 아플 게 없는 것 이지만 일단 자신의 관심 속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우 리들의 마음이듯이 그 마음이 모든 대상을 향하여 확산되는 관심이 자 비임니다 관심은 인연을 넓히는 것이며 인연을 키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관심 I 61 을 지니는 것은 자비의 마음을 키우는 발돋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떤 대상이든 그에게 관심을 쏟는 자비로운 마음을 키워야 하겠 습니다. 자비는 양보입니다. 양보란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권리나 명예 같은 것을 남이 먼저 갖 도록 ㅅㅅ로 사양하고 물러가는 것이라든지 자신의 의견과 주장 등을 굽혀 남의 의견과주장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저는만원 버스를탈 때마다 느껴지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만원된 차에 오를 때에는 기를 쓰고 비집고 들어와 다음 정류장에서 다시 사람 을 태우면 운전사에게 갖은 욕설과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도대쳬 어 떤 인격을 소유한 것일까?하는 생각과 느낌입니다. 내가 괴로우면남도 괴로운 것이고 내가 즐겁게 느끼는 것은남도 즐 겁게 느끼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를 미루어 남을 헤아리라고 했습니다. 불법을 실천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행동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편하자고 남을 도외시 하는 태도로는 자비의 마음이 길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비는 양보입니다. 작은 것을 양보하지 못한다면 큰 것은 더욱 양보 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남도 나에게 양보하 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작은 양보 하나하나를 익혀 부처님의 자비가 나의 자 비로 전입되어지게 노력을 기울여 갑시다. 62 - 자비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모든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라고 생각하는마음이 책임지는마음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자녀를 책임지겠다는마음이 샘솟기에 자녀에 대한 자비가 일어나는 것이며, 일쳬중생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움직 이기에 일쳬생령을 위해 자비가발현되는 것입니다. 책임은 부르는데 대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나를 향하여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이 바로 책임지 는마음이며 자비입니다. 우리는 도시의 생활이 삭막하다고 말합니다. 이웃이 없기 때문입니 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 갖는 이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을 들 어서는 대문이 닫혀 있고, 집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이 살벌하며, 이웃 을 부를 수 있는 창문에 창살이 덮여져 있기 때문에 이웃과 넘나들 수 없어서 이웃이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 주는 마음이 우리의 가슴에서 용 솟음친다면 어찌 겹겹으로 누비한 것과 같은 이웃의 관계가 되겠습니까? 죄지은 중생이 없어서 지옥이 쓸모가 없어질 때까지 지옥문을 지키 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머물러 있다는 지장보살과 같이 모두를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우리의 주변에 꽃이 핀다면 세상은 더없이 살기 좋은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책임을 집시다. 당신은나를 책임지고, 나는당신을 책임져서 서로가 없으면 삭막하게 느껴질 때까지 책임지는 노력을 하여 갑시다. 길을 가 다가 우는 아이가 있으면 왜 우느냐고 물어도 보고, 얼굴에 수심이 가 I 63 득한 사람이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기에 그렇게 수심이 가득하냐고 묻 기도 하며,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하여 쓰러져 있는지 알아도 보는 우리가 되어 봅시다. 법정 스님의 수상록을 읽으니 쥐의 얘기가나왔습니다. 스님이 한 암자에서 혼자 수행할 때 하루는 공양을 하고 헌식을 위해 암자 뒤에 준비해 놓은 헌식대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꽤 큰 쥐 한 마리 가 있었습니다. 그 쥐는 스님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 님은 여름내내 헌식대가 깨끗했던 연유를 깨달았습니다.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않는 때라 한낮에 공양하고 헌식을 하러 가면 그 쥐가 꼭 헌식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평소 쥐꼬리만 보아도 몸을 떨 정도였지만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쥐를 대하니 오히려 반가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자신을 의지하고 사는 중생이거니 하고 생각하니 더욱 연민의 정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님은 쥐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쥐야, 네게도 영식이 있거든 내 말을 잘 들어라. 