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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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Ⅰ. 들어가는 말

  시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참으로 어렵고, 깊고, 광대한 접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시편은 범위가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 자체의 형성 및 편집 과정과 그 이후 해석과정이 길고 복잡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 방법들이 만들어졌다. 시편을 읽고 감동 받는 것은 쉽지만 시편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광대하고 어렵다.

나는 우리가 읽어야 할 몇 권의 고전 속에 씨 에스 루이스의 시편사색을 넣고 싶다.

 그는 시편 속에 있는 어려운 주제들로부터 시작하여 은혜로운 주제로 넘어갈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캐어내고 있다. 그는 그가 믿고 있고, 또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다.1)

시편은 시이다. 시는 노래하기 위한 것이지, 교리적 논문도 아니고, 더구나 설교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으로서 성경을 읽고자하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중심 관점은 빼어버리고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여러 가지 다른 유형의 문학 형식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시편은 시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논리적인 연관성보다 정서적 연관성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시편의 표제를 보고 그 시를 선입관으로 해석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시편의 표제는 시편을 보는 하나의 창문이지,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표제는 출발점으로나 설교 중 필요한 때 예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시편의 해석을 위한 입문으로 다양한 시편의 형식과 배경을 먼저 찾아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시편들이 히브리 시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라 쓰여졌기 때문이다.

시편을 해석하려면 먼저 중요한 형식상의 특성으로서 히브리 성경에 나타나는 평행법의 기교를 알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편 2:4)

만약 이것이 문학적 형식인 것을 모른다면 해석 할 때 이 구절에서 각각 다른 두 개의 의미를 찾기 위해 헛되이 노력할 것이다.2)

시편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선민의 응답인 이스라엘의 기도와 노래를 포함한다. 시편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설명한 내적특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편이 정경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계시” 혹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3)

시편에 대한 신학적 고찰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시편의 이러한 일차적인 특성이다. 여기에서 시편의 깊은 바다, 그 심연을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고민하며 출발하게 된다.

시편은 우리 영혼의 책입니다. 그냥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라, 밤낮으로 묵상할

책입니다. 묵상할 책만이 아니라 노래할 책입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할 위기에서도

부를 노래요, 죽음을 눈앞에 보고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칼빈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 헸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로우심,

만물에 가득한 그의 영광, 인간 역사를 인도하시고 심판하시는 그 권위와 지혜를

 노래한 책입니다.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나님, 나대신 싸워 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책입니다.4)

시편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으며, 또 하나님과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갖은 은혜에 대하여 거룩하고 행복한 생각들로 이루어진 향기 나고, 상쾌하고, 활기찬 꽃들이 만발한 아주 즐거운 정원- 정말로 천국- 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마틴 루터)

나는 이 책을 영혼의 모든 부분을 분석한 책이라고 불러도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다 거울처럼 여기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존 칼빈)

우리는 시편을 대할 때 시편을 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편과 우리 사이에는 역사적이고 문학적이며 신학적인 거리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2500-3000년 전에 쓰여졌고, 문학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의 형식이나 특징과는 다른 형태로 쓰여졌다.

신학적으로는 시온산(성전)과 다윗 왕과 주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쓰여졌다. 게다가 시편은 신약신학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고 이후 교회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시편과 씨름을 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우리는 시편과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삼중적인 거리와 무게를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없고, 주석 몇 권으로 쉽게 극복할 수도 없다.(김정우)

시편을, 어거스틴은 영혼의 거울로, 칼빈은 영혼의 해부도로, 마틴 루터는 모든 성도들의 심장을 본다고 했다. 5)

본고에서는 “어떻게 시편을 해석할 것인가”에 대하여 성경해석의 관점에서 필자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시편을 해석함에 있어 필자는 전통적인 표제연구, 그리고 평행법, 양식비평, 정경적 해석, 수사 비평, 시편 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특히 구약 성경을 시편의 관점에서 통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김정우 교수님의 시편주석을 기준으로 여러 학자들의 시편을 보는 관점과 접근 방식을 통해 심도있게 비교분석 연구해 보고자 한다.

  그 방법론으로

  첫째, 성경 해석의 관점에서 구약 성경을 시평의 관점에서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능력 배양하고자 필자의 관점을 비평적으로 정리하려고 애썼다.

