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난동 피우는 어떤 여기자

Samsung Electronics Vice Chairman name Jae yong Lee youngest half-sister,name Yoon hyung Lee contract killings suspicion
Samsung Group Chairman Kun hee Lee was murdered contract
The eldest son to Jae yong Lee
click- http://blog.naver.com/allinasuka7

You can find the Samsung scandal
Read translations of doc-uments written in Korean
We know the Samsung Vice Chairman Lee Jae-yong crime

Samsung Group Chairman Lee Kun-hee was murdered contract
The eldest son to Lee Jae-yong

내글을 번역 해서 끝까지 읽어보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목 (룸) 같은

삼성공화국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삼성가 홍라희와 이재용의 범행을 한통속으로 은폐 하려 한다는 나의 글이

신빙성이 있음을 알 것이다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치밀한 음모로 세월호 계획적 학살을 위해 침몰시켜 단원고등학생들을 산채로 바다에 수장시키는 잔악무도한 목포해경 123정이 고의로 끌어당겨 단원고 애들을 생수장 시키는 동영상 아래 click 하면 나온다


https://youtu.be/ymHqS6uJXGY-click-click 동영상 나옴

이 극악무도한 살인 정권은 용서가 안되는 집단이다. 자신들의 범죄를 덮기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건 이승만 때부터 죽 있어왔다. 국가범죄는...

https://www.youtube.com/watch?v=hUSwABW7CKM- click-동영상 나옴


경악 세월호를 목포해경 123정이 고의로 끌어당겨 단원고 애들을 산채로 생수장 시키는 동영상


정말 잔악무도한 놈들이네 인명 구조와 세월호 인양을 쉽게 할려면 수심이 낮고 물살이 약한 병풍도 섬 쪽으로 세월호를 끌고 가야지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 해역으로 세월호를 쇠줄걸어 목포해경놈들이 끌고 간다는 건 세월호 계획 침몰시켜 승객304명을 산채로 수장하여 학살하는 100% 확실한 증거다

그리고 저놈들이 끌고가 세월호를 수장시킨 곳이 정부에서 침몰 지점 이라고 발표하니

사전에 미리 공모하여 시나리오를 작성한 증거로 정말 천인공로 하고 잔악무도한 놈들 이다


위의 동영상 증거가 이렇게 확실한데 세월호가 단순 사고라고 지랄하는 것들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먼저 요점을 쉽게 정리하면

북한의 김일성을 암살한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죽었다고 구라치며 빠르게 장례식을 치른 적이 있는데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이재용이 좀 손해를 보더러도 심근경색으로 죽었다고 조작하여 장례를 치뤘으면 아무리 이건희가 암살되었다고 떠들어도 세상은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한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뒤늣게 알자

자신들의 범행이 들어날 우려로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할 계획을 세운 이재용이 파장을 우려해

미리 2014년4월16일 세월호 계획 침몰시켜 학살하여 큰 이슈를 만들고 한국을 뒤집어 놓고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조용히 덮은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을 냉동시켜 삼성병원에 입원시키고 살았다고 조작하여 쇼를 한 증거가 들어났다
2015년6월2일 삼성병원에 있는 이건희 회장이 재활훈련하며

삼성그룹 미래 전략실장 최지성에게 이건희 회장이 업무보고 받는다고 거짓말하며

병실 조작사진을 흘리며 쇼를 한것은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진실을 주주들이 알고 대략 2달 가까이 후에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승인을 않해줄까봐
거짓말한 증거가 이젠 확실히 들어났다

삼성이 말한것 처럼 휠체어 타며 업무보고 받는다는 이건희 회장이 2년 4개월이 넘게 병실 밖을 한번도 나온적이 없으니까 삼성의 거짓말이 확실한 것이다

여기서 커다란 악수를 두어 범죄의 증거를 확실히 들어낸 홍라희 이재용이 미래를 몰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면 여기저기서 의혹을 갖고 특히 대구태생의 이건희 회장의 사인을 밝히려

경상도 세력이 집요하게 들추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 암살 직전 파장을 우려해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하고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까지 연출하여 메르스퍼트려 38명을 죽인 이재용

그러나 과거 군사정권을 득세로 힘을 썼던 부패한 경상도 세력과 삼성전자 주가 사는 주주들은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은 관심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 이다

겁이 많은 홍라희 이재용이 한국민의 국민성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삼성전자 주주들을 높게 평가하여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극과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과 메르스사건을 일으킨것은 밀림의 동물들이 위장색을 본능적으로 연출하여

위장 은폐 하려는 행동과 비슷한 것이다

도둑이 제발저리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불안에 떨며 안해도 될 짓을 하여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 하려 했던 홍라희 이재용

덕분에 오히려 범행의 증거가 확실히 들어난것이다

세상은 돈과 권력의 의지대로 판이 짜여지고 그들의 시나리오 데로 흘러가며 역사는 왜곡되는게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똑똑한 놈들이 시나리오를 짜도 인간이 하는일에는 100% 장담할수는 없는 변수가 생길수도 있는게 또한 세상이다 축구 경기에서 최약팀이 최강팀을 기적처럼 일길수도 있는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일은 어디서든 실수가 있고 또한 예상치 않은 돌발 변수가 있기에

범죄의 흔적이 발견 되는 경우가 있다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 주주총회가 열리기 대략 2달 가까이 전에 2015년6월2일

주주들 속일려고 일원동 삼성 서울병원 20층 특실에서 이건희 회장이

건강이 많이 회복하여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에게 업무보고를 받는다며 삼성에서 말한적이 있는데

그것이 전부 거짓말이란 증거가 확실히 들어났다

그것은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쇼를 하며 국제적으로 사기극을 펼친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과거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여 문둥이들 서포트 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화여 그러한 권력장악은 힘들고

대신 삼성공화국의 거대한 자본이 한국의 법과 권력위에 군림하며

은밀히 돈으로 장악하고 있다

죽써서 개줬다는 말처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삼성을 장악한
홍라희 외가가 전남 목포고
친일파 홍진기가 일제때 전주지법에서 판사시절 태어나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고 (라희) 로
이름지은건 역사가 증명하고 홍진기가 장녀 홍라희를 치밀한 정략 결혼으로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셋째아들 이건희 에게 시집 보내자 이병철 본적 경남의령에 편입하고
원조 원정출산 1호로 이재용을 미국에서 출산한다
이재용은 서울대학교 시절 아시아 승마 대회 나가서 2등한 놈이
군면제를 받았고
지아들 국제영훈중학교에 한부모 자녀라며 사회적배려대상자 라고 한국 최고부자가

불상한척 연기하며

그것도 성적 조작하여 부정 입학시켜 걸리자
몰랐다고 거짓말 한 놈 이다

미국에서 빌케이츠가 그랬으면 징역살고 양심없다고 매장됐을 것이다

그런데 삼성공화국에선 조용히 넘어갔다
치밀하게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은 삼성공화국을 강도질하여
과거 군사정권이 독점 하던 권력을 한국 최고자본으로 법과 권력 위에서 군사정권 시절 이상으로 군림하려 치밀하게 만든 삼성공화국을 차지한 홍라희 이재용이 깽깽이들 은근히 띄워주며 이용하고
이건희가 살아있을때는 삼성을 씹던 깽깽이들이 삼성알바들과 함께
이건희를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에 열광하며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범죄를 은폐하려 구라를 조직적으로 퍼날러 여론조작 하며 강아지도 비웃을 짓을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암살직전 파장을 우려해 세월호 고의 학살극까지 연출한 홍라희 이재용 파렴치범들
범죄을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현재의 삼성공화국은 과거 전두환의 군사독재 시절보다
한국의 언론과 방송을 더심하게 장악하여 찍소리도 못나오게 하고 있다

삼성의 비리를 들추는 인간은 은밀하게 모함하여 한국에서 매장시키려 하고있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삼성의 비리를 들추는 세력은 출연 금지시키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한국사회에 거대한 삼성공화국 자본과 권력은 힘을 발휘 못하는 곳이 없다

한국에서 돈을 못벌게 모함하고 온갖 음모로 매장시키려 하기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시절 이상으로 은밀히 침묵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삼성공화국

증거로 전두환은 씹어도 4.19 혁명때 최인규가 무능하다고 큰소리쳐 내무부 장관에 갑자기 등용된 홍진기가 배후에 빨갱이가 있다며 누명씌워 경찰총수 곽영주에게 발포명령내려 서울에서 130 여명 죽인 홍진기는 법무부 장관시절에는 당선이 유력했던 조봉암 선생을 누명씌워 사법살해 하여 이승만을 당선시킨 4.19 혁명을 일으킨 원흉 홍진기 가
사형 받을걸 이병철이 돈으로 로비하여 박정희가 특사로 내보냄

4.19의 책임을 최인규 곽영주 정치깡패 이정재 임화수에게 누명씌우고 특사로 나온 홍진기는 서울대에 홍진기 호 유민홀을 짓고 지금도 기리고 있다

일년에 한번 있는 4.19 기념식에는 홍라희 눈치 보느라

문재인 안철수 모두 불참하고 한상진은 이승만을 국부라고 아부를 떨고 있다
그러한 삼성공화국에서 홍라희 이재용의 범죄는 은폐 되고있다 )


세월호 승객을 2014년 4월16일 특히 민감한 사안인 미성년자 들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을 희생양 타켓을 삼아 단원고 학생 250명 등 세월호 승객 총 304명을 산채로 수장하여 나라를 뒤집고


26일후 2014년 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여 조용히 덮으려던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더러운 계획의 결정적인 증거는

세월호 선원과 특히 목포해경이 쇠줄과 로프를 세월호에 걸어 끌고


한국에서 2번째로 물살이 강하기로 소문난 맹골도 해역으로 끌고가 확인 수장시키는 천인공로할 동영상이 분명히 존재하고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갑자기 2016년 7월

뉴스타파를 통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 동영상을 유포한 이유는

이건희 회장이 상습 성매매 자로 조작하여 쓰러질때도 성매매 하다 쓰러졌다고

은근히 유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의 조작 여론 유도형 수법이다

목포해경 놈들이 세월호 고의 침몰시켜 학살 하는 결정적인 100% 증거 동영상이 분명이 존재하는데

세월호 특조위와 여.야 국회의원 특히 경기도 단원고를 보유한 수도권 지식인들은 무엇이 무서워 말한마디 못하고 병신처럼 누구 눈치 보느라 침묵만 하고 있나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믿지 않고 스스로 힘들게 노력하여 탈출한 경기 단원고 학생들이 일본의 방송국 에서 인터뷰한 내용중에

소름끼치는 것은 세월호 안내 반송으로 특히 단원고 애들은 가만 있으랬다고 했다

처음부터 단원고 학생들을 학살하여 큰 이슈를 만들 목적으로 출항한게 확실하다는

또 하나의 정황 증거 이다

단원고 교감이 계약한 오마나니호 에서 출항 당일 갑자기 유일하게 국정원이 회괴하게 관리한 세월호로 갑자기 바뀌어 출항 했는데 여객선을 국정원이 관리 했다는 것부터 있을수 없는 일이고

처음부터 학살모의를 했다는 증거이다

방송에 인기있는 드라마의

출연 배우는 그저 배역에 맞게 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극의 최종 결말을 알수있는것은

시나리오 작가만이 알수가 있다


이와 만찬가지로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극도 배후인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일부 고위층만 알지 세월호를 학살하려 한다는 말을 일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학살을 100%로 삼성가 에서 계획 했다고 증거가 나와도

아니라고 부인 할것들 인데 결코 그런말을 꺼낼리가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월호 선원이나 삼성알바들이 수두륵한 국정원이나 목포해경 등은 맡은 배역에 충실했으리라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가 어느정도 결말을 알수 있듯시

그들이 맡은 배역을 이행 하면서 고의 학살의 목적이 있다고 충분이 알수 있는 경우였다


특히 학살하라고 하는 그런 직접 지시는 절대 안했겠지만


세월호 승객 구조 지시는 하지 않고 오히려 목포 해경이 로프를 걸어

물살이 강한 맹골도 해역으로 세월호를 끌고가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는

누구나 세월호 승객을 학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 한건 학살범과 같이 공범이다

이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교감 선생은 아무도 납득 할수 없는 의문의 자살 사건으로 죽고 없다

한국의 법과 정부 위에서 군림하는 삼성공국의 배후로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자꾸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단원고 학생들은 특히 가만있으라고한 안내방송 맨트와 너무도 같다


얼마 동안 이야기할지 결정하는 것은 피해자들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을 보라. 100년이 지났지만 그들에게 아무도 ‘그만 이야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세계가 그들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해자인 독일도 지금까지 100살이 넘는 전범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태풍도 비도 오지않은 맑은 날씨에 그것도 야간도 아닌데 또한 생중계방송중인데도 어이없게도. 눈뜨고 그 많은 인원을 수장시키고도 모자라서 거짓해명만 해대는 정부의 배후에 삼성공화국이 있다


세월호 고의침몰 학살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암살직전 파장을 우려한 홍라희 이재용이 특수관계인 유병언과 삼성공화국 정부 비밀조직을 총망라 하여

2014년4월16일 세월호 침몰시켜 산채로 승객을 수장 시켜 한국을 발칵 뒤집고 어수선하던 틈을 이용하여 26일후 2014년 5월10일 조용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천인공로한 만행을 저지른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배후 세력 이다


목포해경 쓰레기가 세월호 로프 걸어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로 끌고가 산채로 수장시키는 확실한 동영상 분명이 존재 한다


가장중요한 구조 첫날 한국에서 최고의 구조 전문인 SSU. UDT 등 해군 특수부대 구조 진입을 막은 지휘 체계와 전원구조 오보를 조작하여 청와대에 보고한 배후 세력도 조사 해야 하는데 흐지부지 넘어갔다


정말 웃기는 증권가 이건희 회장 사망 찌라시가 핵분열하듯 증권가 퍼졌는데

회괴하게

오히려 삼성전자 주가는 오르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떠들자

마지못해 내놓은 검찰의 수사내용은 찌라시 퍼트린 범인이 미국에서 2000년 부터 거주하는 수퍼에서 일하는 최씨라는 사람인데 일베에 퍼트려 유포했다는데

15년간 한번도 입국하지 않아

검찰에서 수사를 할수가 없덴다

더구나 지금은 잠적 했단다

역시 삼성가의 자작극 다운 수사 내용이다

내글은 아무리 퍼트려도 광폭행보를 하지않는데

최씨라는 사람의 글은 왜 그렇게 광폭 행보를 하며 짧은 시간에 핵분열 하듯 퍼졌을까

삼성에서 계획적으로 퍼트리지 않았으면 그렇게 광폭 행보를 하지 못한다

한국은 강자에 약한 민족성이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삼성공화국을 장악하고 조직적으로 은폐 한다는걸 알면서도 전부 쉬쉬하며 모른척 하고 있다

그런데다 아무리 이건희 회장이 죽었다고 한들 전부 모른척 하며 관심도 없을 텐데

증권가 이건희 회장 사망 찌라시가 그런게 광폭 행보를 하며 퍼진건 삼성가의 자작극 이란 증거이다

삼성이 퍼트리면 광폭 행보가 가능하다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계속 살아 있다고 속이고 숨길수는

없다 이재용이 볼일이 거이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이부진도 임우재와 이혼 단계에 와 있고 조만간 지병으로 죽었다고 말하고 조용히 장례식을 치뤄야 하기에 어떻게 나오나 볼려고 일종의 떠보기와 예방주사 맞기와 같은 내용으로

삼성가 에서 계획적으로 퍼트리지 않으면 그렇게 짧은 시간 광폭행보를 할수가 없다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조작 사건도 절대 수사 못하는건 전부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 이기때문

2015년 5월25일 영국 화재보험에 재가입하여 전액 배상가능한 제일모직 방화사건 자작극 벌인 이재용의 목적은


주주들이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이재용 이란 진실을 알아


2015년 7월17일 열린 삼성그룹 순환출조 구조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강도질 하려는 이재용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승인을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진실을 알아 합병승인을 거부할까봐

노심초사 하여

주주총회 대략 2달전 2015년 5월25일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만들고 메르스 퍼트리고

2015년 6월2일 이건희 회장 병실 조작 사진을 흘리고 건강하다고 재활훈련하며 업무보고 받는다고 이재용 쓰레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2016년 9월 5일 현재 까지

일원동 삼성 서울 병원 20층 특실을 한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다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말고는 본사람이 전혀 없다

홍라희 이재용의 거짓말이 100%로 입증된 것이다

2015년 7월17일 합병이 승인되고 난후 7월23일 방화범 시체가 제일모직 방화 현장에서

제일모직 방화사건후 2달 만에 발견 됐다고 강아지도 안믿을 말로

사건을 종결한 삼성가 개에 불과한 경찰

이젠 이건희 회장 내다 버리고 죽었다고 장례식 치루려 면역력 키울고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갑자기 2016년 7월

뉴스타파를 통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 동영상을 유포한 이유는

이건희 회장이 상습 성매매 자로 조작하여 낙인찍어


쓰러질때도 성매매 하다 쓰러졌다고

은근히 유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의 여론 조작 수법이다

이건희 회장은 상습 성매매자로 조작하여 낙인찍어 죽었으니 적당한 시기 장례식 해도 트집잡지 말라고 홍라희 이재용이 예방주사 놓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건희 성매매 조작극까지 만들어 전세계에 유포하여 이건희를 두번죽인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은 올림픽에 저질 쓰레기 인간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은 따논 당상 이다


정말 미친놈들 인명 구조와 인양을 쉽게 할려면 수심이 낮고 물살이 약한 섬쪽으로 끌고 가야지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한 쪽 으로 끌고 간다는 건 세월호 승객을 2014년 4월16일 산채로 수장 하여 나라를 뒤집고 26일후 2014년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여 조용히 덮으려던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계획이다

홍라희가 한국 인터넷 daum 아고라 토론방 메인에서 빼서

조회수가 과거보다 90%이상 줄였는데

내가 자꾸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 이재용이 암살하고

세월호 계획 침몰 고의학살의 배후도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이란 글을 올려 조회수를 높이자

메인에서 빼서 조회수를 90%이상 떨어트린 삼성공화국


안그래도 될뻔 했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마누라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들이 돈으로 쳐막으면 이렇게 조용한데 ㅋㅋ


2013년 1월 158만원 이던 삼성전자주가

2016년 8월18일 163만원 까지

폭등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이 이건희 암살하고 지분 늘리려 대우조선 해양이 분식회계 조작하여 매출 늘여

5조원이상 대출받아 경영진이 나눠가지듯

반대로 삼성전자 분식회계 조작하여 매출을 줄여

주가 내리고 이건희 부동산 계열사 쪼개고 팔아 삼성전자 지분 늘리고 다시 원상태로 주가 올리는

이재용 쓰레기

주가가 상황에 따라서 변동은 있지만 갑자기 수십만원이 내렸다가 갑자기

오른건 의심의 여지가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인들 천지인데

이건희 회장 쓰러졌다고 주가가 그렇게 폭락하다 이재용이 볼일 다보니

다시 갑자기 띄는건 분식회계 조작 의심이 든다

거기에 이재용이 운좋게 요즘 삼성 스마트폰 겔럭시 7 이 홍채인식 기술이 첨가되어 잘팔린다고 하는 데 무엇보다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거짓 연출력이 천제적이라

바람잡아 물건을 잘팔아 먹는 것이다


사실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제작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에 가장 중요한게 시나리오다


유명한 배후나 탤런트들이 출연 해도 형편없는 시니라오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에서 흥행에 참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 하다

물론 배우들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널려있다


사실 스타는 만들기 나름 이다 왠만한 사람 옷 잘 입히고 치장 잘해서

좋은 시나리오에 서포트 해주면 스타로 만들수도 있다

일반인들 중에 유명 가수 보다 인물이나 노래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스타가 될수 없었던건 운이 없어 돈과 인맥을 못만나

가수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실제로 돈과 백이 없어 무명가수나 연예인으로 전전하다

로또복권 당첨되어 운좋게 스타가된 가수나 연예인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오랬 동안 무명이었던 이주일 이다 1976년 이리역 폭파사건때 하춘하를 업고 뛰어

하춘하가 소개하여 스타가 된 케이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외에도 많지만 특히 1992년 혜성같이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빅히트 하며

무명이던 양현석과 이주노가 갑자기 대스타가 된것은 전적으로 서태지를 잘만나서 그런것이다


특히 지금 잘나가는 YG 사장인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춤을 가르쳐주게 되는 우연한 인연으로

만난 서태지가 그룹을 결성 하자고 하여 옆에서 춤만 쳐주고 인생 역전한 케이스다


그들은 서태지가 아니었으면 진짜 3류 인생으로 살다 끝났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양현석과 이주노가 아니고 다른사람을 같다 놔도 그 이상 히트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태지 때문에 히트한 것이다


첫째 재미와 품격을 갖춘 수준높은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 하고

시나리오를 최대한 잘 표현할수 있는 독특한 연출력이 뛰어난 감독이 중요 하다


배우는 널려 있다 누구를 쓰느냐에 따라서 스타로 만들수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프린스 와 해운대로 주가 급등인 공유 같은 배우는

좋은 작품에 운이던 인맥이던 돈백인지 모르지만

주인공으로 케스팅되어 스타가 된것이지 그저 평범하다게 보인다

주변 그런 정도의 사람은 널려있다

물론 게그맨이던 가수던 영화배우던 탤런트던 마찬가지다

지들은 스타가 됐으니 특별난줄 알지만 그런사람은

김연아 서태지 같은 특줄난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 운이 좋은것 뿐이다

사실 김연아 서태지도 운이 만이 따른 케이스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것도 99%가 운 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히딩크가 당시 2류 였던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을 대표로 발탁하려 하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히딩크가 발탁을 하지 않았으면 스타가 되지 못하고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 노래 가사 처럼 사라 졌을 것이다

그들은 히딩크가 선호하는 부류의 선수라 운좋게 히딩크에 눈에 띄어 발탁되어

좋은 감독의 지도와 국민적인 서포트로

성장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행운이라고 한다

박지성은 수원공고시절 받아주는 프로팀과 대학팀이 없어

선수생명이 끝날뻔 했는데 박지성과 안면이 있던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이 불상해서

받아들 이려 하자 축구부 인원이 마감이 되어 다른 과로 힘들게 입학시켰다고 한다

그런 인연과 당시 명지대와 올림픽 대표팀 과의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을 발탁해서 시켰는데 2000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조별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들이 아니어도 다른선수 데려다가 히딩크는 비슷한 수준의 팀을 만들수 있었다

물론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팀에 운도 많이 따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유명 배우의 명성에 흥행을 바라는 영화 감독이나

메시같은 선수 하나로 성적을 바라는 축구감독은 절대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

메시가 있다고 월드컵이나 코파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못하는 것은 축구는 조직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는 감독의 용병술과 전술과 연출력이

더 중요하다는 증거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주커버그는 이재용과 친구 라고 한다

내가 페이스북 새로운 계정을 만들려고 하자 못만들게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든계정은 꼬투리 잡아 하나씩 삭제시키려 하고 있다

빌게이츠는 그나마 좀났고

​세계최대 부호

빌케이츠가 100조 있다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보다 500배 재산이 더많이 보유한

로스챠일드가

혹자는 5경 보다 훨씬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것이다

세계부자 순위에 집어넣지도 못하게 압력을 행사며 공개를 꺼려하며

은밀히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계를 지배한는 유태계 로스챠일드가는 무려 재산이 5조경에 달한다며

세계의 큰 미스테리 사건의 상당수가 로스챠일드가 가 배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

한국에서 삼성이 돈지랄 하는건 절대 걸리지 않는것처럼

로스챠일드가가 벌인일은 절대 들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

– 임대한자는 빌려준자의 노예가 된다 –

(구약 성경에 있는 말 입니다.

이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초대 “마이어 아무세루 로스차일드”의 다음의 말입니다.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 이야말로 최후의 지배자이며,

한 나라의 정부와 지배자인 정치인 조차도 그 힘 앞에서는 무릎 꿇을수 밖에 없다.

6 명의 역대 미국대통령이 임기 중에 암살미수 혹은 암살 되었습니다.

[최초의 미국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킨 미국 독립의 선각자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제3대 대통령),제임스 매디슨(4대), 앤드류 잭슨(7대),

아브라함링컨(16대), 존.F.케네디(35대) ]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적으로 말할수 있는 것은 통화발행권을 되찾으려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케네디 대통령은 1963 년 6 월통화 발행권을 되찾고 정부 발행 지폐를

유통시키지만, 반년 후에 암살되고 정부지폐는 즉시 회수 되었습니다.

이후 통화발행권을 되찾으려는대통령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현직 미국 대통령이던 케네디를 암살한게 CIA를 해체하려하고

베트남전에서 철수하려 하여 군수납품업자와 CIA가 당시 부통령 존슨과 짜고

FBI까지 가담시켜 케네디를 암살하고 ​ 대통령직을 부통령 존슨이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 연방 준비은행 (FRB)은 미국화폐를 만드는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미국 정부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3년에 미국 정부가

화폐발행권을 되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는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국제금융재벌의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희생양 오스왈드가

완강히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이라고 누명씌운 CIA는

잡힌지 2일 만에 제대로 조사받기위해  구치소로 이동중에 잭루비에

총에 맞아 죽는다

장례식장에서 CIA가  오스왈드 지문을 찍어갔다는 목격자 증언도 있다

총기에 묻히고 누명을 씌우려 한것이다

의문의 사건을 전문으로 추적하여  파해치기로 당시 유명한 도로시 라는  여기자가

잭루비에게 면회를 가서 취재하자

방송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잘못된 보도가 많다고 잭루비가 말하여

배후를 본격적으로 보도하려 하자

한국의 MBC방송극 서프라이즈 프로에 보면

CIA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와 저녁에 호프집에 잠깐 만난후 집에 들어와

그후 죽은걸 발견했는데  간단히 자살로 처리되었는데

약물증독으로 죽었는데 주변에 다른 약도 약병도 보이지 않아

호프집에서 도로시의 컵에 약을타 죽인것 같다는 보도였다

그약을 먹으면 한시간 이상후 발병하여

도로시가 집에와서 약효가 나타나 죽은것같다고 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결국 잭루비도 감옥에서 죽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 비행기 실종 사건인 말레시아 370편이 2014년3월8일 실종됐는데 아직

비행기기체도 못찻은 사건도 배후에 밀루미나티를 주도하는 로스챠일드가와 관련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참고자료 -FBI 수사관! 일본, 학습 연구사「월간 무 11 월호」

미군에 의해 격추된 말레이시아 기는인도양 상공에서 소식을 끊었다(영국 언론) http://jp.sputniknews.com/japanese.ruvr.ru/news/2014_12_24/281654625/

듀간 씨의 말에 의하면, 미국 안보 당국은 말레이시아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것으로 의심이 때문에 2001 년 9 월 11 일 · 11 테러와 같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항공기 를 격추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의 목적은 에이즈 연구자의 암살이었다?

출처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에이즈 연구자의 암살 목적? 비밀 결사의 기대 - 라이브 도어 뉴스

'일루미나티'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

, 일루미나티의 지배하에 있는 대형 제약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확실한 치료법 등이 발표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중대한 특허권을 가진 과학자가 6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이 죽어 6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로스챠일드가가 특허권을 행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기 위해 말레시아 항공기

추락시켜 비행기 기체도 못찻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참고자료-실종 MH370편 조종사 누나 "남동생은 희생양"

자살 루트 모의운항했다는 외신 보도 "날조됐다"

(서울=뉴스1) 배상은 기자 | 2016-07-27 15:53:40 송고


2년반 째 실종상태인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을 조종한 기장의 누나가 "남동생은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뉴욕매거진은 미연방수사국(FBI)이 기장 자하리 아흐마드 샤(53)가 2014년 3월 실종 전 자택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MH370편의 실종 루트로 추정되는 항로를 모의운항한 데이터를 복원했다고 보도했다. 자하리가 자살을 위해 자살루트를 미리 시범 운항했다는 추정이다.

자하리 기장의 누나인 샤키납 샤는 26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경찰 조사에서 실종당시 개인적이나 경제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를 희생양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샤키납은 뉴욕매거진의 보도에 대해 "완전 날조됐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2014년 FBI 조사에서는 자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며 "당시 뭔가 있었다면 경찰이 제일 먼저 알았을텐데 왜 이런 내용이 사라졌겠나"고 주장했다.

샤키납은 "자하리는 처음부터 희생양으로 기획됐다"며 "최근 보도된 내용은 결단코 사실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샤키납은 자하리의 아내와 아이들을 인용해 뉴욕매거진이 보도한 문제의 모의주행은 MH370편이 실종되기 최소 1년전에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17살이나 어린 자하리를 친아들처럼 여겼다는 샤키납은 "나는 그의 내면까지 모든 것을 알수 있었다"며 "자하리는 정상이었고, 그를 만나는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TV에서 자하리가 조종한 비행기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봤을때 경악했다"며 "그는 경력 30년 이상의 프로 조종사였고 자신의 행동의 책임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자하리는 1981년부터 말레이항공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최소 15년 이상 MH370편과 같은 기종의 보잉777 여객기를 운항한 베테랑이었다.

샤키납은 처음엔 언론을 피했으나 점차 여객기 실종이 자하리의 책임으로 몰아가지는 것을 보면서 남동생을 변호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자하리의 가족들은 최근 유투브에 자하리의 실종전 평소 모습을 담은 영상 3개를 게재했다.

샤키납은 이 영상에 대해 "자하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는 평범하고 가정적이었던 남자이자 아버지였고 조종사였다"고 말했다.

샤키납은 자하리가 불화로 아내와 이혼을 준비중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절 부인했다.

그는 "자하리 부부는 30년 결혼생활에 3명의 자식을 뒀고 여전히 함께다"며 "그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그가 범죄를 저지르고 싶게 만드는 원인이 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CNN은 샤키납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자하리의 아내 등 가족에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당국도 뉴욕매거진의 보도에 대한 공식 답변을 일절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대런 체스터 호주 교통부 장관은 보도와 관련 "정보의 조각들이 제공한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MH370편은 2014년 3월8일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이륙해 중국으로 향한지 40여분만에 교신이 끊기며 실종됐다. )

세계 최상류 비밀 사교조직 일루미나티 를 만든게 로스챠일드가 이고

록펠러가 로스챠일드가에 돈을빌려 성공한건 다 아는 사실이고

록펠러 후손들이 만든 역시 최상류 비밀 사교조직 프리메이슨 산하단체 삼변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외조카인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프리메이슨에 비밀리에 가입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한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진실을 은폐하려

뉴욕에서 프리메이슨 권력의 도움을받은것도 사실이다

삼변회란 뜻은 미국 .유럽 .일본을 뜻한다고 한다 ​

힐러리는 일루미나티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중동에 IS를 극악무도한 테러범으로 만들어 중동을 초토화여

아무죄없는 이슬람 신자들 까지 세계인이 증오하게 만들도록 연출한 배후에


로스챠일드가 등 유태계 자본이 미국 대통령을 조종하여 보낸 CIA가 초창기 IS를 만들고 ​훈련시켰 다고 하고

오바마가 지상군을 시리아에 파견안하고 터키가 IS 테러범들의 석유를 사들여 자금줄 역할을 하게 만든것도 배후에 유태계 자본의 조종이라고 하는사람도 있다

신속히 IS를 제거하여 억류된자들에게

자유를 주지않는것도 배후에 세계를 지배하는 유태계 자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정부는 달러에 대한 화폐발행 권한이 없다.

미국정부는 조폐국에서 인쇄된 모든 지폐에 대해 이자를 내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미국 정부는 통화발행권을 쥔 FRB에게 돈을 빌어다 쓰고 갚아야 하는 세계 최대의

채무국 중 하나다. 막대한 금권을 이용해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하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그 중심에 FRB가 있다.

실제 주인은 미국 태생의 3 대 금융가 집안인 록펠러, 골드만 삭스, 레먼을 포함해서

유럽의 국제 금융그룹인 MA 로스차일드, 와벅, 라자드, 쿤룹, 시프등으로 알려져

있다.

즉, FRB는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국제금융재벌이 소유한 개인 사설 은행이다.
로스 차일드 가문은 국가의 중추인 중앙은행을 소유하고 거기에서 돈을 발행하고

정부에 대부하여 지배한다.

이 통화 발행권이야말로 금융 자본가들이 그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 이고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지금은 구미 뿐만 아니라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전세계의 거의 모든 독립

국가의 중앙은행이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등이 로스 차일드 재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중앙은행이 없는 나라다.

이들 국가는 “ “악의축”으로부터

“악의축” 이라는 별칭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들을 단번에 정리해 총 공격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9.11"입니다.

(911은 아래 [참고 911]을 참조 바랍니다.)

.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는 일변했다.

이후 세계는 "이슬람 과격파 테러” 위협에 철저히 싸워야 한다고 집착하게

만들도록 연출한것이다

정작 IS를 만들고 IS를 제거하지 않는것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는 유태계 자본인데 말이다

그덕에 이슬람들이 세계인에 증오의 대상이 되오록 연출하여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되게 배후에서 유태계 자본이 연출한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

극악무도한 IS는 빨리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이슬람권에 대한 증오가 줄어들고 그로 인한 보복의 악순환이 줄어든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바마가 IS를 신속히 제거하지 않는것이 오히려 중동과 이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 힐러리는 그나물에 그밥을 하려는 것같다


“화폐 발행권”은 세계의 근간에 관한 것은 틀림없다.

최근 놀랍게도 아이슬란드에 이어 헝가리에서도 중앙 은행을 거절하고 국민들에

의한 은행 제도를 탈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앞으로 이들 나라가 어떻게 역경을 딛고 헤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끼리끼리 논다고 미국 정치인들이나 유명인사 중에도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자금만 두둑히 주면 은근히 서포트 할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로스챠일드가 흉내 내는 삼성가는

유리하게 바람잡아 조작하여 연출하는 수준이 천제적인 삼성그룹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삼성공화국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국민연금 등 한국의 돈줄과 권력을 장악하고

온갖 더러운 짓을 벌이며

미국을 장악한 유태자본 이상 으로 한국을 조종하며 자신들 유리하게 조작 연출극을 벌이는 삼성공화국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 까지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자사주 매입 이던

유태계 자본의 도움 이던 뭐던 간에 거짓 ​ 연출에 의해 삼성전자 주가 올리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은 속고 삼성전자 주가 사고 삼성폰을 사는

것이다 ​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 그런 거짓 연출이 천제적인 교활한 수준 이라는 것이다

세계 금융계를 지배하는 유태계 자본이 이재용 에게 호의적 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석현과 이재용이 유태자본에 아부하려 그동안 엄청난 노력을 했다 ​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은 프리메이슨 삼변회 중추적 역할을 하고 이재용도 프리메이슨 비밀 최상류 사교 조직에 가입한지 오래됐다


(참고자료- 삼성전자 신고가에 숨겨진 비밀...지배구조 개편 어떻게 산업.기.금.개발.특허

2016.08.19. 15:09

삼성전자 신고가에 숨겨진 비밀...지배구조 개편 어떻게

<script type="text/javascript"> // flash 오류를 우회하기 위한 함수 추가 function _flash_removeCallback() {}< /script>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삼성전자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실적 좋고, 갤럭시S7에 이어 갤럭시노트7까지 잘 나온 덕분이 가장 크다. 그런데 ‘주마가편(走馬加鞭)’도 있다. 바로 자사주 매입ㆍ소각이다. 유통주식이 극히 줄어든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ㆍ소각까지 이뤄지면서 시총 235조짜리 공룡도 춤을 추고 있다.

그 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면 내야 할 상속세도 늘어나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반대일 수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이는 삼성생명이 삼성증권 지분을 늘려 금융지주사에 성큼 다가선 데서도 확인된다. 하나하나 풀어보자.

▶씨 마른 유통주식, 자사주 매입 효과 극대화=6월말 기준 삼성전자 주주 구성은 외국인 51%, 삼성 내부지분과 자기주식 31.5%, 국민연금 8% 등 이다. 3대 주체가 90%를 갖고 있다. 국내 펀드 등의 편입물량까지 감안하면 유통주식수가 극히 적다.

이 부회장이 2014년 5월부터 그룹을 이끈 이후 삼성전자는 5차례나 자사주를 매입한다. 2007년 이후 7년만에 재개된 자사주 매입이다.
1차는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2조4459억원, 2차는 2015년 말부터 2016년 1월말까지 4조1840억원이다. 2차 때부터는 ‘매입 후 보유’에서 ‘매입 후 소각’으로 바뀐다. 3차는 올 1월말부터 4월 중순까지 3조1337억원, 4월말부터 7월말까지 2조원이다. 지난 7월 28일에도 오는 10월28일까지 1조9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매입해 소각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15조원, 올 들어서만 8조원 이상이다. 12조원이 소각됐거나 소각될 예정이다. 2차 매입기간을 제외하면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간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모두 우상향했다.

최근 사상 최고가 행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지난 해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삼성전자에 대해 매도우위다. 매입된 자사주가 소각되는 까닭에 외국인들은 매도우위 임에도 지분율이 50%대에서 51%대로 오히려 더 높아졌다. 이제 외국인들이 이 부회장에 불만을 가질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JY에겐 삼성전자 오를수록 좋다(?)=최근 지배구조와 관련해 삼성의 두드러진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금융지주다.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금융계열사들의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금융지주회사다.

현행법 상 삼성물산은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할 수는 있다. 바로 여기에 삼성전자 주가의 비밀이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면 된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 7.43%와 1.3%를 삼성물산에 넘겨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2.91%까지 오른다. 만약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다면 자사주 13.4%까지 삼성물산이 가져올 수 있다. 이 회장 지분 3.5%를 더하면 안정적인 지분률인 30%에 육박한다. 자사주 매입 소각이 계속된다면 지분율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이 부회장이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려면 이 회장과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이 필요하다. 시가로는 각각 4조원씩 총 8조원이다. 이 회장 지분은 상속받으면 되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돈은 상속세 2조원과 삼성물산 보유분을 매입할 4조원 등 6조원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오른 덕분에 이 회장 지분 가치는 현재 8조원이 넘는다. 이 부회장이 이를 상속받아 삼성물산에 현물출자하고 대신 삼성생명 지분을 넘겨받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이 가진 삼성SDS 지분가치도 1조원이 넘는다. 이 회장 보유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을 때 재원으로 쓸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든 삼성SDS든 주가가 더 오를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셈이다.

삼성물산이 과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 올 자금력을 가지느냐에 대한 의문이 많다. 상당한 액수이지만, 삼성물산 외에는 그나마 여력이 있는 곳이 없고, 그룹 지배력이 달린 지분인 만큼 반드시 가져와야 할 지분이다. 또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삼성물산의 바이오계열사 상장에 따른 상장차익이 조 단위로 발생할 수 있다.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가치도 4조원이 넘는다. 건설부문 등 일부 자산매각도 가능하다. 국내 최고우량기업인 삼성전자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이라면 회사채나 금융권 차입을 통해서도 상당한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 화룡점정(畵龍點睛)? 이르면 연내=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마무리는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의 이동과 삼성전자 인적분할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오면 총자산의 절반 이상이 자회사 지분이 돼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 즉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바뀔 준비가 마무리된 때가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이 움직일 때다. 또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거나, 전환될 것이 확정된 후에야 삼성전자 인적분할이 가능하다. 지주사 체제 전환이라는 명분이 있어야 주주들을 인적분할에 동의시킬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그룹 경영을 맡은 지 2년여 만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상장, 방산과 화학부문 매각,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같은 작업을 속도감 있게 이뤄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마무리도 이르면 연내에 끝낼 가능성이 크다. .

)

일제시대 때도 돈없고 백없는 조선백성 어린 여성이 대략 20 여 만명 위안부가

끌려가 살아돌아온건 불과 2만명 추정인데 위안부로 등록된 슷자는 238명인데

2016년 기준 생존자는 불과 40 분 살아 있다고 하며

처음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이지매가 무서워 위안부라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했다

1945년 해방되고 나서 무려 46년 만인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하셨다 수십 년 동안 제기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공론화 됐다

남자는 수십만 명이

징용이나 징집으로 강제로 끌려가 개돼지 도살되듯 죽었는데

그들을 징집해 간것은 같은 조선인 친일파들이 일제를 도아주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지금 한국이란 나라가 구실을 할수 있는 것은 미국이란 나라 덕분이다

일제로 부터 한국을 독립시켜 주고 북한과 중공군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전쟁때

참전하여 3만여명의 미군이 전사하며 한국을 지켜 주고 지금도 나라구실을 할수 있는것도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결과로 중국과 북한이 한국을 침략할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미국이 한국에서 손을 떼면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혹은 러시아가

구한말 시대처럼 친일파를 이용하여 일제가 한일합방으로 전쟁도 하지않고 손쉽게

조선을 합병한 경우처럼 언제든지 속국으로 만들수 있는 상황이다

가장 강력한 유력한 후보가 중국 공산당이다

사드배치 문제로 한국은 벌써부터 일제때 한일합방을 주도한 친일파들처럼

이젠 대세가 중국이라고 중국의 속국 행세를 하려는 친중세력들이 많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한국은 정말 기회주의적인 놈들이 많다

사드배치 문제도 자신의 지역만 아니면 된다는 다른 지역은 죽어도 된다는 식으로 지역이기주의 적인 발상은 같은 나라라는 또는 민족이란 개념의 말은 허울 좋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란 증거다

과거 독립운동하다 또는 한국전쟁때 앞장서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이 보면 정말 치사하고 더러운 짓거리다 라고 욕을 하실 것이다


한국에서 지역 이기주의가 최악으로 강한곳이 경상도와 전라도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지역 이기주의 만을 위해 아귀 다툼을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경상북도인데도 서로 사드배치 않할려고 싸우고 있다

말같지 않은 사드 전파는 그저 핑계일뿐 이라 오죽하면 미군이 사드 가장 가까운 곳에 미군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사드 전파로 피해 당할 일도 없지만 당해도 사드에 가장 가까이 있는 미군이

제일먼저 당한다는 말이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세력은 방어 무기인 사드 자체 보다는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므로 인해 주한미군이 계속 한국에 배치되어 결국 한.미 동맹이 그대로 유지되는 빌미가 되므로 한국을 먹으려는

중국과 북한의 정은이가 극렬히 반대하며 선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잡아 사드배치하는곳이 경제적 피해를 당한다는등 여러 공갈을 치니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인간들 모두 사드전파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걸 알고 있으면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혹시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특히 집값 땅값등 부동산이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까 하는 전적으로 돈때문에 그런

아주 치사한 행동을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출신으로 한국 불교에 들어와 오랬동안 수행해온 현각 스님 이란 분이 한국인들은 돈만 밝힌다고 한국을 떠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일본에도 사드를 배치 한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일본에 대해 특히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일본에 사드배치 하지말라고 했다간 엄청난 비방을 들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치사하게 사냐


정정당당하게 좀살자 너무 치사하지 않냐


사드 바로옆 에는 미군이 있다


그들은 이역만리 타국을 지키려온 사람들이다

그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냐

미군이 내일이라도 철수하면 한국은 중국과 북한에 개밥에 불과하다

불나방이 불에 타는줄도 모르고 불빛만 쫏는 어리석은 한국인들

정말 답이 없다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국가와 제3세계 국가들이 갑자기 경제개발로 요근레 수많은 울창한 숲들이 파괴되고 수많은 환경오염 물질들이 마구 대기로 쏟아져

그동안 지구의 독소를 제거하던 정글과 숲등 지구의 자연치유력이


쏟아지는 환경오염의 독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제공했는데

이제는 한계에 달해 임계 상황에 이르게 만든 엄청나게 늘어난 자동차 메연과

공장등 수많은 곳에서 규제없이 무분별하게 갑자기 쏟아지는 이산화탄소등 환경오염 물질의 독소를 제거하지 못해 중국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이 직격탄을 맞아

엄청난 중국발 미세먼지를 뒤집어 쓰고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아

가마솥 침통 더위로 이대로 가다간 서울이 사람이 살수 없는 곳으로 변할 가능성이 곧다가오는 증거를 피부로 느끼면서도

중국에 항의하여 친환경 자동차 친환경 에너지로 급히 바꾸어 지구온난화로 인류의 멸종을 막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설마 어떻게 되겠지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불나방 같은 행동을 하는 인간들


중국놈들은 한국에 핵미사일 수백발 조준하고 온갖 군사 무기를 개발하여

한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방어무기 사드배치 한다는데 중국놈들이 뭔데 들여오지 말라고 지랄하는가

더 개가 웃을일은 중국이 반대하면 경제적으로 혹시 불이익 당할까봐

사드배치 반대 데모를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들은 중국이 한국에 핵미사일 쏘면 후장벌려 막는다고 지랄할것들 처럼 지나가는 강아지도 비웃을 일이다


정말 웃기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명나라에 한국의 수많은 어린 처녀들을 마구잡아

당시 사람고기 쳐먹던 중국놈들의 만두피속에 넣던 삶아 먹던 알아서 하라고

조선의 어린 수많은 처녀를 명나라에 조공으로 갖다 바치고 조선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대부 세력들과 같은 것들 처럼 나중에 한국여자 잡아 중국에 조공으로 갖다바치자고 지랄할것들이 분명하다

삼성전자 주가 올리고

이건희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천지인데

나에게 천억주려 했는데 말아서 주가 오른다고 개도안믿을 구라를

삼성알바들 이용해서 조직적으로 거짓소문 퍼트리는 교활한 수법이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런 홍라희 이재용의 교활한 거짓 연출에 ​ 거짓은 진실로 포장되어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세뇌되어 믿는게 ​현실


2015년7월17일 이재용의 운명을 건

순환출자구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 주주총회때는 삼성지분을

삼성이 직접 사용할수가 없자 이재용이

우호기업인 kcc에 빼돌려 kcc가 지분을 대신 행사 하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한국의 천제들은 삼성전자에 모인다고 하는데

전세계 퍼져있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보유한 삼성그룹 계열사 해외 지점 직원들이 전세계 외국인들을 상대로 홍라희 이재용이 유리하게 조작하여 수많은 구라를

지금도 치고 있다는걸 안봐도 안다


거기에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비리가 알려지면 삼성이 망할까봐 은폐하려 도아주는

해외 유학생 교민등 들이 외국인들에게 진실을 은폐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많다

정말 웃기는 삼성공화국 증권가 이건희 사망 찌라시 검찰이 수사 한다고 하더니 수사는 개뿔

유포한 사람이 2000년 부터 미국에서 슈퍼에서 일하며 거주하는 30대 최모씨라며 15년간 한국에 입국하지 않아 수사를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그사람은 지금 잠적했다고 하는 짜고치는 삼성공화국 뉴스

그런 사람이 일베에 올린글이 한국의 증권에 일파만파로 퍼져 삼설주가를 오히려 폭등시켰다고 하는데

말이 안되고 삼성에서 계획적으로 퍼트리고 자사주 주가 올리지 않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조작 사건도 절대 수사 못하는건 전부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의 자작극이기 때문이다

2015년 5월25일 영국 화재 보험에 재가입하여 전액 배상가능한 제일모직 방화사건 자작극 벌인 이재용 쓰레기 목적은


주주들이 이건희 암살한게 이재용이란 진실을 알아


2015년 7월17일 열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승인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에서 주주들이 합병승인 안해 줄까봐


2달전에 2015년 5월에 이건희 회장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20층 특실 조작사진 흘리고 메르스 퍼트리고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만든 이재용 쓰레기

7월17일 합병이 승인되고 난후 2015년 7월23일 방화범 시체가 제일모직 방화 현장에서 발견 됐다고 강아지도 안믿을 말로

사건을 종결한 삼성가 개 경찰


친일파들이 고종을 독살하고 수정과 먹고 30분후 자연사 했다고 조작한게 100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을 밝힐수 없는 것처럼


한국은 삼성공화국 홍라희 이재용 마음대로 조작 은폐하는 곳이다

위의 세월호 고의 학살의 결정적인 증거 동영상이 확실히 존재하여 100% 확실한 고의 학살의 범죄를 입증 할수가 있는 데도

삼성공화국에서 침묵을 지키며 진실을 은폐하는 것들은 모두 세월호 침몰을 계획 하고 실행한 인물과 공범 으로 처벌을 받아 마땅한 죄질이 안 좋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일제 앞잡이 만도 못한것들이다


목포해경 123 김 정장은 경상도출신 변찬우 광주지검장이 청와대의 압력에 사표까지 쓴다고 강수를 벌여

과실치사 까지는 처벌할수 있었으나 결국 삼성공화국 막강한 힘에 늘려 배후를 밝혀 처벌하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배후를 밝혀 고의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일이 두번다시 재발하지 않는다


[기자칼럼]청와대의 세월호 수사 외압

정제혁 정치부

입력 : 2016.07.29 20:25:01 수정 : 2016.07.29 20:49:49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취록이 얼마 전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녹취록에는 이 수석이 KBS의 세월호 관련 보도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수석은 특히 해경의 구조 실패를 비판하는 기사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몇 대목을 옮겨보자.

“9시 뉴스에 다른 데도 아니고 말이야 이 앞의 뉴스에다가 지금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내고 있잖아요.” “방송이 지금 해경을 밟아놓으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패야지만 그게 맞습니까?”


이 수석이 해경의 구조 실패 기사를 틀어막는 데 집착한 것은 구조 실패는 곧 정부의 직접적 책임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정부 책임론’으로 흐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자에 알게 됐다. 청와대·법무부가 해경에 대한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경우다. ‘정부 책임론’을 차단하려고 홍보수석은 언론 보도를, 민정수석실은 검찰 수사를 통제하려 드는 등 청와대가 총동원된 것이다.


2014년 7월29일 광주지검 해경수사 전담팀은 목포해경 123정장 김모 경위를 긴급 체포했다. 세월호 사고 당일(4월16일) 함정일지 일부를 찢어내고 구조활동 서너 가지를 허위로 기재한 혐의였다. 당초 검찰은 공용서류 손상,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와 함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김 경위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다. 그러나 청와대·법무부는 구속영장 청구에 반대했다. 특히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에 반대했다. “구조하러 간 해경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국가기관이 뭐가 되느냐”는 취지였다.


검찰은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만 적용해 김 경위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영장의 피의사실만으로는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것이 기각의 원인이 된 셈이다.

김 경위를 기소하는 문제를 놓고도 검찰과 청와대·법무부는 충돌했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도 적용해 기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법무부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변찬우 당시 광주지검장은 “사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가까운 대검 간부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변 지검장이 당시 상황을 구술해놓은 기록이 있다. 변호사 개업 뒤인 지난 3월 대구매일신문 인터뷰다. “경비정 정장에 대한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달랐다. 사고나 재난 구조자에 대한 처벌 전례가 없는 데다, 해경 정장에 대한 처벌을 할 경우 책임이 국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었다. 해경 경비정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기소조차 꺼려했다. 사표를 낼 각오로 상부를 설득했고, 결국 구속은 하지 못했지만 기소는 할 수 있었다.”


광주지검은 김 경위를 체포한 날로부터 70일 가까이 지난 10월6일에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가까스로 기소했다. 광주지법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김 경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검찰의 법률적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당시 법무부 장관, 요즘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이듬해 두 사람은 국무총리(6월)와 민정수석(1월)으로 영전한다. 그러나 변찬우 지검장은 연말에 단행된 검찰 인사 때 고검장을 달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서”라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검찰 인사를 주도한 사람은 우병우 수석으로 알려져 있다-참고자료)

여러정황상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를 삼성공화국이 이용하며 가지고논 정황이 분명한데

인지력이 떨어지는 박근혜는 아직 사태를 정확히 모르고

청와대 삼성알바들이 부추기는 대로 계속 박근혜는 이용당하며 삼성공화국 편을 드는것 같다


박근혜가 신속히 세월호 구조지시를 분명히 내렸다


근데 목포 해경은 전원구조 했다고 박근혜에게 보고를 거짓으로 하고

박근혜가 안심하여 볼일보러 간사이 세월호 승객을 산채로 수장한 것이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를 만든 배후를 반듯시 밝혀야 한다


이렇게 삼성공화국이 앞에서는 박근혜에게 간이라도 빼서 줄것처럼 잘하지만 뒤로는 은근히 뒤집어 씌우는데 박근혜는 멍청한지 상황분석을 제대로 못하는것같다


1980년 5.18 한국의 전라남도 광주 학살 같은게 서울에서 지금 일어났으면 문둥이 깽깽이 쓰레기 들이 연합하여 조용히 덮으면 지금의 세월호 학살처럼
수도권 정치인이나 지성인들이 눈치 보며 나설 인물이 거이 전무하다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당시 신군부의 두목 전두환이가

광주 학살만 자행하지 않았으면 깽깽이들이 미워할 이유가 없었고

전두환 편을 들어주며 지금 이정현이 박근혜 빠는 것처럼 전두환 호모색끼들 처럼 빠는 놈들이 많았을 것이 확실하다 장세동 이용하듯 많이 발탁하여 이용했을것이다

4.19혁명에서 전국적으로 200여명이 죽고 서울이 가장 많은 130 여명이 자유당 정권 하수인 홍라희 아버지 당시 법무부장관에서 초인규를 대신하여 내무부장관까지 급히 발탁된 홍진기의 발포명령으로 경찰총수 곽영주가 발포지시를 하여 학살 시켰다 당시 고려대를 중심으로 서울의 학생들의 항거도 지방학생들이 많이 참여 했다 그러자 그후 시민들도 가담했다

4.19를 혁명으로 올린것은 당시 여당인 의원인 김영삼이 한거다

그래서 삼성알바들이 이승만을 숭배하고 일년에 한번 있는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이유가 삼성공화국 홍라희 눈치보느라 그런거다


4·19혁명 전의 몇 주 동안 주로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법선거 및 자유당과 경찰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행위에 항의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고


경남 마산 지역에서 자유당 정권에 대한 항거이후 마산에서 김주열이 자유당정권에 학살당한게 알려져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결국 경상도 애들이 4.19의 혁명 펌프질을 한것이다


만약애 두환이가 광주에서 하지 않고 서울에서 하고

깽깽이들 띄워주고 문둥이 깽깽이 연합해서 감추는 세월호 고의학살 사건 처럼

덮으려 한다면 조용히 넘어 갔을 것 같다

과거 박정희 정권때 부마 사태가 벌어지자 공수부대 투입하여 진압했는데

그당시 박정희 정권이 같은 경상도 정권이 아니었으면 부마사태는 진압하지 못했을수도 있다


반대로 김대중이 정권을 잡고 있을때 광주에서 데모가 벌어져 공수부대 투입하여 진압했다고

진압한게 아닌것처럼 말이다

이차럼 한국은 경상도공화국과 전라도공화국이 일대일 정당한 방법으론 이길수 없는 경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똘똘 뭉쳐

떼거리로 저항하며 이익을 어거지로 만들려고 하는 경행이 있어 타지역이 역차별받는 심각한

현상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수많은 떼거리를 어떻게 이기냐

더구나 특히 삼성문제에 있어선 두공화국을 개처럼 홍라희 이재용이 잘이용하여 자신들의 비리를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작고한 김근태 등 지금의 수도권 출신 몇몇 정치인 이나 지식인들이 나서기도 했는데

뒤에서 전라도가 응원해주니까 가능 했던 일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삼성의 비리를 떠들면 그들이 떠드는 것은

개돼지만도 못한 깽깽이 문둥이 세력들이 방해하여 바다의 물거품처럼

기억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만약애 전두환이가 광주에서 학살하지 않고 하지 않고 서울에서 학살 하고

지금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자신들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의 배후인 홍라희 이재용의 교활한 수법처럼 깽깽이들 은근히 띄워주며 이용하고 문둥이 깽깽이 개처럼 부려 연합해서 감추는 세월호 고의 학살 사건 처럼

덮으려 한다면 조용히 넘어 갔을것같다

당시 김대중이 없었다면 충분히 그런 시나리오로 갔을 것이다


광주학살이 벌어진 이유도 김대중 때문에 벌어졌고 그후 전라도 애들이

문둥이들에게 아부를 못한것도 김대중 눈치 보느라 그런거다

지금은 박지원이가 검찰에 자살한 성완종 불법 뇌물받은 혐의로 조사받으로 가는 경남지사 홍준표에게 화이팅 그러며 sns에 글을 오려 대놓고 아부를 떠는데


문둥이 깽깽이들이 김대중이 죽고 없는 지금은


문둥이 깽깽이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이기지 못하는 상대는 떼거리로 연합하여 국가 공권력 까지 한통속으로 악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함하는 더러운 특성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 특성으로 한국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드물게 양심이 있는 인물도 있지만 드물다


경상도 출신 변찬우 광주지검장이
세월호 수사를 하면서 선원들 이상으로 목포해경의 죄질이 않좋게 본건 목포해경이 전원 구조 할수 있는데 고의로 안했다며 선원들 이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는데

청와대에서 강력히 반대했다고 말했다


고의학살이 아니라 과실치사로 기소하여 징역 3년을 줬지만

해경이 증거 인멸하고 고의 학살 정황이 충분이 있어 변찬우 지검장이 진급과 출세의 길을 버리고

청와대의 명을 어기고 옷벗고 나온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경기도 단원고 애들이 주로 많이 희생된 세월호 고의 학살 사건은 수도권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배후를 밝히려 노력 했어야 하는데 전부 지들 이속만 챙기고 나몰라라 하는 정황이다


변찬우 검사가 증거인멸한 전남 목포 해경을 공문조 위조와 과실치사로 기소하려 하자


청와대가 막아 사표까지 쓴다고 총대 매고 기소 하여 결국 짤려 변호사개업 했는데

변찬우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 현실에서 어렵다


목포 해경이 미치지 않고서는 단독으로 했을리 만무하다


목포해경은 분명 든든한 방패 막이가 범행을 덮어줄걸 믿고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을 저지른 것이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 홍보수석 이정현이 방송을 통재하고 목포해경을 광주지검이 기소도 못하게 압력을 행사 했다고


변찬우 지검장이 직접 밝히지 않았는가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있나

전직 검사장이 말한건데 말이다 그것도 꿈에 그리던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의 진급의 꿈을 버리고

말할 정도면 더 정확한 증거일것이다

변찬우 변호사가 아니었으면 삼성공화국의 주문 데로 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위의 증거들이 들어나지 않아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증거가 없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승객과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목포 해경이 삼성공화국 배후세력의 지시가 없었으면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극으리 벌일 이유가 없다

더구나 변찬우 지검장이 수사로 들어날 정도의 일이라면 배후세력의 믿음이 없다면 절대로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공문원들이 얼마나 몸사리는 인간들이라 손해볼 짓을 않한다

그러니 변찬우 지검장의 기소로 확실한 증거가 들어난것이다

박근혜 정권도 웬만하면 삼성편인데 해경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만들 정도면

허기야 해경인원 대부분이 안전처로 그대로 옮겼다고 누가그런던데

그래도 해경을 해체 시킬정도면 세월호 고의학살을 일으킨 삼성공화국 비빌 정부 삼성알바팀이 은밀히 박근혜에 뒤집어 씌울려고 계획한것을 박근혜도 본능적으로 알고 배후세력이 있음을 인정하거나 마찬가지다

해경이 단독으로 일르킬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여기서 삼성공화국의 계획이 약간 차질이 생기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삼성공화국의 계획되로 거이 결정난 사항에 차질이 생긴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삼성공화국은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 사건은 조용히 덮히고 있다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아인슈타인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론이있어 그것이 발견되면

결정론을 뒷바침 할꺼라는 숨은 변수 이론 처럼 말이다

삼성공화국이 숨은 변수 이론처럼 얼마나 한국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경기도는 단원고를 보유한 수도권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너무나 친일파 앞잡이 같이 삼성공화국의 눈치만 보며 지들 살길만 찻는 인간들 뿐인지 삼성공화국의 엄청난 범죄를 보고도 개돼지 처럼 사건을 이해를 못하는 건지 침묵으로 일관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만약 한국이라면 삼성의 음모는 덮이고도 남는다 고종황제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들이 독살하고

수정과 먹고 30분후 자연사 했다는 말도 안되는 조작이 100년넘게 한국에선 진실이 되어 역사에 기록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길 내가 기대하는건 한국이 절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등 외국이다 그들이 내글을 제대로 번역해서 읽으면

진정성을 이해하게 될것이다 물론 번역해주는 사람들이 속이지 않고 제대로 번역을 해야 알수가 있다


노동자 농민 경험이 부족한 어린학생 들이야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다지만

지식인 정치인들은 위의 확실한 증거가 와 동영상이 분명이 존재하여 충분이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는데도 눈치만 보며 침묵만 하는것들 보면

주는 밥만 많이 주면 만사 OK 개.돼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듭 설명하지만

위의 열거된 내용만 제대로 읽어도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 암살직전 파장을 우려해 미리 세월호 학살극을 일으켜 나라를 뒤집고 26일후 이건희 회장을 암살을 조용히 덮은 것은 증명된것이며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의 증거는 확실히 증명된 것이다


박근혜 내시가 되어도 좋다 쓰레기가 되어도 좋다고 지 입으로 떠들며 벨도 없는 당시 청와대 홍보 수석 이정현이

승객을 구하러간 해경이 오히려 승객을 죽였다고 한다면 목포해경이 뭐가 되냐고 큰소리로 당시 KBS김시곤 사장에 전화하여 야단치며 방송 통재를 지시하자 김시곤이 지시대로 KBS 처럼 잘하는곳도 드문데

왜 이러냐며 겁을 내는 전화 통화 내용을 세월호 특조위가 공개 했다

이정현 말처럼 당시 상황은 승객을 구하런간 목포해경이 회괴하게도 세월호승객을 죽게 만드는 고의성이 들어났다고 목포해경의 최대한 잘못을 들어내지 않으려 노력했던

변찬우 광주지검장의 검찰 수사도


전원구조 할수 있는 상황인데 승객을 구하러간 목포해경이 고의학살 증거를 인멸하려 공문서 훼손과 위조를 하고 구조를 등한시 하여 선원보다 죄질이 더러워

승객 304명을 학살한 명백한 증거가 들어나자 인간의 양심을 걸고 도저히 기소안할수 없는 상황이자

청와대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객을 구하러간 목포해경이 공문서 위조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구조를 안하고

304명을 수장시켜 공문서위조와 과실치사로 기사하여 광주법원에서 징역을 3년을 선고했다 이건 분명

고의학살을 지시한 배후가 있고 고의학살의 증거이다


다만 목포해경이 단독으로 했다고 보는데는 무리가 있다 배후가 없다면 엄청난 범죄로 처벌이 뻔한데

목포해경이 아무런 악감정도 없는 세월호 승객을 산채로 수장했을리 없기 때문이다

분명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엄청난 짓을 목포해경이 한것이다

윗선의 배후가 있는데 나는 여러 정황상 삼성공화국의 작품 이라고 보는것이다

이건 과실치사로 끝날일이 절대 아니다

끝까지 추적하여 고의학살로 나치학살범 이상으로 처벌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원래 계획 침몰 지역인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가 아닌 병풍도에 침몰한 세월호를 물살히 강하고 수심이 깊은 맹골도로
목포해경이 세월호에 쇠줄을 걸어 끌고가는 동영상은 명백한 잔악무도한 고의 학살 증거다
그런데도 수도권은 아애 남에집 물구경 하듯 하고 관심도 없고 사건을 아예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

여기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이런 개같은 일이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른다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 암살직전 세월호 침몰시켜 나라를 뒤집고 이건희 회장을 조용히 암살한 확실한 배후라고 생각한다

병풍도 근처에서 계획적으로 세월호 닻을 내려 해저 암초에 걸어 침몰시키고 구조하기 어럽고 인양하기 힘들게 만들어 고의침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목포해경놈이 세월호를 끌어 수심이 깊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 부근으로 끌고간 지점이 침몰지점으로 정부에서 공식발표했다

목포해경 123 정장놈은 공문서위조와 과실치사로 징역 3년 받았는데


신해철이가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를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라고 떠들자 이재용이 의사 시켜 신해철은 분명히 수술 안한다고 했는데 s병원장이 마음대로 뚜껑 열어 수술하여 심장과 장에 구멍 뚫어 놓고 염증이 심해질도록 시간 끌기위해 신해철이 깨어나 왜 수술했냐며 따지며 지인들에 구조 요청 하여 다른 병원으로 가서 생명을 구할 시간을 주지 못하게 마약주사 놓아 비몽사몽 만들어 놓고 염증이 심해질때 까지 시간끌다 x 레이 찍어 보니 장과 심장에 염증이 번저치사율이 높아져 죽을때가 다 됐으니 신해철을 퇴원 시켜 심장정지로 죽은걸로 조작하기위해 퇴원시키자 마자 신해철이 죽었는데 이건희 처럼 심장 정지로 쓸어져 신해철이 죽었다고 언론과 방송이 대대적으로 떠들은 정황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당시 지인들이 한국의 유명가수 신해철이 갑자기 죽은 모든정황이 이상해 화장 직전 부검을 의뢰해 사건의 내막이 밝혀 졌는데 당시 화장했으면 사건은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았을 것이다

분명 S병원장이 다른 수술은 동영상을 찍었는데 신해철은 찍지않고 계획살인 정황이 있는데 과실 치사 이상은 처벌을 못한다고 한다

배후에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백이 막강해 과실치사로 기소된 S병원장 놈이 1년 이상 의료 행의를 마음 대로 하다가 호주인 하나를 또다시 수술 하다 죽였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과실치사로 검찰에 기소된 의사가 어떻게 1년 이상 의료 행위를 버젓히 할수 있단 말인가

한국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으로 법과 권력위에 한국 그룹중 유일하게 무소불위의로 군림하는 삼성공화국 마음대로 사용 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해철 사건이 고의 살인 의심이 드니까 과실 치사 라고 시위라도 하는것 처럼 과실치사로 기소된 S병원장 의사 놈이 호주인 일부러 잡은것 같다

만약에 의사가 고의로 환자를 죽여 밝각되도 의료 사고로 덮어도 최악의 경우도 과실치사 이상으로

계획살인으로는 진실을 밝히기 힘든 이유는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전부 의사라

만약에 경우 자신들이 수술하다 과실치사 해도 살인으로 죄를 뒤집어 쓰는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안전장치를 하기 때문이고 의협의 눈치도 보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고 신해철 씨 의료사고 과실여부에 대한 감정을 9일 '대한의사협회'에 의뢰한데 이어 10일 처음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의뢰했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사고 형사고소 사건의 심층적인 수사 및 실체진실 발견에 있어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경찰은 의료사고 진상규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감정을 대한의사협회에만 의뢰했고 그 결과에 따라 판단했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감정결과가 유리하게 나올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불리하게 나올 경우에는 ‘가재는 게 편’이라며 의사협회 감정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고, 이는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 형사사건 감정결과는 민사소송과 달리 동료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및 자격정지·박탈로 이어질 수 있고, 감정하는 의료인에 대한 외부 감시기능이 없기 때문에 동료 의료인에게 불리한 감정을 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형사사건은 다른 영역의 형사사건에 비해 경찰의 기소의견이나 검사의 기소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의료사고 형사고소 사건에 대한 감정의뢰를 의료인의 전문적인 감정뿐 만 아니라 현직검사, 의료전문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의 외부 감시기능이 작동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참고자료)


목포해경 놈들이 세월호 고의 침몰시켜 학살 하는 결정적인 100% 증거 동영상이 분명이 존재 하는데

세월호 특조위와 여.야 국회의원 특히 경기도 단원고를 보유한 수도권 정치인 인이나 지식인들은 무엇이 무서워 말한마디 못하고 병신처럼 누구 눈치 보느라 주둥이만 닫고있나 자그만치 304명을 생수장 시키는 동영상이 분명이 존재 하는데 왜 말한마디 못하는 병신들 ㅋㅋ


신해철 사건은 시해철이 워낙 유명한 가수고 힘있는 지인들이 많아 그들의 도움으로

밝혀 졌지 일반인들 같았으면 흐지부지 넘어갔다

누구 눈치보지 않고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유명가수 신해철은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에겐 커다란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신해철같은 유명 인사가 나서서 떠들면 파장이 크다

돈많고 권력쥔 인간이 더들면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는 세상인데

돈없고 힘없는 인간이 떠들면 진실을 거짓으로 포장되어 둔갑시키기 쉬운게 한국의 현실이다

얼마전 서울대 나온놈이 내가 거짓말 한다고 지랄하더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홍라희가 경남의령으로 본적이 적혀 있는데 어떻게 전라도 여자냐고 말도 안된다고

나한테 따지는데 한국 최고 대학교 라는 서울대 졸업한 놈이 저렇게 대가리가 안돌아가니

사이비 교주에 속는 놈들이 많지

본적은 바꿀 의지가 있으면 얼마던지 바꿀수가 있다 독도로 본적을 바꾼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지방이나 이북 출신들이 수도권지역으로 본적을 과거에 바꾼 사람도 많다 홍라희가 이건희 에게 시집 갈때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본적에 편입했을 것이라고 설명해도 자신의 주변에서 본적을 바꾼 경우를 본적이 없다고 내말을 믿지를 않터라

삼성알바라서 일부러 알면서 내말을 틀리다고 장난치는 건지는 모르지만

본적은 사정에 의해 바꿀수가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믿지 않았다

서울대 졸업한 놈은 아예 정답을 지마음대로 왜곡하고 내말을 막은것이다

그러니 돈때문에 부모 형제를 고의로 암살하는 쓰레기들이 분명이 있는데도

자신들만 고상한척 하며 어떻게 그런일이 있냐고 따지는 사람들 보면 인간들이 정말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금전적 이익이나 무슨 이익이 없으면 거이 관심이 없고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않는다 그런게 과거 한국보다 지금이 점점더 심한것 같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부에서 정보를 통재하여 몰라서 그랬지

알려진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고 저항하려 했는데

요즘 대학가나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아예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불의에 동조하여 개밥이나 줄까 하여 아부하는 형국이다

인간은 자신의 관심분야가 아니거나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런 사실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대다수는 조작된 방송과 언론보도에 편중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사악하고 나쁘더라도 주류가 떠드는 소리를 믿으려 하지

비주류가 아무리 진실을 떠들어도 무시하는게 특히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특성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본처 홍라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 이건희 에게 시집 갈때 본적을 옮겨 이병철 본적으로 문둥이 의령으로 되어 있지만

홍라희는 의령과 아무 연고가 없다

서울 출신의 친일파 홍진기가 일제때 전주지법 판사 시절 독립운동가 때려잡을때 때어나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 이라고 라희라 이름지은 홍라희

모 전남 목포출신 김윤남이 원불교 광신도라 딸인 홍라희는 전라도에서 만든 종교인 원불교 최대 물주로 이미 전라도 에선 홍라희가

유명한 물주인 것이다 그러니 이건희를 암살하고 삼성을 통채로 홍라희 이재용이 강도질 하는데 깽깽이 목포 해경이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덤으로 세월호 침몰을 박근혜에게 뒤집어 씌울수도 있는 1석2조의 효과도 누리려 지랄 한 것들이다


깽깽이 놈들이 몰려 다니며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유리하게 유언비어 퍼트리고 삼성가의 범죄를 은폐하려 지랄하며

한국의 주류중에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최고의 주류 삼성그룹 오너일가 홍라희가 맞다면 맞고 틀리다면 틀린 회괴한 삼성공화국 ㅋㅋ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 간다고 삼성의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는 강아지도 웃을 말도 안되는 논리다

돈만 많으면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는 논리와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기후변화가 사기 라는 대선 공약을 내건 트럼프가 공화당 1위다

외국에선 이건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천지고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다고 삼성전자 주가

그렇게 조작한 것 처럼 갑자기 안내려 가는데

대우조선 해양이 분식회계 조작 하여 주가 배이상 부풀려 5조 이상 대출 받아 경영진들이 나눠 쓴 것 처럼


반대로 2014년 4월16일 이재용이 특수관계인 유병언과 삼성공화국 비밀조직을 이용하여 세월호를 계획 침몰시켜 학살하여 한국을 뒤집어 놓아 어수선하게 하여 시선을 유도하고

26일후 2014년 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2014년 7월경 삼성그룹 최상위 순한출자 지배기업 에버랜드의 상호를 제일모직으로 변경하고

삼성그룹 핵심기업인 삼성전자 경영권과 지분을 늘리기위해 삼성전자 회계분식을 조작하여 매출 등을 대폭 줄여 한국의 증권가에 삼성전자 주가를 폭락시키고 암살한 이건희 회장 부동산과 계열사 등을 쪼개고 팔아 그 돈으로

삼성전자 지분 늘리고 난후 다시 주가 올리는등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장난에 세계가 놀아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세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얼마전 증권가에 이건희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이상한 현상을 보듯시

이재용의 말처럼 이건희 쓰러졌다고 분식회계나 매출 등을 조작하여 갑자기 줄이면 주가가 동반 떨어져 주가 조작

을 이재용이 배후에서 지시한 의혹이 있다

삼성알바 국정원 놈들이 진실을 못찻게 물을 흐리려 잠수함 침몰설을 조작하여 퍼트리는데

병풍도 근처에서 짜여진 각본대로 갑자기 좌외전 하여 닻을내려 해저 암초에 걸어 세월호를 전복시키고 찌그러트리고 잠수함 조작설을 만드는 더러운 놈들의 음모를 파파이스81 동영상 참고 해서 봐라

세월호를 고의 학살한 확실한 증거가 동영상에 찍힌 목포해경 놈들과 배후를 철저히 수사하여

일제 전범과 나치 전범 IS 테러범 이상으로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 해야 한다


국정원을 삼성알바들이 장악 했다는

그 증거로 2012년 12월 대선 1주일 전에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 고의로 발각 되어 방송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은 박근혜를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목적이다


그것은 삼성공화국 홍라희 이재용이 속셈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 되길 바라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사실 박근혜 만큼 로비하기 힘든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삼성공화국이 완성 된건 문제인이 비서실장으로 있던 노무현정권때 이다

대선이 끝나서 발각된것은 몰라도 대선을 1주일 앞두고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발각되어 대대적으로 보도된것은


박근혜에게 대선 투표 결과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기 위해 고의로 터트린 음모라고 강아지도 알텐데

그래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미국 CIA 비밀공작팀이 무려 634회 카스트로를 암살 할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 전부 무의로 끝난것 처럼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지 않으려 삼성공화국 홍라희 이재용의 비밀 조직에서 수없이 장난을 쳤는데 전부 흐지부지 넘어갔으니 박근혜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그러한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제와 눈치채도 박근혜가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에 어떻게 보복할 방법이 없는게 삼성공화국의 현실이다 또 그런걸 박근혜가 모를리가 없다

삼성공화국에 대들면 박근혜가 피곤해 진다는걸 잘알고있다

로스챠일드가에 도전했다가 암살당한 케네디는 물론 동생도 암살당하고

케네디가의 저주란 말을 듣게 되었다

아들은 비행기추락사건으로 죽고 딸 스윗케롤라이나도

암살위기를 운좋게 넘겼다

그야말로 케네디가문을 아작을 낸것처럼

박근혜가 삼성공화국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면

  한국의 언론과 방송이 한목소리로 박근혜를 아예 바보로 만들려고 지랄할것은 물론이고 여러 모함극 조작하여  뒤집어 씌우거나 최악의 경우 사고사나 자살로 위장한 암살을 할수도 있는 능력을 삼성공화국은 가지고 있다

댓글 조작 한다고 대선에 큰 영향은 없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박근혜는 정황파악을 못하고 국정원과 삼성이 자신을 도와 벌인일이라 어리석게 생각하고 자신이 큰 죄라도 짓 것 마냥 헤메는 것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마치 세월호 선장이 휴가간 사이 비정규직 당일승선 선장인 이준석이 키도 안잡았고 승객을 대기하라고 지시한것도 청해진 해운과 위에 국정원 삼성알바 위에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삼성공화국 최고의층  이재용이 시킨건데

이준석이 모든걸 뒤집어 쓰고도 지가 희생양 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것 처럼

허기야 홍라희 이재용이 이준석을 희생양으로 삼았을때는 앞뒤 다 자 로 제듯 제보고 

부담이 없느니까  희생양으로 선택 한게 분명해

국정원이 댓글을 조작하여 박근혜 당선시켜 주려 한다고 대선 1주일 전에 고의로 터트려 언론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터트리면 누구에게 손해가 있겠는가

생각해 봐라 그 피해는 박근혜 에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를 대선에서 탈락시키려고 한 것 이라고 누구나 생각할수 있다

 그걸 노리고 조직적 음모로 고의로 대선 1주일 전에 국정원 댓글사건을  터트려 대대적으로 언론과 방송이 떠들었는데 결과는 의외로 박근혜가 문재인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세상일이라는게  최고의 자본과 권력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데

드물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게 또 세상이다

그런데 아직도 박근혜는 그런걸 제대로 모르고 있는건지

알면서도 몸사리려 모르는척 하는건지 모르지만  진실을 밝히려 하지않고

그저 앞에서 간이라도 내어줄것 처럼 아부하면

웃는게 박근혜의 수준이다

대통령 딸로 곱게 자라 여러 경우의수를 직접 경험해 보지못한 박근혜는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인지 하는 능력이 떨어질수밖에 없다

과거 조선시대 처럼 왕조시대는 나라를 창업한 태조를 제외하고 후대로 내려 갈수록

간신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며 충신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의 경우처럼 삼성알바들이 앞에선 간이라도 내어줄 것  아부 하는데 뒤로는

흔들려고 모함하는 간신들의 간사한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눈물나는 여러 경험 들을 

사례로  일찍  부모를 잃고 죽음의 위협을 운좋게 구사일생으로 넘기며 어릴적부터 살아온 징키스칸 처럼 직접 경험으로 겪어봐야 알수 있는 것이다

사기를 당해 봐야 사기꾼이 말과 행동 그리고 특히 중요한것은 직감이랄까 느낌이랄까

아니면 사기꾼이 아무리 아부하며 말장난을 쳐도 숨길수없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냄세나는 질떨어지는 사기 치려는 미세한 비정상적인 행동과 에너지를 남들과 달리 간파 할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생기는게 아니다 엄청난 고난과 노력이 있어야 알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고흐 같은 세계적인 명화와

 명작을 만든 장인 들은 수없는 실패의 경험으로 (언표)로는 설명할수 없는 독특한 노하우로 사기꾼의 계략을 일찍 눈치 챌수 있는 것 처럼

학교에서 책이나 이론으론 절대 배울수 없는 판단력인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지식이 전혀 필요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도약하는데   쓸모가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런것 많으로는 절대 터득할수 없는게

직접경험으로 얻어지는것이다


결국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도 끝까지 야당이 물고 늘어지며 장난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부정선거를 하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러시아와 한국의 야당은 다르다

2012년 대선에 부정선거가 있다고 조작하는 놈들도 있는데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문재인과 야당이 가만 있을리 없다 재검표를 했을 것이다

자유당 정권때도 아니고 지금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면 다음 선거도 필요없을 것이다

부정선거로 당선시키면 되니까 야당은 힘이 강한 세력중에 하나다

그래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야당이 결코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선거와 댓글 조작을 덮기위해 세월호를 고의로 박근혜가 침몰 시켰다고 뒤집어 씌우는데

그것은 말이 안된다 나이많은 사람들은 조작 댓글이 있는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고 댓글 단다고 대선에 영향 크게 없다


2014년4월16일 세월호가 침몰되고 나라가 뒤집어진 상황에서   26일후 2014년5월10일  세월호 추모 집회가 한참일때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조용히 덮으려는 홍라희 이재용의 작품인 것 이다


목포해경이 만약에 박근혜가 시켰다면 어떻게 하든 증거가 들어나게 제대로 시키는 데로 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신속히 구조 하라고 목포해경이 지시를 내리자 오히려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하고 박근혜가 안심하고 볼일보러 간사이

꼬투리 잡아 박근혜에게 코걸이 하고 장난을 친것이다

청와대 안에도 삼성 알바들이 즐비하다

당시 대통령의 가장큰 신임을 받고 동태를 누구보자 잘아는

김기춘은 유병언과 특수관계가 확실하고 이정현은 세월호 방송 통재를 지시하고

그외에도 들어나지 않은 삼성알바가 곳곳에 존재하여 박근혜에게 겉으론

이정현 같이 박근혜에게 쓰레기처럼 취급 받고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말을 들어도 박근혜 마음만 얻어 이용하며  목적을 이룬다는 목적 달성주의자들이 삼성알바들의 전형적인

생각이다

그들이 박근혜에게 간이라도 내어 줄것처럼 앞에서는 잘하지만 뒤로는

삼성공화국 비밀조직을 이용해 세월호를 침몰시켜 단원고애들 250명등 세월호승객 304명을 생수장시키고

나라를 뒤집고 26일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세월호 침몰 원인을 은근히 박근혜 에게 뒤집어 씌우고 흔들고 장난치려 했던 것이다

당시 박근혜도 의심스러웠는지 2014년 6월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을 쫏아낸다

이정현은 새누리당의 적지나 마찬가지인 전남 곡성 순천 에서 2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아무도 예상치못한 기적같은 승리를 한것은 삼성공화국위 전폭적인 지원덕인 것 같다

그리고 특히 전남쪽이 이건희를 암살하고 삼성을 장악한 홍라희 이재용을 서포트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이 이정현이 한짓을 잘알아 당선시켜 준것이다

그러한  삼성공화국의 배후 지원속에 새누리당 당대표 까지 당선 되었다

박근혜가 2014년 6월 이정현을 청와대에서 쫏아낼때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 였을 것이다

박근혜도 속으론 삼성공화국의 힘을 보고 놀랐을것이다

드라마 촬영을 할때  엑스트라나 배우는 맡은 배역에 충실할뿐이다

시나리오의 결말은 작가만 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극을 삼성공화국 최고의층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런걸 발설한다면 바보 천치일것이다

그러니 절대 그런결말을 말하지 않고  그들은 연출감독처럼

배우들에게 맡은 지시만 할 뿐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막판에 접어들면 중용한 배역을 맡은 주인공은 어느정도 결말을 예측할수가 있다

그와마찬가지로 목포해경에게 학살극을 말하지 않지만

원례 계획대로 물살이 강한 맹골도 해역이 아닌 병풍도 근해에 세월호를 선원들이 쳐박자

세월호 침몰 증거인멸 명령을 수행한 놈들은 해경을 가장한 삼성알바 국정원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목포해경은 그러한 모습을 근처에서 목격했고 세월호 승객 구조는 등한시 하라는 명령과   로프를걸어 끌어 세월호 침몰을 쉽게하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로 끌고가 라는 명령은

누가봐도 세월호 승객을 확인수장시키라는 명령과 같다

그래서 그것은 누가생각해도 세월호승객을 학살하려 한다는것을 알수가 있는데
목포해경 놈들은 지들과 같은 편이라 생각하는 홍라희 이재용이  삼성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박근혜에게 뒤집어 씌울 목적 이란걸 눈치채고 군말없이 지시대로 수행한것이라

학살배후세력과 공범인것이다

만약에 배후가 박근혜가 시켰다면 문둥이 동네는 지시대로 할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포해경은 지시대로 하는척하면서 실패하게 만들었을것이다

그러나 배후가 삼성공화국 작품이라 지시대로 충실히 수행한것이다

한국의 현대나 다른 기업이 절대 흉내낼수 없는 삼성공화국은 왜 만들어 졌나

강자와 1등에 무조건 복종하는 한국인들의 특성도 한몫 했지만 삼성에서 오래전부터 거대자본으로 치밀하게 준비한것이다

지금은 대통령도 삼성에 눈치볼정도로 막강한 누구도 손을 못댈 정도로 삼성공화국 마피아가 되었다


그동안 삼성공화국의 위용을 몸소 체험한 박근혜도 이젠 사태를 어느정도 눈치챌만도 한데 삼성공화국의 눈치를 보는 행동이 역력하다

더구나 이제 대통령 임기도 얼마 안남았으니 말이다

삼성을 장악하면 한국의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다

박근혜가 검찰에 삼성수사를 시켜도 그런다고 말로는 하고 뒤로는 수사도 제대로 안한다

그러다 옷벗으면 삼성 법무팀에 특채되어 정권이 바뀌면 검찰총장 법부부 장관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대로 삼성의 명을 어기면 한국에서 삼성의 모함으로 변호사 하기도 힘들다는걸 떡검들이 잘안다

다른곳에 돈을 받은면 걸려도 삼성돈은 안걸린다는것도 삼성공화국의 특성 이다


언론과 방송에선 철저히 감추지만 유병언은 이재용과 특수관계로 수천억의 재산을 늘리게 하는데 이재용이 도움을 줬다

김기춘도 유병언과 특수관계로 과거 법무부 장관시절 유병언의 뒤를 바준 인물이 김기춘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의 배후로 삼성 이재용의 지시를 받은 구원파 역시 전남에 많은 부동산과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교주가 유병언 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유병언하나 잡는건 일도 아니다

그런구원파가 초장부터 김기춘을 물고 늘어져 마치 세월호 침몰의 배후에 박근혜가 있는 것처럼 떠든건

의심의 여지가 있다 진짜 배후는 감추는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엔 박근혜가 삼성에 이용당한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설사 삼성을 대통령도 어찌 할수 없는 거대 삼성공화국 이라고

혹은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핑계로 모른척 하며 박근혜가 꼬리를 내리며 진실을 은폐하는데 동조 하면

박근혜도 역사의 죄인으로 공범으로 처벌을 면치 못할것이다

병풍도 근처에서 세월호를 일부러 찌그러트려 잠수함 조작설을 만들어 진실을 음폐하려는 음모가 파파이스 81 동영상 보면 나온다

핵심은 설사 잠수함과 부딫쳤다고 접어 줘도 목포해경 놈들이 구조 하려는 의지가 있었으면 전원구조 하는데 15분도 안결렸다 근데 10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뭔 잠수함 조작지랄 하는지 웃기도 않는다

목포해경놈들이 전원구조 오보 보도하게 만들고 조타실에 들어가서도 대피하라고 방송을 안하고 가장중요한 구조 첫날 해군특수부대 구조를 막은 것들을 특조위가 밝혀야 하는데 삼성알바들 뿐이니 진실이 들어나지 않는거다


[출처] 파파이스#81 닻을 병풍도 해저에 걸어 전복시킨 세월호 대학살| -click 이부분 보면 항적조작과 목포해경이

끌고가 물살이 강한 맹골도 쳐박은 정황을 이해할수 있음

최상천 교수의 세월호 대학살에 관한 설명 고의침몰 https://t.co/4uXRDPVAQY-click


동영상


최상천 교수의 세월호 대학살에 관한 설명, 고의침몰 의혹, 정리

학살의 범인으로 의심가는 사람은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휘, 쑈, 왜곡, 은폐로 몰아가는 사람.

www.youtube.com

유트브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 동영상 아직도 차단 않시켰네 조만간 1억 돌파는 시간문제 인것같다 삼성그룹 일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자작극 아니면 삼성에 불리한기사 절대 못 나온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만 유포하고 수사를 않하면 이건희 회장이 고스란히 다 뒤집어 쓰잖아
동영상 보니까 성매매 장면도 없어
뉴스타파는 성매매 장면을 공개를 않하고 있다고 씨부리는데 믿을수 없다
뉴스타파가 생긴 이유가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터트릴려고 생긴게 아닌가 의심스러울정도
그러니 범인들 잡아서 진실을 밝혀야 순리다

허기야 뉴스타파와 범인 검.경 모두 삼성과 한통속으로 움직일게 물을 보듯 뻔하지만 말이다


이재용 개자식이 동영상만 유포해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극 벌여 이건희 회장 한테 뒤집어 씌우고 수사는 않하잖아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의 자작극 이니까 떡검들이 수사를 안하는거야 떡검들이 다른기업과 달리 유독 삼성 개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이 적당한 시기 이건희 장례식 치루려 떠보는 이재용
범인들이 돈이 목적이면 이건희 살아 있을때 터트렸겠지 이건희 암살한 이재용의 범행이 3년째로 접어드는데 왜 이제 터트리겠냐 그러니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이란거야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이건희 에게 다뒤집어 씌우는 홍라희 이재용 전형적인 교활한 더러운 년놈들 수법을 보면 분노를 느낄정도로 더럽다 치사하다
이재용은 지아버지를 암살하고 두번죽이는 쓰레기중에 최고 쓰레기

무리하게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을 조작하여 유포하여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세월호까지 고의침몰 학살의 배후로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란 명배한 증거를 확실히 보여준것이다

지아버지 성매매 조작극 까지 만들어 유포하는놈이 무슨짓을 못할까

그 중거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이 2016년7월 한국의 인터넷 뉴스인 뉴스타파

에 의해 보도 되었는데

동영상을 찍어 삼성에 돈을 요구하며 협박했다는 범인들이 2011년 12월1일 2012년 3월31일 2013년. 1월5일 . 4월19일. 6월3일 무려 3년간 다섯번 이나 이건희 집에 몰래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동영상을 찍었다고 하는데 3년이 지나서 왜 지금 동영상이 터졌을까

동영상을 마지막으로 찍은게 2013년 6월3일 이라고 하는데

현재 2016년 7월 기준으로 3년 하고 1개월이 지났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발표만으로도

2014년 5월10일 저녁 10시20분 쓰러져 순천향 병원으로 10시 45분 간후 간후

새벽1시 20분경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20층 특실에 이송 된후 현재까지 한발자국도 병실에서 안나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말고는 아무도 이건희 회장을 본적이 없는데

2년2개월이 지났고 년수로는 3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갑자기 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이 뉴스타파에 의해 보도되었는가

의심이 드는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그룹과 달리 한국에서 유독 섬성그룹 오너들에 관해서는

저자세로 나서는 여.야 정치인과 한국의 언론과 방송 그리고 검.경은 삼성공화국의 개처럼

침묵만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있다

이러한 복잡한 한국의 현실을 외국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회괴한것은 삼성에서는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이 몇년전부터 있었다는걸 알고 있었다는데

범인들이 얼마전부터 삼성그룹에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했다는데

삼성에서 개인 사생활 문제라며 범인들의 요구를 거절하며 동영상 유포를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수 없는 논리다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과 관련이 없으면 지나가는 강아지가 관련있나 ㅋㅋ

한국의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보다 들어가기 힘든 검문이 철저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침실에

몰래 카메라를 3년간 무려 5번이나 들고 갔다는것은

삼성일가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 다접어주고 그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동영상을 제작한 범인들의 목적은 돈이 전부일텐데

2013년 6월3일 마지막 동영상을 제작하고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쓰러질때까지 무려 11개월의 시간이 있는데 왜 그때

이건희 회장에게 직접 돈을 요구하며 협박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당사자에게 직접 동영상을 공개 하겠다고 협박해야 더많은 돈을 받아내기 쉽고

협상하기 쉬웠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사건은

삼성회장의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의 자작극이란 결정적인 증거이다

홍라희 이재용이 어리석게도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을 조작하여 유포함으로써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범행 일체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난것이다


삼성그룹에서도 몇년전부터 동영상이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는데

더구나 범인들이 삼성에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는데 장남인 이재용이 전혀 대응을 하지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한것과 청와대 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건희 침실에 몰래 카메라를 아무런 제지 없이 들고가 찍은것은 내부 공모자가 있다는 증거로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 이란 증거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야 조작 이란걸 알수 있지만 유투브에 조작된 동영상을 보는 전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방송과 언론이 주구장창 떠들어 자세한 사항을 모르는 노동자 농민 서민들은

이런 복잡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

이재용의 시나리오데로 여론 조작 하려는 수작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을 5년 전 2011년 12월1일 부터 치밀하게 조작하여 나중에 불리할때 써먹을 려고 미리 계획하고 찍었다고 한국의 뉴스타파는 보도 하는데

내가 2011년 10월 초 경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처음으로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진실을 여러군데 통보한적이 있다 그런후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던 의심많고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이

만약에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진실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나중에 알면 그후 대책을 세우려

미리 치밀하게 이건희 회장 암살계획을 세우고 불리할때 써먹으려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조작극까지 만들려고

2011년 12월1일 처음 동영상을 제작한 이재용이 동영상을 유포할

한국의 인터넷 방송 뉴스타파를 2012년 1월20일 첫 방송을 하게 만든 교활한 것들이다

동영상을 유포한 뉴스타파는 나의 글이 인터넷에 나가자 자신들은 삼성과 한통속이 아니라고 바람잡으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을 버렸다 라는 동영상을 올려 바람 잡는다

그러나 삼성가 이재용과 뉴스타파 동영상 조작하여 유포한범인 성매매 동영상 조작사건을 수사도 않하는 한국의 검.경 모두 삼성공화국과 한통속이다

결국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 동영상은 이재용과 삼성이 유포한거나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외삼춘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은 국제 비밀 최상류층 사교모임인 프리메이슨 삼변회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알고 있고 이재용도 같은 소속을로 알고 있다 역시 이재용과 특수관계인 유병언과 특수관계인 이재용이 유병언을 이용해 세월호 침몰하여 이건희 암살을 덮으려는 계획을 세운것이다


두려움에 떨지말라고 하던데 힐러리는 안락한 곳에서 보호 받으며 있으니 거이 두려워 할일이 없지 어디가도 여기저기서 굽신 거리며 최고의 대접을 받고 사는

인간이 오바마 와 힐러리 이다

그런 인간은 미국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할 일이 제로에 가깝고

IS 극악무도한 테러범에게 테러당할 일이 없다

그러니 실제 수많은 사람이 미국경찰에 총격에 살해당하고 IS 극악무도한 테러범에게 테러를 당해도

그들은 남에집 물구경 하듯 미국 경찰이 테러를 해도 IS 테러를 해도 두려워 하지말고 죽으라고 염장질 하는 개소리 인것이다


IS 한국군이 가도 일주일안에 점령할수 있는 오합지졸에 불과한데 오바마와 힐러리가 그대로 나두고 유럽을 초토화 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사실 지금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IS 잔악무도한 놈들과 극단주의 이슬람 IS 에 눈치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IS극악무도한 놈들이 설치는 바람에 아무 죄없는 이슬람고도들 까지 혐오감을 갖게하여 피해를 주는데

IS를 방치하는 오바마 정권의 행동을 이해할수 없다 지상군을 빨리 파견해서 억류된 자들에게 자유를 줘야한다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이 순수예술의 최고봉 중에 하나라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장 에게 거금을 쳐먹이고 만원도 안하는 유병언 사진을 오갖거짓 찬사를 늘어놓게하여 계열사에 최고 17억원에 팔아넘기게 만들기도 했는데 비서가 적어주는 헛소리를 멋드러지게 힐러리가 대중에 말해 전세계에 이재용 쓰레기들을 띄워주고 거금을 챙기는 등

힐러리 그녀의 말에 무슨 진정성이 있는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슨이 이기는 것인데

힐러리가 막강한 세력을 동원하여 선거방해하여 미국 대통령 후보를 강도질한게

이메일 사건으로 들어나지 않았는가

결국 끼리끼리 논다고 그들만의 리그로 셀프디스하며 국제적으로 지들끼리 상부상조 하며 장난치는 것이다


2012년 3월31일 2013년. 1월5일 . 4월19일. 6월3일 무려 다섯번

몰래 카메라를 들고 이건희 회장 침실에 들어갔는데 동영상을 모두 보았지만 성매매 장면과 마사지 받는 장면은

한장면도 없는데 어떻게 성매매 동영상 이라며 전세계에 퍼질수 있는가


성매매 장면은 찍을수가 없던것은


성매매가 없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동영상에도 조선족 목소리의 여성이 이번에도 성매매 동영상 찍는데 실패 했다고 그런 소리가 동영상에 있다


그런데도 그런 제대로 찍지도 못한 동영상을 무리하게 유포 하다니 그것도 한국 법무부보다 강하다는


삼성 법무팀이 버티고 있는 삼성에


그것은 이건희 회장을 씹어 내다 버릴 려고 하는 홍라희 이재용의 자작극 아니면 도저히 있을수가


없다

거듭말하지만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갑자기 2016년 7월

뉴스타파를 통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조작 동영상을 유포한 이유는

이건희 회장이 상습 성매매 자로 조작하여 쓰러질때도 성매매 하다 쓰러졌다고

은근히 유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의 여론 조작 유도형 수법이다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 사건의 진실이 들어나지 않는건 삼성이 배후 라서 그래 한국에 여.야를 모두 침묵 시킬수 있는건 삼성공화국 한곳 밖에 없다 야당 놈들도 헐리우드 액션만 했고 세월호 특조위도 삼성알바가 다수라 진실을 밝힐의지가 없다 만만한 경기 단원고 애들을 희생양으로 삼성의 세월호 고의 학살은 동영상에 100% 증거가 있다

목포해경이 조타실에 가서도 구조방송을 안하고 구조도 등한시하고 생수장 시킨 동영상도 찻으면 있다

선원에게 증거 비밀 자료를 받아 폐기시키는 목포해경을 가장한 국정원 삼성알바 놈의 모습도 찻으면 있다 세월호 고의 학살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이 공모하여 이건희 속이다 뒤늣게 알자 암살계획을 세우고 미리 세월호를 침몰시켜 나라를 뒤집고 뒤이어 이건희 까지 암살한 이재용

해수부 "세월호 선체 인양 뒤 절단 불가피".. 하다는 말에 증거인멸을 국가 조직적으로 은폐할 우려로 유가족·특조위 반발


그러나 삼성가 개밥에 길들여진 여.야는 물론이고 다수가 삼성알바들로 만들어진 특조위도 침묵하고 있다

진경준 검사장 넥슨 게이트로 언론과 정치권이 날리를 치는거 보니 그 과정에 삼성이 빠질수 없지 삼성이 있기에 삼성을 보호하며 감추려 바람잡는 무리들이 설치는것 같은데 넥슨과 삼성전자 최고위 관계자의 처남 회사 거래 등이 속속 불거지며 넥슨 게이트 수준으로 커져 넥슨 관계자들이 사태 수습과 해명에 힘과 시간을 쓰고있다 삼성 꺼는 조용히 덮는다 100불 건다


1- 먼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아기때 한국의 KGB 라 불리는 비밀스런 삼성가 에서 은밀히 데려와 이건희 회장과 본처인 홍라희 호적에 외부인이 알수없게 비밀리에 올리며 키우다가 그후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 중에 배다른 막내딸인 이윤형 양을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배다른 언니인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 보다 많은 상속으로 2003 년 한국 여성부호 3위에 오르며 e삼성 실패로 사면초가에 빠진 장남 이재용을 바짝 추적하자 이건희 회장의 본처 홍라희 와 남동생 현재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장남 이재용 신라호텔 사장 장녀 이부진 제일모직 사장 차녀 이서현과 그들을 추종하며 따르는 패거리 들에 의해 어짜피 떡 검에 의해 흐지부지 끝날 운명의


삼성x파일 사건을 계획적인 음모로 신라호텔에서 1997년 9월9일 홍라희 남동생인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이학수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도청 자작 사기극 을 벌여 8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이 기소할 수 없는 시점에 2005년 7월 계획적으로 터트려 자존심 강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혼을 빼고 정신없게 만들어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로 1999년 수술받은 폐암이 2005년에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 엔더슨 암 센터에 입원 시키고

보는 눈이 많고 조작 하기가 더 어려운 한국 보단 전문 청부살해 업자만 1000 여 명에 가깝다는 비교적 청부살해 하고 조작하기 쉬운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 위해 홍라희가 운영하며 가장 아끼던 리움 미술관을 물려 준다고 바람잡아 속이고 이윤형 양을 미국 뉴욕 대학원 미술 경영학과에 2005년에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한것은 적어도 2004 년 후반기에 결정되거나 그 이전일 것이다 2005년 이윤형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난후 그해 뉴욕 현지 시간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이윤형 양을 암살하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뒤늣게 이건희 회장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자 이건희 회장까지 2014년 5월10일 암살한 이재용이 당시 삼성전자 지분이 5%이상으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행사 하던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이재용 이란 사실을 알고 경영권 인수 작업을 끝내지 않아 삼성전자 지분이 0.5% 밖에 없어 삼성전자 경영권을 행사 할 수가 없어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치밀한 음모로 저체온으로 치료한다며 속이고 냉동시겨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 20층 특실에 입원시키고 접근금지구역으로 설정하여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이외에는 아무도 못들어가게 철저하게 경비하고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2014년7월 에버랜드를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바꿔 상속세와 삼성전자 경영권을 강도질할 목적으로 승계작업을 비밀리에 해오며 언론과 방송에 암살된 이건희 회장이 휠체어타고 재활훈련 한다고 속이며 말을 흘리자 한국의 언론과 방송이 유치원생 처럼 확인도 없이 받아쓰기 보도로 국민을 속이는 삼성공화국 이다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며 특히 삼성그룹 최상의 순환출자구조 지배회사인 에버랜드에 대략 8.7%의 지분을 상속하고 삼성 SDS도 이윤형에게 막대한 상속을 하며

삼성전자 경영권 싸움도 이재용을 위협하던 수준이라고 이재용이 판단하며 불안에 떨며

이윤형을 암살한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2014년 5월10일

암살한 이재용이 마음놓고 2014년 7월 에버랜드를 제일모직으로 바꾸었다

이윤형이 죽자 지분을 이건희 회장이 장학재단에 맡겼는데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연쇄살해한 이재용이 그것도 빼왔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이 당시 0.5% 밖에 없어

자력으로 경영권승계를 할수가 없자

이건희 회장을 냉동시켜 삼성병원에 입원시키고 살아있는 것처럼 속이며 삼성의 개에 불과한 언론과 방송을 이용했다 그런중에 2015년 5월 초에 박근혜와 이재용이 경기도 평택에 삼성반도체 공장

16조 투자 기공식에 참석하고 난후 개원한지 당시 4개월 밖에 안된 평택 성모병원과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을 메르스환자들이 마치 펙키지 여행코스 처럼 돌아다니며 메르스가 퍼지기 시작 하더니

2015년 5월25일 쯤 영국화재 보험에 재가입하여 전액 배상 가능한 제일모직 방화 사건이 터지더니


다음날 5월26일 2015년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순환출자구조 합병승인을 주주들에게

주주총회를 열어 표대결로 결정한다고 발표 했다 동시에 방화범이 밀린 돈을 못받아

방화를 일으켰다며 언론과 방송에서 공개수배 하며 떠들더니 갑자기 무슨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것인지 조용해 졌다

2015년 6월2일 삼성과 더팩트가 합작하여 이건희 회장 병실사진을 조작하여 흘렸다 아래 그사진이 있다


6월4일인가 서울시장 박원순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염병 권위자가 병원장인 서울 삼성병원에서 메르스 전염을 방조한다는 의미의 기자회견을 긴급 야간에 한다

이러한 박원순의 노력이 없었으면 서울 삼성병원이란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있자 의료혁신 투쟁위원회라는걸 이재용이 배후에서 긴급히 만들어 박원순을 명예훼손 으로 고발한다 그후 서로 합의를 했는지 조용하고 더이상 삼성에 비리를 파헤치지 못하는 박원순이 현재는 삼성공화국의 압력에 꼬리를 내린 형국이다

그후 평택성모병원 이외에는 메르스 전염 병원을

밝히지 않던 보건 복지부가 메르스 전염 병원을 밝히자 놀란다

거이 모든 메르스환자가 평택 성모병원을 통해 서울삼성병원을 코스로 서울의 다른 병원에 전염이 됐는데 거이 모든 다른 병원은 환자가 몇명 생기다 마는데 유독 한국의 전염병 최고 권의자 라는 송재훈이 병원장인

서울 삼성병원 에서 절반이상 전염환자가 계속 발생 했다

특히 슈퍼전파자라는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왔다는 기록을 모두 제출했는데

삼성병원장은 안받았다고 거짓말하며 사기를 치며 일반 환자들과 같이 집어넣어 많은 전염환자가 발생하게 고의로 방치한 증거가 KBS 9시 뉴스에 보도 되기도 했는데 아무도 법적인 처벌을 못하고 그냥 조용히 넘어 갔다 메르스가 퍼져 무려 38명이 죽었는데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우여곡절 끝에 합병승인 주주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되어 삼성물산의 4.1%의 삼성전자 지분이 이재용에게 승계되어 도합 4.6%지분으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승계하게 된다 그후 일주일후 2015년 7월23일 경찰이 제일모직 방화범이 제일모직 방화 현장에서 당시 숨진 시체가 2달 만에 발견 됐다며 강아지도 안믿을 말로 조용히 종결 되는데 거이 모든 언론과 방송은 보도도 안하고 지상파에서 일부 자막 처리로 조용히 넘어가

일반 국민은 알수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로 봤을때 이재용이 주주들이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이재용 이란 사실을 알고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승인을 해주지 않아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를 하지 못하면

전직 검사가 검사 재직시에는 여기저기 아부하며 사람이 모이더니

검사옷을 벗으니 그많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더라고 말하며

나를보고 사람이 모인게 아니라 검사옷을 보고 사람이 모이며 아부한거라고 말한것처럼

비싼차를 타면 대접받고 싼차를 타면 무시 받아

여기저기서 무시하고 이재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와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내용까지 말이 많이 나올까봐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이재용이 불안에 떨며 무리하게 메르스를 계획적으로 퍼트려 38명을 죽이고 제일모직 방화사건 자작극 사건을 퍼트려 제일모직 경비와 희생양으로 엮은 방화범 까지 죽인 이재용의 더러운 음모라는 결론의 글 이다

이재용은 삼성직원들 시켜 주주들 일일히 찻아가 당근 작전을 펼치고 한편으론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TV광고까지 하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승인해 달라고 애국심까지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인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그들의 교활함의 끝은 어디까지 인가 상상을 불허한다


과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살아있을때 셋째아들 이건희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워 임신하자
이병철이 홍라희 불러 일이 이왕 이렇게 됐으니
데려와 호적에 올리고 친딸 처럼 잘키우라고 당부하자
과거 소련 KGB같이 비밀스런 삼성가에서
강수현 주연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을 탄 씨받이 처럼
씨 받이는 감금된 상태에서 임신하여 애를 낳고
양반 부인은 거짓 임신한 것처럼 조작하여 애를 낳자마자 핏덩이인 이윤형을 강제로 뺏어와
키우다가 이윤형이 똑똑하고 이건희를 상상이상으로 닮아 이건희가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자식들 중에 가장총애 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 에서 입원하여 폐암 치료받는 시기를 골라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87년 11월20일 한국시간 죽었는데

이윤형을 미국뉴욕 현지시간 2005년 11월19일 오전3시 이전에
청부살해 하고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알고 의심하고 양심선언 할까봐
이건희 회장 까지 암살한 정황증거로 의심받기 싫으면 삼성가는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 20층 이건희

회장 특실을 낱낱이 공개하고
이윤형 검시기록과 수사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이윤형을 낳고 데려다 키우는 조건으로 정관수술을 했다
이사실은 22년 전에 이건희 회장이 바람피워 젊은 여자에게 임신 시켰다는 소문이 돌자 이건희가
삼성계열 이나 마찬가지인 중앙일보 기자들을 불러
이건희 회장이 외도하여 다른 여자가 임신 했다는 소문을 잠재우려
이미 14년전에 이윤형을 낳고 바로 정관수술 했는데 어떻게 바람피워 다른 여자를 임신 시킬수 있냐고
중앙일보는 삼성계열사나 마찬가지라 이건희 편을 들어 달라고 했다고
삼성뎐 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인데
사건을 제대로 해석하면
22년전1992년인가 1993년에 이건희가 다른여자와 바람피워 임신 시켰다는 소문은 당시가 아니라 14년전
그러니까 1979년 이전의 이윤형이 태어나기 직전의 사건이
1993년도에 뒤늣게 소문이 퍼진게 아닌가 추리된다
그러니까 이건희가 바람피워 임신시킨 사건은 1993년도 사건이아니라 1979년 이전 사건이
뒤늣게 빙산의 일각으로 조금 들어난 사건이란 것이다
이윤형 생모는 그후 얼마있다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배후의 지시로 삼성 알바들이 박명경이 이윤형 생모일 가능성을 은근히
찌라시 처럼 거짓 소문을 퍼트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 바람 잡으려는 것 같은데
박명경 이는 이윤형 생모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윤형 생모는 이미 이윤형이 태어나고 얼마후 죽었다고 생각한다

뉴스 9 2015.06.09

<앵커 멘트>
(삼성서울병원에서 집단감염을 일으킨 14번 환자가 당초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할 때, 평택성모병원의 기록까지 모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재석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삼성서울병원은 집단 감염을 일으킨 14번 환자가 입원할 당시 문제의 평택 성모병원을 거쳐왔는지에 대해 몰랐다는 취지로 발표했습니다.
<녹취> 송재훈(삼성서울병원장/6월 7일) : "14번 환자가 메르스 환자에 노출됐다는 건 환자도 모르고 저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14번 환자의 병원 기록입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CT 사진이 담긴 CD입니다.
입원 날짜인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에 제출했고, 병원에서 정식으로 접수했다는 걸 확인해주는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CD에 들어있는 CT 사진에도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거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14번 환자의 부인은 KBS와의 전화 통화에서 평택성모병원 자료를 모두 삼성서울병원에 제출했다며

남편도 메르스 피해자인데, 가해자처럼 비난받고 있다고 억울해 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당시 대책본부까지 만들어 운영하면서 첫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나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가 입원할 때 평택성모병원 자료까지 받아서 알고 있었다고 이제야 시인했습니다.
다만 질병관리본부에서 집단 발병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메르스 환자로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지금까지 37명의 메르스 환자가 생겼고, 9백 명이 격리됐습니다.
KBS 뉴스 이재석입니다.)

14번 환자가 슈퍼 전파자가 아니라 삼성병원이 슈퍼 전파자다 14번 환자는 처음 응급실 내원시 평택성모병원에서 가져온 검사자료도 다 제출했다던데 자료를 환자로부터 안받았다고 거짓말한 삼성병원의 이런정황이면
일부러 방치한게 의심이 들며 알면서 일부러 제때 격리조치 안해서 3일내내 사람 많은 응급실에 그대로 방치해서 이렇게까지 퍼진거를 뭘 자꾸 모든건 14번 환자로부터 시작된 재앙인듯 끼워맞추는지
더구나 당시 삼성병원원장 송재훈은 전염병 권위자로 알려졌는데
삼성이건희회장 아들 이재용이가 불법으로 경여권훔치려 대놓고 짜맞추기 작업하는 정황인데 정부 당국은 불법 아니라면서 손놓고 되려 엘리엇등 외국 펀드회사만 반발하는 이상한 상황
제일모직보다 삼성물산이 훨씬 큰 회사인데 합병하고 지분은 제일모직이 더 많이 가져 간다고?

법적으로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삼키는식인데 되려 합병 후 회사이름은 삼성물산


하마가 코끼리를 삼킨 뒤 자기는 코끼리다 라고 말하는 격이다


이건 삼성그룹 지배력을 이재용이가 쉽게 넘겨 받을려는 법망을 피해가는 비정상적 이고 비양심적인 합병
삼성병원원장 송재훈은 한국의 전염병 최고 권위자라며 철저하기로 소문난 삼성에서 환자들을 회괴하게도 허술하게 방치하여 유독 삼성병원 메르스 확산이 가장 심한 이상한 정황은


(제일모직(삼성에버랜드) 1: 0.35 삼성물산 합병비율 말도 안 된다 !! 합병비율 1:0.35가 아니고 본질가치(자산가치 1:1.5 수익가치)기준으로 1:2.56(=0.39:1)가 맞다!!(1Q금감원 분기보고서)
결론적으로 삼성물산이 1/8.53 수준으로 매우 저평가 상태로 부당한 합병 추진중 !! 삼성물산 주가가 P/B 0.8배 최저 평가시에 가장 불리한 합병 결정은 부당!! 삼성물산 경영진 배임 혐의로 처벌 가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주주들이 반대하여 성사가 되지않을 경우 이재용은 삼성전자를 승계하는데 큰 지장이 생기면 정글에 피를흘리며 상처를 입은 약한 모습을 보인 짐승에게
하이에나등 맹수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잡아먹으려 하듯 합병승인이 불발되어 이재용이 삼성전자 승계가 어려운 형국으로 진행되어 이재용이 별볼일 없게 되면 그동안

삼성공화국의 위세에 눌려 침묵하며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이재용이 주는 개밥 에만 눈독 드리며 눈치만 보던 것들이 태도가 돌변할게 뻔했다
2015년7월17일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 최상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과의 합병 승인를 묻는 주주 총회는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에겐 사활을 건

일이라 노심초사 했으리라 합리적인 추리가 가능하다


그러니 안해도 될일을 도둑이 제발 저리 다고
2015년5월25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7월17일에 합병 주주총회가 열릴거라고
26일 발표하기 전날 스프링 클러 시설과 모든 방화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고 CCTV 설치와 보안 요원이 철저 하기로 소문난 제일모직의 화재가 자작극이라고 의심 하는게 당연한것은 스프링클러만 작동이 됐어도 화재가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꺼라 누가봐도 생각이 드는데

한국의 모든 언론과 방송이 침묵만 하고 유치원생처럼 삼성이 불러주는 기사만 확인도 없이

보도하고 있다

특히 방화범이 부탄가스통 여러개를 들고 배회하며 방화하도록 보안요원은 왜 방치를 했는지 이상하고 제일모직 화재 직후 모든 방송과 언론이 방화범이 밀린 돈을 못받아 방화 한 것 같다는
방송을 내보내다 어느순간 갑자기 미스테리 하다며 체불도 해고도 없었다며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며 방화범은 현장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짤막하게 나오더니 제일모직 화재 사건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항상 의심하며 팩트가 생명인 방송과 언론이 유독 삼성 관련 보도는 정확한 팩트없이 삼성가 오너들이 불러주는데로 유치원생 처럼 받았쓰기 기사를 내는게 또 확인되는 순간이다

지난 2015년 5월2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중동지역을 다녀온 68세 남성A씨가 중동호흡기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것으로 첮확인 됐다 메르스 환자가 처음 나오고
메르스가 퍼지던중에 6월1일 메르스 확진환자 첮사망자가 나온후 2015년6월2일

5월22일 찍은 사진이라며 이건희 회장 병실 사진을 조작하여 흘리며 재활훈련하며 업무보고한다는

거짓 보도를 언론과 방송이 삼성의 주문대로 허위 보도를 내보내는 삼성공화국 이다


전염병의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송재훈 삼성 서울 병원 원장은 자료를 못받았다고 구라치는건 삼성병원이 이재용 지시로 은밀히 메르스 퍼트려 38명을 죽게 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 삼성병원원장은 이재용의 지시에 움직인다고 누구나 추측하는데 말이다
진단을 잘못했다고 하면 스스로 돌팔이 라고 인정하는 거라
생각 해낸게 보건국과 환자가 어느 병원에서 왔는지 안알려줘 메르스인지 모르고 폐렴인지 알았다고
뻔한 거짓말로 기자회견 하는 정말 믿을수 없는 것들이다
이제 가능성은 두개 당시 한국의 전염병 최고 권위자라는 삼성병원원장 송재훈이 14번 환자로 부터 당시 개원지 4개 월밖에 안된 평택성모 병원에서
치료 받다 왔다는 자료를 분명이 삼성병원에 제출 했는데 기억 못하는 바보로 진단도 못하는 돌팔이던가
아니면 메르스를 일부러 퍼트리기 위한 사기극
그런데 이재용이 바보 돌팔이를 삼성병원장에 자리를 줄리는 없고
결국 이재용이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과 함께 메르스 고의로 퍼트려 38명을 죽게한것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삼성병원 특실 사진조작 의심 감추고 특히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이재용 이란 진실을 주주들이 알아 합병승인을 해주지 않을까봐 노심초사 불안에 떨며
7월17일 제일모직 삼성물산의 합병 주주총회에서 주주들 시선유도로
합병승인을 이끌어 낼려고 안그래도 되는데 합병이 승인되는냐 안되느냐에
홍라희 이재용 운명이 달려 있어

메리스환자줄 알고 방치하고 고의로 계획적으로 퍼트린 결정적 증거라고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14번 환자가 삼성병원 오기전에 메리스 1번 환자가 삼성병원 에서 확진 받았어
삼성병원에서 메리스 1번 밝혔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건 일종의 미끼 같아
히로시마 원폭 투하 하기전에 미군이 다른데 공습을 해도 히로시마는 내버려 두드시 이미 메리스 환자가 삼성병원에서 발생 했는데 메르스 환자인지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은 모순이다
그런데 메르스가 한참 퍼지고 있는데 전염병 권위자 삼성병원장이 메르스 환자를 왜 방치한게 단순한 실수라는건

믿을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더구나 평택은 삼성반도체 공장에 16조를 투자하며 2015년 5월초 박근혜 이재용이 준공식에 참석한 곳이다
그리고 평택 성모병원은 당시 개원한지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만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현재 상태를 알지 외부 누구도 현재 상태를
알수없게 극비로 차단하고 삼성가 개밥에 길들인 방송과 언론들에 개밥줘서 언론 풀레이를 하며
이건희가 업무보고를 받는다고 하며 또는 건강하게 휠체어 탄다고 하더니
이승엽이 홈런치면 눈을뜨며 반응 한다고 하는말은
전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말도 안되는 유치원생도 의심할 사진을 한국에 퍼트리고 의식이 없는 이건희가 건강 하다며 업무보고 받는다는 코메디 같은 기사가 한국에 방송과 언론에
나는걸 보고 한국이 정말 양아치 삼성공화국임을 재확인 시켰다 그 기사는 전부 거짓 기사 이다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에서 MD엔더슨 암센터에서 폐암치료 받을시기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이 미국뉴욕 시간 2005년 11월19일 새벽 3시에
남자 두명이 숙소에서 죽은채 발견 됐다고 그중 한사람이 신수빈 이란다
그런데 이윤형이 죽기 3년전에 수빈이라는 경호원이 이윤형을 밀착으로 따라다니며
누군가에게 이윤형의 동태를 은밀히 보고하기도 했는데 만약에
둘이가 동일인물 이라면 홍라희 이재용이 이미 3년전 부터 이윤형을 청부살해 하기 위해 경호원을 가장한 킬러를
이윤형에 은밀히 보내 암살할 기회를 노린 것이다

홍라희가 아무리 이윤형이 자신의 친딸 이라고 거짓말 해도
이건희 회장은 진실을 알고 있어 속일수가 없고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윤형이 홍라희 친딸이 아닌 배다른 딸이라고 시인했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피라미드 구조 최상의에 있어 홍라희 이재용이 유일하게 두려워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진실을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 까지 암살할 계획을 2013년 부터 치밀하게 세우는 의심많고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이 밝혀질 까봐 두려워 하여 이건희 회장 암살직전에

세월호 고의 침몰 학살극을 치밀하게 2014년 4월16일 연출하여 한국을 모든 언론과 방송이 떠들게 뒤집고 26일후 세월호 추모 집회가 한참일때 2015년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조용히 암살하고 덮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더러운 음모를 세계 양심에 밝힌다


시중에 떠도는 거짓 유언비어는 교활한 홍라희이재용이
삼성 알바들 시켜 퍼트린 전부 거짓말 이다 절대 믿으면 안된다


한국의 피라미드 구조의 최상위 에서 삼성직원이나 알바들은 물론 한국을 삼성공화국 하인처럼 부려
조직적으로 조작하여 퍼트려 범행을 감추려 한 것이다


(세계일보2015년6월20일기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의 최대진원지가 됐고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건은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삼성물산 지분의 9.92%를 보유한 국민연금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덩치가 커 합병안에 대해
사실상 케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터인데 국민연금 공단이 온전히 감당하기엔
너무벅찬 문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결권 논의는 공단 울타리를 벗어난 보건복지부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테이블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3주를 바꾸기로 한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정된 합법적 조건이다 합병안은 18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도 통과했다
그러니 시장엔 무늬만 합법일 뿐 이라는 의심이 팽배하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합병 비율은 최근 1개월 주가 등을 산술평균해 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눌러온 것 아니냐 는
것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심상물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시장에 퍼뜨려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내렸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비로 이 같은 불공정 개연성이 외국
투기자본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것이다.
입증할 수 없으나 개연성은 있다.
삼성은 합병을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체제를 확실하게 다지려는 것인데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지분 23.24%를 갖고 있는 반면 삼성물산 지분은 없다
보유주식 가치는 최대화하고 들고 있지 않은 주식 가치는 최소화하는 것 최소비용의 합병 방법은
자명한 것이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현재 0.57%에 불과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대폭 강화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다
또 제일모직은 단순화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된다. 두 계열사 합병의 핵심은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로 요약된다
고민이 깊겠지만 국민연금도 결국 삼성 편을 들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먹튀자본을 도왔다 는 비난보다는 재벌세습에 들러리 섰다는 비난이 견딜 만 할 것이다
연못 속 공룡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지분도 11.6% 갖고 있는 터다
그렇게 합병이 이뤄지고 나면 관리의 삼성 이 회복되는 것일까 합병이 이뤄진다고
무늬만 합법의 불신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세계일보. 류순열의 경제수첩- )

요부분만은

( 나의 상상 이지만 삼성이 엘리엇과 공모하여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삼성이라는 소재로 애국심을 이용할려고 바람잡아 당시 언론과 방송이 삼성이 위험한 것처럼 여론조작하여

주주들을 손님잡아 정신없게 만들어 다른 생각할 여유를 주지않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범인이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란

진실을 주주들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유도하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불합리한 합병승인을 시키기 위한 비슷한시기 터진 메르스 사태와 제일모직 방화 자작극 사건과 함께 애국심을 이용하는 교활한 삼성의 작품이 아닐까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엘리엇이 아르헨티나에서 처럼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여 삼성을 끝까지 괴롭히지 않고 이익을 얻고 주가를 팔고 물러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생각에도 이재용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될것 같은데

미래를 모르는 이재용이 노심초사하여 그런 복잡한 교활한 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것을 한국속담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하는 것이라고한다 )

sbs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 2014년 11월29일 신해철 편에서
갑자기 간호사가 양심선언 한다고 하며
수술중에 바늘하나를 못찾아 1시간 가량 뒤적 였다는 보도는
동영상이 없어 믿을수도 없으며 ?
그게 사실이라해도 중요한게 아니다
그게 단순과실 이라는걸
알리기 위해 혹시 조작하여 없던일을 만들어도
진위여부를 누가 알겠냐 밝힐수도 없고 당시 상황의 진실을 정확히 알수도 없는 일이다
간호사의 말만 믿고는 그런일이 있었다고 확신이 안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른말 하기로 유명한 유명가수 신해철 이가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뭘 먹었냐도
이사건 본질에서 벗어난다
미음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장에 천공이 생기지 않고 심장에 천공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핵심은 환자가 그렇게 아프다는데 의사가 제대로된 처방없이
마약성 진통제 주사만 S병원장 마음대로 처방하여 환자를 비몽사몽 사태에 빠지게 만들어
지인들 에게 제대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 할수없게 만들었다는
신해철 부인의 증언이 사실 이라면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신해철 부인도 당시 상황을 다시 되돌아 생각해 보니
이상 하다고 한것과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해철이 퇴원하기전에 X레이 촬형후 치사율이 50%이상
되는 염증이 진행 되는 X레이 사진에 분명이 진단할수 있는 환자를
퇴원 시켰고 결국 신해철은 얼마후 죽으며 방송과 언론은 마치 신해철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처럼 심장정지로 갑자기 죽을걸로 대대적으로 언론 풀레이를 하며 보도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다른병원 의사들이


X레이를 검토한 결과 이건 죽으라고 퇴원시킨 거라며
같은 의사로서 납득할수 없는 처방 이라며
같은 의사로서 생각하기에 X레이 사진을 의사가 보지않고
퇴원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사가 봤으면 절대 퇴원 안시켰다고 하며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S병원 의사를 옹호하는 보도를 보고
아니 그러면 환자를 퇴원 시키는데 의사가 수술 부위 X레이 사진도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퇴원시킨 다는게 상식적 으로 있을수 있는일인가
지나가는 옆집 똥개가 웃을소리 하네 그말을 누구보고 믿으라고 씨부리는가
더 이상한 것은 만약에 신해철 수술동영상이 존재 했다면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수 있기에
단순 과실로도 볼수 있겠지만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에 등장한 간호사라는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S병원장이 그전에 다른사람 수술때는 꼭 동영상을 찍어 만일의 사태에 방어 수단으로
동영상을 꼭 찍으라고 간호사에게 지시까지 했다 는데 그래서
신해철 수술시 에도 동영상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경찰 조사시 동영상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에 신해철 수술 당시 동영상이 분명 존재 했다면
다 접어주고 우연한 단순과실 로도 볼수 있지만 그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계획살이에 무게를 둬야 하는데 한국에서 의협의 조사에의해

계획 살인도 만약에 의사들이 자신들도 수술하다 살인으로 처벌받을까봐 그런건지

모르지만 선례를 남기지 않기위해 아무리 계획살인의 정황이 있어도

과실치사 이상으로 처벌하기 힘든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한다

의사가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진다면 의사 면허만 가진게 아니라 살인 면허도 가진게 아닌가 생각할수 있는게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그만큼 의료 사고는 밝히가 힘들다는것이다

만약에 의사가 고의로 살인행위를 목적으로 의료사고를 저질렀다고 해도

의사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이상 밝히기가 힘들다

의사가  안약에 개인감정이나 혹은 드물긴하겠지만 청부살해 사주를 받고

수술중 계획적으로 죽여도 발각되는 것도 힘들지만 운이 나빠 밝각되어도 과실치사

이상으로 처벌할수 없다는게 한국의 현주소다


S병원장에게 그 전에 수술받고 5개월후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삼성공화국 언론과 방송이 강조하는데 그것은 환자의 수술 동의를 받고 수술한 것이고

신해철이 수술후 10일 만에 죽은것은 수술도의를 받지않고 했고 수술동영상도  고의로 찍지 않았기에

전혀 상황이 틀리다

 신해철과 가족의 동의도 없이 의사 마음대로 수술했다는
가족의 증언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수술을 하는데 환자와 가족의 동의없이 어떻게 의사가 마음대로 수술하며
장과 심장에 구멍을 뚫어 놓고 염증이 생길 때 까지 고의로 방치한게 아닌가 누구나 의심이 들정도의 정황이고
환자가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퇴원시 수술부위 x레이 찍어놓고  보지않고 퇴원시켜

염증이 그렇게 심한지 몰랐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수가 있겠는가   
그후 환자는 장과 심장에 구멍난 부분이 염증이 심해 고통을 호소하며  죽었다


마치 세월호 고의 학살한 배후세력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지시로 공모한 선원과 목포해경과 같은 짓거리다
그런데 회괴하게도 한국의 방송과 언론은 정확한 상황은 알지도 못하고 신해철이 마치
삼성 이건희회장이 심장정지로 쓰러진것처럼 짜맞추기 위해 신해철이 갑자기 심장정지로 죽은것처럼
대대적으로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신해철의 시체를 화장하기 직전에 너무도 의심스런 정황에
지인들이 정밀 부검을 실시하여 사인이 이정도로 나마 밝혀져 의사를 과실치사로
기소된 상태이다 그것도 신해철이 한국의 유명가수 이기에 가능했지 일반인 같으면 밝혀지지도 않고 흐지부지 끝났다
정말 개가 웃을일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신해철이 죽을때 메스컴 에서는 앞다퉈 마치 신해철이 삼성이건희 회장이 심정지로 쓰러져
갑자기 죽은 것처럼 당시 방송에 처음에 대대적 으로 보도된 것을
보고 나는 왠지 신해철이 심장정지로 죽은게 아닐 꺼라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처럼 신해철은 심장정지로 갑자기 죽은게 아니란게 밝혀졌다

만약에 신해철을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처럼 바로 화장 했다면
신해철사건은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을 이재용이 창부살해한 의혹 사건처럼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신해철은 심장정지로 갑자기 죽은걸로 역사는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화장 직전 신해철 시체를 지인들이 정황이 이상하다고 부검 하자고 건의하여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의문이 드는건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이
뉴욕에서 당시 이재용이 뉴욕에 있을때
삼성회장이 텍사스MD 엔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 받을때
뉴욕에서 이윤형 시체를 죽은다음날 타살흔적 지우려 바로화장한 진짜 이유를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에게 묻는것이다


신해철 시체도 국과수에서 부검후 일주일이 지나야
사인을 어느정도 파악할수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는 인간이 하는일에 100%로는 없으나 어느정도
100% 는 아닐지라도 사인이 어느정도 밝혀 지리라 추정 하는데

당시 텍사스 MD 암센터에서 페암치료 받던 이건희 회장에겐 건강악화 이유로 핑계를 대고 알리지도 않고 뉴욕에 있던 이재용은 이윤형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려 노력하지 않고

잘죽었다고 생각한 것처럼 죽은지 2일만에 서둘러 화장 처리 하고 3일만에 극비로 외부조문 금지하고 장례 까지 마치고 난후 기자들에게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은폐하려 거짓말을 했으니

당연히 이윤형 암살의 범인은 이재용 이란 것이다


삼성고위 관계자가 일원동 서울삼성병원 20층 특실에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 몆달전 사진을 봤는데 괜찮은것 같덴다 ㅋㅋ 말도안되는 소릴 짓거리는구나 몆달전 사진을 보고 왜 몃달전 사진만 봤을까 삼성병원 특실에 있는데 가서 직접보면 돼지 말장난 하는 거지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 이재용에게 암살된게 확실하다는 증거이다

언어도단들이 따로 없구나 양호한데 의식이 없다니
한국 국민을 유치원생만도 못하게 무시하는건지
국민을 모독을 해도 유분수지 의식이 없으면 죽은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2년넘게 년수로는 3년째로 의식이 없는 사람이 양호 하다니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말이다
sbs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다단계 4조원 사기판매주범 이미죽었다는 조희팔을 중국에서 본사람이 백명이 넘는데
희한하게도 사진한장이 없다 백명모두 핸드폰이 없는 사람만 봤다는 건가
조희팔이 현상금이 얼마인데 봤으면 핸드폰으로 사진한장 찍었을텐데 아무도 사진을 못찍었다는건
그들의 증언이 가짜일 가능성이 크며 신빙성이 없는데도
그것이 알소싶다 sbs방송은 마치 이미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는 조희팔이 살아서 중국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방송보도를 보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방송이 앞장서서 돈과 권력자의 배후의 누군가를 위해 죽은 조희팔이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는려 누군가를 위해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하려는게 아닌가 아닌가 우려 스러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조희팔은 전문 경제에는 약하여 2조원이 넘는 자금관리와 돈세탁은
무리다 어쩌면 5.16 쿠테타 때 당시 주도세력 육군소장 박정희가 당시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을
얼굴 마담으로 군정위원장을시키자 장도영이 후배들이 자신을 존경하여
대통령으로 추대할 줄 알고 은근히 기대했던것 같은데

세상은 더욱 치밀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판을 자신 들이 유리하게 짜고 끌고가서

그렇지 못한 무리 들은 이길수가 없는 것이다

쉽게 생각 해도 알수 있는 일이다 박정희가 장도영에게 판을 줄것 같은면 뭐하러 목숨을 걸고

쿠테타를 일으켰으면 목숨을 걸고 박정희 만을 믿고 동조한 세력은 천치바로란 말인가

그들은 한국을 통채로 강도질하여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목숨을 건것이다

그러나 토사구팽 이라고 이용 가치가 떨어진 장도영을 처리하려 하자
미국만 보내주면 조용히 살겠다고 하여 미국에 보냈는데
장도영은 그때 박정희에게 당한 일이 창피하게 생각하며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에서 생을 마감 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얼굴 마담으로 조희팔을 이용한 세력이 중국에 보내게 아닌가
조희팔의 죽음도 타살일 가능성도 크고 이미 화장한 조희팔 시신은
DNA 검증도 할수 없게 화장 처리하여 애매하게 마치 조희팔이 은근히 사망사건을 조작한것 처럼 의혹을 부풀리게 만들어 살아있는것처럼 꾸며 모든걸 조희팔에 뒤집어 씌우려던게 아닌가


신라호텔사장 이부진이 정략 결혼한 임우재와 이혼이 1심에서는 결정이 났는데 임우재가 억울하다고 항소하여 항소심 재판중이라 지금 이건희 회장의 장례식을 치르면

결혼중에 불어난 재산은 이혼분활 소송 대상이 된다고 하여 아직 이건희가 상속하지 않은

시세에 따라 변동이 크지만 대략 지분은 11조 가량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부동산 대략 5조에서 7조 가량의 막대한 도합 대략17조 가량의 상속이 남아 있다 그래서 임우재가 이훈분활 소송을하여 받아들여지면 많게는 1조 가량 임우재에게 돌아갈수가 있다고 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부진이 아직 이건희 회장 장례식을 치르기 전에 이혼부터 먼저 하려고 이건희 회장의 장례를 미루는 파렴치 범들이다 한마디로 돈이면 다 라고 생각하며 양심이 없는 것들이다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와 남동생 홍석현 장남 이재용이 공모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을 죽이기 위해 1997년 9월9일 한국의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당시 삼성그룹의 2인자 노릇을 하던 이학수가 계회적으로 도청 당한것 처럼 조작하여 녹음한 삼성X파일 사건은 회괴하게도 조용하다가 그후 8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2005년 터트리며 그들이 노린 목적은 건강이 좋지않은 자존심 강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하여

미국으로 도피하게 만들어 1999년 수술한 폐암 등이 재발하여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 입원 시키고 뉴욕에서 이윤형 양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에 의해

삼성X파일 사건은 폭로한 사람만 간단히 처벌하고

삼성그룹은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기소도 못하고 삼성 떡 검찰이 사건을 흐지부지 종결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저능아들 처럼 가만히 8년간 삼성x파일을 들고 있다가 8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기소도 못하게 아무 의미 없이 터트렸을까?

유치원생도 짜고치는 고스톱 이란걸


알수 있을 텐데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물론 한국의 거이 모든 지성인들이 삼성공화국 개밥에 길들여져 눈치만 보고 침묵 만 하고 있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승계'문제 등으로 13년간 끌어오던 사건이 2009년도 서울고법에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이건희 회장이 집행유예와 벌금 형을 선고 받고


2009년 년말에 이명박 정권이 이건희 회장을 단독 사면해준 사건은

삼성X파일사건 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집행유예 선고가 나자 이명박이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해주고 노고를 치하 하며 단독 사면 해줬다고 실랄하게 비판한 김용철은 과연 정의의 사도로

삼성을 진짜 생각 해서 삼성을 생각 한다는 책을 썼나 아니면 홍라희 이재용을 생각 해서 책을 썼나 그것이 알고 싶다

다시한번 사건을 정리하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자식들 중에 특히 총애하고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회장 ( 본처인 홍라희) 와 (장남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장녀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 (차녀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 이서현의 남편은 전북 부안이 고향인 동아일보 설립자 친일파 김성수의

손자 김재열 그리고 홍라희의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패거리들과 이것들 개밥 쳐먹는 패거리들이 작당하여 특히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이 갑자기 말도 안되는 유엔 사무총장을 꿈꾼다고 구라 치며 2005년 2월22일 주미대사 부임 했다가 2005년 7월25일 주미대사 공식 사임 주미 대사를 5개월 만에 그만 둔 건 한.미 관계의 중용성을 생각할때 거이 유례가 없는

최단 기간 주미 대사 였다 이례적인 일로 1997년 신라호텔에서 홍석현이 이학수와 삼성 떡값을 여.야를 막론 하고 한국의 권력 실세에게 뿌리는 대화 내용을 고의로 녹음하여 8년후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할수 없는 시점을 택해 2005년7월 한국을 장악한 삼성 공화국에서 삼성 X파일 사건을 계획적으로 터트려 특히 자존심 강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정신없게 만들어 1999년 수술한 폐암이 재발하여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 입원 시키고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등이 공모하여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사건의 전모를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상속세와 삼성전자 경영권 도둑질 작업을 하기위해 암살된 이건희 회장을 저 체온으로 냉동시켜 일원동 삼성병원 20층 특실에 물건 처럼 보관하고 외부인은 금지구역 만들어 접근금지 시키고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방송과 언론에 바다쓰기 보도하게 만들고 쇼를 하며 3년 넘게 속이는 것이다 이윤형은 2005년 초에 미국 뉴욕 대학원 미술 경영학과에 홍라희가 반 강제적으로 유학 보내는게 결정된게 2004년 하반기 정도 됐을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오면 홍라희가 가장 아끼는 리움 미술관을 물려 준다는 명분으로 은근히 소문을 내서 그후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이윤형을 암살한 것을 감추기 위해 특히 그들이 가장 겁을내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해


위해 3가지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꾸민 거라고 판단 되는데


1번으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위장 하려다 불발 되면


2번째- (이윤형이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했다고 삼성에서 공식 발표하여 언론에 보도 되도 이건희가 불신 하면)


3번째(이윤형이 신분상 최상류층과 어울려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어렵자 밑바닥 인생 미끼 놓아 낚시 하듯 낚아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려 이건희 회장 속이기 쉽게 하려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 까지 거금의 당근 작전으로 끌여들어 2002년 이윤형이 암살되기 3년전에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에 아스카 일식당을 맡기고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으니 이윤형 보고 꼭한번 놀러오라고 손님잡고 나는 삼성 비밀조직이 아스카 일식당에 일하러 오게 세팅하여 대략 10 여일 정도 일 하다가 일끝나고 저녁에 숙소에서 주방장하고 말싸움하고 갑자기 그만둔적이 있는데 그때 이윤형과 말한마디 제대로 한적이 없는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쉽다고 판단한 이재용이 누명씌워 그때 부터 이윤형이 나를 못잊는다고 미국 에서 부터 삼성알바 들이 은밀히 조직적으로 거짓소문을 퍼트려 이윤형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다가

암살 하려고 적당한 시기를 치밀하게 고른것 같다

그때 이윤형이가 저녁에 잠시나와 웨이츄레스로 일을 했는데 당시는 그 아가씨가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 딸 일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때 이윤형 과는 거이 대화 조차 나눈적이 없는 나를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교활한 음모로 이러한 만남도 그들의 미리 계획한 세팅에 위한 만남으로 내가 미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밑바닥 인생의 떠돌이 인 것을 알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면 이건희 회장이 나를 정확히 몰라 판단하기 힘들고 찻기 힘들고 말 마추기 좋은 미국에서 떠돌이인 내가 무슨 하늘이 내린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하여 날 전혀 모른던 이건희 회장이 판단할수 없게 만들어 못찻게 해방하여 이건희 회장이 날 찻아 확인하기 전에 날 암살하거나 누명씌워 구속 시키려던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구사일생의 천운으로 물리치고 결국 이건희 회장이 날찻아 확인하여 시간이 지나자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거짓말을 의심하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의 더러운 범죄를 세계 양심에 고발한다 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면 이건희 회장이 날 찻아 확인 하기 힘들고 한국에서 보단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좋다고 판단하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딱이다 생각하고 홍라희 이재용이 나를 히든 카드로 쓰기위해 홍석현이 주미 대사를 하는동안 나의 위치를 파악하자 이미 2004년1월 경에 한국에 입국하여 순천 교도소에 수감중인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기에 더욱 잘됐다고 판단하고 홍석현이 미리 계획한 데로 2005년7월 삼성X파일 사건이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자 홍석현이 삼성X파일을 계획적으로 터트리고는 마치 삼성X파일 사건의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

핑계를 되고 2005년 7월 25일

주미대사 에서 자진 사임 하며 자신도 피해자인 것 처럼 쇼를 한 것은 홍석현이 유일하게 두려워한 인물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한 상상을 초월한 치밀하고 교활한 전략으로 음모를 꾸민 것이다


홍석현 패거리들이 삼성x파일 사건을 계획적으로 터트려 이재용이 미리 세팅한 시나리오로 언론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특히 자존심 강한 이건희 회장을 정신없게 만들고 1999년 수술한 폐암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하여 패암치료를 받던 중에 멀리 떨어져 있던 뉴욕에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삼성x파일 수사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1999년 수술받은 폐암이 재발하여 마침 이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의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를 받는 시기를 골라 히든카드로 숨겨둔 희생양으로 누명씌울 내가 재발로 그들의 텃밭인 전남 순천교도소에 수감중이라 천재-일우(千載一遇) 의 기회로 판단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미국 뉴욕시간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 하고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 대로 이윤형 시체를 처리하고 1번 교통사고로 쉽게 무마 시키려다 안되자


2번째 신수빈과 결혼 문제로 자살로 둔갑 시키려다가 이건희 회장이 신수빈을 알고있어 그럴리 없다고 불신하자


3번째 히든카드로 이건희 회장이 전혀 본적도 생각도 상상도 못하던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홍라희 이재용 개밥 쳐먹는 삼성 알바들이 이건희 회장 에게 말하여 개도 안믿을 말로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마침 교도소에서 격리시켜 이건희가 못 찻게 하기위해 호모로 누명씌우고 누군가 자해하고 살인미수로 죄를 뒤집어씌워 누명씌워 사회와 격리시키며 이건희가 영원히 못찻게 하려 했는데 하느님이 도왔는지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미국 CIA비밀 공작조가 무려 634회 쿠바 혁명을 체게바라와 함께 성공한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으나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처럼 내가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기적적으로 물리치고 출소하여 사회에 나와도 나를 죽이거나 누명 씌워 구속 시키려 했는데 역시 구사일생으로 운좋게 그들의 모함을 모두 물리치고 결국 이건희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하였다


2005년 11월 19일 미국뉴욕시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삼성x파일 수사를 피해 미국에서 도피중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 받을시기 골라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한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 들이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데로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위장 하려다 뜻하지 않게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가 파해쳐 교통사고로 죽인게 아닌것을 확인하고 한국에 기사를 내려 하자 삼성의 압력으로 못내자 대신 뉴욕타임즈에 기사를 줘 보도후 삼성에서 다시 자살로 둔갑 시키고 이윤형이 신수빈 과 결혼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 했다는 거짓말을 삼성그룹이 공식 발표하여 기사가 나가도 이건희가 불신 하자 결국 홍라희 이재용이 직접 이건희에게 말한게 아니고 히든 카드로 남겨든 마지막 작전으로 사전에 꾸민 시나리오 데로 이재용의 사주를 받은 삼성 알바들이 이윤형이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만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떠돌이를 얼굴 한번 보고

3년 이상 못잊다 자살한 것 같다고 조작하여 말을 바꾸며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뒤늣게 이건희 회장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이건희가 가장 아끼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죽인걸 알자 이건희 까지 살해계획을 세운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암살직전 세월호 고의 학살을 하고 나라를 뒤집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조용히 덮는 시나리오를 작성한 교활하고 치밀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 들의 음모를 세계 양심에 밝힌다

(참고자료-삼성 李회장 막내딸 사인을 밝혀라!
황 박사 사건이 터진 2005년 11월, 덕본곳은 하나는 삼성과 또 누구 일까 금금해 지는군요


그 중에서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 타살 의혹 이슈를 덥기위한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이 한통속인 배후가 의심스런 내용을 설명 하자면 길어요

이광재 의원은 불법대선자금 특검, 측근비리 특검, 유전 특검에서 무사히 살아났었는데, 남아있던 한가지 짐이 바로 대선자금 으로 받은 삼성채권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노성일의 폭탄선언이 터짐과 동시에 검찰은 삼성채권 6억원을 받은 이광재 의원에게 공소시효(2000년 5월)가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불가' 처분을 내린 것입니다. '삼성채권' 문제는 삼성이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2000년 10월- 2002년 12월),이건희 회장 개인재산으로 사들인 채권 837억원 중 361억1천만원이 정치권으로 들어갔330p-던 것으로, 이회창 캠프에는 32억 천만원, 노무현 캠프에는21억원, 김종필 후보에게는 15억4천만원이 각각 제공되었던 사건입니다

이중, 이광재의원에게 채권 6억원 어치가 이회창 후보 캠프에는 서정우 변호사에게 24억7천만원의 채권이 전달됐다고 합니다.

X파일사건이 사실상 종결되면서 검찰로부터 무혐의를 받은 이건희,이학수, 홍석현등 삼성 3인방이 더 이상 여론재판의 도마에 오르지 않게 되었고, 대권 관련 삼성채권문제가 일단락되어 현 정권의 짐이 덜게 된 것이 이날의 ‘황교수 사건이 내려준 은덕?’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현 정권이 의도적으로 난국타개를 목적으로 때를 맞추어 사건을 터뜨린 것이 아니냐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황우석 죽이기’와 관련하여 들어난 흔적들은 모두 중앙일보와 메디포스트, 보광창투 등 이건희 회장의 처 홍라희 계열의 홍석조와 홍석현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사건 초기에 무료변론을 내세워 황 교수의 변호인을 자처한 이건행 변호사는, 과거 중앙일보 법률자문위원으로 활약한 중앙일보맨이었으며, 사건 후 미국 이민전문변호사 박 마테오씨에게 황우석 박사의 돈을 가져다 쓰라고 했던 것입니다. 특허 문제를 다루어 우리 네티즌에게 낯익은 미국 모아미디어가 계약당사자 없이 팔려 간곳도 미주 중앙일보였으며, 모아미디아 매각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튼의 특허 문제를 다루던 미국 이민 변호사 인 P변호사(박마테오)에게 돈을 가져다 쓰라고 한곳도 역시 중앙일보이며 딴지 총수 김어준을 꽁꽁 묶어둔 곳도 역시 중앙일보입니다.

삼성과 보광창투-중앙일보-메디포스트에 대해서

메디포스트의 배후 보광창투는 이건희가 아니라 홍석현입니다. 이건희와 홍라희의 둘째딸 이서현의 남편인 김재열은 동아일보회장 김병관의 아들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동아일보가 벙어리 짓했던 진짜 이유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수사기관의 행동은 떡값과 삼성장학생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드러난 연결고리는 모두 이건희 처갓집인데, 만일 삼성이 몸통이 아니라면 떳떳이 밝힐것이지, 왜 그 많은 욕을 먹고 있으며 수많은 삼성비난에도 아무 소리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하고 있었을까요? 이것은 답이 금방 나옵니다 국민들의 눈에는 홍석현도 삼성이고, 홍라희도 삼성이고, 홍석조도 삼성이고 모두 모두가 삼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너무 거대한 탓에, 설사 회사 이익금 모두가 이건희가 아닌 그들의 주머니에만 들어간다 할지라도, 처남들 모두 이건희와 한패거리로 여겨질뿐 구태여 삼성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국민들의 선입관적 인식을 처남매부지간인 이건희가 신문광고를 내가며 부인해 본들 무슨 효과가 있고, 또 설령 그렇게 자신의 결백을 밝혀야할 필요성도 없거니와 서로의 의리만 상할 뿐입니다. 이건희는 돈앞에는 처남매부지간의 의리도 없다는 진실을 이미 처남들의 떡값 배달 사고 시 눈치챘던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삼성과는 실제에 있어서 관계없는 일들을 삼성이 한 것으로 보는 시각, 즉 황우석 지지 시민들이 처음 황 교수 사건이 터졌을 때 미즈메디 병원소속 연구원들을 황 교수 팀원으로 착각했던 전례가 있듯이,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 작은 가지들의 실체가 안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과 줄기세포 사건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고 삼성이 반드시 이사건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건진행과정에서 황 교수와의 공조를 포기당한 삼성은 “특명 2005”의 요청에 의하여 소요경비를 지불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속된말로 울며 겨자 먹기로 분담금을 떠맡았지만 한마디도 불평을 늘어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전에도 조금 밝혔지만, 본격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홍석현, 홍석조씨는 국민들의 이러한 착각을 즐기며 웃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일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던 친딸을 잃게 되는 불행을 입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독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줄기세포 사건이 터지자 두 명의 의문의 죽음이 몰고 온 것은 무엇인가


2005년 11월 20일 전 국정원 2차장 이수일(호남대총장)씨가 광주 사택에서 자살했다고 보도했으며( 이 사건은 이윤형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삼성공화국이 이건희 회장의 판단력을 흐리려고 계획한 전형적인 홍라희 이재용 교활한 스타일이다 )

2005년 11월 21일경 외신 기사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셋째딸 이윤형양의 죽음을 놓고, 삼성그룹측과 언론은 22일경 처음 교통사고다 라고 발표했다가
26일경 외신뉴욕타임즈 가 (미주 한국일보 기자의 노력으로)이 뉴욕 이양의 아파트에서 18일경 자살한 것으로 보도하자,


한국의 언론들도 자살로 보도만 하고 말아 의혹만 더욱 증폭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었습니다. 어느 언론도 이 중대한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황우석 박사와 연관 지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미국, 특히 어떤 강력한 조직(진실규명 지지자들은 '프리메이슨' 지목)이 무서워 보도하지 않고 있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은 프리메이슨 삼변화 소속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이재용도 프리메이슨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애플하고 소송전에도 일부 승소하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막내딸이 외부에
의해 살해 됐다면 절대 가만 있을리가 없죠
그것은 외부가 아니라 삼성일가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확실하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가만히 있었던 겁니다
이건희 가 텍사스에서 폐암 치료 받을때 당시 뉴욕현지있던 이재용이 배다른 막내여동생 이윤형이 죽자마자
다음날 가족아무도 오지않은 상태에서 타살흔적 없애려 화장 처리되고
죽은지 3일만에 외부조문 금지하고

이건희 회장에겐 병세악화를 핑계로 알리지도 않고

극비로 장례를 간단하게 치르고 난후


뉴욕경찰과 현지 의료진까지 삼성에서 지원하여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구라쳐 전세계 보도된후 뉴욕 한국일보 지사 신용일 기자가
이윤형 시체를 마치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처럼 처리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언론에 흘린 정황이 들어난다고


선대이저널지에 보도된적도 있는데 신용일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이윤형이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란걸 확인하고 한국에 기사를 내려하자 삼성에서 방해하여
못내고 대신 소스를 뉴욕타임즈에 줘 보도후 삼성에서 부랴부랴 청부살해 의혹을 다시 자살로 둔갑시킨 사건을
삼성오너들이 진실을 감추려 모든조직을 이용하여 속이는 정황증거라고 합리적인 추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

MBC PD수첩이 황 교수팀의 문제점을 보도한 것은 단순한 생명윤리문제나 논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한달 넘게 이슈화하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선 점, 과학,언론,종교,의료 전문가들이 연일 의혹을 증폭시키며 이슈화 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두 사건(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두 당시 여러 복합적인 관련 문제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수일씨 문제는 간단히 언급하자면,"국정원 도청사건(X파일) 잠재우기"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1,800여명의 도청한 사건은 중차대한 문제로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 2명이 검찰에 구속된 상태에서 갑자기 20일에 전 국정원 2차장 이수일(전 호남대총장)의 자살사건이 발생하였고, 검찰의 도청사건 수사는 위축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 되는등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가 될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생명윤리의 줄기세포 문제가 MBC에 의해 한달간 정도나 집중 방영되었던 것입니다.
그덕에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의 청부살해 의혹도 덮어지게 되죠

더구나 대한민국 최고의 갑부 이건희의 친 딸이 미국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고?’인데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니 이 회장 조차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눈감게 한 이유? 없는 의문의 ‘자살사건’이 3동시에 터졌습니다.

(삼성은 국정원 X파일 문제와 불법상속 편법 증여문제와 김대중 정권시절 대북문제등)

이것은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하기위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의 삼성공화국 비밀조직이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삼성X파일 사건은 1997년 신라호텔에서 홍석현이 이학수와 고의로 녹음하여 8년이지나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이 기소할수 없는 2005년 7월을 선택하여 고의로

터트려 이건희 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정신없게 만들고 이윤형을 암살하기 위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의 더러운 음모극 이다


떡치는 영상도 없는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조작극을 치밀하게 만든 이재용이 불리할때나 이건희 장례식 치르기전에 이건희 깍아내리고

예방접종 맞고 이건희 사망진실 발표하려 고의로 흘린정황은 범인들이 돈이 목적이면 이건희가 살아있을때 터트렸을 것이다

동영상을 마지막으로 찍은게 2013년 6월3일인데

이건희가 암살당한게 2014년5월10일이다 11개월 이상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조용하다 이건희가 암살된지 2년2개월이 지나서 터진것과

삼성X파일을 녹음한 범인이 8년이지나 공소시효가지나 터트린건 모두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자작극이란 결정적인 증거이다

돈을 목적으로 했다면 당사자가 살아있을때 또는 공소시효가 살아있을때 터트려야 효과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의 자작극이란 결정적인 증거다


당시 그룹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수세에 몰리자, 그룹 총수가 미국으로 나가 있던 상황에서 친딸을 잃었습니다. 막내딸 이양을 애지중지 하며 제일 정을 많이 주었다는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2003년 이양이 국내 스키장에서 다른 사람과 부딛혀 머리를 다치자 스키장에서 헬멧을 안쓰면 스키를 못타게 할 정도로 이양의 안전과 사랑에 대해서는 넘쳐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필자와 알고 있는 미국 지인이 현지를 답사하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윤형씨의 옛 남자 친구인 신수빈 군과 인터뷰하여 보내 준것을 편집 수정 재 정리 했음을 밝힙니다.

이 사건과 관련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2005년11월21일 삼성그룹 비서실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셋째딸 이윤형양(26세)이 날짜 미상인 상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 했다”고 발표 했었습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지 보도 후 5일이 지난 뒤 11월26일 NYT지는 “이양의 사망원인은 알려진 바와 같이 교통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살이었다”라고 보도합니다.

NYT지의 이러한 정정보도는 현지 미주 한국일보 기자의 끈질긴 추적끝에 확인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막내 딸인 이양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스물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그 짧은 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어떤 소식도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신문보도와 주변정황등을 살펴볼 때 이양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살인행위였다는 심증을 사건당시부터 가지고 있었던 네티즌들이 많은 걸로 판단됩니다.

더 타임스,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신문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막내딸인 이윤형(26)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신문은 "윤형씨는 인터넷 홈페이지 `이뿌니 윤형이네'(Pretty Yoon Hyung)에서 유감없이 매력과 자신감을 드러냈으나 냉혹한 삶의 현실 속에서 꽃다운 나이에 뉴욕의 아파트에서 전깃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몇 가지 이유와 증거들에 관해 검토한 후, 이 사건과 ‘황우석 죽이기’와의 연관성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양의 사건에서 가장 큰 의문점이며 자살이 아니었다는 증거로는, 바로 스스로가 죽음을 택했다는 ‘유서’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유서는 소위 ‘자살증명서’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가고 있고 또 끊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 ‘자살인’들의 몇%정도나 자신의 자살을 증명할 유서를 남기고 떠나는 지에관한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자살인들이 반드시 유서를 남겨야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삼성가 막내 딸 이윤형양의 경우는 거꾸로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서’를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의혹에 관해서 쉽게 설명하자면, ☞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었다면 유서를 남길 수 없었을 것

☞ 이양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공부를 위해 미국유학 중이었던 것
☞ 이양은 매일 가족들에 전화하고 특히 조카들을 아주 귀여워 했으며, 여느 학생처럼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죽음 직전까지 블로그에 조카 사진을 올려 놓고 기뻐했다고 함. 그녀의 성격은 온건하며 합리적이고 사리를 따르는 조심스런 여성의 한사람이었음은 그녀의 블로그에서 나타나고 있음)

☞ 대학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따돌림도 당하지 않았고 영어도 잘하고 학업성적도 좋은 학생이었던 것
☞ 그가 죽음의 이유로 유서를 남겨야 했지만 죽어야 할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것
☞ 이건희 회장은 3남매 중 막내인 이양을 특히 귀여워 했고 이양은 누구보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다는 것(이양이 자살하려했다면 최소한 자기 아버지인 이회장에게는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한번이라도 전했을 것)
☞ 이양은 마약이나 흥분제 복용 사실이 없었으며 자살 검시의견에도 거론된바 없음
☞ 자살 이유로서 삼성비서실이 밝힌 사실은 교통사고-자살 등 횡설수설 한점 등입니다.

여기서 삼성비서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의혹은,
1. 교통사고설은 자살 이유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한 것인가?
2. 정말 교통사고를 당한것으로 믿고 있는 것인가?
3. 이유를 밝힐 수 없는 중대한(재벌 간 아니면 국가 간) 사유가 있는 것인가?

자, 사고가 발생한지 며칠이 지난 후 기자들의 추궁을 받고 마지못해 교통사고라고 밝힌 것이니 삼성비서실이 의도적으로 거짓정보를 흘린 것만은 틀림 없을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 사항 중 삼성이 밝힐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해당된다면, 자살 이유에 대하여 세간에서는 신수빈(이양친구)군과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했다는 결혼 비관 자살설, 마약중독설, 우울증설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저간의 사정과, 이양을 아는 친구들의 증언을 참작하면 마약 중독설이나 우울증설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결혼비관 자살설’에 대하서는 신수빈군의 확실한 증언이 없어 그 깊은 사정을 알 수 없지만, 학교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양이 지금 당장 결혼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간적으로 보아 학교졸업 후에 결혼문제를 거론해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며, 이에 관한 부모자식 간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바 없습니다. 이양의 성격은 활발하면서도 다소 내성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인생의 고민을 눈앞에 두고 혼자서 고민하며 자신의 목숨을 ‘사랑’에 바칠 만큼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아님은 그녀의 사후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로 보아 결혼비관설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도 이양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느 정도 이해 하겠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살할 아무런 근거나 명분이 없음을 알 수 있으며, 자살하기 전 유서가 없는 점은 더욱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양이 언제 죽었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삼성 비서실의 발표는 11월21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만 보도했을 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사고가 일어났었는지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밝힌바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전인 11월18일부터 19일 사이입니다. 이양 남자 친구 신수빈군이 2005년11월19일 밤 3시에 이양의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11월19일 새벽3시 이후부터는 이양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이양이 언제 죽어있었는가에 대한 정답은 아닙니다. 신군이 이양을 마지막 만나본지 며칠만인지, 또는 얼마동안 이양의 시체가 그곳에 놓여있었는지 정확한 사망시간마저 비밀에 가려져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유일한 사실은 이양이 자신의 집안에서 죽어있었다는 것과 그 시간이 11월19일 새벽 3시 이전이었다는 것뿐인데 목에 눌린 흔적이 있었다는 검시관의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도 의사의 사망진단 내용도 모두 비밀입니다.

☞11월18일은 미국시간으로 금요일 밤입니다. 이양의 아파트는 맨하탄 남단에 위치한 뉴욕대학에 가까운 그린위치타운에 위치합니다. 이양의 주변지역은 유명한 그린위치타운으로서 밤에도 환한가로등과 주변상점들의 불빛이밝은 상가 겸 주거지역이며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리, 길거리에 연접한 미국식입니다 .

☞ 신군이 이양의 아파트를 방문한 시간이 19일 밤3시인데 왜 그 늦은 밤에 그것도 이양과 이별한 옛 남자 친구가 이양의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 밤늦은 새벽에 이양 집에 오지 않았던 신군이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즉 누군가 신군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래도 신군은 옛 여자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하여 신고 했을 것이며, 이후 누군가로부터 지시와 회유,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묵비권으로 돌아서지 않았을까요?

11월19일 이면 뉴욕도 역시 늦은 가을에 속하는데, 신군이 누군가로부터의 전화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구태여 그 늦은 밤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으리라 판단합니다. 만일 이양이 자살하기 전 자신의 친구였다고 삼성에서 밝힌 신군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려했었다면, 신군이 분명 전화를 받는 즉시 이양의 아파트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위 지도에서 보는것처럼 맨하탄 뉴욕대학 주변은 반경 2마일 내 입니다. 차로 달려오면 불과5분, 늦어야15분 거리입니다. 더군다나 그 늦은 시간에는 차가 막히는 교통체증도 없습니다. 이양의 목숨을 건지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양이 보내온 전화가 아니라면, 제3자, 즉 그 누군가로 부터의 연락을 것이며 사건현장을 위장한 후 빠져나가면서 자살신고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 확실 합니다.

만일 이양이 죽은 지 며칠이지나 신군이 아닌, 아파트관리자가 발견했다면 일은 다른 방향, 즉 사건의 윤각이 잡혔을 것입니다. 신고를 하게 되면, 또 언론사가 알게 되어 있고 911구급차대신 기자가 먼저 달려오게 되면 일은 복잡해 집니다. 속전속결을 위해서는 이런위급상황에 경험이 없는 신군 같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범인들이 원하는 범죄 기본원칙입니다.

☞ 정리해 봅시다. 이양의 죽음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죽지않았다면, 이양이 취한행동을 이해하거나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양의 죽음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미국의 생활습관은 어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911번을 눌러 호출 한다는데 있습니다. 화재여부를 불문하고 교통사고이던 강도사건이건 모두 지역경찰을 부르지 않고 911번을 부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신군도 역시 911번을 눌러 호출했을 것이고 앰블런스는 가까운 병원에 이송합니다
맨하탄 MIDTOWN이나 LOWTOWN지역에는 여러 개인병원들이 있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지역내 가장 가까운 큰 병원 NYUMEDICAL CENTER로 가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지역 경찰에 신고 하게 되어 있고, 만일 이양이 병원으로 옮기기 전 이미 죽어있었다면 경찰관이 아파트에 엠블런스와 함께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경찰관은 당연히 사자의 시체를 확인하고 죽었을 경우에는, 지역내 검시관(의사)과 감식반이 올 때까지 현장보존을 해야 합니다. 자살했다면 자살한 장소에 대한 사진촬영은 필수이며 목격자의 증언과 경비원의 진술 ,신수빈군의 증언 등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이런것을 명확히 가리기전에 이양의 시체는 죽은 다음날 가족과 똑똑한 삼성직원이 뉴욕에 많은데도 아무도 도착하기 전에 화장 처리되었기 떄문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러한 것을 애플과 소송전에도 일부 승소한 막강한 삼성에서 이의제기를 하지않고
죽은지 3일만에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마치고 난후 기자들에게
영국의 더가디언지의 보도에 의하면 삼성에 의해 지원된 뉴욕경찰과 의료진의 말을 빌어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 해명을 한부분 입니다


죽은 이양의 부모가 미국 현지에 있었고 사망이후 현지 삼성직원들이 현장과 병원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이양의 시체는 부모의 동의나 친지의 의견 수렴도 없이, 다시는 시체를 검시 할 수도 죽은 원인을 밝힐수도없게 죽은 다음날 화장처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가족들은 월요일 아침 시체가 아닌 한줌의 재를 앞에 두고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점이 이 사건에 있어서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급성 전염병환자가 아닌 이상 19일날 새벽3시에 시체를 발견한 후 병원으로 옮긴 즉시 화장 처리를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오직 한 가지 이유가있다면 이양의 죽은 이유를 감추기 위한 것뿐입니다.

미국의 법 규정은 화장시 반드시 친지나 부모의 동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요구가 있어야 하며, 필요한 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관에 넣어 매장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경우 화장보다는 매장하는 것이 미국인의 관습입니다. 이는 화장하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는 것이니 이양의 경우는 그 죽은 원인과 결과를 놓고 볼 때 상식적이 아닌 비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화장처리된 것이 분명합니다.

신군이 도착하였을 당시 이양이 살아있었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보지만, 그당시 어떤 상태로 죽어 있었는지만 말해주어도 자살 또는 타살여부가 밝혀질텐데 신군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필자와 아는 지인이 현지답사를 하였고, 또한 신군을 만나 확인한 사실이며, 미국아파트 구조를 알고 미국생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답변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삼성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 해명은 거짓말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의 사망원인이 교통사고가 아닌 자살로 뒤늦게 삼성에서 밝혀 방송과 언론에서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26일 "지난 19일 새벽 뉴욕시 맨해튼에 소재한 윤형씨의 아파트에서 그가 출입문에 고정된 전깃줄에 목을 매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남자친구 신모씨였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자살을 교통사고로 둔갑시킨 것에 대해 삼성측은 세가지 해명을 하고 있다.
첫째는 삼성그룹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사건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살'을 '교통사고'로 둔갑시킨 것은 자신들이 아닌 언론이었으며, 뒤늦게 이를 바로잡고자 하였지만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속수무책이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망원인을 바로잡음으로써 또다시 논란을 재점화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고인에 대한 도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해명은 모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故이윤형씨는 지난 2003년 재계 여성 부호 3위에 랭크될 만큼 막대한 삼성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순환 출자구조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 20만9천1천29주와 삼성네트웍스 2백92만1천9백5주, 삼성 SDS 2백57만2백60주 등 삼성계열사 지분을 보유, 대략 장내외 기준으로 봤을 때 엄청난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씨의 뒤를 잇는 막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째서 삼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눈 가리고 아옹'식 논리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자살'을 '교통사고'로 둔갑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언론으로 돌리는 것 역시 매우 비열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윤형씨 사망 소식'을 언론들이 처음 접하고 취재경쟁을 벌일 당시에 수많은 언론사들은 삼성그룹을 향해 세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냐를 놓고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즉, 자살-타살-사고 중 어느 쪽이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사고'라고 이야기하면서 '교통사고설'에 대해 "지금 나오고 있는 이야기 외에 더 특별한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심지어는 일부 언론이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라고 보도하려 하자 이에 대해 치밀하고 강력하게 대응하여 그 확산을 막은 정황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고도 '이미 손 쓸 수가 없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국민과 언론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참고자료- 인터넷에 이윤형 사건을 잘안다는 p 마테오란 변호사라는 사람이 올린글을 인용합니다 -)


(참고자료-


ⓒ시사IN 안희태


대법원에 계류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에버랜드 사건은 증인과 증언이 ‘통째로’ 조작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에버랜드는 놀이공원일 뿐이지만,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는 그저 그런 계열사가 아니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성격을 띤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절대 놓칠 수 없는 회사다. 놀이공원 운영이 주요 사업인 이 회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제조기업(삼성전자)과 한국 최대 보험회사(삼성생명)를 거느리게 된 비결은 한국 재벌 특유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 있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삼성에버랜드이다.
그러니 김용철 변호사의 조작 증언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심장부에 메스를 들이댄 것과 같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들이 천문학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검찰 등 법조계와 재경부·국세청·금감위 등 경제부처 관료, 정치권에 뇌물을 주며 관련 법과 제도를 유리하게 고치려 했던 목적도 다름 아닌 지배 체제 유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 변호사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 회사법 논리와 무관한, 지분 비율과도 상관없는 불합리하고도 이상한 권력(지배) 체제를 만들어서 그것을 영속하려는 욕심에서 영향력 있는 관련 국가기관을 마비시킨’ 사건이다. 결국 에버랜드 건은 모든 삼성 문제의 이른바 ‘몸통’인 셈이다.

11월6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팀장(사장) 등을 8가지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크게 지배권 불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을 통한 불법 로비 두 부분이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이후 삼성그룹에 입사한 김용철은 2003년 12월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기소하기 전후로, 사건을 주도한 피고발인(이건희·이학수·김인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무팀 관재 파트에서 마련한 조작된 시나리오에 따라 법무팀 소속 변호사를 동원하여 사건의 실체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검찰 조사에 대비한 모의연습을 시켰다. 삼성그룹 본관 옆 태평로빌딩 26층과 27층의 보안이 잘 되는 사무실에서 거짓 진술을 하도록 교육했다.’ 김 변호사는 11월7일과 8일 <시사IN>과 만나서 이같은 내용을 재확인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에버랜드 사건은 이렇다. 1996년 12월3일 에버랜드의 주인이 돌연 바뀐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지배권이 바뀌는 엄청난 일을 전문 경영인인 당시 허태학 사장과 박노빈 상무가 ‘주인의 허락 없이’ 저지른다. 1996년 10월30일, 두 사람은 이사회를 열어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다. 그런데 당시 에버랜드의 주주 26명 중 제일제당(현 CJ)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주주들이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배정된 전환사채(전환사채 발행총액의 약 97%)를 모두 실권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진다. 두 사람은 1996년 12월3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실권된 전환사채 전부를 이 회장의 네 자녀, 이재용·이부진·이서현·이윤형에게 배정한다. 전환 가격은 7700원(검찰은 당시 거래된 가격 가운데 가장 낮은 1주당 8만5000원으로 평가했다).

ⓒ시사IN 안희태
최근 에버랜드 사건의 증인과 증언이 통째로 조작되었다고 폭로한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두 사람이 전환사채 발행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전환사채 발행 이사회, 열리지도 않았다”

이 가운데 재판 과정에서 달라진 것은 이사회가 열렸으나 17명 이사 가운데 8명이 참석해 정족수 미달로 무효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다른 주장을 편다. “아예 이사회가 열리지도 않았다. 나중에 서류를 다 만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에는 삼성전자 같은 상장회사도 기록은 있지만, 실제로 (이사회가) 열린 적은 거의 없다. 얼마 전 후배 변호사에게 에버랜드 이사회 의사록에 혹시 ‘이사진’이라는 도장 안 찍었느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 이사 모두를 이사진 도장 하나로 찍었다는 것이다. 에버랜드 법인주주들은 아예 발행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포기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일을 구조본이 했다. 이사회 개최도 그렇고, 전환사채 대금 납입도 그렇고, 모든 일이 한두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에서 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재판 등에서 드러난 기록으로도 에버랜드 이사회는 청약 만기일인 12월3일이 다 지나가지 않은 오후 4시에 서둘러 이사회를 열어 실권 전환사채를 이재용 등 이 회장 자녀에게 배정했고, 이 회장 자녀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시간 후인 오후 5시에 인수대금 96억6181만원을 은행에 납부했다. 전광석화처럼 해치운 것이다.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행동도 재빨랐다. 이 전무는 청약 다음날인 12월4일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고 세 딸은 17일 전환했다. 이 결과 이 회장 자녀들이 단박에 확보한 지분은 64.7%에버랜드를 송두리째 수중에 넣은 것이다. 이것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대물림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60여 계열사 가운데 왜 하필 에버랜드를 찍었을까. 1996년 당시 에버랜드는 자산총액이 8387억원이지만, 자본금은 35억3600만원에 불과해 지배 지분을 확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가급적 적은 돈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통째로 이 전무에게로 대물림하려는 계획이 성안된 것은 적어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 경영인이 ‘그룹 주인’을 바꾸었다고?

에버랜드가 현재의 위상을 갖도록 갑작스러운 지분 변동이 일어난 시점은 1998년 말이다. 이 회장과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전·현직 임원들에게 위장 분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사들인 것이다. 이 거래로 이 회장 지분율은 10.00%에서 26.00%로, 에버랜드는 2.25%에서 20.67%로 크게 늘어난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주요 상장·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사실상 지주회사이자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검찰은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03년 12월1일 이 건을 법정에 세우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에버랜드 사장과 상무만을 불구속 기소한, 분리 기소였다. 즉각 ‘기소자 명단에 왜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김인주 사장 같은 구조본 핵심 인사가 빠졌느냐’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룹 차원의 조직적 공모가 아니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과정 자체가 그렇다. 전문 경영인이 그룹 주인을 함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데다, 이 회장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제일제당(이재현 회장) 외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실권했으며, 실권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 전무는 인수 대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 딸의 경우는 실권 청약이 이루어지던 날 당시 에버랜드의 이사이자 13.16% 지분을 가졌던 이 회장이 48억원을 증여해 이 돈으로 인수를 한다(각각 10.46%). 이 회장은 자신에게 배정된 전환사채(13억원 상당) 인수를 포기해 지분이 4.65%로 내려앉는다.

이런 일련의 일이 이 회장의 지시나 승인 또는 그룹 전체 차원의 기획 없이 가능한 일이냐는 의문을 품게 하는 사례는 많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결의를 하기 나흘 전인 1996년 10월26일 중앙일보에서도 에버랜드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30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웬일인지 1대 주주인 이 회장(26.44%)을 비롯해 제일제당을 뺀 모든 중앙일보 주주들이 실권한 것이다. 이 물량은 홍석현 사장에게 돌아갔고 그의 지분은 단박에 0.58%에서 21.51% 로 치솟아 1대 주주로 떠오른다. 결국 홍 사장이 경영한 중앙일보는 에버랜드의 1대 주주(48.24%) 자리를, 이 회장은 중앙일보 1대 주주 자리를 포기함으로써 매부·처남이 에버랜드와 중앙일보의 지배권을 맞교환한 셈이다.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에 대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증여 사건을 다룬 1, 2심 재판부는 판단을 유보했다. 증거가 불충분해 판단하지 않았다는데, 김 변호사 주장이 사실이라면 많은 의문이 풀린다. 김 변호사는 검찰 기소가 임박하면서 구조본 안에서는 “쇠고랑 찰 일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왔다고 한다. 법무팀장으로서 조작 작업을 지휘한 그는 기소 자체가 안 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기소를 피할 수 없다면 이 회장과 구조본 인사들이 다치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털어놓았다. 허태학 사장이 거세게 저항했다는 사실도 귀띔했다. “외아들인데 꼭 징역 가야 하느냐, 법정에 서야 하느냐”라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삼성과 관련한 재판이어서 그랬는지 에버랜드 사건은 진기록을 양산했다. 1996년 전환사채 발행이 이루어진 지 10년6개월 만에, 법학교수 43명이 고발한 지 7년 만에, 검찰이 2003년 12월1일 공소시효를 불과 하루 앞두고 두 임원만을 부분 기소한 지 3년6개월 만에 2심 판결이 내려졌다. 기소 이후 주임 검사가 열한 번, 부장 검사가 아홉 번 교체되었다.

진실 규명해도 ‘대물림 경영권’ 유지될 듯

이런 검찰의 ‘폭탄 돌리기’ 양상은 재판부에서도 재연되었다. 1심에서 2005년 2월 선고 예정이었던 당시 재판부는 15차례나 공판을 거쳤음에도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변론을 재개했고, 이후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2005년 10월이 되어서야 선고가 이루어졌다. 2심에서도 담당 판사가 세 차례 교체되었고, 올해 1월 예정되었던 선고 기일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 차례 연기되다가 올 5월에야 선고가 내려졌다.

대검찰청에 특별수사팀을 꾸려달라는 고발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검찰 수뇌부는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검찰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수사할지 지켜볼 일이지만, 진실이 규명되더라도 대물림한 경영권이 되돌려질 공산은 크지 않다. 이 회장과 이학수·김인주 등 전략기획실 핵심 인사들을 기소하는 것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설령 치밀한 각본에 따라 조작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자체가 무효로 판명 나야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사 상황과 법적 다툼과는 별개로 이 회장에게는 또 다른 난제가 있다. ‘가신 그룹이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인 삼성을 망치고 있다’는 비난이 임계점에 달한 것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후계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금산 분리’라는 법률 위험을 제거할 이학수·김인주라는 지배구조 ‘기획자’가 필요하지만, 이들을 부둥켜 안고 갈수록 이 회장은 한국 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의 안전핀이 뽑힌 상황에서 이 회장은 가신 그룹을 척결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


위의 기사내용도 그렇지만 당시 다른 기사 내용을 보면 이재용에게 물려줬다는 액수가 많은 차이가 기사내용에 나타난다 그래서 기자 마음대로 쓴 기사 내용을 100%로 신용하면 안된다

은근히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에게 거이다 물려준것 처럼 허위 조작하여 기사를 흘린건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이재용 뿐 아니라 세 딸들 이부진 이서현 그리고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에게도 에버랜드전환사채를 물려줬는데 말이다


결국 조준웅 검사가 특검 했는데 2009년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아 사건은 끝난다

그런데 사건이 끝나는 시점에서 조준웅 특검 아들이 중국의 삼성그룹 법인 회사에 과장급으로 특채 되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를 이재용에게 좀 더 많이 준 것은 사실이나 세딸 이부진 이서현 특히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에게도 많이 줬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은폐하고 이재용만 부각 시킨 공로가 김용철에게 있다

이재용 에게만 준게 아니다 김용철의 공로는 마치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삼성전자를 완전히 물려준것 처럼

세상이 인식 하게 만들어 국민들과 세상이 삼성가의 상속싸움으로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란 진실을 알수 없게 물을 흐려놓은 결과만 초래했다

특히 중요한것은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이건희 회장이 의심할 시간이 없게

정신없게 밀어 부친 공로가 김용철 에게 있다 그러니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 제목을 홍라희 이재용을 생각한다라고 책 제목을 바꿔야 할것 같다

김용철은 부장검사를 그만두고 삼성 법무팀에 특채되어 법무팀장까지 한 인물이다

삼성과 특별한 원한 관계도 없다

김용철은 부장검사 출신으로 삼성과 검찰의 대규모 커넥션을 잘알거라 사료된다

물론 본인이 모른다고 말하면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알만한 사람이 새삼스럽게 삼성에 들어가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이 있은후

갑자시 튀어나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6개월 간 숨어서

무슨 성인군자처럼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썼는데 주구장창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을 후계자로 삼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했다며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에버랜드 사건은 증인과 증언이 ‘통째로’ 조작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건희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전부 장남 이재용에게 물려줘서 후계자로 완전히 삼은줄 알게 잘못 인식하게 만들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이재용 뿐 아니라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에게 나누어 주었다 물론 이재용이 좀더 받은건 사실이지만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재용에게

완전히 승계한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상 경쟁 체제에 불과 했다 그러한 사실이 김용철이 설치는바람에 덮어졌다

홍라희 이재용이 시켜서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는 밝견하기는

하늘의 별다기 처럼 정말 어렵다 뭔가 이상한 건 분명하다

세상에 이상한것은 많지만 그게 왜이상한지 확실히 알수 있는것은 5% 안될것이다


1996년 12월3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실권된 전환사채 전부를 이 회장의 네 자녀, 이재용·이부진·이서현·이윤형에게 배정한다. 전환 가격은 7700원(검찰은 당시 거래된 가격 가운데 가장 낮은 1주당 8만5000원으로 평가했다).
물론 이재용이 좀더 많이 받은건 사실이지만 세딸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도 받았다
특히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한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은 많은 상속으로 2003년 이부진 이서현을 재치고 한국여성부호 3위에 오르며 당시 e삼성 실패로 사면초가에 빠진 이재용을 바짝 추적하자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알고 경영권 승계를 중지하자 20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당시 삼성전자 지분이 0,5% 미만이라 삼성전자 경영권을 행사할수 없어 이건희를 냉동시키고 20014년 7월 에버랜드를 제일모직으로 바꾸고 작업에 들어 간 것이다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합병으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4,1%를 받아 삼성전자 경영권 승계를 한후 이건희 계열사 부동산 팔아 삼성전자 지분 더욱 늘린후
대우조선 해양이 분식회계및 매출 늘려 조작하여 5조원 대출받아 경영진이 보너스 잔치 하다 걸렸는데 반대로 이재용은 매출 줄여 주가 내려 지분 늘린후 다시 주가를 원상태로 올린 이재용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을 주주들이 안시켜 줄까봐 운명을 걸었던 이재용

(참고자료 위키백과 - 삼성 X파일 사건은 2005년 7월,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내용을 담은 90여분짜리 테이프를 입수하여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의 관계를 폭로한 사건이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의 이학수 부회장에게 신라호텔에서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1], 이 사건을 통해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민정부를 자청했던 김영삼정부의 불법 도청 사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해진 광범위한 불법 도청 문제, 사건 수사 기관 선정 및 수사 방법, 삼성그룹에 대한 소극적 수사, 국민의 알권리 충족 문제, 언론의 보도 경향, 재판의 공정성 등이 도마에 올랐다)

언론 보도 과정[편집]

방송국 내부사정으로 이 사건에 대한 취재가 중단되었다가 이상호 기자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남긴 <기자의 아내>라는 글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된 2005년 2월경부터 언론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MBC는 도청자료의 출처가 명확해지고 안기부가 도청을 하여 작성하였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보도가 불가능 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던 중 인터넷 언론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2005년 6월 8일 ‘MBC와 이상호 기자는 침묵을 깰 때’라는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x파일’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그 후 7월 21일 조선일보 및 KBS가 안기부 도청실태와 X파일의 대강의 내용을 보도하자 MBC도 내부적으로 이를 보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학수와 홍석현은 문화방송을 상대로 테이프 관련 내용을 일체 보도하지 말 것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가처분결정을 내렸다. MBC는 당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모 중앙일간지 사주와 대기업의 고위관계자라는 내용의 뉴스를 보도 하였다. 그 후 다른 언론기관이 가처분결정에서 거론 되지 않은 녹취보고서 3장을 토대로 실명을 직접 거론하는 보도를 하게 되자 MBC는 다음날인 2005년 7월 22일부터 27일까지 X파일의 내용을 보다 상세히 보도하게 되었다.

사건의 전개[편집]

미림팀의 활동과 불법도청(1992년 ~ 1998년)[편집]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1967년 중앙정보부 9급 공채를 통해 중앙정보부 요원이 된 공운영은 1992년, 안기부 대공정책실 정보관에서 비밀도청을 전담하는 미림팀장에 발탁된다.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은 김덕을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임명하며, 김덕은 취임 직후 불법도청팀 미림팀을 해체한다. 그러나 1994년 2월, 오정소가 대공정책실장에 부임하며 미림팀은 다시금 부활하게 된다. 대한민국 내외 주요인물에 대한 도청을 전담했던 미림팀은 서기관 1명, 사무관 1명, 주사 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조직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인 1998년 2월까지 운영되었다. 이미 한번 팀의 해체를 경험한 공운영은 미림팀장으로 재직 중 퇴직 후를 대비하여 불법도청으로 취득한 도청 테이프를 밀반출 보관하였으며, 이 도청테이프의 숫자는 퇴직 직후 200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후 1995년 3월, 미림팀을 부활시킨 주역이며 안기부 대공정책실장이었던 오정소는 정형근의 뒤를 이어 안기부 제1차장으로 승진한다.

1997년 안기부 미림팀은 대선자금과 관련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의 대화내용을 3차례에 걸쳐 도청하게 된다. 서울 S호텔에서 이루어진 미팅의 일자와 대화내용은 1997년 4월 7일,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들에 관한 지원방안에 관한 대화이며, 같은 해 9월 9일과 10월 17일에는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자금지원방안이었다.

1998년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미림팀은 다시금 해체되고 공운영은 국정원에서 면직(免職)당하게 된다. 이에 동료 임모를 통해 소개받은 재미교포 박인회에게 문제의 도청테이프를 전달한다.(전달한 동기에 대해서는 당사자간 의견이 갈린다) 1999년 재미교포 박인회는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삼성 관계자들을 수차례 만나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였으며, 김대중 정권의 실세였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도 녹취록을 전달한다.[4]삼성은 박인회의 거액의 금품 제의를 모두 거절하였다. 삼성의 제보를 받은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 감찰실에 X파일 회수를 지시하기도 하였다.[4]

도청테이프의 입수와 폭로(2004년 ~ 2005년)[편집]

x파일로 인하여 아무런 이득을 취할 수 없음을 인지한 박인회는 2004년 10월, 이상호 MBC 기자에게 X파일의 실체를 제보한다. 이들의 만남은 2004년 12월 말에서 2005년 1월 초 이상호 기자가 미국에 취재출장을 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결국 이상호 기자는 미국출장 중 박인회와 접촉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안기부 도청테이프 원본을 입수한다.

이에 즈음하여 2005년 1월 12일 양문석 EBS정책위원은 ‘이상호기자 미국취재출장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칼럼을 경향신문에 기고하였다[5]. 이 글에서 필자는 이상호 기자가 취재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취재내용에 대해서 MBC가 이 사안의 취재 및 보도권을 보장해줄 것을 주장하였다. 2005년 1월 13일 이상호기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출장이 정언유착에 관한 내용임을 언급하였고, MBC는 특별취재팀을 가동하여 보충취재에 나선다. 이때부터 ‘이상호 기자가 수구언론의 결정적인 비리를 포착했다’, ‘이상호 기자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취재했다’는 소문이 언론가에 돌기 시작한다. 2005년 6월 8일, 양문석 EBS정책위원은 다시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MBC와 이상호, 이제는 말할 때’라는 칼럼을 기고한다. 2005년 6월 16일 MBC 보도국 간부회의는 삼성 X파일 보도를 불허한다. 법률 자문 결과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어 보도가 불가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결정에 반대하는 MBC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강성주 당시 보도국장에게 보도불가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였고 MBC기자회에서도 다음날 보도국장에게 구두로 항의하였다. 한편 일부 기자들을 통하여 이 사건의 존재가 새어나가 2005년 7월 21일, 조선일보는 안기부의 극비조직이었던 ‘미림팀’의 존재에 관하여 먼저 보도한다.[6] 이를 의식한 MBC는 마침내 7월 22일, MBC뉴스데스크에서 삼성 X파일을 집중보도한다. 보도의 내용은 삼성그룹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통해 97년 대선에서 약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전ㆍ현직 검사들에게 수천에서 수억에 달하는 뇌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X파일의 폭로 이후(2005년 ~ )[편집]

MBC뉴스데스크의 폭로는 방송 즉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다음날인 7월 23일, 여권과 시민단체에 의해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의 자진사퇴론이 급부상하였다. 7월 24일에는 전 미림팀장이며 사건의 당사자 중 한명인 공운영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는 논지의 주장을 하여 파문을 증폭시켰다. 같은 날 MBC뉴스데스크에서는 1997년 삼성그룹이 기아자동차 인수를 시도하며 기아자동차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수천억의 자금을 일거에 상환하도록 정치권에 로비하여 부도나게끔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IMF를 불러왔다는 내용과 삼성그룹이 검찰 고위층 10여명에게 정기적으로 촌지를 전달했다는 추가적인 내용을 폭로하였다. 이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X파일에 언급된 뇌물을 받은 검사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중앙일보는 7월 25일 '다시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7] 라는 사설을 발표하고, 삼성그룹에서도 대국민사과문[8] 을 발표한다. 이날 참여연대에서는 삼성 등 불법대선자금 관련자 20여명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주요인사의 언급도 이어졌는데,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X파일 사건에 관하여 성역 없이 조사하겠다고 언급하였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도청은 부끄러운 일이며,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9] 같은 날, 조사를 맡은 국정원은 재미교포 박인회에게 출국정지 조치를 내린다.

7월 2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삼성 X파일에 대한 특검을 요구한다. 하지만 특검을 둘러싼 여야 각당의 입장차이와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X파일 특검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검찰은 X파일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하였으며, 홍석현 주미대사가 X파일 파문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였다. 같은 날 전 미림팀장 공운영은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딸을 통해 기자들을 불러모은 뒤, A4 13장 분량의 친필 자술서를 전달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 6시 15분경, 자택에서 복부에 4차례의 자해를 시도하였다. 공운영은 자해 직후 발견되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긴급수술을 받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10]

7월 27일 한겨레신문은 안기부 녹취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누락되었음을 보도하였다. 당일 천정배 법무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논의하는 특검 도입에 관하여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다. 검찰은 재미교포 박인회를 X파일 유출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공운영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도청테이프 274개와 녹취록 13권을 압수한다. 한편 법무부는 오정소 전 안기부 제1차장 등 10여명에 대하여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다.