네가 여러 생에 익 힌 업보로 그같이 흉한 탈을 쓰고 있는데 이제 청정한 수도장에 나와 같이 지낸 이 인연으로 그 탈을 벗어 버리고 내생에는 좋은 몸 받아 해 탈을 하거라.\" 그런데 신기했습니다. 쥐가 스님의 말을다 듣고 있었습니다. 기이한 것은 그 다음 날 밥을 들고 헌식대에 이르니 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살피니 헌식대 아래에 죽어 있었습니다. 한 수도인이 한 중생을 향하여 간절히 바란 마음, 즉 책임이 제도의 은으로 위력을 가져온 것 일 것입니다. 64 1 우리 모두 책임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불법을 익하 영생을 탄탄하 게살기 위해 책임지는모습으로자비를생활속에 심어가야하겠습니다. 자비는 묵묵히 베푸는 것입니다. 소리 없이 웃음 올 짓는 것을 미소라 합니다. 미소는 ㅇ 으- 게 벌리 H ㄹ 고 소리 내어 웃는 것과는 달리 포근한 마음을 안겨주는 것이라 합니 다. 묵묵히 베푸는자비의 얼굴이라할수 있습니다. 꼬깃꼬깃한 종이에 호떡을 싸가지고 와 불쑥 내미는 인정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듯이 묵묵히 베푸는 것은 인간의 따뜻한 정의 깊은 세 계입니다. 자비는 묵묵히 베푸는 것입니다. 《예전》총서편에 보면 예의 근본정신을 공경(恭敬), 겸양(諭穩襄), 무계 교(無計較)로 밝혔습니다. 예의 근본정신 가운데 하나인 무계교는나할바를다할뿐 상대방이 하는 바를 이리저리 뜯어보거나 비교치 않는다는 뜻으로 바로 묵묵히 베푸는 자비를 의미하는 것이라할수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자기의 할 바를 찾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세월을 무상의 도리에 바탕해 공부하고 내면을 들여 다보려는 노력이 계속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불가의 사부대중이 존경했던 효봉 선사께서 남과 북을 운수행각할 때였습니다. 어느 한 암자에는말 없는 언약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지대가 높고 인적이 드문 암자였는데 시월이면눈이 내려 이듬해 봄이라야 녹기 때문 - 55 에 그곳에서 공부하는사람은 시월중순이면하산을 서둘러야했습니다. 효봉 선사께서 여름철 안거를 위해 그곳에 당도하였을 때는 한 사람 의 수도승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땔감과 식량 그리고 찬거리는 부족함 이 없었습니다. 어려움 없이 3개월을 지내고 가을이 되자 선사께서는 힘써 노력하여 땔감, 식량, 찬거리를 탁발하여 예전과 같이 준비해두고 하산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 선사께서 다시 그곳에 가니 예나 다름 없이 사람은 없었으나 땔감, 식량, 찬거리는 아주 충분히 갖추어져 있 었습니다. 말로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고, 증서를 써도 지켜지지 않는 일반사회 의 풍토 속에서 산사 그 어느 모퉁이에선가 이렇듯 아름다움이 꽃 피고 있는ㄴ 현상을대하면서 진정한자비가무엇인가를배우는 것 같습니다. 자비!생활 속에서의 자비!그것은 이렇게 묵묵히 베풀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본위가 아니라 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과묵함, 이 것이 묵묵히 베푸는 것입니다. 살면서 일을당해 상대의 입장이 되어주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모 든 것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의 자비는 보- 통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 바람직한 주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휴머니즘 사상을 선택하는 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 휴머니즘은 진정한 자비의 정신은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휴머니즘의 뜻이 인도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고 풀이하듯이 인간을 바탕으로 하고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밖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 56 - 이지요. 휴머니즘을 제창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낚시나 사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낚시나 사냥이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의 취미생활이요, 오락의 행위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나 물속의 고 기나 산 짐승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락도 아니고 취미도 아닌 절박한 생 사의 문제가 됩니다. 진정한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낚시나 사냥을 취미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대로 보자면 인간은 핵무기 앞에 불안과 초조를 감추지 못하지 만 산속의 동물이나 들짐승 그리고 물속의 고기들은 핵보다는 인간이 두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가를 선용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저는 사냥과낚 시 같은 것은 여가의 선용이라기보다는 악용이라고 지칭하고 싶습니 다. 남의 생명을 앗아 오는 것이 무슨 선용이 되겠습니까? 