  둘째, 김정우 교수님의 시편 해석의 시각과 방법을 숙지하고 적용하는데 있어서, 내용 숙지가 아니라, 저자 및 여러 해석자들의 관점과 접근 방식을 비교하여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Ⅱ. 본말

시편 해석방법론은 전통적인 역사적 방법,문학 분석 및 역사적 방법, 양식 비평적 방법, 의식 기능적 방법, 수사학적 분석과 구조 분석, 종말론적-메시아적 방법론, 정경적 해석 방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시편 속에는 여러 가지 유사한 형식과 장르가 나타난다.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쁨, 슬픔, 분노가 나타난다.

자세히 보면 찬양, 애가(개인과 공동체), 감사시(개인과 공동체), 신뢰의 노래, 교훈시, 지혜시, 제왕시, 하나님의 등극시, 여호와의 전쟁시 등 여러 형식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편을 문학적 형식에 따라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공부할 필요가 있다.

시편은 성경의 순서대로 공부하고, 성경의 순서와 문학적인 형식의 유사성을 함께 사용한다. 1편의 문학적인 형식을 율법시라고 한다면, 1편을 공부한 후에 주의 율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편 19, 119편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이 율법이 우리 삶과 예배에 규범이 된다는 것을 노래하는 시편 15, 24, 50편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 죽, 시편 해석은 시편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시, 지혜시를 마치고 나면 시편 2편 메시야 시편을 연구하는데, 이는 원래 배경에서 제왕시라 할 수 있다. 이 시편의 일차적인 주인공은 시온에 등극하는 다윗 왕이다. 시편 속에는 왕의 아름다움과 위엄, 그리고 아픔과 비하를 노래한 시들이 의외로 많다. 즉. 이 시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메시야 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이므로, 이 시들이 주님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지를 살펴야 그 본래 의미를 알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신약의 빛 속에서 시편을 보면서 정경적 해석을 하는 것이 좋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시인이 본 하나님, 시인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보고, 만나고, 그를 따르는  결단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6) 

시편 해석에는 여러 가지 방법론을 들 수 있으나 표제, 히브리 시의 성격과 평행법, 양식비평, 수사비평, 그리고 정경적인 해석에 기초한 시편의 신학을 연구해 보기로 한다.

본문에서는 김정우 교수님의 시편 주석(1)과 구약통전(하)의 시편을 토대로 중요한 부분은 요약하고, 참고할 부분들은 타 학자들과 비교하면서, 시편 해석의 여러 가지 방법론을 중심으로 필자의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1. 표제 중심의 해석

마소라 시편에는 다윗 시편이 73개 등장하지만, 70인역 시편에는 84개가 나타난다. 다윗 시편이 11개나 차이가 나서 어느 것이 원래의 전통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70인역 표제는 마소라 사본의 표제를 확대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시편 5권의 각 구조를 보면,시편 배열에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윌슨은(1) 저자의 이름, (2) 고대 장르의 이름(예, 미즈모르, 믹담, 마스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등극시, 할렐루야 시편, 제왕시 등), (3) 용도에 대한 지시사항, (4) 특정 시편의역사적 배경 설명 등이 시편의 전체적 구조를 짜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표제의 고대성

시편의 표제는, 주로 ‘음악적인 배경’(지휘자를 따라, 악기의 유형, 그리고 어떤 멜로디), ‘의식적인 배경’, 저작권과 연관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작자와 연관된 것으로는 그의 생애와 사건들을 소개하기도 한다(다윗의 시들 중에는 13개의 시편이 그의 생애와 연관되어 있다).

음악적 표제

(1) 시(mizmor)-랍비들의 해석에 따르면 ‘시’로서 미즈모르는 악기와 함께 부르는 시편이며 쉬르(shir)는 성가대가 부르는 시편이다. 용어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하기 힘들다.

(2) 영장(혹은 악장)- ‘뛰어나다, 빛나다’  전통적으로 ‘지휘자를 위하여’라는 뜻

(3) 스미닛- 히브리어로 ‘여덟 번째’를 뜻한다. 이는 ‘팔현금으로’, 또는 ‘한 옥타브 낮게’ 라는 뜻일 수 있다.

(4) 관악에 맞춘-‘피리에 맞추어’, ‘악기를 위하여’

(5) 힉가욘- ‘묵상’, ‘멜로디’.

(6) 여두둔- ‘고백’이라고 보지만 주장은 약하다.

