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거주이전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나. 우리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한다. 쥐꼬리만큼 벌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세금이나 때리기에 바쁘지. 그러다가 무슨 일로 외국에 나가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곤 한다. 입국 순간부터 며칠 동안 머물 예정인지, 숙소는 어딘지 시시콜콜하게 다 밝혀야 하다니! 그냥 좀 계획 없이 놀다 가면 안되나? 자기 나라에 들어가 돈 쓰겠다는데도 출입 자체에 대해 빡빡하게 구는 그 태도가 못마땅하다. 지구인으로서 이 행성의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밟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불쾌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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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가는 여행객과는 달리 상당 기간 체류해야 하는 유학생이나 해외 거주자는 이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느 나라 땅에 그저 있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시간과 비용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내 나라에 있을 때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내가 이곳에 존재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당한 목적과 이를 달성할 요건을 구비한 자에게만 ‘있을 재(在)’의 특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돈과 능력과 추천서로 겨우 증명하여 얻어낸 체류의 권리는 기껏해야 몇 년.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장의 시점이 다가오고, 행여나 지체되기라도 하면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 범법자가 된다. 그래도 떳떳이 입국을 한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조국의 혹독한 실상을 피해 보다 나은 나라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많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합법적 통로가 차단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밀입국을 시도한다. 2009년 발표된 프랑스 영화 <웰컴>은 생존과 이주를 둘러싼 고뇌를 잘 그려낸다. 주인공인 17세 이라크 소년은 새 삶과 사랑을 찾아 영국으로 밀입국해보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버해협을 수영하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만난 수영 코치의 인간애 덕에 이 허황된 꿈은 실현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들이 보통 그렇듯,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먹고사는 걱정 이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걱정. 비단 인간만의 신세는 아니다. 아니 인간 외의 생명이야말로 이 문제에 가장 심하게, 밤낮없이 시달린다. 도시나 마을처럼 인간계에 살면서 ‘사서 고생하는’ 종은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자연이 주민인 나라, 즉 자연계에 살고 있는데도 불법 체류자 취급을 받는 동물들에 대한 얘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개발이나 거주 등이 엄격히 제한된 국립공원과 같은 공간은, 말하자면 동식물이 ‘원주민’으로 살 수 있도록 법적으로 구획된 공간이다. 인간은 엄연한 ‘방문자’이다. 비자에 해당하는 입장권을 잘 보유하고 법에 해당하는 등산규칙을 잘 지킨다는 전제하에서만 체류가 허락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추방’될 수도 있다. 마음껏 정상에 오르고 “야호”를 외쳐도 좋다. 하지만 천하를 얻은 듯한 마음만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뿐, 산의 시민권을 얻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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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러나 이곳의 동물 주민들은 괴롭다. 툭하면 등산로를 벗어나 온갖 샛길은 물론 입산금지지역까지 파고드는 등산객들로 생활에 극심한 방해를 받는다. 산나무나 산약초를 불법으로 채취하여 귀한 먹이자원이 줄어들고, 함부로 던진 담배꽁초가 일으킨 산불로 보금자리가 홀라당 타버린다. 사람에게 방해를 전혀 받지 않더라도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같이 투쟁해야 하는 야생 나라의 삶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소음과 쓰레기, 심지어는 사냥에까지 시달리며 ‘내 집’에서 사는 기분이란 어떠할까. 엄연히 방문하는 쪽은 인간인데도 ‘생태적 무법자’ 따위의 칭호가 붙는 대상은 이상하게도 동물 주민이다.