자비란 모든 대상을향해 말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인간에 한정된 것 이 아니고 모든 생명쳬, 나아가서는 물건 하나하나를 잘 활용하고 선용 하는 것이 묵묵히 베푸는자비라할 것입니다. 차비그=:=- 무 드.거에 대른가 가/규ㅅ】ㅇ]니[가 I I 1-- -- 1- /\\ I I I 1」 n I n 】=」 I I . 정시가 되어도 차가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다수의 사람은 짜증 부터 냅니다. 그것보다는 바꾸어 '내가 조금 빨리 나왔구나,라고 생각 한다면상황은달라도많이 다를 것입니다. 불평하고 짜증을 내면 아까운 시간을 빼앗기는 데다 아울러 자신의 마음까지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두 가지 다 잃어버리는 것보다 I 67 는한 가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받는 희로애락의 감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결국 우 리가 겪는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서 보다도 오히려 주관적인 인식 에서 차이가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장미에 왜 가시가 있는 것일까?하면 짜증이 납니다. 하지 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 어쩌면 저렇게도 예쁜 꽃이 피어날까? 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감사하고픈마음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는마음은 자비며 사랑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을 덜 늙게 하고 평안한마음을 선물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행적과 심법이 담겨진《대종경》을 앞뒤로 넘겨봐 도 저의 눈에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극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습 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대단한 진취성, 긍정성, 적극성, 낙천성만을보이 시는 말씀을 한 생 우리에게 전하시고 가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사 감사하는마음이 충만하셔서 한 생을 살고 가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자비가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이모저모로 찾아보았습니다. 어찌 몇 가지 조항으로 자비의 전부를 말할 수 있겠습 니까? 불문에 들어와 성불하고 제중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우리 불제자들, 자비의 실천으로 목적하는 바 그 세계에 조속히 도달하도록 노력하기 서원합시다. 68 - 鬱磁蔘羈瓣.鋏纖錐卄`,,,-' 締繞瀛鱇滋癬萃囊F瘢 ;l=';='\"; =견:::;l:l:=ㄷ== 놀巍獗瑤壅鑛繡錢 鏃i 네가 갚을자례에 참아라 원기 4(1919)년 소태산 대종사님은 제자들과 함께 방언공사를 마치 시고, 이어 백지혈인의 법인성사가 있게 하신 후 새 회상 창립의 준비 를 위한 휴양처를 부안봉래산에 정하시어 원기 8년까지 머무셨습니다. 소태산대종사님은 제자들과 봉래산에 계시면서 남기신 법문과 일화 가 적지 않습니다. 한번은 봉래정사에 계실 때 근처의 산에서 포수가 산돼지를 잡는데 그 비명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옴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물건이 이로움을 보매 한물건이 해로움을당하는 도다. 산돼지 의 죽 음 을 보니 전날에 산돼지가 지은바를 가히 알겠고, 오늘 포수가 산돼지 잡음을 보니 뒷날 포수가당할 일을 또한 가히 알겠도다.\" 인과품 12장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예쁜 사람과 미운 사람, 오래 사는 사람 과 일찍 가는 사람 등 세상은 여러 가지의 차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I 71 그것은 진리가 누구는 예뻐서 잘 살게 하고, 예쁘게 하고, 오래 살게 하 는 것이 아니며, 산돼지는 미워서 포수가 죽이게 하고 포수는 예뻐서 산돼지를 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지은 바를 따라 나타나게 됩 니다. 때문에 소태산 대종사님은 변의품 9장을 통해 \"조물주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귀하의 조물주는 곧 귀하요, 나의 조물주는 곧 나며, 일쳬생령이 디- 긱각 자기가 자기의 조물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 처님은《업보차별경》에서 잘사는 것과못사는 것, 예쁜 것과미운 것, 오- 래 사는 것과 일찍 가는 것에 대한 원인을상세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디-. 《업보자별경》13장을 보시면 중생이 잘 사는 이유를 \"ㅅㅅ로 도둑질 을 하지 아니함이요. 