의식적 표제

시편 30편에는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가 나오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성전의 낙성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저작권과 연관된 표제

(1) 문제점

드라이브는 표제의 신빙성이 무너졌다고 본다. 차일즈는 시편의 표제들이 미드라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편의 표제가 시편에 대한 최초의 해석으로서, 시편을 보는 ‘창’을 열어준다는 긍정적 평가를 시도하였다.

(2) 중요성

 주석의 관점에서 볼 때, 표제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제시해 준다. 심리적 관점에는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다윗 저작권은 이 시편에서 다윗 왕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시편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끝으로, 다윗 저작권은 변증적인 차원을 가진다. 신약은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해 준다.

시편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설교는 시편의 표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시편의 표제 중 대부분이 다윗의 시로 소개되므로 설교자들은 표제를 붙들고 단번에 시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제는 문제점이 있다. 드라이버는 시편연구에서 표제에 대한 신빈성이 없어졌고, 그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말했다.

싸부린은 이 입장을 약산 수정하여 19세기 비평학자들은 이 표제들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극소화시켰고 궁켈학파는 이것들을 무시하였다.

차일즈는 시편의 표제들이 미드라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편의 표제가 시편에 대한 최초의 해석으로서 시편을 보는 창을 열어 준다는 긍정적 평가를 시도하였다.

여기에 필자는 세 가지 표제의 중요성의 입장에서 공감한다.     

첫째, 주석의 관점에서 표제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제시해 준다.

둘째, 심리적 관점에서 표제는 주인공이 현실적으로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셋째, 신학적인 관점에서는 다윗저작권은 이 시편에서 다윗 왕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윗왕은 시편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즉 다윗 시편은 신약의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갈 수 있는 역사적이고, 문법적이며 신학적인 발판을 마련해준다. 이것은 신약 저자들이 시편을 메시아적-종말론적으로 해석한 것과 일치한다.

넷째, 다윗저작권은 변증적인 차원을 가진다. 즉, 다윗 시편은 단순히 다윗이 자신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선지자로서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썼다는 결론이 된다. 신약 저자는 바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시편에 대한 기독론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7)

2. 장르별 해석

시편에서 양식이 중요한 것은 지리산에서 여러 봉우리마다 지리산을 보는 관점을 다르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시편을 형식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결국 1-150 편을 수평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8)

시편의 중심적인 형식으로는 애가(혹는 기원), 찬양, 감사를 역대기 기자는 들었다. 시편에는 약 50개의 애가시(탄원시), 15개의 감사시, 약 35개의 찬양시가 나타난다. 물론 이 세 가지 형식 사이에 절대적인 구분은 없다. 찬양 속에 감사와 애통이 있을 수 있고, 감사속에 찬양과 애통이 있고, 애통 속에 찬양과 감사가 있다. 그러난 각 형식은 고유성과 독특성을 지닌다.9)

시편의 양식들은 우리에게 시인의 깊은 감정을 드러낸다. 우리가 시편해석을 하려면 이러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시편의 찬양을 통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소요리문답 제1번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혁신학의 전통이며, 성경의 중심사상이요, 하나님께서 노래하는 분이시므로 사람은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의미에서 양식 비평은 궁켈과 베그리히(1926-1933)가 처음으로 제안한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은 대분 양식비평을 시편 연구에 사용한다(모빙켈, 바이져, 베스터만, 앤더슨 등). 

시편 양식의 비평은 궁켈로부터 시작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양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루터는 말했으며, 그 근거는 역 16:4에서 찾을 수 있다.

궁켈은 단어, 분위기, 모티프, 시상 등으로 양식의 형태를 찾아내며, 이 양식들이 원래 어떤 삶의 정황(Sitz im Leben) 을 갖고 있는지 찾으려 했는데,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궁켈은 찬양, 회중 애가, 개인 애가, 개인 감사시라는 중심적인 양식을 찾아내고, 제왕시, 시온의 노래, 야웨 등극시 같은 협소한 양식도 찾아내었다. 그 시편의 유형들을 살펴보면 시편이 단지 개인의 영적생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배경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위한 말씀임을 알게 된다. 

성경 속에 시편의 형식에 대한 근거가 있다. 역대상 16:4애 따르면,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섬기게 하고 구체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다’고 한다.

양식 비평의 문제점은 삶의 정황을 지나치게 좁게 잡은데 있다. 궁켈은 시인이 한명의 개인이며 그는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보았다. 시인의 원수는 병든 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정죄하며 이 기회에 시인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버클란드는 시인은 왕이었으며, 원수는 외적이었다고 보았다.