멧돼지의 경우 천적을 제거하여 개체군 조절체계를 망가뜨린 게 누군데, 우리는 그들의 번식에 불편해하며 가끔씩 민가로 내려오는 개체를 ‘불법 체류자’로 취급하기만 한다. 어렵사리 지리산에 복원시킨 반달가슴곰은 존속 가능한 개체군 수준에 겨우 가까워지려 하자, 기껏 풀어놓은 일부 개체를 다시 잡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역시 사람 때문이다. 깊은 산속 대피소에서 삼겹살 냄새가 솔솔 풍겨도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줄 그 어느 곰이 알겠는가. 자신의 보금자리 근처에서 발견한 배낭과 침낭 그리고 잔반통을 ‘습격’한 죄로 이 곰은 ‘자연적응 실패’라는 억울한 누명과 함께 포획당할 가능성에 처해버렸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면 곰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데도 말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곰 위치정보 2만개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탐방로변 10m 이내에 머무르는 비율이 0.5%에 불과했다. 자기 집에서도 눈치를 보며 생존하는 이 동물들은, 공단의 복원기술부장 이배근 박사의 말마따나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적어도 동물의 나라인 숲에서만이라도 이들의 행복추구권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야생학교는 변론한다.

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거주이전

2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5만명 가량이 참가했다. |Getty Images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을 탈퇴키로 결정한 후 며칠새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들이 대거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려 하고 있다고 벨기에 공영방송 VRT가 28일 보도했다.

VRT에 따르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지역에서 영국의 국민투표 이후 수십명의 영국인들이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신청서를 냈다는 것이다. 이 방송은 “현재 벨기에에 살고있는 수천명의 영국인들은 영국의 국민투표 이후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면서 “많은 영국인들은 EU내에서 살기 위해 벨기에 국적 취득을 고려중에 있으며 이미 상당수는 구체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면 EU 역내에 살고 있는 영국인들이 거주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려는 경우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왔는데, 이것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브뤼셀의 남동쪽에 위치한 엘서너 자치구에는 영국의 국민투표 다음날인 24일부터 지금까지 30건의 국적취득 신청서가 접수됐다. 이 자치구의 도미니크 두포니 시장은 ‘예외적인 상황’이라면서 “프랑스가 부유세를 도입했을 때 많은 프랑스인들이 벨기에인으로 국적을 바꾼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여기에 살면서 자녀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마련해 주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 자치구에는 전체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영국인들이 살고 있다.

또 엘서너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우켈 자치구에도 모두 11건의 신청서가 접수됐는데 지난해에는 단 한 건밖에 없었다. 이곳 보리스 딜레 부시장은 “이는 명백히 영국의 EU탈퇴와 관련이 있다”면서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사람들에게 국민투표에서의 탈퇴 결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외 테뷰런 자치구에도 하루에만 최소 19건의 국적취득 신청서가 접수됐으며, 워털루 자치구에도 15건이 접수됐다. 이곳 플로렌스 로이터 시장 역시 ‘예외적인 상황’이라면서 “사람들이 노동허가 문제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벨기에에서 5년 이상 거주하고, 3개의 공식 언어(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 하나를 할 줄 알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명서 등을 갖춘 외국인이 해당 지역 자치구에 신청을 하면 연방법원의 심사를 거쳐 벨기에 국적을 얻을 수 있다.

천문학을 가르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스탄불, 톱카프궁전 박물관.