8월 5일 이상호 기자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위하여 검찰에 출두하였고, 중앙일보는 '중앙일보 기자들은 다짐합니다'[11] 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다시 게재하였다.

8월 17일 참여연대와 언론노조 등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된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등 정경검언 유착의혹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X파일 공대위)를 발족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12] 8월 18일, X파일 녹취록을 입수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개원과 동시에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였고, 월간조선 9월호는 자체입수한 삼성 X파일의 전문을 기사에 공개하였다.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함에 따라 노회찬 의원과 월간조선 편집장인 김연광은 이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검찰의 조사와 재판을 받게 된다.

12월 14일 검찰 도청수사팀은 불법도청 및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학수, 김인주, 홍석현 등은 공소시효 만료로 무혐의 처분되었으며, X파일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등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당일 검찰수사결과에 반발하는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의 단체들은 검찰 규탄집회를 개최하였다.

12월 16일 이상호 기자는 삼성 X파일 보도로 2005년 민주시민언론상을 수상한다. 이후 이상호 기자는 '2005년 올해의 기자상'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계속적인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2006년 8월 4일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였으며, 8월 19일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정원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10월 26일, 검찰은 전 국정원장인 신건과 임동원을 불법도청의 공범으로 지목하였으며, 이 두 사람은 11월 15일 구속된다. 한편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던 이수일 국정원 전 제2차장(당시 호남대 총장)은 11월 20일, 검찰수사의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13][14][15]

재판의 진행[편집]

검찰의 기소[편집]

MBC는 사건보도에 있어서 도청 녹취록인 이른바 삼성 X파일에 나오는 전, 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여 비실명으로 보도했다. 이는 언론의 입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실명으로 공개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고,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한편 X-파일의 원본을 입수한 노회찬 전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 등에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이 법적분쟁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검찰 측은 당시 X파일에 중대한 범죄정황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과 증거자료 자체가 불법 도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등 이 사건을 수사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언론, 방송과 참여연대의 고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였고, 고발 이후 142일간 X파일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05년 12월 14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을 횡령혐의로 처벌하기 어렵고 뇌물공여혐의도 공소시효완료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X파일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관련자 처벌[편집]

이 사건과 관련해 도청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주심 민영일 대법관).[16] 김연광도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17] 또 도청녹취록 속에 있는 삼성측 뇌물을 받은 검사들 중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국회의원은 2011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2013년 2월 14일 대법원(주심 박보영 대법관)에서 원심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잃었다.[18]

기타[편집]

도청을 통해 권력형 비리를 밝혀냈으나 도청과 폭로만 처벌되고 비리는 묻힌 사건으로 초원복집 사건이 있다.-이상 위키백과 참고자료 )


(참고로 이학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 당시 삼성그룹의 2인자로 활동하다가 이재용의 후계 구도를 완벽히 마련 하고 2010년 2월이후 삼성을 은퇴하여 서울 강남의 엄청난 재력가로 있음)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2005년 들어와 삼성X 파일 사건을 터트리려 배후에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작업한 정황이 적나라 하게 들어난다

왜 1997년 녹음한 삼성X파일 사건을 8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에서 2005년 도에 계획적으로 터트린 것일까

그것은 이윤형양을 한국에서 보는 눈이 많아 청부살해 하기 힘들다고 보고

미국뉴욕대학원에 유학 보내 청부살해 할려고 이윤형양을 유학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2004년도 하반기 쯤에 이윤형을 2005년도에 미국 뉴욕대학원 미술경영학과에 유학 보내는것을 확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윤형양은 자신을 죽이려던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본능적으로 느낀건지 모르지만 유학가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으며 건강에 유독 신경을 가졌다고 한다


(참고자료 이상호 기자의 삼성x파일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삼성 X파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삼성 이건희 일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선거를 앞둔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두 번째, 삼성은 정기적으로 검찰 간부들에게 수억 원대 뇌물을 전달해왔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 삼성이 국회에 자신들의 프락치를 심었으며 당대표를 상대로 프락치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요구했다.

네 번째, 삼성이 기아차 인수를 위해 기아의 은행 대출금 수천억을 일시에 상환하도록 정치권에 로비한 정황이 있으며, 결국 기아의 도산으로 IMF파국이 가속화됐다P.010)

(참고로 이상호 기자는 2013년1월 mbc에서 해고 당하였다 )


(참고자료 이상호 기자의 삼성x파일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2004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집권초반을 넘긴 참여정부에 의해 재벌 위주 정책, 특히 삼성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고착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삼성경제연구원이 작성한 경제정책 보고서가 청와대 경제정책의 청사진으로 작동하고, 정부부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의 연수계획과 일정을 삼성이 진행했다. 주요 부처의 핵심 포스트에 기업의 경쟁논리 이식이라는 미명하에 삼성 간부들이 교환 배치됐으며, 삼성의 금산분리를 주장하는 청와대 보좌진에 대한 물갈이가 진행됐다. 국가정보원의 정보총괄책임자에 삼성 비서실 출신 인사가 앉혀졌고, 심지어 주미대사에 삼성가의 왕처남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발탁됐다. 그리고 주미대사는 이듬해 있을 UN 사무총장 후보에 내락된 상태였다. 스스로 시장에 권력의 빗장을 내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P.009)


이쯤 대면 삼성공화국은 노무현 정권때 완성됐고 실제로 삼성이 급격이 성장한 시점이 노무현 정권때 이다 노무현이 과연 삼성그룹과 무슨 커넥션이 과연 없었을까 ?

그런데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비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2009년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비리 사건은 이명박 정권 당시 국세청장 한성률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실시하자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권력층에 돈을 뿌려 로비한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 하였다

그러자 노무현의 친형인 노건평과 노무현 부인과 자식들 까지 줄줄히 불법으로 돈을 받은 정황이 들어나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그러던중 전직 대통령중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3번째로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고 곧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 일보 직전에 2009년5월23일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살자 들이 혼자 은밀히 자살 하는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면서 비서는 왜 동행 했는지 의문이며 비서는 왜 자살을 막지 못했는지 회괴한 일이며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비서의 일방 적인 주장에 의심이 가는건 누구나 생각할수 있는 일이다

특히 제대로 된 유서 한장 없이 그렇게 무책임 하게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 했다고 나는 무조건 믿을 수가 없다

더구나 노무현은 장기 기증까지 서명한 사람 이다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친필이나 서명 등 자살을 검증 할수 있는 일말의 단서도 없었다

그저 동행했던 비서의 회괴 망측한 일방적인 주장 뿐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비서보고 혼자 뛰어 내리기엔 무서우니까 비서보고 대신 밀어 달라고 데리고 간게 아니라면 비서를 데려 간것도 믿을수 없는 일이다

내글 삼성그룹 오너일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에게 살해됐을 의혹을 파해치는 글이라 여기서 노무현 전직 대통령 자살 사건을 일일히 파해쳐 열거할수 없지만 당시 정황을 보면

자살 했다는 주장에 의문이 가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서라고 해봐야 비밀 번호만 알면 누구나 쓸수 있는 컴퓨터에 이상 야릇한 글귀를 적어 운명이다 라고 남긴게 전부이다 보니 여러가지 타살 의혹이 시중에 많이

떠돌았지만 2014년 전남 순천에서 세모그룹 유병언 회장의 변사체 발견 사건과 같이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는데 가족들은 물론

친구이자 자신을 현재의 위치까지 올수 있게 했던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혹 투성이의 자살 사건을 충분히 국정 조사까지 가서 의혹을 파해치려 노력 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배후에 여.야 모두를 침묵 시키게 하는 엄청난 힘이 존재 한다는 증거 정황을 남기고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 되어 영원히 의문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설사 노무현이 자살한게 맞다고 하더라도 당시 야당은 노무현 죽음에 대해 국정조사 까지 끌고가서

노무현을 자살하게 만든 당시 이명박 정권에 항의하는게 인간적인 도리이다

쓰면 벳고 달면 삼키는 정치현실 이지만 노무현의 의문의 죽음을 물고 늘어지는게 당시 야당에도 유리했다 그런데도 여.야 모두 침묵하며 조용히 넘어갔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게이트는 삼성x파일 사건에 비하면 참새와 황새의 차이처럼 미미한 사건 인데도

노무현 대통령까지 검찰 조사를 받게 할 정도로 검찰 조사가 진행 됐는데

삼성x파일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모두들 침묵 만 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야 모두를 침묵 시키게 할수 있는 힘을 발휘할수 있는 곳은 삼성공화국 한곳 밖에 없다

과연 노무현이 만약에 타살 됐다면 누가 했을까 ?

왜 삼성그룹은 대놓고 엄청난 돈으로 로비하며 박연차 게이트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더 광범위 하게 큰 규모로 삼성게이트를 벌이는 증거가 녹음이 됐는데도 폭로한 자만 처벌이 되고 회괴 하게도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 에서 터트려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 되게 만든건 누가 봐도 짜고치는 고스톱 이다

한 두놈이 작당 한게 아니다 수많은 놈들이 음모극을 펼친 사건이다

이런 엄청난 삼성 게이트 사건이 계속 존재 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박연차 게이트 사건때 언론과 방송이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듯 기사를 냈다 거기에 열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조롱하는데 열받으니까 삼성에서 받은 내역을 폭로 하려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당시 여당은 물론 야당도 왕창 걸 릴 판 이었다

홍석현이 계획적으로 브로커를 여러단계 걸쳐 흘리게하여 mbc이상호 기자가 터트린 삼성x파일 사건을 보면 엄청난 자금이 정부의 권력의 실세는 물론 여.야 모두에게 뿌려 졌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고 포로자만 간단히 처벌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직접 터트리는건 상황이 다르다

그 뿐인간 검찰이고 법원이고 실세들에게 삼성돈 연중 주시로 흘러들어 간 것이 줄줄이 사탕이다

박연차 게이트는 상대도 안된다 이병박이 실세는 어떻고 아무튼 여.야 모두 빠져나갈 사람이 적을것이다

그러니 한국이 뒤집어 질 판이다 그러니 롯데등 다른 기업은 건드려도 삼성은 못거드리게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삼성공화국을 은밀하게 만들걸 알는 국민이 적다


그러나 2005년7월 터진 삼성그룹 x파일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살해하기 위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등이 계획적으로 터트려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한국의 입법.행정 .사법권을 .삼성떡값과 삼성장학생들로 인해 치밀한 계획으로 한국을 장악한 삼성공화국 에선 제2. 제3의 삼성x파일 사건이 계속 버젓히 벌어지고 있는게 농후 하지만 절대 삼성x파일 사건이

세상에 들어날 일이 없는건 권력과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방송이 한통속으로

유독 삼성의 비리는 감춰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들어나면 지들도 다치니까

그러니 삼성x파일 사건은 홍석현이 이윤형을 암살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을 병원에 입원 시킬려고 일부러 터트려 들어난 증거이다

북한은 김정은 이가 지배 하지만 한국은 삼성공화국이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대목 아닌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하며 키우려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청부살해 하기 위해 삼성X파일 사건을 의도적으로 터트린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과 추종 세력들이

노무현 전직 대통령이 검찰소환 조사에서 태광실업은 비교할수 없는 삼성그룹과 관련된 말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삼성공화국에서 절대 밝혀질수 없는 일이기에

일체 말도 흘리지 않고 기소되어 재판받기 전에

누군가 살해 했을 가능성도 의심이 가는 정황이 농후하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게 과연 누구일까 ?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단정 할순 없지만 금금하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참새에 불과한 박연차 게이트는 세무조사와 검찰조사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전직 대통령 노무현 까지 죽게 했는데

황새 보다 큰 삼성x파일 사건은 검찰에서 조사도 제대로 안하고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는 진실이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다른 더큰 삼성x파일 사건이 빙산의 일각처럼 들어나지 않았다고 의심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들어나지 않은 삼성x파일사건을 밝힐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왜 한국은 삼성공화국 이니까

그러니 삼성공화국에서 밝혀질수 없는 삼성게이트 사건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지 않았다고 추리할수 있는건 당연하다


현직 대통령 이던 살아 있는 최고 권력자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게 당시 부통령 린든 존슨과 미국 CIA 들 만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배후에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막강한 세력들이 연합하여 오스왈드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오스왈드가 완강히 범행을 부인 하는데도 불구하고 잡아 조사 받기전인 구치소로 이동하는 중에 잭 루비가 암살하여 오스왈드의 입을 막고 죽은 오스왈드 시체에서 지문을 찍어가 총기에 묻혀 오스왈드를 범인으로 누명씌운 CIA 오스왈드를 암살한 잭루비는 감옥에서 죽게 만드는 미국의 막강한 배후세력 처럼


한국에서 삼성 공화국은 절대적인 한국정부를 배후에서 보이지않게 움직이는 손처럼 조종하는 세력이다

처음엔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의 비리를 파해치려 태광실업의 비리사건을 한성률 국세청상에 세무조사를 시켜 들 추다 보니 태광실업 박연차 게이트는 삼성 게이트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 일수도 있어 심각히 당황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삼성의 비리는 여는 순간 엄청난 재앙이 온다는걸 많은 사람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직 대통령이 죽어야 하는 시나리오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이명박 정권도 요근레 다른 정권과 같이 삼성가의 개노릇을 자처 했던 인물로 보이고


자살하러 가면 혼자 몰래가서 하는게 대다수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인데 말이지

근데 노무현이 자살하러 가면서 비서는 왜 데려갔냐

혼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리기 싫어 대신 밀어 달라고

데려갔나 노무현에게 한번 묻고 십네

아무튼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자살 사건이 터지자

부인과 자식들이 뇌물 받은 의혹도 흐지부지 종결 되고 연일 방송과 언론이 노무현 일대기를 보도하며 장례식과에 전국민을 눈물 바다로 만들며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배후세력의 의지대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의 명백한 증거의 타살 의혹 증거들이 농후 했는데 시간이 걸려도 사건의 진실을 밝힐 생각은 않하고 마치 재부검 등으로 타살흔적이 들어날까봐 서둘러 화장 처리하여 DNA도 안 나오게 만들고 극비로 죽은지 3일 만에 장례식 까지 마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사건을 음폐 하려다가 밝각되자

삼성그룹이 다시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 했다고 둔갑시킨 정황은

명백히 이윤형양이 타살 되었다는 강력한 정황 증거이다

특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이재용이 타살한 의혹의 정황 증거가 농후 한데 이미 2014년 5월16일 사망했다는 아시아엔 보도가 나오자

이미 이건희 회장은 돌이킬수 없는 상태라는걸 아는사람은 다아는 상태인데도 저체온증 치료로 동면 상태 만들어 시체가 섞지 않게 만들어

상속세와 경영권 승계를 훔치려 죽은 이건희 회장을 서울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에 입원시켜 3년 가까이

서울 삼성병원 20층 특실은 삼성가 오너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만 들어가고 아무도 못들어가 이건희 회장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명백한 증거들과 정황들로 봤을때 모든것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의 시나리오 데로 사전 조작된걸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수 있다

(참고자료-노컷뉴스] 2005년 11월 26일(토) 10:33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발표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셋째 딸 이윤형 양의 사인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결혼 반대를비관해 스스로 목을 맨 자살인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 경찰은 윤형 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교통사고가 아닌 목을 매 숨진 자살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윤형씨는 지난 18일 밤 자신의 맨하튼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숙소에서 자살 기도
윤형씨는 남자 애인과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는 설과 혼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 등이 분분하지만 삼성측은 동반 자살은 아니라고 말했다.
윤형씨는 서울에서 부터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 등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윤형씨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검찰 수사에 대한 불안과 가족과 떨어져 뉴욕에서 혼자 산 외로움, 남자 친구와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뉴욕 총영사관측은 이건희 회장측의 교통사고 사망은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않은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윤형 씨의 사망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기사를 26일 자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 비서실은 지난 21일 이건희 회장의 딸 윤형씨가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CBS 김진오 특파원
CBS 뉴스)

2005년11월19일 이전에 미국 뉴욕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과 세상을 속이려고

삼성그룹과 중앙일보에서 적극 지원하던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기 사건을 짜놓은 시나리오 데로 2005년11월22일 MBC PD수첩을 통해 즉시 터트 리는데


(참고자료 -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였다고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8월에는 황우석 교수는 이병천 교수(전 서울대 수의과 대학 교수) 등과 함께 스너피라는 이름을 붙인 아프간하운드 종의 개를 최초로 복제했다고 과학잡지 "네이처" 에 발표하여 다시 한번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개의 복제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인간과 유사한 유전병을 가진 개의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난치병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2005년 11월22 일 mbc PD수첩이 최초로 방송보도를 통해 논문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 )


(참고자료 -2005년 11월 22일 보도된 MBC의 PD수첩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PD수첩은 난자의 출처에 의혹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난자 제공자에게 금품이 전달되었고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의 난자를 채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윤리 문제가 불거졌다. [3] 상황이 이러자 황우석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시인하고 공직에서 사퇴했다. PD수첩 방영 이전부터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는 황우석의 연구윤리에 대해 의문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황우석의 언론 플레이에 속아서 난자채취의 부작용을 알리지 않은 채로 난자채취를 한다는 의혹이 활발히 제기되기시작했다. 이게 왜 논란이 되냐면 인공수정을 위해 난자를 채취하는 경우에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은 난자를 성숙, 배란시키기 위해 투여된 호르몬의 영향으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고 붓는다. 시험관 아기 항목에 서술되어있듯 신체적, 정신적으로 절대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다가 황우석 측이 자행한 난자 채취는 인공수정을 위한 채취보다 호르몬을 과하게 써서 심하면 난소 자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손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우석의 인기가 지나치게 높아서 묻혔다. 아니, 방송 후 PD수첩은 국가적 인재의 연구를 방해했다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단 하룻밤 만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글이 3000개가 넘게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황우석 지지자들이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함으로서 황우석 스캔들은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하였다. 다행히 이때 PD수첩은 억울한 비난을 받고 광고가 끊기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방송중단 사태를 맞이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PD수첩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방송 강행의지를 꺾지 않았으나 YTN이 MBC PD가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러 와서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등의 발언을 하며 강압적 취재를 했다고 일방적으로 폭로(물론 거짓말이다.)하자 PD수첩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물론 PD수첩측은 이런 말 한 적 없고 황우석 교수가 곧 검찰의 수사를 받을 것이니 좋게 좋게 말하라 라고 했을 뿐이라 주장하였지만, 이 역시도 문제가 된 것이 당시 검찰 수사가 확정된 적이 없었으며, 회유이든 협박이든 명백하게 언론의 힘을 통해 취재 윤리를 어긴 것이다.

당연히 PD수첩은 방송 중단, PD는 경질됐고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밤 9시 메인 뉴스에서는 마치 남남처럼 느껴질 만큼 자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을 탈탈 털었다. 분명 취재윤리를 어긴 것은, 황우석 박사팀에서 어긴 과학윤리를 위반한 것만큼이나 큰 잘못이다. 백 번 까여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PD수첩 팀이 제기한 의혹 자체는 합리적인 의심이었으나 재검증을 주장한 PD수첩의 요구는 이 일로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황우석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어나서 황우석에 대한 지지는 더욱 커졌다. 어느 여성단체에서 출근하기를 바라면서 황우석 교수 사무실까지 찾아와 꽃잎을 뿌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진달래 꽃길 하지만 이 진달래 꽃길 이벤트는 이벤트업체에 부탁해서 벌인자작극이었다.

한편 프레시안에서도 처음 이런 기사가 나갔을 때 당연히 황우석 지지자들은 부정했고 아이러브 황우석의 카페 주인이었던 고운이 자기 노모가 밤새도록 꽃을 준비했다며 증거 사진을 올리고 다음해 2006년 2월 16일에 고소를 했다. 훗날 해당 기자는 다음에 꽃을 주문하고 싶다면 사진 속에서처럼 일부러 가지가 달린 꽃을 주문해서 힘들게 꽃만 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가 붙어있지 않는 꽃을 주문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시 mbcPD수첩 보도내용 MBC는 중앙일보와 함께 한달 가까이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떠들어 이윤형 양의 억울한 죽음 조용히 덥으며 세인과 이건희 회장을 속이려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음폐 하는데 일조하는 나팔수 역활을 충실히 했다


교활한 모사꾼 삼성가 오너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과 상부상조 하던 한국의 지상파 방송 mbc는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이재용이 이윤형을 죽이고 바로 그 다음날 타살 흔적 없애려 화장하고 3일만에 외부조문 금지 하고 극비로 장례식까지 마치고 난후 기자들에게 뉴욕시간 11월21일 이윤형 양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삼성그룹 에서 발표 하자 마자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로 2005년11월 22일 최초로 MBC PD 수첩이 보도하고 그후 다른 방송과 언론도 덩달아 보도 했지만 그중에 유독 MBC와 중앙일보가 한달 가까이 대대적으로 연일 터트린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기 사건 뉴스 보도를 2005년 11월21일 뉴욕 현지시간 삼성그룹이 발표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삼성그룹의 거짓말을 조용히 덥는 더러운 목적으로 사용된 정황 증거이다 그 외에도 2005년 도에 이윤형을 뉴욕대학원에 유학보내고 2005년7월 mbc보도로 삼성x파일 사건이 터지고

2004년12월18일 내정된 홍석현이 2005년2월22일 주미 대사에 부임한후 역대 최단기간 5개월 만에

7월26일 주미대사를 자신 해임하고 삼성x파일이 터지자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건희 회장은 폐암이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하여 폐암 치료중에 2005년11월21일 미국뉴욕 현지시간

삼성그룹은 이윤형이 11월18일 뉴욕 외곽에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19일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뉴스로 보도된후 한국에서 2005년 11월 22일 MBCPD 수첩이 황우석 즐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 한건 이윤형 타살 사건의 의혹을 덥으려는 목적으로 사용한

확실한 정황 증거다 2005년 도에 왜 유독 이런회괴한 일들이 겹치는데 이것이 삼성알바들은 우연 이라고 진실을 왜곡하려 하지만 우연일 가능성은 없고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데로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것이다 라는 나의 결론이 합리적인 추리인 것이다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당시 1999년 폐암 수술을 받았던 삼성 이건희 회장이 2005년 7월 이후 재발한 폐암 치료로 미국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 입원 중이던 거동이 불편했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그후 시간이 지나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사태를 파악하자 이건희 회장을 음식에 약을타서 죽이고 경영권 승계와 상속세 문제로 입원 시키고 조용해 지면 장례를 치르려 다가 내가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자 장기전으로 돌입한 정황이다

여기서 핵심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삼성x파일을 1997년9월9일

신라호텔에서 자작극으로 녹음해 놓고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미국 뉴욕현지 시간 이윤형을 미국 뉴욕에서 청부살해 했을까?


그 이유는 요것들이 제일 겁을 내는 단 한사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려고 이윤형 양을 보는 눈이 많아 청부살해 흔적이 발견되기 쉬운 한국을 피하고 이건희 회장이 멀쩡한 시기를 피하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울 대상을 물색 하는게 어려웠기 때문 매사에 의심 많고 치밀한 홍라희 이재용이

여러 단계의 시나리오를 짜고 이윤형을 청부살해 하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려 했던 정황이 들어났다

더우기 미국은 전문 청부살해 업자만 1000 여명에 이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는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가장 겁을내는 이건희 회장이 살아 있었고

이윤형을 주시하는 눈이 많은 한국보다 미국이 암살하기 쉬운 나라로 판단한 것 같다

특히 이윤형이 주로 만나는 사람이 상류층 출신이 많아 희생양으로 누명씌울 인물을 찻고 삼성X파일 사건을 터트려 이건희 회장을 병원에 입원 시키고 상대적으로 이윤형을 청부살해하기 쉬운 미국을 선택해 뉴욕 대학원 미술경영학과에 유학 보내고 유학을 마치고 오면 홍라흐가 가장 아끼는 리움 미술관을 물려준다고 바람잡아 교활하고 치밀한 음모를 계획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뜸을 들이며

강태공 처럼 때가 되기를 기다려 1997년 삼성X파일 사건을 녹음하고 공소시효가 끝나 검찰이 기소할수 없는 시기를 마련하려 8년 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2- 당시 이건희 회장의 비서의 진술로 작성된 조선닷컴 기사에 비서와 단둘이 있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10일 저녁9시 저녁 식사후 식은땀을 흘리며 등쪽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 하는데 비서가 병원은 물론 주치의도 데려오지 않고 등만 두드리다가 무려 1시간20분간 방치하다가 저녁 10시20분경 이건희 회장이 쓰러져 심장정지 호흡중지 상태에서 10시45분 순천향 병원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삼성의 주장은 순천향 병원에서 응급 조치를 잘해 시나리오에 없던 이건희 회장이 회복하자 급히 삼성 병원에 데려가 저체온으로 동면 상태로 만들어 2년째 의식도 회복 못하게 만들고 재활훈련 한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삼성 그러나 비서의 진술이 사실이라 해도 순천향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이건희는 적어도 뇌사상태 뇌에 산소가 4분만 공급이 안되도 심장은 멀쩡한 영원히 식물 인간인 뇌사로 죽은 것이다 비서의 증언을 믿을수도 없지만 사실 이라고 해도 통증을 호소하는 이건희 회장을 1시간20분간 방치한건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을 죽이라고 오더를 준것 이라는 증거다 죽은 이건희 회장을 상속세와 삼성전자 경영권 경영권 훔치려 입원시킨 쓰레기들


더러운 쓰레기 삼성공화국 지금이라도 서울 일원동에 있는 서울 삼성병원 20층 특실 이건희 회장 병실을 열어 공신력 있는시민 단체와 언론과 방송 에 확인하면 될일을 못하는건 내글이 사실임을 홍라희 이재용이 스스로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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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비서·순천향대병원 의료진의 신속한 조치 "급박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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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12 09:17

<x-img src="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5/12/2014051200701_0.jpg" alt="">사진= 조선일보DB</x-img>

이건희 비서·순천향대병원 의료진의 신속한 조치 "급박했던 순간들"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수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 입원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목숨을 건진 것에는 비서진과 순천향대병원 의료진의 신속한 조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한국경제TV와 순천향병원및 삼성서울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10일밤 10시 45분에서 50분 사이 자가 호흡을 거의 하지 못해 심장박동이 멈출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심폐소생술로 위급한 상황을 모면했다.

이건희 회장은 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저녁 9시쯤 늦은 저녁을 먹었으나 속이 안좋다고 호소하며 식은 땀을 흘렸다.

이에 비서가 등을 두드리고 이건희 회장은 소화제를 복용했으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계속해서 등쪽 통증을 호소하다 10시 20분경 자택에서 쓰러졌다.

이에 비서는 자택에서 제일 가까운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걸었고 승용차로 이건희 회장을 신속하게 호송했다.

이 때 승용차안에서 이건희 회장은 자가호흡이 불가능했고, 밤 10시50분경 순천향대 응급실에 도착했을때는 심장박동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순천향대병원 응급팀은 심폐소생술로 이건희 회장의 호흡을 회복시켰고 11시30분을 전후해 의료진이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내리고 관련 진료를 실시했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이 회장 상태에 대한 연락을 받고 응급실이 심근경색 치료를 대비하며 응급차를 순천향대로 보내 11일 새벽 1시15분경 이 회장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건희 회장의 이송 즉시 심근경색 치료를 위한 스텐트 삽입 시술을 시작했고 새벽 3-4시경 모든 치료와 수술이 끝났다.

<x-img src="http://image.chosun.com/cs/article/2011/icon_keyword.jpg">키워드 |

이건희 급성 심근경색 이건희 심폐소생술 스텐트 삽입 시술 </x-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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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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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 내용은 비서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진위여부를 확인 할 길은 없지만


비서의 주장이 사실 이라고 인정한다고 접어줘도

비서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20014년 5월10일 저녁9시 저녁 식사후 식은땀을 흘리며 등쪽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 하는데도 병원을 왜 안데려 가고 주치이도 안데려오며 말도안되게 소화제만 주고 등만 두드리다가

무려 1시간20분간 방치 하다가 저녁10시20분경 이건희 회장이 쓰러져 심장정지 호흡중지 상태에서 저녁10시45분 경 인근 순천향 병원으로 데려 갔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행동이다

2014년과 2015년 세계 브랜드 순위 7위에 연속으로 오르는 한국에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삼성전자를 계열사로 가진 삼성그룹은 한국에서 그룹중에 한국의 젊은 엘리트들이 서로 입사하기를 희망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중 에서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비서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 일것이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은 서울 일원동에 서울 삼성병원을 최고의 시설로 세웠고 최고의 주치의도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사태때 이용할려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만든 시스템 이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은 1999년 폐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2005년 폐암이 재발하여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고 특히 심근경색과 협심증 환자로 알려져 왔다

어느 의사에게 문의하자 심근경색의 증상 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등쪽의 통증을 유발 한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문의했다 그러한 심근경색 증상 중에 누군가 등을 두들기면 증상이 호전 되냐고 문의하자

여러 경우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는 오히려 증상을 촉벌 하여 환자가 더 위험해 질수도 있으니 제일 좋은 방법은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고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직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희 회장의 비서의 행동은 홍라희 이재용 이가 비서를 시켜 그냥 죽으라고 방치 하라고 오더를 준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이다

삼성회장 비서는 분명 엘리트 중에 엘리트 일 것이고 평소 건강이 나쁜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과 협심증 환자라면

비서는 누구보다 심근경색의 증상을 잘 알텐데 무려 1시간20분간 방치 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비서의 진술로 나온 조선닷컴 뉴스는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한국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가 비서는 친절 하게도 조선닷컴 기자에게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는

당시 조선닷컴 기사를 보고 경악을 했다 기사 내용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비서가 죽였거나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식물 인간을 만들 었다고 자랑하며 떠드는 거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당시 비서가 진술하여 조선닷컴 뉴스로 나온 기사는 조작 할수가 없다

그것은 반대로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게 아니라는 반증인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2가지 로 해석 할수 있다


1번은

(참고자료 기사 -삼성, 인도법원 '이건희 회장 출석명령' 속앓이, 겉으론 무시 속으론 ~
삼성 "사기꾼 대응 필요없다",,, 거부시 인도 시장에 악영향, 범죄인인도요청 가능성, 돈으로 해결시 사기 인정하는 꼴

2014년 07월 03일 (목) 17:19:07 안중원

[뉴스플러스]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에 대해 인도 대법원이 2차 소환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되면서 법원이 통보한 출석요구 시한(7월14)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일단 '무시전략'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출석시 닥쳐 글로벌 기업으로 거대 인도시장에 미칠 악영향과 체포영장 발부 가능성이라는 현실론 사이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인도의 엄격한 법집행 분위기를 감안하면 대사관을 통해 법무부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차례 출석명령을 받은 이 회장이 소를 제기한 쪽을 사기라며 출석명령 취소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 회장 측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원도 상급심인 대법원에서 내린 것이어서 항소나 상고할 기회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이다.

출석을 하도록 한 시한도 한달 이상 준 것이어서 추가적인 소환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인도 대법원은 지난 6월 2일 현지 컨설팅업체인 'JCE 컨설턴시'가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에게 7월 14일까지 소관 법원인 가지아바드 법원으로 출석하라고 명령했다.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이건희 회장에게 6주 안에 법원에 출석할 것을 명령한데 이어 두번째 소환명령이다.

두차례 모두 6주라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

JCE는 삼성이 자사에 줘야 할 140만달러(약 14억원)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가지아바드 법원에 이 회장과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JCE는 삼성전자 두바이 법인의 어음이 가짜라며 당시 두바이 지사 대표였던 윤 전 부회장과 이 회장을 대상으로 모국 법원에 사기혐의로 소를 제기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인구 432만명의 최대인구가 살고 있는 두번째로 영토가 크다.

이 회장은 JCE측이 사기집단이라고 이에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법원출석을 거부해왔다.

이에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은 지난 2012년 이 회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 회장은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인도 대법원은 지난 3월말 상고심에서 이 회장에게 법원 '출석 명령'을 내렸다.

이 회장은 출석을 거부했다.
이 회장 측이 상고심에서조차 출석명령 철회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JCE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삼성 측은 JCE가 인도의 사법제도를 악용해 소송을 걸고 있다며 이 회장과 윤 부회장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도는 범죄 피해자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범죄자를 상대로 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사인 소추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피고 측 의사에 따라 재판을 개시할 수 있는 특징을 악용해 이 회장 등 삼성전자 핵심 인사들을 고의로 재판에 참여시키려하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삼성측은 출석명령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소를 제기한 측은 사기꾼들이다. 이들에게 특별히 상대할 필요가 없다"며 무시전략으로 간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법원에 출석하란다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주한 인도대사관은

삼성측은 말도 안되는 사기꾼들의 행동에 불과하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다.

삼성측은 사기꾼이라며 상고까지 했지만 인도 대법원은 삼성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석을 거부한다면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향후 인도 등 거대시장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인도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할 경우다. 인도에서 보면 한국은 치외법권 지역이어서 이 회장에 대한 실제 체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도에서 범죄자인도 요청을 통해 이 회장에게 압박하는 것은 가능해 자칫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또 소송을 마무리하기 위해 삼성측에서 보면 돈으로 해결한다면 이는 삼성이 사기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삼성은 이같은 고민속에서 어떤 묘책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처음부터 이건희 회장이 2014년 7월 14일 인도법원에 출석 하지 않으려

비서와 짜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진것 처럼 꾸민 것인가? 그러나 그럴 확률은 100억분이1보다 확률이 적다 이건희 회장은 인도법원에 출두하면 했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처럼 그런 교활수법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승인 주주총회가 있기 전에 이건희 회장이 재활 훈련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도 하고 언론과 방송에

동영상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동영상이 전혀없다 2년가까이 지금까지도 병실 밖을 한번도 나온적이 없다 삼성오너 패거리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 이외에는

아무도 본적도 없고 이건희 회장 병실도 공개된 적이 없다 독일 유학 같다온 신학대학교 교수출신 목사가 친딸 여중생을 죽이고 미라를 만들어 마치 살아있는것 처럼 11개월간 속이다 경찰의 압수 수색으로 구속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벌써 2년째 미라가 되었는지 이건희 회장 병실 서울 삼성병원 20층 특실을 압수 수색 해야 한다


2.번은


가장 농후한 가능성은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을 살해하려고 이건희 회장이 주로 먹는 음료수나 음식에 독약이나 약물 등 을 몰래 타서

서서히 환청이나 바보를 만들어 병을 유발해 쓰러지게 만들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됐을 가능성이 99.9%다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홍라희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사람은 이건희 회장 밖에 없다 이윤형양의 시체는 이재용이 죽은 다음날 바로 타살흔적 지우기위해 화장처리 하여 DNA도 안나오게 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사인도 음폐 하려 했던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의 더러운 음모만 보더라도 이윤형양이 타살된 정황과 홍라희 친딸이 아니라는 정황증거는 충분 하지만 그후 이건희 회장도 이재용에 타살된 정황이고 이윤형양의 DNA도 안나오게 화장 처리한 지금 와서 홍라희 친딸이 아니라는 법적 증거느 밝힐 수는 없지만

도저히 터질것 같지 않은 삼성공화국에서 짜고치는 고스톱 처럼 삼성x 파일이 MBC이상호 기자에 의해 터진거나

삼성그룹 X파일사건을 공소시효가 끝난 상황 에서 터트린 거나

이건희 회장이 고통을 호소 하는데 무려 1시간20분간 방치하여 이건희 회장을 미필적고의로 죽거나 영원히 회복 불능의 식물인간으로 비서가 만든 명백한 정황 증거를 보더라도 이윤형양이 홍라희 친딸이 아니고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에게 살해된 충분한 정황 증거 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문제화 되면 비서가 나중에 말을 바꿀 수가 있다 당시는 당황해서 비서가 실수로 말을 잘못 했다고 활수도 있다 삼성공화국에서 거이가 비서의 편에서 진실을 왜곡 할 것이기에

이글을 세계 양심에 고발한다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연쇄 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이 이제와 이윤형이가 홍라희 친딸 이라고 우기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으면 친딸이 아니라는

주장을 수긍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이윤형이 홍라희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적도 있다고 하는데 삼성공화국에선 진실을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유리하게 음폐 하려는 세력들이 많다


그러니 흐지부지 넘어갈수도 있다

증거가 명백한데

당시 뉴욕현지 있던 이재용 이가


이건희회장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을 이건희가 텍사스에서 암치료 받을시기

청부살해 하고 급히 다음날 화장하고 3일만에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치르고

화장한 유해는 새벽에 몰래 들여오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삼성에서 거짓말한게 당시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의 집요한 추적으로 들어나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란 기사를 한국에 내려하자 삼성에서 압력을 행사하여 못내고 내신 취재한 기사를 뉴욕타임즈에 주자 2005년 11월26일 뉴욕현지시간 기사가 나가자 삼성에서 다시 신수빈이 좋아하다 죽었다고 공식 발표하여 둔갑시킨 의문의 사건을 내가 파해쳐 진실을 밝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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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5월초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와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경기도 평택에 삼성반도체 공장 16조 투자 기공식에 함께 참석하고 바로 개원한지 당시 4개월 밖에 안된 평택 성모병원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을 메르스 환자들이 마치 여행사의 팩키지 코스처럼 돌아다니며 은밀히 메르스가 퍼지기 시작 하였다 5월2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 본부는 중동 지역을 다녀온 68세 남성A씨가 중동호흡기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첫확인 됐다 메르스 환자가 처음 나오고

2015년 5월25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을 7월17일 주주총회 회부하여 투표로 결정한다고 발표 한후 바로 다음날 5월26일 영국화재 보험에 재가입하여 전액 배상이 가능한 제일모직에 의문의 방화 사건이 나서 경비 한명이 숨졌다고

뉴스에 보도되며 방화범이 밀린 돈을 받지 못해 방화 했다며 공개 수배를 하더니 어느 순간 조용하더니 제일모직 방화사건이 발생한지 대략 2달후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이 투료로 이루어 지고난후 일주일후 2015년 7월23일

방화범 시체가 제일모직 방화 현장에서 발견 됐다며 강아지도 안믿을 말로 경찰은

조용히 사건을 종결하고 지상파는 거이 뉴스 보도를 했는지 나는 본적이 없고

종편에서 자막뉴스로 짧게 나온걸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는 제일모직 방화사건이 이재용의 자작극이라 생각했기에 사건을 어떻게 경찰이 수사하여 종결하나 관심을두고 지켜보려 했기에

기억하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알수가 없이 너무도 조용히 지나갔다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주주들 에게 알려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무산이 되면 큰 타격을 입는다고 판단하여 긴장한 이재용이 도둑이 제발 리다고 메르스 계획적으로 퍼트리고 제일모직 방화를 고의로 저질러 주주들 시선을 속이고 유도 하려 했던것 같다

그증거로 더팩트와 공모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병실사진을 조작하여 살아있는 것처럼 왜곡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후 삼성직원들 시켜 주주들 일일히 찻아 가서

당근 작전 까지 하며 연일 막대한 돈을 들여 TV광고까지 하여 합병을 이끌어 내자

제일모직 방화범이 2달후 사건현장에서 발견 됐다고 강아지도 안믿을 말로 사건을 종결 시킨 파렴치범 이재용

이재용이 우려했던건 방화범 시체가 제일모직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하면 세인들이 의심이 증폭되어 이건희 회장을 홍라희 이재용이 암살하고 속인다고 생각할까봐

삼성가 개에 불과한 경찰을 시켜 합병승인 이후 발표하도록 지시한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성은 이재용이 걱정했던것과 정반대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에 암살된것은 관심도 없고

방화범 시체가 언제 발견 됐는지도 중요한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당장의 경제적 이득이 무엇인지

만이 중요한 쓰레기들인 것이다
메르스가 퍼지던중에 6월1일 메르스 확진환자 첯 사망자가 나온후 2015년 6월2일 5월22일 찍은 사진이라며 삼성병원 20층 특실 이건희회장 병실사진을 삼성과 더팩트가 공모하여 언론과방송에 공개한 사진인데

경찰서에서 난동 피우는 어떤 여기자

삼성서울병원 20층 VIP 병실에 입원 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위의 사진은 언제 찍었는지 알수도 없으며 저 사진이 사람인지 인형인지 아니면 죽어 냉동 시킨건지 뇌사 상태나 미라나 식물인간 상태인지

확인 불가능 하고 이건희 회장이 확실한지도 확인이 안되는 상태인데

내 추리로는 저 사진은 더패트와 삼성그룹오너들 주장대로 2015년 5월22일 찍어 메르스가 한참 한국에 퍼지던 2015년 6월2일 공개 했는데 2015년 5월22일 찍은 사진이 아니라 2014년 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살해한 이재용이

그후 조작하여 이용하기 위해 2014년 5월10일 이건희 회장을 암살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5년6월2일 삼성그룹과 더팩트가 짜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 병원 특실에서 업무보고 받는다고

이건희 회장 병실 사진 이라고 유일하게 뿌린 사진이다

이 회괴 망칙한 사진을 조작하여 뿌린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진짜 의도는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과의 합병 승인 주주총회에서 주주들 에게 죽은 이건희 회장이 살아있는것 처럼 조작하기 위해

조작된 사진을 흘린것이다 그만큼 삼성물산과 합병 승인 주주총회 에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운명을 걸고 긴장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에 합병승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재용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주주총회 전에는 이건희 회장의 상태를 조작하여 언론에 받아쓰기 보도를 배후에서 주도한 이재용이 합병승인 확정되어 삼성전자 경영권을 강도질하고 난후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상태에 대해 언론에서 별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홍라희 이재용이 별관심이 없어 삼성 개밥 얻어먹는 한국의 언론과 방송에서 전혀 보도조차 되지 않는 상황만 보더라도

작년에 2015년7월17일 주주총회에 이재용이 운명을 걸고 긴장 했던건 분명하다

그래서 주주들 삼성직원 시켜 개별로 일일히 찻아가 당근 작전 펼치며 설득하고

비싼 TV 광고도 하게 하고 주주총회 대략 일주일 전부터 나의 댓글도 못올리게 일시적으로 한국의 인터넷 다음 이나 페이스북 등에 무슨 장난을 쳤는지 차단시킨 놈이다

또한 이부진이 이혼 소송을 걸은 임우재를 2014년 12월 만해도 삼성전기 사장에 그대로 유임 시켰는데

2015년7월17일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승인이 확정되고 난후는 임우재를

삼성전기 사장 자리에서 쫏아내고 고문으로 내 친것은 속내를 그대로 들어 낸것이다

삼성그룹 오너일가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의 삼성물산의 순화출자 구조 합병승인을 위한 주주총회 에서 승인이 안될까봐 불안에 떨었는지 알수 있는 증거이다

삼성의 고문은 정리 해고자 에게 다른 일 자리를 마련 하기전 까지 잠시 있는 것이니 다른 일자리 알아 보라고 출근을 안해도 상관 없다고 한다

2015년7월17일 주주총회에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이 사활을 걸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삼성의 최상의 지배회사 에버랜드를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연쇄 살해하고 난후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바꾼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모두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삼성전자 경영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모두 나중에 지분 정리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

아직 이건희가 보유한 시세에 따라 변동이 심하지만 대략 11조원에 가까운 주가와 지분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세인들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엄청난 부동산 가격 까지 합치면 상상을 초월한 재산 상속이 마무리 되면

에버랜드에 공동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던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이 제일모직으로 바꾸어 삼성물산과 합병하여

삼성전자 경영권을 인수 하였기에 이부진 이혼절차 끝나고 이건희 장례식 마무리하고

상속이 완료되면 적당한 시기에 지분 정리가 아직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이

서로 지분 싸움을 할 여지도 남아 있다

이건희 회장 한테는 병세 악화될 까봐 안 알렸다고 거짓말 하고

구라 친게 들어났는데

이윤형이 죽기 3년 전 부터 수빈 이란 이름 가진 놈이 경호원을 가장한 킬러인지 이윤형을 따라 다니며 동태를 누군가에게

보고 하기도 했다 수빈이란 놈이 이윤형 시체 최초 발견자 라고 당시 한국의 언론과 방송 뉴스에 사진은 없고 이름만 보도된것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의 아스카 일식집에서 본 수빈 이란 놈이 신수빈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농후 한데 신수빈이 왜 친구와 남자 2명이 그것도 인적이 가장 드믄 새벽 3시에 이윤형 시체를 최초로 발견 했다고 했는지 아스카 일식당에서 일식당 사장 내외가 수빈 이라고 부른 웨이터 하던 사람이 신수빈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에 소름을 돋게 한다

남자 두명이 인적이 가장 뜸한 새벽 3시에 이윤형 숙소에 가서 시체를 발견 했다는데

나는 믿지 못해 이윤형은 2005년 11월 19일 오전3시 뉴욕 현지시간 훨씬 이전에 다른 곳 뉴욕 외곽에서 누군가에 이미 살해된후

인적이 가장 뜸한 새벽 3시를 골라 이윤형 숙소에 누군가 이윤형 시체를 던져놓고 자살로 위장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놈은 망보고 한놈은 시체를 들고 숙소에 던지 려면 남자 두놈이 필요 하다는건 상식이다

그리고 인적이 가장 뜸한 새벽3시가 필요 했을 것이란것도 누구나 추리할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 이야 돈으로 녹였을게 뻔하고

문꼬리 부분에 목을달아 이윤형이 다리가 땋에 닿는데 자살했다는 뉴욕검시관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보도된 부분도 말도 안되고 하루도 안되는 엉터리로 제대로 검시로하지않고 조작하여 자살처리되어 급하게 화장해 버렸다는 증거는 이윤형양의 부검 검시기록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타살일 가능성이 더욱 농후하다

물론 당시 뉴욕 검시관 이란 인물이 전화상으로 뉴욕지사 한국일보와 통화상으로

이윤형을 검시하여 자살 판명을 내렸다고 통화 했다는 한국일보 뉴욕지사의 기사는 신빙성이 없고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윤형의 시체를 검시하여 자살 판명 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이고

검시 진단서도 없는데 검시관이 뉴욕지사 한국일보와 직접 통화 했는지 도 확인불과 고 믿을 수도 없다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국제적으로 고위층 인맥과 로비가 막강한 인물로

그놈이 뉴욕 검찰과 검시관에게 무슨 기름을 쳤을지 이재용의 행적을 봤을때 충분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

박근혜와 상부상조 하는 삼성그룹 특혜 주기 법안 일색이다 그러니 삼성 알바들이 가장 많이 서명 하는 쓰레기 삼성공화국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자 죽인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속이다가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죽인 증거는

한국의 유명가수 나훈아 부인은 오랜시간 별거한 나훈아와 이혼소송에서 이혼을 안시켜 주던 법원은

이번 1심의 비상식적 판결은 삼성그룹과 관련 됐기 때문이다 임우재가 술자리가 잦고 주사가 있다는 이유로 이혼제기 하고 승소

임우재는 전부 이부진이 꾸민 것이라 이부진의 주장은 허위라 인정할수 없다고 하며


이런 귀책 사유로는 한국의 법에서 일반인은 거이 이혼 불가 하다 또 양육권은 모 에게 준다 지만 친권을 아버지 에게서 박탈하고 아들 접견권을 한달에 1번 주어 졌다 아버지가 상습적 폭력을 행사하는 등 말종 수준이 아니고서는 친권 박탈 안한다 장학금 뇌물로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를 크게 오염시켜도 삼성은 멀쩡한걸 보고 다른 기업들이 삼성 따라하다가 참새가 황새 따라하다가 가랑이 찟어진다는 속담처럼 검찰의 수사에 망신을 당하는데 유독 멀쩡한 삼성공화국 아니랄까봐 삼성 관련된 판결은 판사도 믿을 수 없다

임우재 부모가 자신의 손주를 태어나서 9년간 얼굴을 한번도 못봤다고

2016년 임우재가 법원에 직접 와서 항소 하면서 밝혔다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이 남편 임우재 에게 별다른 이유없이 성격 문제로 이혼 소송한 이부진의 진짜 교활한 속 마음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주식과 지분만 약 11조원 알게 모르게 같고 있던 부동산까지 합치면 15조원이 훨씬 넘는 엄청난 액수의 상속이 이부진 에게 가는데 결혼 중에 늘어난 재산은 이혼 분활 대상 이라 일반인 같으면 법원에서 별 다른 이유없이 이혼 신청하는 이부진 보다는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임우재의 손을 법원이 들어 줬을 텐데 삼성공화국에서 법원이 무조건 이부진의 편을 들어 1심 에서 이혼이 선고되고 양육권 과 친권까지 이부진에게 넘어가는 편파적인 판결이 선고되자 임우재는 항소하여 아직 이혼 분활 신청은 하지 않고 계속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3심인 대법원 까지 갈 형국이다

1심 재판이 선고되는데 1년반 이상이 훨씬 넘었고 3심까지 모두 끝나려면 엄청난 시일이 지나야 한다

그안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장례식은 절대 못 치른다

그럴경우 3심까지 패하게 되면 그후 2년 안에 재산분활 이혼소송을 임우재가 법원에 걸면

엄청난 액수가 임우재에게 돌아갈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공화국에서 법원이 전부 삼성가 편인데 임우재가 원하는 금액을 받아낼지 미지수다 그래서 임우재는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이부진과 많은 금액에 합의를 도출하고 십은 것 같은데 이부진은 한푼도 주지않고 쫒아낼 형국이다 그러면서 이부진은 이건희 회장이 장례식 하기전에 이혼을 빨리 하려 지랄하는건 처음부터 이부진이 삼성전자 경영권을 은근히 노리고 임우재에 접근하였다는 나의 글이 신빙성이 더욱 높아 지는 것은

(참고자료-15일 임우재 고문은 월간조선(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과의 첫 인연 및 이혼 소송 중인 아내 이부진과의 관계, 아들과의 관계 등을 자세히 설명했어요.


임우재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는 많이 다른 내용..


임우재, 이건희 경호원 출신

임우재 가 계속 이혼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친권은 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자식이 하나 뿐이라서 자기 자식이 삼성 3분의 1의 주인이 되는데 그 권리를 왜 포기하겠느냐


임우재는 삼성물산 전산실에 입사했다는 얘기는 삼성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면서 실제는 이건희 회장 경호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주장했어요. 이어 이건희 회장이 교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며 이건희 회장의 허락을 받고 교제를 시작했다고)

임우재의 이런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이부진이 임우재와 계획적인 결혼을 했다는 암시로 보여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임우재 의 항소심 변호사 8명이 마치 담합을 한것 처럼 일괄 사표를 제출 했다고 하는데 삼성공화국의 로비가 작동한 것 같다

그러니 삼성공화국에서 이러한 임우재의 벌언을 법원이 임우재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치부 하며 무조건 이부진의 일방적 주장만 믿으려 할께 뻔하다

이건희 회장은 이부진과 임우재의 결혼을 반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

삼성전자 경영권을 은밀히 노리던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은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하는 이윤형은 ​암살하려 공모하는 상황 에서도 경쟁은 자신보다 경영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이재용 뿐 인데

이건희 회장 경호원으로 삼성에 발을 들여 이건희 회장이 호감을 같던 삼성 평직원 임우재를 선택한 이부진이 상황을 보며 잔마리를 굴리다 이건희 회장이 차녀인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이 친일파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의 외손자 김재열과 결혼이 임박하자

장녀인 이부진이 먼저 결혼해야 한다고 서둘러 결혼했다고 임우재가 증언 했다

그때 까지도 이부진은 아버지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눈치보며 상황을 관망 만 한 것이다 그러다 이건희 회장이 결혼을 오히려 서둘러 하라고 하자

오히려 임우재 부모가 반대가 많자 이부진이 일일히 찻아가 설득 하고 결혼한 이유는 재벌가나 고위 권력자 집에 시집을 가면 시댁 눈치 보느라 경영에 문제 있다고 이건희 회장이 생각하고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재용에게 넘겨줄까봐 삼성 평직원 임우재 에게 고의로 접근하여 결혼한 이부진이 은밀히 자신의 경영능력이 e삼성을 말아먹은 이재용 보다 뛰어나다고

언론 풀레이 까지 하며 삼성전자 경영권을 노렸으나 이건희 회장이 이부진과 이재용을 놓고 고심끝에 삼성전자 경영권승계자로 최종 저울질 하다가 이건희 회장이 9년전 삼성전자 경영권을 이재용에 넘기는 수순을 밟자 이부진이 이혼결심 하며 한푼도 안주고 임우재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방법으로 임우재를 괴롭혔는데도 안나가자 이건희 몰래 임우재와 이혼소송을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이건희 눈치 보느라 못하다가 이건희 회장이 가장 아끼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라고 뒤늣게 이건희 회장이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죽인 이재용이 상속세 문제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병원에 이건희를 저체온 치료한다고 속이고 냉동시켜 입원 시키자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이
급히 임우재와 이혼신청 소송에 들어간 것이다

정말 공포 그 자체다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이 1997년 신라호텔에서 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 삼성x파일을 계획적으로 녹음한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암살하기 위해 8 년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할수 없는 시점에서 2005년7월 터트려 이건희 회장을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 시키고 2005년 11월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이건희 속이다 뒤늣게 알자 이건희 까지 암살한 홍라희 패거리들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이 임우재 하고 1997년 삼성전자 경영권을 노리고 재벌에 시집가면 경영에 시댁눈치 본다고 삼성 평직원 임우재와 정략 결혼을 이윤형을 암살하고 이건희를 속일 목적도 포함한 이부진 얼마나 치밀한 것들이냐 이부진에게 이용 당하여 결혼 당하였다는 것을 임우재가 월간 조선에 우회적으로 인터뷰 하자 갑자기 임우재 항소심 변호사가 지랄 발광을 하며 담합하여 일괄사퇴 하고 월간 조선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X맨이 따로없네 모두 한통속 이라고 하더니 임우재는 월간 조선에 이건희 회장의 경호원으로 삼성에 발을 들였는데 이부진과 사귀다가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하여 물러나려고 했는데 당시 차녀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이 동아일보 설립자 친일파 김성수의 손자 김재열과 결혼이 임박하자 이건희 회장이 장녀인 이부진이 먼저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부진이 반대가 심한 중소기업 사장인 임우재의 부모를 일일히 찻아가 설득 하여 본의아니게 결혼하게 된것이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부진이 홍라희 이재용과 공모하여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하는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할것을 은밀히 합의하고 이건희 회장속이려 8년전에 미리 작전을 짠 치밀한 것들이다 처음엔 이윤형이 교통사고로 위장하려다 실패하면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했다고 꾸미다 들통나면 이건희가 전혀 모르는 나를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쇼를 하고 이윤형이 얼굴 한번보고 자살했다고 이건희 를 속이다 이건희가 나를 찻기전에 나를 암살하거나 누명씌워 교도소에 격리 시키려던 홍라희 이재용의 계획이 실패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나를 찻아 직접 만난건 아니고 은밀히 뒷조사로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패거들이란 사건의 전모를 알게되자

삼성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홍석현 패거리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삼성공화국

세월호 출발일에 입사한 1등항해사 신정훈은 34세(강원식 1등항해사 44세)로 1등항해사 취득 가능한가? 특히 세월호 급변침 침몰을 세팅한 삼성알바 국정원놈으로 의심받는 1등항해사 신정훈이 법정에서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세월호 특조위 놈들은 삼성알바들 뿐이 없나 귀모양이 서로 다른 신정훈이 2명? 최상천 교수의 세월호 대학살에 관한 설명 고의침몰 https://t.co/4uXRDPVAQY


출항 당일 계약한 오마나호에서 갑자기 국정원 관리 세월호로 바뀌고

국정원이 관리한 배는 세월호가 유일했다 당일승선 비정규직 이준석을 희생양으로 부선장 정용준은 침몰 전날 입사하고 세월호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까지 암살한 걸 감추려 세월호 침몰시킨 이재용 세월호 미리 침몰시켜 나라를 뒤집고 26일후 조용히 이건희 까지 약먹여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세월호는 출바하기 전에 유병언과 특수관계인 이재용이 언딘을 목포 해경에 소개하고 내부수리하여 복원력을 없애고 평형수 제거 하고 화물을 3배 이상 실고 지그재그 운행하여 급변침후 화물이 솔려 한쪽으로 기울면 화복할수 없게 만들고 물살이 강한 맹골도 앞두고 국정원 삼성알바 놈이 세팅 한데로 3항사와 조사타수가 360도 급변침 하여 서서히 침몰하며 맹골도에 쳐박아 기다리던 목포 해경놈이 확인수장시킨 천인공로할 범죄 유병언에게 몇천억 벌게 해줬다는 특수관계 이재용
이재용 쓰레기가 이렇게 조용히 끝날꺼 같으면 세월호 침몰안시켰을걸 생각하는데 당시는 이재용이 미래를 모르리 이건희 암살한게 밝혀 질까봐 세월호 미리 침몰시켜 나라를 뒤집고 그후 조용히 이건희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쓰레기들

해운 조합이 세월호 재보험 든 회사중에 하나가 삼성화재....이건희는 죽기전에 2014년 4월16일이재용의 배후로 세월호 고의 침몰 사고를 보면서 감을 잡았을 거로 본다. 안산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풍선날린날 밤 2014년 5월10일 9시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이재용

전원구조 오보는 누구의 작품인가 왜 안밝혀 지는가?

가장 중요한 구조 첫날 인양 전문인 언딘을 투입 한다는 구실로 구조 전문인 해군 특수부대 진입을 막아

단원고 애들을 산채로 수장시킨 계획이 드러난 지휘 체계는 왜 안밝혀 지는가?

왜 세월호가 출항하기 직전에 물살이 강한 위험한 지역에 선장이 직접 키를잡아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법률 시행령이 발효되자 세월호는 출항하여 침몰했는가

유병언 장학생으로 밝혀진 해경간부는 왜 선미로 가서 승객들을 구조하려 하지않고 선수로 제일먼저 선장과 선원들을 모시듯 데려왔는가

당일승선 비정규직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술먹고 왜 동남아 여자를 근처에 두고 술에 취한모습으로 사각팬티 바람으로 제일먼저 목포 해경이 모시듯 구조 되는 동영상을 봤는데

초장부터 언론과 방송이 젖은돈 말렸다고 하는가 화면상 사각팬티 차림이라 돈을 집어넣을때도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후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이 진짜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 유병언의 오른팔

차남 유혁기는 위조 여권을 이용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갔다는 흔적이 있다고 뉴스를 본적이있다

만약에 유병언이 살아 있다면 프랑스에 있지 않을까 유병언과 유혁기는 암살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후지tv에서 단원고 생존자 중에 윤아라는 여학생이 증언한 내용에 선실밖으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니까 목포해경놈이 지는 구명쪼끼 입고 있으면서 윤아 보고 구명쪼끼가 부족 하다고 벗어 달라고 했덴다 바다에 빠지면 죽으란 얘긴가

선내 방송중에 특히 단원고학생은 가만 있으라고 했덴다 소름돋는 방송이 아닌가

단원고 애들을 처음부터 계획 수장 시키려던 증거이다


원래 세월호 선장은 휴가가고 비정규직 선장 이준석이 당일승선하여 희생양 선장으로

이용당하며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부선장 정용준은 세월호 침몰하기 전날에 입사하고

국정원 삼성알바 직원으로 세월호침몰지휘를 한 강력한 의심이 드는 1항사 신정훈도 당일승선하여

법정에선 사람이 자체가 바뀌는 귀모양이 틀린 증거 사진도 인터넷에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에 위험한 해역에 선장이 직접 키를 잡고 배를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법률 시행령이 실시가 된 직후 세월호는 무리하게 출항하여 침몰한것이 과연 우연일까 의심스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2014년 4월16일 오후9시 출항당일 시야가 안개가 많이 끼어 1km에 훨씬 못미쳐 출항예정 10척중에

법을어기고 세월호가 유일하게 출항했다 출항후 지그재그 운행은 침몰 계획한 물살이 강한 맹골도를 앞두고 삼성알바 국정원놈의 세팅 주문대로 여자3항사와 조타수가 360도 급 변침후 적재용량의 3배 이상을 실은 세월호에 화물이 잘쏠리게 만들어 침몰하기 쉽게 만들려고 세월호를 지그재그로 운항한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모든 정황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에 삼성전자 상속하려하자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 뒤늣게 알자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 까지 암살한걸 숨기려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미리 고의 침몰시켜 단원고 애들을 생수장 시킬 음모를 계획한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더러운 음모를 밝힌다

그런데 2014년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병언 시체를 순천경찰이

발견 하고도 40일이 지나서 그 시체가 유병언 인지 알았덴다 그말을 강아지도 믿지 못하는건

전라남도 순천은 유병언이 도망 갔다고 한국의 모든 방송과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들며 검.경이 대규모로 수색 하던 지역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시체가 반백골이 되서 밝견 되었다 그 시체를 관찰한 사람들중 일부가 치아가 틀리고 유병언은 손가락 마디가 하나가 짤린게 있는데 발견된 시체에선 그런게 없다고 유병언 시체가 아닐꺼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국과수에서 유병언시체가 맡다고 하며 유병언 가족도 맡다고 했다

짜고치는 고스톱 이라면 밝 힐 재간이 없다 삼성공화국에선 국과수 까지 조작하는건 일도 아닐 것이다

만약에 그 시체가 유병언이 아니라면 몇달전에 미국에서 죽었다는 유병언 동생일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방송과 언론이 유병언 시체가 누어 있던 풀 에 구더기를 법 의학자 들이 조사 하면 유병언 시체가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알수 있어 사건이 어느정도 실마리가 풀 릴 거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바로 순천 경찰이 유병언이 누어있던 풀을 말끔이 짤라 더이상 실마리를 경찰스스로 풀수없게 만드는 회괴한 일이 벌어져 조직적인 음폐 라며

그 시체는 유병언이 아닐꺼라는 말들이 많았다 유병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죽었다면 세월호 침몰 직 후 구원파나 삼성알바들인 국정원이나 전문 킬러 들이 암살하고 다른곳에 보관하다가 순천 매실밭에 던져 놨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에 살아 있다면 프랑스에 유혁기와 같이 있을 확률도 배제를 못한다 미국에 있던 유혁기가 여권을 위조하여 프랑스로 갔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 유병언이 은밀히 사둔 땅과 집이 있다 그런데도 조용히 아직 잡지 않은것은 이미 유혁기나 유병언은 과거

김형욱 처럼 암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배후를 알고 있는 그들을 이재용이 살려 둘리가 없다

그런데도 구원파 순천경찰 국정원 인천지검 까지 한통속으로 순천에 가지도 않은 유병언이 순천에 갔다고

언론과 방송 특히 종편 방송들이 연일 바람잡아 나라를 뒤집도록 떠들어 국민들의 혼을빼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걸 조용히 덮으려는 홍라희 이재용의 계획 되로 움직인 더럽고 부끄러운 삼성공화국


철근 410톤이 밝혀지자 왜 이정현 녹취록이 나올까

삼성이 해경과 유착관계인 언딘을 목포 해경에 소개했다고 방송 보도 까지 된 적이 있다

유병언과 특수 관계인 이모씨와 김모씨로 방송에 나왔는데

왜 본명을 밝히지 않는가 특히 이모씨는 유병언에게 수천억을 벌게 해줬다고 말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특히 이모씨가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이 확실하다 그걸 방송에서 철저히 감추고 있다 보도된 인물은 김모씨는 김기춘이 확실하다 6공화국(노태우 정권) 민정당 시절 법무부장관이었고, 구원파 교주이자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은 당시 민정당 재정위원이었다.

오대양 사건 때 유병언이 민정당의 정치자금줄이었고, 그래서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유병언을 봐줬다는 의혹이 있다.구원파 금수원의 '우리가 남이가' 현수막은 이런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의 배후 이재용의 지시를 받은 유병언을 교주로 모신 구원파가 김기춘 이름을 언급한것은 세월호사건에 김기춘이 얼마나 개입 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원래 진짜 배후는 감추는데 말이다 김기춘을 이용하여 박근혜에게 모든걸 뒤집어 씌우려 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차음엔 박근혜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알고 진실을 음폐하려 한다면

박근혜도 공범이란 멍에를 벗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가 삼성을 검찰에 수사 의례 해도 검찰이 수사 하는 척 하고

제대로 수사를 안할 공산이 거이다

검사들이 박근혜 지시를 어겨 옷을 벗으면 삼성법무팀에 특채되어 온갖특해를 누리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쉬운 특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지시를 어기면 정권은 5년 미만 인데

정권이 바뀌면 삼성공화국의 온갖 모함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것을 외국인이나 일반국민이 이해할수도 없고 그들이 이해하려 노력하는사람도 거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성공화국의 음모가 알게 모르게 판을 치는 세상 인 것이다

그런걸 박근혜 같이 상황 판단이 빠른 여자가 모를 일이 없다

삼성공화국이 얼마나 파워가 막강하냐하면 임우재가 이부진과 이혼소송에서 상고까지 가려하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속마음은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여 내심 삼성전자 까지 물려주려 하자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 들 이라고 말하자

말하자 삼성알바 들이 이미 삼성전자는 이재용에게 상속을 마무리 했다고 조작하여 거짓말 하는데 2000년 전 국회의원 강용석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총애 하며 후계자로 키우려는것을 알아 줄을 서려고 아부하려 그런건지는 몰라도 갑자기 삼성그룹 후계자는 이재용이 되서는 안된다고 말한적이 있다

강용석 깥이 눈치보며 출세하려 안달인 사람이 이재용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을 어리석게 절대 안한다 강용석이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 하는 것을 ​

알고 일찍 줄을 서려고 나름대로 머리를 쓴것이데 강용석이 미처 생각못한것은

이재용이 이윤형을 암살하고 그후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 하리란 상상도 못해던 것 같다 ​

그후 강용석은 사회에서 매장되듯 일이 꼬이는게 연속이었다 물론 배후가 삼성이란 법적 증거는 발견하기 힘들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에게 기본적인 거만 상속을 하고 막대한 상속을 마무리 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을 부쳐 최종결정을 마무리 하지 않은 상황이었던것 같은데 그증거로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삼성전자 경영권을 강도질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을 장례를 치르지 않고 저체온 치료로 냉동시켜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20층 특실을 제한구역으로 만들고 입원시켜 살아있고 휠체어 타고 재활훈련 한다고 처음엔 속이며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외에는 아무도 출입을 금지시킨 이유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에 대한 상속을 마무리 하지 않아 삼성전자 지분이 0.5% 미만이라

경영권을 행사할수 없었기에 도둑이 제발저리다고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에게 8.7% 가까운 지분을 상속한 에버랜드를 이재용이 2014년7월 삼성그룹 순환출자 최상위 기업 에버랜드을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바꾸어 2015년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이 되는냐 불발이 되느냐에 운명을 걸며 불안에 떨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합병이 승인이 안되면 이재용은 삼성전자 지분이 0.5% 미만이라 경여권을 행사할수가 없어 큰일 이었다 비싼차를 타면 주차장 경비들에게 대접을 받아도 싼차를 타면 무시를당하는 한국의 현실은 합병승인이 불발이 되어 삼성전자 겨영권 승계를 하지 못하면 이재용이 저지른 범죄와 불만들이 터져 나올수도 있어

이재용이 운명을 걸었는데 이재용의 시나리오 대로 합병승인이 되어 삼성물산의 4.1% 삼성전자 지분을 얻어 도합 4.6% 지분을 확보하여 삼성전자 경영권을 행사할수 있었고 그후 대우조선 해양은 분식회계를 조작하여 늘려 막대한 거금의 대출을 받아 지금은 문제가 큰데 반대로 삼성전자는 매출등을 조작하여 엄청줄여 삼성전자 주가를

놀이동산 롤러커스트처럼 떨어트려 이건희 회장의 계열사와 삼성생명 본사 건물들을 여러채 매각하여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여 삼성잔자 지분을 더욱늘리고 다시

원상태로 올리는 것이다

법을 개정하여 만원이던 인지대를 2015년 7월부터 인지대를 무려 21억원을 내야 한다고 인상하는 법개정을 시행한단다 언제 그런법을 만들었는지 정말 삼성공화국이다

그러자 상고까지 가서 시간을 끌려던 임우재가 급히 이혼분활 소송을 하는것이다

그것은 이부진의 이혼이 끝나기전에 이건희 회장의 시세에 따라 변동할수 있는 12조 가량의 지분과 부동산까지 합치면 15-17조 가량의 막대한 상속이 이건희 회장의 죽음으로 자동 상속이 있기전에 이혼을 빨리 끝내야 하는 이부진의 작품이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건희가 죽은 다음에 이혼을 하면 자동 상속으로 엄청난 이건희의 재산을 자동상속 받는 이부진 이혼 분할 대상으로 임우재에게 줘야 한다고 하지만 삼성공화국에서 검찰과 법원이 한통속으로 삼성편이라 이부진이 승리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이건희 재산을 상속받아 이혼분활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들로 축적한 재산이 적나라하게 들어나 혹시나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조그마한 단서가 나올 가능성에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이 법까지 바꿔 임우재가 낼수없는 21억원의 엄청난 인지대를 인상하게 법까지 바꿔

2016년 7월부터 내야 하게 만들어 당장 이혼소송 항소심 항소를 2016년8월로 연기한 임우재가 상고까지 재판을 끌고갈수 없게 만들어 2016년6월 1조2천억의 이혼분활 소송을 하는 임우재

내가 볼땐 삼성공화국에선 검찰과 법원 모두 삼성가 개노릇을 하고 있어 이부진이 승소할 가능이 크다 더구나 이건희가 죽음로 자동상속하는 엄청난 재산은 이혼분활 소송에서 제외시키려 만원하던 인지대를 21억원으로 인상시킨 교활한 이부진은

재판 과정에서 이건희가 죽음으로 자동상속하는 재산은 들출수가 없어 삼성의 비리를 감출수가 있어 부담도 없다 현재 이혼분활 소송을 건 것은 모두 이건희가 자녀들에게 비교적 비리가 없는 재산을 결혼전에 상속한것들 뿐 이라 그래서

이혼분활 소송을 해서 그것들을 들춰바야 그게 걱정될게 없는 이부진

그런데도 이부진이 임우재를 어르고 달래 뒷돈 을 좀 주며 합의로 이재용과 임세령을 결혼처럼 ​조용히 마무리 하지 않고 메스컴이 대대적으로 떠들게 배후조정하며 재판을 계속 끌고가며 은미 하는 속내는 엄청난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과 임세령의 결혼과 이혼은 재벌가 끼리 만남으로 그렇게 이용할 광고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임우재는 이용할 가치가 크다 ​

사실 수백억 짜리 광고 10개 보다 이혼소송이 전세계에 엄청난 광고 효과가 있다

얼마전 미국의 엄청난 복권 담청자가 연일 보도되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는데

1조2천억은 그보다 얼마나 더많은 금액인가 자 봐라 삼성은 저런 거지를 데려다가 딸까지 주고 결국 이혼을 하지만 이런엄청난 돈을 벌게 해주는 꿈같은 기업이다 ​

라고 왜곡하게 만드는 상술인것이다 그러나 임우재는 1조 2천에 10%로도 안되는 아니 재판에 져서 거이 돈을 챙기지 못하고 나갈 확률이 높다 그런데 소송을 내며 상고 까지 가려곤 한것은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 이란걸 알고

계속 압박하여 합의금을 뜯어 내려고 한것이다 이건희가 죽었다고 발표하고 장례식을 치뤄 이건희 재산이 이부진에게 자동 상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혼분활 신청을 하게되면 이혼분활 소송대상의 상속재산을 상세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하고 세월호까지 침몰시킨 더러운 단서가 들어 날수도 있기에 이부진이 재판 에서는 판검사 들이 모두 삼성편이라 이길수는 있지만 그런걸 겁을 내어 이건희 죽음을 발표하기 전에 이혼절차를 끝내려고 법까지 바꿔 임우재가 항소를 하지 못하도록 만원 하던 인지대를 2016년7월 부터 21억원으로 올리는 더러운 삼성공화국 이다

그런 자세한 내용은

외국이나 일반국민은 모른다 그저 1조2천억원을 상당수 받는줄 안다 ​

이런 복잡하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던 외국인이나 한국의 다수 일반​국민들이

전세계 국가로 번역되어 뉴스나 기타 3류 잡지등으로 보도되는 것을 읽고 보고

거지같은 임우재를 데려다 사람만들어 놨더니 이혼분활 소송걸어 1조 2천억을 뜯어 내려 한다고 이부진은 천사로 왜곡하고 임우재는 망나니로 왜곡하여 퍼질게 뻔하다

그것은 삼성에 엄청난 광고 효고가 있다 ​진실은 그게 아닌데 정반대로 왜곡되어 그렇게 삼성에 엄청난 광고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년놈들이 치밀하고 교활한 것들이다 ​


jtbc는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의 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손석희는 고의 침몰을 알고 있었다

세월호를 유병언과 특수관계인 이재용이 침몰시켜 생수장 시켜 나라를 뒤집고 당일승선 비정규직 선장 이준석을 희생양으로 술먹이고 동남아 여자 붙쳐 빠구리시켜 키도 못잡게 만들고 이준석에 뒤집어 씌워 이건희회장을

조용히 암살하려 계획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렇게 조용히 끝날꺼 같으면 굳이 세월호 까지

계획 침몰시키지 않아도 될껄 뒤늣게 생각하는데 당시는 미래를 몰라 혹시 밝혀 질까봐 불안에 떨며 무리하게 세월호침몰시켜 이건희 암살을 감추려한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언딘을 목포 해경에 소개한게 이재용이고 유병언과 특수관계로 수천억을 벌게 해준놈이 이재용인데

언론과 방송이 철저히 감추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을 한지가 8년이다

오바마는 콜롬비아 대학에 어려운 환경에서 운좋게 편입하여 탄력을 받아 하버드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물이다 그렇게 똑독한 인물이 요즘 흑인 인권단체의 시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경찰에 대한 수사권을 한국 처럼 폐지 시키고 인종차별 범죄에 대해서는

흑인 인권단체에 수사권을 주어서 미국경찰을 불법 살인을 1급살인죄로 처벌한다면

절대 미국경찰의 공권력 악용을 함부로 못할것이다

미국경찰이 기분 나쁘면 흑인들을 장난삼아 죽이고 셀프디스로 수사하여 간단히 종결처리 하니까

심심하면 그런일이 계속 발생하여 흑인들이 경찰에 대해 공포를 느껴 원인 제공은 경찰이 한 것이다

역시 한국도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문둥이 깽깽이들 개처럼 이용해 문둥이 깽깽이 쓰레기들 개도관이나 공권력을 악용하여 놈들 비리를 들추면 미국 경찰이 흑인들 죽이듯 그렇게 조작 하며 장난을 치며 미국의 인종차별 이상으로 장난을 치며 세월호를 침몰시킨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이 만만한 경기도 단원고 애들을 다수를 포함하여 304명을 산채로 수장 시킨 음모가 백일하에 들어났는데 흑인들은 시위라도 하며 불만을 표출하는데 경기도인들은 무엇을 하는지

어린학생이나 노동자들은 이해를 하지못해 그런다지만 경기도 서울 지식인들은 눈치만 보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 하니 공범이나 마찬 가지로 개가 웃을 일이다

인양 전에 이미 고의침몰을 암시하는 기사내용


[헤럴드경제=김양규 기자]세월호 사고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한 쟁점은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메리츠화재에 선체보험을 가입할 당시 맺은

약관의 준수여부와 청해진해운 경영진이 세월호의 감항능

력(堪航能力ㆍ안전항해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느냐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보험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세월초 침몰 사태 직후 정부 조사결과를

보면 사고 선박인 세월호는 불법 개조에 평형수마저 조작했으며,

과적에 항로변경까지 보험사 면책에 해당되는 조항이 너무 많다”며

“특히 산업은행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한 메리츠화재나 법무법인에서

는 이 같은 점들이 선박의 감항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에

주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영국해상보험법을 준용하는 국내 보험사의 경우

영국 법원의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례를 감안하면 메리츠화재

역시 면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4항은 ‘어느 선박이 부보(선박이나

적하 등을 보험의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일)된 해상사업에서

통상 일어날 수 있는 해상위험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모든 점에서

상당히 적합할 때에는 감항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39조 5항은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했다면 보험회사는 감항능력이 없어 발생한 일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즉 청해진해운의

경영진들이 세월호가 감항능력이 없음에도 출항시켰다면 보험사는

면책이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낡은 선체에 평형수 조작, 과적 등 밝혀진 여러 정황상

세월호는 출항을 시켜서는 안되는 선박이었다고 봐야 한다”며 “이는

보험사 면책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암살을 덮기 위해 세월호를 침몰시킨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 계열사와 부동산 팔아 한편으론 삼성전자 지분을 더욱 늘리고 또다른 한편으로 온갖 더러운 은밀한 로비로 돈으로 범행을 덮으려 하고 있다


당시 야당은 세월호의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세월호문제와 삼성문제 만큼은 여.야 모두 한통속

으로 감추려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원들이 세월호 침몰 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집권 여당뿐 아니라 진실을 밝혀야할 야당들도

밝히는척 하면서 헐리우드 액션했다 삼성에 관해서는 여.야 모두 침묵시키는 삼성공화국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은 해경의 구조의무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안하고

해경의 지휘책임을 지고 잇는 해양수산부장관에 대하여도 한마디도 안하고

세월호 학생전원구조 오보가 어떻게 발생 하 여 이것이 구조 업무에 어떤 영행을 미쳣는지

한놈도 이야기 하는 놈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사고에 무슨 관련이 있길래 세월호 비극에 대하여

계획된 헛소리

헛발질만 하였는가

세월호 비극에 대하여 박영선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국민에게 밝혀라


"특히 이들 철근 가운데 중량톤수로 130톤(26톤 트럭으로 5대) 가량은

선박의 복원성을 약화시키는 선수갑판(C데크)에 실린 것으로 확인된다.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었을 당시


제일 먼저 쏟아져내린 것이 철근과 H빔이었다."

"410톤의 철근이 서류상 286톤으로 축소돼 발표된 이유도 밝혀져야 한다.

세월호에 실린 철근은 서류상 286톤으로,

청해진해운의 오랜 거래처인 명성물류가 선적한 것으로 돼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7nChfQUVWI

정부와 검찰은 밝히지 못하는 세월호의 진실

“[200일 특집다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게시일: 2014. 10. 30.


게시일: 2014. 10. 30.


제목-플래시백 ( flashback )


한국 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등록을 완료한 상태 입니다

-서론-
(111p-우주론의 물음은 현재의 단서에서 시작 합니다
밤 하늘에 수놓은 은하와 별 그리고 텅빈 공간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는 우주의 질서처럼 보이지만 연구자
한테는 심각한 물음을 던져 줍니다
138억년전의 우주 진화의 역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 났기에 고르게 퍼진 태초의 우주 물질이 이리저리 몰려 지금처럼 은하와 별 행성이 생기고 생명체도 출현할수 있었을까?

답은 과거를 간직한 현재의 추적을 통해
추론 됩니다 현재의 수소와 헬륨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우주물질의 독특한 화학적 원소 비율 그리고 특정한 우주온도 ?우주배경복사-물질-은하 ?분포의 상태를 실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과거의 조건들을 거꾸로 추적하면 태초의 우주의 모습을 복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구자 들은 사건 현장에 남은 현재의 단서를 분석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과학 수사관이나
현재의 발굴된 화석을 분석해 수십만년전의 역사를 짜맞추는 고고학자들의 112-113-모습과도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113
-인문학의 창으로본 과학
현대 과학이 다시 쓴 창조신화 한겨례출판사 2006년 박창범 고등과학원 물리학부교수 정재석 이화여대 교수)

기본적으로 모든 우주 만물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그모든 고난과 힘든 환경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것을 희망 이라 부른다

(타임지를 읽고 있다고 하자 논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버지아울프 파도중에서 - 출판사 도서출판솔 발행일 2004년08월03일 역.박희진)
-본론-
서울 용두동 당시 까지 있던 기와 지붕의 월세방의 거울 앞에서 동대문 시장에서 큰 마음 먹고 20만원 주고산,검은 양복,옷 매무새를 연신 만지며
머리를 정돈하고 역시 동대문 이스턴 호텔 근처 당시 길거리 가게 에서 산 2만원 짜리 구두를 군대 시절 배운, 물광 내는 ,방법으로 구두에 물광을 입히고,
,동대문역 근처 가게 에서 싸게 2만원 주고산 007 가방 안에
명동에서 ,15만원 주고산 중고 삼성카메라 와 후지필름 한통을 사서 007가방에
집어넣고, 교보문고 에서 산 미국 서부일주,관광여행 안내 책과, 간단한 회화를 할수있는
영어 회화책 단 한벌 갈아, 입을수 있는 겉 옷과 속옷 양말 두어개 그리고 치약과 칫솔 수건 하나를 007가방에 다 안들어 가는 것을 어거지 로, 쑤셔넣듯 집어 넣고 옛날식 기와집의 창호지 방문을열고 길을 나서며 집주인 에게는 뭔길을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 혹시 라도 공항에서 빠꾸 맏아서 되돌아 올 수도 있기 때문 이다
집 대문을 나서기 전에 거금 450만원 주고산
미국 관광비자를 확인하고 난후 드디어 김포공항 을 향해 길을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것 을 운명에 맡기기로 했었지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여행사 가이드를 만나기로한 김포 공항2층 출국장 로비로,발거름 을 재촉하여 도착 하고 보니
벌써 여행사 직원은 이미 와 있었고 6박7일 미국서부 관광일주를 하려고 온 사람들 에게
둘러 싸여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하자 여행사 직원도


2p-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가이드는 오늘 출발하기로 한 사람들의 명단을 부르기 시작 하였다 명단 확인이 끝나자,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LA 현지 관광 가이드가 마중나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여행사 직원은 회사사정으로 갈수가없고 샌프란시스코 공항 입국은 개인적으로 통과하는 것이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여 샌프란시스코 공항 입국을 못하고 되돌아 왔을시에는 여행사에서 책임질수 없으며
그러므로 비행기 팃켓값은 환불해 줄수 없다고 했다
모두 즐거운 여행이 되시라며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여행사 직원이 돌아가자
여행객들은 개인적으로 비행기를 타기위해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 하였는데
왠 짐들이 그렇게 많은지 일가족이 여러명이 함께 이민 이라도가듯 짐을 잔뜩 부치는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제일 짐이 적었다 양복 차림에 007가방 달랑 하나들고 타는 사람은 나뿐 이었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구 쪽으로 향하니까 주변에 배치된 TV 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메인 경기장으로 사용한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에서 대만가수 유덕화가 공연하는 노래 소리가 들리기 시작 하였다
그날이 정확한 기억이 나질않아 그후 출입국 기록을 확인해보니 1999년 6월25일 이었다 대략 1990년대 초반쯤인가 유덕화 주연영화 지존무상2 를 나도 극장에서 봤다
그때 상대 여배우가 대만출신 오천련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오천련이 애인을 위해 희생하면서 죽는 장면인데 유덕화의 노래가 흘러 나오면서 상당히 감성적인 오천련의 모습이 매력적이며
감동을 받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 기억하는 오천련의 매력적인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아련히 남아 있다
90년대 초 부터 그들은 그전에 한국에서 영웅본색에 출연한 주윤발과 천녀유혼의 왕조현과 예스마담의 양자경과
함께 한국에서 인기가 꽤 있었다
성룡 주연영화도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나는 별로 재미를 못 느꼈다
브르스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워싱턴주립대 철학과를 나온 절권도 창시자 이력의 독특한 배우로

연기력은 부족 하지만 독특한 개성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리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1940년 개봉작 흑백영화 애수를
어머니 살아 계실적에 제주시연동 에서 함께 가장 감명 깊게 본 기억이 난다
나는 아쉽게도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영화 전체를 아직 본적은 없다
특히 비비안리 주연의 영화 애수의 주제곡 스콧틀랜드의 민요 올드랭 사인이(AUld Lang Syne) 영화를 더욱 빛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비안리가 가장 명배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중에는

True Grit, 2010 제작

요약미국 | 어드벤처, 드라마, 서부 | 2011.02.24 개봉 감독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제프 브리지스, 맷 데이먼, 조슈 브롤린, 헤일리 스테인펠드더 브레이브를 tv에서 현실감 있게 본 기억이 난다

줄거리는 14세 소녀 헤일리 스테인펠드더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찻아 복수하는 내용이다

영화 잭리처.1

주인공 톰크루즈가 누명을 씌운 악당의 배후를 남다른 추리로 밝히는 장면도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난다


1930년대 미국의 갱단을 주름잡던 알카포네의 오른팔 이었다는 소문이 있으며 갱단을 주름 잡았다던 소문의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제이슨리가
어릴때 하와이 이민선 배에 오른 하와이사탕수수밭 노동자 조선인 최초 멤버로 미국땅을 밟은 지금의 한국의 경기도 출신이란 사실을 아는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계 제이슨리는 시카코는 물론 라스베이가스 도박업과 헐리우드까지 영향력을 미치며
에바가드너와 친분이 있었고 그레이스켈리를 발굴하여 스타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레이스켈리는 그후 모나코 왕비가 되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동화속 신데렐라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대명사가 되기도했다

(참고자료-'황색 돌풍'이라고 불렸던 전설이 있다. 암흑가의 보이지 않는 손, 그레이스 켈리의 숨겨진 연인, 도박계의 신화…. 40~50년대 시카고의 밤을 주름잡았던 '제이슨 리'(한국명 이민석.)가 전설의 주인공이다.
KBS 수요기획 은 베일에 가려진 이 인물을 일년간 추적해 15일 밤 12시 '미국 이민 100년-시카고의 전설, 제이슨 리'란 제목으로 방영한다. 이를 위해 시카고 역사박물관과 언론사 자료들을 뒤지고, 가족들과의 인터뷰도 어렵게 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제이슨 리는 그야말로 격동의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그는 1900년대 초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한 전형적인 이민 1세대. 사탕수수밭에서 중노동을 하던 어느 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본토행 밀항선을 탄다.
시카고의 한 고아원에서 배고픔과 씨름하며 '정글의 법칙'을 체득한 그는 30년대 말~40년대 초 시카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박 사업가로 떠오른다. 마피아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마피아는 아니었다고 한다.
제이슨 리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모나코 왕비가 된 할리우드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와의 관계다. 제작진은 그와 그레이스 켈리의 염문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제이슨 리는 그레이스 켈리가 무명이었을 당시 많은 물질적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그녀는 제이슨 리가 결정적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56년 그는 모나코에서 사기 도박을 벌이다 구속된 적이 있다. 중한 처벌이 예상됐지만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도움으로 무사히 모나코를 벗어났다고 한다.
'미국 이민…'에선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면모도 공개한다. 제이슨 리와 도산 안창호 집안과의 끈끈한 관계를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미국 본토에 혼자 남은 제이슨 리의 유년기는 암흑 그 자체였다.

이런 그에게 따뜻한 민족애를 가르친 여인이 있었는데, 안창호 선생의 아내 이혜련 여사였다. 제이슨은 후에 도박장 운영을 도산의 딸 '수라 안'에게 맡겼을 정도로 도산 집안을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그는 언젠가 도산에게 "저는 어두운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작을 맡은 이인수 PD는 "존재 자체가 신비에 가려 있어 제이슨 리의 족적을 찾는 작업은 무척이나 힘들었다"며 "그의 실체를 제대로 밝힌 최초의 결과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
중앙일보 -중앙일보 2005년 5월21일자 보도 )


영화 카사블랑카와 대지의 여주인공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잉그리드버그만도 명배우 였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줄리앤드류스 주연의 사운드오브뮤직도 명작 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빅터영의 서정적인 테마음악이 배경인 알란래드(AlanLadd) 주연의 서부영화의 대명사 세인과 스티브맥퀸 주연 대탈주와 빠삐용을
감명깊게 본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릴때부터 영화 구경 하는걸 즐겨 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영화광 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 같다
어머니는 당시 한국 배우들의 이름 들을 줄줄이 외우고 다니실 정도로 영화를 즐기셨다
어릴적 어머니를 따라 영화관에 여러번 간적이 난다
그중 에서도 로저무어 주연의 007 나를사랑하는 스파이를 1976년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나 그리고 죽은 여동생과
이부누나와 함께 만나 극장에서 본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쇼생크 탈출 이란 영화도 현실감 있게 본 기억이 있다
쇼생크탈출이 실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란
소릴 들은 기억도난다
특히 영화 내용중에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촉망받는 은행간부 듀프레인 (팀로빈슨) 이 자신의
부인과 프로골퍼 출신인 정부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교도소에서 절도죄로 2년을 받고 형량이 1년정도 남은 듀프레인의 누명을 밝혀줄 토미라는 젊은 사람을 기적적으로 만났는데
그얘길 교도소 소장에게 얘기하자
그동안 교도소 소장이

듀프레인에게 온갖 불법 탈법 돈세탁 하는 장부 관리를 듀프레인에게 맡겨
만약에 듀프레인이 토미의 증언으로 누명이 밝혀져 출소하면
교도소소장이 그동안 저지른 비리가 들어날 것을 염려하여 듀프레인이 절대 비밀로 하겠다고 맹세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밝혀줄 토미를 밤에 밖으로 비밀리에 교도소담장 근처로 할말이 있다고 속이고 불러내 소장이 듀프레인의 누명을 밝혀줄 사람인지 확실히 확인 하고서
탈옥 누명을 씌워 토미를 교도관을 시켜 총으로 쏴죽인 장면과 비슷한 더러운 일 들이 요즘 세상에
빙산의 일각으로 들어나고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누구나 동영상을 찍을수 있어서
과거에는 밝힐수 없었던 진실이 동영상으로 바로 찍어 양심있는 시민들이 밝힐수 있는 시대다
얼마전 미국 경찰이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흑인의 뒤에다 데고 총을 무려 8발이나 쏴 죽이고
자신의 전기총을 흑인옆에 던져놓고 전기총을 강탈하여 백인경찰을 공격하려 하여
총을 쐈다고 정당방위로 조작하려다 마침 주변에 몰래 동영상을 촬영한 시민의 제보로 증거가 확보된 사건인데 동영상이 없었다면

적당히 정당방위로 끝날 사건이었다


결국 듀프렌인은 기적적으로 19년만에 탈옥에 성공하여 교도소 소장에게 복수하고
교도소소장 비자금 계좌에 가상인물로 은행에 입금한 35만불을 찾기위해 쇼셜시큐리티 넘버등 여러 신분증을 위조하여 은행에서 찾아
거금을 챙겨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를 넘어 영화 쇼생크 탈출에 성공한 엔디 듀프레이에게 희망을 상징했던 곳은 지와타네호(Zihuatanejo)
Zihuatanejo는 멕시코서부 태평양연안의 관광도시
규모는 큰편이 아니고 세계적인 휴양도시 게레로주의 주도인 아카풀코(Acapulco)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발음은 '시우아따네호'라고합니다 미국인들도 스페인어읽을시에는 스페인어발음을 존중해주는편입니다 절친했던 흑인 레드가 40년만에 가석방 되면 비밀리 가르쳐준 장소로 가보라고 하여 결국 반신반의 하던 레드가 가서 듀프레인이 숨겨 두었던것을 찾아 레드는 가석방에서 금지구역을 이탈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생애 2번째 범죄를 저지르고 먼길을 여행하여 지와타네호(Zihuatanejo) 해안가 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줄거리다 내가 영화 배우로는 출연하는건 힘들 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화 제작자나 감독으로 모든이에게 꿈과 희망을 줄수있는 영화를 만들수 있다는 자신감과
꼭 그런 영화를 만들어 보고십은 욕망에 넘친다
나는 그동안 일본 인도네시아 UAE 등 몇몇 나라는 가보았는데
생에 처음 그토록 가장 가보고 싶었던 미국을 향해 샌프란시스코발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다니 사실 꿈만 같았다 그런중 에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재수 없으면 되돌아 오는 수도 있다니 내 비자가 돈주고 산 비자 라는게 들통 나서 되돌아 온다면 그동안 일본에서 번돈 미국 가기 위해 다 썼는데 나는 거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설레임반 걱정반 이었다
어짜피 인생은 도박이다 한국땅 에서는 고아보다 못한 처지
이곳 에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무엇 보다도 불상히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할때 너무나 억울해서 한국 에서는 모든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 도저히 살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운명의 주사위에 맡기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탑승 하려하자
비행기에 탑승 하기 직전에 한국 내에 연락 가능한 전화 번호를 갑자기 적으라고 그래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에 당황하여 생각나는 데로 아무전화 번호나 적어 주었다
일본행 비행기 탈때는 이런일이 없었는데 미국행 비행기는 상당히 까다롭게 관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일일히 전화해서 확인하는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됐다
잠시후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이륙하기 시작 하였다
비행기가 어느정도 고공에 이르자 스튜어디스 들이 지나 가는데 비행기는 싱가폴에어라인으로 다국적 여자들이 스튜어디스로 일하는것 같았는데 한국 여자로 보이는 스튜어디스가 두명 정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국 여자로 보이는 스튜어디스에게 버드 와이저를 달라고 하여 들이키며

잠을 청하였다 긴장 했던 탓에 잠이 잘 안왔는데 그후 한국여자 스튜어디스 에게 잠이 않오니 버드와이저 캔을 몇개를 더 달라고 하자 고맙게도 당시 나의 청을 거부하지 않고 주어 차례로 연속으로 들이키자
맥주 기운에 긴장이 좀 풀리는지 잠이 오기 시작 했는데
캄캄한 어둠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였는가 모든것이 나의 잘못만 이란 말인가

그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나의, 심성을 이렇게 만든 인간들과 원인은 분명이 존재한다, 나는 이렇게, 핑계를 생각하며 내마음을 위로했다,나는 잠에 취해서 점점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영정 앞에서 군복을 입고 하염없이, 우는 , 내모습이, 보이더니 점점더 어린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참으로 미인이셨다 뜨게질도 참 잘 하시고 말도 잘하시고 주변에 친구분들도많으셨지
어머니도 자식이 딸렸지만 아버지는 자식이 5명이나, 딸린, 그것도, 딸하나에, 아들 4명이 딸린 키작고 볼품이 없는 50이 넘은 상처한 15살 이나 많은 홀아비에게
재혼을 하게 될 줄이야 어머니도 꿈에도 생각지 못하셨겠지 더구나
그중에 한애는 오줌을 매일 쌓대요 친어머니가 아니라서 일부러 오줌을 싼건지,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매일 이불에다 오줌을싼 그놈은 어머니 명의로 돼있던 집과땅 다 빼앗아 지금 100억원이 훨씬 넘는 부자가 되어있다 그 옛날 세탁기도 없던 시절 빨래 방망이로 두둘겨서 그 힘든 이불 빨래를, 매일, 하셨다니 그나마 여름에는 났지
1977년도 당시 유명했던 한일 자동 펌프를 우리집에 설치해서 수도 설치를 했다 그 옛날 그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손 빨래를,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 하셨을까 ,
더구나 ,내가, 그집에 ,있는동안 ,그놈들은, 어머니라는, 소리를 단, 한마디도 ,안하는, 거야
그놈들 ,진짜 나쁜 ,놈들이지, 어머니 말씀도 ,잘안듣고, 대들기 가, 일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욕을 하며 싸우는 ,일이,많았어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당하기 ,일수였지,결국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 방과후 ,집에 와보니 , 그놈 들의 ,등살에, 스트레스 를, 받아서 ,쓰러지셔서,
한양대,병원 ,응급실 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가보니 어머니는 산소 호흡기 에, 의지 하며,생과사의 .갈림길 에서 고통받고,계시 었다
1주일후 깨어 나셨지만, 결국 .반신불수가 .돼셔서 . 친딸이 있던, 제주도로, 나를, 대리고, 가셨다 그때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도,어머니,병간호,하시려, 같이, 가셨는데
나는, 하도, 억울해서, 어머니, 같으신 분이 뭐가 아쉬워 ,저런 ,집구석 에,들어 가셔서,남의 자식이 한둘도,아니고 ,아들 4명에,
딸하나 있는 집구석에 가셔서, 나를, 이지경, 만들고,어머니, 또한 ,반신 불수가 ,돼셔서 ,내마음을, 분노로, 들끌게 , 만들 었냐고 ,그리고
집문서, 땅문서, 다 뺏끼고 ,제주도로, 귀향가듯 가는 신세가 ,됐읍니까,라고, 원망조로, 따지자,처음에는, 안살려고, 했는데 ,늙은, 홀애비와, 애들 5명이 ,사는게, 불상해서살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눈물을 ,흘리, 시더라
나중에 미국가서 들은 얘긴데 사람은 누구를 만나 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 될수도 있다고 한다 미국 ,공항에 ,누가 ,마중을, 나오, 느냐가 , 미국 에서의, 삶이, 결정 될수도 있다는,것이다


(인생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 오락 가락 하는 시계추와 같은 것이라고
쇼펜 하우어는 말했다 )
( 어머니 당신 어머니 께서 그러하셨던 것 처럼 성공은
결단과 노력을 통해서 오며 실패는 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부족 한 탓이라고 믿었다

나도 그말이 맞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내가 일생 동안 열심히 일한 것도 사실 이지만 피할수 있다면 누가 실패를 바라겠는가 운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좋은가정 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제인구달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나라 와 인종과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수 없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 피나는 노력 끝에 자수성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운이 좋아 어려울때 누군가 도와 주었기에
성공할수 있었는데 성공하고 난후 그들이 그것을 망각하고 싶어 하기에 모른척 하는것이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의 도움없이 성공할수 없음은 물론 누군가의 도움이나 희생이 없으면

6p-살아가기 조차 힘들 다는걸 알아야 한다 가장쉽게 예를 들자면
아무리 뛰어나고 성공한 인물이라도 어머니들의 10달간 임신기간과
산고의 진통속에 탄생하는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것 만으로도 감사할줄 알아야 한다
무방비 상태의 아기를 어머니가 돌봐주지 않는다면 결코 살수가 없기에
우리들이 살수있었던건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덕이다
운 또한 우리 인생에 엄청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주가 빅뱅후 지금같이 진화할수
있는 확률은 로또 복권1등 당첨은 비교조차 무의미한 희박한 확률인데
그 우주 에서도 생명체가 살수 있는 회귀한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 중에 그것도 여러 국가나 인간들 중에
사람구실 하며 살수 있는 국가나 가정에 태어난게
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것만 보면 운이 90%를 차지 한다고 본다
니들이 만약에 개나 돼지로 태어났다면 니들이 아무리 천재적인 머리를 지녔더라도 무얼할수 있었겠는가 사생아로 태어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미국의 휼륭한 양부모 가정에 입양되서 그나마 그런 성공을 거둔 것이지 만약에 아프리카 오지에 진흙 을 구워 먹는 곳에 태어 났다면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을 것이며 아마 사고나 전염병 등으로 일찍 죽었을 확률이 높다 당연히 오늘날의 스티브 잡스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 끼리 은근히 싸움을 부치길 좋아 했다는 삐트 러진 성격이 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도 역시 혼외로 난 딸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버린 시리아 유학생 출신인 아버지가 대학교수로 은퇴하여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죽기전에 꼭 한번 만나길 원했지만 끝내 스티브잡스가 만나길 원하지 않았다
이건 내 생각인데 혹시 스티브잡스를 버린 친부가 시리아 태생 난민출신 이란 전력을 알고 만나기를 꺼려한것은 아닐까?
그러나.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휼륭한 양부모에게 운좋게 입양 되어 자랐다곤 하지만 역시 정상적인 친부모 밑에서 자란것만 못할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어머니는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케냐 출신 흑인 유학생 출신이라 인종차별 때문에 트라우마로 청소년 시절 한때 방황하며 마약을 복용하다
비교적 늣은 나이에 콜롬비아 대학교에 편입하여 결국 하버드 로스쿨 대학원 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했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 인데 물론 오바마 개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운도 따랐겠지 그중 가장 첮번째는 아프리카 정글이나 오지가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거 겠지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유학생 아들 이지만 자신은 미국인 이지 케냐출신 이라고 말한적이 없다

첫째사람은 사람을, 잘만나야, 합니다 ,
그러데 어머니 께서는 은혜도 모르는 놈들 에게 제발로 찾아 가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동물도 은혜를 아는데 이런 동물만도 못한
놈들을 불상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 오히려 불 이익을 당한것도 어머니가 잘못 선택한 운일 것이다
크리스챤 들이 상수로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당시 유대의 기득권인 바리세인들에게 신성모독죄로 누명을쓰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어찌보면 잘못 선택한 실패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왜 상수처럼 떠 받들고 있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는 아무 생전에 보답도 없이 왜그런 고생을 자처하는 어려운 선택을 하였을까? 물론 생각을 자유로이 할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분들에게 잘못 선택하여 생고생한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사람도 있을수 있겠지만 그분들은 진정 존경 받아야 마땅한 인물 들인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그리스도가 실존 인물일 꺼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는 실존인물이 증명된 사실이고
이들의 전기가 100%로 다 진실 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적어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는 한국이란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 오는데 큰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 나와있는 그리스도는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면서 출생 하자마자 갈곳이 없어 말먹이 통인 구유에 누워 있었다는건

가장높은 이가 가장낮은 곳에서 어렵게 사는 생명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위로하고
우주를 창조하고 생명체를 만들고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의 뜻과 의지를 설명하러 오셨다는걸 상징적 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라
기독교 인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이세상 에는 다수가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들어난 진실보다 왜곡된 진실이 더많아
사실 심오한 지식과 지혜의 진실은 극소수만이 알수있는 경우가 더많다
책을 대량으로 출판할수 없던 과거 시절에는 성경도 일부 특권층 만이 소유하고 읽을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보편적 으로 알려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물리을
이해하는 사람이 초창기땐 극히 일부였다 특히 양자물리학 이론을 처음엔 아인슈타인도 이해하지 못해 양자물리학 이론에 불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은 오랜시간 동안 과학자들의 수많은 실험을 통해 한번도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적이 없는
모든 검증을 통과한 것이 양자물리학 이론 이라고 한다

지금은 보편적 으로 알려진 이론이다

그래서 다수의 선택이 결코 옳바른 선택이 아닐 경우가 많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블랙스완 처럼


블랙스완 이란
(18세기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흑고니가 발견되면서 생긴 용어이다. 17세기 말까지 수천년 동안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는 희다고 생각해 왔으나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흑고니를 발견한 후 일반적인 통념이 깨지는 충격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 예측을 벗어나 예기치 못한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는 일을 일컫는다)
진정한 진실은 다수보다 소수만이 아는 진실이 더 많을 경우도 존재한다
세상에는 아인슈타인이말한 상수 하수 변수 다수 소수 무리수 예측불허의수등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런데 각자 처해있는 경우의 수가 무엇인지 금금한 사람은 극히 일부분 일뿐이다
거이 다수의 사람들은 개 돼지처럼 돈을 벌어 이쁜여자 좋은집 멋찐차 비싼옷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거이 모든 인생을 허비하며 어느순간 질병이나 사고 혹은 늙어서 자연사 할 때 까지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의미없이 영원히 사라진다
어머니는 어떤 경우의 수가 잘못되어 혹은 어떤 선택의 잘못으로
하이에나 만도 못한 집구석에 제발로 찾아가시어 고통속에서 돌아가시면서도
결코 용서만 하시며 탓하지 않으셨는가

가장 큰 잘못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하이에나 만도 못한 그놈들에게 있겠지
어머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펀치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중에- 인생에 정답이 있나
선택만 있을뿐이지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건 당연한 거고-라는 대사처럼
그러나 어머니가 선택한일 누구를 탓하랴 설령 어머니가 하소연 한다고 해도 냉정한 세상에서 나말고 어느누가 편들어줄까 그래서 인간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 한다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남에자식 ,이라도, 키우면 ,그 은혜를, 아는, 애들이, 많은데 세상을 ,많이 ,돌아 ,다녀, 봤지만,이렇게,천박히,구는, 인간들은, 처음봤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간의 진정한 멋은 동물이 흉내낼수 없는 상대방을 배려할줄 아는 매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타이타닉이란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 끝까지 남아 부족한 구명정에 어린이 여자 노약자 순으로 태우며 바이올린등으로 타이타닉 호에서 탈출할 때 힘을내라고 음악을 연주한 악사들과 선장이 타이타닉과 같이 수장되는 모습이 논픽션이란 사실이 아닐까?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전에 무려 700 년전에 이사야가 그리스도가 누명당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을 미리 예언한


(이사야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느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한국 에서는 절대, 남애 자식, 키우지마, 얼마전, 뉴스에 ,문앞에 ,버리고간 , 아기를

데려다, 친자식 처럼, 대학도, 보내주고, 장가도, 보내주고, 집도 사주고 ,물경 ,20억이라는,돈을,물려 줬는데, 나머지 양어머니 ,재산을, 뺏을려고 ,청부살해 를, 했다는, 뉴스에 보도됀 놈이나,우리, 어머니를 ,이지경, 만든 놈이나 , 은혜를 ,원수로, 값는, 하이에나 만도 못한 놈들이야
어머니 살아 생전에 그것들 욕을 하니까 ,그애들 ,친엄마 없이, 커서 불상한, 애들 이라고,오히려 나보고,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 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타이타닉호에서 연주한 악사들의 마음과 같은 인간이 진정 동물과 다른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치는 인간의 영혼의 에너지에서 나오는 질좋은 아름다운 향기일 것이다 타이타익호의 악사들도 구명정을 타고 탈출하고 십은 마음은 엄청났지만 구명정이 부족하여 결국 많은 사람들이 못탄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감동적인 최후를 맛이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하이에나 만도 못한 집구석에 들어가신걸 눈물을 흘리며 속으론 후회 하셨겠지
그러나 이미 업지러진물 이제와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란걸 아시고 파렴치한 놈들을 욕을 하시지 않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진정 인간의 영혼의 질좋은 에너지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향기가 무엇인지 가식없이 보여 주시며 착한끝은 있어도 악한끝은 없다며
빨리 잊으시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진정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차이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하고 그놈들 생각만 나면 분노가 치밀어 순간 욕부터 튀어 나온다
그걸 트라우마라고 하나 뭐라고 하나

은혜를 원수로 값는 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분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그러나 어쩌 겠는가 이미 지난 일이고 빨리 잊고 미래 만을 생각 해야 하는데 세상만사가 가르치는 말처럼 쉽게 배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어린시절 내밑 으로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여동생은, 어머니를 ,빼닮아서, 얼굴도, 참 이쁘고, 말도 잘했다,무엇보다, 나는 공부에 .흥미를 못느껴 .학교 성적이, 안 좋았는데
그 여동생은, 반에서 , 공부도, 잘했고 ,특히 ,부모님 말씀, 잘듣고,교회, 노래 자랑에서, 1등을 ,하는등 사실 어머니는 ,여동생 보는 ,낙에, 사셨던 것인데 , 여동생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채 로시작하는 클레멘테인 과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은혜 놀라워로 시작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기독교 찬송가를 어머니가
특히 좋아 하시는걸 알고 어머니 한테 하모니카 로도 잘 부르는 재능이 신기 했는데
여동생이 부르는 클레멘타인과 어메이징 그레이스 찬송가를 들으시는 어머니는 모든 시름을 다 잊으시는것 같아

나도 흐믓 했는데 나는 그런걸 할줄 몰랐는데 여러모로 재주가 많았던 귀염둥이 여동생 이었다 어머니와 나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준 넝쿨채 굴러온 복덩이 었는데
그후 미토콘드리아 DNA는 부계가 아니라 모계로 유전된다는 분자생물학자 들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여동생은 어머니를 판에 박은듯 이쁘고 제주가 많았다
어머니는 특히 뜨게질을 아주 예술가 처럼 잘 뜨는 재능이 있어 겨울이 오면 식구들에게 뜨게질로 옷을 만들어 주기위해
어린 나보고 오래된 옷의 실을 풀어 공모양으로 계속 감으라고 지시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가물가물 기억나네 불행이도 어머니의 뛰어난 재능은 여동생 에게만 물려지고 나에게는 물려지지 않았다 그 여동생이, 얼마나 착한가 하면 색벽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 한다며 숙제를 하고,나하고, 3살 터울인데 내가 그당시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여동생이 6살때 이던가 아직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이 었는데
아침부터 ,날이, 흐려 어머니가 학교갈때 우산을 꼭들고 가란걸 내가 깜박잊고 그냥 학교가니,점심 시간이 ,지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 하였다 방과후 하교 길에는 더욱더 쏟아지기 시작 하였다 ,친구들은 ,우산을 들고 왔는데 ,나는 우산이 없자 집에 갈일이 걱정 이었다 나는 비를 맏기로, 작정하고 ,교문을, 나서자 여동생이 ,오빠라고, 나를 ,반갑게 부르며 오른 손에는 우산을 펼쳐쓰고 왼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당시 어린이 걸음으로 근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6살먹은 ,여자 어린이가 ,비가오는 중에도,오빠에게 우산을 갇다, 주려고, 힘들게 ,걸어 와서 ,우산을, 같다 ,주다니, 내가 살아 오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 했던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행복 이란건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다는것
그들과 정을 나누며 돈과 여유는 없어도 서로 위로하며 사는것 그것이 인간의 참 행복 이란걸 그당시 좀 느꼈지
밀림의 왕자 사자도 외톨이는 힘을 발휘 할수 없고 오래 못 산다고 한다
가족 이란 때론 짐이자 애물단지 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뜨거운 눈물이나고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자 보호막 이며 최후의 지지자 인 것이다

9p-아무리 돈이 많아도 싫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곳 그곳이 지옥 이지
성경 책 에도 나오는 구절 이지만 천국 과 지옥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그것은 마음이 편하면 천국 마음이 불편하면 지옥 이란 거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쉽게 말하면 똑같은 시간에 식당에서 음식을 먹더라도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시간이 금방 지나 갈수도 있고 지루하게 길게 느껴질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여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먼거리 를 걸어 집까지 왔는데도
평소보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금방 집에 도착한 느낌으로 오자
어머님이 반갑게 맏아 주셨다
돌이켜 회상해 보면 그때가 내 인생 에서 가장 행복 했던 추억으로 기억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3년후 1979년도에 어머니와 나는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치기 시작 하였다 그토록 애지 중지 하던 복덩이 여동생이 물에 빠졌다는 비보를 듣고너무 놀라서 그당시 우리집이 슈퍼마켓을 했었는대 가계에는 나와 어머니가 있었다
우리집에 뒷방에 세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가계로 뛰어 오더니 이집 딸이

물에 빠졌다고 빨리 가보라고 해서 나는그때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돈을 계산해 주고 있었는대 돈을 집어 던지고 어머니하고 급하게 강가로 뛰어 가보니 주변에 동내 사람과 아이들이 여럿이서 강을 쳐다 보고 있었는대 여동생 모습은 아무리 찻아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통곡을 하시며 여동생 이름을 부르며 강속으로 뛰어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뛰어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면서 강밖 으로 대려 나오자 어머니는 계속 우시면서 여동생 이름을 부르시며 강속으로 뛰어들어 가려하자 나와 동내사람이
합세해서 어머니 를 강밖으로 대려 나오자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져 않으며 여동생 이름을
슬피 부르며 대성 통곡 하셨어 한참이 지나도 여동생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나는 거이 실신 상태인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집으로 왔어 그리고 기도를 계속했어 하나님께 제발 여동생이 살아서 오기만을
시체가 발견돼지 않았으니 하나님 이 기적을 일으켜 제발 불상한 여동생 을 살려 주시기를 계속 간절히 기도했어 몇시간이 지났을까 불행이도 여동생 시체를 밝견 했다는
비보를 듣고 나와 어머니는 여동생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어 강가로 내려가자
커다란 파랄솔 밑 그늘 밑에 하얀천 으로 덥여 있는 여동생 시체가 보였다
어머니는 울면서 뛰어 가시며 여동생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셨어
나도 차마 그모습을 보는게 너무 슬퍼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됐었다
마지막 으로 여동생 얼굴을 수건으로 깨끗히 닦아주고 하얀 천밑으로 나와 있는 여동생 다리를 닦아주고
하얀천을 마지막 으로 내정성 다하여 살며시 덥어 주었어 그것이 나에게 분에 넘치던
사랑스런 복덩이 여동생과 이생 에서 마지막 이별 이었다
사람들은 달려드는 나와 어머니와 어린나를 제지하고 설득하며 여동생 시체를 어디론가 대려갔지 그리고 어딘가에 묻은거 같은대
그걸난 당시 누구의 지시인지 모르지만 도저히 이해 할수 없었어
나중에 부모님께 그걸 물어 보니까 어려서 죽은 사람은 부모 가슴에 피눈물 나게 했다고
가족들 에게 무덤을 안 가르쳐 준대 그 당시 에는 그랬 다는대
그래서 그때는 순진하게 그말을 그대로 믿으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어머니와 나에게 말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할수있을까?
하며 내 여동생 시체를 처리한 동네 사람들과 그런일을 방치한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그래도 가족들이 여동생의 갑작스런 사고사를 슬퍼하며 명복을 빌며 정성스레 장례도 치르고 했어야 하는데 당시 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어머니와 나뿐 이었다
아무도 여동생 시체가 있는곳에 오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는 걸 못봤다
아마 당시 첫째 이복형이 육군병장 으로 만기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군에 있었던것 같고 둘째 이복형은 당시 인천전문대 건축학과에 다니느라
집에서 멀어 학교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던 시절 이고 특히 친구들이 많아 밖으로만 싸돌아 다닌걸로 기억나는것 같고
그러다 육군에 입대한지 얼마 안됐던 시절 인것 같고

10p-형제들 중에 가장 공부를 못했던 셋째 이복형은 당시
대학을 포기한 사람들이 주로가던 공부 못하고 다른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주로받던 안흥전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

생긴것도 재수없게 땅땅한 돼지같이 생겨 가지고 고집이 세고 성격이 아주 이기적이고 특히 어머니 에게 가장 퉁명 스럽게 대하고 말도 안들어 나하고 항상다퉈 싸우면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서 당시 국민학교 다니던 내가 이길수 없는 불공정한 싸움 이기에 어머니 앞에서 더 심하게 나를 때려 부모님들이 달려와 악을쓰며 말리면 그제서야
퉁명스럽게 나가는 당시 집에서는 가장 폭군 이었어
그러던 어느순간 셋째 이복형놈이 공부를 못해 대학은 못가고 군대 가기전에 운전 배운다고 덤부 트럭기사 조수로 따라 다니다가
육군에 운전병으로 입대하기 직전이라 주로 밖으로 나돈것으로 기억하는데
넷째 이복형은 나하고 다섯살 차이인데 형제들 중에 가장 공부를 잘했어 정확한것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반에서 평균적으로 2-3등 정도 한것같애 넷째이복형은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라
공부를 잘해서 그런지 학교에 친구들이 제법 있던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반에 60명은 적은거고 한반에 70명 가까이 있던 시절이다
당시 여동생이 죽은날은 1979년 6월25일에서 27일 사이 인 걸로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되서 정확한 날짜는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수요일 인건 기억한다
그리고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보던 TV만화프로 이겨라 승리호가 당시 수요일날 오후에 방영된 날로 기억한다
오래된 내 기억으로 그전에 대형 태풍이 한국에 상륙한건지
아니면 장마철 영향인지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비바람이 심하여 당시 한강이 범람하여 당시 우리가 살던 동네는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 가지 않았는데 여동생이 불행하게 죽은 날은 비가 거이 오지않은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여동생이 당시 여동생과 나이가 동갑인 여자 아이와 강가에 놀러 갔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급류에 힙쓸려 익사 했던걸로 들었는데 내 여동생과 같이 강가에 놀러갔던 여자아이는

1년전 당시 국민학교 1학년으로 국민학교3학년인 3살 많은 오빠와
내가 국민하교 5학년때 우리동네에 모습을 처음 보이기 시작 했는데 고향은 목포라고 하는데 목포에서 바로 올라온것 같지는 않고
목포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잠시 있다가 애네 엄마가 골재채취 덤브 트럭기사들 상대로 밥 장사를 하기위해 고장난 버스를 개조하여 식당으로 운영하며 장사를 하기시작 하자
우리 동네로와 모습을 보이기 시작 한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고 당시 또 어린내가 그런일에 관심을 가질일도 아니였다
그러나 1년전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우리동네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것 같다
그후 애네들이 삼촌으로 불리는 사람이 충청도 출신인 지 마누라와 함께 우리 가계에 세들어와 상호명 개미상회 가계를 81년도부터 운영
하기 시작했는데 개미상회 라는 간판은 그 전부터 우리가 장사할때 만든 상호였다
애네들의 아버지와 삼촌으로 불리던 사람과
당시 내가 보더라고 이복형제라 그런지
단둘 인데도 형제간 우애는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어 애네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애네들 친엄마 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지만 부엌칼을 들고 욕을 하며 잡으로 쫏아가고 덤브트럭 기사들 에게 밥장사 하는 애네들 엄마는 울면서 도망가고
사람들은 말리려하고 그런 모습을 어렸을때 본 기억이 난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본 모습은 애네들과 애네들 부모가 애네들 배다른 동생인 삼촌을 은근히 두려워하는 그런 분위기 였다

11p-아무래도 애네들 삼촌이 어렸을때 나이 차이가 좀있는 이복형인 애네들 아버지 에게 가혹행위를 많이 당해서
그런게 무의식적으로 쌓여서 그런일을 연출하게 된게 아닌가 혼자 근거있는 추리를 해본다

우리 가계였던 개미상회를 월세로 빌려 장사하는데 그안에는 널찍한 방도 두개나 있었는데

그런데 애네들이 삼촌 이라고 부르던 사람과 부부관계 였던 충청도에서 올라온 여자의 여동생인 그러니까 처제가 함께 살았는데 그후 내가 제주도로 대략 84년7월 경에 어머니와 내려가 86년 11월 20일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만 올라와 보니 서로 결혼하여 딸까지 낳아 살고 있어 깜짝 놀랐다
셋째 이복형 형수도 들리는 얘기로는 충청도에서 계모 등살에 을 노릇을 하며 눈치밥 먹었다 는데
셋째 이복형 놈은 계모인 나의 친 어머니와 나를 괴롭히며 오히려 갑 노릇을 했다
본처 자식 이라고 꼭 대접 받고 사는건 아니다
한국의 최초 여자 대통령 박근혜는 본처 자식이 아니고 북한의 김정은도 본처 자식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회장 정몽구도 본처 자식이 아니다
정주영의 본처자식으로 장남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각자의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갑 을 관계는 수시로 바뀔수 있다
꼭 후처 자식 이라고 해서 어려운 환경만 주어지는것은 아니다
그리고 드문일이긴 하지만 배다른 형제도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고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친형제 들이 오히려 배다른 형제보다 더 사이가 나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뭔가 공통점이 있으면 친근감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게 사실인가 보다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은 김한길과 최명길이 이름의 길자가 같아 최초 시스템에서 서로 친해지기 시작한것은 아닐까 ?
둘다 계모를 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 친해진 건지 모르 겠지만
뜻밖에도 둘이 결혼하여 딸까지 낳고 살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 여동생과 친구 였다는 여자 아이는 내가 제주도에 내려갔다 올라와 보니 집을나가 가출했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다 그후로 애네들 가족은 동네를 떠나 그후로 한번도 본적도 소식을 들은적도 없다
어릴적 내 여동생과 친구인 여자 아이의 오빠라는 애는 집안 사정상 학교를 늣게 들어가 같은학년 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얼굴은 여자애 같이 이쁘장 하게 생겼는데 2-3살 어린 애들과 같은학년 이라 그런지 공부는 잘해 반에서 반장까지 했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다
나이는 나하고 같지만 학년은 2학년이나 아래라 나보고 형이라고 불렀다
한번은 나에게 은근히 반말을해 학년이 2학년 이나 어린 후배놈이 나에게 반말 한다고 나에게 호되게 얻어 터진적이 있다
그후로는 나만보면 꼭 형 이라고 부르고 겁을내고 눈치것 행동했다

당시 여동생이 죽기전 국민학교시절 나는 동네에서 학년이 같은 애들에게 싸움에서 져본적이 없다
나는 매일 학교같다 오면 가계에 있는 빵과 우유를 마음것 먹고
당시 땅콩농사 만평이상을 짓던 어릴적 부터 몸에좋은 땅콩을 엄청많이 섭취하고
우리집 밥상은 당시 거이가 어려운시절이던 70년대 초.중반 시절에도 하다못해 고등어 라도 고기 반찬이 떨어진 적이 없다
더구나 나는 어릴적 부터 복싱 태권도등 운동을 많이했다
넷째이복형은 어릴적 부터 태권도 검은띠 였다
넷째 이복형이 고3 시절 내가 중학교 1학년때
동네에 언제부터 인지 얼굴을 보이던 10대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타지에서온
동네 불량배 2명과 싸워 이긴걸 내가 본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나이가 비슷한 놈들끼리 싸움에서 2놈이 한놈을 못 이기고 일방적 으로 당하다니 머저리 같은놈들 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와 돌이켜 보면 어렸웠던 시절 상대적으로 못먹는 애들과 싸워서 이길 확률이 많았다
당시는 공장 다니는 분들에게 비하하는 소리로 공돌이 공순이 라고 놀리는 소리를 여러번 주어 들었는데 당시 어린나는 공장 이라게 뭔지도 몰랐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
남에나라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와 생각하면 당시 돈이없어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지금 보다도 훨씬나쁜 열악한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온갖 중금속등
으로 오염 물질로 뒤범벅 이된 공장내 환경에서 일하며 원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굴지의 반도체공장 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백혈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이 많은데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영세사업체의 작업 환경은 열악한 조건으로 말도 못했으리라 생각할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며 온갖 중금속에 무방비로 혹사 당하고 살인적인 긴 노동시간에 혹사 당하며 일하던
시골의 빈자의 자식들이 올라와 공장 돼지 우리간 같은 숙소에 잠자리도 불편하여 제대로 잠도 못자고
먹는것도 라면도 제대로 못먹으며 생활하며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라 힘이없어 싸움도 제대로 못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
잘 쳐먹고 또 몸에 좋은 보약도 쳐먹고 집에 아령 등 운동기구를 잔뜩같다 놓고
어릴적 부터 끔찍히 몸 생각하여 운동도 많이한 넷재이복형 에게 속으로 골은 2명이 힘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진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싸움은 절대 공정한 싸움이 아니다

나는 물론 여기저기 다니며 싸움을 걸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절대 아니였다
나는 남하고 싸우는걸 싫어했다 정말로 엄청난 모욕적인 말로 나에게 직접 싸움을 먼저 걸지 않는이상 절대 싸우려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약한 성격으로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특히 79년6월 경에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너무나 큰 슬픔으로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모든 삶의 의욕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한 인간의 인생의 도약을 위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시절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인 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여동생 죽음을 못잊고 거이 죽음직전 까지 가는 최악의 시절 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후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의 엄청난 마이너스 성장의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어린나는 장례 절차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던 나 였지만
도무지 그런 상황을 납득할수 없었다
왜 여동생을 정성스레 장례를 치르지 않고 무덤이 어딘지도 모르게
그렇게 성의없이 처리 한다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그게다 아버지나 이복형들이 장례비용을 최대한 아끼려고 배후지시로 장난을 친게 아닌가 근거 있는 추리를 해본다
그렇게 슬품에 빠져 정신없던
어머니와 나 모르게 말도안되는 명분으로 내 여동생 시체를 무성의하게 처리하고
무덤이 정확히 어디있는 지도 모르게 하고 다른 핑계를 대고 모른척 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지만 지금와 확인할 길이 없다
나중에 동내를 돌아 다니다 외곽진 곳에 처음보는 엉성하게 만든 조그만 무덤이 있길래 이게 혹시 여동생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여동생이 그리울땐
들판에 있는 꽃을 꺽어다가 볼품이 없고 엉성한 조그만 한쪽이 약간 무엇인가로 파해쳐진 무덤을 다시 흙을 손으로 퍼서 덥어주며 나혼자 가
서 서럽게 울곤 했다
79년도 유행했던 나 어릴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때가되면 떠나요 민들레처럼
이란 진미령의 하얀민들레 가사처럼
여동생은 마치 민들레 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영원히 볼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다 왜 여동생을 다시 볼수 없단 말인가 ?
기독교 에서 말하는 천국이 있다면 천사같은 여동생은 분명 천국에 갔을테니
내가 천국가면 볼수 있지 않을까? 당시 교회에 다니던 어린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여동생이 죽기전에 여동생과 일부 동네 꼬마들과 몰려가서 당시
유명가수 혜은이가 76년도인가 77년도인가 CF촬영을 위해 우리동네 백사장에 와서
촬영하는 모습을 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도 찻아 오지않고


나혼자 들판의 꽃을 꺽어 갖다 놓으며 죽은 여동생을 추모하던 볼품이 없고 엉성하게 만들어 너무도 불상한 조그만 무덤이 그곳이 개발하는 바람에 어느순간 흔적도 없이 살아 졌어 항상 해맑게 웃고 귀엽고 명랑하던 여동생은 먼지 처럼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살아지고
이 세상에 여동생의 슬픈 짧은 삶이 있었다는 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내 가슴속의 슬픈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건 여동생이 죽는날 아침에 울면서 깨어 꿈에 여동생이 죽는 꿈을꿔서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 다급히 여동생을 찾아보니 다행이도 여동생은 살아서 아직자고 있었다
너무 실감나는 꿈이었지 여동생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꿈이어서 다행이다 했는대 그게 그날 현실이 되다니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죽음을 꿈을통해 미래를 예시 한건지
내가 정확히 알길이 없지만 모든꿈이 다 드러 맞는건 아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날 꿈이 우연히 여동생의 죽음과 일치한 것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날일이 두고두고 기묘하게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직감적으로 의문과 의심이 가지만
정확한 진위여부를 법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할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비틀즈의 폴메카트니도 꿈속에서 예스터 데이를 작곡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백일몽으로 상대성 이론의 단초를 발견 했다고 했어
무한안 우주에 인간이 알아낸 물질은 4%미만 이라고 과학자 들은 말한다
우주의 거이 96%이상을 차지하는 보이지않는 암흑에너지 암흑물질의 정체가
뭔지 아직 확실히 알수 없듯시
인간의 의식은 4%미만이고 아직 알수없는 꿈과 같은 무의식 속에 일어나는 현상은 96% 이상이 아닐까?


아직 과학적으로 파학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간 인간의 노력으로 파학이 되면 사실 별게 아닐수도 있다
모든건 성취하고 직접가보고 알고나면
생각 했던것 보다 별게 아닌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고 성취 하고자 노력 했을때 보다
막상 그것을 이루면 행복을 누리는건 잠시 뿐이고 자신이 누리는게 반복적인 일상이 되면 권태와 지루함을 느낄수 있다
그래서 또다른 스릴을위해
그보다 더높은 욕망을 꿈꾸고 실현 하고자 하는게 인간의 교활한 욕망이다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욕망덕에 인간이 지금과 같은 과학 문명이 발전 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발달 했다고 해도 아직 인간이 무슨 생각이나 어떤 욕망을 갈구하는지

본인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이상 과학으로는 정확히 측정을 못하고 있다

특히 현대 과학이 알아낸 뇌의 비밀은 1%에 불과 하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법적으로 증거 능력을 못 받는건
사람에 따라서 드물기는 하지만 거짓이 진실로 나타날수 있고 진실이 거짓으로 나타날수 있기 때문이다 유달리 예민한 사람은 진실을 얘기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거짓으로 나타나는건 아닌가 하는 불안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거짓으로 나타날수 있고 그리고 훈련받은 사람이나
아니면 개인의 각자다른 성격 때문에 거짓으로 말하면서 거짓말 탐지기에 진실로 표시된게
증명된 사례가 있어 거짓말 탐지기가 법적 증거 능력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인간이 측정하여 판단할수 없기에
OJ심슨이 고용한 변호사 까지 정황상 유죄일 가능성이 커 보였지만 심슨은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가 선고가 났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사관들이 누명을 씌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디 한둘 이겠냐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력의 외부의 입김이나 어떤 나쁜 감정과 편견 또는 수사관들이 자신들의 직감이나 추리가 100%로 확실 하다고 오판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경험많고 특출난 인간 이라도 아직 확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미리 100%로 확신 하는건
역설적으로 100%로 사기극 일수도 있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결정적 증거라고 요즘 대세인것 처럼
떠드는데 만약에 누군가 OJ심슨처럼 자신의 혈액이나 정액 등 DNA를 누명을 씌우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여 몰래 채집하여 누명을 씌우려 한다고 계속 우긴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운좋게 이런 비슷한 억울한 사건 들이
진실이 밝혀져 누명을 벗고 풀려난 경우가 존재 하기에
OJ심슨이 범인 일 거라고 의심이 들지만 100% 확신할수 없는게 인간의 능력이다
그래서 인간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아무 죄없는 사람을 사법살해 해서는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2012 년도가 뉴스인지 신문 인지에 강원도 춘천에서
과거 절도전과자가 있는 사람이 절도범 누명을 벗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담배꽁초를 누군가 몰래 주어 사건현장에 던져놓고
누명을 씌우려다가 다행이 양심있는 검사가 사건을 맡아 담배 꽁초에 묻은 DNA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보다 훨씬전에 묻은 DNA
라는걸 알고 무죄로 풀려난 사건은 그래도 운이 좋은 케이스 라고 할수 있겠다
과거 소련에서 스탈린이 2000만명을 학살했는데 그중에 가장 잔인한 숙청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키가 150CM 에 불과한
예조프를 이용하여 잔인하게 스탈린 정적을 숙청하게 만들었는데 키가작아 난쟁이라고 불리던 예조프가 무슨힘이 있어서 그많은 사람을 학살 했겠는가
물론 배후에서 지시한 스탈린에 이용당한 것이지만
국가 공권력이 악용되면 무엇 보다도 잔인하고 흉악하며 얼마나 위험 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조프 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국가권력은 국과수 검시기록을 조작하는건 일도 아닐 것이다
만약에 예를 들어 동일한 DNA가 아닌데도 동일 하다고 국과 기관에서 작당하여 조작하면
그걸 누가 밝히 겠는가
또 국가기관 에서 누명씌우려 담배꽁초 등 DNA가 나올만한 것을 몰래 미행하여 채집 하여
사건 현장에 던지고 누명 씌우려 한다면
어지간 해서는 누명을 벗기가 힘들 것이다
스탈린 모택동과 같은 독재자 뿐만 아니라
지금도 드문 일이겠지만 여러 자유민주주국가 에서도 기득권 자 들이 자신들의 여러가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비리를 음폐하기 위해서 조작을 하는사례가
암암리에 들어나고 있다
2012년도 11월 쯤인가 짤막하게 나온 뉴스를 들어보니 앞으로는 검.경이 국과수에 보내는 DNA 신원 정보를 미리 알려줘
한달 가까이 국과수로부터 통보가 빨라 진다는 뉴스를 듣고 정확한 것은 모르 겠지만 해석 하자면 그 전에는 국과수의 공정한 검시를 위해 검.경에서 보내는 DNA 신원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걸 미리 통보하여 국과수 로부터 통보가 빨라 졌다는 얘기로 해석이 된다
국과수에 검시 의뢰한 DNA의 신원정보를 모르면 검시기록을 조작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러나 앞으로 국과수에 검시 의뢰한 DNA의 신원정보를 미리알고 만약에 거대한 세력의 외부 입김으로
여럿이서 공모하여 누명을 씌우려 한다면 드물기는 하겠지만 검시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로도 해석할수 있는 뉴스였다

정의의 여신은 저울을 들고 공정한지 때론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하지만
때론 누구의 DNA 인지 모르게 눈가리게를 해야 더 공정한 검시가 이루어 진다
결국 누명을 쓰고 피해를 당할 확률이 높은건 사회적인 약자가 기득권에 억울한 일을 당하여 억울함을 호소하고
무질서한 지배 세력에 저항했을 경우이다

(참고자료-버트런드러셀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자신이 단순한 현상을 연구 한다고 생각 하지만
결국에는 하늘은 왜 푸른가 와 같이 단순한 질문도 생각보다 훨씬 복잡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서란 무엇인가 나 다른사람의 정서를 경험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이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이에대해

제시된 대답들을 보면 모호함으로 가득차 있을뿐만 아니라
소력[所歷]이나 열과 같은 개념과 달리 합의 되거나 명백한 의미도 없다
모든 정서가 뇌 활동으로 비롯하기는 하지만 각각의 정서는 뇌 활동만으로 결정할수 없는
심리현상 이다
하나의 뇌 프로파일 에서 다양한 정서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어떤정서가 실제로 일어나는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사의 생물학적 조건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개인사와 생물학적 조건을 통해 특정한 정서 상태가 결정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자식이 부모를 닮고 사과가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를
밝힐때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과학자들이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부하다가
자신의 위대한 통찰을 무너트리는 예외는 부지기수다
바이러스도 박테리아도 아닌 변형단백질 프리온이 감염성을 지닐수 있다는 발견은 자연을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려 다가는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이 믿고 있던 개념이 부정확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일은 비일비재 했다
사람들은 물질이 연소하면서 공기중에 플로지스톤을 내 뿜는다고 생각 했으며 프랜지스 골턴은
감각의 예민함과 운동반응 속도를 측정함으로써 지능을 평가할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이들 개념과 일치하는 현상을 전혀 찾을수 없었다
미성숙한 분야에서 초기에 제시되는 해석이 곧잘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그럴듯한 함의를 지닌 관념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뇌상태 변화가 정서를 일으킬수 있다고 해서
이것이 반듯시 실제 감정이나 정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필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물잔에 연필을 넣었을때 빛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물에 잠긴 연필이 구부러 진 것 처럼 보이는 현상을 관찰한다고 해보자
세가지로 해석할수 있다 첫째 연필은 원래 곧지만 물이 연필을 구부릴수 있다
둘째 연필은 원래 굽었지만 공기가 연필을 펼수있다

셋째 연필은 항상 곧으며 관찰결과가 잘못되었다
마지막 설명은 또다른 증거원을 수집함으로써 입증할수 있다
가령 물속에 있는 연필을 만져보면 이것이 곧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과학자가 관찰 결과를
잘못해석 하지않으려면 일정한 가정이 필요하다
정서연구는 수많은 가정을 자신있게 내놓을 만큼 성숙하지 않다
인간의 뇌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들의 사적인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 자기인식 상징표상 자신을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범주화 하는 습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능력
좋은 대학에 입학하거나 유명 연주회에 첼로를 연주하거나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과같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달성할수 있는 목표에 더많은 상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익숙지않은 사건은 뇌 여러 부위를 활성화하고 뇌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지만 그중 에서도 특히 편도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익숙치 않음이 편도체 기능에 중요 하다는 사실은
생후 2주 만에 편도체를 절제한 18개월 짜리 원숭이가 동료 원숭이들과
상호작용 하며 보이는 행동 에서도 드러난다
편도체가 없는 원숭이는 정상 대조군에 비해 덜 지배적 이고
덜 공격적 이기는 했지만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은 건강한 원숭이가 일반적으로 공포를 나타내는 신호이다
편도체가 공포 상태에 필요 하다면 수술받은 원숭이가 이런 반응을 보일수 없다
성숙기의 편도체가 절제된 원숭이의 행동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이끌어 낼수있다

이들 또한 익숙한 원숭이 들과 상호 작용할때 대조군 보다 더 회피적인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편도체가 없는 두 원숭이 집단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공포신호의 부재가 아니라 낯익은 동물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부적절한 반응 이었다
이 증거는 남들이 예상치 못한 행위의 심리적 중요성을 인식하는 능력과
가장 알맞은 반응을 고르는 능력이야 말로 영장류 편도체의
주요 기능임을 뜻한다
증거 자료를 살펴보면 편도체의 주된 기능은 예상치 못한사건 익숙치 않은 사건 모호한 사건에 대해 이들이 안전한지
유쾌한지 혐오스러운지 잠재적으로 위험한지와 상관없이 반응하는 것 인듯 하다
안와전두 전전두피질 이라는 전두엽 부위는 편도체를 조절하므로써 유쾌한 사건과 불쾌한 사건 안전한 사건과 위험한 사건를
구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사건으로 활성화되는 부위는 편도체와 안와전두 피질 말고도 더 있다
똑같은 겁먹은 얼굴을 보고도 백인과 일본인이 저마다 다른 뇌프로 파일을 보인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창문이 없는 방에 갇힌 원숭이가 손잡이를 누르면 바깥 세상을 엿볼수 있을경우 계속 손잡이를 누를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바깥 풍경이 보상이다 연구자들은 대부분이 보상이 쾌락 경험 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순간이나 예상과 어긋나는 바람직한 사건은 쾌락을 주지 않는것이
분명한데도 보상기능을 수행할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게다가 이런 사건은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 분출을 수반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예상치 못한 먹이를 받은 쥐의 뇌 도파민 분비가 보상에 대한 생물학적 결론을 지을것이 아니라
예상치못한 사건 특히 동물에게 중요한 사건이 도파민을 분비 시킨다고 판단할수 있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먹이를 받는 사건이 예상된 경우에는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불이 켜질 때마다 먹이를 기대 하도록 학습된 고양이는
먹이를 예상치 못하는 동안에는 편도체와 근처후각 피질의 활성화가 증가했으나
먹이를 틀림없이 준다는 사실을 학습한 뒤에는 이활동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서 뇌 활동은 배고픈 동물에게 먹이가 보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듯하다 예상치못한 전기충격 또한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킨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활성화되는 뉴런개수는 예상치 못한 먹이의 경우보다 적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충격을 예측할수 있게 됨에 따라
이들뉴런은 덜 활성화 된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려준뒤 쥐의 발에 전기충격을 주어 똑같이 예상치 못한 따끔 거리는 감각을 일으키는 것은 한편 으로는 놀람이나 불확실에 대한 자극으로 분류할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의 근원으로 분류할수도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대부분 두번째 해석을 선호한다
앞에서 요약한 증거가 이러한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론적 관념은 일관된 사실과 절대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금언을 명심할 때이다 인정해야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첫째- 편도체가 없는 동물도 공포의 행동 신호를 보일수 있다
둘째 -동물과 인간의 편도체는 예상치 못한 - 익숙지 않은 사건이 혐오 스럽거나
잠재적으로 위험한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반응한다
셋째-익숙치 않은 사건이 익숙하게 되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예상할수 있게 되면
여전히 위험을 알리더라도 편도체 활성이 감소된다
이런 관찰결과를 볼때 위협적이라고 해석할수 있는 사건에 편도체가 활성화 되는것이
공포상태를 내포 한다는 현재의 지배적 주장은 수정 되어야 한다
편도체는 대부분의 뇌 조직과 마찬가지로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예상치 못한 위험신호에 편도체가 활성화 된다고해서 이것을 공포상태의 반영이라고 계속 주장 하는것은 잘못 인듯하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빌리자면
편도체에 대한 분별없는 확신은 분별있는 망설임으로 대체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증거가 모순되는 하나의 가정만을 받아들이면
터무니 없는 결론까지도 변호할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논증에서 러셀은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교황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3=2 라고 가정한다 방정식의 양변에서 1을 빼면 2=1 이된다
교황과 러셀은 두개체 이다 하지만 2=1 이므로 교황과 러셀은 한개체 이다
따라서 교황은 러셀이다
-정서란 무엇인가 -
지은이 -제롬 케이건 | 출판사 아카넷 2009년 )


(자기 공명 단층 촬영기 MRI 로 수집한 뇌 프로파일이 감정에나 정서 상태에 해당 하거나 이를 대리한다고 기술하는 현재의 일반적 관행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이들 통계는 자극이 제시된지 몇초뒤에 뇌 부위로 흘러드는 혈류 변화를 보여주는
반면 정서반응 중에서 즉시 일어나 2초 안에 끝나는 것도있다
둘째- MRI 의 자기장 세기에 따라 자극으로 활성화되는 부위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수 있다
어떤 부위가 강력한 자기 MRI 에서 활성화 된다고 해서 덜 강력한 기계에서도
반드시 탐지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 자극에 대한 특정 뇌 활동 프로파일은 당시의 상황과 개인사 기질이 달라짐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일으킬수 있다
MRI에누워 실험자에게 평가받는 새로운 경험에 따른 불안은 일반적으로 코르디솔 분비량을 잠깐늘린다 이는 피험자의 뇌상태와 심리상태를 바꿀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문제점은 MRI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는 두연구가 동료들에게
더 조심하라고 경고한 이유중 하나이다 이들은 혈류변화의 원인을 알수 없다는 점에서 혈류변화의 심리적 의미가 모호할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서로 다른 뇌상태가 비슷한 의식적 정서를
일으킬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돌연변이가 동일하게 보이는 종양을 일으킬수 있듯시 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표정이 더 풍부한것은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남녀 대부분은 자신의 표정이 풍부한지 아닌지를 모른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상은 다양한 조건이 어우러져 생긴다 내가 알기로 인간행동이나 동물 행동중에
한가지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은 없다
따라서 특정 뇌상태와 특정행동 사이의 일대일 대응은 적어도 지금은 기대할수 없다
이런 회의론의 한가지 근거는 성별이 뇌 활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야한 영화를 보고 같은수준의 성적흥분을 보고한 남자. 여자가 뇌 특히 편도체 시상하부의
활성화 에서는 서로다른 프로파일을 보였다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자동적 반응과 자기보고 불안이 따로 작용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정서 유발자극의 결과는 뇌측정 당시가
아니라 한두시간뒤 또는 더늣게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적 거부에 대한 불안을 쉽게 느끼는 것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사회적거부를
당한지 45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남들보다 더 심한 따돌림 ostrcim 감정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사회적 불안의 행동적 징후를
더많이 보이지도 않았다 산업화된 나라의 유복한 가정에 사는 20대는 대부분 신체가 쇠락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는 65세 이상 성인들 보다 더 강한 정서적 안녕감을 보고한다
하지만 뇌활동 다양한 표정을 지닌 얼굴을 볼때 일어난다
정서적 안녕을 측정한 연구진은 나이가 70세를 넘으면 정서적 안녕이 증진 된다는 비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내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던 독자들도 이사례를 통해 뇌상태가 유일한 증거원 이라면 정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의 의미가 확 바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것이다 정서적 안녕은 다양한 정서주체가 다양한 가중치를 두는 여러 요인에 기반한 주관적 판단이다 따라서 모든사람이 느끼는 안녕감정을 정의하는 특정 뇌상태는 이론상 존재할수 없다 )
-정서란 무엇인가 지은이 제롬케이건 출판사 아카넷 2009년-)


(참고자료-OJ심슨은 69년 남켈리포니아 대학을 전미 챔피언에 끌어 올려서 대학미식 축구선수 최고의 영예인 하인즈만 상을 받고 졸업당시 스카우트 1위로 명문 프로팀에 입단하여 1979년 은퇴할때 까지 각종기록을 갈아치우며 미식축구

최고의 인기선수중 하나 였다고 한다 1994년LA 고급주택가 브렌트우드에 있는 대저택에서 심슨의 전처 니콜브라운심슨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로널드 콜드먼이 온몸이 난자당한 변사체로 발견 당시 목격자는 없었으며 심슨의집에서 피가뭍은 장갑이 나왔고
DNA 감식결과 피해자의 혈흔으로 밝혀졌다
체포된 심슨은 로버트샤피로 등 유명한 변호사로 이른바 드림팀을 구성 장갑이 손에 맡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사건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으며 사건 담당형사가 인종차별주의자 였다는 것을 부각 시키는 등
다양한 정황 단서들이 결정적 증거가 될수 없다는 것을 주장해 1995년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피해자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유죄가 인정되어
법정비용과 배상금을 대느라 집은 물론이고 선수때 받은 트로피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템플대학교 수학과 교수인 존 알랜 파로스 교수는 만약에 매맞는 아내가 있다고 하자
자신을 때리는 남편의 손에 죽을 확률이 얼마일까
이문제에 대해서는 심슨의 변호인이 주장하는 내용이 맞다 0.1%밖에 안될것이다
그러나 OJ심슨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아내가 죽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매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녀를 평소 때리던 남편이 범이일 확률 이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럴 확률은 무려 80%나 된다 따라서 심슨은 아내를 죽인 살인범일 가능성에 충분한 단서가 되고도 남는다
또 범행현장에서 심슨의 발 사이즈와 같은 발자국도 발견됐다
피해자 변호인단은 이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 범행 현장 발자국에는 범인이 흘린 핏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OJ심슨 역시 왼쪽손에 칼에 베인 자국이 있었던 것 피해자측은 이역시 중요한 증거라고 제출했다
그러나 심슨의 변호인단은 같은 발 사이즈가 많고 왼쪽손이 다친 사람수도 많기 때문에 결정적 증거가 될수 없다고 변호했다 세 번째 증거로 제출된 DNA 테스트 역시 확률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내의 피살현장에서 채취한 DNA 역시 심슨의 것과 일치했다
통상 DNA 분석에서 두사람의 DNA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통상 1만분의1 검사측은 심슨이 99.99%로 살인자라고
몰아 붙였지만 변호사 측은 LA 인근의 인구가 300만명 이므로 이중 약 300명이 DNA가 일치할수
있기 때문에 심슨이 살인자라는 결론은 99.7%(1.300)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

OJ심슨 사건 같은경우 당시 심슨과 혈흔이 같은 DNA 를 보유할 사람의 확률이 수억분의 일이 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그 차이가 훨씬 더벌어 졌겠지만
이것만 보더라도 심슨의 혈흔이 거이 확실해 보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쌍둥이들은 DNA가 동일 하다고 하는 것처럼 불가능할것 같은 파워볼 복권 1등 당첨자가 분명히 존재 하듯이
심슨과 같은 혈흔을 보유한 사람은 확률적으로 적지만
분명히 존재할수도 있고 심슨의 주장 처럼 그 혈흔이 누군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심슨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심슨이 자는사이 또는 모르는사이 심슨의 혈흔을 몰래 채취하여 옷에다가 발라 누명을 씌우려 한것일수도 있다고 계속 주장하며 억울하다고 하면 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도 100% 로 확신할수 없기에 정말 인간의 능력으론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설사 심슨이 그후 무죄를 받느라 재판비용으로 수백억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강도혐의로 중형을 선고받고 미국교도소에 수감중이라 해도 그걸로 해서
결코 심슨의 무죄 주장을 의심은 해도 무조건 편견을 갇고
마음대로 판단 할수 없는 이유는
왜냐하면 아무리 돈이 많고 잘나가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빈털털이가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최후를 겪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나 기타 동서고금의 역사적인 사례뿐 아니라 우리들 주변의 사례를 통해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잘못된 오판으로 단 한명이라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존재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누명을 쓰는것 만큼 억울하고 비참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상황이 틀리다

(참고자료-노컷뉴스] 2005년 11월 26일(토) 10:33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발표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셋째 딸 이윤형 양의 사인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결혼 반대를비관해 스스로 목을 맨 자살인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 경찰은 윤형 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교통사고가 아닌 목을 매 숨진 자살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윤형씨는 지난 18일 밤 자신의 맨하튼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숙소에서 자살 기도
윤형씨는 남자 애인과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는 설과 혼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 등이 분분하지만 삼성측은 동반 자살은 아니라고 말했다.
윤형씨는 서울에서부터 사귄 남자 친구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 등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윤형씨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검찰 수사에 대한 불안과 가족과 떨어져 뉴욕에서 혼자 산 외로움, 남자 친구와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뉴욕 총영사관측은 이건희 회장측의 교통사고 사망은 처음부터 앞뒤가 맞지않은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윤형 씨의 사망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기사를 26일 자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 비서실은 지난 21일 이건희 회장의 딸 윤형씨가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CBS 김진오 특파원
CBS 뉴스)

2014년과 2015년 세계 기업 브랜드 가치가 연속으로 7위인 한국에서 독보적으로 최고인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본처 홍라희의 자식들인 장남 현재 삼성전자부회장 이재용 장녀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 차녀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 등과 홍라희의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등이 은밀히 공모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를 받고 있을때인 2005년11월 19일 오전3시 미국 뉴욕현지 시간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이 갑자기 죽었는데
정확한 사인을 밝힐 생각을 하지않고 죽은 다음날 자세한 부검도 없이 급히 가족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재부검 등으로 타살 흔적을 발견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충분히 의심 받을수 있는데도 급히 불에태워 화장하여 DNA도 안나오게 이윤형의 타살 흔적은 물론 이윤형이 홍라희 친딸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올수 없게 급히 화장 처리하고 원불교 절차 였다고 둘러대는 모습에 분노를 느낀다
죽은지 3일만에 무얼그리 감출게 많다고 외부조문 금지하고 간단히 장례까지 극비로 마치고 난후
2005년11월23일 새벽에 화장한 이윤형 유해를 몰래들고 한국으로 입국한 이부진 이서현의 모습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질문을 해도 묵묵 무답 인 것 같았다
2005년11월21일 삼성그룹 에서 기자들 에게 막내딸 이윤형양이 2005년 11월18일 오후 뉴욕 외곽에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2005년11월19일 오전3시 사망 했다고 이미 이윤형 시체를 재부검 등을 통한 타살 흔적을 밝힐수 없게 화장하고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죽은지 3일만에 급히 마치고 난후
발표하여 전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어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조작한 증거를 다시 영원히 부인할수 없게 만들 었는데 그 보도를 보고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가 뭔가 모순이 크다고 판단하고
끈질기게 추적하여 뉴욕 경찰에 일일히 확인한 결과 이윤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건 접수가 없음을 알았고 엘렌 브로코브 뉴욕시 검시관 대변인은 전화로 한국일보 뉴욕 지사와 통화로만 이윤형 시체를 부검한 결과 자살로 판명 했다는 통화를 했다는데
2014년 한국의 유명가수 신해철의 부검결과 기록도 7일 후에나 나온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2005년 이윤형 부검 결과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자살로 판명하고 죽은 다음날 급히 시체를 화장하고 죽은지 3일만에 극비로 장례까지 마쳤는지 의심이 드는건 당연한 겁니다


?

당시 엘렌 브로코브 뉴욕 시 검시관 대변인과 한국일보 뉴욕지사와 통화 했다는게 100%로 확실한지 그때 통화한 사람이 진짜 뉴욕시 검시관 대변인 인지 아니면 고도로 치밀히 계산된 사기극 인지 이제와 진위여부를 호가인할 수는 거이 힘들게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행동이 비 상식적 이며 조작을 하고 감추려는 충분한 의심히 드는건 사실입니다
당시 검시기록과 수사기록을 정보공개하여 확인해야 하는데 삼성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참고자료-

[단독]살인을 단순병사로.. 충북경찰 뒤늦게 허둥지둥

뉴시스 | 박재원 | 입력 2016.05.24. 15:05


【증평=뉴시스】박재원 기자 = 충북경찰이 '증평 80대 할머니 살인사건'을 지병으로 인한 단순 사망사안으로 덮으려다 뒤늦게 유족의 결정적 제보를 받고 용의자를 검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동수사 부실이란 경찰의 고질병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은 21일 오후 3시 벌어졌다.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 주택에서 B(80·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아들이 발견해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괴산경찰서 경찰관들은 증평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검안서를 근거로 사건을 단순 병사로 마무리했다.


유족은 단순 자연사라는 경찰의 말만 믿고 지난 23일 장례까지 마쳤다.

그런데 사건 현장 방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찍혔다. 한 남성이 집에 몰래 들어와 B씨의 목을 조르고, 시신을 추행까지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단순 병사가 아닌 살인사건이었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 CCTV는 경찰이 아닌 유족이 발견했다. 장례를 마친 유족은 고인이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CCTV를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의사의 검안서만 믿고 방에 설치된 CCTV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망 경위를 확인한다며 CCTV 저장장치를 가져갔지만,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셈이다.

유족이 장례 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노모의 억울한 죽음은 영원히 묻힐뻔했다.

유족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들은 경찰은 뒤늦게 CCTV 녹화 영상을 확인한 뒤 인근 마을에 살던 50대 남성을 살인과 사체오욕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했다.

살인범은 경찰이 녹화 영상을 확인한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검거됐다. 살인사건을 단순 병사로 처리한 '얼빠진' 경찰 대신 유족이 진범을 밝혀낸 셈이다.

노모의 억울한 죽음을 그냥 넘기려 했던 경찰의 부실 수사에 유족들은 오열하고 있다.

유족들은 "당시 CCTV만 확인했어도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겠다"며 "더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괴산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불찰"이라며 "당시 시신이 많이 부패해 의사 검안서를 바탕으로 자연사로 판단해 CCTV 영상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p-당시 이윤형양 시체 부검 결과를 정보공개 하여 공개하지 않는 이상 설사 공개 한다고 해도 프리메이슨 삼변회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외 조카인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막강한 국제적 인맥과 자금력으로 미국의 공권력 까지 수족처럼 이용해 부검과 수사기록을 조작 하거나 폐기시켰을 수도 있지만 일단 정보공개를 해야 만약에 조작 했더라도 조작 했다는 단서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윤형의 시체 부검을 공신력 있는 단체가 진짜 부검을 했다는 아무런 부검 진단서를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윤형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대로 자살로 조작 됐을 뿐이지
결코 신해철 처럼 사인을 확인할수 있는 정밀 부검은 없었다고 확신하는 증거는 이윤형을 화장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이 3일 안 이었다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부검을 마치고 장례 까지 마칠수 있단 말인가 설사 미국 경찰이나 검찰이 그렇게 성의없이 사건을 종결 시키려 해도 가족들이 사인을 정확히 밝히려

이의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마치 잘 죽었다고 기대한 것 처럼 장례까지 그것도 극비로 3일만에 일사천리로 끝내고 말았으니 재부검 등으로 타살 증거가 밝견 될까봐 음폐하려한 정황이라고 안믿는게 더 이상한 것이다
당시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는
이윤형 양의 시체를 급히 화장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마친 부분에 대해
삼성가 오너들이 이윤형 시체를 마치 짜놓은 시나리오 대로 처리 했다고 생각 한다고
미국 한인 최대 언론사 선대이저널지에 말한적이 있어 신용일 기자의 말이 기사화 된걸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도 삼성그룹은 신용일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지 못한건 신용일 기자의 말이 신빙성이 있다는 증거 입니다
이런 정황을 볼때 이윤형 양이 이건희 회장이 밖에서 낳아서 핏덩이때 데려와 호적에 입적하여 키운
배다른딸 일수도 있다는 소문이 점점 더 근거가 있는게 아닌가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친딸 같으면 금지옥엽 귀하게 키운 막내딸이 갑자기 죽었는데
그것도 한국 최고 재벌을 넘어 글로벌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 중에
가장 아끼며 총애하던 막내딸 인데 슬퍼서 제정신도 아닐텔데
마치 잘 죽었다는 식으로 그렇게 서둘러 화장하고 장례까지 일사천리로 극비로 마친 이유도 수상하고 납득이 안가는 일인데 죽은 사인 까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음폐 하려다가
신용일 기자가 끈질기게 파해쳐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닌걸 확인하고
한국에 기사를 내려하자 막강한 삼성그룹이 압력을 행사하여 기사를 못내게 막자
대신 취재한 기사를 뉴욕 타임즈에 줘 미국 뉴욕 현지시간 2005년 11월26일자 뉴욕타임즈 기사가 나간후 삼성그룹 에서 갑자기 타살 의혹을 자살로 둔갑시킨 사건을 보면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가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미국 뉴욕 대학원 미술 경영학과에 유학보내 돌아오면 홍라희가 가장 아끼는 고가의 미술품이 즐비한 리움 미술관을 물려 준다고 미리 헛 소문을 낸 것도
2005년11월19일 이전에 미국 뉴욕에서 차로 2시간 거리내에 있었다는 이재용이 이윤형을 청부살해 할것을 미리 알고 그것을 음폐하기 위해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해 바람잡아 손님 잡으려는 교활한 작품이 아닌가 의심 스럽다
진짜 물려줄 것 같으면 유학을 마치고 오면 조용히 물려주면 되지
원래 KGB 처럼 비밀 스럽기로 소문난 삼성가 오너 일가인 홍라희가 가장 아끼는 리움 미술관을 미리 물려 준다고
은밀히 소문을 낸 것도 이례적이며 이미 2005년 11월19일 뉴욕시간 이윤형이 암살될걸 미리알고
이건희 회장을 손님잡아 속이려고 미리 그런 것 같다 비밀 스럽기로 소문난 삼성가의 이재용과 임세령의 이혼도
방송과 언론의 입방아 감으로 무엇보다 좋은 메뉴 인데도 한국의 방송과 언론이 다른 재벌 사건과 다른게 유독 삼성그룹 오너들 관련 뉴스는 쥐죽은 듯 조용히 넘어가는 삼성공화국 인데
리움 미술관을 이윤형이 미국 뉴욕대학원 미술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돌아오면 물려준다는 말을 왜 미리 퍼트렸을까 ?

실제로 이윤형양은 2005년9월부터 미국 뉴욕대학원 미술경영 학과에 유학가기 전에 건강검진에 특히 신경 쓰는등 자살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홍라희 이재용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느낌을 본능적인 무의식 적으로 양자적 얽힘저럼 동시에 전달되어 불안을 느껴 건강검진에 신경을 썼는지도 모른다


?

특히 뉴욕에는 상주하고 있는 똑똑한 삼성그룹 직원들이 많은데도 사인을 정확히 밝힐 생각은 안하고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다음 날 급히 시체를 불에 태워 DNA 도 나올수 없게 화장 했는데 미국에서 애플과 소송전 에도 일부 승소하는 삼성이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은건 당시 뉴욕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었다는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배후에서 빨리 화장 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윤형이 죽은지 3일 만에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까지 마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 했다가 밝각 되는

정황을 보더라도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뻥치다가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에 의해 거짓임이 들어나자 다시

말을 바꿔 자살로 둔갑시켜 새벽 3시에 시체 최초 발견자 신수빈을 좋아하다 자살 했다고 하다가 그후로 내글을 끝까지 읽으면 이해 하겠지만
갑자기 삼성그룹 회장이 가장 총애하는 막내딸이 어느 듣도보도 못한 무일푼 떠돌이를 얼굴한번 보고 3년간 못잊다가 자살 했다는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못믿고 웃을 거짓 유언비어가 한국에 은근히 퍼지는데 이재용이 스스로 그렇게 급히 자살로 단정하고 사건을 종결 시키려 한것은 누가봐도 의심의 여지가 있고 특히 당시 2005년 7월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이 계획적으로 터트린 삼성x파일 사건으로

자존심강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없게 만들어 1999년 수술한 폐암이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시켜 치료중인 시기를 시나리오 대로 세팅하여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하기 위해서는 두번다시 만들기 힘든 기회로 보고 이윤형을 암살한 이재용이 시체를 짜놓은 시나리오데로 일사천리로 끝내고 이건희 회장에겐 병세 악화를 이유를 거짓 핑계로 알리지 않고 삼성알바들 시켜 조직적으로 마치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자살한걸 알고도 장례식에 참석 안한 것 처럼 은근히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데 이용 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홍라희 이재용 스타일의 더럽고 교활한 음모인 것이다 이재용이 폐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중인 이건희 회장에겐 장례까지 일사천리로 급하게

마치고 난후 병세 악화를 우려 했다는 이유로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에서는 삼성가 오너들의 말을 초등학생이 교사의 말을 받아쓰기 하듯 확인도 없이 보도하는 언론과 방송의 모습을 보며 한국이 삼성공화국 이란말이
허언이 아니란 증거이다
양자 물리학자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파인만은 자신이 알수 있는건 단한가지
양자 물리학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용은 이윤형이 유서도 없이 발이 땅에 닫는 상태에서 문 근처에 목을 멧다는데
타살 의심은 전혀 하지않고 그렇게 급히 화장하여 DNA도 안나오게 만들었을까?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절대 내 딸이나 내 여동생이 자살할 일이 없다고 타살 의혹을 밝히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경우에 따라 1달 이던 2달 이던 시체를 보관 할테니 여러번 정밀 부검을 하여 사인을 밝히려 노력 했을 것이다 만약에 자살이 아닐경우 이재용이 범인임을 스스로 용의자를 단정하고 들어낸 것이라고 추리할수 있다 이럴경우 진실은 둘중 하나이다


1.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이 정말 70억분의 1의 확률로
어디듣도 보도못한 떠돌이 무일푼을 얼굴한번 보고3년간 못잊다가
자살 했던가
2.아니면 삼성그룹 3세들이 상속문제를 둘러싸고 삼성회장이 가장총애하는 막내딸을
치밀하게 청부살해 하고 조작한 사건중에 둘중하나가
진실일 것이다 생각은 강요할수 없어 자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으면 청부살해 가능성에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는걸 이해하게 될것이다
이렇게 oJ심슨 사건 처럼 인간의 마음 곧 의식을 측정 하는게 힘든데
하물며 무의식 현상은 더더욱 미스테리라 금금한건 당연하다
프로이드가 무의식의 입구는 열어 놨으나 그 엄청난 미스테리를 학자들이 다 파학한다는 것은 오랜시간이 걸릴듯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생각을 알수가 없는데 그런데 인간이 다른 사람이 생각 한다는걸 어떻게 쉽게 알수있을까 그것은 내가 생각 하기 때문에 내가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권태 불안
두려움 희망등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도
생각 할거라고 판단 한거지 그러나 그걸 과학적 으로 아직까지 측정 할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디안 들에게 강제로 빼앗은 백인들이 유색인종인
인디안 들은 자신들과 다른 인간 이하의 동물과 같은 의식을 소유했다고 무조건 우기고 무참히 학살했다
당시 백인들이 유색인종인 인디안과 흑인이 자신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같은 인간이라고 인정하는건 도저히 참을수 없는 일이 었을 것이다
요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심지어 바퀴벌레도 각각 성격이 틀리고 태도가 틀리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지만 바퀴벌레 들도 인간 처럼 제 각각 개성이 틀리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으로 부터의 두려움 권태 불안등을 잊기위해 잡담과 수다를 떤다고 했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도 각자 처해 있는 상항에 따라 이해하는 것도 천차 만별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일명 상대성 이론이다 빛의 속도는 변함이 없는데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서 각자 틀리게 보인다고 하잖아
쉽게 설명하면 같이 있고 십은 상대와 같이 영화구경을 가면 시간이 금방가는데
그렇지 않은 상대는 지루하게 시간이 가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백인들이 특히 스페인 점령군 이
남미의 원주민 인디안 들을 백인인 자신들과 얼굴색 이나 모습이 틀리다고 생각이 틀린 동물 이하로 취급하고 학살로 인종 청소를 하여 백인들 만이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려고 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통털어 특히 쿠바와 아르헨티나가 잔인한 인종청소가 가장 심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심지어 사냥개를 사용 하여 인디안 들을 사냥하고 아무 저항도 못하는 인디언 들을 잡아다가 잔인하게 불에 태워 죽이고 어린 아기를 축구공 처럼 발로 차쳐 학살 하기도 했다니
-참으로 잔인하고 더럽고 무지한게 인간의 생각이지 -

(영혼은 내 개성이나 내 기억처럼 나에게 속한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노망이나 정신 착란이 생기면 두뇌를 손상시켜 개성이나 기억둘다 없애 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내가 무엇을 소유 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의사로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 하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죽는다는 것은 인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 현실적 이지는 않지만 대신 아주 결정적 이다
아무리 재능이 많다고 해도 혹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죽음은 누구나 공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28 )
제목 -죽음 이후의 삶 저자 디팩 초프라 출판 행복우물 2008년발간 )

디펙초프라는 tv를 예로 들며 tv가 고장나면 안나오는 것은 TV가 고장나서 그런거지 방송국이 고장난 것은 아니다
라고 설명하며 우리가 tv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tv도 있어야 하지만 방송국의 존재가 절대적 이다 라는 것이다
tv가 있더라도 방송국 에서 전파를 보내지 않으면 안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프로를 보여 줄지도 전적으로 tv가 아니라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 의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관점도 이러한 비슷한 추리가 필요하다
간질병 환자들이 발작하는 이유는 뇌파가 맞지않아 일으키는 발작 이라고 한다
라디오와 TV에 전파와 주파수가 있듯이 모든 만물은 양자진동을 하며 일정한 주파수가 존재한다고 한다

인간 에게는 뇌파 라는게 있는데 그게 주파수가 맞지 않을때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번도 가르쳐 준적이 없는데 연어는 그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여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투끝에 GPS도 없이 정확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와 알을낳고 죽는다
이런걸 모두 진화론으로만 엮어 설명하려 한다면 언어도단 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조물주가 도깨비 방망이 처럼 뚝딱하고 만들 었다고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각각 종의 특성의 기본 프로그램이 DNA내재 되어 있다며
인간과 쥐의 유전자가 90%로 일치하고 원숭이와 인간의 DNA가 98%일치한다고


(참고자료-재천의 자연과 문화] [15] DNA와 셰익스피어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입력 : 2009.07.13 23:41 | 수정 : 2009.07.15 10:08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서정선 소장 연구진은 최근 미국·영국·중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인간 유전체(genome)의 염기서열 전모를 밝혀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30억 쌍의 인간 DNA 염기서열을 해독한
미국의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2800여명의 과학자가 동원되어 무려 13년 동안 2조7000억원의 경비를 들여 진행된 데 비해 우리 연구진은 비교도 안 되는 연구비로 불과 두 달 만에 훨씬 더 정확한 결과를 얻었다.앞으로 3~5년이면 누구든

그저 10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맞춤유전자 의학시대가 열릴 것이란다.2004년 우리는 자연계에서 최초로 자신의 유전자가 몇 개인지를 알게 된 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 첫 앎의 경험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유전자 수가 초파리(약 1만3000개)나 꼬마선충(1만9000개)보다는
많지만 애기장대(2만5000개)라는 식물보다도 조금 적은 2만~2만5000개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처음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한마디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 보잘것없는 생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랴? 매일 우리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쌀(벼)이 우리의 두 배 이상인 5만~6만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걸.그렇다고 해서 유전자 개수 때문에 기죽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포유동물들은 거의 모두 비슷한 숫자의 유전자를 지닌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 염기서열은 98.7%가 동일하고 쥐의 DNA도 인간과 거의 90%가 일치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조절 메커니즘과 조합이다.
섹스피어의 작품 맥베스·리어왕·오셀로에 사용된 단어의 수를 세어보면 평균 3만1534개로 서로 얼추 비슷하다고 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도 the, and, I, to 등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개수의 비슷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 세 희곡이 우리에게 전혀 다른 감흥을 주는 이유는 사용된 단어들의 배열과 조합이 다르기 때문이다. 3만여 개의 단어로 쓰인 희곡이 모두 맥베스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비록 숫자는 같더라도 우리 유전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아직 인간이 속단하기에 이른 여러 밝혀지지 않은 다른 원인들이 존재 할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속에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그저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FRS, 1809년 2월 12일~1882년 4월 19일)은 영국의 생물학자, 박물학자이며 철학자로 인정받기도 한다.) 진화론
만으로만 쉽게 설명하려 한다면 오히려 1882년에 죽은 다윈 보다 진화가 덜된 인간들 이라고 밖에 설명할수 있는 일이다


(참고자료-과학도 설명 못하는, 인간의 불가사의 7
코메디닷컴|권순일|입력2015.07.24 13:15|수정2015.07.24 13:19
이타적 행동하는 근거 불분명
(현대 과학은 원자를 쪼개고 달에 사람을 데려갔으며 인간의 유전자를 해석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 중에는 아직 잘 설명을 못하는 게 많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가
인간의 불가사의한 행동 7가지를 소개했다
◆키스=키스하는 습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키스를 안 하는 사회도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부정된다. 엄마 젖을 빨던 습성에서 키스가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젖을 뗄 때
엄마들이 음식을 씹어 아이 입에 먹여 줬기
때문에 침을 나누는 것이 기쁨을 주는 행위가 됐다는 학설이다.
◆얼굴 붉히기=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들통 나게 만드는데 이렇게 불리한 특징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서 붉어지는 얼굴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설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약함을 드러내 대결을 누그러뜨리는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람들이 주목할 때 얼굴이 붉어지므로 쓸데없는 주목을 피하려는 작용이라는 학설도 있다.
◆꿈=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욕망이 꿈으로 표출된다고 했지만 이 이론은 현재 거의 부정됐다. 왜냐하면 여러 연구를 통해 꿈 기능은 감정 처리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꿈을 꾸면서 왜 그렇게 이상한
영상들을 봐야 하는지는 아직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코딱지 파기=콧물과 먼지가 섞여 말라붙은 코딱지를 파는 것은 거의 이득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의 25%가 하루에 평균 4번씩 코를 후비는 이유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코 속의 이물질을 제거해 면역력을 높이려는 행동이라는 학설이 있다.
◆사춘기=인간 말고는 어떤 동물도 화를 잘 내고 예측할 수 없는 사춘기를 지나지 않는다. 사춘기를 겪는 것은 미리 여러 별난 행동을 하도록 해 뇌를 재조직함으로써 더 나이가 들어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이라는 설이 있다.
◆이타주의=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이타적 행동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타적 행동을 통해 집단의 결속을 다진다는 설, 또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단순히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예술=인간이 그림, 춤, 조각, 음악 등의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작이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것과 같은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예술이 지식을 퍼트리고 경험을 공유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에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꿈이 단순히 감정 처리 일 뿐이란 일방적인 주장을 나는 믿을수 없다
대부분의 꿈은 어쩌면 단순한 감정처리 일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단순한 감정처리 일 뿐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꿈을 빙산의 일각뿐이 알지못하는 인간의 오만 일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드물긴 하지만 과학으론 설명할수 없는 미래를 예언하는
꿈을 드물게 아주 선명히 꿀때도 있기에 꿈에 대해서 아직 명확히 정의 내리긴 힘들다 우리는 꿈이 아직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알아가는 겨우 초등학생 순준일 뿐인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은 각자 처한 환경과 능력의 개인차에 따라 틀리 겠지만 좀더 발전 하려고 변화하여 노력 한다면 조금씩 나아지며 진화 하는건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으로 15차 방어 이상까지 한 유명우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비슷한 시대에 활약했던 헤비급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 보다 더 강한 주먹이 될수 없고 4억년전 지네는 지금도 지네고 3억년전 잠자리도 크기와 모양은 많이 변했지만 잠자리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같은 종에서 예를 들어 고양이과 에서 호랑이 사자 고양이 표범으로 소진화는
확인 됐지만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변하는 개가 사람이 되는 대진화는 아직 증거가 없다

글자를 안다고 누구나 섹스피어가 될수 없는 것처럼 식물과 해양생물과 동물과 인간의 단백질과 dna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현재의 인간의 과학으론 이해할수 없는 복잡하고 절묘한 기적같은 단백질 배합이

이루어져 종을 결정한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관가 하고 같은 종에서 나왔다고 쉽게 독단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늑대가 개나 코요테 등으로 진화할수 있어도 원숭이가 된다는건 거이 불가능 하다고 본다 그러나 과학자 들은 정확히 설명할수 없으면서도 진화론 으론만 쉽게 도매급으로 처분하려 한다면 지성인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정신과의사 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프로이트가 그토록 고심하며 알고싶어한것은 무엇일까 ?
일부 학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게 대단한것처럼 포장하려고
일반인은 잘 알아 들을수 없고 이해할수 없게 어려운 문자로 이상하게 설명하는데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쉽게 설명하면 왜 인간은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분류 되는 성적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성적욕망 왜 모든 동물은 암수가 정확히 구분되며 발정기가 되면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수컷이 암컷에 성교를 하려 덤비며 암컷은 저항하다 결국 그것을 받아 들일까?

암컷은 새끼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성장하도록 도우려는 모성본능은 왜 생긴 것일까 그러나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느낀다
나는 남자라 이쁜 여자를 보면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적어도 나의 남성의 성적 욕망을 누구보다 잘안다

그러나 여성의 욕망을 정확히 이해할수는 없다
여자들은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도 돈만 많으면 나이가 자신보다 배 이상 많고 얼굴도 못생긴 어찌보면 개만도 볼품없는 더러운 냄새날껏 같은 남자와 사는 이쁜 나이어린 여자들을 볼때 여자들을 정말 이해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어디 까지나 내 생각인데 적어도 인간의 남녀의 호감을 갖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나 학벌 집안의 배경도 중요 하지만

냄새가 중요한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아무리 돈이 많은 여자라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 여자 하고는 오래 못살 것 같은데

뭐랄까 인간이 만든 언표로는 표현할수 없는 좋은 냄새가 나는 여자와 같이 있으면

시간가는줄을 모른다


(참고자료-부자나 키 큰 남자만 보면 홀딱... 여자는 왜?

입력 F 2015.02.06 10:49 수정 2015.02.16 15:07


- 여자는 감정적이다?
여성은 본래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뇌의 감정 처리 부위인 편도체는 여성에게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더욱 풍부하고 강력한 감정적 기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남자가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에는 여자보다 더 감정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여자보다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이 잘 진행되면 기분이 고조 되는 폭도 훨씬 크다는 것이다.

- 여자는 부자를 좋아한다?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있고 그에 따라 안정된 수입을 가지고 있는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 따르면 남성에게는 번식력이 강한 젊은 여성에 끌리는 본능이 있다. 어리고 예쁜 여성을 통해 종족을 보존하겠다는 본능이다. 반면 여성은 한 명의 남성을 통해 얻은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본능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환경의 안정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 여자는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 여자들이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보기에 좋아서가 아니라 키가 크면 힘이 세고 여자와 자식을 잘 지켜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있다. 여자들은 진화론적으로 자기와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남자를 더 선호하는데 키가 큰 남성들이 이 부분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일대일로 주먹다짐을 했는데 키가 크면 위에서 아래로 주먹을 날릴 수 있어 싸움에서 유리했다고 한다. )

정은지 기자 ()

여자가 키큰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복합적인게 겹치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페니스가 크고 더욱 강할것 같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섹스를 했을때 물어보니 페니스가 큰것도 좋지만 크기보다 딱딱한게 더욱 좋다고 말하는 여자도 있었다


여자와 섹스 했을때 발기가 절정에 다다라 페니스가 최고로 딱딱할때 여자의 질에 넣고 펌프질을 해줄때와 어느정도 발기가 시들었을때 펌프질을 해주는것과 여자가 느끼는 성감도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것만 봐도 페니스 크기와 특히 딱딱하게 발기된 상태가 여자의 성감 만족도에 중요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또 다른 여자와 섹스 할때는 여자의 질에 페니스를 넣고 펌프질을 해줘도 크게 성감 만족도를 못느끼다가도 유방을 입으로 빨아주자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여자도 있었다

그래서 페니스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성감대는 천차만별로 다르고 다양하다

남자의 성감대는 단순한데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복잡하고 이해할수 없는게 여자란 말이 있는가 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주가 창조한 최고의 걸작은 어머니란 사실이다

미국유학생 출신의 미스 코리아출신의 kbs아나운서의 직업을 가진 미모의 캐나다 교포 장은영 이가 충분히 먹고살수 있고 좋은 직업을 가진 당시 20대의 처녀 장은영이 자신보다 27살이 더 많은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의 3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간 사건에 충격을 받은사람들이 많았다 그후 이혼을 했다는 말도 있지만
나 같으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나보다 27살이 많은 할머니와 절대 결혼 안할건데
여자들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동물들도 무리를 지배하는 두목 수컷이 무리의 모든 암컷을 차지 하듯시 인간도 돈과 권력 유명세에 여자들이 빠지는 이런 부분 만은 진화의 한단면 일수도 있다 당대의 잘나가던 미모의 처녀 여배우 최명길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그것도
외모도 볼품없는 애딸린 당시 유명 작가 김한길에 시집 간 것도 남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들은 여자가 얼마나 이쁘고 날씬하며 젊냐 이런걸 보고 여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은데 나의 경험과 관찰로 봤을때 여자의 다수는 남자의 외모나 나이 보다는 남자의 경제력과 권력 유명세에 점수를 많이 주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그러니 돈과 권력을 쥐고있는 인간들이 거짓말을 진실로 포장하여 퍼트려도 세인들은 무조건 믿으려는 경향이 강하며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은 색 안경을 끼고 잘 믿으려 하지않는 경향이 강한게 현실 이기도 하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 여자들의 성적 욕망을 정확히 이해 할수는 없다 이와같이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망이 왜 다른지 정확한 근본원일을 아직 확실히 파학 할수 없지만
그러한 성적 욕망 이란건 종족 보존에 필수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건 과학의 발달로 점점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성적 욕망이 없다면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은 후세를 남기지 못하고 모두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후세를 남길수 있게 하는 성적 욕망이야 말로 모성 본능과 더불어 신비로운 것이며
그것은 무의식에서 노는 것이며 주체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일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프로이트 이지만 그런 성적욕망이 있게한
타자의 욕망 곧 무의식이야 말로 신이다 라고 말한다
근데 더욱 금금한 것은 제인구달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침팬치도 근친 상간을 금지 한다는데 인간들 에게 근친상간을 절대 금기시하며 계급이 높은 침팬치가 싸움에 끼어들어 계급이 낮은 침팬치를 구한 경우도 관찰 됐다고 제인구달 박사는 말한다

인간다운 자존감을 지킬수 있게한 욕망을 절제하는 양심은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며 그런것들은 대체 어디서 오는지 금금한건 당연한 것이다
그 무식하고 험악한 악어도 모성 본능으로 자신의 새끼를 지키고 부화하려 노력한다
잠자리는 공룡보다 훨씬 오래전에 지구상에 등장 했다고 한다
3억 년전 잠자리 화석이 발견됐는데 크기가 지금의 독수리 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조류등 천적으로 부터 잡히지 않기 위해 현재와 같이 작아지는 진화를 했을 것 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지금의 잠자리는 한번에 알을 50개 에서 많게는 수백개 까지 낳는다고 한다 알들은 유층으로 물속에서 수개월 에서 혹은 수년간 지내면서 독자적으로 생활하는데
유충이 껍데기를 벗고 잠자리가 되는순간 육지에 올라와 껍데기를 벗고 날아 오르는데
그 순간을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정확히 알고있다
마치 겨자씨 보다 10억조 분의 1보다 더작은 어떤 상상할수 없는 열과 에너지의 특이점이
갑자기 빅뱅을 일으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오늘날의 우주로 까지 성장한 것과 같이
잠자리의 아주작은 알이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유충이되고
또 유충이 껍데기를 벗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을 이미 알때 부터 마치 안것같지 않은가?
잠자리는 그렇게 공룡보다 더오래전 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살고있다 잠자리의 수명은 짧게는 1-2주 길게는 수십일 까지 라고 하는데
잠자리의 삶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또는 부모로 부터 일체 배운적이 없는데
알에서부터 DNA에 마치 무의식 처럼 저장되어 있는 컴퓨터에 저장된 하나의 게임 프로그램 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추론할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억년전 독수리 만했던 잠자리가 지금같이 작아 지는데는
잠자리 나름데로 천적으로부터 생존하여 살아남기위해 수많은 결단과 선택을 한것은아닌가
인간과 달리 특히 야생 동물들은 가르쳐 주거나 교육을 받은것 같지 않은데
무위식적으로 발정기가 되면 종족번식을 위해 각 종 마다 특이한 행동을 하며
수컷이 암컷에 구애를 한다
( 참고자료-정신의 표현은 지나가는것을 비추는 엷은 회색의 시냇물과 같이 흘러가는 거야
내 과거도 코도 눈 색깔도 대저 내가 나자신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위급한 순간에 교차점 이나 보도의 커브에서 육체를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나서 나를 꽉 붙잡고 여기 버스앞에 세운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 중에서
- 출판사 도서 출판솔 발행일 2004년08월03일 번역 박희진-)

입자에 질량이 없으면 다른 입자와 반응을 할수가 없어
우주 만물도 존재할수가 없다고 하는 힉스의 주장을 따서
힉스 입자란 이론이 스위스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 입자가속기 실험으로 검증됐다
과학자들은 태초에 힉스입자로 가득 찬 공간에 질량이 없던 입자가 빠지면서 질량이 생기고 빛의 속도로 달리다가 이동 속도가 늣어졌다고 가정한다


(참고자료-세상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됐다
힉스의 발견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표준모형의 완성을 의미한다
진실에 가까워 질수록 새로운 가능성이 즐어들기 때문에
와이어드는 힉스의 등장이 지난 반세기 동안 이론 물리학자 들이 제시한
수많은 이론을 순식간에 과거의 오류로 만들면서물리학자들의 궁극적인 꿈인
최종이론 세상모든현상을 아우르는 하나의 원리로 다가가는 길을 더욱 멀게 만들것 로 내다봤다 표준모형은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것들을 설명 하지만
중력을 포함하지 못하고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끈이론과 초끈이론 초대칭이론등 힉스를 포함한 표준모형이 틀렸다는
가정하에 최종 이론을 꿈꾸며 만들어진 이론들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된 만큼
물리학자 들은 다시 시작해야 되는 출발점에 서게된 것이다)

서울신문 2012년 7월10일 박건형기자 기사 내용 -)


세계적인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호킹박사와
코스모스의 저자 칼세이건과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 과학연구소 소장 등은
뇌가 곧 정신이고 정신이 곧 뇌라고 주장한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세이건도 병으로 죽은지 오래 됐고 단지 천체 물리학에 대해서 좀더 많은 지식을 알고있다 뿐이고 스티븐호킹은 자신을 괴롭히는 루게릭병 발병 원인도 아직 제대로 몰라 치료제를 개발 하지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위대한 설계란 책을 나도 읽어봤는데
그 전에 과학자들이 발견한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물리학등 과학적 상식을 나열한것 뿐이 뭐가 있나 위대한 설계를 스티븐호킹과 공동 저자한 사람도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라는 양자물리학자 이다
호킹이 주장하던 끈 이론도
힉스입자 발견후 뭐가됐나 위대한 설계란 책도 힉스입자가 곧 발견될껄 알고
미리 출판하여 책 팔아먹을 려고 호킹의 주변인들이
루게릭 병으로 고통받는
스티븐 호킹 인지도를 이용해 돈벌이 할려고 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정도 였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까 한국의 뇌 과학의 대가 신희섭 박사가
뇌와 정신은 곧 하나다 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뇌 라는것은 사실 엄청나게 복잡하게 조직되어 있어
지금 들어난건 1%로 빙산의 일각보다 더 적다 그러면서도 뇌 과학계 에서는 인간의식을 발현하는 기능을 하는 부위가 처음엔 뇌에 어느 특정부위에 있을꺼라 생각하고 열심히 찾다가
지금은 뇌의 어디 한 부분이 아니라 뇌 전체가 작동 하여야 인간 의식이 발현 한다는
주장을 읽고


(참고자료-두뇌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까닭은 만약 한가지
생각을 하-242-는 데에 두뇌 전체가 관여 한다면 당연히 한가지 행동을 하는데도 전 우주가 관여 한다는 유사 결2론을 말하기 위함이다)
죽음 이후의 삶 저자 디팩 초프라 출판 행복우물 2008년발간 -
(인간은 우주라 불리는 전체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우주와 분리된 개체로 보며 살아가지만 그건 시각적
착각일 뿐이지요. 이런 착각이 인간을 고통에 빠트립니다
이 비좁은 감옥에서 벋어나 모든 생명체를 연민의 감정으로
껴안고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완전한 경지에 이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비좁은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자체 만으로 고통에서
해방될수 있습니다
16세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긴 랍비 에게 보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칼세이건이나 스티븐호킹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 연구소 소장의 주장 나름대로 존중하여 진위여부를 확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그러나 힉스 없다에 100불을 걸어 날린 스티븐호킹 처럼
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신용 하는건 잘못된 생각이다
생각이나 상상은 누구나 다양하게 하는것이 좋다
인류가 수십억 인데 그들각자 나름대로 빅뱅의 원인을 생각하여 추리하며 상상 한다면
그.중에 하나는 제대로 맞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국가 에서 무조건 생각을 통일해서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의 생각대로
통일하자고 하는 말이 인류발전에 얼마나 나쁜말 인지 이제야 알겠는가
정서를 뇌 스케너로 아무리 정밀히 촬영해 봐야 현재로선 정서를 아는건 불가능 하다고 주장하는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제롬케이건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며
인간의 정신이 뇌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하버드의대 출신의 교수

27p-디팩초프라 주장은
기적보다 확률에 무게를 두며 무신론자 라고 종교관을 밝힌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주장하며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신이다 라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 생각은 자유라고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참고자료-303-모든 충동이 본성상 부분 충동인 이상
어떤 충동도 즉 성 충동의 전체성
-사람들이 보기에 정신 작용내로 들어올 경우 그 속에서 즉 생식 기능을
나타낼수 있다고 가정 되는것 -을 표상할수 없습니다
프로이드는 바로 이점을 환기 하면서 잠시 사랑이 그런 전체성을 실현할수 있는지 자문 했습니다 -308-생물학적 수준에서 라면 누가 그러한 기능을 인정하지 않을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프로이트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증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신 작용속에선 이 기능이 그 자체로는 표상되지 않는다고. 확신 합니다
정신작용 속에는 주체를 남성이나 여성으로서 잡을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체는 정신작용 속에서 오직 남녀의 등가물 들만 즉 능동성과 -309- 수동성 만을 위치시킬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 생식의 기능을 완벽하게 표상해 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표상은 그렇게 구속적 이지도 완벽 하지도 않다는 것이
남성과 여성 이라는 대극성은 능동성과 수동성 이라는 대극성에 의해 대표- 대리 - 되는 것일뿐 이라는 겁니다 능동성 이란 극은 Trieb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수동성 이란 극은 즉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만 수동적인 것이지요
-309-오직 이러한 분극만이 분석 경험을 통해 이미 확인된바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필연성을 부여 합니다 즉 우리가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타자의 장에 속한 드라마나 시나리오에 달려 있다는 것이지요 -309-
저는 지난 시간에 인간 존재는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항상 타자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점을 강조 했습니다
부분 충동이든 부분 충동만이 정신작용 에서
성욕이란 성욕 자체와는 무관한 것으로 부터 도출된 주체의 어떤 관계에 의해 대표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욕은 결여라는 통로를 통해 주체의 장 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 이지요
-310- 주체가 시니피앙에 의존하며 그 시니피앙은 무엇보다 타자의 장속에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여는 더앞서 있던 또다른 결여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행하는 결여 즉 생명체가 출현하는 순간에 위치하는 유성 생식의
순간에 위치하는 실재적 결여를 계승 하지요 실재적 결여란 생명체가 유성생식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 하면서 자신의 살아있는 일부를 상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결여를 실재적인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재적인 어떤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다시말해 생명체가 성에 종속된 주체가 됨으로 인해
개체 로서의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점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310- )
-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자크 라캉 저/맹정현,이수련 공역 | 새물결 | 2008년 12월
[출처] 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한국의 연예인 홍석천은 남자의 뇌를 부모로 부터 물려 받았 으면서 정신은 여자의 정신을
지니고 행동 하는건 칼세이건이 무의식이 있다고 인정 하면서도
그것이 뇌 이외에서 발생한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 못했다는

주장을 정확히 반박하는 정황 증거는 아닐까 ?