다른 사람에게 도둑질 말기를 권함이요, 도둑질 않는 법을 찬성함이요, 다른 사람의 도둑질 않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냄이요, 부모님의 재산을 없애지 아니하고 더욱 살림을 이뤄 냄이요\" 등으로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장을 통해서는 예쁘고 고운 원인을 \"진심을 내지 아니함이 요, 의복을 많이 혜시함이요, 부모와 존장에게 공경심을 가짐이요, 성 인과 현인의 도덕을 존중히 앎이요, 항상 부처님의 탑이나 정사를 잘 수리함이요\" 등으로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오래 못살고 일찍 죽게 되는 이유를 2장을 통해 \"ㅅㅅ로 살생을 많이 함이요, 다른 사람을 권하여 살생을 시킴이요, 살생하는 법을 찬 성함이요, 살생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좋아함이요\" 등으로 열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중생의 업은 자신이 지어서 자신이 받게 되는데, 서로의 72 관계를 통해서 이러한 업들이 잘못 되면 상극이 만들어지고, 상극이 만 들어지면 인생은 괴로움으로 점철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생을 만 들어 낙을 누리고 살려면 참고 견디는 노력이 아주 필요한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은 누가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생각할 일이 아니 고, 영생을 살아가는데 상극의 인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리적인 삶의 태도를 익히기 위해 있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품 1○장을 보시면 한 제자가 어떤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신 소태산대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 버리라. 그러하면, 그 업이 쉬어지려니와 네 가 지금 갚고 보면 저 사람이 다시 갚을 것이요, 이와 같이 서로 갚기를 쉬지 아니하면 그 상극의 업이 끊일날이 없으리라.\" 모든 인연을 상생으로 돌리기 위한 기초적인 자세로 참을 것을 권고 하고 있습니다. 참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무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또 바보처럼 보이고 손해를 보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유능하면서 무능한 듯 살 수 있고, 영리하면서도 바보인 듯 살수 있으며, 이익을많이 볼수 있지만 그것을 좇지 않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을 말할 때, 미래의 복전(福□)을 잘 일구어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 내용인즉 미래의 복전을 터닦아가는 사람은 결코 단 촉하게 목전의 일만 보지 않고 앞을 내다보며 현실을 대치하여 가기 때 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만을 보는 사람과 내일까지 생각하 는ㄴ 사람을 어찌 동격으로 놓을 수 있겠습니까? 참고 견디는 것이 상생의 터전을마런하고, 미래의 복을 장만하는 것 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참고 견디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하여 그것을 I 73 실천하는데 주력하는 것은자신을 위해 당연한 것에 속할 것입니다. 참고 견뎌가는 방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내 가 지었던 업을 갚아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새로운 복록 을 장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진리의 근본에서는 상생도 없으니 참고 견딜 것이 따로 없는 공적한 것에 바탕 한마음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의 것은 숙명적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으로 소극적 자세며, 둘 째의 방법은 자유의지적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으로 적극적 자세에 속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시된 방법은 초월의 경지에서 수용하는 완숙한 자세라할수 있습니다. 역시 최상의 방법은 세 번째의 것이지만, 첫째와 둘째의 방법도 보통 의 경지를 넘어서 있는상태라할수 있습니다. 세상의 물결을 헤쳐가면서 산다는 것이 좀 어려운 일입니까? 참고 견디는 것이 쳬질화 될 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례로 이루어 갈 것임 은불을 보듯이 분명하기만 합니다. 지금부터 13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제가 대학4학년 때, 저 희 원불교학과 학생 전원이 학교버스 세 대에 분승하여 송광사로 학과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날이 약간 궂어 가랑비가 내렸던 날입 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송 광사에 막 도착하여 학생 모두가 경내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런데 광주 보안사에 근무 하는 것으로 밝혀진 사복을 입은 군인 두 사 람이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왔다가 마침 저희와 같이 송광사에 간 후 배를 붙들고 무조건 아래로 내려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군대생활 74 I 을 이미 경험한 후라 그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 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인 그와 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후배를 경내 로 먼저 가게하고 사복을 입은 보안사의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 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처음부터 시비조로 나왔고 조금 후에는 저 의 멱살을 거머쥐었습니다. 