“이슬람은 테러집단인가?” 이슬람국가란 뜻의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IS(Islamic State)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면서, 본래 종교를 지칭하던 이슬람이란 용어를 특정 테러 집단과 혼동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탈레반의 거대 불상 파괴, 아이에스의 고대 유적 파괴가 보도되면서 이슬람이란 종교 자체가 인류의 문화유산마저 파괴하는 집단으로 오해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동 건축 붐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었으면서도,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다. 그러나 예루살렘, 이스탄불, 코르도바 등을 방문한 이들은 이슬람 전통문화의 높은 수준에 깜짝 놀란다. 우리뿐만 아니라 서양 중세에 살던 이들에게도 이슬람 문화는 낯설지만 매혹적인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슬람 문화는 어떻게 해서 그처럼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슬람의 태동과 정복 전쟁

‘이슬람’(islam)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창시되기 전까지, 사막으로 뒤덮인 아라비아 반도는 매우 낙후한 지역이었다. 대부분의 아랍인(사라센)은 유목생활을 하며 나라 없이 ‘부족’을 형성하고 있었다. 6세기 후반,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왕래하던 대상(隊商)들이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간의 오랜 전쟁을 피해 아라비아를 통과하면서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에 새 종교의 창시자 ‘무함마드’(570~632)가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상인 아부 바크르의 딸과 결혼했고,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 및 그리스도교인과 친교를 맺었다. 중년에 접어든 무함마드는 자신이 아라비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임명된 알라의 도구라고 확신했다. 그는 신의 계시를 모은 <코란&amp;amp;gt;(Koran)을 편찬해서 ‘무슬림’(Muslim)에게 삶의 지침으로 주었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신도들을 가리키는 말로 신에게 복종하는 의무를 졌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가장 위대한 마지막 예언자”라고 믿었다.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는 2대 칼리프 우마르와 함께 무함마드를 거부한 여러 부족들을 굴복시켰다. 무슬림은 금세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는 물론 페르시아와 이집트까지 점령했다. 이어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진격했고, 8세기 초에는 에스파냐로 쳐들어가 그 지역 대부분도 차지했다. 그 결과 무슬림은 불과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전부와 옛 로마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font color="#b26369"&amp;gt;&amp;lt;b&amp;gt; 5C부터 그리스 책들 아랍어 번역&amp;lt;br /&amp;gt;천문학·의학 발전은 ‘인류 유산’&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슬람이 전달한 아리스토텔레스&amp;lt;br /&amp;gt;전성기 스콜라철학 중요한 밑거름&amp;lt;/b&amp;gt;&amp;lt;/font&amp;gt;&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div class="image-area"&amp;gt; &amp;lt;div class="imageC" style="width:434px"&amp;gt; &amp;lt;div class="image"&amp;gt; &amp;lt;img src="//img.hani.co.kr/imgdb/resize/2016/0929/00503704_20160929.JPG" style="width:434px" title alt /&amp;gt; &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b&amp;gt;이슬람 문화의 발전&amp;lt;/b&amp;gt;&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넓은 지역과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게 된 이슬람은 그리스 학문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이미 5세기부터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으로 판정받은 네스토리우스파 등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시리아어로 번역해 놓았다. 시리아를 점령한 이슬람은 그리스 문헌과 번역서를 발견한 뒤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슬람의 지도자들은 곳곳에 대규모 공립 도서관을 짓고, 그리스어나 시리아어로 되어 있던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특히 알마문(Al-Ma'mun, 786~833)이 바그다드에 지은 ‘지혜의 집’에서는 번역자들을 매우 우대했다. 전설에 의하면, 저울 한쪽에는 번역된 양피지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그 무게에 상응하는 금을 얹어주었다고 한다. 파격적인 지원정책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과학서적들도 모두 아랍어로 번역되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슬람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실용적인 과학 분야였다. 우선 연금술(Alchemy)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의 부산물로 화학 지식이 축적되었다. 또 천문학에 뛰어난 아랍인들은 거의 완벽하게 지구의 둘레가 약 4만㎞임을 측정할 정도였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아랍인들이 만들어낸 ‘아스트롤라비움’(Astrolabium)이라는 도구였다. 코페르니쿠스도 사용했던 이 도구에 별들의 위치를 맞추어 놓으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의학도 발달해서, 최초의 종합병원 시스템이 탄생했다. 