28p- 생각은 자유라고 뭐 이정도 가지고 칼세이건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엔 미약 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프로이트 태어나다

[기억할 오늘] 5월 6일한국일보 | 최윤필 | 입력 2016.05.06. 04:51

160년 전 오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로 심리학과 정신의학계의 20세기 절반을 지배한 정신분석학파를 창시했다. ‘절반’이라고 했지만 그의 문제의식과 개념들은 예술ㆍ인문ㆍ사회과학 전반에 깊이 스며 원심분리기를 써도 걸러내기 힘든 프로이트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1899년 11월 역저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일상의 말과 행동, 느낌, 충동 등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의 영향을 받으며, 무의식은 복잡 다양한 방어기제- 억압, 합리화, 투사 등-를 발동해서 의식과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창구가 꿈이라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 유년의 경험, 특히 성 욕구가 존재 전반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쳐 불안과 신경증 등 온갖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며, 심리치료를 위해 무의식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치료법으로 ‘대화(치료)’를 권했다.

그의 이론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성욕을 근거 없이 강조한 점, 인간을 무의식ㆍ유년 경험에 가두려 한 점 등이 공격 대상이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선,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우상의 추락’(전혜영 옮김, 글항아리)에서 프로이트 개인의 고백이자 남근숭배주의의 한 반영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예컨대 애인 앞에서 저도 모르게 옛 사람 이름을 언급하는 일-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이라고 한다-을 결별해야 할 과학적 근거로 여기는 이들은 있다. 아들러, 융 등의 신프로이트학파는 프로이트의 사적 체험적 편향에서 벗어나 사회적ㆍ집단적 영향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의 담대한 발상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충동과 무의식의 관계를 알게 했고, 성격 발달과 유년의 중요성에 눈 돌리게 했고, 무엇보다 대화치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인류에게 성의 심리학적 중요성을 용감하게 수용하게 했고, 의식이 주체를 기만할 수 있고 또 자주 기만한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했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1938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 이듬해 숨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mailto:)

한국의 원로 여가수 패티김은 60-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여가수 였다
지금은 은행원이 선망의 직업 이라고 볼수없다 그러나 한국이 먹고살기 어려웠던 60년대 만 해도 젊은이 들에게 선망의 직업이었던게 분명하다
당시는 택시기사도 선망의 직업인시대 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패티김이 50년대 말인가 60 년대 초인가 누군가 은행원과 중매를 시켜 결혼을 시키려 했는데 왠지 모르게 패티김은 노래를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원과 결혼을 거절하고 가수의 길로 들어 섰다고 한다


(참고자료-공은 수십번을 던져도 신뢰할 만한 방정식 에서 계산해낸 속력으로
땅에 떨어진다 열한번을 떨어 트렸다고 해서 열두번째 낙하 형태가 달라 지지않는다
하지만 뇌상태는 같은 경험을 되풀이 하더라도 변화가 일어난다
피험자에게 뱀사진을 열두번째 보여줄때 일어나는 프로파일은 처음보여 줄때와 다를 것이다
이는 피험자가 뱀사진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뱀 거미 겁먹은 얼굴등의 사진으로 일어난 정서를 뇌 스캐너로 측정하려고 할때 피험자를 스케너에 눕히기 전에 사진들을 먼저 보여준 다음 이중에서 어떤 사진을 보게 될지 미리 알려준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하지않는다
그러면 이들의 패턴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 때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신경과학자 들은 뉴턴 물리학의 인식론에 매력을 느끼지만 이들이 연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체 이다 생물의 반응은 언제나 생물 자신의 과거에 영향을 받는다
-정서란 무엇이가 지은이 제롬케이건 출판사 아카넷 2009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삶이란 불가능하다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레오 톨스토이가 적은 글이다

(참고자료-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란 책은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지고 마는 허망하기 이를데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여 어럽사리 이타의 경지에 도달하면 하루살이 성에서 벗어나 영원성의 세계에 참여할수 있다고 작가는 믿고있다
따라서 우리의 최대과제는 이기적 자아의 질곡에서 벗어나 그길이 아무리
멀고 고되더라도 이타적 사랑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출판사 도서 출판솔 발행일 2004년08월03일 역 박희진 )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당시 과학 철학 종교 문학을 총 망라하여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며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 했지만
당시 톨스토이가 풀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는 참회록과 인생론 에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명예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지만
나이들어 추하게 늙어가며 죽는것을 막을수 없는 운명 이기에
어럽게 얻은 명예와 부를 두고 죽기가 아쉽고 허무하다고 모든 노력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도 톨스토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 알수가 없어
그저 추상적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특별히 과학문명을 발전하며 진화할수 있었던 배경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희생과 사랑 때문에 멸종하지 않고 이토록 진화한 것이라고 보고
인간의 삶의 목적은 자신만을 위한 행복과 이기심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랑과 봉사와 희생적인 삶인 이타적인 삶이라고 결론 내리고 인류는 이러한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 많은 도움을 받고 특별하게 진화할수 있었다는게 톨스토이의 생각인 것 같다
톨스토이는 특히 누구나 무엇은 사랑하고 무엇은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인간의 각자 독특한 개성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는건 아닐까 물음표를 남겼다?
나의 여동생을 제발 살려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끝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여동생이 죽자 세상 모든 것을 잃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한달간 너무 슬퍼서 잠을 제대로 못잣다 그리고 여동생 꿈을 너무나 자주 꾸었어 여동생도 불상한 어머니와 나를 두고 혼자 떠나기가 슬펐던지 꿈에 너무나 자주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오면서 그때 만큼 슬퍼던 적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고 여동생이 살아 올수 있기를 간절히기원 하기도 했다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와 어머니의 삶 전채가 슬퍼지기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후 나는 모든것에 흥미를 잃고 자포자기 인생을 지금 까지 살아오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까지도 그전보단 못하지만 여동생을 잃은 슬픈 기억은 지워 지지 않고 있다
내가 죽기전 까지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다 내가 죽더라고 영혼 이란게 있다면
우주의 잠재의식 홀로그램 처럼 영원히 기억되어 질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에 여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어머니와 나의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여동생 사고로 죽자 모든 불행과 슬픔은 내가 가져갈테니 여동생 영혼만은 천국이나 좋은곳에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고 그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여동생과 어머니를 천국이나 좋은곳에 보내달라고 역시 같은 기도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물론 나의 핑계 일수도 있지만 스포츠 세계 에서도 작은 변수 하나가 승패를 결정짓는
사례가 수도 없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전체적인 전력 면에서 독일이 좀 더 나았다고 다수가 보는데 결정적 단독 찬스는 아르헨티나에 더 많았어 이구와인의 찬스는 정말 아까운 찬스 였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라는 메시조차 단독 찬스를 놓쳤지 이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면
경기의 전세는 완전히 바꼈다 그리고 모든 찬사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갔고
세계 축구의 대세라고 떠들 었겠지 그러나 연장전에 독일이 단 한번의 결정적 찬스를
골로 연결시켜 우승하자 모든 찬사는 독일로 돌아갔다
이걸 변수라고 해야 되나 상수라고 해야하나 이세상 인간들은
이기는 쪽이 상수 라고 떠들겠지 그러나 우주의 상수는 아직도 미스테리인 우주의 다수를 차지하는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인간이 관찰할수 있는 원자로 구성된 별과 행성등 우주 물질은 고작 4% 남짓 이라고 하는데
96%에 가까운 지금 우리가 살아 숨쉬는 공간 어디에도 존재하는 암흑 에너지 암흑물질은 지구에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우주의 허공은 빈게 아니라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이 물질이야 말로 우주의 팽창을 유도하는 물질이고 우주를 지탱하는 물질일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하는데 아직 이물질에 대해 정확히 아무도 모른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공은 빈게 아니라 우주를 충만으로 채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와 같은것이 아닐까?
사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공이란 이 세상을 편견없이 살아가는 방법
세상을 똑바로 보라는 촉구 이기도 하다


(참고자료-118-TV나 영화를 보다 한 장면 혹은 한배우에 꽃혔다 그의
이미지에 배우의 모든 행위가 심지어 영화 전체가 빨려든다
달리말하면 쑤셔넣는다 때론 배우 자신도 한 이미지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된다
보통 2류 배우가 이렇다 특징은 어떤 사물의 정체성 같은 것이다
A를 B가 아니라 A라고 할 수 있는 녀석만의 성격이다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이것을 찻아댄다 우리의 인식은 바라 이거야 하면서 끊임없이 이것을 찻아댄다 우리의 인식은 넌 바라 이거야 하면서 상대를 규정하는 과정이다
머묾이란 이런행위다 머물지 않음은 이런태도를 극복하는 것이다
실체화하는 습속에 대항한다고 말할수도 있다
-118-
머물지 않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린 끊임없이 행위한다 아침에 눈뜨고 양치질하고 학교가고 회사간다
붓다가 이런것도 하지말고 집에서 벽보고 가만앉자 있으라고 말하진 않는다
나가르주나는 우리가 마음을 내지만 마음을 한곳에 가두지 말라고 일러준다 무심이란 말도 이런거다)
-공이란무엇인가 출판사 그린비 저작자 김영진 2009년-


(참고자료-67-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바로 공(空)이다
라는 가르침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가르킨다고 이해하는 것은 얼핏보면 그렇듯하지만 공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 한다면 그렇게 단순화 하여 말하기 어렵다-67-
-인문학의창으로본과학 한겨례 출판사 2006년 반도체사유 미래에화두를던지다 유인경 재료공학 삼성종합 기술원상무 성태용 건국대 청학과 교수-)

(참고자료-86-나가르주나가 말하는 공이나 중도는 우주론이나 존재론 차원의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사고에 대한 이의제기 이다
나가르주나는 밤하늘의 저 영롱한 별빛의 출처를 묻지 않았고 신의 섭리를 알고자 광야를 헤매지도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군중 속으로 들어가 세계는 당신들이 보는대로가 아님을 외친다
공이나 중도는 세계를 똑바로 보라는 촉구이다-86
-공이란무엇인가- 출판사 그린비 저작자 김영진 2006년-)

사기꾼들이 인상들이 참 좋거든 말도 잘하고 그래서 관상이라건 믿을게 못되
그러나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질이 좋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얼굴이 못생기고 관상이 안좋 더라도 그 사람은 좋은 사람 일수가 있다 그러나 반면에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관상이 좋아도 내면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질이
나쁘면 그 사람의 심성이 나쁘다고 볼수있다 각자의 본성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질에의한 느낌이야 말로
진정 인간의 본 모습 이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이간의 느낌을 제대로 파학할수 있는 높은 확률을 맞출려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야 하는 수많은 여러가지 고난과 경험속 에서 마치 장인 처럼 어느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터득하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서 되는일이 아니다
또 수많은 여러 경험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항상 고민하고 공부 하며 뭔가 알아내려는 간절한 의지가 필수 조건인 것이다
은하계는 생각보다 빨리 회전 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은하가 흩어져야 하는데
은하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유지 하는게 미스테리 라고 말하며 은하가 흩어지지 않고 유지하게 만들며
우주가 절묘한 균형을 기적처럼 이루며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게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하는데
지금 우리 주위에 어디에도 널려 있으며 인간의 몸을 수시로 관통하며 생명체와 은하계를 흩어지지않게 조여주며 유지하게 만드는 신비의 미스테리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는 사람은 노벨상을 여러개 탈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의 눈이나 기타 과학 장비로도 관찰할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 하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암흑 물질 암흑에너지 말이다


우주빅뱅후 지금까지 진화 하는데 로또복권 1등 당첨 확률은 감히 비교조차 불가한 엄청난 희박한 확률의 기적같은 미세 조정이 있었다고 과학자 들이 말하며 특정종교를 암시하는

교육을 할수없는 미국의 학생들의 교과서에 신의 설계로 적지못하고 그것을 지적설계로 적은 것처럼 인간의 몸도 그 이상의 엄청난 기적같은 희박한 확률의 미세 조정속에 의해 태어난 생명체다 엄청난 희박한 확률의 미세 조정에 의해 우주를 유지하고 조절하는 불랙물질 불랙에너지 보이지않는 역활과 위의 경향신문 기사 내용 처럼 조금씩 들어 나듯시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조절하는 기적같은 미세조정 역할 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게 많을 것이다

이 세상을 똑바로 볼려면 엄청난
뼈져린 실패의 경험도 한목을 한다 지금 세계인 다수가 믿는 그리스도는 대표적인 실패자 이자 패배자이다 자신의 동족 유태인에게 누명써 가시 면류관을 쓰고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고통속에 골고다 언덕으로 가면서도 침묵으로 자신을 변호 하려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것은 대표적인 실패자의 표본이지
그 죄라는 것이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뜻을 유대인 들이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잘못해석 했다고 그리스도가 지적한 것이고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가 안식일에 배고파 밀 이삭을 짤라 먹었다는 걸로 바리새인 율법 학자들이 안식일에 모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죄를 묻자 그리스도가 율법도 사람을 위한 것인데 배고파 안식일에 밀이삭을 제자들이 짤라 먹은게
무슨 죄가 되냐며 율법도 인간을 위한 것인데 율법 보다 사람이 먼저라며 율법을 자신들의 편안한 삶에 도구로 이용하려는 바리새인 율법 학자를
그리스도가 야단치며 구약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온다고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 라며 밝히고 온갖 선행과 오병이어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등 여러 기적을 보여주자
따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 마치 중국공산당이 파륜궁 수련자가 1억명 이상이 넘자 1989년 천안문 사태 처럼 억압된 독재 공산당 정권을 뒤업고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항거하다가 중국공산당이 무잡이하게 탱크로 밟아죽이며 진압하여 1000명이상이 죽거나 수많은사람이 부상당하고 구속되어 정치탄압을 받던 기억을 떠올리며
도둑이 제발저리다고 겁을먹은 당시 장쩌민 중국공산당 정부가 파륜궁 수련자를 잡아다가 누명을씌워 죽이고 산채로 해부하여 장기를 팔아먹고 생체 실험까지 하는등 이루 말할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
수많은 파륜궁 수련자들이 외국으로 정치 탄압을 받는다며 난민과 망명을 신청했던 사건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유태인들이 정치 세력화 할까
두려워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실패자 패배자에게도 할말은 있다며 속칭 돈없고 백없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당시 천대받던 여성과 노예들에게도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자 만이 갈수 있다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줬기 때문에 그들이 의식이 변화하여 당시 기득권인 바리세인 율법 학자들이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쉽게 편안하게 살던 삶이 박탈 될까봐 두려워하여 공모하여 조작하여 그리스도를 신성 모독죄로 누명 씌워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이 하수인들을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보내 바라바를 풀어주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건 아닐까 ?
이에 빌라도는 자 아무리 생각 해도 그리스도는 죄가 없어 풀어 줄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반대하며 바라바를 풀어 주라고 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고
로마총독 빌라도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걸 밝히며 손을 물에 씻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에게 가시 면류관을 씌우며 온갖 조롱속에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박아 고통속에 죽게한 죄는 유대인 이라고 밝혔다
그후 유대인들은 상상도 못할 조롱과 고통속에 무려 2000년 이상 나라없이 떠돌다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유태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인간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더러운 방법으로 히틀러에게 무려 600만명 이상의 유태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일 것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실패자의 표본처럼 보이는 그리스도를 상수처럼 떠받들고 있다
이 우주에 무엇이 진짜 상수일가 ?

(참고자료-162-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 에서는 우리의 비본래적인 실존 방식을 지배하는 기분중에 하나인 두려움과 불안을 비교하는 식으로 불안을 분석하고 있다
두려움 이란 기분 에서는 우리가 두려워 하는 대상은 어떤 특정 방역에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것은 유해 하지만 나에게 나타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세계 내부적 존재자 이다 -M.Heidgger-1983
240 쪽
-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선생님을 두려워 하는데 그 선생님은 교무실 이라는 특정한 방역에서 보통 나타난다
이경우에 나는 교무실 근처에서 나타날수도 있-162-
-163- 지만 나타나지 않을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더 두렵게 한다 선생님이 나타나는 것이 필연적 이라면 두려움 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체념이 나를 지배하게 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비본래 적인 삶을 살면서 현존재는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부터 등을 돌린다 이렇게 비본래적 실존이 그 앞에서 등을 돌리면서 도망치려고 하는 그 어떤 것은 두려움
의 대상과 마찬 가지로 일반적으로 위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 없다 그러나 비본래적 실존이 도피하는 그것은 현존재 자신 이다
비본래적 실존은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부터 도피하여 세계 내부적 존재자 에로 몰두 하고 그것에 의지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본래적 실존이 도피하는 현존재 자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현존재의 무엇이 무서워서 도피 하는가
-내가 불안해 하는 것은 나를 위협하는 성격을 갖지만 내가 그 앞에서 불안해 하는 대상과 이유는 두려움의 대상 이나 이유와는 달리 분명 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서 내가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질까봐 두려워 할 경우에 내가
두려워 하는 대상이 무엇이고 왜 두려워 하는 지는 나에게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 하는것이 필수적 이지만
대학에 입학하지 못함 으로써 사회적으로 성공 한다는 나의 꿈이 궁극적으로는 좌절될수 있기 때문이다 -구연상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 -청계 2002-484쪽 이하
- 이에 반해서 내가 불안해 하는 대상 즉 내가 그 앞에서 불안해 하면서-163-
-164- 도망가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특별히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무 규정상은 불안에서 나를 위협하는 것이 어떠한 일상적인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 인지를 규정할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불안해 하면서 그 앞에서 도망가는 것은 어떤 일상적 내부 존재자가 아니라 모든 일상적인 세계 내부적 존재자 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 나면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무의미의 심연 이다
다시 말해서 불안이라는 기분.에서는 어떤 세간적인 가치를 궁극목적 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는 용도 전체성으로의 세계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이렇게 무의미의 심연에 직면 하면서 우리는 불안에 사로 잡히는 것이다 그러한 용도 전체성으로 부터 의미를 부여 받는 모든 일상적인 세계 내부적인

-164- 존재자 들도 그러한 용도 전체성의 상실과 함께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설령 그것들이 잘못 된다고 해도 현존재는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 시험에 의미를 두지 않는한 두려워 할것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인 세계 안에서 마주치는 어떠한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 들도-164-
-165- 불안의 대상이 될수 없다 세인으로서의 현존재가 유해한 것으로 지목하는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들은 사실은 불안이라는 기분에서는 이미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 되기에 그것들이 갖는 유해함 이라는 것도 불안에 의해서 엄습되어 있는 현존재 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속 에서는 위협적인 것으로서 나타날수 있는 특정한 어떤 특정 세계 내부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함께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우리를 위협
하는것은 특정한 방역에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특정한 어떤것도 아니며 특정한 어떤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M.Heid egger-1972-186쪽 참조 -그러나 우리가 그 앞에서 불안해 하는 것이 특정한 어떤 것도 아니고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그 앞에서 불안해 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를 들러 보아도 존재하는 무의미의 섬뜩한 심연 으로서 우리의 가슴을 압박 하면서 조여 들어온다 우리가 그 앞에서 불안해 하는 것이 세계 내부적인 특정한 대상도 아니고 특정한 방역에서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세계 자체 라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하이데거는 말하고 있다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용도 전체성이 붕괴 되면서 모든 일상적인 세계 내부적 존재자 들은 의미를 상실 하기에 일상적인 세계의 용도 전체성에 의해서 음폐 되었던 세계 그 자체가 드러 난다는 것이다 -M.Heidegger-1972.187쪽
참조 -불안은 근원적 이고 직접적 으로 세계를 세계로서 개시한다
물론 이것은 세계의 세계성이 불안이라는 기분 -165-
-166- 에서 개념적으로 파악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 에서는 세계는 우리가 집착 했던 모든 것들의 무의미 성을 드러내는 무로서 우리를 압박해 오면서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세계는 무엇인가 이렇게 우리를 숨을 못쉴 정도로 답답하게 만들면서 압박 해오는 세계 자체는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존재의 시간 - 에서는 이에 대해서 자세한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다만
이러한 세계를 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 에서의 공허한 무가 아니라 - 그 어떠한 세계 내부적인 존재자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무이다 이상의 서술로 부터만 미루어 보면 불안은 극히 어둡고 부정적인 기분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불안이라는 기분에서 세계 그 자체가 자신을 개현 하며 이 경우에 세계는 공허한 무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무엇인가 긍정적인 여운을 남겨 두고 있다
특히 하이데거는 불안에 대해서는 현존재의 가장 독자적인 존재 가능성이 개시되고 있다
고 말하면서 이와 함께 현 존재는 자기 선택과 자기 포착의 자유를 향해 열려 있다
-는 사실이 개시 된다고 말하고 있다
- 불안이 불안해 하는 대상은 일상적인 세계가
붕괴 되면서 자신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세계 자체다 그리고 불안이 이러한 섬뜩한 세계 앞에서 불안해 하는 이유는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모든 세간적인 가치들이 무의미 한것으로 드러남과 동시에 자신이 구현해야 할 가장
고유한 실존 가능성이 개시 되었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도 대신해 줄수없는 자신의 고유한 짐 내지 과제 앞에 직면 하게 되고 그 앞에서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안은 현존재 를
세인에 의해서 지배되던 상태에서 벗어나 -166=
-167-게 하면서 현존재 를 단독적인 자기에로 단독화 하지만 이러한 실존론적 유아론은
각각의 현존재를 세계와 타인으로 부터 고립 시키면서 주관을 무 세계적인 공허함 속에 떨어 뜨리는것이 아니라 도리어 현존재를 극단적 의미에서 세계로서의 세계 자체에 직면케 하며 이와 함께 본래적인 세계-내 - 존재자로 서의 자기 자신에 직면하게 한다


M.Heidegger-1972-187쪽 이하 참조
- 이렇게 볼때 하이데거 에게서 불안은 일상적인 세계가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 나면서 세계가 세계 자체로서 그리고 현존재의 본래적인 가능성이 그 자체로서 개시 되는 기분이다 -167-
-170-현존재는 일상적으로 세인 속에 상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본래적인 자기를 비로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

33p-
그런데 현존재가 자기를 찾기 위해서는 현존재는 자신의 가능한 본래성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 개시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본래적인 자기를 개시 하면서 그것에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양심 이라고 부른다 양심은 현존재를 그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 에로 불러 낸다 -M.Heidegger-1972-271쪽 참조
-이러한 부름은 물론 우리 자신에 의해 계획 되지도 않고 준비 되지도 않으며 의도적으로 수행 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것이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 -M.Heidgger-1972- 276쪽 참조
-양심의 소리는 불안에 의해서 철저하게 기분 지어져 있으며 이렇게 기분 지어진 소리가 현존재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자기 자신을 기투 하도록 불러 세우는 것이다 양심의 세계에서 부르는 자는 섬뜩한 세계의 무에 던져진 채로 자신의 본래적인 존재 가능성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불안해 하고 있는 현존재 이며 부름을 받은 자 -170-
-171- 기 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향해 불러 세워지는 세계 내부적 존재자 들에게 퇴락해 있는 현존재자 이다
이러한 양심의 부름은 세인들의 시끄러운 빈말과 달리 소리가 없으며 애매 하지도 않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말없이 부르면서 우리에게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을 개시하고 이러한 실존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일깨운다 본래적인 현존재는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에의 부름인 양심의 부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러한 가능성을 구현하는 자이다 -171-
-하이데거는 이렇게 진정한 세계- 내 존재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결의성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결의성을 자신의 양심에 의해 현존재 속에서 증언된 자신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에 대해 책임을 치면서 침묵 속에서 불안 이라는 근본 기분을 인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M.Heidgger-1972- 126-쪽 이하 참조
그것들은 다시 말하면 매사에 세인으로서의 자기가 자신 안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가 개시 하고 있는 가장 고유한 자기가 자신 안에서 활동 하게 하는 것을 의미 한다
-171- 하이데거는 이렇게 진정한 세계- 내 -존재 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결의성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결의성 을 자신의 양심에 의해 현존재 속에서 증언된 자신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침묵속에서 불안 이라는
근본 기분을 인수 하는 것으로 규정 하고 있다 -M.Heidgger-
1972-126-쪽이하 참조
-그것은 달리 말하면 매사에 세인으로 서의 자기가 자신 안 에서 활동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가 개시 하고 있는 가장 고유한 자기가 자신 안에서 활동 하게 하는 것을 의미 한다 -171- -173-하이데거는 나라는 말은 두가지 의미를 가질수 있다 고 말하고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과 구별 된 특수한 개인 이라는 의미의 나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나 라는
말은 진정한 자기를 가리킬 수 있다 - 하이데거는 이러한 나를 세인의 세계에
의해서 타인과 구별 되고 비교되는 자아가 아니고 세인의 세계가 행하는 이러한 구별을 초월하여 도달되는 본래적인 자기다
-173- 현 존재가 실존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문제 삼고 우려 할 경우 이는 그를 진정한 인간으로 되게 하는 그의 가장 고유한 것을 추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잠언도 너의 특성을 곰곰히 생각하고 관찰 하라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본질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본질을 숙고 하라는 것을 의미 한다고 말하고 있다 -M.Heidegger-니체와 니힐리즘 하이데거 전집 48권 철학과-
현실사 -2000년 -236-쪽
-173- 위 인용문 에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인간을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 만드는 그의 고유한 본질을 현 -존재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 -존재란 어떠한 것들에 의해서도 대체 될수 없는 소중함을 발견하고 존중하에
충실 할 경우 에만 그는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 할수도 있다 전적으로 그자신 이며 그 자신으로서 행위 하는 자만이 자신을 버릴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귀울 이면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 하고 세인의 지배를 벗어난 단독자가 되는 사건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 될수없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발견 하는 사건 임과 동시에 모든 존재자 들의 진정한 존재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가장 보편적인 존재인 현 -존재자로 태어나는 역설적인 사건이다) -173-


-박찬국지음출판사서강대학교출판부| 2010년 원효와 하이데거 비교연구-)

그리스도가 다녀 가시고 난후
기독교 초창기때 유명한 어느 성경 학자가 하느님은 인간의 눈으로 볼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마치 바람처럼 우리의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세상 어디에나 어느곳에서나 존재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느님을 어느 특정한 공간에서 볼수 있고 어느 특정한 세력 만을 위해 존재 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느님이 될수가 없다 고 나는 생각 한다
하이데거의 기분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이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포스와 비슷한 불랙물질 불랙 에너지와 같은 마치 자신이 느끼는 고유한 기분을 개성있게 그리는 인상파의 대표적 작가 빈세트 반고흐가 어릴적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며

그 밤하늘 별빛은 태양의 빛과 다른 마치 지구의 우리가 볼수 없고 만질수 없는 공기와 같은 빛처럼 느낀 것 처럼 인간의 각자 처한 처지의 여러 기분이 상호 작용 하여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으로 변할수 있다는
나비 효과 라는 것도 있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고등동물 일수록 환경에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한다
모든 시스템 에겐 초기 환경이 얼마나 중요 한가 말해주는 예는
돌고래가 만약에 인간처럼 뇌를 대신할 손이 있었다면 혹은 물속과 같은 특수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인간보다 더 많은
과학문명 진화를 거듭하며 발전 하지 않았을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돌고래는 20년전 친구의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하며 인간보다 뇌의 반사 신경이나 지능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인간만이 지구와 우주에서 동물을 마음대로 지배하며 살라고 신에 의해 특별히 창조 됐다고 믿는 순간 니들은 한국 최고 재벌 삼성그룹 오너 들이 키우는 애완견이 있다면 그들의 애완견 만도 못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다
원숭이나 늑대 등 일부 동물의 세계에도 계급이 존재하며
계급이 제일 높은 순으로 계급이 낮은 동종의 동물을 지배하며 그들의 시중을 받아 편한 삶을 누리려 한다고 하는데 그중 인도의 일부 원숭이 무리 중에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 제도에서 가장낮은 불가촉천민 처럼 태어나면서 부터 계급이 높은 다른 원숭이 들에게
이를 잡아주며 천대를 받으며 살아 간다고 한다 원숭이 무리에서 계급이 높은 원숭이 들이
계급이 낮은 원숭이를 지배하며 받는 특혜를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혹은 신으로 부터 특별히 창조되어 당연히 태어 나면서 부터
복을 받는다고 생각 한다면 정말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디에나 극히 예외적은 일도 존재하듯
제인구달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계급이 높은 침팬치가
싸움에 끼어들어 약자를 구해 주기도 한다고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금 인간 세상에는 침팬치 만도 못한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사실 인간도 동물의 한일종이며 인류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불과 100 여년에 불과하다
그 전에는 사실 지구상에 일부 귀족이나 특권층을 제외하곤 동물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거이 대부분 이었다
지금도 아프리카 밀림 원주민이나 아마존 밀림 소수 원주민 중에 문명의 혜택을 거이 못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이런글을 쓸수 있는것도 세상이 과거 보다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이런글을 썼다면 그리스도나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루니쿠스 와 그를 지지 했다는 이유로 브루노 처럼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 처형 당했거나 화형을 당했을 수도 있다
불과 80년대초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정보부에 끌려가 맞아 죽었거나 빨갱이로 누명 당하여
하소연도 못하고 사법살해 당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과거보다 민주화 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비민주적인 행태가 많다

한가지 질병이 사라지면

시대에 맞게 또다른 악성 질병이 생겨나듯 말이다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 에도 나오는
일화중에

(참고자료-명성황후를 일본 야쿠자가 잔인하게 살해한 보복으로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하고 복역중 사형집행 직전 구사일생 으로 고종의 보이지않는 도움으로
1898년3월 23세에 탈옥에 성공하여 삼남지방 으로 도피 하던중 전라남도 해남의 윤씨 집안에서 하루를 묵게 됐다
밤이 이슥할때 선생은 주인이 사랑방 말뚝에 상놈 하나를 묶어놓고 가혹한 사형 (私刑) 을 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유인즉 자신이 정한 품삯을 받지 않고 상놈이 마음대로 품삯을 올려 받았다는 것이다
상놈은 죽을죄를 지었다 면서 살려달라고 애원 하고 있었다
선생은 그 자리를 지나칠수 없어서 주인에게 물었다 양반이 정한 품삯이 얼마이고 상놈이 제 마음대로. 얼마나 올려 받은 것입니까?
양반은 올해는 동네 품삯은 년은 두푼 놈은 세푼으로 정했는데 저놈이 어느댁 일을하고 한푼을 더 받았기에

버릇을 고치려고 징치 하는 것이오
선생이 다시 물었다 노상의 행인들이 주막에서 먹는 밥값도 한끼에 최하 5-6푼 인데 하루 품삯이 밥한상 값의 반에도

35p-못 미치면 혼자 살아 가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처자식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주인이 대답했다 저놈집에 장정이 년놈 합쳐 두명이라 하면 매일 한사람 이라도
양반집에서 일을 안할때가 없소 일을 하는날은 그 년 놈 집의 식구가 다와서 밥을먹죠 그러니 품삯을 많이 줘서 상놈의 의 식 주 가 풍족해 지면 자연히 양반에게 공손치 못하게 될게 아니겠소)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지음 -출판사 돌베게 1997-

프랑스의 장자크 루소는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정의를 잃으면 어린 아이의 팔을비틀 듯이 약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과거를 기억해 보더라도 사회 정의를 외치며 기득권의 잘못된점을 지적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의식있는 젊은 학생중에는 빈자의 자식들이 많았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빈자의 자식들이 살아 오면서 사회 기득권층 위주로 운영되는 제도에 불 합리함을 직접 현실로 체험하며 고통을 받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빈자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계속 고통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런 불합리한 세상을 고치려 노력한 것이다 그덕에 세상이 과거보다 점점더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조금씩 진보하는 것이다 극히 일부 체게베라 같은 사회 기득권층 자식으로 전도가 유망한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카스트로와 같이 민중을 구한다는 구실로 쿠바 공산혁명에 성공하여 영웅이되자
영웅심에 무리하게 볼리비아 공산혁명에 나섰다가 교전끝에 산속에서 허무하게 죽었는데
결국 체게베라가 제대로 현실을 체험하지 못하였기에
진짜 어려운 민중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지못하고
그저 시대의 영웅심에 편승한 객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런 부분은
적게잡아 중국인 2000만명 이상을 학살한 희대의 공산독재자 모택동을 중공을 방문하여 악수하고 수만은 민중을 학살한 독재자 김일성을 북한을 방문하여 악수한 사진을 보고 체게바라는 공산 독재자를 추종한 인물이거나 아니면
민중이 독재자에게 고통받는 현실을 도외시 하며 민중이 진짜 필요한게 뭔지 모르는 그저 영웅심에 놀아난 한심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체 게바라는 콩고에서 흑인에게 게릴라 훈련을 시키다 흑인들의 학습 속도가 느리자 흑인들은 혁명에 적합하지 않다 라는 말을 남기고 콩고를 떠난다
공산주의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공산주의를 가장한 지독한 독재는 하루 빨리 인류를 위해 사라져야 할 제도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대학가는 학비가 1년에 천만원 이상 한다고 하고
로스쿨을 졸업 할려면 실제드는 총 경비가 1억을 훨씬 넘는다고 하는데 정부에서는 대출로 학비를 충당하고 빚쟁이가 되어 값으라고 외치고 있다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대출 장사라도 하듯시 말이다
그런데 외국인 유학생 에게는 비교적 학비가 저렴하고 기숙사 제공등 여러가지 해택이 따른다고 들었다 외국인 유학생을 많이 유치한 학교가 정부 보조금을 더 많이 받는게 아닐까 추리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해택을 줄리없기 때문이다
그런대 외국인 유학생중에 대부분이 중국계 라고 하는데
2008년 세계에서 전무후무 하게 중국공산당 유학생 만명이 계획하여 서울 여의도에 집결하여 티벳인과 한국인을 집단으로 린치하고 폭동을 일으키며 집단 테러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중국인 유학생 한명만 불구속 기소 하는걸로 사건을 종결 했다고 하는데 그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에 미국 유학생이나 일본 유학생이 그랬다면 한국이 뒤집어 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인 유한생들이 벌인 일이라 모두 조용히 넘어 갔다 새로운 사대주의 발현이며 한국내 친중세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 하는지 보여 주는 증거이다
불과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만 하더라도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에 200 여명 수준에 불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10년도 안되어 중국인 유학생수가 7만명에 가깝다고 하니 핵분열 하듯 늘어난게 상상이 안갈 정도이다 한국 정부에서 자국민 학생보다 외국

인 학생을 더 정확히 말하면 유학생의 다수인 중국인 유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는것도 아니고 더 귀하게
대접하고 마구잡이로 수를 불리려는 회괴한 제도는 과연 누가 무슨 의지로 만들 었는지 심각히 묻고싶다 미국 일본 중국을 보더라도 외국인 유학생 에게는 자국민 보다 학비를 더 비싸게 받는걸로 알고 있는데
다수의 대학들은 학생들의 복지시설이나 학교내 시설등에 대한 투자는 극도로 인색 하면서 대학 이사장들은 한국의 미래는 거이 생각지 않고 돈벌이에만 급급하며 자격없는 외국인 유학생을 마구잡이로 유치하려 하고

비싼 학비만 요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있는집 자식이야 껌값 이겠지만
빈자의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 전쟁에 승리하여 취업을 하더라도
2-3년 이상은 학자금 대출금을 값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일부 빈자의 자식들은 학비 충당을 위해 유흥업소 에서 종사 하기도 한다는데
이런 상황이면 비싼 로스쿨 뿐 아니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도 대출금 값으려고 무슨짓을 어떤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게 아닌가 걱정 스럽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대학들은 자국민에게 거이 학비가 면제 되듯 하는데도 나라는 잘산다

한국도 서민들이 주택과 대학학비를 면제하도록 기득권들에게 세금을 많이 징수 해서 서민들의 생계를 안정시켜야 헬코리아 란 말이 사라질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헬코리아를 원하는건 재벌들과 사회 기득권들 뿐 일 것이다

삼성그룹이 왜 외노자 1000만명 시대를 열자고 그러는지 아는가

그래야 하청 중소 업체 인권비를 최대한 줄이고 자신들이 더욱 대접받고 아래사람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개밥 얻어먹으려 고분 고분 말을 잘들어 더욱 세상 편하게 살것 이라고 그들은 생각 할 것이다
의식있는 학생들이 정의를 외치며 사회 기득권층의 비리를 파해칠 까봐 쥐어 짜며 마치 개 목걸이에 단 방울같아

백범일지에 나오는 양반이 상놈의 품삯이 많으면 여유가 생겨 양반에게 공손치 못할까봐 상놈을 징치하는 짓과 비슷해 보인다


어느통계 에는 상속부자가 한국은 88% 미국은 37% 일본은 12% 라고 한다 사람 마음이 똥누러 갈때하고 싸고 나올때 마음이 틀려 진다고 하더니 6.25 전쟁후 지금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엔 빈자의 자식들로 시작하여 그들이 성공해서 자신들의 자식이나 손자는 조선시대 양반들 처럼 사회 갑질을 하며 빈자들을 지배하려 살도록 사회 제도와 구조를 자신들 유리 하도록 지들 마음대로 바꾸고 있다
대표적 인게 졸업할 때 까지 학비만 1억이상 한다는 로스쿨이다
로스쿨은 미국의 사법 제도가 롤 모델인데 미국의 사법제도가 지금 얼마나 불합리한지 미국이 그토록 시끄럽고
흑인이나 사회적약자 들이 경찰들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누명을 쓰고 30년 이상 억울하게 옥살이 하다가 빙산의 일각처럼 운좋게 진범이 잡이거나 누명을 벗고 나오는 참으로 끔찍한 일이 가끔씩 나오는 해외 뉴스를
보고도 무조건 미국만 따라 하려는 것보다는 미국의 로스쿨 제도를 들여와 그것을 한국형으로 일부 개조하며 불합리하게 한국의 기득권들이 갑질하며 대대로 부귀영화 누리며 편하게 살려고 들여온 고려시대 음서가 부활한게 아닌가 의심 스러울 뿐이다
더욱 분노하는건 로스쿨을 최종 사인한 노무현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가난한 집안 형편상 멸치잡이 등을 하다가 사법 시험을 준비하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인생역전 하여 대통령 까지 하였다 지금과 같은 로스쿨 제도에선 상고 출신은 판검사가나 변호사가 될 수가 없다 들리는 얘기로는 지금도 로스쿨 출신이 판검사로 임용 된다고 하는데 2017년 부터 서민들의 등용문 이기도 했던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돈으로 쳐 발라야만 하는 로스쿨 제도로 판 검사로 전부 임용 된다고 한다
지금 로스쿨로 변호사를 너무쉽게 양산하다보니 원례 로스쿨 취지인 싼값에 변호사를 국민들이 선임하는 혜택보다 오히려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문제가 들어나기도 한다
어린아이 에게 총을주면 장난하다가 아무 죄없는 사람이 총에 맞아 죽을수 있는것처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검증하고 또 검증하여 법을 다룰수 있는 양심과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다루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란 나라가 인생역전이 허용 되지않는 꿈과 희망이 사라지는 나라로 변할지 걱정 스럽다 기득권의 비리를 파해치면 법위에 군림하는 돈과
권력이 법을 악용해 누명씌워 콘크리트를 쳐 자신들의 비리를 떠들지 못하도록 아예 묻어 버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1909년 3월 법률 제8호로 공포되어 의해 실시된 민적법은 조선시대에 인구수를 조사 파악하고 신분을 공시하는 제도로서는 식년호적제도와 이를 보안하는 인보정장법 호패법 등이 있었다 1896년 갑오개혁 입법으로 호구 조사 규칙과 같은 세칙을 마련하여 시행 하였으나 이 법은 부역과 징세의 행정 편의를 위한 것으로서 인민의 모든 가족적 신분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 순수한 호적제도로 개혁하기 위해 제정실시된 것이 민적법 이다 시행 초기에는 호적부의 관장을
경찰관서에서 맡는 등 행정 단속법의 성질을 지녔으나 일제 강점 후인 1915년 4월부터 면장에게 넘어갔다
이 법이 실시되자 모든 인민이 가(家) 단위로 호적에 올라 호적을 떠난 가는 없고 따라서 추상적인 가의 연속을 표시하게 되었다 1923년 7월부터 시행된 (조선호적령) 에 의해 대치 되었다-참고문헌 한국가족법연구 정광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7년 )


불과 1909년 민적법으로 모두 성씨를 만들게 하기 전만해도 조선의 백성들중 절반 이상이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이전은 더 했으리라 개똥이 말년이 뭐 이런식으로 성이 없이 이름만 짐승처럼 불리던게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그런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조선은 불과 백수십년 전만 해도 같은 민족을 말 보다 가격이 적은 짐승처럼 사고 팔기도 했던 시절 이다 천민과 성씨가 없던 대부분의 일반 백성이 성씨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화사상에 의해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족보를 위조하여 성씨를 만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성씨를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알려졌다

37p-지금은 거이가 자신들의 조상이 양반 출신 족보라고 거침없이 떠드는데
진실은 조선의 족보는 거이가 조작 된거란 얘기이다 과거 불과 500여 년전 조선초기 때만해도 양반은 극소수 5%미만에 불과했고
평민 상인 농민 천민 노예들이 다수를 이루는 피라미드식 신분 제도가 존재 했는데
그중 성씨를 가진 사람은 왕족이나 일부 사대부 양반등 소수에 불과 했는데


그런데 지금 전부다 양반 족보라고 하니 대다수 위조된 족보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것을 지금 와서 일일히 진위 여부를 확인 할수도 없고 말이다 통일 신라시대 성씨가 없이 궁복 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당시 당나라에서 흔하던 장씨라는 성을 써서
해상왕 장보고의 성이 되었듯이 고려를 건국한 왕건도 원래 성씨 자체가 없었다고 성씨를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자신의 이름 왕건에서 왕자를 개성왕씨 시조로 왕씨를
만든 것이다 그후 후대에서 왕건이 시조인 개성 왕씨를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족보를 위조 했다고 성씨를 연구한 학자들이 밝혔다 개성왕씨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묵인속에 학살을 당하여 수많은 왕씨들이 죽었고
왕자에 점을찍어 옥씨가 되고 갓을 씌워 전씨가 되고 하는등 성을 바꾼 사람도 많고
그래서 지금은 개성 왕씨가 3-5만명 정도로 소수 성씨로 남아있다
물론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도 많을 테지만 특히 신라가 민족을 배반하고
당나라에 빌붙어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 시키고 말살한후
당나라 문물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 하면서 배달 민족의 전통은 말살 왜곡되고
조상 까지도 중국 한족에서 왔다고 혈통까지 대대적으로 왜곡하는 비극의 시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 시대로 넘어 오면서 모화사상이 극에 달해 당시 성씨가 없던 백성들 중에 성씨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둔갑시켜 족보를 위조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생 인류의 조상 사피엔스가 탄생한게 20만년전 이라고 하는데 민적법이 실시된 1909년부터 지금까지 불과 100여년 이 그것보다 더많은 발전을 했다
그 수많은 세월동안 인류의 조상들이 피눈물 나는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얻은 지식과 지혜를 어렵게 터득하는데 얼마나 많은 구구절절 사연들이 존재할까 선구자들이 어렵게 터득한 지혜와 지식들의 데이터 베이스가 쌓여 어느순간 공유화 되어
어느 임계 상황에 이르자 한 순간에 핵분열 하듯이 발전한 것이다
인류는 지혜와 지식들이 공유화 되는것이 인류 발전과 자신의 지식 습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지식이 공유화 되어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기하 급수적으로 빨라지고 그로 인하여 과학 문명의 발전 속도가
핵분열 하듯 하게 되어 현재의 학생들은 시대를 잘맞나 운이 좋아 편하게 살고 풍부한 지식을 컴퓨터에서 검색하여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쉽게 알수 있을 뿐이지
과거의 그들 보다 훨씬 뛰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생활이 편해지고 컴퓨터등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뇌와 몸을 과거 보다 덜 사용되는 여러가지 환경으로 생각의 폭이 더 줄어든게 아닌가

생각할수도 있다
과거의 인간들은 멀티 풀레어 처럼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고 막노동도 하고 신문배달도 하며 공부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다수라 다방면으로 모든일을 해결해야 하는 고된 경험이 많아 풍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있지만
지금은 부모의 지원과 쉽고 편하게 살수 있도록 변환 환경으로 지혜와 지식도 직접 몸으로 부딧치며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쪽집게 학원 강사나 컴퓨터등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편하게 지식을 얻어 전문분야만 공부할수 있는 시대라 전문분야는 더 잘 알지 몰라도
전문분야가 아닌 처음 경험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 사건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력이 떨어지며

쉽게 굴복하는 개척정신이 떨어질 우려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 과학으로도 인류의 걸작 피리미드와 특히 다마스커스 명검을 아직 재현 못하고 고려청자도 아직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데 고대시대 장비로 재현 하라고 시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손사례를 칠 것이다

그동안 인공지능을 룰 이란 관점으로 개발하려 수백조를 투자한 미국이 그동안 진척이 없다가

갑자기 알파고 등으로 진척을 보게된것은 룰이란 관점이 아니라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보여주고 그걸 기계가 경험하며 학습하여 기억하여 비슷한 새로운 상황에 응용하게 만든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직접적인 체험학습으로 배운것과 같다


물론 패자는 말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게 결코 핑게 일수만은 없는 거야 너무도 뜻하지 않던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불행이 시작됐다 나는 어릴적 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면 거이 꿈을 매일 꾸었어 인간뿐 아니라 포유 동물도 잠을 자면 꿈을 꾼다고 하는데
특히 REM 수면에서 경험하는 가상 현실은 인간의 생존과 건강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꿈을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나타 났는데 그래서 얼마나 숙면을 하느냐도 상당히 중요 하다고 말한다 특히 모든꿈은 REM 수면중에 나타 난다고 한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부분은 5세 이전에 장님이 된 사람은 잠을자도 꿈속에 영상이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5세 이후 7세 전후로 장님이 된 사람은 일반인과 같이 꿈을 꾼다고 한다
인간의 의식이란 7세 전에 완성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서 나는 생각한다 5세 이후 7세 전에 태어난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았다면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 될수는 없다 그러나 5세 이후 7세 전후에 태어난 곳을 떠났다면 그곳은 고향의 아련한 추억으로도 남을수도 있는것이 아닐까 ?


우리는 누구나 자면서 꿈을 꾸지만 꿈을 기억 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지 인간뿐 아니라 모든포유 동물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행복의 꿈을 꾸며 그모진 고난과 역경을 인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대 꿈을 기억하는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더 건강과 생존경쟁에 유리한 여러가지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7세 이전에 고향을 떠나 다른곳에 정착 했다면 어린시절 고향의 모습을 제대로 기억 할수가 없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5세 이전일 것 이다 7세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도 있을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세 이전은 거이 기억할 수 가 없다

그후 몇년후 이복형 들에게 시달려 어머니는 쓰러 지셔서 반신 불수가 되시어 나를 데리고 친딸이 있는 제주도로 귀향가듯 그렇게 악연을 끝을 맺으셨다
그러나 나와 이복형들과의 악연의 끝은 그 후로도 뜻하지 않게 이어졌다
그후 1989년 11월말 쯤인가 12월초 쯤인가 오래되어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제대를 불과 몇달 안 남겨두고 외박을 나왔을때 대구의 큰 이모댁에 어머니가 계시 다는걸

알고 큰 이모댁에 찾아가자 큰 이모와 하남시 둘째 이모가
나를 반겼다 해군은 외박 외출은 토요일 오전에서 아무리 늣어도 일요일 오후 9시 순검 시작전 까지 부대에 복귀해야 해야 하는데 보통 순검9시 훨씬전인
저녁 7시 이전에 부대에 복귀한다 난 그 다음날 부대에 복귀 해야 했고 어머니는 하남시 둘째이모집 으로 가신다며 큰 이모와 작은 이모와 같이 택시를 타고 가시면서 이미 모든것을 채념 하신 듯 나를 불상히 쳐다 보시며 슬픈 표정으로 손을 흔드시며 내 이름을 부르시며 몸 건강 하그래이 하시는게 아닌가 그게 나에게 남기는 마지막 유언 이셨다 어머니를 모시던 누나는 사업이 실패하자 병든 어머니를 대구 큰 이모집에 맡기고
일본으로 갔어 그러던 중 다시 하남시 작은 이모집으로 옮기는 중이 었어
나는 이모가 세분 이신데 얼굴도 모르는 셋째 이모는 폐병으로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다가 돌아 가셨다고 생전에 어머니와 이모님 들이 말씀 하셨다
어머니가 새로 결혼을 하시자 어머니와 자매간의 우애가 돈둑했던 하남시에 사시던 둘째 이모님이 이모부를 데려와 우리집 옆에 여관을 할 목적으로 큰 빨간 기와집을 새로지어 살던 둘째 이모는 어머니가 쓰러 지신후 제주도 누나집으로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제주도에 데려다 주고 같이 한달이상 계시다가 다시 올라 가셔서
빨간 기와집을 1984년 당시 4천만원에 팔고
서울과 경계선으로 붙어있던 하남시에 양옥집 2층 집을 사서 아래층은 전세를 놓고 위층은 이모님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내외와 손녀와 당시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 시간이 지나 둘째이모 아들인 외사촌형과 형수가 딸 아들을 낳고 살다가 외사촌 형수가 식당을 운영하다가 제비족과 바람이나서. 집문서 팔아 제비족과 도망을 갔는데 졸지에. 2층집을 잃어 버린 둘째 이모가 화병으로 지병이 악화되어 당시 내가 일본에 있을때인 1998년도 쯤인가 돌아가시 었다는데
그후 외사촌 형은 홀로 중국에가서 사업을 해서 내가- 2004년도-인가 한번 심양가서 만난적이 있는데 비자 국제 결혼브로커 사업 노릇을 한것 같은데
당시 심양의 룸싸롱 조선족 여자 마담이 현지처 인것 같았는데. 룸싸롱에 데려다가 나에게 꼬냑 한병을 대접해 줬는데
딸하고 아들은 지금 한국에서 어떻게 사냐고 하니까 모른데 이 양반도 부인이 바람나서 갑자기 인생이 이상하고 꼬인 사례야 꼬냑은 그냥 거져준데 꼬냑이 얼마냐고 했더니 한국돈으로 당시 14만원 한데. 중국에 하도 가짜 술이 많으니까 진짜인지 가짜인지 물어 볼려다가 술도 꽁짜로 주는데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았는데

대신 아가씨 팁은 직접 주라고 해서 얼마 주면 되냐고 하니까 중국돈으로 200위안 주라고 하여 아가씨 한명에게 200위안을 준 기억이 나네
이모님 두분은 진짜 어머니 에게는 잘 하셨다 특히 둘째 이모님이 특히 잘 하셨어
그점은 내가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 분들도 이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시고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가시었길 빈다 어머니는 하남시 둘째 이모집으로 옮기신후 얼마 지나지않아 병세가 더욱 악화 되어 어머니의 죽음을 예감한 작은 이모가 이복형들과 상의해서 예전에 살던 어머니의 집으로 다시 가시었대 예전에 살던집은 당시 서민들 중에 드물게 방이 5개가 넘었다 70년대 중후반만 해도 가난하던 시절이라 방하나에 한가족이 다 사는 집들이 많았다 맨 끝방에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이모가 같이 병간호를 하시며 같이 계시었데 서울과 경계선이 붙어있는 하남시에 2층집 까지 갖고 계시 었던 작은 이모는
어머니를 친자식 이상으로 어머니의 든든한 보호막 역할을 해주시며 어머니를 극진히 병간호 하며 보살펴 주시었다 옮긴지 열흘만에 어머니는 돌아 가시었다고 작은이모가 나에게 말하였다 작은 이모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가 있는 누나 이름을 크게
3번 부르며 고맙다고 하시며 운명 하셨다고 나에게 말씀 하시었다
이부누나가 병든 어머니 병수발 하느라
시집도 못가고 고생한건 사실이다 그후 일본에가 있던 누나는 매형이 일본까지 쫏아가서 동거 하다가 임신하여 한국에 들어와 결혼 하였다 그런데 1994 년도 인가 태어난 조카애가 손톱 모양이 어머니를 꼭 빼 닮았다며 지금까지 신기해 하고 있는 모습을 봤어 나 하고 어머니 하고 대구에서 헤어진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아 이 모든일이 벌어졌어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꼭 정확히 4년후 1990년 11월20일 같은달 같은날 같은방 에서 돌아 가시자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고 떠들었데 어머니는 기독교 장례로 치뤘다며 직접 어머니 시체를 염을 하는걸 교회에서 나와서 했다고 이모가 말씀 했는데 집도한 목사님은 어머니 시체처럼 평안하고 부드러운 시체를 처음 접해 본다고 이모님이 날 위로하기 위한건지 말씀 한건지 모르지만
목사님이 어머니는 천국에 분명히 가시 었다고 했다.


나도 천국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반듯시 돌아가신 어머니와 여동생은 분명히
천국에 있을 테니까 그런데 현대 과학의 발달로 내가 어릴적.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고 웃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며 둥근 대보름 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질수도 있다고 과거부터 어른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지던 어머니가 어릴적 들은 말을 나에게
그대로 전해 주시던 말씀이 과학의 발달로 그 실체가 밝혀지며 신빙성이 없어 졌다
과학의 발달로 이런사실들이 점점 밝혀지며 점점더 사회는 각박해 지는건 아닐까 ?
미국도 과거에 비해 이민자들의 규제가 점점 강화되어 살기가 힘들어 진다고 한다
그래도 과거 노예제도가 있던때 보다는 났겠지만 더심해 졌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까맣게 모르던 나는 군에서 외박을 나와 알게 됐어 어머니가 나에게 슬픈표정 으로 나에게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몸 건강 하그레이 하시던 말씀이 나에게 마지막 유언을 말씀 하시려 평소에 안하시던 행동을 하시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시며 몸건강 하그레이 마지막작별 인사를 하시 었구나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찟어지는 듯한 고통과 슬픔이 밀려 왔다
어머니는 어쩌면 내가 제대하면 나에게 부담을 주실것을 걱정하여
스스로 자살 비슷하게 돌아 가시려고 마음 먹으신건 아니신 건가 생각하면 슬픔의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아푼몸을 이끌고 아무리 이모님이 잘해 주신다고 해도 끼치며 눈치가 보였을테고
더구나 하이에나 만도 못한 이복형놈들 집에 가셨을 때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비애감에 더이상 추한꼴 보이기 싫어 차라리 일찍 죽고 십으셨겠
생각이 들며 더욱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대구에서 나와 헤어진지 채 한달도 안되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모습을 못보니 더구나 마지막 가시는 장례도 참석을 못한것을
생각하니 나 하나 때문에 저 고생을 하신 어머니께 장례식도 참석 못 했다고 생각하니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다 어머니 얼굴처럼 비단결 같이 고우신 어머니 마음과 사랑이 나이많은 키작고 볼품 없는 홀애비에다 애가 5명이나 딸려 지저분하게 사는게 너무 불상해 보여
살게된 어머니가 무슨 고아원 원장도 아니면서 순간의 동정심에 의한 잘못된 선택이 어머니를 이지경까지 만든 빌미가 되다니

이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 한다면 이런 억울한 상황을
연출 하도록 보고만 있었겠냐 어쩌면 신이란 존재는 인간이 만든 허구의 존재 일수도 있겠다 싶었지 지금 당장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회 특권층 귀족들은 그 모든것이 힘없는 서민들의 희생과 착취의 결과 라는걸 전부 부인하며 샐프디스로 전생의 인과응보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이라고 억지로 믿으려 할꺼고 그들의 주변 에서는 그걸 기정사실화로 조작하여 무조건 아부만 하며 개밥 얻어 먹으려
기생하는 무리들 뿐이고 그게 아니라고 율법으로
알라를 믿지않는 자는 참수하는 IS테러범들의 천인공노할 더러운 짓을 하듯시
왕따 당하고 해고 당하고 패배자의 넋두리로 치부 하겠지
그 반대인 사회적 약자인 사람들은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속에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강하고 더 교활한 상대에게 착취 당하는 세계라는걸 고통속에 체험하며 사는 것이다 라고 외치겠지 그러나 이런

단순한 원리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늘이 내린 숙명처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착취만 당하며 태어날때 부터 개 목걸이에 걸린 개들 처럼 의미없이 살다 의미없이 죽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것이다 어짜피이 세상은 더 강하고 교활한 놈들이 편하게 살려고 상대적으로 약자 들을 착취하며 단물만 빼쳐먹을 려고 만든 구조이다


지배하며 편히 살려고 어리석은 대중을 속이며 그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고 사느냐 속고 지배 당하고 사느냐 인간의 식욕에 의해서 우리안에 자유를 뺏기고 사육되는 소 닭 돼지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단지 인간보다 멍청하여 상황판단 능력이 적다는것 사실 소 닭 돼지 개들도 어릴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지금보단 훨씬 현명하게 상황 판단을 할 능력이 향상될 것 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식욕을 위해 자유를 억압당하며 그런 기회조차 박탈 당하고 있다

인간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 동물을 식욕에 의해 사육하는 것처럼

지배 세력들이 편히 살려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 약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돈과 법위에 권력이 군림 했지만 아직도 중국공산당 이나 북한 공산당 같은 일인 독재권력이 가능한 집단은 권력이 모든걸 지배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과거와 달리 돈이 법과 권력위에 군림하며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성이 한국을 지배 한다는 삼성공화국 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돈이 자신의 지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지배자의 대열에 들어서는 거다 한국이 일본에 지배를 받으며 심한 착취를 당한 것도 그들 보다 덜 교활하고 강하지 못했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기득권 들이 자신의 국가나 민족과 백성이 외세에 지배를 받지 않도록 더많은 책임감을 가지지 못하고 부패 했기 때문 이기도 하다
당시 구한말 국제 정세는 어짜피 일본이 아니어도 청나라나 러시아에 지배를 당할 판 이기도 했는데 마치

지금 중공이 동북아 패권은 물론 세계 패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급부상 하듯 당시 시대 흐름상 일제가 부흥하고 세력이 급부상 하던 시절이라 결국 일제가 친일파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제에 대항하려던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대한제국을 일제에 흡수하는 치욕의 한일합방이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해 성사 되는계기는 부패한 조선의 기득권들이 당시 대세가 친일 이라고 보고 명성황후를 시해하게 돕고 고종을 독살하고 식혜 먹고 30분후 죽었다고 조작 하는 등
조선을 일제에 쉽게 넘긴 일등공신은 친일파 들 이었다 을사오적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외에도 수많은 일제 압잡이 들이 일제에 아부하며
앞잡이 노릇을 자처하며 독립 운동가를 잡아 죽이고 자신들은 대대로 부귀영화 누리며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 자식들 중에는 여자는 군위안부로 끌려가 집단으로 매일 강간당하고 남자는 징용으로
끌려가 노예처럼 혹사 당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도 부지기 수며 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강제로 끌려가
말안 듯거나 일본군이 기분 나쁘면 개 돼지 도살하듯 수없이 죽어간 당시 조선의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일제때 친일 행각으로 민족을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대표적인 친일파 중에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로 알았는데

(참고자료 -최초로 이완용을 경기 광주로 소개한 이완용 평전의 저자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의 역사학자 윤덕한으로  자신의 고향 전라도에 이완용같은 친일파가 있는게 싫어서 의도적으로 이완용의 고향을 전북익산에서 경기광주로 세탁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친일역사학자 이병도는 이완용의 친척으로  이완용이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어릴적 경기광주로 이주했다고  확실하다고 1984년 밝힌바가 있다

이완용의 묘는 전북 익산에 있다

경기도와 전라도에 여의도면적의 2배 가량의 땅을 사기도 했다 )

[참고자료-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과 2007년 두차례에 걸쳐

대표적 악질 친일파106명과 10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를 합한 213명의 지역별 분포는 함북14,함남4,평북8,평남9,황해4,서울79,경기16,충북4,충남3,전북7,전남3,경북4,경남4,만주1,기타 출신지미상 53명이다.

(조선 말기 인구는 충청90만,전라130만,경상160만)

●1946년 1월까지 친일혐의로 검거된 사람의 수를 기록한 자료로 검거자의 본적지가 어딘가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음.(반민특위 검거 현황)
1.서울/경기635명
2.강원62명
3.충청280명

4.전라2,039명-전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친일파를 배출.
5.경상206명
6.평안216명
7.황해225명
8.함경97명
9.제주26명

충분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

경상도와는 아무 연고가 없는 홍라희가

이건희 한테 시집갈때

이병철고향 경남의령으로 본적을 바꾸고 전라도에서 태어난게 아닌것처럼  

세탁하려한 정황을 보면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이제는 중국 공산당이 대세라고 친중파로 돌변한 놈들이 많다
어느 상황이 와도 환경에 잘 적응하는 머리좋은 간신들은 요리조리 어려운 일은 빠져 나가며 편히 살아남고 결국 조국을 위해 충신들은 바보처럼. 정직하게 고통속에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며 고통 스럽게 살아왔다 얼마나 많은 독립 운동가가 일제와 맞서다가 죽어 갔으며 또 6.25 전쟁중에 참전하여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죽어 갔는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세상이 바껴도 결국 교활하고 약삭빠른 것들은 환경에 잘 적응하여 편히 살아남고 세상의 고통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몫 이라 결국 그들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약삭 빠르고 교활해 지려고 노력 하겠지

그런 더러운 행동을 진화라고 부르니 내가 울화통이 치밀어 화병으로 오래 못살지 십다


(징키스칸의 기마병 3만 명이 러시아 기마병 30만 명과 싸워 이긴 원인은 여러 복합적으로 많이 존재 하겠지만 그중 한 원인은 징키스칸 기마병의 빠른 기동력에 있다고 한다 왜 원균은 똑같은 수군인데 200여척의 배를 가지고 패하고 죽었는데 뇌파가 맞는 것들 끼리끼리 논다더니 왜 당시 조선의 왕인 선조는 원균을 더 총애 했는가 원균이 지휘하던 200여척중 12척이 도망 갔는데 그 13척으로 이순신 장군은 130 여척의 왜군 수군의 배를 격퇴했다 그만큼 전쟁에서 승패는 지도자가 무슨 의지가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순신 장군과 징기스칸은 수만은 경우의 수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가상 현실로 수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마치 바둑의 고수처럼 대책을 미리 짜놓고 전쟁을 하여 승리할수 있었던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간 개가 아무리 애교를 떨고 말을 잘들어도 결국 도살될 운명이고 주인을 잘 맞나면 말 안듣고 심통을 부려도 좋은 음식에 편안한 잠자리와 안락한 서비스가 개가 자연사 할때까지 무료로 제공되는 것처럼 인간과 국가의 운명도 이처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잠시라도 좀더 살아남기 위해서 도살장에 팔려가려고 개가 재롱 부리듯 지금 한국에서의 사회 생활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간 상황 판단이 빠르게 상관에 해고 당하지 않으려 재롱부리며 아부하여 좀더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사회 현실에선 노벨 물리학상 등을 탈수 있는 깊이있는 지성인이 배출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과학문명 발전이
인류의 조상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몰한게 20만년 전 이라고 하는데 사이피엔스가 20만년 동안 이룩한 발전보다
많은 것은 여러 복합 원인이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절대권력에 말한마디 잘못해도 죽던 시대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각과 말도 못하고 약삭 빠르게
아부만 하던 시대가 가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자 자유로운 생각의 공유로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깊이도 심오해 진것도
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사회는 당장의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않는 무관심과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불의와 타협하고 정의를 저버리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실용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인간들이 천지라
깊이 있는 진리와 지혜을 알지도 못하고 아예 알려고도 하지않는
실용주의 자들 천지라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이후로는 어떤 노벨상도 타지 못하는게 아닌가


군에 연락을 했다는데 나는그런 소식을 전혀 전해듣지 못해서 장래식 조차 참석하지 못하고 외박을 나와서 우연히 알게됐어 당시 순진했던 나는 그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는데
세월이 흘려 그놈들 하는행동이 하이에나 만도 못한 놈들 이란것을 알고는
이놈들 하는 행동을 봐선 연락 하지도 않고 했다고 했을수도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드는데 지금와 확인할 길도 없고 끓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잊어 먹는 수 밖에 없다
당시 어머니는 아는 사람도 많았고 장례비 부주돈이 엄청나게 들어 왔을 거라 추측 하는데 남 부러울 것이 없던 어머니가 쓰레기 같은 집안에 들어와서
고생하자 어머니를 불상히 여기시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님들도 엄청나게 반대를 하셨대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또래 어른들은 고령으로 거이 돌아 가시고 없으리라 추측된다

더구나 그 지역은 토박이는 앞마을은 좀 있었는데 우리가 살던 뒷마을은 대부분 타지에소 흘러와 모인 사람들이었다 사실 우리집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그후 재개발 하여 전부 어디론가 훝어지는 것도 한순간 일것이다 그들은 거이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사람들로 물갈이 됐는데 어머니와 나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 지역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있을 당시 어린 아이들도 그런 정황을 어린애들이 이해할수도 없으며 기억할수도 없겠지 인간은 뭔가
이득이 있거나 관심대상이 아니면 신경도 안쓰며 그리 기억하려 노력 하지도 않아 특히 한국사회가 그런 경향이 있다
당시 나는 군함을 타고 바다에서 돌아 다니느라
연락을 못 봤을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때 내가 군함을 타고 바다에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기억이 않나
내가 타던 지금은 폐선된 LSM 상륙함 기린함은 주로 해병대 상륙작전에 사용되어 당시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프리트 훈련에
참가한 기억도있고 보급품을 연평도 등 섬이나 기타 등지에 나르기도 했지만
작전을 나가도 전투함 같이 바다에 오래 떠 있지도 않아 그리고 군함에도 통신시설 장비가 다 되어 있어
육지에 있거나 바다에 나가도 전보나 통신은 다 연락이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문제로 나에게 연락이 안됐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 나에게 전보를 쳤으면 그 후에도 나에게 얘기를 해 줬을 텐데
전혀 그런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다 무슨 중간에 연락이 잘못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나도 의아해 했는데
꿈에 어머니가 보이고 불길한 꿈을꿔 뭔일이 생긴건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설마 어머니가 돌아가실 줄은 몰랐는데 어머니 영정사진을 보며 슬피울 뿐 이었다

이런것이 힘없는 자의 슬픈 인생이란 말인가 ?

허기야 마당에 개집에서 개 목줄에 평생을 묶여 살아야 하는 개가 무슨죄가 있다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개로 태어나서 그런게 아닌가 ?

개도 내 신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개고기를 먹어서도 안되고 개를 함부로 대할수 없었다


둘째 이복형이 장례가 끝나고 정리하고 남은돈 이라며 5만원을 줬다
이놈들이 엄청나게 들어오는 장례 부주돈을 갈취하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안하고 연락 했는데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고
거짓말 한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놈들 이니까
그러나 지금와서 정확한 이유를 확인 하는건 거이 불가능 하다
이런일은 나만 겪은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도처에서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더 강하고 교활한 것들이 약하고 순진한 상대를 미끼등을 놓아 잡아 먹어 죽어가는 생명체가 하루에도 지구상에 수십억 이상이 억울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을수도 있다 곤충이나 기타 생명체를 다 합친다면 하루에도 조단위가 훨씬 넘게 미끼에 걸려 죽어가는 것일수도 있다
사자나 하이에나 등이 풀만 뜯어먹는 아무 잘못이 없는 사슴등을
은밀히 다가가 잡기 편한 약한 사슴이나 어린사슴 부터 잡아먹는 일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일이다

하이에나 만도 못한놈들 친 아버지 고향이 삼팔 따라지 평안북도 박천 출신으로
어릴때 중국에 건너가 국민당 장계석 군대 장교까지 지낼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여 큰 돈을 벌기도 했다는대 해방후 남한에 내려와
중국에서 번돈을 들고와 남한에 많은 땅을 샀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당시 후생회 인지 일제가 남기고간 땅을 재판으로 꽁짜로 많이 얻었다는 말을
누군가로 부터 얼핏들은 기억이 나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당시 중국 국민당총재 장개석 하고 같이 식사를 한적도 있다고 자랑삼아 나한테 직접 얘기한걸 들은 기억도 나는데 이건 일방적인 주장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세상에 너무많은 거짓말이 있지만 그것을 일일히 다 진위여부를 확인할수 없는게 또 현실이다 나는
그냥 들은 대로만 적을 뿐입니다
1945년8.15 해방후 부터 한국전쟁 직후는 이북에서 대량으로 삼팔 따라지 들이 무일푼 으로 내려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한의 정계 재계 주먹계를 장악하던
시절 입니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도 이북 출신이고
독립운동가 김구선생도 이북 출신이고
일제시대 조선의 주먹계를 평정했던 신마적 구마적 전부 이북 이고
그들을 제압한 김두환 역시 지금은 이북으로 분류하는 개성에서 태어나

개성에서 서울까지 걸어온 김두환은 서울 청계천에 와서 거지 생활을 하다가
주먹계를 평정 했다고 한다
김두환은 자신의 모친의 말에 의거해
아버지가 청산리 전투에서 일제에 대승을 거둔 충남 출신의 김좌진 장군의 아들 이라고 하지만 김두환이 만난적도 없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고향이 생물학적 아들인 김두환의 고향으로 분류 하는건 모순이며 말이 안되는 억지 주장이죠
그렇게 따지자면 한국인의 다수의 성씨가 모화사상에 의해 족보를 중국에서
귀화한 귀화인 으로 위작을 했던 조작을 했던 족보되로 따지자면 모두 고향을
중국으로 분류하자는 말도 안되는 논리와 같은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주먹계 당시 한국의 중심인 서울 명동을 장악하던 명동파 두목 이화룡은 평안도 출신이고 유명한 시라소니는 평북 신의주출신
당시 나이 많은 이승만 대신 거이 전권을 행사하던 2인자로
서울출신 이기붕이 전략적으로 키운 정치깡패 경기이천 출신 이정재가 동대문 사단을 조직하여 공권력의 비호아래 전국의 주먹들을 부하로 영입하여
세력을 키우긴 했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권력의 전폭적인 비호를 받았기에
가능한 세력 이었다
이정재가 5.16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쥔 당시 육군소장 박정희에게 당시 연예계를 주름잡던 경기여주 출신 임화수와 함께
사형 당했는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박정희가 경기 이천 출신 유지광이 모든일은 자신이 했으니 이정재 만은 풀어 주라고 하자
유지광만 살려 줬다고 하는데
그말을 액면 그대로 나는 못 믿는다

43p-해방후 남로당 운동을 하던 박정희 친형 박상희는 죽고 형을 따라 남로당에 가입했던 박정희가 붙잡혀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어떻게 풀려 났는지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빅딜하여 남노당 동료들의 계보를 팔아 그들을 죽게하고 박정희는 풀려나 다시
육군 조직으로 들어 왔다는 말도 있고 그렇게한 배후에는 만주군관 학교와 일본 육사출신의 선배의 군고위층 관계자의 공로가 컷다는 말도 있다
박상희의 딸 박영옥은 박정희의 주선으로 홀아비 김종필과 1950년 결혼하게 된다 당시 박정희가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총리 정부를 밀어내고 등극한 일을 그후 5.16 군사 쿠테타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혁명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일로 인해
박정희의 처조카 사위가된 김종필은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자연스럽게 등극한 김종필은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마련 하기위해 한일협정의 주도적인 역할을한다
그때 졸속으로 치루어진 한일협정으로 인해 일본정부는 일제 잔악무도한 군위안부 와 강제 징용 문제를
그때다 배상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황에게 충성맹세 혈서를 쓰고 일제때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박정희의 지시로 한일협정 대표로 나선 김종필이
아이러니 하게도 일제때 고통을 받은 위안부 와 징용자 들을 볼모로 그 문제로 다시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본 정부로 부터 당시 1억불 이상의 돈을 받아내 경제개발 한다는 명분으로 다 쓰며 국가간의 약속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끝났으니
한국 정부는 위안부나 징용 피해를 당한신 분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줘야 도리인데 엉뚱한 소리만 하는것 같다 지금은살아계신 일제시대 피해자 분들에게 한국정부 에서 고급 아파트라도 주고 여러가지 혜택을 줘야한다
일본에 1억불 이상을 받아 경제 개발 한다며
오히려 일부 국민들에게 여론 몰이로 영웅 대접을 받았으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뭐가 가져 간다고
일제 시대때 천황에게 충성맹세 혈서쓰고 일본군 장교 등으로 친일하며 편히 산 사람들이 무슨나짝으로
일제에 잔악무도한 생체실험으로 처참하게 살해 당하는등 수많은 백성들이 도살장 에서 짐승들이 도살 당하듯 살해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도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겪으며 강제로 여자는 위안부 위안부 남자는 징용으로 끌려간 피눈물 나는 수많은 억울한 삶들을 볼모로 그들과 상의도 없이
돈을 받아다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들 마음대로 다 썼으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아무튼 당시 이북출신 육군참모 총장 (장도영은 1923년 평북용천 태생으로 박정희가 61년 5.16 쿠테타를 성공하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군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부장관 등으로 추대 되었지만 같은해 6월 정변 주체 세력에 의해 해임되고 8월 중장으로 예편 되었다 10월 반혁명 혐의로 기소되어 1962년 3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그후 미국으로 이민가 미시간 대학원 정치학 박사가 되어 1969년 위스콘신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 교수등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지병으로 별세 했다 향년89세) 장도영은 박정희 세력이 철저히 이용한 일명 바지사장겸 얼굴마담으로 앞에 내세 우는데 쓸모가 없어지자
반혁명 혐의로 누명씌워 무기징역을 때리자 미국만 보내주면 조용히 살테니 제발 보내 달라고 사정하여
박정희가 미국으로 보냈다는 말도있다

내 생각에 당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이가 당시 육군소장 박정희 추종 세력의 어설푼 쿠테타를 막으려 노력 했으면 막을수도 있었는데

바지사장으로 추대하고 손님잡아 띄워주자 혹시 쿠테타 세력들이 자신을 존경하여 후에 대통령으로 추대 하려는건 아닌가 하는 은근한 기대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쿠테타에 성공하는 계기가 된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리를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장도영은 역사의 죄인임에 분명하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잡아먹는다는 토사구팽 이란 고사성어 처럼 이용 가치가 끝난 장도영은
폐기처분 되었다


그때 바보같이 이용 당한게 부끄러워 그후 당시 상황을 거이 함구 했다고 한다
아무튼 하도 조작이 많으니 정치깡패 두목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 오른팔 경기이천 출신 유지광도 풀려난 이유가 알려진거와는 정반대가 아닐까?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당시 정치 깡패로 붙잡혔다가 일단 무죄로 풀려난 이정재 임화수가
박정희가 5.16.구테타를 일으켜 등극하자 다시 붙잡혀

자유당 정부의 부정을 뒤집어 쓰고 겻가지 들만 사형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후락 유진산과 함께 3대 조조로 불리며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하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조언을 구했다는데 홍진기의 반대를 딱한번 거절한게 삼성 반도체 사업진출에 대한 홍진기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병철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 합니다


(참고자료-홍진기는 경기고양 출신의 홍성우의 아들로 1917년 생으로 어릴 때 서울 왕십리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194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 1945년 해방이되자 미군정청 법제부 법제관 1945년 사법요원양성소 교수 1948년 11월 법무부 조사국 국장 1950년4월 법무부 법무국 국장
1954년 법무부 차관 1955년 2대 해무처장 1958년2월 부터 1960년 3월 제9대 법무부장관 1960년 3월-1960년4월
제21대 내무부장관 1964년 중앙라디오방송주식회사 사장 1968년 중앙일보 사장 1971년 주식회사 동양방송 대표이사 1974년 중앙일보 동양방송주식회사 사장 1980년-1984년 중앙일보 회장 1984년 한국신문협회 고문)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은 4.19 혁명이 일어나자 서울에서만 130 여명이 죽고 전국적으로 200 여명이 죽자 하야 하여 하와이로 망명 하였고 그후 자유당 정부의 사사오입과 3.15 부정선거 와 4.19 혁명 발포명령 진압 책임으로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와 경찰총수 곽영주가 정치깡패 이정재와 연예계의 대부로
명성을 날리던 임화수와 함께 사형 당한다

친일파 홍진기는 자유당시절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할때 당시 대통령이 유력하던 야당 독립운동가 조봉암 선생을 빨갱이로 누명씌워 사법살해 하여 정적을 제거하여 나이많은 이승만이 재선하는데 결정적 일등공신 노릇을 하며 이승만 이기붕에 이어 자유당 정권 넘버 3로 실세로 군림 하였다


남노당 활동으로 정계로의 진출길이 막혀 있던 김대중을 해금시켜 준게 자유당때 법무부 장관 홍진기란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 어린시절 김대중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김대중이 홍진기 집에 방문 하기도 했다고 한다 홍라희는 젊은시절 본 김대중의 평을 접대맨트 인지는 모르지만 좋게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홍진기가 죽은후 살아온 길이 틀리고 주파수가 틀려서 그런지 김대중과 홍씨 일가와 사이가 벌어 졌다는 말도 있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김대중은 1961년 5월14일 강원도 인제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여 민의원에 당선되나 이틀뒤 일어난 5.16 쿠테타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결국 의원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후 자신의 고향 전남신안 하의면과 가까운 목포에서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
또다른 야당 대선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이승만을 이기고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았는데

대선1달을 남기고 급사를 하는바람에 대선 후보가 2명뿐이라 이승만이 선거도 안하고 무혈 입성하였는데 당시 상황으로 증거는 없지만 암살됐을 가능성도 배제는 못한다

그러한 상황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이기붕이 부정선거로 부통령 마저 당선되자

서울시민들이 폭발하여 4.19혁명이 일어난것이다


그후 4.19 혁명때 시위대가 거세게 데모하자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홍진기가 대통령 이승만과 실세인 이기붕에게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무능해서 시위대가 설치는 거라며 떠들자 이승만이 법무부 장관 홍진기를 내무부 장관 최인규를 대신해 급하게

자유당 정권의 구세주처럼 내무부 장관에 기용하자 배후에 빨갱이들이 데모를 선동 한다며 계엄령 선포를 권유하고 경찰총수 곽영주에게 발포명령을 하달한다
그리하여 서울에서만 130 여명이 사살 당하고 전국적으로 200 여명이 죽자 이승만이 하야하여 하와이로 망명하고 홍진기는 사형을 받았다가 당시 감옥에 같이 수감된 신현확의 소개로 만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5.16쿠테타로 갑자기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에게 로비하여 특사로 풀려난다
특사로 풀려나자 언론과 방송의 여론 조작이 삼성그룹이 성장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중요성을 깨달은 이병철이 중앙일보와 TBC를 만들어 홍진기에게 운영을 맡긴다
아울러 이병철은 동양방송 TBC(동양방송) (그후에 1980년 말쯤 전두환의 방송 통폐합 정책으로 당시 국영방송 KBS제 2방송으로 강제로 통폐합됨) 만들어 삼성그룹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여론몰이를 한다

그리고 홍진기의 맏딸 홍라희는 이병철의 셋째 아들 이건희와 전략 결혼 시킨다 이건희와 홍라희는 당시 일본 도쿄에 있는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만나
닥터 지바고의 영화를 보고 여주인공 라라가 홍라희와 같은 라 발음이고 자신의 운명과 같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홍라희가 결심했다고 한국의 종편 조선 tv 방송에서 말하는걸 들은적이 있지만

나는 그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홍진기는 장녀 홍라희가 스타트를 잘끊고 한국 최고부자 삼성가에 시집을 가야 밑으로 남동생 홍석현 과 홍석조 그리고 여동생 홍라영이
삼성가 프리미엄으로 더욱 좋은데 시집 장가 갈수 있다고 판단하고 치밀한 전략 결혼을 시키기위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굉장한 미술 애호가 인걸 알고 마음에 들게 하려는 사전 포석 작전으로
맏딸 홍라희를 서울대 응용 미술 학과에 보낸게 아닌가?
홍라희와 결혼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 이건희는 그후 삼성그룹 회장이 된다
그리고 홍라희의 장남 이재용은 한국 최고 그룹을 넘어 세계 브랜드 7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 회장이 되려 하고있다
사실은 이건희가 이병철 첫째 아들 이맹희를 누르고 삼성회장에 오를수 있도록 한 결정적

계기는 박정희가 이병철을 청와대에 불러 청와대에 이병철을 음해하는 투서를 보낸 편지를 직접 전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로는 그 투서가 이병철의 첫째 아들 이맹희 라고 하는 소문이 당시 누군가 퍼트린것 같다 이맹희는 그런 투서를 청와대에 보낸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 하는데 말이다
그런소문은 일파 만파로 당시 퍼졌다 근데 문제는 박정희 에게 있다 박정희가 해방후 남노당 가입으로 무기징역을 받자 빅딜로 동료를 팔아 풀려 났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는게
혹시 진짜로 이맹희가 청와대에 투서를 보냈다고 해도 청와대에 투서 보낸걸 다른 사람에게 대통령이 직접 이병철을 불러 공개 한다는게
개가 웃을일 아닌가 청와대에 보낸 투서는 어지간 해서는 청와대만 알고 공개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박정희 처럼 청와대에 보낸 투서를 공개 한다면 누가 청와대에 투서를 보내 억울함을 하소연 할것인가
그리고 삼성창업주 이병철의 첫째 아들 이맹희나 둘째아들 이창희가 저능아도 아니고 청와대에 투서를
보내 자신의 아버지를 처벌해 달라고 투서를 보낸 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 인가


더구나 경쟁자인 셋째 이건희의 장인 홍진기와 사둔 관계인 홍석현의 장인이자 박정희 정권 실세가 신직수 인데 거기다 데고 자심의 아버지인 이병철을 음해하는 투서를 보낸다면 오히려 경쟁 관계인 동생 이건희 에겐 좋은 일이며 이맹희는 자책골을 넣는거나 마찬 가지인데 누구보다 똑똑한 참모들을 거늘인 이맹희가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을 했으리라고 나는 믿지 못한다


모순이 큰 사건이다

이건 처음부터 이맹희를 삼성회장 자리에 못 오르게 하려는 계회된 음모가 아니고 서는 있을수 없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투서를 그것도 이병철 삼성 창업주를 불러 직접 공개하고 자식교육 잘 시키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주변에 흘렸는데 물론 그말만 하지 않고 다른 말도 이병철에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대통령이 삼성회장 자리에 직접 개입한 정황 증거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돈이 법과 권력위에 군림 하지만 서슬 퍼랬던 박정희 정권 시절은 잘 나가던 기업도 박정희 말 한마디에 공중분해 시켜 망하게 할수도 있고 흥하게 할수도 있던 시절이다

전두환 정권시절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신발을 제조하며 잘나가던 국제상사가

전두환이 바치라는 비자금을 바치지 않자 전두환이 갑자기 공중분해 시켜 버린 사건도 있었다

당시는 권력이 돈과 법위에 군림하던 시절 이었다 당시 홍진기아들 홍석현이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검찰총장을 무려 8년 하고 중앙정보부장을 3년을 하며 무려 11년간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있으면서 악명높은 인혁당 사건을 계획하고


(참고자료-제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북한 지령을 받은 인혁당이 국가 변란을 기획했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박정희 정권이 궁지에 몰려 있을 때였다.
이 수사를 맡았던 담당 검사가 도저히 기소할 가치가 없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세 명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기까지 했던 근원적으로 조작의 성격을 띤 사건이었다. 그런데 박정권은
10년이 지난 뒤 이 사건 관련자들을 다시 희생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민청, 통민청 등의 활동을 했던 혁신세력이었지만 이후 중요한 사회적 지위나 활동 없이 평범한
사회생활을 했고,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1974년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던 신직수 중정부장은 1차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으며,
수사를 총지휘한 이용택 중정6국장은 당시 5국의 대공과장으로 수사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재판사에 가장 치욕스런 사거으로 기록될 일련의 재판이 만들어 졌다 민청학련사건

46p-1974년 -에서는 사형7명 무기7명 다른 18명 의 형기가 총 340년에 이르렀다
민청학련 사건과 함께 얽어맨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서 법원은 권력의 주문대로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 다음날 새벽 그들은 처형 당했다
1974년 10년전 사건을 다시 조작하여 누명씌워 7명을 사법살해 하고 7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는 당시 재야에서 유신헌법 반대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어
본보기로 공포정치를 한것같다
신직수는 1차-2차 인혁당 조작 사건을 진두 지휘하며 정수 장학회를 박정희에게 같다 바치고
검찰총장 8년 임기를 마치고 그후 중정부장 3년 까지한 박정희 정권의 19년동안 무려 11년을 실세로 있던 신직수의 딸 신연균 과 홍석현이 결혼하여 홍진기의 며느리로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히 홍진기의 첮재딸.홍라희와 결혼한 삼성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 이건희가

한국최고 재벌 삼성회장 자리에 오르길 홍진기와 홍라희 홍석현 모두 바란건 뻔하다

이건희가 삼성회장에 오르도록 홍진기 와 신직수가 연합하여 이맹희가 삼성화장 자리에 못오르도록

모사를 치고 박정희를 움직이게 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


(참고자료<중앙일보>는 1965년 삼성그룹 창립자 이병철이 홍진기를 시켜 창간하였고, 1999년 계열 분리 이후 독자 법인화한다. 이후 홍석현이 인수하여 2003년부터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1964년 설립된 중앙라디오방송의 초대 사장 홍진기는 친일 부역자이다. 그는 경성제대 법학과를 나와 1940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뒤,
1942년 경성지법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전주지법 판사를 지낸 전력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창씨개명은 德山進一이다.

홍진기는 법무장관 시절인 1959년 죽산 조봉암 처형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명 다음날 죽산은 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내무장관 때인 4.19혁명 당시에는
시위대에게 발포 명령을 내려 수도권에서 사망자만 200명 이상을 불러온 인물이었다. 그는 혁명 직후 이승만 독재정권 부역행위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가석방되었다. 이 때 손을 써서 그를 빼내 준 사람이 바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었다.
그 뒤 이 회장은 홍진기로 하여금 1964년 중앙방송(동양방송)과 이듬해 중앙일보를 창간한다. 이어 두 사람은 3남 이건희와 장녀 홍라희를 결혼시켜 사돈이 된다. 즉 이건희가 홍석현의 매형인 것이다. 홍라희는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다.
홍진기는 박정희 쿠데타의 주역인 신직수와도 사돈을 맺는데 바로 장남인 홍석현과 신연균의 혼맥이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36살이라는 최연소 검찰총장 신직수.
8년의 검찰총장과 3년의 법무장관,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등을 거치며 1, 2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는 등 유신의 앞잡이로 나선다. 또 홍진기는 12.12사태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자 이번에는 차녀 홍라영을 국가안전기획부장 노신영의 아들 노철수에게 시집보낸다.
광주고검장을 역임한 차남 홍석조는 BGF리테일(舊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을 맡고 있고, 3남 홍석준은 삼성SDI 부사장을 거쳐 현재는 보광창업투자 회장을 맡고 있다.
4남 홍석규는 보광 대표이사 회장을, 차녀 홍라영은 삼성문화재단 상무를 맡고 있는 등 삼성과는 떨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홍석현의 아들 홍정도는 JTBC 부사장으로 근무하며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기부터 UN 사무총장에 도전해보겠다는 꿈을 가졌던 홍석현은 중앙일보 입사 전인 1983년 전두환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비서실장은
주미대사 출신 외교관 함병춘이었는데, 그가 아웅산 사건으로 사망하면서 채 1년을 넘기지 못한다. 드디어 사실상 삼성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2005년 초 노무현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조선?동아일보와 중앙일보를 분리하는 한편 UN 사무총장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그를 주미대사에 발탁한 것이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이 폭로한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면서 임명 7개월 만에 자진 사퇴하고 만다.
AFP 1835년 설립된 프랑스 최대 통신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사이다. 로이터, AP 통신과 함께 세계 3대 통신사에 속한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親독일파 비시정부에 의해 폐쇄되었

다가 1944년 연합군이 파리로 진군해오자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속한 저널리스트들이 ‘AFP’란 이름을 다시 걸고 뉴4스를 전파하고 국영 AFP로 재건하였다. 세계 165개국에 저널리스트를 두고
있는 이 회사의 자존심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어디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비하겠는가?)

- 최 광 웅(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기관지 독립정신 80호(3,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친일파와 그 후손들 - 시리즈2|작성자 데이터 정치연구소


아무튼 무죄로 풀려났다가 박정희의 쿠테타 등극으로 재차 구속된 정치깡패 이정재와 연예계의 대부 임화수는 모든 책임을 홍진기 대신 덥어쓰고 곽영주 최인규 와 함께 사형 당했다
오래된 사건이라 진실을 밝힐수 있는 증거가 남아 있을리도 없고 이젠 그 사건이 세인들의 관심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진실을 밝히긴 힘들다
박정희는 일제시대 나이가 많아 나이 제한으로 입학이 어려웠던 만주군관 학교에 일본천황 에게 충성맹세 혈서 견마지로 [犬馬之勞] 를 써서 입학하여 일본군 장교가 된 사람이다
반대로 안중근 의사는 혈서를 써서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힘쓰는 사람이 되라) 일제의 조선 침략에 항거하다 사형 당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기득권 중에 박정희의 그런 행동을 비난하며 자신은 떳떳 하다고 양심이 부끄러워 하지않을 사람이 과연 몆이나 될까 ? 일제에 친일을 했던 부역을 했던 협조를 했던 당시 상황은 먹고 살기위해 어쩔수 없는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천지 였을 것이다 대략 95%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5% 미만 정도가
반일을 하며 독립 운동에 협조 했을 것으로 판단 된다 물론 95%의 사람들 중에 정말 악질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음으로 양으로 독립운동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은 물론 동남아 전체가 일제에 독립을 할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역할은 일제보다 더강한 미국이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것 이다 해방후 남한 이라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수 있었던 건 상해 임시정부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에 한반도의 현실을 알린 덕분도 한 역할을 했을 것 이다

자유당정권의 실세 이기붕 홍진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활개를 치던 정치깡패 동대문사단 두목 이정재가 박정희에게 사형당하고 난후 서울 명동을 장악하던 신상사 라는 사람은 들리는 얘기로는 이북 삼팔 따라지 출신 이라고 한다
1957년 도끼사건 으로 주먹계 에서 은퇴한 명동파 두목 평안도 출신 이화룡의 행동 대장이 이북출신인 신상현 인데
이화룡은 1957년 도끼 사건후 주먹계 에서 은퇴 하는데 그후 나이들어 병으로 죽기전 주먹계에 발을 들인걸 가장 후회 했다고 한다
신상사로 불리며 전국 주먹계를 호령하며 명동을 장악했던 인물이 자유당때 명동을 장악했던 명동파 이화룡의 해동대장 출신 신상현 이라고 하는데

신상현은 이화룡을 형님으로 부르긴 했으나 느슨한 연합 관계 였다고 한다
획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들리는 말로는 키가 2M에 가까운 장신이라는 말도 있다
이북출신 들이 나이를 먹어 노쇠화 하고 새로운 젊은피가 수혈이 안되서 그런지 아니면 여러 요인으로 그런지 뭔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아무리 뛰어난 미인의 여인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새로운 어린 소녀의 싱싱한미모에 밀리는게 자연법칙인듯
스포츠계에도 전성기를 지나면 한참 겁없이 자라나는 젊은 애들 에게 밀리는건 불변의 자연 법칙이다
1974년 당시는 전라도 출신들이 가장 많이 서울에 물밀듯 밀려와 살던 시절이라 아무래도 당시는 전라도 출신 깡패들도 지원 세력이
많았으리라 짐작 할수있는 시절 이었다

선거도 쪽수가 많으면 이기듯 사실 지원세력이 많으면 유리한게 많은것이다

깡패들은 지가 불리하면 개처럼 말을 잘듣다가 쪽수가 많고 유리하면 그때

까부는게 깡패다


당시 전국의 주먹계를 장악하며 갑 노릇을 하던
신상사 부하가 당시 을 이었던 전남 광주 출신으로 알려진 조양은 부하를 집단으로 린치하며 갑질을 하자
조양은이 자신의 부하와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1974년
명동 사보이 호텔에서 주먹계의 선배들을 각목을 들고가 기습 공격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누구는 그때 배후에서 조양은을 지원 해준 세력이 이북태생의 대구 조직을 장악한

시라소니와 맞짱 떠도 해볼만 했다고 하는 조창조 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참고자료-언론에 알려지기로는 김두한 시절의 낭만 주먹파의 계보를 끊고, 속칭 말하는 조폭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사시미칼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양은은 김태촌이 처음으로 칼부림을 했다고 주장했다.

1969년부터 서울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조창조-오종철 세력의 휘하로 들어가서 활약하였다. 1975년 그들의 지령을 받고 사보이호텔에서 신상사를 습격했으나 맹렬한 반격을 받아 전쟁은 결국 조창조, 오종철, 조양은 세력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보이 호텔 사건은 참 잘못 알려진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조양은에게 신상사가 패배하거나 칼에 맞아 은퇴했다는 설이다. 실제로는 조창조,오종철,조양은 세력의 완패로 끝났다.)

(나무위키 -참고자료 申上士/申常鉉

1932~

명동황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조폭으로 본명은 신상현.

1952년 대구 헌병대 사령부에서 상사로 진급하여 일하다가 1953년에 전역하였으며, 이후 평양 출신의 씨름꾼인 최시헌을 꺾고 정팔의 눈에 들어서 명동파의 행동대장이 되었다. 그동안 명동황제 이화룡의 직계로 알려져왔으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형님으로 모시긴 했지만 느슨한 연합관계였다고 한다.

명동파와 동대문 사단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일선에서 싸우다가 이후 1958년에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65년에 명동으로 와서 신상사파를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 사실상 서울 주먹계를 일통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은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대부분의 세력이 와해되어 정종원과 유지광의 세력으로 분열되버렸고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구속되었던 명동파가 풀려나와 전화위복으로 사실상 무주공산인 서울을 접수했다.

그러다가 무교동과 강남을 거점으로 성장하는 지방 세력과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1974년 명동 사보이 호텔 사건으로 조창조,오종철,조양은등에게 기습을 당했다. 부하들이 피해를 입긴 했으나 당시 신상사는 자리에 없어 화를 면했다. 그리고나서 맹렬한 보복과 반격으로 오종철을 김태촌을 시켜 칼로 난자해 은퇴시키고[1] 결국엔 조창조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하였다.최근엔 중앙일보와 그때 당시의 일을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와전되어 조양은에게 칼부림을 당해 신상사가 패배하거나 은퇴했다 라는 말이 꾸준히 잘못 알려저왔다.

재일 야쿠자인 서순종[2]과 권투사업 및 여러가지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1978년에 강남센터를 하고 1980년 말에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으나 손을 써서 몇개월만에 풀려나오기도 했다. 이후 이태원 8군 사령부 근처의 크라운 호텔을 활동 무대로 삼다가 1990년에 범죄와의 전쟁의 선포로 손을 씻었다고 하는데 다른 조직들이 큰 피해를 본 것과는 달리 신상사파는 정권 인맥을 잘 이용해 별 피해가 없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이후 판매점,자동차 대리업 등의 사업을 하다가 수도권 일대에서 투견장을 만들어서 도박판을 열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경기지방경찰청에 불구속 입건 되었으며, 폭력교사, 불법도박 등의 혐의를 받았다. 왕년의 주먹 ‘신상사’의 말로, 그러나 이 사건은 관련자들이 신상사는 관련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무혐의 처리되어버렸다.

2013년경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하고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하였다.주먹으로 꽃을 꺾으랴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세계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전국구의 대우를 받는다. 야인시대에서는 오상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거이 퇴물 수준일것 같은 나이가 많은 조창조는 2015년 조희팔 다단계 사기범이

대구 조직 원로 주먹에 뇌물을 먹인게 들어나 걸렸다고

하는 뉴스는 지금도 대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증거로 보여 주었다


당시 신상사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일로 신상사가 김태촌을시켜 조양은을 잡으려 하자 조양은이 도망 다녀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칠성파 이강환이 한테 까지 도망가 숨어 지내기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조양은이가 처음으로 힘으론 어려우니 연장질을 했다고 하는데

김태촌이 먼저 연장질을 했다고 조양은은 우긴다

누구의 말이 오른지는 모르지만
그때 부터 건달이 아니라 양아치 조폭으로 불리기 시작 했다고 한다


연장질을 하면서 부터 힘은 좋으나 씨름선수 처럼 덩치가 크고 몸이느린 사람이
몸이 빠른 사람에게 더욱 불리하게 되었다

체격은 작지만 몸이 빠른놈이 연장들고 찌르면 아무리 덩치큰 놈도 한방이면 떨어 지는건 뻔한 이치
그리고 팔뚝이 굵고 덩치가 크다고 힘이 더 세다는게 다 맞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쪽수가 많으면 이긴다

조직들의 쪽수는 돈과 이득권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힘이 세다고 꼭 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냐 당시 주먹계의 하극상은 전두환이 12.12 사태때 군부의 선배들 에게 하극상을 일으킨
사건과 비슷하게 생각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당시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는 군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인물 이었다
정규 육사가 11기 부터 제대로된 4년제 교육이 시작되자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정규 육사 11기 출신들 주로 경상도 출신들이 주류인
하나회 핵심 멤버로 그곳의 보수 노릇을 하고 박정희도 하나회를 음으로 양으로 많이 지원해 준걸로 들었는데
당시 정규육사 출신이 아닌 육군 참모총장 이자 계엄 사령관인 정승화가 전두환이 하나회 군조직을 이용하여
김재규가 박정희 대톨령 시해 사건 시점을 이용하여 권력을 찬탈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두환을 보안사령관 에서 해임하고 변방인 다른곳 으로 좌천하려 하자
당시 보안사령관 이라 정보를 장악했던
전두환이 정보를 미리알고 다른곳으로 좌천 하기로한 바로전날 12.12 사태를 일으켜
당시 육군 참모총장인 정승화가 중앙정보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청와대 에서 시해 할시
김재규가 정승화를 희생양으로 몰아 누명 씌우기 위해
청와대 다른곳에 데려다 놓고 대접 한걸 전두환이 알고
정승화를 김재규와 공범으로 엮어 변방으로 좌천되기 전날밤에 보안사령부 부하들을 시켜 기습으로 먼저 체포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만약에 김재규가 당시 육본으로 가지않고 중앙정보부로 갔다면 김재규가 계엄 사령관이 되어
정승화를 박정희 시해범으로 누명 씌우고 정권을 찬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김재규가 당황한 나머지 같이 차를 타고 가던 비서실장 김계원이 육본으로 가는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말에 넘어가
얼떨결에 판단력을 잃고 육본으로 가는 바람에 김재규의 운명은 전두환에게 자신의 심복들과 함께 죽게되며 결국
전두환 에게 정권을 넘겨준 꼴이된건 아닐까 ?
그때 들리는 얘기로는 소위인가 중위가 당시 육군 참모총장 별4개 였던 정승화를
서빙고 분실에서 취조하는 과정에서 싸대기를 때리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당시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12.12 사태는
하극상으로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주먹계도 사보이호텔 기습공격 사태를 하극상으로 보고
이일로 인해 주먹계에 눈총을 산 조양은 에게 안좋은 소문이 많았다고 한다
이것도 다 속칭 호랑이 담배피던 옛날 이야기
당시 신상사가 시켜 조양은을 잡으러 다니던 김태촌도 이미 2013년 죽고 없고
지금의 주먹계는 과거와 달리 조직원의 행동과 판도가 많이 바꼈다
깡패들은 조직의 힘이지 개인적으론 힘을 쓸수없으며 별게 아니다 그런데 그 조직을 움직이는건 과거도 마찬가지 겠지만
지금은 현금이 절대적이다 한국의 폭력조직의 최고 두목은 과거 김태촌등 한국의 폭력조직들이 형님으로 대접했다는이야기도 전해지는 이북태생 슬루머신의 대부 정덕진이라는 설도 있었다
서울출신 카지노계 대부 전낙원도 비슷한 시기에 법망에 걸려든걸로 알고있다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이가 자신의 아들이 술집 웨이터에게 폭행당하자 폭력조직을 돈으로 사주하여 웨이터를 납치하여 폭행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뉴스보도가 있었다
모든 일에는 공과사가 있는데 김영삼이 imf 터트려 욕많이 먹었는데
잘한것은 군조직 하나회 해체 시킨거와 금융실명제 실시 한것은 업적으로 봐야한다
결국 김영삼 정권초창기때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이 정덕진과 연류되어 돈을 받은사건으로 둘다 침몰하게된다
6공의 황태자 박철언이 이빨빠진 호랑이 었기에 당시 혼준표 검사가 수사했지 권력실세 였으면 과연 제대로된 수사나 했겠나 똥개도 지집에서 짓는다고 일반인도 쪽수가 많은 우군이 많으면 힘을 쓰게 되어있다
정치도 표많이 받은 사람이 대통령 하듯이. 자기 편이 많으면 힘을 쓰는 구조가 민주주의 제도이다
그래서 인구 최고 대국 이면서도 특히 단합심이 강한 중국공산당에 전세계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폭력조직 들이 과거에는 쪽수불려 공갈치고 위세를 부리며 갈취를 했는데 지금은 법이 점점더 엄격해 지고

49p-사법당국이 폭력조직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지금은 조직 이라고 내세우고 힘 자랑하는 것들은 칠득이 바보다
그래봐야 징역만 베팅하는 칠득이+들이다
요즘 진짜 싸움 잘하면 누가 깡패질 하겠어 종합 격투기 선수로 활약해도 돈많이 버는데
길거리에서 주먹질 하며 싸움 잘해봐야 징역만 베팅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당때 만해도 한국정부가 수립하고 자리 잡은지 얼마 안되어 법과 사회가 아직 제대로 정비가 안되어 어수선 하던 시절이라 폭력배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일도 지금보다 할 만한게 없어 주먹계에 인재들이 진출 했지만 지금은 일할게 천지인데 누가 깡패질 할라고 그러겠어
공갈협박 하는것도 과거나 통하지 요즘 시대에 통하지도 않지만
지금은 총이 있는데 총 한방 이면 끝나는데 그런데도 한국에서 총을 안쓰는건 총을 쓰다 걸리면 그 조직은 와해 시키고 형량도 세지 총을 쓰는건 자살행위나 마찬 가지다
다 먹고 살려고 조직도 운영 하는데 누가 죽을려고 그런 어리석은 짓 거리를 하겠어 미친놈 아니고 서는
일본 최대 조직 폭력배 야마꾸지구미는 과거 30여년전 보스가 조직원의 총에 맞아 죽어
조직 내부의 싸움으로 25명이나 죽은적이 있는데 그들의 싸움은 칼로 하는게 아니라 총과 심지어 수류탄까지 동원된 싸움 이었다고 한다

(뉴스쇼 판] 日조폭 야쿠자 분열에 열도 긴장…유혈사태 우려
김동현 TV조선 기자
입력 : 2015.09.28 21:32 | 수정 : 2015.09.28 22:06
일본의 최대 폭력 조직 ‘야마구치’파 조직 분열로 일본 치안 당국이 유혈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조직 폭력배간 다툼이 표면화되면 경찰, 시민까지 다칠 수 있어 치안 당국이 사고 예방에 나섰다.

다음은 TV조선 보도 원문.
100년간 유지되어 온 일본 최대 폭력 조직 ‘야마구치’파가 둘로 쪼개지면서 일본 치안 당국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조직 폭력배간 다툼이 표면화될 경우 유혈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김동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985년 1월 오사카 스이타시. 1985년,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 4대 두목인 다케나카 마사히사가 조직원이 쏜 총에 사망했습니다.
야마구치파 내분이 고조되면서 암살로 이어진건데, 이후 2년간 이어진 세력 다툼으로 조직폭력배 25명이 숨지고 경찰과 시민 7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내 2만3000여 조직원을
거느린 야마구치파가 30년만에 다시 둘로 나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 공포가 일본 열도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청 관계자/ 긴급 대책회의 ]
“6대 째 내려오고있는 야마구치파 산하 일부가 이탈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필요한 조치를 정확히 강구해야합니다.”
지난 2005년 일본 관서지방 출신이 아닌 시노다 겐이치가 6대 두목자리를 꿰찬 후 정통성 시비가 불거졌는데, 이때 불거진 갈등이 조직분열로 이어진 겁니다.
일본 치안당국은 지난 2010년 11월 야마구치파 내분 당시 수류탄까지 사용된 점을 감안해 충돌을 막기 위한 조직원 사전검거 등 진압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TV조선 김동현입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일본에 있을때 누군가로 부터 들은 얘기인데
일본은 야꾸자 끼리의 싸움은 일반인 보다 약하게 처벌하고 만약에 야꾸자가 일반인을 건드리면 엄하게

처벌한다고 한다 1985년도 야마구치 파의 내부분열 싸움으로 25명 이상이 죽었을 때
일반인이 한명 죽었다는것도 유탄에 맞아 죽은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몰라도 .야꾸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폭력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극히적어

50p-야꾸자에 대한 생각이 한국의 깡패를 보는거 보다는 일본국민이 좀 관대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님-그리고 야마꾸찌 같은 거대 폭력조직은
이제는 폭력을 직접 행사 하는건 상대적으로 적게하고 필요하면 대기업이 하청 업체에 오더를 주는 것처럼 들었다 야마꾸찌 구미의 일년 수익이 한국돈으로 80조5천억에 가깝다고 한다 마약 무기밀수 등을 주로하다 단속이 심해지자 유흥업소는 말할것도 업고 이제는 합법적인 기업처럼
은행등 금융업과 관련된 대부업등에 투자를 한다고 들었다

이제는 길거리 폭력을 행사하는게 아니라 마치 대기업 그룹처럽 보이려 변화를 하려 한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난다
야마꾸찌의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가 오사카나 교베 출신이 아니라 나고야 출신이라 정통성 시비에 말려 조직이 분열될 위기에 있다고 하는 말도 있다
일본도 한국처럼 지역 차별이 존재 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젠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과거보다 많이 깨어있어 앞으론 더더욱 폭력이나 공갈협박 등이 설자리는 없다
그걸 증명 이라도 하듯 일본 야꾸자 수도 과거보다 많이 줄었고 세력도 점점 줄고 있고
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조직원 들의 생각이 과거와 많이 변하여
30년 전에 조직원 끼리 세력 다툼으로 25명이 죽은 그런 무식한 시절의 사건은 앞으론 일어나기 힘들 걸로 본다


2014년 12월 20일 조양은이 다늙은 나이로 사기죄 피의자로 3년6월을 선고 받았다는 뉴스

?

(참고자료-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우수)는 19일 100억원대 대출 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된 전국구 폭력조직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64·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양은이파 일당 김모씨와 윤모씨에겐 징역 4~2년을,
신모씨와 박모씨에겐 징역 2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다)
이제는 조직이 주식 사기등 금융업 화이트칼러 범죄로 변한 시대이다
조양은 이도 80년 전두환 정권때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하여 엄청 고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15년 살고 1995년도 출소한 걸로 알고있다
조양은을 결혼 시켜준 이미 죽은 천안곰으로 불리던 조일환은
전두환 정권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거이 죽다 겨우 살아나 삼청교육대에서 인권탄압을 참혹하게 당한 경험을 자서전으로 출판한걸 읽어 보기도 했는데
2014년 서울 강남에서 한국 최대 조직폭력배인 칠성파와 서방파가 주식 문제로 시비가 붙자
서방파가 도저히 쪽수나 세력으로 칠성파를 상대할수 없었던지 서울전역의 다른조직에게 sos를 쳐서
구원을 요청하여 수를 늘려 칠성파와 패싸움 일보직전 까지 같다가
경찰의개입으로 무마 됐다는 뉴스
이들이 바보가 아닌이상 서울 한복판 에서 패싸움을 할일이 없다
사실 범죄단체 조직에 가입 했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증거가 확인되면 엄청난 징역을 받고 조직의 두목으로 밝혀지면 최고 무기징역까지 줄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깡패들은 검.경 조사시 결정적 증거가 들어나지 않는한 자신들은 폭력조직원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경우가 다수다

자신이 조직폴력배라고 바보처럼 자랑하면 징역만 베팅 하는 바보라고 손각락질 받는다
조직폭력배 이름도 서울 장안동파니 수원 남문 .북문.파니 칠성파니 서방파니하는

꼴망파니 하는 이름도
강패들이 지은게 아니라 검.경에서 수사하다가 자의로 조직폭력배 계보와 조직의 이름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검.경에서 관리하는 조직보다 계보에 없어 사고를 쳐도 비교적 형량이 적은
일명 논두렁 깡패가 더 짜증나고 가장 대책이 안서는건 10대 철없는 애들 이나 중국에서 온 양아치들 돈줘서 청부살해 시키는게 간혹 뉴스에 보도 되기도 한다
지금은 법이 엄해져서 과거와 달리 시내 한폭판에서 조직끼리 패 싸움을 하면
사법기관에 바로 구속되어 일반인보다 엄청나게 많은 형량과 덤으로 조직이 와해 될수도 있기 때문에

51p-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못하고 또 사법 기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조직을 소규모로 운영 하기도 한다
조직폭력배에게 가장 중요한게 돈과 이권등 이득이 되는건데
조직이 와해 될수도 있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데 저능아가 아닌 이상 싸우겠는가


괜히 헐리우드 액션 한것 같은데 서로 직접적인 패싸움도 안했는데 서로 헐리우드 액션만한 우르렁 거린것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가 들어가 그후 서방파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여러가지 다른 사건 까지 수사가 들어가


61명이 구속되고
서방파 원조 두목 김태촌은 2013년 지병으로 죽은 걸로 알고 있고 새로운 두목은 경찰에 쫏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방파는 거이 와해 됐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칠성파도 당시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가 결국 구속 됐다고 한다
조직 폭력배는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국내 최대 폭력 조직인 부산 칠성파는

전두환 정권시절 조직 폭력배를 사회의 악으로 보고 없앤다는 목적으로 운영하여
무구한 시민들까지 마구잡아 죽이던 부끄러운 인권탄압 표본 잔악 무도한 삼청교육대 그리고 노태우 정권시절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직폭력배를 없앤다고 떠들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부산 칠성파는 80-90년대 세력이 급격히 성장 했다고 한다

과거 ob파 두목 이동재는 지금은 이미 죽은 김태촌에게 아킬레스건이 짤려 다리를 다친후

?

미국으로 도망가 성실이 일해서 뉴욕에서 그로서리 야채가계 주인이 됐다고 하고
사실 미국가서 한국처럼 까불다간 큰코 다친다
조양은 이가 한국서한 100억대 대출 사기로 징역 3년 받은 사건은

미국서는 아마 최하가 20년 이상 징역 받을 짓이다
한국에서 날아 다니고 비행기타는 놈도 미국가면 눈치보며 조용히 사는게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미국 에선 한국계는 비주류 일뿐이다


미국에서는 베낭메고 떠돌이 생활하는 나나
한국에서 상류층으로 생활하다 미국 이민온 사람 이나 거기서 거기다
협박과 공갈 치며 까부는 것도 그것이 통하는 공간에서 까부는 거다
미국에서 그런다고 통할리도 없지만 미국에서 주류 세력도 아닌데 한국에서 처럼 까불다간 햇빛 못 볼수도 있다

머리가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이란 말이 거기서 나온거다

머리좋은 놈들은 까불어도 시공간의 상황을 보고 까분다

쉽게 말한면 까불어도 될곳에서는 까불고 까불지 말아야 할곳에서는 절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친놈이나 멍청한 놈은 아무대서나 까불다가 죽거나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친놈이나 멍청한놈들은 후세에 자손을 못남기는 경행이 있고

살아남은것들은 잔대가리 잘돌아가는 교활한 것들이다

이런 논리가 100%로 정답일수는 없다 세상은 수많은 경우의 수와 복합적인 원인들이 존재하지

결코 단순하지가 않은경우가 많다

세상이 그렇듯이 예외는 분명이 존재한다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같은 양반들이 결코 미치거나 멍창한 사람들이 아닌것처럼 말이다

나의 말은 편군적인 예를 말한 것이다


미국 법은 약자에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 시정 조치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실수로 영영 감옥에서 못나오는 경우도 수두룩해
더 큰 문제는 그중 상당수가 억울한 누명으로 사는 사람도 심심찮게 뉴스에 보도 되는데
진실이 밝혀진 것은 운이 좋은 케이스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얼마전에 백인 꼬마가 거짓 진술한게 증거가 전부인데도
백인 어린 아이의 거짓말만 믿고 특별히 증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무죄 없는 흑인을 살인범으로 누명씌워

무려 39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뒤늣게 당시 백인 아이가 커서 자신의 거짓 진술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자신의 진술이 거짓 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하여
무려 39년만에 풀려난 흑인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경우는 특별한 케이스고 그렇지 못한 케이스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 다른사람이 이해할수는 없다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빙산의 일각으로 운좋게 밝혀진 케이스 라고 생각하니 더욱 끔찍스럽다
우리가 아는 미국은 정말 양파 껍질 처럼 속을 알수 없는 나라 다

기후 변화가 사기라고 대선 공액을 내건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미국의 기득권 세력의 대표주자 힐러리가 이메일 사건 등 여러 안좋은 사건에 연류가 됐으면서도

월가와 미국의 방송과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민주당 경선을 치르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 에서 법위에 군림하는 돈과 권력의 악용으로 아무 죄없는 사람을 누명씌워 사법살해 하거나
법으로 콘크리트를 쳐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는 억울한 일들이 해외 토픽으로 종종 들어나고 있다
마치 과거 일제의 731부대가 만주에서 주로 중국인 한국인을 연구용으로 소 돼지 개 닭 잡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사람을 산채로 생체실험하며 고통스럽게 죽이고 그걸 실험 데이타로 적어 의료용으로 연구하며


죄책감도 없이 희희덕 거리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은 끔찍이 생각하는 모습이

마치 인간들이 자신의 자녀와 가족은 끔찍히 생각하며

인간들이 동물을 의료 실험용으로 연구하며 도살하고

우리갇힌 가축들을 마구 도살하여 잡아먹는 모습과 무엇이 틀릴까 반문 하고 싶다

분명한 사실은 동물도 인간이상으로 고통을 느낀다


731부대에 끌려간 마르타 들이 고통을 느낀것처럼


돈과 권력으로 법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의 비리를 파해치는 법으로 콘크리트 쳐 아무런 죄 책감도 못 느끼는 파렴치범들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을 죄를 짓지않은 이상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여 갱생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노력 하면 될 일이지 영원히 지옥 불에서 못 나오게 한다던가
이슬람 율법 처럼 도둑질한 손을 자르게 하는 가혹한 형벌은 없어져야 한다
법이 가혹하면 가혹 할수록 그 법이 사용되는 것은 진짜 큰 도둑인 기득권 부유층 놈들 이야 증거도 안남기고

법위에 군림하며 요리조리 피해 법은 절대 공정하지 않으며 힘없는 사람들 에게만 가혹하게 사용 되어 지는 증거는 수도 없이 발견한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국보다 훨씬 인권이 존중될 꺼라고
또는 법이 막연히 약자들 에게도 공정하게 집행될 꺼라고 생각 하면


아직 철없는 어린애 거나
세상 경험이 전무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사실 미국에 있을때 크게 미국인들에게 인종 차별을 심하게 당해 봤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영어를 잘 못알아 들어 나에 대해 비방하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미국이나 미국인에 대한 안좋은 인상은 없다 미국인이 나에게 나쁜짓을 한적도 없다
오히려 나는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정말 볼곳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기후도 마음에 들고 각양각색의 다양한 인종들이 살아

정말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지구에서 유일한곳이다

그래서 다시 미국 가서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미국 같이 좋은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은 그런걸 피부로 못느끼나 보다

그러나 미국 에서 오래산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 들이 특히 미국 경찰을 조심해야 한다고
나에게 여러번 충고 해줬다 미국서 경찰에 한번 잘못 걸리면 죽는다고 미국 경찰이 함부로 총을 쏴 죽은 한국인도 여럿 있다고 조심 하라는 충고를 여러번 들은 기억이 난다 미국 경찰은 수사권도 있고 상당한 권한을 부여해 파워가 막강 하다 특히 내가 과거 미국에 있을때
미국 동남부지역 같은데 그곳 한인회에서 나온 정보지 인지 신문 인지를 읽은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미국에 입양온 사람 인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한국계가 미국인과 싸우다가 병으로 때리는 신융만 하고
때리진 않았는데 종신형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기사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반대로 미국에 유학온 유학생 인지 현지 한인교포 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인 백인 대학생 에게 집단으로 린치 당하여 죽었는데
사건은 단순 폭행 치사로 불구속으로 수사 한다는 건지 정확히 모르지만
미국 백인 학생은 상대적으로 크게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사건들이 그후 어떻게 진행 됐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당시 짤막한 기사 몇 줄 읽은 기억은 나서 적어본다

어떤 기사를 보니 미국은 한국보다 가석방 제도가 잘되어 있어

징역 50년을 받아도 10년만 살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중국인 에게 살해 당하거나 실종된 사건이 미국에서 보다 훨씬 많고
억울한 일을 당한것도 훨씬 많을 것이다
여러해 전인가 부산에 사는 부부가 결혼기념일로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택시가 정지하여 기사가 남편 보고 내려서 택시를 밀면 갈 것 같으니 밀어 달라고
하여 별 의심없이 내려서 택시 뒤에서 밀자 택시는 부인을 실코 줄행랑을 쳐서 소식이 없다가
그후 부인의 시신이 발견 됐는데 여러 장기가 없어진 상태로 시궁창에서 발견 됐다고

하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반중 여론이 형성을 우려 했는지

자세한 내용도 없이 그저 중국에 여행갔던 누군가 죽었다는 짤막한 자막 뉴스로

보도되어 대다수 사람들은 잘모르던 사건이데 우연이 인터넷에서


누군가 올린글을 보고 당시 사건에 대해서 알게되어
그 정도로 잔한한 놈들 인지 정말 분노를 느꼈던 적이 있다


중국에 인신 매매와 장기 밀매가 전세계 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잔인하고 많다고 하는 소릴 들은적은 있지만 한국에선 반중여론 확산을 우려해 언론과 방송에서는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어

한국인들은 제대로 모른다
2014년 미국 뉴욕에서 덩치큰 흑인남자를 별로 저항도 하지않는데 백인경찰 여러명이 목졸라 살해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백인이 다수인 배심원에 의해 백인 경찰이 불기소 처리되고
미국 퍼거슨시 흑인소년을 총격으로 죽인 백인경찰도 백인이 다수인 배심원에 의해
불기소 처리되고
미국의 또다른 곳에서 장남감 총을든 12세 어린 흑인 소년을 경찰이 총으로 쏴 죽이는 동영상을 보면서
물론 이런일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사실이 피부에 와닿지 않겠지 그러나 살다보면 이런일을 직접 당하면
그때 가서 느끼게 되는거다 이 세상이 절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희생양으로 한번 누명 당하여 엮기면 늪처럼 빠져 나오기가 힘들 다는걸
그리고 그 억울한 심정에 치를 떨며 분노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다는걸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늣는 다는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슴 무리가 하이에나에게 사냥 당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사슴들은 하이에나에게 잡혀간 사슴은 멍청하거나 뭔가 문제가
심각하여 잡혀갈만 했으니 잡혀 갔겠지 자신은 저사슴과 근본적으로 틀리니
상관 없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며 금방 잊고 있다가 풀을 뜯다 하이에나에게 물리는순간

자신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때는 늣었다고 후회할 것이다
흔히 인간들이 특히 잘나가는 인간들이 흔히 하는 착각중에 자신은 영원히 살것으로 착각한다
지금 이 세상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금누리는 안락한 삶을
하나님이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창조해서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준걸로 착각한다


혹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얻어지는 인과응보의 댓가라고 셀프디스로 생각 하겠지
그리고 지구도 우주도 인간이 편한히 살수 있도록 영원토록 유지해 줄껄로 착각한다
그런 생각은 과거 독재자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김정일 등이 한결같이 한 생각일 것이다
뭐 생각은 자유라고 그런 생각을 갇는걸 누가 막겠느냐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부유층 특권층의 편안한 삶은 힘없는 백성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
청와대 문지기가 있기에 대통령이 편히 잘수있는 거고 군인이 있기에 나라를 지키고 농부가 있기에
쌀을 먹을수 있는게 아닌가 사실 대기업도 돈벌어 주는건 직원이 다 벌어 주는거야
인공위성을 쏠대 모든 에너지는 지구의 중력과 대기권을 벗어나데 거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일단 대기권만 벗어나면 별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목표한 목적지 까지 잘 날아간다
이와같이 돈이 돈을 번다는 말과 같이 대기권을 벗어나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대기업들은 실력있는 직원들이 입사하여 모든 사업에 준비를 완료하고 하청업체를 착취하며
비교적 쉽게 돈을 벌수가 있는거다
운이 좋아 특혜를 받는만큼 사회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 1997년 11월 부터 시작된 IMF 위기를 극복한 것도 서민들의 금 모우기 등


서민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희생으로 극복 했다는걸 알아야 한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위기가 오면 그동안 순진했던 서민들도 일제때 친일파나 그들의 후손이 한국의 기득권 노릇을 하며 백성들은 위안부나 징용으로 팔고 제 살길만 찾아 부귀영화를 누리듯 하는 작태를 보며 분노를 느껴 금 모우기 운동에 동참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려 하는 숭고한 정신이 현저히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만큼 한국의 부유층 지도층들의 철면피 같은 부도덕한 면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배고푼 사람이 빵을 훔치는건 그래도 이유가 있지만
배부른 돼지가 먹지도 않을 꺼면서 교묘하게 법을 이용해 배고픈 사람들의 빵까지 착취하는 사회 구조는 용서받지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친일인명 사전에 명단이 있는 친일파 홍진기의 외 손자인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아들이 국제 영훈중학교에 한부모 자녀로 마치 뻐꾸기가 알을 작은새 둥지에 도둑처럼 몰래 낳아 놓으면 뻐꾸기 새끼가 부화하여 둥지의 자신보다 훨씬 작은 힘없는 작은새의 색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트려 죽이고 먹이를 독차지 하듯


한국의 최고 부자며 온갖 사회적 혜택을 다 누리몀서도 오히려

자신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며 진짜 사회적 약자인 배려 대상자를 밀어내고
그것도 성적을 조작하여
국제영훈 중학교에 자신의 아들을 입학시켜 발각되자
기자들 에게 사과한다 면서 자신은 모르는일 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면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자신의 어린아들이 책임을 져야하나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시키는데로 일한 삼성직원 들이 대신 책임져야 하나
한국 최고 부자로 모든혜택 다 누리면서 자신의 아들이 이혼한 가정의 외부모 자식 이라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 몫까지 뺏어 먹으려 하며 입학 시킬때 성적 까지 위조시킨
파렴치한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더욱 웃낀건

다른 기업이나 유명인사가 그랬으면 시청률 올릴 좋은 기회로 보고


사문서위조와 사기로 구속시켜야 한다고 난리를 쳤을 한국의 지상파 종편 방송과 언론이 삼성공화국 개들처럼 유독 삼성가 비리 문제만은 주둥이를 닫고 침묵으로 일관하는건

삼성문제 떠들었다간 기자 생활도 못하고 패널에서 쫏겨나 방송 생활도 못하게 만들도록

만든 삼성공화국이 지금의 한국의 현실이다


?

독재자들이 누리는 부귀 영화는 민중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특권층으로 부귀 영화를 누리는 인간도 영원히 살수 없으며 지구는 물론 태양 심지어 우주 자체도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를 잃고 죽은 우주로 변한다고 한다
46억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에 박테리아들이 이산화 탄소를 먹고 산소를 공급하고 대기권을 만들어 고등생물이 육지에서 살수있게
환경을 만든게 수십억 년간 박테리아들의 은공 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끼가 그 은공에 30%로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해양 생명체가 갑자기 대량으로 불어나기 시작한게
5억3천만년전 캄푸리아 대버블 시대 부터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해양생명이 급격히 등장하여 박테리아들의 산소공급으로 대기권이 형성되어 태양의 나쁜 감마선등 여러 유해 광선을 막아 고등 동물이 육지에 살수 있게 환경이 조성되자


약 4억4천만년전 부터 해양 생명체가 육지로까지 진출 했다는 과학자 들의 추측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 고고학적 발견이 너무 미세하고 그 미세한 부분만 가지고 추측할 뿐이지 그들의 주장이 100%로 확실하게 밝혀진 건 아니다

54p-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또 너무 오래전 일이라 과학자 들과 고고학자 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그대로 다 믿을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진실을 확실히 밝혀낼수 없을 지도 모른다
캄푸리아기시대 생명체중 지금까지 살아 남은건 5%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네는 약 4억년 이나 됐다고 한다
3억년 전의 잠자리 화석도 발견 됐는데
크기가 지금의 독수리 만했다고 하는데
많이 작아진 것이다 역시 1억 6000 만년전 벼륙 화석도
크기만 10배 이상 줄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바다에서 진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과학자 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순 없다 앞으로 더 정확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될지 모르지만
그러면 지금도 해양 생명체가 육지 동물로 진화하는 동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는것 같고 오히려 포유류인 고래나 물개 펭귄등이 해상 동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더구나 지네는 약 4억년 이나 됐다고 하는데 지네의 습성이 거이 진화한게 별로 없는것 같다
3억년이나 됐다는 잠자리도 그렇고 그런데 인간같이 고도로 발달된 고등동물이
확실한 증거도 없으면서 그저 미세한 고고학적 발견과 학자들의 추측에 불과한 가설만로
해양생명체 물고기 비슷한게 바다에서 기어나와 팔다리를 만들고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무작정 말하는건 너무 유치한 발상이다
바다에서 약 4억4천만년전 육지로 올라와 진화하여 지금의 인간까지 진화 했다는게 도저히 믿어 지지가 않는다 물론 바다에서 생명체가 생성 됐다는 가설은 그럴듯 하다
조물주가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하고 육지에 생명체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바다에서 서서히 생명이 진화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가설을
어느 누구도 부인 할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말이 100% 확실 하다는 명백한 증거도 아직 부족하다
내 생각은 지네가 4억년이 지나도 지네고 잠자리가 3억년이 지나도 크기와 모양만 좀 변했을뿐 지네의 습성은 거이 변한게 없어 보인다 1억6000만년전 벼룩도 지금도 벼룩이다
그와 같이 바다에서 기어나온 물고기가 진화하여 4억4000만년 만에 사람이 될수 없다고 믿는다
과학자 들이 뭐라고 하든 정확한 정황 증거도 없이 추측일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이 역사의 시계를 10만번 돌려도 다시 인간이 나올 확률이 거이 제로에 가깝다고 한 것 처럼
인간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될수 없는 기적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역사의 시계를 10만번 아니라 10조번 돌린다고 해도 인간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런걸 똑똑한 리처드 도킨스이 모를일이 없다

(베드로전서 1장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않니 할 씨로 된 것이니)

인간같은 고등생물이 그저 해양 생물에서 자연적으로 지금까지 막연히 진화 했을거라고 믿는것도 문제가 크다
어느 학자는 인간이 진화 하는데 바이러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아무튼 앞으로 7억년 이후 지구가 태양의 팽창으로 점점뜨거 워져 바다물 까지 다증발 하여
없어질 꺼라고 한다
결국 지구는 팽창하는 태양에 타버릴 거라고 한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가정할수 있는게
아무리 건강하고 잘 나가는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늙어 추해지고 결국 에너지 기가 다빠져 죽는걸 보면 지구의 미래와 태양의 미래
어쩌면 우주의 미래도 같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우주가 아직 팽창하고 있어 아직 어른이 덜된 청소년처럼 성인이 안되었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팽창이 피크에 달해 멈추면 성장이 다자라서 늙어 가는 인간처럼 우주도 늙어가며 서서히 에너지를 잃고
죽은 우주가 될수도 있다

55p-그전에 인류의 후손들이 멸망 안하고 살아 남는다면
지구와 같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살아 남을수 있겠지 기적적으로 지구와 같은 행성을 찾아 살아 남는다고 해도 결국 에너지를 다 잃은 우주가 에너지가 없는 죽은 우주로 변하면 인류의 후손은 더이상 살아 남을수 없다고 보는건 누구나 생각할수 있다 결국 인류가 더 생존을 연명할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다른 우주로 연결된 웜홀을 찾아야 하는데
불행이도 웜홀의 입구인 회전하는 불랙홀 발견이 됐는데 웜홀의 출구인 화이트 홀은 아직 발견하지 못해
불랙홀 안을 여행 할수 있는 운좋게 성능 좋은 우주선을 인류의 후손 들이 개발해 웜홀을 찾아 탈출 한다고 해도 그곳을 빠져 나올수 없을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웜홀의 이론도 우주의 시공간을 단축하는 공간일 뿐이지 아직 다른 우주로 연결된 통로 라는걸 아무도 아직 알수가 없다

결국 인류는 운좋게 우주의 종말때 까지 살아남는 다고 해도
에너지를 잃고 늙어 죽는 인간의 운명처럼 우주와 같이 종말을 같이할 확률이 거이 다 라고 보면 된다
우주에 만약에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 했다면
지금 우주에 수없이 발견되는 폭발한 죽은 백색 외성에 지구와 같은 생명체가 존재 했다면
그들이 이와같이 종말을 맞이 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과 사연들이 존재 했다 바다의 물거품이 일다 순간 사라지듯 사라졌을까 ?
그것을 기억하던 그들의 종말과 함께 그들의 사연은 어느 누구도 기억해 줄수 없게 되었겠지
만약에 인류의 후손들이 멸종하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존재하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한걸 누가 기억해 줄까 ?
그러나 미래는 불확실 하니까 혹시 아는가 인류가 생존할수있는 다른 우주로 연결된 웜홀을 발견하여
지구와 같은 행성을 발견하여 살아남을수 있을런지
그런일이 가능 하다면 기적과 같은 일이지
그래서 인류의 후손들이 기적과 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
한국의 안철수 의원이 말한것 처럼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수 있다고 말한 것 처럼
수많은 희생과 실험과 준비가 없다면 인류의 후손이 혹시 누릴수 있는 기적도 바랄수 없다
성서에도 말하지 않던가 부름을 받은자 많이 선택될수 있다고
수천만분의 일의 확률인 로또복권 1등으로 당첨 되는것을 바라는 마음은
불확실한 미래에 요행을 바란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만약에 로또 복권을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면 그런 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 처럼 말이다
과거 조지 아담스키가 ufo를 타고 금성에 외계인 들과 갔다 왔는데 그곳이 마치 에덴동산과 같았다는 말을 상당수 믿던 어리숙한 시절도 있다
이젠 과학의 발달로 금성이 475 도의 열지옥인 금성엔 생명체가 도저히 살수 없는 곳임을 잘안다
그리고 요즘은 풀한포기 물 한모금 없는 화성에서 지구로 생명체가 운석을 타고 이동한게 아니가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저넓은 우주에 진짜로 ufo와 외계인이 있는지 내가 모르지만 외계인이 그먼거리 비싼 연료와 오랜시간 고생 해서 어렵게 지구를 찾아와서
지구인 에게 정체가 들통 날까봐 몰래 염탐만 하고 은밀히 ufo타고 도망 갔다면 지나가는 똥개가 들어도 웃을일이네
내 생각에는 지구에 왔으면 벌써 정체를 들어 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을 볼때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은 지구를 뜻한게 아니가 생각이들정도로 우주에서 지구같은 행성은 지구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이들정도로 지구의 존재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졌다 인류는 이러한 소중한 지구를 친 환경으로 잘보호해서 미래 세대에 물려 주어야 한다
내가 삼성그룹 오너를 상대로 진실을 밝히려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이 지만 마치 이길수 없는 싸움인 일제에 독립운동가 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분투하여 전세계에 일제에 강제로 조국을 빼앗긴 억울한 대한제국인의 사연과 기백과 역사를 알리며 독립을 기원하듯 또는 흑인 시민단체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나 긍극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해석 해야 할것이다

흑인 시민단체가 시위를 하는것은 그들은 미국을 전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회를 혼란 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언제 그런 억울한 일이 자신과 가족에게도 올수 있다는 또는 자신의 후손에게 올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그런 불합리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런일이 다시 재발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 사회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시위하는 것이라고 본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시위 하는건 당연한것 아닌가

인간이 개돼지 처럼 불만이 있어도 주는 밥만먹고 갖혀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런 불합리한 삶을 선택할수는 없지 않은가

생을 다하는 최후의그날까지 자신의 삶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불의의 무리의 억업에 항거해야 한다

그리고 더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가만이 있으면 그런 억울한 일을 더 당한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증명된 사례가 많다
그래서 억울함을 호소하여 세상에 알리어 분을 풀고 그런 억울한 일이 두번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시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무소불위의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공권력 마음대로 악용 하는 한국의 파렴치한 공무원도 큰 문제인데 일부 미국 경찰들은 허가 받은 살인업자 처럼 사람을 죽이고 정당방위 라고 조작하는걸 보면 잔인성에 분노를 느낀다
평화롭게 시위하는
백인여성 에게도 몽둥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미국 경찰의 잔인함
민주국가의 모범이란 미국이 이정도 인데 다른 나라는 오죽 하겠냐
중공 북한 같은 나라는 인권을 논할 자격도 없는 것들이고
한국도 약자들에 대한 인권탄압이 심한 나라야 한국의 공권력은 과거 사례가 증명 하지만 돈과 권력의 개노릇을 하는 한국의 0.01%의 삼성공화국같은 거대자본과 최고권력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 행동을
빙산의 일각으로 들어난 증거로 밝혀진 것만 여러번 이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개혁을 해야할
부분은 공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미국경찰과
미국경찰의 범죄행위를 눈감아 주는 미국의 사법체계를 공정하게 할수 있도록 견제하게 사법제도를 개혁하고 시민단체들이 견제와 감시를 할수있도록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미국경찰의 수사권을 없애고 흑인인권단체에 수사권을 줘서 경찰의 인종차별 공권력 악용 범죄는

1급 살인죄로 처벌한다면 미국경찰이 미친놈이 아닌 이상 감히 그런행동 못할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되자 그후 무일푼으로 내려온 이북 삼팔 따라지 피난민 들이
서북청년단 이란 단체를 만들어 겉으론 반공을 한다며 당시 권력을 쥐고있던 이북 출신들의 보이지않는 비호속에
활개를 치며 서북청년단은 거칠것 없이 제세상 만난 것 처럼 반공과 아무 관련 없는일에 마치 조직폭력배 처럼
폭력적 행동을 일삼 기도 했다고 한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빨갱이 라고 누명씌워 때려잡아 갈취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
시절이란 말도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당시 육군중위 출신으로
서북 청년단 소속의 평북 용천 출신이다 당시 황해도 평산 출신의 이승만 대통령의 영향인지
이북출신의 서북청년단 출신들이 마치 지금의 IS 테러범들처럼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국가 요직 곳곳에 배치되어 권력의 비호까지지 받으며

그들의 의사에 반하거나 저항하면 죽어도 밝혀 처벌도 하기 힘들었고 어디가서 제대로 하소연도 못하여 서북 청년단은 한국사회의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후 박정희가 쿠테타로 등극하여 생긴 하나회 출신들이 서북청년단 계보를 이어받아 하나회가 김영삼이 철거하기 전까지 오랜시간 한국을 지배했다

그놈들 친 엄마는 어머니가 이집의 존재를 알기도 훨씬전에 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라 어머니는 전혀 불륜 하고는 관계가 없으며 이미 죽고 없는 이복형들의 친엄마를 나는 사진 한장 본적이 없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놈들 친엄마는 중국에서 귀화한 중국년 일수도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 부터 들은것 같은데 확인된 사실은 아닙 니다
중국년 소리는 빼고 시작하는 걸로 하자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를 욕을 한다면 나도 그놈들과
나을게 없겠지 더구나 나는 여자를 상대로 욕을하고 십진 않다
나는 여자들이 때리면 맞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때려도 그렇고 누나가 때려도 그렇고 아무튼 이놈들 교활한 수법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기분나쁘다
어머니 인생이 너무 슬퍼서 또 임종은 커녕 장례조차 참석하지
못해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한 불효 막심한죄 때문에 너무 억울해서 슬피울며 어머니를 부르는데

아래 내려다 보이는것이 후지산 이라는 비행기 내부
안내 방송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 하였다 나는 운좋게 창가쪽에 배석 받아서
비행기 아래를 내려다 볼수 있었는데 아래를 내려다 보니 후지산이 보였다
그전에 일본에서 생활할때 재일 교포가 운영하는 후지산 밑에 산장에 붙어있는
야끼니꾸 식당에서 잠시 일한적이 있었는데 그 재일교포 내외분과
같이 일본 사회인 야구 경기도 구경하며
생에 처음으로 샤부샤부를 먹어본 기억과 내가 간다고 하니 시즈오카 전철역 까지 태워줬지
그후 혈기 왕성하던 시절 후지산을 놀러 갔다가
신주쿠와 신오쿠보 사이에 있던 처음보는 사우나에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고 왜 신발을 안 벗냐고 지랄하며 퉁명 스럽게 대하는게 아닌가
근데 바로 내 뒤에 들어오는 일본놈 에게는 상냥하게 대하며
그냥 들여 보내네 그놈 신발을 보니 신발을 신은채로 들어가고 있네
나는 순간 열받아서 카운터에 그놈과 서로 욕을하며 말싸움 하다

57p-그냥 걸어 나온적이 어렴풋이 기억 나는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 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겁도 많아 지고
그후 또 빠징코 장에서 빠징코 하다가 직원놈 하고 트러블이 생겨 직원놈이 먼저 나에게 욕을 하여 나를 밀쳐
빠징코장 직원놈에게 빠가야로 고노야로 욕을 하며 손바닥으로 밀쳤더니 이놈이 뒤로 기우뚱 하더니
혼바서는 나를 못이기겠으니까 뭔가 신호를 보내자 빠징코장 직원놈들이
갑자기 떼거리로 몰려와 욕을하며 나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자 나는 순간 옆에 있던 빠징코 구슬이
잔뜩 담겨 있던 박스를 바닥에 집어 뿌리며 뛰어 도망 나왔다
한국계 일본인 추성훈을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본인 중에 상당수가 중국계 이며
그들은 재일 한국계 보다 이민 역사도훨씬길고 요즘은 어마어마한 중국 본토 세력의 유입으로 핵분열하듯 팽창하는건 시간 문제다 전세계에 퍼져있는 중국계 화교세력은
과거 미국 대통령 레이건도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중국 화교일 꺼라고 말할 정도로 두려워 했다는 말도 있다 중공이 고도성장 하는 원동력은 전세계 퍼져 있는 화교.자본의. 적극적인 .도움덕.이라고 한다
후지산과 일본에 있었던 모든 추억을 뒤로하고
저넒은 태평양을 향해 비행기는 날아가고 있다 나는 일본에 있을때
제주도에 있던 누나가 시댁의 소개로 신오사카 근처 당시 대략4-5층.건물의 1층에 있던. 야끼니꾸 식당에서 잠시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숙소는 제일 꼭대기 층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 건물이 식당사장 .건물이래 .그래서 .부자라 그런지
어디를 가던 .그.근처에선.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천지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돈 많은 사람이 .대접 받는건 같다
당시. 신. 오사카. 근처. 전자상점 .에서. 소니.디스.플레이어를. 사서.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Mariah Carey - Without You노래와 Elvis Presley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즐겨 들으며 언젠가는 미국을 꼭 가야 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한국은 나하고 인연이없는 나라야 모든 설음 털어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거야
내 모든생에 통털어 그렇게 앞날이 희망적이고 설레인 적도 없었다 물론 돈많은
인간 들이야 미국 시민권 거져 따지만 나같은 사람 에게는 미국땅 밟기도 힘든게 나의 현실 이었다
무엇 보다도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한국 에서는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고 그저 억울하고 분한 마음만 들뿐 이었다 살 사람은 죽고 없고 죽어야 할 사람은 살아 남았다고 닥터지바고 에서 여주인공 라라가
닥터 지바고의 죽음을 알고 마지막에 넋두리하며 어디론가 사라져
그후론 영영 본사람이 없다고 한다
당시 험악한 세상에 라라가 누군가에 잡혀 시베리아 수용소에 끌려 갔다느니
총맞아 죽었 다느니 무성한 말만 남겼는데 분명한 건 그후 두번다시
라라가 돌아오지 않고 사라진것 처럼

끝까지 내편이 되줄 어머니와 여동생은 죽고 없고 나도 의미없이 사라지는건 아닐까?

불안한 두려운 마음이 은근히스며 들기도 했다

허기야 모든 인간은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과 명성을 지녔 더라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처럼 모두 사라진다


세상이 모두 불공정 해도

아무리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 해도 아무리
분자 생물 학자들이 생명 연장을 돈으로 연장할수 있게 하려 연구를 해도 아직
누구나 공정하게 죽음을 피할수는 없다 그래서 아직 종교가 없어지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아직 종교가 사라지지 않아 지푸 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려운 환경 에서도 어쩔수 없이 죽는 그날까지
뭔가 나 에게도 지금의 환경을 180도 바꿀수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행운이 오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살려고 발버등 치며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 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또다른 태양이 뜰 것이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듯 결국 꿈에 그리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입국장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에서의 삶은 실타래가 처음부터 잘못 얼키듯 엉망 그 자체 였는데 아무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 하고보니
입국수속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얼굴 한번 보더니 아무 소리도 안하고 6개월 채류 허가를 여권에 찍어 주는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 했는데 다행 이다 싶었는데 그리고 얼른 입국장을 나와서 출구 쪽으로 나가려 하자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동양인 중년 여성이 내게 다가 오더니 영어로 뭐라뭐라 그러길래 나는 못알아 들은척 대꾸를 안하니 한국말로 아저씨 한국 사람이 세요 그러데 그레서 그렇다고 그러니 공항 세관직원 이라며 몇가지 확인할게 있다며 왜 미국에 왔으며 미국온 목적이 뭐며 어디를 갈것이며 따져 묻는게 아닌가 나야 처음부터 미국에서 살려고 온 사람 아닌가 그렇다고 그대로 얘기할순 없고
그냥 관광으로 왔다고 구라치며 은근 슬쩍 넘어가려하자 007 가방을 열어 보라며 그러 길래 마지못해 가방을 열자 잠시 살펴 보더니 됐다며 바로 닫으라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가방안에 돈이 있는줄 알았더니 돈은없고 옷도 왜 그렇게 없냐고 하면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하는게 아닌가
여행온 사람이 가방도 적고 옷과 짐이 그렇게 적어서 되냐고 그러는게 아닌가
이여자 한국여자야 한국말하는 외국인 인가
내가 여기 살려고 온건지 대충 떠보려고 했는데 내가 아니라고 잡아 때니까
그냥 보내는 것이냐 이렇게 집요하게 따지는거 보니
나는 순간 긴장했던 것이 확 풀리며 출구 쪽으로 발걸음 을 재촉 하였다
출구쪽에 와보니 내이름 석자를 한글로 쓴 중년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남자 한테로 다가가자 내이름을 부르며 맏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반갑게 맏으며 한참 기다렸다며 다른 사람은 이미 다도착 했다며
공항밖 관광버스가 있는곳으로 나를 안내 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미 일행중에 친지들이 마중 나와서 관광을하지 않고
친지를 따라서 간다며 가이드에게 얘기하며 인사하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민 이라도 온듯
짐을 엄청많이 가지고오며 공항에 마중나온 친지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 나만 미국에 살려고 온게 아니구나 여기그런 사람 많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관광을 마치고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비행기를 태워서 보내야 하는데 나혼자 남아 있는게 아닌가 물론 나도 관광좀더 하다 간다며 안갔다
아무튼 나는 관광버스에 올라타서 맨 뒷쪽에서 3번째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드디어
오고 싶었던 미국에 왔으니 여기서 과거는 다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도 해보았다
내가 그토록 오고 싶었던 미국에 왔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찻다
드디어 버스는 출발했다 공항에서 가족들을 찻아서 또는 자기 갈길을 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버스는 정원에 절반을 간신히 넘긴것 같았다 나는 2인석 좌석을 나혼자
통채로 차지하며 관광버스 유리창 밖으로 처음보는
샌프란시스코 풍경에 취해 있었다 버스는 도시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
LA에서 왔다는 중년으로 보이는 관광가이드는 한국에서 S대 공대를 나와 살다가
미국에 이민와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며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하고
관광일정 등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예를들며 재미있게 이야기 하였다
잠시후 버스는 말로만 듣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골든게이트 브릿지 - 금문교-에 도착하여 관광하였다 금문교를 중국인이 설계 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버스는 다시 금문교를 가로 질러 왼쪽편 언덕쪽 으로 올라가서 아래로 금문교 아래 대평양으로 흐르는 골든게이트 해협이 보이며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이 잘보이는 전망 좋은곳에 정차하여 관광을 하였다
일행은 대부분 연인이나 가족등 동행이 있었으며 나같이 달랑 혼자온 사람은 드문것 같았다
그들은 동행끼리 서로 주고 받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골든 케이트 브릿지 - 일명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몇장 찍어 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낙 하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 하였다
가이드는 안내방송을 통하여 원래 다음 목적지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나오던 누구도 탈옥할수 없다는 감옥이 있던 알카트라즈 (스페인어로 펠리칸 이란 뜻) 섬에 배를 타고 가려 했는데 오늘은 파도가 높은 관계로 다음 목적지는 선착장으로 바꼈다고 했다
얼마후 버스는 선착장에 도착 하였다 그리고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을 관광하기 시작 하였다
나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혼자서 관광하기 시작하였지
영화 에서나 볼수 있었던 아름다운 요트가 즐비 하였고 갈매기 때들이 하늘을 수놓고
당시 내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차서 그렇게 내눈에 비친건지 모르지만 마치 에매랄드 빛 같은 그림 처럼 바닷물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행동들이 한국 보다 자연스러워 보이고 여유로 가득차 있는것 같은 모습도 인상적 이었다

59p-태어나 처음보는 아름답고 휼륭한 경치에 왜 한국은 이런데가 없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 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시야가 맑고 공기도 좋고 모든게 한국보다 좋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 하다가 문득 갈증이 나서 주변에 음료수파는 상점을 찻아서
코카콜라를 사서 들이켰다 그러다 지나가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에게
선착장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부탁하자 반갑게 승낙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관광하다 버스로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버스를 찻아도 안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장소를 가 보아도 버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버스가 내가 오지않자 그냥 가버렸나 하는 상상에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 하면서도 그러면서 주변을 아무리 찻아 보아도 버스가 보이지 않자 나는 만약에 버스가
그냥 가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대책을 세웠다 내 지갑속 에는 달러 2300 여불이 전부였다
그전에 일본에서 생활 할때 가와꾸찌 근처의 당시 일일 민박이 천엔에 싼 민박이라 광고를 보고 찻아가 한 일주일인가 민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미국에서 생활 하다온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그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김진이라 소개한 사람과 얘기 한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캐나다 몬트리올를 통해서 미국에 밀입국 했다고 한다 영어도 제법 잘하는것 같았다
그곳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무슨 호수가 있는데 그곳을 브로커의 도움으로 배를타고
넘어가서 브로커가
데려다 주어 미국 디트로이트시티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뉴욕 까지 간적이 있다고 하는 소릴 들었으며 미국 가면 LA 는 택시 기사 보고 코리아타운 가자면 다알고 데려다 주고
뉴욕은 맨하탄 32번가를 찻으면 코리아타운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며 그곳에 가면
한국 신문을 구할수 있어 신문을 보면 민박집과 일자리를 구할수 있다며 필요한걸 뭐든지 한국에서와 같이 구할수 있다는 정보를들은 기억이 그때 문득 나서 그래서 나는 만약에 버스를 못 찻으면 샌프란시스코 고속버스 정류장을 찻아서 여기서 가까운 LA로 가서 코리아타운을 찻기로 생각하며 그 와중에서도 계속 관광버스를 찻으며 헤메었다
나는 하나님을 실제로 본적도 없고 음성을 들은 적도없다
평상시 에는 안 찻다가도 꼭 어려울때 하나님을 찻곤했다
물론 나만 그런게 아니고 거이 모든 사람들이 어려울때 그동안 믿지도 않던 신을 찻는건
인간의 공통된 심리 현상 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 라는걸 반증하는 결과 이기도 한것이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반갑게 버스를 찻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황급히 버스쪽으로 달려가 안으로 들어가니 몇사람이 좌석에 있었다
나는 버스에 내 좌석에 가서 조용히 앉자서 안도의 숨을쉬며 기다리니 얼마후 사람들이
차례로 버스 안으로 들어와 착석하고 다음 관광지로
출발했다 다음 관광지 차이나타운에 도착하자 차창 밖으로 중국풍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 차이나타운을 관광하러 갔지만
나는 먼저 선착장에서 벌어진 해프닝 때문에 심신이 피곤하여 버스안에 있기로 했다
차이나 타운 관광이 끝나자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후 버스는 다운타운 어딘가에 여행사 같은곳에 정차 하더니
새로운 관광객을 태우고 그때 까지 빈좌석이 많았는데 새로운 관광객을 태우고 좌석 모두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옆에는 20대 초중반 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와 착석해도 돼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친구는 경상도 말씨를 쓰는 키가작은
버클리대에 유학온 유학생 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나는 별로 자랑할게 없어서 내 신상을 일체 말하지 않았다
나이나 고향 이름 등은 전혀 물어보지 않았고 그 학생도 그런애길 하지 않았다
잠시후 가이드는 오늘묵을 모텔로 향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오늘저녁 석식도 해결 한다고
했다 나는 피곤해서 차창을 베게 삼아서 잠이 들었다 나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말을타고 더살기 좋은곳을 찻아 떠도는 방랑자 처럼 권총하나 차고
말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어떤사람은 미국생활을 질색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의 진정한 고향에
온것 같은 말로는 표현 할수 없는 편안함과 설레임 그리고 희망에 가득찬 기분이 들었다

모텔에 도착 했다는 가이드의 안내 방송에 깨어 보니
허허 벌판에 미국은 땅덩이가 커서 그런지 거이 단층으로 되어있는

60p-평수가 넓은 전형적인 미국 모텔 이었다
가이드가 방을 배정해 주는데
한방에 2명씩 들어가는데 동행은 동행끼리
싱글은 싱글끼리 묶어서 한방에 두명씩
집어 넣는다고 하며 사정상 독방은 줄수 없다고 했다
가이드는 버클리 유학생도 싱글이고 나도 싱글이라
같이 방을 배정 했다고 했다
배정된 방에가서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고 잠시 대기하니
인터폴로 저녁을 먹으라며 식당으로
오라고 연락이와서 식당에 가보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말로만 듣던 LA 갈비 라는데 엄청나게 큰 갈비를
먹으라고 주는데 소주와 버드와이져 캔맥주도 나눠 주었다
맥주를 먹고 소주를 먹고 갈비를 뜯고.그렇게 꿈속에서 상상하던 미국에서 첫저녁 만찬을 현실로 즐기고 돌아와서 잠을 청하 였다 방의 침대는 두개가 얼마간 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미국서부 6박7일 관광이 시작되고 그 다음날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찻아 간데는데 관광버스 안에서 졸다가 차창 밖을 구경하는데 기암괴석 들이 웅장하게 치솟은
높은 산비탈에 어떻게 차길을 깔았는지 관광버스는 곡예하듯 상당히 긴 시간을 움직여
책에서나 보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하자

(참고자료 -미국3대 국립공원에 꼽히는 요세미티 1864년애 주립 공원으로 지정 됐으며 1890년 인접해 있는 다른 지역을 포함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머세드 강의 요세미티 계곡 수 천년 된 나무가 우거진 넓은 세쿼이아 숲 지질학적 관심을 끄는 갑 등을 비롯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30만 8.106ha 가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것은 계곡 바닥으로부터 높이 1.098m로 솟아 있는 화강암벽인 엘케피탄이다 DAUM백과사전)

일자로 쭉 생전 처음보는 장대한 크기의 일자로 쭉 쭉 뻗은 나무들이 굵기도 굵고 나라가 크니가 나무도 정말 상상 이상 으로 큰 나무들이 많았다 그것이 자이언트 소나무라고 나중에 들은 기억이 난다

내가 마치 동화속의 거인국에 있는 나무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수령이 1000년 이상 지난 나무는 명함도 못 내밀고 쓰러져 있는 거대한 고목이 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 으로는 무려 3000년 이나 됐다고 하는데 그말이 사실 이라면
예수그리스도 보다 1000년 이나 앞선 나무라니
믿을수 없는 나무 라는데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 지던대 웅장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뒤로하고
꼭 가보고 싶었던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자 단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LA갈비를 실컷 먹었다 그후 관광버스로 사하라 호텔로 이동하자
어느덧 어두워 졌다 사하라 호텔에 좀높은 층에 나와 버클리 유학생이 같은방을 배정 받았다
라스베이가스는 낮에는 몰랐는대 저녁이 되자 명불허전 이라고 과연 듣던대로 찬란한 불빛이 요란한
인간의 지능으로 만든 세계에서 야경이 가장 찬란한 도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사하라 호텔 사장의 부인이 한국여자분 이란 말을 누군가가 하더라고
나는 저녁에 카지노장에 들어가자 같이온 한국 여행객 들이 왔다갔다 하며
카지노를 즐기고 있었다 여행사 가이드는 테이블에 앉자서 불랙잭을 하고 있었어
나는 일본에 있을때 호기심에 빠징코를 몆번 해봤는대 잘은 못한다 빠찡코는 다마를 주입하여 도박을 하는거고 나는 그런 빠찡코 대신 코인을 넣고 머신에 그림이나 숫자가 777 이렇게 일정하게 배열 됐을때 잭팍을 터트리는 것을 좀 해봤는데 불랙잭등 카드를 가지고 하는 전문 카지노장은 없었어 듣기로는 일본에는 카지노는 일반인 들에게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대
그래서 나는 처음보는 불랙잭등 카드로 하는것을 신기하게 구경하며
카지노장을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구경 하다가
일본 빠징코장에 당시에 있던 주로 해봤던거와 비슷한 카지노 머신 게임을 용기를 내어서 100불을 25센트 코인으로 바꿔서 하자 처음에는 좀 잃다가 운좋게 7을 세번 일렬로 배열 시키자
코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잭팍 터졌다고 그러는 건데
자신감을 얻고 돈을 올려 계속하자 잃더라고
그래서그만두고 그때까지 딴 코인을 달러로 바꾸자 본전을 제하고도 300불 이상 벌었다
이제는 사하라호텔 밖으로 나가서 말로만 듣던 라스베이가스에 가보면 꼭한번 가보고 싶었던 유명한 호텔인

61p- 미라지 시저스팰리스 호텔을 구경 하기로 하고 짧은 영어로 물어 물어 걸어서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저스팰리스 호텔을 찻아가는 중에 휘황 찬란한 라스베이가스
야경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한국에서 구입한 중고 삼성 카메라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그렇게 가던중에 기대하지 않게 아일랜드 호텔 앞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대
왜 그런가 가봤더니 마치 과거 영국의 넬슨제독과 스페인 무적함대가 전투를 벌이던 배들처럼 비슷하게 생긴 배와 그때 당시와 비슷한 복장을한 선원들이 해상전투를 벌이는것을
뮤지컬처럼 보여 주던대 실제 상황같이 실감나게 연출하는 모습을 호기심으로 관광객 틈 사이에서
잠시 구경하다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미라지호텔 시저스팰리스호텔을 실제 가보니까 내가 묵던 사하라호텔 보단 훨씬 고급스런 호텔 이란걸 알수 있었다 군대 가기전 당시 동대문 운동장 근처에 있었던 성동 체육관 에서 복싱을 하다가 서울 장안평에 있던 월드프로모션에서 복싱을 잠시 했었는데 그당시 유명한 레너드 해글러 헌즈 듀란 등이 시저스팰리스 미라지 호텔 특설링 등 에서 복싱경기를 하는 중계를 시청했을때 나도 언젠간 미국 라스베이가스 가면 그곳에 꼭 가고 싶었는데 미라지 시저스팰리스 호텔을 구경하고 MGM 그랜드 호텔은 한참더 가야 한다고
그러길래 다음 기회에 구경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려 사하라 호텔 카지노장에 와보니
같이온 단체 관광객 일행들 중에 일부는 투덜대고 있었다 크고작게
돈을 잃었다고 투덜대는게 아닌가 나는 300불 이상을 땃으니
미국에서 처음부터 행운이 따르는거 같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호텔방으로 가서 잠을 청하였다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내가 라스베이가스 카지노에서 돈을따고 카지노 호텔에서
잠을 자다니 그리고 그 유명한 미라지 시저스팰리스호텔 야경을 구경 하다니
내 인생에서 이처럼 설레임과 희망과 꿈에 가득 찻던적이 있던가

꿈 갔던 라스베이가스 관광을 끝내고 다음 목적지 후버댐으로 버스가 향하려 하자
일행중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일행이 라스베이가스에서 남는다고 가이드와 일행에게 인사하고 짐을 챙겨 떠나자
버스는 후버댐을 향하여 출발 하였다

(후버댐은 애리조나 주와 네바다 주 접경지대의 불랙 협곡에서 골로라도 강을 막아 세운 댐 1930-1936년에 건설 되었으며 1947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기념하여 재명명되었다)


댐에 전봇대 같은게 당시 똑바로 서 있는게 아니고 피사의 사탑 보다 더 경사지게 지어진게 특이했다
가이드가 그에 대해 뭐라고 열심히 설명한것 같은데 지금은 무슨 소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후버댐을 지나서 장엄한 그랜드케년 관광을 마치고
LA 코리아타운까지 오자 중간에 내린 사람이 많아서 버스안은 절반도 안된것 같았다
급기야 코리아타운 에서 거이다 내린것 같에
그리고 코리아타운을 지나 무슨 호텔로 가서 정차하며 가이드가 나보고 6박7일 미국 서부일주 관광일정이
다 끝났으니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려면
LA 공항에서 샌프란스코공항가는 비행기를 태워 줄테니까
샌프란시스코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샌프란시스코 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가면 된다고 하기에
나도 관광좀 더하다 간다고
구라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게 나혼자 남은거야 다른 사람은 중간에 어디서 다 셋는지 하나도 안보이데
이런 제길 나도 코리아운 에서 내릴것 무슨 똥 배짱으로 여기까지 따라 왔는지
설마 나도 처음보는 호텔에 데려와 차를대고 이럴줄은 몰랐다
더 한국적이고 재미교포가 서울처럼 많이 활보하는 코리아타운 중심가로 들어 가는줄 알고 끝까지 남은건데
가이드가 내 마음을 간파 했는지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탈것 같으면
코리아타운을 가는 콜택시를 불러 줄까요 그러는데
근데 무슨 자존심에 그것도 거부하고
사실은 나도 코리아타운을 가야했지 그래야 한국 사람도 만나고 묶을곳을 알아보고 일자리도 알아 볼테니까
아는 사람이 있다고 어디 마중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구라치며 거부하여 당당히 어디론가 무작정 아무데나 걸어가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그 알량한 자존심이 뭐라고
그래도 내 인생에 자존심 빼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은 뭐라고 떠들던 나는 인간과 동물의 가장큰 차이점은 자존심 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 보다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걸 안다

62p- 부유층과 고관들이 속으론 딴생각 하면서 겉으론 자존심 따지며 에티켓 따지는 것은
에티켓도 없는 서민 일반백성 보다 훨씬 진화한 우월한 종이라고 은근히 자존심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과거 조선에는 양반들이 일반 백성과 다르다는 특권 의식의 자존심을 부리는 선비정신이 라는것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특혜와 모든 혜택을 독차지 하는 만큼 일부 귀족들이
말로만 명예롭게 산다고 떠들게 아니고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처럼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우월의식의 자존심 보다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행동과 책임이 따르는 명예와 자존감을 목숨처럼 소중히 생각하며 특혜를 누리는 거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혈혈단신인 세상에 혼자 던져진 것 같은 나도 내인생 에서 명예와 자존감 빼면 동물만도 못한것 아니 겠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자존심은 버려도 자존감은 지켜야지 스스로 생각 하면서도
그러나 내 지갑에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대략 3백여불 정도 딴 돈을 합쳐 도합 2천 몆백불이 있기에
그걸 믿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무일푼이었으면 자존심을 버리고 가이드에게 도움을 요청 했다 물론 내가 거지처럼 자존심을 버리고 도움을 요청해도 들어줄 가능성은 적지만
도움 요청을 들어주긴 커녕 비웃움에 조소를 받을 확률이 훨씬 높은거다
세상의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은 불안 이라는 기분을 느낀다고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하고 있다
아무래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도움을 요청해도 들어줄 확률이 적고 오히려 멸시와 비난의 화살을 받을 확률이 높은 서민이 누구나 고개 숙이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후 더많은 떡고물을 받을 생각에
친절이 도와주는 부유층들 보다 서민들이 불안한 기분을 훨씬 더 많이 느끼는건 당연하다

(참고자료-306-하이데거 에서 경험 한다는 것은 존재가 길을
내는 운동에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진입과 함께 존재와 만남으로써
인간은 존재자들을 객체로서 대상화 하지않고 그것과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공속성의 사건에 자신을
열게 된다 그러나 존재가 여는길은 현존재의 참여없이 이미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현존재가
자신을 비우고 존재에 자신을 여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열린다
길이 먼저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사유의 운동과 함께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길에서 인간이 도달하는 것은 존재자 들에 대한 지적인 통찰이 아니라
그것들 과의 친밀한 교감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유를 물음 이라고도 말한다 이경우 물음이란
존재를 하나의 대상 처럼 탐구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대답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이데거는 물음을 경건한 사유라고 부른다 그러한
물음은 자신이 도달 하게될 방향이나 도착지를 미리 계산할수 없는 물음 이며 존재가 내는 길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것에 진입하여 걷는것이 하이데거가 경험이라는
말로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근대의식 철학에서 사유에 의해서 규정되기 이전의 감각적인 경험과는
달리 이미 사태 자체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사유다 하이데거가 자신은 철학하지 않고 사유 한다고 할때의 사유란 바로 이러한 사유인 것이다
이러한 경험에 대해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물이든 인간이든 신이든 어떤 것에 의해서
우리가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다는것
그것이 우리에게 맞닥 뜨리고 우리를 엄습하며 306-
307-우리를 전복 시키고 변화 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경우에 경험을 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우리자신을 조응 시키면서 그것을 통과 한다는 것
우리에게 맞닥뜨리는 것을 수용하고 받아 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307-

318- 하이데거는 한학문의 방법을 습득하여 그것으로 계속해서 작업을 해나가는 것보다 심정의 진리에 귀를 귀울여서 그러한 진리를 단순 소박하게 해나가는 것이
본질적 으로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318
210-하이데거가 우리가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경험 한다고 말하고 있는 섬뜩함은 바로 우리 대부분이 겪는 의미 상실의 경험을 시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하이데거가 말하는 것처럼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이 동시에 개시
된다면 우리는 왜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섬뜩함과 고향을 상실한 것과 같은 느낌만을 가져야 하는 지가 이해 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이의에 대해서 별다른 답변을 하고 있지 않는것 같다 그는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이 개시되지만
불안은 아직 결단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은 무의 심연 앞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섬뜩한 느낌 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불안이 고향을 상실하고 낯선 무의 심연 앞에서 있는 섬뜩한 느낌 이라는 성격을 갖게 되는 이유는
불안 이라는 기분 에서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것처럼 실로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이 개시 되더라도 온전히 개시 되는것이 아니라
아직은 은폐된 채로 개시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즉 불안 이라는 기분에서는 세인으로 서의 우리가 집착 하는 세간적인 가치들이 우리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이
아닌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섬뜩한 기분이라는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 까-210-
-212-하이데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자명성을 파괴하고 존재자 전체를 낮설게 드러내는 근본기분 들인 불안이나 깊은권태 처럼 얼핏 보기에 부정적인 성격만을 갖는것 같은
근본기분 들의 의미를 거듭해서 강조 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자명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212-
213- 생각하는 사태들을 그 자체로서 안으로 진입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근본기분 들이야 말로 후설이 사태 자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는 사태 자체는
후설이 말하는 것처럼 현상학적 환원 이라는 방법적 조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근저 에서 지배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우선 대부분의 경우에 억압하고 잠재우는 근본기분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것을 통해서만 드러 난다고 본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사태 자체를 우리가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그동안 잠재웠던 근본기분 자체를 일깨우는 것이 필수적 이라고 보고 있다
원효 역시 하이데거가 말하는 것처럼 깊은 권태나 불안과 같은 근본기분을 통해서 일어나는 자체
상훈습을 은폐하지 말고 일깨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하다고 -213-
-214- 볼것으로 생각 한다 진여심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빠져 있는 생멸심과 근저에서 끊임 없이
훈습 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와 염증을 갖게 하지만 우리는 우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체 상훈습으로 부터 도피하여 존재자 들이 주는 쾌감에 탐닉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체 상훈습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 들일때
우리는 새로운 실존 방식의 실현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현존재의 근저에서 일어나는 근본기분의 사건을 통하여 현존재는 이미 사건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 자체에 열려 있으며 이와 함께 세계와 모든 존재자 들의 진면목에 열려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전통 형이상학 에서 와는 달리 이론적으로 관찰하고 따지거나 내면을 반성하는 이성 보다는 근본기분을 통해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의
실상이 개시 된다고 본다 -214-
217-하이데거는 인간과 세계의 진리는 이러한 이론적 탐구를 통해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탐구로서의 철학은 오히려 근본기분들에서 인간을 비롯한 존재자 전체의 실상이
이미 드러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보는 것이다
이론적 탐구로서의 철학은 이미 이렇게 드러나 있는 존재자 전체의 실상을 개념적으로 분석하고
명료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근본 기분이야 말로 우리 인간과 세계의 진리가 들어나는 장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과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기분을 일깨워야 한다고 본다
이 경우에 하나의 근본기분을 일깨 운다는 것은 이전에
의식되어 있지 않던 것을 단순히 의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기분을 일깨우면서 그 기분에 사로 잡힌다는 것을 의미 한다

64p-하이데거는 기분을 일깨운다는 것과 그것을 단순히 의식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기분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것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사건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의 의식의 시선을 던지는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 기분을 일깨운다는 것은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로잡게하고 그것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것에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게 함으로써 그것이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하도록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것에 들려오는 인간과 세계의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217
-박찬국지음출판사서강대학교출판부| 2010년 원효와 하이데거 비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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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모습에 나도 황당함 을 느꼈다 내가 LA코리아타운을 가야 하는건 당연한데
그런데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두리번 거려도 미국은 난생 처음와 봤고
역시 말로만 듣던 LA도 난생 처음인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무리 걸어도 도통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 그전에 미국 서부를 관광하다 어느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발견한 미주 LA 한국일보 지사가 발행한 신문을 만약을 대비해서 가져와 007 가방에 넣은게 생각나서
가방에서 한국일보를 꺼내서 한참을 찻다가 잡 (J0P)란에 오렌지 카운티 어디서 숙식하며 일할 식당핼퍼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공중 전화를 찾아서 전화를 하니 사장이 받았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한국에서 처음왔는데 일좀 했으면 한다고 하니까
지금 어디 있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처음와서 여기가 아딘지도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러면 택시를 타고 LA공항 으로 오라고 하며 거기서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나는 어렵게 택시를 잡아서 LA 공항으로 가자고 짧은 영어로 말하니 LA 공항으로 대려다 주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식당으로 전화 하니까 나보고 무슨옷을 입고 있냐고 하길래

아래위 까만양복에 007가방을 들고 있다고 하니까 자신은 노란옷을 입고 올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까 노란옷을 입고온 중년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보이는데 근방 찾겠던데
그 사람도 나를 근방 알아보는거 같더라 외국인들이 많은 틈 속에서도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금방 알아보는 그런게 있긴 있더라 우리는 서로 반갑게 통성명 하고 악수하며 인사했다 나는 무엇보다 반가웠다
어디로 가야할지 하마터면 미아가 될뻔 했는데 이렇게 한국인을 만나서 더군다나 일자리까지 찾게 될줄이야 그 양반은 쌍용 찝차 같은 차를 몰고 왔는데
그게 어느나라 차인지는 지금 모르겠고 그차에 타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얼마나 달렸나 미국 중상류층 들이 살법한 동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오렌지 카운티가 아닌가 생각도 해보는데
당시에는 정황이 없어서 기억에 남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느 아담한 미국 주택에 정차 하더니 오늘은 피곤할 테니
자신의 집에서 자고 내일 식당과 숙소로 가자고 했다 그집에 들어가니 나이드신 노모가 계시었고 부인 되시는 분도 있었다 애들은다 동부에서 공부 한다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식당에 도착 하니까 아직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사장은 나를 착석 시키고 나에게 한달에 700불을 주겠다고 했다
아직 기술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하며 직원들 쓰는 방은 한달에 500불인데 사장이 250불 대주고내가 한달에 250불 내야 한다고 했다 오늘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에 숙소로 대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소리를 듣고 나는 미국의 인건비가 이건 너무박한거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그래도 지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은 알때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분간은 있을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사람이 내가 한국에서 처음왔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등 현지물정을 잘모르는 약점을 잡아서 거져 일 식히려 하는 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식당일은 순두부 전문점 인데 장사가 잘 돼었다 잠시 쉴틈도 없이 순두부를 뚝배기에 퍼넣고
찝게로 집어서 홀로 내주는 간단한 일이 었지만 너무 바빠서 중노동 이었다
그리고 그릇도 딱아야 했다 첫날부터 정신없이 바빠다 그러나 미국생활이 처음이고 해서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근데 손님이 없을때는 식당의 모든 그릇을 수세미로 빡빡 닦으라 그러고 바닥 청소를 시키고 유난히 나한테 심하게 구는게 아닌가 거기 먼저 와있던 조선족 출신이라는 중국인이 있는데 그 중국인 에게는 상냥하게 잘하더라 나는 미국에 조선족이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힘들게 일이 끝나고 숙소로 데려가는데
그 숙소는 한국에 고시원 같은데 였다 방에들어 갈려면 나보고 250불을 내야 한다고 해서 250불을 꺼내 주었다 그러자 사장은 차를 타고 갔다 숙소는 독방 침대 였는데 화장실은 방밖에 공동 화장실 이었다
먼저 와있던 조선족이 화장실 위치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나보고 얼마받기로 했냐고 묻길래 한달에 700불 받기로 하고 그것을 보름에 놔눠서 주고 그리고 방세 250불을 별도로
내야 된다고 하니 그 조선족이 놀라며 그거받고 어떻게 일하느냐고 말하며 조선족은 2000불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경력이 많아서 그렇게 받는거 아니냐고 했더니
경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다 초보자가 처음일해도 1500불 이상은 다 주는데 나같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분을 삼키고 내가 처음왔는데 일자리를
구할려고 할려면 어디로 가는게 도움이 되냐고 물으니 코리아타운을 찻아가라고 했다
나는 그 식당에서 일하면서 주인이 툭하면 한국에 대해 비판적 이고 중국 찬양 일색이고
그 당시 여자월드컵이 미국과중국이 결승전이 벌어 진다고 하며 조선족과 식당 사장이 중국이 꼭 우승해야 한다며
관심이 얼마나 크던지
내 생각에는 중국이 차라리 지는게 백번 날텐데 미국이 한국에 우방인데 아무리 사람 생각이 다르다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틀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생활 하면서
나중에 안사실 이지만


(소공동 순두부 명동순두부 북창동순두부 집이 많은데 그 동네가 원래 예전부터 중국 화교들이 많이 살던 동네 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구한말
명성황후가 일제에 저항 하기위해 청나라 군대를 들여 오면서
청나라 사람들이 청나라 군대를 따라 많이 들어와서 터를 잡은게 북창동 소공도 명동 등지 였다는걸 그후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화교가 꾸준히 한국에 들어 왔는데 특히 1949년 장개석 국민당이 모택동 공산당에 패하자
장개석 추종 세력들이 대만이나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일본등 국가로 도망 갔는데 한국에도 당시 제주도 부산 목포 군산 인천 해주 항구등으로
약 60 여만명이 들어와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여 살다가 그중 상당수는 미국 캐나다 대만 호주 일본 등지로 또 이민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말까지 통계를 보면 1949년 중국의 장개석 국민당 추종세력들이
60여 만명이 한국에 난민으로 도피하여 살다가 다시 다시 다른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아니면 한국인으로
귀화를 한 숫자를 제외하고 당시 대만 국적의 화교의 수는 대략 3만 여명이 한국에 거주하는 걸로 통계가 나왔는데
노태우 정권에서 북방외교에 무게를 두고 중공과 수교하여 90년대 초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90년대 말을지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 중국 공산당 국적자가 대량으로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나는 그 집에서 보름 일하고 돈을받고 그만 두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인 콜택시를 불러 코리아 타운으로 가자고 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코리아타운까지 택시로 대략 30분이 넘은 것 같았다 도착하여 무작정 아무곳에 세워 달라고 해서 내렸다
내려서 자세히 살피니 한국에서 상상하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서
사실 실망했다 거리는 일본이 훨씬더 깨끗 하다고 느껴 졌으며 이거 일본 보다도 훨씬형편 없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극히 일 부분만 본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나 한국과 비교조차 불과한 경치가 휼륭한 곳이 많다는 것을 그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알게되었다
나는 택시기사 에게는
어디 갈때라도 있고 누가 마중 이라도 나와 있는것처럼 폼을 잡으며 코리아타운에 무작정 내려서 무작정 아무대나 걸어 가며 한국사람을 만나면 물어 볼려고
한국사람만 찻는데 혈안 이었다 그러자 한참을 무작정 걸었을까 운좋게 한국인을 발견하자
반갑게 찻아가서 한국에서 처음 관광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한국 상점이 많은곳을
갈수있나 물어보자 그 사람은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나는 한국 상점을 찻아서 새로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를 사서 일단 묵을 곳을 찻아 보았다그리고 제일싼 곳을 찻아서
공중전화로 전화하여 그곳에 가니 나이먹은 할머니가 반갑게 맏아 주었다 내가 처음 한국에서 관광 왔다고 하니 자신도 일본에서 오래살다 LA로 온지 몇년 됐다며
미국에 잘 왔다고 하네 나는 일본에서 생활한 사실을 일체 얘기 하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하는말이 나보고 교회 다니냐고 하는데 어릴적
몇번 다니고 지금은 안다닌 다고 했더니 미국 에서는 성경책을 꼭 들고 다니라며 하나님만 잘 믿으면

반듯히 성공할 것이라고 나에게 선교를 하는게 하닌가
아무튼 묵을곳을 한달에 싸게 300불에 얻었으니 이제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구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신문과 모든 정보지를 구해서 다음날 부터 정황없이 바쁘게 움직 였는데
그러나 좀처럼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안던중 라스베가스 한인 식당에서 식당핼퍼를 구한다고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더니 오라고 그러데
그런데 생각보다 월급이 적었어
그래도 무작정 일하겠다고 하고 가겠다고 했다 돈은 자꾸 떨어져 가는데 이것 저것 잔머리 굴릴 형편이 아니었다 무작정 고용 한다면 가는 것이다
한국인 콜택시를 불러 식당주인이 가르쳐 준데로 생전처음 LA그레이하운드터미널 찻아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라스베이가스에 도착해서
전화할 참 이었다 나는 난생 처음 미국 고속버스인 그레이 하운드 터미널에 가서 보니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커다란 경주용 개가
그려져 있는데 개 이름이 그레이하운드 라고 한다
그 당시 30몇불인가 주고 티켓을 끊은걸로 기억한다 라스베가이스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니까 한참후에 키가 큰 50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와서
바로 알아보고 그사람 차에 타고 식당으로 갔는데 식당은 조그만 식당이었는데 짜장면도 팔고 짬봉도 팔고 한식도 팔고 이것저것 닥치는 데로
파는 곳인데
나는 그릇도 닦고 밀가루 반죽도 하고 양파도 까고 잡다한 일은 다했다 그런데 라스베이가스에 있다보니 자꾸 카지노에 들락날락 거리고 돈도 못벌고 그리고 보름에 한번주는 돈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안되겠다 싶어 다른데로 가기로 생각했어 순두부집에 있을때 사장이 뉴욕 동부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안좋다고 돈도 적고 일자리도 없고 여러가지로 동부가 서부보다 훨씬 안좋데 지집에서 한5년정도 일배우면 주방장이 될수 있다고 하면서 미국 동부쪽이 안좋다고 절대 갈생각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 자식들은 동부에서 학교다닌다고 말한걸 들은적이 있는데
그사람 스타일로 봐서는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될것 같아서 또 뉴욕쪽에 이복누나가 오래전 84년도에 이민와서 살고 있어서
사실 이복누나 에게는 안찻아 갈려고 했다 나를 반겨줄것 같지도 않고 해서 뉴저지에 산다는 소리는 들은것 같은데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고 만약에 이복누나 에게 찻아갈려면 한국에 있는 이복형 들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날 반겨줄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복누나를 찻아가려 뉴욕으로 가려는게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서부 생활이 결코 한국에서 상상하던것 만큼 녹녹하지가 않았다
가장큰 이유는 더낳은 새로운 곳을 찻아 떠나는것이 나의 운명인양
가보고 싶었던 뉴욕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튼 그레이 하운드 정거장을 걸어서 찻아가며 뜨거운 라스베이가스 태양을 피하기 위해 썬그라스를
쓰고 걸어가고 있는데 그근처 주택가 어린이 놀이터에 대략 7-8살쯤 대보이는 백인 여자어린이가 다른 소리는 기억안나고 유미 라고외치며 부르는 소리는 기억나네 나는 잠깐쳐다보고 계속 걸어갔지 그런데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백인 여자꼬마가 내뒤에다 대고 따라 오면서 큰소리로 여러번 you me그러면서 덧붙여 영어로 뭐라 그러던데 지금은 영어로 you me 라고 들은 기억밖에 안난다
사실 당시 내가 알아들을수 있는 영어는 you me밖에 없었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영어로 물어볼 실력도 당시 되지 못하여 한번 뒤를 살짝 쳐다보다 그냥 무시하고 계속 가던길을 재촉하며 걸어가며 물어물어
라스베이가스 그레이 하운드 터미널 까지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다
라스베이가스 도시는 네바다주 사막에 지어진 카지노 도시라 생각보단 그렇게 크진않았다
지금도 그 꼬마 백인 여자 아이는 왜 그랬을까 금금 하긴해
백인여자 꼬마 아이에겐 흔히 볼수없는 동양인 남자가 선글래스에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배낭을 짊어메고
뉴욕양기즈 모자를 쓰고 걸어 가는게 신기해 보였나 ?
나는당시 135불인가 137불 사이 인 것 같은데 주고 뉴욕행을 큰마음 먹고 끊었다 그리고 버스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네바다 사막에 군데군데 거친 선인장이 있는 헐리우드 서부영화 에서나 보던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은 허허벌판 사막을 몇시간 이고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는 달렸다

67p-이것도 한국에 있을때 부터 꼭한번 경험해 보고 십었던 일이었다 사막을 지나자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나 책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험준하고 장엄한 로키산맥을 가로 질러서 끝없이 끝없이 달리는것 같은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마치 과거 어린시절 많화영화로 tv 에서 보았던 은하철도 999의 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듯

( 참고자료-은하철도 999의 줄거리 행성 라메탈은 천년에 한번 궤도를 돌며 천년에 한번 찰나의 봄을 맞이하게 되며
이 시간만을 살아가는게 라메탈인입니다 불랙홀의 영향으로 궤도가 틀어지면 그 짧은 봄마저 마지막이 된 시점에서 여왕은 지구를 침략하려 했으나 여왕의 딸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 딸이 여왕이 되었는데 마지막봄을 앞에 두고 방관할수 없음에 라메탈인을 기계인간으로 바꾸어 영원히 살고자 계획을 세우는데 이 여왕이 천년여왕이며 프로메슘이다 프로메슘은 기계인간화을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죽이는데 그중에 자신의 딸인 철이 엄마도 있습니다 철이 엄마는 죽이나 철이는 죽이지 못해서 자신의 딸인 DNA로 복제 인간 메텔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는 철이를 찾아오라 시킵니다 메텔은 철이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을 은하철도 999에 계속실어 여왕에 갇다 바치며 스스로 괴로워서 그 아들을 추모하는 마음에 상복을 입고 다닌다
그리고 마지막에 메텔은 철이를 만난다 철이는 진짜 엄마의 모습과 DNA를 가진 메텔에 엄마의 향기를 느낀다
마지막에 메텔이 철이를 라메탈 행성에 데려가지만 마음을 바꾸어 철이를 살린다
안드로 메다 성을 폭파 시키고 철이는 은하철도 999를 타고 지구로 가면서 인간으로 남는다
메텔은 다른소년과 여행을 위해서 777호를 타고 영원히 철이와는 같이 만나지 못할길로 떠나게 된다)

나는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미국 서부에서 웅장한 로키산맥을 지나 꿈에도 그리던 뉴욕맨하탄의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가고있다는게 꿈만 같았고 마치 어릴때 TV로 즐겨보던 은하철도 999에 철이가 은하철도를 타고 엄마를 찻으려 우주를 여행하는 것처럼 이렇게 무작정 더나은 삶을 위해 꿈과 희망을 찻아 미래를 알수없어 불안을 느끼면서도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일은 내가 꿈꾸웠던 일중 하나였던 가상현실이 드디어 현실이 된것이다
생각하니 이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기 싫었는데
그꿈의 완성은 고속버스를 타고 미국 본토를 횡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차를 사서 타고 미국본토를 횡단하는 꿈이 었는데
언젠가 그꿈을 꼭실현 하고 십다
한국버스는 땅 덩어리가 적으니까 종점까지 그냥 타고 가는데 미국 고속버스는 차안에 화장실이 있는거는 물론 중간에 몇번이고
주로 맥도널드 가게에서 정차하여 각자 자기돈으로 식사를 하는데 어떨때는 히스패닉들이 주로가는 타코벨 에서
정차 하기도 했는데
식사를 하고 그레이하운드가 가다가 교체구간 정거장 에서는 승차 인원이 전부 내려서 다시 줄을 서서 버스가 기름을 채워넣고 버스내부 청소를 깨끗히 하고 난후 운전사가 교체되어 돌아올때 까지
한참을 줄을서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 기사는 기본적으로 8시간 이후로는 교체된것 같았는데
그리고 기존에 타고 있던 승객 에게는 보링패스 라는걸 나눠 주었다
새로표를 끊어서 타는 사람보다는 빨리 태웠다
댄버라는 곳에 도착해서 줄을 서고보니 반갑게도 내가 보기에 귀엽게 생긴 1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한국 여자소녀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 했어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마치 참새들 처럼 떠드는데 뒤를 돌아다 보니 여고생으로 보이는 한국 소녀 3명이 보였다 그렇게 댄버에서 한국소녀 3명등 새로운 동승자를 태우고 그레이하운드 고속 버스는 미국동부 쪽으로
최종 목적지 뉴욕을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서부에서 동부 뉴욕까지
가려면 최소 3박4일 이상의 머나먼 여정을 이런식으로 가야했다 그래서 버스에서 자고 중간중간 맥도널드 등 에서 요기를 때우고 가는 것이다 미국의 중 상류층 이상들은 가까운 거리는 드물게 탈지는 몰라도 이런게 먼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니거나 자가용으로 가겠지 그레이하운드를 타고다
니는 사람들은 솔직히 상황이 어려운사람들이 대부분 일것이다 흑인 히스폐닉 그리고 돈없는 백인 간간히 중국인 동남아인등 전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불법체류자들 등과
그리고 여러사정으로 비행기를 탈수없는 사람들
나는 그후에도 그레이하운드.타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미국본토 여기저기 거이 안가본곳 없이
돌아. 다녀서 그레이하운드. 운전수 들도 내 얼굴을 일부는 알아볼 정도 였는데
한국인은 가까운 거리는 몰라도 하루 이상씩 가는 장거리. 버스 여행에서 만나기는. 드물었다
근데. 곱게 자란것처럼 보이는 한국소녀 3명이 어울려 타다니 버스안. 에서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버스안 에서 얼마나 떠들던지 덕분에 심심하지 뉴욕까지 간 기억이 난다 그 소녀들 일부는 시카코 를 지나 얼마후 내린 것 같고 그중 얼굴이 가장 이쁜 여자아이 한명은
뉴욕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에서 버펄로 업스테이 뉴욕 방향으로 버스를 갈아타려 줄을섰고 나는 계속가던 뉴욕 방향으로 줄을 섰다 그리고 서로 힐긋힐긋
쳐다보며 피는 물보다 지나다고 무사히 목적지로 가기를 나는 기원했다
한국에 있을때는 잘몰라도 외국 나가면 애국자가 자동적으로 되는것 같다 지역적인 차별도 별로없고
아무리 한국에서 잘나갔다고 해도 미국오면 다 떠돌이로 주류 백인사회에 눈치보며 은근히 차별받고 흑인들에게도 은근히 무시를 일부 받으며 괴롭힘을 당하는 소수민족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을 보면 동료의식을 느끼고 한국 에서보다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클리브랜드 에서 뉴욕맨하탄 까지는 고속버스로 불과약 8-9시간 남짓 거리다 장장 3박4일 버스를 타고 온거에 비하면 뉴욕에 거이다 온것이다
클리브랜드를 떠난 버스는
뉴욕맨하탄 42번가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에 도착하자 나는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 터미널 출구로 발거름을 재촉 하였는데 왠사람들이그렇게 많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정류장 안에 있는 의자를 꽉채우고 있고 일부는 정류장 바닥에 쭈구리며 졸고 있는게 아닌가
왜 그럴까 의아해 하면서 정류장 출구를 드디어 빠져 나오자 새벽 6시도 한참안된 시간이라
생전 처음 보는 뉴욕 맨하탄 거리는 아직 어두운 밤이 었다
그때당시 서울 이나 도쿄는 어두운 밤 도시 거리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돌아 다닐수 있지만
뉴욕 맨하탄은 달랐다 나는 그전에 누군가 에게 들은
맨하탄 밤거리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소릴듣고
또 위험한 맨하탄.거리의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것도 그런 두려운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동양인보다는 덩치나 골격이 훨씬큰 흑인이나 백인 히스패닉을 보면 위압감이 안들을수
없다 생각보다 그들의 행동도 거칠어 보였다
맨하탄 32번가 코리아타운을 찻아가기 위해 어두운 맨하탄 거리를 향해 무작정 질주 하였다
뉴욕거리는 LA하고는 분위기가 전혀 틀렸다 그래도 분위기상 LA보다는 뉴욕이 일자리 구하기에 더나은 것 같아 뉴욕으로 잘왔다고 생각했다 얼마를 그렇게 헤메었나 덩치큰 흑인들이 여럿이 보이며 마치 맨하탄 뒷골목과 밤거리를 장악한 냥 기괴한 행동을 보이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뉴욕 뒷골목이 위험하다는 것을 영화나 누군가 에게 들은 기억이 있어서 어느정도 경계를 하고 그리고 버스 정류장 에서 사람들이 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기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물론그중에 버스를 기다리거나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실제로 본 많은 사람중에 버스에서 내려서 밖으려 나가 려다 날이 밝기까지 정류소에서 대기하는사람들도 꿰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정류장 으로 다시 돌아가 날이 밝으면 32번가를 찻기로 결심하고 정류소로
되돌아 가고 있는데 갑자기 흑인 한명이 내쪽으로 빨리 다가 오는게 아닌가.
나는 .한국에서 처음올때 입고온 검은 양복과 007가방은 거추장 스러워 이미 버린지 오래됐고
라스베이가스의 사우나 기후에 타서 그런지 얼굴은 더욱더 시커매 졌고 수염이 덥수룩 하고 라스베이가스.에서 산 베낭가방을 메고
리바이스 .청바지에 검은티. 그리고 뉴욕 양키스 야구모자를 쓰고있었다 오랜 여행으로 거지 꼴이 다 되었다 나는순간 위기감을 느끼며 상대방도 흉기가 있을것을 예상해
쓰레기통의 병을 주어들고 벽에 부딧쳐 깨서 흑인이 먼저 공격하면 바로 쑤실 생각이 었다
그 흑인놈은 나의 살기넘친 모습을 보고 그놈이 더 기겁하고
황급히 되돌아 갔다 정류장으로 돌아온 나는 날이 밝기를 기다 렸다가 날이 밝자
물어물어 32번가를 찻아가서 한국신문을 사서 일단 묵을 방을 찻았어 전화를하자 당시 지하철 7번 전철역 종점이 플러싱인데
그곳에서 도착하여 다시 전화 하라고 했다
짧은 영어로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7번 종점 플러싱 에서 내려 전화를 하자
민박집 주인이 나와서 한달을 묵을 방을 찻게 돼었는데 방값이 LA 보다는 배이상 비쌋다
그렇게 나의 뉴욕 생활이 시작됐다 1999년 6월에 미국.서부에 도착해서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그해 9월이 채 되기전에 동부 뉴욕으로 온 것 같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미국에온 나였지만
나는 이미 서부에서 실패하고 도망치듯 동부로온 것이다

플러싱은 전세계 모든나라 사람들이 이민와 사는 지역으로 그중 에서도 특히 미국 동부 쪽에서 한국인이 비교적 많이 모여 사는
곳이였다 그러나 중국인 보다는 적어 보였다 플러싱에서 한국인들이 주로 많이 모여 상가를 이루던 노던블로바드st 인걸로 기억나는것 같다
맨하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32번가 한아름마켓과 식당인 강서회관등 한국 식품점과 식당등이 즐비한 코리아타운 이라고 하나 그곳은 주로 식당과 여러가지 가계등 상점이 많았고
한국인 상점과 주택가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실질적인 코리아 타운은 퀸즈의 7번 전철 종점역 플러싱 이었다
뉴저지에 일명 펠팍 (맨해튼이 코 앞인 뉴저지의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 )이라는 곳도 한인상점과 거주지가 비교적 많다고 하는데
그곳은 차가 있어야 가기에 미국에서 한국인 서민들이 주로 모여 있는곳은 퀸즈 플러싱 이라고 보면 된다
플러싱이 7번 전철 종점역이고 플러싱 가기 한 정거장 바로전이 유명한 뉴욕메츠 전용 야구장이 있다
어떨때는 플러싱 에서도 메츠구장 에서 관중들의 함성이 들리기도 했는데
나는 플러싱 루즈벨트 st 거리 부근인 것 같은데 신문광고를 보고 전화하여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한달 묵을 방을 얻어놓고 그 다음날 부터
한국 신문등 모든 정보지를 보며 일자리를 구하려 노력 하였다
LA 코리아타운 보다는 뉴욕 플러싱이 훨씬 생활 하기도 편했고 교통편도 서울처럼 전철노선이 발달하여
LA 보다는 차가 없이도 찾아 다니는게 상대적으로 편했던 것 같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직업소개소도 플러싱에 마침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월드 에이젠시 라고 상호를 걸은 직업 소개소에 찻아가니 자신의 말로 당시 나이 50 이라는 서울 말씨를 쓰는 미스터 김 이라고 히스패닉들이 부르는 한국인 남자가 주로 히스패닉계 들에게
히스패닉어로 열심히 일자리를 구해주고 있었다
잠시후 나를보고 한국인 이냐며 물어보자 그렇다고 하니까 무슨일로 왔냐며 묻자
나는 일자리를 구하는데 일할 만한 자리가 있냐고 문의 하니까 마침 일할 자리가 몇 군데 있다고 얘기했다
하나는 보스톤 에서 숙식제공 하며 일하는 식당이고 또 하나는 뉴져지 마운틴 라우렐
이라는곳. 식당이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멀리 테네시 네쉬빌 이라는곳에서 사이딩 건축일 이라고 했다
나는 일본에서 건축일을 하며 돈을 짭짤하게
번 기억이 있어서 또 좀더 멀리가고 싶어서 이름도 왠지 가보고 싶은 테네시 네쉬빌로 가겠다고 하며 소개비로 100불을 내주고 민박집에 가서 짐을싸서 맨하탄 42번가 그레이하운드 터미널로 향하기위해 플러싱에 있는 7번 전철에 몸을 실었다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에 가서 테네시 네쉬빌행 티켓을 달라고 하자
흑인 여성인 매표원이 원웨이 투웨이 어느쪽을 원하냐며 되물어 오자
나는 원웨이를 달라고 하며 케이트는 어디냐고 물어보자 티켓에 적혀 있다며
원웨이 티켓을 끊어주며 버스를 타는 케이트 넘버가 있는 방향을 가르켜 준것 같은데
그곳을 나와 또다른 사람에게 물어
나는 케이트 넘버에가서 줄을서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후 버스가 오자 또 다시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세계 최대도시
뉴욕 맨하탄을 빠져나와 뉴져지로 들어섰다
그렇게 약 1시간반 가량을 뉴저지를 달리자
마운틴라우렐 이라는 아담한 미국의 시골 정류장에 정차 하였다
다시. 플러싱에 있던 월드에이젠시 소개소 에서 이곳 에서도 일할 식당 핼퍼 자리가 있다고 했지 속으로 생각하고 잠시. 내려 담배를 피우고 간단히 요기할 거를 사서 버스에 올라가서 먹고 기다리자
버스는 잠시후 다음 목적지인 필라델피아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마운틴 라울렐 에서 한시간도 채 못가서 대락약 30여분 정도 걸린것같은데. 필라델피아에. 도착해서
한참을 게이트 에서 줄을 서며 대기하여 다음 목적지를 향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뉴욕에서 고속버스로 약 2시간여 걸리는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레이하운드에 몸을 실자 볼티모어를 지나 버지니아주를 넘어 고속버스는 달리며 또.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를 필라델피아 정거장에서 처럼거쳐 여러번 중간에 정차하고 대기하고또.가고
줄을 서고 또 타고 하는식 으로 1박2일 을
그런식으로 버스를 타고 달린것같다 드디어 목적지 테네시 네쉬빌에 도착 하였다.
나는 바로 터미널에 있는 공중전화에 25센트코인 2개를 연속으로 넣고 월드소개소 에서 적어준 번호로 전화를 하자 한국남자가 전화를 받고 터미널에서 잠시 기다리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70p-한 3-40분기다리니 30대후반 으로 보이는 한국남자가 나타나자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차에 동숭하여 갔다 도착한 미국의 전형적인 단독 주택가로 잘 정돈된 곳이 었다
그리고 주택안으로 들어가니 비교적 큰방 3개가 있었고 상당히 넓은 응접실과 식당 샤워실과 화장실이 2개가
있었고 주택안 에는 뜻밖에도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약7-8명정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공간이 큰 응접실에서 커다란 TV를 일부는 응접실에 누워서 보기도하고 일부는 앉아서 각자 편안자세로 보다가 내가 들어가자 일어나 인사를 나눈것같다
한국식품점등 에서 빌려다 보는 한국 영화 드라마 쇼 뉴스 등이 담긴 비디오 였다
그 다음날 부터 일을 시작 했는데 미국의 단독 주택가 에서 주로 주택 외각에 사이딩 이라는 것을 크기와 규격에 맞게 정확히 재단 하여 손이 안 닿는 높은 데는 사다리를 타고 보기좋게 부치는 것이 었다
미국 주택가에 사이딩이 유행인 것은 과거 미국 어느도시 주택가 에서 큰 우박이 심하게 떨어 졌는데 일반 주택은 훼손 됐는데 주택 외각에 사이딩을 부친 주택은 멀정해서 그후로 너도나도 주택 외벽에 사이딩을 부치는게 유행이
됐다고 확인되지 않은 말을 누군가 하는걸 들은적이 있다
근데 공사 현장이 거이 끝나가는 마무리 단계라고 한다 이게 끝나면 멀리 LA쪽에 공사를 새로 맡아서 이 인원 전부가 그쪽으로 이동 한다고 하는 뜯밖의 소식을 접하게 대자
나는 많은 갈등을 겪얶다 그렇게 멀리 다시 LA 방향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몇칠 그곳에서 일을 하며 나의 생각을 사장에게 말하자 사장은 나보고 그냥 가라고 지랄하네
내가 그소리를 듣고 성질을 내며 난동을 부리자 일한것을 계산해 주고 터미널 까지는 숙소에서 사장을 제외하고 유일한 한국인 아니 미국시민권을 가진 50대 양반이
자신의 차로 대려다 주겠다고 하며 버스 터미널로 대려다 주었다 나는 다시 뉴욕을 향해 그레이하운드에 올라
뉴욕에 도착해서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소개소에 찻아가서 전후 사정을 얘기 하자
그러면 다른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해서
다시 간곳이 뉴저지 마운틴 라루렐 근처의 한국식당 이었다. 식당은 규모가 비교적 큰 식당 이었다
종업원 수도 상당수 있던걸로 기억한다 그 식당에 처음 들어갈때 20대 초반인가 아니면 10대 후반인가
웨이츄레스 아가씨가 반갑게 맏이 하던데 정확한건 모르지만 식당주인 딸이나 진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방장은 서울 말씨를 쓰는 30대 후반이나 40대초반 으로 보이는 키가작은 점잔한 분이 었지
첫날은 일하는걸 구경만 했어 식당은 장사가 잘되는 편이 었어 바쁠때는 1999년 당시 만불이상 매상을 올린다고 했어 장사가 끝나갈 무렵 바쁘지 않을때
주방장이 내게 다가 오더니 내가 여기서 일하면 자신이 알고있는 주방기술 전부를 가르쳐 주겠데 일이 끝나고 숙소에 머무를 직원은 차에나눠 타고
숙소로 갔다 나는 첫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사복을 입은 채로 일하는걸 구경만 했어
숙소에 돌아와서 잠을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숙소에 있는사람들 에게 그냥가야 겠다고 하며 그곳을 조용히 나왔다 지금 같으면 그곳의 당시 조건에 감지덕지 하다고 일할 판인데 당시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당시만해도 젊고 그래서 갈곳도 많고 그래서 한식당 주방의 조건보다 좀더 좋은곳에서 경험을 겪고 십어 떠난것 같다
그리곤 다시 뉴욕으로 왔어 염치가 없어서 소개소 에는 가지 않았다
그리곤 민박집 에서 세월만 죽이고 있었어 그렇게 일자리를 구하다가 신문에난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지 보스톤 에서 숙식제공 하고 일할 일식 주방핼퍼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틀 있다가 다시 전화 하라고 그러 더라고 이틀을 기다렸 다가 다시 전화하자 보스톤으로 오래 그래서 보스톤 근교에 있는 식당 주인이 가르쳐준 주소대로 찻아가 보니
식당은 미국 주택가 모양에 식당입구 간판에는 쇼건 재팬니스 스시 스테이크 레스토랑 이라고 네온사인 간판이 보였어 그 일식집은 그렇게 큰편은 아니 었떤것 같은데 건물은 3층 목조 건물인데 상당히 오래된것 같았어 1층이 쇼건 알본식당을 사장이 운영하고 아마 3층에 직원들 기숙사가 있고
특히 보스톤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많았다고 들었다 지금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사장 내외집은 다른곳에 있었던것 같아 영국 청교도인 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최초로 미국이민 역사가 시작된게 보스톤 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일식집에서 일을하게 됐는데 그 일식집 에서 나는 주방핼퍼를 담당했어 사장이 직접 스시를 하고 대판야끼 쿡이 두명있고 주방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그양반은 자신이 박정희 시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청와대 에서 요리사로 근무 했다고 나한테 얘기 하면서 차지철이 하고도

많은 대화를 나눴 다고 하는 말을 했어 물론 일식 전문가는 아니었어 일식당 경험은 여기서 처음 배운거래 이사람이 일식보조를 그만두고 내가 이사람 일을 이어받아 일하게 되는거 였다
주로 주방보조에 다가 대판야기쿡 보조 인데 그들이 요리할 재료를 만들고 준비하는 거였지
웨이츄레스 여자 하나는 나이는 30중반 이상으로
보이는데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있고 한국에서 유학온 남학생이 저녁마다 웨이터로 나왔다
건물 전체가 아마 주인 소유라는 말을 사장이 아닌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사장 내외는 표준어를 구사한걸로 기억이 난다 내가 가본 미국의 기숙사는 전부 독방이었다 한방에 둘이상 집어넣는 경우는 거이 없었다 그리고 다 침대방이었고 기숙사 에는 모두 4명이 각자 침대가 딸린 독방을 쓰고 있었지 대판야끼쿡 두명 주방에서 일하는사람둘 그릇닦는 히스패닉 하나 있었는데 출퇴근 했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면서 원래 버스보이 라는게 있어서그릇만 전문으로 치워주는게 있는대 식당이 작다보니 그런지 주방핼퍼로 일하다가도
주인이 나와서 그릇좀 치워 달라고하면 얼른 홀안으로 들어가서 그릇을 쟁판에 들고 나왔는데 근대 저녁에 일끝나고 숙소에 올라오니 30중반의 웨이츄레스가
기숙사에 놀러와서 이얘기 저얘기 하며 놀다 가기도 했는데 대판야끼 쿡 중에
20대 후반애가 하나 있는대 둘이 어디론가 돌아 다니것 같았어
대판야끼쿡 중에 그당시 키가아주 작은 친구가 있었는데 통성명 하다보니 나이가 나하고 같았지 나이가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가 되어
같이 미국 술집에 가서 버드와이저 병하나 들고 맥주를 마시던 기억이 나네 그 친구는 뉴저지에 일가족이 살고 부인도 있다고 그러더라고
돈을 벌기위해서
보스톤에 혼자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릴때 서울에서 이민 왔는대 집을 팔고 이민을 오고난후 지금은 서울집 값이 많이 올랐다며 차라리 집을 팔지 않고 서울에그냥 살았으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라며
아쉬움을 토로 하기도 했어 얼마후 일식집을 그만 두고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일식집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사실 그 식당에서 일하면서 근처에 있던 신문에 난광고를 우연히보고 전화하여 오라 그래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피츠버그 터미널에 도착하자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픽업 나왔는데 늣은 시간인데도 삭당에 데려가 문을열고 식당안을 구경시켜 주는데
식당은 이미 저녁장사를 마치고 종업원들은 전부 퇴근한 상태에서 둘러본 식당은 영화나 그림같은 데서 보는 초원의 집처럼 넓은 공간에 지어진 초대형 일식집 이었다 일식당 안에는 진짜 커다란 물래방아도 돌아가고 있었다
식당을 구경 시켜 주고 나를 미국 모텔로 데려 갔는데
이유는 일식집에 종업원들이 전부 자가로 출퇴근하여 아직 기숙사가 없대
그래서 나를 모텔에 임시로 대려 가더니 일단 여기서 당분간 지내래 돈은 걱정하지 말라며 그러나 모텔돈이 만만치 않을 텐대
언제까지 이렇게 나에게 투자할수 있을까 투자할 가치가 있어야 투자하는것은 기본상식 이사람도 딜레마에 빠진게 분명해 날 몇칠 가르쳐 보고 결정 하겠지
나는 좀 께름직 했는데 물론 모텔비는 내가 안 냈지만 그 사람은 사장이 아니고 메니저 였어 그 건물주인은
일본 사람 이라고 그러는 것 같았어 투자할 가치가 없으면 언제 어느때 해고 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일본인 건물 주인이 그 메니저 에게 사람 채용 하는거 부터 식당 경영까지 모두 마낀것 같았다 식당 메니저가 모텔을 잡아 주며 아침에 대리러 오겠다 그랬지
먹을거는 근처 햄버거 가게 에서 고맙게도 사다 주대 그 다음날 나를 대리러 온 매니저는 근처 대형 마켓에 나를 대려 가더니 식당 직원들 유니폼을
사야 한다며 상의는 하얀 옷 하의는 까만 바지를 사서 입으라고 주네 나는 그 옷을 입고 또 일할 까만 구두도 나에게 사주 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게 다 투자 하는 거래
같은 한국 사람이니까 도와주는 건 아닌가 은근히 생각도 들었지만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건 아닌것 같에 이 사람이 내가 기술을 배워 식당에 도움이 될때까지 투자 하는 거였지
내가 투자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 해고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부담도 됐어 투자에 비해서 그이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식당에 들어가서 일을 했는데 어제 저녁에 잠깐 식당에 들어가 봤지만 들어가서 자세히 살피니
식당안은 마치 한국의 큰 술집 같이 어두 컴컴한 조명에 상상외로 컷어 대판야끼 테이불이 20개가 설치되어 있고
스시바 도 있었어

그리고 위스키 삿포르 기린등 과거 일본에 있을때 사먹던 일본맥주 그리고 미국맥주 버드와이저 등과 사케등 술72p-을파는 술바도 있었던것 같은데
나는 거기서 처음에 대판야끼쿡 을 보조 하면서 그 일을 배우는거 였어 물론 보스톤 일식 집도 대판 야끼 쿡을 하는 집이 었지만 그 식당에
짧게 있었고 나는 주방 헬퍼를 해서 대판야끼 쿡을 요리하는걸 홀에서 직접 보질 못했다
주방안 에서 디시워셔 는 현지 흑인들 두어명 이 있었고 파트타임 웨츄레스가 많았는데 다국적 이었지 일본인 한국인 유럽인 미국인
한국에서 유학온 여학생도 있었지 메니저도 한국에서 처음 미국올때 유학생 으로 왔다고 하는데 매니저도 직접 대판야끼 쿡 을 나갔는데
그리고 매니저 친형인지 사춘형 인지 안경을 낀 4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와 또다른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한국인 남자 둘이 있었어
그 사람들도 대판야끼쿡 을 나갔지 근데 그 사람들은 뉴저지 에 살다 왔으며 자식들은 그쪽 에서 학교 다니고 그쪽에 친척이 많다고 하데 나는 속으로 뉴저지 에는 이복 누나가 살며
이복 누나의 시댁 식구가 그쪽에 많이산다고 들었는데 미국땅이 넓다곤 하지만
한인 사회는 좁은대 연결 연결 하면 혹시 내 정체가 들어나는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며
뉴저지에 이복누나가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어
식당안 에는 주로 대판야끼 테이불이 많은 대판야끼 전문집 같았는데 대판야끼 데이불이 20개 이상 있는데 한 테이불에 ㄷ자 모양으로 최대 7-8명의 손님이 앉을수 있는 곳인데

ㄷ자 가운데에 철판이 설치되어 있고 요리 하면서 나오는 연기를 환풍시킬 일종의 환풍기 역할을하는 닥트가 그 위에 설치되어 있고
조명은 일반적으로 손님이 앉아 있는곳은 설치되어 있지않아 술집처럼 약간 어두컴컴 하고
요리사가 요리하는 철판 쪽으로만 조명이 너무 밝지도 않게 비추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후라이 라이스 (일명 볶은밥을) 뜨거운 철판에 요리해서 주는데 마가린을 싫어하는사람에게는 넣지않고 계란과 더불어 볶은밥을 해서 접시에 담아주고
그곳에서 요리사가 요리를 하며 여러가지 재주와 쇼를 보여주며 랍스터 스테이크 쉬림
치킨 등 손님이 원하는 주문대로 철판에 구워 접시에 담아 주었지
예를 들어 스테이크를 구어줄때 우드 라이크 스테이크 라고 물으면 손님의 기호에 따라 레워. 미듬레워 미듬. 웰던으로
각자 주문하면 그대로 구워주면 되지
일본말로 대판야끼 요리사는 요리할 재료들을 실코.다니는 구르마를 끌고 나오는데 그곳에 독한 보드카를 항상 휴대하고 나와 요리 하는데
어니언(양파)를 벗겨 건물처럼 층층히 쌀아올려 철판에 올려 그속에 보드카를 붓고
손님들이 약간 방심하고 있는사이 요리사 마다 각자 특색있게 손님을 놀라게 괴성을 지르며 갑자기 라이타로 불을켜면
보드카에 불이붙어 양파와같이 갑자기 폭발하는 불쇼를 하면 손님들은 깜짝 놀라며 재미있어 하며 떠들곤 했다
마지막으로 how is everthing 그러며 손님에게 인사하며 땡큐 그러며 나왔다
대판야끼쿡은 테리야끼소스 진저소스를 항상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 준비하여 손님들 에게 요리하여 주었다
일이 끝나면 매니저는 나를 다시 모텔에다 대려다 줬다 식사는 다 일식집 에서 먹었는데
메니저가 모텔에다 데려다 주려 나를 승용차에 태우고 가며 말하는데
신문에 구인광고를 냈는대 시카코 에서 전화가 많이 왔는대 한국에서 연대를 나온 사람도 전화 한적도 있는데 학벌이 너무 좋아서 그런 사람들이 이런곳에 오래 있지 않을거 같아서 나를 오라 그랬다고
그런말을 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식당은 초원위의 집처럼 지어진 당시 까지 보지못한 초대형 일식집 이었다
보스톤의 썩은 일식당은 비교조차 되지않을 정도로 크고 종업원도 많고 시설도 좋았는데
주변 주차장도 크고 식당밖 주변에 다른 건물은 안보이고 초원위의 그립같은 집처럼 넓은 잔디밭 같은걸 본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가끔 나는 그 주변을 돌며 청소를 했는데
잔디밭에 있는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근대 한편으론 메니저 가 계속 돈을 주며 모텔 에서 계속 출퇴근 시킬려나 그런 불안한 의문도 들었어
대판야끼 쿡 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까 광고를 내서 가르쳐서 대판야끼쿡 을 만들어 쓸려고 했던거 같은데 그래서 주택가에 방을 얻어서 기숙사를 만들려고 했던거 같은데 내가 계속 있었으면 그렇게 할려고 했던게 아닌가


73p-생각도 들기도 했지 근대 내가 일 끝나고 모텔에 와서 우연히 한국일보 신문에 난 광고를 봤는데 플로리다 포트마이어 리큐어 라는 곳에서
숙식 제공 하고 주 400불을 주겠데 여기는 주300불 나는그때 리큐어가 뭔지도 몰랐어 뭔가 새롭고 더 좋은것 인줄 알았어 더군다나
말로만 듣고 한번도 가보지 않던 플로리다라 한번 가보고 십은 강렬한 호기심이 생기더군
무엇보다 대판야끼 쿡을 빨리배워 잘할 자신이 없었다
피츠버그 에서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 까지는 약 1박2일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엄청 먼거리 였다
나는 식당 매니저 에게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갔다
솔직히 말할 염치가 없었어 물론 약 3일 정도 일한 돈도 받지 않았다 물론 피츠버그 쇼건 일식집도 나쁘진 않아서 있을까 갈까 딜레마가 심했어
그러나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쇼건 일식집은 기숙사가 없어 모텔 경비가 너무많이 들어 투자 가치가 없으면 언제 해고 당할지 모르는 신세 였다
그러니 지금 가지 않으면 포트마이어 리큐어 라는 곳을 영원히
못갈 것 같았어 그곳이 만약 천국 이라면 나는 천국을 놓친다고
생각 하니 갈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아침일찍 그레이하운드 터미널로 가서 플로리다 포드마이어행 버스를 탔지 매니저 에게 간다고 전화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용기 조차 없었어 그런데 여러 정거장을 거쳐 고생끝에 포트마이어 라는 곳에 도착하고 보니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완전히 허름한 시골 버스 정류장 인데다 가 거기는 흑인 거주 지역 이었다 피츠버그 고급 일식집
손님은 백인이 대분분인 것 같은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도 각국 에서 유학온 여자 대학생도 있는 것 같았고 아르바이트 하고 한국 에서 유학온 파타임 웨이츄레스 이쁜 여학생들도 있어서
눈요기도 되며 재미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일식집은 내가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생계 수단인 일식 기술과 영어를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 였는데 나는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생각하니 후회가 되더라고
플로리다 포트마이어 라는곳은 피츠버그 일식당 과는 극과극 이었다 마치 천국에서
지옥 으로 떨어진 느낌이 었지 그렇다고 염치없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내가 선택한것은 내가 책임져야 하기에
마지못해 허름한 시골 터미널에 내려서 사장 에게 주변의 공중전화로 전화하니 거기서 기다리면
조금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하내 나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닌 마음으로 데리러 올때 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한참후 다 찌그러진 똥차를 타고
두 남자가 승용차에 타고 있는데 승용차가 도착 하더니 내쪽으로 다가오며 서울 말씨를 쓰는 사람이 아는척을 하내 나도 금방 알아보고 서로 반갑게 통 성명을 하고 악수를 했다
한사람은 30대 중 후반 으로 보였고 운전을 하는사장 이라는사람은
아무리 점게 봐도 40대초 중반으로 보였는대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의외로 나이에 비해서 젋어 보이는사람들이 많았지 30대 후반으로 봤는대 실제 나이는 50이 넘은 사람도 많았어
아무튼 내 경우는 한국에 있는사람 보다는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은 나이를 너무 의식 하는사회고 미국은 60-70 이 넘어도
웨이터 하는 사람도 많고 그리고 젊은 사람하고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젊게사는 문화 라서 그런지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는사람보다 보편적으로 더 젊게 살고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내가본 경우에 많았지
한국은 나이를 40만 넘어도 아니 30대 중반만 대도 나이를 의식하게 되지 그리고 어디가서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 그래서 나이 40전에 모든걸 구비를 해야
사회에서 행세 하며 살수 있어 그거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겠지만 내가 돌아 다닌 나라 중에서 특히 한국 에서 그런걸 많이 따지지 특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어릴적 부터 목숨을건 치열한 경쟁을 한다 그래서 성적이 안좋거나 대학에 떨어져도 자살하는 어린 청소년이 많다


?