궁켈은 시편의 삶의 양식을 솔로몬 성전이나 제 2성전에서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회당과 개인 기도로 잘못 잡았다. 그는 의식적인 예배가 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시편이 너무나 영적이어서 후대의 작품으로 보았다.

찬양과 감사는 유사성이 있다. 그러난 엄밀히 말하자면 감사시는 선포적, 고백적이고(시 22:22), 찬양시는 서술적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서술하는 노래이다. 미리암의 노래, 모세의 찬양, 스랍들의 노래가 여기에 해당된다.

찬양시는 쉽고 경건한 시이며 시편의 근본적인 사상을 표현한다(8, 19,29, 98,100, 114, 135-136, 145-150편)

감사시의 중심사상은 시인이나 공동체가 극심한 고통과 고난에서 갓 벗어나 주님께서 구원하셨음을 감사하는 것이다.(렘 33:11, 시 66:13-14, 욘2:9, 시116:18-19) ((18, 30,32, 34, 40:2)

시편주석의 제왕시는 기독론 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형식이다. 박윤선 박사는 시편을 예언으로 신약적 해석을 했다. 그러나 김정우 교수는 구약과 신약을 다 조망해야 하며 구약을 발판으로 신약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필자도 이애 공감한다.

다음으로 애가를 들 수 있다 애가는 시편에 가장 많아 대표적인 시편이 51편이다. 대표적으로 히스기야의 면벽기도(왕하 20:2-3)가 있다. 여호수아의 아이성 전투 패배, 모세의 십계명사건(출 32:11-13), 다니엘의 애통한 기도 등이 여기 속한다.

오늘 날 교회에서 애가가 사라졌다. 심정을 동한 눈물이 없고 회개가 없고 경배와 찬양만 있는가?10)

시편의 저주시(7, 35,58, 69, 83, 109, 137, 139)에서 시인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보응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보응과 보복ㅇ른 다르므로, 이 시는 공의가 시행되도록 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이 기도들이 신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어긋나고, 교회에서 공예배시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아울러 시편에 나타나는 원수는 우리를 괴롭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단과 영적 원수로 이해함이 옳다.11)  

3. 평행법의 특수성

히브리 시는 대부분 한 절이 두 행으로 구성된다. 둘째 행이 첫 행을 닮아서, 두 행이 함께 통일성을 이룰 때 평행법이라고 한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라”(잠27:2)

마이클 오코너는 평행 용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을 준다. 그는 ‘짝’과 ‘수식 문구’ 개념으로 설명한다.

(1) ‘짝’은 어떤 식으로든지 서로 이어지는 한 쌍의 단어이다.

① 두 단어가 이어져 있을 때, 둘 중 작은 것이 먼저 나온다(vim and vigor, stock and barrel).

②두 단어가 이어져 있을 때, 두 번째에 있는 단어의 모음이 첫 번째 것보다 길다 (stress and strain, trick and treat).

③ 두 단어가 이어져 있을 때, 두 번째에 있는 단어는 첫째 단어보다 더 시작 자음이 많다(sea and ski, sink or swim).

(2) ‘수식문구’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①반복

“그는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의 권세에서 건지셨고

그는 그들을 원수의 권세에서 구속하셨다.”

②이명식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것을 저주할 수 없고

 여호와께서 정죄하지 않은 것을 정죄할 수 없다”(민23:8).

③등위에서 명칭은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본 쌍의 두 부분을 가리킨다.

   “진에서 그들은 모세를 질투하였으며

   야웨의 장막에서 아론을 (질투하였다)” (시106:16).

④합성

“주의 택한 자의 선함을 즐기며 주의 백성의 기뻐함을 기뻐 한다”에서 ‘주의 택한 백성’은 형용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4. 전통적인 역사적 방법

전통적으로 시편은 성도들의 개인적인 영적 생활을 위해 씌어졌다고 여겨졌다. 시편을 개인의 영적 생활을 위한 기도와 말씀으로 여기는 과정에서, 해석자들은 시편의 중심인물로 나타난 다윗을 경건의 모델로 삼았다.  다윗 생애에 대한 언급이 없을 때는 , 후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연결시킨다.