아울러 아라비아숫자를 바탕으로 산술학 분야도 발전했다. 과학 분야 이외에도 주식회사·수표·신용장과 같은 경제 분야를 넘어 문학·미술·음악·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유산을 남겼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슬람 문화의 다양한 발전을 잘 보여주는 이가 바로 아비첸나(Avicenna, 980~1037)라는 학자다. 매우 박식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아비첸나(이븐시나)도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언제 어디서나 학문 탐구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amp;amp;lt;치유의 책&amp;amp;gt; 또는 &amp;amp;lt;충족&amp;amp;gt;(Sufficientiae)이라고 불리는 백과사전을 저술했다. 이 책은 논리학, 자연학, 수학, 심리학, 형이상학 등을 포괄하고 있었다. 더욱이 아비첸나가 쓴 &amp;amp;lt;의학정전&amp;amp;gt;이라는 책은 중세 대학들에서도 교과서로 사용될 정도로 훌륭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렇게 이슬람 문화는 헬레니즘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의 토대 위에 이슬람의 창의성을 더하여 이루어졌다. 9세기에서 11세기까지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곳은 서유럽이 아니라 바로 이슬람 영향권이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div class="image-area"&amp;gt; &amp;lt;div class="imageC" style="width:643px"&amp;gt; &amp;lt;div class="image"&amp;gt; &amp;lt;img src="//img.hani.co.kr/imgdb/resize/2016/0929/00503705_20160929.JPG" style="width:643px" title="이슬람의 화학에서 사용된 증류과정, 런던, 영국도서관." alt="이슬람의 화학에서 사용된 증류과정, 런던, 영국도서관." /&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desc" style="width:643px"&amp;gt;이슬람의 화학에서 사용된 증류과정, 런던, 영국도서관.&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b&amp;gt;관용에서 폐쇄로&amp;lt;/b&amp;gt;&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빠르게 팽창한 것은 정복 전쟁이나 현실적 보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복지에 대한 관용정책도 큰 역할을 했다. 무슬림은 비잔틴, 페르시아 정부보다 세금을 더 적게 거두었기에, 피정복지 주민들은 새 지배자를 정복자라기보다 해방자로 생각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슬람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무슬림이 시종일관 ‘칼이냐 코란이냐’ 하고 타 종교인들을 강제로 개종시켰다는 것이다. 초기 무슬림은 오히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거주를 허용했다. 단지 피정복민들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종교인들은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이슬람으로 대거 개종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슬람 정부는 국가 수입의 증대를 위해 세금 감면 목적의 개종을 막는 백서를 발표할 정도였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그렇지만 개방적이던 이슬람 문화는 종교지상주의 신학자들이 실권을 차지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우선 아랍인 철학자들이 문화 전반에서 활약하자, 폐쇄적인 신학자들이 철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가잘리(al-Ghaz?l?, 1058~1111)라는 신학자는 &amp;amp;lt;철학자들의 모순&amp;amp;gt;이라는 책에서 철학자들이 이성적인 내용을 들여와서 이슬람 신앙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에 동조하는 종교지상주의자가 이슬람 문화권 안에서 점차 힘을 얻었다. 그 영향이 자유롭게 학문을 논하던 코르도바 지역에까지 미치게 되었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이렇게 경직되어 가던 분위기 속에서 학문의 자유를 옹호한 이슬람 철학자가 아베로에스(Averroes, 1126~1198)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지성의 화신이요, 진리를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해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주해했다. 더 나아가 아베로에스는 가잘리 같은 신학자들이 철학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amp;amp;lt;모순의 모순&amp;amp;gt;을 저술했다. 여기서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안에 담긴 진리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 진리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비유와 설화 등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amp;amp;lt;코란&amp;amp;gt;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에 분노한 신학자와 대중들은 아베로에스가 대법관으로 일하던 법원에 몰려가서 항의했고, 그의 책들을 대부분 소각시켜 버렸다.