전세계 유래를 찻기 힘든 우후 죽순 처럼 들어선 학원들 비싼 학원비를 받으며 더많은 학원생을 유치하기 위해 쪽집게 학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시험 문제를 유출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무조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서 성공 하라고 어릴적 부터 세뇌 되어 자란 애들 그리고 돈으로 쪽집게
과외 교사 문제 유출덕 이던 백덕 이던 좋은 대학 나와서 공정한 경쟁없이 승리해서 한국사회 지도층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삶은 한국 사회에서 살기 참 편하다 돈으로 간판 따서
명문대 간판만 보고 실력도 없는데 어딜가도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처럼 대접받고 굽신 굽신 하니 사회 실정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지도자로
정치하니 서민들이 엄청 고생이야
비겁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자 만이 대접받고 살아가는게 자연의 순리인양 다들 그렇게 살아 가는데 미국 독일 유럽 등은 왜 한국처럼 학원이 많지 않을까
한국보다 서민들이 훨씬 편하게 일 하며 인간대접 받는것 같은데 내가 미국가서 놀란게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는대 무지하게 느리대 성질이 급한나는
짜증이나 미치겠대 저렇게 해서 밥벌어 먹고 살겠나 싶었지 느려도 너무 느려 사람들은 햄버거를 살려고 줄을 섰는대 아무도 불평을 안하는 모습이 더욱 이상했지 지금 젊은 애들은 좀 들 하겠지만 특히 과거 한국 같으면 여기저기서 빨리빨리 안준다고 욕설이 튀어나오고 아무것도 아닌일로 서로 시비가 나고 난리가 났을 텐데
한국 같으면 사장이 한개의 햄버거 라도 더 팔려고 무지하게 종업원을 다그쳤을 건데
눈치 것 빨리 하라고 다그칠게 뻔해 그것에 불평하면 바로 짤리 겠지 그래서 해고 안당할려고
주인이 시키는데로 눈치것 일하겠지
세상은 눈치것 살아선 안되 자기 소신것 살아야지 눈치 바서 살으란 얘기는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얘기지
그것은 다시 말하면 불의를 봐도 눈치것 알아서 적당히 덥으란 얘기 이기도 해
이런 양아치 철학이 한국 사회에 진리처럼 길들여져 있다 눈치 것 산놈들이 고위 공직자 나 국회의원
각 지방 단체장 이나
각 기업의 수장으로 승진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사회의 양심은 돈과 권력의 의지대로 아바타 처럼 마음대로 조종하며 움직 인다는건 물을 보듯 뻔한 것 소신 것 산 사람들이 모함과 누명을 뒤집어 쓰고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 사회구조 속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눈치것 살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박정희 처럼 교사라는 좋은 직업을 갇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욕에 눈멀어 민족을 배반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위해 천황에게 충성맹세 혈서를 쓰듯이 쓸 사람들이 다수라고 봐야지

한국은 어릴적부터 그런 인간 만드는 교육을 부모나 학교 학원 등 에서 계획적으로 시키니
그런 인간들이 갑이 되어 을인 종업원 이나 부하 직원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마치 점령군이 포로 다루듯 막 대하며 일을시켜 미국 햄버거 가계에서 3명이 놀면서 할일을
혼자 시켜 여가 시간을 줄길 시간도 안주며 부려 먹으면서
자신보다 강한 사람 에겐 무조건 눈치것 살게 길 들이는 것이다
아무튼 햄버거 가계는 다그치는 사람도 없고 종업원들은 지들끼리 할 일 다하고 하면서 세월아 내월아

그렇게 일하는 것 같았다
난 미국의 햄버거 가계가 거기만 그런줄 알았어 나는 알래스카 하와이만 빼고 미국 전국 곳곳을 거이
돌아 다니면서 LA 이나 뉴욕등 일부 대도시 제3세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가계 일부 몇몇을 빼곤 예전 부터 살던 미국들은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한국에서도
밑바닥 인생을 많이 경험 했다 물론 한국에서 환경 좋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 하곤 사실 대기업 공장 같은 대라도 무일푼 떠돌이가
입사 하긴엔 경쟁률이 심하고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고 한다 특히 나같은 떠돌이는 거이 아무 잘못도 없는 대도 서류 심사에서 아예 제외 되었다 서류심사에서 운좋게 합격 한다고 해도 여러가지 가정환경과 배경이 안좋으면
누락 이야 미국 이라는 나라도 다 좋은것은 결코 아니야
미국 전역을 돌아 다니면서 미국도 문제가 많은 사회라는걸 느꼈어
이 세상에 문제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 정도의 차이겠지 그러나 중요한것은 문제점이 드러나도 감추려고 하는것과 문제점을 고쳐 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범죄도 계획적인 범죄와 우발적인 실수가 엄청난 차이가 나듯 여러가지 사고와 문제점들이 언제 어느곳에서 터질지 모르고
사고와 문제가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에 일어난 사고나 문제를 거짓말로 감추려한다면 그것은 계회적인 것이고
고쳐 나가려는 의지가 보인다면 우발적인 실수인 것이라고 추리할수도 있다

물론 세상에 거짓말을 전혀 안하고 사는사람은 거이 없을 정도로 선의의 거짓말도 있긴 있다
미국에는 중국에서 살다온 조선족들이 생각 외로 많았다 그리고 한족 중에도 조선족 학교를 나왔다 던가 한국말을 하는 한족들이 많아

근대 그런 애들이 한국 식당이나 한국인들이 운영 하는 곳에서 일하길 선호하는걸 본적도 있다
보편적으로 당시 화교들이 운영하는 노동 현장이나 식당은 일하는시간도 길고 환경도 더럽고 돈도 적고
아무튼 모든 조건이 너무 열악 하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길 더 선호 하는 미국에 사는 조선족을 본적도 있다 쓰면뱃고 달면 삼키는 실용주의 만 강조하는 악덕 기업주 처럼
인권비를 착취한다 던가 하는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을 바라는 그런 양심없는 경쟁심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어느나라 사회도 장기적으로 볼때 도움이 안되는 결국 공중분해 시키는 단초를 제공 할수도 있다는 증거를 우리는 과거 동서고금의 역사나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
수없이 경험 하면서도
당장의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의 쾌락과 금전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교육도 마찬가지 미국 독일 유럽등 한국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를
보더라도 진짜 경쟁은 아직덜 성숙한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시절에는 시키지 않아 초등학교 부터 고등 학교 까지 아직 덜 성숙한 청소년 에게는 창의력과
사회 공동체 로서 손잡고 사랑하며 협력하며 살아가야할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진짜 경쟁은 대학때 시키는걸로 알고있어
실제로 미국 고등학교때 까지는 우등생으로 잘나가던 한국계 학생들 중에 미국 명문대에 입학해서
중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누락대는 비율이 많다고 하내 미국명문대는 입학은 비교적 쉬워도 실력이 없으면 졸업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들 나라의 교육 정책과 같이 사회 제도도 힘없는 여성이나 어린이의 안전보장과 그리고 사회취약 계층들이 숨통을 틀수있게 사회복지
시설이 잘 돌아가게 감시하고 정부에서 인권비 착취등을 엄하게 다스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여러가지 안전망 조치를 확실히 만들어야 또 그런 제도들이 잘 작동되는지 암행 감찰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국민들이 특히 서민들이 정부와 공무원을 신용하는 나라가 희망과 미래가 있는 나라이다
대신에 진짜 하이 클라스들 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경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운이 좋아 태어날때 부터 좋은 환경에서 모든 혜택을 받은 사람과 또는 경쟁에서 이긴 엘리트들 에겐 스파르타 식으로 강력히 경쟁을 유도 해야 하며
경쟁에서 떨어져 비교적 여유가 없는 힘없는 국민들 에게는 따듯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열어줘서 언젠든지 다시 일어설수 있도록 해야한다
대학졸업도 이와 마찬 가지로 졸업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 졸업하게 엄격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엘리트를 육성할수 있지
지금은 자격없는 대학들이 너무많다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 더라도 혼자서는 안된다는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배반 한다면 그런 능력자 쓸바엔
지나가는 똥개를 쓰는게 백번 날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배반하는 능력자 한 사람으로 나라가 망하는 경우를 우리는 보아왔다
당나라에 빌붙어 한민족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당나라에 팔아넘겨 멸망시킨 김춘추가

그랬고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등 수많은 친일파가 그랬고

배의 수명이 25년 이던 규제를 풀어 30년으로 늘려
결국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일본에서 20년이 지난 세월호를 구입하여 무리하게 게조하여 편법으로 운영하다 침몰시켜 단원고 학생등 300여명이 수장되는
비보를 전해들은 경우를 보더라도 능력보다는 올바른 마음상태가 얼마나 중요한가 증명하는 사례 들인것이다

서로 믿음이가고 신뢰할수 있는 사회라야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눈치 안보고 표현할수 있는 편하고 자유롭운 사회나 국가라야

진정한 애국심이 생겨 모든 분야 에서 같이 보조를 마쳐주고 불평불만을 최대한 줄이고 각분야 에서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스스로들 노력 할 것이다

그렇게 사회구성원 모두 자연스럽게 노력하며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때에 목숨을 걸고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니

오래 가는 사회나 국가가 될것이다 예를 들어

펠레나 마라도나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출신이 아니고 중국 축구선수 였다면 월드컵에서 우승 한번 못하고 쓸쓸히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브라질 이나 아르헨티나의 뛰어난 다른 선수들이 있었기에 빛을 보며 월드컵에 우승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OECD 회원국중 자살률 1위 한국인 하루자살률 40명 교통사고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언제쯤 벗을런지
이게다 어릴때 너무심한 경쟁 교육에 의해 한국이 그만큼 살기 힘든 나라며 인성이 말살되어 벌어진 일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다
물론 한국이 그동안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 전쟁을 겪어 엄청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앞으로 점점 좋아질 꺼라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고 술을 너무많이 먹어서 제정신이 아니어서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과 같다
그런 변명이 결코 정당화 될수는 없다
이런저런 쓸대없는 넋두리 같은 생각을 하는 중에도 똥차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장은 40대 중반 일수도 있었고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사람은 40대 초중반 일수도 있었어
아무튼 나보다 나이가 많은것 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몆살 인지는 내가 그곳을 그만두고 나올때까지 물어보지 않았고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다
똥차를 타고 가다가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따라오네 나는 이게 왠 경우인가 싶어서 놀래서
긴장 하는대 당시 나는 아직 불법체류자는 아니었다 비자가 아직 6개월을 경과하지 않아 살아 있었다 그래서 혹시 이 사람들이 무슨 범죄를 저질 렀나 의문이 들었다 경찰이 차를 가장 자리에 세우라고
해놓고 똥차 옆으로 다가 오는게 아닌가 나는 뒷좌석에 앉자 있는대 사장 하고 미국 경찰 하고 뭐라고 영어로 말하더니 더니 운전면허증인가 뭔가를 서로 주고 받은것 같은데

그것이 뭔지는 당시 물어보지 않아 나는 모른다 일이 해결이 됐는지 똥차는 출발했어
좀 과속을 했나봐 피츠버그 일식집 에서 마중나와서 탄차는 깨끗했는데 이런 똥차를 타고 그 악명 높은 흑인 밀짚 지역으로 내발로 스스로 찻아 가다니
누구를 원망하리 내 스스로 선택한 건데 알았으면 안왔을 텐데 몰랐으니까 온거야 알아야 면서기도 한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아무리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 할아비대를 나와도
직접가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수가 없는게 세상의 불변의 법칙 남에말은 하도 거짓말도 많고 부모님이라도 판단을 잘못하고 해준 말이라서 참고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 부모님 말은 남과 달리 신빙성이 있는 말도 있다
그래서 세상 경험이 부족한 어린 학생 일수록 부모님에 의지하고 남에 말에 귀 기울 이고 의심을 할줄 모른다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학생들이 선원들이 선내방송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실에 조용히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무조건 믿고 배가 기울어 침몰하는 순간을 알고도
곧 어른들이나 해경이 와서 구조 해줄껄 믿고 떠들고 장난만 치다가 300 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무참히 수장되는 비보를 그것도 국민들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2014년 4월16일 벌어졌다
당시 세월호 선원들의 행동은 너무도 의문이 가는 행동들이 많았다
승객들을 탈출 시킬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갑판위에 집합시켜야 하는건 당연한데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실 안에서 조용히 대기 하라는건
말도 안되는 지시였다 유사시 선실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구명조끼는 행동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된다

구명조끼가 유일하게 필요한건 승객이 배가 침몰하여 배를 탈출하여 바다에 뛰어들면 가라앉지 않게 하고 바닷물에 체온을 상대적으로 적게 뺏기게 하는 효과가 유일하다
그래서 선실안에서는 구명조끼가 엄청난 방해 요인일 뿐이다
경험이 많은 사기를 당해본 사람 같으면 배가 기울어 바다속에 침몰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배를 탈출하라는 안내 방송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고 배를 탈출하려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한 어린 단원고 어린 학생들은 그동안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들 이나 책에서 보고들 듣고 읽은 지시에 잘따르라는 가르침에 아무런 의심없이 선내 안내방송 지시에 따라 믿고 기다려 배가 기울어 바닷물이 배에 들어오는 상황을 뻔히 경험 하고도 선실에 조용히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믿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동영상 모습이
그들이 지닌 스마트 폰으로 외부로 연락한 영상이 공개된 걸보고 너무나 안타 까웠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나이어린 학생들에게 이세상은 정글과도 같은 수많은 경우의 수로 별의별 모함과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 이란걸 설명 해도 잘 이해할수 없는 애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 순수한 어린 학생들이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그러한 교활하고 흉악한 음모가 난무하는

세상의 진실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을 것이다

허기야 나이를 먹어도 편하게 한길로만 간사람은 산전 수전 공중전 까지 난무하는 세상을 이해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가 에서는 만행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깨달음에 도달할수 없다는 말이 생겨난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미국 와서 처음에 리큐어가 뭔질 몰랐어
그래서 리큐어에서 사람 구한다고 하길래 뭔가 특별한 곳인줄 알았지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리큐어 라는 건 가계에서 술 종류를 팔게 허가를 받은 곳이 란다
숙소는 아파트로 방이 3개가 있었고 각자 독방이었다
응접실과 부엌 화장실 샤워실이 있었고 중앙 천장에는 외국 영화 에서나 보던 과거 인도네시아 호텔에서 보았던 풀로팰라기 같은
커다란 선풍기가 달려 돌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근 새벽 1시가 가까왔다

77p-근데 리큐어 그로서리 가계로 일하러 가기위해 아침 5시30에 출발 이란다 잘못 걸렸구나 생각했다
급하게 샤워를 하고 자는둥 마는등 뜬 눈으로 밤을 지새자 새벽 5시좀 넘자 사람들이 출근할려고 샤워를 하는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정확히 5시30쯤 되자 리큐어로 출근 할려고 똥차에 몸을 실었다 리큐어가 뭔가 했더만.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일종의 한국의 슈퍼마켓 비슷한 곳인데 근데 장사가 잘되는 슈퍼마켓 이고
그 슈퍼마켓은 거이 99%로 흑인을 상대로 하는 거였다
그래서 도둑질도 많고 하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훔쳐 가나 안 훔쳐가나 감시도 하며 뒷쪽에
큰 창고만한 대형 냉장고가 있었는대 그안에 음료수 등이 가득 있었는대 그안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게안에 배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무튼 그런일이었어 물론 가게는 땅 덩어리가
큰 나라다 보니 한국의 일반 슈퍼하고 생김새도 좀 틀리고 크기도 훨씬 더 컷다 나는 영어를 아직 잘 못하는 관계로 돈 계산하는 일은 (캐셔) 시키지 않았다
아무튼 흑인 어린 여자애들이 손님으로 많이왔다 그중에 이쁜 애들도 많았어 그 두사람은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로는 다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와서 유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왔다가 살게되어 미국 시민권까지 얻개 됐다고 하는데
그들의 말 뿐이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이름이 뭔지도 지금 기억이 안나
한국은 이력서 등을 받으며 상대방의 과거 신상부터 먼저 파학하는데
그당시 미국에서 내가 생활할 때는 거이 상대방에 대해서 과거를 묻지 않았다
간단히 알수 있어도 고향이나 무슨학교를 나왔는지 한국에서
무슨일을 했는지 거이 나 에게 물어 보지 않고 나도 상대방을 알려고 하려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온지 얼마나 됐나 기술은 무엇인가 영어는 잘하는가 결혼은 했는가 나이는 몇살인가 뭐 이정도 물어보고 거이 채용 할지 말지를 결정 했다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여 확인한 적도 한번도 없었다 그 당시는 미국비자가

상대적으로 발급이 어려워
미국까지 올 정도 한국인 이면 믿어도 된다고 생각한건지 모르지만 또 세월이 지난 미국의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돌아 다닐때 하고는 대하는 태도가
당시 내가 경험한 부분에서는 분명히 틀렸다

지금은 어떤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내가 경험한 부분에서 만 말하면 인격체로서 존중해 준다고나 할까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 인가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LA서 왔다는 두 사람은 영어를 잘했다 그 중에 젊어 보이는 사람이 특히 흑인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들러 쌓여서 영어로 대화를 많이 했다
장사는 상당히 잘됐어 주로 맥주 음료수등이 많이 팔렸어 이것 저것 잡동 사니 등도 팔리고
의외로 이곳 흑인들이 뉴욕 흑인들 과는 달리 부드럽고 정이 많은 애들 같았지 특히 한국인에
호기심 같은게 많은거 같았어 중국인 일본인과는 뭔가 틀리는 한국인 만의 톡특한 매력 같은게 있긴 있나봐
중국인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인 만의 독특한 유전자 매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뭔가 독특한 매력이 존재하는게 분명해 그것을 개성 이라고 불러야 하나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것이 오랜세월 내려 오며 발전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식품인 김치 된장 찌게 청국장등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로 개발된 한국의 자랑 전통 건강식품 발효음식 에서 한국인의 몸이 한국에 살던

사람들의 유전자와 혼합하여 한국인 만의 고유한 독특한 색깔을 내는 것은 아닐까?


명맥이 끊어져 현대 과학으로도 밝히수 없는 신비한 유약으로 칠해져 적당한 온도에서 잘익은 고려청자 같은 독특한 꺼무 짭짭하면 서도 고급스러운 내면에서 부터 우러 나오는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신비한 광채같은 빛을 내는 한국인의 빛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비타민D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대 아무튼 한국인은 황인종 이지만 중국인 일본인 과는 다르다
얼마전 한국인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이 됐는대 유전자 지도의 연구자 이자 실험 대상이 었던
한국인 대학교수가 한국인과 중국인과 유전자가 비슷할 줄 알았는대 너무나도 많이 틀려 깜짝 놀랐다고 하며 오히려 중국인 보다 일본인이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모든 한국이 공통으로 적용되는건 절대 아닐 것이다 일부한국인 중에게는 유전자가 일본인 보다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나 몽골족에 더가까운 사람도 많을것이다
유전자정보가 누구꺼냐에 따라 조사 할때 마다 틀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유전자를 제공한 한국인 대학교수와 중국인과 다른 SNP가 무려 158만개나 된다고 한다
나는 특히 중국인 들을 볼때면 한국인과는 뭔가 틀려도 틀리다고 느꼈지


?

78p- 글이나 언어로는 설명할수 없는 한국인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있어
수천년간 영혼이 잘 숙성 되어 고려청자 같이 아무도 흉내 낼수 없는 오리지날 한국인만의 빛깔을 내는 것이다 나는 미국 일본 등지를 돌아 다니며 한국 여자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 답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한국여자가 아름답다 라는 말은 한국 여자가
바비인형 같이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뚜렸한 서양여자 보다 그런 면은 못하더라도 같은 동양인이라도 일본인 중국인이 흉내낼수없는 고려청자같은 아무도 흉내낼수없는 내면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광채와 은은한 향을 내는 아름다움 때문이아닐까
그것은 한국에서 최소한 5대 이상 산 사람만 나타날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먹는 음식과 어릴때 자라는 환경과 특히 각자의 심성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줄수도 있다

사실 한인간의 독특한 개성이나 매력은 그 사람의 심성 에서 만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똑같이 모방할 수도 흉내 낼수도 없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 남자와 달리 한국인의 여성들의 심성이 아름답고 휼륨한 분들이 많았다
일본인 에겐 일본인 다운 독특한 개성이 있고 중국인 에겐 중국인 다운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것은 최소한 5대 이상 일본인과 중국인으로 살아야만이 나오는 개성이 아닐까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것 이라고 생각한다
피츠버그 일식집에서 미국인 흑인 디시워시가 있었는대
그 친구가 갑자기 세계에서 한국 여자가 제일 넘버원으로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 얘기를 나는 거기서 처음 들은게 아니지 나는 과거 일본에서 일을하며
한국돈으로 대략 2천만원 정도 돈을 벌었다 나는 결국은 최종 목적지는 왠지 모르게 미국에 입국하여
영주권도 따고 미국시민권 받아 살고 싶은 욕망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경비를 좀더 벌어서 들어 가려고 했는대
일본에서 일자리 찻아 일하는게 점점 힘들어져 돈만 점점 까먹길래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서 미국으로 입국해야 겠다고 생각했어
당시 일본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나는 뉴관 이라는 곳에 가서 신고를 하고 지문 조회를 하고불법체률한 부분에 조사를 하고 난후 한국에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을 타고 들어걸수 있었던 걸로 당시를 기억한다 지금은 어떻게 바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행사에가서 티켓을 사려고 계약금 1000엔 을 걸었다 그러다 옆에 더 싼티켓이 있어서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안준데 거기 있는 여자 직원과 말로 실랑이를 벌이는데 나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직원이 달려 와서 시비를 걸길래 내가 남자직원과 같이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데 여직원이 일본 경찰에 전화해서 그 근방을 순찰중 이던 경찰이 들이 닥쳐서 나를 가와구찌 경찰서로 대려갔지
근데 오래전 일이라 그곳이 시나가와 인지 가와꾸찌 인지 헷갈려
나는 가와꾸찌 경찰서로 알고있는데 정확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않아
그곳이 어쩌면 시나가와 경찰서 인지도 몰라
아무튼 가와꾸찌 게사츠 조사과로 인계되어 일본형사에게 본격적 으로 조사를 받았다 나는 여행사 여직원과 가볍게 실랑이 하다가 나보다 어린 여행사
남자 직원과 때리진 않고 서로 멱살 잡이를 하다 그 와중에 여직원이 경찰에 전화로 신고 했으니 나보고 빨리 가라고 떠드내 안그러면 경찰이 잡아 간다고 겁을주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 갔어야 하는데
나는 그전에 한번도 구속된 적은 물론 없고 경찰서 가서 한국이나 일본 에서 조사를 받아본 적 조차 없었다 그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는 잘못한게 없으니 누가 옳은지 따져 보자며 대들었고
얼마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 경찰이 오자
나에게 당했다며 적반하장 으로 구라 치자 경찰이 내게만 수갑을 채워서 가와구찌 경찰서로 대려갔다

그러면서 전화로 한국어 통역관과 연결하여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철없던 젊은 시절이라 어리석게도 여기가 일본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세상이 공정 할줄만 알았다
나는 형사 에게 전후사정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때리진 안고 주로 남자 직원과 서로 멱살을 잡고 정당 방위식 으로
서로 옥신각신 했을뿐 이라고 그런대 여직원 에게도 멱살을 잡았다며 지랄하내 여자 하고는 말로 실랑이만 했을 뿐 이라고 했다
한참을 나를 취조 하던 형사가 사건이 중한 사건이
아니라서 그런지 엉뚱한 얘기를 하기 시작 했다 나보고 성이 긴상 이야고 그러 길래 그렇다고 그러니까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김씨인대 휼륭한 대통령과 같은 성씨 인대 모범을 보여야지 왜 이런짓을 했냐고 지랄 하는게 아닌가 난 김대중이 일본에서 인지도가

79p-이정도 인줄 그때 처음 알았다 일본에 얼마나 잘 보였으면 일본 형사가 이런말까지 하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 했다
혹시 일본형사가 한국계 일본인 인가 아니면 부모중에 한명이 재일교포인가 ?

별의별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난 김대중이 휼륭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대
어째거나 대한민국 대통령이니 그렇게 말하는 일본인 형사앞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동의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김대중은 일본에서 많이 알려진것 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적어도 일본이 김대중을 살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자료-그후 나중에안 사실이지만 박정희 정권시절 김대중이 1973년 8월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팔래스 호텔에 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되어 수장직전 극적으로 구출되어 사건발생 129시간 만인 8월13일 밤 10시 집에 돌려보내졌다 도쿄 호텔에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호텔에서 무잡이하게 구타를 당하는 순간 김대중이 약으로 마취를 시키기전에 기절한척 해야
일본인 들에게 구조 요청을 할수 있다고 판단해서
기절한척 하자 중정 애들이 김대중 을 대리고 호텔을 빠져 나가는데 주차장 에 도착하기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일본인 남녀가 마침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일본말로 크게
일본인 에게 나는 김대중 인데 지금 한국 중정 애들 에게 납치 당한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그 소리를 들은 일본인 남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알려 일본정부를 거쳐
미국 정부에 까지 알려져 추적이 들어갔고 그후 김대중을 오사카로 납치한 이후락 중정 부하들이
김대중을 어선에 실어 꽁꽁묶어 보자기에 넣어 현해탄에 빠트려 고기밥을 만들려다
미국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은 한국 정부가 살려 주라고 해서
풀려난 사건으로 김대중은 일본에서 더욱 유명해 졌다 )


일본형사가 또 물었다 확실한 거처 [居處]가 일본에 있냐고 나는 없다고 했다 지금 한국에 입국 하려 한다고
그러자 확실한 거처가 없어 도주할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사관에 알릴 거냐고 하길래 나는 알리지 말라고 했어 법을 모르던 나는 아무일도 아니라 곧 풀려날 거라 생각 했지 잠시후 조사를 마치고 내 지문 열개와 얼굴을 사진을 찍고
나를 경찰서 유치장쪽으로 데려가서 유치장 직원들에게 인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유치장 직원들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다 일본 경찰들로 보였고 나 보고 옷을 다 벗으라고 하더니 온몸을 수색하고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나를 유치장 안으로 집어 넣었다
유치장 안 에는 수용하는 인원과 방이 꿰 많았는대 내가 들어가는 유치장 방에는 4명이 있었고 나까지
총5명이었다 3명은 일본인 이었고 1명은 이란인 이었다 일본인 2명은 50이 넘어 보였고
하나는 20대후반 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60가까이 혹은 60이 넘어 보이는 일본인 중에 하나는 여자 젖 가슴을 만졌다가
들어 왔다고 하고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일본인 하나는 전직 야꾸자 출신으로 등어리에
그려진 용문신으로 온통 도배를 했는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말수가 적고
전직 야꾸자 티를 내질 않았다 나이 어린 일본인도 조용한 편이 었고 덩치큰 이란 놈이
주제넘게 좀 까불어서 언젠가 손좀 봐야 겠다 생각했다
이란인은 이름은 모하메드고 마약 판매책으로 1심에서 징역 5년 받고 항소중 이라고 하는데 우연히 나이가 나하고 동갑이었다 그런데 그 이란놈이 언젠간 어느 방향을 향해 무릅을 끊고 개속 절을하네 나는 속으로 저게 이슬람교 종교의식 이라고 생각했다
모하메드는 그게 무슬림 종교의식 이라고 말한것 같다
얼마나 광신자면 경찰서 유치장 에서도 저럴까 나는 속으로 생각 했던것 같다
그리고 그놈 말로는 일본 돈으로 천만엔 당시 한국돈으로 1억이 넘는 돈이 영치되어 있다고 했다
잡힐때 가지고 있던 돈 이래
그곳 유치장은 구치소를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1심 2심 재판을 거기서 해결하는
일종의 구치소 역활을 하고 있었는데 유치장안 에는 TV도 없었고 그저 일본책 이나
잡지나 만화책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라디오를 틀어주기도 했어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도 시켰다 엄청큰 대탕이

80p-있어서 탕안 에도 들어갈수 있었다 그리고 유치장 거실앞 에는 아침 저녁으로 옛날 국민학교 운동장의
세면대 같은개 있어서 수도 꼭지가 달려 있었고 얼굴을 볼수 있는 거울 같은거도 있었지
아침저녁 으로 유치장 문을 열고 면도와 양치질 그리고 세면을 할수있는 시간을 줬지
이불은 사재 이불은 하나도 못봤고 유치장에서 주는 파란색의 몇장의 담요와 베게를
유치장 근처 창고에서 저녁에 취침 시간이 대면 차례 대로 모포를 수용자들이 직접 문을 열면 갇고와서
모포를 깔고 자다가 아침에 기상후 다시그곳에
모포를 게서 직접 같다 놨다 그렇게 가와구찌 경찰서 내 유치장은 FM 대로 철두철미 하게 운영 대었다
운동 시간에는 유치장 건물내에 사방이 철판과 콘크리트로 막히고 천정만 뚫려 하늘을 볼수있는 공간에서 운동을
차례로 시켰는대 각자 운동시키기 전에 거실 밖에 있는 각자 관물대에서 경찰관이 담배를 꺼내주면서 운동시간에
각자 자신의 담배를 들고 나와서 입에 물면 경찰관이 라이터를 들고있다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곤 했다 유치장 수용자가 직접 라이터를 켤수는 없었다
검사 에게 드디어 불려 가느라 아침에
내 명단을 부르더니 검사를 일본말로는 겐지 라고 그러고 변호사는 벤고시 라고 그러는데
여러명을 엮어서 포승을 완벽하게 하고 수갑을 차고 호송
버스에 탓지 당시 일본 법원에 도착하자 떼거리로 어떤 공간에 하루종일 앉아서 대기 하다가 드디어 내차래가 되어
검사실에 들어 가니 임신한 일본 여자 검사와 여자 한국어 통역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검사가 취조가 시작 되자 나는 잘못한게 없다며
당시만 해도 무서울 것이 없는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이라
마치 일제시대 독립군 처럼 오히려 짜증을 내며 당장 풀어 달라고 화를 내자
통역관이 곤혹 스러워하며 뭐라고 통역을 하는데 그러자 여자 검사도 짜증을 내며 조사를 끝내지 않고
바로 돌려 보냈어 유치장에 도착하자 저녁에 국선 변호사 라는 사람이 여자 통역관을
대절하고 찻아 왔다 사건에 대해서
이애기 저애기를 묻고 간단한 사건이니 큰 걱정 할것은 없다고 했다
거이 기소 유예라고 했다
나는 유치장안으로 돌아와서 나혼자 이생각 저생각 하다 피곤해서
잠을 자고 아침 6섯시 정확히 기상인대 나도 곧 일어나서 이불을 개려 마음먹고 있는데 이란 놈이 왔다갔다 하면서
나보고 동작이 뜨다고 고노야로 빡아야로 하면서 은근히 시비를 거는게 아닌가
나도 성질이 나서 큰 소리로 이란놈에게 일본말로 고노야로 빡아야로 하면서 대받아 치며 한국말로도 개색끼 돼지색끼 하면서 조용히하라고 욕을하자 이란놈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은근히 가소롭다는 표정 이였다 이란놈이 키나 덩치가 나보다 훨씬 크자 나를 이길수 있다고
만만히 보는 것같은데 이란놈이 나에게 이따 조용한 시간에 결투신청을 하더라고 나도 싸워보자고 했다
이놈이 얼마나 센지 모르지만 나도 일대일 정정 당당한 결투라면 누구 한테도 이길자신이 있다 생각했다
그안에 일본놈 들은 아무도 그 이란놈 에게 대들지 못했다 강력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유치장 벽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차고 하면서 격투기 연습을 하면서 힘을 과시하는데.
한국 유치장이나 구치소 교도소에서 그랬으면 바로 교도관이 와서 못하게 제지하며 조사 징벌방에 보냈을 텐데
당시 가와꾸찌인지 시나가와 인지 경찰서 유치장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대로 나두는 것 같더라고
드디어 아침을 먹고 이란놈과 정식으로 맛짱을 떳다 당시 나는 어느 누구와도 일대일 싸움은 자신 있었다
그놈은 키가 180 이 훨씬 넘었고 마치 당시 k1격투기 선수처럼 체격도 우람하게 생겼다
그런데 유치장 에서 근무 하던 일본 가와꾸지 경찰서 유치장 직원놈들이
이상하게 맛짱을 말리지 않고 뒤에서 여럿이서 K1경기 구경 하듯
하려던 자세내 한국같으면 바로와서 직원들이 제지하고 징벌방에 둘다 쳐넣을텐데
가와꾸찌 경찰서 유치장 직원들은 내가 모하메드 에게 일방적으로 당할줄 알았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
나보다 체격이 훨씬 컷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혈기왕성한 전성기 시절이라 그놈에게
힘과힘 대결 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자 모하메드가 당황하고 구경하던 모든 인간들이 전혀 예상밖의 상황에 당황 하내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적어도 내나이 또래 에선 누구와 싸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후 갑자기 내가 그놈 목을 주먹으로 치자 그놈이 목을 잡고 쓰러지내 완벽한 나의 승리였다
싸움에서 상대의 목과 낭심은 급소다 물론 가슴의 명치끝도 급소이지
상대가 키가크고 k1격투기 선수처럼 생긴놈 이라 속전속결로 끝내야 겠다고 생각하고
내발의 파괴력은 엄청나 발로치면 상대방 뼈가 부러질것 같아 그러면 문제가 크게 생겨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나갈수 없다고 생각하니 차마 모하메드의 정강이와 낭심은 발로 칠수없고 급소인 목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근대 이란놈이 목이 과거에 이라크전에 이란군으로 전투에 참여 했다가 목에 파편을 맞고
수술을 했다고 하며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거야 내 주먹이 목에 스치자 뭔가 감촉이 이상 하다는
느낌은 있었어 목속에 이상한 조금만 철판을 건드린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상이 아닌 놈이 왜 그렇게
까불 었는지 주제파학도 못하고
그 다음부터 모하메드가 상냥하게 대하고 까불지 않았다
그런데 가와꾸찌인지 시나가와인지 경찰서 유치장 직원들이 모하메드와 나와의 결투를
그저 스포츠로 봤는지 둘다 다행이도 징벌을 줄 생각은 안하더라고
그리고 당시엔 미처 생각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하메드도 나에게 맞았다고 폭행으로 고소하면 나는 나가지도 못하고 폭행죄로 엮일 뻔 했는데
그놈이 뭔저 결투를 신청했고 그럴 정도로 더러운 양아치는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k1격투기 선수처럼 생겨 겉모습만 보고 모하메드에게 기죽어 있던 일본인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자 기가 살아서 나에게 긴상 긴상 그러면서
컵 라면도 같다 주고 운동시간에 담배도 주고 다들 잘했어 그런중에 모하메드가 문득 하는말이
그전에 한국에도 가 봤는대 전 세계에서 강고꾸 온나가 이찌방
가와이고 또 섹시 하다고 그러면서 말을 하며 나한테 아부하네 간단히 말하면 한국 여자가
제일 이쁘다 이거지 그러니까 옆에 있던 일본인도 긍정 하더라고
일본여자 젓가슴을 만져서 들어왔다는 60 이 다 되어 보이는 일본인은 갑자기 태국 온나가 가장 섹시하게
보인다고 나름 여자보는 견해를 얘기했다 뭐 각자 견해야
다 틀리 겠지만 이렇게 한국 여자가 이쁘다고 하는 소릴 외국에서 두번 들은 기억이 나 내가 생각할 때 어느나라 여자라서 더 이쁘고 섹시한게 아니라
국적과 관계없이 그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틀리고 또 각자 취향에 의해 틀린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미국에 있을때 백인 히스패닉 흑인과 혼혈인 제니퍼 로페즈 젊을때 여자같은
정말 맥력있는 여자들을 뉴욕 맨하탄 에서 여러번 보았는데 저런 여자가 내 부인이었으면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내 처지에선 그저 그림의 떡 이었다 그리고 일본 여자도 매력적인 여자들이 즐비했다

생전 처음 자유를 구속당하고 갇혀 보니 지옥 처럼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 다음날 난 다시 일본 법원에 끌려가서 임신한 여 검사와 실랑이 하다 또 쫏겨 나왔다 저녁에
일본인 국선 변호사가 통역을 데리고 면회 오더니 내가 미안 하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기소도 안하고 기소유예로 풀려 바로 뉴관 일본 출입국 관리소로 인계 되어 한국으로 추방될 사건이니
미안 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여검사에
끌려 갔을때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다고 했지 그랬더니 내가 구속된지 20일 되는날
바로 경찰관들이 일본 출입국 관리소로 나를 데려가서 인계 했다
여자 검사와 실랑이 하다가 20일간 경찰서 유치장에서 고생한 거야
출입국 관리소에서 얼마 있다가 나는 한국으로 강제 추방 됐는데
출입국 관리소에서 호송 버스를타고 나리따 국제공항을 향하는 중에
버스 창밖을 보며 마지막으로 도쿄 거리를 구경하자
짧은 치마 교복을 입은 귀여운 일본 여고생들이 나리따 공항으로 향하는 불법체류자 호송버스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 보던 모습을 뒤로 하고 나리따 국제공항으로 향한 기억이 난다
그게 내가 추억으로 기억하는 젊은시절 일본 도쿄 거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시 플로리다 포트마이어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면 당시 1999년 9월을 지나 10월쯤 된것 같은데 아무튼 아직 11월은 되기 전인 것 같았다

너무 오래되어1999년도 8월은 지난건 확실한데 달과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플로리다 포트마이어 흑인 밀집 지역의 리큐어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경험을 나에게 제공 했다
역시 흑인은 백인과는 또 다른 정서가 있었다 그런것을 느끼기엔 글이나 언어로써 언표 하긴
힘들고 직접 몸으로 부딧 치며 생활하며 느낄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요즘 한국에 MBC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진짜 사나이란 프로가있다
거기에 남자 연예인과 여자 연예인들이 차례로 군부대에 직접가 훈련 받는 체험 프로그램 인데
방송국에서 많은 출연료를 받고 그저 재미삼아 잠깐하는 그런 체험
프로에 백날 나가봐야 제대로된 체험을 할수는 없다 그저 수박 겉핡기식이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상태에서 살기위해 직접 몸으로 부딧치며 체험을 해야
그러니까 쉽게 말해 군대도 의무 복무를 하기위해 직접 최전방 같은 데서 아무런 혜택없이 직접 복무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세도 권세가 자제나 유명 연예인 의무복무 한다고 군대 가봐야 온갖 혜택에 지원이 있다고 누구나 생각할것이다 물론그런게 없다고 잡아떼도 말이다
최전방에서 근무한다고 하는 고위공직자 군장성 재벌가 자식들과 유명 연예인들도 있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 알게 모르게 일반사병 보다는

82p-여러 혜택과 지원이 있다는걸 누구나 예상할수 있다

그런 경우는 진정한 체험을 할수가 없다
미국 오기전에 백인들이 냉정하고 흑인이 인정이 많다고 한국내에서 유언비어에
나도 세뇌 되어 그렇게 믿고 있었다 버지니아 뉴폰뉴스의 그레이하운드 고속
버스터미널 에서 그레이 하운드 탑승 티켓을 바닥에 떨어 트리고 바로 뒤돌아서서 주우려 하자 고세
벌써 버스 티켓은 흑인들이 주어서 가져가서 아무리 찻아도 없었다 아마 돈으로 다시
바꿔서 가져 갔겠지 정말 동작 빠르네 올림픽에서 흑인들이 100M 우승은 돌아가면서 한다더니 시카코에 가면 또다른 한인 밀집 지역이 있지 켐벨 인지 킴볼 인지
그곳은 시카코의 코리아 타운 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LA이나 뉴욕 보다는 규모가 형편없이 작았지만 나는 한국인이 별로없는
미국 내륙에 조용한 도시의 한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했기에
미국을 돌아 다니다 시카코 근처를 가면 꼭 킴볼에 들려 그곳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를 꼭 사러 갔다
미국에는 각지역 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벼륙시장 교차로등이 한국인 밀집지역에는 꼭 있었는데
각지역 마다 구인광고란이 틀려 예를 들어 뉴욕지역에서 발행하는 한국일보 잡 란에는 뉴욕
보스톤. 뉴저지. 버지니아나 .메릴렌드 .필라델피아 에서 모집 한다는 구인광고가 많고

서부지역은 로스엔젤레스
지역 한국일보는 주로 LA지역과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 켈리포니아 지역이고 가끔가다 타지역 먼거리 에서도 구인광고를 내기도 하는데
조지아 아틀란타 지역 신문은 조지아 플로리다
테네시 알라바마 등 지역이많고 시카코 한국일보 지사는 일리노이주 시카코 지역과 오하이호주 켄터키 위슨콘신주 미주리주 알칸사주 등
정보지 중에 한국일보가 잡 란이 가장 많고 확실한 일자리가 가장 많았는데 한국일보를 어느 지역 지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보느냐에 따라서 일하는 지역이 틀려진다
시카코 지역에서 발행하는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는 킴볼에 가야 만 살수 있었으니까
시카코 근처를 가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전철을 타고 킴볼인지 켐벨 인지 오래 대서 잘 기억 안나지만 그곳을 찻아갔다 시카코 에서 발행하는 한국신문은
미국 중북부 한인사회를 담당했다 오하이호 켄터키 미조리 위슨콘신 알칸소 등 한국인들이
연고가 있어야만 들어 갈수 있는 곳이지 미국의 뉴욕 등 대도시는 유학생도 많고 현지교포 젊은 사람도 많고 해서 나같은 사람이 설자리가 없다고 생각 했다 나같은 아무것도 없는 떠돌이는
한국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곳에 정착해야 일자리 찻기도 쉽고 나에게도 기회가 생겨서
살길이 열릴것 같은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 느낌에

한국인이 돈과 연고없이 함부로 갈수 없는 곳에 가야 더욱 수준높고 톡특한 사람등과 더좋은 환경에서 좋은 경험과 기회를 얻을수 있을것 같았고 사실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나는 영어가 짧았고 당시 불법체류자 신세 였기에

미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에선 일할수 없었고 역시 한국사람 밑에서 일할수 밖에 없었다

허기야 미국에 온 한국인은 너나 할것 없이 떠돌이지
남에 나라와서 눈치보며 사는건 잘났것 못났것 간에 나와 똑같은 처지 아니겠어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 사장들이 종업원들 대하는 태도가 한국 보다는 좀 나아 보였다

물론 미국에 나를 고용했던 한국인 사장들이 한국에서 나를 고용했던 사람들보다 수준이 좀 높은것도 한 요인 인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언젠가 시카코 킴볼 에서 신문을 보자
오하이호 씬시네티의 식당에서 스시핼퍼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시카코 그레이하운드에 가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앞서도 얘기 했지만 그레이하운드를 타는 한국인은
만나기 힘들었는데 드물게 나마 가끔 한국인이 있긴 하지만 시카코 에서 먼 거리인 신시네티로 가는 도중 버스안에서는 한국인 뿐 아니라 동양인은 나혼자 뿐인것 같았다 흑인과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뭐 치고박고 하는 싸움은 아니고 욕을 하는 말싸움 정도였다
그 흑인과의 싸움 내용은 이랬다 정확히 몇시 인지는 모르지만 낯에 시카코 그레이하운드에서
오하이호 신시네티행 버스티켓을 돈을주고 사서 몇군데 정류장을 거쳐 어느덧 어두운 늣은 저녁 무렵
어느 시골 한 정류장 에서 흑인 한명이 타는것이었어 근데 내바로 앞 좌석이 빈자리였는대 나이는 30대 중 후반 정도 보였는대 어쩌면 그 보다더 어릴수도 있겠다
갑자기 의자 좌석을 완전히 확 제끼 더니 일부러 그러는 건지 의자를 앞으로 댕기 더니 갑자기 확 제끼며 의자 등받아에 몸을 부티치네
그러니 의자 뒷부분 등받이가 내몸에 부딧치자 시간이지나 쓴맛 단맛 다본 지금같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갔을수도 있겠지만 당시 겁없고 혈기 왕성하여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기백과 용기로 가득찻던 시절 내가 가만 있을리 만무했다 그래서 내가 짧은 영어로 의자 뒷부분이 내몸에 부뒷치니 좀 삼가해 달라고하자
그 흑인이 가소롭 다는 표정으로 차이니즈 도그 피그 그러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러 올라서
발로 의자 등받이 부분을 확 차면서 니그로 도그피그 그러며 삿다마우스 퍼커
아임 노 차이니즈 아임 코리안 그러자 이놈도 벌떡 일어 나더니

83p-영어로 별의별 욕을 하며 나에게 대들었는데 내가 생각 보다 강하게 나오자
그 흑인 놈도 나를 만만히 봤는데 상당히
당황하는 눈빛이었어 버스 안에 있던 흑인 히스폐닉 등 다른 승객들도 당황하는 분위기 였어
그러자 금방 서로 멈추고 흑인도 그후론 조용하며 흑인이 먼저 시비를 걸지않고 조심 하더라고
그런후 새벽 쯤인가 버스가 어느 맥도널드 점에서 정차 하여 휴식 시간을 줬다 나는 맥도널드 점에서
햅버거와 콜라를 사 가지고 버스안 에서 먹을려고 들고 오는대 이상하게도 버스 승객들이
맥도널드에 들어 가지 않고 버스 주위에서 버스 운전기사와 영어로 뭔말을 그렇게 떠들며 낄낄 대는지
내가 맥도널드가서 햄버거와 콜라를 사가지고 나오는대 이미 버스는 출발하고 있었어 나는 급하게 뛰어가며 스톱 하라며 크게 소리지르며 따라 갔다 바로 버스 뒤까지 쫒아 가는데 비정하게 버스는 갑자기 더욱 속도를 내며 도망가듯 그냥 달려 버렸다
이미 버스는 떠나갔네 라는 말처럼 정말 황당했어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었는대 나는 햄버거와 콜라를 사가지고 바로 나왔는대 더욱 놀라운건 여긴
버스가 잘 정차 안한데 그래서 다음 버스를 타기도 힘들어 버스가 잘서는 곳을 찻아 가야 했다
인원 채크도 없이 그냥 떠나 버리다니 이건 뭔가 음모가 있는게 분명 했다 이것들이 작당을 한거야
나를 엿먹일 려고 내가 버스안 에서 흑인에 대들자 앙심을 품은 거지 뭐 운전 기사도 흑인이 었으니
흑인들이 단합심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잖아 당시 오래전 이라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늣은 저녁시간 인가 새벽인가

고속버스 안에 승객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 그중에 흑인이 여럿 인것 같았다
치사한 놈들 미국 이라는 나라는 극과극이지 한면만 보고 미국을 판단하면 오산 이다
좋은곳은 진짜 좋은데 나쁜곳도 많아
전세계 200개 나라가 넘는 곳에서 이민 와서 사는 미국 역시 다양한 셀러리 문화의 나라야 그래서 만난 사람도 다양하고 개성도 다양하고 그들의 태도가 천차 만별이었다
그래서 한가지 경험만 가지고 미국이 이렇니 저렇니 판단하는 것은

장님이 생전 처음 코끼리 코를 손으로 잡고 코끼리가 뱀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것 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나는 떠난 버스를 포기했다 이미 버스는 떠났기에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다 다행이도 여권과 지갑은 항상 휴대하고 다니니까 소지하고 있었는데
미국 오기전에 명동 지하 상가에서 구매한 중고 삼성 카메라와 그동안 찍은 필림들 옷과 책 지도 등이 들어있는 가방이 버스 안에 있는대 나는 그때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생각이 안났지 그냥 귀가 윙윙 울리고
멍하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근처 맥도날드로 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허허 벌판 이었어 주변에는 집과 건물은 커녕
아무것도 안보였어 물론 아직 어두워서 잘 안보인 것도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이 그랬어 그넓은 미국 땅덩 어리에 허허 벌판에 달랑 맥도널드 하나 있는 곳인대 그곳에서 버려진 거지

마치 우주에 홀로 버려진 고아처럼 나는 너무 황당해서
독한 레드 말보로 담배만 피고 어두운 들판만 희미하게 보일뿐 아무것도 안보이는 허허벌판만 쳐다보며 담배만 피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당시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그런지 그렇게
두렵거나 겁나는 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오고 십었던 미국이다 지금 이 상황도 차라리 한국에서
인간취급 못받고 살때보단 훨씬 나았다 한국생활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희망도 없고 모든게 끔찍히 싫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어두운 허허벌판만 쳐다보며 독한 레드 말보로 담배만 피고있어도 왠지 겁이 나지 않았다 뭔가 희망이 있었다
이넓은 축복받은 미국땅에 나는 어디가도 살수 있을것 같았다
어디 마음에 드는 여자 하나 만나 가정을 꾸리고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살고 싶었다 또 충분이 자신이 있었다 분명 나에게도 기회가 아직 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든 순간이 한두번은 있었을 꺼야 나에게는 특히 그런 순간이 많았지 그래도 육체적인 고통은
그때 뿐 이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참기 힘들었던것 같에 그중 에서 가장 큰 고통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고통은 도저히 참기 힘들고 물론 내가 치매에 걸린다던지 무슨사고를 당해 뇌가 크게 손상이되어 기억을 모두 상실하지 않는 이상 내가 죽기전에는 여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의 슬픔은 잊지못한다
차라리 내가 죽고 내가 사랑 했던 사람들이
살아 올수 있다면 그런 슬픔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지
내가 겪은 육체적인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군대 시절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육군 해병대 공군 공수부대 다있는데 유독 해군을 꼭 가고 싶었다


?

그 이유는 양아치들이 교활하게 온갓 더러운 방법으로 사기치는 한국의 더러운 곳을 벗어나 다른세계 정의가 넘치는 그런 세계가 존재하리라 믿고 나같이 학력이 부족하고 돈이 없는 사회적약자인 사람도 차별 받지않고 사람대접 받으며 살수 있는 곳 마치 피터팬이 살 것 같은 에버랜드 비슷한 곳이 존재하리라 믿고 그곳을 찾아 넓은 바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곳이 어릴적 부터 헐리우드 영화에 세뇌 되었던 미국이라고 믿고 싶었다


해군선배 중에 쟈니윤씨의 성공스토리가 드라마틱 하다


(참고자료-자니 윤 (본명:윤종승 1936년 충북 음성 출생-미국 코미디언,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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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윤(Johnny Yune)은 대한민국의 희극인이다. 본명은 윤종승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무극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자니 카슨의 〈The Tonight Show>에
30회 가량 게스트로 출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웨슬리교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뉴욕 최고연예인상을 수상했고,
1982년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 (They call me Bruce)에 출연해 흥행에 성공했다. 1989년 귀국하여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자니윤 쇼〉를 진행하였다.
자니윤 미국 성공스토리 “5분만에 자니카슨쇼 출연 결정” [뉴스엔]
2년만에 디녀쇼를 위해 18살 연하의 부인인 한국계 줄리아 윤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자니 윤이 MBC
' 기분좋은날'에 출연해 미국에서의 성공스토리를 공개했다.
충청북도 음성군 무극리에서 태어난 자니윤은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자니 카슨의 ‘더 튜낫잇 쇼’
(The Tonight Show)에 30회 가량 게스트로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자니윤은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자니윤은 해군 하사관으로 미국생활을 경험한 것이 미국과의 첫번째 인연이다. 자니윤은 2,000명의
지원자 중 단 두명을 선발하는 과정에 합격, 미국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 이후 해군 하사관 코스를
수석으로 졸업한 자니윤은 웨슬리 대학 성악과에 입학했다.
웨슬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도 하사관 유학과정에서 만난 친구의 어머니가 자니윤의 목소리에 반해
미국내 3,000여개의 교회에 장학금을 요청한 편지를 보내 가능했다.
이후 자니윤은 뉴욕 브로드웨이 클럽가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자니 카슨의 눈에 들어 오디션을 보게된 것. 자니윤은 당시를 회상하며 “2명의 프로듀서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데 자니 카슨이 5분을 듣더니 ‘내일 우리 쇼에 나와줄 수 있냐’고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자니윤은 토크쇼 진행자로 승승장구 하며 1973년 뉴욕 최고연예인상을 수상하고 1982년에는 영화
‘내 이름은 브루스’(They call me Bruce)에 배우로 출연해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자니윤은 1989년 귀국해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인 ‘자니윤 쇼’를 진행하게 된다. 이때부터 단짝 조영남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자니윤쇼를 함께 진행하며 두터운 친분을 쌓은 조영남은 “미국사회에 한국인의 존재를 알리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故 백남준이나 자니윤 같은 사람들이 미국사회에 한국을 깊숙이 알리는
사람들이다”고 평가했다.
자니윤은 한국을 방문해 조영남 디너쇼에 특별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의 디너쇼에 조영남을
특별출연 시키기도 하는 등 여전히 변치않는 우정을 과시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중에 수석으로 졸업을 해서 그후 미국에서 유명한 희극 배우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들었다 쟈니윤씨 시절만 해도 미국 가기가 더욱 힘든시절 이었다
만약에 해군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미국을 못갔을 지도 몰라 그러면 쟈니윤씨 인생도 완전히
달라 졌겠지 내 생각인대 쟈니윤씨도 해군을 지원하면 해외로 나갈수 있는길이 열리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고 해군을 지원 했을수도 있겠다 싶다 내 경우가 그랬으니까 물론내가
해군에 지원할 땐 쟈니윤씨가 누군지도 몰랐다 재대하고 나서야 쟈니윤 선배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아무튼 나는 해군에 지원해서 진해 경화동에 있던 교육사령부 해군기초군사훈련소 에서 6주간 훈련을 받고
갑판병으로 후반기 교육을 정확기 기억이 안나는데 후반기 교육도 대략 4-6주간이 아닌가 마치고 제1함대소속 그당시 한국 해군의 최신 전투함
울산함(FFK)에 승선했다 지금은 모르는데 그 당시만 해도 해군 생활이 만만치가 않았어
군기도 세고 상당히 빡빡했어 특히 겨울철에 차가운 바닷 바람에 얼굴이 시커머케 쩔었지
그러나 여름은 군함을 탈만했다

85p-시원한 바다 바람에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수 있고
특히 동해바다 돌고래 떼가 군함을 따라오는 모습을 간간히 볼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
돈 주고도 못볼 장관이었다 독도는 근처를 여러번 지나가 본 기억도 난다 그리고 해군은 타군과 달리 머리를 그렇게 짧게 짜르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로 울산함에 적응하여 생활할만 했는데
호기심이 무지하게 강한 나는 UDT 모집 광고를 보고 그대로 넘어갈수 없었다
꼭 경험해 보고 십었다
지원 한다고 다 붙는것도 아니고 일단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안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무조건
UDT에 지원 하기로 했다 그래서 통신하사 보고 지원서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그당시 통신 하사는 지금은 목포해양대로 바꼈지만 당시 수병들은 목전 하사 라고 했는데
지금은 많이 바꼈는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목포해양전문대 출신들이 국비로 학교에 다녀 대신 해군하사로 의무 복무하게 되어 있던 걸로 나는 기억하는데

목전 출신들은 졸업하면 거이가 상선에서 해기사로 주로 근무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 같은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 나의 UDT 지원 의사를 공문으로 보내준 통신 하사가 정확한 고향은 모르지만 경상도 사투리 비슷하게 쓰는 목전출신 하사 라는건 분명히 기억한다
그후 안 사실이지만 전남 여수나 광양 근처에도 경상도 사투리 비슷하게 쓰는 사람도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남해는 경남 이지만 전라도 사투리쓰는 사람을 그후

(2000년 도인가 미국 플로리다 파나마시티 일식집에서 일을하러 갔는데
그때 일식당 이름이 사무라이인가 쇼건인가 가물가물 한데
그 일식당 사장이 신문에난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한 나와 통화하여 고용을 허가 했고 내가 도착하자 고속터미널에서 직접 픽업나와 주었고 내가 그만두고 갈때도 터미널까지 픽업해 주었다 경남 남해가 고향 이라는데
과거 유지광 밑에서 건달생활 하다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70년대 초인가
미국에 우여곡절로 와서 테판야끼를 일본인들에게 배울때 기술을 안가르쳐 주려 장난을 많이쳐 엄청 고생하며 노력하여 겨우 기술을 터득하여
그후 미국에 온 한국인들에게 대판야끼 기술을 많이 가르쳐 줘 적어도 미국 동남부 지방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일식집을 오픈한 사람들 의 상당수가 자신에게 기술을 배워서 나가 오픈한 사람들이라고

확인되지 않은 말을 한걸 들은 기억도 난다
근데 고향이 경남 남해 라고 하던데 그곳이 전남과 경계선 부근이라서 그런지 전라도 사투리를 썼던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 사장이 의심이 많아서 주방까지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후 해군을 제대하여 동지상선을 일본에서 탓을때도 목전출신 들이 해기사로 있었다


UDT 지원 하고 난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난 후 강원도 동해에서 경비근무를 하던중 공문이 날아왔다 진해 UDT본대 에서 울산함으로
울산함 에서 UDT 두명이 합격 했다고 나하고 쏘나 하사 홍경표 하사 였다

쏘나는 잠수함을 음파 탐지기로
추적 하는 중요한 임무이다 사실 해군 함정에서 근무하는데 중요하지 않은 임무는 없다

모든게 다 중요 할 것이다 우리 둘은 울산함 해군들의 환송을 받으며 함정을 내려와 떠불빽에 짐을싸서 UDT 교육을 받으러 하선을 하자 울산함
160 여명이 넘는 승조원 중 대부분이
휼륭한 UDT 전사가 되라고 전송을 했다
또 다른배 에서 한명의 하사가 UDT 교육을 받으러 간다며 내려 떠불백을 메고 우리를 따라왔다

홍경표 쏘나 하사와 동기로 서로 잘아는 사이 같았다 울산함보다 작은 군함 이름은 지금은 기억안나는데 아마 PCC급 함정에서 쏘나 하사로 근무하다

UDT 합격 공문을 받고 진해로 가서 훈련을 받으로 가기 위해 강원도 동해 1함대 해군 부두에서 우리와 같이 하선 했다 나만 빼고 두명은 키가 모두 180cm가 넘는 것 같앗다

아무튼 이렇게 3명이 UDT 교육을 받으로 진해 UDT 본부로 향했어 진해는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가 있던 곳 이었다 우리일행 3명은 기차를 타고

진해 UDT 본부가 있는 당시 56전대로 먼거리를 떠났다 UDT 본부는 진해 해군사관학교 들어가기 좀전에 56전대가 당시 있었다 그리고
그 UDT 본부 56 전대로 들어가기 전에 진해시와 해군 부대의 경계선인 정문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해군 헌병 이었다
당시 해군 헌병은 훈련소에서 지원자를 착출 해 가거나 헌병대에서 찝차를 타고 갑자기 와서 훈련병을 집합시켜 놓고 키가 제법 크고 마음에 드는 훈련병을 마구 잡이로 착출해 명단을 적어 가는 것 같았다 헌병들은 해군 해병이 같이 훈련을 받는지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해병대 복장을 하고 똑같이 빨간 명찰을 달고 있었다
저게 해군인지 해병인지 알수가 없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헌병은 당시 같은 곳 에서 훈련을 받고 마구 잡이로 해군 해병부대에 배치 시킨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진위여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지금은 해군 헌병은 하얀 명찰로 바뀐 것 같다

사실 해군 명찰은 초록색 으로 바뀌어야 한다


떠불빽을 메고 들어오는 우리일행 3명은 진해 시내에서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첫 정문을 통과 하는데 헌병이 검문을 하려하자 UDT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는 무슨 공문 쪽지를 하사들이 준것 같은데

오래되서 정확한 기억은 안나
헌병들이 깍듯이 경례하며 바로 들여 보냈다 진해시내와 분리된 정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길을 제촉하며 아스팔트 도로 길 사이드로 어느정도 걸어가자
해군사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방향 길에서 왼쪽 옆길로 빠지는 길이 나오는데 바로 해군특수전 56전단 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우리 일행 3명은 긴장한 상태에서 그곳에 향해 걸어 들어가자

56전대가 드디어 보였다 그곳을 들어가자마자 UDT 문신이 어께쪽에 세겨진 몸이 훈련으로 근육이 발달한 시커먼 몸에 눈만 반짝 빤짝한
UDT 마크가 새겨진 조끼런닝을 입은 UDT 요원들 아에 쪼끼 런닝도 입지않은 마치 조폭들 처럼 UDT문신을 어께에 새긴 근육이 발달한 상체를 들어내고 걸어 다니는 UDT 요원들이 보이자 우리일행 3명은 쫄아서 겁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 UDT교육을 받으려 왔다고 하자 안내 하는 대로 숙소에 들어가자 이미 도착한 훈련생들이 많았다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자 속속들이 UDT 교육을 받으러 오는데 공수부대 대위부터
중사 하사들 해병대 특수수색대 장교 중사 하사는 있었는데

(공군 빨간 베레모는 장교가 있었는지는 기억 안나고 중사급 들은 있떤걸로 어렴픗이 기억나는 것 같다 )

내무반 분위기는 자유로왔으며 별다른 타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육군수색대 중사 하사관 들도 교육을 받으러 왔다 교육생중 절반 이상은
해군이 차지한 것 같았고 우리 차수부터 해군출신이 아닌 사회에서 일반인 중에 바로 UDT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들어온사람들도 첫번째 교육생으로 받아주어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1주일 간은 엑스레이 등 건강검진을 하고 바닷물 깊숙히 들어가도 수압을 이겨 내는 체질인지
검사하고 그 결과를 확인 하느라 먹고자고 놀고만 있었다 그리고 1주일후 나는 모든 검사에
합격 통보를 받고 통과 했어 식사할때 나오는 부식은 내가 군대서 가본곳 중에 최고로 잘 나 왔다 특히 몸에 좋은 먹음직스러운 싱싱한 해산물 들이 넘쳐났어
그리고 훈련을 시작 하기전에 서약서에
서명 해야했다 훈련을 받다가 사고로 죽어도 이의를 달지 않겠다고 하는 서약서 인걸로 기억한다
나는 서약서에 서명을하고 훈련을 했지 지금 같으면 도저히 서약 못했을거 같은데
당시에는 무슨 배짱으로 서약 했는지 몰라 지금도 목숨을 걸고 서약하라고 그러진 않겠지?
모든 계급장을 때고 번호만 단 위장복 과 팔각모가
훈련복이었어 번호 1번은 그 당시 공수부대 대위로 훈련생중 계급이 가장높고 입대일이 가장 빨라 군번이 앞선덕에 김정호 대위가
1번으로 앞에나가 훈련생대표 노릇을 하였다 그당시 병 출신으로는 해군밖에 없었다 나는 그당시 상병으로 해군병중 에서는 최고참 이었다
해군은 한달에 한기수가 있는데 내가 입대하기 얼마전 까지만 해도 3개월에 한기수 있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계급이 같아도 기수가 앞서면 선임자 대우를 갂듯이 했다
우리 해군병 302기 기수 중에 나와 동기가 하나 있었는대 부산애로 전용현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 와는
동시 훈련소에서 훈련받은 해군 기수가 같은 동기였다
타군 출신들은 전부 위탁 교육생 이었는데
훈련생 대표가 선서를하고 그렇게 전반기 6개월 교육이 시작됐는데 훈련을 하기전에
교관들이 오늘 훈련 과정을 훈련생 모두 모아 놓고 브리핑 부터 시작 했다
그때 알았지 UDT가 전부가 아니라고 해군 특수전부대 소속에 UDT EOD SAELL 그렇게 3가지
있는대 그중에 UDT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서 그래서 속칭 UDT로 쉽게부르는데
UDT 선견작전대 (UDT : Underwater Demolition Team) SEAL 특수작전대 (SEAL : Sea, Air and Land) - 다시 공, 해, 해중 작전대로 세분화된다.
EOD 폭발물처리대 (EOD : Explosive Ordnance Disposal)
UDT는 일명 수중파괴대 라고도 부르는데 주 업무는 해병대가 상륙 하기전에
적진에 비밀리 침투해서 반경 2킬로 이내에 적의 미사일이나 포대등 아군함대에 위협적인 적의
목표물을 폭파하고 제거하고 해병대를 실은 해군함정을 유도하는 임무란다

EOD가 하는일은 해군함정이 작전상 지나갈 때 혹은 상륙작전을 하러 해병대를 싫고 갈때 군함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수있는
적의 기뢰를 제거하여 해상로를 여는 작전이다 그리고 마지막 SAELL은 SEA. LAND SKY 바다 땅 하늘 영문을 조합한글로
그야말로 바다 땅 하늘 모든분야 에서 활약하는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로 물론적의 요인암살도 담당한다.
교관중에 2010년 천안함 사건때 순직한 한주호 준위 당시는 중사 였던걸로 기억 나는 것 같은데
훈련 하기전에 훈련 프리핑을 당시 했는데 한주호 중사가 수도공고를 졸업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것 같은데 나이로 봐서 박정희 정권때 학교를 졸업한것 같은데 과거 박정희 정권 까지도 수도공고는 지금의 과학고와 특모고처럼 공고중에 명문중에 명문으로 꼽히던 학교였다

SEAL은 한국 최고의 부대로 미국 해군장교 출신인 존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에 창설된 부대가 모티부로 미국의 네이비씰 중에 최고만 모은 데브그루가 빈라덴을 암살한 부대로 미국의 최강부대라고 한다 지옥의 UDT 혹독한 훈련이 시작 됐다 IBS 고무보트 중심으로 7명이 한조로
좌우로 3명씩 6명이 서고 맨뒤에 조장이 있어서 고무보트를 머리에 올리고 서서히 행군하기 시작했어
조장은 해병대수색대 소위인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경희대 태권도 학과를 나와서 해병대수색대 장교로 근무중인 친구였다

(참고자료-대한민국해군 창설일.1945년11월11일 ssu 해난구조대 창설일 1950년9월1일 해군특수전전단 udt/ seal창설일1955년11월9일

해군첩보부대 udu는 국군 정보사로 통합 편입됐기 때문에 생략 하였읍니다! 참고! 해병대 초대사령관 신현준 사령관 은 바로 해군대령 출신입니다! 해군 해상병13기는 해병대 상륙병1기가 됩니다

여순반란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해군해상병들이 급하게 상륙병으로 바뀌어 창설된 부대가 한국해병대
한국해병대의 조상은 해군이다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에 덕산 비행장에서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5월 5일 대통령령 제88호로 해병대령이 공포되었다.
부대원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해군의 전신 해방사 출신인 해군중령 신현준 중령이 해군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2기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8월 1일 해군에서 장교와 부사관을 증원받고, 해군 병 14기 중에서 440명을 해병대 병 2기로 특별 모집받아 2개 대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8월 15일 광복절 4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면서 최초로 모습을 대외적으로 드러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해병대는 내가 해군에 입대하기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진해 교육사령부에서 해군기초군사학교에서 해군과 같이 훈련을 받다가 포항에 훈련소가 신설되어 옮겼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훈련 받을때는 6주간 해경들과 같이 신병훈련을 받았다

요즘 젊은애들이 해병대에 모이는것은 옷이 날개라고 해병대 복장이 타군에 비해 멋이 있어서 그런것 같다 육군 해병 공군은 사병과 부사관 장교가 복장이 비슷하다 근데 유독 해군만 장교 복장은 멋드러져도 해군수병의 복장은 너무 성의없이 만드는게 아닌가 해군수병의 복장중에 최고는 한얀 긴팔 춘추복으로 세라를 착용 했는데 전두환 정권에서 없애 버렸다

일본이 처음엔 미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아 일본군이 중국 남경에서 만주로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이 공격한다고 하여 미국의 요구로 철수하여 만주국을 세운 것에 만족한 일본이지만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를 패권주의로 점령하여 나쁜짓을 일삼자 가만둘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기위해 식량과 원자재가 부족한 일본의 해상로를 봉쇄하자

앉아서 가만이 생명줄인 물자가 떨어져 질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 수뇌부가 하와이를 기습공격 하여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식량과 원자재가 부족한 한국은 해상로가 생명줄과 같아 해군의 중요성이 커서 해군 수병의 복장을 사기 진작과 엄청난 국민 세금으로 구입한 이지스함 등을 잘 운영할수 있게 능력있는 수병 모집을 위하고 또 임진왜란때 조선을 지킨 충무공의 후예들 답게 멋드러지게

수병들의 해군 복장을 새로 설계하여 모자도 하얀 베레모로 바뀌었으면 한다


미국 해군은 지금은 함상복을 미 해병대 복장을 그대로 착용하고 팔각모를 쓰고 있다


육군 병장 출신 노무현이 육군 병들의 복장을 베레모를 씌우고 얼룩무늬 복장을 멋드러지게 새로 만들어 입히듯 해군 수병도 충무공의 후예답게 멋진 복장으로 설계하여 입혀서 사기를 올려 능력있는 젊이들이 해군에 많이 지원할수 있게 하여 전투능력을 향상 시키는게 중요하다


대략 일주일 이상의 편안한 생활의 신체검사가 있고 최종 합격자를 간추려 훈련이 시작되자

UDT 훈련생들이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구보시작 하며 군가를 부르며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가는 진해시와 연결된 헌병이 지키는 문을 통과 하기전에 병과는 모르지만 해병대 신입 부사관 후보생들이
후반기 직종교육 받는 애들로 보이는데 단체로 구보하며 하며 해병대 군가를 더크게 군가를 부르려 하며 까불자 UDT 훈련생들이
건방지다며 욕을하고 두들겨 팰것처럼 달려들자 해병대 신입 부사관 후보생들이 전부 군가 소리를 적게하고 길을 비켜 줄핼랑 치듯 다른곳으로 빠르게 이동 하였다
분을 삭이지 못한 일부 UDT 훈련생 들이 어린놈 쌖기들이 까분다며 때려 잡으려다 말았다고
하자 UDT 훈련생중 일부 해병대특수 수색대 중사 하사들이 이제 그만 합시다 그러는 소리도 들은것같다 교관들은 UDT훈련생 끼리 싸우는건 엄하게 처벌해도 해병대 부사관 후반기 직종 훈련생을 제압 하는건 은근히 내버려 두었다
만약에 반대 였다면 엄하게 기압과 처벌이 있었을 것이다
그후 UDT 훈련생들은 빠른 구보로 해군사관학교로 들어오는 길과 진해시와 연결된
헌병들이 지키는 문을 통과하고 진해시 경화동에 있는 해군기초군사훈련소 내의 수영장으로
향하는 차길 대로를 따라 빠르게 구보하였다
그후로 적어도 내가 그곳에서 구보할때 만은 해병대 신입 부사관 훈련생들이 UDT훈련생들이 구보할때 한번도 까분적이 없었다 훈생들은 전부 계급장을 떼고 입대일이 빠른 군번 순으로 순위를 번호로 매겼는데 큰의미는 없었다 장교로 대접받을 생각도 안하고 또 대접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훈련생 대표 공수부대 대위인 김정호를 대하는 해군들의 태도도 마찬가지 였다
훈련생 대표 김정호는 예를 들어 교관들이 대표에 지시사항이 내려오면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부탁죠로 훈생들에게 말했던 것같다 그리고 훈생생들은 장교고 병이고 계급장 떼고 번호로 같은 동기로 알고 대하라는 그런 분위기 였다 사실이 38차 훈련생은 같은 동기일 뿐이다
훈련생 대표는 대동여지도 만든 김정호와 동명 이인이라 기억하기가 쉬웠다
한번은 공수 하사와 해군하사가 치고받고 싸워 훈련생 전원을 야밤에 운동장에 집합시켜 udt중사 출신인 교관들이 목봉체조와 몽둥이 찜질과 함께 원산폭격을 그날 저녁늣게 까지
훈련생 전원에게 엄청 오래 시켜 이마에 피가 날정도
가혹한 기합을 시켰는데 훈생은 38차 동기로 앞으로 동기끼리 싸우면 이보다 강한 처벌을 훈련생 전원에게 가해 질꺼라고 했다 그때도 교관에게 가장먼저 업드려 몸둥이로 맞은게 훈련생 대표 김정호 였다
그후론 내가 있는 동안은 동기 끼리 아무도 싸우는걸 못봤다 그때 해군장교 공수부대장교 해병대수색대장교가 udt 중사 출신 교관의 욕설과 몽둥이 찜질과 기합으로 훈련생들은 이마에 피가날 정도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88p-특히 UDT 중사인 교관들이 계급사회인 군대에서도 각군의 장교들에게도 공평하게 욕을하고 기압을주고 몽둥이 세레를 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그런 꼬라지 보기 싫으면 스스로 퇴교신청하면 되는데 장교들은 그걸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훈련생 들중 공수부대 하사관 들은 그래도 같은 공수부대라 그런지 아무리 계급장을 떼고 번호로 통일한 훈련생 동기라고 해도
김정호를 장교 대접을 해주는 모습이었다
훈련생 끼리 싸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군 신병 훈련소 처럼 훈련이 끝난후에는 거이 교관들이 타치 하지 않았다 당시 훈련할때는 숙지하지 못한 부분을 가르쳐 주려 엄청 엄하게 훈련 시켰는데 훈련이 끝나면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주었던 것같다
장교 하사관 병 그리고 해군 해병대 특수 수색대 공수부대 육군 수색대 공군 cct등 가리지 않고 짬뽕으로 내무실에 넣었는데도
그래도 장교는 장교끼리 쉬는시간 주로 말하고 하사관은 하사관끼리 주로 말하였다
병은 해군병 뿐이라 해군병은 기수가 정해져 있어 위아래가 분명했다 같은 상병이라도 나보다 한기수 아래인 수병이 감히 나에게 반말을 못했다
가끔 가다가 울산함에서 같이온 홍경표 하사가
구보를 힘겨워 하는 나에게 다가와 힘내라고 하며 말하기도 하였다 홍경표는 키가 180CM넘고 호리호리한 체격인데 다른건 몰라도 구보는 어느정도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후 만나본적이 없어 UDT를 수료 했는지는 모르겠다
56전대 에서 상당히 먼 거리인 해군전용부두까지 고무보트를 머리에 위고 행군중이던 우리는
그당시 유명 프로인 뽀빠이 이상용의 우정의무대를 진해 해군전용부두에서 연예인과 가수들이 출연하여 하는 공연을 녹화하는 모습을 보며 대략 5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고무보트를 진해 앞바다에 띄우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노래 소리와 공연을 관람하던 해군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우리는 고무보트를 노를 힘껏저으며 훈련 목적지까지 상벌이 존재하는 선착순으로 서로 빨리 가기위해 사력을 다했다 좌우로 3명씩 6명이 노를저으면 조장은 소리로 신호를 마쳐 주었다 그렇게 진해 해군전용부두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출발한 우리는 7 모양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가서 목적지인 뭍으로 올라오니 기진맥진 상태였다 늣게 도착한 팀은 고문 수준의 기합이 이어졌다
그런대 다시 고무보트를 머리에 올리기 하여 다시 행군하기 시작했다 행군 하며 UDT군가를 목청껏 부르며 진해 탑산에 경사가 90도 이상인 365계단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고무보트를 머리에 올리고 뛰어올라 가라 그러대 7명이 한조가 되어 고무 보트를 머리에 올리고
진해 탑산 365계단 꼭대기 까지 앞팀과 1m이상 간격이 벌어지면 교관들의
몽둥이 세례가 가차없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기상하면 UDT체조 52과정이 이어졌다 그건 완전히 고문 수준이 었다
식사 시간 에는 턱걸이 훈련을 시키는대 목표량에 미달인 사람은 턱걸이를
다른 사람 식사가 다 끝날때 까지 시키고 맨 나중에 식사를 시켰다 그렇게 훈련을 하며
땀을 많이 흘리니까 소금 같은걸 먹으라고 주었는대 그 당시에는 그게 도움이
대는줄 알았는대 현재는 땀을 많이 흘린다고 염분을 보충하는게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몸에 해롭다고 밝혀졌다
어쩐지 그당시 염분을 섭취하면 속이 울렁 거리고
별로 몸에서 잘 안받더 라고 그래도 운동후 땀을 많이 흘린후 도움 된다며 먹으라 그러니
몇번 먹다가 몸에서 잘 안 받는거 같아서 그 다음 부터는 안 먹었다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건
몸에 해롭다고 보면돼 억지로 먹어선 안된다
몸은 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끌리고 땡기지 그럴때 그걸 먹으면 도움이 되는 거야
사람도 마찬가지 서로 만나고 싶고 보고 싶으면 좋은 인연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인연이지
결론적으로 애기하면 간단하다
그건그렇고 UDT가 왜 그렇게 힘든지 그렇게 힘들게 아침을 먹고
해군 사관학교 앞 56 전대 에서 진해 교육사령부 까지 그 먼거리를
오래전 일이라 얼마만에 뛰어 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당시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 가라고 하니 정말 힘들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89p- 해군교육사령부 실내 수영장 밖에 도착해서 UDT체조 52과정을 하고 수영장 에서
수영 훈련을 시키는대 자유형도 아니고 배영도 아니고 왜 평형만 시키는지 수영을 잘못하면
교관들이 불러다가 때려도 꼭 오리발로 발바닥 하고 손바닥만 때리는지 그땐 찐자 몰랐다
평형만 시키는건 유사시 침투할때 적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위한 거고
오리발로 손바닥과 발 바닥만 때리는건 그걸 안건 제대후 오랜 시간이 지난후 미국에서 알았다 손바닥과 발 바닥을 때리면 내장이 튼튼해지고 건강에 좋다는것을 다 그런깊은 뜻이 있었다는걸 나중에 알고 체조도 역시 튼튼한 몸을 만들기 위한 힘든 과정이고 그때 교관들을 원수로 봤던 내 자신이 부끄러 웠다
진해 가면 천자봉이 보인다

?

(천자봉은 높이502m로 시루봉(웅산693.8m)능선이 남쪽으로 벋어내리며 솟은 산이다)

그산의 가파른 비탈길을 고무 보트를 머리에 위고 뛰어서 올라가며 앞에 올라가는 팀과 거리가 1M이상만 벌어져도
교관들의 몽둥이 세례가 가차없이 날라 오는대
그게다 젊은시절 UDT시절 이니까 가능했다 지금하라면 절대 못한다
가끔 UDT 전역한 나이 지긋한 선배들이 차를 몰고와 후배들의 훈련과정을 지켜보고 격려 했다
진짜 훈련이 혹독 했다
빨간베레모를 쓰는 공군특수부대cct 는 공정통제사(Combat Control Team)

육군수색대 다 그 부대에서 훈련 성적이 뛰어나서 뽑혀서 위탁교육 받으러 왔다
그런데 당시 적어도 내가있을 때만은 수영선착순에서 해군들이 전부 1등했다
내가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진해에 처음 들어 올때가 진해 군항제가 한참일 때였는데 진해에 딱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벗꼿과 러시아풍 건축물이 일제때 건축 되었다고 하는데 건물 등을 보면 꼭 외국 어디 경치좋은 휴양지에 온 기분 이었는데 한국에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진해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 였는데 그 아름다운 도시 온 사방팔방을 밤 낮을 구분 하지 않고 고무 보트를 머리에 위고 때론 바다에서 노릇 젓고 산을 뛰어 올라 가기도 하고 거리를 행군 하기도 하며 UDT 군가를 목청이 터져라 크게 부르며 훈련하던 모습이 이제는
꿈속의 가상현실 처럼 나에게 그런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련한 추억이 되었네 그때 나는
숨이턱 까지 차오르는 육체적인 고통을 느꼈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네
육체적인 고통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 순간만 참고 지나 가면 인생의 추억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오래가지 생을 다할때 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지워 지지않는 경우가 있다
생을 마치고 죽어도 잊지 못해 우주 만큼 무한한 잠재의식 속에 스며 들어
다음생 이라는게 있다면 마치 홀로그램 비슷하게 자신도 모르게 들어나는 것인지도 몰라

UDT 훈련은 22세 한참때 이니 가능한 훈련이 었다
지금은 도저히 엄두도 못낸다
그후 나는 udt를 자진 퇴교하고 나와 진해 해군 보충대 에서 잠시 대기 하다가 지금은 폐선된 LSM 상륙함 기린함에 발령받아 해군수병으로 근무하다가 해군 만기전역후 어선을 탄적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처음 나와 인기를 끌며 무명이던 이주노 양현석 까지 유명인사로 만들어 어느세 부산 남포동에도 울려 퍼지기 시작하던 92년도 무렵에
인도네시아 에서 조기조업을 하기위해 부산에서 트롤선을 탓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인도네시아 까지는 장장 2주이상 걸리는
먼 향해길 이었다 우리배는 불과 300톤급 이었어
그런데 인도네시아로 항해 하다가 뜻하지 않게
태풍인지 뭔지 지금 정확히 모르지만 거대한 파도와 비 바람을 만났다
집체 만한 파도가 덮치면서 배가 곧 뒤집혀 질것 같은 기울기가 수도없이 반복이 되었다
그러나 어선의 복원력이 좋아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길 반복했다 마치 오뚜기 처럼 안좋은 거센 집체만한 파도에 배가 넘어갈듯 하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길 수도없이 반복하는 상황에서
그때는 이대로 고기밥이 대는구나 싶었다
배를 오래탄 머리가 하얀 선장도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 하더라고
인도네시아에 도착 해서는 엔진이 고장났는지 약 2주 가까이 출항을 하지않고 정비만 한것같은데
그때 선원은 인도네시아 인이 부산에서 부터 같이오고 또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자 현지에서 합류한 선원도 많아 인도네시아 인이 다수 였는데

90p-한국 선원 몇명과 인도네시아 식당에 가보니 가라오께 노래방 시설도 되어 있는데 한국 노래도 많이 선곡할수가 있었다 나보고 노래를 부르라기에
팝송중에 비교적 쉬운 엘비스프레슬리의 러브미텐더를 한곡 부르자
갑판장이 인도네시아 여자 웨이츄레스를 하나 골르라고 물론 돈을 개인적으로 주고
당시 그곳 식당 웨이츄레스는 돈을 받고 매춘을 하기도했다

서울의 강남에 일부 고급 일식집에서 은밀히 웨이츄레스들이 매춘을 한다는 말을 들은기억이 나는 것처럼

당시 그곳 식당 웨이츄레스는 돈을 받고 매춘을 하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
저녁에 혼자 호텔에 오자 호텔에서 포카를 치는데 인도네시아 이쁜 나이어려 보이는 여자가 돈을 따길래
가 인도네시아 말을 못해 통역으로 몇살이냐고 물어보자 21살 이라고하여
인도네시아 돈을 얼마를 줄테니 나하고 연애한번 하자고 그러자 승낙을 받아
21살 아가씨와 돈을 주고 섹스를 했는데 이슬람국가라 그런지 여자 질속에 있는 클리토레스가 잘라져 있더라고
들리는 얘기로는 인도네시아는 당시 이슬람을 믿어 종교적 관습으로 여자아이 질속에 있는 클리스토리스를 아기때 자른다고 하더라고 남자는 포경수술하고 그걸 할레 라고 하나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나 수마트라는 아니고 아몬인가 아닌가 정확히 모르겠어
아무튼 수도 자카르타 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곳 이란건 분명해
그 다음날 식당에서 술을 먹다가 항해사 인지 갑판장 인지가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패야 작업이 된다고 해서 나는 그럴수 없다고 하자 트러블이 생겨
싸움이나 당시 혈기 왕성한 내가 힘이 좀더 좋아 몇대더 때리고 나는 선장에게 운반선 타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겠 다고 하여 조기조업 트롤선 인데 한번도 조업을 안해본 상태에서 다시 운반선을 타고 부산으로 들어왔던 경험도 있읍니다 오자마자 회사도 들리지 않고 서울로 갔는데 내가 50만원 돈을 받은 것이 있었는데 조업을 한번도 안했기에
그러나 출항하기 전에 배정비 작업 등 한달 가까이 도와 줬기에 당시 50만원 어치 값어치는 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나는 크고 작은 목숨을 건 곡에사 같은 삶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어
그래도 젊을 때는 그렇게 힘든줄은 몰랐는대 이제는 세파에 지쳐서 골아서그런지
점점 용기와 기백이 상실대고 있어
젊을땐 몰랐는데 역시 나이는 못 속이나 봐 이런 저런 생각에
그렇게 나는 인생을 힘들게 살았어 편하게 갈 길을
힘들게 그렇게 돈키호테처럼 온몸으로 세파에 부딧치며 온 사방팔방에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적을 만들며
희한한 인생을 살았지 거듭 말하지만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 이라는 말과 같이 머리 나쁜 나는
멍청하게 살았다 그래 나는 멍청한 놈이 었어 그건 사실이야 어쩌면 그것은 나의 처한 처지에 의해 정상적인 방법으론 얻을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꿈과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경험을 하기위한 몸부림 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나 바둑도 판세가 유리한 사람은 무모한 모함이나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위대한 혁명가나 위대한 창업자 과학적 발견자들의 다수가 세상을 지배하는 기득권층 에서는 거이 나오지 않는 것 일수가 있다

(참고자료-140-생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새로운 차원의 복잡성을 만들어

내기위해 물질대사와 재생산이 함께 작동하는 방법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은 단순히 복잡한게 아니라

우주의 다른 어느것 보다 더 복잡하고 생명체가 성취한

질서의 수준은 우주가 무질서를 향해 간다는 일반적인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경이로운 것이다

생명체의 생애 주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무생물들이

결코 보여주지 못하는 경탄할 만한 규칙성과 질서를 보여준다

별도 역시 열역학 법칙을 거스를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더 기민하게 열역학 법칙을 거슬러 존재한다 -141- 별과 행성은 수십억년 동안 존재할수 있지만

가장 복잡한 구조가 가장 빨리 파괴된다는 사실은 조밀한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유기체가 열역학의 제2법칙에 거세게 저항하는 것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142-일반적인 그리고 다목적의 반 엔트로피 기계라고 할수있는

별이나 크리스탈과는 달리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유연한 게릴라 전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도전에 끊임없이 적응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집단적으로 무생물 세계에서는 결코 찿아볼수 없는 방법으로 환경을 탐색했다

그 결과 살아있는 생명체가 찿은것은 자신들을 통과해 지나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흐름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유지할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에너지원과 새롭게 자신들을 조작하는

방법들이었다 물론 이런 모든 변화가 새로운 복잡성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그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생명을 새로운 형태의 복잡성을 만들어 낼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지도 지은이 데이비드 크리스천 펴낸곳 심산출판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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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승용차 에서
내리네 나는 얼른 찻아가서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가까운 버스 정류장 까지만 대려 달라고
사정 했다 중국인 들이 었는대 오히려 조소 하며 거들떠도 안보대 그래서 역시 짱께는
안돼겠다 싶었지
한국에서 짱께 그러면 중국인들을 약간 비하하는 의미 이기도 하다 그런데 진짜 말뜻은 비하하는 말이 아니고 짱께라는말은 중국식당 메니저를 뜻 한다고 누군가 그런 것 같은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래도 같은 동양인 이라고 반가워서 그랬는대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어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인은 결코 한국인의 친구가 될수 없어 먹느냐 먹히느냐 이 논리만 존재하지
결국 한국을 도와줄 나라는 미국등 서구지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때도 증명이 됐다 일제로 부터 해방시켜 준것은 미국이고 한국 전쟁때 참전하여 3만명이 넘는 미군이
죽어가면서 중공군 에게 한국이 공산화 되는것을 막아준게 미국 이었다 는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사실 이다
한국에 도움이 될 나라는 결코 중공이나 일본이 될수 없다 결국 그들은 한반도를 손에 넣으려 잠시 친한척 할 뿐 결국은 한반도를 손에 넣으려 할것 들 이란 걸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요즘 한류 떠드는데 환경이 바뀌면 태도가 돌변 하듯시
개고기 쳐먹는 놈들 개밥 많이 주는 것은 살 통통히 찌어서 잡아 먹으려고 하는 거와 같지
한참을 그렇게 걱정만 하며 말보로 담배만 속이타 계속 피다 담배도 한갑이 금방 동이 나서 초조한걸 말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세 지긋한 백인 내외 분이 오시더니 나보고 왜 그러냐고 그러 더라고 나는그분들 에게 부탁도 하지 않았는대 나한테 찻아와서 도움을 주려 하다니 얼마나 고마 운지

나는 짦은 영어로 나의 사정을 설명했지 그리고 그레이 하운드 티켓도 보여 주며 그러자 그분들도 내 사정을 이해 했다며 자신들의 샐폰으로 폴리스를 불러준다고 그러면서
폴리스가 버스정류장 까지 데려 준다고 내 직감대로 이곳은그레이하운드가 자주 들르는 곳이 아니랜다
내 예상이 적중했지 이놈 들이 나를 이곳에 떨구고 도망 갈려고 버스 운전사와 여러 놈들이 서로 작당을 하여
그레이 하운드가 원래 잘서지 않는 곳에서 장난을 친건지 이제와 확실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70% 이상이라 생각든다
나는 70가까이 되어 보이는 미국 백인 노신사 부부의 도움으로 폴리스가 올때 까지 기다렸다
얼마후 폴리스가 도착하자 노신사 부부는 경찰에게 열심히 나의 사정을 설명 하자 경찰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 였다 노신사 부부에게 탱큐 베리머치 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경찰차 뒷자석에 타자 경찰차는 어디론가
출발 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경찰차에 일단 타면 경찰이 차문을 열도록 허락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아무리 열라고 해도 자동으로 잠금 장치가 되어 있어 못연다는 것을
어느정도 달리자 버스가 잘 정차 하는 곳이라며 가르킨 곳은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널드가 아니고 일종의 미국식당 이었다 나를 세워 주더니 잘가라며 굿럭 그러며
자신도 군시절 한국에서 군무 했다며 한국말도 조금하며 내가 돈이 없어 보였는지 고맙게도 나한테 20불을 주며 밥이나 사 먹으며
버스를, 기다 리라고 하네 나는 처음에는, 사양 했지만 그냥 내 주머니에다 20불을 집어 넣으며 미국 경찰은
경찰차를 타고 출발 했다
나는 백인 경찰이 얼마나 고맙 던지 또 백인노신사 부부도 마찬 가지로

눈물이 날 지경 이었다 나는 탱큐라고 고마움을 표시 하고 24시간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 할걸 사면서
여기에 그레이 한운드가 서냐고 물어 보니까 온다고 하길래 마음을 가라 앉히고 서서히 안정을 찻기 시작했지 다행이도 나는 신시네티행 그레이 하운드티켓을 가지고 있었지
우여 곡절 끝에 저녁늣게 신씨네티에 도착하여 식당에 전화 하니까 얼마후 사장이 픽업 하러 나왔는대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 있는 리큐어 에서 그렇게 일하다 다시 뉴욕플러싱으로 돌아와
다시 오랫만에 플러싱에있는 월드소개소에 찻아가니 오랜만 이라고 나를 반겼지 내가 일자리가 있냐고 문의 하자 보스톤 근교에서 일식 식당에서 디시워시 자리가 있다고 해서
소개비 200불을 주고 가기로 했어
그리고 보스톤 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느덧 그해 1999년 11월 중순에 접어 들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한국이나 일본 이나 미국이나 겨울은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살을 추위의 고통의 고통이
삶의 힘든 무게를 더욱 느끼게 했다 특히 나에게는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뉴욕의 겨울은 서울보다 혹독히 더욱 추웠고 길었어 아무것도 의지 할것없이 망망대해를 홀로 떠도는 돗단배 처럼
운명의주사위에 몸을 내던지며 살아왔지 군을 제대하자 집과. 땅은 다팔아서 이복형들이 끼리 놔눠가지고 나에게는 한푼도 없었고 오고 갈때가 없어도 말한마디 못하고 열심히노력하면
잘살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길을 떠났지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너무나 순진했어 그리고 당시는 세파의 때가 묻지 않았던 상태라
지금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지 어디 뭐무를 수 있는 방 한칸 이라도 얻을수 있는 돈인라도 달라고 해서 받아 냈었으면
나이도 어리고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얻어서 살아갈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최소 9급 공무원은 합격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리고 당연히 내가 받아 냈어야 하는데
당시 순진한 나는 내가 열심히 일하면 알마든지 잘살수 있다고 생각했어
소도 언덕이 있어야 가려운 등을 비비는데
그런말 한마디 못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는데 돈이 없어서 공원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됐어도
이복형들을 원망하려 하지 않았어 만평이 넘는 땅 다팔고 그돈으로 지들 대학 나오고 사업 밑천 하고
시집 장가 가놓고 거기다 어머니 명의로 돼있는 얼마 안되는 집과 땅까지 뺏어서 팔아서 나눠 가지며
나한테는 한푼도 없었어
숙식제공 하는곳을 찻다보니
그당시 동대문 이스턴 호텔 부근사무실에서 강원도 태백에서 광부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찻아가 청량리역 에서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를 타고 여럿 이서 내려 갔었는데 막상 내려가서 지하수백m가 넘는 막장 광부로

92p-일을 할려니 망설여 지더라고 당시 한참 힘쓸때라 일이 힘들기 보단 젊디 젊은 놈이 인생 경험도 해보지 못하고 막장에서 매장대는 것이 아닌가
더욱 기분나뿐건 내가 죽으면 보상금은 다 이복형 들이 가져 간다는 생각이 분노를 일으켰지
절대 그런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광부를 하느니 그보다 덜 위험한 배를 타자 내가 해군 제대를 했으니 상선을 탈수도 있고 지긋지긋한 한국을 탈출 할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선원이 되기로 했어 당시 부산 영도에 있던 해기사 양성소 국비 한국 해양 어업기술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중 일환으로 북대서양 유자망을 3개월 타고 내린 경력도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 안나는데 가는데 15일 가까이 걸린것같고
또 오는데 15일 가까이 걸린것 같은데 실제 조업한 날짜는 채 2달이 안된걸로 기억해
부산 중앙동에 동지상선 이라는 곳을 찻아가서 해군출신 이고 부산 어업기술 훈련소 에서 공부하며 유자망 3개월 경험이 있으니
당시 부산 영도에 어업기술 훈련소 해기사 양성소는 숙식제공 하고 2층 으로된 개인 나무 침대로 된곳에 잠을자고 식당에서 밥을먹고
공부를 가르키는 곳이 었었다
6개월 기간에 3개월은 이론 공부 3개월은 유자망을 타고가서 실습경험을 하는곳인데 해군 전역당시 이곳에서 훈련생을 가르치는 해군 선배가
이런 곳이 있다고 홍보하여 알게 되었는데 당시 훈련생 중에 자칭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다는 성경책을 영어로 된것을 읽는 사람도 있었지

이런사람이 뭐하러 이런곳에 왔는지 모르지만
잠시 바람세러 온건지 훈련생 중에 전직 해군 대위 출신도 있었지
전직 해군 대위는 이론 3개월 간은 모습이 보이 것 같은데 그후 해양실습 선에는 배를타지 않았다
배가 북대서양으로 출발할 때는 북해도를 지나서 갔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지 일본땅을 전혀 구경할수 없었는데 3개월 해양 실습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해로를 갈때와 전혀 다른 해로로 와서
일본 해안가가 비교적 가까이서 보이는 곳으로 항해하여
일본 시모노세키 하관다리를 통과 했는데 당시 다리가 배가 통과 할때는 올라간것 같은데 오래되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당시 시모세끼 하관다리를 통과하여 부산항으로 실습선은 입항했다 그게 1991 년도 이다 하선후 바로
서울로 올라 왔는데 배가 갈때는 몰랐는데 올때는 어선 선원들이 보기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
3개월 북태평양 유자망 실습선을 그때 처음으로 어선을 탓는데 우리는 훈련생 이고
유자망은 아마 지금은 없어 졌다고 하는데
고기잡는 선원이 따로 있었음 에도 훈련생인 우리들도 힘들었다
그후 부산 중앙동 동지상선 사무실에 찾아 가서
이젠 상선을 타고 십다고 얘기하자 나이도 어리고 해군출신 이고 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허락를 받았는데 사무실 직원이 해군 출신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부드럽게 대하며 나이가 어리니까 공부에 취미가 있다면
지금부터 고시공부 해도 되지 않겠냐며 기분좋게 말하는데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속으로 나도 여건이 되면 고시공부 하여 공무원이 되어 좀 편하게 살고 십지만 지금 당장 어디 기거 할때도 없는 내게 고시 공부는 사치라고 어느정도 돈을 번다음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여러가지 서류를 주는걸 받고 또 사무실 직원이 내가 구비할 서류를 가르쳐 주고
서울 아현동 에 있는 사무실로 찻아 가라고 하여 전화번호와 약도를 가르쳐 줘서 그후 모든 서류를 구비해서
서울 아현동 사무실에 찻아가자 경리 아가씨가 당시 미스송 이었는데 나를 반갑게 맏이하며
정성것 여러가지 설명을 나에게 하여 1992년 1월2일 짐을 챙겨서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로비로 나오라고 했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김포공항 국제청사로 찿아가자
5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신사복 차림의 동지상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파나마 선원수첩과 나고야행
아시아나 티켓을 내게주며 내가 알아야 할 간단한 공지 사항과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면 일본인이 마중나와 있을 것 이라며
안심하고 잘가서 일 열심히 해서 돈벌어 오라고 하자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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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수속을 받으로 출국장 안으로 발거름을 옮겼다
생애 처음 가보는 일본 나고야 그렇게 나의 첫 해외 떠돌이 인생이 시작 된거야
동지상선은 일본회사로 본사가 일본에 있었고 부산 중앙동과 서울 아현동에 있는 사무실은 동지상선 한국지사 였다 그리고 내게 주었던 파나마 선원 수첩은 그 당시 국제 해사기구 에서는 해양오염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사는 나라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세금을 적게 낼려고
제3국가인 파나마 국적을 일본 동지상선 오너들이 잔머리 굴려서 돈을 주고사서
파나마 선원수첩을 갇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나는 동지상선을 탈때는 파나마 선원 수첩을 신분증으로 사용하고 그외 동지상선을 내려 한국에서 일본을 가거나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 올때는 한국 선원수첩을 여권 대신으로 사용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한국 선원수첩 파나마 선원수첩 두개를 보유 하게됐다
나고야 공항에 도착 하고 보니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인은 일본입국 수속이 여간 까다 로운게 아니였다
한국인이 쭉 줄을 서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걸 보고 나도 뒤에 서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그 광경을 목격 했는데
한국인 입국자 에게 상당히 불성실 하게 대하며 꼼꼼히 따지며
여간 까다롭게 입국 수속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걸 보면서 나도 같은 한국인으로 은근히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빠 지는 순간
내 근처로 30 초 중반으로 보이는 일본인 남자가 나를 어떻게 알아 봤는지 모르지만
내 이름이 영문으로 새겨진
팻말을 들고 어늘한 한국말로 내 이름을 외치며 외국인 입국수속 줄에 순서를 기다리며 서있는 나에게 찾아와 맏냐고 확인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맏다고 하니까 따라 오라고 했다
그래서 따라가니 공항 출입국 직원과 일본말로 뭐라고 간단히 떠들더니 나는 간단히
바로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봉고차가 서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자
나는 중년으로 보이는 먼저와 있는 한국인 남자 2명을 목격 하였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해양 대학을 나온 한사람은 선장 이었고 한사람은 1항사였다
나하고 혹시 같은 배를 타게 되는가 물어보자 그 사람들은
나하고 다른 배를 탄다고 했다 봉고차 에는 입국장 에서 나를 데려온 일본인 남자와 여자 친구인지 일본여자가
앞좌석 에 타고 한국인 일행 나까지 3명은 뒷좌석에 탓다
봉고차는 일본 고속도로를 타고 나고야 공항에서 약 2시간 거리인 항구 도시인 요까가이치로 향하였다


이런저런 지나간 내 인생이 무언중 떠오르며 지난 추억을 뒤돌아 더듭는 순간 어느덧 시간이 한참이 지났다 잠시후 일식집 에서 사장이 픽업을 나왔다 보스톤 그레이 하운드 역은 당시 동양인은 간간히 보이며 그외 흑인 히스패닉도 있었지만 당시는 백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수 인것 같았다 기가막히게도 같은 동양계라도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은 느낌과 스타일이 틀려 한국인이 나를 픽업 나왔 다는걸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보스톤 그레이 하운트 터미널 에서 일식집 사장 승용차를
타고 출발 했는데 일식집 에 도착 하자 오래되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일식집 이름이 미소네 인가 미소시루 인가 동네 이름은 기억이 안나고
아직 저녁 장사가 채 끝나기 전 이었다 나는 식당 카운터에 있던 식당 주인 부인과 인사를 하고
일하던 웨이츄레스 들과 간단히 목례를 했지 식당 테이불과
스시바 의자에는 아직 손님들이 드문 드문 있었다
웨이츄레스들은 일본식 기모노 옷차림 비슷한걸 입고 손님 들에게 써빙을 하고 있었다
사장 부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40대 중 후반으로 보였어 어쩌면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수도 있었다 식당 근처에 있는 기숙사는
식당직원 들이 일이 끝나면 나를 데리고 갈거 라며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일이 끝날때까지 옆에 있는 맥도널드 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식당 영업이 끝나면
숙소에 같이 주거할 직원들이 그리로 갈거라고 해서 나는 맥도날드점 에서 빅맥과 콜라를 시켜서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한국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성이 맥도날드에 들어 오더니 나에게 반갑게 인사 하는데
그 아가씨는 성이 정씨인 당시 23세의 여자 유학생인데 식당에서 웨이츄레스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맥도널드 에서 좀더 기다리자 젊은 한국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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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p-나를 반갑게 맏이하며 같이 가자고 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히스패닉 3명도 있었지 그 사람들은 에콰도르 출신 이라고 했어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은 주방장이었고 2명은 주방보조 였다
한국인 남자는 스시핼퍼 였고 서울 출신 으로 하는 말로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생 으로 미국 왔다가 그냥 정착 하여 살려고 스시를 배우는 중이라고 했어
나이는 28세로 그당시 나보다 4살 어렸어 그렇게 우리일행 5명은
기숙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어
기숙사는 식당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일반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어
나와 스시맨은 아래층 에서 각각 독방을 쓰고 에콰도르인들 3명은 2층으로
올라 가던데 그들은 방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 2층을 가보진 않았으니까
내방에 들어가자 TV와 비디오가 있었고 비디오테이프가 여러게 있었다
그중에 타이타닉이 있었어 그래서 나는 그걸 비디오로 영화 감상을 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저명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타이타닉호를 직접보자 진짜 재미가 있었다
무일푼 떠돌이가 타이타닉호 티켓을 그것도 카드게임 으로 따서
극적으로 타이타닉호 3등석에 승선하여 VIP실의 상류층 여자와
엄청난 방해에도 불구하고
촟불같은 짧은 만남으로 슬픈 운명적 사랑을 하는
가상 현실로 만들어낸 영화지만
충분히 드문 일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있음직한 일이기에
흥행에 성공한 것 같고 팩트만을 추구하는 나의 구미에도 당기는 그런 스토리였다
그렇게 타이타닉호를 비디오로 처음보고
감명을받은 채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도 그런 감명적인 아름다운 상류층 여자와 사랑을 꿈꾸며


(참고자료-화상기법을 통해 살아나는 부활의 의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 -2012년4월29일 평화신문 -서석희 신부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과거로의 시간여행 회상기법 -
이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전개 되는 회상은 영화 제작에서 과거 회상기법 플라시백 (Flash back) 이란 이름으로 전형적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를 시점으로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 모습을 보여 준후 다시 현재
로 되돌아 오는 방식 이다 흔히 옛날 예적에 저 언덕위에 있는 성에 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플래시백은 서스펜스나 스릴러 영화의 주된 장치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인상 적인 체험 또는 교훈적인 삶의 주인공에 대한 회상 장치로 등장 하기도 한다
이렇게 플레시백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기법은 성경복음 저자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능력을 총동원해 역사 속에서 체험된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방법과 유사하다고 볼수있다 복음서 들은 원래 텍스트가 아니였다 오히려 예수님 제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에 관해 질문하는 2세대 그리스도인들
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이렇게 유래된 텍스트의 형태는 이면적 서술 즉 사건들이 일어난후 서술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한 복음사가 들이 복음을 기록할때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해보자 그들은 자신들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그리스도를 기록하고 또 그 기록을 더 분명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실제로 예수님을 만남 사람들을 만나 봤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벼랑끝에서 예수님을 만나 새삶을 시작했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와 꿈을 갖게 됐다는
사람에 이르기 까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 가르침을 예수님이 원했던 그대로 흉내내며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 몸짓을 보면서 그들 삶속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살아 움직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느낄수 있었을것이다 상상하건대 모닥불 주변에 앉아
과거회상기법을 통해 내가만난 그분은 이런분이었지요 하고 말문을 여는 사람의 증언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경청하는 복음사가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며 곧 메시아 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다 예수님 께서 기도하시며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세리와 식사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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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병자들을 낫게 하시고 빵을 많게 하시며 죽은이를 살리는 기적등의 이야기를통해 복음사가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나라 곧
하느님통치가 실현된다는 주제를 전하고자 했던것이다
바로 이러한 서술 방식을 가장 현실감 있게 받아들인게 영화다 영화는 플래시백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자주그리고 다양한 장르에서 이 기법을 활용한다
플래시백을 이용한 수많은 영화중 하나인 영화( 타이타닉Titanic 1997)을 보고 이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해보자
복음사가의 서술방식 회상기법과 유사
짧지만 강렬한 만남 삶 기억으로 남아 신앙도 체험으로 예수그리스도 느껴야
누군가에 시작된 새로운 삶
1997년 개봉된 놀라운 흥행 기록을 세우며 찬사를 받았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은 벼랑끝에 내몰려 절망에 빠졌던 한 여인이 누군가 내미는 손길을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는 절망과 구원이라는
플롯의 구조를 담고 있는 영화다 관객인 우리는 영화속에서
푸른 다이아 몬드를 찾는 탐험가 들과 함께 101살된 로즈라는 이름의 할머니 주변에 앉아 할머니가 86년전에 타이타닉호에서 만나고 체험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플래시백을 통해 생생하게 타이타닉 선상 위에서 로즈가 체험했던 과거를 공유하게 된다
귀족 가문이 었지만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어머니의 강요로 부자인 칼 허클리와 마음에도 없는 약혼을 하고 타이타닉호에 탄 로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배 후미에서 바다로 뛰어 내리려 한다 이렇게 만난 그는 로즈에게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참다운 자유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해가는 상황에서 로즈에게 앞으로 그녀가 원하는삶 그녀가 살아야 하는 삶을 꼭 살기를
당부하면서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키고 보호하다가 마침내 죽는다 말하자면 그는 그녀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그리고 86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 할머니가 된 로즈는 예의도 없이 속물처럼 푸른 다이아 몬드를 찾는 영화속 탐험가들과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그에대해
고백한다 이제 여러분은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의 목숨을 구했을뿐 아니라 내영혼까지 자유롭게 해준 분입니다
비록 그의 사진한장 조차 없지만 여전히 그는 제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카메라 움직임을 따라 그녀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말해주는 빛바랜 사진을 둘러보면서 그녀가 지난 시간들을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 하며 살아왔는지를 보고 비록 사라 졌지만 여전히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그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동시에 셀린디옹 이 부른 영화 주제가 내게 여전히 살아있는당신 MY Heart will Goon-은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순간의 짧은 만남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아무리 시간과 공간이 그 만남을 가로막아도 그녀는 매일 매일 그를 만나고 느낀다는 것 즉 여전히 그는 그녀의 삶속에서 살아있다
-MY heart will goon)

이제 한참을 건너서 미래로 가볼까
2004년 1월경에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제주도 누나가 살던 곳을 당시는 알아 찻아가 잠시 머물다가

2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어느정도 생활하다 셋째 이복형을 전화로 불러서 만나자고 했다 잔뜩쫄은 셋째 이복형은
내가 만나자는 약속장소로 나왔다 커피를 시켜 먹으며 넷째 이복형 있는 장소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바로 서울노원구의 아파트 단지를 가르쳐 주며 찻아가 보라고 했다
노원구의 아파트를 찻아서 넷째 이복형 집문에 서서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계속 연거푸 눌러도 아무 대꾸가 없자 일가족이 놀러 갔구나 생각하고 나는 아파트 출 입구가 잘 보이는 공원 벤치에서
넷째 이복형이 올때 까지 대기 하기로 했다

96p-넷째 이복형과 형수는 성균관대 야간 영문학과 동기 동창으로 대학교에서 연예 하여 결혼해서 사내아이 둘을낳고 살고 있었다 결혼식은
당시 신설동에 있던 결혼회관 에서 1992년에 했다 나도 축하해 줄려고 결혼식에 참석 할려고 양복을 입고 갔는데
나에겐 식당가서 일좀 도와 달라고 하며 식장안 으로는 들어오지 말라고 형이 얘기하는데
결혼식 열리면 나도 기념촬영 하라고 부르겠지 생각하고 열심히 하객 들에게
음식을 날라줬지 시간이 지나도 부르지 않네 결국은 결혼식이 끝났다고 그러 더라고
지금 갔았으면 화가 치밀어 분 풀이로 난동 이라도 부렸을 텐데
아니지 지금 같으면 아예 찾아 가지도 않았지 저놈들은 처음부터 날 약올려 염장질 할려고 하는 남보다 못한 원수같은 것들인데 당시는 어려 세상을 너무 순수하게 만 내 마음 같을 줄 잘못 해석 해서 당한 거야 내가 뭐하러 결혼식에 참석 하겠냐
당시엔 마음이 너무 순수해서 저런 교활하고 더러운놈들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조롱하며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쾌감을 얻는 쓰레기 들일꺼라고 나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참석하여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조용히 넘어 갔다
결혼식장 에는 처음부터 나는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것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수모를 당하게 만든건데
나는 아무리 입장이 바뀐다고 해도 치사해서 그런 짓 거리는 절대 못 하는데 내가 착한건지 멍청한 건지
아무튼 계속 나만 당하는거 보니 내가 멍청하고 저 놈들이 나보다 잔인하고 교할 한것은 사실 이겠지
슬픈 일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동물의 세계에 약육강식의 솔찍한 본 모습 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지난 어린시절 1984년 고등학교 1학년때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와 같이 제주도로 내려가자 누나가 마중나왔다 누나는 당시 신제주에 있는 챔피언 나이트크럽을 총 관리하는
책임자로 있었다 그래서 아는사람이 많았다
나를 제주 제일고에 전학을 시켜주며

누나를 잘아는 사람이 담임선생 에게 최고급 양주를
선물 하는등 해서 담임선생이 나한테 잘했어 남한 고등학교 1학년때
제주 제일고등학교로 전학한 것은 당시 누나가 잘아는 세기건설 간부급으로 있는 사람이 힘을 써서 그랬다고
어렴픗이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 것 같다 (제주일고는 제주인에게 자부심 그 자체로 최고의 명문 이었다
82년도 원희룡이 전국 한력고사 전체 수석을 한적이 있고 84년도 학력고사 전체수석 이미령은 자연계 역사상 여학생으로 처음으로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이미령은 서울 미림여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전체수석은 서울 미림여고 여학생이 하고 제주 제일고 출신 송현주가 자연계 남자수석을 차지했다

제주일고 출신으로 자연계 남자수석을 차지한 송현주는 경상도에서 어머니를 따라 제주도로 이사와 비교적 어렵게
사는 사람 이라고 TV에서 고 이주일씨가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 삼다도라고 했는데 공부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줄 몰랐다고 방송에 이미령씨와 송현주씨를 불러놓고 이주일씨가 말하는걸 들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
그러나 여동생의 죽음을 잊지못하고 더불어 사춘기의 반항 때문인지 공부에 전혀 의욕을 못느끼고 중간에 자퇴했다 그리고
방황하며 세월만 축 내고 있었어 근데 86년도 11월20일이 지나서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나는데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전화 연락을 누나가 받고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 시더라고 나는 뭐가 슬퍼서 우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
어머니 와 누나는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 하라며 나보고 가 보라고 그래서
나는 가기 싫다고 그랬다
그래도 그런게 아니라며 가보라고 그래서 비행기를 나 혼자 타고와서 참석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도 공부를 해야 겠다 생각하고 3개월만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지 근데 넷째 이복형이 세종대학 무역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 해서
전역 하여 공무원 시험에 합격 하여 대기 발령중에 다시 대학을 들어 가겠 다며
공부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대학을 포기했다
넷째 이복형은 그 다음해 성균관대 영문학과 입학해서 같은과 이쁜 색시도 얻었다
야간대학이라 실력없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줄곧 장학생 이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확인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97p-어짜피 모자라면 지들 형제들 끼리 대학 등록금 과 경비는 당시 어머니 명의로 대어있던 집과 땅 팔아서 냈겠지 생각하며 돌아가신 어머니하고 나하고 뭘 잘못 했길래
저런 개 돼지 들이 먹이를 주면 사이 좋게 나눠 먹을줄 모르고 으르렁 대며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워 사료가 난장판이 되듯 저놈들 욕심에 실컷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하니
분노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허기야 정글에서 풀만뜯는 사슴이 무슨죄가 있어 하이에나나 사자의 먹이가 되겠나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활하고 잔인한 놈들에게 먹이가 되는게
살아 숨쉬는 동물들의 약육강식 법칙이 아니더냐

이런저런 생각을하며 넷째 이복형을 기다리며 아파트 내에 설치되어 있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기다리며
이것들이 오늘 쉬는 날이라고 어디 멀리 가족여행 가서 안들어 오는게 아닌가
생각하며 저놈도 어릴때 초등학교 때까지 오줌을 이불에 자면서 싸서 어머니를 생고생 시킨 놈이야
그걸 생각 해서라도 조금만 도아 줬어도 한국까지 안와도 되는데 내가 미국가서 사는게 배가 아픈지 결국 나를 한국까지 오도록 만든 니가 도와주지 않아 책임을 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몇시간 지나지 않아
검은색 승용차가 보이는데 운전석에 넷째 이복형과 형수 모습이 보였다
뒷좌석에는 사내아이 둘이 타고 있었다
이복 형제들 중에 가장 멍청한 그래서 돈이 가장 없는 첫째이복형 부인 고향은 정읍이고
둘째 부인은 서울 수유리 라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딸 하나 낳고 이혼 했다고 한다
셋째 이복형 부인 고향은 충청도인데
가장 미스테리는 이 넷째 이복형 부인 인데
성균관대 영문학과 야간으로 같은 학년 같은과 에서 만나 공부하다
연예하여 결혼했다고 하는데 서울 말씨를 쓰는데
넷째부인은 얼굴을 두어번 짬깐 만나 본적 뿐 그후 거이 만나 본적이 없어
정확한 고향이 어딘지 몰라 서울에서 태어 났는데
부모는 이북 이란 얘기도 들은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나는 차가 정차되서 넷째이복형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빠른 거름으로 승용차를 뒤 따라 가자
잠시후 차는 아파트 현관문 입구 근처에 주차하여 이복형 과 형수 조카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보자 놀라는 표정 이었다
마치 떫은 감을 씹은 표정 이었다 형이 떫분 표정 으로 여긴 뭐하러 왔냐고 하길래 내가 여기 오면 안되냐고 하며 서로 시비가 붙자 형수는 얼른 어린조카 들을 아파트로 들여 보냈다 넷째 이복형이 내게 문전 박대를 하자 내가 화를 내자 형수도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나는 형수와 애들이 있는대서 싸울순 없다고 생각하고 형수는 여기서 빠지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넷째 이복형도 형수 보고 들어 가라고 하자 형수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후 내게 다가오며 욕을하며 주먹질을 하자 내가 힘으로 막으며 제지했다
넷째 이복형이 나한테 이길수가 없자
갑자기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 나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왼쪽바지 주머니에서 잭 나이프가 순간 손에 잡혀
찌르자 피를 쏟으며 비틀 거리며
도망 가기 시작 했다 나는 쫏아가서 몇 번 더 칼로 찌른것 같다
그러자 넷째 이복형이 제발 살려 달라며 애원 하자 그제 서야 나도 정신이 들었는데
순간 놀라 손에 들었던 칼을 그 자리에서 던져 버렸다 넷째 이복형은 피를 쏫으며 쓰러져 있었다
아직 해가 떨어 지지 않은 낮에 아파트 에서 벌어진 일이라 지나가는 행인 몇몇이 목격 했다
나는 빠른 걸음 으로 사고 현장을 빠져 나오며 뒤를 돌아보며 쳐다보니
사람들이 넷째 이복형을 둘러싸고 웅성 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뒤로 한채
전철역을 찻아서 급히 몸을 움직 였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경로석 자리에 아무도 없길래 빈 의자에 앉자서
그제야 내 모습을 살피니 하얀 반팔 티에 조그만 물방울 만한 피가 튀긴 자국이 여러 군데 보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98p- 전철 안에는 사람 들이 생각 보다 훨씬 적었다 주변에 다른 곳에 의자에 앉은 사람 들을 살피자 사람 들도 신기 한듯 내 모습을 힐긋 힐긋 쳐다 보는 것 같았다 그건 내 생각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사람 들은 나에 대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다행이 피는 많이 묻어 있지 않았다 작은 물방울 같은 모양으로 몇 군데 조금 묻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페인트 칠하다가 조그만 물방울 같은게 조금 묻은 정도로 밖에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저 사람들은 이게 빨간색 페인트 인줄 알거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목적지 까지 와서 피 묻은 티를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었다
한 일주일후 셋째 이복형 에게 전화하니 죽진 않았으니까
나보고 자수 하라고 권유했다 그 나마 다행 이었다
그래서 천호동 한 호프집 에서 셋째 이복형을 만나 자수하는데 서로 상의 하기로 했다 만나 자수 하는 부분에 대해 상의 하려 하며 시킨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형사 4-5명이 우루루 나에게 달려 들어 수갑을 채웠다
서울 노원 경찰서 강력계에 끌려 갔는데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형사가 무슨이유에서 인지 첫날은 늣은 시간이라
조사를 안하고 그냥 유치장 에서 자라고 보내며 내일 어떻게 조사 받을지 잘 생각해 보라며 조언 까지 해주네
다음날 아침부터 형사 들이 강력계로 데려가 조사를 하며 진술서를 작성 한 걸로 기억 하는데
경기 광주 경찰서 강력계 형사반장까지 했었다는 외사촌형 이름을 대며 외사촌 형이 맏냐며 반장급으로 보이는 어제 나에게 조언까지 해준 형사가 묻기에 그렇다고 한적이 있다
이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네 외사촌 형이 과거에 노원 경찰서에도 근무 했었나
그러고 보니 확인하진 않았지만 서울 어딘가 경찰서 에도 근무 한적이 있다는 소릴 얼핏 과거에 들은 기억이 나는것 같다 경찰관들은 여러가지 사정상 경찰서를 옮기기도 한다는데

서울 노원 경찰서 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 북부 지검에서 검사조사 까지 마치고 생애 처음으로 서울 성동구치소로 이송 성동구치소 에서 간단한 신입자 짐 검사 등을 하고 신입실 에서 몇칠인가 지나자
본 거실로 배실 받은후 검사 공소장을 받아보고 나도 놀랐다 내가 칼로 가슴 양쪽을 총
12번을 칼로 찌른걸로 나와 있더라고 물론 그거는 뒤집어 쓴거야 지금 생각하니 많이 찔렀어야 4-5번이야
당시 검사 조사 에서는 당시 검사가 진술 받지않고 조사계장이 진술을 받았는데 나에게 반말은 하지 않았고 인권을 비교적 존중하며 조사받은 기억이 난다
내가 상당히 많이 찔렀다고 언질을 주자 그 상황에서 어떻게 찌른 횟수까지 알수 있냐며
나는 정확히 모르고 나는 조사 계장이 많이 찔렀다고 하니 많이 찔러봐야 5-6번이 아니 겠냐며 진술한것 같은데 그래도 그 정도도 많이 찌른건 사실이다
내가 그걸 숫자를 계산 하면서 찌른것도 아니고 정확한 수는 잘 기억 안 난다고 했다
두번 다시 생각하고 십지않은 일이었다
그러한 심리현상을 해리현상 이라고 ( 해리성 기억상실증(dissociative amnesia)은 중요한 과거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중요한 개인적 정보를 몇 시간 또는 드물게는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특정한 사건에 국한된 제한적인 기억상실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애에 관한 전반적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 상식이나 지식과 같은 비개인적인 정보의 기억에는 손상이 없으며 언어 및 학습 능력과 같은 일반적 적응기능은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단기준
A: 해리성 기억상실의 필수 증상은 중요한 개인적 정보를 회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으로서, 이는 정상적인 망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것이며, 대개 외상성이거나 스트레스성이다.)
심리학계 에선 부르고 있다고 한다 큰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당시 너무큰 정신적 충격으로 상황을 잘 기억못하는 심리 현상 이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이복형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절대 찌르지 말았어야 했다
남들이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 그랬다
극도의 순간적인 분노와 정신적인 충격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 사건이 끝나고 난후 몆번을 찔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칼로 사람을 찌르는 극한 상황에서 그걸 일일히 숫자를 세는놈이
어디 있겠냐 1심에서 검사구형 7년에 법원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징역 5년을 선고하자
나는 성동구치소에 돌아오는 즉시 교도관에게 항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여


99p-항소하자 그후 일주일도 채 안되어 2심 재판을 하기위해 안양 교도소로 이송 되었다
안양 교도소에 도착하여 짐 검사 등을 마치고 거기는 신입실을 거치지 않고 미결수 사동으로 바로 배실되어
항소심을 기다리던 중에
교도관이 갑자기 검사가 여권법 위반으로 약식기소 하여 벌금 30만원 나왔다는 통지를 받고 확인 무인을 찍어 줬다 저번에 용산 경찰서 외사과 에서 조사받은 거였다
그후 살인미수 항소심 재판은
안양교도소 에서 서울 고등법원 에서 2심 재판은 판사가 징역 3년 으로 감형 시켜줘
상고 할까 하다 상고는 서류재판 이라 결정적으로 감형할 증거가 없는한 의미가 없다고 하여 하지않아
징역 3년이 확정 되었다
서울 성동구치소 에서는 내가 있던 거실의 사람들 끼리 설거지도 돌아 가면서 하고 방의 인원도 6-7명이었다
안양 교도소로 이송하여 거실을 배치받고 보니 건물도 낡았지만정원이 10명 안밖으로 보이는데 미결 거실에
당시 최대16명 까지 집어 넣는게 아닌가
화장실은 하나뿐 인데 성동구치소 에서는 같은 거실에는 조직.폭력배가 없었어
근데 안양 교도소에는 같은 거실에 깡패 3명이 있었다
제일 대장이 의정부 깡패로 39세 둘째가 부천애로 28세 막내가 밀양애로26세
나 에게는 힘들게 한적은 없어 사실 깡패들이 잔대가리가 잘.돌아가
지들 손해보는 짓은 잘 안해 괜히 순진한 나이 어린 애들 에게 공갈치는 거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아무 한테나 까부는게 아니야
나한테 까불었 다간 내 성질에 깡패 놈을 데리고 징벌 독거실로 데리고 간다는 걸
요놈들도 잘 아니까 내 성질은 안 건드리 더라고
그러나 같은 거실의 징역이 많아 재판에서 감형이나 형이 획정되도 가출옥 심사에 통과하여 빨리 출소 해야해 징벌을 받으면 안되는 나이 어린 애들 에게 치사하게 심하게 굴었다 빨래며 잡일은 다 개네들 한테 시키는 거야
내가 너무한것 같아서 한소리 해 줄래 다가
허기야 나도 저나이 비슷할땐 참 순진 했지 생각하며
스스로 알아서 깨달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간섭 안하기로 한게
지금 좀 미안하긴 하다 그 애들중에 한애는 24살로 살인죄로 인천 구치소 에서 1심에 징역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여기로 왔고 한애는 23세로 강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또 한애는 대학생 으로 대학가 에서 연쇄강간 으로 징역10년을 선고받고 항소중인 애들이지
당시만 해도 노무현 정권이라 이 정도 였다
지금은 법이 바뀌어 훨씬 엄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권때는 초범과 재범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틀렸다
이명박 정권들어 법을 바꾸어 교도소를 급수를 정해 나누었다
교도소중 특권층이 많이 모인 2급/교도소를 제외한
3-4급. 교도소 환경은. 미국.교도소 발.바닥도 못따라 가면서 이명박 정권 들어와 형량은 미국 따라 가느라 엄청 엄해 졌는데 미국은 공갈 형량이 많아 50년형을 선고 받아도 10년만 살고 가석방.으로 나오기 쉽게 제도가
되어있는 반면 한국은 받은 형량을 아무리 생활을 잘해도 특권층 말고는 3분의2 이상 살아야 힘들게 가석방 해택을 받을수도 있다
깡패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징역이 얼마 안되는 애들이었다 주로 공갈 협박등으로

비교적 징역이 적은 애들이 다수였다 아무튼 나이어린 3명은 깡패들이 잡아 돌리 더라고 그 외에도 주변에 몇몇 바보같은 놈들도
깡패 3명에 종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초범 들과 재범들을 분리해서 수용해서 초범들 특히 나이어린 초범들이
양아치들 에게 손님 잡혀서 그런 경우도 있고 재판에서 징벌이 없이 생활을 잘하면 판사에 따라 형이 1년 이상 감형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참는 애들도있고 초범들이라 가석방 혜택이 많은데 싸우거나 다른 이유로 징벌을 받으면 독방에 끌려가 고생하고
가석방 혜택에서 제외되니까 가석방으로 일찍 사회에 출소 하려고
참는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불의를 못 참는다 그러니 이런 양아치들이
나 한테는 비유를 잘맞쳐 주더라고 그래서 남의일에 관여 할수도 없고 또 재판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해 12월22일 2심 선고 재판이 끝나고 돌아와 밥먹다 짜증이 나자

100p-밥상을 뒤업고 난동을 부리자 다른 거실로 전방을갔다 징벌을 받아야 하는데 나와 다툰놈이
깡패고 둘다 독방으로 가서 징벌을 받아야 하는데 얼마 안 있으면 나는 확정 방으로 전방 갈게 확실하고 깡패 놈도 상고하여 서울구치소로 이송갈게 확실하기
때문에 둘다 독방에 보내면
따로 독방으로 가서 징벌을 받아야 하기에 방에 있는 양아치들이
중재해서 교도관 에게 신고 하지 않고 전방갈때 까지 없던 일로 하자고 나에게 제안하여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징벌조사를 안하고 나만 다른 거실로 옮겼다
어짜피 확정되어 미결 거실을 곧 떠날 수순 이었다

그렇게 다른 거실로 옮겨 얼마안 있다가 미결수에서 형이 확정 되어 미결수 복을 벗고 정식 죄수복인 기결수 복으로 갈아 입고 기결수 거실로 다시 전실을 갔다 그게 2005년 대략1월26일쯤 됐어
내가 기결수 거실로 넘어 오기전에 먼저 있던 미결거실에서 난동을 부려
다른 거실로 왔는데 거기 에도 강패3명이 있었어 수원 부천 강릉 그런데 당시 나에게 깡패들이 이상하게 잘했어
당시만 해도 강원도 강릉에는 고등법원이 없는지 항소하면 안양 교도소로 이감와서 항소 재판을 받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제주도에 살고있는
이부 누나의 남편이 나에겐 매형 되는 사람이 건달 출신 이라는 거야 저녁에 잠을 자는데 수원 깡패하고 부천 깡패하고 늣게까지 잠을 않자고
지들끼리 수군수군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미국에서 한국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그렇게 많았었다며 하고 지들끼리 조용히 수근 거리는게 아닌가 저것들이 누구보고 그런건지 왠지 금금했다 그게나를 뜻하는건
아닐까 왠지 직감으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도 이상한것 같았다 저놈 들에게 그게 나냐고 물어 보면 그들은 당연이 아니라고 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물어보는 나를 미친놈 취급 할수도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니 굳이 신경쓸 필요도 없으며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게 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남들이 들으면 과대망상 환자로 취급 할수도 있겠다는 우려로 아무 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 유학온 한국 여대생들 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 소리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
그러니 나를 지칭해서 말하는 소리가 아니 겠지 생각하며 넘어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까지도 그 소리의 깊은 내막을 내가 알수는 없었다
못 들은척 하며 크게 신경 안쓰고 잠을 자고 확정되어 기결 거실로 얼마후 옮겼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 받을때 미결 거실에서 밀양 깡패가 내가 몇형제의 몇째이며 하는 나의 가족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부누나와 매형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왔을때 우연히 몇마디 주어들었는데 제주도에 있는 나의 이부누나의 매형에 대해서 밀양 깡패가 지보다 나이가 많은 의정부 깡패에게 깍듯시 형님 대접을 하며 설명하다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멈춘 적이 있었다

나의 가족관계에 대해
나는 한번도 거실에서 얘기 한적이 없는데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답변을 안해주며 이상한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밀양깡패 이놈이 나한테 잘했다 그래서 외가 쪽으로 대구에 살던 돌아가신 큰 이모 아들 외사촌형 들이 손씨이고 이놈도 손씨인데
외사촌형 아들이 둘있고 딸이 하나인데 얼추 계산해 보니 이놈은 아니야
그런데 둘째 이모가 중국에서 비자 브로커 노릇하는 외사촌 형을 낳고 우리집 바로옆에 와 여관을 짓기전에 먼저 경상도에서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은 전력이 있다걸 나는 들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밀양 어딘가 에서 산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오래전에 가물가물 나는데
그 놈이 혹시 나하고 외가쪽으로 외사촌 관계라 나의 신상에 대해 정확히 아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놈에게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도 말을 하지 않아 더욱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부분은 나의 형편상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나중에 돈을벌어 형편이 나아지면 금금한 부분 이니까 진위여부를 확인해 볼것이다
기결수 복으로 갈아입고 거실을 옮겨 확정 거실로 옮기자 그곳은 쇼핑백등 봉투를 접어 업자에 납품하는 작업거실로 작업 댓가로 한달에 돈 만원 정도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 지원해서 간건 아니고
무작위 거실 배치로 가계된 것이다
그곳 작업거실 에서는 당시 까지만 해도 종이에 카드를 만들어 거실 안 죄수들 끼리 우표 따먹기 포커도박을 많이했다 교도관이 보면 못하게 하니까
교도관 들이 오는지 망을 보는 사람 에게도 우표를 모아 주었어
교도관이 온다고 알려주면 얼른 판을 숨겼다
그리고 전국 노래자랑 출연하는 출연자들 나이 맛추기 스포츠경기 에서 승자 맛추기등 무료한 교도소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강도 재범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9년 이상을 살아서 형기가 한일년 정도 남아 있던 사람이 나에게 해바라기를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다
해바라기가 여자들 에게 인기가 있다며

101p-해바라기를 잡아서 그 안에 다마를 넣던가 실리콘을 넣던가 아무튼 자극적인걸 집어 넣으라고 했다 감옥에서 만드는 해바라기는 병원에서 만드는것 보다 차원이 틀리게 성능이 좋다고
나보고 꼭 이번.기회에 만들라고 건의하자 내가 만들.겠다고 하자
해바라기 6개를 만들었다 영치금 10만원 정도 먹을걸 사라고해서 그렇게했다
마취도 하지 않은채
바늘에다 실을 달아서 생살을 뚫어서 꼬메면 살이 썪어서 자동적으로
만들어 지는 해바라기 나는 해바라기를 만들기 위해 근 한달간 살이 썩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 해바라기가 어느정도 완성이 되가자 이감 명령이 아침에 갑자기 떨어졌다
나는 초범이었기 때문에 안양교도소 에는 있을수가 없었어 그래서 안양 교도소에 남아 있을려면 취사장 으로 지원 했어야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어
그러던 중에 그레이스 신 이라는 이름으로 누가 면회 왔더라고 처음듣는 이름이라 상당히 금금했어
면회장에 가보니 이복 형제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 이복 누나가 면회 온 거야 그리고 첫째 이복형도 같이 왔더라고 그래서 벌금 30만원좀 내 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그러데 근데 왜 성이 바뀐건지 물어 보려고 했는데
깜빡 잊고 거실에 돌아 와서야 생각이 났다 미국은 남편성 따라 간다더니
매형이 간암으로 죽자 딴 남자만나 재혼했나 보내 면회실 에서 나보고 미국에서 은행 다니는 지 아들이 뉴저지에 있는 교회 목사 딸과 결혼 했다고 자랑만 하네
2005년 3월14일 아침에 이감 명령이 떨어졌다 이감은 비밀이기 때문에 그날 아침이 되서야 알수 있다 나는 전라남도 순천 교도소로 이감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짐을 챙겨 거실 사람들과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고 포승줄 묶는 현장으로 가니 두번째 미결수방 에서 보았던 강릉 깡패도 순천교도소로 이감 간다고 했다
안양에서 순천 까지는 상당히 긴시간 이었다 중간에 공주 교도소에 들러 몇명을 내리고 죄수 호송 버스는 순천교도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내가 지난 시절 전라남도 광주 송정리 부근 마을에서 터널을 짓는데 방수공사 일하러 거기에 첫째 이복형과 민박집 에 머물면서 생활했던 기억들을 뒤로하고 광주를 지나 버스는 순천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순진해서 둘째이복형이 일하는 방수 회사에 거져 무일푼으로 일을 해줬다 당시는 너무 순진해서 그래도 형 일인데 돈을 달라고 내입으로 못하겠 더라고 또
어린시절이라 세상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고 모든게 다 잘되어 그깟 돈몆푼 받지도 못하고
이용 당하는건 신경도 안쓰고 한참 힘쓸 시절이라 힘도좋아 열심히 일했다
그 놈들은 저런바보 이용해 먹기 좋다고 싫컷 이용해 먹었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멍청한 짓거리 였다
둘째이복형은 서울 사무실에 있었고 첫째 이복형과 나만 광주에 내려와 방수 공사를 했다
순천 교도소는 리모델링 해서 그런지 깨끗했다 당시 느낌은 마치 새로지은 교도소 같았다 안양교도소 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사복티를 금지 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허용 하였다


(나는 대략 2003년11월경 쯤인가
처음엔 뉴욕에서 신문 광고를 보고 미시건 랜싱에 쇼건인지 지금은 식당 이름이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스시핼퍼로 일하기로 하고 왔는데 그 곳은 내가 미국에서 돌아다닌 숙소중에 최악 이었다
식당 길 건너편에 오래된 건물 2층에 방하나에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 당시 17나-18세 정도 라는
히스퍠닉 불법 채류자가 주방장을 했고 그놈 친구가 디시워셔겸 주방 핼퍼를 했다 일식을 간단하게
우동 댄뿌라 겨자 등 간단한 메뉴만 주방에서 나가게 하였는데
나이 어린놈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손이 아주 빠르게 일을 잘했다
비슷한 또래의 히스패닉 또 한명이 디시워시 하며 주방장을 도우며 일 했는데
두놈은 친구인지 방 하나에서 같이쓰고 나는 거실같은 데서 숙소로 썼는데
내가 미국에서 돌아다니며 방이 아닌 거실에서 생활 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숙소 건물도 오래되어 썩어서 형편 없었다
식당에는 한국에서 유학온 이쁘장한 유학생 아가씨 2-3명 정도가 번갈아 가면서

일했고 금요일 토요일 바쁠때 저녁장사는 다 나온걸로 기억하는데
백인 아가씨도 있었고 일본에서 유학온 아가씨가
한명 정도가 있었다
한국에서 어학연수 왔다는 20도 안되어 보이는 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는 자신의 집안에서 한달에 한국돈으로 500만원이상 보내 준다고 하는데 미시건 대학생이냐고 물어보니 아니고 어학연수 왔다고 말한걸 들은적이 있다

일식집 웨이츄레스는 그냥 심심 풀이로 나온건가 아니면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위해서 나온 건가

미국은 부잣집 자식들도 식당등 같은데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게 일상으로 존재하는 나라이다

당시 사장이 스시맨 이었고 내가 홀안에 붙은 스시바에서 스시핼퍼를 하다가
주방에 들어가면 어떨때는 주방에서 일하는 20세 정도나 됐을까 하는
한국 아가씨 유방과 엉덩이를 히스패닉 애들이 만지다가 놀래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야단을 치고
유학온 한국 아가씨에게 유방과 엉덩이를 만지면 성추행으로 죄로 고발을 해야지
그걸 받아주면 되냐고하며
사장에게 얘기하자 이미 웨츄레스와 히스폐닉 애들이 내가 오기전에 일끝나고
히스패닉 숙소에 같이 들어가기도 했고
쉬는 날에는 같이 놀러다니는 등 연애질 하는것 같다고 그러내
허기야 LA에서 어떤 한인 정보지 기사를 보니 한국에서
중소기업 사장딸이 미국 유학와서 외국인들과 클럽에서 만나 동거 하다가
에이즈 걸렸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난다
이제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권리가 있는데
히스패닉 애들이 한국 여학생 유방을 만지던 엉덩이를 만지던 당사자가
가만 있는데
지들이 좋아서 그런걸 내가 나설일은 아니지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 라는 말도 있듯시
인간의 최고의 쾌락이 성욕인데 연예질도 늙은면 재미를 덜 느끼지 그것도 젊을때 해야 최고 재미있는 거야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이어린 히스패닉 주방장이 적은 보수에도 일을 잘했고
주방에서 일하는 나이어린 히스패닉과 한국에서 유학온 여학생들과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눈이맞아 그런걸 내가 야단을 치고 난리를 피자
그일로 인해 그곳을 그만두게 되어
일도 얼마못해 돈도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뉴욕으로 다시 내려가기 보단
그 근처 다른 식당을 찾아 보다가 마침
그 곳에서 걸어서 대략 20-30분 정도 떨어져 있는곳에
미시건주 렌싱에 있는 미시건 유니버시티 대학교 내에서 99스시 인가 있는걸 그만두기 전부터 알고있어
그곳으로 걸어가 무작정 취직을 부탁하려 했다
기억이 오래되 가물가물 한데 그곳 사장이 한국 사람으로 들리는 말로는
미시건대 유학생 출신 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리도 들은적이 있는데
그 식당에 찾아가 취직을 부탁하자 운 좋게도 나를 고용했는데
그곳 숙소는 그곳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아파트 같은곳에
독방이었다 먼저있던 곳과는 숙소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식당주변 상점에서 사입은
미시건 유니버시티가 영문으로 새겨진 녹색 티를 가져가 입었다
내가 가본 미국 대학교 업스테이 뉴욕 이타카에 있는 코넬대학 이나
미시간 대학은 대학 안에 마치 도시처럼 식당도 있고 상점도 있고 별의별게 다 있었다
울타리가 쳐저있는 한국의 대학과 비교하면 엄청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작은 도시가 대학 과 공존하는 그런 모습처럼 대학이 곧 작은 도시처럼 넒은 공간에 여기저기 있었다
그런데 99스시 에서 일할때 식당홀안 에서 웨이츄레스 하는 미국시민권자 인지 영주권 재미교포 2-3세로 보이는 미시건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같은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손님인 백인이 프로포즈를 하니까
아이 라이크 홈리스가이 라고 그러며 거절하는 소릴 분명히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더 이상한건 당시 그 소리가 나를 지칭하는 소리가 아닐까 직감적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아가씨가 나를 좋아 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런말을 하는건 주어듣다니 회괴한 일이었다 당시로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또 그곳에 있을때 주방 뒷문으로 살짝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울때 스포츠카를 모는 백인과 히스패닉 혼혈로 보이는 젊은 남자놈이 거친 음성으로 영어로 욕을 하는데 받아주는 같이 타고온 돈좀 있는집 딸로 보이는 이쁘장한 한국계 아가씨가 같이 식당으로 들어 와서 얼굴을 본적이 있다
근데 이상한 것은 나를 찾는듯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던 모습과 주변 사람들과 뭐라고 떠들던 모습이.혹시 나에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잠시 생각이 날 정도로 이상한 기억으로 남는다
문제는 그후 2004년 한국에 돌아와 당시 서울시청 앞 공원조성 인지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당 일을 하러나가
일을하는데 갑자기 어떤 아가씨가 내 근처로 오는데 서로 잠시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 봤는데
2003년 11월경에 미시건렌싱 99스시 일식집에서 거칠어 보이는 히스폐닉계 백인젊은 남자와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와 식당에 들어와 내 얼굴을 쳐다 보듯하며 주변인들과 수다를 떨던
그 아가씨가 분명했다 그 아가씨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 였는데 서로 말을 걸진 않았다 그 아가씨는 서울시청에 볼일이 있는지 시청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하던일에 열중한적이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곳에 오래 일하진 못하고 다시 시카코 에서 발매하는 한국일보인지 중앙일보인지 아니면 벼륙시장인지 교차로 가로수 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자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한 기억은 안나다 오하오주 어디인가 그러나 분명한 기억은 식당 사장이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그곳의 무슨 대학 교수 였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분명이 난다
그리고 그 한식당 근처에 있는 대학은 주로 대학원 과정을 거치는 곳으로 특히 한국에서 방송국 PD들이 유학생으로 꾸준히 온다는 것과
그 식당에 웨이터와 웨이츄레스가 다 그 대학원 학생들이라 유학생 치고 비교적 나이가 있었다는 것과 그러나 당시 식당종업 유학생중에 방송국 PD 출신이 있었는지는 지금은 모르겠다
웨이츄레스 중에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이대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거치는 제법 섹시하게 보니는 여 대생도 있었는데 웨이터와 주방장의 말에 의하면
그 아가씨 얼굴이 점점 더 꺼매 지는건 흑인과 동거를 해서 그런것 같다고 하며
흑인은 디시워시 출신 이니까 반 농담삼아 나보고도 희망을 가지라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쉬는 시간인가 웨이터 중에 한놈이 지들끼리 모여 말하는걸 얼핏 주어들은 기억이 나는데
전부 다주어 듣지 못하고 일부 주어들은 내용은 뉴욕에서 거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부 못들어 생략하고 유명 하다며 맥주 한잔만에 얼굴이 너무 빨개져 금방 알볼수 있데나 어쩐데나 하면서 떠드는 소리를 전부 다 들을순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나에대한 소리 같은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가 순간 미친건지 저놈들이 미친건지 여기서 고속버스로 1박2일이나 떨어진 뉴욕에서 있을때 내가 누구한테 구걸한적도 없고
물론 내가 숙박비를 아끼려 공동묘지 의자에서 몇번 날발을 깐적도 있고
뉴욕 플러싱 왕만두 분식점 근처 월드 에이젼시 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상천 당구장을 지나서 좀더 들어가면 파라다이스 나이트크럽 인지 카바레인지 건물의
뒤쪽 구석의 빈공간에 고장난 트럭을 발견하고 여러번 잔적도 있다 아니 여러번 잔 정도가 아니고 여기저기 주로 미국 전역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식제공 하는식당등 기타 업소에 일을하러 갔다가
해고를 당하던 내가 그만두고 오던 간에 거이 다시 새로운 일자리 정보를 알기 위해선 플러싱이 최고라 플러싱으로 다시 왔을때
비싼 민박비를 아끼기 위해 파라디이스 나이트크럽 뒷쪽 구석에 쓰레기장 있는곳에 사람들이 통행하지 않는 공간에 있는 들어가는 방향에서 오른쪽에는 낡고 오래된 운행이 불가능한 고장난 트럭이 있었고
왼쪽엔 역시 오래된 고장난 봉고차가 있었다 그후에 가보니 봉고차에 미국 홈리스가 자고 있어 옆에 있던
고장난 트럭으로 자리를 옮겼다 는데
그 트럭은 들어가서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 문을 열수없는 잠금 장치는 고장이 나지않아 트럭에 들어가서 잘때는 문을 꼭 잠그고 잤다 언젠가 한번은 눈이온 추운 겨울에 트럭에 들어가 문을걸고 안에서 잠그고 자고 있는데
새벽에 파라다이스 나이트 크럽 직원들이 미국거지가 봉고차에 들어가는걸 보고 신고 했는지 경찰이 여러명이 와서 시끄럽게 봉고차를 두들기고 안에 자고 있는 홈리스와 뭐라고 영어로 떠들며 못자게 하는건지

깨워 데리고 나가며 내가 자고 있는 고장난 덤부 트럭 문을 열려고 여러번 시도 하기도 했다 덤부 트럭은 상당히 높이가 높고 당시 춥고 눈이 많이와 얼어서 트럭 창문에 서리와 눈으로 얼어 밖에서 트럭안을 잘볼수가 없고 또 새벽이라 어둡기도 하여 볼수가 없는지 계속 문을 열려고 떠들며 두들기다가 날도 춥고 그런지 포기하고 돌아 간적이 있다 나는 그 다음날 아침일찍 트럭에서 나와 그 후론 그 트럭에
가지 못했다 어느순간 트럭으로 향하는 입구에 철조망을 쳐놔서 갈수도 없었다 내가 하도 그 곳에서
잠을 자니까 아예 못자게 철조망을 친 것 같다
나는 트럭에서 잘 때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선 종업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7시 전에 고장난 트럭에서 나와서
플러싱에 있는 고려당 빵집도 있지만 고려당 빵집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여러 가지 좀 불편하고 그래서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가나안 제과에 주로 많이 가서 당시 가나안 제과는 아침에 7시 약간 전에 문을 열었던가
커피와 빵하나 시키고 한국일보 중앙일보를 1불 주면 둘다 사서 읽으며 일자리 정보를 알아보고 무료로 배포하는 벼룩시장 교차로 가로수 까지 전부 읽어보고 일자리 정보를 수첩에 적어
오전 9시 넘어 10시가 거이 다되어 나와서 근처 공중전화에 코인을 넣고 전화해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어디 까지나 숙박비를 아낄려고 당시 돈이 부족하던 내가 어쩔수 없이 선택한 행동이다
그러나 아무한테도 구걸한적도 없고 나쁜짓도 한적이 없다 난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도둑질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먼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처음보는 놈들이 나에대해 이렇쿵 저렇쿵 험담 한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식당 주방일에 열중 했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그후 주방장이 마련한 술자리 에서 술을먹고 얼굴이 빨개진후
그곳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짤리고 어쩔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


전남 순천교도소 거실은 아직 인원이 다 차지 않아 빈 거실이 즐비 했으며
특히 독방이 많았다 각 사동마다 독방이 즐비했다 안양에서는 독방이 적어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는데 순천 에서는 상대적으로 독방이 많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독방을 얻을수 있겠다
생각했다 안양에서 같이온 이감자들을 거실을 나눠서 배실 하였고 각지에서
이감온 사람들도 임시로 그런식으로 배실하고 어느정도 신입거실 에서 적응 기간이 지나 배려하고 난후 본사동 본거실로 배정한다고 하였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들 중에 물론 나쁜 사람도 많지만 핑계 처럼 들리 겠지만
또 다수의 죄수들은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또는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왔던 사람중에
여러가지 사정상 한순간의 실수로 영어의 몸이된 사람들이 많다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 레드 라는 흑인 죄수가 소년의 한순간의 실수를 용서받고 후회하려 해도 어느덧 그 소년은 간곳없고 늙은 몸만 남아 있다고 하는 대사 처럼
한순간의 실수가 운명을 좌 .우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지난 죄를 후회하기도 했다 굶어 죽어도 미국에 있었어야 하는데 왜 들어와 이런 수모와 고통을 겪는가
나는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러한 영화들에 흥미를 느끼곤 했다 나는 소설 처럼 꾸민건 재미없고
팩트가 재미 있었다 특히 빠삐용은 1980년 TBC가 전두환 정권의
방송 통폐합 정책에 따라 KBS2TV 로 바뀌는 바람에 1980년 년말에
아쉬움을 달래려 특별히 보여준 영화 이다
주인공은 누명을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아무도 탈출하지 못한
섬에 갇히게 되는데 스티브맥퀸 더스틴호프만 주연 영화로
스티브맥퀸이 두번의 탈출시도 끝에 엄청난 고생으로 겉 늙어서 3번째 탈출 만에 성공하여 자유를 찿는다는 내용
사람이 누명을 쓴다는 것처럼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없는 것이다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아서 최악의 삶을 살다가 두번의 탈출 실패로 망신창이가 된몸으로
악마의 섬에 갇히게 되는데
기여코 새번째 탈출에 성공하여 자유를 찻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내용이다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직감으로 느끼고 빠삐용 이라는 영화를 어릴적 부터 감명깊게 본것은 아닐까?
일주일후 우리는 본 거실로 각자 배정 받았는데 나는 작업거실 1하로 배정받았다
그곳은 봉투 작업을 하여 각종 봉투를 접어서 납품하는 작업거실로 그곳도 역시 각지에서

이감온 사람들로 가득찻지 아무래도 전남지역 이라 전남 출신 들이 좀더 많았다 나는 독방을 나에게 배정해 줄것을 교도소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독방을 쉽게 주지 않아도 나는 여럿이서 생활 하는건
도저히 불편해서 생활 못하 겠으니 독방을 달라고했다
그러나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않자
입실거부를 하자 조사실로 나를 집어 넣는데 순천교도소 조사징벌실은 일반거실 사동에 있는데 맨앞거실 독거실이 조사징벌실로 당시 사용했는데
그곳에 상황에 따라 혼자 집어 넣을 때도 있고 2명을 집어 넣을 때도 있고 관구실 결정에 의해
배실 했는데
조사실에 들어 가보니 그안에 한놈이 있는데
나이는 나보다 한참어린 20대 초중반 애 였다 충청도 에서 이감온 애로 성폭력 으로 징역을 6년
받았다고 했다 그놈도 입실거부로 징벌을 받은거야 독방 달라고
그런 놈들이 둘이 같이 있었으니 하루는 그럭 저럭 지냈는데
서서히 시비가 붙기 시작했지 물론 말로 싸워 봐야 내가 불리했다 나보다 한참 아래 인데
서로 쌍욕을 해봐야 내가 손해야 그놈을 잡아다 내팽겨 치려 하자
그놈은 나보다 체격은 컷지만 저항을 해도 힘으로 나에게 밀렸다
그러자 그놈은 나보고 때릴 테면 때리라고 고개를 뒤미는게 아닌가
그놈을 때려 상처라도 나면 검찰에 사건 송치 하여 재판을 받아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연출되니 때리면 손해다
그러자 교도관 계장이
문을 열더니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욕을하며 어른에 대든다고 그놈에게 막 나무라내 나 에게는 존칭으로 우대를 해주고 그놈은 버르장 머리 없다고
욕을하며 막 나무 라는거야 그토록 교도관 들과 그쪽 건달들 양아치들 다 왠지 모르게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고 왜 그런지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여동생 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편들어주는 우대를 받는 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남 순천쪽으로 온건데
그래서 나는 그게 매형이 여수출신 건달 이라서 순천은 여수와 가까운 곳이라
내가 혜택을 보는건가 은근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될수없는 무언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매형이 그렇게 유명한 건달 출신 이라고 나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무심코 실패한 건달 이라고 생각 했을 뿐인데
아무튼 누나가 매형이 좀 이름 있는 건달 이라고 불곰 이라면 유명 하다며 술취해 혼자 떠드는 소릴 우연히 들은 기억은 나도 신경쓸일도 아니고해서 쉽게 잊어 버렸는데
그리고 매형의 부모님이 제주시 연동 대림아파트 당시 누나 아파트에 미국에서 온내가 잠시 거주하고 있을때 편지가 온걸 본 기억이
나는데 주소는 전남 여수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순천교도소에서 있었던 당시 정황들과 추리해서 혹시 여수출신 건달이 아니가 혼자 속으로만 추리 해본적은 있는데 어느누구 에게도 물어본적도 말한적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나를 알아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 했는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몰라 당시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주도 에서 누나와 외조카와 매형과 잠시 있던 때도 매형은 욕설과 거치른 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고

성질도 낸적이 없어 덩치는 큰데 순한 양처럼 누나가 시키는데로 행동 했던 기억들이 나서 당시는 매형이 건달 출신이란 생각을 전혀 한적이 없다

징벌이 끝나고 나는 다시 독거를 달라고 했다 다시 조사실로 들어가서
조사를 받기 시작 하자 조사관이 살살 타일르더라고 독방이 쉽게 나오는게
아니니까 좋은 거실 하나 배정해 줄테니 거기 잘 있으면 독거를 주겠다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런데 방을 배정해서 들어가니 중방이었는데
부산 건달 애들 젊은 두놈이 있는데 30도 안되 보였다 그애들 시다발이 하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애는 소년원 에서 넘어온 나이어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애였는데 내가 판단할때 소년원에서 형량이 많아 나이가 차면 대인수 교도소로 옮겨야 하니까 그래서 온것 같고 또 하나는 나이가 50 가까이 되어 보이는 키가작고
정신 지체아 까지는 아닌것 같은데 정상에서 모자란 전라남도 해남인가 하던데 거지인지
양아치들 두놈이 영치금으로 먹을 껄 사주니 양아치 두놈 을 지 부모 다루듯 하는데
내가 징벌을 받는걸 겁내지 않는다는 아는건지
내가 전실되어 들어가려 하자 양아치 두놈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 이었다 내가 엿먹으라고 두놈다 징벌 독방에 끌고가면
그 놈들은 여간 고역이 아니거던 두놈이 터전을 잡아 중거실 에서 그런대로.지내는데
징벌방에 가면 두놈다 먼저있던 거실은 못가고 징벌끝나고 다시 자리.잡으려면 고생이다

두놈이 같은 거실에 간다는것도 힘들고
두놈다 징벌방 끌고 갈려고 마음 먹으면 일도 아니다
서로욕만 하고 심하게 몸싸움 안해도 자술서를 관구실 에서 받을때 두놈과 욕하고 싸웠다고 하면

두놈다 그 거실에서 끄집어 내서 자술서 받고 조사실에 집어 쳐넣고 조사가 시작되면 특별한 상황이나
교도관을 잘알거나 어지간한 돈과 백이
아니면 거이가 징벌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나는 이런 치사한 짓을 절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두놈다 나에게는 존댓말로 눈치만
살살 보더 라고 근데 좀 모자라는 나이먹은 전남 해남 사람과 나이어린 애에게 막말로 종부리듯 하는 거야

물론 나한테는 존댓말을 썼다
나는 그날 오후에 배실 되었는데 배실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를 치르며 난동을 부리자
그 놈들이 나하고 생활 못 하겠다고 교도관들 에게 하소연 하여
교도관이 달려와서 나를 다시 계장실로 데려 갔는데 계장이 나한테 존칭으로
살살 타이르는 거야 이번에 자신이 좋은거실 배정해 줄테니까 한번더 가 보라고
나는 계속 성격이 여럿이서 생활하면 싸움을 하는 성격이라 독거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계장이 독거를 쉽게 줄수가 없고 기다리면 알아 보겠다고 정성을 다해 설득 하길래 한번더 가 보기로 했다 계장이 다시 조사징벌실에 집어 넣으면 간단한 일인데
그러지 않고 좋은 거실 다시 배실해 준다고 설득하는 것도 보기드문 현상이다
기다리면 독거를 줄수있는지 알아 보겠다고 하는말은 신빙성이 없는 그저 접대 멘트 비슷한.것이다
계장이 배정한 거실로 들어가자 마치 미리 언질을 받은 것처럼 나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로 대했다
방안에는 나말고 4명이 더 있었다 영등포에서 이감온 사람이 58세로
그 방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고 대구에서 이감온 사람이 50세로 두번째

그리고 군산에서 이감온 정확한 나이는 기억 안나는데 대략 42세 전후인가 세번째 그리고 그방의 제일 막내는 31세의 순천깡패가
하나 있었어 살인죄로 12년형을 받고 10년째 복역중 이었다 조직간의 세력다툼으로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라 총알받이로 이용당하여 20대를 감옥에서 소비한 것 같은데 속으론 엄청 후회 하겠지
그런데 폭력조직에서 거이 지원이 끊어진 것 같아 아마 조직이 와해되고 없어져 지원을 못하는것 같아

가족들이 면회와 넣어주는 영치금으로 근근히 생활하는 것 같았다 한국의 폭력조직들 이야 생겼다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지원도 못받고 헛수고 하여 총알 받이로 이용당한 철모르는 젊은 애들만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 거실에서 형량이 제일많은사람은 살인죄로 15년 형을 받은 대구 사람 이었다
영등포에서 이감온 사람은 출소일이 얼마 안남은 사람 이었어 나는그렇게
2005년4월 막바지에 순천교도소 한 거실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 거실은 설거지도 돌아 가면서 하고 사람들도 점잖아 보였다


이 거실에 있는데까지 있어 보자고 생각했어 순천 건달애는 나한테는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하고
내 성질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어 그리고 특히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곧 갈거라고
내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얘기 했지 원래 공장사동에 출력을 신청하여 생활 하다가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징벌 30일을 받고 징벌방에 있다가 해제되어 이곳 거실에 배실되어
이감갈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 했다 담배 피다 걸리면 무조건 이감을 교도소에서 교정청에 올린다고 하더라고
더구나 이놈은 깡패 조직사범 이니까 조금만 사고를 쳐도 이감을 보낸다고 하더라고

원래 폭력조직 사범이나 마약 사범은 연고지에서 멀리 떨어트려 이감을 보내는데
그동안 이놈도 여러 교도소를 전전 했나봐
징역을 10년넘게 살다보니 여러군데를 돌아 다녔나 보더라고 그러니 더이상 갈데가 없어 고행쪽으로 보낸건지 아니면 어디나 예외는 존재하듯시 그런건지 잘몰라도 이놈은 고향 쪽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다
자기 부모를 죽여 사형 선고를 받은 박한상이 하고도 대구교도소 에서
생활 했었다고 하는데 그말을 곧이 곧대로 다 믿을순 없지만
아무튼 그 거실에 있으면서 4월을 넘기고 5월을 맏이 했다

무슨 인성교육 인가를 한다며 해서 교육을 받고와 보니 순천 건달애는 벌써 다른 교도소로 이감가고 없었지
그리고 몇칠후 영등포에서 이감온 사람도 달가 가석방으로 출소하자
대전에서 이감온 사람이 바로 우리거실로 배정 받아서 들어 왔어그렇게 5월을 보내고 6월이
다가왔지 거실 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건 없었어 한번은 대구 출신과 싸움을 했다