장점은 이 방법을 통해서 다윗의  생애에 있었던 갈등, 위기, 승리를 보고 우리 신앙의 모델을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은 역사서에 있는 다윗 이야기를 시편 속으로 지나치게 많이 가져오거나, 다윗의 생애를 시편에 근거해서 인위적이고, 주관적으로 재구성하기 쉽다는 점이 대두된다.

5. 문학 분석 및 역사적 방법

이 방법은 시편 전체를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 시대의 배경에 맞도록, 언어학적이고 신학적인 체계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시편의 연대와 성격에 대하여 당대의 역사 비평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현대의 시편 연구는 시편 중 상당수가 제1성전의 배경에서 쓰여졌음을 증거 한다. 즉, 시온의 노래들(46, 48, 76편 등)은 포로 이전의 분위기를 반영하며, ‘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고 있는 왕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6. 의식 기능적 방법

이 방법은 양식 비평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전통적 양식 비평에 따르면, 시편이 비록 제의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형태는 제의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회당이나. 개인기도, 묵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시편의 용도에 있어서 양식 비평은 훨씬 개인 경건을 강조한다.

의식 기능적 방법은 시편 자체의 증거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빙켈은 구약의 제의를 상당히 이방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이란 실존적이며, 상당히 신학적인 것으로서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7. 수사학적 분석과 구조 분석

구약 성서 해석학에서 전문적인 수사 비평은 1968년 마일렌버거의 글 “양식비평을 넘어”에서 그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다.

시편의 수사 분석은 시편을 구성하는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통합되고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므로, 결국에는 구조분석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히브리 시에서 구조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으나 의견의 일치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8. 김정우 교수의 시편 구조 분석

시편의 대부분의 시들은 3장(혹은 연)과 4장(혹은 연)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 속에는 대부분이 기승전결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시의 구조를 적절하게 분석함으로써, 각 부분과 전체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시를 ‘감상’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시편의 기승전결에서 한 시편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9. 종말론적-메시아적 방법론

지난 2000년 간 교회는 그리스도의 강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에 대한 예언으로 시편을 보는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께서 예언서의 예언과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였다고 보았다.

시편 2:1-2은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으며(행4:27-28), 그의 부활을 통해 시편이 바라보는 다윗 왕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행 3:24; 벧전 1:10-11).

이 방법의 장점은 성령께서 성경 저자와 그 작품을 영감 시켜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예언을 직접 지도하였다는 높은 성경관을 갖고 있으며, 예언의 은사를 선지자에게 제한시키지 않았다.

단점은 신약에 인용되지 않은 다른 메시아 시편들과 인용된 시편들 사이에 ‘메시아 예언시’로 구별을 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예언시와 비 예언시를 구별하는 일관성 있고 종합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여 시편 자체의 역사적인 의미를 약화시킨데 있다.

델리취는 다음의 다섯 가지 형태의 예언을 시편에서 발견하였다.

(1)예표적 시편(34:20; 69:4, 9), (2) 예표적-예언적 시편은 시인의 현재 경험이 그리스도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된 시들이다(22편), (3) 간접적인 메시아적 시편은 다윗과 그의 집이 더 큰 다윗의 아들에게 성취됨을 말한다(2, 45, 72편), (4)순전히 예언적인 시편(110편), (5)종말론적인 여호와 시편은 주님과 그의 나라의 도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을 바라본다(96-99편).

장점은 성경의 양성인 신성과 인성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시편에 대한 문법적, 역사적 해석과 신약의 재해석의 권위를 균형 있게 지지해 준다.

단점은 신약에 인용된 시편들 중 비 메시아적인 성격을 띠는 시들(예 34; 69편)이 어떻게 메시아 시편이 될 수 있으며, 신약에 인용되지 않은 시편들 중 메시아적인 성격을 띠는 시편은 메시아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예표적인 시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설명이 없으며 간접적인 메시아 시편을 너무 제한시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신약에 인용되거나 암시된 본문에 의존하여 기독론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 보다 더 나은 방법, 즉 정경적 해석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10. 정경적 해석 방법

20세기 후반에 와서 ‘정경적 해석’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경적 해석의 대표자로 첫째, 샌더스가 있다. 그는 현재 히브리어 성경이 최종적이고 정경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 과정을 면밀히 살핀다. 즉, 샌더스는 본문이 역사적 공동체의 선별과 사용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공동체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한 것으로 본다.

둘째, 차일즈는 ‘정경의 최종적 본문은 원래의 의도를 상실한 것’으로 이해하며, 정경화의 과점에는 관심이 없고 문학적 본문으로서 최종형태인 정경 자체에만 관심을 갖는다.