&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div class="image-area"&amp;gt; &amp;lt;div class="imageC" style="width:453px"&amp;gt; &amp;lt;div class="image"&amp;gt; &amp;lt;img src="//img.hani.co.kr/imgdb/resize/2016/0929/00503703_20160929.JPG" style="width:453px" title="압바스왕조 도서관의 학자들, 바그다드, 1237년, 야흐야 알와시티,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alt="압바스왕조 도서관의 학자들, 바그다드, 1237년, 야흐야 알와시티,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desc" style="width:453px"&amp;gt;압바스왕조 도서관의 학자들, 바그다드, 1237년, 야흐야 알와시티,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div&amp;gt; 무슬림은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며, 아프리카로부터 중동·구소련을 거쳐 인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인종·언어·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슬림 사이에 유별난 공동체 의식이 남아 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에 버금가게 복잡한 발전 과정을 거친 이슬람교를 이 글에서 개관한 이유는 그 문화가 서양 중세에 미친 영향 때문이다. 초기 이슬람이 보존해서 전해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더 나아가 서양 중세는 이슬람에서 벌어진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의 논쟁 과정을 유사하게 반복했다. 그럼에도 종교지상주의자들이 승리한 이슬람과 달리, 중세를 거치며 철학과 자연과학의 독자성을 확보한 서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앞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중세 이슬람 문화는 편견을 버리고 이슬람을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그 문화가 몰락해 간 과정은 경직된 폐쇄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amp;lt;p align="justify"&amp;gt;&amp;lt;/p&amp;gt; &amp;lt;br /&amp;gt; &amp;lt;/div&amp;gt; &amp;lt;div title="연재기사" class="relation-tyB serial"&amp;gt; &amp;lt;h5&amp;gt;&amp;lt;em&amp;gt;연재&amp;lt;/em&amp;gt;&amp;lt;span&amp;gt;&amp;lt;a href="/arti/SERIES/787/"&amp;gt;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amp;lt;/a&amp;gt;&amp;lt;/span&amp;gt;&amp;lt;/h5&amp;gt; &amp;lt;ul class="list"&amp;gt; &amp;lt;li&amp;gt; &amp;lt;a href="/arti/culture/book/783049.html"&amp;gt; &amp;lt;span class="photo"&amp;gt;&amp;lt;img src="https://img.hani.co.kr/imgdb/thumbnail/2017/0216/00503959_20170216.JPG" alt="중세가 현대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title="중세가 현대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amp;gt;&amp;lt;/span&amp;gt; &amp;lt;span class="tit"&amp;gt;중세가 현대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amp;lt;/span&amp;gt; &amp;lt;/a&amp;gt; &amp;lt;/li&amp;gt; &amp;lt;li&amp;gt; &amp;lt;a href="/arti/culture/book/781126.html"&amp;gt; &amp;lt;span class="tit"&amp;gt;중세 말 유럽인들, 왜 해골에 열광했나 &amp;lt;/span&amp;gt; &amp;lt;/a&amp;gt; &amp;lt;/li&amp;gt; &amp;lt;li&amp;gt; &amp;lt;a href="/arti/culture/book/779529.html"&amp;gt; &amp;lt;span class="tit"&amp;gt;라틴어로부터 해방된 지역 언어&amp;lt;/span&amp;gt; &amp;lt;/a&amp;gt; &amp;lt;/li&amp;gt; &amp;lt;/ul&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gudokArea"&amp;gt; &amp;lt;a href="http://notice.hani.co.kr/customer_view.html?bid=notice&amp;amp;amp;no=780&amp;amp;amp;page=1" title="구독신청" target="_blank"&amp;gt;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amp;lt;span&amp;gt;한겨레 구독신청 하기&amp;lt;/span&amp;gt;&amp;lt;/a&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bn-promotion-support-2st kisa"&amp;gt; &amp;lt;div class="support-con item1" style="display:block"&amp;gt; &amp;lt;div class="support-tit"&amp;gt; &amp;lt;strong&amp;gt;진실을 후원해주세요&amp;lt;/strong&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support-txt"&amp;gt;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amp;lt;br /&amp;gt; 여러분의 후원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거둡니다. &amp;lt;/div&amp;gt; &amp;lt;div class="support-btn"&amp;gt; &amp;lt;a class="btn" href="https://support.hani.co.kr/hani/support.hani" onclick="ga('send', 'event', 'support', 'click', 'pa2', '2');dataLayer.push({'event': 'click_cta','button_type': 'donation','button_name': '후원_w본문하단고정'});"&amp;gt;후원하기&amp;lt;/a&amp;gt; &amp;lt;a class="btn btn-w" href="https://support.hani.co.kr/introduce/" target="_blank"&amp;gt;후원제 소개&amp;lt;/a&amp;gt; &amp;lt;/div&amp;gt; &amp;lt;/div&amp;gt; &amp;lt;div class="support-con item2" style="display:none"&amp;gt; &amp;lt;div class="support-tit"&amp;gt; &amp;lt;strong&amp;gt;두근거리는 미래를 후원해주세요&amp;lt;/strong&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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