대구출신이 나에게 욕을하며 때릴려고 달려들기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방어를 하는 과정에서
대구가 입근처가 터지고 피가 좀났어 대구 사람이 먼저 싸움을 걸어 나는 정당 방위만 했지
나에게 욕을 하고 대들어 나도 욕을 하고 방어 하며 힘으로 제압했지 주먹으로 때리면 큰 상처가 날것 같아 때리진 않고 달려들기에 제압하는 몸싸움 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힘으로 밀리자 입근처가 찟어지고 피가났다
그 과정에서 내.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위가 저놈의 손톱에 끍혀 핏기가 약간 있기도 했다
이놈이 교도관.에게 얘기 했으면 나는 조사.징벌 독방으로 직행이고
재수 없으면 검찰에 사건 송치되는 더러운 일에 엮이는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지만
이놈도 그럴경우 징벌방.으로 가야.하기에 다행이 교도관에게 고자질은 안해서
무사히 그냥 넘어 가는가 싶었는데 그후 방사람들이 이놈을 무시하자
거기에 분을 못참은 대구출신이
평소 수족 처럼 부리던 성격이 여자같던 군산출신이 대구출신이 나에게 제압 당하는걸 보고 용기를 얻었는지 말을 안듣고 대들자 교도관이 보는 앞에서 머리로 군산출신 코를 들이 받아
서 둘다 조사 징벌방을 갔다 사람심리가 평소에는 종처럼 잘 길들여 말잘 듣던게 갑자기
기어 오르면 그것처럼 기분 나쁜게 없다
내가 말리려 하자 대전사람이 그러지 말라고 그러데 귀찮으니까 방에서 나가게 내버려 두라고
이들은 징벌방에 가면 이쪽 거실에 올수없으니까 그러면 고참둘이 나가니까 대전출신이 고참이 되지
물론 나보다는 순위가 아래지만 그러나 나는그런걸 따지지 않는다 민주적이니까 거실도 당분간 신입 오기전 까지 넓게 편히 생활할수 있고 이게 2005년 6월인가 7월인가 있었던 일일거야
그런 우여곡절 끝에 어느덧 그해 10월이 다가오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실을 거쳐 갔다
내가 있던 거실은 작업거실도 아니고 미지정 거실이 었다 재소자들이 가석방 받고 좀더 빨리 출소할려면
점수를 많이 따서 급수를 올려야 하는데 미지정 거실은 점수가 얼마 안되서 점수를 많이 받는 공장 사동 으로 출력을 나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 같은 곳이 었다 그래서 여러 삶들이 이곳 거실을 거쳐서 다른곳 으로 갔는데
나는 내 성질을 알기 때문에 공장출력 나가서 고분곤분 말잘듣고 있을 내가 아니지
그래서 출력을 아예 신청도 안했어 그 과정에서 순천교도소는 어느새 초범교도소 에서
재범교도소로 바뀌어 재범자 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걸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이 고지를 하지않아

전혀 몰랐었는데 신입으로 거실에온 사람 중에 한애가 28세 먹은 하와이 출신 이라는 영어 강사가 우리 거실로 왔는데
그놈 말로는 미국 시민권자 라고 하던데
내가 볼때는 영주권자일 가능성이 큰데 미국에서 마약하다 한국으로 영구추방 된게 거이 확실해 보였다
미국은 영주권자는 1년이상 징역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면 형을다 살고나면 영주권이 파기되고 본국으로 강제로 영구추방 시킨다고 그후로 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당시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법이야 그때 그때 바뀌어 지금은 어떻게 바꼈는지 모르지만
내가 미국에 있던 당시는 그랬어
처음엔 마약투약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는데
3회 연속 마약투약 재범으로 법원에서 1년6개월 선고 받고 우리 거실로 배실되어 들어왔는데
그래서 여기는 초범 교도소인데 왜 재범이 오냐고 하자 말로는 순천교도소가 초범교도소 에서
재범 교도소로 바꼈다고 하네 그러면서 자신이 이송온게 그 증거 라면서
그 당시에는 잘못느꼈는데 그후로 역시 상대해보니 평균적으로 초범보다 재범들이 훨씬 교활하고
잔머리가 잘돌아가고 질이 안좋았다
당시 완전 생 초범이던 내가 달고달은 재범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은 모든면 에서 피곤했다
당시 교도행정은 초범은 초범끼리 재범은 재범끼리 분류 하는게 원칙이 었는데 내가 이송 올때만 해도
전남 순천교도소가 초범교도소 였는데 왠지소리소문 없이 재범 교도소로 은근히 바뀌어 나도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무슨 큰 비밀 이라고 왠지
교도관 어느 누구도 순천교도소가 재범교도소로 바뀌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108p-재범들이 쏟아지기 시작 하였다
필로폰 마약 투약 상습범들은 마약 투약으로 뼈가 녹아서 그런지 힘들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 애는 성격이 활달하고 굉장히 활동적이었어
그런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지아버지 고향이 충남금산 이라는데
그곳이 과거 전북 이었는데 지금은 충남 이라고 하면서
말하는 뉘앙스가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한것에 대해서 은근히 기분나쁘고
과거 전북 이었던 것에 금산이 지아버지 고향이라는데도 은근히 향수를 느끼는 것같은 뉘앙스가 있는것 같은
말을하며 왜 금산이 과거에는 전북 이었는데 충남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따지듯이 말하여 내가 이자식이 그걸 내가아냐 니가아냐
지나가는 개가아냐 정치인들이 자신을 편이에 의해서 지도에 선하나 쭉 긋고
여기는 전북 여기는 충남 그랬는데 따질래면 국회의사당 이나 청와대 가서 따져야지
징역 사는것도 힘든데 어디서 나에게 따지며 목소리를 높이냐고 하자
나보고 그런게 아니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가 듣기에도 은근히 기분나쁜데
거실에 같이있던 나이먹은 대전사람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뭐 세상에 이런놈도 있고 저런놈도 있겠지만 떠들걸 떠들으라고 한적이 있다
순천교도소 에는 과거 서진 룸싸롱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장진석이 있었는데 당시 장진석은 다른 사동 독거에 있었다는 말만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 그런데 하와이 에서온 애가 매일 장진석 영어강사로 출근하다 시피 한다는 거야
그러나 사실 내가 확인할수도 없는 일이지 하와이애 하는말이 그렇다는 거야
명목상은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인데 그래서 평일은 매일 아침 나가서 오후 폐방전에 거실로 들어왔다 정확한것은 모르겠는데 거기서 장신석을 만나는 건지
그래서 영어 강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애 하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백프로 믿을순 없지만
그래서 그런지 공장 건달들이 마치 하와이를 우리들이 써포트 하니까 비유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듯이
사동 소지들을 통해 미지정 거실에는 좀처럼 해먹을수 없는 계란후라이 등 먹을걸 사동 도우미를 통해 잔뜩같다 주고
하는등 하와이 에게 잘했어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하와이가 기가 살았는지 설거지도 안할려고 하고 식수를 지 혼자 다 쓸려고 하고 문제가 많아
당시 거실의 최고 고참인 나하고 트러블이 많았다
그런일이 여러번 쌓이다 보니 결국 하와이와 말싸움 하다가
멱살잡이 싸움까지 번졌는데
하도 미국에서 부터 마약을 많이 쳐먹어서 뼈가 녹아서 그런지
젊은 놈이 힘이 하나도 없어 내가 싸대기 몇대 때렸다
그런데 하와이가 교도관 에게 비상벨을 누르고 고발 하려다가
왠지 고발 하는걸 포기했다 고발하면 이놈도 나와같이 조사 징벌실로 가기 때문에 조사징벌실 가기 싫어서 그런지
이놈이 교도관에게 고발하면 둘다 조사징벌거실에 끌려가서 거이 일주일.가까이 조사 받는다
만약에 징벌을 먹으면 컴퓨터 교육생등 선발도 못되며 여러가지 공장출력도 제한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비상벨을 누르자 교도관이 오자 고발 하려다가 말았어
그런 중에도 계속 독거를 달라고 나는 교도관에게 요구했다
어느덧 2005년11 중순을 넘어 하순으로 접어들은 어느날 책을 읽다가 TV 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뉴스를 얼핏 듣기만 했는데 당시 순천 교도소 자체 교도소 방송으로 뉴스는 5시뉴스10분짜리를 녹화하여 틀어 줬는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셋째딸 이윤형이 미국 뉴욕 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뉴스 였는데 그후 그게 다시 자살로 둔갑 된사건 인데 당시는 자세한 내용을 알수도 없었고 또 관심도 없었다 또 나는 책을 보고 있다가 뉴스를 건성으로 들었기에 삼성그룹 막내딸 사진을 당시에는 볼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 거실은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없어 신문도 당시 볼수가 없었다
뉴스는 재미가 없어 TV도 안보고 책을보고 있다가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만 들은 기억이 얼핏났다 그런데 몇칠이지난나 다시 다른 수용자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이 자살했다고 정정보도 뉴스가 았다고 하는소릴

관심도 없는데 얼핏 들은기억이 난다
그리고 당시 무지게 너머 있는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관심 대상밖의 사람들 일이라 신경쓸 일도 아니었다

109p-돈이 그렇게 만은데 왜 자살 했을까 우리 같은 사람도 사는데 뭐 그 정도 잠깐 생각하다 기억속에서 그 일은 사라졌다 그렇게 2005년 12월 달이 다가 오고 그해도 다가고 있었는데 독거를 신청하고 오래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바로 독거 배정은 힘드니
우선 2인 독거 있다가 독거로 옮기라는 관구실의 제안에 그전에 같은 거실에 있던 대구.출신과 싸우고 징벌거실로 갔던
군산출신과 당분간 2인.독거를 쓰다가 독거 배정을 받으려 했다
어느덧 파란만장 했던 2005년이 가고 2006년 새해가 밝자 그동안 나에게 우호적이던 순천 교도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변 하는데
새로 부임한 소장과 보안 과장은 희한하게 나를 은근히 알아 보는 눈치였다
순시를 돌때는 우리 거실을 유난히 쳐다보며 지들끼리 뭐라고 떠드는데
나에 대해서 험담.하는것 같은데 소장과 과장등 처음보는 사람들이 저렇게 교도소.에서 높은 것들이 뭐가 아쉬워 나에게 험담을 할일이 없다고 내가 과대망상 일꺼라고 생각 하면서도
나는 뭔가 처음 느끼는 이상한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은근히 불안을 느꼈다
그때부터 소내에서 내거실 근방에서
안기부 직원일 수도 있다느니 전직 미국 마피아니 호모 라느니 연쇄살인범 이라느니 거짓유언비어를 은근히 퍼트리기 며 은근히 누명을 뒤집어 쒸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미친놈들 다보겠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군산출신 하고 이인 독거 생활을 하면서
싸움을 많이 했는데 군산출신이 항상 나한테 졌어
나보다 나이가 몆살위 였는데 아줌마들 처럼 드라마 보는걸 좋아했고
성격이 여자같이 조용 했는데 그런데 군산놈이 하리수 책을 구입을 했는지 책고지에 있어 내가
야단을 쳤지 볼책이 없어서 하리수 책을 보냐고 군산놈에게 야단을 치며
책을 버리라고 내가 군산놈에게 야단을 치자 그래서 나하고 군산놈 하고 트럴불이 많았다
한번 싸움이 시작 되니까 계속 싸우게 되더라고 그러나 힘으로 나 모든게 나하테 지니까
그래서 군산놈이 같은 군산출신의 계장에게 면담을 하러 여러번 가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다 조사징벌실에 집어넣거나 서로 분류하여 배실을 하지 않더라고
서로 싸웠다고 자술서를 쓰고 사건화 하면 일단 둘다 조사실을 가야 하니까
싸움으로 사건화를 하지않고 당시 관구계장이 같은 군산 출신이라고 하소연 하다가 온것 같은데
그래서 나도 계장 면담을 하여 서로 싸움을 많이 하니
거실을 옮겨 달라고 하자 비교적 쉽게 거실을 옮겨 줬는데
가보니 2하 2인 독거를 배정 했는데 체격이 왜소한 20대 초반의 광주애 인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수애 라는 말도 있었고
그놈과 한 한달 가까이 있었을까
어느날 대략 새벽3시 쯤에 갑자기 거실 비상벨을 누르며 교도관을 부르고 교도관에게 내가 때렸다고 누명씌워
자다가 갑자기 깬나는 교도관이 나를 폭행죄로 누명씌워 조사실로 집어넣으려 하자 무슨 참새 껌씹는 소리하냐며
억울 하다고 항의해도 교도관이 강제로 바로 건너편 조사실에 수용 됐는데
조사실에 갑자기 수용되어 보니 이미 이불이 잘 게어져 넣어져 있었다
통상적으로 조사징벌실 이불은 그때나 그후에서 조사징벌실을 수없이 들락날락 거리고
다른 사람경우도 보아 왔지만 수용자가 조사실에 수용되고 난후
그후 이불을 넣어 주는데 이불이 마치 여관이나 모텔에서 종업원이 손님 오기전에 잘게어서 미리 놔둔 것처럼
내가 조사징벌실 들어가기도 전에 있던건 그전이나 그후로도 그때가 처음 이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니까 그놈이 내가 자는데 밥상으로 자신의 다리를 때렸다고 누명을 씌웠다
나는 절대 그런적이 없으며 너무 황당하다고 억울함을 진술했다
그런데도 교도관이 그애와 나를 거실로 데려와서 카메라로 잘때 어떻게 자는지 똑같이
누워 보라며그래서 누우니 사진을 몆장을 찍고 또 그애가 다리를 나에게 폭행 당한적이 없다고 괜찮다고 하는소릴 직접 내가 들었는 데도 불구하고
그애보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종아리를 보이라고 하자 그애가 괜찮다고 맞은적이 없다고 누명 씌웠다고 자백하는데도 교도관이 반 강제로 바지를 올려 종아리를 보이라며 계속 강용하자
그애가 마지못해 종아리를 보이자 카메라로 사진을 여러번 찍는걸 내가 옆에서 직접

110p-보았 습니다 아무 상처도 없는 다리를 사진을 여러장 찍고 밥상을 어디다 두는지 어떻게 접어서 놓는지
묻고 그걸 또 사진을 찍내 내가 때린게 아니라고 그 현장 에서도 당사자가 거짓말 했다고 자백을 하는 소릴
교도관 에게 하는 소릴 내가 생생하게 들었는 데도 막무관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내가 항의하자 교도관 놈이 조사 과정에서 업무상 확인해야 한다며 무조건 상처가 없어도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방해하며 공무집행 방해로 형사처벌 된다며 강제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정말 분위기가 이상했다
큰 폭행 사고가 나서 상처가 심하게 나면 의무과 에서 증거 기록으로 사진을 찍고 또 상처가 났는 데도 교도소에서 무마 시키려 사진을 찍지 않을 때 수용자가 강력히 요청하여 의무과나 외부 진료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알아도
나도 징벌 여러번 받고 다른 사람도 징벌 받는 사례를 많이 봤는데
아무 상처도 없고 당사자가 폭행 당했 다는게 거짓 진술 이라고 자백 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군다나 교도관이 거실까지 카메라 들고 와서 사진 찍는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교도관 들이 뭔가 뒤집어
쒸우려고 장난을 치는게 분명 했다 왠만한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상처가 특별히 크게 나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지랄해도 여러 핑계를 대고 교도관들이 귀찮아 서도 사진을 잘 안 찍으려 하는게 일반적인 경향이다 서로 치고받고 싸워서 상처가 나서 피해자가 요구하면 의무과에 데려가 상처난 부위를 피해자가 사진찍어 달라고 떠들어야 사진을 증거로 찍는 다는건 알아도
또 크게 다쳐 외부 병원에 나가 진단서를 끊는 경우는 들어 봤어도 외부 병원에 나가는 것도 절차가 까다롭고 쉽게 성사 되는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도관이 카메라를 거실까지 들고와서 나는 그전에도 그후에서 생전 처음 본다 더구나 피해자가 맞은적이 없다고 괜찮다며 누명 씌웠다고 자백 하는데도
사진을 찍는건 그전에도 그후에도 여러 교도소 에서 징벌을 수십개를 더먹고 다른사람 얘기도 들었지만
그때가 처음 이었다

혹시 나중에 훨씬 심한 상황이 벌어지게 꾸미고 빼도박도 못하게 상습범으로 누명을 뒤집어 쒸우려고
지금은 디져트로 장난을 치는게 아닌가 의심이 충분히 들 상황 이었다
귀찮아서 관심조차 않가질 나같은 사람을 법무부소속 교도관들이 누명을 쒸워 출소를 안시키려 할만한 사유가 과연 뭘까?
교도관들 이야 위에서 시키면 출세하기 위해 또는 높은 관직에
잘 보이기 위해 돈을같다 쳐 발르면 돈의 유혹에 의해서 나같이
면회도 안오고 거들떠도 안보는거 누명씌워 법을 악용해 생매장 시키는 거 아무 죄의식 없이 할 인간들은 동서고금을 통해 수도 없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비밀리에 존재하고 있다

과연 나를 출소 안 시키려고 하는 배후는 뭘까 내가 미국과 한국에 있을때
짱게들 비리를 폭로해서 그런가
이복형들이 내가 나가면 해꼬지 할까봐 돈으로 교도관 들을 매수해서 그것도 무리수는 있다
교도소에서 교도관까지 돈으로 매수해서 나를 누명씌워 엮으려면 한두놈이 작당해선 안되고 눈감아 주는 놈도 여럿 있어야 하고 나를 누명 씌우거나 죽일수 있게 인사 배치를 하는 세팅 하는놈도 필요하고 여러단계 걸쳐 여러명에게
돈을 쳐먹여야 하는데 국가 공무원인 교도관이 한두푼 받고 그런일을 안하지 물론 돈만 많이 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들이 상당수 이겠지만 거금을 들여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있는놈은 셋째 이복형 한놈인데
이놈은 자린고비보다 더 짠놈인데 그놈이 그렇게 거금을 쓸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럴 능력이 못돼 국가 공무원인 교도관을 움직일 정도면 엄청난 거금과 더큰 세력이 배후에 있어야지
그 당시 에는 배후를 전혀 짐작할수 없었다
그러나 뭔가 분명히 보이지 않는 세력이 배후에 존재 한다는걸 직감적 으로 느꼈지
그리고 그놈은 징벌을 보름 받았다
나중에 그놈이 징벌이 끝나고 운동시간에 운동장에서 우연히 만나 물어보니 교도관 들이 자꾸 시키 더래 그러면서 나보고 조심하래 뭔가 있긴 있구나
나중에 더큰일 누명씌워 엮기면 그땐 그냥 하소연도 못하고 말리 겠는데 가진게 돈뿐이 없는
셋째 이복형놈이 2006년2월 여기까지 면회를 왔는데

111p-이게 뭔가 장난을 쳤나 십었다
그러나 그것도 믿기 어려웠어 배후를 전혀 짐작할수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돈도 안되고 별 이득도 안돼는 나같은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히려 하겠는가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나같은 사람 괴롭혀서 무슨 이득이 있겠나
뭔가 돈이 돼거나 정치적 이든 경제적 이득있던 아니면 무슨 철천지 원수처럼 개인적으로 나뿐 감정이있거나
이권이 존재해야 괴롭 히는데 그런게 없다면 미친놈이 아닌이상 귀찮아서도 그런짓 거리 안하는데
막말로 예를들어 내가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던
뭐를 하던 한국의 법무부 소속인 교도관 들은 전혀 관심이 없을 텐데 근데 이런 상황은 뭘까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도 당시 에는 배후를 전혀 짐작할수 없었다
혹시 미국 에서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일할때 중국식당 에서도 일했고 중국 애들과 싸움도 하고
뭐 싸움 이라고 해봐야 말 싸움 정도이지
그리고 다니는 곳 마다 중국놈들 욕을 하고 다녀서
단합심이 강하다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교들이
나를 눈의 가시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것들이 연합을 해서
내가 그후 한국에 들어와 뜻하지 않게 순간 이성을 잃고 실수하여 교도소에 수용중인 것을 알고
법무부의 높은 인맥을 동원 하거나 혹은 일부 친중파인 교도관 들이나 혹은 돈으로 사주하여
추가징역을 누명씌우려 음모를 꾸미는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 았지만
그러나 이것도 도저히 말이 안됐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할줄몰라 인터넷에 글도 못올 렸는데
그저 화교들 비리를 말로 몇번 파해 쳤다고
화교들이 뭐가 아쉬워서 돈도 안되는 나를 막대한 자금과 권력을 이용하여 법무부와 교도관들 에게 사주하여 괴롭히 겠어 그럴 시간에 술이나 먹겠내 이런 추리도 모순이 컷다
그러면 누구란 말인가 정말 미스테리 였다 보이지않는 어떤 거대한 세력이 배후에 뭔가 있는것 같은데 그게 뭔지 전혀 짐작 할수 없으니 불안했다 그러 면서도 내가 너무 앞서 생각하는건 아닌가
차라리 내가 잘못생각 한거라면 좋을텐데
그런데 왠지 그런것 같지는 않은 느낌과 정황들이 나를 점점더 불안하게 했다
아무튼 나는 이 교도소를 무조건 떠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하였다 그래서 징벌을 받으면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보낸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징벌을 연속으로 5개을 받았다
그래도 이감을 안보내 더라고 교도관 누군가 게임은 끝났다
목에 흉기로 자해해서 살인 미수로 누명을 뒤집어 씌워 10년이상 사회와 격리 시켜야 한다는 소리를 내 거실 근처에서 떠드는 소릴 우연히 주어듣고 더욱 불안하여 난동을 부리기로 했어 그래서 교도관 에게 욕을하고 문을차고 소란을 떨어도
이제는 징벌은 커녕 조사도 안 시키네 그러면서 배정한 거실로 안들어 가면
징벌방을 본 거실로 하겠다는 듣도보도 못한 말을하는 거야
그전에 다른 죄수 에게는 교도관에게 욕 했다고 검찰에 송치 시킨다고 하는 소릴 들은적이 있다
또 교도관들이 죄수를 카메라 없는곳에 끌고가서 묶어 놓고 때려 잡을려고 마음먹으면
일도 아니야 그러나 당시 까지만 해도나를 음해 하는 배후 세력이 나를 과소 평가하고 쉽게 처리할줄 알았을 수도 있다 그후 미국 구치소에서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마구 구타하여 죽였다는 뉴스에 나온 동영상을 2015년도 5월에 보았듯이
한국 에서는 동여상을 찍을래야 찍을수도 없게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이 많아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고가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로 묶고 구타를 하기에 또
수용자는 핸드폰이나 스마트폰등을 일체 가지고 거실에 들어갈수 없게 하기때문에
동영상을 절대 찍을수 없고 혹시나 카메라 있는 곳에서 수용자를 구타한게 있더라도 찍힌것도 삭제 시킬 판인데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수용자하나 교도관들이 때려죽이고 사고사나 자살 자연사로 위장 할려고
마음 먹으면 일도 아니다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는 국가 공권력을 앞세우는 교도관에게 죄수들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절대 불리하다
혼자 쓰는 독거라고 배방한 거실에 들어 가보니 온 사방 팔방이 칼같은 흉기를
만들려고 화장실과 벽에다가 무슨 흉기를 제작 할려고 갈은 자국이 너무도 심하게 나 있어서 나중에 불미 스런일이 생기면 내가 흉기 제작한 걸로 뒤집어 쓸것 같아서 바로 계장 면담을

112p-신청하여 전후.사정을 얘기하고 입실.거부를 하여 조사실에 들어 갔는데
징벌은 물론 아예 조사도 안시키더라 그래서 조사만 해도 기록에 남는데
아예 조사자체를 받지않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흉기 제작한 자국이 듣도보도 못할 정도로 심해서 입실거부 했던 독거에
강제로 들어가라며 교도관 5명이 달려들어 강제로 집어넣으려 하자
나는 완강히 거부하며 조사실에서 안 나오려고 징벌을 달라며 완강히 버티자
교도관들도 지쳤는지 나중에 포기 했다 그런후 계장이 와서 조사실 에서
서있는 나에게 앉으라며 나에게 욕을 하길래 나도 욕을 하며 발로 조사실
문을 차면서 폭동을 일으키며 징벌을 주고 빨리 다른 곳으로 이감 보내라고
하자 슬그머니 살아지네 다른사람 같았으면 징벌도 큰 징벌감 인데
징벌주면 이감가야 하니까
그래서 살인미수로 엮어서 누명을 씌워 추가를
뛰워서 한10여 녀간 빵간에 가둬 둬야 하는데 그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바
모른척 하는건 아닐까? 욕을 하고 문을 차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폭동을 일으켜도
큰 징벌감 이지만 단순 입실 거부만 해도 어느교도소도 마찬가지 지만 징벌을 주지
재소자를 입실거부 하는데 조사실에서 강제로 꺼집어내어

교도관들이 누명씌우려 세팅해논 독거거실에 강제로 집어 넣으려는 법은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짓이다 교도관들도 강제로 집어 넣으려다가 지들이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짓거리라 생각했는지
포기하고 갔다 만약에 당시 서로 실랑이를 하다가 나에게 커다란 상처라도 생겨 국가인권위원회나 검찰에 조사를 받게되면 누명을 쓸까봐 입실거부하여 조사실에 들어온 사람을
강제로 누명씌우려 세팅해놓은 거실에 집어 넣으려다 발생한 사건이라며 내가 떠들면 교도관들이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 포기한게 아니가 생각할수도 있다

근데 안양 교도소 있을때 벌금 30만원 나온거 미국에 있는 이복누나가 면회 왔길래
내주라 그랬더니 그런다고 그래서 낸줄만 알았지 그리고 안양 교도소 있을때
한번 면회 왔던 새째형 에게도 그애기를 하며 벌금 30만원좀 내달라고하자
미국뉴저지 에서 온 이복 누나가 그 얘기를 하면서 누나가 법원에 직접가서 낸다고 새째형이복형 보고 30만원 달라고 해서 30만원 줬다고 벌금 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난벌금 낸줄알고
있었다 그리고 벌금을 안냈어도 2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벌금도30만원으로
적고 해서 법원에서 안받아 줄줄 알았는대 물에빠진 사람 지푸라기 라도 잡는다는
속담처럼 혹시나 하며 조용히 그걸 확인해 보니
근데 그걸 안냈어
정식재판 청구 절차법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근2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걸 정식재판 청구 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을줄 알았다
벌금도 30만원으로 적고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벌금30만원을 정식재판에 일단 무작정 청구해 보기로 했다 수용자를 관리하는 교도관들은 보안과 소속이고 각사동 담당 교도관이 평일만 오전8시 이후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지만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보안과 소속 교도관들이 수시로 여러명이 교대근무하였고
이런 재판서류등을 다루는 교도관들은 다른부서 소속이라
이례적으로 벙원이나 검찰청 각각 공공기관의 서류가 송달됐을때나 전달해주려 잠깐 전달해주고 가기 때문에 수용자들과 대면하는일은 드물다
그런데 그게 받아들여 져서 느닷없이 댜략 2006년 10월중순이 다가올 무렵쯤
서울 영등포구치소로 이감을 가게 됐는대
그런데 특이하게 내가 이감가기 전날에 첮째이복형 큰형수가 면회를 오고
보안과장이 이감가는 나를 아침일찍 마중을 하며 갑자기 이감을 어디로 가냐며 묻네 영등포 구치소로 간다고 하니까 무엇때문에 이감가게 됐냐고
나보고 물어보네 보안과장 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

113p-그래서 내가 말했다
벌금이 있어서 정식 재판청구를 해서 이감가게 됐다고 말하자
재판이 끝나면 다시 본 교도소로 돌아올 거라고 구라치네
그전이고 그 후로도 이감갈때 아침일찍 이감가는 수용자 짐검사.하고 수갑과 포승줄 묶는 장소로
보안과장이 직접 나온적은 한번도 못봤어
교도소.에서는 보안과장이 상당한 권한이 있다
영등포 구치소에 도착하자 내짐을 순천교도소 에서 안부쳤다며 택배로 부치면
늣어도 1주일후에 도착한다고 하네 짐을 잘쌓아 가지고 버스 앞에서 버스 화물칸에
실으라고 갖다줘도 안부치는건 또뭐야 나를 누명을 쒸워서 추가를 뛰워야 하는데
하나님 도움 으로 추가를 못 뛰우자 아쉬웠나 보내 이런일은 극히 드문일인데 이게 우연일가 필연일까?
물론 생각은 각자 하겠지만 나는 계획된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영등포 구치소에 도착하자 몇칠도 안되서 고충처리반 주임이 나를 부른다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교도소 교도관들 계급체계는 회사처럼 평직원이 있고 그위에 부장 주임 계장 과장 소장 순이다 )

간부급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처음부터 주임을 단다고 했다
고충처리반 교도관 주임이 과천 법무부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 보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 안부를 묻더래
영등포구치소는 어떻게 왔냐고 묻길래 정식재판 청구해서 왔다고 그러자
그럼 재판이 언제 끝나냐고 묻길래 몇칠 있으면 재판을 하고 별다른 문제 없으면
2주후에 선고를 할것 같다고 하니까 그럼 2주후에 재판이 끝나냐고 묻는대
항소를 하면 오래 걸린다고 하니까 교도관이 찡그린 표정으로 그런 약식기소 벌금30만원
정식재판 청구도 항소가 있냐고 실망스런 투로 말하는게 아닌가
나는 승리의 감정으로 항소뿐 아니라 상고까지 있다고 했지 아니 교도관 들이 나보다 더 잘 알건데
그걸 나한테 물어 보냐고 하자 그
교도관은 완전히 실망한 눈치로 관계 분야 아니면
잘 모른다고 얼버 부리네 이것들이 때거리로 작당 했구만 처음보는 것들이 나한테
왠그리 관심이 많은지 아무튼 일부 공무원들 중에 개보다 못한것 들이 있지 돈과 권력이 시키면 작당하여 누명까지 씌울 놈들이네 개도 주인이 시키는 대로 다 않하는데
나도 회괴한 일이다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데 배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런 일을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누가 내 말을 믿겠냐 그러나 분명히 내 글은 진실이다


영등포 구치소에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일주일이나 몇칠후 내 짐이 도착 했다고 해서 찻아가 보니
당시 영등포 구치소는 건물이 오래되서 그런지 낡았으며
나무로 칸막이 쳐져 있는 곳에서 교도관 여럿이 얘기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주로 죄수 이송 업무를
담당하는 교도관들 같은데 날 본적도 없는 교도관 들이 내 이름을 정확히 들먹 거리며 그렇게 갈려고 발버 둥 치더니
안 보낼려고 했는데 결국은 갔네 팔자야 그러면서 떠드 는 소릴 분명히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교도관들 사이 에서도 입소문 으로
유명 인사가 된게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나같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자칭 국가 법무부소속 공무원이라 떠드는 교도관들이 뭐가 아쉬워 나에대해 수근거리며 떠드는가 정확히 그것도 처음온 영등포 구치소에서 까지 내이름을 알고 떠드는가 내가 무슨 고급 공무원이나 정치가나 대기업 회장도 아닌데 정말로 이상했다 당시 영등포구치소 교도관은 서울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전국의 고향을 둔 인간들이 짬뽕처럼 다모여 교도관을 했다

영등포 구치소는 영등포 교도소아 같이 지금은 철거되어 남부 구치소로 이름을 바꿔 이전 되었다고 한다

어느 거대한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괴롭히려고
멀쩡한 나를 호모로 누명을 쒸워 조직적으로

114p-모함을 했던 보이지않는 정황과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 살인미수로 누명을 뒤집어 쒸워 추가징역을 뛰우려 던 조직적인 음모를
기적적으로 탈출한게 아닌가 그러나 한편 으로는 그런생가 자체가
과대망상 이길 바랬는데 나의 우려가 점점더 현실로 들어나것 같아 나를 점점더 불안하게 했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살다 살다 이런 미친경우를 다 당하다니 참 환장할 노릇이네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국가 권력에 의해 고문 하여 빨갱이로 누명 씌워 죽은 사람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많았는데
그런 인권유린이 과거 군사 정권시절 보단 줄었지만 지금도 돈과 권력등 이권에 의해 인권탄압이 분명이 존재함을 나는 직접 확인할수 있었다 마치 공권력이 아닌 0.0.1%의 개인사조직처럼 움직이는게 한국사회의 본모습이 아닌가 걱정이 들며 불신만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글을 보아도 믿기힘들 겠지만 지금 한국에도 아직도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이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음을 세계양심에 호소하며 특히 교도소등 사회와 격리된 곳에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에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 하고 필름을 최소 1년이상 보관하고 언제든지 정보공개 청구등 으로 공개할수 있도록 법적으로 의무화 해야
그나마 인권탄압을 어느 정도 줄일수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권력은 부패하고 특히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 한다
교도소 내에 교도관 들은 절대권력자에 해당한다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개인에게 억울한일 이나 인권침해를 당하면 수사기관에 고소하면 되지만
개인이 특히 사회적약자가 국가기관에 인권침해를 당하면 어디다가 하소연 할곳이 없다
그럴경우 수사기관 이나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도 한통속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길게 설명하지 않더러도 과거 한국의 부끄럽고 불행한 역사가 증명한다
부끄럽다고 불행하다고 해서 그걸 감추어선 치유가 안된다
부끄럽다고 감춘다고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지 않는다
감추면 언젠가 곪아터져 미래 후손들이 더큰 불행이 온다
다 까발리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우리의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참고자료-59- 하이젠베르크의불확정성의 원리는 근본입자 들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결정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역학의 발전에 있어서 이원리가 갖는 의미는 실로 대단해서 양자역학의 모든 이론에 대한 물리학자 들의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원리는 인과율- 인과 관계에 관한 사고를 혁신 시키는데도 기여 했다
속도와 위치가 동시에 구체화 될수 없으므로 속도가 같은 두전자 들은 같은 방향으로 보낸다고 해도
두 전자가 반드시 같은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말해 동일한 원인이 서로다른 결과를 낳는 셈인데
이는 고전 물리학적 사고로는 상상할수도 없는 현상이다
고전 물리학의 밑바탕을 이루는 결정론적 인과율이 물질의
가장 기본단위 에서는 성립되지 않음을 알게 된것이다 ?59
-과학은 예술이다 - 출판아카넷 2006년 보리스 카스텔 세르지오 시스몬도 지음)

(참고자료-서슬 퍼랬던 유신정권과 5공 군사정권 시절에도
권력이 사법부에 대한 처벌은 관대했다
1965년 한일협정에 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박정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당시 중정부장 김형욱이 제1차 인혁당사건을 조작하여 검찰에 넘기는데 당시 건국이래 최연소 검찰총장에 오른 신직수는 인혁당 사건을 검사 이용훈 에게 배당하는데 노무현 정권시절 대법관을 지냈던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권력층의 더러운 압력을 받았지만
조사를 해도 혐의가 없어 조작사건 이라고 결론짓고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검사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을 했다

그후 10년후 1975년 다시 유신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10년전 1차 인혁당사건 당시 검찰총장에서 중정부장으로 바뀐 신직수가 제2차 인혁당사건을 조작하여 군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인혁당사건 피해자들 7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판결 다음날
새벽 그들은 권력의 주문대로 조용히 처형되었다 소신껏 판결해도 최악의 경우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처럼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끝날 일을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아무 죄없는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워 사법살해 하는
당시 사법부의 행동이 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양심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참고자료-한국 재판사에 가장 치욕스런 사건으로 기록될 일련의 재판이 만들어졌다 민청학련사건
1974년 -에서는 사형7명 무기7명 다른 18명 의 형기가 총 340년에 이르렀다
민청학련 사건과 함께 얽어맨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서 법원은 권력의 주문대로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 다음날 새벽 그들은 처형 당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987년에 대하여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폭로가 있은뒤 진범의 배후일부가 마지못해 구속기소 되었다 -암흑속의 햇불-70-80년대 민주화의 운동의 증언 ?제8권.2001.202-206면 )
재심.인권.시효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구제 방안 경인문화사 한인섭편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타 BK21법헉연구단 )


(참고자료-1988년 국회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국방부는 삼청교육대 현장 사망자가 52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397명 정신장애등 상해자가 2.678명 발생하였다고 보고하였다 -199 윤진수
국방부 과거진상 규명위원회는 2006년 11월10일 삼청교육대 사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청교육대 사건은
공직자 숙청이나 언론인해직및 언론통폐합과 함께 내란죄의 한 부분으로 볼수있고
삼청교육은 국무회의 부위없이 시행되어 적법한 절차에 어긋나고 군사상 필요와
무관한 불량배 소탕을 목적으로 발령 되었으므로 결국 삼청교육은 적법한 근거 없이 시행된 것이었고
국보위 지침은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검거 대상을 정하였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위에 반하고 삼청교육 대상자 검거는 영장주의에 위반할뿐만 아니라 법률에 의하지도 아니한 구금에 해당하며 순화교육 근로봉사는 각각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처벌과 강제노역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이고 순화교육의 내용을 살펴볼때 이는 정당한 교육훈련의 범위를 넘는 반인간적인 가혹행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였다고 지적한다 )
-재심 인권 시효 삼청교육 관련 피해에 관한 법적처리 윤진수편 출판 경인문화사 윤진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교수)

(참고자료-고문으로 조작된 간첩사건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 사건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불법체포 불법감금 고문 불공정한 재판 증거없이 자백만으로 간첩낙인 장기간수형생활 나온뒤 격어야 하는 보안관찰등 정말 우리사회가
가장 우선해서 고쳐야 하는 형사 절차상의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뿐 아니다 사회에서 하루 아침에 간첩또는 간첩의 가족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첩 및 간첩가족들은 이사회에 불가촉 천민이라 일컬어 질만 하다고 생각한다 ?265
사회는 만들어진 조작간첩을 냉대와 의심의 눈초리로 내몰았다
한개인이 저항할수 없는 공권력 마치 하늘이 내린 천형과도 같은 그런 큰센힘이 낙인찍은 그런상태에 이른것이다
이른바 조작간첩으로 내몰린 분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에서 소외계층에
속하는 분들이 많다 납북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어부 라든가 이땅에서 먹고살길 없어서
일본으로 밀항해 들어가 돈벌이를 하다 온분들 일본에 친인척이 있었던 분들 전쟁당시에
행방불명된 가족들이 있는분들이다 ?267
-재심 시효 인권 송소연 민주화 실천 가족협의회 총무)

(참고자료-이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어릴때 부터 생계를 도맡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16p-어느정도 고등교윱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저 일만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법률적 상식을 알수가 없다
-268-당시에 있던일들을 말씀드리지 않겠다 어떻게 국가가 이들에게 잔인한 짓을했는지
인간을 모독하고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했는지 말씀 드리지 않겠다
그때 이분들의 가족들은 물론 변호인의 조력도 받을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드리지 않겠다
얼마나 외롭고 처절하게 나는 간첩이 아니다고 장난처럼 녹음기 처럼 외쳤는지 정말 광야에서 홀로 처절하게
호소 했는지 말씀 드리지 않겠다
80년도 붙잡혀서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 간첩으로 판결을 받고 85년 사형집행된
김정인 선생이란 분이 있다 진도에서 고기잡던 분이었다
이분은 대법원 확정판결이후 바로 재심청구를 하셨다 그런데 기각이 되었고
그러자 두 번째로 재심청구를 했다
그렇게 재심청구를 해둔 상태 였는데 1985년 10월30일 사형집행 된다 법원은 그 사실도 모른채
1987년 재심기각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문을 서울구치소에 보낸다
그랬더니 서울구치소는 1985년 10월10일 형사 집행됨 이라는 요지의 문서와 함께 법원으로 돌려 보냈다
이분 자료를 뒤적이다 발견한 내용인데 정말 기가 막히다고 할수밖에 없었다
이분이 써놓은 재심 청구를 보면 맞춤법 하나도 맞지 않는다 뭔 말씀을 하려 한것인지 여러차례소리내어
읽어 봐야할 정도였다 한가지는 분명했다 판사님 억울합니다
채고형은 너무합니다
자기 변론은 커녕 무슨일로 붙잡혀 와서 이렇게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그 기본 자체를 알지 못하는 분을 사형 시키고 말았다 ?268
-재심.시효 인권 송소연 민주화 실천 가족협의회 총무-)


(81년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엮인 한등자 선생의 증언이다
날마다 뚜드려 맞응께 즈그들이 물어본거 다 예예 하게 되드랑 께요
그 몽둥이 피할라고 내가 이북에 갔다 왔다고 예 해부렀응께
저는 국민학교 4학년 댕기다가 말았어요 그래서 이북하고 우리나라 하고 어찌된 건지도 암것도 모르는디
즈그들이 니가 갔다온 이북이 어쩌게 생겼냐고 묻드라고용 근디 제가 거그가 한글 쓰는지도 모르고 꼬부랑 글씨로 써졌습디다 항께 멍청 하다고 즈그들끼리 그러드만요
이런분을 대려다가 안기부 남산 분실에 글고가서 한달 보름동안 고문을 가했다
그분의 증언이다
시상에 거기서 당한것 말도 못해라 내말 누가 고지 듣것어요
여자를 삼각빤스만 입혀 놓고 손목묶고 발목묶고 갖고 그 사이를 막가지 같은걸로 이어 갖고는
그 모양시로 천장에 달아 메논께 꼭 돼야지 잡아서
걸친것 마니로 되더랑 께용 그렇게 해놓고는 서되짜리
주전자 에다가 물을 넣고 갖고 그걸 멕입니다
또 징한것이 세수한데다가 업디라고 해갖고 세놈들이 고개를 못들치게 밀어 부러라
글믄 을메나 물을 먹어분지 정신이 없어져 부렁께 발바닥이고 다리고 막가지로
어찌나 뚜뜨 리는지 그것이 징합디다 낸중엔 걸음도 못했어요
지금도 발바닥이 뜨거워라1988년 9월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 형사 정책 학회정기 학술대회에서 증언했다 -269
270-이렇게 고문을 당해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일을 자백하고 말았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선생에 따르면 사람에게 어떤 욕구가
생기면 그것이 인식의 전경으로 떠오르게 된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갈증이 전경이 되고 공부는 배경이 된다 물을 마시고 나면 공부하려는 욕구가
다시 전경이 된다는것이다 욕구는 그것이 충족이 되었을때
인식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이렇게 욕구의 순환을 통해서 일상적인 삶이 이어진다
그러나 전경에 떠오르는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욕구들은 전경으로 떠오르지 못한채
정체될 뿐이다 외골수로 되거나 병적인 집착이 심해진다 는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적응력을 떨어트리고 만다
나는 간첩이 아니다
라는 내가 거기서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내몰린것 그걸해결하지 않는 이상

117p-삶에서 어떠한 것도 욕구가 될수없다 ?270
-재심 .시효 .인권 송소연 편 출판 경인문화사 2007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3146명 수용 가능한 대한민국 부산시 북구 산 18번지(현재 부산 사상구 백양대로 372) 일대에 국내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1987년 3월 22일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이에 35명이 탈출함으로써
그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이 드러나게 된 사건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게 이 사건의 배경이었다. 2014년 3월 2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홀로코스트 그리고
27년:형제복지원의 진실'에서는 27년 간 감춰져 온 이 사건의 의혹과 진실이 방영되었는데, 이 복지원에서는 수용자들의 중노동은 물론 수용자들에 대한 구타와 감금 그리고 성폭행까지 자행됐으며,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인원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당시 상당수는
부랑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길가던 행인을 봉고차로 납치하여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 하기도 했다는 증언의 보도도 있었고 어린 남매가 기차를 타고가다 부산역에서 길을잃어
집을 찾던중 경찰관들이 부산형제복지원에 남매를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보도 있었다
당시 부산형제 복지원은 수용인원에 대해 정부로 부터 지원금을 받았고 수용자가 사망하면 2-3백만원에 병원이나 의과대학 실험용으로 팔리기도 했다는 한국 지상파 방송 sbs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를 보았다
당시 전두환 정권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는 원장은 징역2년을 선고받고 출소하여
복지원 사업을 계속하다 죽었다고 한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수지 김 사건은 대한민국 기업체의 홍콩 주재원이었던 윤태식(尹泰植)이 1987년 1월 부인 김옥분(일명 수지 김)을 홍콩에서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 제5공화국 정권은 부부싸움에 이은 살인사건을 ‘여간첩 남편 납북기도사건’으로 조작했다.이 사건은 과거 대한민국의 독재정권이 정권 유지를 위해서 벌인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윤태식은 이후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변신해 패스21 이라는 지문인식 회사를 설립하고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벌이다가 2001년 12월 일명 '윤태식 게이트'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모든 사실이 밝혀져 법의 처벌을 받았다.
사건 개요[편집]
김옥분은 1952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1남 6녀중에서 둘째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미8군에서 일하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다가 홍콩 사람과 결혼하여 홍콩에서 살았다.
홍콩의 남편과 이혼한 후에 일본의 한국계 술집에서 일하다가 또 다른 홍콩 사람과 잠시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혼했다 '수지 김'은 대한민국 밖에서 사용한 김옥분의 가명이었으며,
홍콩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홍콩에서
대한민국 기업체 주재원이었던 한국인 윤태식을 만났고 1986년에 결혼했다.
윤태식은 1986년 초 비디오 제작 및 유통업체에 임시직으로 취직하고 홍콩에서 비디오 판권을 얻어 국내에 유통시킬것을 제안하여 홍콩으로 발령받았다. 중학교 1학년 중퇴학력에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쳤음에도,
"육사를 졸업하고 대위로 예편한 뒤
홍콩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해왔다.[1] 1986년 가을에 김옥분과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1987년 1월 3일 홍콩의 아파트에서 부부싸움끝에 아내 김옥분을 목졸라
살해하고 주검을 침대 밑에 숨기고 이틀 뒤 싱가포르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미국 대사관을 찾아갔고, 결국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보내졌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윤태식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했으며, 아내는
북한 간첩이었다"고 주장했다.

118p-조작 및 은폐[편집]
윤태식을 면담한 이장춘 싱가포르 대사와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 현지주재관은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장세동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장은 현지의견을
받아들여 기자회견 보류를 지시했으나, 이후 마음을 바꿔 네 시간 만에 다시
강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장춘 대사는 횡설수설하는 윤태식이 기자회견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싱가포르와 외교마찰을 우려해 1987년 1월 8일 제3국인
타이 방콕에서 1차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으로 송환된 1987년 1월 9일
김포공항에서 2차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장춘 대사는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라는 본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당시
대한민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북한 여간첩이 미인계로 순진한 남편을 꼬드겨 홍콩에서
월북시키려다가 남편이 가까스로 탈출한" 일종의 활극처럼 보도했다.[2] 생계를 위해 일본에 드나들다 홍콩에서 살해된 술집 여종업원은 일본 조총련계 간첩단과
연루된 미모의 여간첩으로 둔갑하였고 살인범은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반공투사'가 되었다.
1986년 가을부터 KBS에서는 《남십자성》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수지 김 사건 이후에는 아예 '수지 김'이라는 여간첩이 드라마 배역에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반공, 반공해도 그 의미를 몰랐으나 우리가 왜 반공을 해야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윤태식의 귀국 인터뷰[4]
윤태식은 곧바로 국가안전기획부 남산분실로 연행되어 엄중히 추궁을 받았으며, 결국 자신이 부인을 살해하였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진 월북하려 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국가안전기획부는 윤태식이 이와 관련해서 함부로 발설하지 말도록 했으며,
1991년부터는 대한민국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출국금지를 시키기도 했다.
1987년 1월 26일, 악취가 난다는 이웃집의 신고로 홍콩 경찰이 김옥분의 아파트를 수색했고 결국 침대 밑에서 피살된 김옥분의 주검을 발견했다. 홍콩 언론은 "수지 김은
북조선 간첩이 아니다"라고 정정보도를 했으나 대한민국에는 이 소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후 홍콩 경찰은 남편 윤태식이 김옥분을 살해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홍콩으로 불러서 조사하려 했으나 대한민국 외무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한편,
싱가포르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윤태식은 자진해서 대사관에
왔을 뿐 납치기도는 없었다고 주장하자, 싱가포르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도 납북미수는 사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간첩으로 몰린 김옥분의 일가족은 풍비박산나는 아픔을 겪었다. 일가족 중에서 세 명이 화병과 정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옥분의 여동생 네 명중 세 명은 간첩을 자매로
두었다는 사회적 지탄 때문에 이혼을 당했고, 조카는 따돌림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윤태식은 계속해서 각종 사기 범죄를 저질러 왔다. 영화 배급 사업을 하다가 파산한 이후, 1994년에는 방송사 PD
신분증을 위조해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수억 원을 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1996년 7월에 출소했다. 이후에도 위폐감식기, 중국사업진출등의 명목으로 수천만 원의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경력이 있는 윤태식이 어떻게 패스21이라는 지문인식
시스템 벤처 회사를 설립했는가에 대해 강력한 의혹이 남아있다. 특히, 살인
사건을 조사했던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가 패스21 지문인식시스템의 기술시연회를 1998년 10월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열기도 하는 등 국가안전기획부가 윤태식을 특별히
관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윤태식 게이트가 드러난 이후에는
한나라당 전현직 의원들과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패스21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2000년 3월에는 김찬경이 인수한 미래저축은행에 회장으로 추대되어 구속 직전까지 활동했다.
이 사건을 최초로 조사한 사람은 〈신동아〉 이정훈 기자였다. 1995년 한 언론사 선배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귀띔받고 취재를 시작하였으나, 당시 근무하던 〈주간조선〉(1995년)과 〈시사저널〉(1998년)에서 편집부의 반대로
기사화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의 전모가 2000년 1월 주간동아에 처음으로 보도되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00년 2월 12일자 방송에서 심층적으로 다뤄졌다. 그렇지만 취재 사실을 눈치챈 윤태식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그 결과 일부 내용을


119p-삭제한채 방영하라는 판결이 나와 실제 방송분에서는 윤태식의 이름이 문○○으로 가려졌고, 87년 당시 신문을 내보낸 장면에서도 이름 및 사진 등이 가려진채 방영되었다.

이 방송을 우연히 알고 시청하게 된 김옥분의 유족들은 간첩 조작과는 별개로 살인 혐의로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던 윤태식이 버젓이 벤처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하여 2000년 3월 9일 윤태식을 고소했다.
이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방해 공작 등으로 인해 수사가 지지부진했으나 2001년 5월 윤태식으로부터 87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있었던 일을 담당검사가 진술받아 국가안전기획부의 은폐가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마침내 공소시효를 50일 남겨둔 2001년 11월 13일 윤태식은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11월 24일 SBS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2000년 2월 당시 방송되지 못한 부분을 포함하여 수지 김 사건의 전모를 상세하게 다뤘다.
2002년 5월 14일 법원은 '아내를 살해한 뒤 주검을 숨기고, 납북될 뻔했다가 탈출한 것처럼 거짓 기자회견을 여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더불어 유족들에게 15년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어 중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고 밝히고 윤태식에게 살인, 사기,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 6월을 선고했다.[7] 그러나 수지 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은폐 및 조작을 주도했던 장세동 등
국가안전기획부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2002년 6월 검찰은 직권남용죄(공소시효 3년)와 직무유기죄(공소시효 1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유족 10명은 같은 해 대한민국 정부와 윤태식을 상대로 10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2003년 8월 14일 42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비용은 당시 유사소송과 비교했을 때 최고의 배상 금액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것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박처원 전 치안감 이후 두 번째였다. 국가정보원은 2003년 8월 21일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건조작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대한민국 법무부는 수지 김 사건의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사건을 종결시켰고, 정부는 장세동 등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배상액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장세동은 구상권에 의한 배상액 지불을 피하기 위해 8억 원대의 빌라를 처분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에 의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큰 논란이 일었다-위키백과사전-)


-참고자료-
(30년 억울한 옥살이, 죽음 앞에서도 용서 못한 공권력
[가만한 당신] 글렌 포드한국일보|최윤필|입력2015.08.01. 04:53|수정2015.08.03. 13:45
1983년 살인 누명 사형 선고, 결백 주장에도 유죄 판결
2014년 극적인 무죄 석방 진범 있다는 진술 듣고 재수사, 원심 무효화 바로 풀려나
보상 한 푼 없이… 불운한 삶 출소 두 달 만에 폐암 말기 진단, 법원 "배상 불가'" 또 不義
1949.10.22~ 2015.6.29 글렌 포드는 누명으로 생의 절반을 사형수로 갇혀 지냈고, 기적처럼 무죄를 인정받아 풀려난 뒤 폐암과 투병해야 했다 그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폭력에 가장 뜨겁게 감응한 이는 30년 전 그를 기소했던 검사였다. 포드의 삶과 죽음은 미국 지방 검사의 절절한 반성문 하나로 간신히, 완전히 허망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됐다. AP뉴스
1급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죄수가 근 30년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그리고 출소 2개월 뒤 폐암 판정을 받고 1년여 간 투병하다 숨졌다. 6월 29일 작고한 미국 뉴올리언스의 흑인 남성 글렌 포드(Glenn Ford)의 삶이 그랬다.
더 어이없는 건 주 정부의 손해배상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생계와 투병 비용을 대야 했다.
글렌 포드와 같은 사연은 적어도 자국민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췄다는 미국에서조차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지난 6월 말까지 사형수로 형 집행을 앞두고 있다가 무죄로 석방된 사례만 115건이다.(2014년 5월 10일자 이 코너의 주인공 '루빈 카터'는 살인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가 19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경우였다.)
드문 일이 아니라면서 굳이 글렌 포드의 사연을 들춰본 까닭은 1983년 그를 살인죄로 기소했던 당시 지방검사 마티 스트라우드(Marty Stroud)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는 지난해 포드의 무죄 사실이 법원에서 확정된 뒤 지방 신문에

감동적인 반성문을 썼다. 그의 결백 증거를 공개한 또 다른 지방 검사 데일 콕스(Dale Cox)도 있다. 완고한 사형제 120p-옹호론자인 데다 포드의 결백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그는 29년이 지난 시점에 검찰로서는 치욕이 될 증거를 공개함으로써 포드의 진실을 다시 법정에 세웠다.
살인사건은 1983년 11월 5일 루이지애나 주 슈리브포트(Shreveport)라는 도시에서 발생했다. 보석상 주인 이사도르 로즈먼(Isadore Rozeman, 당시 58세)이 무장강도가 쏜 총에 숨진 거였다. 경찰은 4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그 중 한 명이 로즈먼의 파트타임 정원사였던 34세의 글렌 포드였다. 범행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지문을 비롯한 그 어떤 유죄 입증 물증도 없었지만, 모든 정황이 포드에게 불리했다. 그가 보석상에서 도난 당한 물건 일부를 전당포에 맡긴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의 사정을 잘 아는 정원사였고, 또 흑인이었다. 범인이 왼손잡이일 것이라는 감식 결과가 있었고, 공교롭게 포드가 왼손잡이였다. 또 그에겐 마약 문제로 경찰서를 오간 이력이 있었다. 범행 시점 현장 주변에서 포드를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다른 용의자의 여자친구가 한 증언이었지만, 이미 심증을 굳힌 경찰은 그 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포드는 결백을 주장했다. 전당포에 맡긴 건 평소 친분이 있던 나머지 용의자들에게서 선의로 얻은 물건이었고, 장물인 줄도 몰랐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검찰은 84년 12월 5일, 포드와 나머지 용의자들을 1급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주검찰청 수석검사가 스트라우드였다.
포드에게는 2명의 국선 변호인이 배정됐다. 형사사건을 맡은 적도 없고 배심원 재판에 참여해본 적도 없는 초임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알리바이와 증언의 진위를 확인해달라는 포드의
요구를 묵살했다. 주 정부로부터 그들이 받은 일당 3달러로는
백인이었다는 점조차 오히려 사소한 문제로 보일 정도였다. 법원은 2개월 뒤 포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배심원단은 나머지 세 피고에 대해서는 무죄를 평결했다.글렌 포드는 1949년 10월 22일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사해 거기서 고등학교(11학년 중퇴)를 다녔고, 미용학교에 등록해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사건 몇 해 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때그때 식당 일등 이런저런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뒷골목 친구들이 선심 쓰듯 건네 준 금붙이는 그로선 횡재였고, 그게 어디서 나온 물건인지 따져 물을 만큼 그가 윤리적인 사람도 아니었다.포드는 루이지애나 주 중죄인교도소 가운데 수형 여건이 최악이라 알려진 앙골라 교도소 0.8평 사형수 독방에 수감됐다.
거의 매년 검찰과 주정부에 재조사를 청원했지만 거부당했다. 억울한 사형수 등 수감자를 구제해온 인권단체 'IP(Innocent Project)'가
2007년 포드 재판의 문제점들, 특히 유죄 입증의 결정적 변수였던 증언이 "근거도 없고 신뢰하기도 힘들다"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주 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2년 카도 패리시(Caddo Parish) 지방검사 데일 폭스는 다른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정보원으로부터 83년 로즈먼 살인사건의 주범이 재판 과정에 무죄로 풀려난 셋 중 둘이고, 포드는 살인에 관한 한 아무 관련이 없다는
진술을 듣게 된다. 재수사 결과 그
진술은 사실로 확인된다. 폭스는 그 해 6월 '무죄 증거'와 함께 연방법원에 그의 재심을 청구한다. 그 무렵 진범들은 다른 사건으로 형을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검찰이 엉뚱한 사람을 가두고 진범을 풀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범행을 저지르게 한 거였다.
검찰 스스로 조직의 엄청난 과실을 자백한 셈이었다.
2014년 3월 11일 연방법원은 원심 판결을 무효화했고, 포드는 당일 석방됐다. 구속된 지 29년 3개월 5일 만이었다. 자유인이 된 64세의 그에겐 교도소 측이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한 20달러짜리 직불카드 한 장과 교도소 노역 통장에
든 4센트뿐이었다.
석방된 뒤 수많은 보도진을 벗어나자마자 포드가 IP 변호사에게 맨 처음 한 말은 "배가 고프다"는 거였다고 한다. 사형수가 아니게 된 순간부터 사형수로서 먹던 음식을 일체 거부했다는 게
포드의 설명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출소자 재활시설로 이동하던 61번
고속도로에 단 하나 있던 레스토랑이 하필 그날 쉬는 날이더라는 이야기, 차를 돌려 주유소 간이매점에 프라이드 치킨과 도넛을 주문하러 갈 때 포드는 차 안에 머물렀다는 이야기(30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직접 문을 열고 나서본 적이 없어서였다. The Atlantic, 2014.3.14),
그리고 두 달 뒤 폐암 말기(4기) 진단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는, 너무 소설 같아 소설이 되지 못할 이야기.
그의 불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루이지애나 주법에 따르면 무고한 형기에 대한 정부 보상금은 연 1만 달러에 최고 25만 달러. 거기에 '잃어버린 삶(loss of life)'에 대한 별도의 위로금이
8만 달러다. IP의 포드 담당 변호사 게리 클레멘츠(Gery Clements)는

주정부에 그 돈을 청구한다. 하지만 카도 패리시 검찰청은 포드의 장물 처분 사실을 들어 '무고한 피의자에 한해 121p-지급한다'는 배상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집행을 거부했고, 2015년 3월
법원 역시 "포드의 손에 피가 묻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며 검찰 편을 든다. 판결 직후 클레멘트는 "법원의 결정은 범죄가 일어난 집 앞 길을 무단 횡단했다고 보상을 거부한 것과 같다.
그가 장물을 전당포에 맡긴 혐의로 기소됐다면 사형 선고를 받고 30년이나 옥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IP 뉴올리언스 지부는 성명에서 "이 판결은 지난 30년간 포드가 감당해야 했던 일련의 가혹한 불의들 중 가장 마지막 불의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허핑턴포스트, 2015.4.3) 포드는 숨을
거둘 때까지 생활비와 치료비 일체를 봉사단체의 도움과 시민 성금으로
충당해야 했다. 주 정부를 상대로 한 인권 침해 등에 대한 소송 역시 그의 죽음으로 중단됐다.
그를 기소했던 당시 지방검찰청 수석검사 스트라우드는 법원의 배상불가 판결 직후 지역 신문인 '슈리브포트 타임'에 장문의 글(shreveporttimes.com, 2015.3.20)을 기고했다. 법원 결정을
비판하는 신문 사설에 동조하며 거기 얽힌 자신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그 글의 첫 머리에 스트라우드는 "제도의 허점이 그의 삶을 철저하게(effectively) 파괴한 만큼 주 정부는 그 어떤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에게 최대한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가 겪게 한 고통에 대한 배상을 정의의 이름으로 회피하려는 주정부의
뻔뻔스러운 노력에 소름이 돋는다"고 썼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죄의 문장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사형의 자의성(arbitrariness)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이제서야 나는, 33살의 젊은 검사였던 내게 다른
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스트라우드는 자신이 글렌 포드의 재판을 처음서부터 끝까지 지켜봤고 사형 선고가 내려질 때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노라 믿었다고, 마땅히 할 일을 해낸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그날 밤 동료 검사들과 몇 번씩 자리를 옮겨가며 축배1의 술을 마셨다고,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오만했고, 심판하는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에게 도취돼 있었고, 또 자신만만했다. 나는 정의 그 자체보다 내가 이기는 것에 더 몰두했다.(…)
바로 나 자신이 모든 걸 망쳤다. 지금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이 말을 한다. 내가 촉발한 글렌 포드의 모든 비참에 대해 그와 그의 가족에게 사죄한다. 그릇된 판단으로 헛된 결말을 안겨준 로즈먼씨의 유족에게도 사죄한다. 배심원들에게 마땅히 제공했어야
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사죄한다. 내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오점을 남긴 재판부에도 사죄한다."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스스로가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공정하고 공평하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 없다."
스트라우드는 처절한 반성과 백 마디 사죄의 말보다, 또 그 어떤 금전적 보상보다, 포드의 억울한 희생을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그가 행할 수 있는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길이라 여겼고,
그것이 사형제 폐지였다. 그가 자신의 사죄를 글렌 포드
개인에게 말이나 편지로 전한 게 아니라 언론 즉 지역 공동체와 미국 시민에게 한 까닭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름 없는 신문에 실린 그의 사과문은 주 경계를 넘어 미국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4월 그는 병석의 글렌 포드를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ABC '나이트라인'을 통해 방영된 그 방문에서 스트라우드는 "내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며, 무덤에 갈 때까지
그 오점이 씻기지 않을 것임을 안다"며 포드에게 머리를 숙였다. 일어설 힘이
없어 앉아서 그와 악수를 나눈 포드는 "하지만 옥살이가 끝이 아니었다"고 "지금 내게는 6~8개월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 있다"고 말한 뒤 어렵사리 진심을 털어놨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정말 못하겠어요. 정말요.(I'm sorry.
I can't forgive you. I really am. I really am.)"

스트라우드가 포드의 용서를 기대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반성문 끝을 이렇게 맺었다. "나는 내가 글렌 포드에게 보여준 것보다는 많은 자비가 신의 뜻 안에 있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하지만 내게 그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최윤필기자 )

122p-
당시 전두환 다음으로 차기 대통령을 꿈 꾸던 전남고흥 출신의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이
규제 조치가 풀린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와 김영삼과 함께 가칭 통일민주 신당을 창단 하려하자 권력의 비호를 받은 용팔이 등을 사주하여 창당을 방해하려 각목을 들고 떼거리로 몰려가 때려 부수는등 신당 창당을 방해하고
수지김 사건은 수지김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뻔이 알고도
당시 5공 정권을 유리하게 선전하기 위해 혹은 5공정권 말기에 재 집권을 목표로 그런거라 생각 되는데
이런 더러운 음모를 꾸민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이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안된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전두환 정권 초창기때 아마 83년 전후인가 생각 되는데
북한이 금강산 땜을 만들어 터트리면 당시 한국 최고층 63빌딩 거이 꼭대기 몇층만 빼고
물이 차니 평화의 땜을 만들어 막아야 한다며
방송을 이용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당시 거금인 6백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정부가 국민들로 부터
사기를 쳐 성금 받는 어처구니 없는 쇼를 연출 하기도 했다
그 많은 국민들로 부터 기부를 받은 돈이 어디에 쓰여 졌는지
모르지만 그후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은 각각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만들어 운영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지김 사건과 평화의 땜 사기 사건은 그후 정권이 바껴 한참후에야 사건의 진실이 터졌는데
그런대 당시 전두환 다음으로 차기 대통령을 꿈꾸던 장세동 이미지에 결정적으로 먹칠을한 사건은
장세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졌다
당시 전두환 정권시절 장세동이 안기부장으로 재직중에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인데 당시 시대상으로는 도저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수 없었을것 같은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유병언 사망 사건의 수사를 보면서 이런일이 요즘에 터졌어도 권력기관에서 감추려 했다면
밝히기 힘든 사건이라고 생각 하는데
사건의 진실은 경찰이 물고문으로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치사 하고 책상을 탁하고 치니 옆에 있던 박종철이 놀라 억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누명씌워 시체를 검시한 의사도 심장마비사로 죽었다고 조작하여
사건을 조작하여 무마하려고
경찰이 고문치사한 증거를 없애려 박종철 시체를 바로 불에 태워 화장하려 하자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끝날 사건인데
경찰이 뜻하지 않게 같은편인줄 알았던 최환 검사가 갑자기 증거로 시체 보존 명령을 내려 화장을 못하게 하였고
수사는 안상수 당시 검사가 한걸로 되어 있는데 그걸 허가한게
안상수 위에 있는 부장검사가 수사를 허락 했다고 한다
서슬 퍼랬던 전두환 정권인 5공시절에 이렇게 같은편이
아쉬울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권력의 눈치를 보던게 당시나 지금이나 검사들의 다수의 행태인데 평균적인 한국 검사들 답지않게 당시 안상수 검사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건 힘든 일이었음이 2014년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세모그룹 전 회장 유병언 사망 사건을 검.경이 수사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느꼈다


대통령을 꿈꾸던 장세동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한방으로 정치사의 중심에서 영원히 멀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 해야 할 점은 지금도 삼성그룹의 은밀한 떡값을 받은 한국의 권력의 실세와 여.야 정치인들 그리고 검사들 까지 삼성공화국 권력의 비리를 감추려 급급하는데 5공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까발려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을 물러나게 하고
도미노 현상으로 당시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져 노태우가 6.29선언을 하게 만든

진짜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무도 모른다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길을 돌린 원인은 뭘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당시 서울도 전두환이 광주처럼 군을 동원하여 진압 하자고 했는데
노태우가 서울을 광주처럼 진압하면
자신들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

123p-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 당선될 가능성이 있으니 자신을 믿고 직선제 개헌을 하자고 권유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었다
추측을 해 보자면 당시 전두환이 심복인 장세동을 밀어 체육관 선거로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자
당시 한국을 지배한 실세인 하나회 출신중 누군가 반대한 어떤 고위층 인물들이 장세동을 대통령으로 만들수 없다는 배후 세력이 합하여
낙마 시키기 위해 때마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진실을 미리알고 진실을 까발리도록 배후에서 검사들이 조사 하게끔 보이지 않는 손이 시킨게 아닌가 추리할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의도와 달리 사건이 민주항쟁으로 까지 핵분열 하듯 커져
결국 노태우가 6.29 선언으로 역사적인 직선재 개헌으로 까지 이루어 진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을수 있을 꺼라 누구나
예상 했는데


당시 민주 세력 이라고 떠들던 통일 민주당 공동대표 김영삼은 조기경선과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고 김대중은 개헌후 경선과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다 대선이 가까워 오자 무슨 목적인지 탈당하여 신당인 평민당을 만든다


당시 경선은 김대중이 좀 불리한 세력이었다고 한다 그후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출마하여
민주세력 표를 나눠 결국 군 출신인 여당 후보 노태우가 선거에서 승리하여 하나회 군인 출신들이 재집권 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역사는 진행 되었다
그후 김영삼과 김대중은 단일화 불발 책임을 서로 미루고 갈라서며 다투게 된다 특히 김영삼은 과거 자신이 양보하여 김대중을 야권 대통령 후보로 밀어줘 박정희와 대선을 치르게 지원 해줬는데

그후 87년 대선 직전 자신이 야권 경성에 불리하다고 지지세력을 데리고 탈당하여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보고 단일화 불발을 김대중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고 이대로 가다간 생전에 민주 정권으로 정권 교체를 하기 힘들어 하나회를 무너 트리기 위해 노태우가 집권하자 여당의 민정당 김종필의 자민련과 3당 합당 하여
야합을 하였 다고 욕을 먹었으나 트로이의 목마처럼 자신의 목적을 숨기고 하나회를 안심시키고 그후 우여곡절 끝에 이종찬을 경선에서 물리치고 김영삼은 여당 대표가 되어
1993년2월부터 98년2월까지 14대 한국 대통령이 된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 갔다는 김영삼은 야합이란 욕을 먹으면서 까지 여당과 합당하여 군사정권의 핵심 세력인 하나회 조직이 김영삼에 경계를 풀고 같은 편 이라고 안심한 사이 대통령이 되어 일거에 하나회를 해체시키는 바람에 그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로 정권 교체하여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하나회가 무슨 조작을 해도 정권 교체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꺼라고 김대중 과 노무현은 김영삼이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꺼라고 말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란 길이없던 길에 각자 인간의 욕심에 의해 물길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비단 정치사 뿐만 아니라 인간 개인사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도에 5공 인사중 한 사람인 이종찬이 숲은 조용하지 않다 는
책을 출판하면서 노태우가 차기 대통령이 되도록 합의한게 1980년도 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종찬의 자서전 책 제목이 숲은 조용 하지가 않았다 하면서
다른것도 아니고 차기 대통령에 노태우가 되도록 아무도 떠들지 않고 조용 했다는게
지나가는 개도 안믿을 말이다 합의 했다고 하는것도 믿을수 없지만 설사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전두환 다음으로 차기 대권을 노린게 정호영 등 다수가 존재한 것을 아는데

조용히 차기 대권을 노태우에게 물려주려 했다는 이종찬의 자서전은 진실을 숨기면서
진실을 책 제목 숲은조용하지 않았다 처럼 전두환 다음의 차기대권을 노리는데 조용하지 않았다
는 것을 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종찬은 그동안 가만 있다가 2015년도 에야 숲은 조용하지 않았다는 자서전을 내서
내글을 폄훼하려 하는가 나의 자서전은 이미 2014년 도에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올려져 계속 조금씩 수정하며 완성 시키려 노력 하였다
전두환이 장세동 에게 차기 대권을 물려 주려 했다는 글은 이미 2014년도 부터 적혀 있던 글이다
혹시 삼성가 오너들이 내글을 폄훼하려 이종찬을 움직여 글을 책을 출판한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종찬이 책 제목에 숲은 조용하지 않았다고 적어 은근히 내글이 확실한 진실이란
걸 은밀히 표현한건 아닐까 ?

아무튼 위에 설명한 억울한 내용들은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해당 한다고 할수있다
이들은 정말 당시 사악한 강자인 권력 기관에 재수없이 희생양으로

124P- 몰려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고대 인도를 정복한 최상의 지배계급은 유럽의 현재 독일 백인계 조상인 게르만족의 조상들에게
점령당한 인도 원주민을 불평없이 지배하기 위해
카스트 계급 제도가 생겼는데 그중에 가장낮은 불가촉 천민 계급을 만들어
전생에 죄 때문에 불가촉 천민으로 태어 났다고 거짓말로
속여 불평없이 지배한게 과학의 발전으로 드러났다
전세계 TV 공장이나 핸드폰 공장등 에서는
수많은 제품등이 생산 되지만 또 많은 불량품이
직원의 부주의 라든가 기계의결함과 직원의 순간 부주의 때문등 여러가지 복합 원인으로 발생 하지만
그것들이 불량품이 된것을 TV나 핸드폰의 전생의 죄로 말미암은 원인으로
발생 했다고 한다면 말도 안되는 논리인 것이다
더구나 TV나 핸드폰 등이 상점에 전시 되지만
바로 앞전에 술 주정뱅이 에게 팔려간 똑같은 제품은
바로 술취한 구매자 에게 홧김에 부서진 다면
그후 사간 똑같은 제품은 부잣집 이쁜 딸이 구매해가
오래토록 깨끗하게 보존 된다고 하여
TV나 핸드폰 등 에게 전생 타령 하며 팔자를 논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14번째 환생 했다는 티벳인들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


( 참고자료-달라이라마
달라이 라마(영어: Dalai Lama,ta-la’i bla-ma)
1391년부터 전세된 티베트 불교 겔룩파(황모파)에 속하는 환생하는 라마(스승, 큰스님) 이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텐진 갸초이다.
티베트의 다른 모든 불교 종파는 달라이 라마를 전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는 몽골의 알탄 칸이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에게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래로 그 법통을 잇는 모든 화신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몽골어 ‘다라이’는 ‘바다’를 뜻하며, 티베트어 ‘라마’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에 해당하는 말로 ‘영적인 스승’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티베트어: Chenrezig)의 화신이라고 믿으며, 달라이 라마가 죽은 뒤에 차기의 달라이 라마가 다시 환생하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깨달은
자라는 것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였다. 그 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면서 또한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정부에서는 티베트 민족주의의 상징이자
그 자신이 민족주의자인

14대 달라이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존경행위를 박해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자 정치적 결정권을 갖는 통치권자이다.
현재 14대에 이르고 망명정부 활동을 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티벳불교는 티벳 사자의서의 원작자인 파드마 삼바바가 창시한 종교이다
티벳과 중국일부 몽골등에서 믿는 일명 라마교 라고도 불리는 종교이다
티벳 사자의서란 책은 파드마 삼바바가 죽은사람을 위해 49일 동안 읽어주는 경전으로 티벳에 전해져. 오다가
영국 출신의 에반스웬츠가 발굴하여 책으로 출판하여 전세계에 알려졌다 )

요근래 티벳 승려가 분신하며 티벳을 무력으로 강탈한 중국으로 부터 독립을 아무리 외쳐도
중국인들은 그게 거짓말 이라고 일축해 버리며 중국공안은

독립시위를 하는 티벳인들을 중국 공안이 몽둥이로 때려 죽이며 진압하며
망명한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중국에서 만나지 말라고 얼음장을 놓자 국제사회는 중국눈치만 보느라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미국만이 중국에 대들며 그래도 바른 소릴하며 티벳이 독립해야 한다고 말할수 있는 나라다
나는 티벳이 하루 빨리 파렴치한 쓰레기 중국 공산당으로 부터 독립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환생 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의문이 많이 간다
티벳 불교는 라마 불교인데
전세계 불교 국가중에 유독 달라이 라마만 계속 환생하여 14대 까지 이어 졌다고 하는것도 그렇고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너무 황당한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에드가 케이시를 비롯한 환생을 주제로한 책들이 많이 존재 하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저작자의 주장으로 국제사회에 학자들이 검증할수 있는 제3기구에
엄정한 검증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건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1959년 중공으로 부터 무력으로 점령 당하여 자유를 빼앗긴
티벳이 하루 빨리 독립하여 자유를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과거 1981년인가 이스라엘 출신 유리겔라 라는 당시 초능력 자가
TV에 출연하여 초능력 시범을 보였다
당시는 한국국민 다수가 유리겔라가 진짜 초능력 시범을 보이는줄 알고
이 세상에는 초능력이 존재 한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후 지금으로 부터 약 십여년 전에 2003년도 인가 SBS방송 에서 캐나다 출신의 전직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라는 노신사가
등장하여 자신에게 초능력을 입증하면 미화 100만불을 주겠다며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유명한 초능력자란 초능력자는 다 시험해 보며 입증하면 100만불을 줄려고 했는데
그중 유리겔라도 시험해 봤는데
전부가짜 라는 방송을 보여주며 아직까지 지구상에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고
했다
전직 마술사출신인 제임스 랜디 라는 노신사는 초능력이 없다는걸
거이 확신하고
100만불을 걸고 TV에 등장하여 돈벌이를 한것 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2012년 10월28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칼이 몸을 관통해도 죽지 않는 남자 미린다요(아놀드 헹스켄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도저히 과학적으론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미란다요가 먼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인물이라면 제임스 랜디에 100만불을 받아 갔을 것이다

(참고자료- 제임스 랜디(James Randi, 1928년 8월 7일 ~ )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마술사이자 저술가이다. 디 어메이징 랜디

(The Amazing Randi)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명은 Randall James Hamilton Zwinge이다.
경력[편집]
랜디는 15세 때 강신술(降神術)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나, 어른들로부터 ‘신성한 종교의 집회를 더럽혔다’라는 이유로 경찰에 소환되어 4일간 구류생활을 했다. 랜디는 이 때의 일을 ‘세상에 있는 심령술사, 초능력자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라고 술회했다. 그는 이때 가짜 초능력자에 대해 일생을 건 복수를 결의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가짜 초능력자를 폭로해 냈다.
그는 1950년대부터 탈출을 주특기로 하는 프로 마술사로 활약했다. 1970년대에는 유리 겔라와의 결전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1980년대에는 신앙치료를 행하는 인기 TV 전도사 피터 파포프의 사기행위를 폭로하여 주목을 모았다
CSICOP 창설 멤버였으나, 현재는 자신의 송사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탈퇴했다. 1981년에 발견된 소행성 랜디는 그의 명예를 기리는 의미로 명명되었다. CSICOP 주최로 열린 앙케이트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회의론자 10걸’
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카를로스 사건[편집]

126P-카를로스 사건은 제임스 랜디가 호주에서 어느 TV 방송국의 기획 하에 다수의 사람과 미디어를 속인 사건이다. 원래는 채널링의 허구성에 관한 기획으로 방송국이 랜디에게 출연을 의뢰한 것에 기인한다.
이를 위해 랜디는 지인인 호세 알바레스를 채널러로 내세웠다. 호세는 채널러로 행세하기 위해 랜디의 훈련 지도를 받았다. 훈련에는 옆구리 밑에 구체를 테이프로 고정시켜
그것으로 혈관을 압박해 팔의 맥박을 떨어뜨리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988년에 랜디와 호세가 호주를 방문했다.
호주에서, 호세는 카를로스라고 하는 2000살의 정령과 채널링을 할 수 있다고 하여 호주 언론의 인기인이 되었으1며, 그것을 믿는 신도들이 양산되었다. 이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쇼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것이 사기임이 밝혀지고 나서도 많은 사람들은 카를로스의 영적이지도 않은 메시지를 믿었다.
100만 달러 초능력 챌린지[편집]
랜디는 CSICOP의 창립 멤버였지만 그에게 비판받았던 자들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탈퇴했다. 1996년에 맥아더 재단에서 받은 조성금을 기반으로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랜디는 ‘100만 달러 초능력 챌린지’
($1million Paranormal Challenge)를 주최하여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자에게 100만 달러를 증정한다”는 취지로 전 세계의 초능력자들의 도전을 유도했다. 여기서 초능력을 검증하려면 2단계의 절차를 밟아야 하며, 개시 이래 약 1000명 이상이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100만 달러를 받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7년 6월 니혼 TV의 쇼 프로그램인 《게츠요루!》(일본어: ゲツヨル!)의 최종회에 출연하여 투시능력이 있다는 자칭 영능력자의 도전을 물리쳤으며, 시청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또 다시 초능력의 부재가 증명되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힘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모두의 인생까지 1위협하는 것이 됩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장난으로 초능력을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자
사이비입.니다. 이것을 꼭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서[편집]
《폭로: 초능력의 진실》 (The Faith Healers)
《제임스 랜디의 마술 이야기》
Flim-Flam! Psychics, ESP, Unicorns, and Other Delusions-출처 위키백과사전 -


석가모니의 500백 전생설 이니
태어나자 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말했 다는건 다 후대에서 지어낸 거짓말인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들 에게 불교를 그럴 듯 하게 미화 해서 믿게 하는등 포장하여 돈을 뜯어낼 목적등 여러 복합적인
목적으로 후대에서 그럴 듯 하게 미화된 것이 많다
진정한 종교는 사실을 왜곡 하여 절대 미화 해서는 안된다
사실 석가모니는 29살에 왕궁에서 출가 하기전 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 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아무리 천제적인 머리를 지닌 인간도 실수 투성 이의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며
만류 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자신이 해변의 모래밭에서 작은 조개 껍질을 주은 어린 아이에 불과 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릴적엔 어른이 되면 세상 에서 궁금했던 모든것을 알수 있을거라 생각을 해도
어른이 되도 아이일 적보다 났겠지만 모든걸 알수는 없다
인간이 보기에 아인슈타인 이나 스티븐호킹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일반인 보다 좀더 나은 과학적 경제적 지식을 알 뿐이지 그 이상도 아니다
그들도 허점투성이 인간일 뿐이다 어떨땐 어린아이 한테도
배울수도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의 대가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이 확실히 알수있는 단 하나는 양자물리학이 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그분야를 제외하곤 허점투성이 뿐이다

127P-이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
원래 환생은 불교보다 흰두교가 먼저 주장한 교리라고 한다
불교의 교주라 할수있는 석가모니는 왕궁 에서 29세에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여
여러 경험과 고난을 통해 꿈이나 현실 모두 환상 이라고 꿈에서 깨어나 깨달으라고 가르치며
잘나갈 때는 모든걸 할수 있을 것같이 착각에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던 나폴레옹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최후를 쓸쓸히 맞이 했듯이
이 세상은 불가능이 존재하며 그것에 집착해 봐야 자신만 괴로울 뿐 이라고
고통을 덜 당하려면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에서 고행하면 해탈하여
신과 같은 존재가 될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이 아니다 라는걸 깨닫고
안되는 일을 계속 집착해 봐야 자신만 괴로울 뿐 이라고 깨닫고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특히 윤회라는 것이 똑같은 영혼이 있어 죽으면 같은 사람이 윤회 하는게
아니라 종이에 붙은 불이 다른 종이에 옮겨 붙듯
인간이 죽으면 원소와 재료등이 흩어져 다른 생명체나 다른 물질의 재료가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 지구와 모든 생명체의 재료를 이루는 물질도
먼 과거 초신성의 폭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윤회 라는게 있다면 이러한 자연의 섭리와 같은것이
아니 겠는가
석가모니는 틀에박힌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영혼을 위한 천도제를 치르는 제사는 원래 불교 교리와 어긋난 행동 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집단 이기 주위에 의해 조작된 사건을 수없이 확인했다
모든 역사가 다수가 승자들의 전유물로 진실이 심하게 왜곡 됐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일을 공평하게 재 해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달라이라마의 주장이 믿긴 어렵지만 진실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주장이 진실 이라면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사후 세계의 진실을 밝힐수 있는 과학자 들에게 그처럼 좋은 소재도 없을텐데 아직까지 그 부분에 대해서 입증한 과학적 연구 발표가 없었다
더구나 붓다가 불교를 만든후 2500여년 동안 수많은 고승들이 거쳐갔음 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처럼 죽기전에 태어날 방향으로 죽고 다시 찾아 14대 까지 이어진 적은 전무하다
그러니 달라이 라마와 가까운 세력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공신력이 있는 과학적 검증이 확인된 제3의 독립적인 단체의 검증 없이는
그들의 주장을 믿긴 어렵다
달라이라마의 증언이 사실 이라고 밝힐수 있는 방법은 현재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그것은 최면을 통해 전생 퇴행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일일히 조사하여 역사적 사실등과 부합 하는지
국제적인 공정성을 확보한 제3의 단체에 연구하여 밝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누구나 공정성을 믿을수 있는 연구발표는 없었다
최면으로 전생 퇴행을 한다는 것이 사실이 라면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로
과학잡지 네이처지 같은데 보도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

그것을 밝히는 과학자가 있다면 노벨상은 따논 당상인데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

최면에 대해서는 프로이드가 믿지 못하고 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최면에서 하는말을 그대로 다 믿을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을 TV나 핸드폰 같은 물질처럼 생각 하는건 무리가 있을수도 있지만
그러나 TV나 핸드폰 처럼 생명의 탄생의 원인을 아직 발견 못했기에
여러가지 추측들이 난무 하는데
나도 하나님이 빨리 자신의 존재를 들어내 상황 정리를 해줬으면 좋은데

128P-현실은 그렇지 못한건 누구나 알것이다
생명탄생의 미스테리가 밝혀지면
어쩌면 tv나 핸드폰처럼 논리가 크게 다를것도 없다고 생각이 드는날이 올찌도 모른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아왔던 인간의 삶이 그러 했으니까
사실 dna도 프랭클린이 먼저 발견하고 사진을 찍은걸
크릭과 왓슨이 흠쳐보고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된것을 확신하고
먼저 발표하여 노벨상을 공동수상 했다
기자들이 이들에게 여성학자 프랭클린의 사진을 훔쳤냐고 질문하자
그냥 걸려 있는걸 봤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고 결정적 발견을한 여성학자 프랭클린은
노벨상을 도둑 맞았다는 화병 때문 인지는 모르지만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참고자료-지금까지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과학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지구상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시작되었는가의 문제이다.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입자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생화학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과를 발견하게 되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들은 처음으로 다른 단백질이나 세포요소의 도움없이 자기복제를 수행할 수 있는 리보핵산 (RNA) 효소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핵산 (DNA)은 발달된 생명체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갖고 있지만 RNA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DNA에 의존해야 한다.
이번에 이루어진 연구에서 모든 생명의 근본물질인 DNA와 연관된 RNA는 한 쌍의 입자가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기반물질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입자들이 진화하는 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생명체의 근원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연구는 소위 “RNA세계 가설 (RNA World hypothesis)”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생명체의 진화과정 초기에 RNA는 현재 DNA가 수행하고 있는 유전정보의 저장과 대부분 현재 단백질이 수행하고 있는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텍사스 오스틴의 텍사스 주립대학 (University of Texas, Austin)의 앤디 엘링턴 (Andy Ellington)은 그의 연구논문에서 초기 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논문은 RNA 세계 가설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논문의 저자들은 이 연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이런 과정을 통해 진화되었다고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 중에 한 명이면서 RNA세계가설을 주창한 캘리포니아의
라 홀라 (La Jolla)의
스크립스 연구소 (Scripps Research Institute)의 제럴드 조이스 (Gerald Joyce)는 “이것은 자기복제, 돌연변이 및 유전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시스템으로 너무 구체적인 역사적인 관점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은
학술지인 <사이언스>지에 발표되었다.
조이스와 그의 동료인 트레이시 링컨 (Tracey Lincoln)은 한 쌍의 RNA 촉매를 만들어 각각의 RNA가 적절한 빌딩블럭이 제공될 경우에 상대방을 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 연구자들은 이 쌍을 이룬 입자들을 실험관의 RNA 기초 빌딩블럭에 섞어
넣었다. RNA 효소는 완벽하지 않으며 각각 다른 형태를 만들기 때문에 원래 한 쌍의 RNA는 새롭고 재구성된 형태로 원래 형태의 RNA를 능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효소는 다양한 RNA 빌딩블럭의 농도와 같은 반응결합
조건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실험관 진화과정 (in vitro evolution)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이스 연구팀은 이미 자체적인 복제를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효소를 만들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제한된 시간동안에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효소는 무한적으로 자기복제가 가능하다. 조이스는 “이것은 생물학 영역
외에서 영구화된 분자정보를 갖게한 첫 번째 사례가 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팔머스턴 노스 (Palmerston North)의 마세이 대학 (Massey University)의 이론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페니 (David Penny)는 이번 연구가 수 십년 전 노벨상 수상자였던 만프레드

아이겐 (Manfred Eigen)과 생물물리학자인 피터 슈스터 (Peter Schuster)의 예측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대에 이 두 명의 과학자들은 각각의 분자를 복제할 수 있는 효소 네트워크인 ‘초순환 (hypercycle) 이론’을 주장했다.이 이론에 의하면
초기 생명체는 자기유지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igen, M. & Schuster, P. The Hypercycle: A Principle of Natural Self-Organization, Springer: 1979). 페니는 “이것은 RNA의 자기복제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고 말했다.
엘링턴은 각기 다른 생존하는데 성공한 효소가 각기 다른 조건에서 발생하는 것은 생명체는 너무 복잡해서 아무런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지적 설계론 (Intelligent design) 이론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다윈의 진화론의 승리를 증명하는 논문이다. 조이스는 단호하게 지적 설계론을 지지하고 있던 버팀목을 부셔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실험관에서 생명기원의 발달단계를 반복하기에는 아직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 멕시코의 산타페 연구소 (Santa Fe Institute)의 연구자인 에릭 스미스 (Eric Smith)는 이번 연구는 과학적으로 정밀하고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조이스의 효소는 몇 년에 걸친 기존 연구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실험의 혜택을 본 것이며 상대적으로 간단한 조작을 통해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명기원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약간의
실험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 연구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설들과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릴랜드의 록빌 (Rockville)의 제이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 (J. Craig Venter Research Institute)의 크레이그 벤터나 매릴랜드의 체비 체이스 (Chevy Chase)에 위치한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의 잭 소스택 (Jack Szostak)과 같은
다른 유명한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인공 생명체를 창조하기 위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벤터는 거의 합성유전체로 이루어진 세포를 만들어내는 포괄적인 상의하달 방식 (top-down approach)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조이스와 소스택은 유전자나 세포 그리고 생명체가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사건이나 상황을 재창조해내려는 기초적인 원리에서 출발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방식 (bottom-up)을 채택하고 있다. 조이스는 다음 번 단계의 연구는 동일한 것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이 아니지만 새로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진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표는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시스템이
그 자체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이것이다”고 말했다.)
출처: <네이처>지 2009년 1월 9일자 및 <Science Daily> 2009년 1월 10일자 “

참고자료: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링컨과 조이스의 연구논문인 “Self-sustained replication of an RNA enzyme”의 원문과 소위 <RNA World> 가설을 처음 주장한 월터 길버트의 “The RNA World”논문의 원문


이 논문은 어디 까지나 아직 가설이다 논문내용 처럼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생명의 신비가 이논문 하나로 절대 설명 할수도없다


크릭과 왓슨이 여성학자 프랭클린의 사무실에 갔다가
프랭클린이 찍은 사진을 훔쳐보고 도둑놈처럼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고 먼저 발표하여 노벨상을 훔쳐 갈때만 해도
DNA의 발견으로 생명의 신비가 금방 풀릴줄 알고
왓슨과 같이 노벨상을 받은 프란시스크릭이 인간정신과 의식에 대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등 생명의 신비를 풀려고 남은생을 다 동원하여 노력 했지만
그것은 무리한 욕심임을 알고 죽었다

(241- 내가 단하가지 생각을 떠올릴 때라도 내 두뇌는
그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작동한다
신경학자 들은 말하길 한사람이 1분간 인지(知認)하는 정보는
약 2천비트 라고한다 이 수치도 인상적 이지만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두뇌가 처리하는 정보는 1분당 무려 4천억 비트나 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정보는 모두 조직적 으로 통제되며 실제 그 정보를 필요로 할때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처리된다
두뇌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까닭은 만약 한가지
생각을 하-242-는 데에 두뇌 전체가 관여 한다면
당연히 한가지 행동을 하는데도 전우주가 관여 한다는 유사 결론을 말하기 위함이다
-죽음 이후의 삶 저자 디팩 초프라 출판 행복우물 2008년발간 -)

크릭과 왓슨의 DNA가 이중나선구조로 되어 있다는걸 발견후 세상은 생명의 신비의 비밀이 이젠 금방 밝혀질 분위기였는데 60년 이상
과학계의 오랜 연구 끝에
생명의 비밀은 DNA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수없는 복잡한
수많은 복합적인 관계로 작동 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생명의 비밀은 먼 미래의 세대도 풀수있을까 반문하는 수준 입니다
인간이사는 이 세상도 거이 모든일은 수많은 상황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일어나다
어떤 임계상황에 이를때 발생하는것임을
과학과 인간의 의식의 진화로 점점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임계상황에서 터지는 모든 사건은 나쁜 욕망이던 좋은 욕망이던 질떨어지는 에너지던 질좋은 에네지던 간에 어떤 의지와 욕망이 개입되어 사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전개 될수도 있는게 사실인것 같다


(166- 우리는 이 세계를 나는 존재한다 (I .AM) 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한다
실존은 그것의 목적이 되고 그것의 보상이 된다
순수의식은 고요한 정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순수의식은 사람이 체험하면 할수록 성장하여 그풍부함과 의미가 더해진다
167-이세계의 법칙들은 창조 그 자체에 적용된다
모든 대상물과 사건의 씨앗은 여기서 잉태된다
-죽음 이후의 삶 저자 디팩 초프라 출판 행복우물 2008년발간-)


지구만한 질량이 골프공 만하게 압축된 질량이 엄청난 중력을 발휘하는 회전하는 불랙홀에 웜홀이 생긴다고 가정하면 그러면 전우주가 원자보다 수백만배나 작은 어떤 특이점에 다들어 있었다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력을 가진 불랙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양자 진동을 하며 회전했다면 우주가 빅뱅을 하기전에 엄청난 웜홀을 통해
원자보다 수백만배나 작은 어떤 특이점의 안에 지금의 우주가 다들어 있었을때
의 압축된 질량의 에너지의 중력의 힘은 우리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했으리라
어쩌면 빅뱅의 비밀은 불랙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

거듭 (베드로전서 1장23절 인용 하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작은 씨앗안에 어떻게 큰소나무가 들어 있을줄 처음보는 사람은 생각지 못하듯시
원자보다 수백만배나 작은 어떤 특이점의 에너지가 갑자기 발화하여 빅뱅을 일으키더니
인풀레이션을 일으켜 오늘날의 우주로 진화 하였다고 하는 과학자들의 우주 빅뱅이론은
어쩌면 음과양 여성과 남성은 우주창조 질서와 같이 운명적인 필연 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인데 회전하는 불랙홀만이 웜홀을 만든다는데 웜홀이 우주 탄생의 비밀이 숨어있지 않을까?
그 수많은 정자가 남자의 페니스가 회전하며 불랙홀처럼 여성의질을 열어
수많은 정자를 쏟아 부우면 난자를 찾아 여성의 거대한 웜홀과 같은 질속을 여행하여 드디어 정자가 난자를 찾아 음과양이 결합하는 순간 우리가 라디오나 TV등 가전제품을 무선이던 뭐던 스위치를 켜야 나오듯 생명의 신비한 생명의 스위치가 켜지며 배아줄기 세포가 만들어지며
우주창조 만큼 신비한 인간의 생명이 탄생 하듯이
회전하는 블랙홀의 웜홀 안에서 우주를 팽창하게 하고 신비한 에너지를 공급하며 진화하고 안정적이게 지탱해주는
신비한 보이지않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가 만들어져 인간이 음식을 씹어먹고 에너지를 만들고 인간의 몸을 통해 눈에 보이지지 않게 자연스럽게 발산되듯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도 보이지 않게 그렇게 불랙홀을 빠져 나오는것은 아닐까 ? 실제로 빛조차 빠져나올수 없다던 불랙홀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빠져나오는걸 과학자들이 관측하기도 했다

사실 빅뱅이란게 여성이 아이를 임신하다가 질을 통해 출산하면 어린아이가 질속에서 튀어나오듯

빅뱅으로 갑자기 무에서 우주가 탄생 했다고 보는것보다 여성의 몸에서 어느정도 만들어진 아기가 질을 통해 탄생하듯 어느정도 만들어진 우주가 화이트홀을 통해 튀어나오자

빛의 속도로는 설명할수 없는 거대한 인풀레이션이 발생한것은 거대한 아기 우주가 화이트홀을 통해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아닌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추측하는 것은 우주의 무게가 예상보다 너무 무거워 과학자 들은
암흑 물질 암흑에너지를 유추해 낸것이다 인류의 과학자들은 대단하다 어떻게 우주의 무게까지 유추해 낼수있는지
그들의 능력이 존경스럽다
태초에도 음과양의 결합으로 빅뱅이 시작되어 순간 거대한 인풀레인션을 일으켜
우주가 탄생한것은 아닐까
거대한 회전하는 불랙홀이 만들아낸 웜홀은 어쩌면 다른 우주로 연결하는 연결하는
통로며 우주창조 빅뱅의 신비를 풀수있는 단서가 존재하는 곳은 아닐까 ?

여성의 질안에 태아가 잉태되어 어느정도 성장 하다가

임산부가 질밖으로 신생아를 출산하듯 어느정도 성장한 우주가 화이트홀로 튀어 나온게 빅뱅의 순간과 인풀레이션의 탄생인지도 모른다 신생아가 어린이와 청소년기 어른으로 성장하여 어느순간

성장이 멈추고 서서히 에너지를 잃고 산산히 흩어 지며 죽어가듯

우주의 운명도 어느 순간 팽창이 멈추고 에너지를 잃고 죽은 우주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팽창하는 우주는 성장이 끝나지 않은 청소년과 같은 시기일 것이다

인간도 소우주 인데 만약에 인간의 몸에 인간의 몸을 우주크기로 보는 의식이 있는 작은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관찰하며 계속 키가크고 몸이크는 청소년기의 인간의 몸에 있다면

지금 우주가 가속팽창 한다고 관측하는 인간들처럼 인간의 몸이 계속 팽창할것처럼 파단 할수도 있는게 아닌가 ?
내가 생각할때 인간이 음식을 잘게 씹어 먹으면 위를 통과하고 창자를 통과하여 항문으로 찌거기가 나온다 그리고 음식물은 인간의 몸을 지탱하는 각종 에너지로 변한다
에너지는 인간의 얼굴과 몸을통해 나오기에 그곳을 보면 에너지의 질를 알수있다
물론 인간의눈으로는 볼수가 없지만 느낌으로 알수있는것이 아닐까?

에너지의 질을 결정 하는건 먹는 음식의 질 뿐만이 아닐수도 있다

우주의 불랙에너지 불랙물질도 그렇게 불랙홀에서 자연스럽게 빠져 나오는 것일수도 있다 ?
관상은 통계학 이라고하여 틀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굴과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질을 느끼고
모든 종들은 지짝을 무의식이 시키는데로 찾아 미래 세대로 종을 번식 시키는건 아닐까?

그러나 숫개가 암개를 찾아 짝짓기를 하듯이
충동은 각자의 수준에서 나온다는 말과같이
무지막지 하게 생긴 악어도 성충동을 느끼면 지 짝은 기가막히게 찾아가 알을 낳는다
그런건 아직까지 과학으론 정확히 설명이 되지않는다
라디오 주파수도 잘 마추어야 소리가 잘 들리듯이
모든 생명체 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질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지짝을 찾아 미래에 후손을 남기는건 아닌가? 물론 생명체 각자 종마다 비슷한 수준에서 비슷한 에너지의 주파수와 성충동을 무의식적으로 느껴 찻아가

각 각 같은 종끼리 만나 짝짓기를 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프로이드가 그토록 무의식의 대부분을 성충동으로 설명하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도 아주 어린 여아와 남아가 서로 선호하는게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의 욕망은 주체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무의식의 욕망이라고 설명하며 무의식이 곧 신이다 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물론 이런것을 느끼며 더욱 좋은 에너지의 질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더좋은 짝과 나은곳을 지향하며 그곧을 찻아 가려는것 또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확연한 차이를 느끼는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과거 중세 시절의 십자군 전쟁에서 유럽의 십자군을 물리친 이슬람의 명검 다마스커스검은 철광석 보다 100배나 강한 탄소나노튜브 기술로 제작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유럽의 십자군이 다마스커스검은 악마가 이슬람 제국에 가르쳐준 기술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믿지 못하겠지만 현대에 발견된 탄소 나노튜브 기술이 어떻게 1000년전에
만들어 졌는지 놀라운 일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하며 다마스커스검의 제조기술은
그후 명백이 끊겨 현대의 과학으로도 과거와 같은 명검으로 재생하지 못한다고 한다
고려의 신비한 색을 내는 고려청자를 현대의 과학으로도
아무도 재생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처럼
이론적으로 또는 단순한 기술로 아는게 아니라
초신성의 강력한 폭발의 엄청난 고난과 인고의 세월을 경험해야 더욱 강하고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듯 수많은 직접적인 경험속에서 어렵게 터득되는 장인들의 고난도 노하우와 비슷한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 ? 어떻게 한번도 배운적이 없을 수많은 곤충과 파충류들 까지도
성충동을 느끼면 이성의 짝을 찾아 알을 낳고
종을 미래 세대에 이어 가는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작용일 꺼라고 말했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도 결국 췌장암으로 죽고 말았다
비틀즈와 밥딜런을 좋아했다는 잡스는 죽기전에 아이작슨에게 조니미첼의 노래
BOth sides now 를 들려 줬다고 한다

Ilooked at life frombothsides now from win and lose and still some how

난이제 인생의 양면을 모두 바라보게 됐어요

승리와 패배 모두를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억울한 심정을 누가 알아 주겠어 그리고 그 가족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연좌제에 묶여 세인들에게 지탄을 받는 황당한
일들이 한국 사회에 많았다 그런데 내가 이런 비슷한 일에 누명 씌워 엮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는데
과거 국가 권력에의해 인권탄압을 억울하게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얘기를 간간히 메스컴을 통해 듣고 보아도
별 관심이 없이 빨갱이짓을 했으니 또는 못된짓을 했으니 그랬겠지 국가가
아무 죄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울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쉽게 잊으려 했는데

그래서 광주사태 4.19혁명이야 유명하니까 뉴스로 보고듣고 해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하고 별관심도 없었고 사실 그 유명한 인혁당 조작 사건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가 실제로 당해보니 도저히 법적 증거를 밝히는것도 거이 불가능 할 정도이고
설사 밝힌다.해도.힘없는 개인이 국가나 마찬가지인 거대한 배후 세력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긴 힘들며 삼성그룹 보단 차라리 국가가 밝히기가 쉽지
삼성법무팀 같은경우는 한국 법무부 보다 파워가 강하다고 알려진 조직이 교활하고 치밀하게 단합된명령으로 음모를 꾸미는 곳이라
국가가 저지른 비리는 진실이 인혁당사건등 간첩조작사건 삼청교육대사건 광주사태 사건 4.19.혁명등 등 밝혀지는것도
있지만.삼성의 비리는 어지간해서 밝히기가 힘들다
실제로 2008년 로휘 리휘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 200억원에 팔려 그림을 구입한 자금이
당시 삼성x파일을 수사하던 검찰의 의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계좌에서 나온걸 확인하고
홍라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서미겔러리 홍송원 원장이 그그림은 홍라희 그림이 아니라 홍송원그림 이라며
홍송원이 돈이 없어 그림값 200억을 빌려 홍라희가 대신 지불해 줬을뿐이라며 떠들어 흐지부지된 사건이다
한두푼도 아니고 200억이나 되는 그림값을 대신 내줬다는 말이 지나가는 개가웃을 일인데
그후 바람잡으려 눈속임하려 그런건지 홍송원이 홍라희 에게 무슨소송인지 소송도 내고 부산을 떤건 .손임잡으려 안해도 될일을 쇼 한게 아닌가 의혹이나

정확한 진위여부를 어느누가 밝히겠는가 이처럼 세상에는 정황상보면 진실이뻔히 들어난 법적 증거가 없어 처벌을 못하는 진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런 억울한 일은 거이가 힘없는 서민이 희생양으로 뒤집어쓰는 구조이다
보이지않는 대항할수 조차없는 거대한 돈과권력의 공존의 악용에 의한 불공정한 일에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가 치밀어 거이 폐인이 될정도의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된다
나는 교도소 들어 가기전 까지만 해도 이세상에 정의라는게 그래도 있을줄 알았어 그러나 실제
진정한 의미의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한국의 사법제도 안에서의 정의란 가진자들의 편의에 의해서 정의의
본질이 언제든지 바뀔수 있음을 알고 분노를 느꼈다
얼마전 마이클샌덜 인지 샌달인지 하버드대교수 라는게
정의란 무엇인가 씨부리 던데 근데
미국은 엄청난 기부만 하면 입학 시키고 졸업 시켜주는 학교가 많다
샌달이 말하길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 하는게 정의인가
아니면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하는 게 정의인가 떠들던데
간단해 정의란 어떤 순간이던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건데 이게 또 각자 다
그 순간 틀리 다는게 문제야 각자 다 자신이 올바르다 이거야
불교는 불교가 최고다 기독교는 기독교가
최고다 이슬람은 자신들이 최고다 새누리 당은 새누리가 새정치 민주당은 자신들이 최고다 그러지 그게 문제지
샌달이 아무리 주둥이로 떠들어 정의란 무엇인가 떠들어 봐야 답이없어
각자 자기 중심적 이니까 다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게 문제야
그 순간 자신이 처해 있는 자기 중심적 생각은 버릴수가 없어
그것은 생명체가 살기위한 본능이지
결코 정의란 다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 되서도 안돼고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희생 되서도
안돼는거 다 아는거 아닌가 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해석 하는게 그때 그때 달라요
각자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어 모든 생명체가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정의를 만들기 에 그래서 정치가 제도가 필요한 거지
현재까지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 중에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볼수 없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만큼 약자를 배려했던 정치제도가 동서고금을 통해 현재까지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부도덕한 강자가 약자를 다잡아 먹어 그러면 강자만이 사는게 아니라
같이 공멸 하는거야 그래서 정치 제도가 필요 한거야
정치란 약자가 동물처럼 강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도록 또 자신의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망하지 않도록 약자와 자국민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더 나아 가서는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는거고
그래서 국민이 세금을 내고 올바른 정치인이 나와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특히 민주국가 에서는 올바르고 똑똑한 정치인이 나올려면
국민이 올바르고 똑똑한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그런 정치인을 제대로 뽑을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때부터 올바른 교육이 필수적 이다
특히 똑똑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좀 들 똑똑해도 가치관이 올바른건 필수 조건이다
천제적인 재능을 가졌더라도 배반하고 사기치는데 쓰면 기업이나 국가가 망하는건 시간 문제야
그런놈 쓸바엔 지나가는 똥개가 훨씬나아
전에 나하고 싸운 대구 사람과 운동시간에 우연히 만나 벌금 정식재판 청구 하면 이감가냐고 묻자
지도 벌금으로 정식재판 청구 했는데 이감 안가고 그날로 대구 까지 재판받고 돌아 왔다고 하면서
절대 이감 안간다고 그러 더라고
그래서 나도 이감 못갈줄 알았다
결국은 아무도 몰랐던 벌금 30만원의 정식재판 청구로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와서
1심에서 10만원 감형됐고 2심을 청구 했다가 포기했다
그 상황에서 한번도 면회 오지 않던 둘째이복형은
영등포 구치소로 오자 특별면회를
두번이나 오는등 이상한 행보를 했다

둘째 이복형은 인천전문대 건축학과를 나와 건설회사에 근무하다가
방수회사를 창업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중후반 쯤인가 돈많은 셋째 이복형에게
사업자금으로 1억5천만원 이상을 빌렸는데 돈은 안 값으면서
둘째 이복형이 지딸을 일본에 유학 보냈는데 일년에 5000천만원씩 송금하고 고급승용차를 사주고 하면서
돈을 너무 잘쓰면서 빌린돈은 한푼도 안값는다고 셋재이복형과 형수는 둘째이복형에게 쌍욕을 심하게 하며
계속나에게 둘째이복형 욕을 했다 그게 나하고 무슨상관 이야 내가 돈빌려 갔냐
이놈들은 그래도 친형제 간이라 서로 1억5천 만원도 주는구나 생각했다
말로는 빌려 줬다는데 둘째이복형놈 성격상 절대 값을놈이 아닌걸 뻔히 알면서 줘놓고
나만가면 돈빌려달랠 까봐
내가 갈때마다 아무상관없는 나에게
그핑계를 대며 내가 혹시 돈빌려 달랠까봐 둘째이복형놈 험담을 계속하며 그때 돈을 많이 빌려줘 자금사정이
힘들다며 계속 거짓말했다
그후 둘째 이복형회사가 2007년12월 부도가 났다고 하는데-
바지사장으로 글씨는 이쁘게 잘쓰는데 생각이 좀모자란 첫째이복형 이름으로 해놔서 빛은 모두 첮째이복형이 떠안게 되었다
2010년 셋째이복형이 나에게 인감 각서사기음모를 꾸며
삼성오너들 에게 넘겨 몆억을 받았는데 지들 형제들에게도 돈을 나눠줘서 첮재이복형놈도 거금을 받고 둘째이복형놈이 다시 일어서게 도움을 줬다고 하는 말을 삼성알바들이
내옆에 은근히 흘려 .나를 열받게 만들어 또사고를 쳐서 구속시키려는 더러운 수법인것 같은데
그 유언비어 진위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고 혹시 그 유언비어가 사실일 지라도
지금 한국 국민성이 아무 미천 안드는 인감 각서 사기쳐주면 몆억 준다고 하는데 안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
내 생각에 100명중에 90명 이상은 그런 더러운 짓을 하고도 남는게
현재 한국인의 국민성이 아닌가 생각든다
전주지법 에서 부인과 아들이 짜고 아버지 몰래 생명 보함금을 들어놓고
아버지를 살해하여 승용차에 태우고 교통사고로사로 위장하여 6억원의 보험금을 타려다 덜미가 잡힌 사건과
충북제천 경찰서 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여동생을 청산가리로 살해하고 어머니와 부인도 살해하여 보험금을 타려다 걸린 사건도 뉴스로 본적이 있다 인터넷도박으로 2억7천만원의 돈을날리자 그랬단다
현재. 한국인은 전반적으로 어릴적부터 인성교육이 잘못되어 있다
돈 10억 이상 이면 지부모도 팔아먹을 놈들 천지다
교육이란 누구눈치 안보고 이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슬픔과 고통 기쁨을 나눌줄 알게
경직되지 않게 교육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어릴적부터 경쟁상대로 적처럼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약한모습과 약점을 보이면 마치 정글에서 다리가 부러진 누우 처럼 하이에나에게 잡혀먹는건 아닌지 주위의 눈치를 보고 경직된 교육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언비어가 사실일 지라도 셋째이복형놈은 가지에 불과하고 더큰 배후는 삼성그룹 오너 들이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도 셋째이복형놈이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이상 진위여부를 확인할 길이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삼성오너들이. 내가 그런 유언비어를 듣고 내가 무슨일을 벌이길 바라고
교활한 수법으로 조직적으로 내가 주어듣게 만들어 2010년 2월8일
술에취해 어리석게 손님잡혀 구속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고생한 적이 있는데 이젠 그런 유언비어에 두번다시 당하지 않는다
이젠 이복형들에게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인간으로 해서는 절대 안되는 파렴치한 흉악한 사건의
배후에 삼성오너 들이 있다는것과 억울한 삼성그룹.회장 막내딸 죽음의 청부살해 의혹의 진실을
세계 양심에 밝히는 일만이 내가 최우선 적으로 할일이다.
다시 사건을 역추적하여 추리로 들어가면 둘째이복형이
당시 서울 영등포 구치소에서 둘째 이복형놈이 특별면회를 두번 온적이 있는데
순천 교도소 소장을 잘 아니까
나보고 거기로 다시 가라고 하는거야 뭔가 있는건 분명했다

순천교도소장이 친구라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처음엔 이놈이 장난치나 생각도 했는데 특별면회 올려면 여러 백135p-을 동원했을텐데 이쌖기가 그럴 능력이 없는것 같은데 지금생각하면
뭔가 주선한 배후가 있는것 같은데
순천교도소 소장이 둘째이복형놈과 친구라는 말은 믿을수가 없다
그러나 진위여부를 확인할 길은없다
내가 순천교도소에서 당한 얘기를 하니까 일부러 농담 했을수도 있고
둘째이복형과 친구라는 말은 거짓일 경우가 크다 오히려
그후 시간이지나 지금와 곰곰히 생각하여 추리하면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중간에 브로커를 이용해 둘째이복형에게 돈을 쳐먹이고 대신
둘째이복형이 중간브로커식으로 순천교도소 교도관들 시켜서
나를 누명씌워 엮으라고 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런일을 완성하면 돈도 받고 둘째이복형이 하는 사업도 삼성에서 밀어주면 그야말고 돈을 자루에 퍼담을수 있을 정도로 사업이 쉽게 번창 하리라 예상된다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절대 자신들이 드러나도록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 중간 브로커를 여러단계 통해서 교활하게 사주하는 것이기에 나중에 일이 잘못되도 법적인 책임을 물기가 불가능 할정도로 사전조치를 해놓으며
형제중에서 가장 사회활동이 활발하고 친구들이 많았던
그래서 삼성그룹직원 중에 친구나 지인이 있을 법한 둘째이복형 에게 그것도 브로커를 여러단계 걸처 거금을 주고 접근하여 사주하려드는게 홍라희 이재용이 쓰는 교활한 스타일이다

실제로 이혼한 둘째 이복형 근터에 정체불명의 거금을 가진 돈많은 여자가 배후에 있으며

일본도 같이 여행가기도 하며 엄청난 돈을 주는게 수상해 보였다

그 과정에서 둘재이복형이 운영하는 방수회사를 지원을 많이하여 낭비벽이 심하던
둘째이복형이 일본에 유학보낸 지딸에게 고급 승용차를 사주고 덤으로 일년에 5000천만원 이상 돈을 계속 송금해 주었다고 자랑삼아 말하던데
티를 하나 입어도 50만원 가까이 하는 명품만 입고 승용차는 최고급으로 타고다니고
돈을 물쓰듯 하다가 결국에는 나를 교도소 안에서 누명씌워 엮지 못하고 2007년8월26일 내가 츨수하여
삼성그룹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은밀히 사주한일이 실패하자
삼성가오너 홍라희 이재용등이 작전을 다르게 세워
지원을 중단하여 그해 12월 돈을 물쓰듯 하는 둘째이복형 회사가 부도처리 된것은 아닐까?
가상으로 추리해 보지만
그러나 그런걸 지금와서 진실을 확인하는건 거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재용이 오더를 줘도 삼성에서 준걸 절대 모르게 여러 단계 거쳐서 주는 오더라 둘째이복형놈을 만날 필요도 없다 삼성에서 준 오더라는걸 알수가 없게지
더더욱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과 관련된 오더라는걸 알수가 없지

나는 영등포구치소 에서 재판받은 내용은 여권법 이었다
나는 2001년도에 6개월 짜리 미국비자가
오버스테이된 상황에서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의 한 일식집에 일을 하려 신문 광고를 보고

가다가 플로리다 잭슨빌 이라는 곳에서 웨스트팜비치행 버스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사복 입은 미국인 백인이 다가 오더니 나보고 아이디 보여 달라고 하길래
당신들은 누구냐고 되묻자 이미글래션 이라고 하자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지
나는 이미 비자가 오버된 상태였고 아메리카드림 을 꿈꾸며 미국에 온지 채 2년도 안되서
한국으로 강제로 출국 되는 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희한 하게도 식당 주인이 잭슨빌에
도착하면 확인전화를 꼭한번더 해주라고 해서 전화를 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이런일이 벌어지다니 식당주인이 신고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했다
나는 그냥 여권을 주자 미국비자를 찻더니 나보고 오버스테이 했다고 잡아가네
사복입은 이민국직원이 수갑은 채우지않고 나를 데리고가 버스터미널 추차장으로 가자 차가 있었다

거기 불법체류자 처럼 생긴애들 많은데 이건 분명 누가 신고한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에타자 나말고 비교적 젊은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잡혀 차의 뒷자석에 타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민국 직원 여러명에게 잡혀서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생각보다 멀지 않은곳에 끌려가 철창에 갇혔다 그리고 히스패닉을 먼저 얼굴 양옆사진과 열소가락 지문을 찍고 나를 철창안에서 꺼네 열손가락 지문을찍고 얼굴 사진촬영 하고
한국어 통역관을 전화기를 통해서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최종적으로
주소를 적으라고 하데 통역관이 전화로 나에게 그러더라고 주소를 확실히 안적으면 지금 못나가고 강제로 구속된후 한국으로 추방된다고 주소를 적으면 일단풀려 나지만 추방 재판이 시작될 거라고
나도 영주권과 미국 국적을따서 폼나게 미국에서 잘살아보고 싶었는데 아메리카 드림도
물거품이 되는가 싶었다 나는 마침 갖고있던 명함중에 미국 뉴욕에 있던 한국인이 운영하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은 적이 있는데
미용사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명함을 가져왔는데 아마 그 주소를 적어주고 풀려났다
날 풀어주면서 역시통역관이 전화로 통역을 해주는데
추방재판 받으러 오라고 서류 뭉치를 주는데 근데 여권을 안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여권을 달라고 하자 안주네 추방재판 받으러 올때 그때 준다고
내가 추방재판 받으러 갈 여력이나 되냐 이놈들아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이민국을 나와서 터미널로 다시와서 급하게 식당에 다시 전화했어
그런데 식당 주인여자가 내가 다시 전화하자 놀래 더라고
내가 잡혀서 간줄 알았는데 다시 전화 하니까 놀라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버스를 놓쳐서 다음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웨스트 팜비치 인가하는 플로리다 관광 휴향 도시
도착하자 이국적인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식당에 전화하자 주인이 그래도 픽업은 나왔다
식당 이름은 쇼건 일식 스시 전문집 이었다 거기에 일식 우동 덴프라등 주방 요리도 있었고
나는 주인집 방이 여러개인데 거기서 독방하나를 주어 생활 했다 주인집은 당시 50대로 보이는 부부로 자식으로는 거실 벽에 걸린 제법 큰 사진틀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딸하나가 있었는데 딸은 뉴욕에서 대학 다닌다고 하는 소릴들었다 나도 뉴욕에서 하도 여기저기 돌아다녀 알게모르게 유명했는데 이딸도 나를 아는건아닌가? 그래서 나를 엿 먹일려고 나를 이민국에 신고한 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국생활 초창기때 라스베이가스 식당에서 일할때 거기 40대로
보이는 웨이츄레스 아줌마가 있었는데 전주 출신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하는말을 들어보면 한국에서 전주대를 나오고 공수부대 중사로 제대했다고 했다 그런대 유난히 당시 나이 30대 중반에 한국가면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할것도 없다며 절대 한국 가기 싫다며 이민국에 잡혀 한국으로 강제 추방되는 것을 겁을 내기에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캐나다 벤쿠버 에서 밀입국 해서 미국에 입국한 사람이라고 그랬다
나는 비자가 그 당시 수개월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 아줌마가 밀입국한 사람보고
겁을 주려고 한건지 특히 멕시코 국경 주변에 가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데 특히 한국에서
살다 건너온 친중 세력들이 한국 사람 행세 하며 한국 신문에 광고를 내서 몇칠씩 버스타고 오라고 해서
그쪽 에는 이민국 불법체류자 검문이 가끔 있는데 불법 체류자는 잡아가게 신고하고
식당에 와서 일을 시켜도 돈도 적게주고 말 잘안들 으면 이민국에 신고 한다고
그런 소리를 들은게 왜 이때 생각 나는가 나는 그당시 그게 밀입국한 사람에게 게니 겁주려 장난 치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내가 꼼짝없이 당하고 보니 이런 경우도 있다 싶은게 사람은 모든지
절실한 상태에서 겪어 봐야 안다고 그사람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심정을 이해할수 없다는
역지사지 라는 말처럼 불가에 만행 이라는 것이 있는데 만가지 일을 겪어 봐야 진정 깨달음의
자격이 주어 진다고 하는대 왜 절에 있는 스님 들은 많은 일을 겪어보려 하지않고
산속에 숨어 지내는지 이해 할수없다 내가 교도소에 들어 오기전 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삶으로 생각했다 전부 나쁜놈들 고귀한 나와는 다른 종류의 마치 외계인 처럼 상대할 인간들이 아니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막상내가 교도소 안에 들어오자 거기 있는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만은 아니다 억울한 사람도 많고 별의별 사연들이 다 있다 인간은 이기적 이라
다 자기 자신만을 우선 생각하는 경우가 대 다수다 그래서 모든 이해 관계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 하려 한다
그래서 한가지 길만 간 사람은 한가지 길만 알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초행길은 모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물러가며 찻아가야 올바른 목적지를 찻아갈수 있지

지 마음대로 막가다간 돌이킬수 없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갈수도 있는 것이다

137p- 허기야 지금의 한국의 현실은 자신게게 금전이던지 뭐던지 조금의 이익도 없다면

남의 고통이나 억울한 사연을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의 아니게 그반대 입장에 자신이 억울한 일에 처하게 되어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도움을 받을수 없는 처지가 되면 그때 깨닫는 거야
불가에서 만행을 겪어야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수 있다는말 그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식당에서 일하게 된 나는 내 직감이 들어 맞음을 느꼈다

식당에서 일하는사람이 전부 중국 사람 이었다 사장은 나보고 성이 중국말로 진상이래
그래면서 나를 진상으로 종업원들에게 소개했다
나는 내성이 사장이 편이에 의해 바꿔 진상으로 소개한줄 알았어
진상이면 어떻고 식당 사장이 그렇게 정했으니까
대꾸 하지않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난 진상이 됐어 그후 그곳을나와 시간이 한참지난 후에야 김씨가 중국어로 진상이 된다는걸 알았다
그러나 사장내외가 나를 식당에 고용하는걸 왠지 얼마 안 쓸것 같은 기분과 느낌이 들었어
식당에 한국사람 이라고는 주인내외 하고 나 하나인데
주인 내외도 오리지날 한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에서 살다온 친중 세력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사는 한국사람 하나없이 이런식으로 식당을 운영한다는게 내상식으론 납득이 가질 않았다
증거는 없지만 나를 이민국에 신고한게 미안해서 일까
역시나 일주일도 안되 나를 해고 하면서 가는 비행기 티켓
은 끊어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권을 잭슨빌에서 이민국에 압수 당하여 없는 내가 어떻게 타냐고 했더니 주인이 자신 아이디로
비행기 타는데 까지 데려다가 비행기에 태워준다고 한다
그때는 911 테러가 나기전이었으니
그런게 가능 했다 식당주인은 비행기 탑승 케이트까지 같이 들어와 내가 비행기 승무원들이 티켓을 개찰하고 탑승구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리었다 뉴욕 라구아디 공항에 약2시간 비행후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플러싱에 도착하여
그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뒤 우연히
플러싱역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나는 한국일보 뉴욕지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사들고 가서
일자리도 알아볼겸 해서 의자에 앉아 잡란을 보곤했다
그 도서관 에는 한국 책도 있었어 근데 희한 하게도 도서관 앞을 나서 는데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
식당 주인집 벽에 걸려있던 커다란 사진속의 여자애 하고 얼굴이 똑같은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와
마주쳤다 그 아가씨도 마치 나를 아는듯 유심히 살펴보내 저애가 사진속의 그 아가씨와 모습이 똑 같았다
그 사람들은 내소문을 듣고 이미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게 계획적 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 내처지에 뭐를 어떻게 할수 있겠어 무참히 엮였구나
진위 여부도 확실히 확인할수 없는 상황에서 정황과 직감만으로
화난다고 찾아가서 화풀이라도 하면 나는 범죄자로 엮여 빼도 박도 못한 수렁에 빠지지 나를 위해서도 참을수 밖에 없었다 재수 없어서 더러운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는게 현명한 생각이었다
사실 그 먼거리를 찾아갈 돈도 부족하고 이젠 진이 다빠져 여력도 없었어 찾아간다 해도 그들이 역 까지 승용차로 픽업 나오지 않으면 그곳을 찾아갈 길이 없었지
나는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이민국에 열손가락 지문과 양옆얼굴이 찍히고 여권까지 압수 당하며 추방재판에
참여 하라는걸 어겼으니 이걸로 나의 능력으론 미국영주권 따는 길은 막혔구나 생각했지
나의 생에 마지막 희망 이었던 아메리카 드림이 여기 까지가 한계 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라스베이가스 식당에서 캐나다에서 미국에 밀입국한 공수부대 중사를 제대했다는 사람의
넋두리 처럼 이대로 한국에 들어가면 내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미국에서 버티는대 까지 버티어 보자 생각하며 소도 뒷걸음질하다 쥐를 밟는 경우처럼
나에게도 뜻밖의 행운이 찻아와 미국 영주권을 딸수있는 기적이 오기가 거이 불가능 하다는걸
알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할수 없었다
그저 하늘만 바라 볼뿐 뉴욕에 돌아온 나는 영사관에 찻아가서 여권을 잃어 버렸다며 새로 발급해 줄것을
신청하자 여권을 어디서 잃어 버렸냐고 하자 쪽팔려서 이민국에 검문으로 잡혀 뺏겼다는 말은 못하고
기억 안나는대 어디선가 잃어 버렸다고 하자 정상적인 여권은 발급이 안되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탑승할수 있게 여행자 증명서가 발급 된다고 하자 그거라도 달라고 했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돌아와서 제주도 누나집에 와 있었는대 그때 내 주소도 누나집으로 되어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대 누나로 부터 제주지방 경찰에서 연락 바란다는

138p- 전갈을 받고 제주지방 경찰청에 전화를 하니까
5년간 여권을 3번연속 잃어 버렸다며 여권법 으로 조사 할게 있으니까
편한 시간에 출두 하라고 그러대 나는 알았다고 그러고 안갔어 그리고
주민등록증 발급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서 용산으로 주소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후 중공 심양을 여행하기 위해 여권을 종로구청 에서 신청 하자
경찰청에서 뭔지 모르는대 걸려 있는게 있어 발급이 안되니까
경찰청가서 그걸 해결 해야 여권이 발급 된다고 해서 경찰청 에다가 급하게 전화를 하니까
여권법위반 혐의로 여권발급이 중지되어 있어 관할주소지 용산 경찰서 외사과에 가서
해결해야 여권이 다시 발급될수 있다고 하며 관할 주소지인 용산 경찰서 외사과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용산 경찰서 외사과에 출두하자 조사관은 친절히 조사 하였다 특히 나를 조사하던 외사과 형사가 자신도 해군 출신 이라며 외사과 형사중에 또다른 해군 출신을 나에게 인사시켜 주어 서로 악수하며 인사했다
위에서 될수 있으면 구속 수사 하라고 했다며 외사과 형사가 마무것도 아닌
이런일로 구속수사하라니 미친놈들 이라고 욕을 하며
나를 간단히 조사하고 돌려 보냈다
용산 외사과 에서 조사 받을때 여권을 플로리다
잭슨빌 에서 이민국 직원이 강제로 가져 갔다고 말하자 영사관 에서
한 얘기 하고 틀리다고 하여 영사관 에서는 미국 이민국에 여권이 압수 됐다는게 챙피 해서
그냥 잃어 버렸다고 한거라고 설명하자 고개를 형사가 끄덕였다
그것이 나중에 검사가 약식기소 하여 여권법 위반으로 벌금 30만원이 나올줄은 .당시 생각지. 못했다
그런대 여권법위반으로 검사벌금 30만원이 나온게 나중에 나에게 큰 도움이 될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정식재판 청구를 하여
영등포구치소로 이감와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같은 거실에 있던 사람들과 트러불이 생겨
몆개월 안되는 짧은 기간에도 거실을 3번째 옮기게 됐다 그러나 조사 징벌실은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내가 2006년 10월에 이감와서 2007년2월 이감갈때 까지 거기서
한겨울 났는대 겨울에도 반바지만 입고 생활해도 될 정도로 방바닥이 따듯했고
특이 재소자들 에게 제공대는 음식이 잘 나왔지 건물은 오래돼서 낡았는대
영등포구치소에서 3번째 거실로 옮겼는대 그게 그해11월 중순쯤 될려나 거기도 건달 하나가
있었는데 나보다 몇살 어린데 나한테는 항상 존댓말쓰고
잘했다 그게 방장 같았다 근데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나에대해 어느정도 아는것 같았다 방애들 한테도 나한테 함부로 하지 말라고 그러는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매형이 전직 건달이라서 그런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의문이 들었다 그정도로 영향력 있는 건달일줄은 전혀 생각 못했는데 허기야 나는 무대포로 누가 씨비걸면 싸워서 조사징벌방 끌고 가니까 아무래도
가석방 생각하고 징벌을 꺼려 하는 애들은 나에게 조심하겠지 징벌방가면 고생도 고생이지만 또한 여러가지 가석방 해택에서 제외될뿐 아니라 관용부 출력은 전혀 할수가 없고 교도소에서 실시하는 직업훈련의 각종 기술교육생 프로그램에 지원이 제외되기 때문에 영등포 구치소의 거실에 다른 애들은 이제 막 징역을 시작하는 애들이 많고 형기를 제법 선고받은 사람은 곧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가서 징역 생활을 시작해야 해서

그런지 당시는 초범 재범을 확실히 분리해서 내가 초범이라 초범방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순해 보였다 그래서
나한테 비교적 공손하게 대하는것 같았다 3번째 거실은 그해11월 달에 들어와서 청송 제2 교도소로 2007년2월 이감갈때 까지 있었다 거기는 초범방으로 구치소에서 재판이 끝나면 미결수 신분에서
재소자로 확정이되어 미결수복에서 재소자복으로 갈아 입고 다른 교도소로 영등포구치소 분류심사과에서 교정청에 이송신청을 하는데 그곳은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 같은곳 이었다 물론 이감갈 정도로 형량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감을 가지만 징역이 확정되고 만기출소 3개월 미만자는 이송신청 대상에서 제외되어 분류심사과 에서 이송신청을 아예 하지 않는다
형량이 얼마 안남은 사람들은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그냥 그곳에 있다가 출소 한다 내가 머물던 거실은 초범방으로
주로 초범교도소로 이감을갔다 또는 희한하게 충주구치소로도 같어 그래서
거실에 사람들의 인원이 수시로 체인지 되었다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에서 10만원을 감경받은 나는 항소를 하여 대기중이었다 근대 짜꾸 꿈에 항소하면 올려치기 당하여 실형을받는 불길한 꿈을 자주 꾸었다
이상하다 그 까지꺼 벌금 30만원짜리 10만원 감경해서 20만원 짜리 항소한다고


기각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했다 원래는 항소뿐 아니라 상고까지 해서 시간을끌어 만기 3개월 미만자는 다른곳으로 이송신청을 하지않아 영등포구치소에서 잘하면 만기출소 할수도 있겠다 싶었다
근대 당시 영등포구치소는 저녁8시 뉴스를 생중계 해줬는대 갑자기 비자를 위조한 사람 실형을때린 다는 뉴스를 보고
물론 뭐 미국 들어 갈때 만든 비자 내가 직접 위조한 건 아니지만 이제는 공소 시효도 다 지난게 아니가 생각도 들지만 정확한걸 당시는 몰랐고

안양교도소 있을때 같은 거실에있던 사람이 미국들어 갈려고 브로커에게
비자신청 했다가 걸려서 실형 6개월을 사는걸 직접 목격 하기도했고
비자 브로커를 통해 비자만들어 미국 들어간 사람이 항소까지 할 필요 있겠나 싶기도 하고 해서 2006년 12월 끝자락
몇칠을 남겨 놓고 항소를 했다가 포기 한다는 포기서를 서부지법에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파란만장 했던 2006년도를 보내고 대망의 내가 출소하는 해인 2007년 새해가
밝았는데 그동안 거실의 인원이 다 밖여서 내가 최고참 되었어 1월 초인가 중순이 채 되기전인가

정확날짜는 기억안나는데 어느날 갑자기 머리가 하연 사람이
거실로 느닷없이 이감왔어 서울구치소 에서 이감 왔다고 하는데 경제사범 인데 부천에 있는 부도난 세기 건설회사 사장 이래 과거 나를 제주일고에 전학 시켜준 이부누나와 친한 사람이 세기건설 간부급 이라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나는것 같은데
뭐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때 세기건설은 제주도에 있던 회사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동명의 다른 회사일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물어보진 않았다 세기건설 사장은 얼핏보기에도 보통 사람은 아닌것 처럼 보였다 그 바로전에 2006년 12월초에도 하나
이감와서 들어왔는대 바로길건너 영등포교도소에서 이감 왔는데
나보다 나이는 한살 많은대 벤쳐기업 사장이었대나 더욱 회괴한건 돈주고 맡긴 사선 변호사가
항소이유서를 법원에 제날짜에 제출하지 않아서 구속됐다고 하는 황당한 말을 하며 그래서 구속되어 영등포교도소에 있다가
추가건이 생겨서 재판을 받으러 영등포 구치소로 이감왔다고 하는대 정말 믿기지 않은 얘기다
서울구치소에서 이감온 세기건설회사 사장은 검찰에 출근 하다시피 평일 아침마다 거이 매일 검찰청에 출정 갔다 오후 늣게 왔다
충청도보령출신으로 출소를 2주인가 3주를 남겨놓고 이곳으로 이감와서
출소 2-3일을 남겨놓고 추가건 때문에 다시 미결수 복을 갈아 입으려 미결수사동으로 전방가는데
거실에있던 사람들 다 가슴 아파하며 작별인사를 나눈적이 있다 그런 경우를 처음봤어
1월중순 이후부터 영등포 구치소 확정 기결수 거실 에서는 이송명령이 교정본부로 부터 하달되기

시작 했는데
나는 청송제2교도소로 2007년 내략 2월14일
이감을 갔다
그런데 영등포구치소에서 함께 이감가는 죄수중에 이감을 거부하는 죄수가 있었다
청소 제1교도소로 이감 가는 사람인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감을 못가게겠 다고 거부하자 교도관이 계속 거부 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검찰에 기소하겠다고 협박하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가는 죄수를 봤다
이상하게도 그놈 목소리를 들으니 경상도 사투리였다
자신의 고향쪽으로 이송을 가는데도 거부하나 나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며 수갑과 포승줄에 묶인채 법무부 이송버스에 탓다
청송교도소 교도관은 악명 높기로 유명한데
교도관 들이 죄수를 묶어놓고 집단으로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서 묶어놓고 집단으로 구타하고 오히려
교도관이 폭행 당했다고 폭행등 공무집행 방해로 뒤집어 씌워 어디가서
하소연해도 증거가 없는곳이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다 교도관은 교도소 에서 만큼은 절대 권력자다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에는 더욱 심했겠지만 지금도 교도관에게 맞아죽어도 사고사나 자살로 처리하면
어지간히 돈있고 백있는 사람 아니고서는 밝히기 힘든곳이다
그러나 2007년2월14일 당시는 노무현 정권시절이라 그렇게 두려움은 없었다 또 만기도 출소도 2007년 8월26일 이라 얼마남지 않은 상황 이었다
당시 이송버스를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오면서 청송1교에서 일부를 내렸다
영등포 구치소에서 이감거부의사를 밝힌 사람도 청송1교 에서 내렸다
그후 청송2교는 1교와 가까운 거리로 당시 죄수로는 나와 또한사람 2명이 청송 2교에서 내렸다
청송 제2교도소는 독방은물론 운동 할때도 사방이 콘크리드 장벽에 막힌 조그만 공간에서 혼자 운동을 시켜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운동 못하는게 가축같은 대접을 받는것 같아서 .이건좀 .너무한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과 접촉하여 말을할수 있는 공간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기독교 집회때 뿐이다 그때 교도소 안쪽에 있는 강당에서 사회에서 오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데 막상 별로 아는사람도 없고 또 떠들면 감시하던 교도관들이 바로 제지하여 말도 많이 할수가없다
사동에 돌아오면 배식과 사동을 돌아다니며 청소하며 교도관을 보조하는 사동 도우미 볼일이 있으면 .불러 얘기하는게 유일한 말을 하는시간이다

나는 청송 2교에서 독방에 있으면서 성경책을 2번인가 완독하자 출소일이 가까워
전날 저녁에 교도관이 오더니 마중나올 사람이 있냐고 묻기에 없다고 하자 그냥같다
2007년 8월26일 출소를 했는데 새벽 4시에 나가보니
둘째 이복형이 검은색 승용차를 몰고왔서 뜻밖이 었는데 훨씬 일찍와서 교도관에게
교도관들이 거부하더래 그래서 교도관과 말다툼 했다나 하면서 떠드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마중 나온 가족이 있으면 당시 밤12시 지나면 나올수도 있는걸로 기억 나는 것 같다
그러나 마중 나온 가족이 없다면 새벽 4시 이후에 내보내 준다
승요차 안에 들어가 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하나 있는데
처음에는 둘째이복형 세컨드인줄 알았더니
둘째 이복형이 갑자기 그 아가씨보고 인사 하라고 하여
누구냐고 반문하니 누군지 모르냐며 어릴때 본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지 딸 이라네 그런데 전혀 못알아 보겠더라고 그런데 8월26일 아침에 서울 둔촌동 어디 인가에 도착하여 감자탕.집에서 감자탕 하나를 시켜주고 돈 10만원주고 셋째 이복형이 돈이 많으니 나보고 찾아가서 천만원 달라고 하라고 나보고 계속 권유하네
그래서 그 구두세가 내가 달란다고 주겠냐고 그러기 싫다고 하자 지가 주도록 옆에서 도와 줄테니 찾아가 달라고 하라고 강요하며 자신은 회사가 갑자기 부도나게 생겨 돈을 줄수 없다며
나는 가만 있는데 계속 권유하는데 감자탕 먹고 사우나 가서 쉬었다가 오후에 자신에게 전화하면
셋재이복형이 나에게 돈 천만원을 주겠끔 주선을 놓고 권유 하겠다고 여러번 오후에 꼭 연락하라며 신신당부하고 지딸과 승용차를
타고 살아졌다 나는 근처 사우나에서 몸을 3년 이상만에 땀을빼고 이상하게도 거기있고 십지않아 바로 나왔다
그리고 2003년 셋째이복형이 먼저 주먹질을 하여 내가 한대 주먹으로 때리자 삼촌이 있는곳에 데려가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욕을하여 순간 분노가 폭발하여 우발적으로 근처에 있던 호미로 살짝 한대 때린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둘째이복형의 권유로 셋째이복형에게 천만원을 달라고 부탁하면
그 사건을 이제와 고소하여 사건화 하여 나를 다시 구속 시키려 쇼를 할수도 있다고 직감적으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 법 이란게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닌가 적어도 나같은 사회적 약자편은 절대 안들어 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라는말처럼

친구들하고 술쳐먹으러 다니고 골프치러 다니는 놈이 그것도 지 딸까지 청송까지 새벽에 데리고와서
출소하는 나를 픽업 해 갈놈이 절대 아닌 게을러 터진 놈인데 순천교도소에서 정확한 배후는짐작 할수도 없는 나를 호모로 누명씌우며 역으려 했던 정황등과
오버랩되며 천만원을 줄래면 지가주지 셋째이복형놈 에게나보고 달라고 시키는게 뭔가 사전에 짜놓은 시나리오 같은게 있는것 같은데
지금 둘째이복형의 행동이 뭔가 음모가 있는것 같아 불안함을 느끼며 전화를 하지않고 뭔가 듣도보도못한 회괴한 음모의 배후를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몸조심하며 있자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는곳에서 나를 모함하려 호시탐탐 노리며 나를 응시하는 배후세력을 피해
그들이 전혀 예상할수 없는 곳으로 가야 겠다고
내가 출소한 그날은 서울의 한 모텔에서 일박을 한후 다음날 청량리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가서 막노동을 하다
그리고 그후 강릉을 갔어
여러가지 애로 사항이 있어서 외국 나가서 살려고 해도 경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뜻대로 잘되지 않자 일단 여권부터 만들 기로 하고

그러다 2009년5월 여권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말소되었던 주민등록을 살려 바로 구청에 가서 여권을 신청 했는데 여권이
무언가에 걸려 있어서 구청에서 여권이 안 나온다고 외교통상부에 알아보라고 하여
전화로 여러번 통화끝에 알아보자
2009년12월26일까지 금지 시킨다고 했다 그 이후에나 여권이 발금된다고 하여
그런후 이천의 벼룩시장 구인광고

일용직 광고를 보고 찻아 갔더니
신세계 물류센터 에서 일하는거 였다 시설은 내가 가본곳 중에 나았다 이곳에서 일좀해서
미국가는 경비를 마련해야 겠다고 생각 했다 한국 에서는 수많은 친중 세력들이
내 인생을 방해 하려 혈안이라고 당시 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하며 모함하는 보이지않는 배후세력을 추측 하면서 단지 미국 한국에서 화교들 비리를 파해치며 여기저기서 욕좀했다고
화교들이 아무리 넷트웍이 발달하고 단합심이 강하다고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부분도 있었는데
한두놈도 아니고 그 수많은 처음보는 놈들이 나를 호모로 누명씌워 모함을 하다니 희괴한 일이 었다
신세계 제3물류센타는 내가 일해본 공장중에 가장 시설이 나아 보였다.
물류센타안에 있는 직원식당의 먹는 음식도 비교적 잘나오고
결정적으로 물류센타에서 밖으로 걸어서 15분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 단층으로 되어있는 일반주택으로 기숙사가 넓은 독방으로 제공되어
미국가는 경비를 마련하려고 신세계.제3물류 센터에서 일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신세계 제3물류 센타는 cctv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그런데 회사직원들중에 일한지 얼마 안되는 나를 호모로 모함하며 수근대며
은근히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지랄하는거 같은데 증거를 잡을수가 없네
그건 사무실 직원놈 들도 마찬가지 였다
신세계 제3물류센타는 파트장이 신세계 직원이고
내가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과 물류센터 안에 있는 사무실도 비정규직 직원이고
다만 연구팀은 신세계직원 이라고 하는소릴 들은적이 있다
이런 거짓 유언비어는 지금와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원을 관리하는 사무실 직원이 퍼트린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높은 지위의 실세들이 조직적으로 퍼트린 음모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나보고 그랬냐고 그럴수도 없고
일한지 한이틀이지나자 일하는게 어느정도 적응이 됐다
신세계 물류 제3센타는 당시까지 다녀본 공장중에는 시설이나 먹는것이 나아 보였다
기숙사도 독방에다 물류센타 안에 옷을갈아 입는 라커룸도 휴게실도 깨끗하고
좋았어 직원들 쓰레바도 전부 휠라였다
점심먹고 한시간 휴식을 주었고 아무튼 그런데로 있을만 했다
1년이상 있을 라고 했다 그런데 이틀이.지나자. 갑자기 일하는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었어 그래서 그전에는 한시간이면.끝날일을 두시간 이상이 걸렸지
그래서 같이일하는 직원에게 왜 일을힘들게 하냐 시스템을 왜 갑자기 바꾼건가 물어보자
파트장이 그렇게 시켰다고 하네 파트장은 신세계직원. 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일한지 얼마 안됐는데 나를 제1센터로 보내려고 했어 그래서 나는 1센터로
안 간다고 했다
일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을 다른 공장으로 보낸다는건 그만 두라는 얘기 아니냐고 했다
물론 신세계 오기 전부터 순천교도소에서 대략2006년 초부터 갑자기 나를 뒤에서 호모로 몰고 모함을 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나는 분노를 느끼며 나를 모함하기 위한 어떤 배후 세력이 존재하는게 아닌가 나름대로 추리를 해봐도
답을 찿을수가 없었는데
그건 출소 해서도계속 가는곳마다 나를 모함하는 세력이 분명이 존재함을 나는 알수가 있었다
어떤 놈이 미행 하는지 위치추적하여 집요하게 계속 나에대한 악의적인 방해와 모함을 하는것 같은데. 도저히 배후를 알아 낼수가 없었다
허기야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둔 삼성그룹 특무팀이나 비밀작업 많이 한다는 삼성 홍보팀은 한국 국가 정보원 보다더 정보력이 빠르다고 하는데 내 핸드폰 위치 추적 하는건
누워서 떡먹기 보다 쉽겠지 더우기 인맥을 동원해 내가 일하는곳에 전화 한통화 하면 나를 모함하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지
배운것 없고 가진것 없는 내가 전라도에서 신처럼 떠 받드는 김대중을 정치적인 적들에 의한 모함도 아니고 대단한 경제적 이권이
있는것도 아닌데 누가 할 일 없이 돈도 백도 없는 나를 조직적으로 모함하여 함정에 넣으려고 한다는 생각 자체가

142p-남들이 들으면 정신 분열증 환자로 생각할 것 같아 나 혼자만 고민하며 의문에 쌓여 분노로 끊고 있었다
나는 당시 포장부에 파트장이 바로 배치하여 일을 했는데 한번은 경리 아가씨가 내려 오더니 거기서
나와 같이 일하는 조장이 아줌마 였는데 대화를 하는데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뭐 저런걸 사랑해서 사위로 알고 주라고 자살 했는지 모르겠다며 끽끽대며 떠드는 소릴 여러번 주어 듣고 혹시 나보고 한소리 같은데
나보고 그랬냐고 물어 볼수도 없고 설마 저것들 여기서 처음보는 미친것들 아닌이상 나보고 그럴리 없다
생각하고 하던일에 열중한적이 있다 한번은 우연히 쉬는 시간에 나를 경비실에서 면접에서 채용한 비정규직 용역 사무실직원에게
신세계 직원인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야단치는 투로 왜 나를 취직시켜 줘서 이 사단이 나게 하냐며 하자 그 직원은 당황하는 투로 몰랐다고 그러내
그때는 설마 나를 지칭한 말같은 느낌이 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큰실수도 없이 시키는일 열심히 했는데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딜레마에 빠지는 그런일의 연속이었다 2006년도 순천교도소 부터 내가 가는곳마다 전혀 잘알지도 모르는 처음보는 놈들이 나에대한 악의적인 험담을 하며 모함을 하는 개같은일이 연속인지 정말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환장할 분노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직원중에 내 주변에서 높은 사람이 CCTV로 호모만 본다며 주변에서 떠드는 소릴
우연히 주어듣고 어떤 색끼가 호모 냐며 그놈 에게 큰 소리로 묻자
그놈이 또 그런말 한적 없다고 지랄하네 요걸 때려 잡을수도 없고
당시 신세계 물류 제3센타는 일하는걸 감시하고 사고를 예방할 목적인지 모르지만 CCTV설치가 잘 되어 있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 하다 했지만 나하고 아무도 연관이 없던 여기서 처음본지 얼마안된 저것들이
뭐가 아쉬워 나보고 그럴리가 없다고 나의 헛된 망상일 거라고 생각 하면서
무시하고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며 무시 하면서도 왠지 나를 지칭해서 그런것 같은 느낌의 딜레마의 연속 이었다
일주일도 안됐는데 비정규직 사무실 직원이
일하는데 면담 하자고 부르더니 사무실에 가보니 식당에 가면 센터장이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가보니
센터장은 아니고 처음보는 어떤놈이 와서 말하는데 나보고 대뜸 1센터 에서 일하는게 어떻냐고 하면서
숙소는 이천시내 아파트라 여기 보다 더 나을 꺼라고 은근히 떠밀듯시 보내 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숙소도 옮겨야 하고 불편한 점이 많으니
여기서 적응 하려고 노력 하니 여기서 일 하겠다고 하자
그놈이 여기는 남자가 적고 거기는 남자가 많아서 일하기가 더 수월할 거라고 은근히 지랄하는게

이게 뭔가 모함을 하며 장난을 치는게 아닌가 느낌이 들정도였다
나는 말같지 않은 개 소리를 하냐며 남자들과는 싸움만 하지 여자들과 일하는게 오히려 훨씬 낫다고 대받아치자 그놈이 조용했다

나에 대한 험담을 조직적으로 떠는 것 같은데 나보고 그런거 냐고 일일히 물어 볼수도 없고 물어본들 아니라고 할게 뻔한 것 이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엄청 받는거야
정말 황당하고 기분 나쁜 일이 었다 베트남 전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엄청난 노력으로 베트콩을 막아주려 노력 했지만 당시 섞을 대로 섞은 베트남에 공산주의 사상이 퍼져 베트남 인들이 데모를 심하게하고 사방팔방에서 아군 진영 에서도 갑자기 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갑자기

총을 들고 달려들는 황당한 베트콩의 공격이 많아 당시 미군과 한국군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베트남은 베트콩에 점령당하여 공산화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싸움도 상대가 정해지고 일대일 싸움이 원칙이고 정정당당한 싸움인데

이건 뭐 나와 전혀 알지도 상관도 없는 모르는 것들이 마치 베트콩처럼 사방팔방에서 나에게 모함을하니 나혼자서 감당할수 없는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서 일하는 시간을 늣게 만들어 놓고 늣게 끝난다는 핑계를 달고
나를 제1센터로 보내려고 한것도 그렇고 결국은 그만 두고 나가려하자 제1센타에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보자고 했다 숙소는 이천 시내 아파트 라고 해서 아파트로 옮기려고
숙소인 아파트에 가보니 숙소에 있는놈들은 전부 일나가서 방에 아무도 없었는데 방에 짐이 너무나 많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누워 잘 공간도 없겠더라고
나는 신세계 제3 물류 센타에 일하러 오기전 부터 직감적으로 한방에 여럿이 있으면 뭔가 누명을 씌울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느꼈다 한방에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 생활을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신세계 제3센타 면접볼때 숙소가 독방을 준다고 하기에 왔고 또 가보니 나에게 독방을 주었다
그런데 이천 아파트는 한방에 3-4명이 함께 사용해야 한다기에
그것도 아파트 숙소를 보여주며 그 얘기를 하여 짐도 풀지않고 그만 두겠다고 하며 짐을들고 나왔다
이곳에 돈벌어 경비하여 미국 가겠다고 있어봐야

만약에 내가 이것들 하고 단 하루라도 한방에서 생활 한다면 저녁에 자는데 성추행 했다고 성추행 범으로 누명씌우거나 돈훔쳐 갔다고 여럿이서 작당하여 음모를 꾸미면 나혼자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란 걸
과거 인혁당 조작사건 이나 진도가족 간첩 조작사건 수지김 조작사건 등에서 피해자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해 봐야 모진 고문과 조작으로
죽어간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참고자료 2016년 5월7일 조선일보 books란에

제목 마녀 지은이 주경철 펴낸곳 생각의힘

내용은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가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밤베르크 였다 1628년 6월 이 도시의 시장이었던 당시 55세의 요한네스유니우스가

고발됐다 악마가 주관하는 마녀 집회에 참석했다는 혐의 였다

유니우스 시장은 하느님을 부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고 맞섰지만 고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엄지 손가락과 다리를 바짝 죄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팔을 뒤로 묶어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툭 떨어뜨려서 어께 탈구를 유발하는 고문인 스트라파도 가 8차례나 이어졌다

유니우스는 결국 무너졌다

검은 개로 변신한 악마를 타고 날아서 마녀 모임에 참가했다 는 얼토당토않은 내용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장을 맡았던 도시에서 화형을 당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 (反轉)이

있다 유니우스는 고문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남몰래 딸에게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유니우스는 아가야 내가 자백한 것들은 순전히 거짓말이고 다 지어낸 것들이야

내가 당했던 것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할 거라는 위협을 받고 공포 때문에

할 수 없이 말한 내용들이야 라고 속내를 토로했다 그는 간수들을 매수해서 딸에게

편지를 건냈다 마녀사냥의 공식 기록 이면에 있던 희생자의 생생한 육성을 듣게 된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저자는 인간 이성의 어두운 구석에 웅크린 광기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현대까지도 이어진 것이 사실이란 것이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녀 를 다시 읽는 건 인간 이성의 불완정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김성현 기자)


결국 유니우스 시장에 누명씌운 검은개로 변신한 악마를 타고 마녀 모임에 참가했다 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처럼 누명씌워 형사 처벌로 교도소에 집어 넣을려고
치사한 잔대가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치사하고 더러워서 아파트 숙소를 보자 마자 짐도 풀지않고 그만 둔다고 나왔다
그곳을 그만두고 나온후 신세계 제3센터 포장부에서 여자 경리와 여자조장이 말한게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검색하다가
그동안 겪어온 정황들이 너무 이상하여 설마 하면서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검색하다가 가족 사진을 보게되고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의 사진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2002년도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아스카란 일식당에서 본 당시 웨이츄레스 하던 아가씨와 얼굴이 같았고 곰곰히 기억을 되돌아 보니 당시 일식당 주인 내외가 그아가씨 보고 윤형아 라고 크게 여러번 부른 소리가 기억 나는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직접경험한 회괴한 정황들이 순간 오버랩 되면서 내가겪은 배후를 알수 없는 여러가지 모함들이 이윤형의 자살과 관련된게 아닌가 처음으로 직감적으로 느낄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윤형 자살사건과 관련된 당시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학하려 노력하다

(참고자료-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기일은 19일(1910-1987년11월 19일 )
삼성은 편법 증여 상속으로 수사중인
2005년 9월 4일부터 이건희 홍라희는 이건희의 폐암 치료차 미국MD 앤더슨 병원에 가있었고
2005년 11월 18일.
막내딸(3녀) 이윤형(26세) 뉴욕 유학, 9웗부터 뉴욕 대학원 예술 경영학 1학년이었고 자신의
맨하탄 남동부 이스트 빌리지의 애스터 플레이스에 있는 고급 콘도미니엄에 거주(일주일여 두문불출하던)
아파트에서 문에 발이 바닥에 닿는 상태에서 전깃줄로 suicide,
신수빈 이라는 남자가 친구와 함께 남자 2명이 사람들의 인적이 가장드문 새벽 3시경에 발견
맨하튼의 카브리니 메디칼쎈타 병원에 후송 뉴욕 경찰이 부검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믿을수없게 번개불에 콩튀겨 먹듯 죽은 다음날 병원으로 옮겨진뒤 의학적 death 판정하고
가족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화장처리 되고 삼성가에서 키우는 개도 그렇게 성의 없이 처리하지 않았을 텐데 마치 잘죽어다는 식으로 짜놓은 고스톱처럼 이윤형시체를 일사천리로 처리하는건 이윤형이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가 낳은 딸이 아니라는 정황 증거이다 적어도 친딸과 친동생 같으면 그런식으로 성의없이 처리하는건 드문일이다
21일 장례식은 당시 미국 텍사스m엔더슨 암 센터에서 폐암 치료받던 삼성 이건희 회장만 이상하게 제외되고
이건희 회장의 본처 홍라희 장남 이재용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의 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스트 81번 가 프랭크 캠블 장의사에서 원불교 장례절차로 외부조문금지하고 극비로 장례를 마치고 난후
21일 삼성에서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구라쳤다가 뉴욕한국일보 지사 신용일 기자가 끈질긴 추적으로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닌걸 확인하고 기사를 한국에 내려하자 삼성에서 압력을 행사하며 방해하여 못내고 대신 취재한기사를 뉴욕타임즈에 줘
뉴욕시간 2005년 11월26일 .뉴욕타임즈 .기사가 .나간후 .삼성에서 .다시 .부랴부랴.자살로 .정정한 .사건
뉴욕타임스 - 뉴욕경찰에 사실확인을 한 결과
윤형씨의 사생활과 관련, 아버지 이건희 회장처럼 카레이싱을 좋아했으며 뉴욕대 대학원에서 아트 매니지먼트를 전공하며 학교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아파트 경비원의 말을 빌어 윤형씨가 자살 전 일주일 동안 집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았으며, 윤형씨 운전기사도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파트 관리인은 윤형 씨가 종종 운전사를 전화로 불러 집밖에 대기시키는 등 '특별한 사람(She is somebody)'이었 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이 운전사는 사실상 윤형 씨의 전용기사 역할을 하며
사실상의 보디가드(경호원) 역할을 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참고로 윤형 씨는 한국에서 학창시절(대원외고-이화여대 등)을 보낼 당시 항시 2명 정도의 경호원이 호위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윤형 씨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시절만큼은 경호원 없이 지내고 싶다는 의견에 따라 전용기사만을 두었다는 후문이다.
뉴욕 시 검시소는 뉴욕 시에서 자연사를 제외한 사고 사망자, 피살자, 자살자에 대해 부검 등을 실시, 정확한 사인을 가리며 병원 사망 진단서 검토는 물론 사망자의 유가족이 '화장'을 희망할 경우 신청서를 접수,
승인 여부를 검토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해당기사를 보면 "엘렌 브로코브 뉴욕 시 검시관 대변인은 지난 23일 뉴욕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윤형 씨의 사인에 대해 '우리가 부검을 실시한 결과, 사인은 자살(Suicide)로 판명됐다. 그녀는 목을 매어(Hanging)
숨졌다'고 확인했다. 또한 뉴욕시경,
긴급의료서비스(EMS), 소방국 등에 따르면 윤형 씨는 지난 19일 새벽 3시께 자신의 맨하탄 아파트 안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남자친구에 의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EMS, 소방대원들은 현장조사 후 이씨의
시신을 인근 '카브리니 메디컬 센터'로
옮겼으며 병원은 이날 새벽 4시 이씨의 사망을 공식 진단했고 시신을 넘겨받은 시 검시관은 부검을 실시, 사인을 '자살'로 판명한 것이다. 이씨의 장례는 맨하탄 '프랭크 E. 캠블 장의사'에서 치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직접적 자살 원인은 무엇일까.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으나 갖가지 유추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 측의 입장은 유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유학생활의 부적응'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활달하고
명랑하던 윤형 씨가 홀로 미국에서 생활하며
외로움을 많이 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학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음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각은 유학 전부터 사귀어 오던 남자친구와의 교제를 집안에서 반대했던 것이 주된 이유라는 것이
중론이다. 항간에는 유서를 남겼으나 이를
가족들이 회수했다라는 소문도 들린다.
이번 윤형 씨의 주검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 남자친구 신수빈 씨는 평범한 중산층 자제로 그 동안 삼성가 집안에서 적잖은 반대에 부딪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세대학 경영학과 출신인 신 씨는 3년 넘게 윤형 씨와
교제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세간의 화제에
오르기 전 윤형 씨가 운영했던 홈페이지에도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윤형 씨가 '이뿌니 윤형이네~ (http://www.cyworld.com/yoonhyung7 )'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할 당시 남겼던 글들이 또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스키장에서 콰당~ 어떤 여자가 와서 나를 박는 바람에
조금 놀랬어요. 아빠가 '이제 헬멧 안 쓰면 스키 못 탄다'
그래서 아기처럼 헬멧 쓰고 타고 있어요"(2003년 12월 26일) "나 기타 배우려고 시도하다가 내 남자 친구가 기타 잘 치거든. 그냥 남자친구한테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맨날 게으름 펴서 안 늘어.^^"(2003년 10월 29일)
[윤형 씨 홈페이지 폐쇄후 네티즌들이 만든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 팬카페 : http://cafe.daum.net/yoonhyung7]
이렇듯 윤형 씨의 홈페이지에는 젊은 보통 네티즌들이 꾸미는 홈페이지처럼 처음엔 남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등 개인 사진 여러 장을 담은 사진첩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성탄절 가족과 스키장에 놀러 간 이야기,
치아 교정을 시작해 고생한 이야기,
집에서 김장 시작한 이야기 등 아기자기한 개인 사생활이 듬뿍 담겨 있었으나 결국 유명세를 타면서 아예 홈페이지를 삭제해 버렸다.
윤형 씨는 재벌가의 여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면에서 평범할 수 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항간에는 "프랑스에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 남자친구와 즐겼다... 사비를 들여 남자친구를 미국에 불렀다" 등 갖가지 풍문이 나돈 적이 있었다.
윤형 씨는 한국에서는 학창시절부터 경호원 2명이 철저하게 보호를 받았으나, 미국 유학을 와서야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누렸다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현재 뉴욕에서 나도는 소문에는 미국 유학생활에서
여느 연인들이 하는 것처럼 이들이 소위 '깊은
관계'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윤형 씨의 자살과 관련 "남자친구와의 '깊은 관계'가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 목격되어 양측이 정신적으로 큰 쇼크를 받았다"라는 풍문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듯 '윤형 씨의 자살동기'를 둘러싸고
여러 소문들과 갖가지 추측들이 나돌고 있어 좀처럼 논란이 사그라 들지 않을 전망이다.

더 타임스는 "삼성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고 전제하고,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은 국회 소환을 거부하며 연락을 끊고 있고 외삼촌인 홍석현 씨는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삼성의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주미대사직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어 윤형 씨의 오빠인 이재용 씨는 불법상속 문제에 연루됐으며, 삼성그룹 2명의 최고경영자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또 올해 미국으로부터는 메모리 칩 덤핑으로 3억 달러(3000억 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윤형씨 남자친구인 신수빈씨와 그의 친구가 지난 19일 새벽 3시쯤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에서 윤형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삼성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윤형씨가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이루지 못하고 뉴욕으로 온 뒤에는 외로움에 시달리며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혼자 칩거했다고 전했다.
이윤형(1979년 4월 26일 ~ 2005년 11월 21일)은 한국의 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막내딸이다. 미국 유학 중 자살하였다.1979년 4월 26일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와 부인 홍라희 사이에서 3번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세간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집안 사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삼성가의 딸로서 자신의 일상을 "이뿌니 윤형이네~"라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공개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뒤 2005년 9월부터 뉴욕대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와 삼성네트웍스 주식 292만주와 삼성SDS 주식 257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재벌가의 막내딸로 남부러울 것이 없던 그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정확한 자살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평범한 집안 출신의 남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를 놓고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고민

유학 앞둔 그해 8월에 건강검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유학 생활의 외로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측은 당초 이윤형이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면서도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지 않아 의구심을 불러왔다
초기 기사는 미국 현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이후 자살로 밝혀졌다.
유학중인 뉴욕 맨해튼 근처 숙소에서 스스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세상을 떠났다.
미국 뉴욕 경찰은 시신의 부검을 실시한 결과 목에 줄을 맨 흔적 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점으로 미뤄 자살로 결론지었다
2006년 그녀가 보유하고 있었던 주식은 장학재단에 기부되었다 당시 인터넷 검색으로 이윤형 자살사건과 관련된 기사내용 -
데 의문이 드는 점은 당시 이윤형의 시체를 최초로 발견하게 이윤형의 남자친구라는 신수빈과 그의친구 남자 2명이 인적이 가장드문 새벽3시에 발견 했다는 점과 특히 의문이드는점은 2002년 당시 아스카 일식집에서 대략10 여일 정도 스시 핼퍼로 일을 할때
웨이츄레스하던 윤형 이란 아가씨와 웨이터를 하던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식당주인 내외가 윤형아 수빈아 라고 여러번 부르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식당 주방 뒤쪽 문으로 연결된 밖으로 나와 야외에서 담배를 필때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이윤형 동태를 마치 보고하는 것 같은 핸드폰 통화를 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어렴풋 나는것 같다
그때 식당에서 웨이터하던 웨이터 같지않고 운동선수 같았던 20대 후반에서 30 초반 정도로 보이던 수빈 이란 남자가 이윤형 시체 최초 발견자 신수빈과 동일 인물이 아닐까 ?
그리고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 했다가 삼성 에서 다시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 했다고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해 뉴스 기사 까지 났는데
이제와 날 얼굴한번 보고 3년 이상 못잊다 자살해서 찾아서 천억주려 한다는 회괴한 소문은 무엇인가 왠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소문이 로또복권 1등 당첨 되듯 사실이길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마음도 한편으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번 생각해도 그 소문은 믿을수가 없어 의심이 들며 뭔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가
불안한 기분이 은근히 들기도 하며 마치 평행이론 양자 이론처럼 내 마음을 딜레마에 빠트리며 더욱 혼란 스럽게 만들었다
나를 면답하고 승용차에 태워 제1센터로 데려간 놈은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 처음보는 놈인데 비정규직 사무실 직원 같지도 않은데 지금와 돌이켜 생각하면
2013년 삼성그룹 오너와 사촌인 CJ그룹 이재현 회장도 삼성가 오너들이 삼성비밀 직원을 시켜 미행하다 걸려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는 것 처럼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날 누명씌워 엮으라고 보낸 비밀 직원이나 당시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는데 브로커를 몇단계 걸쳐 고용한 프로페셔날 킬러 비슷한 놈 일수도 있겠다고 지금 돌이켜 보면 생각이 든다


?

돈주고 브로커시켜 몇단계 걸친 사주로 유사시 홍라희 이재용은 빠져나갈 출구를 이미 마련 했겠지

왜 숙소를 보자마자 그만둔다고 짐들고 바로 다시 나가냐고 비아냥 거리듯 쳐다보는 면상을
주먹으로 한대 때리고 십었는데 참았다 저놈은 그렇게 하길 얼씨구나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미국가는 경비를 마련 하려고 신세계 제3 센터에서 참 일을 열심히 했는데 결국 이렇게 그만두게 만들다니 더러운 놈들
당시만 해도 삼성가 오너들이 이윤형이 나를 얼굴한번보고 자살했다고 아무죄도 없는 날 괴롭히려는 건가 아니면 정말 소문처럼 나에게 천억주라고 자살해서
천억 안주려 여러가지 모함을 한건가 뭐 그런 생각도들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이윤형이 날 사랑하다 자살했다는것도 말도 안되는데 천억까지 주라고 하며 자살했다는건 지나가는 개도 안믿을 너무황당한 생각이란
누구한데 이런 얘길해도 누가 믿어 주겠어 정신분열증 환자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지
그동안 나를 모함하던 세력들의 배후를 전혀 감을 잡을수가 없어 막연하게 화교들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지만 화교들이 경제적으로나 뭔가 이권이 없는데 돈없고 백없는 날 관심도 없을 텐데


그런데 반전은 한국 최고 재벌을 넘어 세계적인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 이윤형 사진을 보고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주에 있던 아스카란 일식당 에서 웨이츄레스 하던 아가씨와 동일인물 이라니 놀랬다 그런데 자살 했단다

오래되어 정확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여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인지 내눈을 의심 했지만

일식당 사장이 윤형아 라고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의 자살했다는 막내딸 이윤형과 얼굴만 같은게 아니라 이름도 같았다 더구나
미국에 있던 2002년 가을 이후 부터 이상하게 나에 대한 모함이 있어 결국 미국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와 2006년 순천교도소 에서 호모로 누명씌운 배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회괴하고도 참담한 모함과 음모가 이어졌고
출소해서도 누군가몰래 미행하며 모함을했던 증거를 종합하여 추리하면
내가 2002년 미국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보았던 웨이츄레스하던 아가씨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과 분명이 같은 인물임을 직감적으로 확신하며
삼성회장 막내딸의 의문의 자살사건과 관련하여 나에대한 그동안 전혀 배후를 짐작할수 없었던 보이지않은 모함의 의문점의 퍼즐을 전혀 맞출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퍼즐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에 의해 다시 여러가지 딜레마에 빠지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의 사우스케롤라이나주 보다는
노우스케롤라이나 샬럿인것 같은데 샬럿에서 차로 아마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데 그곳 도시 이름은 당시 물어 보지도 않았고 그곳에 한 십여일 정도 짧게 있었고 또 승요차로 픽업되어 오고가고 하여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스카란 일식집 이름은 정확히 기억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니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사진과 동일 인물임을 이름도 같고 얼굴도 쌍둥이 처럼 똑같았다
그런데 삼성회장 막내딸이 자살했다고 한다
그 애가 한국 최고 재벌가를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나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었단 말인가 근데 그런애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
재벌가 막내딸이 자살 한것과 신세계 제3 물류 센터 에서 주어 들은 소문이
결국 설마 설마 했는데 나에 대한 말로 매치가 되면서 재벌가 막내딸이 의문의 죽음 때문에
그동안 영문도 모르고 모함에 시달렸던 것이라고 직감으로 알수 있었는데
신세계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여동생 이명희 회장이 운영하는 그룹이다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촞불같은 짧은 만남을 가진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 과 나와는 나이 차이도 많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나눈 사이 인데 당시 일식집 사장이 새로온 종업원 이라고
인사 시켜줘 안녕하세요 하길래 네 하고 대답한 기억은 난다
그러나 그후 채 십여일 정도 일했나 일끝나고 숙소에서 주방장 하고 느닷없이
싸우고 그만 둔적이 있지 그리고 주방장이 일한거 계산해주고 승용차로 픽업하여
그레이하운드 터미널 까지 테워줬다 그렇게 저녁늣게 느닷없이 그만두고 그곳을 나와 뉴욕으로 다시 온적이 있다
그때 따라다니며 그 아가씨 동태를 누군가에게 보고하던 웨이터가 있었는데
사장 내외가 수빈아 라고 부르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지
또 곰곰히 생각하니 아스카 일식당 사장 내외가 윤형아 라고 큰소리로 여러번 부른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성씨가 뭔지도 몰랐다
그 아가씨가 지금의 피겨 스타 김연아 비슷하게 닮은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얼마 안 있었기에 그들의 정체를 정확히 몰랐고

당시 주방장이 어느날 인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웨이츄레스 하는 그 아가씨가 유명한 교수 딸 이라고 해서 그런줄만 알았는데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 일줄은 당시 상상도 못했다
2002년도 월드컵이 열리기전에 나는 재벌가 막내딸을 우연히 만났다
지금 다시 곰곰히 과거를 역추적 하여 추리 하면
이윤형을 미국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한 십여일 남짓 일할때
우연히 만난게 2002년 월드컵 이후가 아니라 이전이 었다
내가 정확히 기억은 않나지만 대략 2002년 1월 말경 뉴욕 7번 전철 종점인 플러싱에서
그전에 시카코에서 킴볼 인지 킴벨 인지 한인상점 모여있는 동네에서 구입한 한국신문 인지 정보지 인지를 구입하여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자 그곳은 와이오밍 케스퍼 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나를 쓰지 않는다고 했어
그래도 나는 전화로
뉴욕은 춥고 일자리도 없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사정이라고 일자리를 주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사정얘기를 전화로 했더니 그러면 한번 오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 타고 갔더니 한국으로 치자면 강원도 첩첩 산골 같은곳 인데
한국인은 거의 없는데 그곳에 가보니 한국 여자둘이 있었는데
가계 이름이 교또인지 뭔지 그곳은 내가 일할수 있는 곳이 아니였다 사우나가 있는 일종의 마사지 팔러였다
왜 나를 쓸수 없다고 했는지 가보니 알겠더라고 그런데 전화상으론 마사지팔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청수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는데 여자를 구한다고 했는데 내가 막무가네로 사정얘기를 하며 고용해달라고 여러번 전화하자 나를 오라 그런거였다 나보고 오느라 피곤할테니 사우나에서 사우나도 하고 좀 쉬라고하여 사우나를 하고 좀쉬다가 갑자기
주인 여자가 300불을 봉투에 담아서 샌드위치 과일등 먹을것을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 타고 가면서
먹으라며 주는데 내가 달라고 그런적도 없는데 이곳은 내가 일할 청소할 것도 없으니
겨울에는 로스엔젤레스가 따뜻하고 그곳이 여기서 뉴욕보다 훨씬 가까우니
그곳에 가서 일자리 알아 보라며 더주고 십어도 자기들도 형편이 그렇다며
내가 어려워 보이고 같은 한국사람 이라고 도와 주는 거라고 그러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물론 나는 그곳에서 하루도 일 안하고 도착 한지 두시간 만에 그돈을 받고 다시 LA로 와서
2월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다시 오하이오 데이턴 중국 식당에서 숙식 제공 하며 사람 모집 광고를 보고
그레이 하운드타고 중국 식당에서 잠시 일하고
뉴욕으로 와서 맨하탐 32번가에서 한국 신문을사서 걸어서 뉴욕맨하탄 센트럴파크 공원 안에있는 도서관에는
한국 도서를 배치한 곳도 있는데 그곳을 찾아가서 의자에 앉아 32번가 코리아 타운에서 돈주고 산 한국신문을 펼치고 신문에 난 구인광고 보고 마침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란 일식당에서 숙식제공하고 주급을 주며 스시헬퍼를 구한다는 모집광고를 보고 도서관 근처의 공중전화로 전화하자 나이는 몇 살이며 한국에서 온지 얼마나 됐나며
몇가지 간단한걸 전화상 물어보고 내가 일하겠다고 하니까 흔쾌이 승낙하여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고속버스 타고 도착하면 터미널에서 전화하면 픽업 나오겠다고 하여 출발한적이 있다 노스케롤라이나 샬럿 같은데 그곳에서 차로 한 40분 정도 떨어진 곳같은데
그곳에 너무 짧게 있어서 마을 이름을 관심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지 그래서 그곳 도시 이름은 몰라
그러나 아스카란 일식집 이름은 정확히 봤기에 알수있다
근데 핵심은 - 확인된 사실은 아닌데 당시 주방장이 사장의 성씨가 박씨 라고 하는 소릴 우연히 들은기억이 나는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전남 해남인가 어디인가 같은데
나보다 나이가 당시 많은것 확실한것 같은데
나이가 몆살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주방장하는 말이 자신이 80년대 학생 운동하다 미국으로 망명 했다고 했어
그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주방장은 고향은 어딘지 모르고 말씨는 서울 말씨를 썼다
숙소는 식당에서 차로 약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지
숙소는 미국 마을에 단독 주택이고
주방장 은 집이 뉴욕 풀러싱이라 숙소에 있고 그리고 디시워시 하는 조선족 한명 그리고 나 이렇게 3명 이었는데 각자 침대가 있는 큰 독방을 썼다 방에는 TV는 없었고 방밖에 나오면 주방이 딸린

제법 커다란 응접실에 TV가 있었는데 그옆에는 영화 뉴스 오락프로 드라마 등 한국 비디오가 있었다


근데 오하이오 데이턴 중국 식당에서 내가 아스카란 일식당에 오기 직전에 잠시 일했는데
주방장이 내가 오기 직전에 그곳을 거쳐 왔다니까 주방장이 그곳 중국 식당 사장을 잘 알고 그곳을 오픈 시켜 줬다고 그러데

근데 주방장 하는 말이 아스카 일식집 사장이 일본인과 혼혈 이라고 그러 더라고 이것 또한 주방장 하는 말이니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아스카 일식당 사장을 보니 일본인과 혼혈같이 생긴것 같기도 했다
근데 아스카 일식집 에서 스시 핼퍼로 일할때 미국 손님이 사장보고 물을 일본말로 뭐냐고
영어로 물어보자 잘 모르더라고 난 미국 오기전에 일본에서 2년넘게 일해서 물이 일본 말로 미즈 라는걸 알았는데 모른척 하고 가만 있었다 그전에 일본에서 있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본인 인데 어떻게 한국 성씨를 갖고 있는지 금금하다고 하자 한국으로 귀화 했다고 하는데

물이란 가장 쉬운 일본어도 모르는데 뭔가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아스카 일식집 스시바는 당시 나까지 3명 인데 메인 스시맨은 사장이고 둘째 미들 스시맨은
아리조나 휘닉스에서 2시간 밑에있는 곳에서 일식집 사장을 하다 문을 닫고 아스카 일식집 에서 스시맨으로 일한다는 데
당시 나보고 해군장교 출신 이라고 했다 나이는 당시 50 이 넘어 보였다
나도 해군 제대 했지만 그런 애길 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돌아 다니면서 해군 출신들이 일본식당 사장을 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았다 신시네티의 일식집 사장도 해군 출신이고 사우스 케롤라이나 에 있던 쇼건 일식 사장도 해군 출신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일식집을 운영할때 식당 이름이 쇼건이 가장 흔하고 많았다 일본말로 장군이란 뜻이란다
그외에 사무라이 나리따 나라 미소시루 등등

신시네티에 있던 일식집 사장은 해군을 제대하고 예전에 플로리다 마이에미에 유람선 에서 일하는 비자로 입국 하여 선원수첩을 선장에 압수된 상태에서 무단으로 유람선에서 이탈하여
무작정 마이에미 한국 식당에 찾아가서 뉴욕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자신은 지금 돈도 없고 여권도 없으니 뉴욕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서 뉴욕으로 보내주면 경비는 지불해 주겠다고 사정하자
식당주인이 고맙게 도와주어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여 열심히 일해서 일식집까지 차리게 됐다고

영화같은 스토리를 나에게 얘기 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2001년 9.11 테러 나기 전만해도 미국 국내에서 누가 도와주면
미국내 비행기 타고 목적지 까지 가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해군 선배가 운명하던 사우스 케롤라이나 에서 있던 일식집 사장은 자신의 입으로 한국 에서 해군 제대하고 미국 으로 유학와서 마피아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는 얘길 내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해서 들은 기억도 난다 나는 미국 에서 돌아 다닐때 누구 한테도 해군 제대 했다는 소릴 한적이 없어 내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그런 소릴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성공해서 누굴 도와줄 입장이 되면 그때가서 나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우스케롤라이나 일식집에서 주방에서 일할때 거기도 기숙사 에서 있었는데
당시 주방장은 조선족 이었고 스시맨이 둘인데 나이 어린 전라도애 스시맨은 출퇴근 했고 스시맨 하나는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기숙사에는 나 주방장인 조선족 3명이 각자 독방에서 생활했다
사장이 렌트한 미국 주택가 에서
생활 했는데 미국의 지방은 당시 렌트비가 상상 이상으로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집이 나쁜집이 아니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주택이다 우리는 숙식제공 이기 때문에 방세를 따로 내지 않았는데 근데 그 식당에는 일요일은 문을 닫았는데 하루는 사장이 나와 평택출신 스시맨 조선족 주방장 이렇게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3명과 사장까지 4명이서 차를 몰고 대서양으로 가서 바다 낚시를 하러 간적이 기억난다
토요일 오후 저녁10시쯤 식당 일이 끝나자 마자 우리는 차에다가 삿포르 기린 등 맥주 두박스 싫고
거기다 일본술 사케 소주 심지어 보드카 데킬라 등 술도 차에 싫고 가며 마시고 갔는데
낚시터는 차로 4시간 이상 운전하여 간 것 같은데 가면서 거이 맥주 한박스 이상 마시고 가며 차에서 당시 처음듣는 박상민의 휄쓱한 모습이 었었지로 시작하는 비련 이란 노래등 여러가수 들의 한국 가요를 실컷 틀으며 대서양 낚시터로 갔다 당시 그곳의 지명이 어디 인지는 지금 기억이 안나
가보니 낚시대등 낚시 용품은 돈을 주고 빌리는 것이었고 생각대로 바닷물은 정말 깨끗했다
미국 사람들이 자연환경 보존은 정말 잘하는것 같았다 이런건 한국도 본받아야 하는데
근처에서 낚시하던 미국인 들은 고기를 잡으면 다시 방생하여 보내 주기도 했다
불교를 믿는 스님들은 길가는 개미도 한부로 밟아 죽이지 말라고 가르 친다고 하는데
저들은 불교신자 인가 그런것 같지는 안은데 미국은 불교신자가 거이 없지 않은가 ?
상대적으로 불교 신자가 많은 한국 보다도
오히려 미국인들이 평균적으로 동물들에 대한 배려가 끔찍히 잘하는것 같았다

우리들은 주로 오징어 한치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쳐서 초 고추장에 찍어 소주와 마시고
사장은 술이 센지 보드카를 마셨다
그래서 술이 취해 서로 떠들며 낚시터 분위기를 흐렸어
주변에서 조용히 낚시하는 미국인들 에게 말을걸고 떠들기도 했다
그들이 겉으론 표현 안했지만 속으론 욕을 했을수도 있겠다고 지금 생각이 들기도해
그래서 그런지 날이새고 다음날 돌아 올때는 평택애 보고 차를 운전 하라고 하고 사장은 조수석에서 피곤한지 코를골며 자기만 했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
아스카 일식집 사장은 평상시에는 식당 전체를 돌아 다니며 관리 했고 손님이 많을때는 스시바에 와서 메인 스시맨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해군장교 출신 이라는 미들 스시맨과 주로 일을 많이 했어
나는 기본적으로 손님이 들이 닥치기 전에 켈리포니아롤 30개에서 많게는 50개 이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이유는 켈리포니아롤이 가장 잘팔렸기 때문인데 바쁠때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 놔야했다. 겔리포니아롤 안에는 기본적으로 아보카드 게맛살 오이 등이 들어갔다
한국의 김밥은 김이 밖으로 나오지만 겔리포니아롤은 스시 밥알이 밖으로 나오게 마는 것이다
그리고 스밥알과 각종롤에 들어가는 스시밥은 한국의 김밥집에서 파는 주로 중국산 쌀로 전기밥솥으로 성의 없이 밥을하여 김밥에
넣고 말아 파는 김밥과는 천지차이다
물론 식당마다 틀리지만 쌀은 최고급으로 쓰고 정성것 깨끗이 씻어 컵의 눈금에 정확히 맞춰 물을답은 컵을 몇번을 넣는지 숫자까지 정화해야
했다 그리고 밥을 커다란 나무로 만든 원반모양의 혼자 들수 있는 통에부어 나무로만든 노처럼 생긴걸 들고 저어 정성껏 말려
소스를 붓는데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스시밥에 뿌려져 섞는 소스는 다시마 식초 일본술 삭게 그리고.여러가지 각종 재료들을 스시맨 개인 역량에따라
넣어 미리 만들어 놓는다
마치 배를 젓는 노처럼생긴걸 들고 소스를 밥알과 섞어 스시밥을 만든다
소스를 밥알과 섞어서 스시밥을 완성시키면 밥알이 윤기가 있고 달짝 지근 한게 맛이 있었다
그리고 스시밥과 각종 롤에 들어가는 오이등 여러가지 야채와 게맛살 등을 만들어 준비시켜 놔야 했다.
웨이 츄레스 하는 아가씨가 외국인 포함해 여럿 있었던것 같고 웨이터 하는 남자가 편안한 모습으로 홀에서 일했는데 사장내외 하고는 잘아는 사람으로 보였고 윤형아 수빈아 라고 부르는 소릴 여러번 들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는것 같은데

이윤형 시체 최초 발견자 신수빈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 보지못했지만
2002년도 미국 아스카 일식집에서 주인내외가 부른 수빈이가
이윤형 시체 최초 발견자 신수빈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후 2009년6월경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사진을 보고

확인했고 당시 수빈이라고 부른 웨이터가 삼성회장막내딸 이윤형 양의 시체 최초발견자로 언론에 보도된 신수빈 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언론에 보도된 신수빈 사진을 보지 못해 아직 100% 로 동일인물 이라고 말할순 없지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후 그곳을 대략 십여일 정도 일한것 같은데 저녁에 일 끝나고
숙소에서 일본술 삭케를 먹다가 주방장하고 느닷없이 싸우고 주방장에게 일한돈 얼마 안되니 계산해 달라고 하자
주방장이 돈을 계산해 주고 차로 그레이 하운드 터밀널에 저녁늣은 시간에 데려다줘
터미널 에서 기다리다가 뉴욕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뉴욕에 올라와서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으려다가 뜻대로 되지않자 돈이바닥 나기 직전이라
그전에 LA에 있을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적어 두었던 전화번호가 생각나서
뉴욕에서 공중전화로 LA 길거리 선교회라는 곳에 전화를 했더니

150p-숙식도 제공하고 일자리도 구해주고 한다기에 그말만 믿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LA로 가기로 했다
교회에서 하는 말이라고 지레짐작 하고 의심없이 간것같다
그래서 길거리 교회를 찻아 갔으나 도착 하니까 새벽이 었어
나는 돈을 아낄려고 우범지대 인대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LA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몇시간을 걸어서 걸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저기 물어 길을 헤매며 가다보니 말로만 듣던 UCLA 대학을 지나기도 한것같다 오랜시간 걸려서 적은 주소대로 찾아가보니
그러나 교회는 문이 닫혀 있어서
새벽 이라서그런가고 날이 새도록 그앞에서 기다렸는대
그러나 아침10시가 되도
인기척이 없었어 12시가 되도 히스패닉들만 보이고 한국사람은 보이지 않았어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오후 1시쯤인가 한국 남자둘이 버스를 타려고 서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 한테가서 길거리 선교교회가 왜 문이 안열리 냐고 물어보자
그 교회는 운영이 안되어 문을닫고 건물안에는 히스패닉들이 세들어 산대
그러면 전화받은 놈은 뭐야 나보고 오란건 뭐고
어떤 개자식이 날 엿먹일 려고 장난을 쳤네
무심코 엿못에 던진 돌맹이가 죄없는 개구리가 맞아죽을수 있다고
어떤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내가 생 고생을 하네
나는 아침부터 계속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어
이놈이 의도적으로 날 고생 시킬려고
일부러 그 먼거리를 오라 그래서 엿 먹이는 구만
지금 과거를 회상하여 되돌아 보면 그일도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 일식당에서
이윤형을 만나고 난후 벌어진 생고생 이었다 어떤 개자식이 전화상으로 나를 오라고 거짓말 했는지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나를 엿먹 일려고 더러운 모사를 꾸민게 아닌가 당시는 몰랐는데 지금은 생각이 든다
아스카 일식집에서 이윤형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일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의심 안하고 무작정 왔지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한국 사람들 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어디 일 할만한 곳이 없냐고 물어보자 모른다고 하는대 그러면서 나한테 10불을 주고
코리아타운을 가서 알아 보라고 그러데 그래서 코리아타운에 도착하자
어느덧 어두워 그 근처 서울공원에 노숙을 하고 그 다음날 일찍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를 사서 일자리를 알아 봤다
주로 중앙일보 보다는 한국일보 잡 란에 좋은 일자리가 많았다
라스베이가스 일식집에서
주방핼퍼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자 나이가 몆살이며 대충
간단히 몆가지를 물어 보더니 오전 11시 쯤에 다시 전화 하라고 해서
11시에 공중전화로 하니까
일하러 오라며 라스베이가스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도착 해서 전화하면 픽업 나온다고
그러는거야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생각하며 일하러 간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전화를 끊자 난감했다
라스베이가스 까지 갈려면 30 몇 불이 있어야 하는데
수중에는 5불이 전부인데 그래도 한인회 가서 사정 얘기를 하면
몆푼 안되니까 도와 주겠지
생각하고 한인회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자
영사관에 가면 도와 줄거니까 거기 한번 가보라고
한인들이 운영하는 콜 택시를 불러 주며 꽁짜 쿠폰 하나를 주네 그래서 나는 콜택시를 타고
영사관에 도착 하여 택시비는 쿠폰 을 주었다 도착하자 마자 얼른 영사관에 들이 닥쳐
사정 얘기를 하자 도와줄수 없다고 잡아 때네 그래서 영사 나오라고 떠드니까

151p-어떤 여자가 나오며 자신이 LA영사관 영사라고 얘기 하며 왜 그러냐고 묻길래
내 생각에 영사는 아닌것 같았다
내가 전후사정을 얘기 하자 도와 줄수 없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니들이 국민세금으로 잘먹고 살면서 자국민이
정작 곤경에 처했는데 본척 만척 하는 것들이라며
호통을 치고 영사관을 나왔다 그래도 무작정 그레이하운드로 가기로 했어
코리아 타운에서 그레이하운드 까지 걸어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인데
가면서 보이는 한인 가계나 교회는 전부들러 사정 얘기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는사람이 없었다
참 돈이 뭔지 나는그때 알았어 목사나 장로들이 전부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교회를 운영 한다고
물론 아닌사람도 만에 하나 있겠지 그러나 대부분이 그래
하나님이 뭔지도 모르고 씨불이는 놈들이지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종교도 거이가 돈과 권력에 의해 조종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넋두리를 하며 그 먼거리를 가방을 메고 걸어서
그레이하운드 까지 도착하자 내가 그동안 한국인 이라고 자부심을 갔고 애국 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한국인 인게 싫어지기 시작 했어
뉴욕 플러싱에 있을때 조선족들이 가르켜 줘 싼맞에 중국 민박에 잠시 있던 적도 있었는대
주인은 대만 사람 이란 애길 들은 기억도 난다 그런데 그곳은
돈이 없어도 무조건 일자리 잡을때 까지 숙소를 제공하고 식사를 제공한대
나중에 일자리 잡으면 그동안 밀린돈을 주면 된다고 하더라고
한인사회 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거는 한국 교회 라는곳의 목사들이 뉴욕의 대만 여관 주인만 못 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 중국인 들은 건물을 사도 많게는 수십명이 동업해서 사기도 한대
한국놈들은 가족끼리 동업해도 서로 싸우는대
그러니 한국 애들이 중국 애들을 이길수가 없다
맨하탄의 술집에서 한국에서 건달생활 하던 놈이 중국놈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자 주변의 중국놈들이 여럿이 달려 들어
한국인을 묵사발 만들고 도망갔다고 하는 얘길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주변에 한국인들도 많았는데
나는 버스티켓을 끊지 못해도
무작정 라스베이가스행 버스에 타려고 했는데 어짜피 이판사판이었어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레이하운드 운전기사 복을 입은 사람이 보이길래
코리안 이냐고 물어 보자 그렇다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전후 사정 얘기를 하며 라스베가스 가는
버스를 그냥 태워주면 안되냐고 사정하자
단번에 라스베이가스버스 티켓이 얼마나 돼냐고 물어보며 그돈을 주는게 아닌가
그리고 덤으로 20불을 더 주며 요기라도 하라며 주네 LA교회 10군데도 더돌아 다니며 사정 얘기를 했는데
1불하나 안줬는데 이양반은 나에게 이런 도움을 주다니
만약에그때 이사람의 도움을 못 받았다면 나는 어거지로 버스를 타다가 범죄자로
실형을 살다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을 텐데
그러면 인생에 만약이 있다면 그랬을 텐데 그러나 결국은
나는 무사히 라스베이가스에 도착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이라는게 있는대 시간과
공간에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틀리다고
각자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인 데도 다 입장이 틀린 거라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그것이 상대성 이론인대 이론에
의하면 타임머신 타고 미래나 과거로도 간대는데 그건 이론상일 뿐이고
뭐 아인슈타인은 회전하는 불랙홀만 시공간을 뚫는데 그게 웜홀 이래
그러나 불랙홀 근처를 지나가는 모든 물체는 빚 조차도 빠져 나갈수없이
중력에 의해 스파게티 처럼 되는데
그곳을 잘비행한 우주선은 불랙홀에 뚫린 시공간을 지름길로 통과하여
다른곳으로 심지어 과거나 미래로 까지 이동 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론이 있는데
불랙홀은 입구고 출구인 화이트홀이 아직 발견 된 적이 없다고 하여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뿐 이라고 한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잘 극복하면
우주선이 운좋게 웜홀을 통과 하듯이 더낳은 환경으로 바뀔수 있기를
또는 희박한 확률의 기적을 바라고 거이 안된다고 알면서도
웜홀로 들어간 우주선이 빠져 나가는 화이트홀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 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적을 바라고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구차한 인생을 이렇게 사는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
에디슨이 필라멘트 전구를 발견하기까지 2000 번 이상 실패 했다고 한다

웜홀이 운좋게 발견된다고 해도 모든게 끝난게 아니다 어쩌면 인류는 에디슨이 전구를 발견할때 보다 더많은 실패와 희생을 감내해야만
웜홀에 대해 좀더 알수 있을 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 세대의 몫으로 그렇게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한 그렇게 끊임없이 진보 하는건 좀더 나은 삶과 모르는걸 알고싶은 호기심과 더 이쁘고 섹시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더많은 돈과 권력을 차지 하려는 욕망 덕 일 것이다
인생의 무슨 희한한 장난인지 무사히 라스베이가스에 도착해서
식당에 전화 하니까 식당 주인이 픽업하러 왔어
저녁늣게 도착해서 숙소로 바로 갔는데 숙소는 일반 주택가로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수 있고
주변에는 풀장도 있고 핼스시설도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지옥에서 천당온 느낌이 었다
이 세상에 나 만큼 많이 여러 상황를 극에서 극으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것 같은 상황이 180도 자주 빠뀐 인생도 드물거야
식당은 아담한 일식 스시 전문집으로 식당 이름은 나리따 였다
경상도사람 주인 내외와 스시맨 둘과 주방에 3명이 있었다
그리고 홀에 출퇴근 하는 웨이츄레스가 있었던 것 같아
스시맨 둘은 미국 생활이 오래된 사람으로 출퇴근을 했고
식당에는 주방핼퍼 3명이 각자 독방을 쓰며 생활 했다 식당 주인 내외와 식당 종업들 일부는 겨울연가 드라마 비디오 테입이 한국에서 다음편이
미국에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며 드라마에 흠뻑 빠져 있네 당시 한국 드라마가 미국까지 올려면 일주일 걸렸는대 비디오는 주로 한국 식품점에서 대여했다
나는 그거 몇번보고 안 봤는데 식당 에서는 온통 겨울연가 얘기내
그리고 일주일후 다음편이 한국에서 오기만을 기다리네 여자들만 그런게 아니고
주인 남자와 식당에 있는 남자직원도 온통 겨울연가 얘기 뿐 이야
나는 인생이 하두 곡예와 같아서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다
해드 스시맨은 탤런트 박준규 비슷하게 닮았는데
나이는 40이 좀 넘은거 같고 20대때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스시를 배워서 스시경력이 상당 하다고 하는대 영어를 잘 하더라고
근데 스시맨이 주방 에다가 거시기 하면 새우튀김 같은걸 하나 기름에 튀겨 달라는 것이 었어
나중에 전라도 냐고 묻자 인천이래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후 거시기가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 라는걸 알았다
스시바에 대 다수가 미국백인 손님이 많은 편인데
쇼 맨십도 많고 영어로 미국 손님들을 들었다 놨다 하네
얼마나 웃기던지 스시바는 항상 시끄러 웠지 깔깔대는 미국 여자손님과
남자 손님에 둘러 싸여서 스시맨이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내고 북치는 흉내를 내고
큰소리로 영어로 뭘그렇게 떠드는지 아무튼 재미 있었어 나도
일식집 많이 돌아 다녀 봤는데 이 일식집 처럼 미국손님과 줄겁게 열광하듯 떠들면서
일하는 스맨은 처음봤지 항상 일이 끝나면 미국여자 손님 여럿과 어디로 놀러 가는지
같이 나가는대 그놈은 나이가 동갑인 친구를 스시 핼퍼로 썼는대
아무튼 그놈 때문에 식당이 장사가 잘 됐는지 사장은 스시맨 말이 라면 다 들어 주었어
그래서 그개 사장보다 더 지랄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참다 못해 반기를 들었지
그래서 스시맨 하고 대판 말로 싸웠다 그러자 스시맨이 사장에게 날 짜르지 않으면
지가 그만 둔다고 하네 당연히 내가 짤렸지 뉴욕으로 갈까 하다가
가까운 LA로 가기로 했지 라스베이가스 에서 버스로 5시간 밖에 안 걸리니까

LA에 도착 하자 민박집 부터 얻었어
민박집 주인 내외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으로 식사가 부페식으로
나왔는데 고기 상추 등 먹음직 스럽게 푸짐하게 잘 나왔어

나는 민박집을 얻자 마자 한일 월드컵을 중계 방송으로 보기 위해
내 방은 2층이었는데 방에있는 TV를 여기저기 만져 봤지만 TV가 고물 이라서 그런지
채널이 몇개 나오지 않았다
아래층에 주인집 에는 커다란 대형 TV가 있는데
위성으로 한국방송을 여러 채널을 중계로 볼수있기 때문에 2002년 한일월드컵을 한국방송으로 직접 볼수 있었지만
그래도 나혼자 방에서 조용히 볼수 있기를 바랬지
TV를 여기저기 만지다 보니까 다행이도 히스패닉 방송이 잡혔는데
2002년 월드컵 전경기를 생중계 했는데
한국이 폴란드 포루투칼을 이기고 16강 올라가는건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도 16강에서 이태리를 이길때는 정말 기적과 같은 감동이 들었는데
그 경기를 보면서
누구라도 그러 하듯이 한국이 이태리를 극적으로 이기듯
인생 에서도 그런 감동적인 순간을 바라며
인생역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건 누구나 인지상정이 아닌가
아무튼 한국의 기적은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이기고 4강까지 였고
나는 또길을 떠나기로 했지 먼저 LA 에서 차로 5-6시간 거리에 있는
켈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인것 같은데 그곳에서 한 일주일 미국 주택가 패인트 일을
도와주고 경비를 마련하여 다시 미국대륙 행단을 하여 미국동부 뉴욕 방향으로
그 먼길을 또 떠났다 나는 살기위해서
일자리를 구하려 미국 본토를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거이 안돌아 다닌데가 없을 정도로 돌아 다녀서 어떨땐
그래이하운드가 내 집같은 느낌이 들정도 였다
그래서 그레이하운드 운전기사 들도
나를 알아보고 일부 미국인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기사 중에 내가 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나타 나니까
나보고 ALLWAY CITI MAN STEER MAN 맨 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어
나도 내가 그렇게 떠돌아 다녀야 했나 후회도 해 봤지만
솔직히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었다
한곳에 정착해서 오래 있으면서 기술도 배우고 돈도벌고 영주권도 운좋게 따서 미국을 내나라 처럼 생각하고 살고 싶었는데 모든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당시만 해도 아직 젊어서 정신 못차리고 조금만 싫은 소릴 들어도 포기하고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다수는 내가 참고 일을하고 싶어도
여러가지 여건이 서로 안 맞은 경우가 많았다
뭐라고 설명할수 없는
아무튼 모든일 에는 다 장단점이 있을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떠돌아 다니면서
돈도 못벌고 그렇게 떠돌아 다니니
기술도 제대로 못 배우고 여자도 사귈 기회도 적어지고
사실 뭐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다 그당시 상황이
어쩔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다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마치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 백제를 차례로 정복하고 중국대륙을 과거 징키스칸의 원나라 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처럼 정복 했다면
지금 중국에 만주족 언어가 사라지듯 한글이 창제가 못됐을수도 있고 지금 한국인이 쓰는 한국말 자체가 만주어 신세처럼 전락되어

154p-
배달민족의 전통이 중국 한족에 흡수되어 사라질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당시 한곳에 정착하여 무난히 살았다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을 만나지 못했고
사건의 진실도 밝힐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듣도 보도못한 이런글도 나올 리가 없지
그래도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나에게도 만약에 과거로 시간 여행을 다시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무슨수를 써서라도 그때 미국에서 적당한 곳에 정착하여 살았으면 한국에 들어와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내가 한국에 들어와 이고생 하는것도 삼성가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보이지 않는 음모일 가능성이 크다는걸
시간이 지나 지금에야 뒤늣게 깨달았다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가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 한국에 들어올 일이 없이 미국에서 지금까지 살았을 것이다

꾹참고 한곳에 오래정착 해야
기술도 배우고 돈도벌고 인맥도 생기고 더나가 운좋게 여자도 생겨 가정도 생길수 있는데
이건 뭐 지금에 돌이켜 생각해 봐도 여기저기 미친놈 처럼 마구 잡이로 떠돌아 다닌게
후회스런 마음도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다닌곳 중에서 한곳에서만 참고 있었어도
지금 뭐가 되도 됐을텐대 그랬으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왜 그렇게 미친놈 처럼 떠돌아 다녔을까
그것은 더 나은곳을 찾아 내려는 나의호기심과 욕심도 한목을 했다는건 분명하다 더좋은 삶을 꿈꾸는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물론 일을 잘못해 쫏겨난 적도 있지만 좀더 나은곳 좀도 좋은것 좀도 이쁜여자가 있을것 같은곳을 찾기를 항상 마음속에 갈망하며
생각하고 있었던건 숨길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떠돌아 다닐때 나를 채용해 준곳은 몆 군데를 제외하고
한국 에서는 당시 내 처지에 꿈도 못꿀
적어도 나에게는 과분한 곳이 많았다 나는 그곳에서 더 일하고 싶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곳도 많았다 더 나은곳 더좋은 환경을 더 이쁜여자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기에
그 곳에 만족하며 있으려고 했던곳도 있었어 그런데도 나는 게임에서 지듯이
쫏기듯이 내뜻과 다르게 때론 자존심을 지키려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원인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
그중에 한 원인은 내자신에 있는것도 숨길수 없다
어느 곳이든 배수의 진을 치고 이게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일을하지 못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또 배수의 진을 친다고 해서 다 자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일이 마음 먹은 데로 다 된진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모여 운명을 만들수도 있다는 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개를 잡아먹는 한국이나 중국에선 잡아 먹을까 말까는 주인 의지에 달리듯 힘없는 한 개인의 운명은 촤상의 돈과 권력이 개입하면 독재 권력의 의지에 거이 좌지 우지 되는 것일수도 있다
시간을 돌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는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최선을다해 지금보다 더 노력 할것은 확실하다
왜 냐하면 내가 그 당시와 다르게 선택한게 그후 나에게 엄청난 고통스런 시간들이었다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절실히 당시 시간으로 만약에 다시 간다면 미국 에서의 당시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소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하고 개가 아무리 착하게 주인말을 들으며 아양을 부려도


나쁜 주인을 만나 잡아먹으려 마음먹거나 도살장에 팔려고 마음 먹으면 소용 없듯시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당시 생활 했어도 미국에서 살수 없게 만드는 당시 보이지않는 힘있는 세력의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에 미국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 숙식제공 하는 식당 혹은 공장같은 데도 심지어 대학교 기숙사도 어떤데는 독방이 아니곳도 있다고 하는 소릴 들은적이 있는데 내가 미국에서 그동안 수없이 거쳐 간곳은 거이가 숙식제공 하는 곳인데
전부 미국 주택에 독방에 차로 픽업까지 해주고 거이가 식당에서 온갖 좋은걸 먹고 또 매일매일 팁을 나에게도 나눠주는곳도 많았다
물론 극히 않좋은 곳도 있지만 그래도 그곳도 적어도 내가 경험한 곳중에는 한국의 환경보단 나았다


?