차일즈의 정경관은 정경이란 후대의 공동체가 원래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권위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인정해 가는 과정을 포함하며, ‘최종적으로 경전의 범위를 확정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차일즈는 성경이 정경으로 형성되어 가던 역사적 과정 속에 이미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이어서 (1) ‘정경 비평’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정경적 접근’으로 불러야 한다. 그는 성서(Bible)를 성경(Sacred Scripture)으로 보는 입장에서 해석을 하는 것을 자신의 ‘정경적 접근’으로 설정한다.

(2) 정경적 해석은 문학 비평과 달리 “원래의 문학적 혹은 심미적인 통일성”을 찾지 않고, “공동체의 믿음과 실천과의 연관성 속에서 성경 본문을 해석한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은  “신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특정한 신학적 역할을 공동체의 믿음과 실천에 행사하기” 때문이다.

(3) 정경적 해석은 양식 비평이나 전승사와는 달리 성경의 “최종적 형태”에 관심을 갖는다. 성경은 그 전 역사가 어떠하든지 간에 원래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배경들은 뒤로 사라지게 되었으므로, 그 최종적인 본문만이 “계시의 총체적인 역사에 대한 증거”가 된다.

(4) 정경적 해석은 성경을 ‘하나님을 만나는 매체’로 보며, 구약 성서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만남의 역사를 반영하며 형성된 것”으로 본다.

(5) 정경적 해석은 신구약 성경을 통일성의 관점에서 보며, 구약 성경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두 성경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중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 두 증거는 따로 그리고 조화되어 들려져야만 한다.

10. 시편의 기독론적 해석과 정경적 해석

먼저 김정우 교수님의 구약통전에서 구약 성경에 대한 기독론적 해석을 보자

예수께서는 눅 24:44절에서 시편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신 자기 자신을 증거함을 증명하셨다. 예수께서 세우신 해석학적 토대위에서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애써왔다.

훌륭한 교부들(어거스틴)과 종교개자들(루터, 칼빈)과 설교자들(스펄전, 박윤선)과 많은 주석가들이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구약에서 복음의 모든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금언이나, “성경의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는 루터의 금언은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기독교회의 영원한 임무요, 과제임을 보여준다.12)

모든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이유는 아직까지도 구약과 신약의 두 성경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 지 합의된 방법론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편과 에약의 관계를 가장 정밀하게 제시한 델리취는 시편과 신약을 잇기 위해 다섯 가지 형태의 예언을 시편에서 제시한다.

(1). 예표된 시편은 시인의 경험이 그리스도에게 예표적으로 적용된 것이다(34:20, 69:4.9).

(2). 예표적-예언적 시편은 시인의 현재 경험이 그리스도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된 시들이다(시22편).  

(3). 간접적인 메시아적 시편들은 다윗과 그의 집이 더 큰 다윗의 아들에게 성취될 것을 바라보는 시편이다(2.45.72).

(4). 순전히 예언적인 시편은 그 내용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시편이다(110).

(5). 종말론적인 야웨 시편들은 주님과 그의 나라의 도래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될 것을 바라본다(96-99편).

델리취의 방법론은 상당히 종합적으로 보이나, 전통적인 예표적 해석과 예언적 해석의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시편의 기독론적인 해석을 몇 개의 제한된 본문에서만 시도하고 잇을 뿐이다.

이 시점이서 우리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첫째, 구약에는 기독론이 없다는 극단이다.

둘째, 신약과 기독론은 구약의 기독론이다 라는 극단이다.

많은 주석가들과 해석가들이 신구약의 거리를 인식하여 신약의 기독론적인 밝은 빛으로 구약의 모든 어두운 부분을 환하게 비추어 주지 못하는지 정말 아쉽다는 김정우 교수님의 논지에 적극 동의하게 된다.

이 두 극단을 피하고 신약의 시편 인용을 시편의 기독론적인 해석에 대한 출발점으로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신약이 기독론 적으로 인용하는 시편들을 보면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당황하게 된다.

첫째,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편이 신약에서 기독론 적으로 해석된다.

둘째, 아주 중요한 기독론 적 시편으로 기대한 시편이 신약에서 기독론 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정경적인 해석방법론을 쓴다.

이 정경적 해석법은 1970년대 차일즈가 그 기초를 세우고, 1980년대 브루스 왈키가 복음주의적인 정경관과 정경의 발전단계를 제시하며 새롭게 다듬었다.