저는 술에 취해 있는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지만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술에 취한 군인이 개울 쪽으로 발이 미끄러져 내렸고, 저는 그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끌어올리는 저의 턱을 머리로 받아 저로 하여금 혈 기가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간 4년 간 졸리는 잠을 참으며 좌선 을 한 내가 술에 취한 사람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은 폭 력을 쓸 수 없게 같이 멱살을 잡고 머리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안이 조금은 이상했습니다. 혀끝으로 입안을 훑어보니 혀끝 에 딱딱한 물건이 따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입안에서 꺼내보니 그것 은 어금니의 조각이었습니다. 턱을 받치는 순간 어금니 한 쪽이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조금은 어이가 없고, 불끈 진심이 솟아났습니다. 그러 나 어금니의 조각을 꺼내 보이면서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 소'7 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그 보안사 군인의 친구가 조금은 민망한듯 자기의 친구를 떼어내 데리고 갔습니다. 떠나는 그들을 보는 저의 마음 은 조금은 허탈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어쩌다 혀끝이 떨어져 나간 어금니의 부위에 닿으면 '그래, 그때 참고 견디기를잘했지…' 하는생각을함께 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은 어쩜 순간 모욕스럼이 가득해지기도 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일순간의 모욕과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사건을 지속시키면 I 75 물론 상대에게 자신 만큼의 모욕과 손해를 되돌려 줄 수도 있는 것이지 만, 그러나 다시 나에게 그만큼의 모욕과 손해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 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고 견뎌야하는 기본성은바로 이런데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네가 갚을 자례에 참으라,'고 하신 말씀은 강 자의 위치에 있을 때 약자를 보살펴야 된다는 내용으로 확대 해석할 수 도 있고, 악업을 소멸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주장만을 앞세우는 인간관계와 그렇게 엮어지는 세상을 생긱하여 봅시다. ’얼마나 살벌한 현상이 계속되겠습니까? 저의 경험에 의한다면 자신이 참고 견디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니었 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ㅅ로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느냐가 문제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참고 견디는 기쁨과 보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쳬험에서 오는 것이며, 이러한 쳬험이 계속될 때 자신의 인생에 풍요의 결실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제자가 자신의 스승을향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야기는 곧잘 해 주시면서 그 뜻을 밝혀주시는 일에 인색한 이유 가무엇인가요'7, 귿T:그r'ㅇ ㅇ 들은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누가 너에게 과일을 권하면서, 자신이 먼저 씹어 맛을 보고서 준다 면, 너는좋겠느냐?\" 76 - 스승의 응답을들은 제자는 아무런 대답도할수 없었습니다. 종교는 이론이 아닌 실제라는 것을 시간이 허용 되는대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일화가 종교의 세계에는 편만하여 있기 때문입니 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네가 갚을 자례에 참으라. 그러하면, 그 업이 쉬어지려니와 네가 지금 갚고 보면 저 사람이 다시 갚을 것이요. 이와 같이 서로 갚기를 쉬지 아니하면 그 상극의 업이 끊일 날이 없으리라,' 하신 말씀을 이론으로가 아닌 실제로 나타나게 하여 생의 참된 기쁨과 보람을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을 통해 함께 끊임없이 쳬험할 수 있었으 면하는마음이 간절합니다. 원기 73년 2월 괴일 업을 면해 가는 길이 있나니 흰 f t, 자기가 지은 업은 자기가 받게 된다는진리를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 는종교가 불교이며 인과의 이치가곧불교의 핵심이 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1916년 4월 28 일 대각을 이루시고불생불멸 과 인과보응이 진리의 본질임을 천명하신 뒤 여러 종교의 교의를 참고 하시고자 뽑혀진 제자에게 부탁하여 각 종교의 경전들을 약간 구입하 시어 대략 열람하셨습니다. 그때 열람하신 경전은 유교의 《사서》 《소학》, 불교의 《금강경》 《선 요》 《불교대전》 《팔상록》, 선가의 《음부경》 《옥추경》, 동학의 《동경대 전》 《가사》, 기독교의 《구약》 《신약》 등으로 모두 다섯 종교 열다섯 종 류의 교서였습니다. 이 가운데 불교의 《금강경》은꿈을통해 그 이름을 알았다고하셨습니다. 경전을 열람하시고 내리신 결론은 ‘나의 안 바는 옛 성인들이 또한 먼저 알았도다”하셨고, “모든 경전의 뜻이 대개 적절하여 별로 버릴 바 78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