155p-미국과 한국이 종업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은 엄청나게 컸다
한국의 식당이나 공장에 종업원을 숙식시키는 곳은 더러운 열악한 환경에 한방에 여러명 집어 넣는 경우가 과거엔 많았다고 한다
사장이 돈을 조금더 쓰면 종업원 들에게 최소한 인간다운 자존심을 지킬수 있게 할텐데
그들은 종업원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미국의 애완견 개 만큼도 못한 환경을 그대로 방치하는 곳이 많았다
그렇게 돈 몆푼을 더 아껴서 지 자식에게 벤츠 사주고 서울 강남에 폼나게 살게 만들어 줘봐야
결국 조금만 어려워도
한국에서 명문 대학 출신이 좋은 직장 다니다가 퇴사하여 사정이 어려워 져 강남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가는게 쪽팔리다고 다 정리하면 5억 이상 돈이 생기는 놈이
지 처자식 다 죽이고 정작 지는 죽는게 겁나서 자살도 못하고 경찰에 잡히는 사건을 뉴스로 보고
돈을 쓸때 제대로 쓰는 인간들이 되길 바란다
미국의 식당은 손님이 식사 값의 10% 이상 팁을 내야 하는 문화인데 팁은 사장이 관여하지 않았고 종업원들 끼리 나눠 가졌는데 웨이츄레스 만이 갖는게 아니라
식당종업원 모두 매일 나눠 가졌는데 한국같으면 다는 아니 겠지만 다수가 사장이 다 뺏어 가겠지
물론 더많이 갖는사람 상대적으로 적게 갖는사람은 정해져 있어 나는 그냥 주는데로 받았다

나에게 팁을 주는 것 만도 고맙게 생각 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것의
장점은 여러 사람과 만나며 여러가지 경험을 접해봄으로써 무슨 여러가지 겪어보지 않은 가상현실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직접 경험을 하며 축적된 베이스가 남들 보다 더 많아 상대적으로 그런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때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 보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추리로 확률을 높일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여러 상황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보다 더 현실적 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좀더 향상 됐을뿐
근데 그 경험과 그로써 얻어지는 독특한 지혜는 한 분야를 10년 이상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전문기술자가 되는 지식이 아니라
돈을 버는데는 극히 도움이 안되는 그저 잡다한 경험으로 직접 체득한
여러가지 가상현실을 직접 경험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여 그 사람들 심정을 어느정도 공유할수 있다는 장점은
이 사회에서 어디 써먹을 때가 없다 뭐 정치를 한다 던가 뭐 그런데 좀 써먹을 텐데 누가 나같은 사람 정치 시켜 주겠어
정치를 하더라도 대통령같은 높은 자리에 앉자야
직접경험을 다양하게 하여 어려운 사람들 처지를 어느정도 공유할수 있고 제대로된 처방을 현실적으로 내릴수가 있어

그들을 위한 올바른 제도나 여러가지 도움을 주는 제대로된 처방으로 정치를 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처방은 지위가 높은 자리가 아니면 그런 생각을 시도조차 해볼수가 없는게 한국정치 현실이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공천 받기도 힘든게 한국 정치 현실이라
한국에선 자신의 주장을 소신 것 말 한다는게 정치 생명을 걸고 해야 하기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직장 생활 하는 사람도 마찬 가지 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해고된는 경우가 부지기 수다

그러니 눈치만 보고 아양만 딸수 밖에 없고 그런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실속을 챙기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머리가 좋고 처세가 좋다고 칭찬 받는 사회다


명문 의대를 아무리 좋은 성적으로 졸업 했다고 해도 10년이상 환자들을 직접 치료 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 만 못할 것 이다
아무튼 경험상 떠돌아 다니는 것은 세상 살아 가는데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금전적인 도움이 안되는 일이 었다
아무리 모든일 에는 다 장단점이 있는거 라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떠돌아 다니다가 터득한 지혜중에
한가지가 미국내 고속버스 노선 이다 LA에서 뉴욕 뉴욕에서 LA 방향으로
가는 버스노선은 3가지가 있는데 왜 이걸 알아야 하냐면
물론 영주권 이나 미국 시민권 등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는사람들은
알필요가 없어 그러나 미국의 불법체류 하는사람들은 꼭 알아야 돼
버스노선이 3가지가 있는데 먼저 LA 에서 출발하면 라스베이가스를 거쳐
콜로라도 덴버를 지나 오마하 를 지나 시카고 그리고 오하이오 클리블렌드
그리고 뉴욕맨하탄 으로 가는 노선이 있지 대표적인 정거장만 얘기 했을 뿐
그안에는 수많은 정거장을 또 지나야해 이 노선이 제일 안전해
불법체류자 검문이 거이 없어 그리고 2번째 노선은 LA 라스베이가스
덴버 켄자스시티 ST 루이스 인디아나폴리스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뉴왁을거쳐 뉴욕맨하탄으로 들어가야 이것도
비교적 안전한 노선 이야


156p-마지막으로 LA에서 아리조나 피닉스 뉴멕시코 알버쿠키 텍사스 달라스
알라바마 멤피스 조지아 아틀란타
노스케롤라이나 샬롯 버지니아 리치몬드 볼티모어 필라델피아로 해서
뉴욕맨하탄으로 오는 노선이 있다 이 노선은 특히 미국 남부
뉴멕시코주 알버쿠키나 와 텍사스지역 엘파소 을 지날때 멕시코 국경쪽 이라 수시로 국경 수비대가
불법체류자를 검문해서 잡아가지 국경수비대 애네들 한테 잡히면 거이가
추방이야 나도 불법체류자였을때 뉴멕시코 알버쿠키에 있는 사무라이 라는 일식집에
일을 하러 갔던적이 있지 그레이하운드 알버쿠키 터미널에 내려서
식당에 전화해서 픽업 나올때 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국경수비대 여러명이
터미널을 포위해서 마구잡이로 불법체류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아이디 검사 하여 잡아갔다 나는 운 좋게도 옷을 그당시 말끔하게 차려입고
검은색 썬그라스를 끼고 자연스럽게 있으니까
내가 합법적인 체류자인줄 알고 나보고 아이디 검사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이디 검사를 하지 않았어
미국의 뉴멕시코주 알버쿠키는 텍사스 옆이고 LA 하고 가까운 쪽이라
당시 뉴욕 윗쪽에 있던 내가 가기엔 상당히 먼곳이었다
지금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식당까지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3박4일
가까이 간 것 같다 이곳은 LA나 텍사스하고 가깝고 멕시코와 국경지역이 가까워 주로 텍사스 달라스나 LA쪽
한인 신문에 모집광고를 내는게 정상인데
뉴욕까지 광고를 내다니 나는 뉴욕에서 식당으로 일을하러 내려가다가
필라델피아 에서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차를 타러 대기하다가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 서로 말을 하다가 나와 같이 뉴멕시코주 알버쿠키
사무라이 일식집에 광고를 보고 일을 하러 가는 스시맨이었다
당시 나보다 나이가 두살인가 많았는데 말로는 미국 시민권자이며 미국해병대를 제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 1999년 가을철인가 보스톤에 오래된 건물의 쇼건이란 일식집에 잠시 일했는데
거기서도 스시맨으로 일한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사람이 짐이 많았다 나는 달랑 짐가방 하나라
같이 일하는 스시맨 이라고 그런지 알버쿠키 터미널에 내려 미국 해병대 마크가 찍힌 가방을 내가 들고 있을때
국경수비대가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주로 멕시코 국경을 밀입국해 넘어온 히스패닉 불법체류자 들을 검문하여 잡아가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들고 있던 OO7 가방 모양 인데 좀더 큰 시중에서 파는 흔한 가방이 아니고 미국 해병대를 제대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가방이라
나를 검문하지 않고 그대로 간게 아닌가 지금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 나도 잡혀 가는줄 알고 노심초사 하며 불안에 떨었던 적이 있었는대
만약에 그때 국경수비대에 잡혔다면 아마 나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총애 했다는 막내딸 이윤형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같이 절박한 마음으로 사방팔방 떠돌아 다니며 여러 경험을 직접 체득한 사람이
결코 흔하지 않다 그러니 나말고 세상의 진실을 밝힐 사람은 드물다고 봐야한다
절박한 경험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론과 체험은 진실을 알수가 없다
태조 이성계를 부추켜 조선건국의 실질적 일등공신의
정도전은 고려말에 2년간 유배를 떠나 백성들과 몸을 부딪치며 살게되는 경험으로
참으로 중요한걸 깨달았다고 한다 부모 잘맞나 책이나 죽어라 읽어 출세하는 선비들보다
세상과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백성들이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남부러울 것이 없는 한국 최고 재벌가 회장 막내딸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주려 했으며 스스로 자살을 선택 했다는 거짓유언비어 같은 소문이 이렇게 마치 누군가 거대한 세력을 이용해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퍼트리는 것 처럼 퍼지 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수십단계 거쳐 들은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 소문을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 처럼

떠들고 있을까
삼성그룹 오너는 커녕 삼성직원과도 만나지 못해 말을 섞을수 없는 내가
우연히 주어들은 소문의 실체를 확인할 길은 당시 도저히 없어 보였는데
그러나 인테넷 검색을 통해 당시 뉴스를 관심있게 살펴보니까

삼성회장 막내딸은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삼성에서 거짓말 한부분이 밝혀지자
다시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시체를 새벽3시에 처음발견 했다는 신수빈이란 사람과 결혼문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삼성의 공식적인 발표기사가 나왔는데 이런말도 안되는 소문이 퍼진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몹시 금금했어 내가 그 아가씨를 속으로 좋아한건 사실이니까 열 여자 마다할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아가씨는 뭔가 활달하게 행동하는것 같으면서도 슬퍼보이는뭔가 불안한 눈빚이
사연이 있어 보였다 과부 사정 홀애비가 이해 한다고 나도 이복형제 밑에서 어렵게 살아온 처지라 이윤형이 외향적인 성격 같으면서도 왠지 모를 근심과 사연이 있어 보이는 표정과 눈빛은
지금와 추리하면 이윤형 이가 삼성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가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닐수도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직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윤형은 홍라희가 나은 친딸이 아니라는 생각이들뿐이었다
당시 일식집 사장은 왜 그 아가씨를 나에게 데려다가 인사시켜 줬을까 지금와 추리 하면 의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새로온 종업원 이라고 인사시켜 준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츄레스 와 또 다른 여러 종업원 중에 유독 그 아가씨만 갑자기 스시바로 데려와 당시 켈리포니아 롤 을 정신없이 말고 있던 나에게 미스터 김이라 불러
날 부르는 소리에 얼굴을 들어 돌려 보게 만들어 내가 서 있는 쪽에서 왼쪽으로 홀에서 더 들어 가면 주방 이고 좌회전 하면 스시바로 들어오는 입구쪽에
사장이 이윤형을 데려와 있었는데 갑자기 일식당 사장이 시킨건지 이윤형이 안녕 하세요 하길래 이쁜 아가씨가 날 쳐다보며 인사 하길래 고맙고 이쁘고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네하고 말한 기억이
나는데 내가 그 식당에 일하러 온지 그 다음날 인가 그런일이 있었다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히 기억난다 뭔가 그 아가씨와 나를 엮기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가 돌이켜 보면 의문이 든다
죽은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은 회괴하게도 죽은 다음날 화장되어 청부살해 의혹의 결정적 증거를 찾을수 없게 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없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러한 사실들이 전부 팩트 인데 큰 뉴스 거리 임에도 불구하고 방송과 언론에서 거이 세인들이 알수 없게 너무도 조용히 덥어 버리며 외면 하는
막강한 삼성그룹의 인맥과 파워의 압력으로 한국이 운영되는 삼성공화국 이라 그럴 것이다 그러한 일들은 한국에서 어느기업도 어느세력도 흉내낼수 없는 삼성 만이 할수 있도록 그동안 은밀히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한국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 일 것이다

삼성이 만들면 뭔가 특별히 변한다는 광고 말처럼 말이다
이미 먼지처럼 흔적조차 없이 어디론가 살아지고 없는 부모님과
죽은 내 여동생의 슬픈 짧은 삶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내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듯
그러나 삼성그룹 회장 배다른 막내딸이 자살 했다는 건 너무도 의혹이 많아 진실을 파해치지 않을수 없도록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나에대한 은밀한 모함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그토록 감추기 위해 나를 치밀하게 은밀히 모함하여 누명 씌우려 지금도 노력하는 것일까
쉬는날 식당 직원들 전부 차에 태워 데려다가 어느 큰 공원 같은 데서 바베큐와 맥주 파티를 벌인 기억이 난다 그때 맥주 한켄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아스카 일식당 사장 내외는 보았을 것 이다
지금와- 돌이켜 글을쓰며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회상해 보면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을 회장이 특히 가장 총애하자
계모인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짜고 청부살해 하려고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이 들어 난다
이건희 회장이 가장총애 하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이 청부살해 되기 3년 전 부터

듣도보도 못한 떠돌이인 나를 삼성 비밀 조직의 레이다에 소문이 포착이 되어 은밀히 식당으로 오게 모든 세팅을 치밀히 하고 광고를 내어 나를 노스케롤라이나주 아스카 일식당을 계획적으로 차려 일하러 오게 만들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려 한 것은 이윤형은 한국 최고재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중에 가장 아끼던 자식이라 만나는 사람들 거이가 최 상류층 사람들이라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힘들자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윤형을 암살하기 위해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을 브러커를 여러단계를 거쳐 연결하여

이윤형을 암살한다는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며 공모하는데

일조하면 거금을 주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이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을 직접 만났을 리도 없다 브러커를 여러단계 거쳐 공모한 사건 이기에 이윤형 외삼촌이 양심선언을 한다고해도

이재용이 법적으로 처벌받는 증거는 거이 밝견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이윤형이 삼촌이라고 부른 아스카 일식당 사장 내외는 전남 출신으로 확인됐고

내가 식당에 오자마자

식당에 종업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이윤형을 나에게 직접 데려와 소개 까지
시켜 줘 양념을 치고 내가 느닷없이 식당을 그만두고 나가자
삼성의 거대한 비밀 조직을 이용해 미국 한인사회와 특히 미국 한인 유학생 사회에 삼성그룹 알바들에게 돈 쳐먹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날 못잊어 한다고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려 이윤형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암살할 적기를 끈기를 갖고 기다린 사이코페스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찻아 확인하기 전에 미국이 넓은 것 같아도 의외로 한인사회는 좁고

특히 불법체류자가 갈만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정해져 있고

한국인의 외모는 백인 흑인 히스페닉과 확연히 구분이되고

같은 동양계 라도 중국계와 일본계 와도 어느정도 구분이 되고 생활하는 커뮤니티가 틀려

한국에서 보다 의외로 쉽게 이건희 회장이 찻을수 있다고 판단한 의심많은 삼성그룹 오너일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나를 미국에서 생활 못하게 내가 가서 일할만한 곳에서 나를 채용 못하게 장난질을 친게 아니가 의심이 드는데
실제로 삼성그룹 회장 배다른 막내딸을 만나기 전에는 내가 어디를 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고 취직도 잘됐는데
삼성그룹 회장 배다른 막내딸을 만나고 난후 얼마후 부터 일자리 잡기가 힘들고 나를 오라 그러고는 아예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픽업도 안나오고
하는등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지금와 돌이켜 생각하면 막내딸을 만나기 전에는 그런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결정적으로 내가 신문광고를 보고 일하러 간 LA근교 식당사장이 한 3-4일 지나니까
나보고 술한잔 먹자고 해서 술을 먹는데 나는 술을 먹으면 얼굴이 빨개져 내얼굴이 빨개지자

사장이 나보고 가서 자라고 그래서 자러가는 순간에 사장 내외가 하는말이 내 귓전에 주어들었는데
전화가 왔는데 술을 먹이면 얼굴이 빨개지니까 금방알아 본다고 그랬다고 하는소릴 순간 주어들었는데
숙소 들어와서도 속으로 설마 나보고 한소리가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나와보니 사장이 내가 일한걸 계산해 주며 나를 해고 시켰다
나는 LA로 돌아 오면서도 어제 저녁에 사장 내외가 한 소리가 나를 지칭한 소리일 수도 있겠다

158p-생각이 들어 그럼누가 식당에 전화해서 나를 모함하며 해고 시키라며 별의별 이상한말로 조작한건 아닌가 전화로 나쁜놈이라고 누명씌워 술먹여 보면 얼굴 빨게지니까 확인해 보라고 지랄하면

귀찮게 진위여부를 확인도 거이 안하고

꺼름직해서 사장집 에서 숙식제공 하며 데리고 있을 사람이 거이 없어 당장 내보내는게 사람들의 기본 심리인 것이다
물론 전화나 여러가지로 모함하여 누명씌우려는 놈들이 과연 누구일까 당시에는 너무 황당하여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삼성에서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삼성이 아니면 누구에게 특별히 원한진 일이 없는데 그렇게 나의 위치추적 까지 하며

모함 하려는 조직은 없다 그래서 그후 여러 정황증거를 검토하여 합리적인 추리로 삼성 이란 결론은 확실해 보인다

사람의 심리란 누군가로 부터 같이일하는 사람을 파렴치범으로 모는 조작된 함담을 들어도 순간 믿지않더라도

데리고 일하기엔 께름직하여 해고하는게 다반사 일것이다
술먹으면 얼굴이 빨개진다고 까지
말한놈은 과연 누구일까 분노 했는데 이제는 배후가 삼성일꺼란 거야 그때는 누가 이다지도 집요하게

내가 취직한 식당을 어떻게 알고 나를 모함하는가 도저히 배후가 상상이 안가 당시에는 고심끝에 화교들 하고 크고 작은 말다툼 한적이 있어
그런게 아니가도 생각도 해보았지 또 뉴저지 한인 네일 협회 부회장 까지 지네며 유니언시티에서 럭키 네일가계 하던 이복 누나가
과거 2000년 하반기를 지난 9-10 월 쯤인가 ? 미국 엘라바마주 쇼건이란 일식집에 취직이 되어 일하러 갈때 아무의심없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는데
사장이 갑지가 해고 하면서 나에게 의미 심장한 말을 하며 뉴저지에 누나가 있냐고 묻자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되묻자 전화가 왔었데 왜 전화 했냐고 물어보자 그건 안가르쳐 주더라고
나도 해고 당하여 나가는 마당에 꼬치 꼬치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해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그게 전화질해서 별의별 험담을 조작하여 해고하게 만드건 아닌가 기분나빠 하며 엄청 딜레마에 빠진적이 있었는데

돌아와서 제일먼저 식당에 왜 전화를 했냐고 묻자 내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려고 했데
그럼 나를 바꿔 달라고 해야지 그러자 그랬는데 바로 끊었데 바꿔 주지않고 그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하냐며 나를 해고 하도록 뭔가 험담을 조작 하여 누명을 씌운건 아니냐고 묻자
그런말 한적 없다고 오리발 내미네 그러면서 전화받은 아가씨 목소리 허스키 하던데 혹시 나하고 잘아는 사이냐며 내가 그 아가씨와 사귀어 내인생이 잘풀리면 큰일 이라도 날것 처럼
지랄하네 당시 나는 직감적으로 저년이 전화질 해서 해고하게 뭔가 엄청난 험담을 조작하여 떠든게 확실해 보였지만
이미 해고된 상태에서 신경 써봐야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내 잘못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어딜가도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적이 없다
그러나 삼성그룹 오너들은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금방 위치추적하여 찾아내 모함하며 장난 칠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 지금와 돌이켜 추리를 해보면 삼성에서 나를 미국에서 못살도록 모함한 것은 내가 삼성에서 조직적으로 퍼트린 소문을 주어듣고
말도 안된다고 반박 하여 홍라희 이재용의 치밀한 음모에 찬물을 던질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윤형을 청부살해 하고 난후 교활하고 치밀한 계산으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일 3가지의 빠져 나갈 수를 만들었던 추잡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 들이
첫째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북한의 군부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반대하던 김양곤을 암살하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누명씌우듯 이윤형을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조작 음폐하여 덥는게 가장 편한방법인데 한국일보 신용일기자의 노력으로 홍라희 이재용이 뜻하지 않게 거짓말로 조작한게
들통 나자 두번째 신수빈을 좋아 하다 자살 했다고 뒤집어 씌워도 이건희가 신수빈을 알아 그럴리 없다고 불신하자 최후수단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한 마지막 히든카드로 치밀하게 미리 마련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쉽도록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 까지 끌여들여
아스카 일식집에 심어 놓은 홍라희 이재용 심복들이 이윤형 이가 죽기 3년 전에 나를 얼굴 한번보고 이윤형 이가 나를 좋아하여 못잊고 괴로워 했다고 나를 마치 하늘이 내린사람처럼 대단하게 포장하고 누명 씌운게
자연스럽게 이건희 회장 귀에 전달 되록 하여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찾아 진위여부를 확인할 까봐 미국이 땅은 넓지만 의외로 한인 사회는 좁고 한국인은 금방 튀가나 찾을수 있어
이건희 회장이 나를 못찻게 쫏아 보낼려고 치밀한 계산에 의한게 아닌가
결국 한국에 와서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교도소 에서 누명씌워 엮어 사회에 안내보내려 했는데 하느님의 도움으로 운좋게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물리치고
2007년 8월26일 당시 청송제2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서도 아직 배후를 삼성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 이라고 전혀 상상도 활수 없기전에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찾아 홍라희 이재용의 사기극임을 알기전에 나를 죽이려 했던 음모를 내가 천운으로 운좋게 제압하여 물리쳐 이렇게 진실을 세계 양심에 밝혀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이 다른 자식들과 달리 이건희 회장이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성격까지 빼닮고 화통한 성격에 똑똑하기 까지 하자 자식들 중에 가장총애 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수빈이라 아스카 일식당 사장이 부른 경호원을 가장한 킬러를 죽기 3년전 부터 따라 다니게 하여 동태를 보고 받고 청부살해할 기회를 보며 한편으론 이것들이 희생양으로 삶을 인간을 물색 하다가 무일푼 떠돌이인 내가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은밀히 뒷조사 까지 해보니 배운것도 별로없고 가진것도 없고 더구나 유사시 누군가 도와줄 사람도 인맥도 없다는게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엮기 쉽다고 판단한 것은
예를 들어 2014년 11월 경인가 터진 한국의 유명가수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사망했을시 일반인 같았으면
사인도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적당히 흐지부지 끝났을 사건을 신해철이 한국에서 유명 가수다 보니 사람들이 사인을 밝히려 노력하여 병원장을 과실치사로 기소하는 배경이 됐다는걸 세인들은 안다 힘없는 일반인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흐지부지 음폐하고 끝날 사건인것과 같은 이유로 홍라희 이재용이 나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엄청난 고통을 준것은 이윤형이 주로 만난사람들이 최상류층 사람들 이다 보니 밑바닥 인생을 낚시군이 미끼를 달아 낚시하여 물고기를 잡듯시

얼빵한 밑바닥 인생 희생양으로 낚아 누명 씌우려 일부러 노스케롤라이나에

아스카 일식당을 차려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에게 운영하도록 맡긴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이윤형 이가 나같은 유사시 누구 도움도 못받고 어렵게사는 밑바닥 인생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려 어거지로 만나게 하려 배후에서 홍라희 이재용의 거대 삼성 비밀조직이 세팅한 것이다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그동안 만나 거나 스친 사람이 거이가 최상류층 이다 보니 나같은 혈혈 단신 떠돌이 밑바닥 인생은 내가 유일 했을 것이니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려기 쉬운 나를

이윤형이가 만나게 하여 이윤형을 암살한이후 홍라희 이재용이 결국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이게 할려고

아스카 일식당을 일부러 차려 일하러 오게 세팅하여 누명씌운

정말 치밀하고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 쓰레기들인 것이다


한국의 TV 조선 종편 채널에 나오는 이봉규 김갑수 등 패널 들이 말한 내용은


(참고자료 -당시 재계 10위였던 선경그룹(현 SK그룹)의 장남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 노태우와 사돈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표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최태원과 노소영은 미국 시카고대학 유학 시절에 만나 결혼에 골인한 연애 결혼을 했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연애결혼의 만남마저 당사자들 몰래 계획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나를 아스카 일식당에 자연스럽게 오게 거대한 삼성 비밀조직이 세팅하고 유도하여
계속 광고를 내다가 내가 오하이오 데이톤 중국식당 에서 그만두고 뉴욕에 와서 멘하탄 32번가에서 한국신문을 사서 잡 광고란을 보자
바로 노스케롤라이나 일식당에 숙식 제공하는 스시핼퍼는 내가 찾던 일자리와 안성마춤 이라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내에 있던 도서관에서
신문에 난 일자리를 검토하고 근처 공중전화에 코인을넣어 전화하자 마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일하로 내려 오라고 하여
기쁜 마음에 이번에 스시를 제대로 한번배워 나도 당당한 스시맨으로 돈을 벌어 잘살아야 한다는 희망으로 급하게 수화기를 놓고 그레이 하운드를 타고
먼거리를 일하러 간적이 있다
당시 아스카 일식집 주방장이 내가 그만둔 오하이오 데이톤 중식당을 오픈 해준 사람 이라고 말해 나도 놀랐고 아스카 일식당도 차린지 얼마 안되는 식당갔았다 당시 주방장은 스시도 잘하고 주방일도 잘하는 전천후로 실력이 있어 오픈하는 식당이 어느정도 자리잡도록 해주는 전문가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이것들이 벌써 내가 데이톤 중식당에서 그만두게 세팅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어 다른사람의 전화는 미뤄두고 낚시에 걸리길 바라듯 내가 전화 하기만을 기다렸던건 아닐까 ?

당시 일식당 스시헬퍼는 선로 선호하는 직업이라 여기저기서 구인 전화과 많이 왔을텐데 비교적 나이가 많은 나를 선택하여 급히 내려오라고 전화로 말하고 나를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늣은 시간에 도착한 나를 직접 픽업한 것도 아스카 일식당 사장 이었다

야채 가계나 한식 중식 보단 일식이 일도 편하고 일하는 환경도 좋고 오는 손님들도 고급 스럽고
팁 문화가 발달한 미국 에서 매일 손님이 주는 팁을 배당 순위로 따져 사장은 관여안하고 종업원들만 나눠 갔는데 나도 받을수 있었고
좋은 기술인 스시를 배울수 있고 무엇보다 일식 스시집에서 일하는 웨이츄레스 중에

내가 사회에서 근처도 가볼수 없는 이쁜 여대생 들이 많아 나로선 어떻게 하나 낚아 장가갈수 없을까 하는 로또복권 1등 당첨을 바라는 기대 심리처럼 일식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일식집 스시 핼퍼 자리에 취직 하려고 전화가 여러 군데서 많이 왔으리라
판단된다 그런데도 사장은 나를 선택하여 내려 오라고 했다

내가 저녁 늣게 도착 하자마자 사장이 직접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터미널로 픽업와서 이미 영업이 끝나 문을 닫은 식당에 데려가
아스카란 식당의 이름에 대한 유례를 설명해 주며 숙소에 직접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식당에 이윤형 말고도 웨이츄레스가 여럿있고 종업원이 여럿 있는데도 사장이 직접 이윤형을 스시바에 데려와 갑자기 나에게 인사 시켜주어 이윤형이 안녕하세요 하길래
나는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한게 나와 이윤형의 처음이자 마직막 대화 였는데
그 모든게 이윤형과 나를 누명씌워 엮기 위한 바둑으로 치면 사전 포석 작전이 아닌가 추리 할수 있다
더욱이 몇칠 안지나 내가 미국에서 여러 식당을 전전 했지만 (아스카 일식당에서 그만두고 난후 광고를 보고 또다른 일식집에 일하러 간적이 있는데 그곳 사장은 좋아 하는 바다 낚시는 종업원 몇명과 함께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식당이름 쇼건이고 사우스케롤라이나 찰스턴 인가 일식당 주인과 간적은 있어도 )

아스카 일식당 처럼 식당문을 닫고 식당 종업원 전체를 야외 공원에다 데려가 바베큐 파티와 맥주와 술파티를 벌인 적은 아스카 식당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이런게 모두 우연이 아니라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하도 여기저기 돌아 다니니까 내가 가서 오래 있을라고 하는 곳은 해방을 놓아

해고 시키거나 스스로 나가게 만들어 언젠가 내가
비교적 조건이 좋은 아스카 일식당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하여 오는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 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이윤형의 만남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하는 노사연의 만남이란 노래 가사 처럼 정말 우연이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가능성이 크다 배후 세력이 이미 만남을 세팅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한국 최고 재벌을 넘어 세계적인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중 가장총애 하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과 무일푼 떠돌이인 이윤형보다 11살이나 더많은 나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만남으로 세팅하기 위해 배후에서 치밀하게 준비한 음모가 있는게 당연해 보이는 정황 증거였다 그렇게 그곳에 채 10 여일 만에 저녁에 일끝나고 숙소에서 주방장하고 말다툼을 하고 느닷없이 늣은 시간에 그만 둔적이 있다 지금와 곰곰히 생각하면 이윤형이 아스카 일식당 사장을 삼촌이라고 부른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일식당 사장이 이윤형의 외삼촌일 가능성이 있다

일식당 사장이 직접 자신의 고향이 전남이라고 말한 기억은 분명하다

그런데 주방장이 사장의 성씨가 박씨 라고 말한것 같은데

그후에 전남 해남 출신인가 육사 다니다 중퇴하고 가족과 같이 브라질로 이민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이 플러싱이 아닌 퀸즈 7전철역 부근에 있던 문닫기 일보 직전의 플러싱에 있는 월드 직업소개소 와 이름이 같은 소개소를 잠시 맡아 운영할때 내가 찻아가 직업을 고개 받으려다가 당장 마땅한 직업이 없자 일자리를 구할때 까지 월드 소개소 사무실에서 잠을 자게 허락 해주는등 나에게 여러 도움을 준 사람이 사람이 성씨가 박씨 였는데 그 사람 집과 부인은 뉴저지에서 네일가계를 운영 하는데 일본 국적과 캐나다 국적을 동시 갔고 있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젊은 아가씨와 바람이 났다고 부인과 이혼을 생각 중이란 사람인데

말하는 것도 점잖고 말투도 공손했는데 그 사람 성씨와 혼동이 되어서

아스카 일식당 사장이 박씨 인지는 정확한 기억은 아니데

당시 아스카 일식당 주방장이 일식당 사장이 아버지가 일본인과 혼혈 이라고 그러던데

그것은 나에게 혼동을 주기위해 주방장을 시켜 일부러 나에게 거짓말 했을 수도 있다

물이 일본말로 뭔지도 모르고 성씨가 분명이 한국 성씨 인걸로 아는데 말이다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윤형 생모가 전남 인데

전라도 무서워해 천억 안준다고 강아지도 안믿을 거짓말로 쇼를 하는것만 봐도 전형적인 홍라희 이재용의 손님 는 스타일을 봐도 이윤형 생모가 전남이 확실해 보인다

홍라희가 미국 원정출산 원조로 미국에서 태어난 장남 이재용 은 서울대학생 재학 중일때 국가대표로 아시아 승마대회 2위 한놈이 군면제는 기본으로 하고 그후 2013년 한국 최고부자 이재용 이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라며 그것도 성적 위조하여 지아들 국제영훈 중학교에 불법 입학 시켜도 조용히 넘어가는 삼성공화국

미국에서 빌게이츠가 사배자 라고 성적 위조 했으면 인생 끝났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아무리 미국 이라도 외삼촌이 운영하는 식당 이니까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총애 하는 막내딸 이윤형이 웨이츄레스를 한거지


이윤형이가 웨이추레스를 할리가 없다

영화 촬영 하기위해 세트를 만들듯 그렇게 아스카 식당을 만들고

목적달성을 하자

영화촬영이 끝나고 연기가 끝나면 세트를 철거 하듯

그와 같이 아스카 일식당을 다른사람에게 경영을 맡기거나 아니면 아예 처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윤형이 만나는 사람은 주로 최상류층으로 돈도많고 도아줄사람도 많아 희생양으로 엮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아스카 일식당을 만들어 어디서 얼빵한거 이윤형과 엮어

결국 그들의 목적은 이건희 회장을 속이려

무일푼 떠돌이인 나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우려 선택하여 은밀히 엮으려 했던 것이다


식당 주인이 전남 인게 확인 됐으니 이윤형 생모가 전남 이란건 당연하다
외삼촌 이란 놈이 홍라희 이재용과 공범이란 생각이 드는건
거듭 이해를 돕기위해 말하지만 미국에 아스카란 일식당을 차린것도 순전히 이윤형과 나를 만나게 계획적으로 세팅하기 위해 차린 정황이다 그런데 무일푼 떠돌이인 내가 일한지 얼마되지 않아 식당에 웨이츄레스도 이윤형 말고도 여럿되고 다른 종업원도 많은데 유독

이윤형 만을 데려다가 나에게 인사 시킨건 회괴 망칙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그 당시 오픈한지 얼마 안된것 같았어 외삼촌이란 일식당 사장이 이윤형 보고 와서 좀도와 달라고 하고 나를 미행하던 삼성비밀 조직이 내가 식당에 일하러 오게 유도하여 낚시꾼이 낚시에다 미끼를 놓아 물고기를 잡듯

이윤형 과 나를 어거지로 만나게 세팅하고 인사까지 시켜 이윤형이 나를 못잊어 한다는 거짓말을 조작

하여 미국의 한인사회 특히 유학생 사회에 은근히 거짓소문을 조직적으로 퍼트린 정황이 충분이 있다

그거 삼성공화국이 안퍼트리면 그런 소문이 그렇게 퍼질일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삼성알바들 돈줘서 조직적으로 퍼트린게 확실하다


그곳에서 10 여일 정도 짧게 일하다 저녁에 일 끝나고 숙소에서 주방장 하고 말다툼 하고

일한 것 주방장이 계산해 주고 저녁늣게 급히

주방장이 승용차로 터미널가지 데려다주어 그레이하운드타고 다시 뉴욕으로 온적이 있었다

그때 이윤형과 말도 거이 안했다 그런데 이윤형이 나를 못잊어 자살 했다고 누명씌워 나를 희생양으로 누명 씌운거야

이글을 이재용이가 읽는다면 아스카 일식당을 다시 인수하거나 만들어 영화촬영하며 연기하듯 세인들을 속이려 운영 할수도 있다 홍라희 이재용의 교활한 수법은 그렇게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은 이재용 에게 엄청난 거금을 쳐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후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이가 떠돌이 무일푼을 얼굴한번 보고 못잊어 한다는 등 거짓소문을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자신의 조직을 최대한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그때 부터 퍼트려 이윤형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이윤형을 청부살해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것 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결국 1997년 신라호텔에서 홍석현이 삼성X 파일 자작극을 만들어 8년후

공소시효가 끝나 삼성을 처벌할수 없는 시점에서 2005년7월 고의로 터트려 언론과 방송이 연일 이건희 회장을 씹어

자존심강한 이건희 회장을 정신없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1999년 수술받은 폐암이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타 에서 폐암치료를 받을때를 적기로 보고 당시 뉴욕대 유학중 이던

이윤형을 뉴욕시간2005년 11월19일 오전3시 이전에 암살하고 다음날 부검도 없이
타살흔적 지우려 화장하고 죽은지 3일만에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 등이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를 간단히 마치고 화장한 이윤형의 유해는 새벽에 몰래한국에 들여온다

마치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살 인걸 확인하고 장례식에 참석 안한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말 치밀하고 교활한 것들 입니다 이건희 회장 에게는 사실 모든것이 끝나고 난후 병세 악화를 위해 안알 렸다고 하고서

이미 상황이 다 끝난 상황에서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이 공모하여 벌였을 가능성을 두고 의심은 가지만 설마 하며 이윤형을 홍라희 이재용이 암살한게 진실이면 삼성이 망할수도 있어 소송을 할수도 없는 일이고
일단 부인과 자식들의 말을 믿는 수밖에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도 사람이니 의심은 했겠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 이윤형이 배다른 딸인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잘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만약에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이 공모하여 자신의 배다른 막내딸을 청부살해한게 세상에 밝혀지면 삼성은 중대한타격을 받을수 있다고 판단하여
설마 그럴리가 그러면서도 믿고싶지는 않겠지만 직감적으로 모든 정황이 의심이 가는건

인지상정인것은 어쩔수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앞뒤가 이상하다는 생각하면서도

홍라희 이재용이 주장하는 이윤형이 날 못잊어 자살했다는 거짓말을 어거지로 믿고싶었을 것이며

그것에 희망을 걸었을것이다

실력차가 너무커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 게임에서 기적 처럼 역전승을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이윤형이 죽자 마치 짜놓은 시나리오 처럼 이윤형 시체를 죽은 다음날 화장 처리하고 죽은지 3일만에 장례까지 비밀리에 마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뉴욕시간 2006년11월21일 기자들에게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삼성에서 말하자
뉴욕 한국일보 신용일 기자가 파해져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닌걸 확인하고 기사를 한국에 내려하자 삼성에서 압력을 행사하여 못내고 대신 기사를 뉴욕타임즈에 줘 11월26일 뉴욕시간 보도가 나간후 삼성에서 부랴부랴 다시 타살의혹을 자살로 둔갑시킨사건 미국에서 나를 어디서도 일을 못하게 방해하여 자금줄을 차단하여 말려죽여 한국으로 쫏아 보내려 했던
더럽고 교활한 수법을 지금 한국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나에게는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 자신들의 더러운 범행이 전세계 양심에 들어 나니까
못걸고 삼성가 오너들이 모든걸 조작하고 자금줄을 차단하여 말려 죽이려 하고있다

참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수많은 사람중에 왜 하필 네가 이런 음모에 걸려 이런 엄청난 고생을 하는가 무지게 너머에 살것같아
마치 요정처럼 이슬만 먹고 살것 같았던 삼성가 오너들 이라
그동안 나하고는 별천지 사람이라 생각이 들어 아무런 관심조차 없던 한국 최고재벌 삼성그룹오너 들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셋째이복형과 짜고 오히려 더 치사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음모를 꾸며

어려운 환경 에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며 되도록 진실되게 살아가려는 내 인생에

느닷없이 개입하여 나를 괴롭혀 더욱 힘들게 하고
하이에나 만도 못한 이복형 놈들에게 구세주가 되려 했던건 이 세상이

생각보단 훨씬 더러운 세상 이란 증거다
세상에 별의별 일이 다 일어 나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상식을 벗어난 일은 뭔가 문제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분명이 해야 한다
비상식적인 공사는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저 사고가 발생하여 수많은 무고한 불특정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여러증거 사례를 무수히 보았다
2014년과 2015년 년속으로 세계 브랜드 7위 기업으로 성장한

겔럭시 스마트폰 7 시리즈까지 출시한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그룹의 오너들의 비상식적인 거짓말과
이상한 행동은 한가지 진실을 숨기기위해 7개의 거짓말이 필요 하다는 영국 속담처럼 그들이 삼성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양을 청부살해한 것을 감추기위해 음폐 하려 어거지로 여러 거짓말을 만들어 내어 조직적으로 유포하는게
분명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9년 6월경 인터넷 검색으로 그동안 내가 영문도 모르고 당한 모함의 배후가 삼성회장이 가장총애 하던 막내딸 죽음과 관계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 전에는 누가 시비를 걸면 참지않고 성질대로 살았는데
내가 은근히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배후에 나를 음해 하려는 세력이 존재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과대망상을 하는건 아닐까 딜레마에

빠진적이 한두번이 아니 었는데 뜻하지 않게도 나의 불길한 예감이 사실로 실체가 들어나자

그 배후가 설마 한국 정부보다 막강한 실권을 행사 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목구멍이 포도청 이라고 돈의 힘으로 막강한 경제대통령 이라는 삼성그룹 오너 일가 홍라희 이재용 일줄이야 상상도 못했는데 저번징역은 천운으로 출소했지만

막강한 삼성공화국에서는
만약에 내가 사소한 폭행사건에 연류되어 구속되어 교도소에 다시 구속되면
공무집행 방해 교도관 폭행등 여러가지로 누명씌워 엮어 사회와 계속 격리 시키는 것은

삼성공화국에선 일도 아니다

혹은 아예 돈과권력으로 사주하여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에서 교도관들 시켜 죽이고 사고사나 자살로 누명씌우고 조작할수도 있다 는 생각이 들자 빨리 경비를 마련하여 외국에 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고 나 혼자서 상대할 적이 못된다고 생각이 들자

사소한 일에 엮여 구속되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성질을 죽이고 몸을 사리며
마치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을 사리게 된다는 말처럼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계심을 갖고 있던 셋째이복형 에게 의혹을 풀기 시작하며 셋째 이복형이
엄청난 거금을 들여서 까지 나에게 모함을 꾸미기엔 돈을 너무 아까와 하는 구두쇠고
조직도 없다 이런 음모극은 삼성공화국 같은 거대조직의 수많은 사람이 작당해야 하는데
한 개인이 흉내 내기엔 너무 부담이 큰일 이라고 생각이 들어
아무리 과거 원수지간 처럼 지내던 이복형제 지간 이라도 결국 일방적으로
당한건 돌아가신 어머니와 죽은 여동생 그리고 나이기 때문에
셋째 이복형 에게 추운겨울 돈도없고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형편에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 했다 그래도 완전 남 보단 났지 않을까?
사실 난 나이도 어느정도 있고 기술도 학벌도 돈도없는 더구나 전과자 라는 낙인이 찍혀 일자리를 찾는데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특히 증거를 발견할수없는 삼성그룹 오너들의
집요한 방해가 있기에 어쩔수 없이 셋째 이복형에게 추운겨울 이라도
어떻게 넘길수 있게 도움을 요청 하기로 한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막노동 일하는 일당용역직은 전과자인 나로서는 누군가 고의로 시비를 걸어 싸움을 걸면 상대방이 잘못이 있더라도
전과가 있다는 것 하나로 무조건 덤탱이를 뒤집어 쓰고 구속 될수 있기에 불이익을 당할수 밖에 없는 불리한 위치이다
2009년도 1월말 인가 2월경 쯤인가 서울 천호동 근방 어느 용역 사무실에 어느날 일을 하러 갔는데 용역사무실 사장이 어디선가 오는 전화를 받더니
나혼자 길건너 도로가에 서있으면 차가 오니까 타고가면 된다고 그래서 현장이 어디냐고 그러니까 서울근방 아파트 현장이라고그래서 당시 돈이 없어 일당용역이야 막노동일을 해주고 그날 일당을 받는거라
생활비를 마련 하려고 용역 사장이 시키는데로 도로가 에서 차를 기다리자 봉고차가 오는데 차에 타니까 앞좌석에 운전수와 조수석 합쳐 2명
그리고 7명 정도 도합 나까지약10명이 탄것같은데 처음엔 별 생각없이 타자마자

잠을 청하며 졸기시작 했는데
한참을 졸다 깨어보니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가는것 같았어 그러면서 순간 잠이 확 깨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울 근방 아파트 현장이라고 그랬는데

용역 사무실 사장도 처음 전화와서 거래하는 곳이라 잘모른다고 그러고


지금차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고속도로를 타고있고 순간 잠이 깨면서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서 주변을 관심을갖고 살펴보니 주변에 타고있는 놈들이 중국놈들 갔았는데
노가다꾼 처럼 보이진 않고 운동께나 한놈들 처럼 보이고 결정적으로 신발이 너무깨끗 했고 노가다꾼 들이 현장에서 신는 안전화는 아무도 신고 있지 않았어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노가다 하는 애들이 아니고 날 제거하기 위해 지금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다 근데 지금 이놈들 에게 그런 내색을 하면 안되겠다
생각하고 한참후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어느 산속으로 들어가려고 할때 하늘이 도왔는지
어떤놈이 오줌이 마렵다고 하자 처음엔 차를 안 세우려 하자 타고 가는놈 중에도
마침 오줌 마려운 놈이 있어 오줌누고 가자고 때를 쓰자 잠시 오줌을 누고 가기로 하고 차를 세운틈을 타 나도내려 모른척 하며 오줌을 누는척하고 산속을 도망쳐 온적이 있다
그후 로는 그 용역 사무실을 가지않고

암살되기 쉬운 노가다 보단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아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과 일하려 했던거야 그래서 그런 일자리를 찾다 비정규직으로 신세계 제3물류 센타에 2009년 5월 경에 들어가게 됐던거다
사실 경기도 이천 에서 벼룩시장 인가 교차로 정보지 인가 숙식제공하고 비정규직원을 모집한다는광고를 보고 전화 했는데
그게 신세계 제3 물류센타 인지는 처음엔 전혀 몰랐어
그곳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이와같이 설명한 거와 같이 신세계 제3 물류센터를 그만 두고 나와서 주로 서울에서 벼룩시장 구인광고를 보고 청소등 일자리를 여러번 면접을 보았지만
전부 취직이 안되어 할수없이 방세 낼 돈도 없고 그래서 경기도 하남시에 상추 비닐하우스 재배 농사를 크게 짓는 셋째 이복형을 찻아갔다 거긴엔 콘네이너 박스를 주거 형태로 게조하여
사용 했는데 외국노동자 주로 필리핀 노동자로 보였는데 그 사람들이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었고 셋째 이복형은 하남시 아이파크 아파트 에서 차로 출퇴근 하면서

무슨이유인지 주소는 컨테이너 박스로 되어 있었다는데
실제 컨테이너 박스는 셋째 이복형이 거주 하지는 않았다
컨테이너 박스로 기거할수 있는 공간이 3군데 있는데 두개는

두개는 반대인 ㄱ 모양 윗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셋째 이복형이 점심때 잠시 쉬는 공간이고 안에는 sbs. kbs .mbc등 세프로만 나오는 화면이 안좋은 대략 24인치 tv하나와
좌변식 수세식 화장실과

화장실 옆에 샤워실이 있었고 라면 등을 끊여 먹을수 있는 전기 히터 2개가 있고 냉장고 큰게 하나있고 싱크대가 설치대어 있고 전기밥솥도 있었다 제법넓은 대략 한3,5평 공간의 전기장판 시설이 되어있는 방에 커다란쇼파가있고 책상에 책꽃이에 장롱에 제법 있을건 다 있었다

반대인 ㄱ자의 밑에 부분과는 막혀있었는데 그곳에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거기서 대략 20m 떨어진곳에 일자로 된 콘테이너 박스가 한개 더있었는데 거기도 외국인노동자들이 거주하며
셋째 이복형이 운영하는 상추재배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있는것같은데
비닐하우스는 파.마늘 등도 있는것같은데 주로 상추재배를 하는것으로 파학 되며 동수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제법큰 비닐하우스가 20개가 넘는 걸로 보이며
반대인ㄱ자 윗부분에서 대략 50m 미만에 떨어진곳엔 말을 대여해주는 곳으로 보이는 곳도 있는데 그곳엔 여러마리 말이 있었지 외삼춘 말에 의하면 그곳땅도 이복형 땅으로 매달 대여비를 받는것으로 말했으며

그외에 세째이복형 비닐하우스 땅에 월세를 얻어 공장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뒤집어진ㄱ억자 약간 비스듬한 오른쪽 약 25m 방향에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또 있었는데 그곳은 경운기 등 여러가지 농사 기구를 모아 놓은 창고와 같은 역할이었다
특히 하남시에서 한강을 건너 있는 덕소를 마주보는 곳에 허클베리핀 이라는 라이브 카페가 있는데 그옆에 (리버) 라는 3층 짜리 라이브카페 건물 소유주는 셋째이복형으로 그곳 월세 만도 한달에 500만원이
넘는 다고 한다 이렇게 셋째 이복형이 월세만도 한달에 도합 천만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며 외삼촌과 첮째 이복형수는 말했다 비닐하우스 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들은 얼추 10여명이 넘어 보였으며 때론 부부지간에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있는 것 같았다 비닐 하우스에서 따는 상추 등은 거이 매일
가락동 농수산시장 이나 구리시 농수산시장 등에 셋째 이복형이 타이탄 트럭에 실어 배달 되었다
솔찍히 수입이 왠많한 조그만한 공장 보다 많은 알짜배기 수입을 올리는 곳이었다
나는 반대인 ㄱ자 위쪽의 콘테이너 박스가 비어 있는걸 알고
셋째 이복형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일자리 잡을 동안 잠시 머물것을 부탁하자

이상하게도 그동안 내가 오는것을 싫어하며 반대하던 충청도 출신의 셋째이복형수와 셋째이복형이 흔쾌이 허락 하여 있게 되었다
그 콘테이너 박스 문을 열고 나가면 외부로 나가기전에 약 20m 가까이 비닐하우스가 쳐저 있었는데
그곳은 내가 설치하거나 관리한 곳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일종에 정수장 같이 전선이 복잡하게 배열되어 있고 다른 비닐하우스 물을 자동으로 줄수있는 통제 장치 같은 시스템 같은게 있었다
2009년 8월쯤 인가 그곳에 잠시 기거 하면서도 낮에는 일자리를 알아보려 돌아다니며 저녁에 들렀을때
형수가 왠일로 방을 깨끗히 정돈하고 내빨래 까지 해놓고
밥까지 해놓은 경우가 있었다
어떨때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못보던 제법큰 뚜껑이 닫힌 냄비가 있어 뚜껑을 열어보니 대추 마늘인삼까지 넣어 삶아서 끊인 닭 한마리가 냄비에 들어 있어 마치 다시 끊여 먹으라는 듯이 냉장고에 들어 있게도 했다
뭔가 이들이 노리는게 있는게 아닌가 이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안하던 행동을 하니까 뭔가 노리고 그러는건지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성의있게 대접해준걸 내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과대망상으로 의심만 하는건 아닌지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2009년 5월경에 종로구청에 가서 여권을 발급받아
놓고 경비를 마련하여 외국으로 나가려고. 하자
종로구청 에서 내가 경찰청에 신원조회가. 걸려있어 여권이 발급이 중지되어
있다는 얘길듣고 확인해 보니
내가 2006년 12월26일서울서부지방법원 에서 여권법위반혐의로 검사가 약식기소 하여 벌금 30만원 나온걸 정식재판 청구하여 10만원 깍여 20만원 확정되어
그로부터 3년후인 2009년 12월26일 이후가 되어야 여권 발급이 가능 하다고 외교통상부 에서
전화통화로 말해서 셋째이복형에게 그 얘길하자 셋째이복형이 난데없이 여권이 나오면 얘기하라며
난데없이 외국 가는 경비를 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 소릴 듣고 긴가 민가 했다
왜 갑자기 확 바꼈을까 내가 인생이 불상 하니까 도와주려는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의 마음이 쉽게 안바뀌는데 뭔가 불길한 마음이 없던건 아니지만 무시했다
일단 이곳에 오래 머물곳은 못 된다고 생각하고 여주등 에서 일당 막노동을 하며 pc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지금쓰는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자지못해 너무 피곤하고 일당 벌은걸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pc방 이나 식당에 음식 사 먹는데 거이 다 써 돈을 벌 수 없어
수원에 방세가 아주싼 곳이 벼륙시장 광고에 나와 있는걸 보고 고시원 생활을 하기 시작 했는데
처음은 고시원 근방에 있는 일당잡부 용역 사무실 에서 막노동을 했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한번 당할뻔 한 봉고차 사건 이후
수원도 안전 하다고 볼수없어 안정적인 공장에 취직 하려고 노력 했는데
공장에 취직하는것도 나이가 있어 제한적 이며
전부 비정규직 이었는데도 9월인가 10월초쯤 인가
날짜는 정확히 생각 안나는데 벼륙시장을 보고 다음날 제지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가려고 하던
밤에 고시원 입구 계단 근처 에서 약간 올라온 옥상으로 올라 가기전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고 워커를 신은 검은모자를 썼는데 얼굴 생김새는 노동자처럼 보이지 않고 범상치 않게 생긴사람이 계단으로 걸어 올라 오면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훔짓 놀라며 고시원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계단을 계속타고 올라가며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던 나를 쓸적 치나쳐 옥상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런후 내가 고시원 안으로 들어가자 옥상에 올라갔던 놈도 다시 워카를 신은 신으로 계단을 황급히 밟으며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며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네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면서 곧 무시하고
고시원으로 들어와 잠을자고 다음날 전철을 타고 제지 공장을 찻아가서 면접을 보는데
그 공장은 특이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무실 들어가기 전에 노동자들 면접보는 공간이 있었는데 나는 사무실을 등지고 눈이 바같쪽 으로 향하고 면접관은 바같쪽문을 등지고
눈은 사무실 쪽으로 향하게 되어 면접을 보는데 갑자기 바깥쪽 문 유리 부분으로 어저께 저녁에 고시원 계단에서 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유리를 통해 안쪽을 쳐다보다 내눈과 마주치자
당황하며 그냥 가는게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하며 저놈은 어제 고시원 에서 본 놈인데 이게 무슨 일일까?
이게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고시원과 여기는 거리도 멀고 우연히 마주칠 확률은 아주 희박한데 가능성은 없는데 생각이 들어

164p-계속 밖을 쳐다보며 주시하자
마침 면접도 간단하게 끝나 면접관이 일하게 허락하여
나도 빨리 문을 열고 나오며 문밖에서 나를 감시하듯 쳐다본 놈을 찾으러 가보자 그놈은 무슨 캠핑 찝차 같은걸 타고 황급히 달아나는게
아닌가 나는 순간 저놈이 나를 계속 미행 한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저런차를 타고 다니는 놈이면 이런 공장에서 일할 놈이 아닌데
저놈이 여길 왜 왔지 저게 혹시 삼성그룹 에서 내 동태를 파학하기 위해 붙여놓은 하청을 준

킬러 비슷한 놈일 가능성이 있다
확실해 보였는데 이말을 누가 믿어 줄까
그러나 내가 겪은 이런 사실은 분명 진실임을 밝힌다
그렇지 않고는 미친놈 이라도 저런놈이 나를 따라다닐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핸드폰 으로 위취추적 하는건 세계적인 삼성전자를 계열사로 보유한 삼성그룹 오너들 에게는

쉬울 텐데 이렇게 미행까지 하다니 이상했다
그후 그제지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이들이 누군가 사주로 나를 내 보내려고 작당하여 모함 하여 일부로 일을 힘들게 시키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여
바로 그만둘 생각이 들어 화장실 에서 대변을 보는중에 공장직원 누군가 오줌누며 떠드는 소릴 우연히 주어 듣자니
다른 사람 같으면 천억 줄려고 했는데 호모라 천만원도 못 준다며 지들끼리 희희덕 거리며 떠드는 소리에
난 이곳에 생전 처음 왔는데 이 지랄들 하는 소리르를 주어듣고 이런데 까지 쫏아와 음모를 꾸민게 확실 하구나 생각이 들어 울화가 치밀 었지만
그러나 지금 내 처지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내 자신도 이게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법한
내가 진실로 현실에서 겪은 억울한 모함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도 누가 믿어주려 하겠는가
공장직원들이 천만원도 못준다며 지들끼리 희희덕 거리며 떠드는 소리는 뭔지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생각하며
말도 안하고 공장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고시원 으로 돌아왔다
그게 내가 당시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었다 그곳에 계속 있다간 나만 더러운 꼴을 보고
화가 난다고 난동을 부리면 쇠고랑 차고 난동 폭행죄로 구속만 될 뿐이다
그래서 벼륙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공장으로 가서 일하기로 하고
저녁에 고시원 다른방에 있는놈이 시끄럽게 떠들어
내가 좀 조용히 하라고 하자 말싸움이 시작 되어
몸싸움을 하자 이놈이 힘으로 나에게 밀리자 그놈과 친한 5명 이상이 달라 붙어 몸싸움을 한적이 있다

서로 주먹질 하고 싸우진 않고 멱살만 잡고 몸싸움과 욕만 했는데
고시원 총무가 말려 수습이 되어 끝난적이 있는데
고시원 총무는 경상도 출신으로 나이가 60 가까이 되어 보였으며 하는말에 국민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왔다며
교회 전도사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쉬며 고시원 총무를 하며 총신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며 얘기 한 적이 있는데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자신도 젊을때 서울 올라와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이렇게 집한칸 없이 어렵게 살고 있다고 솔찍히 자신의 처지를 말했다
사실 고시원 총무는 월급이 상당히 적고 생활 형편도 별로 안좋은것 같았어
다음날 다른 공장에 가서 일을 시작했어 첫날은 그냥 무난히 넘어 갔어
그런데 점심시간 직원 식당에서 밥을먹는데 좀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밥을 먹으려 차례로 여럿이서 줄을서서 있던놈 중에 한놈이 누군가와 대화하며 갑자기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을 지칭하며 미친년 이지 어떻게 저런놈 에게
사위감 으로알고 천억 주라고 하고 자살 했냐며 지들끼리 지랄하네
물론나는 그곳에서 이틀 있는동안 삼성그룹에 대하여 누구 에게도 말한적이 없는데도
저놈이 저런소리를 다른 놈에게 씨부리는건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계속 나에대한 동태를 감시 하는게 분명하며
가는곳 마다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165p- 삼성그룹.오너들 유리하게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는게 보이지 않는 분명한 증거였다
그렇지 않고는 처음보는 놈이 저런 황당한 거짓 유언비어 소리를 다른놈과 씨부릴 이유가 없는데
미친놈이 아니고 서는 저놈도 수십단계 거쳐서 삼성그룹.오너들이 퍼트린 찌라시 거짓 소문을 주어들은 것일뿐일.텐데 마치. 옆에서 직접보고 떠드는것.처럼 조작하여.진실을 왜곡하는 비상식의 극치를 보이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다음날 갑자기 직급이 높은.시림이 오더니 나에게 걸레 두개를 주더니 공장이 제법 큰 편인데 공장전체 기름기 있는걸 싹 제거 하래네
걸레로 딱는걸 시켜도 직접 일하는 주변만 딱으라고 그러지 공장 전체를 모두 딱으라는건
나보고 그만 두라는 얘기지 공장 전체가 오랬동안 제대로된 청소를 하지않아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나한테만 다 청소를 시키는건 이건 말이 안된다고 항의하자 비정규직 이라 나보고 그만.두라고 직접얘기 안하고 공장 직원이 비정규직 사무실에 전화 하자 비정규직 사무실 에서 나에게
핸드폰 문자로 해고 통지를 바로 받았다
그래서 그곳도 그만뒀다 이런일이 연속으로 터지자 이젠 공장에 면접보러 가는게 두려워 지며
공장에서 일하는게 엄두가 안나 더라고 무엇보다 내.주변에서.삼성그룹 오너들의 장난으로 그런.가능성이.놓후한데
처음보는 놈들이 지들끼리 일부러 수근거리며 나에대한 험담을.할때 나보고 그런거야며 따지면 분명 아니라고 그러고 그런걸 때려 잡을수도 없고 이렇게 야비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삼성가오너들이 최고의 흉악범이라 생각하니 숨순간 분노가 치밀며 참담했다 그렇다고 삼성가 오너들이 법적 증거도 발견할수 없고 아니면
생전 처음보는 놈들이 날 어떻게 알고 누가 시키것처럼 내뒤에서 험담을 한다는건 분명 음모가 있는 증거이다
배후가 분명이 존재하는 증거로 내가 돈을 못벌게 모함을 하는게 분명한데 보이지.않는 증거를 잡을수 없고
어떻게 대항해 볼수도 없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싸움
이런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넘기나
조직적인 음모로 일자리도 못 구하게하여 돈을 벌수 없게 말려 죽이려는 삼성가 오너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분명이 존재하지만 이걸 당해보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냐 이런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귀찮아서 신경도 안쓰고 그저 쉽게 정신분열증 환자로 취급해 버리겠지
왠지 셋째이복형이 운영하는 콘테이너 박스엔 찾아가면 안될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별일 없겠지
내가 너무 피해 의식에 쓸대없는 과대 망상을 하는건 아닌지
스스로 자책하며
그래도 남보단 났겠다 싶어 합리화를 시키고 어느덧
2009년 12월 초순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 지기시작 하여 일도 안보내고 돈도없고 하여
어쩔수없이 콘테이너 박스에 찾아가자 이상 하게도
과거 전남 순천교도소에서 새벽에 느닷없이 누명을 써 조사실에 갔을 때
이미 잘 게어진 이불이 있는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 했던적과 비슷한 상황처럼
마치 내가 올줄 미리 알았다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쌀도 한포대 있었고 닭한마리를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 놨다

내가 입던 옷들은 깨긋히 빨아서 잘정돈해 놨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나를 이곳에 못오게 닥달하던 충청도출신 셋째이복형수가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 하여 마음이 바뀐건가
약간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쓸데없이 과대망상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남의 도움을 의심하면 오던 복도 날아간다 싶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지나고 나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약간 불길한 기분이 들때
그곳을 떠나야 했었다
어짜피 하이에나 만도 못한 이복형들과 형수는 날 어떻하면 잡아먹을까 생각하는 것들인데
돈도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가 뜯어낼게 없으니 관심도 없던 것들인데

나하고는 상극인게 이미 확인됐고 성경에도 길이 아니면 가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내가 그곳에 찻아 가서는 안되는 일인대 너무 당시 상황이 어려워 잠시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지금와 되돌아 보면 첫째로 그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166p-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안한 느낌이 좀 들기도 했지만 설마 한국 최고그룹 삼성오너 들이 그런 저질 양아치와 그렇게 까지 짜고치는 고스톱을 칠꺼 라고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라도 상상이나 했겠나

아침이 되자 주변에 있던 썩은 자전거를 타고 하남시에 있는 인력 사무실에 일을 알아보려 다녔다
일이 매일 있는게 아니고 어쩌다 일을 하면

삼성비밀팀에서 나를 은밀히 미행하여 인력사무실에 돈을 쳐먹이고 덫을 쳐놓아 나에대한 거짓유언비어 험담을 은근히 퍼트려 뒤에서 수근수근하게 만들어 정신적으로 괴롭혀 서로 싸움을 하게 만들어 폭력사건에 엮기어 구속되게 함정을 파놓고
일도 내 보내지 않아 또다른 인력 사무실을 찾는 일이 반복되는 그런 피곤한 일의 연속 이었다
예를 들어 셋째이복형이 필리핀 노동자들 일시켜 상추등 야채를 대량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년중 수시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파는데 한국의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정도의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삼성그룹 오너들의 입김으로
아예 상인들이 셋째이복형 야채를 살수없게 고립시켜 버리면 그냥 말라 죽는거지 그리고 셋째이복형은 미치고 환장하며 왜 그러냐고
여기저기 항의해 봐야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똥개짓는 소리로 밖에 취급을 안하겠지 이런식으로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당한사람이 알게 모르게 세상에는 많다
일이 없을땐 콘테이너 박스에 쇼파에 누워 TV를 보며 지냈는데 셋째 이복형은 나보고 그냥 딴데 가지말고 있으래 그리고 여권 만들면 얘기하래 외국 가는 경비를 준다고 물론 이런 얘기를 했지만 다시한번 나에게 확인시켜 주네 이놈이 왜 이렇게 갑자기 나에 대한 태도가 바꼈을까 셋째이복형수는 어쩌다 몆칠만에 한번씩 비닐하우스에 일을 도와주려 승용차를 몰고왔다
그러던중 12월 중순쯤 인가 나는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쇼파에 누워 있는데 세째이복형과 세째형수가
주거용으로 개조한 콘테이너박스 창문밖 너머에서 둘이 얘기하는 소릴 우연히 주어 들었는데
다는 못듣고 내게 들리는 소리만 들어 정확한 내용 확인이 안되지만 첫째이복형 형과 둘째이복형이 세째 이복형에게 와서 부탁 하더래
나한테 돈좀 주라고 그러자 셋째 이복형수가 경기를
일르키며 절대 못준다고 따지자 콘테이너 박스 밖에서 떠드는 소리라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는 못듣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이 날 너무 좋아하다 죽었대 잖아 하면서 지들끼리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 소리는 또 순간 다른소음 때문인지 나는 무슨 소리인지 들을수가 없었는데 경기를 일으키는 셋째이복형수를 조용하게 만드는 소리였는데 들리지않아 확인이 되지 않았다
저놈이 왜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 얘기를 하는지 순간 이상하기도 했지만
당시 그런 소문을 거대한 세력이 조직적으로 찌라시 거짓 유언비어처럼 조직적으로 퍼트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들었기에
저놈도 어디서 주어 들었나 생각했지 사실 이런 말도 안되는 소문은 사람들이 잘 믿으려 하지않고 불신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런데 이번 거짓소문은 안 믿고 불신하면 마치 왕따가 되고 조직에서 도태가 될까봐 유행따라 삼천리라고 남들이 명품 신발과 명품가방 명풍옷을 잊고 뽑내니 똑같이 행동하려는 심리 처럼 거짓이 진실처럼.포장되어 퍼지는 모습을 보고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로 비상식적인 사회가 아닌가 과거 일제가 대한제국을 친일파들의 도움으로 너무도 손쉽게 한일합방을 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역시 친일파 들의 도움으로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독살하고 식혜먹고 30분후 자연사 했다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퍼트려
당시 너도나도 그말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믿었는데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과거 윤치영 선생이 고종이 식혜먹고 자연사 했다는건 말도 안되고 당시 독살된게 분명하다는 게
짤막하게 보도가 되도 그런 보도에 한국인 거이가 신경조차 쓰지않고 있는것처럼
삼성회장.막내딸 이윤형 이가 날 2002년 미국아스카란 식당에서 촞불같은 짧은 만남으로 얼굴한번보고.
못잊고 자살해서 삼성.오너들이 나에게 천억을 주려한다는 소문은 만에하나 소문이 맡다면 정말 로또복권 당첨보다 더 큰 행운이라
나를 은근히 설레이게도 했지만 나하고 말 한마디도. 제대로.안한 이윤형이가 그것도 3년 이상 못잊고 자살하면서 천억을 주라 했다는 소문을

167p-
액면.그대로 믿기엔 .뭔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가 이상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 소문이 맡기를 은근히 기대 했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그소문에 대한 불신이 더 많았기에 2009년6월경 신세계 제3물류센타를 그만두고 인터넷 검색으로
나를 그동안 괴롭.히던.배후가 삼성 일수.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모든정황상 홍라희가 이윤형의 생모가 아니라는걸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장난삼아 홍라희가 이윤형의 생모가 아니라 계모라고 단도 직입적으로 여러번 글을 올린적도 있지만. 2009년.당시도 삼성가에서 나에게 명예훼손소송을 걸지않았다
당시 까지도 여러 정황이 뭔가 섞연치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도 설마 청부살해하고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엮은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은 보류 하였다
정말 확률은 적지만 로또 복권 1등 당첨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윤형이가 날 좋아하다 자살한게 사실이길 은근히 바랬던 것도 사실이다

삼성그룹 오너 들이 설마 저런 양아치와 짜고 각서와 인감증명 조작사기를 칠거라고는 생각진 못했다
나는 속으로 이게 나에게 돈을 좀 주긴 줄려나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 나에게 돈을 줄놈이 아닌데 하면서도 크게 생각진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하남시 어떤 인력사무실에서 아침에 일당일을 나가는데 일시키는 사람들의 차에 동승해

서울 강남쪽 같은데 새로짓는 건축이 아니라 빌라축택 리모텔링 같은데
분명히 기억하는건 그근처에 원불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건 빌라인지 아파트인지 기억은 정확치는 않지만 한세대가 살수있는 공간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나혼자 한참 일을 하던중에 어떤 제법 고급 스럽게 옷을입고 치장한 여자가
내가 일하는곳으로 어떻게 알고 갑자기 들어오더니 나를 잠간 쳐다보더니 바로 얼굴을 돌리고 천천히 걸어 나가며 전화로 누군가 말을 하는데
윤형이 불상해서 어떻하니 여기서 노가다 하고있네 떠드네 근데 더 이상한건
그 여자가 2003년 11월경 미시건 렌싱 99스시 일식당에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거친 히스폐닉계 백인과 식당에 들어와 나를 쳐다보고
2004년 서울시청 앞에서 일당일 할때 시청으로 들어가는 그 여자와 얼굴을 마주보던 그 여자가 확실했다
그전에 두번까지는 우연으로 치부 할수도 있지만
내가 일하는 빌라주택 리모텔링 하는 공사현장 안에 까지 와서 확인하고 이상한 전화질까지 하는걸보고
이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돈많아 보이는 년이 나를 3번이나 따라 다니다니
그 당시에는 나는 참 순진하게 이윤형이가 정말 거짓말 처럼 날 얼굴 한번보고 3년간 못잊다 자살한게 사실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딜레마에 빠트려 그후 나를 고생하게 만드는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와 되돌아 보며 곰곰히 추리하면 그게다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의혹이 큰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등이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일려고 미국에서 부터 그들이 판단하기에 만만하고 희생양으로 엮어 누명씌우기 쉽다고 판단하고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날 얼굴한번 보고 사랑하여 떠난 나를 못잊는다고 거짓 소문을 조작하여 만들고 퍼트리기 위한

미리 짜놓은 시나리리오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후 또 12월말 쯤인가 1월초 쯤인가 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안보여 셋째 이복형에게 문의하려 찻아도 보이지 않자 주변의 필리핀 노동자 에게 물어보자 뒷쪽 여러개의 비닐하우스중 한곳을 지목하여 가르쳐 주기에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 가보니
비닐 하우스가 좀 큰 편이라 내가 문을열고 들어가도 알아채지
못하고 누군가와 마주보며 무슨얘길 하는것 같았는데 셋째 이복형과 같이 말하는사람은 뒤통수만 보이고 셋째 이복형 옆 얼굴이 보이기 시작 했는데 같이 말하는 사람은 상당히 젊어 보이는 사람 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20대 초반쯤으로 보인는 사람이 그게 될까 반문하자 바보라서 될꺼야
그러는 소릴 주어듣자
내가 다가가는걸 눈치챈 셋째 이복형이 갑자기 놀라며 날보고 무슨 일이야 물어 보길래
하남시 나갈려고 그러는데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안보인 다고 그러자
물품 보관하는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에 있다고 하여 다시 나가려

자세를 돌려 몇걸을 옮기는데 셋째 이복형이 날 부르더니 옆에 있는 애가 지 아들 이라며 가르쳐주자 그놈이 안녕 하세요 하길래 나는 직감적으로 어릴적 보고 처음보는 셋째 이복형의 아들인걸 알고 많이커서 못알아 보겠는데 하고 나온적이 있는데 저놈을 본게 약 1996년 11월 쯤 인가 13년 만에 처음보네 당시에는 리버 라이브 카페 맞은편에 현대식 단독주택 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셋째 이복형 가족이 살고 있었다

셋째 이복형은 자식이 둘인데 큰애가 여자애고 막내가 남자애 인데 첫째 여자애는 징역살때 셋째 이복형이 면회와서 숙명여대 물리학과에 장학금 받고 다닌다고 나에게 자랑한
계집애는 하와이 유학도 같다 왔다 그러고
1996년 11월경 어릴때 이후 본적이 없고 둘째가 지금본 남자놈 인데 이놈은
세종대 관광학과 다니다 괌에 어학연수 같다 왔데나 전부 자랑삼아 내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지 혼자 중얼거려 들은말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돈 벌어서 지자식 관리는 잘했는지 입은 옷은 명품 같아 보였고 잘 쳐먹여서 얼굴에 윤기가 반지르한게 고생하며 큰애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 의미 에서 첫째 이복형 자식들과 확연이 구별되네.
돈이 좋긴 좋구나 생각하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셋째이복형 놈이 바보라서 될꺼야 하는 소리가 나보고 한소리 같은데 그 소리가 귓가에 멤돌며 왠지 뭔가 음모를 꾸미려 그러는건 아닌지 더럽게.기분이 나쁘기도 했는데 전혀 감을 잡을수가 없어서 한편으론 내가 너무 쓸데없이 깊이 생각하나
생각이 들면서도 물어보면 나에대한 무슨 음모를 꾸미려는게 절대 아니 랄께 뻔하고
또 나보고 한 소리가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피해 의식에 사로 잡힌것은 아닐까
생각 하면서도 거듭 왠지모를 더럽게 기분이 나쁜 느낌이었다
그후 콘테이너 박스에 돌아와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모습은 보이지않고 목소리만 간간히 들리는데

셋째 이복형수가 언제 승용차를 몰고 왔는지 콘네이너 박스 창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는데

셋째 이복형 아들 놈이 내가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듣는줄 모르고 삼촌 그냥 줘 그러자

셋째이복형수가 몇억이 누구집 개 이름 이야
이 색끼야 그러며 지아들 보고 욕을하네
셋째 이복형 놈도 지 아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콘테이너 박스 창문 밖에서 들려
나는 혹시 셋째 이복형 아들이 내가 돈도없이 떠돌아 다니자
불상 하다고 몇억 주라고 그러자 구박 받는 소리가 아닐까
당시 어이 없게도 그렇게도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들의 대화가 다른의도로 그런건지 당시는 꿈에도 몰랐다
2009년 12월 말쯤인가 2010년 1월초 쯤인가 이번엔 종로구청이 셋째이복형에게 찾아가자 이번엔
나보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 오면 돈을 주겠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 비행기 티켓끊을 돈도없고 그냥 주면 내가 여행사에 가서 표를 사겠다고 하자
나보고 갑자기 각서 하나를 써달래
나는 그래도 이복형제 지간도 형제지간 인데 무슨 각서냐고 그랬더니 2003년도 4월에 나한테 주먹으로 맏고 호미로 폭행당한
일로 인해 일을못해 1억이상 손해 봤다고 갑자기 지랄하며
황당한 소리를 하는게 아닌가 누명뛰집어 씌우는것도 유분수이지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며 지랄이네 그전에 어릴때 지가 나에게 수없이 폭행한거 따지면 나는 10억이상 손해네 세월이지나 내가 커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폭행당한것도 지가 먼저 욕하고 주먹질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한테 욕까지 해서 빌미를 제공한게
셋째이복형인데 아직까지 앙금으로 기억하며
무슨 1억을 손해봤다고 뒤집어 씌우는지 이놈이 사람 잡을놈이라고 생각하며
붕대 쳐매고 하루만에 다시 일.했다고 들었는데
말도 안돼는 어거지소리를 하냐고 내가 따지자 그래도 1억이상 당시 손해봤다고 계속 뒤집어 씌우네


169p-그러더니 갑자기 셋째 이복형은 지 친구가 경찰이 있는데
경찰 입회하에 각서를 써주면 나에게 돈을 주겠다는 입장만 계속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 돈을 빌려줄수가 없다며지랄하는데
과거를 회상회 보면약 1982년쯤 인가 셋째이복형이 군에서 제대하여 당시 동네에서 우리집이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것을 하며 아버지 어머니 소유 땅에서
1983년초쯤 부터 비닐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비닐하우스 짓는데 강제동원 대어
비닐하우스 공사에 동원데다

셋째이복형놈 에게 쇠파이프 등으로 많이 구타를 당했다
당시 어린 중학생이던 나는 갑작스런 폭력에 저항하며 같이 싸웠지만 싸움에져 당할수 밖에 없었는데
비닐하우스 농사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슈퍼마켓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셋째 이복형은 비닐하우스 농사에 전념 하는데
개미상회는 대략 81년 초부터인가 다른 사람에 세를 주어 82년 셋째 이복형이 군에서 제대하자
다시 찾아 운영하다가 비닐하우스 농사가 자리를 잡자 개미상회는 다시 세을 주었는데
세를 얻어 개미상회를 운영하던 사람은 똑같은 사람 이었다
당시 우리집에서 슈퍼마켓을 세를 얻어 운영하던 사람은 그보다 몆년전에 타지에서
우리 동네로 이사온 목포출신으로 그사람 형과 형수를 따라 우리동네 왔는데
그 사람 형수가 골재 채취 현장 트럭 운전수 들에게 밥집을하며 돈을 벌었는데 한번은 이 사람이
자신의 형수를 욕을하며 싸운것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사실은 친 형제가 아니고 배다른 형제 지간이라고 한다 이사람 배다른 형과 형수가 충청도 여자를 소개해서 결혼을 시켜
우리집에 세를얻어 가계를 하는데 이사람 에게 시집온 충청도 여자는 인물이 형편 없었는데 계모 밑에서 자랐다1는 얘기를 어른들로 부터 당시 들었는데 이사람 처제는
지언니 보다는 인물이 좀 나아 보였지만 역시 인물은 별로였다

자라온 환경이 셋째이복형 놈과 비슷해서 서로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제주도로 어머니를 따라. 내려가 그후 한참후 올라와 보니 둘이 결혼해 애까지 낳았다
아무튼 그후로 세월이 많이 흘러 2003년 4월 세째 이복형과 식당에서 밥을먹고 나온후 차안에서 말.싸움이 시작되어 느닷없이 차를 서울 어디쯤 인가 세우더니 나를 내리라고 하더니
내가 어릴때 힘이약해 폭행.당했던 난줄알고 까불며
갑자기 주먹으로 나를 몇차례 때려 당황하던 내가 단한대 때렸는데

셋째이복형놈 눈 주위가 내 주먹에 맞아 찟어 지고 피가 나며 눈탱이가 밤탱이 처럼 퉁퉁 붓자
셋째이복형이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러 신고하여
잠시후 경찰이 오자 셋째이복형이 나에게 폭행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며 나를 구속 시키라고 지랄하자
나는 어이가 없어
경찰에게 나에게 주먹으로 먼저 때려 나는 방어 차원에서 한대 때렸다고 하자
경찰이 무슨 관계냐고 하여 이복 형제 라고 하자
쌍방 벌금 나올 거라고 경찰이 그러자 셋째 이복형 놈이 경찰보고 신고 취소 한다고 하니 경찰이 그냥 차를 타고 가버렸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다 있나
나는 어릴 때 수도없이 폭행 당해도 경찰에 신고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내가 커서 처음으로 나에게 폭행 당했다고 경찰에 나를 구속 시키려고 하다니 그것도 지가 먼저 주먹질해놓고
이런 더러운 놈들과 나와 어머니가 같이 한때 나마 살았으니 어머니가 화병으로 쓰러지셨지 그런데 갑자기 이놈이 무슨 생각인지
차를몰고 외삼촌 집에 갔는데 사실 외삼촌은 이모들과 달리 어머니와 친하지 않았어 당시 외삼촌은 비닐하우스를 주거 형태로 외숙모와 함께 계시었는데 원래 리버 라이브 카페 자리가 외삼촌 집터 였는데
팔고 하남시에 사십 몆평 짜리 큰 아파트를 구입 하였는데 그걸 아들에게 다 뺏끼고
지금 비닐 하우스를 주거용으로 게조하여 그곳에서 근근히 생활 하시었다

과거 어머니와 내가 제주도 누나에게 갈때 당시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던 집문서와 만평땅 다 팔아 먹고 500평 남은 땅을 84년 당시 7천만원에 팔어
셋째 이복형놈 에게 주고 돈을 몇푼 얻어 먹은게 외삼촌 이었다

그래서 셋째이복형 에게 당시 7천만원에 집과땅을 팔게 도움을 줬다고 돈도많이 받고 서로 죽이 맞는지
외삼촌과 셋째이복형은 겉으론 친한 사이 같이 보였다 이모들이 살아 계실때 외삼촌을 별로 안좋게 얘기 하는걸 자주 들었는데
외삼촌 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경상도 에서 당시 국민학교 저학년때 하남시로 올라 왔는데 당시 주경야독으로 천호상고를 야간으로 졸업하고
육군 일반 하사로 전역 했는데 어떻게 만났는지 고려대학교 농과 나온 아가씨와 연예를 하게 되자
아가씨 아버지가 당시 교장 선생 이란 소릴 어른들에게 주어 들은것 같은데 반대가 심하니까 지금 사촌형수가 집에서 도망나와
지금은 리버 라이브카페 가 당시 외삼촌 집이었는데

그곳에 있을때 나와 내또래 친구들이 도합 3명이 사촌 형수에게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ABCD 알파벳을 배우고 중학교 입학한 기억이 나는데 사촌 형수는 고려대를 나왔지만 얼굴은 못생긴 편이고 특히 이모들이나 어머니가 당시 배우긴 많이 배웠으나 버릇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여러번 들은 기억이 나내
정확힌 모르겠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고려대 나온 사촌형수가 사촌형을 가르쳐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여 사촌형은 당시 백차를 몰았다는 얘기를

삼촌과 외숙모를 통해 여러번 들은 기억이 나는데 사촌형수 집에서도 처음에는 사람 취급 안했는데 경찰이 되고
아파트도 장만하고 애도 3명 이나 낳고 하자 그제서야 사위대접을 한데나
그런대 외삼촌은 그잘난 아들과 며느리에게 하남시에 평수가 큰 아파트도 뺏끼고 이곳에 쫏겨 와서 사냐고 하자 아파트는 사촌형이 달라고 해서 줬대 삼촌껀대 왜 줬냐고 하니까 전부 삼촌 돈으로 산건 아니고 사촌형 돈도 좀 들어 갔데
사촌형은 서울에 아파트가 있다면서 삼촌돈이 더많이 들어갔다는데 왜 삼촌 아파트를 뺏어 갔는지
그리고 제법 먹고 살만 하면서도 자신의 부모를 이렇게 유기하듯 버려도 되는지 하면서 사촌형을 욕을하자 삼촌과 외숙모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그러지 마래 과거 삼촌한테 찾아 갈때마다
사촌형 욕을 하자 삼촌도 내가 오는걸 싫어 했다 아무튼 외삼촌 집에서
거기서 셋째 이복형이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께 욕을 하여 순간 화가 나서 주변에 있던 호미로 살짝 한대 때린게
셋재 이복형놈 머리에 맞은게 당시 바로 셋째 이복형놈이 119에 신고해서 병원에 간적이 있는데 나는 어릴적에 비닐하우스 짓는거 도와주다
셋째이복형 에게 쇠파이프 농기구 등 으로 일 못한다고
머리를 여러차례 맞아 피가나도 그냥 아까징끼 바르고 붕대로 감고 끝난적이 여러번 있다
당시에는 119도 신고하는 법도 몰랐고 그런생각 초차 할수 없었는데
그때 1억이상 손해를 봤다고 구라치는게 말이되냐
그때 상처도 크게 안났고 하루인가 이틀인가 지나서 바로 일을 시작 했다고 들은것 같았는데 무슨 일억을 손해 봤다고 지랄 하는지 입은 찟어져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저놈은 주둥이만 열면 구라를 치니

저놈 얼굴만 봐도 울화통이 터지네
당시는 일억 손해봤다고 말도안되는 구라를 치는 소리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겼는데
그후 시간이 지나 지금와 생각해 보면

의미 심장한 말뜻이 있을수 있음을 암시 한게 아닌가 ?
당시 그래서 내가 각서를 써주면 얼마를 줄껀데 그러자 500백만원을 빌려준데 5백만원 가지고 어디를 가냐
천만원도 부족한데 그랬더니
천만원은 못주고 칠백만원 주겠다고 그래서
이놈이 나에게 왠일로 자진해서 칠백이나 줄려고 하네 그거라도 주면 받자고 속으로 생각하고 그러자고 그랬더니
갑자기 나보고 인감증명 까지
달라고 그러잖아
나는 사실 가진 재산과 부동산이 없기에 인감에 대한 중요성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사실 나뿐 아니라 다수는 관심 분야나
알지 관심분야 아니면 모르는게 많아
근데 이놈이 왜 각서뿐 아니라 인감증명 까지 달라고 하지 생각하며 물어보자
나에게 돈을 빌려 주는데 꼭 값으라고 증거로 간직하기 위해서 란다
또 나중에 찾아와서 돈빌려 달랠 까봐 그런데 그래서
인감증명하고 각서를 가지고 있으면 내가 두번다시 돈발려 달라고 안할꺼라고 약속한 증거라고
또나중에 내가 돈빌려달라고 그럴까봐 마지막으로 빌려주는 거라고 약속하기 위해서
그런 거란다

171p-여러가지 생각이 뇌를 스쳐 갔다 혹시 재벌가 막내딸이 죽으면서 내게 상속했는데
셋째이복형을 시켜 그걸 뺏을려고 음모를 꾸미는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그러나 나하고 데이트는 커녕 말한마디도 제대로 안했는데 날 좋아하다 자살할 일도 없는데 상속까지 했다고 생각하는건 내가 과대 망상에
빠진 황당한 생각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 이었다
그렇게 까지 앞서 생각하는게 과대망상 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동사무소 가서 인감증명을 발급받아 와서 콘테이너 박스에서 각서 한장을 쓰고

첫째이복형 집에 가서 보여주고 콘테이너 박스로 와서 소주한병을 마시고 내일 아침에 셋째이복형에게
주고 돈을 받을려고 생각하며
TV를 보고 있는데 저녁에 느닷없이 셋째이복형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면서 처음보는 경찰관 한명과 세째이복형이 들이 닥치며
나에게 각서와 인감증명을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첫째형수 한테 전화받고 왔냐 그랬더니
아니란다 그럼 어떻게 알았지 지금와 돌이켜 생각하면 전화 안받았다는 셋째이복형놈 말을 믿는것 자체가 미친 짓거리 였다 나도 그 당시 술이 약간 취한 상태에서
미리 써놓은 각서와 인감증명을 줬더니 각서 내용은 2010년 1월12일 부로 돈 칠백만원을 받는데 꼭 값을 것이며
두번 다시 셋째이복형 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 인데 내 각서와 인감증명을 받자 셋째이복형이 옆에 있는 경찰관에게
주민번호도 써야 하냐고 묻자 써야 한다고 하며 무인도 찍어야 한다고하여
각서에 나보고 주민번호를 쓰고 무인도 찍으라고 하여 술이 취한 상태에서 주민번호를 쓰고 무인을 찍어 셋째이복형에게 주자
각서와 인감증명을 들고 가며 돈은 안 주자 왜 돈은 안주냐고 내가 묻자 돈은 내일 주겠단다
나는왠지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처럼 기분이 별로 안좋은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같이온 경찰과 같이 황급히 나가 버리면서 콘테이너 박스 창문 너머로 저색기 이건희가 100억 줄려고 했는데 말았다고 하며 같이온 경찰과 얘기하며 차에 타는소리를 주어듣고
나는 그 소릴를 주어듣고 찬물에 술이 확 깨듯시 정신이 들며 뭔가 있다 십어 황급히 각서와 인감증명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밖으로 나가 셋째이복형을 찾았지만
벌써차를 타고 가고 없었다
그리고 그 날밤은 정말 기분 안좋은 최악의 밤이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들고
저 색끼가 나가면서 이건희가 100억 줄려는데 말았다고 같이온 경찰에게 하는말이 컨테이너 박스 창문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주어듣고
순간 찬물을 뒤집어 쓰듯 정신이 확 들면서 술이 확 깨며 내가 각서 사기 당한게 아닌가 뭔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가
나보고 돈 몆백만원 빌려 주면서 각서와 인감증명을 달라는 것도 뭔가 석연찮고

설마 설마 했는데 재벌가 막내딸이 자살하면서 나에게 상속까지 했나 정말 그럴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데 이 세상에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 만약에 만에 하나 그렇다면 나는 일생일대에 큰 실수를 저지른게 아닐까
각서 사기를 당해 천억을 날린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그렇다 쳐도 셋째이복형놈이 내각서를 삼성그룹 오너들에게 브로커를 통해 넘기는 댓가로 몆억을 받아 쳐먹는 개같은 일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돼는데
그러나 나하고 말한디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상속까지 한다는건 도저히 있술수 없는일이다
그러나 저놈이 지 친구라며 경찰까지 데리고 와서 각서와 인감증명 까지 받아 가면서 이건희가 100억줄려다
말았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그 날밤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이걸까 저걸까 이미 저놈 손에 각서는 넘어갔어 내 무인까지 있는 저 각서를 재벌가로 넘겨 정교히 위조해서 상속재산 포기각서를 만들어
천억을 못받게 하기위해 셋째이복형 저놈을 이용해서 내각서를 가져가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물론 내일 저놈이 오면 각서를 돌려 달라고 해야지 그러나 내 예상이 맡다면 각서를 바로 안주고
시간을 끌겠지 각서를 컬러로 얼마든지 복사 할수도 있지 내 예상대로 저놈이 나온다면 게임은 끝났다
각서가 넘어가는 순간 다시 찾아오지 못해 게임은 끝났다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끼네 그래도 절대 그게 아니길 바랬어 그게 아니길
내가 잘못생각 하고 있기를 내가 망상을 생각하는 차라리 정신병자 미친놈 이길 바랬지

저 더러운 놈에게 이윤형이가 나를 좋아하다가 죽은 댓가로 몇억 챙기는 불상사는 절대 있으면

안된다는 강력한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생각하며 내 예상이 틀리길 간절히 바랬다

172p-한국최고 재벌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이가 뭐가 아쉬워 날 얼굴한번 쳐다보고 3년간 못잊다 자살해서 천억을 주려고 상속까지 했다는 만화영화 같은
스토리가 가당치도 않은 얘기지 그러나 만화영화 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은 스토리가 만약에 사실이면 더러운 놈이 각서를 넘기는 댓가로 최하 몇억을 받아 쳐먹을 텐데 재벌가 막내딸이 날 못잇어 자살한 댓가가 저놈과 저놈 형제들만 돈잔치 하게
생겼으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냐
천억이 아니라 일조를 못 받아도 상관 없다만 저놈이 나로 인해 몇억을 버는 횡재를
한다는건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정말로 나에겐 최악의 시나리오 였다
그런 일만은 절대 있어서는 아니대니 재벌가 막내딸이 날 못잇어 자살해서 나에게 천억을 주라고
상속 했다는 만화영화 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은 일은 반듯이 있어서는 아니 돼는데
소문과 분위기는 점점 현실화 되는것 같아
정말 말과 글로는 언표할수 없는 참담함에 전혀 뜻하지 않게 엮여 불랙홀에 빠져 들듯시 점점 빠져드는 느낌 이었다 뜬눈으로 거이 밤을 지새다 시피하여 그 다음날 아침 셋째이복형이 오길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평소보다 2시간 이상 늣게 오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아니나 다를까 태도가 돌변 하며 칠백도 줄수 없으며
4백만원 밖에 못 주겠다고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여 포로에게 말하듯시 당당하게 말하네
나는 그런 정황을 보고 한국최고 부자며 명문가 라고 지랄하는 삼성 오너들이 저런 더러운 생양아치

와 짜고 음모를 꾸민 증거가 아닐까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속으로 그게 사실 이라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 같았다
삼성가는 내가 포기한걸로 뒤집어 씌울게 뻔한거 아닌가 여기서 성질 난다고 저놈을 패고 사고 쳐봐야 삼성가와 저놈이 유도하던 방향으로
내가 스스로 가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하니
일단 받을건 받고 좀더 상황을 지켜보고 진위여부를 더 확실히 확인해야 하는건 아닌가
그러면 내가 쓴 각서를 사백으로 바꿔야 하니 다시 달라고 하자 다음날 같다
주겠다고 하여 기다려 다음날 각서를 달라고 하자 내 추리대로 깜빡 했다며 못가져 왔다고 구라치며 시간을 끄네
그런게 한 일주일간 이나 미루 더라고
저놈이 아이팍크 아파트 넓은 평수에 산다고 하는소리는 들었어도 어디사는 지도 모르고
그 사이에 나는 영국 런던행 비행기티켓을 예매 해놓은 상태였다
각서를 돌려 달라고 하자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일주일 만에 셋째이복형수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승용차를 타고 와서 각서를 들고 와서 내가 보려고 하자 내각서 내놓으라며
셋째형수가 쫏아오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컨테이너 박스로 오자 콘테이너 박스 안까지 쫏아와 각서 내놓으라며 지랄발광을 하는데
셋째이복형수가 여자라 때릴수도 없고 또 나보고 한대라도 때리면 여자폭행으로 고소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쌍욕을 하며 달려드는데 이게 뭔가 있는건 아닌가
정말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급하게 각서를 찟어 버리고 나중에 셍각해 보니 각서가 원본이 아니고 칼러 복사기로 복사한 복사본 일수도 있지 않은가 각서가 복사본 인지 원본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하도 각서를 다시 뺏으려고 형수가 자신에게 조금만 상처라도 나면 여성폭행으로 형사고소 하겠다며 미치년 처럼 달려들어 이미 전과가 있어 이번에 불미스런일에 역이면 더욱 골치아파
여자라 패지도 못하고 급하게 찟어 버렸는데
각서가 뭐가 그리 대단 하다고 다시 돌려 달라며 입에 개거품 물고 달려들까 점점 더 나의 더러운 예상이 현실화 되는것 같아 더욱 기분은 불안하고 기분 나빴다

또 한편으로는 그게 말이나 되냐 국내 최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이 뭐가 아쉬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날 못잊어 자살 했겠으며 특히
만약에 사위로 알고 주라고 상속을 했으면 그건 더욱 이상하며 더더욱 말이 안되는 일이잖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추리는 나의 과대 망상과 같은 생각일뿐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지금까지의 드러난 정황만 보더라도 더러운 나의 예상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후

(주) 탑항공 여행사 김현정씨 에게 출발일 2010년 1월20일 티켓번호 2203841684769 항공 루프트 한자(LH)승객명 KIM/SUNJIN MR

173p-요금1.117.700구입하여 영국 런던으로 가려다 2010년1월20일 당시에는 공항철도가 완공이 안되었는데 내가 그 생각을 못하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여 시간이 지체된 것도 있고 특히 당시 아침에는 안개가 너무껴
택시를 타고 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늣게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여행사에 문의하자 할인티켓이라 다시 갈려면 환불 받고 다시 티켓팅을 해야 한다고 하여(주) 편안탑 여행사 직원 김현정씨가 (주) 온라인투어와 상의해서
환불 수수료를 제외하고 환불된금액1.099.700원을 2010년 2월12일 안으로 환불시켜 주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어쩌면 안개가 낀 것도 원인은 아니고 내가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그날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망상 이라고 생각하면 서도
왠지 모르게 그 동안 정황이 예사롭지가 않은 의심이 들어 셋째이복형놈이 아니라고 완강이 부인하지만 나는 의심이 자꾸들어 딜레마에 빠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출발하는 당일날도 그런 딜레마에 제 정신이 아니어서 1997년 도쿄로 출국 할때와 199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갈때는 인천공국제공항이
생기지 않을때라
김포국제공항 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던적이 있어서 깜빡하고 김포공항 가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나중에 제 정신을 차리고 급히 지하철에서 나와 당시는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는 철도가 아직 완성되자 않았던 시절이라 택시를 잡고 인천공항으로 출발 했는데 그날 따라 안개가 엄청 많이 끼어
늣게 도착하여 런던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였다
그래서 공항에서 다시 돌아와 나중에 다시 가기로 하고 강원도로 가서 임시 일자리를 알아보자
아직 겨울이라 그런지 도통 일이 없어 강릉에 몇칠 있다가 다시 서울로 와서 연신내 전절역 부근의 고시원을 한달 방세를 내고
고시원과 좀 떨어져 있는 근처 용역사무실 에서 일당일을 찾으며 지내던중 일이적어 일주일에 겨우

하루나 이틀정도 밖에 일을 못하며 지내던중 2010년 2월8일
그날도 일이없어 어느 식당인지 모르지만 식당에서 밥과 소주를 시켜 먹으며 어느정도 술 기운이 있던 상태에서 여자둘이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옆 테이블 의자에 앉아 주문을 하여 식사를 하던중 수다를 떠는데 삼성회장 막내딸이 어느 듣도보도 못한 무일푼 떠돌이를 좋아하다 사위로 주라고 유언을 남기고 자살 했는데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찻아서 천억을 주려 했는데 이복형이 때려 죽인다고 하니까 천억 안 받겠다며 얼른 각서와 인감을 주더라고 천억 주기 싫었는데 잘됐다며
삼성가 오너들이 이복형에게 천억안 주게 만들어서 고맙다고
댓가로 몇억 줬다고 하며 킥킥 대며 떠드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까 갑자기 분노가 치밀며 내가 예상 하며 의심 했던게 사실처럼 들리는데


그후 밝혀진 사실 이지만 셋째이복형 놈은 내가 무서워 접근금지 가처분 까지 이미 정확한 날짜는 기억안나는데 2010년 1월25일에서 30일 전에 민사 법원에 이미 소장을 제출한 뒤였다


그런놈을 무서워 천억 안받겠다고 각서와 인감을 줬다는게 지나가는 개가 웃을 거짓말 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은근히 나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며 바람잡아
나를 손님 잡은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이 꾸민일이 아니가 강력히 의심이 드는데
이런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배후 세력의 음모를 처벌할 법적 증거를 밝견하는건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든 일인걸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배후일 가능성에 나는 100% 걸겠다
내 성질 돋구어 사고를 치게 하여 구속시킬 려고 음모를 꾸민게 아닌가
의심이 들지만 배후가 삼성그룹 오너들 이라는 법적 증거를 밝힌다는건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들 겠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듣기전 까지도 많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는데
여러 정황상 내가 각서사기를 당해 소문처럼 삼성 회장 막내딸이 날 못잇어 자살해서 천억을 상속한걸 날린게 아닌가 순간 술취한 기분에 화가 치솟는데
또 한편으론

174p-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데이트 한적도 없고 나하고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아스카란 일식집에 체 보름도 못 있었고 약 십여일 남짓정도 일하면서 우연히 얼굴 몆번 떨어진 거리에서 스치면서 쳐다본
촞불같은 짧은 만남을 가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이 그것도 3년간 이나 날 못잇다 가 사위로 주라고 자살 했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말이 안되는 모순이 많고 언어도단 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여 상당한 딜레마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삼성회장 막내딸이 회장 본부인 홍라희 친 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당시 딸이 죽자마자 그 다음날 화장 했고 또죽은 사인도 둔갑시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죽은 사인도 둔갑 시키려다가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기자의 당시 끈질긴 추적으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게 확인되자
그러한 사실을 한국 언론에 기사를 내려하자 삼성오너들의 방해로 기사를 못내고 대신 뉴욕타임즈에 소스를 줘
2005년 11월26일 자 뉴욕타임즈 보도후 삼성오너들이 부랴부랴 청부살해 의혹을 다시 자살로 둔갑시키는
가족의 사인을 두고 파렴치한 거짓말을 한 부분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해외언론에 이미 보도되어 이제와 조작할수 없기에 특히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에게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에 대한 강력한 청부살해 의혹이 자연스럽게 들게 만드는 아킬레스건 이라 하겠습니다
삼성그룹 오너들이 이러한 의혹을 감추기 위해 만만한 날 희생양 으로 누명씌워 엮어
날 호모로 누명씌워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이건희회장이 날찾아 홍라희 이재용의 거짓 유언비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하기전에
날 죽이려 했던 배후가 홍라희 이재용 이란 강력한 정황 증거도 확보했다
교도소 에서도 교도관들 시켜 날 엄청나게 괴롭힌 부분이
과연 이윤형이 친딸 같으면 친딸이 사랑했던 사람을 도저히 그런 더러운 짓 거리로 괴롭히지 못할 것 같아서 죽은 삼성 회장 막내딸이 회장 본부인 딸이 아닐 것 이라고 나는 처음부터 생각이 들었는데

또 홍라희가 낳은 친딸이 아니라는 말은 이미 이윤형이 죽기 전부터 드물게 있던 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생각이라 만에 하나 틀리고 정말로 내가 천억을 각서 사기를 당하여 날린건 아닌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들게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던 나를 술취한 상태에서 기름에 불을 부은 겪이 된것은
당시 식당에서 술취한 상태에서 두여자의 소리를 삼성가의 음모로 짜고친 시나리오로 듣게 된건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순간 이성을 잃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설마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내가 사기 당한건 아닌가 하는 불길하고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서 그동안 상당히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이런 회괴한 소릴 들으니 당시 상황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있으니까 정말 소문 처럼
날 못잇어 자살 하면서 나에게 사위로 알고 자신의 전부를 주라고 유언 했는데
내가 어리석게도 그걸 모르고 각서사기를 당해 천억을 날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확 일어나자
이대로 가만 있을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한번 셋째이복형 그놈을 찾아가서 확실히 물어 봐야 겠다
생각하고 또 홧김에 소주와 막걸리를 짬뽕으로 들이키자 술은 더 취하며
만에 하나 내가 천억을 날린게 사실이면 난 살 가치도 없다
생각하고 석유 반말과 낫을 사서 가방에 넣어 택시를 타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셋째이복형이 외국인 노동자를 부리며 일하는 비닐하우스로 찾아가자 깨끗한 옷차림의 키가 제법큰 어떤사람과 웃으면서 서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후 그 사람과 얘기가 끝나고 그 사람이 돌아가자 내가 이복형 에게 다가가 누구냐고 묻자 동사무소인지 어디서 왔다고 얼버브리 던데 어짜피 저놈말은 백프로 못믿어 나는 재차 물었다
나한테 사기쳐서 각서 받아서 삼성 오너에 넘기고 돈받아 챙기는건 아니냐고 묻자
말도 안된다며 나보고 정신이 이상한거 아니냐고 되묻기에 그러면 돈몇푼 되지도 않는거 빌려 주면서 그렇게 각서를 받을려고 노력한
것은 뭐냐고 물으며 각서 받기 전에는 칠백만원 준다고 그랬으면서 각서를 받고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고 사백만원 밖에 안준 이유가 뭐냐고 묻자
절대 그런게 아니고 내가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하는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전에도 말했듯시 셋째이복형은 거듭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단지 내가 두번다시 자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할때 빌려준것을 값지 않으면 안 빌려 줄려고
증거로 남길려고 했다고 계속 부인했다

175p-내가 각서를 돌려 달라고 했을때 이핑계 저핑계 대며 일주일이나 시간을 끌었냐고 하자
일이 바뻐서 딴 생각 하느라 깜빡 깜빡 하여 그렇게 늣게 준거라고 둘러 대며
부인하는 것 같은데 아니 방에 서랍에 있다는 각서를 하루도 아니고 누차 매일 내가 가져 오라고 강조 했는데 일주일이나 일부러 시간을 끌다가 가져온 배경이 분명히 있을텐데
이놈도 주둥아리만 열면 구라치는 놈이라 정말 신빙성이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소문처럼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이가 미국에서 말한마디 제대로 못한 날 얼굴 한번보고 3년이상 못잊다가 자살하면서 사위로 알고 주라고 상속 까지 했다는
소문이 비 상식적 이며 도저히 믿을수 없는 판타지 소설 보다 더 한내용 인데도 회괴 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확인도 없이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어 악의적으로 퍼지는 거짓소문을 보고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답이 없는 사회아다 돈없고 백없는 사람은 정말 살기 힘든 사회이다 삼성공화국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색끼가 분명히 거짓말 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많이 들지만 결정적인 증거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화통만 치미는데
그러나 확실한 증거도 없이 속단할수 만은 없는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나같은 사람을 약 십여일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주에 있던 아스카란 이름의 일식당에서 일하며 좀덜어진거리에서 우연히 얼굴한번 쳐다 봤다고 3년 이상이나 날 못잊다가
그것도 한국 최고 기업을 넘어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삼성회장이 자식중에 가장 아낀다는 언론 보도가 있던 막내딸이 나이가 11살이나 더 많은 무일푼 떠돌이인 날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얼굴 한번보고 못잊다가 3년 이상이
지난후 자살했다고 나를 찾아 천억을 주려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도 신빙성이 없지만 만약에 나에게 상속 했다면 더더욱 비상식 적인 일일 것이다
사실 삼성오너 들을 만나서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 무지개 너머 에서이슬만 먹고 살것같은 그들을 도저히 만날수 없을 뿐 아니라 삼성그룹직원은 커녕 비정규 직원도 만난적이 없는내가 직접 확인할 길은. 없다
셋째이복형 놈은 아주 교활한 놈이라 주변에 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랄 까봐
농협 통장 한개를 일부러 마이너스 1억 이상하는 농협통장을 만들고 다니며 돈빌려 달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돈이 없다고 구라 치는데 이것들은 콘테이너 박스에는 살지도 않으면서
주소는 콘테이너 박스로 왜 해놨는지도 이상해
누가 돈빌려 달라고 그럴까바 통장하나는 마이너스 만들어 들고다니며 보여주는 치밀하고 교활한 것들이지
이게 가진건 돈밖에 없으며 전국 사놓은 땅과 건물 합치면 100억대가 뭐예요 200억대가 가까이 될겁니다 라고 첫째 이복형 형수가 말한적이 있지 첮째이복형은 딸이 셋인데 인물도 없고 부보가 거지같이 살아 큰애가 당시30 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가고 있었다 셋째이복형과 첮째이복형 사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지들끼리는 친형제간 이라 정말 어려울땐 도아줄지도 모르지 세째이복형은 타이탄 트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딴 상추박스를 싫고 있는데 내가 술이 취한 상태에서 거듭 한번더 찾아가
나한테 각서사기를 쳐서 돈을 받고 재벌가 에 넘긴건 아니냐고 묻자 절대 그런적 없다고 부인하자 그러면 내가 각서를 돌려달라고 하자 이핑계 저핑계 되고 일주일만에
돌려주냐고 따지며 내각서에 무인이 찍혀 있으니 글자 몆개 위조해서 재벌가 막내딸이 혹시나에게 상속한 천억을 주지않기 나에게 사기 친건 아니냐고 따지자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며 일이 바쁘고 그래서
깜빡깜빡 잊어 먹어서 그랬다고 그러는데 그냥 나한테 돈빌려 주면서 내가 나중에 빌려준 돈을 값으라고 하는 증명으로 받은것 뿐이라고 강력히 부인하는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세째이복형은 상추를 다싫고 가락동 농수산 시장에 차를몰고 떠난후 나는 다시 술이 취한 상태로 콘테이너 박스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가계에서 소주2병과
맥주3병을 사와 혼자 나팔 불듯 또 마시며
이거 내가 천억을 날린것 같은데 정확히 밝힐 방법이 없어 그런대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내 자신에 너무 화가나 석유 반말을 콘테이너 박스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부쳐 불을 내고 가방에 있던 낫을 꺼내
자살하려고 마당에 나오자 외국인 노동자 들이 불이 났다고 뭐라고 떠들며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포크레인에 붙은 불을 그려고 필리핀 노동자로 보이는 놈이 오려다가
내가 낮을들고 있자 기겁을하고 도망을 갖다
나는 술이 많이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낫을 들고 팔당댐이 있는 방향으로
술에 만취해 기우둥 기우둥 걸으며 그곳에서 좀 벗어난 곳을 기우둥 걸으며 천천히 걸어가 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176p-불길이 높게 치솟는 모습과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좀 떨어진 곳에서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팔당댐 쪽으로 천천히 걷자 갑자기 앞쪽에 서너명의 경찰이 길을 막고 나를 쳐다보자 내가
낫을든 모습을 보고 경찰관들 여럿이 기겁을 하고 도망 가더니
약 50m가 안되는 걸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양쪽으로 길게 두고 다시 앞뒤 입구에 경찰관 들이 날 포이 했는대
숫자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모두 10명 가까이는 된것 같았다
사방팔방 경찰들이 나를 포히하여 그중 한명이 총을 들고 나를 겨냥하며 낫을 버리라고 안그러면 쏜다고 그러길래
나는 술에 취해 재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갑자기 전기총을 오른쪽 허벅지에 맞고
허벅지가 찐짜 총맞은 것처럼 엄청난 통증이
오면서 내가 쓰러지는데 꼼짝할수 없게 되버린 내몸을 형사 한명이 발로 내 몸을차고 주먹으로 내 오른 쪽 머리를 때리며 내팔을 뒤로하여 수갑을 채우고 여러명의 형사들이
개끌듯 끌고 차에 태웠는데 나를 때리고 수갑을 채운 형사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놈이 었지
그래서 어찌어찌 해서 하남시 경찰서 까지 왔는데 당시 까지만 해도 그곳은 유치장이 없어 조사를 마치면 경기도 광주경찰서 유치장 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형사가 말하며
나에대한 조사를 하는데 당시 술이 취한 상태에서 재벌가 막내딸이 날못잇어 자살하며 나에게 천억을 주라고 그런1것 같은데 내가 그걸 모르고 각서 사기를 당하여 천억을 날린것 같아서 셋째이복형 에게 찾아가서 따지자
셋째이복형은 그런적 없다고 그래서 순간 술취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불을 지르고 낫으로 자살하려다 경찰관 에게 전기총을 허벅지에 맞고 잡혔다고
떠들자 조사하는 형사는 무슨소린지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말만한다며 만약에 S재벌가 에서 문제를 삼을수도 있다고 나에게 형사가 협박하자
그말은 삼성그룹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걸수도 있다는 거였다
나에게 삼성그룹에서 각서사기를 쳤는지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십다며 상관없다며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십으니까
나는 사건이 일어난 정황이 내가 말한게 주내용 이라고 그걸 꾸밀수도 더할수도 없는게 아니냐 말하며 조사받았다
조사를 한참 받고 있는데 좀떨어져 있는곳에 앉아있던 계급이 높아 보이는 형사에게 느닷없이 전화 가오더니 전화 받는 형사가 각듯히 존칭을 써주는것 보니 상당히 높은데서 전화가 온것 같은데
어디서 왔는지 내가 확인할길은 없고 형사가 전화로 무슨 얘기를 주고 받는중에 전기총에 맞고 잡혔습니다
하는 소릴 들은것 같은데 그후 다친덴 없습니다 하는 소릴 들은 것같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 했다 정말 동화책 에도 없는 동화 보다도 더동화 같은 이야기라 유언비어 소문을 몆번 주어 듣고도 믿지를 않았는데
국내 최고 재벌인 삼성회장 막내딸이 떠돌이 무일푼인 날 우연히 미국 노스케롤 라이나 주 에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같이 십여일 같이 일하면서 우연히 얼굴 몆번 떨어진 거리에서 본걸로
3년 이상 날 못잊고 있다 자살하면서 날 사위로 생각하고 자신의 전부를 주라고 유언한 것을 난 설마 믿지 않고 있다고 삼성그룹 오너들이 브로커를 동원하여 주선하여 셋째이복형과 짜고 각서 사기를 당해
천억을 날리고 그 댓가로 나와 원수같은 셋째이복형놈만 몆억을 로또복권 당첨 되는것 처럼 버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진짜라고 생각하니
내 영혼을 짓밟고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가 일기 시작 했다
사실 지금도 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당시는 지금 보다더 훨씬 법을 잘 몰랐고 사실 지금도 법은 잘모른다 인감증명을 써본적이 없고 관심 분야가 아니라 인감증명의 용도에 대해 전혀 몰라 당시는 인감증명 보다 각서가 더 중요 한줄 알았던 바보 였다
네가 천억 아니라 일조를 안받아도 관계 없지만 셋째이복형 이놈이 삼성오너들이 삼성회장 막내딸이 목메 자살한 댓가로 나에게 각서사기 쳐주고 삼성으로 부터 몆억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천불이 나고
이것은 도저히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하며 셋째 이복형 이놈도 나쁜놈 이지만 이런 파렴치범을 이용해 나에게 이런 야비한 짓을 꾸민 삼성그룹 오너들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짓을 벌였다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더러운기분을 느끼는 당시 였다
그리고 셋째 이복형 아들이 그냥 삼촌줘 하자 지 셋째이복형과 형수가 지 아들에게 이샊끼가 몆억이 누구집 개 이름인줄 아냐고 한게 당시는 셋째이복형 아들이 나보고 도와주라고 혹시 그런건가 그래서 지아비와 에미에게 욕쳐 먹은건가 당시는 그렇게도 생각한적도 있는데 이런일이 벌어지자
나에게 각서사기를 치고 삼성그룹으로 부터 몇억을 받기로 한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셋째이복형 아들이 나에게 사기치지 말라고 하니까 삼성에서 받을 몇억이 누구집 애 이름인줄 아냐고 욕을하며 지랄한거 라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77p-
(참고자료-정신 분석학자 들에 의해 제시되는 죄책감과 수치심 의 비교연구에서 그이유를 헤아려 보자 에릭슨 은 죄책감과 수치심의 극명한 차이를 가장 효과적 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죄책감은
유아 혹은 아동의 청각적 경험이고 수치심은 시각적 경험 이라고 설명한다 즉 죄책감은 잘못을 행한 아이가 그벌로 발가 벗겨져 손을 들고 서 있을때 자신의 발가 벗은 몸을 보는 경험이다 무엇이 다를까
부모의 입장 에서는 단순히 잔소리 를 하는것 보다 따끔하게 남 앞에서 창피를
주는 등의 충격 요법을 쓰는것이 효과적 이라고 생각 할수도 있다 그러나 당하는 아이의 무의식에는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청각적인 죄책감의 경우 아이는
단순히 자신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 내가 왜 하지 말라는 일을 했을까 이일은 해서는 안될 일인가 매번 잔소리 를 하시니 말이야 등이다 그러나 시각적 수치심은 경험을 하는 아이들에게 는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자기자신 전반의 정체성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는 엄마에게 무엇인가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아이인가 그래서 나는 정말 쓸모 없는 놈이다 등
부정적 자아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아기에 이러한 수치심 경험을 수없이 한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부정적인 자의식을 가지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기자신을 해치거나 부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갖게 하는 대상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
-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 의학자 제임스 길리건 JAMES GILLIGAN 은 메사추세스 주의 형무소 에서 오랜기간 동안 살인을 비롯해

아주 치명적인 폭력을 범한 재소자 들의 범행 동기 를 밝히기 위해 심층 인터뷰와 연구를 실시했다 25년간 에 걸쳐서 연구한 결과 그는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아주 흡사한 정서적 경험을 한후에 순간적으로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 른다는 사실을 발견 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무의식적인 동기는 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원한이나 증오가 아니라 그들의 수치심 이었다 거의 모든 재소자 들이 기억하는 범죄의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무의식적 메세지는 이렇게 무시를 당하고 어떻게 살아 도저히 참을수 없어 대부분 체면 손상이 IOSS OF FACE 을 수없이 경험한 경우에 더이상 참을수 없게 된순간 이나
너마저 나를 창피하게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때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 한다는 것이다
폭력과 수치심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놀라운 사실은 폭력의 발단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대상에 대한 문제이기 보다는 수치심을 느끼는 개인 내면의
문제라는 점이다 주로 극단적인 폭력을 동반 하게 되는 병리적인 수치심은 왜곡된 자아상을 가지게한 성장 환경과 관련 되어 있다 수치심 이라는 정서는 한인간의 정서적 경험이 중요한 타인들에 의해 제대로 돌보아 지지 않을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수 있는지 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에릭슨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영아기 1단계 0-1세 에서 갖난 아이 는 보호자인 부모와 의 관계에서 신뢰감대 불신감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된다 영아가 처음으로 가지는 정서적 경험은 후에 그가 세상을 신뢰의 태도로 보느냐 아니면 불신의 태도로 보느냐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단계 유아기 의 자율성 대 회의감 3단계 유치기 의 주도성 대 죄책감 4단계 아동기의 근면성대 열등감 5단계 청소년기 정체성 대 정체성 혼미 6단계 청년기의 친밀성대 고립감 7단계 장년기의 생산성 대 침체감 그리고 8단계 노년기의 통합성대 절망감 등에서도 정서적 경험은 중요한 인격 발달의 척도가 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에서의 인간의 정서적 경험에 지나치게 집중한것과는 대조적으로 에릭슨은 의식의 측면에서 심리적 사회적 요구나 발달의 측면에서 그리고
보다 자율적으로 발달하는 자아의 측면 에서 인간의 정서적 경험을 다루고자 한다
도널드네이선스의 연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수치심은 아주 아릴때 부터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정서다
이것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정이나 사랑등을 기대했다가 거부당하는 뜻밖의 경험을 하고나서 느끼는 부가적 정서라는 점은 인간의 의식 배후에
대한 보다 진지한 관심을 촉발한다 한개인의 수치심은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만 기인하는 인과론적인 결과가 아닐수 있다는 말이다
그가 타인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졌는 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그기대와 다르게 진행되거나 거부되는 경험이
자신의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장큰 문제는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자기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이다

178p-자신에 대한 혼란 회의 무가치성에 시달리도록 낭떠러지로 떠미는 수치심 이라는 정서는 실로 위험한 정서로 탈바1꿈 되기 쉽다 심지어 수치심은 종종 자살이나 살인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

- 권수영 철학박사 심리학박사 -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출판사 책세상 출판연도 2006년-

하남 경찰서 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때 검거당시 전기총을 오른쪽 허벅지 부근에 맞고 쓰러져
여러명의 경찰에 검거됐지만 그 과정에서 특히 나를 주먹과 발로 차며 수갑을 채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형사놈이 처음엔 조사를 했는데 이번 사건에 아무 관련없는 지난 네째 이복형 살인미수 사건은 내가 징역 3년을 받고 출소하여 다끝난 사건인데
그 사건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와서 그 사건은 내가 징역을 받고 다끝난 사건을 왜자꾸 집요하게 물어보냐고 조사하는 형사 에게 따지자 자신도 누구한테 지시받은 것처럼 그러게 말이야 다끝난 사건 인데 하며 얼버무리다
당시 하남경찰서는 구조가 넓은 사무실 같은데 칸막이도 없이 돼있어 내가 조사 받는곳에서
좀 떨어져 있는곳에 계급이 높아 보이는 형사에게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후
날 조사하던 형사가 수도권 말씨를 쓰는 사람으로 교체대어 좀더 부드럽게 조사가 진행됐고 넷째 이복형과의 살인미수 사건은 그후론 물어보지 않았다
조사를 하는 중에 갑자기 셋째 이복형과 형수가 하남 경찰서에 들어와 내 죄명이 살인미수가 아닌걸 확인하고 날 살인미수로 엮어야 된다고 큰소리로 떠들며 내가 낫으로
셋째 이복형을 찌르려 했다고 거짓말 하며
날 살인미수로 조사해야 하는데 왜 빠졌냐고 큰 소리로 계속 형사들에게 따지며 지랄 하는데 계급이 높아 보이는 형사가 그건 당신들이 정하는게 아니고 경찰들이 조사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자
셋째 이복형수는 울고불고 날리를 치며 날 할아버지될 동안 밖에 내 보내면 안된다고
살인미수로 엮어야 한다고 셋째 이복형과 형수가 계속 개거품 물고 큰 소리로 떠들며 하남경찰서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형사들이 좀 조용히 하라고 진정 시키고 셋째이복형과 형수를 조사 하는데 내가 조사 받는곳과 어느정도 떨어져 있지만 분리된게 아니고
마치 커다란 사무실에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 조사 하는 것 처럼 내가 조사하는 모습을 떨어져서 볼수있었고
조사하는 내용을 내가 다. 들을수 있다는 우려로 그런건지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를 셋째이복형과 형수가 조사 받을때는 나는 조사를 하지않고
왼손 수갑은 그대로 두고 오른 손목에 찬 수갑을 풀어 더 뒷쪽인 창가쪽 쇠파이프에 걸어 났다 그런중에 창가밑에 마치 의자처럼 펼쳐진 대리석에 앉자 있었는데 특히 셋째 이복형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떠드는 소리에 내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을 천억을 노리고 최면을 걸어 죽였다고 자신에게 자백했다고 하는 거짓말을 형사에게 떠드는 소릴 얼핏 주어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 내용이 경찰 조서 내용에 들어 갔는지 안 들어 갔는 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런 소릴 주어들은 기억은 확실이 납니다
저놈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 형사에게 떠드는 건 저놈 혼자만의 거짓 진술로 꾸민게 아니라 삼성그룹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 들이 보낸 브로커 들의 배후 지시로 작당한 결과 물인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전에 내가 신세계 제3 불류센터 에서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날 짝사랑 하다 못잊어 사위로 알고 주라고 하면서 자살 했다는 소문을 주어들은 적이 있다고 섹째이복형에게 말한적이 있는데
그때 나보고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뭐가 아쉬워 날 못잇어 자살 했겠 냐며 나보고 미친것 아니냐며 정신병원 가보라고 조소한 적은 있습니다
나도 그말이 일리가 있다고 당시 생각하고
그래서 그후로는 그런 얘길 한적이 없는데 이런 내가 하지도 않은 얘길 누명 씌우려는 걸 보면 이것들이
삼성그룹 회장 본처와 장남등이 몇단계 거처 보낸 중간 브로커 들과 짜고 네게 각서 사기를 친게 사실이 아닌가 더욱 의심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후 나는 늣게까지 조사를 하다 경기도 광주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이 됐다
경기도 광주 경찰서는 외사촌형이 근무하던 경찰서 인데 내가 유치장에 수감중 일때는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어 다른 경찰서로 갔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계급이 경위라고 하던데
경기도 광주 경찰서로 하남 경찰서 형사가 한번더 찾아와 조사를 받고 그후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위해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성남지원에. 다녀온후 구속 영장이 발급되어

179p-2010년 2월12일 경기도. 수원지방 검찰청.성남지원에 이송되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내 담배를 몆개피를 피고
검찰청 대기실에서 대기하다 긴장된 상태에서 검사실에 들어 가자 마자 조사관이 쌍욕하며 나같은 흉악범은 사회와 완전히 격리 시켜 야 한다며 별의별 욕을 다하였지
검사는 서울 말씨를 쓰고 조사관은 전라남도 사투리를 쓰는데 경리같은 여자 직원도 좀떨어진 밖같.문쪽.으로 한명 있었다 조사는 조사관 에게 만 받았고 검사는 좀떨어져 있었지 수갑을 찬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관 이 완전이 누군가의 지시로 날벼르고 모욕을 주려고
계획하에 조사하는 것처럼 날.무시하고 막대.하는게 아닌가 저번에 살인미수로 조사 받을땐 서울북부지검 에서 조사 받았는데 그때도 조사관이 조사 했는데 그때는
존댓말로 부드럽게 조사 했는데 이번엔 마치 나하고 원수라도 진 것처럼 잔뜩 벼르고 있는 것처럼 조사하네 조사도 내가 충분히 내 의사를 전달할수 있게 조사 하는게 아니라 조사관이 자신들이 불리한것은 아예 조사 내용에
집어 넣지도 않고 검사나 조사관이 유리한 내용 쪽으로 유도 하며 조사 하기에
조사한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내가 한말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다시 타이핑을 쳐서 조사 내용에 집어 넣어 달라고 조사관에게 따지자 그렇게 할수 없고 볼펜을 줄테니 조사받은 내용을 볼펜으로 찍찍 긋고 그위에 무인을 찍고 그밑에 빈 공간에 볼펜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하기에
내 생각에 삼성회장 막내딸과 관련된 사건 이기에 검찰청 컴퓨터에 타이핑된 조사관이 마음대로 적은 내용이 그대로 외부로 전달되어 조사내용이 왜곡될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내 생각에
나는 그렇게 할수 없다
조사관이 잘못적은 것이니 책임지고 다시 조사 내용을 타이핑을 쳐서 뽑아 달라고 완강이 따지자
그럼 검사가 허락하면 그렇게 해줄테니 물어보라고 그래서
검사를 불러 자초 지정을 얘기하자
검사가 황당하게 쳐다 보며 나보고 진술한 내용을 왜 바꾸려냐 그래서 문제는 내가 진술한 내용이 아닌데
조사관이 마음대로 적은걸 바꾸는건 당연한거 아니냐며 검사에게 따지며 타이핑을 세로 쳐서 진술서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정정해 새로 작성해 달라고 요구하며
안그려면 무인을 찍을수 없다고 하자
그렇게 할수 없고 볼펜으로 틀린부분을 지우고 밑에다 하고싶은 말을 쓰라고 하네

그래서 내가 틀린부분을 새로 작성해 달라고 완강이 따지자

그렇게 해줄수 없다며 검사가 그럼조사 안받고 그대로 갈거냐고

그렇게 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후회하지 말라며 은근히 겁을 주네


내가 여기서 계속 우기며 조사를 안받고 그냥가면 검사가 나중에 다시불러
죄명을 살인미수로 바꾸면 골치아프고 나에게는 엄청난 손해야
무소불위에 권력을 자랑하는 검사에게 여기서 한발 물러나야 겠다 생각 하는데
검사가 갑자기 그전에 조사 받은
사람중에 볼펜으로 수정한 다른 사람 조사서를 나에게 보여 주며 이렇게 볼펜으로 수정하라고 그래서
내가 여기서 계속 우기며 조사를 안받고 그냥 가면 검사가 나중에 다시 불러

엿장수 마음 이라고 검사가 마음을 바꿔
죄명을 살인미수로 바꾸고 기소 형량을 올리면 나에게는 엄청난 손해야
재판을 앞두고 조사받는 사람에겐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검사에게 여기서 어쩔수없이 한발 물러나는게 순리인것 같았다

나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볼펜으로 많은 부분을 수정하였다
근데 수갑을 차고 있어서 제대로 볼펜으로 적을수가 없네 글좀쓰게 수갑 좀 풀어주면 안돼냐고 했더니
거절 하더라고 그중에 내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을 정신적으로 사랑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진실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과는 데이트는 물론 말한마디 제대로 한적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 사귄적이 없다
그러나 당시 이상하게 아스카 일식당 사장이 그 아가씨를 스시바 입구까지 데려와 스시바에서 켈리포니아 롤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나를 새로 일하러온 종업원 이라며 그 아가씨 에게 인사시켜 준적은 있다 당시 그 웨이츄레스 하는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하길래 쑥스러워 하며 네하고
대답 한적이 있는데 당시 그 아가씨 눈빛이 뭔지 모르게 겉으론 활달한 모습을 보이지만

근심이 있는 그런 느낌이 랄까?

뭔지 슬픔을 감추는 사연 있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

뭔가 그 모습이 독특해 보이며 이쁘게 생긴것 같아

남자가 열여자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속으론 은근히 좋아 했는데 그후

내가 오래되어 정확한 날짜는 기억안나지만 채 대략 열흘 이나 됐을까 촛불같은 적은 짧은 시간 내가 그 식당에서 알하여 별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

주로 당시 수빈이라고 일식당 사장 내외가 부르던 웨이터와 윤형아 라고 부르던 그 아가씨가 많이 대화 한걸로 기억하며

식당주인을 삼춘이라고 부른 기억이 어렴픗이 난다
식당주인 내외가 수빈이라 부른 웨이터는 그 아가씨 보단 나이가 몆살 더 먹어 보이며 원래 웨이터로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 키가 아주 큰 것은 아닌데 제법 커보이며
마치 운동선수 처럼 요즘소위 말하는 꽃미남 아이돌 스타일은 아니었다 양복을 입고 다녔는데 걸음걸이며 행동이 서비스 직업에 종사 했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웨이터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금와 되돌아보면 그놈이 아마 경호원을 가장한 킬러가 아닌가 의혹이 든다

내가 당시 속으로 그 아가씨를 속으로 짝 사랑 한것은 맞기에 정신적으로 사랑했다고 적은것은 거짓말이 아냐 난 사실 대로 적었다 서로 사랑했다 거나 데이트 하며 사겼다고 그랬다면 그것은 거짓말 이겠지만

( 그후 출소하여 검사 이름 검색했더니 전남 순천고등 학교 출신이었다 )


?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성동구치소에 이송되기 전에 이송버스 에서 경찰들에게 마지막으로 담배 한개피를 피게 해달라고 누군가 부탁하자 경찰이 거부하고 이송 버스는
서울 성동구치소로 와서 교도관에게 인계되어 절차를 밟고 신입거실로 와서 2010년 2월12일 거이 5년 6개월만에 다시 성동구치소에 구속되어 첮날을 보내고 오래되서 정확한 날은 기억 안나지만 2010년 2월15일인가 16일인가
2010카합96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이 느닷없이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민사 재판으로 열리니 참석하라고 출석 통지 받았는데 셋째이복형이 이미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나는데 아마 1월25일에서 30일이전으로 이미 나에게 민사 소송으로 고소를 했네 이것들이 내가 1월20일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가지 않은걸 알고 날 성남지원에 고소한거야

뭔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행동한것을 보면

그것들에게 배후 지시한 세력이 존재한다

그게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성동구치소 교도관들이 접근금지가처분 민사재판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두번이나 전달 했어 법원에서 내가 참석 안할까봐 두번이나 보낸건지 아니면 착오로 보내놓고 모르고 또 보낸건지
정확한 이유는 내가 도저히 알길이 없지만 그게 뭔가 좀 이상하긴 했어

법원에서 법원에서 내가 민사재판에 참석하던 말던 알바가 아니다 그러니 보내놓고 모르고 또보낼일은 극히 드물다 법원은 한국에서 비교적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곳인데

그런 실수는 거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지금와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민사재판에 출석 안할까봐 조바심에 누군가 배후지시로 법원을 움직여 또 보낸 것이다 법원을 움직일 정도면 엄청난 세력이 분명하다

나는 삼성공화국 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성동구치소는 신입자는 신입자 끼리 몆칠 적응할 시간을 주고 본거실로 배방을 했는데 당시 나와 같은 거실에 첫날 모두 한방에 들어갔는데 내가 당시 법을 잘몰라
민사 재판 출석 통지서를 거실에 있는사람에게 나는 민사 재판에 출석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문의하자 만약에 내가 출석 하지않으면 모든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오므로
출석하는게 좋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바로 그 다음날인가 민사재판에 출석 하여 성남지원에 가보니
이상하게 민사재판인데 판사가 3명 인데 보통 범죄가 중하다고 할때 합의부에서 재판을 받는데 합의부 판사는 3명 이고 그보다 미약한 범죄 재판은 단독으로 판사가 한명이 심리하는데
민사재판은 형사재판 단독보다 더 미약한 재판인데 이상하게 판사가 3명으로 좌.우에 여자 판사 그리고 중앙에 남자 판사가 있었고 재판장 판대편 에는 셋째이복형 부인이 뜻밖에 나와서 갑자기 판사에게 큰소리로 울면서 날리를 치며 날 내보내면 우리식구 다 죽는다고 낫으로 셋째 이복형을 목을 찌르려 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날 사회와 격리시켜 달라고 큰소리로 떠들자 판사가 진정하고 피해자가 누구냐며 묻자

셋째이복형 부부와 그리고 딸아들 4명 자신의 가족 전부라고 거짓말로 날 완전 흉악범 만들려고 하자

판사가 마치 서로 짜고치는 것처럼 당시 진단서 있냐고 묻고 있다고 하니까 진단서 첨부해서

가족 각자 진술서 작성해서 보내라고 말하며 심리를 연기하며 판사가 끝내려 하자


내가 그게 아니라는 반론을 얘기하려 하자


판사가 나보고 그냥 가고 답변서로 제출 하라고

법정에서 나가라고 편파적으로 명령하여

법정에서 제대로 말도못하고 성동구치소에 돌아와 답변서를 적어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나는 셋째 이복형 딸은 96년 이후로 당시 2010년까지 14년간 본적이 없고 아들 이야 얼마전 비닐하우스 에 짬깐 셋째 이복형이 지아들 이라고 소개 해줘서 알았지
어릴때 보고 14년만이라 지금은 전혀 얼굴도 못알아 볼정도로 변했다
나는 이들이 사는 하남시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가본적도 없고 가르쳐 달라고 그래도 나에겐 가르쳐줄일도 없어 갈수도 없고 오랜시간 알아보지도 못할정도로 셋째이복형 애들은 본적이 없고 같이 산적도 없고 대화를 나눈적도 없는데 나에 대한 피해자 라고 누명을 씌우니


말도 안된다며 더구나 방화하기 전에 미리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것은 나에게 각서.인감.사기를 치고 삼성으로 부터 몆-몇 억을 받아 쳐먹고 난후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자 이들이

삼성가의 지시로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한게

마치 짜여진 시나로오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며

각서 보다도 인감증명이 더 중요하며 법적 효력이 있다며 인감증명은 함부로 주는게 아닌데 내가 너무 무지 했다고 충고를 해줘 나도 내가
돈 몆백만원 빌리는데 인감증명 까지 모르고 준 내가 그것도 모르고 각서만 중요한줄 알고 검경 조사시 인감 얘기를 하지않은 내가 너무바보 갔고 또 세째 이복형이 자신의 친구라며 현역경찰관 까지 대동 하여 각서와 인감증명 을 받아간 것을 왜 검경 조사시 말하지 못했는가 하는 내자신이 너무 무지하고 어리석 었다고 한탄해 봐도 다시 되돌릴수 없는 일이기에 너무도 바보 같은 내스스로가 너무도 싫었다
이젠 술이 깨고 식당에서 여자 둘이 떠드는 소리에 순간 어리석게 손님잡혀 분노에 사로 잡혔던 내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한편으로는 지금 대한민국 사람중에 몆억 준다고 이런식으로 각서와 인감 사기 쳐달라고 삼성그룹 처럼 사주하면 그것을 뿌리칠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나에게도 만약에 그런 제안이 들어 온다면 나는 NO라고 단언코 말할수 있다고 과연 자신할수 있는가 거져 몇 억을 준데는데 나 자신도 딜레마에 빠지진 않을까 ?
셋째 이복형 개돼지 만도 못한 나쁜놈 이지만 그 보다는 배후에서 그런 일을 꾸민 삼성그룹이 더 나뿐 것들이다
한국최고 재벌이란 것들이 시정잡배만도 못한놈과 공모하여 꾸미다니
이들은 나에게 이런 일을 벌이고 내가 그런소릴 듣게 하여 사고를쳐 구속까지 시키려고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짠 시나리오에 내가 어리석게 걸려든 것이란 생각이 들기시작 했다
사실 그정도 조직과 함정을 쳐 놓으면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제는 셋째 이복형과 싸울 일이 아니다

홍라희 이재용의 교활한 시나리오는 내가 셋째이복형 때문에 천억을 날렸다고 원망을 하며 또찻아가

사고를 치게 만들어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려는 더러운 것들이 쳐놓은 함정의 증거는

셋째 이복형이 각서와 임감증명을 삼성에 넘기는 댓가로 몇억을 받아쳐먹었나는 소문을 내가 듣게 만든것이다 나는 두번 다시 그런 함정에 절대 빠지지 않을것이다

이런 더러운 음모의 원흉은 삼성회장 본처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 들이
다시 한번 내가 셋째이복형을 찾아가 사고를 치길 유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배후를 확실히 아는데 그런 교활한 수법에 다시는 당할수가 없다
국내최고 그룹 삼성그룹 오너들이 세상 혜택 다 누리며 호의 호식 하며 편하게 사는 인간들이 이런 시정잡배 만도 못한 더러운 음모를 꾸미다니

?

당장 그들의 모함에 걸린 덫 을 풀고 빠져 나가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길이 저항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생각하며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검찰청 조사를 마치고 성동구치소에 신입실에 입실해서 그중에 민사 재판을 한번 출석하고
아마 수요일 2월18일쯤 본거실로 배실되어 신입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본거실에 배실되어 훝어졌는데 나는 중거실 9상4실로 전실되었다 당시 성동 구치소 미결은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은 하 2층은 상으로 구분하고
거실은 중거실 과 대거실 로 구분하는데 중거실은 4-5명 대거실은 정원이 7-8명 정도 인걸로 생각 되어지며 또 보통 거실 배정을 20대 중반부터 40살 이전까지


40살 이후부터 65세 이전까지 구분하고
만으로 65세 이후는 노령자 거실을 운영하고


초범은 초범거실 재범은 재범거실 그리고 죄명도 폭력.살인. 강도. 방화 .강간 등은

강력반으로 죄명을 분리하고


절도는 절도거실 마약은 마약 거실 사기등 경제사범은 경제사범
거실로 구분하여 수용자를 수용하였다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아마 11동까지 있는걸로 생각된다
9상4실에 가보니 2월8일 구속 되면서 부터 면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덥수룩한 수염에 네가 들어가니 4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수염이 조선시대 처럼 제법 긴 수염을 가진 40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봉사원으로 있었는데 수염 때문에 나이가 몇살 더들어 보이는것 같은데

당시 나이가 40 중반 정도라고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난다
보통 거실에는 한명의 봉사원이 있는데 쉽게 말해 그 거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놈이 나이도 많아봐야 나보다 2-3살 많아 보이는 것같은데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보고 반말을 하여 니가 뭔데 반말하냐고 대드니까 나보고 욕을하여 나도 욕을하며
말다툼을 하자 그후 보안과장 순시때 수염이 긴 봉사원놈이 보안과장이 거실을 앞을 지날때 갑자기 앉아 있다가 손을들고 나하고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니 나를 다른 거실로 배실해 달라고 건의하자
보안과장 순시후 괸구실에서 나와 봉사원을 차례로 불러 면담을 하고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는

서로 멱살잡이 싸움등을 해야 조사.징벌실로 보내는데 서로 말타툼만 한 걸로 전실 하면
모든 수용자가 전실해 달라고 보채면 정신없어 그걸로는 힘들다고 하여 다시 거실로 그놈도 들어오고 나도 들어오자
배실해줄수 없다고 하여 나까지 5명인 거실에서 4명이 서로 짜고 신경을 건드려

배식도 또박 탄다고 나만 혼자 먹고 내꺼만 설거지 하고 그놈들은 4명은 그놈들 꺼만 하고 하는식으로

사사건건 말 싸움이 나는데 말싸움도 혼자 4명과 하게 되면 불리한게 많다

서로 욕을해도 나는 혼자고 저놈들은 4명이다

그거실에 채 2일도 안있고


지금 중대한 사건재판이 있는데 여기서 도 사람을 폭행해서 추가 기소건이 생기면
나에게 너무 불리하니까 추가 사건을 만들수가 없어 주먹으로 욕을 하며 거실문을 여러차례 세게 때리자 담당 교도관이 와서 왜그러냐고 묻기에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나를 짐을 싸라고 하며 짐을 싸서 9상4실 교도관 근무자실에서 자술서를 쓰고 무인을 찍고


당시 성동구치소는 7하와 6하가 조사징벌 독거 사동이 있었다 가보니
당시 40살 이라는 대구 출신의 수용자가 입실거부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놈 말로는 지방대를 나와 제일 모직에서 잠시 근무한 적도 있고 죄명은 자신의 사문서 위조로 대출 2억을 받아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미결에서 기결로 바뀌기 직전 이라며
재판 받느라 징역도 다 살아 얼마 안 남았다고 그러는것 같던데


그런데 그놈 하는 말이 지금 법이 바껴 징역이 최고 50년까지 라며 재판정에서 30년 넘게 받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다고 지랄하는데

내가 은근히 걱정이 들어 당시 그놈이 법전을 같고 있었던가 아니면 구치소 배치 법전인지는 몰라도

법전을 보자

내 죄명인 현주건조물 방화는 사람이 죽지 않았을때 최고 무기 까지 나온다고 하여
은근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만해도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각서와 인감증명 사기를 당한것 같아 홧김에 불을 지른건데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아
나는 징역을 얼마 안받을 줄 알았는데 현주건조물 방화가 사람이 죽지않아도 최고 무기까지 나오는 번죄인줄 나는 전혀 몰랐다

검사가 죽으라고 무기 구형을 놓고 판사가 그대로 선고하면 나는

교도소에서 죽는게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원수진 일도 없는데 그렇게 까지 악독하게 할까?

그러나 배후에 삼성공화국이 있으면 그러고도 남는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후 징역이 당시 최고 50년까지 늘어났다는 그놈말은 사기라는걸 알게된다


나는 경고로 조사실에서 풀려나서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10동 인가로 배실되어 간것같은데
그곳에서 2010년 2월 말경 쯤인가 느닷없이 세째 이복형으로 부터 2003년 호미로 나에게 맞았다며 고소장을 검찰청에 접수한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이게 잡근금지가처분 민사재판과 연결하여 법원에서 보낸것 같은데 진단서는 14일 치료요함 써있는데
14일이면 2주진단 아닌가 나는 당시 진단서를 끊어 놨다는것도 몰랐는데 나는 과거 어릴적에 셋째이복형에게 비닐하우스 일을 도와주면서

쇠몽둥이 호미 농기구 등로 맞아 머리가 떠져 피를 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그래도 나는 경찰에 신고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물론 진단서도 없이 다친부분을 붕대로 감고 아까징끼 바르고 담배가 좋다고 담배 말아서 붕대로 감기도 하고 그랬는데 양아치 같은놈 어린나를 그렇게 부려먹고 폭력을 행사한게 한두번이 아닌데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지가 폭행을 먼저하고 어머니에게 욕설까지 해서 매를 자초해 지가 잘못해 나에게 맞았다고 진단서 까지 2주짜리 끊어 놓고 7년이 지나 당시는 구두로 합의 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한것을 이제 와서 신고 하다니 정말 교활한놈이다

한국의 100억이상 돈이 있는 놈들은 이렇게 잔대가리가 잘돌아가는가

그런데 저개자식은 학교다닐때 공부도 거이 꼴찌에서 맴돌았대는데

돈은 100억이상 200억에 가깝게 벌고 저렇게 잔대가리가 잘돌아갈까

이해할수 없었다

그때 왜 나는 바보같이 신고도 못하고 그렇게 당하고만 했을까

당시 내가 신고한다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신고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반대했을 것이다

아무리 이복형제지만 가족간의 일인데 어떻게 치사하게 경찰에 신고하냐고

하며 야단쳤을 것이다

그런데 하이에나처럼 교활한 셋째이복형 개자식은 당시 신고도 했고 진단서 까지 끝어 놨다


정말 더럽고 치사한 놈인네 나와 어머니는 왜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나

더구나 저자식은 갑자기 한국 최고그룹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배후에서 저놈을 도아주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려운 형편에 근근히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인 나를 나한곤 전혀 관련없는 삼성그룹 오너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그들을 추종하는 국가 공권력을 사조직처럼 악용하여 전라도 깽깽이 경상도 문둥이 수많은 년놈들까지

갑자기 나에게 중상모략을 하며 모함하여 누명 씌우려 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 아닌가

아무리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이 라지만
7년이 지난 사건을 당시 2주진단 나온걸 엮어봐야 어떻게 엮겠냐고 생각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2010년 3월3일 느닷없이 변호사 접견 이라고 해서 거실에 있던 사람이 아직 공소장도 받지 못했는데 누가 사선 변호사를 선임해 줬냐고 묻기에
나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고 왠지 누가 사선변호사를 선임했나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갖고 변호인 접견실로 가보니 이미 그곳에는 다른 수용자도 상당히 많이
변호사 접견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일부는 변호인을 접견하고 있는게 보였으며 대기자중에 국선변호인 접견자도 있어 나도 국선변호인 접견 이라는것을 순간 알수있었다 변호인 접견실은 여러개로 여러명의 변호사가 수용자를 접견하고 있는게 보였다
내 차례가되어 안내 방송에 따라 내게 호명된 호실을 가보니 국선변호인 이라는 사람인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내가 공소장도 못받고 국선변호인 선임신청도 하지않은것 같은데 어떻게 갑자기 왔냐고 묻자
국선변호인은 내일 2010년 3월4일이 첫번째 심리재판이 열리는 날이라고
말하여 나는 또한번 깜짝 놀라며 어떻게 준비기간도 없이 너무 속행 하는게 아니냐고 되묻자
아직 공소장도 못받았냐며 알고 있으면서 장난처럼 나에게 되묻는것 같은데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공소장을 보여 주는데 정신이 없어 대충읽고 있는데 국선변호인은 이미 다알고 있는 것처럼 아마 오늘 오후 안으로 공소장이 전달될 꺼라며 나에게 얘기 했다

보통의 경우나 나의 저번 징역살때 살인미수로 징역 3년을 받을때도 그랬지만
사선변호인을 선임할수 없는 자에 한하여 국가에서 국선 변호인 선임을 해주는데
국선변호인 선임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그후 몇칠이나 그 보다더 시간이 지나면 국선 변호인 접견이 오는 데 공소장은 그전에 받은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국선변호인 선임 신청서도 작성 하라는 말도 없었고 더구나 공소장도 받지못해 재판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국선변호인이 와서 재판이 바로 다음날 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아마도 내가 재판에 대비할 시간을 주지않기 위해 또는 국민참여 재판을 신청하면 세상에 더 알려 지니까
그런 생각을 할수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않고 급행을 타고 재판에 회부한게 아닌가
지금와 돌이켜 보면 국선변호인도 삼성에서 법원에 입김을 넣어 미리 선임하여

나에게 강제로 배정한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국선변호인 선임 신청서도 쓰기전에 나에게 국선변호인을 배정한건 말이 안된다


검사가 공소장을 어떻게 작성 했는가 그 내용을 봐야 재판장에 가서 어떤 답변을 할지 생각하여 좀더 유리한 진술을 하여 형량을 최소로 줄이려 노력하는데 이건 그런 시간적 여유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정신이 없을 정도였는데 국선변호인이 느닷없이 정신과 진료를 신청할 의향은 없냐고 하면서 신청이 받아들여 지면 공주 정신과 치료소에서 약 한두달간 정신감정을 받고 온다고 그러기에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내가 검.경에서 말한 진술이 모두 정신 병자 취급을 받아 절대 그럴수 없다고 안한다고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또 한국에서 정상인 사람도 돈문제 때문에 정신병자로 엮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하는경우를
그동안 뉴스를 통해 들어 왔기에 한국에서 정신병자로 누명쓰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혀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묶기고 폭행당하며 그곳에서 죽거나 수십년을 산사람들이 있다는걸 간혹 보도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적도 있다
한국은 아직도 부끄러운 인권후진국 이기에
정말 힘들게 살수도 있다는 불안에 그리고 나는 절대 정신병자가 아니기에
절대 안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선 변호인은 피해자인 셋째이복형을 증인으로 신청할 거냐고 묻기에 지난 접근금지가처분 민사 재판때 셋째이복형수가 와서 날 격리시켜야 한다고 울며 날리친걸 보고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여 증인신청 안부른 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선 변호인이 보여준 공소장 내용에 내가 셋째 이복형을 낫으로 위협하며 죽여버리겠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그 내용이 적혀 있어
이 부분을 내가 하지않은 행동 이기에 법정에서 끝까지 부인해야 겠다고 묻자 국선 변호인은 그냥 공소장대로 시인하는게 형량을 적게 받을수 있다고 엉뚱하게 말해

나로서는 엄청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국선변호인은 그래서 법에 전문가인데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게 나에게 징역을 덜 받는 길이 아니냐
생각 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면 뭔가 엄청난 누명을 뛰집어 쓸것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또 당시 국선 변호인에게 내가 검. 경 조사시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인감과 각서 사기를 당하여 천억을 날린것 같아 술취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사고를 쳐서 후회 한다고 말하자 당시 국선 변호인 말로는 자신도 삼성에서 일을 한적이 있는데 내말을 들은 국선변호인은 그게 사실이어도 절대 나에게 돈을 줄 사람 들이 아니다 라며 잊으라고
말하는 소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선변호사가 실제 삼성에서 일을 한적이 있는지 내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국선 변호인 말이 왠지 진짜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와 돌이켜보면 그당시 극선변호인은 삼성에서 배정하여 나에게 보낸 것처럼 생각이든다
국선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거실에 돌아오자

국선변호인이 예언한 것처럼 검찰청에서 공소장이 도착 했다고 교도관이 전달해 줬다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사건번호 2010년 형제 5387호
제목 공소장
검사는 아래와 같이 공소를 제기 합니다
죄명 폭력 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단.흉기등 폭행 ).현주건조물 방화 .일반건조물 방화 .일반 물건 방화
적용법조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제283조제1항.제164조제1항.제167조제1항제35조.제37조.제38조.
구속여부 2010년 2월11일구속 (2010년2월8일 체포)
변호인 국선변호인
-공소사실 -
피고인은 2004년 12.22서울 고등 법원에서 살인미수죄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아
2007.8.26. 청송교도소 에서 그형의 집행을 종료 하였다
-범죄사실 -
1.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단.흉기등 협박)
피고인은 2010.2.8.16:30경 경기하남시 미사동 415에 있는 피고인 세째이복형 피해자 상추재배용 비닐하우스 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으로 부터 받은 각서를 삼성측에 빼돌려 피고인이 삼성으로 부터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 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하면서 미리 준비한 위험한 물건인 (칼날길이 22cm) 을 들고 피해자 를 찌를 듣이 위협 하였다
2. 현주건조물 방화 .일반건조물 방화. 일반물건 방화
피고인은 2010,2.8.16:30경 하남시 미사동 413에 있는 위 피해자가 주거용으로 사용 하고 있던 샌드위치 판넬 구조의 비닐하우스 건물에서 전항과 같은 피고인의 협박으로 피해자가 피신하자 . 미리준비한 석유를 피해자가 거주하는 비닐하우스 건물 바닥에 뿌린후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여 위 비닐하우스 건물 전체에 번지게 한다음 위 1주거용 비닐하우스 건물 옆에 위치한 피해자소유 샌드위치
판넬구조의 창고용 비닐하우스 건물바닥에 석유를 뿌린 후 라이터로 불을 붙여 창고용
비닐하우스 전체에 번지게 하였다 피고인은 계속하여 위창고용 비닐하우스 옆에 피해자 소유의 포크레인 이 세워져 있는것을 발견하고 주변에 잇던 종이박스에 석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후 위
포크레인에 불을 놓아 포크레인 전체에 번지게 하였다 당시 위 포크레인 의 주변에는 주거용 및 농사용 비닐하우스가 밀집하여 있는 상태로 대형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이로써 피고인 부부와 인부들이 주거로 사용하는 시가 5.000만원 상당의 주거용 비닐하우스 건물 1동 을 태워 소훼하는 한편 시가 2.000만원 상당의 포크레인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하였다
-첨부서류-
1.현행범인 체포서 1통
2.구속영장 (체포된피의자용 )1통
3.피의자 수용증명서 1통 4.국선변호인 선정 결정서 1통)

그런데 거실 사람들이 공소장을 보더니 이상한게

보통 공소장 죄명 첫번에는 형량이 무거운 죄명으로 장식하는데
나의 경우는 형량이 가벼운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집단 흉기등 협박

(일명 폭처법)으로 1번
죄명으로 적혀 있어 의아해 하는 반응이었다

공소장

2번 죄명인 현주건주물방화로 사람이 죽으면 최고 사형 사람이 안죽으면 최고 무기까지 가능한 범죄인데 공소장에 적혀있는


1번 죄명 폭처법은 10년 이하의 죄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현주건조물 방화가 공소장 1번 죄명에 와야 하는데 그게 뒤바껴 뭔가 의아해 하는 거실 사람들의 반응이였다
그런 경우는 좀처럼 보기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2010년 3월4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첫심리 재판을 위해 출정하여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이는 고역을 치르고 법원 대기실에서 긴장하여 입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요즘은 징역이 더 엄해져서 거실에서 누가 그러는데 검사구형 12년 인데 선고때 판사가 13년으로 올려치기 당했다는 소릴 들은적도 있다
보통의 경우 검사구형 보다는 판사가 좀적게 선고하는게 보통의 경우인데 때론 판사가 검사구형 보다 더많은 징역을 올려치기를 해 죄수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드디어 내차례가 되어 재판장안으로 들어가자 얼핏봐도 객석이 상당히 많이 찬걸로 보였다 거의 만원사태가 아니가 그런데 특히 놀라운 것은 판사들이 눈에 익어 보니 지난 민사 재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때 재판 하던 판사들과 같았다 좌 .우는 여자 가운데는 재판장 남자가
지난 민사 재판때 판사와 같았다 이것은 무슨 음모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정도 였다
어떻게 민사재판 판사와 형사 합의부 재판 판사가 동일 인물이 될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걸면 귀걸이 식으로 강자만이 독식 한다고는 한다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해 할수 없는 처사였다 더구나 당시 성남지원 합의부는 한곳 뿐이라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다해도 소용이 없었다
형사재판 합의부 재판하는것도 바쁠텐데
민사재판은 민사재판 담당판사에게 맡기지
내가법을 잘몰라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형사 재판도 형량이 무거운 죄명들은 합의부에서 판사3명이 상의하여 선고를 하고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죄명들은 판사 혼자서 단독부에서 선고를 하는데
형사 사건도 아닌 민사사건을 형사 합의부 판사 3명이 와서 심리하는건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며 불법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단)이란 조항이 있어 힘있는 것들은 불법에서 언제든 빠져나갈 조항이 있다고 한다

?

민사재판까지 관여한 것은 나에게 중한 형량을 놓을려고 처음부터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생각이 들정도 였다


공정해야할 판사가 민사부터 나에게 뭔가 중한형을 줄려고 누명씌울 꼬투리를 잡을려고 추적한다고 생각하니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중압감을 느겼다
그런데 심리중 느닷없이 국선변호사가 삼성회장 막내딸과 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판사에게 떠들어 내가 너무 황당하여 변호사에게 한소리 할려다가
재판중이라 참았다 지금 회상하면

왜 그때 국선변호인의 거짓말을 지적하고 따지지 못했는가 후회가 든다 나는 국선변호사에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말한적이 없다 문제가 생기고 뭔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면 바로 그때 지적하고 따지고 바로잡아야 대형사고를 방지하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내가 검사 조사시 정신적으로 사랑 했다고 볼펜으로 적은것은 내가 속으로 좋아한 것은 사실 이기에
그렇게 적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속으로 여자를 사랑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열여자 마다 않는다고 하는 말도 있듯이 그렇다고 열여자를 다 좋다고 할수는 없지만
남자가 이쁜 여자 좋아하는건 자연법칙 아닌가
그러나 나하고 나이 차이도 많고 당시 떠돌이 무일푼인 내가 좋아 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하여 내색하지 않고 십여일 남짓 정도 일하다
일 끝나고 저녁에 숙소에서 주방장 하고 술먹다 말 싸움하고 느닷없이 그만 둔적이 있다 )
재판 심리중 판사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데 정신과 진료를 신청할 꺼냐고 묻기에 나는 안한다고 말하자 판사가 보기에도 멀쩡해 보인다고 말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참석 시킬 거냐고 판사가 다시 묻기에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갑자기 판사가 국선변호사 보고 왜 피고인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신청했냐 면서 국선변호인을 나무라는 소릴 듣고 나도 국선변호인 에게 한소리 할려다가
재판중이라 참았습니다 국선변호인 인지 검사인지
헷갈릴 정도 입니다 어떤면에서는 검사보다 더한 국선 변호인이 아닌가
혹시 삼성오너 들이 보이지않는 은밀한 힘을 이용해 보낸게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지만 법적증거를 확보 하는건 물론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건 지금의 내 처지론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해변의 모레를 보고 방금 파도가 밀려왔다가 사라졌는걸 알수 있듯시

삼성그룹 오너들의 개입이 없이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정황 들이다

나는 검사의 공소장 내용도 완강히 부인 했다 나는 낫을 가지고 피해자를 위협한 적도 없고 더구나 죽여 버리 겠다고 말한적도 없다고 판사에게 얘기 했다
그래서 검사 공소내용을 일부 부인 했다
내가 증인신청을 안한다고 하자
재판을 계속 끌고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판사가 검사에게 결심 할꺼냐 계속재판을 끌고 갈거냐고 묻자 결심 구형 놓겠다고 검사가 말하자 판사가 허락하자 검사구형 4년을 말하자 판사가 3주후에 선고 하겠다며 심리를 끝냈다 나는 속으로 이것들 하는 행동봐서는 7년 구형 나올줄 알았는데 4년구형 이면 비교적 다행이다 생각하고
거실로 돌아와 거실 사람들에 물어보자 4년구형 나왔다고 말하자 사람이 다치지도 않았고 피해 규모도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적게 나온게 아니라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후 내가 있던 거실에서 느닷없이 11하로 전방을 가라는 명령을 받고 거실사람 전체가 11하7실로 전방을 가게 됐는데 그 이유 라는게 사동에 거실 하나를 장애인 거실로 만든대나 소년수 거실 인지 노령자 거실인지
정확한 것은 모르는데 왜 하필 사동에 우리 거실인원만 전부11하로 옮기라고 명령을 받았지 사실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사례로
당시로 서는 의아해 할수밖에 없었는데
난 11하 7실 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짜증나서 나혼자 조용히 있을려고 답변서를 제출한후 그 다음날 인가 입실거부를 했는데 사실 답변서는 민사재판에서 쓰는 용어인데
형사재판 에서는 주로 억울한 점이 있으면 탄원서 형식으로 법원에 제출한다
그런데 나는 저번에 접금금지 가처분 재판때 제출한 답변서를
제출한 후로 판사가 형사 재판과 동일한 인물인걸 확인하고
답변서라고 제목을 적어 제출한 것이다
관구계장( 일명 팀장이 ) 입실거부를 받아 줄수 없다고 하여 왜 입실거부를 허락 안하냐고 서로 거실 사람과 싸워서 사건이 크게나서 법원에 기소되어 추가 징역을 받게 조장하는 거냐고 따지며
입실을 계속 거부 하자 CRPT교도관을 떼거리로 불러 강제로 입실 시키려고 하는데 이들은 군인들이 신는 워카를 신고 검은 복장에 팔각모를 쓰고 생활지도 교도관 이라고 하며
교도소 내를 수시로 돌아다니며
죄수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업무를 담당하는 걸로 보이는데 처음에 4-5명이 나를 잡고 강제로 입실 시키 려다가 내가 창틀 쇠고리를 잡고 완강히 버티자 CRPT 을 더불러 7-8명이 와서 4명이 내 양쪽 다리를 잡고 또나머지 3-4명이 내팔과 몸통을 잡고
강제로 입실시키자 주먹과 발로 거실문을 차자 나를 불러내어 관구실로 데려가 소란등으로 자술서를 쓰게 하였다 팀장이 누구냐에 따라 입실거부를 받아줄수도 있거 팀장권한으로

입실거부를 이와 같이 거부하여 소란으로 조사징벌싱에 넣을수가 있다

엿장수 마음대로 엿을 짜른다는 말처럼 그때 그때 사람마음에 따라 틀려지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정말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방향으로 빠뀔수가 있는것이다

수갑을 체우고 일명 보호대 라고 길이 약 1.2m 이상되는 쇠사슬을 사각형 모양의 쇠로된 캡슐 같은걸 수갑 양쪽 고리 가운데 씌우고 쇠사슬을 사각형 쇠로된 캡슐에 넣어 앞으로 땡기면 수갑을 찬손은 꼼짝할수 없고 손목이 조여 통증이 심한 상태에서 쇠사슬을 몸을 한바뀌 허리 부분을 돌려 세게조여 묶고 열쇠를 채우면 허리도 조이고 손목도 조이고 꼼짝할수 없는 상태로 통증과 함께 고통이 심한대 그런 상태에서 다시 7하 조사 징벌실에 수용되어 있는데 보호대와 쇠사슬은 밥먹을 때만 허가를 받고 풀어주고 잠잘때도 차고 자야해서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어 고통이 심하였는데
저녁 식사후 다시 채울때 교도관 에게 너무 아프고 잘때 누울수가 없어 잠을 자기 힘드니까 좀 느슨하게 채우라고 부탁 했더니 옆에 있던 CRPT 교도관 주임이 성징을 내며 더쎄게 조이라고 시키며 직접와서 더쎄게 조이는데
만약에 조이는데 저항하며 CRPT를 떼거리로 불러 폭행당할 우려도 있고 공무집행 방해로 추가 기소되어 징역을 받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겨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아야 하는 입장 이라 고통을 참고 그렇게 날짜로 3일이 가까이 오자 나보고 반성문 한통을 쓰라고 하여 한통을 썼더니 쇠사슬을 3일만에 풀어 줬습니다
쇠사슬이 풀리자 전방을 갔는데 그곳에는 동아건설 회계를 담당하며 1890억원이 넘는 돈을 횡령한 죄로
구속된 박상두 라는 사람이 있었다 박상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그는 당시 성동구치소에서 비들기를 사동 도우미를 통하여 전달 하다가 발각되어 조사 수용중 이었습니다

그 방에는 종이 박스 안에 훈제 닭 이며 과자 우유등 먹을 것이 가득 들어 있었 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 이지만 박상두 라는 사람말을 들어보면 과거에는 일본말로 소지 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사동 도우미는 죄수 중에 미결에서 형이 확정된후 기결로 바뀐 초범 수용자중에 징벌이 없고
비교적 형량이 장기수가 아닌 수용자 중에 관용부로 선발하여 사동 도우미를 시키는 애들 인데


서울성동구치소 같은 경우 여호와의 증인등 군입대를 거부하고 대신 징역을사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는데

저번에 징역 살때는 서울 성동구치소 소지중 확인된사실은 아니지만 전직 대학교수 라는 사람도 사동우미로 출력나가 일하는사람도 본적이있는데
아무튼 도우미 에게 영치금 100만원을 넣어 주는 댓가로 비들기 라는것은 종이에 사연을 편지처럼 적어 다른 거실1에 있는수용자 에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동청소를 담당하는 도우미 들을 시켜 부탁하는 것인데
이게 발각 되어 조사 수용 중이며 박상두는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동아건설에 입사하여 근무하던중 국민대 야간 기업회계학과를 졸업 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왜 그런 일을 했냐고 하니까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너무 어렵게 살아서 실컷 돈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순 없다
그는 1000억 이상은 돌려 막기식으로 막고 실제 자신이 쓴 돈은 약 800억 정도 라며 그것도 강원랜드 카지노 마카오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거이 다 날렸다고
나에게 얘기 했는데 횡령한 돈을 카지노에서 날렸다고 하는 수법이 횡령한 돈을 토해 내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수법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남겨둔 돈이 없다고 하지만 남겨둔 돈을 어디다 숨겨 놨는지는 누가 알겠나
내가 마카오 까지 갔으면 해외로 도피하지 멕시코 같은데는 100억만 있어도 신분 세탁하여 황제처럼 사는데 한국 들어와 잡혔냐고 묻자 외국 나가는 루트도 잘몰랐고
처자식 때문에 그랬다고 모호한 말을 했다
허기야 이렇게 똑똑할것 같은 사람도 자신이 직접 경험 하거나 관심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게 당연하다
그후 출소하여 사회에서 서라벌 예대를 나왔다는 조각가 출신하고 노동일을 하루 같이 우연히 했는데 조각을 수십년한 조각가 라서 노가다도 잘할줄 알았더니 전혀 모르더라고
박상두는 나하고 몆칠 조사실에 있는동안 재판 받으러 갔다오더니 무기 구형 받았다고 하며 전직 부장판사 출신을 몆천만원 주고 사선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선고 때는 15년 정도 받기를 원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보다 더 적게 받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15년도 힘들다고 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 였다
그후 나는 징벌을 받고 다시 전방을 갔는데 박상두가 징벌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는 잘 모르 겠다
징벌이 끝나고 이번엔 1동쪽으로 중방으로 전방을 갔는데 보통의 경우와 달리 젊은 애들도 있었는데 그곳에 가니 20대후반 30대후반 정도 그리고50대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나까지 4명 그곳에서 있었는데 한명은 30대후반이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고향이 전남 이라는 놈은 말하길 준강도에 준강간으로 들어왔데는데 이놈은 전과가 있는 놈인데
조그만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술집주인여자와 눈이 맞아 서로 오럴섹스를 하고 성기 삽입은 안했는데 그후 술값을 줬다가 그 여자가 어디 잠깐 간사이 술값을 몰래 빼내
술집을 나왔는데 그 여자가 경찰에 고소하자 경찰에서 준강도 준강간으로 검찰에 송치시켰는데

사건을 담단한 검사가 여자검사 였다는데 무릎을 끊고 울면서 빌었데 자신은 절대 강간한게 아니라 여자와 합의하에 오럴섹스만 했고 강도한게 아니라 자신이준 술값을 절도만 했다고 하며 검사에게 무릎끊고 울면서 한참을 빌었데
그런데 여자검사가 피해자를 소환해도 안오고 하니까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고 원래 10일안에 기소를 할지 불기소로 할지 결정하는데 한번더 10일을 연장해서 최대 20일까지 결정하는데
연장하면 연장 한다고 통보를 주는데 내가 이곳으로 전방가서 몆칠 되지 않았는데 이놈은 첮번째 10일 만기가 다된 상태 였는데 결국 10일째 되는날 검사 기소 통보가 왔는데 준강간은 빠지고 준강도가 절도로 공소가 변경되어 강력 폭력 거실에서 절도범 거실로 전방가게 되었다고 교도관이 통보하자 이와중 에도 좀 모자라는 놈이라 그동안 20대 천호동 깡패 애가 영치금이 좀있어 이놈이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시중들어 주고 훈제닭 과자 과일 떡갈비 우유 등 먹을것을 얻어먹고 천호동 깡패가 밖에 나갈때 신발을 깔아주고 잘때 이불 깔아주며 천호동 깡패가 시키는데로 말을 잘들으며
비유를 마쳐 주던 놈인데 그런걸 못얻어 먹을까봐 절도거실로 전방가는걸 아쉬워 하네 준강간이 빠지고 준강도로 절도로 변경된건 그많큼 형량을 적게받을수 있어 합의부 재판에서 단독 재판부로 바껴 이놈에겐 잘된 일인데도 말이다 그놈이 전방 간데니까
20대 후반 천호동 깡패놈이 시중드는 놈이 없어져 아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거실에서 어느누구도 저놈 시중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2010년 3월25일 목요일 선고를 받으려 성남지원에 출정을 가게 되었다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끼고 참으로 고역인 짓을 또해야 했다
성남지원 대기실에서 나이가 60 이 훨씬 넘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서로 말을 하다보니 이사람도 미국 뉴욕 퀸즈의 7전철 종점역인 풀러싱에서 거주한적이 있었데 확인대지 않은 사실 이지만 이사람 하는 말은 과학기술대학을 나온 사람으로 박정희 정권때 부터

해군 군함의 쏘나 ( 잠수함 잡는 음파 탐지 장치 ) 설치 기술자로 일한적이 있으며 이번에 구속된 이유는
자신과 어떤 여자와 또 어떤놈과 삼각관계 인데 2010년 당시 그사건 은 7-8년전 사건으로 당시 그여자에게는 13살 먹은 딸이 있었는데
딸아이의 엄마와 그놈이 짜고 그것도 몆년이 지난후 13살 먹을 당시 자신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누명을 씌워 검찰조사시 계속 부인하자
검사가 20년 구형을 놓고 오늘 선고를 받았는데 판사가 아무런 증거 일종에 DNA 도 없고 그외에 증거도 없지만 여자아이의 일관된 진술에 의거해
징역 10년 을 선고 한다고 하여 울화통이 터지고 너무 억울해 미치겠다고 하며 뭐이런 법이 어디있냐고 하소연 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은 변호사를 3천만원 주고 전직 판사출신의 사선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증거도 없이 10년 선고를 받았는데 억울해 미치겠다고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나는 이날 4년 선고를 받고 거실로 돌아와 항소를 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잠을 자는데 꿈에 내가 항소하면 9년을 더받아
항소심에서 도합 13년 을 선고 받는 꿈을 꾸고 놀라서 깨어난 적이 있다
2010년 3월26일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그후 한주오 준위가 구조하다 순직했는데 메스컴에 난 사진을 보니
1989년 진해 해군 사관학교 들어 가기전 있는 56전단 에서 UDT38차 에 지원하여 합격하여 훈련을 받다 자진 퇴교를 신청 한적이
있는데 그 당시는 UDT에 해군 수병들도 지원을 받아 줬어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 교관으로 중사로 근무하던 사람과 얼굴이 같았다
과거 노무현 정권때는 교도소 구치소 마다 자체 방송을 하여 방송프로가 볼게 지금보다 많았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무부 보라미 통합방송을 실시하여 방송프로 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모습 이었다
천안함 사태로 어수선 하던 그때 나는 항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딜레마에 빠졌다
물론 마음 같아선 항소를 해서 형량을 최소로 줄이고 싶었지만 꿈도 재수 없는 꿈을꾸고 7년전 호미 사건을 고소한 상태에서 내가 항소를 하면 항소심 에서
병합하고 검사가 재구형 놓고 판사가 올려치기 할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어 불안했다
그리고 곰곰히 추리하면 처음엔 삼성그룹 에서 날 생각해서 검사를 시켜 죄명을 폭력을 앞에 놓고 방화를 뒤에다 놓았나 생각해 보았지만
삼성그룹 오너들이 절대 날 생각 해줄 인간들이 아니라고 판단이 들었고 그때 부터 서서히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날 사랑해서 자살한게 아니고
누군가 청부살해 하고 날 만만 하다고 희생양으로 누명씌운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정황들이 그런 의심을 더욱 증폭 시켰다 각서와 인감증명 사기사건을 삼성그룹 오너들이 꾸민것도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엮어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 노래가사 처럼 세월이 가면 조용히 덮으려던 건데
이들이 뜻하지 않게 거짓 찌라시 소문이 내귀에 까지 주어 들어
일이 커지자 삼성오너들이 그냥 명분 쌓기위해서 벌인 일 인데 이일도 이렇게 커진게
아닌가 추측해 보며 여기서 우연히 얼굴 한번보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는데
내가 항소해서 계속 재판장에서 사랑 했으니 천억 달라고 우기면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 했을 가장 강력한 용의자 삼성그룹 회장 본처 홍라희와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인 장남 이재용 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나리오로
삼성 이건희 회장도


눈빛만으로 거는 순간 최면을 걸어 3년넘게 못잊게 하고 자살하게 만드는것은 최면을 전공한 최면 박사도 할수없는 학계에 보고도 안된 이론적으론 불가능 하다고
믿지 않으려 했겠지만 모사를 꾸민 본처와 장남 등이 계속
삼성회장을 설득하여 말한마디 안했는데 내가 그들의 시나리오데로 어리석게 항소까지 해서 사랑 했다고 거짓말 하며 천억 달라고

씨부리는 것 보라며
어거지로 우기며 사전에 계획하고 천억을 노리고 순간 최면걸어 죽게 만들었다고 누명씌워 뒤집어 씌워
항소심에서 올려치기 하려고 계획 했던 것 같은데
2012년 인가 당시 교도소에 있을때 오락프로를 녹화해서 방영한걸 본적이 있는데
이탈리아 에서 어떤 사람이 대형 매장 카운터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때
돈을 계산하는 케셔 에개 눈빛 만 으로 순간 체면을 걸어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지도 않고 오히려
케셔가 돈을 주게 만들었다며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면을 전공한 박사들이 출연하여 순간최면은 최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일로 이론상은 불가능 하다고 말한 인터뷰 기사도 들으며 오락방송을 시청하면서
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하고
나에게 최면걸어 죽였다고 말도안되는 누명을 씌워 삼성그룹 알바들 돈을 주고 시켜 은근히 거짓말퍼트려 여론몰이 할려고
돈으로 사주하여 사기 프로를 연출하여 프로그램을 조작하여 제작 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들이다 더구나 돈이면 거이 안되는게 없는 세상이고

이태리는 마피아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아니면 케셔와 범인과 짜고 돈을 훔치려 말도 안되는 조작극을 벌인 일이 아닌가


눈빛만으로 순간최면을 걸어 오히려 케셔에게 돈을지급 받았다고 하는건 순전히 사기극이며
마치 아담스키가 UFO를 타고 금성에 갔다왔는데
그곳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 처럼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말을 믿던 시절이 처럼 그런 비슷한 사기극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저런게 사실 이라면 미국 CIA나 과거 구소련 KGB에서 벌써 연구하여 개발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돈도 눈빛으로 다 털었을 것이고 요인 암살도 총도 필요없이 눈빛으로 다했을 것이고
그러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담스키가 금성이 에덴동산 처럼 살기좋은 곳이라고 말한것을 믿는 사람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저런 말도 안되는 사기극을 믿는사람이 존재 하는게 세상이다
그렇다면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이 본부인 자식이 아니고 핏덩이 일때 밖에서 낳아서 데려와 호적에 입적 시켰다는 말도 그전부터 있다고 누군가 말한 적도 성동구치소에서 들은적도 있었고 과거 소련의 KGB같이 비밀스런 삼성오너 들에게 진실을 알아 내는건 정말 어렵다


인터넷에 있는 삼성 회장 막내딸 죽음과 관련한 기사를 관심을 갖고 찾던중 특히 의심이 가는 부분은
삼성그룹 회장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이 한국의 명문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2005년 부터 미국 뉴욕대학원 미술 경영학과에 유학 가기 전부터 삼성회장 본부인 홍라희가가장 아끼는
리움 미술관을 물려 준다는 구실로 관련 공부를 시키기 위해
미국 뉴욕 대학원에 유학을 권유하며
유학을 마치고 오면 리음 미술관을 물려준다고 했다는 기사가 있으며 삼성회장 막내딸은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할지 모른다고 불안해 했었는지 2005년 유학가기 전에 특히 건강 검진에 정성을 쏟았다는
인터넷 검색으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죽기직전 미국 켈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 있던 자신의 고모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별장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드라이브 광인 것을 빼다 닮은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이 드라이브 광이라
차를 몰고 대륙횡단 하여 뉴욕대 수강을 위해
뉴욕으로 왔는데 만약에 자살할것 같으면 중간에 아무 모텔이나 들어가서 가단히 자살하면 되지 뉴욕까지 와서 자살 했다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특히 이윤형 양을 당시 원불교 절차에 따라 급히 죽은다음날 타살흔적 없애려 화장할때 가족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점과 죽은지 3일 만에 외부조문 금지하고 극비로 장례식를 치를때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가족만이 참석하고 이건희가 참석하지 않은것은 사전에 치밀히 계산된 이건희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둘러 장례를 마치자 삼성알바들이
거짓소문 퍼트리며 마치 이건희가 자살한걸 뻔히 알고 괘심해서 일부러 참석 안한 것 처럼 교활하게 분위기를 1만들고 삼성알바들 통해 조직적으로 거짓 소문퍼트려 거짓 여론몰이를 하는 더러운것들이
삼성가 오너일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전형적으로 쓰는 교활하고 더러운 수법인 것이다 외부조문금지하고 극비로 조촐 하게 죽은지 3일 만에 장례를 마치고 난후 기자들에게 삼성그룹 관계자가 삼성회장 막내딸이 2005년 11월18일 미국 뉴욕 현지시간 뉴욕 외곽에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2005년 11월19일 오전에 죽었다고 발표하여 국내외 언론에 일제히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보도 나간 상태 에서 이 부분에 모순이 크다고 판단한 뉴욕 한국일보 미주지사 신용일 기자등 3명이 집요한 추적끝에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삼성의 발표가 모순 이라고 끝까지 추적하여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삼성의 발표는 거짓말이란 단서를 발견하고
국내 언론에 기사를 보도 하려 하자 막강한 삼성에서 기사를 못내게 방해하여 대신 소스를 뉴욕 타임즈에 줘 2005년 11월26일자 뉴욕타임즈 보도후
삼성 에서 부랴 부랴 사인을 자살로 또 둔갑시킨 행태는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이 삼성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 친딸이 아니고 배다른 딸일 꺼라는 거에 무게를 두고
자살이 아니고 청부살해 됐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후 나는 2013년 헌법소원등을 하면서 뉴욕 한국일보 신용일 기자가 파해친게 기억 나지않아 뉴욕 현지 삼성회장 막내딸 지인들이 파해 쳤다고 잘못쓴 점은 정정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소를 하면 삼성회장은 친딸 이기에 주변인 들이 내가 천억을 노리고 최면을 걸어 죽였다고

189p-누명씌우려 일부로 현주건조물 방화를 죄명뒤로 빼고 폭행
특히 3조1항 흉기를 든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가 항소 하면 7년전 호미 사건을 살인미수로 누명씌워 올려치기 할려고 음모를 꾸민것일 수도 있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어 걱정이 들기시작 했습니다 현주건조물 방화야 이번이 처음이고 사람이 다치지도 않았기에 그걸로 어거지로 엮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엮는걸 못하게 막자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등이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해서는 내가 항소 해서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사랑하다 죽었다고
항소심 재판장 에서 떠들며 천억을 달라고 외치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꼬셔 내가 돈을노리고 최면걸어 죽였다고 말도 안되는 누명을 씌워 올려치기 하려는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과 추종하는 세력들이 꿈꾸는
최상의 시나리오 인데
바보 천치같은 내가 그들의 의도대로 알아서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사랑하다 자살했으니 항소 해서도 천억 달라고 씨부리는 모습이 날 누명씌워 엮으려는 무리들
에겐 금상첨화 이며 얼마나 재미 있는 시나리오 이겠는가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얼굴한번 보고 사랑하다가 그것도 3년 이상 날 못잊다 자살 했다는 것도 강아지도 믿지못할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인데
죽기 전에 날 사위로 생각하고 자신의 전부를 주라는 유언까지 했다는 거짓 유언비어는 강아지도 못믿을 신빙성이 떨어지는데 삼성공화국 한국에서 거짓 유언비어가 삼성가 오너들 홍라희 이재용의 의도되로 사실처럼 마구 퍼지며 조작하는건 삼성의 거대한 음모가 아니면 있을수 없는 강력한 정황 증거이다 변호사 공증없는 유언 상속이야
법적인 효력이 없어 삼성회장이 설사 그런일이 있었다 한들 안주면 그만이다
만약에 법적으로 나에게 상속된 거라면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남동생 2005년2월 주미 대사를 역임한 중앙일보회장 홍석현은 2005년 7월22일 삼성X파일사건이 MBC 이상호 기자가 터트리며 언론에 대서특필 되자 사임하고 자존심 강한
이건희 회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텍사스MD 엔더슨 암센터에서 재발한 폐암 치료를 받을시기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뉴욕 현지시간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이재용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음폐하려다가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의 노력으로 들통나자 이건희 회장을 속일려고 법적 상속까지 하고 날 못잊어 자살했다고 조작하고 폐암치료 받던 이건희가 충격받아 병세가 악화될까봐
안알리고 화장하고 장례 까지 마쳤치고 난후 나중에 알렸다고 조작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가장 두려워 하는 이건희 회장을 속일려고
이윤형이 만약에 법적으로 상속까지 하고 자살했다고 조작했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며 100%로 이윤형 양을 청부살해한게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고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위한 쇼 라고
더욱 확신이 드는 또하나의 강력한 정황증거 이기도 하다

법원에서 선고가 끝나고 7일 안에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사선 변호사가 있는 사람은 사선변호사를 시켜 항소장을 제출하기도 하고
나같이 사선 변호사를 구할수 없는 사람은 항소장을 작성하여 교도관에게 제출 하는데 성동구치소 같은 미결은 혹시 교도관이 항소장을 받아 놓고 안받았다고 거짓말 할까봐
항소장을 제출함과 동시에 담당 교도관 이 공문서 장부를 들고와서 항소장 뿐아니라 법원이나 검철총에 제출하는 반성문 답변서 재판서류나 기타 중요한 관공서등 또 법률구조공단에 체출하는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면담 신청서 등도
체출 했다고 증거가 될수 있는 사동 수용자 모두가 작성하는 공문서 장부에 기록하고 내 무인을 받아 확인을 하여 혹시
항소장이 어떤 돌발 상황으로 법원에 도착 못해도 내가 교도관 에게 제날짜에 제출 했다는게 확인되면 항소를 할수있게 하는데 그후 형이 확정되어
경상북도 대구교도소나 경북북부 제1-2 교도소 전라남도 목포교도소로 이송을 가서 생활 했는데 관공서 에서 오는 편지는 수용자 에게 전달해 줬다고 공문서 장부에 무인이나 싸인을 받아 가면서
반대로 수용자가 관공서에 보내는 여러가지 서류 편지 등은 교도관이 장부에 적어 내 무인을 받아 일일히 확인시켜 준걸 못봤어 그래서 교도소는 서울 성동구치소 처럼 미결이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만약에 미결에서 기결로 넘어가서 교도소로 이감가서 생활 하던중 갑자기 중요한 사건으로 꼭 항소나 기타 등 등 일이 있어 서류를 교도관에게 제출했는데 여러가지 돌발 상황으로
서류가 제 날짜에 도착못해 엄청난 불상사를 당하수도 있기에 반드시 미결이나 기결할것 없이 전국 의 교도소 전체 에서는 모든 법원 검찰청 기타 중요한 관공서 등에 보내는 서류우편 이나 등기 등은 반듯시 10년간 폐기 할수 없는 공문서 장부에
담당 교도관이 의무적으로 기록하여 적어 수용자의 무인을 받아 확인시켜 줘야 한다고 그후 2013년 법무부장관청원 밎 헌법소원을 했지만 기각인가 각하 되었습니다
내가 2006년도 12월 쯤인가 여권법위반으로 순천교도소 에서 영등포 구치소로 이송되어 기결수 사동에서 있을때 그곳에서 다른 수용자로 부터 들은 이야기 인데 그전에 어떤 사람이 항소장을 교도관 에게 제출 했는지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 항소장이 제 날짜에 도착하지 않아

교도관 에게 추궁하자 교도관도 자신이 처벌받을 것을 염려해서 인지 고의인지 모르지만 받은적이 없다고 부인하여 결국 항소 재판이 취소되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벌어진 적이 어디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고
특히 같은 거실에 느닷없이 영등포 교도소에서 이송와서 수용된 사람중에 경제범인데 당시 영등포 구치소는 영등포 교도소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그때 당시 영등포구치소 에서 미결에서 형이 확정되어 기결수로 넘어가면 기결수 사동은 죄명에 상관없이 수용해서 절도범 강력범 경제사기범 모두 같이 수용 된 상태 인데 사업을 했다는 당시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또래 의 사람인데 사선변호사를 고용 했는데
사선 변호사 에게 항소장을 제출 하라고 부탁 했는데
변호사가 깜빡하고 제 날짜에 제출하지 않아 항소를 못하고 1심 에서 받은 징역 1년을 고스란히 살게된 사람이 당시 영등포 교도소로 갔다가
추가건이 생겨 다시 재판을 받으려 영등포 구치소로 당시 내가 있던 기결수 거실로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성동구치소에서 항소장을 교도관에 달라고 하여 두번이나 적었다가 찟어 버린적도 있고 한번은 적어 교도관 에게 제출 했다가 얼마후 불길한 마음이 들어
다시 교도관을 불러 항소장이 아직 직원실에 있냐고 묻자 있다고 하여 달라고 하여 찟어 버린적도 있는데
3월25일 목요일 4년 선고를 받았으니 7일은 다음주 수요일 까지 인데 아무리 늣어도 수요일 아침일찍 내야 그날 법원에 출창가는 교도관이 법원에 제출하는데 나는
항소하여 최소로 형기를 줄이고 싶었지만 위와 같은 정황으로 오히려 올려치기 당할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항소를 포기하고 수요일을 넘기고 다음날 목요일 아침에 담당 근무자가 날불러 직원실로 데려 가더니 왜 항소를 안했냐며 징역이 4년 이면 많이 받았는데 구치소 에서 확이해 .보니 아직 항소를 안해서 오늘 아침까지 지금 항소장을 작성하여
자신에게 주면 법원에서 항소심을 받아주기로 할거라며 나보고 작성 하라는걸 나는 안한다고 하며.다시 거실로 돌아 온적이 있다
나는 그후 다른 죄수들 중에서도 검사 구형대로 받고 올려치기 당할까봐 항소안한 사람을 여러명 만났는데 그들에게 교도관 아무도 나같이 왜 항소 안하냐고 이런식으로 한적이 없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후 거실로 돌아 왔는대 자칭 기자라는 50대로 보이는 사람이 노스케롤라이나는 원불교가 있는데
원불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본부인 홍라희 리음 미술관장이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나네
그후 그 거실에서 생활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놈이 전방 왔는데 다리에 문신이 있는 놈으로 사회에서 경찰관과 실랑이 하다
공무집행 방해로 들어왔는데 경찰관을 폭행한것도 아니고 경찰이 먼저 잡자 뿌리 치는 과정에서 경찰 옷이 찢어 졌다는데 공무집행 방해로 구형을 1년6월 받았데나 그놈은 전과가 좀 있는데 허기야

거실은 재범거실 이라 초범은 없고 나부터 다 전과가 있는 놈들이야
그 놈은 전남 순천교도소에서 과거 살고 나왔다는데 고향은 전남 어디라고 하는데
그 놈과 시비가 나서 싸움이 시작됐는데 나보다 10년 이상 한참 어린놈 인데도 불구하고 힘대결 에서 내 상대가 못되어 내가 그놈 멱살을 움켜쥐고 벽으로 밀자 그 놈이 꼼짝을 못하면서도
나에게 덤빌려고 안간힘을 쓰자 지나가는 근무자가 보고 관구실로
갖는데 서로 화해 시켜 다시 거실로 왔는데
몆칠후 다시 이놈과 서로 욕을하며 몸싸움을해 관구실로 갖는데 나를 조사실로 보낸다고 짐을싸서 들고 가보니 이번에는 9하4실 여긴 조사실이 아니고 일반 중거실이었다 그러나 규정상 일반거실도 조사실로 할수있다나 명목상으론 조사징벌실이 사람들로 차서 부족하여 일반 거실로 조사실로 한다고 하는데 다만 징벌이 떨어지면 조사실 수용기간을 징벌기간에 산입 하지 않는단다 조사실에 좁은독방에
많게는 3명 까지도 집어넣어 원성을 사던 것들이 조사실이 꽉차지도 않았는데
이러는건 당시 나에게 삼성회장이 천억을 준다는 거짓소문을 교도관들이 듣고 나에게 아부하려 그런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1사에서 9사로 사동을 많이 건너뛰어 옮겼다
새로옮긴 거실에 서울 말씨를 쓰는 봉사원 있었는데 나이는 나와 동갑인데
신사동에 무슨 대부업체 이사라는 명함을 나에게 보여 주기도했다
이놈은 폭처법등 상해로 들어 왔데는데 천호동에서 술에 어느정도 취해 걸어가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애들 5-6명 무리와 어깨를 부딪쳐 시비가 붙었는데 여러명이 달려드니 힘으로
밀리자 근처에 있던 식당주방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나와 찔러 사람은 죽지않고 상해를입혀 재판중 이라고

하는데 결국 방에있는 놈들과 말싸움이 시작되자
구치소에 오전 8시 이후 아침 점검이있고
오후 5시 전후 저녁 점검이 있는데 오후 점검때 관구실에서 교도관이 직접 점검 하는데
이놈이 갑자기 손을 들고 일어 나더니 내가 옷 거리를 갈아서 자신을 찌르려 한다며 무서워서 나랑 못 있겠다고 교도관에게 얘기하자 옆에 있던 다른 두놈도 갑자기 이놈과 합세하여 옷거리를 부러트려. 갈아서 배를 .찔러 죽이려 한다고
거짓말로 쇼를 하며 개지랄을 떠는게 아닌가 이놈이 아까부터 관구실 면담 가서 오랜시간 있다 왔는데
이것들이 갑자기 무슨 개지랄인가 의문이 들기시작 했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과 관련해서 내가 재판받은 걸
교도관들 통해서 내정보를 전달 받을수도 있는거 아닌가
난 말한적이 없는데 처음보는 놈들인데 정말 황당한 누명을 씌우네
이 거실에 더 있다간 무슨 누명을 쓸지 모른다고 판단한 나는 입실거부를 신청하자 짐을 쌓아서 나오라고 그래서
교도관 근무실에 잠시 나를 두고 담당교도관은 어딘가 가고 없었는데
책상에 뭔가 적은 쪽지에 9하11실인가 살인미수 무기구형 이라고 적혀 있는걸 보았는데
당시 9하11실은 초범 거실 인데 살인미수 인데 무기구형을 놓다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며
피해자가 반신불수가 됐거나 아니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검사가 고유권한 으로 살인미수를 무기구형 놔서 한인생을 사법살해 하려는건 아닐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우며 검사나 판사 말한마디에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 현실이 서글 펐지만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어쩔수 없는게 내위치 였다
그후 다시 7하 조사 징벌실로 가서 있었지 서울 성동 구치소는 당시 조사 징벌시 자신의 짐을 대부분 갔고 들어 갔으며 바닥도 따뜻하게 전기 판넬을 깔아 겨울에도 별로 춥지않게 해놨지
그후 조사실에서 싸움과 입실거부 건으로 조사받는데
나하고 싸운 다리에 문신있는 전남출신의 30대 초반놈이 나에게 힘으로 밀리면서 목에 나에게 멱살을 잡히면서 약간 기스가 난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다행이 그놈이 진단서를 첨부해 고소를 하지않아 검찰에 송치는 되지 않은 상황인데
조사실 교도관이 흉기로 때린적은 없냐고 묻기에
그런적은 절대 없다고 말하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다른 교도관이 오더니 하남경찰서 에서 형사들이 수사 접견이
왔다며 날 데려 갔는데 수사 접견실로 교도관을 따라 가보니 둘다 처음보는 형사인데
아니나 다를까 2003년 4월에 있었던 호미 사건을 이제와서 신고가 들어 왔다며
조사 하는데 담당 검사가 솔찍히 얘기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약식기소 해서 벌금 처리해 준다고 하는데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근데 이조사 에는 셋째이복형 진술에 큰 모순이 있었는데 진술에서는 내가 미국에 뉴저지 유니언 시티에 있던 이복 누나가 셋째이복형 에겐 친누나가 되는데
내가 지 친누나 한테 셋째이복형을 죽이 겠다고 하고 바로 4월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와서 2003년 4월7일 찾아와 호미로 자신의 때렸 다는데 나는 이미 2003년 1월17-인가18일 인가 뉴욕 케네디 공항을 거쳐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한국에 와서 있던 상태이니
셋째이복형 말이 앞뒤가 안맞는 거짓말 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운전중에 주먹으로 내가 때렸다고 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이다 차를 타고가다 서로 말다툼이 있자
셋째이복형이 갑자기 차를 세우고 나를 내리게 하여 주먹으로 느닷없이 몆대 내얼굴을 가격하여 참다못한 내가 단한대 때렸는데
이놈 눈탱이 가 밤탱이 되고 일부 찟어져 피를 흘렸다
그러자 지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러 나에게 맞았다고 고발하자 잠시 후 경찰 순찰차가 왔는데
이놈이 경찰에게 날잡아 가라고 고발하자 난 셋째이복형이 먼저 여러대 때려 난 한대만 때렸다고 말하자 셋째이복형은 운전중에 맞았다고 구라는치는데
경찰이 무슨관계 냐고 묻자 이복형제라고 말하자 쌍방폭행은 서로 벌금 나올 꺼라며 얘기하자
셋째이복형이 경찰보고 그럼고소 취하하겠 다고 말하자 그럼서로 없던일로 하자며 합의 한걸로 알고 간다며 경찰차를 타고 갔는데 어짜피 폭력은 공소시효가 5년인데 7년전 사건이니 공소 시효가 당시 지나간 상태 내가 감출이유가 없지
상해는 공소시효가 7년인데 이사건은 2003년3월8일 내가 1심선고가 끝나기도 전에 수사가 진행 됐다고 내가


?