왈키는 원저자의 의미, 초기에 수집된 때의 의미, 완성된 후의 의미, 유기적 통일성이 있다고 보나, 왈키는 유기적인 통일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두 의미 사이에 발전과 완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차일즈와 왈키의 토대위에 더욱 완성된 형태의 정경적 해석법을 시편을 중심으로 세워 나가야 한다.

첫째, 구약과 신약 본문의 고유한 의미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구약의 의미는 성경 계시가 발전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확장되어 신약으로 완성 되며.두 성경의 의미는 더욱 유기적 조화와 통일성을 이룬다.

셋째, 구약과 신약의 서로 다는 독자적 으ㅟ미를 계시의 유기적 조화의 통일성 속에서 어우러지게 하기위해, “구약을 발판으로 신약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성경의 증거를 해석의 최종적 단계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이점이 시편 해석의 토대이며, 구심점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그 의미가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Ⅲ. 나가는 말

 이상으로 시편의 양식과 배경, 형성과정 등을 토대로 시편의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살펴보았다.

시편은 구약의 모는 책 중 개인의 믿음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편은 율법과 역사, 예언 속에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 대해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영감된 응답 송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이 기도와 찬양집을 그들의 개인예배와 개인묵상에 사용해 왔다.

시편은 현존하는 고대 최고의 종교적 서정시집이다. 시인의 개인적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시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1권에서는 율법찬가와 메시야 찬가, 2권에서는 찬양과 감사의 애가, 3권에서는 시온 순례, 신뢰, 가정, 역사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편의 구조 분석에서는 학자들마다 그 견해가 다르다. 외국의 학자들은 주로 동심원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고, 김정우 교수님은 대개 4단계 구조(기,승,전,결)로 분석하고 있고 때로는 3단계, 혹은 5단계로 분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편 1편과 2편의 연결점을 길에서 찾고 있었다. 위의 두 시편이 문학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러 가지 수사법을 찾아내어서 시의 내용을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미일치, 중언법, 영상, 환유,  반복법, 점층법 ,평행법 등을 언급하고 있다.

  시편은 문학적인 성경이다. 그 시편들 속에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시도 있지만 저주, 탄식, 애가 등이 섞여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필자는 저주시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저주시가 나오면 성경을 덮을 정도로 거부감이 있었는데, 루이스의 시편 사색을 통해 저주시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저주시는 시인의 원수들에 대한 탄원이며 탄식이며 호소이다. 즉 평범한 이웃에 대한 미움과 저주가 아닌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한 저주인 것을 공감한다. 저주시, 보복시의 소재들도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에게 다루어져야 간과할 수 없다.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웃고, 울며, 분노하고, 저주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가장 심한 저주시인 시편 109편은 나에게 상당한 거부감과 불쾌함을 주었다. 시인은 불경건한 자가 자기 원수를 다스리고 사탄은 자기 오른편에 서도록 기도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신앙인이자 구도자의 기도인가?

  루이스는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인간 재판관에게 드리는 간청으로 보았는데 나 역시 거기에 공감한다.

  시편은 시이다. 그것은 노래하기 위한 것이지 교리적 논문도 아니고 더구나 설교도 아니라는데 공감한다. 시편은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가지고 쓰여진 시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정의 대신에 자비를 구하지만 시편의 시인들의 특징은 불의 대신에 정의를 구한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시인들이 호소하는 거룩한 재판관은 변호자이자 구원자임을 깨닫게 된다.

  시편 23편은 나의 애송시인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한 함이 없다”로 시작되는 멋진 부분과, 내 원수의 목전에서 음식상을 베풀어 달라는 요구가 섞여있다.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방법 외에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즉 풍유(Allegory)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 별 다른 의의가 없다.

  즉 아무런 꾸밈없는 증오심을 시편에서 읽고, 상처 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처는 은혜로 치유될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것은 상처를 숨기고 안 아픈 척 하는 자기기만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시인의 저주와 분노는 너무나 인간적인 솔직함으로 보인다. 

  또 다른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시편에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시편 50편에서 예배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심령 중심으로 주님을 갈망하고, 기뻐하고, 그 임재를 사모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시편은 악을 행하는 것을 심하게 꾸짖고 있다. 시인은 우상숭배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러난 사회 속에 섞여서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들어가 살거나 절해고도에 가 살 수 있겠는가?