192p-묻지도 않았는데 수사 접견온 형사중에 한명이 말해줬다
아무래도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며 수사 날짜를 가르쳐 준것은 내가 항소 했으면 항소심에서 병합하여
검사가 재구형 놓으면 선고를 올려치기 할려고 했던계획 이었다고 일부러 가르쳐 준거거나
아니면 무심결 한말인가 몰라도 항소했으면 검사가 항소심에서 병합하여 올려치기 할려던 계획을 형사가 자백하는건 아닐까
나 스스로 추리해 본다
내가 올려치기 당할까봐 불안을 느껴 항소를 포기 한거지
일반적으로 검사가 부대항소를 안하면 항소심에서 판사가 1심보다 더 많은 형을 부과할수 없지만
추가건이 올라와 항소심 에서 병합 하는건 상황이 다른거라 검사가 재구형 놓고 얼마든지 올려치기를 할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수용자중에 항소심에서 추가건이 병합되어 올려치기 당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여러번 있다
당시 셋째 이복형놈 집은 서울 고독동 아파트에서 기거했다 는데 나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데
이놈이 갑자기 지하고 친한 외삼촌이 있는 하남시 비닐하우스로 데려가
외숙모가 이놈이 돈이많아 그런지 반갑게 맞이하고 나에게는 시쿤둥 했는데

셋째이복형 얼굴 한쪽 눈 부위가 밤탱이 되어 약간 찟어져 피까지 묻어 있자 눈을 보관했던 비상 약으로 치료를 해주며 왜 그러냐고 묻자 지가 먼저 때린것은 빼고 나한테 주먹으로 맞았다고 하자
주먹으로 한대 때렸는데 이렇게 상처가 크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는데

셋째이복형이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께 욕을 하는게 아닌가
어릴때부터 밤에 잘 때 오줌을 중학교 때까지 싸며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어머니 명의로 대어 있던 집문서 땅문서 외삼촌과 짜고 팔아 1984년 시가 7천만원을 지금 시가 10억이상의 돈을 지들 형제끼리 나눠주고 그걸 기반으로 먹고살수 있게 된것들인데

나한테는 한푼도 없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그동안 힘들게 살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날 비닐하우스 농사일 시킨다고 중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면 쇠몽둥이 농기구 등으로 때리면서 반 강제적으로 일시켜 그걸 기반으로 오늘날 100억대 가 훨씬넘는 첮째이복형수 말로는 돈 된다면 전라도까지 찻아가 땅과 부동산을 사놓은게 많아서 200억대 가까울 꺼라고 그러더라고 어릴적엔 공부는 제일못한 놈이 희한하게 돈은 제일많아
그렇게 부를 축척한 놈이 어머니에게 석고대죄 해도 시원찮을 건대
고생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에게 쌍욕을 하자
내가 순간 우발적으로 열받아 외삼촌집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하고 방하고 붙어 있는데 내가 방문 근처에 있었는데 바로 방문넘어 부엌쪽에 호미가 보여
그걸들고 한대 때렸더니 119에 신고하고 날리 발광을 쳐 조용히 온적이 있었다 그후 이복형을 찾아가 미안 하다고 사과하고 구두로 합의하고 없던일로 하자고 한 사건 인데
그게 7년 만에 신고가 들어왔데는데 내가 얼마나 황당하겠냐

물론 저번에 셋째 이복형이 7년전 호미 사건을 고소하다고 하는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때 민사 법원에서 나에게 보낸 서류를 보긴 했지만 공갈 치는줄 알았다 나는 법을 잘몰라 설마 7년전 끝난 사건을

지금와서 고소를 못할줄 알았다 고소할려면 당시에 해야지 7년후에 한다는게 당시 법을 모르던 내상식에선 도저히 있을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2주 진단 나온 사건을 법이 아무리 고무줄 법이라지만 지금와서 못할줄 알았다 그러나 형사가 조사하고 가며 검사가 약식기소 해서 벌금 나올 거라고 약속 했다며
부를수도 있고 안부를 수도 있는데 안부를 가능성이 더 크다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말을 해주고 갔는데
조사징벌 사동에서 돌아온 후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에 같은 조사징벌자들 이나 여러사람에게 문의하자
벌금나올 꺼라고 그러는 사람도 있었고 그중 단 한명만이 좀이상 하다며 7년전 사건을 이제와서
경찰에서 수사접견 온것은 뭔가 있다고 단순히 검사벌금 줄려고 검.경이 절대 그렇사람들이 아니라며
진단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검사가 엮을려고 그러면 진단 10주 나온것도 단순상해 사건으로
처리할수도 있지만 진단이 안나와도 흉기로 위협만해도 살인미수로 엮을수도 있데
나보고 조심하라고 그러더라고 재판받는 수용자에겐 검사 권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더니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검사를 하려고 하는가 그러나 나는 만약에 검사를 시켜줘도 않한다 변호사는 해도 당시 법을 잘 모른던 나는 그래도 설마 7년전 2주진단 나온 사건을 당시 신고도 안한건데
당시 구두로 합의 봐서 없던걸로 한걸 7년이 지나 이제와서 어떻게 하겠어 하며 좋게 생각하려 하면서도 왠지 불안안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엔 싸움과 입실거부가 겹쳐 30일 징벌을 받았다
당시 서울 성동구치소는 조사실은 징벌기간에 포함을 안시켜 실제 조사실 에 있던것 까지 포함하면 근 40일가까이
조사징벌실에 있게되는 셈 징벌을 받는 동안에 5월 초쯤에 미결에서 기결로 넘어가서 미결복을 벗고 기결수 옷을 갈아입고 징벌을 마치고 5월중순이후 징벌이 종료 되어
기결 사동으로 배실 되었는데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당시 기결사동이 몇동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않는데
거실은 뒷쪽에 가까운것 같은데 거실은 중거실 인데
4명이 있었고 나까지 5명이었는데 몇칠후 한명이 다른 거실로 배실가고 그날 한명이 빠져 저녁 점검이 끝나도 사람이 배실해 오지않자 오늘은 좀 널널하게 자는가 보다 생각하는데

193p- 그것도 저녁 열시 넘어 이불깔고 자고 있는데 갑자기 덜컹거리며 쇠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사람이 교도관이 문을 열어주자 들어 오는데 당시 서울 성동구치소 수용거실 문은 총구 비슷한 열쇠를 교도관이 가지고 다니며 철문에 총구같이 생긴 곧에 끼워 돌려 여는데 열때 철문 소리가 덜커덩 거리며 시끄럽게 나는데
거실 사람들은 좀 편하게 넓게 자나 생각하고 이불깔고 누워 있다
때아닌 불청객을 보자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중에 징역 경험이 많은 하나가 베트콩 이네
그러며 짜증나는 투로 말하는 소릴 듣고
그게 무슨 소린가 물어 봤더니 불구속기소로 재판을 받다
피고인이 출국금지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외국에 나갔다가 또는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선고때 참석 하지 않아
선고가 법원에서 피의자 참석없이 선고 되고 수배중인 상태에서 야간에 불신 검문이나 공항에서 입국할때 잡혀 이런식으로 야간에 느닷없이 미결도 거치지 않고 형이 확정 거실인 기결수 거실로 들어오는 경우보고 베트콩 이라고 장난삼아 말한다고 하는 소릴 들었습니다
새로온 불청객이 오자 우리는 잠자리를 다시피고 자리를 정해 이불을 다시 깔고 잤습니다
그후 그사람 얘기를 들어보자 나이는 당시 45세로 캄보디아 인가 어디서 여행사를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위에 들은 대로 재판중에 외국에 캄보디아 인가 베트남인가 갔다오다 공항에서 입국시 잡혀 바로 여러 절차를 거쳐 우리 거실로 왔다고 하는데

과거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 디스크가 좀 휘어져 허리가 휘어져있는 모습으로 걸음 걸을때도 기우둥 거리며 걷는 모습이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로온 베트콩은 부침성이 많은건지 모르지만 거실 사람에게 자신의 소개를 거침없이 얘기하며
말을 많이 걸으며 거실의 분위기 메이커 였는데 거실에는 기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바둑을 제법 잘두는 사람이 있었는데
계속 지면서도 베트콩이 계속 바둑을 두자고 하며 두는데 계속 지니까 장기로 바꾸어 두자고 건의하여

장기도 계속 지면서 조롱받는 데도
도전을 하는 모습이 좀 우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트콩은 남들은 한번도 하기 힘든 특별 접견을 여러번 하며 영치금도 한번에 백만원이 들어오는등 뭔가 범상치 않은 것 같았지만 좀 우스광스런 모습과 행동으로
거실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여러 정황상 당시 처해있는 내처지를 생각하면 혹시 삼성그룹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닌가 속으로 은근히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특히 그런 이유는
베트콩이 동남아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도 가봤다며 캐나다 밴쿠버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하며 영어도 제법 잘하는 등 하여 또 뻥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닌데 이사람 말로는 삼성회장 과 장남을 만나 본적이 있다느니 자신이 교정청장을 잘 안다느니 하는 소릴 들은 적도 있다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삼성회장 막내딸이 미국 뉴욕에서 죽을 때 삼성회장이 미국 텍사스 국제 암센터에서 암치료 받느라 아파서 치료 받고 있었다고 중얼 거리는 소릴 들은 적도 있습니다
자신이 베트남 에서 곰 농장을 한다는데 내가 징역 4년이 선고 됐다고 하니까 징역다 살고 나오면 할일없으면
베트남 오면 돈벌게 해준다고 하며 전화 번호를 적어 줬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 지만 그 다음에 말한 내용이 특히 의미 심장한 말인데 내가 징역을 무사히 살고 나오면
이란 단서를 달아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나보고 추가 징역이라도 받으라고
악담하는 거냐고 내가 막 몰아 세우며 야단을 친적이 있는데
농담이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여 그냥 넘어간적이있다 내가 폭행등 상해 죄명으로 하남경찰서 수사 접견을 받았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날 살인미수로 엮어 안 내보낼 수도 있다며 지혼자 씨부리기도 하며
성동구치소 교도관들이 베트콩과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이놈이 미쳤나 생각하고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자 그냥 웃자고 한말 이라며 얼버부려 이상하게 생각

한적도 있다
또 이상하게 나에게 면회를 안오던 첮째 이복형수가 갑자기 면회를 와서 나에게 온갖 좋은 말로 아부를 떨기에 이상하다 십었는데 나에게 영치금 10만원을 넣어주고 접견실 에서 나에게 온갖 좋은 말로 나에게 아부떠는 서신까지 넣어서 갔는데 내가 구속될때 가지고 있던 돈이 절반 가까이 써서 40 몇 만원 남았는데
영치금10만원이 더해져서 50몇만원이 적혀 있는 영치금 영수증을 교도관이 전달해 줘야 하는데 베트콩이 쇠창살 근처에 있다가 교도관에게 받아서 나에게 전달해 주는데
누가 보면 면회를 꾸준히 와서 영치금을 제대로 넣어 주는 사람으로 오해 하기 딱 좋게 잘못 생각할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마침 거실 쇠창살 창문 앞에 서있던 교도관이 전달해주는 영치금 영수증을 받아보고 나에게 전달해 주며 영치금 없는줄 알았는데 제법들어 오네 면회도 제법 오냐고 물어 보기에 나는 그게 아니라고

194p-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딱 잘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와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이게 삼성회장에게 이복형들이 영치금을 꾸준이 넣어주고 안부편지 까지 넣어주고
사이가 좋은 관계로 누명씌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 할려고 회장 본처와 장남 등이 모사를 꾸며 중간에 브러커를 통해 조율하여 사전에 이복형과 형수와 짜고 계획한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와서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 베트콩이 이윤형이 뉴욕에서 죽을때 당시 이건희 회장이 미국 텍사스 암센터에서 입원하여 암치료 받고 일을 시기라고 말한적이있다
만약에 이사람이 삼성회장 본처나 장남이 보낸게 아니라 삼성회장이 보낸 스파이라면
삼성회장도 자신의 막내딸이 어쩌면 자살한게 아니라 타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의심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봤을땐 회장이 보낸 스파이보단 본처와 장남이 보낸 모사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도 든다
2005년 11월19일 삼성회장 막내딸이 미스테리한 죽음을 당하자 당시 인터넷 등에서 타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둔 댓글도 있었으며 막내딸 생모가 홍라희가 아니라며 이윤형이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이라며 진짜 생모가 누구냐는 글이 인터넷 검색창에 1위를 하는등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삼성회장 막내딸이 본처가 낳은 딸이 아니라는 말은 막내딸이 죽기전 부터 은근히 있었으며 죽은후에는
인터넷 검색창 순위에도 오르며 이미 오래전 부터 타살 의혹이 터졌던게 사실이다
그후 느닷없이 거실 화장실을 고쳐야 하기에 거실인원 전부 만기방에 잠시 있다가 오라며 옮긴 적이 있는데 만기방은 출소 대기실로 죄수가 출소하기전 1박2일 정도 대기하다 나가는 거실로 사동맨 앞에 3개 거실이 나란이 있는데 우리가 옮긴 거실은 3번째 거실 이었습니다
그후 점검때 관구 계장이 우리가 만기 출소자줄 알고 그동안 수고 했다며 사회나가 잘 살라고 하자 옆에 있던 담당 근무자가 만기자들이 아니고 거실 화장실 고치려고 잠시 와있는 거라고 정정하는 해프닝 까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대략 3-4일 인가 있다가 수리가 끝났다고 본 거실로 옮기는데 갑자기 절도로 징역 4월을 받아 만기가 얼마 안남은 놈이 당시 서울 성동구치소 기결수 거실은 미결과 달리 죄명과 상관없이 수용하였음
성동 구치소 기결수 거실은 형기가 짧은 사람은 그곳에 잠시 대기하다 출소 했고 형기가 어느정도 받은 사람은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가기전에 잠시 대기하는 곳이 었기에 거실에 유동인구가 많아
사람이 금방 금방 바뀌 었습니다 그리고 나같이 4년이상 받은 사람은 거이 항소하여 경기 하남 광주 이천 성남등 지역은 성동구치소에서 항소하면 수원 구치소로 이송갔고
그전에 2004년도 살인미수로 서울 북부 법원에서 5년형을 받아 항소하니 그땐 안양교도소로 이송가서 미결 사동에서 서울고등 법원까지 출정가며 재판받았는데 이젠 바뀌어 서울 북부 지역은 노원구등 여러지역인데 서울 북부사건은 항소하면 서울구치소로 이송간다고 하는 소릴
들은 적도 있었는데 이부분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그외에 기억은 잘 안나지만 서울 동부법원 사건도 항소하면 성동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가서 서울고등법원 에서 항소심 재판을 하기에
서울성동 구치소 기결수 거실은 항소를 포기한 아주 경미한 형기를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고 또는 다른 교도소로 이송 갔다가 서울 성동구치소가 여러가지 여건이 지방 3급이하 교도소 보다 훨씬나아 나는 지방 2급 교도소 보다 서울에 있는 구치소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건
나의 연고지 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울이 한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은 자유라고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내말을 입증하는 증거는
전국의 지방에서 모두 서울로 모이는 것만 봐도 꼭 일자리 때문만이 아니고 서울이 한국에서는 그만큼 살기좋은 도시라는 반증이 아닐까 벌금이 있는사람은 정식재판 청구를 하여
이송온사람도 꿰 있었 습니다 -
화장실 공사가 마무리 되어 본 거실로 옮기기 전에 만기출소 거실에서
절도로 항소를 포기하여 만기출소가 얼마 안남은 놈이 거실에 붙어 있는 거울을 느닷없이 깨서 또 그걸 사각 모양으로 짤라 교도관 몰래 지 짐가방에 넣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우리가 이 거실에 들어올때 멀쩡했던 거실 거울을 짜르면 나중에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면 어떻 하냐고 내가 따지니까 우리가 전에 있던 거실로 되돌아 가면 거실에서 사동을 밖을 볼수있게 가져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동에서 특히 비교적 근무자 실과 떨어져 있는 거실에서 갇혀있는 수용자는 밖의 모습을 볼수없어 거울을
손잡이 모양으로 작게 짤라서 거실 쇠창살 사이로 몰래 내밀면

195p-사동에서 움직이는 교도관이나 사동도우미 등이 움직이는 모습을 거울에 비쳐 몰래 볼수 있기에 그런 용도로 사용할려고 가져 간다는 것이다
물론 비쳐 보다가 교도관에게 걸리면 거울도 뺏기고 조사징벌실로 직행하여 조사를 받아야지
그러나 만기도 몇칠 안남은 놈이 그리고 사동에 있는 나는 곳 지방의 다른 교도소로 이송 갈꺼고 다른 사람도 거이 형기가 얼마 안남은 사람이고 베트콩 역시 선고 재판때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징역10월이 선고되어
법원에 선고 재판에 참석하지 못하여 선고재판 판결결과를 모르고 그러므로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하지 못하여 항소를 하지 못하고 형이 확정되어 기결수가 된게 누가봐도 증명되어
이러한 사유를 법원에 제출하여 항소심을 열게 해달라고 신청 했는데 받아 들여지면 다시 미결수 옷으로 갈아입고 미결 사동으로 가서 항소재판을 다시 참석하게 되기에
거실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기에 사실 이 거울의 용도가 불필요한 것인데 이러는 이유를 나는 당시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놈보고 너 공공기물 파괴가 징역이 얼마나 센줄 모르냐 니가 절도로 징역 4월을 받았다는데-
사실 이놈은 절도 한것도 계속 부인 했데 그래서 징역 4월도 누명 썼다고 억울해 하는데
절도를 했는지 않했는지 내가 알길이 없지만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조작과 누명으로 억울한 사연이 있다는 것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동서고금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 겠지 -
내가 이놈보고 공공기물 파괴는 판검사 더러운 놈만나면 징역 1년 이상도 받을수 있는 범죄이다 그냥 거울 던져놓고 나가라고 말하자 이놈은 내말을 듣지 않는데
저번 징역을 살면서 어떤놈 에게 들은 이야기 인데 남의 영업하는 레온사인 간판을 술먹고 취해서 깬적이 있는데 무려 징역을 2년이나 받았덴다
시중에 떠도는 잘못 알려진 소문중에 교도소 내에서 수용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판검사 들이 정상참작 하여 비교적 형량을 적게 때린다는 소문은 과거는 모르지만 지금은 거이 비슷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봐야한다
예전에 일본에서 일할때 한국에서 온 놈중에 미국도 가보지 않은 놈이 미국 갔다 왔다고
구라치다가 내가 로스엔젤스 가보니 어떻냐고 물어보자
웃기지도 않는게 그놈은 LA를 갔다 왔다며
LA하고 로스엔젤스 하고 틀리다고 지랄하여
거짓말 한게 들통이 난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놈은 끝까지 LA를 갔다왔다며
LA하고 로스엔젤스 하고 틀리다고 끝까지 우기 더라고
카더라 하는 방송은 믿을게 못되지
1년에 한국인 들이 수십만명 이상이 미국을 갔다 오는데 교도소안 에서는 미국을 갔다온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아무튼 이놈은 내가 극구 만류 하는데도 불구하고 깨진 거울을 가방에 넣어 먼저 나가고 나는 뭐가 이상해서 맨 나중에 나가는데 베트콩이 아직안가고 밖에서 담당 교도관에게 거실 안을 쳐다보며 뭔가 교도관에게 얘기를 하는데
느낌에 거실 거을을 내가 깼다고 지랄 하는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오는데 만약에 내가 깼다고 거짓말로 누명 씌우면 근무자 일지에 적힐 것이고
이게 나중에 근거가 되어서 그 거울을 누군가에 조직적 으로 전달되어 칼처럼 예리하게 갈아 목부위를 자해하고 나보고 누명 씌우면 내가 꼼짝 없이 살인미수로 누명쓰게 되는데
처음부터 별 이상이 없는것 같은 거실을 이곳으로 옮긴것 부터 뭔가 석연찮고 만기 출소도 얼마 안남은 놈이 거울을 깨서 가지고 짐 가방에 넣어 가는것도 이상하고 특히 베트콩이
뒤에 남아서 짐을 들고 본거실로 가지않고 교도관 에게 뭔가 설명하는 모습이 모든게 나에게 누명씌우기 위한 치밀한 시나리오 인가 의심이 들기 시작하여
사동을 옮겨 본거실에 도착 해서도 짐을 들고 거실에 들어가지 않고 이대로 입실거부 하여 이러한 사실을 조사실에서 얘기해야 조직적인 음모의 배후의 덧에 빠져 나올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닐까 거실 생활도 그런대로 있을만하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 갈때까지 그냥 여기 있을까 지금 또 조사 징벌실 가면 TV시청도 못하고 모든게 제한 받아 불편한데 이런 딜레마에 빠져 고민 하다가 그냥 입실거부 하여 이러한 사실을 조사실 에서 얘기 하는게 났겠다 십어 입실거부를 하고 다시 7하 조사 징벌실로 가게 되었는데
거울을 짜른 놈도 조사 징벌실로 와서 나와 좀 떨어져 있는 다른 거실에 수용 하지만 사동은 7하로 같아 운동할때 이놈 거실 앞으로 지나 갈때 인가 나보고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자신은 거울을 짜른 적이 없는데 무고하게 자신을 걸고 넘어 갔다고 지랄하여 일이 복잡하게 꼬이는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 다음날 에 느닷없이 검찰청 출정이 있다고 하여 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호송버스를 타고 가면서 원래는 검사가 부르지 않고 약식기소로 벌금형 이 나오길 기대 했는데

196p-검사가 부른다는건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으며 지난번 불아한 걱정을 했던 경찰 조사시 죄명으로 단순 폭행 상해가 아니라 혹시 검사가 죄명을 살인미수로 바꾼건 아닌지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하며 한편으론
설마 아무것도 아닌 오래된 사건을 그렇게 까지 엮을순 없겠지 하며 내 마음을 안위 하기도 하는 상반되는 기분이 었다 검찰청 검사실에 들어 가보니
저번에 방화로 조사받은 그 검사실 인데 그때도 검사가 조사 안하고 조사관이 조사를 하는데 처음엔 나에게 커피를 주며 나에게 존칭을 쓰며 부드럽게 조사하는데 나는 수갑을 찬 체로
조사를 받으며 긴장하고 있었는데 보통 검경 조사시 처음엔 신상 명세서를 적고 조사 신문이 들어가는데 신상명세서 까지는 조사관이 존칭을 써가며 부드럽게
조사 하더니 조사관이 내가 호미로 때릴때 세째이복형이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냐고 하길래 나는 단오하게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자 갑자기 나에게 욕을 하며 내가 너를 살인미수로 엮으려는게 아니잖아
인간적 으로 니가 피해자를 죽일려고 그런게 아닌지 지도 아는데 그러나 인간적 으로 호미로 사람을 때리면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건 인간적 으로 봤을때 그럴수도 있는게 아니냐 하며 나를 살살 설득해도 나는 왠지
그런 생각이 안들었는 데도 불구하고 조사관이 유도 하는데로 내 의사와 달리 인정하면 내가 살인미수로 누명을 쓸수도 있겠다고 직감적으로 생각이 들어 나는 사실대로 그런 생각이 든적이 없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를 아무리 협박하고 회유한다고 없던일을 거짓으로 꾸밀수는 없는 일이다고 말하자
조사관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흥분하여 나에게 쌍욕을 하며 협박하여 거짓조서를 꾸미려 했으나 나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조사관이 감추고 있던 내 수사기록 겉면이 보이자 죄명이 살인미수로 되어 있어
나는 설마설마 했는데 걱정했던 일이 사실로 들어나자 삼성그룹 오너들의 더럽고 교활한 배후로 이런일이 벌어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검사에게 지난 경찰수사 접견 조사시. 조사서에 죄명이 폭행및 상해로. 되어 있는걸 내가 확인했고. 또 형사가 검사가 약식기소 하여 벌금 나오게
해준다고 약속했는데 죄명을 검사가 살인미수로 바꾼 이유가 뭐냐고 왜 나에게 거짓말 했냐고 따지자 검사는 모른다며 경찰에서 살인미수로 처벌해 달라고 올라 왔다고 얼버 부리는데
경찰조사시 분명죄명이 폭행상해죄로 적혀있는걸 확인했는데 뭐가뭔지
당시 형사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나는 순간 내 인생의 운명을 건 심각한 판단을 해야했다.

(참고자료-64-프로이트가 우리를 지고의 진실로 신적인 진리로 이끌어 준다고 하는 그잘난 무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64-
-66-무의식의 창에서 문제가 되는것은 바로 주체이기에 프로이트가 진리 추구에 있어 확실성의 주체가 수행하는 기능을 구별해 냈습니다-
-67-사물의 실질적 시간과 논리적 시간은 다른 것입니까
논리적 시간은 세개의 시간으로 구성됩니다 가장먼저 보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은 통찰 이라는 지적 작용의 심리적 경험 속에서 상당히 정확하게 규정 된다고는 하지만 신비스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이해를 위한 시간이 있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는 시점이 있지요 물론 이는 그저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간단히 환기해 본것 뿐입니다. -67-
논리적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 하면서 전사의 우연과 연관의 자의성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를 고려하게 됩니다 왜 이것은 다른 모든것을 제처두고 꼭 저것과 결부될까요 현대과학이 우-68-리가 우연해 근거해 정립할수 있는것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준다할때
프로이트가 현대과학의 발달에 의해 제기된 문제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처음 우연- 확률 계산 전략 이상황을 시니피앙 이라는 관점에서 제한적으로 구조화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우연에 근거 할수 없습니다 현대의 게임 이론이 두 맞수의 전략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추론할때 상대방을 이길수 있는 최대한의 확률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식의 작전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는 이미 판은 짜여 있고 해당 시니피앙의 좌표 들이 그 짜여진 판에 기입되어 있으며 해결책이
그 좌표를 절대로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결론을 내리는 시점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환원을 기점으로 해서지요
결론을 내릴 시점이라 함은 판단하고 결론을 내릴 용기를 갖게 되는 시점 입니다 -68-)
-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자크 라캉 저/맹정현,이수련 공역 | 새물결 | 2008년 12월 -)


197p-
(참고자료-2013년 11월16일 토요일 한국일보 도박 관련 책을 쓴 김태수 변호사-
게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바둑처럼 수련을 하면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있다 포커 와 고스톱은 다르다
세계 포커 대회에서 아마추어가 우승하는 경우가 반이 넘는다 운의 승부이기 때문이다 카지노는 또다르다
친구끼리 하는 포커는 누군가 잃으면 누군가 따는 제로섬 게임 이지만
카지노 에서는 결국 카지노가 돈을 번다
2013년 한국일보 cover story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인 일본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취미는 도박이다 유럽 각지의 카지노를 둘러보고 쓴 <카지노> 라는 책에서 그는 룰렛은 많이 생각해야 하는 게임이다 첫째 숫자의 흐름이다 나오는. 숫자를 보면서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고 적었다
수학적으로 보면 관광객들이 바카라 모니터를 주시하는 거나 아사다지로가 조언하는 것은 헛수고다
바카라는 뱅커와 플레이어중 누가 이길지에 베팅하면 되는데 복잡한 규정을 걷어내면 동전 던지기와 비슷하다 동전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라고 해서 10번 던져 5번 이 앞면일 보장이 없듯이 바카라 에서 뱅커가 연속으로 이겼다고 다음판에 플레이어가 이길확률이 높아 지지는않는다 룰렛도 마찬가지 게임 참가자 들은 이전경기 결과를 참고해 확률을 계산하려고 애쓰지만 구슬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돈을 딸 확률에서 카지노 도박은 동전 던지기 와 다르다 동전던지기는 확률이 반반 이지만 카지노 도박은 업주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가령 룰렛회전 판에는 38개 칸이 있다 1-36의 슷자가 빨간 색과 검정색 칸에 적혀 잇고 0과 00 이 적힌 2개의 녹색칸 이 있다
색깔이나 홀짝 베팅의 승률은 이녹색 칸 대문에 36분의 18(50%)에서 38분의 18(약47%)로 떨어진다 바카라는 카드 를 추가로 받는 규칙에 따라 뱅커의 승률이 약간 높은데 이를 이유로
카지노 뱅커에 베팅해 이길경우 5%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 5%의 수수료로 업주는 게임의 우위를 지킨다
기계로 하는 도박도 다르지 않다 슬릇 머신을 비롯해 카지노에 잇는 각종 비디오 게임의 환급률 은 75%이상으로 법에 정해져 있다
국내 카지노 들의 실제 환급률 은 90% 정도다 물론 호객을 위해서다
카드 숫자를 더해 21이 넘으면 파산하는 불랙잭에서 카지노 의 우위 (약53대47) 는 고객이 먼저 카드를 확인 해야하는 규칙에서 비롯된다 블랙잭 은 다른 카지노 게임과 달리 앞선 판의 결과가 이어지는 판에 영양을 미치기 때문에 참가자 가 승률에 개입한 여지가있다
참가자가 이미 나온 카드를 기억 할수 있기 대문이다 이우너리 에서 카드카운팅 이라는 기법을 고안한 미국 수학자 에드워드소프 는 1962년 <딜러를 이겨라 >라는 책을 썼고 실제로 카지노 에서 번번히 돈을 따며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 했다 또1980년 대 매사추세츠 공대 (MIT) 학생들이 팀을 꾸려 카드카운팅으로돈을 따기도 했는데이들의 이야기는 21이라는 영화로 만들어 졌다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불가능 하다
카지노 회사가 즐어드는 카드를 끊임없이 보충해 자동으로 섞어 ㅜ는 기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는 어느 순간 우연히 돈을 땄을때 탁 일어나면 카지노 에서 돈을 벌수도 있겠지만 확률이 카지노에 유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게임을 계속하면 잃을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중력 에서도 고객은 불리하다 카지노의 딜러는 대개 40분 마다 교대 하는데 밤새 도박을 하는 사람이 딜러를 이길수는 없는 노릇 실제로 전문도박사는 한번에 35분 이상 도박을 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만큼 카지노는 업주에게 황금 알을 낳는 산업이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카지노 강원랜드의 지난해 영업 이익률은 31.2%였고 외국인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 코1리아 레저 (GKL) 와 파라다이스 의 영업이익률도 각각 29.1% 15.7%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은 14.4%였고 현대 자동차 는 9.9%였다
지난달 국정감사 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부터 6년간 강원랜드 에서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48명 이다 )-류오성 기자 -

내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힌놈의 골짜기 처럼 희생양 으로 누명 씌워져 엮인게 나도 믿고십지 않지만 점점더 확실해 지는것 같았다
과거 한국에 야바위 사기꾼들이 많았는데 야바위 사기꾼이 밥그릇 3개를 덥고 그안에 한군데 주사위가 들어 있는데 돈을걸고 그걸 맞추면 돈을따는 방식인데
실제로는 업어진 밥그릇 안에는 주사위는 없다
야바위 사기꾼에 걸린 피해자가 한곳을 지목하는 순간 고도로 훈련된 사기도박꾼 타짜 처럼 다른곳에 몰래 주사위를 집어넣어 결국 게임은 야바위 사기꾼이 이기게 되어있지

198p-이와 비슷한 사기인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것도 있다
내가 끝까지 삼성그룹.회장. 막내딸이 날 못잊어 자살한것 같은데 인감각서 사기당해 천억을 날린것 같다고 우기면 삼성그룹 회장 배다른 막내딸을 청부살해한 무리들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에 넘어가 내가 이윤형과 말한마디도 거이 안한 사이인데 나를 좋아하다 자살한게 아니고
재산을 노리고 최면을 전공한 박사들의 이론에도 없는 순간 체면을 걸어 죽게 만들었다고 누명씌워

추가건 올라온 살인미수로 내가 항소 했으면 항소심 에서 사건을 병합하여 재구형 놓고
올려치기 할려고 그런건 아닌지 걱정이 들어 항소를 안했다
물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처음엔 안믿을지 모르지만 내가 만약에 항소해서 계속
삼성그룹 회장 본처와 장남이 의도한 대로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날 사랑하다가 못잊어 자살해서 나에게 상속하고 그걸인감 증명과 각서 사기 당했다고
천억을 달라고 떠들면 삼성그룹 회장은 정말로 내가 본처와 장남이 조작하여 음모를 꾸며 유도하는 대로 내가 최면걸어 죽게 했을수도 있다고 삼성그룹 회장을 본처와 장남등이 계속 거짓말로 설득하면 오판할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과학적 상식 으로는 도저히 있을수 없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 이기도 해서
세계적인 삼성전자를 계열사로 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찌라도 과학적 논리를 벗어나
이런 말도 안되는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꾸민 음모에 더구나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자식인 첫째딸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 둘째딸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도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을진 몰라도 모든 사실을 눈치채고 있으면서 모두 본처와 장남과 한통속으로 한편일께 뻔하고 이들 모두 일심 동체로 내가 최면을 걸어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을 3년후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누명씌우면 내가 항소하여 계속 이들의 의도대로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날 못잊어 3년후 자살 했다

고 재판부에 바보같이 우기며 인감증명과 각서 사기 당하여 천억을 날렸다고 홍라희 이쟁용이 쳐놓은 미끼에 걸려 어릭석에 계속 우기면
나를 천억을 노리고 자신의 막내딸을 최면걸어 죽인 범인으로 누명 씌우려는 본처와 장남의 의도 대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오판하여 올려치기 당할수도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려 했던 것 같다
내가 왠지 항소하면 삼성그룹 오너들 에게 누명으로 엮여 불길한 일을 당할것 같은 불안에
항소를 포기하자 삼성그룹 오너들이 이제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래 항소심은 재판부가 바껴 새로 재판을 받는건데
물론 드문 일이긴 하지만 법원의 선고는 전적으로 판사 마음이라 1심 선고를 무시하고
1심 형량 보다 올려치기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검사가 1심에 불복하고 부대 항소를 안하면 그럴 일이 없다고 하는사람도 있는데
부대항소를 하지 않아도 추가건이 올라와서 항소심에서 병합하여
판사가 재구형 놓으라고 하여 검사가 재구형 놓으면 올려치기 당할수있고
그리고 1심에서 무죄 나온거 항소해서 유죄 나오고
또 1심에서 유죄 나온거 항소심 에서 무죄 나오듯시 또 모든게 대법원에서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경우가 종종 나오듯
재판은 판사들 성향의 차이와 드물게 삼성과 같은 거대 외부의 입김과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 틀려질수 있는 것이다
밥 먹을려고 밥숫가락 밥상에 놓아도 밥먹기 싫으면 갑자기 안먹을 수 있는게 마음이듯 사람 마음은 언제 어느때
바뀔지 모르는 것이야 그래서 사람은 믿을게 못되는 존재라 항상 사업상 계약을 하더라도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법적인 증거를 남기기위해 소정의 일정한 양식을 갖춘 계약서가 필요한 거야

그런게 없다면 나중에 딴소리 해도 법적인 증거가 없어 무용지물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소 하는 것도 여러가지 상황판단을 심사숙고 하여 결정해야 한다


(참고자료-1936~38년 소련의 보안경찰인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위원장을 지내면서, 일명 '예조프스치나'라고 알려진 가장 잔인한 대숙청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초년에 관해서는 키가 150㎝ 정도에 절름발이여서 별명이
난쟁이'였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17년 3월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내전 기간 동안 적군(Red Army)의 정치위원을 지냈고, 그후 여러 지위를 거쳐 정치적 승진을 계속했으며, 스탈린의 총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27년 모스크바 당중앙위원회
관리가 되었다. 1933년 4월 29일 그는 새로이
창설된 중앙숙청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무혈 숙청을 단행하여 당에서 수백만 명 이상을 축출했다 1934년 1월 제1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의 정위원이 된 그는 그후
2월에 L. M. 카가노비치의 뒤를 이어 당통제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요직에 앉게 되었으며, 1937년 10월 정치국의 후보위원이 되었다.

199p-한편 1936년 9월 26일에는 G. G. 야고다의 뒤를 이어 내무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으며, 1937년 1월에는 신설직위인 국가보안부 총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직위에 있으면서 그는 대숙청 기간 동안
스탈린의 적 또는 적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을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억압 또는 제거하여 소위 '예조프스치나'라고 알려진 막대한 월권행위를 저질렀다(→ 숙청재판 ). 숙청대상은 점차적으로 당 지도자층에서 당과 국가 비밀정보부원으로 그리고 마침내 일반 인민에게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38년 여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탈린의 의혹을 사게 되었다. 그해 12월 그의 뒤를 이어 L. P. 베리아가 NKVD의 총책임자가 되었으며, 그에 대한 소식은 1939년 1월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그후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과사전참조 -)

과거 소련의 조지아 출신의 스탈린이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의
비천한 출신 예조프를 소련의 보안경찰인 내무인민위원화 위원장인 고위직에 올리고 스탈린 정적을 대신 소련 역사에 유래없이 잔인하게 숙청하게
이용한후 토사구팽 이라는 고사성어 처럼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잔인하게 숙청한 죄를 물어 예조프를 죽이고
예조프에 대한 여러 기록을 지웠다
스탈린이 예조프와 함께 찍었던 사진속의 예조프를 지우듯
내가 항소해서 계속 그들의 의도대로 떠들었다면
삼성그룹 회장 본처와 장남등 본처 자식들이 한통 속으로
삼성그룹 회장을 설득하여 홍라희 이재용에겐 금상첨화로 나에게 징역은 징역대로 더받게 음모를 꾸미고

사건은 조용히 없던 일로 마무리 했을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이들의 음모를 눈치채고 뜻밖에 항소를 포기하자
7년전 사건을 살인미수로 추가건을 단독으로 기소 하려 하는데
삼성회장 막내딸이 계모로 보이는 본처와 장남등 에게 청부살해 됐을것 같다는 생각을 감추고
날 좋아하다 자살한것. 같은데 그냥 포기하면 이들이 샴페인을 일찍 터트려 날바보로 알고
더 이상 징역은 안받고 나에게 천억을 주려 했는데
겁이 많아서 못줘서 아쉽다고 교활하게 지랄할께 뻔하며
그럴때 진실을 터트려 세계양심에 밝히는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날 바보로 알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길 잘했다고 판단하고
여기저기 헛 소문을 터트릴 수도 있다
특히 해외에 이런걸 삼성그룹 오너 들이 스스로 인정하면
말을 되돌리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면 이런 말도 안되는 찌라시 소문을 퍼트린 배후가
삼성그룹 오너 라는걸 밝힐수만 있어도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을 청부살해한 범인이 들어난 것이다
범인이 용이자를 스스로 좁이고 스스로 범인임을 밝히는 어리석은 행동을
삼성그룹 회장 본처인 홍라희와 장남인 이재용이 스스로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미끼를 놓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대로 들어 맞을까는 아직 미지수 였다
특히 밑바닥 인생 들은 한긋 차이로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데
나사에서 우주선 발사의 가장많은 에너지가 소비 되는게 우주선이 대기권 통과에 있다
대기권 통과 하기가 힘들지 대기권만 통과하면 별 에너지 없이도 힘들이지 않고 목적지 까지 안정적으로 갈수 있다고 한다
사회도 안정적인 궤도에 있는 사람들은 데미지를 덜 받겠지만
어려운 서민들은 작은 일에도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데미지를 입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 대기업을 제외 하고 중소 기업이나 비정규직원 으로 남밑에서 월급 받아서
겨우 생활 하는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끗 차이로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 분명이 존재한다 사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인 서민인
우리의 일상 일지도 모른다
힘없는 자가 운명의 주사위 놀음에서 강자와 싸워 조금 이라도 살아 남으려면 기적같은 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정계 재계를 장악하고 연예계 언론과 방송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모현 대통령이 낮에는 자신이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삼성그룹회장이 대통령이라고 말할정도로

200p- 한국의 어떤 기업도 흉내 낼수 없는 독보적인 불랙홀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의
죽은 사인을 밝히는 것은 이미 승부가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이길수 없는 게임 일수도 있다
마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우승한 독일 대표팀이 한국의 고등학교 축구부와 경기하여. 승부를 .내려 한다면
이길수없는거와 비슷한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결코 진실을 밝히는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저항하여 무질서한 세상에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할것이다
그동안 내가 당한 그 모욕을 다값기 위해서는 삼성회장 막내딸이 억울하게 타살된 진실을 밝혀 영혼이 있다면
억울해할 삼성회장 막내딸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사망 사건의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진실을 밝혀 내가 그동안 삼성그룹.오너들과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한 공권력과 삼성그룹직원과
알바들 에게 엄청나게 당한 그 모욕을 값아야 한다
나는 순간 선택을 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성회장 막내딸이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란 일본 식당에서 우연히 같이 한 10여일 남짓 같이 일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얼굴하번 쳐다본 걸로 3년 이상 날 못잊다 자살 했다는건
상식적 으로 이해가 안가며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삼성회장 막내딸을 미국 뉴욕 으로 청부살해 하기위해 유학 보내고 살인교사 한것 같은데 그리고 엉뚱하게 날 희생양 으로 엮은것같은데
증거를 확보할수가 없네 삼성회장의 본처의 친딸이 아닐수도 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삼성회장 본처와 당시 미국 뉴욕현지 있던 장남일 것이다
그 이유로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아스카 일식집 에서 본 아가씨의 우연히 본 얼굴은 왠지 모르게 자만심 강한 부잣집 딸의 눈빛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겁먹은 불안한 근심이 있는 슬픈 눈빛 이었지
허기야 천하의 삼성회장 막내딸이 아무리 미국 이라지만 또고급 일식집 이지만 웨이츄레스를 식당에서 하다니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부잣집 여대생도 가끔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을. 해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삼성그룹회장. 막내딸은. 본처 .자식이 .아닌. 관계로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아 .집을떠나 .미국 .식당에서 .웨이츄레스 .하는게 더 .마음이. 편. 했는지도. 모르지.
나도. 이복형제들 .하고. 같이. 살아봐서. 그 .지옥같은. 심정을 .잘안다
삼성회장. 막내딸도. 혼자였고. 나도. 혼자였다. 물론나는. 어머니가. 어느정도 .살아. 계셨지만 .
4명의. 이복. 형제들이. 하이에나. 만도. 못한짓. 으로 .얼마나. 나와 .어머니께 .스트레스를 .주었는가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좀더일찍. 그집을. 떠났어야. 했어.
그러면. 어머니도. 더.오래 건강하게. 사셨을 .꺼고. 여동생도. 죽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러면 .내.인생도 .지금과는. 정.반대로 .많이. 변했으리라. 확신한다

(선데이 저널 특별취재팀 기사입력 2005년 12월2일 신문 들은 삼성에 의해 지원된
미국 뉴욕 경찰과 의료진의 말을 빌어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뉴욕 한국 일보 신용길 기자 등의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11월26일 미국 뉴욕 현지 시간 보도후
뒤늣게 자살등 을 시인 했다고 보도했다 더 타임즈 는 삼성그룹 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 고 전제하고 미국 에서 암치료 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 은
국회 소환을 거부하며 연락 을 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힘께 한국 내에서 는 삼성의 파워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삼성공화국 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처음에 치명적인 교통사고 로 숨졌다고
알려 졌다가 이어 불교 식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로 보도되는 과정에 갖가지 의혹이 제기 되었다
이어 뉴욕 타임즈에 의해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닌게 확인 되면서 다시 삼성 측에서 그녀는 자살했다
라고 밝혀 또 한번 세상을 놀라 게 했다 한국 정부 보다 더 정보력 이 뛰어 나다는
소릴듣고 있는 삼성회장.막내딸 이양 죽음 사건에 대한 대응은 국제적 대기업 답지 않은

201p-어설프기 짝이 없는 대처 였다 이는 국민과 사회에 대한 모욕 이고
바로 막내딸 이양 이란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 이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주검의
흔적은 남아 있다 당초 삼성 측은 조선 닷컴 등에서 막내딸의 사망설이 보도되자 지난21일
발표를 통해 지난18일 치명적 교통사고를 당한뒤 19일 새벽 의학적 사망 판정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21일 원불교
장례절차를 밟아 시신을 화장 했다고 전했다 이를 곧이 곧대로 타전한 유수의 국내외 언론들에 의해 윤형씨 의 교통사고사 소식이 알려 지면서
타국 에서 어린 나이에 짧은 삶을 허무하게 마감한 삼성회장.막내딸에 대한 뉴스를 접한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추모의 사연을 띄우는 물결이 이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사망원인 을 놓고
한국일보 뉴욕지사의 신용일.기자의 집요한 추적 끝에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라는게
밝혀 지면서 온통 충격에 빠져 든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게 갑자기 돌변하자 세인들의
주된 관심사는 과연 남부러울 것 없었던 재벌가 막내딸 이 삼성측의 말대로
자살한 이유와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가 집중적으로 쏠리고 있는 상태다
삼성.측은 지난 21일 까지만 해도 이윤형 이 미국 뉴욕대 에서 유학 중이던
지난18일 뉴욕 외곽 에서 운전중 사고를 당해 뉴욕의 한 병원으로 옮겨 졌으나 다음날 새벽 사망 했다고 거짓말 했다 또한 삼성 측은 삼성회장.막내딸의 장례식이 21일 오전 뉴욕에서 극비로 외부 조문 금지하고 조촐하게 원불교 식으로 간소하게 치뤄 졌다고 발표했다
이번 삼성회장 막내딸 이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란 걸 밝혀낸 것은 다름아닌 뉴욕 한국일보 신용일 기자 를 비롯 한 3명의 취재팀 등 현지 취재진의 공이라고 할수있다 왜냐하면 당초 삼성측의 발표가 있었고
삼성그룹 이라는 거대한 힘에 눌려 윗선에 눈치가 보여 심증은 가도 물증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기가 어려운 사안 이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용일 기자를 비롯한
취재팀은 이를 끈질기게 이미 23일 이윤형 이 교통사고로
죽은게 아니라는 물증을 확보 했으나 일단 보도를 유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뉴욕 한국일보 의 신용일 부장은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삼성측의 발표는 시간과 장소 피해자나 가해자 사고 차량과 목격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등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정황이
없어 교통사고가 아니란 생각 이 들었다고 한다 이어 신부장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삼성측의 발표가 있을때 이미 삼성회장.막내딸 시신은 불에 태워 화장하여 장례가
치뤄 졌다는 소식도 나왔는데 무언가 짜여진 각본에 의해
움직 인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엘렌브로코브뉴욕시 검시관 대변인은2005년11월23일 뉴욕 한국일보 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인에 대해 자살로 판명됐다 그녀는 목이메어 숨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맨하탄 E.캠블 장의사에 치뤄졌다
한편 11월26일자,특종을 터트려 주목을 받았던 뉴욕타임즈는 .해당기사는. 신용일.한국일보.뉴욕지사.기자의
말을 인용해 이.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진상파악에 나선건 애당초 처음부터 뭔가맞아 떨어지지 않았고 고인을 존중하기 위해서 였다 고인에게 죽음 자체에 대한 진실 그녀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올바른 기사를 보도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 었다고 전했다 )
- 이상 선데이 저널 보도 내용 -
미국에서 그것도 천하를 호령 하는 삼성그룹회장 막내딸의 사체를 뉴욕 검찰이나 경찰이 무연고자 사체 보다도 더 빨리 급히 화장처리 할 이유가 없죠.
나중에 삼성그룹에서 문제 삼고 소송 전을 펼치면 크게 걸리 니까요.
자살이던 타살이던 사건이 발생하면 시체 검시를 정밀하게 시일이 오래 걸려도 자살 또는 타살 여부를 확인 하는게 최우선 이며 검시관 또는 의사의 진단서에 따라 죽음을
확인하고 가족들의 입회를 허용해야 하며 매장이던 화장이던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가족들의 비용으로 가족들이 알아서 스스로 치룰 일인데 제
삼자인 뉴욕 검사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모든 건 다 삼성그룹오너 중에 누군가 지시 한 겁니다.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당시 뉴욕 근처에 있던 이재용 입니다


인터넷에 P 변호사라는 박마테오 라는 양반이 올린글을 .일부 인용하면
(참고자료-제 삼자가 이 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전염병 환자이거나 homeless 가 아닌 다음에야 상상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homeless 도 죽은 그 다음날 바로 화장 하지는 않습니다. 시일이 걸려도 모든 절차를 걸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화장 처리하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이윤형양의 시체를
1>자살 인지 타살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2>자살 타살 여부를 확인할 재검의 절차를 밟을 수도 없게
3>화장 처리 신청이 없었는데도
4>가족의 입회 없이
5>시체를 불살랐다는 것은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최종 결론은 이양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양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어떤 다른 이유에 의한 타살 행위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 그 어떤 다른 이유를 이양이 사망한 것은 앞서 본 것처럼 빨라야 2005년 11월 17일 보통의 경우 11월 18일 저녁 시간입니다.
이윤형 양의 시체가 응급차로 달려 간 곳이 nyu medical center emergency room 이었습니다. 그
위에 설명한 정황에서 보듯이 뉴욕의 290만달러 하는 콘도고급아파트 숙소에서 이윤형 양이 연고 없는 거지도 아닌데 거지가 죽어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기다렸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기본적인 절차를 거쳐서 화장하지 죽은 그 다음날 바로 화장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디에도 이양이 자살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타살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이양의 시체는 급히화장 처리되었다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검시관 대변인이 미주 뉴욕 한국일보 지사와 전화 통화 하여 자살이라고 말한것을 그대로 믿기엔 사건이 너무 모순이 많습니다 그리고 검시관대변인의
자살.이라는 죽은시체 검시.기록은 공개되지.않았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원흉 유병언 사건 에서. 보듯 돈.만원도 안하는.유병언이.찍은. 저급한 사진을 순수예술을 한다는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 돈을.주고 인터뷰 하니까 . 온갖 .찬사를 .다하여 .유병언.사진을.명작으로 칭찬하여
물론 유병언의 계열사 이긴하지만 짜고치는 고스톱 처럼 파는거지만 가장비싸게 사진한장을 17억 에 팔았다고 한다
(로드니킹사건은 지난 91년 3월 미국 LA에서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흑인을 백인경찰이 무차별 구타한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나간후, 경찰관들이 기소됐으나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LA폭동」으로 비화했고 경찰국장까지 사임하는 등 미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드니킹 사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로드니킹사건은 지난 91년 3월 미국 LA에서 과속운전하다 도주하던 흑인을 백인경찰이 무차별 구타한 장면이 비디오로 촬영돼 TV에 나간후, 경찰관들이 기소됐으나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LA폭동」으로 비화했고 경찰국장까지 사임하는 등 미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태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드니킹 사건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지문 감식에 오류가 없다는 인식은 100년 이상 이어 왔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이젠100%는 없다
스페인 지하철 테러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FBI베테랑 지문 감시관 3명이 부분 지문이 메이필드 지문과 100%로 동일하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더구나 메이필드를 변호한 변호사도 그지문이 메이필드 거라고 생각했다
꼼짝없이 누명을 뒤집어 쓸뻔했던 메이필드는 기적적으로 스페인 경찰이 그지문이 알제리 사람거라고 확인했다
메이필드 지문이 아니라는걸 알았을때 감식관 모두 실수했고 100년 이상쓴 방법에 오류가 있음을 알았다 문제는 내지문 몇몇의 부분이 저기에 있는사람과 비슷하면 누명을 쓸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지문
감식관은 주관적으로 판단합니다 감식관 역시 편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 입니다
똑같은 지문에 서로 다른 감식관은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예외적인건 실수자체가 아니라 실수가 확인된 겁니다 메이필드 사건은 실수가 확인된 겁니다
증거가 사람을 감옥에 넣고 감옥에서 꺼내 주는겁니다 그러나 법의학 과학기법중 상당수가 오류가 있다
흑인 레몬 부룩스 는 아이 근처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 손에 물린 자국이 레몬부룩스 것이라고 누명썼다

203p-증인으로 치과 법의학자는 피고인이 범인이 맞다고 증언했다 살인혐의로 기소됐고 구속됐다
수감중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정황이 예전과 섬뜩하리 만큼 일치했고 그후 진범이 잡혔다
레몬부룩스는 10년간 노력 끝에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다 미국 법정에서는 판사가 법과학 전문의 라면 전문가 입니다 판검사는법의학 과학을 모르니
믿을 만한 것인지 엄증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를 검증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DNA감식 60%정도 법과학 증거를 잘몾적용 법과학이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미국의 일부 인증 기관이 엄격한 자격요건을 거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건데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2013년 과학수사의 함정 -EBS


2014년 5월초 KBS 추적 60분을 시청 했는데 경찰에서 시체를 검시하고 자살로 판정한 사건을 자신의 누나는 절대 자살이 아니며 타살 됐다고 경찰의 부실 수사를 질책 하며
억울하게 타살된 자신의 누나의 사인을 제대로 밝혀 달라고 하자 묵살 되어 가족 들의 끈 질긴 수년 간 피나는 노력 끝에 자살이 아니라 타살 이라는
진실이 밝혀진 사건을 보도하는 프로를 시청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가족들이 주장한 내용은 자신의 누나는 이미 약물에 의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범인이 목에 밧줄로
목을 묶어 죽였다고 절대 자살이 아니고 타살 이라고 밧줄이 묶인 상태가 절대 여자가 묶을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또 죽은 사람이 발이 땅에 닿는 상태에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여 죽었다는건
말이 안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가족 들의 끈질긴 추적과 노력 끝에 자살이 아니라 타살 이라고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삼성회장 막내딸 도 여자가 어떻게 전깃줄 를 꼬와 목을 멜수 있으며
발이 땅에 닿는 상태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다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런 점에서

특히 당시 뉴욕 현지 있던 삼성회장 장남 이 자신의 막내여동생 시체를 바로죽은 다음날 급히 화장하고 죽은지 3일 만에 극비리에

장례 까지 마치고 삼성에서 기자들 에게 뉴욕외곽 에서 2005년11월18일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2005년11월19일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감추려 한 부분은 누가 봐도 의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대구 여대생 강간 강도 사건의 내용 을 보면 십수년 전에 대구 여대생이 스리랑카 노동자 3명 에
납치되어 집단으로 강간 당하고 돈까지 뺏꼈는데 그래서 대구 여대생이 옷이 찟겨진 상태에서 고속 도로에
진입해서 트럭에 치여 사망 했는데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려 하자 가족 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십수년 만에
스리랑카 범인을 잡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하지못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옆에서 자살한걸
본것 마냥 자살로 단정 한다는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나는 내 여동생이 태풍때 물에 빠져 사고로 죽었는데 슬퍼서 당시 한달 이상 잠도 제대로 못자고 괴로워 했는데 3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데
대부분 사랑하는 막내딸이 죽으면 넋을 잃고 무엇을 해야할지 슬품에서 빠져 나오기 힘든데 잘죽었다는
식으로 짜여진 시나리오 데로 시체를 처리한 것은 누가 봐도 사인을 감추려 한게 거이 확실해 보이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누가보더라도 이윤형은 자살한게 아니고 타살 됐을 가능성이 큰 겁니다
한국 국민 다수가 힘들때 자살한다는 말을 넋두리 처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자살 다 안했습니다 그들이 다 자살 했다면 한국 국민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삼성회장 막내딸은 뉴욕으로 유학 가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으면 자신의 건강에 신경썼고 죽기 직전 켈리포니아 팜스프링스 자신의 고모 별장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던 승용차 마니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성격이 가장 닮아 드라이브를 즐기던 막내딸이 승용차를 몰고 대륙횡단을 하여 뉴욕대 수강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는데
자살할 생각이 있었으면 중간에 모텔에서 조용히 했겠죠
아무리 이 세상이 양자적 얽힘과 비국소성 이라는 일부 과학자 들의 견해도 있지만
거듭 말하지만 양자 물리학의 대가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도 자신이 확실히 알수 있는건 양자물리학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가족된 도리 로써 좀더 시간을 두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려 노력하고 난후 화장을 해도 되는데 그렇게 급하게 화장하고 극비로 장례도 죽은지 3일 만에 서둘러 끝내고
죽은사인도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 하여 세상을 속이려 했던게 분명한 사실로 들어났고 당시 뉴욕현지 있었던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며
만약에 이윤형이 청부살해 됐다면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분명 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만 보더라도 비상식의 극치로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다고 생각이 드는건 당연한 겁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여러면 에서 다른 형제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과 달리 성격까지 이건희 회장을 닮아 아버지 이건희 회장처럼 드라이브를 좋아하던 막내딸 이윤형 양을 삼성회장이 자식들 중에 가장 총애하여 자신의 언니 둘을 제치고 2003년 재계 한국 여성부호 3위에 오르며 삼성그룹 순환출자 최상의 지배회사 에버랜드를 8.3% 이상 상속하며
삼성에서 전폭 지원한 E삼성 사업을 말아먹은 장남 이재용을 바짝 추격하자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충분히 추론할수 있는 겁니다

날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죽기전부터 미국 한인 유학생이나 한인사회에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사랑 한다는 거짓소문을 은근히 퍼트려

삼성회장 막내딸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청부살해할 시기를 호시탐탐 노렸다고 추론 할수도 있습니다
이윤형을 괴롭히던 조직적 음모로 퍼트린 거짓 소문은 어느순간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퍼졌겠죠
2008년 누군가 당시 이미 부인이 있던 나훈아가 젊은 여자 연예인과 불륜을 저지르자
성기가 야꾸자 들에게 잘려 불구가 되었다고 전국에 소문을 냈다 언론은 그것을 확인도 안하고 대서 특필하며
나훈아를 파렴치범으로 몰고 몹쓸짓의 죄값으로 테러를 당한 것이라고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이에 열받은 나훈아는 2007년 기자 회견을 열어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바지까지 벗으려 했다
여기서 나훈아가 거짓 유언비어에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는가 짐작할수 있다
어떤 거대한 세력이 삼성회장 막내딸이 죽기전 부터 당시 미국에서 무일푼 떠돌이인 날 사랑한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린 목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거짓소문을 퍼트린 가장강력한 용의자는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자신이 보고십은 것만 보고 믿고 십은 것만 믿는다 교도관은 교도관 입장에서 이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장사꾼은 장사꾼 기업인은 기업인 정치인은 정치인 회사원은 회사원 각자 이익만 먼저 따지지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리고 거짓 유언비어가 무엇이 진실 인지는 알고십지 않으 면서도
그저 누군가를 괴롭 히는데 재미를 느끼는 쓰레기 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왕따라는 게 거이 없었는데
지금 학생들 사이에는 약한 학생 한명을 떼거리로 괴롭히며 재미를 느끼는 쓰레기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왕따가 아무리 나쁜짓이 라고 설명해 줘도 그때 뿐이다 그들 각자에겐 그렇게 하는것이 정당한 명분이라는 각자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각자 나름대로 드는 명분은 약한학생 한명을 집단으로 괴롭히면 순간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이 우월 하다는 과대망상에 빠지지 그들에겐 그게 정당한 명분인 것이다
뭐 개인만 그런게 아니야 힘 없는 민족은 힘있는 민족에게 노예가 되고 종이 되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조롱과 모욕은 덤으로 받는 것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거이 비슷한 시스템 이야
같은 민족이나 국가도 힘있는 순서대로 서열은 존재한다
지금 한국에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떼거리로 여론을 조작할수 있는 세력이
경상도와 전라도 이다 뭐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김대중이 과거 전라도 에선 신 처럼 존경 받았지만
경상도 에선 그저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취급 받는게 전부이다
또 한예로 전두환은 광주사태와 삼청교육대 등으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여 전라도에서 엄청난 욕을 먹지만
경상도 에선 전 장군님으로 존경하는 사람도 많다
그외에 충청도 강원도 수도권 지역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생각한다
그만큼 경상도와 전라도가 마치 각자의 다른 나라처럼 자신들 유리한쪽으로 여론 몰이를 할 가능성이 타 지역보다 높은 증거는 선거를 보면 확실히 들어난다
경상도 에선 경상도 교도관 들이 전라도에선 전라도 교도관들이 설치는 것도 이런 맥락 이겠지

서로 지들 지역 출신을 대통령 뽑을 려고 뭉쳐 대결 하지만 계속 경상도가 승리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 한국의 정계 재계 주도권을 누가 뭐라해도 경상도 출신들이 장악하고 흔드는건 사실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애들은 지역이기 주의로 똘똘 뭉 친다는 결정적 증거는 선거때 확실히 들어난다
왜 그런지 충청도 김종필 이회창이 흉내 내려 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타 지역은 그렇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사실 이게 역차별이 되고있다
다른 지역은 다 그런데로 민주적인데 경상도 가면 새누리당 일당 독재로 경상도 공화국 전라도 가면
민주당 일당독재 전라도 공화국 이야
이들은 지들 지역 기업 이라고 생각 하거나 지들 정치인은 무조건 밀어주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비리를 들추면 떼 거지로 달려 들어 비리를 감춰주기 위해 떠드는 걸 보면 한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이 들기도 하다 이게 무슨 새로운 패권주의도 아니고
UFC 경기도 옥타곤 안에 동일한 체급에 일대일 정정당당 하게 싸워서 이겨야 챔피언으로 인정받지

사자와 일대일 싸움에 불리하자 떼거지로 사자에 달려드는 하이에나 마냥
떼거지 로 달려들어 깽깽 짓어서 지는 걸 부정하게 어거지로 여론 조작해서 이기면 그것처럼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냐 지금 만약에 도 별로 나라를 나누워 전쟁하면 인구로 보나 뭐로 보나 서울 경기지역이 무조건 이긴다 전국체전을 보더라도 지난 수십년 동안 서울 경기도가 돌아가면서 1등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언론에서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무조건 서울 경기가 1-2등 하니까 특히 프로농구 프로배구 선수들 출신은 거이가 서울 경기 지역 이다 프로 축구팀도 다수가 서울 경기 출신들 이다 각팀의 프로야구 선수도 서울경기 지역 출신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김연아는 경기도 박태환 손연제는 서울 한국인중 처음으로 세계베스트 11에 뽑혔고 독일 분데스리가에 차붐을 일으킨 축구의 차범근은 경기화성 홍명보는 서울 ufc 김동현은 경기 수원 출신 이다 다 서울 경기도 출신이다

아시아 출신으로 전무후무 하게 88서울올림픽 최 중량급 슈퍼헤비급 결승전에 처음 올라 은메달을 딴 백현만도 경기도 출신이다

백현만은 86아시안 게임 슈퍼헤비급 금메달 리스트 이기도 하다


의미가 좀 다르다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전국 각 지역의 교도소 수용자 도 수도권 출신이 가장 많다
그런데 수용자 대부분이 처음에 급수를 대부분 받는 3급 교도소는 수도권 지역에 안양 교도소가 유일하다
경상도 쪽에는3급 교도소가 7개 전라도 쪽에는 4개로 아는데 그러니 수도권 출신 수용자들이 마치 .전쟁 포로처럼 지역차별이 심해 국회의원 선거를 해도 자신들의 지지 정당은 개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경상도 전라도 쪽에서 다른 지지정당이나 다른지역 출신후보들이 당선되기가 .어려운
경상도 전라도 교도관들이 우글 거리는 곳으로 마치 전쟁 포로처럼 떠돌아 수용 생활을 하다가 길 잘들여져 징벌하나 없어야 2급수로 진급하면 연고지쪽의 2급 교도소로 이송을 갈수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2급 교도소 수는 거이 비슷하다
이건 정말 불공평한 교도행정 이다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야 말로 교도관들에의해 공권력 악용으로 조작왜곡 될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이다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지방자치제를 더욱 강화하여그지역 죄수는 그 지역에서 살도록 만들것이다
그리고 교도소시설에 CCTV사각지역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야 공권력 악용에 의한 인권탄압을 줄일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 CCTV를 많이 설치하여 신속하게 감시할수있게 일원화 하여 특히 여성 어린이 납치 사건이 없도록
그런일이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여 검거할수 있도록 사전조치를 할것이다
그리고 녹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녹이쓸어 수도물이 누수가 없게 수도관관 하수도 관을 친환경 유연성이 강하고 튼튼한 프라스틱 제질로 만들어 국민의 건강과 세금을 아낄것이다

관찰자에 따라 동일한 현상이 다를수 있다는 관찰자 효과를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제시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도 생각이 틀리고
인간을 복제 한다고 해도 복제된 인간과 모습은 비슷 하겠지만 생각이 틀리고 적어도 이 지구상에는 나와 생각이 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다
인간 현존재는 각자 처해 있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자유의지로 선택 하지만 그러나 각자 자기 중심적인 이해 관계에 의해서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무지한 생각없는 인간들 에게 생각을 유도하는 방송과 언론 그리고 한국사회 상위 0.0.1%의 재벌와 권력층 에서 찌라시 조작 소문을 퍼트려
som peoplesay누군가 말하길 머독은 미국 어론재벌 정보가 없으면 힘도 없다 말한것은
거짓 정보로 여론을 조작하여 자신들 유린한 쪽으로 몰고갈수 있다는 늬앙스인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배운것없는 노동자들이나 농민 어민들 중앙매체의 언론이나 방송으로

206p-여론 조작하는 것을 여과없이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믿으려 하지 이들에게 아무리 진실이 어떻구 떠들어 봐야
이해할수도 없겠지만 이해하려 고도 하지않을 것이다
일년에 책한권도 귀찮다고 안읽는 사람들 천지인데

(참고로 자크라캉의 저서 네가지 정신분석이란 책에 의태의 효과는 엄밀하게 기술적인 의미에서 위장 이다
여기서 핵심은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얼룩 덜룩한 배경을 바탕으로 스스로 얼룩 덜룩해 지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히 인간의 군사작전 에 사용
되는 위장술 처럼 작용 한다 화가는 눈에 양식 거리를 주면서도
그림을 보는 이에게 마치 무기를 버리듯이 응시를 포기 하도록 권유한다
화가와 미술 애호가의 관계는 뭐라고 하는 하나의 놀이 일종의 눈속임 이다 일반적 으로 응시와
우리가 보고싶어 하는 것의 관계는 미혹의 관계이다
주어지는 것은 그가 보고 싶어 하는것이 아니다 라고)
- 자크라캉 저-네가지의 정신분석 펴낸곳 새물결 2008년-

일본에 있던 담징의 벽화에 소나무그림에 날아가는 새가 진짜 소나무인지 속아 다가가다
벽에 부디쳐 떨어졌다는 전설이 한예가 될 것이다
삼성그룹회장 부인 홍라희는
한국의 명문 경기여고와 서울대 응용 미술대학교 를
졸업한 그림에 조예가 깊고 미술관 관장 이기도 하다
그는 삼성회장 막내딸 에게 미국 뉴욕대학원 유학을 권유하며 유학을 마치고 오면 자신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물려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을 은근히 퍼트렸다 마치 삼성회장.막내딸이 미국 뉴욕에서
갑자기 죽을걸 미리안건 처럼 말이다 미국 뉴욕에서 청부살해 될걸 미리알고 조작 음폐 하려
바람 잡으려 그런소문을 막내딸이 뉴욕대 유학중에도 은근히 퍼트린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
대기업 에서 상속 문제는 세금 문제등 여러문제로 일급 비밀인데 미리 자신이
가장 아끼는 미술관을 친딸이 둘이나 있는데 친딸도 아닌
막내딸 에게 미술관을 물려주기 위해 미국 유학 까지 막내딸 에게 권유해서 보낸것이
청부살해 하기위한 사전에 치밀한 계산된 짜놓은 시나리오의 바둑으로 말하자면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 지고있다
진짜 물려 줄 의도가 있다면 그런 찌라시 같은 소문을 은근히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퍼트리지 않고
유학 마치고 오면 조용히 물려줬을 것이다 미리 절대 떠들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은 박종철의 시체를 화장하려 했지만 당시 부장검사 였던 최환의 시체 보존 명령으로 사건의 은폐를 막았다
이에 경찰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 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며 서울대생 박종철의 사인이 심장 마비라고
조작음폐하여 사건을 조용히 덥으려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말로 사건의 은폐를 시도하지만
그러나 기적적으로 부검에 참여한 의사들의 양심 고백으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 임이 밝혀졌다
만약에 박종철 시체를 삼성회장 막내딸 이윤형 처럼 바로 화장해 버렸다면
박종철 시체가 물고문 치사한 당시 경찰들 의도대로 바로 화장 했다면 의사들이 박종철 타살의 결정적 증거인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박종철 시체를 화장하지 않았기에 재부검을 통해 부검이 조작 음폐 됐음이
밝혀져 그로인해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을걸 두려워한 법의학 부검 의사들이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경찰은 박종철의 시체를 화장하려 했지만 당시 부장검사 였던 최환의 '시체보존 명령'으로 사건의 은폐를 막았다.
그후 부검에 참여한 의사들의 양심고백으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임이 밝혀졌다.
그후 안상수 검사가 부장검사의 허락으로 끈질기게 수사하여 경찰이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지고
경찰은 들끓는 여론에 밀려1987년 1월 19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인정했다. 경찰은 조한경, 강진규 경관에게 '1억원 보상'을 약속하며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웠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항쟁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골자로 6.29 선언으로 민주주의 시대의 207p-서막을 열었다. )

미국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 할수 있는 전문킬러가 천여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MBC방송TV서프라이즈 시청하자 -
(미국의 2차대전 영웅 패튼 장군이 차기 대통령 을 노리던 아이젠하워 가 OSS 지금의 CIA전신 국장에게 지시하여 패튼이 자신보다 지지율이 높다고
암살지시를 내렸다고 하여 암살요원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병원에 입원한 아이젠하워를 청산가리를 주입하여 죽이고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조작했다고 하여 오랜세월이 지나 미국에서 재조사를 하려다 수사대상자가 죽고없어 수사를 종결했다는 방송을 본기억도 있고)

마를린 먼로도 자살이아니고 암살된 거라고 하는 기사도 인터넷 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자살사건이 조작된 것일까 ?
그리고 특히 수많은 핼기 추락사건도 단순사고인지 누군가 엔진과 기계부품을 조작하여
추락하게 만든건지 금금하지만
신빙성이 있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핼기추락 사건의 경우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내기가 일반 비행기 보다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조선닷컴 2014년8월23일자 보도내용
미국에서 친딸을 방화살해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됐던 재미교포 이한탁(79)씨가 마침내 누명을 벗고 25년의 옥살이 끝에 자유의 몸이 됐다.
22일(현지시간) 수감됐던 미국 펜실베니아 호츠데일 교도소를 떠나 해리스버그 법원에서 열린 보석 심리에 참석한 이한탁씨는 보석금 없이 이한탁씨를 석방한다’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법원을 나섰다.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와 함께 법원을 나선 이한탁씨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 이한경씨 및 구명위원회 인사들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오랜 수감생활과 고령의 나이로 다소 쇠약해진 모습의 이한탁씨는 이한탁씨는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한탁 구명위원회’를 이끌어 온 손경탁 위원장 역시
“언젠가는 억울한 누명을 풀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나 어려운 고비가 많았는데 꿋꿋이 벼텨준 이한탁씨와 특히 조건없이 도와준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의 노고가 정말 컸다”고 말했다.
이한탁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골드버거 변호사는 “앞으로 이한탁씨가 제3자의 보호와 관리를 받는 조건으로 생활하게 될 것”이라며 검찰의 재기소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8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한탁씨는 장녀 지연(당시 20세)씨와 1989년 펜실베니아주 먼로카운티 헤브론 수양관에 머물던 중 원인 불명의 화재에 휘말리면서 2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다.
사고날 새벽 매캐한 연기 냄새에 잠을 깬 이한탁씨는 황급히 수양관을 빠져나온 뒤 다시 지연씨를 구하기 위해 수양관에 뛰어들어갔지만 실내는 이미 검은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이한탁씨는
끝내 큰딸을 찾지 못했고 지연씨는 건물 내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사고 후 현지 검찰은 이한탁씨가 평상복 차림에 소지품을 챙겨 대피한 점, 옷에 기름 같은 발화2물질이 묻어 있었다는 등을 들어 이한탁씨를 방화살해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게다가 이한탁씨가 선임한 변호사가 ‘화재가 전기 누전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으면서 이한탁씨는 감형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딸을 잃은 상심에 터무니없는 판정까지 내려지자 이한탁씨는 변호사를 4번이나 바꿔가며 재심과 항소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다 ‘검찰의 증거를 번복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번번이 기각됐다.
이후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이한탁 구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가 수임료 없이 이한탁씨를 변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이한탁씨의 바지에 묻어 있던 것은
발화물질로 보기 어렵다”며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한 화재감식 전문가 존 렌티니의 보고서가 증거로 공식 채택됐다.
이후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을 대부분 무효화한 뒤 지난 7일 ‘이한탁씨의 유죄 평결과 형량을 무효화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이날 보석금 없는 법원의 석방 명령으로
이한탁씨는 25년의 억울한 수감생활과 누명을 모두 벗어나게 됐다.

법원 앞에서 이한탁씨는 “지금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고생하는 동포들이 있다. 그분들께 내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208p-다”며 “앞으로의 시간을 알뜰하고 보람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미국에는 법의학 검시가 잘못 되거나 조작되어 억울하게 누명써 징역을 살다 운졿게 진실이 밝혀져 풀려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서울 성동구치소 미결수 로 있을때 고향이 전남이란 놈이
여검사 에게 무릅꿇고 울면서 비니까 경찰에서 준 강도 강간미수 죄명으로 처벌해 달라고 올라온 죄명을
강간미수는 빠지고 준강도가 죄명이 절도로 바꼈다는 얘기를 들은게 갑자기 생각이 나서
갑자기 일어서서 검사 있는자리로 가서 무릅꿇고 나에게 상속됐다면 삼성그룹오너들이 나에게 인감과 각서를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 했으면 어짜피 내돈도 아니고
순순히 줬을 텐데 쓰레기 같은 놈을 사주하여 인감각서 사기 당한것 같아 술취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불을 지르고 그랬는데 그래서 징역4년 받았는데 지금그런일을 벌인게 반성하며 후회되는데
여기다 아무것도 아닌 진단2주 나온걸 다시 살인미수로 기소하면 나도 지금 적지않은 나이인데 4년도 많은데 여기서 더 몆년더 추가 되면 나보고 죽으란 얘기도 아니고 좀 봐달라고
얘기 했더니 검사가 나에게 피해자 에게 편지해서 합의 보라고 합의보면 용서해 주겠다고 그래서
다시 조사관에게 와서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은 내용을 받아읽어 보며 확인하는데
내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관이 왜 항소하지 않았냐고 묻길래 나는 항소하면 살인미수 추가건이 항소심에서 병합되어 검사가 항소심서 재구형 놓고 판사가 올려치기 선고를 당할까봐 걱정이 들어 않했다고 솔직히 얘기 하면 되는데 설명하자면 길고 귀찮아서 순간 반성하는 의미로 안했다고 말한적은 있는데
조사서 내용에 반성하는 의미로 안했다고 내가 진술한 바로믿에
조사관이 지 마음대로 그래서 형량되로 살기로 했습니다
라고 적혀있어 이부분은 내가 말한적이 없는데 조사서에 적혀 있었고

또 셋째 이복형이 내 인감증명과 각서를 사기쳐 삼성측에 나몰래 전달 했다는건 오해 였다는 진술은 한적이 없는데
조사서에 적혀 있어 그걸 지적하고 저번 처럼 볼펜으로 찍찍긋고 무인을 찍고 내가 하고십은 말을 그밑에 볼펜으로 적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7년전 2주진단 나온사건을 경찰조사시 폭행상해의 죄명이 똑같은 사건을 약 거의 2달만에 검사가 죄명을 살인미수로 둔갑시키는 모습을 보고 황당해서
거의 공항 상태에 빠져 고쳐야 할 부분을 깜빡했다 조사관 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적은걸 바꿔야 하는데 당시상황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조사를 마치고 돌아 와서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생각이 나네
그런데 셋째 이복형이 내 인감증명과 각서를 사기쳐 삼성측에 나몰래 전달 했다는건 오해 였다는 진술은 한적이 없는데 조사관이 조사서에 적은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야
사실 그후.에도 아무리 추리를 해봐도 삼성그룹 회장 막내딸이 날좋아 하다 자살 했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지

(우리네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데려다 놓으면 자백을 받아내려고 별의별짓을 다한다 원래 무식하거나
법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어르고 구슬리고 해 수사기관 입맛에 맞는 조서를 작성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수사기관에 잡혀가면 위축되게 마련이므로 변호사가 옆에서 지키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하자는.데로 하기 십상이다
일단 수사기관의 뜻대로 자백이 이뤄지고 나면 모든게 끝이다 자백을 뒤집고 무죄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피고인이 그것은 허위 자백 이 었다고 주장 해봐야 우리나라 판사들은 믿어 주지 않는다 -)
-김용원 변호사 서교출판사 2011년 저 -
특히 한국의 국선변호인은 거이 형식적으로 변호를 하여 이들이 변호사 인지 검사인지 물어보고 십을때가 있다
조사를 마치자 조사관이 삼성회장 막내딸과 서로사귀는 사이였냐고 묻길래 사귄적은 없고 미국 일식당에서 잠시 일했을 뿐 이라고 말했다


209p-조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다음날 인가 날 무고로 고소 하겠다는 거울을 깨서 가지고 간놈은 관구실 가서 무언가

교도관하고 상담 하더니
무고로 고소 안하 겠다고 취하하고 그놈은 몇칠만에 훈방으로 나가고 나는 경고를 받았는데
징벌을 받을줄 알았는데 특이하게 경고가 나오네 다시 성동구치소 기결수 사동거실로 전방되어 갔다 성동구치소 에서 미결 기결 .합쳐 벌써 징벌2개 경고2개나 된다
거실로 들어와 생활하던중 20일이 지나도 검사기소가 없자
이런사실을 거실 사람에게 얘기하자 아마 검사가 아무것도 아니니 다시 상해로 죄명을 바꿔 벌금이 나올수도 있다고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중 법률구조공단에 신청하면 2주에 한번 상담할수 있어 신청하자
나보고 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미결수와 달리 10일 안에 기소 안해도 된다
처음 3개월 동안 검사가 기소 할수도 있고 한번연장 하면 3개월더 모두 6개월 안에 다시기소 할수도 있고
말하는게 그래서 속으로 언제다시 기소 할지 긴장을 풀수가 없었는데
2010년 7월6일 아침에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처음보는 교도관 놈이 내이름을 부르며 대구교도소로 이송명령이 떨어 졌다는게 아닌가 성동구치소에선 왠만한 교도관이 나보고 반말 한적이
없는데 이놈은 싸가지 없네 속으로 생각하고 짐을 싸는데 방 사람들이 일이 잘해결 됐나
보네 검사가 기소할거 같으면 이송 안보네고 재판에 부치는데
살인미수.사건은 죄명을 상해로 바꾸어 벌금형 으로 나올꺼 라며 그러는데 나는 속으로 법률구조.공단 상담은 .6개월간 언제 다시 기소할지는
모른다는데 뭔 헛소리 인지 거실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중에 경제사범 인데 징역을 3년이나 받았는데 지방 교도소로 이송 안 갈려고 서울구치소와 성동구치소를 번갈아 이송 다니며 벌금형 여러건을 정식재판 청구하여
재판받다 3년 거이다 징역을 산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서울의 성동구치소가 다른 지방 3급 이하 교도소 보단 났다
나는 짐을 싸고 거실 사람들 에게 인사하고 짐을 들고 나오는데
그래도 대구는 어머니 고향이라 전라도 쪽보단 났겠지 생각하며 짐을 들고 사동을 나와 이송갈 사람들을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묶는 곳으로 가는중에
아까 반말로 내 이름을 부르던 경상도 사투리 쓰는 교도관이 또 반말로 내 이름을 부르길래. 뭔데. 나보고 반말하냐 교도관이 반말하기로 돼 있냐며 큰소리로 따지자
이놈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알았어요 하며 반말을 안하내
뜻하지 않게 대구교도소로 이송가는 사람은 둘뿐 이었는데 한놈은 저번에 기결수 거실에 잠깐같이 있던 사람인데 몇칠만에 작업거실로 전실되어 갔는데
고향이 전북인데 교통사범으로 만기출소가 2010년 9월초 쯤인가 만기출소도 채 두달도 안남 았는데 이송을 보내나 이놈은 초범 인데다 교통사범인데 집행유에 건이 하나 있데나
그래서 분류 심사에서 3급을 받고 3급 교도소인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간다고 하네
대구교도소에 도착하자 건물이 썩었어 그리고 왠지 뜻하지 않게 기분이 않좋네 어느곳을 가나 그곳 분위기 랄까
뭐 그런게 느껴 지는데 노무현 정권때만 해도 초범은 초범 교도소로 이송을 갔는데
이명박 정권들어 수용자를 급수로 정해 초범이라도 분류심사에서 3급이면 3급교도소로 이송을 보내는데
정말 단순 교통범이 아닌 이상은 어지간한 돈과 권력이 아니면 거이가 3급으로 분류되어 거이가 3급 교도소로 형이 확정되면 이송을
가는데 문제는 죄수수가 가장많은 서울 경기등 수도권 지역에는 3급 교도소가 안양교도소 1개 뿐이라
3급 교도소가 전국에서 가장많은 경상도 쪽은 대구교도소 안동교도소 부산(김해)교도소 포항교도소 과거 청송 1 2 3교로 불련던
지금은 이름이 경북북부 제1 2 3교도소 가 청송의 가까운지역에 모여 있다
전라도 쪽에는 3급 교도소가 4개로 두번째로 많다 광주교도소 목포교도소 순천교도소 그리고 전주교도소가 있다
그리고 .충청도.쪽에는 .대전교도소와 공주교도소가 3급 교도소인데 공주교도소는 정신질환자들이 많이.있는걸로 .들었다 강원도 쪽에는 원주교도소와 춘천교도소가 3급교도소로 알고 있다
이렇듯 .수도권.지역에는 3급 교도소가 안양교도소하나 뿐이라

죄수가 가장많은 수도권지역 수용자들은 구치소에서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로 이송을 보낼때 각지방 법무부 교정청에서 3급 교도소가 많은 경상도 전라도등으로 집시처럼 떠도는 불 공정한 교도행정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이송간 3급 교도소에서 징벌없이 말잘듣고 생활잘해서 길 잘들어야 2급으로 진급하면 주소지쪽 2급교도소로 이송을 가는데 서울 경기수도권 지역 2급 교도소는 여주교도소 화성교도소 서울 남부교도소 의정부교도소등 2급 교도소 수는 4개다


대구교도소에 도착한 기분은 이곳은 서울성동구치소에 비해 훨씬 나쁜 곳이란 느낌이었다 .
건물이 오래되어 낡은 건물이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대하는태도가
성동구치소 보다는 막대했다 과거 영등포 구치소도 낡은 건물 이었지만
당시 리모델링하여 새로지운 교도소같았던 전남 순천교도소 보단 내 경우는 낡은 서울 영등포구치소가 나았다
이송자 짐 검사장 에서 짐 검사를 하고 거실로 배치를 받았는데
당시 대구교도소는 신입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반 거실로 배실하여 집어 넣는데
나하고 같이 이송온 놈은 2상 으로 배실되고 나는 지금도 기억 나는데 6하9실로 배실 되어 짐을들고
그곳에 사동으로 가니까
담당 교도관이 꽤 나이들어 보이는데 나보고 반말을 하며 간단히 적을걸 물어보며 적는데 나도 반말로 얘기했다
어디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반말 하는가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하고
그런데 교도관이 내가 물어보는 말에 반말로 대꾸해도 태클을 안거네
이건뭔가 하면서 쳐다보는 눈치였지그러니까 스포츠 경기로 치자면 처음엔 상대방의 기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학하려는것처럼
직원에게 간단히 적고 거실로 들어가자 나까지 12명이 바글바글 있는데
7월달 대구라 덥기도 덥고 정말 생지옥 같더라고
서울 성동구치소는 저녁 식사후 6시 좀 넘으면 누워서 녹화된 법무부 통합 방송을 저녁 9시까지 시청하다.
9시에 녹화 방송이 끝나면 그전에 잘 사람은 자는데
이곳 대구교도소는 교도관들이 거이 9시가 다 되서야 자게 했는데
당시에는 교도관들이 순시돌며 철저히 감시하여 이불을 깔고 잘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날씨도 특히 대구라 더 더운데 거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 공간이 좁고 너무 더웠다
그곳에서 하루자고 도저히 못있을꺼. 같아서 다른데로 옮기려고 작업거실로
전실을 교도관 에게 신청하자 약 일주일만 인가 비교적 빨리 작업 거실로 전실되어 또 짐을 가지고 가보니
사동은 지금은 정확히 기억 안나 는데 7상5실인가11상5실인가 가보니 그곳은 방크긴 같은데 사람도 적고 선풍기도 2개나 있네 작업거실은 최고인원이 8명인데 당시6명 이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7명이 됐지
같은 크기의 거실에 12명이 있다가 나까지 7명으로 줄으니까 훨씬 나았지 거기다가 선풍기도 두대나 있었지
한명은 치료거실에 있어서 치료받고 몇칠내로 온다나
여름철 이라 면회오기 전에는 죄수복을 안입고 반바지에 런닝 차림에 목걸이 에다 수번을 적어 차고 다니게 허가 하였지 당시 방장은 영등포가 고향 이라는 당시 나이가 60이 넘은 무기수가 있었는데 징역을 이십몇년을 넘게 살았는데 1급수였다
노무현 정권때만 해도 무기수가 20년 정도살고 징벌없이 1급수이면 특사로 가석방 대상이 되는데
이명박 정권들어 유기징역 형량이 최고 22년6월에서
최고 30년으로는 바뀌어 앞으로 무기수 들은 30년 가까이 살아야
가석방을 바라볼수 있는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왠지 삼성오너들이 한국의 입법 행정 사법부 권력을 좌지 우지 한다는데

삼성오너들 입맛에 의해 국회의원들 움직여 입법하여 법을 바꾸어
저번에 서울성동구치소에서 살인 미수로 검찰 조사받은 사건을
최고 형량이 30 년 늘리고 법을 바꾸고 난후 다시 기소 하려고 하는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설마 검사가 그렇게 까지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려 하겠어 속으로 생각 하면서도
검사 혼자서는 절대 그럴 가능성이 희박 하지만 배후에 삼성그룹 오너들이 존재하는 한

211p-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그때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주 에 있던 아스카 일식당 에서
본 웨이츄레스 하던 아가씨가 사진상으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과
동일 인물임이 거이 확신하지만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만에 하나 라도 내가 틀린건 아닐까 ?

그 아가씨가 혹시 삼성회장 막내딸이 아닐수도 있잖은가 만에 하나라도 그러면 나는 미친놈 아닌가
그런 헛소리를 하고 술쳐먹고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렸으니 얼굴을 들고 다닐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으로 봤을때 그 아가씨가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과 동일 인물임이
이젠 100%로 확실하다 내말이 사실이 아니면 벌써 나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자존심 강한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하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오는 정황을 보더라도 삼성회장 막내딸이 아닐 가능성은 거이 제로에 가까웠다
삼성회장 막내딸일 가능성에 최종적으로 종지부를 찍는 증거는 삼성그룹 오너들 스스로가
나에게 천억을 주려 했는데 말았다고 하는 말을 인정하면 최종 확인이 되겠지
작업거실 사람들 에게는 이런 일을 일체 말하지 않았다
삼성에 대해서도 일체 말하지 않았다 대구교도소 이송와서 작업 거실에 있을때 까지도 말하지 않았어
혹시 나 몰래 짐을 열어 알 까봐 재판 기록물을 거실사람들 몰래 전부 조각조각 작게 찟어 폐기 하여 쓰레기로 내다 버렸다
더 군다나 살인미수가 언제 기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화장실가면 나에 대해서 수근대는 느낌이었어 내가 너무 예민해서 과대 망상을 하는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 았지만
당시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설마 교도관들이 삼성 오너들의 배후 지시에 의해 관심사병 처럼 나를 괴롭 힐려고
거실 사람들에게 말을 흘린건 아닐까 설마 그렇게 까지 치사한 짓을 하겠어 생각 하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교도소에서 1급수는 수용자중에 최고로 높은 급수 영등포 출신 1급수 무기수가 당시 거실 봉사원 이었는데
거실의 작업은 봉투를 접어 사업자 에게 납품하는 일로 한달에 돈만원 정도 받는데 일하는 댓가로 라면을 많이줘 라면을 많이 끊여 먹었지
라면은 거실에서는 끓일수가 없고 사동소지 보고 부탁하면 밖에서 끓여서 줬는데
봉사원은 얼마후 출력하여 공장으로 가고
거실에 특히 일 잘하는 놈중에
목거리에 차는 수번. 명찰에 빨간칠이 되어 있어서 나는 처음에 장난으로 칠했나 저놈이 해병대 출신인가

미국은 요즘은 해군도 작업복으로 팔각모에 얼룩무늬 복장을 착용한다

미국 해병대는 빨간 명찰을 한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 명찰이 빨간색이라 그렇게 생각 했는데 당시 23살 인가 하는 전남출신 이라는 치료거실 에서 올라온 애가 나보고 사장님 수번 명찰에 빨간색을 칠한게 아니라 최고수 입니다 하는게 아닌가. 최고수가 뭔데 하니까 사형수도 모르세요 그래서 그때 사형수 인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23살 인가 한다는 전남. 고향이라는 애 보고 너 대구교도소 조사벌방에 가본적 있냐고 물어 봤더니 말도 마세요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사동 1-2는 안가는게 좋습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미치고 겨울은 추어서 미칩니다 사장님 같은 성격 가면 교도관들 하고 트러블 생겨 못나올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 교도관들이 악명이 높습니다
하는게 아닌가 지도 입실거부 해서 한번 갔다 왔는데 정말 힘들어서 미치겠 더라고 그러는데
내가 직접 격어 보지않아 그동안 징벌방 경험이 비교적 있는 내가 뭐 교도소가 거기서 거기겠지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형수란 놈은 의외로 성격이 밝고 솔선수범 하고 인사성도 좋고 일도 잘했어 그래서 만기출소가
얼마 안남은 놈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형수 라네 어떻게 저런애가 사형수가 됐지 하며 의아해 한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사형수를 처음 봤는데 이놈 말로는 집은 경기도 용인 이라는데
그후 들은 얘기지만 사형수 라는놈 말에 의하면 경북 구미 에서 어릴적 살때 중국집을 운영 했는데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가족모두 경기용인으로 이사 갔데
경상도 사투리는 전혀쓰지 않았어 당시 나이가 32인가 33살인가 그런데 젊은놈이 무슨 큰죄를 졌기에 사형을 받았을까 뭐 때문에 사형 받았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물어보고 십었지만 차마 그럴수는 없었다
대구교도소 미결수에는 박한상이도 있다고 하는데 박한상이는 본적이 없고 박한상은 미국 유학생 출신인데 1994년 서울 감남구 삼성동 고급 주택가에 불을 질러 자신의 부모를
사고사로 위장하여 죽여 당시 수백억원 이상하는 부모의 재산을 뺏으려다 범행이 발각된사건
같은 사동에 작업 거실에 또다른 사형수가 있었는데 수도권지역 출신 이라는 말을 누군가로 부터 들은적이 있었는데 공기총으로 2명을 살해하여 사형 받은놈 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소릴 들은 적이 있는데
다른 거실 사람이라 확인된사실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이놈이 접견등 나갈때 거실밖 창문으로

같은사형수라고 우리거실 사형수보다 나이가 많은지 형님이라고 부르며 밖에 지나가는 다른거실 사형수 에게 몇번 인사하는 모습을 얼핏 본적이 있는데 죄수복에 역시 빨간 명찰이 붙어 있는걸 본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 있는데 키가 작은 당시 그 놈말로 35세 정도 된놈이 있었는데 영등포출신 봉사원이 나가자
이놈이 봉사원 행세를 하는데 나 한테는 항상 존댓말을 썼으며 좀 모자라는 영주출신의 20대 초반 나이어린 애와 주로 얘기했는데 문신은 없고 자칭 대구건달 이라며 살인으로 12년을 받고 당시는 만기 1년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고향이 경북 달성군 공산면 갓바위 어쩌구 하며 지 고향을 얘기하는데 오래전에 목매 자살한 작은 외삼촌이 있었는데 과거 87년 12월 대선 선거 유세때 당시 대선후보이던 여당대표 노태우 선거유세에 구경가 마침 노태우 보고 경북 달성군 공산면 갓바위 근처가
고향 이라며 노태우보고 인사하자며 악수한적이 있다고 말했다
양아치 자식이 우리 어머니 고향과 비슷한 곳일줄 몰랐다 그런 내색을 하지않고 생활하던중
근데 이놈이 내가 화장실 가는데 내 머리가 옷걸이에 걸려있던 저놈 수건을 건드렸다고 갑자기 나보고 툭치며 도망가는데 창가로가 앉을걸내가 쫏아가 이놈 귀싸대기를 때리고 몸을 누르자 방 사람들이 몰려와 말리는데
교도관이 와서 왜 그려냐고 그러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군가 말하여 서로 조사징벌실 가는것은 순간 넘어갔다 그후 교도관이 가자 그놈이 먼저 사과하며 없던일로 하자고 하여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공장 출력을 신청해서 곧 공장으로 갈꺼고 이놈도 이곳 작업 거실에서 터를 닦았는데 지금 이곳을 떠나 둘다 징벌방에 가면 고생이고
징벌이 끝나도 다른 거실로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대구교도소는 어지간한 백이 없거나 교도관을 아는사람이 없으면 공장출력을 하기 위해선 당시에는 꼭 작업거실을 거쳐야 했는데 그후 얼마 있다 나는 대구교도소 포대 공장으로 출력이 결정되어 거실을 옮겨 갔는데
그곳에 가보니 작업거실 에서 봉사원을 하던 영등포 출신 무기수 가 있는게 아닌가 근데 나까지 12명이야
문에 전자장치 자동문을 설치 한다고 한사동을 비우고 공사를 하기 때문에 가는거실 마다 인원이 차있다 작업거실은 거실에서 봉투작업을 해야 하기에 정원을 8명 이하로 제한 했는데
공장출력수 사동도 미지정 거실과 같이 12명 일줄 몰랐네 그래도 공장 출력수야 낮에는 넓은 공장에 나가 있으니 미지정 가실 보단 그래도 났다 포대공장은 미싱으로 포대를 박음질 하여 만드는 곳인데 나는 미싱기술이 없어 주로 미싱질 하는 기술자들이 만들걸 주어다가
쌓는 일이었지 그곳에 가보니 반장 이라는게 양씨 인데 나보곤 자신도 서울사람 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주변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김대중 정권때 벤쳐사기를 쳐서
그 공소금액만 1조가 넘는 다나 이말은 공장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소문이라 확인된사실은 아냐
당시 그 사람은 47-48세 정도 된것 같은데 나한테 한번도 반말을 쓴적이 없었다

그런데 돈에는 약하다고 공장에 있는 인간들 모두 이사람 한데 굽신 거리며 아부하는 놈들이 많터라고

나는 그곳에 있다 어느덧 2010년 12월3일쯤 찬바람이 슬슬 불기시작할때 머리도 아프고 잠시 쉴려고 의무과에 병으로 출력을 포기하고

미지정으로 다시 내려와 서 1상 인가로 거실은 몇호실 인지 기억은 안나고
거실에 들어가니 인원이 정확히는 기억안나는데 몆명 안되는것 같았지 원래는 2상으로 가야 하는데 전자 자동문 공사를 2상에서 하는 관계로 사동을 비워야 하기에
2상 인원을 전부1상으로 옮긴 거라는데 공사가 끝나면 다시 2상으로 간덴다
그곳은 6하 기결수와 달리 운동 시킬때 사방이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힌 부채골 모양의 좁은 곳에서 거실사람 끼리만 운동을 시키는데 좁은 곳이라 상당히 답답 했는데
과거 청송제2교도소 에서 운동시킬때 약 3-4평공간에 하늘만 보이고 사방이 콘크리트 장벽으로 가로막힌 곳에서 혼자 운동 시키는 곳보다 좀더 큰 비슷한 형태 였습니다
거기 약간 희한게 생긴놈이 하나 있는데 지말로는 대구 향촌동 깡패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 거실에 들어가자 마자 그놈이 말하더라고
나이가 그놈 말로는 당시 나이가 48세 라고 밝힌 놈이 있는데
이놈이 방장 처럼 비슷하게 있고 30대 초반쯤 보이는 놈이 행동 대장 식으로 군기를 잡는 놈이 있었는데 내가 들어 가자 마자 대구 향촌동 깡패라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밝히며
나에게 반말을 하길래 내가 야 개쌕기야 어디다 데고 반말 이냐고 하자 이놈들이 겁을 집어 먹은건지 아니면 이건 뭔가 하고 탐색전을 하는건지 모르지만 크게 나에게 반항을 하지않네
내가 거실에 들어가자 마자 향촌동 깡패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고

거실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내가 거실에 들어간지 몇시간 만에
나이는 지금 정확히 생각이 안나는데 당시 50전후로 보이는 고향이 서울 이라는 사람인데 구속은 부산에서 됐다는 사람이 그동안 참고 있던게 폭발 했는지
마치 향촌동 깡패 행동대장 처럼 행동하던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돼지 같이 살이쪄 100KG 이상 무게가 나가 보이는 양아치 자식과 싸워서 둘다 징벌방으로 가면서 주먹으로 거실에 하나있던 선풍기 까지 덤으로 깨고 가네
선풍기를 깨고간 놈이 벌금이 떨어지진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내가 그거실에 들어 가니까 돼지같이 살찐 경상도 사투리의 30대로 보이는 놈이 50 전후로 보이는 서울사람에게 반말로 이름을 부르며 지시하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내가 그거실에 들어가자 그거실 대장으로 있는 향촌동 깡패라고 자신을 소개한 놈이 나에게 하대하자 개색끼가 어디서 반말하냐고 지랄하자
그 모습을 보고 별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용기가 생겼는지 50전후로 보이는 서울사람이 잠시후 30대로 보이는 돼지같이 살찐놈이 반말로 지시를 하자 욕을하며 대들어 치고받고 싸우다
그 모습을 본 교도관이 둘다 조사 징벌실로 끌고 갈때
싸운건 크게 상처가 나지 않았으면 서로 합의보면 검찰송치 까지 않하고 넘어 갈수도 있지만 선풍기

깬것은 공공기물 기물 파괴죄로 몇달 징역형이나 벌금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동안 당하고 있던게 화가 치밀어 오르니 미처 그생각 까지 못했겠지
그후 2011년 4월경에 징벌방에서 이사람을 봤는데 원래 만기출소가 2011년1월경으로 들었는데 서너달 늣게 나가는걸 보니 선풍기 깬걸로 공공기물 파괴죄로 검찰에 송치시켜 벌금을받았던가 재판에 회부되어
추가징역 3개월 이상을 받은게 확실해 보였다 이란것도 교도관들이 봐줄려면 기소 안시키고 그냥 징벌만받고 끝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도관이 기소 시킬려고 마음먹으면 사건화 하여 검찰에 송치되면 추가징역을 받는 불이익을 당한다
이런 것이 봐로 권력의 힘 이라고 쉽게 설명할수 있다

내가 거실에 들어간 첯날부터 갑자기 둘다 징벌방에 가니 거실은 좀넓어 졌네
그러나 나도 그 거실에서 얼마 못있었다 내가 들어갈땐 인원이 정원에 절반 정도 밖에 없어 널널 했는데 그후 신입이 계속 들어 오자
자칭 향촌동 깡패라는 놈이 신입이 새로 들어와 자신의 고향 이라고 편이 많아 지니
기가 살아 나한테 게기기 시작 하는데 창가 상석에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자리를 좁게줘 그걸로 트러블이 생겨 내가 그놈 에게가 옆에 앉으며 너만 자리를 상석에 차지하고 넓게 쓰는게 말이 대냐고 따지자 이놈이 욕을 하길래 내가 쌍욕을 하자 이놈과 멱살잡이 싸움을 하는데
자칭 향촌동 깡패 꼬봉 노릇 하던놈이 나서 덤벼 서로욕을 하며 멱살잡이 싸움을 시끄럽게 하는중에 담당교도관이 와서 보고 둘다 나오라고 그래서 향촌동 깡패놈은 미끄라지 처럼 빠지고 다른놈과 끌려가
관구실로 내려가 보니 자술서를 쓰라고 그래서 자술서를 쓰는중에 교도관 놈이 책으로 내머리 부분을 치네 내가 교도소에서 과거 순천 교도소에서 머리 끄덩이는 잡힌적이 있어도 폭행 당한것은 그때가 처음 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도관이 사람 쳐도 대냐고 따지며
실랑이 하는중에 나를 조사실에 쳐 넣으라고 하여 조사실에 갔더니 1하 인가 그곳은 미결 사동이 있는곳이데
대구 구치소 에서 항소 하여 온 미결수 사람들이 주로 1하 2하에 있다고 그곳에 박한상 이도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나는데
본적은 없습니다 그곳에서 싸움으로 징벌 22일을 받고 2하 징벌실로 옮겨 생활 하는데
작업거실 에서 말한 1-2사동이 이곳인가 속으로 생각하며 그곳 에서 들은 만큼 악명 높진 않다고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곳에서 법률구조 공단에 상담신청을 하자 담당 직원이 서울 성동구치소 처럼 장부에 적고 내 무인을 받아 나에게 확인시켜 준적이 있다 아무래도 그곳이 대구구치소에 항소하여 2심 재판을 준비하는 미결수 들이 있는 사동 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후 같은 대구교도소라도 기결수들이 있는 1-2 조사징벌사동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조사 징벌실은 독거실 이라 많아야 2명 또는 혼자 있으니 tv도 없고 하루종일 좁은 독방에 갇혀 있는데 추운 겨울이라 속에 내복을 두개나 껴입고
양발도 몇겹 껴입고 사각 형의 얇은 방석을 마루 바닥에 깔고 저녁 9시 지나
주는 메트리스 한장과 관 담요 4장을 주는데 한장은 메트리스 위에 깔고 3장은 덥고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

서울의 성동구치소는 겨울에 내복이 필요없을 정도로 뜨거운데 내가 가본 지방의 3급이하 교도소는 전부 차가운 마루 바닥 이라
마루 바닥은 얼름장 처럼 차기에 겨울은 추위에로 더욱고통이 심합니다
여러명이 생활하는 일반사동 거실은 떠드는 소리에 소음이 생겨 사동밖의 소리가 잘 안들리 는데
혼자 있다 보니 조사 징벌실은 조용 하니까
바깥에서 교도관 이나. 기타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특히 저녁 취침 시간에 잠들지 않았을때 가끔 들릴때가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칵테일 효과라고 바깥의 소음 중에서도 바깥의 소리중에 자신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들을 수도 있다는데


더욱 귀를 귀울게 되는데
볼수는 없지만 들리는 소리로는 교도관들이 서로 주고 받으며 떠드는 소리 같은데
삼성회장이 나에게 천억을 주려다가 검사에 비는 모습을 듣고 벨도 없는 놈 이라고 천억을 주지 말라고 천억주고 합의 했다고 어디서 저런놈을 나보고 천억 주라고 자살 했는지 모르겠다고 삼성회장이 셋째이복형 에게 몇억주고 합의하고 끝냈다고 그랬 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도관 들이 킥킥대며 유치원생 들도 믿지 않을 전혀 상식 밖의 말을 마치 진실인 것 마냥 조작된 소문을 수십단계 거쳐 주어들은 교도관들이 마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옆에서 직업 들은 것 처럼 떠드는 황당한 소릴 분명히 듣고
가만 생각해 보니 추가건 경찰수사 접견시 폭행 상해 죄명으로 조사한걸 검사가 죄명을 살인미수로 바꾸어 조사한게 6개월이 넘었네 검사가 기소할수 있는 기간이 미결 일때는 10일 에서 한번 하면 최대 20일 까지 지만
이미 구속중인 형이 확정된 사람 에게는 3개월 인데 한번더 연장 할수도 있어. 최대.6개월. 이라고
성동구치소 있을때 법률 구조공단에 상담신청 하여 문의하자 대답해 주었다 그런대 검사가 조사한지 이미 6개월이 지났는데 왜 아무런 통보가 없는걸까
그렇다면 내 추리가 점점 현실화 되는 것 같았다
검사 조사후 나는 검사가 시키는 데로 셋째이복형 에게 합의바 달라고 편지한 적은 있다
합의해 주면 두번다시 찾아가지 않고 삼성과 관련해 얘기도 셋째이복형 에게 안한다고
찾아갈 일이 없으니 당연히 삼성 얘기도 안하지 설사 저놈에게 말해봐야
그런적 없다고 오리발 내밀게 뻔하고 일부러 염장질 하는소리 밖에 안할게 뻔한데 그런말 할필요도 없는 것이다 대화도 서로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상대하고 해야지 저놈은 처음부터 내가 하는일을 무조건 방해하고 염장질 하려 하는놈인데 저런놈과 대화를 시도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어짜피 내 인감과 각서 삼성에 나몰래 사기쳐 빼돌렸 냐고 물어봐야 절대 그런적 없다고 저번에도 셋째이복형이 말했고 또 물어본들 똑같은 답변이 뻔하다
서울에서 천리나 떨어져 있는 나를 처음보는 대구교도소 교도관들이 저렇게 내 사건에 대해 상세히 말할 정도면 물론 왜곡된 부분도 많지만 교도소 에서도 이정도로 교도관 에게도
삼성그룹 오너들이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자신들 유리하게
조직적 음모로 거짓소문을 퍼트렸는데 밖에 사회 에서는 오죽 하겠는가 생각하니 그들의 거짓소문에분노가 치밀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삼성 오너들이 자신의 거대한 조직을 이용하여 자신들 유리하게 거짓소문을 퍼트렸 겠는가 미루어 짐작할수 있지 않을까?
거듭 말하지만 이런식으로 진실은 왜곡되어 나만 무방비로 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길수 없는 싸움
시골에서 농사 짓고 고기잡는 농부나 어부들 나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도시에서 살기바쁜 노동자들 이런 사람들이 자세하고 복잡한 내용을 이해 할수도 없으면 그들은 귀찮아 서도 이해하려 하지않을 것이다
지들 가족 일이 아닌 이상 그들만 그런게 아니지 극소수 사람만을 제외하고 거이 다수가 이럴진데 이런 조직적 음모에 의한 찌라시 거짓 소문을 퍼트리면 당하는 사람은 거이 무방비로 누명을 씌워. 당하게 .되는 현실이다 결국 거듭 말하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이다
그러나 진실이 언젠가 기적같이 승리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진정성이 담긴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한국 보다는 해외 알려져 평가받는 길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중 다수는 진실이 무엇 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더 따지는 사람들이 다수라
특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당한 억울일의진실을 밝힌다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회적 약자는 피해자에서 오히려 가해자로 누명씌워 둔갑 시키는건. 삼성그룹오너들 정도면 일도 아닐 것이다
김대중 정부들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넬슨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처럼 진실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과거 억울한 누명으로 사법살해 당한 진실을 재심하여 무죄로 판결하여 그들의 죽은 영혼을 달래주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 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기득권층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삼성그룹 오너들의 비리를 덥어주려 할것이 뻔하다
솔직히 말하면 국가경제를 위하기 보단 한국의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비리를 감추려 하며

그걸 국가 경제를 위해서 그런다고 뒤집어 씌우며 씨부리는 것들이다 지금의 한국의 기득권층을 이루는 과거 일제때 친일파들이 위안부 징용자들을 모집하여 일제에 바치며 조선과 천황을 위하는 신성한 일이라고 바람 잡았을게 뻔하다 한국의 국가 경제를 위해선 한국에 비리가 없도록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서라도 삼성의 비리를 더욱 밝혀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국가 경제를 위한것이다
조현아는 국토부를 쥐고 흔들었지만 삼성가 이재용은 한국 검찰을 쥐고흔들 능력이 있다고. 믿는.사람들이 많다
얼마전 세월호 사건의 세월호 실 소유주 유병언 장학생이 국가요직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것 같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는대
삼성그룹 장학생을 유병언 장학생과 비교 한다는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삼성이 오래전부터 국내 다른 기업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고 생각이 들정도로
차이가 나게 많은 떡값을 뇌물 로비로 한국 정계 입법사법 행정부 요직에 계속뿌려
삼성오너 입맞대로 권력을 움직 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동안 오랜시간 동안 한국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한국 정계 재계를 장악한 일부 경상도가
삼성그룹이 지들 모 기업으로 생각하고 무한 애정으로 무조건 편들어 주는 회괴한. 현상까지 .존재하는 마당 입니다 이젠 홍라희가 전라도 태생이고 외가가 목포라 일부 전라도가 삼성편으로 돌아섰다

서울 경기지역은 상상도 못할 이들의 회괴한 단합심 때문에 경상도 전라도 지역은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때 지역 이기주의로 몰표가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정치 힘 겨루기는 이기적인. 단합심이 강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힘겨루기 에서 거이 경상도가 승리하는 형국이다
마치 구한말 조선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 청나라 일본이 힘 겨루기 하다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차지 하듯이 이들을 줄타기하며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설마 설마 했는데 실체가 서서히 들어나는구나 그동안 나에 대한 온갖 더러운 음모의 거짓유언비어 소문의 배후가 삼성그룹 오너들 일꺼라는
나의 직감과 같은 생각이 틀린게. 아니로구나 그러나 저런 찌라시 같은 치사하고 더러운 거짓 소문이 존재했다는 법적 증거를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분명한사실은 해변의 모래밭을 보면 파도가 밀려 왔다간 흔적들이 분명이 존재하듯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등이 한국최고재벌 삼성의 거대한 조직과 한국을 지배하려 세력 다툼을 하는 경상도 전라도의 수많은 세력까지
연고를 내세워 개처럼 부려 홍라희 이재용 등의 패거리들의 범행을 감추려 아무리 나를 모함하고 방해하려 해도
내 생각과 추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숨길수없는 분명한 증거를 나는 수집할수 있었다
교도관놈 들도 다 거짓소문을 수십단계 거쳐 들은것일 텐데 마치 이건희 회장한테 옆에서 직접 들은것.처럼 바람난 암 개 처럼 끙끙짓는 저런것들이
법무부 소속공무원 이라니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얼굴 한번보고 3년간 못잊다가 자살 했다는 지나가는 똥개가 들어도 안믿고 웃을 그런
동화같은 소설이 마치 진짜처럼 아무런 의심도 없이 퍼지는 한국은 병들은 사회이고 저들은 저런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면서도 그말이 충분이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자신들의 지역 이기주의와 여러가지 이익을 위해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짓밟는 행동은 주범과 공범 관계일 뿐이다
나는 삼성직원은 커녕 비정규직 직원도 만난적이 없는데 무슨 천억주고 합의 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소문을 조금만 생각 해보면 상식 이하의 말도 안되는 것인데
진짜 처럼 퍼지는 것은 한국 국민의 수준이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마치 진실처럼 조작되어 퍼지는 거짓소문을 대중들은
자신들이 보고 십은 것만 보고 믿고 십은 것만 믿으려 하듯이 어거지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방원의 하여가 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처럼
정몽주와 명을 치자고 하며 북방 정벌론을 내세운 정도전을 죽이고 조선의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자신의 배다른 남동생 둘을 죽이고 조선의 왕위를 빼앗은 이방원을 왕에오르도록 도운 이방원의 처남들 까지 모조리 죽이고 이방원의 아들 세종의 장인도 건방지다고 사약내려 죽이고 세종의 장모와 가족들은 관노로 넘기고 이방원은 수많은후궁을 두며 쾌락에 놀아나며 조선 왕들중에 가장 많은 자식을 두었다 사실 함흥차사란 말도 조작된것일수도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눈엣가시인 이성계를 암살한 이방원이 마치 이성계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조작한 것일수도 있다고 한다 이성계를 함흥에 이방원이 보냈는데 이성계가 아무도 안만다고 하는데

그래도 만나로 오는 사람들은 화살로 쏴서 죽였다고 함흥에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사람은 죽어서 못 온다는 함흥차사란 말이 이성계를 암살한 이방원이 조작하여 유포한 말 일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성계를 만나러 가는 사람은 이성계가 아닌 이방원이 죽이고 진실을 음폐했을수도 있다

암울했던 조선초기 시대야 권력으로 진실을 왜곡하는건 일도 아닐 것이다

21세기인 지금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일원동 서울 삼성병원 20층 특실에

살아있는 것처럼 3년째 거짓말 하여 재활 훈련 한다고 속이다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승인을 주주들이 해주자 말을 바꾸어 이건희 회장이 의식이 3년째 없는데 양호하다고 지랄하는 이재용 말에 모두들 침묵하는데 그런데 조선초기 시대야 두말 하면 잔소리 아니 겠는가


그렇게 조선 백성엔 공포정치를 하고 명나라에겐 한없이 약하게 없드려 조선의 수많은 처녀와 말과 진귀품을 조공으로 같다 바치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쾌락을 잃을 까봐 명에 사대의 극치를 보인 쓰레기 이방원이 한국에선 영웅처럼 드라마의 주 소재로 나온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명나라에 수많은 처녀를 조공으로 바친게 이방원 부터 라고 한다 정도전은 원래 북방을 정벌하려 했고 명나라를 치려 했다 그런 정도전을 암살한 이방원이 조선의 왕위를 찬탈하고 명에 사대를 하며 조선의 처녀를 마구 잡아 조공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조선왕으로 명에 책봉을 못봤자
그걸 부탁 하기위해 명에서 보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방원이 자진해서 말 300필을 보내자

명에서 이방원을 조선왕으로 책봉해 주고 한술 더 떠 10배인 말3000필과 조선의 진귀품과 조선처녀들까지 조공으로 바치라고 명에서 지랄하자 바치기 시작 했다고 한다
일제때 한국여자는 위안부로 군부대 성노예로 삼고 남자는 징용으로 끌고가 일부는 개도살 하듯 죽인게 지금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데 조선시대 때는 조선왕이 지신의 쾌락과 안위를 지키기위해 수많은 조선처녀를 명에 조공으로 바치며 삶아 잡아 먹던 알아서 하라고 했다니 그들의 삶은 일제때 위안부 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끌려간 일부는 당시 사람고기 쳐먹던 중국놈들 만두피 속에 들어간게 아닌가 충분히 생각해 볼수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 나이 어린 탈북 여성들이 사람 취급 못받고 참혹하게 성노예로 인신매매 당하는 등 인권탄압이 심각한데 한국정부는 찍소리 못하고 있다
마치 조선의 고종항제가 식혜먹고 30분후 자연사 한게 아니라 일제에 의해 독살됐다고
윤치영 선생이 폭로 했는데 조선의 친일파들의 조작으로
지금까지도 조선의 고종 황제가 식혜먹고. 30분후 자연사 했다고 어거지로 우기는 한국놈들이 많은게
어이없는 한국인들의 수준이라 생각하니 이런이들에게 내가 아무리 진실을 떠들어봐야 소귀에 경 읽기지
그리고 사건의 내막을 얘기하며 진실을 말하려고 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귀찮다고 듣고십지도 안다고 할 인간들이 많겠지
밖에 안보이는 교도관들을 불러 당신들 지금 나보고 하는 소리냐고 물어보면 분명히
무슨 헛소리 하냐고 날 미친사람 취급할께 뻔할꺼고
거기서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왜 거짓말 하냐고 떠들어봐야 난동 부린다며 날 수갑채우고 쇠사슬로 묶고
교도관에게 집단으로 폭행만 당할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은 한국의 법무부소속 공무원인 교도관들이 자진해서 삼성그룹 오너들 유리하게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소리를 주어 들었다 이런모습을 보며 그들보다 높은 놈들의 은밀한 지시에 의해서 행해지는 모함으로 한국이 삼성공화국 이란 증거 이다

(참고자료 -욕망의 진화 (2003년 초판) 중고
저자 멜린다 데이비스 | 역자 박윤식 | 출판사 21세기북스
세상은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보이지 않은 수상한 존재들로 가득차 있다 이 보이지 않은 위협은 우리가 상상한 만큼 우리는 적이 다가오는것을 볼수없다
새로운 형태의 전쟁과 피할수 없는 지속적인 감시가 우리의 일상이 된다 평범한 미국인이 매일 평균 20회 이상 자신도 모르게 사진을 찍히고있다 때로는 지구 밖의 감시 장치에 의해서 관찰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허구의 세계와. 다른 개념이다 형체가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건 아니다 실체는 고정되어 있는것이 아니고. 움직이는 것이다
새로운 질서 하에서는 뚜껑을 열고 꼭 눈으로 확인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위대한 해설자들조차 불 확실한 가상의 설명 밖에 해주지 못함 으로써 우리 삶은 더욱더 불가사의 해지고 있다
바위 처럼 단단해 보이던 이성은 의심스런 존재가 되었고 과학은 형상적인 아이러니가 되어 버렸다
일부 과학자 들은 물리적인 존재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생각 속에 있을 뿐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미국 국방성은 보이지 않은 디지털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국가 방위를 위해 가장 중요한 힘의
기반인 정보통신 네트 워크에 대한 공격을 막아 낼 새로운.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마음과 마음간의, 보이지 않은 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9.11테러 직후 미국 국방성은 전략 영향국 이라는 홍보부서를 설립했다, 해외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미칠 목적 유언비어등 으로 거짓 정보를 가상의 공격으로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들의 브리핑을 들었을때무서운 생각이 들정도 였다고 말했다 여론에 의한 비난
목소리가 높아지자 결국 미국 국방성 전략 영향국은 폐쇄 되었다고 한다
-욕망의 진화 (2003년 초판) 중고
저자 멜린다 데이비스 | 역자 박윤식 | 출판사 21세기북스)


(참고자료-전 미국 백악관정책 수립 엄무 담당 전 미국가 안전보장회장 nsc의원 리차드 a클라크-
말에 의하면 아직 도 미국인의 70%가 이라크가 국방부나 무역 센터를 공격 했다고 믿고 있다 왠지 아는가 그것은 당시 미국 부시행정부가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다 9.11 이후부시가 선택한 본보기는 반미테러에 가담한 적이없는이라크 였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은 피할수 없는전제인. 것처럼 보였다 이라크는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비쳤다 그것은 강박에 가까운 믿음 이었다.
이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된 부시의 당연한 결정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귀중한 목숨이 달려 있는 군인들

이 백악관 에서 내보내는 잘못된 성명서를 들으며 자신들이 3천여명에 달하는 9.11테러 희생자들의원한을 갚아 주는 것이라고 잘못생각 한다면 이또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에이브러함 링컨 항공모함 선상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서 이라크 침공은 9.11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즘에 대한 반격이며
대테러 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전투라고 주장했다 이런식의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 왔던 미국인들은 70%이상이 사담 후세인이 세계 무역센타를 공격 했다고 믿는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그러나 2003년 9월 이라크를 점령하고 난 후에야 이라크가 9.11 테러에 연류 됐다는 증거는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미국 국민과 미군 들에게 그토록 잘못된 생각을심어 준다는
것은 참으로 야비하고도 끔찍한 일이다

모든 적들에 맞서(이라크 전쟁의 숨겨진 진실) 출판사 휴먼앤북스 저자 리처드 A. 클라크 출판연도 2004 -)

(과학의 발전은 반발 법칙에 의해서 좌우 된다 알려진 오류나 그릇된 이론을반박함 으로써 이루어 진다)
-닥터 지바고 저자보리스 빠스쩨르나끄 지음 | 출판열린책들 펴냄 | 2006.02.25 발간


나는 싸움으로 22일간의 징벌을 마치고 어느덧 2010년 12월30일 년말에 6상6실로 전실되어 짐을 메고 갔다 2하에서 6상으로 짐을들고 가는길은 좀 멀었다
우선 추운 좁은 징벌 방에서 운동도 못하고 TV 도 못보고
TV 라고 해 봐야 법무부에서 재미없는 자칭 교화 방송이라 명명하여 녹화해서 보여 주는게 전부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추위에 떨며 고생하다가 넓은 본거실에가니 새 세상에 온것 같았다
당분간 이곳이 싫어도 참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내가 징벌을 받아 3급에서 4급수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셋째 이복형놈이 편지를 나에게 보냈는데
조만간 하남시에 있는 리버 라이브 카페도 정리하고 집과 땅을 모두팔아
외국으로 이민을 갈 마음이라고
출소해도 두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나에게 편지가 왔다
이놈이 다 정리하고 미국이나 외국으로 이민.간다는 편지를 나는 믿지 못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출소해도
이놈에겐 절대 찾아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나의 적은 이젠 이놈이 아니라 이런 쓰레기를 이용해 나의 영혼에 염장질 하며 약을 올리려 했던
야바위 사기꾼 보다 못한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 패거리 들이다

그 거실에는 그릇도 돌아가며 딱고 비교적 걸리적 거리는 놈도 없고 해서 어느정도 있는데 나보다 먼저 들어온 놈중에 한놈이 당시 30대 초반쯤 인가 키가 제법큰 놈인데
나보고 걸레로 바닥 딱으라고 갑자기 지랄하여 너뭐라 그랬어 그러니. 걸레로 딱으라고 반말로 얘기해 내가 어린놈이 반말 한다고 손으로 그 놈목을 치니
그놈은 힘도 없이 2-3m 나가 떨어지며 화장실 문에 부닥쳐 넘어지다. 간신이 일어나네
그 전에 셋째 이복형 그놈을 주먹으로 한대 때렸는데 눈탱이가 엄정 크게 상처를 입을 걸 본적 있듯이
주먹이 너무강해 괜히 아무것도 아닌일 주먹으로 때리면 내가 검찰에 송치되어 재판받고 추가 징역을 받는 고통을 당할수도 있다는 우려로 빨리 출소하기위해선 교도소 내에서 주먹자랑 하면 멍청한 짓이기에 주먹을 쓰지 않는데 순간 분을 못참고 손바닥 으로 그놈 목을 쳐 그놈이 나가 떨어져 화장실 문에 부딧치고 난후 그놈이 다시 일어나 달려들자 그놈 목아지를 잡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자 그놈은 내 상대가 못돼 나에게 힘으로 밀려 그놈이 거실 화장실 옆에 있던 TV에 그놈 허리가 부딪치며 창문 쇠창살로 그놈 대가리가 박히며 나에게 밀리며 상대도 안되자
갑자기 다른놈들 3-4명이 말리는척하면서 나를 잡고늘어져 그놈들을 무작정 팼다간 사건이 크게되어

안되고 실랑이만 하고 있는데 여우같은 놈이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 쓸쩍 빠져 나오면서 주먹으로 치는데 쓸적 비겨 맞았는데 그후 그 놈에게 다가가 내가 욕을 하며 때리려 하자 교도관이 와서 큰 소리로 제지를 하는데 교도관이 보는대서 참아 때리진 못하고 교도관이 왜 그러냐고 묻기에 나이어린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개쌕기가 까분다고 하며 그 놈에게 욕을 하며 내가 손바닥으로 때리려 하자 그놈이 달려 들었으면 교도관 보는 앞이라도 주먹으론 때218p-리진 않고 힘으로 확실히 제압하려 했는데 그놈이 일대일 힘으론 나에겐 어림도 없다고 판단 했는지
꼬랑지를 내리고 때릴려면 때려봐요 하며 나에겐 대들진 않고 나에게 존칭을 쓰며 그러는데 교도관이 보는데 때리면 검찰에 송치될까 그렇고 또이놈이 나에게 존댓말을 쓰며 대들지도 않고 그래서 서로 없던일로 해서
징벌방은 안갔는데 그후 그놈이 나에게 특히 조심히 행동하고 나에게 아부를 잘하며 출력 신청을 해서 얼마 안 있으면 서로 헤어 질껀데 하면서 있는데 그후 조희팔 공범이란 경상도 사투리 쓰는놈이 갑자기 포항교도소 에서 이송와서 검사가 불러 검사조사 받고 다시 포항 교도소로 갈 꺼라고 하는데
그 기간이 1-2달 안에 결정된다고
그동안 지가 방에 쓰는 생필품 이며 방구매 먹는것 까지 책임질 테니 대신 돌아 가면서 하는 설것이를 빼 달라고 하여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고 50은 넘어 보였는데 나 하고는 사이가 안좋았다 다른놈들은 뭘얻어 먹을까 하여 아부 하는데 나만 대드니 이놈이 날싫어 했겠지
이놈이 거실 봉사원이 되어 한번 면회 갖다오면 자신의 이름만 으론 들어오는 접견물이 한계가 있어 다른 거실사람 이름과 수번 여러개를 적어가 마대자루에 가득 먹을 접견물 훈제닭 우유 빵 과자 사탕 떡갈비 라면 고추장 참기름 등등 잔뜩 들어오는데 그걸 관리 하는 놈으로 나와 싸운놈이 싫다는 데도 배식 반장을 시켜 조희팔 공범이란 놈이 은근히 싸움을 시키려 했는데 거실에 접견물을 놓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여 오는데 다른 놈 들은
배식 반장놈을 도와 정리 하는데 나만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구석에 겨울철에 햋빛 잘들어오는 창가 상석에서 편히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뭐라 시비거는 놈은 없었어 그래도 나보고 빵 먹으라고 주고 그러 더라고
그러니 나에게 싸움에서 진 배식반장 하는놈이 일일히 소세지 닭갈비 훈제닭을 고추장 참기름에 버무려 반찬으로 만든걸 나만 손하나 까딱 하지않고 먹으니 은근히 열불이 나겠지 그러나 그놈은 나에게 싫은 내색 한번 안했지
나하고 싸우면 질걸 뻔히 아니까
그러니 조희팔 공범 이란 놈은 나와 배식반장 하는 놈과 눈엣 가시인 나와 싸움시켜 보내야
봉사원 하는 조희팔 공범놈이 더욱 편하게 지내는데
배식반장 하는놈이 아무리 나와 싸움 시키려 꼬셔도 저번에 나와 싸워 힘겨루기 해보니 나와 일대일로 싸우면 도저히 못이길것 같으니니까 배식반장 하는놈이 일부러 피하자 봉사원 하는 조희팔 공범이란 놈이 안달 나는것 같았다 거실에는 이제 전자장치 자동문 공사가 어느정도 완공 됐는지 그전 같이 12명 까지는
안집어 넣고 유동인구가 있어 9-10명을 왔다갔다 하는 중이 었는데 교도관 들이 누군가 에게 전달한건지 모르지만 희한하게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못잊어 자살 했는데 나에게 천억주려 했는데 검사가 살인미수로 엮는 다니까 안 받겠다고 하여 피해자 에게 몇억주고 천억 안받기로 합의 봤다고 지들끼리 소설을 쓰며
교도관이 나갈때 까지 삼성그룹 회장이 잘대리고 있으라고
삼성그룹을 대신하여 유리한 쪽으로 광고를 내는것 같은 교도관들의 말을 주어듣고
나는 삼성회장 막내딸 죽음에 배후 세력이 분명이 존재 한다는 의심이 더욱 커져만 갔다
거실에서 나에게 시비 거는놈은 없었어 그런데 조희팔이 공범이란 놈이
교활한 사기꾼 답게 나는 꼼짝도 안하고 지가 들여오는 구매품을 먹어서 그런지 나하고 전에 싸웠던 배식반장을 2은근히 띄어주며 나와 싸움을 시킬려고 그런 낌세인데 운동시간 이나 내가 화장실 들어가서 샤워하는사이
뭐라고 코치를 한건지 모르지만 이놈이 나하고 싸우면 진다는 걸 알고 나에게 지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나한테는 덤비지는 못하고 지가 들여온 구매물을 조리하며 거실 에 만만한 놈과 같이하다
그놈이 나한테는 못덤비고 거실에 있는 만만한 엉뚱한 놈이 그냥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양말로 주먹을 말더니 느닷없이 그놈을 몇대 때리고 둘다 조사 징벌거실로 갔는데 두놈은 징벌이 끝나도 이 거실로 못오고 다른 거실로 옮긴다 근데 가만히 얻어 맞은놈 을 나중에 시간이 지나 우연히 운동 시간에 만나서 너도 운동꿰나 하면서 왜 그때 가만이 터졌냐고 묻자 앉아 있는데 선전포고도 하지앉고 때려 방어할 시간이 없었고 쎄게 때린것도 아니고 만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거 때려 괜히 추가 뜰까봐 그런다고 자신은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빨리 출소해야 한다고 그러 더라고 그후 방에 나보다 몇살 어린놈 중에 대구 건달 흉내 내며 운동시간에 다른 거실 양아치들과 건달 인사를 하는 놈이 있었는데 하도 밤에 자는데 코를 심하게 골아 내가 발로 몇번 깨운적이 있는데

이놈이 그걸 앙심을 있었는지 대가리 드리밀며 대들어 내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자 나가 떨어 지더니 다시 달려들며 주먹으로 몇대 치는데 맞아보니 솜 방망이야 그래서 서로 멱살을 잡고 3-4m정도 이놈이 힘에서 나에게 밀려 밀며 주먹으로 한대 때렸더니 이놈 주둥이에 피범벅이 되어 있어서 재수 없게 추가 뜨게 생겼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주먹으론 때리진 않고 이놈 멱살을 잡고 서로 힘대결을 하는데 이놈도 내 상대가 안돼 문쪽창가에서 정확한 거리는 모르지만 내게 힘에 밀려 화장실 옆 TV에 이놈허리가 받치며 이놈도 화장실옆 쇠창살 창문에 대가리와 몸이 밀리자 그동안 나에게 감정이 안좋던 놈들 3-4명이 말리는 척 하면서 나를 잡았는데 그때 이놈이 빠지면서 솜 주먹을 몇대 219p-맞았는데 내가 주먹으로 때릴려고 해도 나에게 한대 맞고 주둥이에 피범벅이 되어 있는 놈에게 주먹으로 때리면 저놈 턱뼈가 부러질수도 있고 더 큰 상처가 나 내가 검찰에 송치될걸 걱정하여 안 때렸는데 곳 교도관이 와서 저놈 주둥이에 피범벅이 되어 있자 물어볼 것도 없이 둘다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관구실에 가서 자술서를 쓰는데 원래 자술서는 자신이 유리하게 쓰기 때문에 여러대 때려도 맞았다고 하는거고 검찰에 송치안 될려고 그러는거 아닌가 또 사건은 누가 더많이 때렸냐 보다
누가 상처가 더 심하냐에 따라 형량이 결정 되기에 저놈이 주먹질을 더많이 해도 난상처가 없고 저놈은 주둥이에 피법벅이 되어있어 내가 불리한것 아닌가
생각되어 저놈이 진단서 끊어 날 고발하면 나도 맞고소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날 의무과에 보내 달라고 하자 상처도 없는데 안데려 가고 지금 저녁이라 내일 낮에 진료 받으라고 하여 사진이라도 찍어 달라고 했더니
상처도 없는데 무슨 사진 이냐며 의무실에서 거부하여 할수없이
조사실에 가보니 나는 먼저 1하 2하 미결수 거실 복도를 사이로 바라보는 반대쪽 독거실 에서 조사 징벌을 살아서 그곳으로 갈줄 알았더니 어디 처음가는 곳으로 가는데 사동을 빠져나와 1-2라고 쓴 표지밑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곳은 야외 공간이 나와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이고 약 30M 정도 걸어가자 또 다른 사동이 나오는데 독거실이
복도를 사이로 마주보는 양쪽으로 있는데 갑자기 내죄수 동복 상하의를 벗으라고 하여 의아해 하며 벗었더니 벗은 옷은 가져가고 상태가 안좋은 죄수 동복 상하의를 입으라고 주는데
지금까지 징역 살면서 조사징벌실 여러번 갔지만 죄수복 상화의를 벗으라고 해서 교도관이 가져간 경우는 처음이라 좀 이상했다 나는 복도를 마주보고 왼쪽편에 있는 조사 징벌실에 입거 했는데 거실호실은 지금 기억안나고 중간쯤 인가 독거실로 들어가 혼자 있었는데
좀걱정이 됐다 저놈 얼굴이 주둥이가 피범벅이 됐는데 혹시 저게 나쁜마음 먹고 검찰에 상해로 사건 송치를 시키는건 아닌지 걱정이 드는데 그다음날 그놈이 나하고 같은줄에 있는 조사실에 나보다 앞쪽으로 5-6개 거실이 떨어져있는 거실에 그놈 소리가 들려 사건이 크게 되기전에 합의 볼려고 사동 소지에게 의사를 전달해 달라고 했더니 못한다고 하여 그놈 이름을 불렀더니 갑자기 교도관 한놈이 문을열고 고무신 신고 나와요 하길래 뭔가 하여 신을 신고 따라 갔더니 입구 에서 나가 야외사방이 보이는 사동 복도 안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에 가보니 교도관이 3놈이 있는데 그중 한놈이 내 머리를 손으로 잡고 욕을하며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어 하며 때리는 시늉을 하자 갑자기 CRPT복장을 한 젊어 보이는 교도관이 뛰어 오더니
지들끼리 구석에서 뭐라 그러더니 무슨 일이 있는지 다시 들어가 라며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그러는데 그때 분위기가 심상치 안음을 느꼈다 그리고 오후가 대자 의무과 에서 한 사람이 와서 조사 징벌실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는데 내 거실로 오더니 문을 따고 내 얘기를 듣더니 크게 상처는 없네 하면서 그래서 여기저기 엄살을 부리자 약을 지어주겠 다고 하면서 갔다 사실나는 당시 아픈데 가 없지만 저놈 주둥이가 피범벅이 된걸 보고 저놈이 고소하면 나도 맞고소 할려고 엄살을 부렸는데 의무과에서 진단서를 끊어 준것도 아니고
의무과로 대려간 것도 아니고 그냥 형식적으로 조사실에서 대충보고 진단하니 뭐 아무 소용도 없네
야 근데 먼저 작업거실에서 젊은놈이 말한대로 1-2조사징벌사동 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인지 조용하네
떠들면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으로 끌고가서 항의하면 묶고 패는지 다른 사람 비명 소리가 가금씩 들리곤 했다 그리고 대구 교도소는 그 전에 내가 가본 다른 구금 시설과
달리 관구 계장 순시 라는게 있어서 원래 순시는 교도소 소장 이나 보안과장 순시가 다른 교도소나 구치소는 가끔있는데 대구교도소는 의무적인 것처럼 매주 평일에 당시 2-3번 정도 관구계장 순시가 있고 또 보안과장 순시가 별도로 있고 드물게 소장 순시도 있어 순시가 오면 미리 연락이 와서 특히 조사징벌 사동1-2 는 교도관이 3명이 근무 하는데 순시오기 30분전 부터 사동을 돌아 다니며 죄수들 에게 문쪽방향을 바라보게 양반 자세로 앉게 하는등 여간 타치가 심한게 아니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항의하면 엄청난 응징이 가해져
조사징벌실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당시 쥐죽은듯 조용했다
여러 의학 잡지에도 앉자 있는경우가 수명이 짧아진 다는내용을 읽은적이 있는데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은 교도관에의해 아파도 강제로 양반자세로 앉아있게 인권탄압을 당하여 고통이 심했다
양반자세란 교도소 에서 교도관들이 요구하는 차렸자세 인데 양반자세를 오래하고 앉아 있으면 고통이 심하고 특히 무릅 연골이 엄청 안좋아 진다
만약에 조사징벌실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면 앞뒤로 양반자세로 앉게 하였는데 물론교도관의 지시를 안따를 경우 무잡이한 응징이 따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따를수밖에 없는게 수용자들의 입장이다보니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따르는데 특히 조사징벌실을 담당하는 교도관 3명 중에 책임자로 보이는 놈은 평일 아침마다 조사징벌 사동에 수용자들 전부를 대상으로 일장훈시를 한 15분이상 늘어놓는데 과거 70년대 초중고등학교 교장훈시 하듯 하네

220p-그때 다른 거실에서 조금 이라도 소음이 들리면 바로 찾아와 교도관이 응징을 하기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지 들릴 정도로1-2 조사 징벌사동이 조용한 했는데
교장훈시는 좀부드럽게 하지만
그 놈훈시는 어떤 글로도 표현할수 없는 짜증나게 하네
1-2조사징벌실 뒷편에 조그만 운동장이 있어 월요일과 금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딱두번 짧게 운동을 시키는데 운동을 시킬때도 전부다 한꺼번에 시키는게 아니고 분류해서
운동을 같이 시켜둬대는사람 끼리 몇명씩 운동을 시키고 운동이 끝나면 다음 순번시키고 하는식으로 시키는데 서로 싸워서 온놈들끼리는 운동을 같이 안시키고 분류해서 시키는데
나한테 주먹으로 한대 맞아 주둥이 피범벅이 된 대구놈이 밖의 운동장에서원처럼 한바뀌씩 돌며 운동하며 내거실 창문쪽 으로 걸어가자 창문은 쇠창살이 있고 또 쇠로된 모기 방충망 같은게 설치되어 있어
밖이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희미하게 볼수가 있어 알아 볼수가 있었는데 저번에 노무현 정권때 징역 살때 순천교도소 조사 징벌실 독거는 쇠창살은 있었지만 쇠로된 모기 방충망 같은것은
없어 당시 여름에 더울땐 창문을 열뿐 아니라
아예 빼서 믿에 내려놓고 있었는데 창문은 한쪽밖에 안 열리고 과거보다 더 갑갑한 징역 살이를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누군가 쇠창살에 목메 자살해서 그랬다는데 수용자들을 괴롭히기 위한
핑계 인거 같고 사회에서는 공무원들에 대한 월급이나 복지는 좋아지는데 교도소 인권은 더 나빠지고 누가 그러던데 천안외국인 교도소는 모텔급 수준으로 외국인 죄수들의 인권을 존중해 준다는데
다른 나라에도 외국인 교도소가 따로 있다는 얘기는 나는 들어 본적이 없는데 한국 수용자는 군사정권 에서도 저녁 식사후 이불펴고 자게 해줬다고 누가 그러던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저녁 8시 넘어야 9시 가까이 되서야 이불깔게하고
근데 서울 성동 구치소는 저녁 먹고 이불깔고 자도 교도관들이 머라고 안그러 던데
왜이곳 대구교도소만 교도관들이 이불을 못깔게 할까? 들리는 얘기로는 지방의 3급 이하 교도소는
대구 교도소처럼 저녁먹고 바로 이블깔고 눞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닥은 차가운 마루 바닥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중에 나에게 주둥이 떠진 놈이 거실 창문 쪽으로 모습이 보이자 나는 교도관에게 들킬까봐
작은 목소리로 불르자 이놈이 깜짝 놀라네
그래서 너 주둥이 피 터진건 괜찮냐 며 아직 조사실 에서 조사 안했으니까 검찰에 송치할수 없게 합의하자고 그랬더니 이놈이 퉁명스런 목소리로 잠시 생각 하더니 알았다고 그러는데 운동장 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감시하던 교도관이 거기 뭐야 떠들지 말래는데 누가 떠들어 그러는 소리가 들리자 이놈이 아닙니다
그러며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갔다
그후 조사실 에서 조사 할때도 자술서 내용과 비슷하게 조사하며 조사를 마치고 무인을 찍고 그놈이 주둥이가 피투성 이가 되서 검찰에 송치 되는줄 알고 걱정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사관이 괜히 겁주려 했는지 근무자 보고서에 그놈 주둥이가 피투성이가 된게 있는지 모르지만 큰일 날뻔했는데 무마 시켰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물론 이건 조사서에 들어 가지 않았지만
나한테 한데 맞아 주둥이가 피투성이가 된 자칭 건달 흉내 내며 건달 인사 하던 놈이 나한테 한데 맞아 주둥이가 피투성이가 된게 챙피해서 말하지 않고 지가 때린것만 얘기해서
사건이 무마가 된 것일 수도 있다 그후 조사를 받은후 조사실 에서 혼자 한 일주일 정도 있는데 금요일 징벌이 떨어지는날 인 것 같은데 오전에 갑자기 한사람을 교도관이 내가 있던 거실에 집어 넣는데
키가 대략 165cm 정도 대어 보이는 비교적 마른 체형의 유씨성을 가진 사람인데 노란 명찰을 달고 들어 오는데 나한테 한데 맞아 주동이가 피투성이가 된 대구놈과 같이 있다가 그놈이 교도관이 눞지 말라고 했는데 지시를 어겨
끌려나가 교도관 에게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서 묶이고 폭행 당했는지 비명 소리가 들리 더라고 그놈이 교도관 에게 끌려 나가 혼자 있게 되자 자신은 자살을 여러번 시도해서 법무부 요시찰 이라 노란 명찰을 달고 혼자 놔두면 안되 지금 내가 있는 거실에 교도관이
집어 넣은 거라고 그러네 이놈에게 너하고 같이 있던 놈은 나 한테 얻어 맞아 주둥이가 피투성 이가 되어 검찰에 송치 될 까봐 걱정이 많았 다고 하자 그놈 말로는 맞았다는 말은 안하고 날 때렸다고
그러던데 누구말이 맞는지 모르 겠다며 그런네 일주일에 한번 온수 목욕을 교도소에서 짧게 시키는데 그때보니 그놈의 허리 부분에 커다랗게 멍이 들어 있는걸 봤다고 하며 그 부분을 아파하며 약을 바르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입 주변에도 상처가 약간 있는 것 같았으며 약을 바르는것 같더 라고 그러는데
내가 그놈이 힘으로 나한테 밀려 TV에 심하게 부딪쳐서 그런 거라고 하자 그때서야 내말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221p-당시 대구교도소 조사 징벌실은 담당직원 들의 의사에 따라 수시로 배방이 이루어 졌는데 주로 월요일과 금요일 징벌 위원회가 열리면 징벌이 떨어져 대대 적인 전방이 이루어
지는데 그날 징벌이 그날 오후 떨어져 맞은편 혼자 징벌을 살고 있는놈 에게 전방 갔는 바람에 유씨라는 사람과는 몇시간도 채 못있고 징벌 방으로 전방을 갔는데 새로운 거실에는 당시 나이가 21살이고 집은 인천이고 고향은 경북 이라는데
대구교도소 조사징벌 사동 들어가서 정면에서 왼쪽 편은 거실 넓이는 비슷한데 거실 길이가 오른쪽 편보다 짧았다 혼자 있으면 관계 없는데 둘이 있으면 한 사람은 잘때 거실 문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한명은 반대편인 화장실 창문쪽으로 향하여 지그제그식으로 자는데 왼쪽 방향에 있는 거실은 짧아 잘때 잘못하면 서로 다리가 부딧칠수 있는데 오른쪽 거실은 어지간히 키가 큰 사람 아니고는 다리가 부딧칠 일이 없을 정도로
거실이 길었습니다 나는 징벌이 떨어지자 오른쪽 거실로 전방됐고 내가 있던 조사실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전방되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곳은 수시로 교도관들 마음에 따라 전방 조치 되었는데 3일 후인 월요일 인가 오후에 다시 거실이 긴쪽으로 전방 되었다 잠시 또 한명이 내 거실쪽으로 들어오는데 몇칠전 조사실 에서 몇시간 동안 잠시 같이 있던 노란 명찰 유씨가 아닌가 월요일 징벌이 떨어져 나와 같은 거실로 들어오는 길이 라는데
이 사람하고 대략 3일 정도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억울한 사연이 많은 사람 이었습니다 정확한 고향이 어딘지
당시 물어 보지않아 모르지만 서울에 남산 전공을 나왔다며 서울사람 이라고 얘기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나지만 말투가 충청도 말투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남산전공이 있나 모르지만 있어도 이름이 바꼈겠지 과거 상일동에 안흥전공 이란 학교 가 있었는데 주로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 였습니다
길게 풀면 안흥 전자공업 고등학교 박정희 정권때 수도공고는 돈없는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가는 학교 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고의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아무튼 이 사람은 오전 9시 가까이 평일 일과 시간이 되면 라면 박스 보다 좀더 커 보이는 커다란 박스를 교도관이 집어 넣어 줬는데 그 안에 소송 서류가 잔뜩 있었습니다 이사람 말로는 2003년 부터 징역을 살기 시작 했는데 사람은 죽이진 않았는데 강간을 여러번해 징역 20년에 보호감호 7년을 받았다고 또 재판서류 에도 그대로 적혀 있는걸 내가 확인 했는데
미결 때 재판을 받은 서울 법원 에서 선고가 끝나고 법원 대기실에서 유난히 손이 작아 수갑에서 손이 쓸적 빠져 화장실 가는척 하고 교도관 눈을 속이고 빠져나와 법원 담장을 넘으려 하자 왠지 다리의
힘이 빠져 넘지 못하고 잡혔 다는데 교도관이 근무태만 등으로 문책 받을까봐 그런건지 유씨 에게 폭행 당했다고 누명씌운 건지 유씨는 당시 도망갈 때 교도관을 폭행한 적이 없는데 억울 하다며 교도관을 무고로 검찰에 고소하자
교도관은 역무고로 고소 하였는데 갑자기 청송1교도소로 이송을 왔는데 검찰에서 사건을 경북으로 이첩하여 도주 미수로 만 1년 받는 건 인정해도 나머지 3년 더 받아 교도관 폭행에 역무고죄 까지 누명을 뒤집어 써 도합 4년 형을 추가로 받은건 억울 하다며
항소하여 대구교도소로 이감와서 재판받다가 교도관 과 재소자와 트러블이 많아 징벌이 많아 재판이 끝나자 청송2교도소로 갔다가 아니면 청송1교도소로 이감가서 그런건지는 내가 문의하지 않았지만 그후 교도관이 유씨에게 대하는 처우에 불만으로 항의하다가 엮여 교도관과 실랑이 하다가 교도관에게 실컷 폭행당하며 가혹행위를 당하고 오히려 교도관 폭행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누명씌고 추가로 항소하면 대구교도소로 또 와서 항소재판을 하고 하는식으로 여러번 재판을 받고 또 항소 하면 대구교도소로 가고 하는식으로 도합 징역 4년을 추가로 받아
당시 징역 8년을 살았는데 교도소에서 추가 징역을 받은게 도합 8년 이나 되어 당시 8년을 징역을 살앗는데 원 징역 20년이 그대로 남아 있고 보호감호 7년이 남아 있는 상태라며 엄청난게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보호 감호가 없어진 상태라 살지 않을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이 있는것 같은데 보호감호가 다시 부활하면 감호 7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그 사람은 몸도 작고 그래서 누구를 때릴 정도로 완력이 있어 보이질 않고 성격도 비교적 온순한 편인데 문제는 자존심이 강해서 계장은 물론 과장 소장 순시 때도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 물론 교도관에게 강하게 대들어 봐야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려가 묶이고 집단으로 구타당하고 오히려 공무집행 방해 교도관 폭행 죄로 누명 당할 우려를 걱정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교도관에 지시를 불응하여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은 당시 같이 있을 동안은 목격하지 못했고 교도관의 지시사항을 어기지 않고 바로 앉으라는 지시등은 따랐지만 교도관 에게 인사 해야 할 의무는 없다며 고개 숙이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송을 다니며 교도관과 트러블이 많아 교도관에게 끌려가 많이 맞았다는 얘기도 있고 그 과정에서 반항 하는게 공무집행 방해 교도관 폭행등으로 추가가 뜬게 아니게 생각되어 지기도 하는데
이 사람과 짧은 시간 같이 있어서 어떻게 누명을 썼는지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다

222p-그러나 상당히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고 엮인 경우가 있을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교도소는 사회와 격리된 곳이라 왠만한 돈과 빽이 없으면 교도관을 이길수 없는 곳이다
그 사람은 전에 있던 보안과장도 민사형사 모두 고소해 놓고 심지어 검찰총장도 민.형사 다 고소 해놨다고 나에게 말하며 2008년 대구교도소 8사가 독거거실 인데 그곳에 있을때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이 유씨 에게 욕을 하여 조양은 을 민.형사 모두 고발 했다고 하며 조양은 이를 모욕죄로 민사로도 고발하여 천만원 배상해 달라는 소송장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지난 1월에 미지정 거실에서 나이 어린 수용자와 싸웠는데 자신이 일방적으로 맞아 갈비뼈가 금이가 전치 4주 진단이 나온 사건이 있는데 상대방 놈이 지도 맞았다고 쌍방 고소하여
사건이 계류되어 이송을 못가고 있다고 아니면 벌써 이송 갔을 것이 라고 그러며 당시 담당 근무자 교도관이 본대로만 제대로 얘기 했어도 쌍방 폭행으로 고소는 안당하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폭행 당하여 자신을 때린 놈에게 처벌을 더 강하게 했을 것인데 교도관이 경상도 놈이라 지하고 싸운놈도 경상도 놈이라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짓으로 조작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고
억울해 하며 대구교도소를 빨리 떠나고 십다고 그랬습니다 자신이 당시 나이가 45세 인데 지하고 싸운 경상도놈은 당시 30도 안된 20대 후반 쯤 이래나
유씨가 그동안 얼마나 당했으면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직원들이 거실벽에 부치라고 주는 배식표 의약품 구매표 물품 구매표 등의 종이가 원래 형식대로 안붙여 있자 지가 그렇게 붙인게 아니라 거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랬다고
교도관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그걸보고 자신에게 누명씌워 추가 징벌을 먹일수도 있으니까 나보고 자신이 그런게 아니라고 이 거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누군가 원래부터 만들어 붙인 거라고
증인 서달라고 그러는데 이사람 한테 시집간 여동생이 가끔씩 면회오면 영치금도 넣어 준다고 하는데
이런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음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너무 과민 반응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겠지만 나도 여러 모함을 당한 입장 에서 그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네
그후 수요일 저녁인가 교도관이 이사람 이름을 부르며 저녁에 좋은꿈 꾸라며 평소에 안하던 말을 하여 이사람이 혹시 내일 이송 명령이 떨어진게 아니냐며 야간 근무자 교도관에게 문의하자 대답은 안해주고 그냥 좋은 꿈라고 암시적으로 말하여 유씨도 내일 아침 이송명령이 떨어진건 아닌가 반신 반의 하며서 확신은 못가지고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 였는데
그 다음날 아침 먹을 동안도 아무 연락이 없자 아닌가 보다하며 푸념 하였는데
조금 있다 갑자기 이송 명령 떨어 졌다며 짐 싸라고 하자 이사람은 신이나서 짐을 싸고 나갔다
나는 잘가라며 인사하고 헤어지고 그후론 본적이 없다
그후 징벌을 하루 정도 남겨 놓고 느닷없이 또다른 한사람이 갑자기 내가있는 징벌실로 들어 왔는데 당시 나이가 37세인가 38세 인가 하는
키가 180cm가 넘어 보이는 몸무게도 100kg이상 나가 보이는
건장한 수번이 노랑 명찰인데 원래 노란 명찰은
조직 폭력배나 법부부 요시찰 들이 차고 파란 명찰은 마약사범 빨간명찰은 사형수

그냥 일반수는 하얀 명찰


카메라 거실에서 묶여 있다가 해제되어 지금 배실되어 들어오는 모습이 상당히 얼어 있는 모습이었다 잠시후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징역을 4년받고
2011년 올 12월이 만기인데 처음에 대구교도소 에서 형이 확정되어 당시만 해도 급수를 나누진 않고 초범 재범으로 분류하여 수형자를 이송을 보냈는데 당시에는 대구교도소가 이정도로 힘들게 하진 않은걸로 알고 있는데 자신은 조직 사범이라 조직과 마약사범은 연고지 에서 멀리 떨어트려 이송을 보내게 되어 있어
그래서 당시 멀리있던 초범교도소 의정부 교도소로 이송을 갔는데
의정부 교도소는 그런대로 생활할만 하다고 그러는데 근데 담배 사건이 있어 징벌을 받고 자신을 진주교도소로 이송을 보내는데 벌금을 정식재판 청구하여 출소를 고향에서 할려고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왔는데 대구구치소 에서 항소를 해서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와서
대구교도소 6하9실로 배실되어 가보니 방 분위기도 안좋고 자신이 명색이 대구 건달로 조직으로 노랑명찰 인데 자신보다 어린 건달이 아닌 의정부애가 봉사원으로 있는데 자리를 안내 줄라고 그래서
더러운 꼴보기 싫어서 입실거부 하여1-2 조사 징벌실로 처음 왔는데 다른 교도소 에서는 다 통과된 제작된 이불을 교도관이 반말하며 강제로 뺏았아 순간 화가나 씨팔인가 그랬다고 관구실로 끌려가 수갑차고 묶이고
교도관 여러명 에게 집단으로 구타 당하여 상처도 났는데 자신의
가족은 대구시 어느 아파트에 살고있고 입고 있는 런닝 반바지 양말까지 전부 명품으로 도배를 했는데

223p-그런데로 돈에 쪼달리며 사는 형편이 아니라 가족에게 연락해 사선변호사를 300백만원 주고
검찰에 고소 했는데 변호사 하는말이 자신이 난동을 부리지 않았는데 교도관들 6명 인가가 전부 자신이 난동을 부려 난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어쩔수없이 상처가 난 거라며 거짓말하여 교도관을 폭행죄로 처벌하긴 힘들고 대신 상처난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할수 있다나 그래서 몇백만원은 받아 낼수도 있다고 변호사가 그러는데 그말도 신빙성이 없고 그거 또 소송 할려면 변호사 비용들고 교도관들이 보복 할지도 모르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그만뒀다 면서 뭐이런 교도소가 다 있냐며 자신은 조직사범이라 연고지에서 멀리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보내기에 정식재판 항소심 소송을 취하 하여 빨리 다른곳 으로 이송을 가야 겠다고 그러더라고 그 다음날 나는 싸움으로 22일 징벌이 종료되어 배실되어 간곳이 내가 작년 처음으로 대구교도소로 이송 왔을때 배실 되었던 6하9실 이었는데 대구 건달이 입실 거부한 곳이었다
지금은 전자장치 자동문 공사가 끝나 그때는 12명씩 거실에 집어 넣지 않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거실에 배치된 케비넷도 10개 이다 작년에 대구교도소로 이송올때 처음 배실 됐던곳이 6하9실 인데 1년 이나 지나서 사람도 전부 바뀌어 겠지 하며 가보니 예상되로 전부 모르사람 뿐이 었고 인원도 나까지 10명 정도 였다 역시 들은데로 봉사원은 30대 초반의 의정부애 인데 이놈은 조직이 아니고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의정부 에서 오락실을 운영한다 는데 수백억대 재산가래 그래서 이놈에게 잘 보일려고 서포터 하는 놈들이 몇 돼
먼저있던 거실 에서 태어난 곳은 이북인데 간난 아기때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살다 지금은 서울 강남 역삼동에 모텔을 운영한다는 수백억대 재산가라는 구라에 속아
대구애가 잘보일 려고 별 아부를 다떨다 그후 빈털털이 라는게 밝혀지자 결국 싸워서 징벌방에 간 사람도 보았다
검사나 판사 경찰들이 교도소에 들어오면 수용자 에게 괴롭힘을 받을수 있다는 말은 내가 살아보니
신빙성이 떨어진다 자신과 이해 관계가 직접 있지 않는한 대다수 신경 안쓴다
오히려 전직 검사나 판사 경찰출신 들과 같은 거실에 생활하면 모르는 법 지식도 공부하고 여러가지 혜택을 바라고 그들에게 아부하는 인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드문 일이긴 하지만 위에서 지시하여 교도관이 조직적 음모로 괴롭히 라고 비밀리에 직접지시 해서 괴롭히는 경우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존재한다 교도관들이 은밀히 지시해 모사를 꾸미는 경우는 일이 잘못되도 교도관의 비호로 크게 처벌을 안받아 교도관의 지시를 따르는 놈이 많다 그래서 교도관에게 여러가지 혜택도 받는 놈들이 있다
나도 뺑끼통 이라는 교도소 수용자 들이 생활하는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걸 우연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2000년이 되기도 훨씬 전인 잘은 모르 겠지만 80년대 중 후반이나 아니면 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게 아닌가 2004년 이후 부터 교도소 생활을 해본 결과
뺑끼통 책 하고는 상황이 다르고 영화나 TV에서 미화하는 것처럼 깡패들이 교도소 에서 설칠수가 없으며
교도소 거실내 에서 수용자들 끼리 사소한 말 싸움만 해도 교도관 들이 서로 격리 시키고 조사 징벌실에 쳐넣는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곳의 교도소 상황 이었다
다만 싫은 놈을 화장실 에서 샤워하고 있을때 주둥이로 험담하며 욕을 하는 경우가 있는대
이것도 당사자가 알면 서로 싸우고 징벌거실에 가게된다
분명한 사실은 사회나 교도소나 돈있고 백 있는 애들이 더 편하게 생활할수 있고 대접 받는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교도소의 절대 권력자는 교도관 이라는 사실이다

수용자에 대한 누명이나 음모는 교도관이 개입해야 제대로 성사 될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보다 지방 3급 이하 경상북도와 전라남도의 교도소에 이런 교도관들의 권력 남용이 상대적으로 더 심한것을 경험했다 이제 추위도 어느정도 가셨고 징벌방에 조용히 있다가 10명 이상 생활하는 곳에 오자 갑자기 짜증이 나는데 그렇다고 주먹질을 함부로 했다간 나만 검찰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는
더러운 일에 엮여 안되고 그냥 입실거부 하여 1-2사동 으로 가자
내가 들어갔던 조사실 사동에서 왼쪽거실에 나를 입실 시켰는데 거기에 먼저와 있던 또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조사실 문에서 반대쪽을 바라보는 왼쪽으로 반대쪽 거실 정면 에서 두개정도 왼쪽방향으로 떨어져 있는 거실에 작년에 포대공장 반장을 하던 서울사람 이라던 1조원 벤처사기를 했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들은적이 있던 포대공장 반장이 뜻밖에 부정물품으로 조사수용 되어 있네
그런데 조사실에 갖이 있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다른 조사거실에 있는 벤처사기범 에게
깍듯이 형님라고 하며 공손하게 대하네 물론 주간근무자 있을땐 다른거실과 통방을 못하게 하니
주간 근무자가 퇴근하고 난후 야간 근무자가 왔을때 몰래 조사 징벌실에 조금보이는 문위에 보이는 곳으로 서로 인사 하는데 조사 징벌자들은 방문 앞에 조사징벌 방에온 죄명과 수번 이름을 크게 적어놔 그 근처에 보이는 거실 에서도 확인할수 있기에 벤처사기범이 날 알아보고 먼저 아는척을 하며 왜 왔냐고 묻는게 아닌가
나는 간단히 얘기하고 왜 왔냐고 되묻자
2급을 달았는데 곧 있으면 주소지 서울강남 이니까 그쪽으로 2급 교도소로 이송을 가는데 누군가 포대공장 반장인 자신의 물품 보관함에 부정 물품을 집어넣고 교도관에 신고하여

부정물품 제작으로 누명써 들어 왔다고 이런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냐며 이번에 자신이 징벌먹으면 변호사 사서 고발 하겠다고 그러며 분통을 터트렸다 당시 대구교도소에 부정물품으로 조사징벌실에
오는사람이 다른 교도소 보다 비교적 많았는데 그중에는 누명을 쓰는 사람도 여럿 있을 수 있다
뭐 사실 사선변호사 사서 고소해도 변호사 비만 날리지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에서 전부 교도관 편인데
그걸 밝히는건 범인이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이상 진실을 밝히는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야간 근무자는 주로 4부제로 운영하는것 같고 평일에는 야간 주말이나 휴일에는 주야간 모두 야간 근무자가 돌아 가면서 근무하는데 중간 중간에 식사 나 휴식시간을 위해 사동을 비울수 없으니
또다른 교대 근무자도 여럿 있고 그래서 교도관들 수는 엄청 많다
그리고 벤처 사기로 들어온 사람은 나보고 포대공장에 있을때 서울사람 이라고 그러던데 그후 조사실에 나하고 같이 있던 사람이 벤처사기범에 대해 잘아는지
원래 고향이 군산이며 땅도 많이 사놨으며 재산이 수천억원은 될꺼라며 확인된 사실이 아닌말을 했다 또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사람 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잘 아냐고 묻자 대구교도소 이송와서 공장생활 하면서 여기 저기서 정보를 많이 알게 됐다고 그래서 벤처 사기범이 이번에 징벌받으면 2급수 에서 3급수로 떨어져 이송 못가게 되냐고 묻자 그럴수도 있고 일단 이송명령이 떨어 지면 연고지쪽 2급 교도소로 이송을 갔다가 다시 얼마 안있어 급수가 3급으로 떨어지면 2급교도소에서 교도관이 교정청에 3급수 이송신청을 하면 3급 교도소로 이송을 가야 한다고 그러는데 작년 포대공장에 있을때 벤처사기범이 나보고 경제사범 치곤 많은 징역 16년을 받았다고 당시 말한 것 같은데 당시는 11년 이상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여 약간 틀릴 수도 있다
이번에 2011년에 2급 수로 진급 하여 좀더 편한 주소지 쪽인 수도권 지역 2급 교도소로 이송을 가게 되는 와중에 누군가 앙심을 품고 급수를 떨어 트리기 위해 부정물품을 제작한걸 반장 체스트에
집어 넣어 누명씌워 이송을 못 가게 하려는 수작인것 같은데 나는 전부 들은 얘기라 정확한 진실이 뭔지는 내가 확인할 길이 없다 또 조사징벌실에 같이 있던 사람이 내가 작년에 봉투작업 거실에서 같이 있던 사형수의 사건도 안다며 내가 같이 생활해 보니 보기 에는 전혀 안그레 보이는데 어떻게 사형받 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그놈 보기는 그래도 아주 끔찍한 짓을 벌였다고 여자 여러명을 성폭행 하고 죽은 시체를 차에 실고 다닌놈 이라고 그러기에 반신반의 했는데

그후 출소하여 인터넷에 그놈 이름을 검색하자 사건은 2003년도 사건인데 공범은 이놈 보다 나이가 당시 더 많았고 31살인가 경북동해 바닷가 출신 이고 이놈은 당시 24살 인가
경기수원 용인일대 여성 6명을 살해하고 그중 두명은 성폭행 흔적도 있고 공범놈은 경찰에 포위되자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출혈 과다로 죽고 그놈만 사형 받았다는 걸 확인했다
아무 원한도 없는 여성을 6명이나 죽였으면 그중 두명은 성폭행 흔적도 있다면 죄질로 봐서 사형받을 만한 짓거리 한놈이네 그후 방에 있던 놈도 살인으로 징역을 많이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약 15년 인가
근데 이놈 말로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처음엔 사형을 받았데 이놈도 경상도놈 같은데 인천인가 어디서 무슨 사업을 하는데 중국말 할줄 아는 조선족 여자 직원이 필요해 고용하여 쓰다가
무슨 이유 에선가 조선족 여자가 탄 차에 폭탄 장치를 하여 죽였다고 하는데 아무튼 1심에서 사형 받고 2심에서 징역형으로 감형 받았다고 그러는데
전국의 어느 교도소도 대구교도소 보단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대하는 태도가 나을 꺼라고 그러내 자신은 그래도 고향이 이 근처 이니까 면회 오기도 좋고 해서 있는 거라고
다른 곳으로 이송 갈수 있으면 가는게 좋을 거라는데 전라도 광주교도소도 안좋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로는 대구교도소 보단 났다고 하는 얘기라며 나보고 그러는데
그말을 듣고 나도 이송을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듭 설명하면
전국의 2급 교도소 수는 각지역 마다 비슷한것 같은데

전국의 3급 교도소는 서울경기지역에는 안양교도소 하나 뿐인데 강원도 춘천. 원주. 교도소 전라도 전주. 광주 .목포. 순천. 교도소
경상도 대구.부산. 포항. 안동 .경북북부 교도소 (과거 청송교도소가 경북북부 교도소로 이름만 바뀜)1-2-3 교도소 충청도 대전 .공주. 교도소

경상도 쪽이 7개로 가장 많고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전라도로 4개 강원도 충청도는 비슷하고
수형자가 가장 많은 서울 경기 지역은 안양교도소 겨우 한개 뿐이니 서울 경기지역 수형자중 3급수는

지방으로 집시처럼 떠돌아야 한다

사실 대다수의 미결수 수형자중 분류심사후 형이 확정되면 3급을 받는다
그러면 3급 교도소로 이송을 가야 한다 그곳에서 생활 잘 하여 징벌 없이 형기의 3/2가 지나 재 분류하여 2급수가 되어야 자신의 연고지나 주소지 쪽으로 이송을 간다 법무부 교도 행정이 너무 불공평하게 운영 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

보통 분류심사는 교도소 마다 틀릴지 모르지만 당시 대구교도소 같은 경우 매달 10일 분류심사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 2급을 받으면 빨리가면 그 달말 이나 늣어도 다음달 중순 안으로
이송을 가는걸 보았다

그런데 사실 엿장수 마음이라고 권력의 도움을 받으면 신청한 바로 다음날 긴급 이감도 갈수도 있을것이다


뭐 일주일이상 한달 가깝게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일주안에도 혹은 이틀만에도 가는 긴급 이송은 얼마던지 있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과 같이 돈과 권력이 좋은 것이다


그후 조사 징벌실 거실은 사동 들어가면 오른쪽 방향에 있는 거실이 긴 쪽 거실로 교도관이 나를 집어넣었는데
내가 바라보는 반대쪽 들어 오는 입구에서
왼쪽 방향 거실 길이가 짧은 내거실 에서 거이 바라보는 반대 방향 조사징벌실에 있는 놈인데
보호대를 착용하여 묶여 죽는 신음을 내며 교도관에게 아프다고 풀어 달라고 사정 하는데 저놈은 6하9실에 있던놈
인데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놈인데 보호대 라는 것이 먼저 내가 성동구치소에서
한번 경험 했듯이 수갑을 차고 수갑 사이를 쇠로된 사각형 캡슐 모양을 왼쪽 오른쪽 수갑 사이에 씌우고 길이 약 1.2m 쇠사슬을 쇠로된 사각형 모양의 캡슐과 연결하여 조여 수갑을 찬 손목을 더조여 꼼짝 못하게 하고 쇠사슬을 허리를 돌려 강하게 조여 묶고 아무나 못풀게 열쇠고리를 채우는 것인데
열쇠키는 관구실 에서만 관리하여 식사나 급한 대변을 볼때만 관구계장의 허가를 받고 풀어주고 저녁에 잘때도 묶인 상태에서 자야 하기에 고통이 심합니다
보통 3일을 채우고 교도관이 판단 하기에 반성하는 기미가 있으면 보안과장 허가를 맡고 그전에 풀어 줄수도 있고 더 채울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건 교도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거하는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라고 보면 된다
엿장수 마음대로 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가격 에도 엿을 길게 짤라 많이 주나 짧게 짤라 적게주나 엿장수 마음 이다 그것도 권력 이라고 엿을 파냐 안파냐 엿장수 마음 이라고
모든것은 교도관들 마음 먹기에 따라 바뀌니
아무튼 보호대에 묶인 그놈은 무지하게 세게 수갑과 쇠사슬을 채우는 계구를 조였는지 앉지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몸이 계구에 묶여 엄청 조여진 상태로
구부정 하고 비틀어진 모습으로 엄청 고통 스러워 하며 고통의 신음소리를 계속 내며 벽에다 몸을 부딧치며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니까
담당 교도관이 오더니 좀 참아 보라고
자신은 권한이 없고 관구실에 연락해서 좀 풀어 주도록 해보겠다고 결정권은 관구실 계장 에게 있다고그러는데 한참동안 그놈은 괴로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다가 그후 좀 느슨하게 풀어줬는지 비명 소리가 줄어 들었다


나는 징벌이 끝나고 또 조사 수용 됐는데 이번엔 같이 수용된 사람이 나이가 60대 중반이 넘은 임씨라는 서울 사람으로 과거 청량리 조폭 출신 이라고 하는데 입실 거부로 수용된 사람 이었다
나는그때 처음 들은 이야기인데
과거 1973년 4월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윤필용이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박정희는 노후 했으니
이후락 보고 대통령 하라고 한사건으로 구속 됐을때 한국의 초대 전경련 회장을 엮임 하기도한 윤필용이 안양교도소에 구속되었을때
그때 임씨도 안양교도소에서 한참 젊은시절 전성기때 수감 중 이었는데
안양교도소 에서 일어 났었다던 유명 했다는 굴뚝을 타고 올라 갔다는 안양교도소 굴뚝 사건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그러며 윤필용이 갑자기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자 자신이 간호를 자청 하여 극진히 간호 하자 윤필용이 먼저 출소 하면서 꼭 찾아 오라고 그래서 찾아 갔더니
윤필용 집 문전에서 경비들이 문전박대 당하여 경비들과 실랑이 하는데 운좋게 마침 승용차를 타고오던 윤필용이 알아 보고 경비를 제지하고 집에 데리고 들어가서
옥천휴게소를 임씨 앞으로 명의 이전 해주고 윤필용 집에 있던 벤츠도 임씨보고 몰고 가라고 공짜로 줘 임씨가 직접 몰고 왔다며
옥천휴게소는 그후 몇년만에 팔았는데 지금까지 안팔고 있었으면 지금시가 1000억원이 넘을 거라며 얘기 하는데 이사람 말 뿐이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임씨는 2011년 12월초 쯤인가 만기출소 날짜라 그러는데 여럿이 생활 하기가 불편해 독거를 달라고 대구교도소 에서 입실거부 하며 투쟁중 이라고