  시편의 시들은 낭만시 보다는 서정시가 많다. 그러므로 풍경에 대한 묘사가 별로 없다. 그러나 기후에 대한 묘사들 속에 대자연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 65편이나, 104편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은혜로 감사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는 자연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를 충분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들이 있는가?

  빛은 하나님의 옷이다.(시104;2

  천둥은 하나님의 음성이다(시29편)

  하나님은 깊은 흑암의 구름에 거하시며(시18편)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졌기 때문이며(시104편)

  바람으로 전령 삼고 화염으로 종을 삼고,

  그룹을 타고 날으시며

  천사들의 군대에 명령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시인들의 영감인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천둥소리에 놀라 두려 하며, 번개 빛에 죄 지은 것을 회개하는 나약한 피조물들은 얼마나 하잘 것 없고 유한한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지으신 이 모든 세계와 만물에서 느낀다.

  아, 시편은 참으로 위대하다.

  나는 시편에서 자비하신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자연의 노래를 통해 깨닫는다.

  나는 루이스의 회고에서 하나님을 기도로 회유하며, 모순된 타협책을 쓰는 내 모습을 본다. 너무나 부끄럽고 하나님께 죄스럽다.

  시편 연구를 하면서 참으로 죄인인 내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지금껏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시인들처럼 찬양해 본 적이 있던가? 나의 죄스러운 이 모습 이대로.....

  시편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접근했다가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편은 구약성경의 소우주이다. 시편 150편은 처음 시작하는 시편으로부터 마지막 완성하는 시편까지 아름다운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13)

지금까지 시편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보았으나, 크게 보면 시편과 신약이라는 이중 렌즈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시편 렌즈는 시편 자체를 보는 것이며, 신약 렌즈는 시편을 넘어서, 구약 시편을 발판으로 해서 신약까지 관통해 보는 것이다. 전자는 현미경적으로 보는 것이며, 후자는 망원경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경적 해석은 시편 자체와 신약의 렌즈를 동시에 같이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정경적 해석은 구약 본문 해석에서 출발하여 신약성경의 구약 해석에 관심을 가진다. 구약을 발판으로 신약으로 넘어가는 데 그 의의와 중요성이 있다.

우리는 현대의 렌즈까지 끼고 시편을 보며, 이 삼중 렌즈를 통하여 현대의 독자와 청중들에게 시편의 의미를 비추어 주어야 한다.

또한 이 시편이 “가장 진실한 뜻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기도책14)이라고 설파한 본회퍼의 말을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편의 시들을 다시 읽으며 더 깊은 뜻을 알게 되었고, 시편을 해석하기가 참으로 여러 방면에서 볼 때,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독교의 중심 진리인 성육신, 부활, 수난, 승천, 인간의 구속이 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해석적인 여러 가지 도구들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영감이 없다면 시편을 읽어도 도무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그 시편들 속의 신화에 신적이고, 악마적이고 인간적인 요소들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말없는 기도’란 시 한편을 지어 본다

  내 속 어딘가에

  이방인과 야만인의 피가 흐르는

  심장이 뛰고 있다

  무릎 꿇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회유하며

  얼마나 모순된 논리로 교활하게

  하나님과 타협을 시도했던가

  오 백치 같은 불신앙의 이방정신이

  나의 순수한 영혼을

  자꾸만 타락의 수렁으로 끌어가고 있구나

  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바다에서

  은혜의 헤엄을 쳐야 하는가?

 나는 이 시편들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셔서 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불일듯이 일어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주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제게 영감과 영력을 주옵소서.  아 멘

※ 참고 문헌

1 .김정우, 시편주석 Ⅰ,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5.

2. 김정우, 구약통전(하), 이레서원, 2003.

3. 피터 크레이기 저. 손석태 역, WBC 주석(시편), 솔로몬, 2001.

4. 앨런 로스 저. 전광규 역, BKC 시편, 두란노, 2004.

5. 김정준, 시편명상, 한국신학연구소, 1992.

6. 트램퍼롱맨 3세 저. 한화룡 역, 어떻게 시편을 읽을 것인가?, 한국기독학생출판부, 1999.

7. 김정우, 시편강해 1.2.3, 엠마오, 1998.

8. 김정우, 시편 89편 그 문학과 신학, 총신대학출판부, 1990.

9. C.S 루이스 저. 김정우 역, 시편사색, 총신대학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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