고물상을 운영하며 도둑놈들이 훔친 귀금속을 팔아주는 사람들을 일컬어 장물아비라고 그런다는데 비싼 귀금속을 싼값에 도둑에게 싸게사 속칭 장물아비로 팔기에 마진이 많아 돈을 많이 벌어 강남에서 천만원 이상하는 술도 먹어본 적이 있다고 떠드는데 당시 영치금이 없는게 분명 한데도 몇백만원 있다고 구라치는게 다른 사람 일을 어디서 주어듣고 말하는거나 아니면 꾸며낸 거짓말 이라고 신빙성이 없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적도 있습니다
그후 징벌이 끝나고 배실되어 가보니 6상1실로 그곳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곳에 대구놈 한놈이 오늘 오후 만기 출소 방으로 가는데
이놈이 나한테 한대 맞아 주둥이가 피투성이된 놈이 형님으로 부르던 놈이 거실에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만기출소 거실로 옮길 시간이 다되어
날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혹시 그놈과 싸운적이 있냐고 묻자
싸운적이 있다고 하자 한대 때리자 주둥이 피투성이 되어 검찰송치 될까봐 걱정이었다고 말하자
이놈은 편든다고 그게 아닌데 날 때렸다고 하던데 하며 지랄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한대 때리자 그놈 주둥이에 피투성이 된것은 교도관이 보고 바로 나를 나오라고 그랬고
그놈이 피만 안흘렸어도 교도관이 화해 시켰을 것이 라며
내가 마음먹고 주먹질 했으면 그놈 턱뼈가 부서졋을 꺼라고 하자
이놈이 만기방으로 가면서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나하고 싸우고 징벌방에 데리고 갔을텐데 하면서
지금 만기방 으로 옮기게 되서 그냥 간다고 씨부리며 만기출소 거실로 옮겨 갔다
그곳에 있다 얼마 안되어 보니 조사 징벌실 에서 묶인 상태로
비명을 지르던 전라도 사투리 쓰는놈이 내가 배실된 거실로 들어 오는데 징벌실에서 너무 고생 했는지
몸살 났다며 몸살약을 계속 먹었는데
이놈말 들어 보니 나이는 나와 같고 전남대를 졸업하고 공수부대 중사로 제대 했다는데 당시 만기 출소가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2일 인가 남은 상태에서 징벌이 끝나 거실로 들어 왔는데
벌금이 있어 벌금을 누가 내주지 않는 이상 만기출소 날짜가 와도 못 나가고 벌금 사동으로 전방 가야 한다고 하는데
당시 대구 교도소는 벌금수는 벌금수 사동이 따로 있어 벌금수들만 사동에 모아 놓았다고 한다
공수중사 출신이 거실에서 약을 신청 한게 안나와 교도관 보고 왜 안 나오냐고 따지자
관구실에 불려가 묶이고 가혹행위를 당했 다는데 당시 관구실도 카메라가 없는곳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억울한 일이 많은지 정보공개 청구를 한다며 여러장 낸다고 했는데 공수중사 출신은 바로 출소날이 오자 벌금사동으로 갔다
근데 이 거실에 대구 건달 이라는 놈이 있었는데 이놈도 징벌거실 에서 온 놈인데 다른 사람은 다 설거지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놈만 안해서
내가 기분이 나빠 다른사람 다 설거지 돌아가면서 하는데 어린놈이 버릇없이 너만 안하냐고 따지자
나에게 욕을하며 삿대질 하면서 하기 싫으면 나보고 하지 말라고 해서 나도 삿대질 하며 어린놈이 어디다 대고 삿대질 하냐고 내가 욕을 하자
다른 거실에 있던 깡패놈이 내가 주먹이 세다는걸 아는지
이놈 보고 참아라 우사 당한다고 대구사투리로 씨부리네
대구교도소 에는 간간이 타지역 교도관이 있지만 다수는 경상도 교도관이 많았다
물론 거실에 수용 되었던 수용자도 경상도 얘들이 다수를 이뤘다
아무래도 대구다 보니 대구 근방 출신이 숫적으로 우세 하다고 봐야지
그러니 거실에 있는 놈들이 대구 건달인 이놈편을 은근히 들고 동조하는 놈이 있었다
작년 포대 공장에 있을때 영등포 출신 무기수가 이송을 간후 나 혼자만 수도권 출신이고 전부 경상도 출신 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거실에 있는 놈들은 당연히 자칭 대구 깡패 라는놈 편을 들겠지
그런데 대구 강패라는 놈이 갑자기 벨을 누르고 교도관을 부르더니
내가 계속 욕을 하며 시비를 거는데 나를 다른 거실로 보내라고 그러자 그럴순 없다며 교도관이 받아치자
당시 거실에 나까지 9명이 있었는데 나를 전방을 안보내면 8명이 입실거부 하겠다며 깡패 색끼가 방애들 데리고 전부 입실거부 하겠다며
관구실 면담을 갔다 오더니 관구실 에서 안된다고 그러건지 아니면 날 도둑으로 누명 씌우라고 가르쳐 준건지 모르지만 관구실 갔다오더니 갑자기
지 옷이 하나 없다고 지랄 하길래 누군지 도둑으로 신고 한다고 하여 이놈이 날 도둑으로 누명씌우기 위해 내가 화장실 간사이 내 채스트에 저놈 옷을 집어 넣고 누명씌우는게 아닌가 순간 생각이 들어 체스트를 열어보자 저놈 옷이 있어 그옷을 그놈 앞에 내 던지고 이 개색끼가 날도둑으로 몰려고 여기 집어 넣었다고 소리치자
이놈은 날 도둑으로 신고 한다고 지랄 하길래 이놈이 나하고 싸우면 질것 같으니까 별 더러운 짓거리를 꾸미네 여기 있다간 더럽게 엮기겠다 내편은 하나도 없는데 전부 거짓 으로 누명씌우면 나만 당한다고 생각이 들어

227p-그 거실을 그냥 나와서 조사 징벌실로 갔는데 조사실 에는 또 한놈이 있는데 약간 정신이 이상한 놈을 공주나 진주 정신병 치료 교도소에 가 있어야 할놈 이 있는 거실로 나를
집어 넣는데 제대로 씻질 않아서 썪은 냄세가 많이 났고 밥도 오래돼 썪은 밥을 버리지않고
쳐먹고 옷이고 머고 지저분 하고 말도 잘못하고 사람말도 이해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신 지체아 같은 놈인데 이런놈을 냄세 난다고 폭행해봐야 나만 폭행죄로 엮여 고생하니
어리석은 짓이고 또 징벌실 에서 싸우면 무조건 쇠사슬로 묶기고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려가 교도관들 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며
괴롭히는 수용자 비명소리를 여러번 들었고 그래서 때릴순 없고
냄세가 나서 못 있겠다 고 바꿔 달라고 교도관 에게 계속 사정하자
한참있다 다른 거실로 바꿔 주는데
만약에 교도관이 모함 할려고 안바꿔 주면 입실거부로 나와야 하는데
조사 징벌실에서 또 조사징벌추가건이 생기면 일반 거실과 달리 제재가 더심하고 징벌은 따블로 받고 대부분 보호대인 수갑과 쇠사슬로 묶어 고통을 주기에
그런 쪽으로 유도 할려고 교도관이 마음먹으면 꼼짝없이 당할 판인데
분명 정상적이 아닌사람과 는 분류해서 수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같이 수용하면 나는 엄청난 고통을 받을수도 있었는데 다행이 당시에는 그렇게 까지 날 엮으려는 의도는 없었는지 다른 거실로 배방되어 가보니
나는 처음 보는것 같은데 나를 알아 보더라고 작년 2월에 서울 성동구치소 9상4실에 나하고 잠시 같이 있었다며 날 알아보는데 나는 얼굴을 못알아 보겠더라고 성동구치소 신입거실에서 본거실로 처음 배실되어 중방에 가니 당시 나빼고 4명이 있는데 그중 한명인데
다른 놈들 하고 심하게 욕하며 싸움했다 이 사람은 주변에서 관망 했는지 기억이 안나 이사람은 고향이 대전이고 그때 형기를 마치고 나 갔다가
경찰관 폭행으로 다시 들어 왔는데 청주인지 충주구치소인지 에서 대구로 이송왔다고 하며 만기출소가 올12월 이라고 하는데 대구교도소는 있을곳이 못된다고 이송 보내 달라고 계속 요청 중 이라고 하더라고


사회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들어온 사람도 대구 교도소 내에 서는
교도관에게 못덤비는게 교도소는 사회와 격리된 곳이고
교도관에게 덤비면 말이좋아 보호대이지 수갑과 쇠사슬로 세게 조여 묶고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으로 끌고가서
집단구타를 하여도 증거가 없어 진실을 밝힐수 없고 그런 과정에서 반항해 봤자 오히려 더 심하게 구타와 고문과 같은 모진 가혹행위를 당하고 오히려 공무집행방해등 교도관 폭행으로 누명씌워 엮여 검찰에 송치되어 추가징역을 받는 불이익이 심하여 엄청난 손해가 오기에 울며 겨자 먹기식 으로 빨리 출소 하려면 참을수 밖에 없는 구조 입니다 특히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에 있으면서 카메라없는 사각지역에 불려나가 교도관에게 집단으로 구타당하는건지
수용자 비명소리를 여러번 들었고 또 교도관에게 폭행당했다는 소리를 수용자로 부터 여러번 들었습니다
여기가 현대판 삼청교육대가 아닌가 평일 주간에는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사동은 적막할 정도로 교도관들 목소리만 들리지 조용합니다
떠들면 잡아다가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대려가 묶고 패니까
그래도 내가 직접 구타를 당한적이 없기에 피부에 안와 닿았는데
징벌을 마치고 본거실로 배방 되었 다가 작년에 검찰에서 살인미수로 조사 받은게 아직 연락이 없어
검찰청에 정보공개 청구서를 등기편지에 넣어 보냈더니 방에 있떤놈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교도관이 보복으로 검방을 와서 꼬투리 잡아 거실이 불편하니
내지 말라고 봉사원 하고 거실에 있던 놈들 전부 지랄해서 이거 낸다고 무슨 불이익 받는다고 지랄 하냐며 나는 어거지로 교도관에게 제출하고 일단 그거실을 나와서 조사실에
다시 갔는데 그후 일주일도 안돼서 검찰청 에서 통보가 왔는데 이미 작년에 혐의없음 불기소 처리 됐습니다
법을 모르던 나는 내심 다시 검사가 죄명을 상해로 바꾸고 약식기소하여 벌금형으로 끝나길 바랬는데 그러면 정식재판 청구를 하면 서울 성동구치소로 다시 이송을 가서
한동안 편히 지낼수 있는데 그리고 사건도 완전 종결 된것을 확인할수 있는데 살인미수가 검사가 불기소 하여
증거 불충분 으로 혐의없음 처분이 나온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혐의가 생기면 다시 기소 할수도 있다는
얘기라 왠지 걱정이 드는데
허기야 검사가 한번 혐의없음 처분 으로 끝난건 두번다시 기소 할수 없는게 아닌가

228p-이걸 나중에 다시 기소한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주변 사람들 얘기 들으니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던 안하던 검사 마음인데 증거 불충분은 증거가 생기면 다시 기소 할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는 검사들 명예도 있고 해서 거이 희박하다 지만
이건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이라
은근히 다시 기소 할까봐 걱정이 들기도해 이거 완전히 끝난 사건이 아니라 공소시효 지날때 까지 코.걸린건 아닌가 의심이 드는데 결국 2015년도에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는 살인미수도 해당이 되어
이재용 이놈이 역시 교활하고 치밀한 놈 답게 나를 누명 씌워 엮으려 하다 하다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이재용의 외삼춘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의 장인인 박정희 정권의 실세 신직수가 인혁당 사건을 진두지휘하여
7명을 누명씌워 사법살해하고 7명을 무기징역 선고하듯 날 누명씌우려 최후의 수단으로 살인미수를
다시 기소하여 누명 씌우려는건 아닌가 불안하고 걱정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기소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어거지다
나도 살인등 강력 범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없어 질려면 아예 전부 다 없어 지던가 최소한 20년전 사건 부터 없어 지던가 아니면 법이 시행되는 2015년 사건 부터 시행 하던가
희괴 하게도 왜 2003년인 12년전 무혐의 나온 사건을 집어 넣으려 한 의도는 아닌지 의문이가도록 2000년부터 소급 적용 한다고 하니 한국의 입법 사법 행정권을 쥐고 흔든다는 삼성공화국 이재용이 내 사건을 은근히 집어 넣어 법을 만들기 위한 배후 세력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의 법이 바뀌어 시행된건 만약에 2015년도 법이 바뀌었으면 법이 적용 되는 것은 2015년 사건부터 법이 적용 되었다 몇 년전에도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바뀌었는데 법이 시행된 년도 부터 법이 적용 되었는데
이번엔 다르게 법의 잦대를 들이대는게 삼성가 오너 이재용의 입김이 작용한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사부재리 원칙은 법원의 판결만 적용 된다지만

피해자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검찰 스스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고 피해자도 혐의 없음 처분에 대해
인정하여 검찰의 처분에 불복하여 검찰에 항고나 재정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소 해서도 피해자 근처도 가지않은 상태에서 다시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식 법으로 살인미수로 기소한다는건
21세기판 인혁당 조작 사건과 같아 내 생각에 다시 기소한다는건 거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걸 다시 기소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있을수 없는 치사한 더러운 꼼수라 검찰의 명예도 있기에

무리하게 기소할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동물 보다 못한 이재용이 언제 어느때 자신의 범행이 들어나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 할수도 있는 더러운 놈이다

그래서 세상에 알리는 것 이다 세상에 알려지면

그런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이재용이 쓸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가 중정애들을 시켜 도쿄 에서 김대중을 납치하여 암살 하려다가

기적적으로 중정 애들의 소행 이란게 일본과 미국에 알려져 지고 만약에 김대중이 의문사와 실종이 된다면 박정희가 작업 한 걸로 세상 사람들이 전부 믿게 되는 상황이 되자

김대중을 음밀히 암살하지 못한 것 처럼 나에 대한 삼성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는 것 이다


정신 지체아 하고 못있겠 다고 방을 옮겨 그후 거실로 가보니
또다른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놈 하는 얘기가 또 가관이라
부산 어디 대학을 나오고 정보부 에서 일을 했다는데 안기부 냐고 물어 보자 안기부는 아니라고 그러며
아무튼 그런게 있는데 과거 노태우 정권 말기인지 김영삼 정권 때인지 지금은 당시들은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국가기관 에서 사주한 일을 수행 하다가 과잉 으로 대하여 몇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그때는 그냥 너머 갔는데 노무현 정권때 인가 누군가 그때 그일이 재수사 들어 왔다고 도망 가라는 식으로 암시를 수사기관 에서 줬는데 무시하고 있다가
구속되어 징역을 많이 받았는데 원래는 사형인데 정상 참작해서 징역형을 줬으니 항소하지 말라고 판사가 따로 불러 얘기 했데나. 그래서 징역을 얼마나 받았냐고 했더니 말을 안해 주더라고 그런데 나중에 다른사람이 말한 내용에 근20년 가까운 징역을 받았다는데
판사가 와서 항소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지나가는 개도 안 믿겠다고 한다
이놈은 거짓말 같은 말을 진짜처럼 말하네 자신이 국가에서 비밀리 수행하는 정보부가 하청 준것 비슷한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내자 특채 되듯이
합격 했다고 당시 그런 정부쪽 일을 한 사람은 정부의 도움으로 취직하기 쉬웠데나
아무튼 이놈이 90년대 중반인지 후반인지 초반인지 모르지만 90년대 삼성코닝 이란 회사에서 오래 일한건 아니고 잠시 일한적이 있다는데

229p-내가 삼성회장 막내딸과 관련하여 이상하게 얼킨 사연을 이야기 하자
자신이 삼성코닝 이란 회사에 다닐때도 일부 몇몇 사원들 사이에서 삼성회장 막내딸이 본처 홍라희 자식이 아닐꺼 라는 말이 있었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내가 당시 미국에 노스케롤라이나주에 있던 아스카란 일식당에 신문에난 구인광고 보고 뉴욕에서 전화하여 일을하러 갈때
당시 가명을 썼는데 그리고 그후 약 십여일 정도 일 하다가 저녁에 일 끝나고 숙소에서 주방장하고 싸우고
느닷없이 그만 두고 나왔는데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금금 하다고 하자
내가 당시 여권이 있었냐고 묻자 당시 여권은 플로리다 잭슨빌 이민국에 압수당해 없고
대신 뉴욕 영사관에서 발급 받은 여행자 증명서가 숙소 내 가방에 들어 있었다고 하자
내가 일하는 사이 누군가 숙소에 가서 내 가방을 열어보고 내 신분을 확인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얼굴만 알면 한국 미국 대사관이나 미국 이민국에 내 사진이 있어 인맥이 있으면 사진을 대조하여 금방 찾는다고 한다 이놈이 이런말을 하는소릴 들으니 정보부 하청업체 같은데서 일은하긴.했었나.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 정도면 인맥이 한국은 삼성공화국이고 국제적 인백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정보가 한국 국가정보원 보다 빨라
나를 찾는건 일도 아니라고 하네 여기서시간이 지난후 돌이켜 추리해보면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의 남동생 현재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이가 노무현 정권때 왜 주미 대사를 했을까? 지금와 갑자기 의문이 든다
주미 대사는 하라고 해도 안할사람 같은데 나는 2002년 미국 아스카 일식집에 있을때 성씨와 이름을 가명으로 말 했던 걸로 기억 한다 나는 미국에서 돌아 다닐때 가명과 성씨도 바꾸며 오너에게 말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해고도 많이 당하고 내가 그만두고 나온 적도 많아 나에게 안좋은 이미지의 소문이 돌까봐 나의 본명을 말하고 십지 않았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나를 채용하는 오너들이 신분증이나 여권을 보여달라며 확인한적이 거이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조사실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내가 조사서에 내가 하지않은 말이 적혀 있어 바꿔 달라고 하자
갑자기 교도관들이 욕을하며 볼펜을 나에게 집어던지고 때리고
나를 1-2조사징벌 사동 야외사동이 나오는 카메라 없는사각지역으로 끌고가 욕을 하며 나에게 푝력을 행사하자 내가 왜그러냐고 하자
그소릴 듣고 조사실 교도관 3명도 나와 합세하여 교도관4명이 날잡고 폭행을 하는데 특히 조사실 교도관이 더세게 때리네 그런후 날 관구실로 데려가 관구계장 에게 보고하고 쇠사슬로 묶을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관구계장 책상앞에 바닥에 무릅을 꿇고 비는식으로 고개숙이고 있는놈은 나하고 나이가 같은 자칭 전남대를 나왔데는 공수부대 중사출신 이라는 애가 있는데 만기 날짜는 벌써 끝났는데 벌금이 남아있어 지금 벌금 사동에 있는가 본데
또 뭔일이 터져서 계장 앞에서 저러고 있는지 모르 겠는데 당시 계장은 팀장이 아니고 부팀장이라는데 교도소는 관구마다 2-3개사동을 엮어 관리하는 그전에는 관구실이라고 했는데
번호를 정해 팀실로 바뀌 었는데 팀장이 제일 팀에서 높고 부팀장이 그 다음인데
당시 부팀장이라는 사람은 비교적 젊은 사람으로 서울 말씨를 쓰고 나에게는 항상 존댓말로 대해 줬지 저사람이 고향이 수도권 출신 인지는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다른 교도관과 달리 우호적 이었지 그런데 자칭 전남대 를 나와 공수부대 중사로 제대 했다는 얘는 나하고 짧게 같이 있으면서
나이가 같아서 나하고 비교적 얘기를 많이 한편인데 저놈은 저번에 관구실에서 가혹행위를 심하게 당한적이 있다며 또 교도관 에게 보호대 쇠사슬에 심하게 묶여 징벌거실 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며 눈물을 보인적이 있는데 당시 내가있던거실 바로 맞은편거실에 저놈이 있어서
당시상황을 자세히 볼수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징벌에 해제되고 본거실로 갔는데 바로 그 다음날 인가 이놈도 징벌실 에서 나와 내가 있던 거실로 왔는데 징벌거실 에서 너무고생 하여 몸살감기 걸렸다며
이놈이 얼이 빠져 있더니 뭔가 억울한게 있는지 어디에다 편지보낸 다고 등기 우표 나보고 빌려 달라고 하여
만기 출소가 다됐놈이 무슨 등기 우표냐고 하자 벌금이 있데나 이놈이 출소하면 한장당 열장으로 보내준다고 약속하고 몇장 빌려주자 출소하면 꼭 이자까지 쳐서 값는다고 하던놈이 그후 소식이 없었다
당시 만기 출소가 2-3일 인가 남겨두고 이놈이 내가 있던 거실로 배실받아 왔는데 정보공개 청구를 내려하자 당시 사동 담당 교도관이 출소얼마 안남았는데 출소하면 하라고 하자
벌금이 있어서 누가 내주지 않으면 못나가고 벌금수 사동으로 옮긴다고 하며 정보공개 청구서를 교도소에 여러장 낸 놈인데 그후 만기 출소날 벌금 수 사동으로 거실을 옮긴 놈 인데 그후 소식이 없다가
관구실 계장앞에 무얼 잘못 했는지 바닥에 무릅을 꿇고 고개 숙이고 빌고있네

230p-그런중에 나를 관구실로 대려간 조사실 교도관놈이 계장에게 경례를 부치고 나를 묶는다고 신고하고는 묶고 다시 1-2 사동 야외가 나오는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데려가 다시 묶은걸
더 세게 묶는다고 조사징벌실 교도관까지 합세하여 4명이 무지하게 쎄게 조이는 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데도 쇠사슬을 세게조요 수갑도 조요와 손목도 끊어 질듯이 아프고
그런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또 무잡이 하게 교도관 4명 에게 폭행당하며 그중에 비교적 젊은 교도관 놈이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놈인데 저 교도관놈에게 삼성 얘기를 한마디도 한적없고 당시 대구교도소 에서는 교도관에게는 삼성 얘기를 한마디도 않했는데

갑자기 저런 도둑놈 에게 삼성회장이 천억을 주려 했냐고 비아냥 거려
나 도둑놈 아니다 고 하자 그래너 죄명이 도둑놈 아닌거 알아 불지른 놈이나 도둑놈 이나 뭐가 틀리냐 개색기야 그러네 저놈은 얼마나 성인 군자 인가
내가 볼땐 어떤 흉악범 보다 더 나쁜놈 같은데 허기야 과거 김대중 권노갑 김근태 같은 사람도 국가 공권력 악용에 무잡이 하게 고문을 당하지 않았는가
특히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 으로 일찍죽지 않았는가 그때 고문 당할때 고문 당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국가공권력 악용에 의한 폭력을 행사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는 모습에
더 분노를 느꼈다고 그후 김근태 의원이 회고 하였다
이곳 교도관들은 마치 점령군이 적군 포로 대하듯 하는 모습에 정말 분노가 치밀 었지만 빨리 출소하여 이러한 사실을 세계 양심에 폭로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아야 했다 저놈들은 없던 죄도 누명씌워 엮으려는 놈들이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도저히 이길수 없다는건 성경책 에도 나와있다
관하고 싸우면 손해라고 내가 여기서 난동을 부려 교도관4명을 때려 제압하면 순간 분은 풀리 겠지만 그걸 빌미로
내가 난동을 부리며 탈옥 한다고 누명씌워 총까지 가져와 죽일려고 할놈 들이다
그게 아니 더라도 공무집행방해 교도관 폭행상해로 누명씌워 추가 징역을 몆년을 더받을 수도있어 사회에 나갈수가 없게되어 참고 어떻게든 사회 나가서 이러한 진실을 세계양심에 알리는길이 유일한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그렇게 교도관들은 나에게 원수라도 진것 처럼 숨시기 조자 힘들 정도로 세게 수갑과 쇠사슬로 묶어 심한 고통을 받다가 묶긴 상태에서 카메라 있는 조사 징벌실에
수용되어 있다가 저녁에 식사하기전에 풀어주고 주간 근무자가 퇴근하고 저녁식사 마치고 다시 묶을때 야간 근무자는 좀 느슨하게 묶어 줬다 야간 근무자가 아침식사 때 풀어주고 다시 주간 근무자가 오기전에 묶어주고 퇴근 했는데 그후 어제 날 묶고 폭행했던 조사과 교도관놈이 다음날 아침 오전에 출근 하자마자 또 오더니 누가 이렇게 느슨하게 풀어 줬냐고 그 교도관이 누구냐고 지랄하며


신경질을 부리며 다시 나를 거실에서 나오게 하여 사동밖 카메라 없는사각지역 야외가 보이는 곳으로 끌고가 쇠사슬을 세게 징벌실 주간 교도관 3 놈과 합세하여
세게 묶네 그후 얼마만에 조사과에 가서 조사를 받았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조사과에 묶인 상태에서 끌려가서 조사과 다른 직원놈 에게도 몇대 얻어맞고 묶인 상태에서 의자에 앉자 조사 받는데 내가 불 지르고 낮들고 설친건 왜 그랬냐고 내가 4년 받은 사건을 어떻게 알고 물어 보길래 그건 이미 서울 성동구치소에 있을때 끝난 사건이고
지금 대구 교도소에서 조사 받는거 하고 무슨 상관 이냐고 하자

그 사건에 대해 더이상 지랄하지 않고 조사과 교도관놈 마음대로 쓴글을 읽어 보고 무인찍으라고 보여준 조사서를 읽어보니
교도관 놈들이 날 묶고 때린건 쏙 빠지고 내가 교도관놈 들을 욕을 하며 밀었데나 또 교도관을 욕을하며 쳤데나 하는 내가 하지도 않은 내용을 누명을 씌워 무인을 찍으래 그래서 난 무인 못 찍는다고 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묶인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는데 적반하장으로 나보고 누명을 씌우는데 난 무인 못찍는 다고
하자 이놈이 다시 1-2 조사 징벌사동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으로 끌고가서 조사 징벌실
교도관 3놈과 합세하여 도합 4놈이 더세게 쇠사슬로 쪼이고 고문하며 폭행하며
무인을 그대로 진술서에 찍으라며 지랄하는데 환장 하겠네 불한당도 이런 불한당 이없네
무인 찍으면 내가 교도관 에게 집단으로 린치 당하고 오히려 공무집행 방해 폭행등으로 누명씌어 검찰에 송치되어 재판하고 추가 징역 받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혹시 검찰에 송치까진 안되 더라도
다음에 또 이런일이 발생하면 나는 교도관들의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 상습범으로 누명씌워 낙인 찍히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판검사들이 교도관들 말 믿으려 하지 죄수인 내말을 증거도 없이 들으려 안할건 뻔한일
더구나 이곳은 지역 차별이 심한 경상북도 대구다 일단 무인을 찍고나면 상황 끝이야 그전에

231p-군사 정권때 인혁당등 빨갱이로 누명씌워 사법살해 했을때 고문으로 허위 자백 받은 경우와 중세 시대 마녀사냥 으로 누명씌우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심한 고문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워
중세 1000년간 드러난 수치만도 6000만명 이나 화형으로 죽였 다는데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고문하여
강제로 허위 자백을 받게 하거나 아예 하지도 않은 말을 진술서를 조작하여 누명을 씌워 죽인 거라고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들기 시작 하였다 왜 내가 이런일을 직접 겪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미처 못했을까
심지어 대구교도소 조사 징벌실에 수용중일 때도 교도관들 에게 일부 수용자가 심하게 폭행 당하며 가혹 행위를 당한다는 말을 동료 수용자에게 수시로 듣기도 했고 실제로 내가 조사징벌실에 와서도 거실밖에서 들리는 다른 수용자가 교도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며 내는 비명 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는데도 무슨 배짱으로 설마 나에게는 안 그러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직접 내가 당하자 그때가서 정신이 바짝드는 네가 너무도 어리석었다
마치 개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 가기전 에는 평생 주인들이 먹이를 주고 사육 하며 안 죽이겠지 생각하던 개 소 돼지들이 막상 도살장 에서 미리 도망가지 못했는 걸 후회 하는 것 처럼
세상은 더 적극적으로 교활하게 모사와 음모를 꾸며 부귀영화를 훔치려는 자들이 정복하며 인권을 탄압 하고 지배자가 된게 징키스칸 부터 동서고금의 모든 정복자들이 그랬다 지금은 한국의 정복자들은 경상도 문둥이들 같았다 교도관들 여럿이서 나를 쇠사슬로 묶고 욕과 함께 조롱하며 폭행하면서
니가 독립군이야 개자식아 그러며 비아냥 거리는 소릴를 여러번 하길래
그래 나는 독립군은 아니다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니들은 독립군잡던 일제 압잡이냐 압잡이 노릇해서 부귀영화 누리며 잘쳐먹고 잘살겠다 저 더러운 문둥이 교도관 놈 들이 왜 나보고 독립군이냐며 비아냥 됐을까 당시에는 의아해 했는데
대구 출신의 박정희가 과거 만주군관 학교에 일제시대때 입학하기 위해
나이 제한에 걸린걸 풀기위해 천황에게 견마지로란 충성맹세 혈서를 쓰고 입학한걸 알고 인터넷에 올린적이 있는데
그걸 읽어본 대구교도소 교도관이 기억하고 있다가
비아냥 거리며 보복하는 참으로 치사한 것들이다 교도소 밖에서 일대일로 나와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놈들이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고 나에게 가혹행위 범죄를 저지르며 니가 독립군이야 하면서 인터넷에 올린걸 조롱한게
아닌가 되돌아 생각해 보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사실 교도관놈과 조사징벌실 교도관놈 4명 조사징벌실 사동 도우미 한명 5명이 전부 좆조작하여
똑같이 증언 하는데 너혼자 아니라고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고 나를 가혹행위 하고 조사한 조사과 교도관놈이 비아냥 거리는데 저게 악마 색끼지 저게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하고 일대일로 붙으면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게
교도관이라는 국가공권력을 악용하여 등에 업고 까불며 악마 짓거리를 하는구나 생각하니 정말 울분을 토할길이 없었지만 저놈을 내가 때리면 기회는 이때다 생각하고 CRPT교도관 까지 때거리로 한10여명 이상이 달려와 나를 쇠사슬로 묶고 폭동을 일으킨다며 워카발과 몽둥이로 날 짓이겨 죽이려고 할껀대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하고 참을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저놈은 날 약올리며 국가공권력 이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계속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계속 유도하는 저놈은 더럽고 치사한 마귀 색끼 같았다
과거 신창원 이도 부산교도소 교도관들 에게 발로 밟히며 가혹행위를 많이 당해 탈옥을 결심 했다는 신창원이 쓴 일기장에 교도관을 악마로 표현한 내용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가물가물 기억 나는데 그때는 그게 건성으로 깨닫지 못했는데 막상 내가 이런 억울한 누명을 당해보니 정말 미칠것 같은데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악독 한지 상상을 초월하네
이런 경우 내가 아무리 억울한 사연을 글을 써 진실을 설명하려 하여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으려도 하지 않겠지 전과가 없는 사람들은 교도소에 수용중인 죄수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데
신경도 안쓰는 사람이 대부분일 가능성도 있다 요즘같은 21세기에 그런일이 어떻게 일어 나냐고 일부러 모른척 하며 비아냥 거리겠지
그게 현재 한국 이라는 양아치 국가의 국민의식 이다 허기야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조선의 젊은 여자만 20만명 이상 포로로 끌려 갔는데 그중 상당수가 도망쳐 조선으로 오자 일부는 임신하여 오기도 했는데 화냥년 이라고 조선에서 조리돌림을 당하여 거이가 고향으로 못가고 떠돌다가 자살한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다고 한다
일제때는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개도살되듯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하는데 구사일생으로 광복후 한국에 돌아와도
위안부라 그러면 창녀보다 못한 조롱의 눈빛으로 조롱하여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던 시대였다 위안부가 서서히 사회에 알려져 이슈화 하기 시작한 시대가 1945년8.15 해방후 무려 45년후인 1990년대 이후라고 했다 위안부들은 일제때 강제로 끌려가 고생한것도 모자라 한평생 주변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한국이란 사회는 돈과 권력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않고 정복한 정복자만이 사람대접 받고 인정받는 사회로 내 가족이 아니면 누가 이런 경우

도와 주겠나 그래서 교도관놈들도 신분장 보고 사람을 대하지 그런데 대구건달 그놈은 가족도 제법 산다고 하고 사제 신발이며 런닝 양말 들이 나이키 아디다스로 비싼 명품으로 도배 했는데도 관구실에서 폭행 당했다고 하여 상처까지 났는데 사선 변호사 사서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는데 변호사가 교도관들 6명이 똑같이 난동을 부리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랬다고 거짓말로 둘러되며
교도관이 때거리로 진술하여 폭행당하고 가혹행위 당한 증거를 밝힐수가 없다 잖아
난동을 부린적도 없이 묶인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했 다는데 사선 변호사 사서 밝히려 하는데도 못 밝히는데
그래도 가족이 있는놈 보다 없는 놈이 가주고 놀기가 훨씬 쉽겠지
가족이 있으면 밖에서 찎소리 라도 하지 내가 이런일을 당해보기 전에는
지들이 하지않은 일을 왜 자백했나 지들이 했으니 자백 했겠지 나는 아무리 고문이 심해도 내가 하지않은 일은 허위자백 안해 하고 생각 했는데 내가 직접 고문을 당해보니 고문에는 장사가 없겠더라고
군사정권 시절 간첩도 아니데 희생양으로 몰아 고문으로 허위자백 하게 만들어 사형당한 사람들
특히 인혁당 사건 같은 경우는 재판기록 까지 조작하여 하지도 않은 말을 조작하여 선고 끝나고 다음날 사형시켰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이 상당수 인데도 그렇게 당했는데


(1989년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한 여성이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공원을 산책하다가 잔인하게 성폭행당했다. 뉴욕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날 공원에서 난동을 부린 10대 소년들을 주목했다. 다섯명의 소년이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을 신문해 '피해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재판 때 이 소년들은 경찰관이 신문 때 때리거나 모욕하고 자백을 해야만 구류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믿지 않았다.경찰에서 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됐다. 소년들은 각각 징역 5년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2002년 1월 '센트럴파크 성폭행 사건'의 실제 범인 마티어스 레이즈가 나타나 자신의 범행을 뒤늦게 자백했다. 레이즈의 디엔에이(DNA)가 피해
여성에게 묻어 있던 것과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12월19일 소년들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자백에만 의존해 유죄로 단정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미국 사회는 성찰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여러 연구 결과들은, 허위 자백이 오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25%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1966년 '미란다 판결'로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가 사라지고 허위 자백은 사라졌을 것이라는 미국 사회의 통념은 뒤집어졌다.
리드 기법'이라는 고도의 신문기술
우리나라는 어떨까. 김상준 판사(서울고등법원)가 쓴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 인정에 관한 연구' 논문(2013)은 국내 허위 자백 사건을 전수조사한 첫 논문이다.
1995년부터 2012년 8월까지 1심에서 유죄판결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540건의 사건을 분석해보니 180건(31.5%)이 피고인 또는 공범의 허위 자백에서 비롯된 게 확인됐다.
1년에 10건 정도씩이다. 고문 수사가 사라졌다고 여겨진 시대에서 절대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니다.)
-한겨례-한겨레|입력2014.09.20 11:00|수정2014.09.20 13:50 허재현 기자 [한겨레][토요판] 뉴스분석, 왜?
이것들이 내가 잘때 몰래와서 문을열고 무인을 찍어 가는건 아닌지 그럴경우 검찰조사시 아무리 검사에게 하소연 해봐야 소용 없는일 아닌가 잘때도 고무장갑을 끼고 자야 하는데 하며 걱정했는데 그후 무슨일이 생겼는지 조사실 교도관이 날 다시 조사실로 대려가
조서를 다시 꾸미며 내가 교도관을 폭행하고 욕을 했다는 누명의 글은 빠졌다 또 교도관이 나에게 폭행하고 묶인 상태에서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당한 부분도 빠졌다 아예 교도관에게 고문과같은 가혹행위와 폭행을 당했다고 조사내용에 교도관들이 적으려 하지않고 적반하장격으로 누명씌워 내가 욕하고 밀쳤다고 교도관 공무집행방해 폭행등으로 누명씌워 엮으려던 것들이다
그후 얼마있다 조사 징벌실 사동에서 사동 도우미들과 교도관 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에
날 누명씌워 엮어서 추가 띄울려고 했는데 s구룹회장 막내딸이 날좋아하다 자살해서 천억 주려했는데 검사벌금에 천억주고 합의 했다고
삼성회장이 과천 법무부 누군가 높은 사람이 교도소 소장에 지시하여 소장이 막아서 못했다고
하는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얼마후 교도소 소장인지 부소장 인지 순시 와서 간적이 있다
쇠사슬이 풀리고 직무방해로 징벌 30일을 추가로 받고 있는중에 조사징벌실 교도관 3명중 2명이 직원들이 6개월만에 인사이동하는 관계로 바뀌 었는데 징벌 30일이 끝나갈 무렵 경상도 20대후반 젊은놈이 갑자기 내거실로 오는데
이놈 얘기로는 입구와 가까운 거실에 두명이 있는데 만기출소 얼마안남은 사람과 같이 있는데


?

새로 바뀐 교도관 놈중에 한놈이 만기 출소 몇칠 안남은 사람을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대려가 패서 눈가에 상처233p-가 나자 그후 만기출소가 몇칠 안남은걸 교도관이 파학하고
상처가 난사람이 출소하여 고소하여 증인으로 같은거실에 있던 사람이 증인을 서줄까봐
이놈을 불러다가 은근히 겁을 주더래 젊은놈은 징역이 좀더 남아 있어
만약에 같은거실에 있었다고 증인을 서주면 보복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하며 교도관놈이 카메라 사각지역으로 끌고가 내가 때리는거 봤어 상처난거 봤어 그러는데
물론 때리는건 못봤지만 얻어 맞는 비명소리는 들었고 들어와서 눈가에 상처가 있는걸 봤는데
교도관에게 못봤다고 하자 이놈을 내가 있는 거실로 옮긴거래
그후 이놈얘기를 듣다보니 먼저 서울 남산전공 나와서
자존심이 강하여 교도관의 부당한 지시에 반기를 들고 따지다 누명을 썼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징역에서
무려 8년이나 추가를 떠서 억울해 하는 대구교도소 징벌실에서 잠시 만난 유씨라는 사람이 말하던 그놈이
이놈 이었네

이놈이 자백을 하는데 싫은 유씨를 이놈이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당시 담당교도관이 봤데
근데도 담당교도관이 같은 경상도 놈이라고 편든건지 쌍방으로 폭행했다고 진술해줘
당시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어 법원 재판부에서 형량이 적게 나왔다고
쌍방으로 되어 있으니 상대방도 벌금이 나왔을 거라며 그러는데
정확히는 기억안나지만 당시 벌금이 몇백만원 나왔다고 하는말을 들은 것같은데
만약에 쌍방이 안되 었으면 추가징역 1년 이상도 나올수 있었다고
이놈혼자 씨부리 더라고
그때 쌍방 폭행으로 누명씌울려고 이놈팔을 벽에 부닥쳐 부어오르게 했는데
그걸 써먹진 않았데나
그리고 거실에 있던 놈도 조사실에 가서 이놈을 도와 허위진술 해줬다고
지랄하네 이놈말로는 당시 28살인가 그랬는데
남산전공 나온사람은 당시 45세 라고 그러 더라고
대구라 더덥고 당시 7월이라 엄청 더웠는데
이놈이 쓰러져 있을 테니까 나보고 비상벨만 눌러 교도관만 불러 달라고 그러네
그러더니 이 색끼가 자빠 지더니 끔쩍도 안하네 그래서 난 진짜 이놈이 정신이 나간줄알고 발로 이놈 허벅지를 차고 정신차리라고 해도 그래도 움직이지않자 주먹으로 그놈 가슴을 몆번치고 일어나라고 해도
끔적도 안하네 그래서 비상벨을 누르고 교도관을 부르자 교도관이 와서 이놈을 싫고 갔는데
나중에 다시 왔는데 이놈이 사장님 주먹이 정말 세다고 그러면서 겁을 내더러고
이놈이 더위에 약해 도저히 못 있을꺼 같아서 쇼를 하여 의무실에 실려간 거라고 지랄하네
의무실 에어컨 바람의 시원한데 오래 있을줄 알았는데 다시 보냈다고 혼자중얼 거리며 불평을 하네 그후 교도관이 날 이송을 올렸다는 소릴 듣고 반신 반의 하며 본거실에 배실되어 들어가 생활 하던중 그 전에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 한게 있었는데 면전진정 조사관이 찻아와서
면담을 하는데 내가 교도관에게 폭행당하고 가혹행위 당한 부분을 진정 했다가

당시 법에 무지해서 그 전에 징벌실 에서 서울 남산 전공을 나왔다는 사람에게 들은 교도관을 고소했다가 무고로 다시 누명써 추가징역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걱정이 되어 바로 취하 했습니다 어짜피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될께 뻔하고
곧 이송을 갈꺼라고 생각해서 취하서를 냈습니다

그후 알아보니 국가인권 위원회 진정한 것과 법무부 장관 청원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다시말해 상대방이 무고로 고소할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그후 있다

그러나 사실 국가 인권 위원회나 법무부 장관 청원 조사는 거이가 형식적이고 특히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안에서는 어지간한 백과 인맥과 돈이 아니고는 진실을 밝히기가 어렵고 교도관들 편인 경우가 대수다


법무부장관 청원 조사관은 같은 교도관 출신이 조사 하러와 팔은 안으로 굽는 다고 거이 형식적 이고 교도관들 편이고 역시 국가 인권위원회는 이명박 정권 당시 완전히 인원도 줄고 형식적이 었는데 검찰에 고소 해봐야 증거도 없는데 오히려 내가 무고로 교도관이 누명씌우면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해도 법적 증거가 밝혀 지지 않으면 교도관이 나에게 무고로 고소 할수도

경찰이나 검찰 고소시 증거가 불충분 으로 나오면 오히려 상대방이 무고로 역고소 할수가 있다는데
이런 법은 사회적 약자에겐 불리하여 악용될 소지가 있다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교도소 에서 교도관들이 인권탄압을 한걸 증거를 밝힌다는건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가 징벌이 끝나고 본 거실에 배실된 거실서 조사징벌실 교도관이 날 이송 신청 했으니 날짜는 모르지만 얼마후 이송 갈꺼라고

하자 교도관 말을 어떻게 믿냐고 모두 거짓말 이라고 믿지 말라고 하여 나도 반신 반의 했는데 2011년 8월16일 광복절이 끝나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경북 제2 교도소로 이송을 갔는데 경북 제2교도소는 청송 제2교도소가 바뀐 이름 입니다
나는 저번 징역때 만기출소를 경북 제2교도소에서 했던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계호상 독거수로 이송을 가기에 다른 교도소와 달리 6개월후 본인이
이송 신청하면 다른교도소로 이송을 보내주는 곳입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과거 전두환때 만 해도 이곳 입구 에서 이송오는 죄수 들을 오리걸음으로 오게 해서 재대로 못하는 죄수를 교도관이 진압봉으로 무잡이 하게 구타 했다는 얘길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도관에게 맞아서 죽어나간 사람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엄중경계 4급 이하 교도소라 카메라 설치된 곳이 많아서 인지 교도관 들이 오히려 대구교도소 보단
부드럽게 죄수들을 대했습니다
그래도 이곳도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이 존재 합니다 운동하러 나갈때 계단과 관구실 안에도 카메라 설치가 되어 있지만 안쪽에 상담실과 그리고 이송 갈때 주로 죄수들에게 수갑과 포승줄로 묶는 곳으로 사용하는
장소라는데 마치 텅빈 사무실 같은 곳이 관구실 지금은 팀실 안쪽에 존재 하는데 그곳도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 입니다 이곳은 운동할 때도 부채골 모양의 하늘만 보이고 높이 대략 2m30cm의 사방이 막힌 콘크리트 장벽이 설치 되어 있는곳에 혼자 운동을 시킵니다
이곳으로 이송을 오자 이송 짐 검사를 거치는데 과거 노무현 정권 말기때 이송 올때 보다 철차가 더 까다로와 졌다 성경책 자쿠 까지 때어가네 4중27실로 배실되어
생활 하는데 이곳은 조용한 독거수들 만 있어 사동이 조용한데 이송온지 다음날 부터 처음 보는 사동 도우미 들과 교도관들이 호모 왔다며 수근 대는데 아무 래도 교도관 들이 조직적으로 날 괴롭히기
위해 사동도우미 들에게 거짓유언비어를 흘리는게 분명해 보였는데
이송온지 몇칠 되지 않아 입구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운동 하는데 입구 근처에 있던 교도관 들이 지들끼리 내가 못듣는 줄 알고 떠드는 소릴 우연히 듣자
이곳에서 처음본 당시 까지만 해도 나하고 대화를 거이 해본 적이 없는 교도관이 형량 대로 산다고 했는데 기소 안했다고 하는말을 듣고

이 말뜻은 날 지칭한 것이며
살인미수로 무혐의 나온 사건을 당시 까지만 해도 교도관에게 얘기 한적이 없는데 살인미수 무혐의 나온 사건을 어떻게 이것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알고 목 달아 넥타이 멜려다가 비유적으로 말하잖면
날 사형 시킬려다가 천억주고 합의 봤다고
삼성그룹 오너들 유리한쪽으로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경북 제2 교도소로 이송 와서 한달도 안되어 등사 열람 신청서를 등기 편지에 넣어 검찰청에 보내 내가 2010년 징역 4년 확정된 사건 판결문 공소장 나의 당시 답변서 등 당시 검.경 수사기록을 복사해 보내 달라고
수입인지 몇천원 짜리를 구매 하여 등기 우편으로 동봉하여 보내자 그후 나에게 답신이 왔는데 판결문 공소장 등은 복사되서 왔는데 검사가 수사기록은 피해자 신상 보호를 위해 수사기록 등사는 복사가 안된다고 하먀
이에 이의제기 할려면 법 조항에 따라 행정소송 하라고 검사 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내심 당시 검찰 수사기록 보다 경찰 수사 기록을 받아보면
2010년 2월 하남 경찰서 에서 조사받을 당시 셋째 이복형이 형사에게 진술하며 내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을 최면 걸어 죽였다고 지 한테 자백 했다고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짓말로 형사에게 씨부리는 소릴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 만약에 그말이 형사 진술 조사서에 들어 갔는지 않들어 갔는지 모르지만

셋째이복형이 거짓말 까지 만들어 가면서 나를 누명 씌우려는 배후는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아닐까
의심이 들어 그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 2011년 9월경 경기 수원지방검찰청 섬남지청 검찰청에 사건 공소장 판결문 검.경 수사기록을 등사 열람신청 하여 복사해서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등사 열람 신청서와 수입인지를 동봉하여 등기우편으로 보냈는데 수사기록 부분은 거절 당하고 공소장과 판결문은 그후 나에게 보내 줬다 그리고 사용하고 남은 수입인지도 다시 나에게 동봉하여 보내 줬다
당시 비슷한 시기 나는 법률 구조공단에 서신을 보내 법률상담 신청을 했는데 서울 성동구치소는 법률상담 신청을 하면 늣어도 2주 안에 서울 에서 오는데 대구교도소는 대략 40일 이 넘어서 상담자가 대구 법률구조공단 에서 왔고
당시 청송 제2 교도소는 미결도 없고 해서 그런지 신청서를 내도 영덕 지청내에 있다는 법률구조 공단에서 상담자가 오지않고 어떨때는 2주안에 답신이 서신으로 오는데 어떨때는 근 2달 만에 답신이 오는


?

천차만별 차이가 나서 특히 서울 성동 구치소 하고 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지 정말 의아해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경남 쪽 교도소는 안 가봐서 모르고 대구 교도소나 경북 북부 제2교도소 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구교도소는 기결수 조사징벌자만 있는 1-2사동 조사징벌실은 개잡듯 잡는데 미결쪽 사동이 있는곳에 조사징벌실은 당시 교도관들이 비교적 부드럽게 대하고 근무자 일지에 법률구조 공단에
신청서를 내가 보낼때 당시 근무자 일지에 적고 본인 확인시켜 주며 내 무인을 찍었는데
1-2사동 기결수 조사징벌사동뿐아니라 6동.7동.2동 등 기결수 사동은 그런 확인을 시켜 주는걸 나는 한번도 못봤다
대구구치소에서 항소하여 온 미결 1하2하와 그곳 미결수 사동에 붙어 있는 조사 징벌자들 중에 기결수는 1상과 2상에 기결수가 좀 있는데
가끔 그곳에 기결수도 1하2하 미결수와 붙어 있는 조사 징벌실에 넣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1-2동 기결수 조사징벌 사동 수용자를 교도관들이 대하는 태도가 틀렸다
왜 1-2라는 표찰이 입구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곳은 다른 사동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어 마치 삼청교육대를 연상할 정도로 교도관도 3명이 있는건 만일에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카메라 사가지역으로 끌고가 패도 서로 말을 자신들 유리하게 조작하여 짜 마추려고 그런 거라고 누군가 재소자가 말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인권위원회 신청서를 내거나 정보공개 청구서를 내도 교도관 일지에 적는지 안적는지 알수도 없는게 확인을 안시켜 주기에 알길이 없고 인권위원회 신청서를 내거나 정보공개 청구서를 내면 상당히 뜸을 들이고 수용자를 은근히 갈구는 형태 인데 결국 내 주긴 내줬다 그런걸 자주 신청 하다 보니 보복으로 묶여 교도관 들에게 떼거리로 린치를 당했는지 모른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보니 내 서신은 모두 특별히 관리되어 있었다 관리 대상이 일반과 특별이 있는데
나는 요시찰로 특별히 감시 대상자도 아닌데 나의 서신 관리가 특별로 감시 대상으로 되어 있네

특히 살인미수가 혐의 없음 처분에 대하여 법률구조공단에 답신이 왔는데 그 내용을 보며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해도 고소인이 재정신청 없이도 재 기소할수
있다 불기소 처분은 판결이 아니라 언제든 재 기소할수 있는 사유가 있으면 재기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불기소 처분 자체가 잘못되었기에 재기하는 경우
2.상급청에 명령에 따라 재기 하는경우
3.혐의없음의 경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경우 )
이게 코걸린게 아닌가 더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당시 검찰 스스로 혐의 없음 판정을 내리고
2주 진단 받은 셋째 이복형이 검찰에 항고도 하지 않고 재정 신청도 하지 않고 혐의없음을 인정한
사건을 아무리 한국이 삼성 공화국이라 하더라도 지금 기소 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또 2009년5월경 종로구청에서 여권을 발급 받으려다 여권법위반으로 발급이 중지가 됐는데
여권 발급 금지 조항도 법률 구조공단 답신이 왔는데
1.기소중지자나 2. 금고 이상의 형을 살고있는자 3.벌금 2000만원 이상인자 등등인데)

아무리 봐도 나는 이미 2006년 12월 서울 서부 지법에서 여권법위반으로 벌금 20만원이 확정되어
2007년 8월26일 이전에 벌금을 전부 지불 했는데 법전에는 여권법 위반에 걸릴 이유가 없는데 여권이 발급을 중지 시킨건 배후가 삼성그룹 오너들의 장난이 아닌가
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본적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고향 경남 의령 으로 되어 있지만 이건희는 대구에서 태어나 살다가 학창시절 서울로 올라와 서울사대부고에 진학하여 홍사덕 전 의원과

동창으로 학교를 다니기도 하다가 외국을 돌아다니며 유학 생활을 하다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건희 보다 10년 연상인 경북고를 나온 2015년 중국 병원 에서 죽은 이맹희는 전두환 노태우 등과 어린시절 친구 였다고 한다
대구에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홈구장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대구에 삼성이 마치 자신들 기업인양 생각하는 놈들이 많아서 완전 격리된 청송에서 살인미수를 재수사 하여 기소하면 영덕 지청이나 의성지청 에서

재판이 열리는데 이곳은 모두 한통 속으로 공정한 재판이 어려운 삼성오너들 편으로 이곳에서 재판이 열리면 나에게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과거 인혁당 조작 사건 처럼 사법살해 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2011년 10월쯤인가 탈북자 성씨가 주 씨 라는 여성이 강연과 바이올린 연주 공연을 벌인 것을 참석 한 적이 있는데
북한의 탈북 어린 여성들이 중국 만주 등지 에서 인신매매를 중국인에게 당하여

처첨한 인권탄압을 당하며 현대판 성노예로 팔리며 인간 취급을 못받는다고 설명하며
바이올린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오만가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비참하게 우는 표정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바이올린으로 켜는 탈북여성 모습을 보며 나도 터져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던 기억이난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당하는 심각한 인권탄압 성노예 인신 매매를 한국 정부는 중국정부 눈치 보느라 침묵 하고 있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그런거에 아예 관심도 없는지도 모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실용주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옳고 그름을 떠나 오로지 당장 이익이 되는 돈이 되는 일에만 신경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교도관들이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조직적으로 거실밖 사동에서 떠드는 소리를 은근히 들리게 하여 나에 대한 험담하는 소리를 주어듣게 만든게 아닌가
그런소리를 들을때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저놈들을 불러 누구보고 그런거 냐고 과잉 반응하면 지들은 그런소리 한적 없다고 그러고 뒤돌아서는
봐 지가 호모니까 지이름 부르니까 반응하네 이지랄 하며 더 조롱할 꺼고 저 파렴치범 들은 배후 지시로 날 정신적으로 괴롭힐 려고 작정하고 조직적 음모로 작당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들의 의도에 말려 소리지르고 항의하면 미친놈 취급하며 수갑과 쇠사슬로 묶기고 고통 받으며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나만 괴로움의 시궁창 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일의 연속으로
어리석은 짓인걸 뻔히 알면서도 당시 분노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사동 도우미 들이야 일제의 앞잡이들이 독립운동가를 잡아 죽이듯 교도관들 지시에 의해서 철저히 교도관 눈치만 보며
말과 행동을 하는 놈들 이고 내가 이송 왔다고 교도관 들이은밀히 알려
교도관 지시로 사동 도우미가 돌아 다니며 거짓소문을 퍼트려 수근 거리게 만들며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려한 더러운 것들이다
한번은 새벽인가 잠에서 깨서 누워 있는데 야간근무자 교도관 들이 내 어머니 성씨가 무엇인지 까지 정확히 떠들며 저거 엄마는 전주 이씨 이고 아버지는 김해 김씨래 하면서 성씨는 좋네 하면서
삼성회장이 나에게 천억주려고 뒷조사 해서 나온거라며 거실 문밖 에서 교도관들이 말하는 소리를 분명하게 주어 들었는데 입은 삐뚜러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천억주려 나의 가족 관계를 뒷조사 했다는건 말도 안되는 강아지도 비웃을 조작이고 내가 2002년 미국노우스케롤라이나 에서 아스카란 일식집에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 들이 만나게 미리 세팅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의 음모로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과
나와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만남으로 이미 세팅 하기 전에 그들은 나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위해 적당한지 내 뒷조사 까지 한건 분명해 보였다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는 말처럼 나와 부모님 까지 전부 뒷조사를해 뭔가 뒤집어 씌울건 없는가 내가 구속된 상태에서 검사를 시켜 조사해도 아무것도 안나오자 괜히 삼성그룹 오너들이 나의 부모님 성씨 까지 교도관에게 까발리는게 아닌가 울화통이 치밀기도 했다
삼성오너들이 내가 출소 해도 어디가서 사회 생활도 못하게 만드는 교활한 수법은 코키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가만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아무생각 없던 세인들에게 오히려 코키리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수법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이름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세인들에게 가르쳐주는 삼성알바들이 조직적으로 거짓소문을 내며 교도소에서 누명씌워 출소 안시키려 했는데 이건희가 천억주고 합의 했다고 출소 시켰다고 지랄하며 조직적으로 퍼트리는건 마치 내이름을 공개수배 하게 하거나 내가 전과자이니 채용하지 말라고 여기저기 광고 하는 거나 같다 악의적으로 퍼트려 취직도 못하게 하고 조롱거리가 되어 시비 거리에 희말리게 조장하여 다시구속 시키려 악의적으로. 거짓정보. 유언비어를. 국가권력 마치 삼성가 사조직 부리듯 악용까지 하며
퍼트리는 놈들 이라고 정말 더러운 것들 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악의적인 거짓소문을 퍼트리는 놈들은 파렴치범 이지만 그런 소문이 악의적인 거짓 소문임을 뻔히 알면서
하이에나 처럼 때거리로 달려 들어 약자를 괴롭 히려는 것들도 공범이나 마찬 가지야
경상도나 전라도 놈들은 자기 지역 출신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 도와 주려는 사람이 가끔씩 나타나는데
서울 경기 지역은 일부 경상도나 전라도 놈들이 악의적인 거짓소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덩달아
떠드는 놈들이 많지 그러니 수도권 지역에 대통령이 안 나오는거야 수도권 지역의 정치인을 밀어 주고 써포트 해주며
힘이 되어 주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수도권 지역 정치인 들이 힘을 못 받는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수도권 지역에 한국의 기득권 세력인 경상도 전라도 세력의 지시나 눈치만 보는 정치인이 아니고 과감하게 정의로운 생각을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수 있는 정치인이 아직 없는것도 문제이다

나같이 똑똑한 사람은 일대일로는 문둥이 깽깽이 놈들이 도저히 일길수 없으니

이것들이 연합하여 수백만명이 모함하며 싹을 자르려 하는 것처럼

인구가 가장많은 수도권 유권자들을 자각 시키고

선구자 처럼 이끌수 있는 똑똑한 정치인은

끌수없게 아예 클수 없게 싹을 자르고 눈치나 보고 아부나 잘하는 것들만

키워 내세우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정도다


이런 지역적 배경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고려해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운 것들 이지 정말 치밀하고 교활한 것들 이다 그래 놓고는 홍라희가 전라도쪽 연고가 있고 특히 대구태생의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전략적으로 전라도를 이용하려 전라도 놈들 무서워 해 천억 날렸다고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믿지 않을 구라 소문을 진짜 처럼 쳐 믿으려 하는 것들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은 도둑질하다 들킨 도둑이 도둑이 도망가며 도둑이야 소리지르며 도망간다고 이윤형 생모가 전남 출신인게 거이 확실해 보이는데 전라도 애들 무서워 천억 날렸다는 강아지도 안믿을 구라가 1석2조 라고 전라도 애들 은근히 띄워주고 자신들의 엄청난 비리를 감추고
한번만 생각해 봐도 전라도 애들 무서워 해서 천억을 날렸다는 말이 엄청난 언어도단 이며 모순이 크다는걸
알텐데 여기저기서 떠들며 우기니 마치 북한에서 김정은이 라고 반말 하면 바로 총살 시키듯 삼성비리는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고
너도 나도 거짓 소문을 떠드니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왕조 국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정도이다

그게 아니라고 하면 왕따 당하는건 둘째 치고

온갖 모함과 음모로 북한공산당의 인민재판 처럼 당할까봐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도 못하는 병신들이 많은 것이다

사회에서는 평균적으로 경상도가 전라도보다 인심을 많이얻고 행동도 점잖게 하는 것 같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비교적 인심을 많이 얻고
특히 이익이 없고 불리한 짓은 비교적 안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경북북부 제1교도소 같은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교도관 들이 무잡이하게 정치적 경제적 이득 이든 아니면 고위직의 입김이든
교도관의 개인 감정이든 자신들의 비리가 걸리지 않아 절대 불리하지 않은 곳에서는 본색이 적나라하게 들어내며 무잡이 하게 인권탄압을 하는 교활한 것들이이란걸

나는 경험했다

눈치빠른 전라도 애들이 경상도는 겁을 내는 모습도 여러번 경험했다


수도권은 은근히 무시하는데


그들은 그런짓을 하고도 죄의식이 없었다 오히려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애국자라고 셀프디스 하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광주사태때의 (참고자료-1982년 3월 15일 육군본부에서 발표한 사망자 (189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광주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

시민이 군사 독재에 저항하며 시위만 처음에 하는데 일반인이 도저히 이길수 없는 군인들이 바지등 옷을 벗기고 팬티만 입힌채로 무릅을 꿇리고 개잡듯 때려서 잡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분노를 느껴 대들면 자신도 죽을걸 알면서 무려 189명이 회생 되었다 당시 군인중에 경상도 군인만 있던게 아니라 전국의 각지역 출신 들의 군인 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아직 경험이 적은 나이 어린 군인들이 군과 같은 특수한 명령 체계가 존재하는 조직에서 시위대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로 국가를 전복 시키려 폭동을 일으켰다고 누명씌워
국가를 위해 진압 하라고 명령이 떨어지면 그 명령을 어기면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데 명령을 어길 가능성이 적다 그래서 그 책임은 전적으로 지휘 체계에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조직적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한 것이 4·19혁명이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를 정권 비호세력인 반공청년단이 습격하자, 19일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학생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했다. 당일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죽고, 1,000여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가 거세지자 4월 26일 이승만은 사임을 발표했고, 허정이 과도 정부가 수립되었다.
4·19혁명은 주도한 시위학생들과 시위 군중들은 조직화된 혁명의 지도력을 가지지 못하기에 이승만 정권의 붕괴 후 '혁명'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

238p-광주 민주화 운동과 4.19 혁명은 강자가 불법으로 약자를 짓밟는 모습을 보고 불의를 참지 못한 정의로운 시민정신으로 역사에 기리 기억 되리라 생각 한다
그러나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창업주가 경남 의령 태생이고 손자인 이재용이 미국 태생 이지만 본적은 바꾸지 않아 할아버지인 이병철 본적이 상속 되어 경남 의령으로 되어 있어 일부 영남 출신들이 삼성이 지들 기업으로 생각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홍라희 모가 목포출신 이라고 또 홍라희 아버지 친일파 홍진기가 일제때 전주지법에서 판사시절 홍라희가 태어나 전라도에서 태어났다고 라희 라고 이름 지었다고 홍라희가 전라도와 일부 연고가 있다고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를 연쇄살해 하고 감추는 정황이 명백히 들어났는 데도
삼성가 개밥에 길들여진 일부 전라도 애들이 삼성 개밥에 탐나 그런 놈도 부지기 수 이지만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 마치 홍라희가 지들 큰 엄마나 되는 것 처럼 무조건 그들의 범행을 덥어주려
거짓 유언비어를 퍼날르는 모습을 보고 추악하고 더러운 떼거리 조작 문화의 흉악한 일면이 들어났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 모두가 그런건 아니고 일부가 거짓 여론 몰이로 조작하는 것이라 전라도를 모두 싸잡아 욕할순 없지만 전라도 특유의 지역 정서를 삼성가 오너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조작하여 이용하는 모습에 그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음모를 세계 양심에 고발 하는 것이다

물론 전라도만 그런게 아니고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와 수도권 일부 인간들도 물론 전부가 그런게 아니지만 일부가 그런 거지만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소문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홍라희 이재용이 청부살해한 정황 증거가 큰 것을 알면서도 삼성가 개밥에 길들여진 모습에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들어난 것이다 그러한 일부 한국인의 부끄럽고 추악한 모습은 조선시대 독재자 이방원이 이복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여 자신이 왕이 되는데 일등 공신인 자신의 처남 들을 모두 죽이고 이방원의 아들인 세종의 장인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사약을 내려 죽이고 세종의 장모와 처가댁 식구를 관노비로 넘기며 수많은 충신을 잔혹하게 죽인 포악한 독재자
이방원이 명나라에서 자신을 조선의 왕으로 승인하자 명나라에서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조선의 말을 같다 바치자
이에 맛들인 명나라에서 그후 더많은 말과 조선의 특산물 뿐 아니라 수많은 조선의 처녀까지 조공으로 원해
이방원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편안한 삶을 위해 수많은 조선의 처녀를 마구 잡아 조공을 바치며
더러운 사례를 후대에 까지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때는 20만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친일파들의 노력으로 마구잡이로 강제로 끌려가 노예 보다 못한 삶을 살다 일부는 개도살 되듯 죽기도 하였다

해방후 살아 돌아온 수는 고작 238명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는 강제 징용으로 수없이 끌려가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1945년8.15 해방후 에도 그러한 사실조차 차별 받고 무시당할 까봐 말조차 꺼내지 못하다가
수십년이 지난 1990년대가 지나서야 서서히 위안부 사건이 이슈화 되어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의식있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한국민의 부끄러운 과거를 보더라도 힘없는 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전라도 무서워해 천억 날렸다는 강아지도 안믿을 거짓 소문을 전국은 물론 전세계에 퍼져있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자 삼성 직원이나 삼성 알바들이 국제적으로 거짓 소문을 마구 퍼날르며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를 연쇄 살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감추는데 행동대장 역할을 하며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짓거리 들을 하는 삼성그룹 오너들의 범행을 양심에 고발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광주사태 뿐 아니라 삼청교육대 등에서 무잡이 하게 인권 탄압을 한게 명명 백백히 들어 났는 데도
전라도가 권력에 득세하는 것 보다 차라리 경상도가 났겠지 하며 타지역 사람들이 경상도 출신에
표를 많이 주는 경향이 있는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상도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그러한 잔악무도한 독재를 경상도 전체가 다한건 아니다 경상도 출신들 중에서도 김주열 박종철 등 민주주의를 위해 억울하게 정권에 살해당한 사람도 상당수 있다 한국을 지배한 군조직 하나회 멤버가 경상도가 다수인데 하나회를 철거한게 경상도 출신 김영삼 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상도 출신중에


전부는 아니 겠지만 전라도의 부정적인 면이 들어 나는걸 경상도가 싫어할 사람이 없는 경향도 있는 있는 것이다

광주사태 이전 에는 전라도의 지역주의가 지금같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71년 대선 전에 전라도 일부 에서 박정희가 김대중 보다 앞서자 전라도 사람 밀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지역주의에 호소한 적이 있다 그후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 졌지만 방송과 언론이 통제되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박정희의 실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역 감정이란 불씨에 휘발유를 부은건 광주사태 부터이다
광주사태때 시위대가 군인들에게 무잡이하게 진압되며 타살 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보고

항의하자 시민들 에게도 무잡이한 폭행이 가해져
시민들 까지 시위에 참여하여 189명의 사망자 와 수많은 부상자를 내고 결국 진압 되었지만 당시 광주는 신군부에 의해 완전히 금지구역으로 통제되고 방송과 언론은 신군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여 북한의 지령을 받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폭도로 누명 씌워져 타지역 시민들은 진실을 제대로 알수가 없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별 관심을 못받고 동조 세력이적자 전라도 특히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뭉치며 당시 신군부 하나회 보스인 경상도 출신 전두환에 저항하며
마치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하고 처참이 유린된 백제 유민들이 신라에 끝까지 저항하려 시도했던 시대이후로는 당시 처럼 지역 감정이 극에 달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광주사태로 극에 달한 지역 감정을 일부 여 야 정치권이 이용한 면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지역 감정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후 지역 차별은 정치권에 은근히 이용당하며 권력에 비교적 순응하면서 사는 조용한 타 지역에 비해 한국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상도 전라도가 서로 지지 않으려 싸우는 자존심 전쟁처럼 변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삼국시대 부터 있던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곤 생각지 않는다 결국 지금의 한국의 지역 감정이란 자신들의 지역이 한국 주도권을 잡기위해 지지않기 위한 예를 들어 국가간의 전쟁처럼 시작 된 것이다
특히 1980년 광주사태로 지역 감정에 휘발유를 부은 책임은 강제로 진압한 부도덕한 신군부 하나회에 있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극에 달한 지역 감정은 그후 완화 되긴 했으나
서로 한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잘 뭉치고 지기싫어 하는 두 지역 특성상 자존심을 건 한국의 패권 싸움으로 이어지는 증거는 선거때 투표율로 나타난다
이렇게 자신들의 지방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치는데 특히 선거때 득표율로 지역적 패권주의 증거가 확실히 들어나는 경상도와 전라도는 거이 일당 독재 채제를 유권자들이 만들어줘도
유권자들에게 당장 커다란 이익은 없다 그런데도 그런 몰표를 주는건 서로 지지않으려는 자존심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자나 타지역 사람 들을 때에 따라선 자신들과 별 이해 관계도 없는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떼거리로 누명 씌워 모함하고 거짓 소문을 퍼트려 괴롭히기에 타지역 사람들이 눈치보며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 민주적인 행태를 보인적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행태는 비 민주적이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불법이며 추악한 범죄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 출신에게 국회의원 선거나 대선때 무조건 몰표를 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고
비 민주적인 일이지만 그러나 몰표를 주는게 법적으론 불법이라고는 볼수가 없다

이러한 한국 정치 상황은 경상도 전라도를 제외한 타지역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정치의 특색이 결코 쉽게 바뀌지 않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래서 처방책으로 오히려 지방 자치체를 더욱 강화하여
사회에서도 이러한 지역 차별로 아무 죄없는 사람이 떼거리로 거짓 소문등 여러 가지로 누명씌워 피해를 당하는데 사회와 완전 격리된 구치소 교도소등은 말할것도 없이 인권 탄압의 심각한 피해를 당하는 현실에 수용자의 현주소 위주로 그 지방 에서만 이송을 가게 하는 법과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다만 외교나 국방 사법 체계는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며 아울러 군 경찰 검찰 법관 인사등은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며 서로 지들 지역의 이익을 위해 모함하고 음모하고 지랄할 바엔 한국 안에 외국처럼 각 지방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 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경제등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한 책임을 중앙 정부에 떠넘길수 없게 각지방 자치 정부가 스스로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만이 각 지방이 살기위해 더욱 자세를 낮추고 국민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 하려 노력 할 것이며 패권 문화의 차별의 사각지대에서 무고한 피해자들이 줄어든다 속으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 하며 말로만 통합을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개소리로 들리는건 가족간의 통합도 힘든데 통합은 이룰수 없는 꿈이다 거짓 통합을 외칠 바엔 한국내 외국처럼 각지방을 스스로 운영하며 자치제를 더욱 강화하고 각 지방이 여러 정책을 스스로 책임지는 시스템이 올바른 것이다 이러한 정치 시스템은 철학과 공정성 비젼이 확실한 나만이 완성할수 있는 체계이지 다른 사람이 흉내 내다간 오히려 더 안좋은 방향으로 이용하여 갈수도 있다


240p-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한테 이용 당하는 줄도 모르고 전라도 애들 무서워 천억 날렸다는 말을 떼거리로 패권을 자랑하려 개도 안믿을 조작하는 거짓말을 퍼트려도 수도권 애들이 속으론 참새 껌씹는 소리하네 하며 믿지 않으 면서도 겉으론 전라도 애들 눈치 보느라 믿는척 하는 병신 짓 거리가 없어 진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천년이 훨씬 넘도록 통합이 안됐는데 지금 무슨 통합을 하자고 지랄 하는지 웃기는 소리다 이젠 시대에 어울리게 각 지방색을 삼국 시대처럼 더욱 강화하고 개성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 하다
한국은 사실은 단일 민족도 한민족도 아니다 이젠 다문화 국가 라는 것을 인정해야 될 때다
사건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거짓 소문을 퍼 날르며 떠들고 다니는 전라도 경상도 서울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모자란 놈 이라고 자랑하는 거와 같다 대가리가 있으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 것이다
대통령 후보는 전라도 뿐 아니라 경기 서울등 수도권 지역도 얼굴을 못 내밀고 있다
그런걸 남에 남네 탓할 수는 없다 유권자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누굴 비방할수도 없다 경상도가 타지역 출신보다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는건지 아니면 1961년 5,16 쿠테타후 지금까지 계속 경상도 권력에 지배 받다보니
경상도에 지배를 안 받으면 사족을 못 쓰는건지 모르지만 어느 경상도 교도관이 경상도출신들 중에 큰 인물이 많다는 말에 뭐라고 반박을 할수 없게 요즘 정치권은 경상도출신 일색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중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만은 큰 인물이라 나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총칼로 무장하여 폭력으로 위협하고 죄없는 사람을 누명 씌워 죽이고 정권을 찬탈하고 유지하기 위해 방송과 언론을 지배하고 조작 왜곡으로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었기에
그들은 부끄러운 인물이라고 본다 그 외에 노무현 이라든가 특히 김영삼은 자신의 말처럼 한국 정치인중에 유일하게 아무런 사심없이 민주주의를 위해 십자가를 질머진 인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자료 위키백과- 김영삼(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은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이다.
1954년 거제에서 만 26세의 나이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79년 10월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이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직 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6월 민주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1986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을 선언하여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다.[3] 1993년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32년만에 군사 정권의 마침표를 찍었고, 문민 정부를 열었다.
예술인과 작가들의 반정부와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하였고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마광수 등의 문학가를 석방하여 표현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차명 부정 계좌를 단속 및 처벌하였으며,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였고, 국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다. 또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여 처벌하였고,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 2015년 11월 22일 0시 22분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김영삼전직 대통령이 거제에서 자유당의원으로 정치를 시작 했지만 이승만에게 독재를 하지말라고 말하고
그후 자유당 부정선거를 보고 탈당하여 민주화 운동에 전념한 사람이다 4.19를 혁명으로 격상시킨게
김영삼 이다 특히 71년 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대중에게 지자 그후 김대중 지원 유세를 충실히 해줬다
그러나 87년 통일민주당 야권 단일화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은 조기 경선과 후보 단일화를 외치고 김대중은
경선에서 불리하자 개헌후 경선 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경선을 미루다 대선이 가까워 오자 탈당하여
평민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하였다 당시 김대중의 행동을 지금 재해석하면 김영삼과 경선에서 질바엔
당을 창당하여 출마하면 표가 갈라져 당선 될수도 있고 확실한 자신의 국회위원 지분은 챙길수 있다고 본 것 같다
당시 대선은 1위 노태우 2위김영삼 3위김대중 4위김종필 순이었다 단일화 불발로 어부지리로 하나회 출신 노태우가 당선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그일로 인해 김영삼이 김대중을 두고두고 원망하며 서로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241p-물론 민주화 운동을 하며 김영삼 보단 김대중이 더많은 핍박을 받은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앙금이 있을수는 있지만 당시 불리하더라도 단일화에 합의 했더라면 김대중을 좀더 재해석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참고자료-2013년 월간 조선 기사를 보면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5공정권 초창기 전두환이 김대중을
사형 시키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자 김대중이 정치활동을 재계할 경우 발목을 잡을 장치로
불법 정치자금을 84년부터 92년 까지 500억원 이상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담보물로 DJ측에 줬고 임춘원 의원이 그 주식을 관리하고 정치 자금을 전달 했다고 말했다 )

여기서 심각한 추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군사정권은 기업들로 부터 수천억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강제로 거둬들여 쓰는데
프로스펙스 신발로 유명한 국제상사 처럼 거부하면 기업을 부도로 공중 분해 시키기도 했다
선거때도 유권자 들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 찍어 달라고 선거 유세를 버젓이 하던 시절이다
노태우가 김영삼 과 김대중이 단일화 하면 필패 할게 뻔하기 때문에
통일 민주당 경선에서 불리한 김대중에 비밀리에 로비하여 만약에
단일화를 하지 않고 탈당하여 신당을 만들면 막대한 정치 자금을 비밀리에 줄테니
단일화를 하지말라고 유혹하며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면
장진호로 부터 그동안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온 것을 폭로 하여 김대중의 정치인생을 끝장낼 것이다 라고
협박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추리할수 있는건 김대중이 84년부터 92년 김영삼이 대통령되기전까지  진로 전 회장  장진호 에게  500억 이상의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게 사실이기 때문이 아닐까 ?

김영삼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속이고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의 자민련이 3당 합당으로 그후 이종찬을 물리치고 여당 대선 후보에 오르자
노태우가 같은 편 인줄알고 선거때 쓰라고 3000억원을 주고 우여곡절 끝에 김영삼이 제14대 대통령에
당선 되자 물러가며 청와대 안에 있던 거대한 금고에 별도로 100억원을 넣고 갔다고 김영삼이 직접 말하며 그러한 행동은 노태우가 김영삼이 대통령 되는데 자신의 공이 컷으니까 잘 봐 달라고 하는 행동 일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 되자마자 청와대 안에 불법 정치자금을  군사정권이  강도짓 하여 보관한 거대한 금고 부터
내다 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영삼이 정치자금을 분명이 받은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김대중이 배신하여 단일화가 안되어 영원히 결별 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고 계속 추악한 군사정권의 똘마니들이 정권을 이어갈것을 생각하여


분노를 느끼고 그러한 패악을 철거하기 위해 궁여 지책의 큰뜻의 선택 이었다 라고 분명한 명분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제대로된 명분은 커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김영삼 처럼 떳떳한 명분도 내세우지 못하고 정치자금을 바친 장진호 입을 막기위해 권력을 이용하여 괴롭히며 흐지부지 덮으려 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광주사태때 수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치탄 받던 군사정권 조직 하나회를
일거에 철거하고 전두환 노태우를 단죄한게
전라도 출신이 아니고 전두환과 같은 경남출신   김영삼 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김영삼은 자신이 하나회 철거등 민주적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영원히 없었다고 큰 소리 쳤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않고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려 하는 조짐이 보였다면 한국을 장악한  하나회 조직들이
김대중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김영삼은 말하는 것이다


 김영삼이 트로이의 목마 처럼 속이고 일거에 하나회를 철거하고 민주적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전두환의 비자금을 받는순간 영원히 집권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전두환의 장식용 꽃 같은 처지가 되었을것이다  

그후 전두환 노태우를 용서하여 사면한게
김대중 정권이다 물론 용서란 좋은 것이다 주기도문에도 나오듯 남의 죄를 용서할줄 알아야

자신의 죄도 용서받을수 있다고 그리스도는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이 군사정권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것도 광주시민의 189명의 희생으로 전세계에 알려져 미국의 압박으로
전두환이 사형 시키려다가 형집행 정지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살아남는 계기가 됐는데
그후 군사 정권의 공작으로 그랬다곤 하나 84년 그 당시는 김대중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어 목숨도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데 왜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한 추악한 돈을 받지않고 용서를 했다면
진정성이 더욱 빛났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마음대로 부도덕한 일과 부패를 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감시가 필수조건이다
이윤형이 나를 못잊어 자살 했다거나 그래서 천억을 주려 했다는
말도 안되는 조작을 차라리 돈을 주려던게 아니라 이윤형이 내 얼굴 한번보고 못잊어 자살해서 괴롭히려고
모함 했다고 거짓말로 들러 되는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만약에 내글이 책으로 나가면 경북북부 제1교도소나 대구교도소 목포교도소가 태도를 바꿀것이다

자신들이 불리하면 태도를 180도로 바꾸는게 정치란건 그런 것이다

특히 한국의 공무원들은 강자엔 수없이 약하고 약자엔 한없이 강한 집단이란걸

직접경험으로 터득했다

내 책이 세상에 알려져  한국을 개혁하지 않는이상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옛날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가 지금의 서울 경기도 충북 북부지역 일부 강원도 서부와 서북북 지역일부를 수시로 점령하며 신라가 됐다가 백제가 됐다가 고구려가 됐다가 했듯시 그 지역은 그때부터 강력한 세력화를 이루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중부권 출신이 나라를 세운건 왕건이 유일하다 조선은 함경도 출신 이성계가 세웠지만 경북 봉화 출신 정도전의 공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지금의 인천 지역인  송도 출신 이라 지만 결국 고려의 틀을 만든건 신라 왕족 출신 궁예다

왕건은 운좋게 고려를 거져 궁예의 실수로  부터 얻은 것이다

과거의 삼국 시대를 다시 보듯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소귀의 경 읽기다
지금 수도권을 보면 아프리카 물소가 생각 난다 다 자란 물소는 일대일로 사자와 싸워도 이긴다 사자가 물소의 뿔에 받쳐 죽거나 좀 심하게 다치면 결국 아프리카 정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 경우를 TV 에서 시청한 적이 있다 아주 강한 물소에게 사자 세마리가 달려 들어도 이기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물소 무리 중 에서도 아주 강한 물소일 경우는 고양이과 동물중에 유일하게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 3마리 이상이 앞에서 사자 한마리가 물소를 유인하고 두마리가 옆과 뒤에서 공격 해야 겨우 잡을까 말까다
왜 그런가 하면 다 자란 물소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사자 3마리 이상이 떼거리로 달려 들어도 물소 한 마리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못잡는 경우도 동물의 왕국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소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물소 한 마리를 무리에서 따로 떼어 놓아야 한다
만약에 동료 물소 들이 사자 무리에 저항하며 동료를 구하기 위해 함께 공격하면 사자 무리는 결코 물소떼를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물소의 뿔에 바쳐
사자가 죽고 사자 무리들이 도망가는 방송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드물고 물소 들은 사자 무리가 공격하는 척 바람 잡으면 지 살길만 따지고 도망가기 바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사자 무리에 물소 무리가 죽기 살기로 덤비면 사자들은 모두 도망가기 빠쁠 것인데

그걸 모른다 사자가 물소의 뿔에 바치면 죽거나 크게 다치기 때문이다
일대일 싸움으론 사자가 절대 다 자란 물소를 못 이긴다 그런데 그런 머리를 쓸 줄 모른다

마치 TV를 시청하던 개가 TV속에서 던진 공을 찻으러 TV뒷쪽으로 계속 찻아 가는 것처럼

여러번 경험 했음에도 상황을 이해를 못하는 개들이 다수다 일부 소수의 똑똑한 개들은 한두번 경험하면 TV뒤쪽에서 던지는 공을 찻으로 뒷쪽으로 가지 않는다 TV가 뭔지를 이해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부 소수의 똑똑한 물소를 제외하고 거이 다수의 물소가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동료를 구할 생각을 안하고 지 살길만 찻으러 도망 만 간다

물소 무리의 외곽은 다 자란 물소들이 줄지어 지키고 가운데는 어린 물소나 나이든 물소 암컷 물소로 채우고 무리를 지어도 사자들이 공격하면 합심하여 막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게 물소의 한계이다

사자도 일대일로는 하이에나 에게 이기지만 하이에나 떼거리 무리에게 공격받아 죽거나 먹이를 뺏기고 도망가는 사자를 방송으로 본적도 있다

하이에나 떼 가 숫사자를 공격하여 죽이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앞에서 여러 마리의 하이에나가 사자를 유인하고 사자의 옆과 뒤에서 하이에나 여러마리가 공격하고 특히 뒤에서 숫사자 불알을 물어 죽이는 동영상을 본것 같다

이렇게 하이에나 떼거리 무리가 사자를 물어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정 당당한 스포츠 룰 로 보면 이건 있을수 없는 치사하고 비겁한 짓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이런 치사하고 비겁한 짓 거리가 비일비재 하다


지금 한국의 수도권 지역을 보면 물소 무리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비겁한 문둥이 깽깽이들의 지역 패권주의를 보면 자신들의 비리를 파해치면

공정한 룰같은건 쓰레기 처럼 버리고 온갖 치사하고 비겁한 짓은 다하며 일대일로는 일길수 없자 사자 한마리를 하이에나 떼거리가 잡듯

온갖 조작과 모함을 다 동원하여 자신들의 지역 패권주의를 지키려는 쓰레기 들이다

?

그래서 그런 지역적 패권이 없고 악의가 별로 없는 수도권이 살기좋아 전국에서 모두 수도권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것만 보더라도 지금 한국의 수도권 지역이 보여주는 민주적인 행동을 한국이 미래의 통합을 위해서도 지향해 나가야 하는 이상 이라 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틀리다 경상도 공화국 전라도 공화국은 이미 운영 되며 때론 나같은 사람을

진실과 공정한 싸움으론 못이길 경우

경상도와 전라도가 연합을 하여 비리를 덥으려 온갖 치사하고 더러운 비겁한 짓으로 타지역의 똑똑한 사람을 모함하여 싹을 짜르려 하며 한국의 기득권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그 두 공화국의 지역 공권력도 전부는 아니 더라도 거이가 한통 속이라고 봐야 한다
다른건 몰라도 공권력이 공정하게 집행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지역 이기 주의에 의해 행동 한다면 그것처럼
추악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전라도 경상도 공화국은 문댕이 깽깽이 쓰레기들 입맛대로 조작하고 왜곡하며 기득권 노릇을 하는 지금 그들은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며 한국을 지배하길 원할 것이다 마치 과거 하나회가 한국을 지배하며 계속 유지되길 원한 것 처럼 말이다
충청도 출신 이윤석이 호남 신당을 전라도당 이라고 말 했다가 떼거리로 이지매를 당하는 것처럼
계속 당하고 두려워 생각 이나 말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살것인가 공정하게 유지될수 있는 제도로 바꾸려 할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강원도 충청도 수도권 출신이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의 비리를 들추면 그들은 잘 알다시피 단합심이 강하여 비겁하게
일대일 정정 당당한 싸움으론 도저히 못 이기거나 상대가 나처럼 강하거나 나의 글이나 말이 진실이라
삼성가 파렴치범 홍라희 이재용이 도저히 못이기겠으니까 수많은 경상도 전라도 쓰레기들 까지 동원하여 거짓 유언비어와 누명을 씌우려 하며 삼성가 개 처럼 지랄하는
아무 상관없는 인간들 까지 끼어들어
떼거리리로 비방하여 나한테 못이기고도 이겼다고 떼거리로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조작 왜곡 하는 것이다 지록위마 처럼 (指鹿爲馬) 사슴보고 말이라고 여럿이서 조작하여 떠들면 혼자서 아무리 아니라고 떠들어도 사슴이 말이된다는 고사성어)

사실 이윤석이 좀 지나친 말을 했다고 생각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윤석이 틀린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윤석을 비방 한다면 그들이 나쁜 것이다 비방은 틀린말을 했을 때 당하는 것이다 틀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윤석을 비방 한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행동이니 나쁜 것이다 안철수 신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전국 정당을 꿈꾸며 정권 교체 까지 바라는 정당이다
새누리당도 사실 영남을 기반으로 한국 정계를 쥐락 펴락 한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안철수 신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해서 전국 정당을 꿈꿔도 법적으론 잘 못된건 없다
그런데 왜 이윤석을 싸잡아 비판 하는 건가 이윤석은 호남 신당이 전라도 당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말 뜻은 충정도는 흉내도 못내는데 전라도 경상도는 일당 독재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것은 선거때 증거로 들어난 사실이고 민주적인 모습이 절대 아니고 국민 통합에도 지탄받고
여러 가지로 잘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떼거리로 투표 한다는 것 만으로 법적으로
불법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비민주적 이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고 그들이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러한 한국의 정치 현실에 처방전은 그러한 패권 문화를 자연스럽게 없애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한국을 업 그레이드 시키려 심각히 고민하며 진정한 통합으로 가는 길은 역설적으로 지방 자치제를 더욱 강화 하여 일국 안에 다국 체제를 만들어 운영 하는 방식밖에 없다 자신의 지방과 지역을 자신의 국가처럼 운영하고 경제등 여러 정책에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좋은 경제 더좋은 정책을 운영하기 위해 각지방 선출된 지도자들이 자세를 낮추고 운영할 것이다 제대로된 정책을 하지 못하면 투자도 줄어들고 관광수익도 줄어들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중앙정부에 핑계를 못하고 스스로 감당 해야 하기에 알아서 몸을 낮추고 지역 이익을 위해 망국의 패권 주의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여행할 때 외국 가는 느낌이 들어 더욱 색다른 느낌이 들고
각 지방에서 타지역 거주자가 범죄로 구속을 했을 때 수사기관이 마치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처럼 차별로 인한 인권 탄압이 줄어들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현재 거주지로 이송을 갈수 있게 해야 한다

경상도 전라도 출신들이 유독 다른 지역보다 더 지역 패권주의 성격을 가지는게 자랄 때 지역 특성상 스파르타식 생활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건지 다른 이유 인지는 모르지만 타 지역 출신보다 지역 이기주의 적인 생각이 강하여 그걸로 이익을 보거나 재미를 들여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먹는 다고

그런 재미에 맛들여 더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지역 출신들이 경상도 전라도에 안좋게 말하거나 비리를 들추면 그들이 떼거리로 비방하며 모함할까봐 겁을 집어 먹고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제대로 할수 없게 만들도록 지역 패권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 하는 세력도 존재한다 대표적인게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다

?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양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청부살해 하고 속이는 게 분명 하다고 나의 생각은 확신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이의 제기가 있다면 삼성가오너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명예 훼손 소송을 걸어 이건희 회장 병실과 이윤형 검시기록과 수사기록을 공개하여
진위 여부를 수사하면 될 일이지 아무 상관도 없는 전라도 경상도 인간들이 미친놈 처럼 말도 안되는 헛 소릴를 짓거리며 삼성가 개 노릇을 자처하며 거짓 여론 몰이를 조작하는 비겁한 짓 거리들은 일국 다국가 체제로 법과 제도를 전환하면 줄어 들것이다 언제까지
수도권은 지방자치제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대선 선거에서 박빙의 경쟁지역 이른바 험지이고
여 야의 텃밭 경상도와 전라도는 당선되기 쉬운 양지 여만 하는가
이런 더러운 불공평한 정치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경상도 전라도의 패권 문화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미 경상도와 전라도는 각각의 공화국이나 마찬 가지다
전남 순천 곡성 당선자 이정현이 새누리당 출신이라고 하자 방송 패널로 나온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누군가가
이정현이 전남 곡성 출신 이니까 순천 곡성에서 당선 된 것 이라고 말한 모습을 보고
만약에 이정현이 타지역 출신 이었으면 절대 당선 되지 못했다고 하는 뉘앙스({프랑스어}nuance]
명사어떤말의소리, 색조, 감정, 음조등에서기본적인의미이외에문맥에따라달리느껴지는섬세한의미차이) 가 풍기는 발언이었다 과거 오래전 이북출신 여자 변호사가
이북 출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자 자비를 들여 끝까지 변호해 줬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난다
단합심 하면 이북도 빼놓을 수 없다 경상도 전라도 의 지역 패권 주의는 이북의 평안도 함경도의 패권 주의에 비하면 비교조차 불가하다 이북이 경제 사정이 극도로 안좋아 김정일 때 무려 2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고 하는등
이북 사회가 과거 일제 강점기나 해방직후 부터 1960년대 초까지 한국을 장악하던 기세 보다는 그 기세가 엄청난게 줄었다고 생각 되지만
그전에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때 북한 미녀 응원단이 비가오자 김정일 초상화가 비를 맞는다고 울고불고 하던일 지금도 북한에서 김정은 이라고 반말만 해도 데려다가 죽인 데는데 그런 의미에서 경상도 전라도 떼거리 행동은 북한 애들 에게 비할바가 못 된다
여럿이서 사람하나 바보 만드는건 시간 문제라고 처음보는 삼성가의 사주를 받은 음모로
교도소 내에 날 호모로 누명씌우고 삼성에서 천억 주려다 겁이 많아서 말았다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별의별 욕을 하며 수근 대는데 한국이란 나라에 특히 당쟁이 심했던 조선시대 서울 출신의 충신 남이 장군을 간신 유자광이 역적으로 모함하여 죽이고 한국 최고의 영웅 성웅 이순신 장군((李舜臣, 1545년 (인종 원년) 4월 28일 (음력 3월 8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 1545년에 태어낫다고 합니다
출생지 조선 한성부 건천동 (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인현동1가) 이순신 장군을을 간신들이 모함 하여 장군에게 사형 다음으로 더러운 형벌 이라는 백의 종군을 하게 만들어 왜구가 완전이 물러 간다고 확신한 노량해전의 승전을 알고 갑옷을 벗고 갑판위로 가서 왜구의 조총에 일부러 노출하여 장렬히 자살하여 전사한 이순신 장군은
그대로 돌아가면 조선의 영웅이 되면 조선임금을 간신들이 자극하여
또다른 모함을 받아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고통을 당할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선택을 하게만든 조선의 추악하고 더러운 뒤에서 수군거리며 수많은 충신을 역적으로 모함하여 죽인 조선의 더러운 전통이 내려와 한국의 미친 삼성공화국을 넘어 삼성왕조 국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중국공산당 이나 IS테러범 과 북한 공산당 빼고 어딜가도 한 힘없는 개인을 이렇게 악의적인 모함과 거짓 소문으로 인격을 짓밟으려 하는곳이 또 있을까?
허기야 인도 같은데는 아직도 마녀사냥 으로 일년에 무려 200명 가까운 사회적 약자인 인도 여성이 누명 씌워
살해 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제3국가의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나라들 의 약자 들이 누명 당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겠지만 미국 일본 캐나다 유럽등에
이런 비슷한 억울한 일로 약자들이 죽는 경우는 있을것이다

사람은 죽지 않았는데 음주운전을 9번 했다고 말도 안되는 종신형을 때렸다는 미국

그러나 부자집 아들이 성폭행한 사건은 정상참작 하여 징역 6개월에 처했다는 미국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한국만 있는게 아닌가 보다


그러나 한국 전체가 삼성그룹의 비리를 감추기위해 말도안되는 거짓소문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거지로 퍼트리는 일은 드물 것이다
과거 중국의 모택동시절 문화혁명당시 홍의병들이 때거리로 몰려다니며 아무 죄없는 중국인들을 반동으로 몰아
10년도 안되는사이 무려 2000만명 이상을 희생양으로 학살 했던 처참 했던 사건을 생각나게 하듯시
마치 한국 최고 재벌을 넘어 세계 최고 전자회사로 발돋움하는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그룹 오너들이 자신들의 거대한 조직을 과거 모택동 이 이용한 홍의병 처럼 자신들의 파렴치한 범행을 감추기 위해 이용하여 힘없는 한 개인인 나를 희생양 으로 누명씌워 엮어 짓밟으려는 추악한 더러운 음모인 것이다

교도소내에 사동에서 일하는 소지들은 두달만에 바뀌고 내가 이송오자 2주만 인가 소지가 바뀌 었는데 소지는 청소라는 일본말로 요즘은 사동도우미 라고 고쳐 부른다
전달 전달 되서 마치 관심사병 이상으로 교도관 지시로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삼성그룹 오너들에게 유리한 거짓 유언비어를 퍼날르기 위해 더러운 조직적 음모로 사동전체 아니 어쩌면 경북제2교도소
전체가 더 나아가서 한국전체 사회에 더 나아가서 전세계에 퍼져있는 똑똑한 삼성그룹 해외지사 직원들이 유창한 외국어로 전세계 외국인들에게 까지도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신들 유리하게 여론 몰이를 하려할게뻔한 것이다 과거 같으면 무방비 상태로 그냥 그렇게 세계적인 그룹에 찍소리 못하고 당하고 말텐데
지금은 트위터도 있고 페이스북도 있고 해서 인터넷에 억울한 사연을 글로 올리수가 있어 세계양심에 진실을 이렇게밝힌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재소자는 녹음기 카메라 등은 일체 가지고 있을수 없어 아예 녹음을 할수가 없다 심지어 조사 징벌실은 시계는 물론 볼펜 필기 도구나 공책 등도 못가지고 들어가게 한다
한통속으로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심증은 확실 하지만 녹음을 할수없어 법적 처벌을 할수 있는 증거를 밝히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고
교도관들은 카메라와 녹음기가 장착된 핸드폰 비슷한 통신 수단을 각자 들고 다니며
녹음을 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교도관들 유리하게 찍는데 수용자 들은 그런걸 전혀 휴대를 할수가 없어 교도관이 먼저 수용자 에게 욕을하며 약을올려 분을 못참게 계속 조롱하여 대꾸하면 바로 녹음하여
오히려 실컷 당하고 가해자로 뒤집어 쓰는 경우가 다 반사다
천억 노리고 최면 걸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을 죽였다고 살인미수 무혐의 난것을

서울에서는 시끄러럽고 말이 셀수 있으니까 삼성의 안마당 같은 이곳 검사가 재수사 해서 조용히 기소하여 형량대로 놔서 교도소에서 말려 죽일 꺼라며
후장 주면서 영원히 살라고 기소 한다고 킥킥 대며 교도관들이 일부러 사동도우미 에게 얘기하여 지시하면 자유로이 사동을 돌아다니는 도우미들은
여기저기 갇혀있는 거실 들에게 다가가 교도관들이 시키는 대로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나의 신경을 계속 건드려 괴롭 히려는 더러운 짓거리를 한국 법무부 소속 교도관들이
하니 정말 한국이 양아치 국가고 삼성공화국 임을 새삼 느끼며 분노가 치밀었다

사동은 전부 계호상 독거 수용자 들이라 운동할 때도 교도관들 여러명 에게 계호를 받으며 혼자 순번대로 차례로 나갔다 사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많아 일주일에 한번 종교활동 시간이 있지만 그것도 기독교 천주교 불교 식으로 날짜가 틀리게 놔눠서 가고 종교 활동도 안 나가고 운동도 안나가는 놈도 많아 얼굴도 모르는 놈들도 적지않았다
그런대도 나를 험담하는 소리 들으면 정말 개잡듣 잡아 패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운동을 나갈때 일부러 걸음을 멈추어 기다렸 다가 뒤따라 오는 그놈에게 다가가
그놈을 불러 너 나보고 험담했냐고 큰소리로 따지자 그놈은 당황하며 그런적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데 갑자기 도관들 여러명이 달려들며 제지하며 서로 격리 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욕을 하고 문을 발로차고 지랄하며 근무자를 불러 도우미 바꾸라고 하자

얼마 안 있다가 바뀔때가 되서 그런지 아니면 교도관이 조치해서 바꿨는지 다행이 곧 바뀌 었는데
사동 도우미 들은 2달 마다 사동을 바꾸어 활동을 하는 시스템이 내가 가본 교도소와 구치소는 같은것 같았다
새로온 놈도 먼저온 놈보단 들 했지만 역시 주둥이로 나에대한 정신적 괴롭힘은 있었다 교도관들이 사주에 의해서 조직적 으로 저지르는 전무후무한 괴롭힘 인데
물론 나보고 대놓고 그런것도 아니고 내거실 주변에서 일부러 흘리는며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려는 소리는 그런소리 한적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놈에게
가서 무조건.폭력을 행사 할수도 없고 그래봐야 나만 감옥에서 추가징역 받아 나가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엄청난 손해인 것이다 수지김 사건에서 진실이 들어 났듯이 수지김 남편이 수지김을 죽이고 북한으로 도망 가려다 실패하자 한국 당시 안기부에 인계 받아 남편으로 부터 수지김을 죽였다는 자백을 안기부 에서 받고도 전두환 정권때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 이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시국을 자신들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해 수지김 간첩사건을 무리하게 조작하여 정권의 개에 불과한 언론과 방송을 이용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국민을 속이던 사건으로 안기부의 시나리오로 수지김을 간첩으로 누명씌우고 그 가족들은 간첩들의 가족 이라고 수근 거리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 에게 심지어 철부지 어린 아이들 에게도 손가락질 욕을 들으며 괴롭힘을 당하고 수지김 가족은 살던 동네를 벗나면 그만 이지만 나는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괴롭힘을 조장하는 배후 세력의 보이지 않는 삼성그룹 오너들의 음모로
그렇게 고통을 받던중에 그곳을 떠야 겠다고 생각 하던중 2012년 1월 구정 휴일이 지나고 바로 나에게 면회가 왔다는 뜻밖에 전갈을 받고 누가 나에게 면회올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누군가 금금하여 쪽지를 보자 이복 첫 째형과 큰형수 였다

첫째 이복형수는 나보다 나이가 10살 많은데 지금까지 날 볼때마다 도련님 이라며 반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난 7살에당시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당시 13살 되던해 1980년1월 쯤인가 곧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첫재이복형을 따라 우리집에 처음 왔는데
첫째이복형수는 고향이 전북 정읍이고 당시 23세 였고 성씨는 최가 이고 전라북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얼굴은 볼품 없지만 말은 전라도 사투리를 전혀 안쓰고 표준말로 상냥하게 잘했다 내가 봐도 말 재주는 있는것 같았다
나 한테는 특히 잘했는데 경상도 출신인 엄마가 이곳으로 오자 어머니와 절친 했던 둘째 이모와 이모부는 서울에서 살던 집을 처분하여
우리집 바로 옆에 빨간 기와집을 여관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크게 새로 짓고 이사 왔던 둘째 이모가
항상 큰 이복 형수를 나무라고 전라도년 이라고 욕하는소릴 여러번 들은 기억이 나는데 특히 곱슬머리에 성격이 와일드한 둘째 이모에게 머리그덩이를 잡히고 두들겨 맞은 경우도 있었다는데
대들진 않았데 항상 내가 학교가고 없을때 그런일이 벌어져 나는 둘째이모와 어머니가 큰형수를 나무라는 모습은 여러번 본적이 있지만 폭행한걸 본적은 한번도 없다
큰형수 보다 중졸이 학력이 전부인 이복 첫째형 이 더 문제가 크지 학교 다닐때 좀 모라서 그런건지 사고를 많이치고 고등학교 시험도 떨어질 정도로 공부를 제일 못했다
그러나 나 한테는 한번도 폭력을 행사 하거나 말을 함부로 한적은 없다
70년대 박정희 정권때 지금은 미국에서 2000년 간암으로 죽은 미국간 이복누나가 이복형제들중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그때 보안사 직업군인으로 간암으로 2000년 죽은 매형이 근무하다
제대하고 1984년 미국 뉴저지로 먼저 이민을간 자신들의 가족을 따라 이민을 갔는데 들리는 말로는 매형의 친형이 월남전에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먼저 미국에 이민을 가서 자리잡아
다른 가족까지 부른 것 이라고 한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박정희 정권 때는 군인들 그중 보안사 입김이 상당하던 시절 첮재이복형이 술먹고 싸우다 경찰에 구속된걸 매형이 여러번 경찰서로 가서
빼줬 다는데 당시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이라 보안사 파워가 막강해
사소한 사건은 경찰서에 가서 매형이 그냥 여러번 빼오기도 했다는소리를 당시 어린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런대 10.26사태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시해를 당하고 난후 매형이 군대를 전역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을때 인가
한번은 첫째 이복형이 사건을 크게 일으켰는데 맥주병을 깨서 찔러 상대방이 중태에 빠진걸 당시 땅을 팔아 매형이 중재 하여 합의보고 교도소 안 넘어 가고 풀려난 적도 있다는 소릴 어렴풋이 들은 기억도 나는대
그후 첫째 이복형이 결혼하고 부부가 개미상회를 잠시 운영하다 당시 아버지 명의로 좀 남아 있던 땅문서를 아버지 인감과 함께 들고 야간 도주 하여 팔아 먹고 살다가 거지가 되자
다시 염치불구 하고 기어들어 온적도 있던 것들이다

그때 어머니가 분명 여우같은 첯째 이복형수가 꾸민 교활한 짓거리 라고

그렇게 땅문서 들고 야반 도주하여 도망 갔으면 잘살아 야지 왜 병신같이 거지가 되서 돌아 왔냐고 욕을 하시는 소릴 들은 기억도 난다


이것들이 무슨 목적으로 여기 왔을까? 생각하고 처음으로 청송 제2 교도소 면회장에 가보니 교도관이 들어가기 전에 앞에 팻말을 읽어 보라고 하길래
읽어보자 면회중 녹음 녹화되는 것은 수사기관에 증거로 사용 된다고 하는 경고 문구였다
들어가자 바로 이복 첮재형과 큰형수가 왔는데 그 전에 나에게 반말 한번 안하고 잘하던 이복 큰형수가 은근히 시비조로 내성질 돋구려는 말을 하네 내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냐고
연락한적도 없는데 하고 물어보자 이복 큰형은 날 찾으려 대구교도소 까지 같다가 경북 북부 제1교도소
로 이송갔다는 말을 전해듣고 다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뉴저지에서 유니언시티에서 럭키 네일 가계를 운영하던 이복 큰 누나가 폐암 말기 라고 하네 곧 죽을수도 있다고 하며
저번 징역 살때 내가 찌르고 살인미수로 징역 3년 살고 나온 빌미가 된 넷째 이복형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미국으로 큰 이복 누나 근처로 이민을 갔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나의 예상 되로 미국에서 날 내보내고 지들끼리 살려고 내가 어려울때 좀도와 달라고 해도 안부치고 결국 한국오게 만들어서 2004년 나와 싸우다가 결국 나를 살인미수로 전과자 신세가 되게 만들고 지는
미국으로 이민 갔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더럽네
원래 나하고는 악연인 그런놈들 근처도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정말 하고 많은 인간들중에 저런 파렴치 범들과 악연으로 엮인 내가 참 인복도 없다 생각 하는데 느닷없이
한국 최고재벌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범행을 감추려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에게 업친데 덥친격으로 희생양 누명당해
안 살아도될 징역 4년을 살면서도 나와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는 교도관들 에게 까지

이런 수모를 당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해서
미칠 지경 이었다 넷째 이복형 이놈은 지금 미국 이민가서 첫째 이복누나 근처에서 산대는데 그때 그 색끼가 조금만 도와 줬어도 내가 한국까지 안들어 와도 되는데
난 꼴보기 싫다고 앞으로 면회오지 말라고 했어 내가 어릴쩍에 죽은 여동생을 어머니가 포대기로 등에 없고 나를 손을잡고 비가 많이 오는데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고 어디론가 가다가 여관에 들어가
진흙 묻은 신발을 딱고 잠을 잔 기억이 끊진 필름처럼 가물가물 나는데 그때 왜그런거냐고
어머니 생존당시 물어보자 지금 미국에 있는 이복 큰누나를
당시 경복궁 근처에 있었다는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직업군인과 중매 결혼을
시켜 줄려고 신앙촌 으로 도망간
이복 큰누나를 데려 오느라 찾아간 것이라고 말하자 아니 어머니가 그 고생해서 뭐하러 그년을 시집 보내려고 애를쓴 이유가 고작 이런대접 받고 살려고 그런 거냐고 내가 따지자 그래도
친딸은 아니지만 장래를 위해서 그랬다나
나중에 내가 미국에 가서 뉴저지 유니언시티 히스패닉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럭키네일 이라는
네일 가계를 이복 누나가 했는데 그때 운영을 잘해서 뉴저지 한인 네일업계 부회장 까지 하며 돈을 잘 벌었다는데 남편이 윤씨 인데 한국에서 보안사 군 생활을 하다가
미국 이민가서 시민권까지 취득하여 북한을 왔다갔다 하며 무슨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을 많이져 빛 값느라고 이복누나가 네일 가계를 운영하여 번돈 까지 들어가 금전적으로 고생이 많다고
하소연 하는 소릴 들은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중매해서 시집 보낸걸 한번도 고맙게 생각한 적이없데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을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데나 은혜를 원수로 값는다 더니 기껏 당시 어려웠던 시절에

부산 신앙촌 으로 바람나 가출 한것을 어머니가 79년에 죽은 여동생은 너무 어려 업고 나는 어머니하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여 할수없이 내손을 잡고 힘들게 부산까지 찾아가 데려다가
비교적 좋은집에 중매서서 살게끔 만들도록 시집을 보내줘 당시 잘나가던 연예인들도 미국가서 살고십어 발버둥치던 시절 미국가서 살게 해줬더니 오히려 원망만 하네

(그후 저번에 징역살때 미국 큰 이복누나가 안양교도소로 연회왔을때 네일가계를 결국 다른사람에게 넘겼다고 하는 소릴 들은것 같다 )
이복누나 남편되는 사람은 2000년 미국에서 간암으로 죽었는데
장례식에 이복누나 죽은 남편 형제들이 미국에서 여러가지 사업을 한다는데 잘사는지 전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걸 본적이 있다 나도 당시 미국 뉴저지 한인교회 에서 장례 치를때 입관식만 보고 조용히 나온적이 있다
당시 매형이 죽기전에 불법채류자라 셀폰 하나 없던 나에게 셀폰을 하나 매형 명의로 만들어 주었는데
갑자기 둘째이복형 놈이 전화가 와서 니가 왜 미국에 갔냐며 한국에 오면 지가 사업이 잘되서 아파트 한채 나에게 사주고 포크레인 한대 나한테 줄테니 면허증따서 지 사업 도아 주라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씨부리며 당장 한국에 들어 오라고 지랄하여 내가 별미친놈 다보겟네
그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하냐며 내가 미국에서 잘사는게 그렇게 배가 아파 비싼 전화비 주며 전화하냐며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뉴저지에 있는 지누나가
가르쳐 줬다며 살살 날 달래며 한국에 당장 들어오라고 계속 계속 지랄하네 미친놈 지랄하지 말라며 전화질 하지말라고 욕을해도 그후로도 몇번더 전화질을 하네 내가 한국가면 사고무친에 그지신세나 다름 없는데 내가 미국에서 아메리카 드림이라도 이룰까봐 아니 지누나로 부터 전해듣고 내가 미국에 있다는 소식 자체가 저 샊끼 한테는 배가 아플 일이다 세상에 살다 살다 저런 쓰레기 같은 것들과 더러운 악연으로 얼킨내가 미웠다 -)
내가 면회장 에서 어리석게 셋째이복형 그놈 때문에 인감 각서 사기 당하여 천억 날렸다고 지랄하며 하면서 출소하면 가만 안둔다고 만약에 말하면 녹음 녹화 시켜 검찰에 보네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을 설득하여 내가 천억 노리고 이윤형을

최면 걸어 죽인 증거가 녹음되어 발견 된 거라고 누명씌워 재기소 할려고 작당 하려고 홍라희 이재용이 브로커를 몇단계 거쳐 보낸 것 같은데 그렇찮으면 절대 여기 까지 올 것들이 아니지

그러나 나는 이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홍라희 이재용 등이 공모하여 암살 하는 과정 에서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엮었다고 뒤늣게 파학 했기에 출소해도 셋째이복형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2011년10월 초 쯤인가 내가 교도소에 녹화하여 틀어주는 방송인가 신문 인가에 나온 주소로 알지도 못하는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누군가 에게 등기 편지로 나의 억울한 사연을 적어 보낸적이 있는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은
날 좋아하다 자살 한게 아니고 천억주고 합의 봤다는 거짓말 유언비어도

삼성그룹 본처와 장남이 퍼트린 거짓 조작 소문 이라는 걸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 일거수를 교도관을 통해 감시하던 삼성그룹회장 본처와 장남이 내가 바보인줄 알고 사건의 진실을 모를줄 알았는데 내가 뒤늣게 사건의 진실을 어느정도 추리하자 내가 출소하면 진실이 밝혀질 까봐 두려워 이것들을 보내 내가 면회장에서 인감각서 사기 당해 천억 날렸다고 셋째이복형 욕을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
재기소 할려고 그런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 나는이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이 날 좋아하다 자살 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짓 유언비어 이며 삼성그룹 회장 본처와 장남이 치밀한 계획하에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엮은 또다른 피해자 라고 뒤늣게 깨달았기 때문에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피해 갈수 있었다


그후 이송 신청하여 행형법에 마약사범 이나 조직사범 제외하고 이송은 연고지 이송이 원칙이라고 행형법에 적혀 있다고 2006년12월 당시 영등포구치소가 에서 본기억이 나는것같은데
그동안 수용자 행형법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연고지와 가까운 안양교도소로 이송을 보내 달라고 하자 교도관도 연고지 이송이 원칙이라고 해놓고 정반대인 2012년 4월 17일 목포교도소로 이송 명령을 받고 가는데 사실 이송 명령은 교도소 에서 보내는게 아니고 교정청 소관 인데 그곳도 과거 교도관 생활 하던 사람들 근무하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당시 단독 이송이라 봉고차에 죄수는 나혼자 이고
교도관 4명에 운전자 와 나까지6명 정도 탄것 같은데 나는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이고
청송에서 목포까지 얼마 안걸릴것 같은데 당시4시간 30분이상 걸렸어 목포교도소 가보니
뜻밖으로 교도관 들이 상냥하게 대했으며 나를 신입 거실로 안내하고 이곳에서 출력 신청하면 바로 본거실로 가지않고 출력을 내보낸 다고 하네 대구교도소는 출력을 나갈려면 작업거실을 거치는 복잡한 시스템 인데 여기는 이송와서 신입거실 에서 바로 공장 출력 을 내보낸 다고 하니
그곳에 가보니 이송온 몇명이 있었는데 죄명이 절도로 인천에서 이송온 놈도 있었다
그곳에서 바로 출력을 한번 나가 보기로 하고 신청 했는데 인천에서 온놈은 출력을 안나가고 미지정 거실로 간다고 먼저 갔다 그곳은 봉투를 접는 공장으로 거실은 당시 나까지 7명 정도
봉사원 으로 있는 놈은 무기수 출신으로 순천교도소 에서 2급수 이송을 왔데는데 이곳이 작년인가 부터 2급 교도소에서 3급 교도소로 바꼈다고하네 나는 4급수 이지만 3급 교도소에서 4급 자도 수용 할수 있다고 하네
무기수란 놈은 강도살인으로 무기를 받았다고 하는데 자신은 강도를 한적이 없는데 경기도 어디인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전남 고향에 볼일 보러 왔다가 일이 벌어 졌는데 이말은 확인 되지 않은 사실로 순전히 무기수 혼자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여자를 칼로 죽이고 옷에 피가 묻어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거기 있던 옷으로 갈아 입고 온게 강도살인죄로 엮인 거라고 하는데 당시 법을 몰라서 옷을 갈아 입었는데 옷만 안갈아 입었어도 강도가 안들어 갔고 강도만 안들어 갔어도 자신은 초범이라 무기는 안받았을 거라는데 강도살인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들은 최하가 무기 였다
그놈은 키도 조그만 하고 모든걸 솔선 수범 하네 어떻하든 감형 받아서 빨리출소 하려고 무진애를 쓰는게
한번 실수가 한인간 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걸 새삼 깨달 았다 무기수는 아침에 공장 출력 갈때나 저녁에 올때도 교도관 누구라도 인사를 깎듯히 하는데 당시 목포교도소는 교도소안에 출력수 공장들이
있었는대 1.2.3.4.5. 공장으로 이름을 정했는대
당시 내가 있던 공장이 봉투작업 공장인대 아라비아 숫자는 몇번인지 지금은 기억안나
그곳 공장에서 생활하는 중에 순천 막걸리 사건 주범이라는 사람이 같은 거실은 아니고 같은 봉투공장 다른 반대에서 왔다고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듣고 운동시간에 운동장 에서 순천 막걸리 사건주범 이라는 사람이 걷는걸 봤는데 나이는 들리는 말에 62-63세 정도 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데 주변의 말로는 무기를 받았다고 한다
딸은 20년 받았다는 소리를 누군가로 부터 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있다가 다른 교도소로 이송 갔다고 하는데 들리는 말로는 전남순천 교도소로 이송 갔댄다


( 참고자료- 순천 독극물 막걸리 사건은 자백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누군가 집앞에 막걸리 를 두고 갔기에 별 생각없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하러 가면서 그 막걸리를 가지고 나갔고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마셨다
그런데 그 막걸리 에는 치사량이

249P- 시안화 칼륨 속칭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급히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막걸리를 한모금 들이마신 어머니는 사망하고 입을 댓다 이상한 냄새 때문에 뱉어낸
다른 사람들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막걸리를 최초로 발견해서 냉장고에 보관했던 딸은 지적 장애가 있었고 누가 언제 막걸리를 집앞에 두고 갔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런데 혼란스런 수사 와중에 이딸이 이웃 남자를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검찰에서 행한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다 오히려 어머니에 죽음과 관련된
수사에 혼선을 야기 하려는 거짓 고소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 되었다 딸의 거짓말과 범죄 행위를 직감한 검찰은 딸을 고소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변경해 조사를 재개 했다
결국 딸은 자신이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탄 장본인 인데 라고 자백을 했다
이유인 즉슨 아버지와 자신과 불륜 관계에 있는데 어머니가 그 사실 알게 되어 아버지와 공모하에 어머니를 제거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완강히 부인하던 아버지도 장시간에 걸친 검사의 강도 높은 추궁앞에 딸의 주장이 맞다며 혐의를 인정하고 범죄 일체를 자백했다 그런데 이들의 자백을 확실히 입증 하기 위해 현장 검증에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다시 이들이 정말 범인 인지에 대한 의심이 강하게 제기 되었다 사건에서 사용된 막걸리를 샀다는 곳에서는 그런 종류의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법도 검사와 수사관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재현하지 못했다
피의자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자신들은 그런일을 한적이 없다고 번복한 것이다
그러나 2심 에서는. 부녀가 자백에 신빙성이 없고 일관되지 않다고 중형을 선고했다 아버지는 무기징역과 딸은

징역 20년을 받았다
-숨겨진 심리학 저자 표창원 펴낸곳 토네이도 2011년)


그런데 비하인드 스토리인지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집안 아들이 면회와서 얘기 하는중에 녹음이 안되는줄 알고 딸과 성행위를 하고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하여 그게 녹음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검찰에서 증거 기록으로 2심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당시 봉투공장 누군가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기수는 거실에서 주말에는 지가 구매한 땅콩 소세지 떡갈비 고추장 등을 밥에 넣고 직접지가 밥을 비벼 거실 사람 에게 모두 나눠줬지 그런데 어느날 그곳에 한놈이 있었는데 내가 해군나와 제대 했다니까
지도 해군 나왔다고 씨부리는데 훈련 어디서 받았냐고 하니까 논산에서 받았다고 하여
주둥이 잘못 놀리다가 내가 개 잡듯 잡는 수가 있다고 하니까 조용 하더라고 해군은 모두 진해에서 훈련받는데
이놈은 당시 나이가 40 초반 쯤 으로 나보다 어렸는데 순천인가 어디서 배를 탓데나 운동 신경도 모자라고 약간 모자란 놈인데 대들 었으면 제압하고 군기좀 잡을 려고 했는데
대들진 않고 그날 공장에 출력 나가자 갑자기 이놈도 나하고 같은 반대이고 또 나하고 나이가 같은 같은 반대 있던 애가 있는데 나이가 나하고 동갑이고 이놈이 징역을 20년 넘게 산 집이 인천 이라는
고아원 출신 이라는데 또 고향은 전주래 근데 죄명은 전부 절도고 보호 감호도 살았데 이놈 성격은 순댕이라 징역이 도합 20년 넘게 살았다는데 징벌을 한번도 받은적이 없데
지도 해군이라고 거짓말했다가 나에게 욕쳐먹은 순천 뱃놈이 부화는 잔뜩 치밀어 와서 나한테는 힘으로 못 이기겠는지 나에겐 못덤비는건지 아니면 교도관들이 나몰래 봉사원을 통해
삼성그룹에서 나하고 싸우면 전라도사람 안 무서워 한다고 삼성그룹이건희 회장이 천억준다고 쇼를하며 천억주면 안되니 절대 나하고 싸우지 마라고 은밀히 내통을 한건지 모르지만 이놈 운동신경을
보니까 나한테 상대도 안될놈이야 사람들 많은데서 나에게 떢이 되도록
터지면 창피 하니까
대신 만만한 전주놈을 탓켓으로 시비를 거는데 지들 끼리 화해 한다고 하면서 다들 저리 비켜 좀 주시라고 하여 떨어져 있자 갑자기 둘이 뭐라고 조용히 얘기하더니
순천 뱃놈이 전주애를 느닷없이 때리는데 전주놈은 그대로 맞고만 있내 그래서 따라가 때리는놈을 제압하고 밀치자 교도관이 오더니 둘을 대리고 가더니 바로 조사 징벌실로 가지않고 화해를 시키는데 얻어맞은 전주애는 악수 하자고 손을 내미는데 오히려 때린 순천뱃놈은 오히려 교도관이 보는데서 전주애를 빰을 때리고 발로차고 하자
결국은 순천 뱃놈이 나에게 덤비면 못이겠고 참자니 울화통이 터지니까 의도적 으로 만만한 전주애를 희생양 으로 삼은것 같은데 전주놈은 나하고 아이도 같고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또 나하고

250P-같은 반대에서 봉투작업 일을 했는데 그후 교도관이 순천뱃놈을 조사 징벌실로 끌고 갔는데 전주애는 지는 대항도 안하고 일방적 으로 맞았다고 하여 안갈줄 알았는데
역시 이놈은 여러번 도합 절도죄명만 으로 20년 넘게 징역을 여러번 살았어도 징벌을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시스템을 잘모르나 본데 일단 조사가 시작 되면 둘다 조사징벌실 에 가서 조사후 사건이 크면 검찰에 송치하고 징벌을 받고 아니면 징벌만 받고 죄가 없으면 훈방으로 몇칠만에 나온다
그런데 대구 교도소에 있을때 포대공장에 안에 CCTV 설치가 된것을 내가 봤는데
목포 교도소는 CCTV가 아무리 찾아도 당시에는 보이질 않았다
이럴경우 사건이 생기면 편이 많은놈이 무조건 유리하다 결국 쉽게말하면 누명씌우기가 좋다는 얘기다
몇칠만에 훈방되어 전주애가 다시 왔는데 내가 왜 가만히 얻어만 맞고 있었냐고 하자 20년이상 징벌을 한번도 받은적이 없는데 여기서 전통이 깨질순 없다나 그후나는 비염이 심해 봉투공장에 먼지가 나서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자 대구교도소 처럼 의무과에 얘기해 다시 미지정 거실로 보내 달라고 하자 안된데
경북제2교도소에서 8개월 혼자 있다가 이송와 좁은방에서 8명이 생활 하려니 내가 처음 들어가니 나까지7명 이었는데 교도소 거실은 수시로 사람이 교체대어 들어오고 나가고 그래서
지금 8명 인데 좁고 걸리적 거리고 공장 생활도 짜증 나는데 이송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시 문방보는 놈은 죄수놈이 있는데 그놈은 목포놈이 아닌데 위쪽지방 출신으로 보이는 놈이 어떤놈과 얘기하는 중에
삼성오너들이 천억주려 했는데 검사벌금에 벌벌 떨어서 천억주고 합의 보고 말았데
그러는 소릴듣고 이건 분명이 내가 가는 곳마다 교도관에 의해 교도관은 그것 보다더 높은것들 에게 지시를 받고 이러는지 뭔가 조직적 음모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 아닌가 여기서 처음보는 놈인데 저놈이 나를 어떻게 알고 다른 수용자에게 저런말을 씨부리며 계획적으로 삼성그룹 오너들 에게 유리하도록 거짓소문을 퍼트리는가
아무래도 문방보는 놈이라 담당직원실에 들락거리며 교도관 에게 뭔말을 들은걸 다른수용자 에게 도미노 현상처럼 전달하는 형식이다
나는 삼성그룹 직원은 커녕 비정규직 직원도 만난적이 없는데
무슨 천억주고 합의 받다는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가 서울 성동구치소 에서 정반대인 목포교도소 까지 퍼지는지 이건 분명이 날 의도적으로 깍아 내리고
삼성그룹 오너들 에게 유리한쪽 으로 조작하여 유도 하기위한 조직적인 음모로 유언비어가.퍼지는게 분명해 보이며 이렇게 집요하게 여론 몰이로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죽음의 진실을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바람잡아 감추려는 의도로 보이는게 확실해 보였다 이러한 정항 증거들은 곧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이윤형 사인의 원인이 삼성그룹 오너들 에게 있는게 점점더 확실해 지는 정황증거 이기도 하다고 나는 추리했다


(참고자료-미국의 순종 미란다 원칙에 대해서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1966년에 만들어 진것이다 1963년 봄에 미란다란 멕시코계 미국인이 납치와 강간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경찰은 그에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알려주지않은 채 두시간 동안 신눔을 해 자백을 받았고 이자잽때문에 미란다 는 1심과 2심 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미국연방 대법원에
249P-상고를 했다 미국연방대법원은 이사건에서 경찰이 미란다에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란다가 한 자백은 무효이고 이런자백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한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미국사회의 순종 미란다 원칙은 이런것이다 범인을 체포할때는
1. 아무말하지말지 않고 침묵해도 좋고
2. 무슨 말을 하게 되면 그말이 불리한 증거가 될수 있으니 조심해야하고
3.변호사를 불러 같이 앉아서 조사를 받아도 되고
4. 변호사를 부르고 싶은데 돈이없다면 국선 변호사를 불러 줄것 이라고 하는 네가지 를 분명히 알려 주어야만하고 그중 어느 하나라도 빠트리려
범인을. 조사해 .자백을. 받으면. 그.자백은. 무효라는. 원칙 .바로. 그것이다 .
순종 .미란다. 원칙이. 생긴 .이유는. 이렇다 .
수사기관은 .아무리. 범인을. 위하는. 척.하더라도. 진짜. 목적은. 범인을 .재판대. 세우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범인. 앞에서.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유혹을 .하기도 .하고.겁을 .주기도. 한다
수사기관은. 범인이 .법.지식이. 없는것을. 악용해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범인을. 당황하게. 만든다. 수사기관이. 하는대로 .내버려 .두면 누명을 .쓰는. 죄인도.생기고.

251P-너무.무거운. 죄를 .뒤집어 .쓰는. 죄인도. 생긴다. 그러므로 .수사기관이 .조사를. 할때면 .변호사.옆에. 앉아서. 간섭을.하도록 .해야. 한다. 변호사가. 오기전. 까지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고. 입을. 닫고.있게.하는것이. 좋다. 이런.이유로. 해서.미란다 .원칙이 .생겨난.것이다. )
-김용원 변호사 저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 서교출판사 -2011년
그런데. 나는 . 삼성직원은. 커녕. 비정규직. 직원도. 만난적이. 없는데. 무슨. 천억을. 주고. 합의. 봤다고 .씨부리는. 거짓.유어비어.를 . 쳐.믿는.것들은. 무뇌아. 인지
옛날 .진시황이. 죽자 .실권을. 쥔 .간신이 .망아지를 .갇다놓고. 힘없는. 진시황.아들인 .왕에게. 말이라고. 하자
왕이. 저게. 망아지지 .어떻게 .말이냐고. 하자 .실권을. 쥔. 간신의. 눈치를 .보느라. 대신.모두 .왕에게. 저것은. 망아지가 .아니라 .말입니다.라고. 했다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지금. .전무후무.하게 .일어나고 .있는.정황이다 ..
그후.나는. 작업거부.하니까 . 조사실에. 넣는데. 당시 .목포교도소. 3하6실에.조사실에 .가보니 .다른곳과.달리. 중방.이었다.
3하6실. 조사실에 .
들어가.보니. 최대인원. 5명.수용.인원.정도. 되는것 .같은데 .
다른.교도소는 조사징벌실 운영을 거이 혼자나 많아야 두명 집어 넣을수 있는 독거실로 전부 운영 했는데 여기는 중거실로 운영하네
교도관에게. 물어보니 독거가 적은 관계로 그렇데 그런데 조사실에 tv가 설치되어 있고 운동도 시켜 .주는데 시계나. 면도기 볼펜등 자신의 물품은 가지고 못 들어가게 하고
교도관의. 지시를 받는 사동 도우미 들이 관리하는데
그전에. 있던 서울 성동구치소 빼고는 전부 조사징벌실에 시계나 면도기 자신의 물품을 못가지고 들어가게 하는데 물론 볼펜도 안주고 대구교도소 같은 경우 평일에만
오전 9시 이후 부터 그리고 오후 5시전에 조사 수용자만 집필 허가가 되어 볼펜 주는대
징벌자도 소송서류 쓴다고 하면 규정된 일과 시간만 상부에 집필허가를 받아 집필을 허용했다
수건하나 팬티 런닝 여분 으로 하나 양말하나 빼고 모두 도우미가 관리하고 비누와 치약 칫솔만 식사후 잠시쓰고 다시 사동도우미 에게 반납 해야했다
3하6실에는 60 중반은 넘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이 경상도 라는데 해병대 중사로 제대 했다던가 월남전에도 참전했대 물론 확인된건 아니고 그사람 하는말이 제대후 사람을 죽이고 무기수로 20년넘게 교도소에서 살다가 감형받아 약 10년전에 가석방 됐는데 나는 무기수가 감형 받아 출소하면 그걸로 사건이 끝인줄 알았는데 사회 나가서 사고치면 다시 무기수로 살아야 한데 그래서 가석방된지 10년넘게 사회 생활하며 고시원 총무를 하다가 사장이 안좋게 대했는지 아니면 이사람이 무기수로 가석방 된걸알고 약점잡고 그런건지 사장이 갈궈서 싸우기 싫어서 조용히 그만두고 다른고시원으로 옮겼는데
밀린 월급 받으러 갔다가 그랬다나 이사람은 고시원사장에게 욕도 제대로 안했다는데 자신의 멱살을 잡고 폭행하고 욕하고 그래놓고 오히려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서에 가서 조사하다가
무기수로 가석방된 사실이 나와 보호감찰소에 인계되어 의정부 교도소에 있다가
목포교도소로 이송을 왔는데 너무 억울 하다며 하소연 하네
그래봐야. 이.사람이.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징벌없이 수용생활 잘하다 6개월 마다 있는 보호감찰 심사를. 잘받아 .다시 .출소하길. 바라는 길 뿐이다 이번 조사실에 들어온 것도 고령자 거실에서 상대방이. 느닷없이. 욕을하며. 멱살을. 잡아. 자신은. 방어만 했단다 징벌안받을 려고 징벌받으면 가석방으로.출소하는데. 큰 .지장이. 있으니까
이사람. 입장. 에서는. 징벌은. 곧 .사약이나 .마찬. 가지지.
고령자 .거실은. 만.65세. 이상만 .수용 .하는데. 그래서. 내가 .다시 무기수로 살아야 하냐고 묻자 보호관찰소
에서. 6개월. 마다 .심사를. 하는데 징벌없이 .생활. 잘해야.심사에서 .통과될.가능성이 있으며 나갈수 있는.기회가. 생긴.다고. 하네. 그래서. 거실. 에서도. 생활. 잘.할려고 .하는데
정신이 이상한 놈이 계속 시비를 걸어도 참으려 했는데 욕을하며 달려들어 멱살을잡아 이런 사정상 때려 패지 못하고 억울하게 엮여서 왔다며 징벌이나 경고를 받지말고 훈방으로
나가야 가석방 이라도 바라볼 텐대 하며 걱정 하더라고 그래야 6개월 마다 보호관찰에서
심사할때 통과하여 출소할수 있다고 그후 또 하나가 들어 오는데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 비교적 하얀 머리 인데 실제 나이는 50대 중반 밖에 안됐데
고향은.여수. 라는데 입실거부로 조사실 왔데 이.사람들은 나보다 몇칠 먼저 조사실에 들어와있었는데여수.출신은 말로는 건설회사를 운영했데 경상도놈 마약쟁이 하고 중거실에 같이 있었다는데 경상도 사투리가 따발총 소리처럼 씨그러워 같이 못 있겠다고 그냥 나왔데

252P-이틀인가 둘다 났갔는데 무기수는 훈방으로 여수 출신은 입실거부로 징벌방으로 갔는데 3하 5실이 징벌방인데 거기도 중방이야 근데 바로 앞방인 3하5실에 봉투 공장에서 나한테 안맞을 라고 전주애 때리고 온 순천 뱃놈 목소리가 들리네몆칠후 내가 징벌이 떨어지는 날 순천 뱃놈은 징벌이 끝나고. 나가고 난후
내가. 3하5실 징벌실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 가니. 여수사람을 제외하고 두놈이 더 있는데 나까지 도합 4명이 있었는데 상석인 잠자리인 가의 벽쪽으로 잠자리를 내주네. 교도소에서는 상석이 벽 쪽이다 중간에 누우면 자다가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다 사람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특히 고를 골거나 섞은 냄새가 나는 놈이 있으면 정말 짜증난다 그럴때 사람이 없는 벽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면 그래도 좀났다 그래서 벽쪽이 상석이다
전라남도 목포라도 같은 사동에 있는 일반거실 애들이 운동 나갈때
특히 다른 일반거실 여수 애들만 징벌실에 있는 같은 여수 출신 이라며 인사하고
여수. 어디어디 애기라며 설명하네 바로 다음날 한명이 징벌이 해제되어 나가고
이것들도. 같이 있어봐야. 이틀 정도면 둘다 징벌이 입실 거부라 징벌이 종료 되는데 여수출신은 배실되면 .들어갈 기세인데 좀나이 어린 놈은 전남 해남인가 어디인가 하는 놈인데 징벌이 종료 되어도 교도소에서 이송을 보내 줄때까지 계속 입실거부 할꺼라며 떠드는데
너도 고향이 전남이라며 이유가 뭐냐고 묻자 말을 안하네 나이는 40대 초반인데 밥 먹는데 이상한 소릴를 씨부려 내가 욕을하며 일어서 한대 때려 버릴려 려다가
여수사람이 말리며 어짜피 내일이면 징벌이 끝나고 나가는데 서로 싸우지 말라고 하여 넘어 갔는데.
여수사람과 한참을 얘기하며 지 아버지가 경남 출신으로 육군 장교출신 이었는데 광주 모 육군부대 에서 군무할때 전남출신인 지 엄마와 눈이 맞아 연애하여 이놈만 까놓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대나 하면서 지신세 타령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니가 전남에서 태어났다고 니 아버지가 경남이면 너도 경남 이냐고 묻자 아니래
이놈은 전남이래 아버지 고향하고 지가 태어나 자란곳 하고는 틀리다며
그곳은 징벌방이라 tv가 없었다
사실 조사실에 tv가 있는걸 본것도 목포교도소가 처음이 었는데
교도소 방송이야 정해진 시간에 법무부에서 녹화하여 지난 방송을 한 체널로 틀어주는 재미없는 프로가 대부분 이다 작업 거부로 징벌은 9일을 받았는데 조사 기간은 포함 시키지 않았다 다른데 하고 틀리게 tv와 운동 종교활동을 시키니 그런가 근 일주일 가까이 중방을 혼자 쓰자 징벌 끝나기 이틀인가 삼일 남기고 3명이 징벌실에 갑자기 들어오자 4명으로 늘었는데
둘은 경남쪽의 마약사범 이고 하나는 자칭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했다고 하는 말씨는 수도권 말씨인데 태어난 곳은 광주고 본적은 또 경북이래 처음엔 그말을 믿고 역사에 대해서 묻자 송 나라와 명나라가 언제 멸망 했냐고 묻자 발해 이전에 있었데 그래서 구라 라는걸 알았다

명나라는 1644년 멸망 발해는 그보다 훨씬 전에 있던 나라이고
원래는 조사징벌자들은 서로 돌아 가면서 밥그룻을 딱는데 고려대 이놈은 안시켜 일부러 더럽게 딱아서 방에서 30 중반으로 보이는 마약사범이 지가 밥그릇 다 딱는다고 하여
있었는데 마약사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놈하고 자칭고려대 라고 사기치는 놈하고 서로 쌍욕을 하며티격태격 말다툼이 심했다 그러다 운동시간에 일반사동 경상도 말씨의 마약사범이 징벌실을 지나가면서 40대후반 경남 출신의 마약사범 에게 서로 아는척 하는데
운동 나가는 경상도 사투리 쓰는 마약 사범이 목포교도소 교도관들 에게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려가
교도관 여러명 에게 밟히고 폭행당해 아직도 다리가 아프다며 넋두리 하는 소릴 들었다
나는 그 소릴 듣고 여기도 교도관들 이 수용자들 상대로 폭행이 있구나 생각했다
대구교도소 징벌거실 에서 2011년 7월인가 있을때 경남 마산 출신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목포교도소로 이송가서 생활하다가 교도관들과 트러블이 생겨 영겼더니 끌려가 집단으로 교도관에게 구타당해 실신했던 적도 있었다며 당시 죽는줄 알았다며 그게 오래전 전두환인지 노태우 때인지 모르지만 군사정권 시절이라
지금은 그렇게 까지는 안할 꺼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후 사동의 일반거실 운동자 들이 운동 나간후 40대 후반의 거실의 마약사범이 여기도 카메라 없는 곳에서 교도관이 죄수들 폭행한나 보네 그러네 그후 나는 4하5실에 배실 되었는데 입실거부 하자 조정거실 이라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하여 가보니 4하 뒷쪽 거실인데 인원이 비교적 적어 잠시 들어가 있기로 했지
그곳은 몇놈이 더 있었는데 한놈은 고향이 전남쪽 인데

253P-입실거부 하자 조정거실로 보냈 다는데 살만 돼지 처럼찌어 지몸도 못가누 면서
당도 높다면서 하루 커피를 4번이상 쳐 먹으며 한번에 커피두개 이상 넣내 그렇게 많이 먹으면 오래 못산다 하니까 발리 죽고싶데나 그놈이 얼마후 2인독거실로 배방되어 갔는데 얼마후 새로온 사람이 들어와 물어보니 해군 병248기 인가 해군선배야 지금까지 징역살면서 해군출신 처음 만나 보는데
이사람은 전남대 출신으로 사연이 많아 그런데 대구교도소 있을때 전남대 나온 공수부대 중사 출신과 성도 같고 마지막 이름 한글자만 틀려 혹시 형제가 아닌가 물어보자
모른데 만약에 같은 형제라도 사실대로 얘기하기 힘들겠지 챙피하니까
이사람 은 전남대 해양학과를 졸업을 압두고 항만청에 입사 하기로 예약된 상태라고 하는데 광주에서
저녁에 술을먹고 나가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과 어께가 부딧쳐 미안합니다
하고 가려는데 상대방이 더어려 보이는데 오히려 성질을 내면서
먼저 주먹질을 하드래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어 싸우다가 상대방이 넘어지며 바닥에 머리가 심하게 부딧쳐 죽어서 폭행 치사로 전과자가 되고 항만청에 취직도 못하고 징역을 살고 나와 또 공중전화 에서 또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사람을 죽여 상해치사로 징역을 살고나와
소매치기 들과 어울려 또 팅 보다가 도 징역살고 그렇게 징역살다보니 당시 50인데 20년넘게 징역살다가 늙었다고 하네 말하는거보니 아는것도 많고 전남대 나오고 해군제대 한것은 사실인것 같에 확인된사실은 아니지만
근데 이사람은 당노병환자가 커피를 돼지사료먹듣 쳐먹는 놈이 해군선배가 있는 거실에 갑자기 2인독거로 들어왔는데 이놈은 원래 운동도 안나가고 그래서 교도관이
운동 나가서 살도 좀빼고 운동좀 하라고 조롱하자 갑자기 지옷을 찟어 울면서 목메 자살 한다고 하여 난리를 쳐
그놈은 다른 격리 사동으로 가있고 2인 독거실은 없어져 교도관들이 일반거실로 갈래 조정거실로 갈래냐고 물어봐 일단 조정거실에 가있겠다고 하여 자신은 아무 잘못 없는데
생활 잘 하다가 이상한놈 하나 잘못와서 조정 거실로 오게 됐다고 푸념하네
그리고 해군수병 선배라는 사람은 광주교도소가 교도관들이 수용자에게 카메라 없는곳에서 또는 카메라 끄고 폭행한다고 광주교도소에서 이송온 사람들에게 들었다고 하자
광주교도소가 2014년도에 새로지은 다른곳으로 이전하기에 교도소시설 부수가안돼 엉망이고 낡아서
그런건 있는데 전남대 선후배중에 교도관이 여럿있어 이사람은 편하게 지냈다고 다시 광주교도소로
가고 싶다고 나에게 말하며 목포교도소는 싫타고 한다 그래서 다른 교도소로 이송가길 바란다고 하네
그래서 내가 왜그러냐고 하자 과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목포로 놀러와 텐트를 치고 야영 하는데
동네 양아치 8명이 와서 같이온 친구 4명이 싫컷 두들겨 맞고 돈도뺐겨 트라우마로 같은 전남이라도
목포는 싫다고 한다 나는 조정거실 이라는 것도 목포교도소 와서 처음봤어
조정거실은 오래 있을수는 없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강제로 출력을 내보내 던가 미지정 거실로 보냈지 나는 여럿이서 생활하는 곳에 들어가면 S구룹오너들이 교도관을시켜서 장난를쳐 정신적으로 괴롭히려고
거실에 양아치들시켜 주둥이로 내가 없는사이 험담을 하거나
누명을 씌울수도 있어 순간 열받아 상대방을 폭행하여 상처라도 입으면 검찰에 송치되어
여러가지로 추가징역을 받아 고통을 받으니 그걸꺼려 했지
그게 아니더라도 소설을써서 조작하여 나에대한 거짓소문을 퍼트리려 할께 뻔하기 때문에
쓸데 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정거실에 온지 어느덧 한달이 넘자 교도관들이 그곳에 있을 기간이 지났다고 출력을 나가던지 미지정 일반거실로 가라고 그래서 출력 신청하여 또 공장 출력을 나갔는데 저녁에 거실로 가서 있는데 8명 정도가 있는데
거기 봉사원 이라는 놈 하고 처음부터 말다툼이 있어서 내가 싸울려고 하자 꽁무니를
빼는데 나에게 존칭을 쓰고 마치 삼성구룹회장이 전라도 놈하고 싸우면 천억준다고 구라쳤는지 전라도놈 들은 나하고 안 싸울려고 피했어 내가 욕을해도 못들은 척하고 사실 전라도 놈들이 나하고 싸운다고 해서 천억을
준다는건 지나가는 개가웃을 거지말 이지 괜히 천억주려다 말았다는 누명을 씌워 어거지 명분을 만들기 위해 별 육갑을 떠는 더러운 놈들이지 삼성 이건희 회장은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나에대한 시중에 떠도는 거짓말 험담은 들을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게 차단 시켰겠지 그리고 신나게 자신들 유리하게 거짓소문을 수많은 삼성알바들을 통해 퍼트리는 홍라희 이재용의 교활하고 더러운 음모를 세계 양심에 고발한다
그런데 왜 해필 전라도 일까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다 있는데
사실 홍라희는 본적이 경남의령 으로 되어있지만 의령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고향 이라 대구에서 태어난 이건희 원조 미국원정 출산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이재용도 본적은 경남의령으로 이병철 본적으로
그대로 이어 받았지만 홍라희는 시집갈때 경남의령으로 본적을 바꿨을뿐 원래 경남의령과 연고는없다

254P-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가 경남의령 출신 이고 셋째아들 이건희는 대구에서 태어 났지만 본적은. 이병철 따라 의령으로 되어있고 어릴때 서울 올라와 서울 사대부고 에서 홍사덕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경상도 애들은 삼성을. 지들.기업같이.생각하는. 터라 .
우군 이라고 판단 했을꺼고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아버지 홍진기는 경기고향 출신 홍성우의 아들로 어릴적 서울 왕십리에서 자랐고 홍진기의 본처 김윤남은 전남 목포출신 이고
삼성그룹 회장본처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 홍진기가 일제시절 전라도 전주지법 에서 판사를 했을때
해방되기 한달전에 태어나 전라도 에서 태어 났다고 전라도의 라를 따서 라희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후 한달후 해방이 되자 서울로 올라와 경기여고와 서울대 응용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니 자란곳은 전라도가 아니지만 태어난 곳만 전라도 이다 그리고 홍라희의 외가는 전남 목포이다
그리고 홍라희의 남동생 홍석조는 전라남도 광주 고검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들 만의 패거리 문화로뭉치는 전라도에서 누명씌워 엮기가 좋다고 판단했을수도 있다
나는 이미 성동구치소 에서 전라도놈을 패서 징벌을 받은적도 있고 싸운적도 여러번 있다
괜히 삼성그룹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거짓 명분 세울려고
별 더러운 개 돼지 만도 못한 조작질을 어거지로 만들려고 하는게 분명해
그리고는 전라도놈들 무서워 해서 천억 줄려다 말았다고 거짓말로 참새 껌씹는 소리를 전국에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전세계 파견한 외국어 유창한 유능한 삼성그룹 해외지사 직원을 통해 세계에신나게 퍼트리고도 남을 것들이다 또 그말이 거짓말 인줄 뻔히 알면서도 앵무새처럼 씨부리며 거짓여론 몰이는 홍라희 이재용이
결국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어리석은 경상도 전라도 놈들 까지 이용하여 자신들의 범죄를 음폐 하려는 더러운 수법이 분명해 보여 이래서 한국민 처럼 다루기 쉬운 나라가 없다고 일제시대때 일본놈들이 그랬대
돈과 권력을 가진 강자말이 뻔한 거짓말 인줄 알면서도 진실로 포장하고 무조건 복종하는민족성 때문에 중국놈들 보이스피싱 범죄단원이 한국의 검찰을 사칭하거나 고위직 금융감독원 사칭하여
냉장고에 몇억 넣어라 지하철 보관함에 몇천만원 넣어라 하는 말도 안되는 말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다 넣어 털리는등 1년에 천억이 훨씬넘는 돈을 중국놈들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많게는 일년에 수천억원 마치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바치듯 사기당하여 헌납한 적도 있다는 한국인들
통신사에서 중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라는 것만 알려줘도 상당수 보이스피싱 사기를 막을수. 있다는데
실시를 안하는것 같은데 왜 그런지 의문이다 한국이 일제시대는 친일파들이 앞잡이들이 설치고 다니며 독립운동가를 때려잡고 해방후는 반일운동가로 반공 운동가로 변했다가
지금은 경제적으로 중국이 대세 니까 과거 친일파들이 어느순간 친중파로 바뀌어 한국을 중국에 팔아 먹을것 처럼 설치는 놈들이 많다 그런대 저녁에 잠자리 피는데 8명이 이불을 피니 자리가 좁고 좁은거실에 8명이 생활할려니 짜증나고 그래서 이불피다 말고 벨누르고 교도관 불러 나갔다
3하 6실 저녁에 중방에 조사실에 가보니 전북 익산이라는 성이 박씨라는 당시 50대 중반인 사람과 나와 둘 뿐이 었는데 나하고 같은 봉투공장에 있었데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 다고 이사람은 나를 안대 8명이 이불피며 잘려다가
중거실에 단둘이 잘려니 넓고 편했는데 아침이 되자 또하나 들어 왔는데 목포출신 인지 21살 먹은애 인데 사동도우미 출력 나갔다가 작업거부로 들어왔다고한다 근데 이번에도
3하5실 징벌방에 순천뱃놈이 또와있네 그런데 익산사람을 순천뱃놈이 잘아는지 서로 아는척을 하더라고 그러더니 서로 통방을 하는데 목포교도소는 징벌사동이 일반거실 과 붙어서 있어서 그런지
심하게 통방하지 않는 이상 교도관이 직접 타치는않했어 그런데 이놈이 징벌받고3하 5실로 오면 잡는다고 큰 소리로 씨부리내 그래서 내가 야 개쌕기야 한 주먹거리도 안된 쌕끼가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까분다고 욕을하며
너 뭐라그랬어 그러니 이놈도 욕을하고 나도 욕을하고 서로 사동이 떠나갈 정도로 떠들자 담당 근무자가 와서 차례로 직원실로 불러 미안하다고 하고 화해 하라고 하자 나는 못한다고 했지
잠시후 직원실로 둘다 불렀는데 순천뱃놈이 미안하다고 뭔저 사과하네 그래서 사과를 받아들이고 나보고그런게 아니고 익산사람과 친한데 익산사람에게 그런거래
그래서 들어와서 거실에서 그 얘기를 하자 익산 사람이 좀순한데 공장에서 서로 친한건 아니고 자신이 잘해 주니까 나이가 15년 가까이 차이나는데 싸가지 없이 굴더라고
하면서 이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김사장 이라면서 존칭을 써줘 나도 박사장 이라고 존칭을 써줬지 그러면서 나보고 잘했다고 저놈은 좀모자란 놈이라 잘해주면 까부다고 그러네
익산사람이 먼저 징벌을 받고 공교롭게도3하 5실로 갔는데 당시 징벌실은 3하 5실 말고도 2인 독거인 3하8.19.20.21.22실 그리고 4하에도 조사징벌실이 2인독거로 있고


255P-1하2하에도 있었다 그런데 2하에는 조사실로 중방이 아니고 대방이 있대
익산 출신이 3하5실로 가자마자 얼마안돼 저녁에 자다가 순천뱃놈과 싸우고 순천뱃놈이 1하인지 -2하 쪽 징벌실로 옮겼는데 나중에 내가 징벌이 떨어지고 3하5실로 가보니 내가 3하5실로 가면 나에게 얻어터질 까봐 나이많은 박사장 에게 고의적 으로 시비를 건 것같은데 순천뱃놈이 자다가 시끄럽 다고 자신을 발로 살짝 차더래 그래서 교도관 에게 비상벨을 누르고 신고해서 추가사건 조사가 들어가 곧 징벌이 끝나도 본거실로 못가고 다시 조사실로 가야 한다고 하네 박사장 이라는 사람은 무슨 사업을 하다가 경제범으로 들어 왔다고 하는데
사회나 교도소나 나이 많은사람이 나이 어린놈과 싸우면 손해야 어린놈 하고 서로 욕하고 싸우면 당연히 나이많은 사람이 손해고 그렇다고 화 난다고 폭행하면 또 폭행죄로 처벌 받고 만약에 흉기라도 들고 때리면 재수 없으면 살인미수로 처벌 받으니 엄청난 손해 이기 때문이지 나는 3하5실에서 징벌이 종료되어
본거실에 배실 되었으나 여러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은 특히 나같이 정부나 마찬가지로 막강한 힘을지닌
삼성오너들이 집요하게 모함하려 드는데 죄수들 여러명이 생활하는 곳에서 내 거짓정보를 교도관 들이나 기타 다른 것들이 전달하여 주둥이로 신경을 건들면 순간 화난다고
폭행하면 엄청난 손해이니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걸 참고 있으면 정신적 으로 힘들고 아예 안들어 가고 조사 징벌실 에서 있다가 이송 보내면 또다른 교도소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3하6실 중방 조사실로 보냈는데 그곳에 가보니 정원이 4명인데 당시 나까지 6명이네 거실이 좁아 앉을 자리도 부족한것 같은데
키가 1m60cm도 안되 보이는 조그만 놈인데 말투는 충남 이나 전북 같은데 거기 말이 비슷하니까
나이는 20대 중후반 쯤됐나 팔뚝에 일본글로 뭐라고 문신을 새긴 놈인데
뭐라고 지혼자 바로 옆에서 궁시렁 되서 그렇 잖아도 거실이 좁아 교도관 에게 다른대로 보내 달라고 하자
거부 당하여 화가나 있는데 내가 야 개쌕끼 야 너뭐라고 궁시렁 됐어 하며 달려들면 때릴것 까진없고 힘으로 제압해서 이 거실을 나가야 겠다고 생각 했는데
이놈이 아저씨 보고 그런게 아니라며 왜그러세요 그러내
너 개쌕끼 주둥이 잘못 놀리다간 빰때기 맞는다고 내가 큰 소리로 지랄하자 그 소리를 거실앞을 지나가다가 교도관이 듣고 그놈을 따로불러 뭐라고 조용히 씨부리는데
잘은 안들리 는데 짐작하건데 삼성회장이 나하고 싸우면 전라도 애들 안무서워 한다고 천억줘야 하니 참으라고 말도 안되는 소릴 씨부린게 아닌가 짐작이 가는데
내 짐작을 뒷바침 하듯 내가 전라도놈 두들겨 팰까봐 날 얼른 2하 쪽 조사실로 전실 보내는데
교도관들이 날집어 넣고 내가 말 잘듣고 조용하면 얼어서 그런다고 또 날깍아 내려 헛소문 퍼트릴 려다가 거실도 안바꿔 준다고 딱잘라 말하더니 내가 전라도놈 두들겨 패게 생겼으니 바로 바꿔주는 전형적인 치사한 잔대가리 굴리는 것같은데 전라도에 얼어서 천억 날렸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 소문이 교도소는 물론 한국 전역에 퍼트렸는데
내가 전라도 애들 패면 그소문이 조작된 거짓이란 것이 증명이 되기에
최대한 그러한 황당한 거짓소문을 진실로 포장하기 위해 일부 목포교도소 교도관 까지 삼성가 오너들이
과천 법무부 고위직 공무원까지 매수하여 명령 체계에 의해서 움직이는게 아닌가 합리적인 추리를 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전라도 애들 팬다고 해서 삼성가 오너들이 절대 천억을 안준다

조작된 명분과 거짓소문을 삼성가 오너들 의도 되로 짜맞추기 위한 교활한 수법이다

2하는 대방인데 호실은 지금 기억안나고 정원이 8-9명 인데 가보니 당시는 사람이 얼마없어 널널히 사용했다
이렇게 이쪽은 비교적 널널한데 왜 3하6실 정원이 4명인 중거실에 나까지 6명을 집어 넣으려 했는지
그숨은 의도가 금금하네 그곳에는 전북 정읍 출신이라는 50대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라남도 광주 편이점 에서 여직원이 기특 하다고 어께를 친다는게 실수로 엉덩이를 툭쳤는데
그게 성추행으로 구속되어 징역받고 출소해도 전자발찌를 차야 한다고
억울 하다고 하소연 하는 소릴 들었다 요즘 전직 국회의장 출신 박희태가 손끝으로
딸같아서 이쁘다고 가슴한번 손끝으로 툭친게 문제가 된게 뉴스에 나온적이 있다
박희태에겐 전자발찌 절대 안채울것 같은데


3하6실에서 팔에 일본글로 뭐라고 문신 있는 키가 작은놈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 하자 교도관이 갑자기 이곳으로 보냈다고 하자
그놈은 자신이 공장 출력 나가 생활하는데 하도 싸가지가 없이 반말하고 욕을하여 싸우고 데리고 조사징벌실 끌고 왔다고

군산놈 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읍 출신이란 사람도 역시 박씨 인데 특이하게 다른 사람이 식사시간후 설것이를 돌아 가면서 하는걸 못하게 하고


정읍 출신이 혼자 다 하겠데 그래서 혼자하면 안된다며 설것이 돌아가면서 하자고 다른사람이 그런며 화장실가서 씻는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고 정읍출신이 하겠다고 박박 우겨 결국은 끝까지 설것이 다하네 만기 출소가 2달밖에 안남았다고 봉사한다고 하네 교도소 에선 2달도 무지하게 긴데 2하 조사실 에서 징벌이 떨어지자 다시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오후에 3하22실 인가로 징벌실로 가보니 독거 였는지 독거는 조사실도 됐다가 징벌실도 됐다가 그래
그곳에 가보니 3하6실 조사실에 약 두어시간 정도 있을때 있던놈 인데 저놈과는 크게 트러블이 없었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교도관 에게 다른대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교도관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당시 목포교도소는 조사 징벌자들에게 교도소 에서 주는 이불을 오후5시 전후 점검 끝나고 식사하기전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이불을 넣어주고 깔고자게는 못하게 하고
그전에 서울 성동구치소 조사 징벌실에 서는 이불 넣어주는 시간은 비슷한데 이불 들어오고 식사하고 바로 깔고자2도 교도관이 아무말 안했는데 목포교도소는 저녁 8시 가까이 이불깔고 누워 자지 못하게 교도관이 돌아 다니며 감시했고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은 저녁 9시 다 되서야 이불을 넣어 주는 곳이 었지
이렇게 똑같은 구금시설 이지만 교도관 들이 규제하는것은 천차만별 이었다 -
그런데 이놈이 오후 점검이 끝나고 문을열고 이불을 넣어 주는대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가 입실거부 하겠다고 하네
그래서 교도관이 그래도 강제로 들어 가라고 하자
그래도 못들어 가겠다고 하는데 그러자 안되겠다 싶은지 교도관이 이놈을 끌고 팀실로 끌고 가는지
어디론가 데리고 가자 나는 혼자 독거를 쓰게 된것 같아 잘됐다 싶었는데 얼마후 이놈을 교도관 들이 질질끌고 다시 집어넣는데 정말 황당하더라고 내가 당시 대구 교도소 있을때는 조사징벌실에도 입실거부하면 추가 징벌을 띄우고 허가 해준것같은데 당시 대구교도소 조사 징벌실에서 문을 한번만 때려도 데려가 거실을 옮겨 쇠사슬로 묶고 때에 따라선 교도관이 패고 다시 추가 징벌을 띄웠다 대구교도소는 조사징벌실에서 문을 치지않고 소리만 질러도 그2랬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있을 당시는 그랬어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 에서 이놈처럼 입실거부 한다고 나갔으면 당연히 거실을 바꿔주고 입실거부로 주가 징벌을 띄웠다 때론 교도관이 묶고 폭행을 할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러나 대구교도소 1-2조사 징벌실은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독거거실이 30개가 넘어서그런지 수시로 배실이 있었고 담당직원 에게 잘만 얘기하면 거실을 바꿔 주기도 했다 그러나 교도관이 고생 시키려고 냄세나는 정신지체아 하고 집어 넣을 땐 거실이 없다는 핑계로 한동안 안바꿔줘 고생을 시킨적도 있다 엿장수 마음이라고 그때그때 교도관들 권한에 의해 처리하는게 달랐다 정신병자나 정신지체아들은

정신과 치료 교도소로 보내던가 따로 격리 시켜야 하는데 일부로 엿먹으라고 같이 집어넣어 사건을 만들려고 조장하는 건지
정말 더럽고 치사한 곳이 교도소 교도관들 짓거리다
당시 문을 차고 나갈까도 당시 대구교도소 있을때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바꿔주어 문을차고 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거실문을 치면 쇠사슬로 묶이고 때론 교도관에게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려가 린치를 당할수도 있고 해서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 이렇게 교도관 행정은 그때 그때 여러가지 교도관 개인 감정이나 또는 높은 사람 지시에 의한 이유등
정치적인이유 드문일이 겠지만 금전적인 이권등에 따라서 사회에선 상상도 못하는 더한 차별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안들어 온다는 놈을 또 들여 보낸다고 이건 둘이 싸우란 얘기인가 이놈 말로는 고향이 서울 이라는데
이놈을 내가 때리면 만만한 서울놈들하고만 싸운다고 또 헛소문 퍼트리고 지랄 하겠지 그리고 폭행으로 검찰에 기소하여 날 이송을 못가게 막을수도 있겠지
-삼성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 친모가 이곳 목포출신이고 자신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일대 판사 시절 전라도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이름도 라희 라고 짓고 자신의 남동생이 광주고검장을 지냈으니
타지역보다 날 누명씌워 엮기에 이곳이 더 적당할 지도 모른 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더구나 전라도라는 곳은 지역 이기주의가 강하여 한통속으로 조작하기로 유명한 곳이아닌가
내가 계속 징벌을 받고 이송보내 달라고 하면 어쩔수 없이 내가 목포교도소로 이송온지
6개월이 지나 분류심사하고 다시 계호상 독거자로 분류하여 교정청에 이송신청하면 나는 청송제2교도소로 가서 계호상 독거자로 6개월간 있다가 다시 내가 이송신청을 하면 이번엔 나의 연고지와 가까운3-4급 교도소인 안양교도소나

비교적 수도권 하고 가까운 원주. 춘천쪽으로 갈수도 있으니 그곳은 출소해도 서울하고 가깝고 나는 여러 가지 계산을 깔고 이송을 가야 겠다고 판단 했는데 목포교도소 교도관이 진주교도소 정신병동 에서 이송온 놈을 나와 강제로 집어 넣고 내가 이놈을 폭행하여 검찰에 송치시키면 분류심사과 에서 이송을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사건이 생기면 교정청에 이송신청 했더 라도 중지가 되고 삭제 되니까 한번 이송신청 했던걸 무마된걸 다시 분류 심사과 에서 분류 심사과장 .교도소 소장 결재 할때 또 올린다고 욕먹을껄 각오하고 무리하게 교정청에 이송 신청을 하지 않을 껄로 보면 나는 2014년 2월7일 출소 할때까지 이송을 못가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놈이 다시 징벌거실에 들어오자 이놈과 말다툼 하다가 이놈과 멱살잡이 싸움을 하자 나에게 힘으로 밀려 이놈이 벽에 밀리자 내가 때리는 시늉을 하자 손바닥으로 때리지 말라는 식으로

저어 불상해서 봐줬는데 그후 이놈이 나하고 거실을 분리시켜 주지 않으면 정신과 약도 안먹고 밥도 안먹는다고 단식투쟁한다고 하는데 교도관CRPT -생활지도교도관 이라고 하는데 검은 팔각모와 검은 군복 같은걸 입고 군인들이 신는 워카을 신고 교도소 내 거실을 돌아다니며 일명 군기를 잡듯이 하는 교도관들인데
이들에게 강제로 무룹을 꿇리고 워카로 자신을 무릅을 밟고 가혹행위를 당하며 폭행당했다며 억울하다고 질질짜며 이놈이 우는데 내가 이놈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목요일 오후에 징벌거실로
배방되어 그날 저녁에 이런일이있고 부터 이놈은 정신과 약도 안먹고
밥도 안쳐먹고 울면서 전라도 개색끼들 교도관들 에게 집단으로 폭행 당했다며 지 무릅을 밟은 CRPT교도관의 워카 신발 자국이 이놈 죄수 바지에 찍혀 있으니 국과수에 의뢰하면 나온다고 고소한다고 지랄하기도 하고
이놈에게 삼성그룹 얘기를 전혀 한적이 없는 저번 조사실에서 잠깐 대략 두어시간 같이 있다 다른사동 조사실로 거실을 옮긴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놈과는 말을 거이 한적이없는는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놈인데
갑자기 사장님이 열명하고 싸워서 이겼다고 해도
교도소는 또 틀리다며 사장님도 어쩔수 없이 교도관들 에게는 당할수 밖에 없다며 지랄하네 나느 저놈한테 뿐 아니라 교도소들어와서 그런말을 누구에게도 한적이 없는데
이놈이 어디서 무슨소리를 어떤놈 에게 주어 들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나에게 폭행 당할까봐 거실에서 튀어나간 놈이네
이놈이 정신병자라 순간순간 도니까 제정신일때 나에대한 유언비어를 듣고 폭행당 할까봐 입실거부 했구만 역시 미친놈 이구만 2009년도 초쯤에 전라도 깽갱이 들과 대낮에 서울에서 싸웠던 일을 주변에 있던 놈들이 소문을 낸건지 그때 열명은 아니고 여러명 인데 아무튼 그때는 그런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금금해 그때는 S구룹회장 막내딸의 정체를 전혀 모르던 때였다 사실 정체를 알고난 다음 부터 맥이 빠지고 기가 죽었지
마치 IS테러범이 테러하다 죽으면 천국간다는 거짓말에 속아 파렴치한 더러운 IS간부들에 속아
거짓말로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그전 까지만 해도 난 애국자요 독립운동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생각이 저능아와 같은 생각 이었다고 깨닫는 순간 이었다 내발등 찍으려 하는게 짱게가 아니고 S구룹오너들 이란 걸 알고 맥이 빠지고 황당했지
역시 살면서 인간은 이런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동안 믿었던 가치관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며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며 기가 빠지며 조금씩 성숙해 가다가 결국 그런 충격속에 기가 다 빠져 늙어 죽어가는 것인지도 몰라
아직 어린애들은 이런 슬픈현실을 아직 체험으로 잘 깨닫지 못하니까 빗자루타고 하늘을 날을수 있다고 상상하며
뭣모르고 기가살아 팽팽한 것인지도 모르지 허기야 그런 상상이 아직 뭣모르는 젊을때 짧게 느끼는
특권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냥 청춘일것 같은 그들도 나이가 들면 아프니까 청춘이란 누군가의 말처럼 조금씩 꿈에서 깨어 늙어 죽는거야
IS조직원이 이 자폭테러를 하고 죽으면 천국간다고 파렴치한 IS지도부 로부터 세뇌 되었다가
그게 아니라는걸 깨달 았을때 IS지도부에 드는 허탈함과 배심감과 분노가 엄청난 것이다
이런식 으로 기만당한 것에 대한 분노로 기가 빠져 늙어 죽어 가는게 인간의 운명 이라는걸 서서히 느끼겠지
약간 정신이 간놈인데 정신과 약을 단식 한다고 안쳐 먹으니 더하더 라고 자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이놈 증세가 점점 더 심해져 나하고 말다툼이 심해 졌는데도 교도관들이
조사 징벌실은 거실을 안바꿔 준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전실을 안시켜 주는데
마치 서로 싸워서 큰사고라도 나서 검찰에 송치되길 바라는것도 아니고 이들의 행태는 정말 이해가 안됐지
교도관 들의 가장 큰 직무는 수용자가 무사히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할수 있게 도와 주는게
가장큰 직무인데 그래서 서로 싸워 사고가 터질것 같으면 서로 격리시켜 사건을 미리 방지하는게
교도관들의 직무인데 완전히 직무유기를 하고 있네
그후 이놈하고 잘아는 처음보는 교도관이 거실을 쳐다 보며 이놈과 아는 척을 하는데
내가 보기에 둘이 왜 안싸우나 하고 쳐다보는 느낌인데
교도관이 지나가자 이놈이 나를 부르더니 내가 아저씨를 손으로 약하게 툭칠 테니가
내가 지를 때리래 그러면 교도관이 보고 폭행으로 추가 띄우고 거실을 바꿔 줄꺼라고 거래를 하자고 그래서
역시 정신분열증 환자다운 생각 이다 라고 욕을하고 난 안한다고 그랬지 그런데 이놈이 자꾸 그래야 거실을 바꿔 준다고 그래서 그래도 난 안 한다고 했는데 얼마후 다시 교도관이 오자 이놈이 갑자기 교도관을 불러 나하고 같이 못있겠으니 거실을 바꿔 달라며 또 지랄하자 교도관은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그러더니 이놈이 내가 방금 욕을 안했는데 방금 욕을 했다고 교도관 에게 역시 미친놈 다운 지랄을 하자 내가 이 색끼가 거짓말 한다고 이놈을 멱살을 잡고 벽에 밀치자 이놈 얼굴은 거실 문쪽 구석벽에 밀려 있어 독거실 문의 위에 자그만 쇠창살 사이로 밖에서 교도관이 이놈 얼굴과 몸이 잘 안보이는 상태에서 거실문 바로옆 벽구석에 이놈이 내힘에 밀려 벽에 기대어 있는 상태에서


이놈 멱살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손바닥 으로 살짝 내 이마를 쪽을 치네 그래서 내가 주먹으로 때리려 하자 이놈이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밖의 교도관이 눈치 못채게 안보이게 한쪽손 으로 손사래를 저어 나보고 때리지 말라며 짜고 치는 고스톰처럼 거실을 서로 분리하기 위해 연기 하는것 이라는 표시를 주는데 이놈은 정신병자고 교도관 들이
날 이놈과 싸움시켜 엮어서 내가 한대만 때리는걸 봐도 증인으로 검찰에 송치 시킬려고 작당한것 같은데 저런 정신 병자를 때려봐야 나만 엮인다고 생각이 들고 저놈도 서울놈 이라고 하는데
객지와서 교도관에게 폭행당하고 울고불고 날리친 불상한 놈인데 때릴려다 말았지


손자병법에도 적을 유인해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으로 적을 섬멸하는 작전이

상책중에 상책이라고 한다

물론 수도권 출신인 내가 경상도와 전라도 쪽의 교도소로 이송온것은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3급 교도소가 많은 경상도와 전라도 쪽으로 법무부 에서 강제로 이송 명령을 내려 간 것이다 아니면 나를 괴롭히려는 삼성공확국의 작품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는 나의 의지와 반대로 적들이 매복해 있는곳에 강제로 끌려온 느낌이다

내가 경상도와 전라도를 무서워 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혼자인데 그들은 한통속으로 심지어 국가 공권력악용하여 누명씌우는등 매복하여 전혀 모르는것들이

모함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 공권력을 악용하지 않고 일대일로 정정 당당하게 싸우면 어느누구도 두렵지 않고 이길수 있다

그러나 떼거리로 모함하려 매복한 상황은 이길수 없지 않은가

손자병법에도 적혀 있지 않은가 적들이 아무리 미끼로 유인해도 적이 매복한곳으로

가지말라고 그러면 진다고

손자병법에서 2천년 넘게 가르치는 진리중에 하나다

그리고 성경에도 관하고 싸우면 진다고 가급적 다투지 말라고 하는데

삼성공화국에서 나는 가만이 있는데

국가권력을 악용하여 나를 모함하려고 지랄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 아닌가

그런데도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 네가 전라도를 무서워 해서 천억을 줄려다

말았니 하면서 삼성알바들 시켜서 거짓 유언비어를 핵분열하듯

퍼트려 나를 조롱하고 스트레스를 주어 내가 만약에 깽깽이 때려잡아

징역을 크게 받으면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 너 전라도 안무서워 하니 빵에서

영원히 살아라 하고 조롱하려고 유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런 유인책에 내가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젠 생명의 위험이 느껴지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누구와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남은 생은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밝히려 노력할것이다


교도관놈도 서로 짜고 하는걸 느꼈는지 아니면 날 검찰에 송치시켜야 하는데 그럴려면 내가 저놈을 때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당시 징벌실에는 CCTV가 없었으니 증거가 없어 저놈의 일방폭행 당했다는 모함을


서로 멱살잡고 욕을하며 싸웠는데 거실을 바꿔달라고 둘이서 요청을 해도 그대로 내버려 두네
다른교도소 같았으면 벌써 추가 조사건 뛰우고 서로 분리시켜 수용하고도 남았을 일인데
목포교도소 일부 교도관놈 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하고 못있겠다고 밥도 안쳐먹고 정신과 약도 안쳐먹는 정신병자를 계속 내버려 두는지 정말 분노가 치밀 정도로 황당했다
정말내가 저놈을 때려서 크게 상처가나서 나를 폭행상해죄로 검찰에 송치시킬 명분을 만들려고 작당하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이다 그정도 했으면 관구실로 불려가 자술서를 쓰고 싸움으로 추가 조사를 받는건 당연 한데도 말이지 그 다음날 아침이 토요일 인데 이놈은 목요일 저녁부터 밥도 안 쳐먹고 물도 안먹고 정신과 약도 안먹고 교도관에게 계속 나하고 거실을 분리해 주지 않으면 단식 투쟁 한다고 씨부리네
역시 정신병자는 뭔가 틀려도 틀린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거실을 서로 분리 시키질 않는 목포교도소 교도관놈 들은 누명씌워 였으려는 흉악범이 다고 생각이 들정도 였는데
이놈은 정신 분열증 환자인데 이런놈을 일반 거실에 배실 하다니 한국 교도행정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네 내가 이놈에게 욕을하며 소리 지르자 이놈도 떠들어 교도소가 떠나갈 정도로 한참이나 떠들었는 데도 내가 이놈을 때리지 않아 검찰에 송치 못시 킨다고 그런건지 그대로 내버려 두다가 결국은 너무크게 떠드니까 다른 조사징벌실이 아닌 일반거실 수용자들이 시끄럽다고 교도관에게 계속 민원을 제기하자
결국 둘다 나오라고 그래서 나를 2하 쪽 징벌 방으로 보내고 수용생활방해 소란으로 추가 조사를 받고 징벌 10일이 추가 되었다 목포교도소 조사징벌실은 일반거실과 붙어 있어 일반거실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묵과하기 어려우니까 마지못해 둘다 끄집어 내서 교도관 들이 목적했던 폭행상해로 검찰에 송치를 못시키고
단순 수용생활 방해로 끄집어 내는 것이다
근대 조사실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조사관이 일부로 보라고 그런건지 실수로 그런건지
원래 다른수용자 신상정보는 다른수용자에게 보여주는게 안되는데
그전에 내가 다른수용자 정보를 교도관에게 물어봐도 다른수용자 정보를 알려주면 안된다고 딱잘라 말하던 교도관 들이 그놈 사진이 붙은 수용자 정보를 기록한 종이 카드가 책상위에 있어 보니 그놈은
서울이 아니고 등록기준일 주소 모두다 경기도 군포로 되어 있었다
물론 이건 동사무소 에서 받는 주민등록 등본과 달리
구속되어 본인이 직접작성 하는거라 작성 카드에 사실과 다르게 작성해도 교도관 들이 일일히 확인 하지않을 것같다 구속되어 처음에 수용자 기록 사항을 적을때 자칭 고려대 나왔다는 정신병자도 지 마음대로 고려대 사학과 나왔다고 적었으면 특별한 사항이 아닌이상 교도관들이 일일히 그걸다 확인하지 않을껏 같다
2하쪽 징벌거실에 가니 고려대 사학과 나왔다고 계속 운동 선수고 연예인이고 고려대 출신 이라고 계속 중얼 거리며 떠들어 주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밥도 일부러 개밥 먹듯이 지저분 하게 먹고 밥그릇도 일부러
더럽게 딱는 정신병자와 또집어 넣내 이놈은 옷을 하도 안빨고 수건도 안발고 목욕할 때도
옆에사람 괴롭힐 려고 비누로 딱지도 않고 물만 대충 뿌리고 나오는 이놈 옷과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놈과 집어 넣고 또 싸움을 시킬려고 이놈이 전라도 놈이 아니라 같이 집어 넣고 싸움을 시키려고 하는건지 전라도 놈을 내가 때리면 삼성회장이 천억 준다고 구라쳐서
이건 이것들이 말장난 하는거지 하지만 이미 성동구치소 있을때 전남 출신놈을 팬적이 있지
다 말 같지 않은걸로 말장난 하는 거지
그런대 자칭고려대 사학과 출신이라고 우기는 놈은 말투로 봐서 이놈도 집이 부천이라니까 그쪽출신 같은데
부산에서 절도하다가 구속됐다고 다른 누군가 말하는 소릴 들은기억이 나는데 또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광주래
내가 3하6실에서 2하로 갈때 이놈이 당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하 8실인가9실이 조사징벌 독거실 인데 그곳에서 조사 수용중 인데 갑자기 내가 2하로 간후 자칭고려대 이놈을 3하6실로 보내더래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안들어 간데는데 강제로 집어 넣어 들어가서 발로 문을 수십번 차니까
관구실로 대려가 많이 맞았대 교도관 에게 그리고는 다시 3하6실로 강제로 집어 넣드래 그래서 또 발로 문을 차고 그렇게 두번인가 세번 그걸 반복하니까 그때 2하 지금있는 독거로 보냈다고 하내

259P-다른 교도소 같은면 발로 한번만 차도 추가징벌 띄우고 독거로 분리수용 시키는대 이놈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조사징벌실은 중거실이나 대거실로 운영하는 교도소는 목포교도소가 처음인데 이곳에서 교도관이 만약에 수용자 하나를 여럿이서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폭행상해죄로 누명씌워 추가 징역 띄우는 일도 할려고 마음먹으면 일도 아니 겠는데 자칭 고려대 사학과 나왔다고 하는놈은 고려대 역사학과 나왔냐고 하니까 역사학과가 아니고 사학과래
정신적으로 문제있고 더러운 냄새가 많이나 아무도 같이 있을려고 안해 전라도 사트리 쓰는놈이
바꿔 달래니까 금방 바꿔 주는걸 내가 본적이 있는데 그러나 나는 몇칠이 지나도 안바꿔 주네 결국은 나중에 바꿔줘 1하 독거 징벌실로 가보니 이놈은 고아 인데 30대 초반놈인데 전남 영광 놈이라고 하는데 글도 읽을 줄도 모르고 쓸줄도 모르네 원래 몸무게는 70KG도 안나 갔는데 징역에서 물살이 덕지 덕지 붙어 걸음도 제대로 못걸을 정도로 이상하게 살이쪄 100KG 가까이 나간다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지 몸도 못 가 누는데
나보고 이놈이 눈가에 멍들은 상처가 보이냐고 하자 약간 있는것 같은데 이젠 잘 안보인 다고 했더니
원래는 신입거실 에서 싸움을 해서 징역들어 와서 물살이 너무많이 찌고 원래 싸움을못해
맞아서 멍이들어 외부 병원에 진료까지 받아서 진단을 받았는데 가해자를 검찰에 송치를 안시키 더래 그래서 왜그러냐고 했더니 이놈이 조사과에 진술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그랬다나
그러나 좀모자라는 이놈 생각에 어짜피 외부 병원에 가서 진단서도 끊어 놨는데 검찰 송치는 당연히 될줄알고
징벌 이라도 좀 줄여 주라는 뜻으로 말했다 는게 잘못 전달 된것 같다고
억울 하다고 하는대 이놈 말을 들어보니 글을 읽을줄도 모르고 쓸줄도 모르니까
조사과 교도관이 쓴것을 읽어주고 무인을 찍었 다는대
만약에 전혀 엉뚱하게 적혀 있는게 있었어도 이놈이 글을 못 읽으니 확인할 수가 없었겠지
근대 이놈 말을 들어보니 나하고 싸운 경기군포출신 정신분열증 환자와 싸워서 지금 징벌 받았데
그런데 이놈은 글을 쓸줄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른다니
아직도 이런놈이 존재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지
혹시 교도관들이 계획하에 정신분열증 환자를 나와 집어넣어 폭행상해죄로 추가징역 띄우려고
전남 영광 글도못읽는 놈에 상해를 입혔는데 검찰에 송치안 시킨건 아닌가 은근히 의심이 들기도 했다
전주에서 보도방을 하다가 미성년자를 써서 구속 됐다고
하는데 내가 볼때는 고아출신이라 이용 당하며 밥이나 얻어 먹다가
총알 받이로 교도소에 들어온것 같은대 그런데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S구룹회장이 나에게 천억줄지 모른다니까
그래서 그런건지 아니면 교도관이 전라도놈 때리면 나에게 천억준다는 지나가는 개가웃을 거짓 유언비어를
들은건지 모르지만 나한테 살살기며 지 큰 아버지 모시듯 하네 먹을것도 같다 바치고
이놈은 물살 때문인지 어디가 원래 아픈지 제대로 걸음도 못걸고 기우뚱 거리며
몸도 느리게 움직 였는데 징벌이 나보다 빠르게 끝나 나가면서
아라비아 슷자도 초등학교 1학년 짜리보다도 더 삐틀리게 겨우 벽에다가 적어
전화번호라고 출소하면 전화 하래나 징벌을 마치고 또 조사수용 하여 2하 대방 조사실로 가자
정체가 수상한 놈이 하나 있는데 이놈은 뭔가 먹어선 안될것을 교도관이 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삼켰다고 한다 물론 그놈 일방적인 말이라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이놈과 저녁에 자다가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고 거이 싸움 직전 까지 말다툼을 했었는데 이놈은 바로 그 다음날 뭔가를 삼켰다는 이유로 교도관에 의해 1하 독거 조사실로 옮겼는데
뭔가를 삼켰다는 말도 순전히 이놈 말이기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믿을수도 없는 것이다
그후 징벌이 떨어져 3하20실로 또 짐을들고 가보니 마치 짜놓은 시나리오 같이 이놈이 먼저와 있내
그리고 목포교도소 3하 다른 일반 거실 깡패들이 이놈 먹으라고 구매한 음식물 먹을것을
사동 도우미가 전달하여 잔뜩 넣어 주면서 이놈에게 큰소리로 형님 많이 드시라는 소리도 다른거실에서 들렸다
원래 징벌거실은 먹을것을 못넣게 하는데 당시 목포교도소 조사징벌실은 일반거실과 같은사동에 붙어 있어
간간이 먹을음식을 넣어주곤 했는데 어떨땐 야간근무자가 신문과 먹을것을 달라고 하자 직접넣어 준적도 있고
주간근무자는 알면서도 모른척 하면 사동 도우미가 넣어준적도 있는데
같은 사동 일반 거실에 있던 강패들이 사동 도우미를 시켜 먹을걸 잔뜩넣어 거실에 있는걸 거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순간 내가 들어가자 마자 이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냐며 먼저 왔으니까 당장 입실거부 하여 나가라고 하는데 먼저나와 같이 있다가 입실거부한 정신 이상자 놈은 교도관에게 팀실로 끌려가 직싸게 터지고 다시강제로 끌려들어 왔다고 말하며 그래서 내가 입실거부 할려면 니가 하라고 하자 서로 욕을 하며 말싸움을 하자
서로 거실에 배치된 비상벨을 누르고 교도관을 불러 조사실 에서 부터

260P-싸운 사이로 같이 있으면 싸움하니 서로 분리 시켜 달라고 계속요청 하는데도 엿장수 마음이라고
교도관이 거부하자 그후 이놈이 나게 욕을 하며 달려들자 나도 욕을 하고 오른손 으로 이놈을 밀고 외손으로 멱살을 잡자 이놈이 같이 멱살을 잡다가 힘에서 나에게 밀리는데 그때 서로 욕하는 소리와 우당탕 하는 소리를 듣고 교도관이 와서 상황을 보고 나를 데리고 팀실로 데려가서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서로욕을 하며 멱살 잡이 싸움을 했으니 같이 있으면 더큰 싸움이 나서 더큰 문제가 생기니 서로 분리 시켜 달라고 팀실에 얘기하자 확답은 안주고 일단 사동으로 가라고 하여
나는 설마 멱살잡이 싸움까지 했으니 싸움으로 추가 조사와 징벌을 받고 이놈과는 거실을 서로 분리 시킬줄 알았는데 3하 사동으로 들어가 자꾸 내가 싸운 거실쪽으로 가자 이상하여 교도관에게 어디로 가냐고 하자
있던 방에 다시 들어 가라고 그래서 교도관이 수용자가 서로 싸워 큰 사건이 될것 같으면 미리 사전에 분리시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게 교도관의 직무인데

싸운사람과 다시집어 넣어 사건을 더크게 하려는가 하고 따지며 이건 직무유기 이다
라고 말하고 완강이 거실에 들어가길 거부하자 다시 팀실에 데리고 와서 나보고 대가리 박아 그래서 안박고 그대로 있자 CRPT교도관 놈들을 관구 주임이 때거리로 몰려와 있는 상황에서 뒤에서 당수로 내목을 내려치고 다른 CRPT 교도관 놈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나를 강제로 무릎 꿇릴려고 하자 내가 완강히 거부하여
무릅을 안 꿇자 손바닥으로 내머리를 여기저기서 내려 치고 욕을 하는데 내가 뭐 이런데가 다 있냐 라고 항의하자 교도관 한놈이 목포는 원래 이런곳 이라고 씨부리네
그후 나하고 멱살잡이 싸움을 한 놈을 팀실로 데려오자 그놈이 난데 없이 나에게 맞았다고 구라치자
책임자 급인 팀실 주임이 나를 폭행죄로 검찰에 송치 시키라고 큰 소리로 씨브리네
결국 이놈들이 나를 폭행죄로 엮어 검찰에 송치시켜 다른 교도소로 이송 못가게 만들려고 생쇼를 한게 아닐까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 이나 날 정신 이상한 놈하고 강제로 집어 넣고 엮을려고 한 흔적이 보이네
만약에 사건화 돼서 항소 하더 라도 광주교도소로 이송을 가서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되겠지
전직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자칭건달 이라고 하는놈이 내가 떼리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일방적 으로 맞았다고
거짓말을 하는놈 이런일은 흔치 않은데 뭔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 할수 있다
당시 단둘이 아니라 이놈에게 거짓 증언을 해줄수 있는 놈이 한명더 있었다면 나는 폭행 상해죄로 검찰에 송치 될뻔한 상황이 아닌가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제주도에서 항소하면 광주로 가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상고하면 목포교도소로 이송가서 상고심은 대법원에 서류재판 이니까 상고심을 받는다고 했다 역시 그전에 전북 지역도 전주교도소 군산교도소 등 미결이 항소하면 광주와서 항소심하고 상고 하면
목포교도소 가서 상고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제주도나 전북 지역은 항소를 해도 전남쪽 교도소로 이송 오지 않고 그 지역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당시 상고하여 광주교도소에서 목포교도소로 이송온 수용자가 많은데 그들 중에 여러 사람의 말에 의하면 확인 되지않은 사실 이지만 광주교도소 CRPT교도관이 CCTV 까지 꺼놓고 수용자를 폭행 한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들은적이 있다
그래서 이송 못가게 묶어놓고 여기서 뭔가 음모를 꾸밀려고 그런게 아닐까 s구룹회장 본처의 친모의 고향이 목포 라는 말이있고 본처는 시집갈때 시아버지 고향으로 경남의령으로 본적을 옮겼는데 태어난곳은 서울출신인 자신의 2아버지가 일제시대때 전라도에서 판사시절
태어 났다고 한다 그리고 자유당때 법무부 장관을 엮임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친동생이 광주 고검장을 엮임 했던 적이 있고 하니
내가 만약에 폭행죄로 송치되어 항소하여 이송간다 해도 광주교도소로 가게된다
이들이 이걸 노리고 나에게 추가를 띄우려고 했던건 혹시 아닐까?
그후 나를 일반죄수 들과 완전 격리사동인 7사동에 가둬두고 사동 전체를 나혼자 약 3일 정도 있었는데 왠일인지 다행이 나를 묶진 않았다 관구주임 말로는 팀장인 계장이 묶지 말라고 했다는데
팀장은 말씨가 서울 경기도등 수도권 출신 같았다


팀실 주임이 전남출신 인데 당시 계장이 수도권 출신이라 특별히 생각해서 봐줬다 라고 하는데 그말을 곧이 곧대로 믿긴 힘들었다

왜냐하면 관구실 주임 말대로 서울 교정청에서 계장이 특별이 목포 교도소로 왔다면 이례적인 일로
뭔가 목적을 가지고 온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계장 이상 급은 2년 마다 교도소를 옮겨야 하는데 전라도는 주로 전라도 교정청 안에서만 옮기는게

?

통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관구실 계장이 나를 누명 씌워 엮으려고 삼성가 오너들이 보낸 명령을

삼성공화국 비밀조직의 지휘체계의 명령을 받고 온게 아닌가 그러다 못엮으니까 선심 쓰는척 하는건 아닌가
목포교도소도 교도관들 다수는 전라남도 출신이 많다 특히 주임 이하 급은 특별한 사정이나 자신이 사정상 직접 다른 교도소로 옮기는 것을 신청하지 않으면 거이 정년 퇴직할 때 까지 계속 있는 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드물게 간간이 타지역 출신도 있었다 특히 계장 이상급 들은 2년 마다 교도소를 이동해야 하며 주로 같은 지역 예를 들면 전라도 지역은 전라도 교정청 안에서 근무지를 돌아가며

하고 경상도 지역은 경상도 각각의 교정청에서 돌고 있었다 충청도와 강원도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은 어덯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교도소 특히 일반 수용자들이 주로 3급을 받아 가는 3급 교도소가 7개로 가장 많은곳이 경상 남북도 도 지역이고 그 다음 4곳으로 많은 곳이 전라도 지역이다 그러니

3급 교도소가 안양교도소 하나뿐인 수용자가 가장 많은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 3급 죄수들은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 교도소로 떠돌이 집시들 처럼 이송을 가는 경우가 다수다


법무부 소속 교도관들은 본인이 신청 하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다른 지역 교정청에서 계장급이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경우는 드물고 계장급 인사 이동도 통상적으로 전라도 지역 교도소는 전라도 교정청 에서만 인사 이동이 주로 많았고 경상도 교정청은 그 지역안 에서만 계장급 인사 이동이 주로 많았다 그위에 과장이나 소장급은 들은 잘모르지만 과장 소장급은 전국 단위로 마구잡이로 법무부나 교정청에서 인사이동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과장이나 소장은 수용자와 거이 마주쳐 대화할 일이 거이없다

면담신청을 해도 거이 만나주지 않는다 그 밑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원래는 면담신청서를 제출하면 만나주는게 원칙인데

한국에서 원칙대로 되는게 드물것이다 특히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교도소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면담신청서를 내면 담당직원이 짜증을 내며 짜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시를 간혹 돌아도 형식적으로 금방 지나간다 그러니 과장이나 소장은

수용자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잘모른다

수용자들이 주로 관리하는 교도관들은 부장이하 교도관과 부장급 이며 그위에 주임 간혹 관구 계장 면담을 신청하면 할수도 있다


지금은 관구실 계장중에 가장 높은 사람을 팀장이라고 부른다

교도소가 경상도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전라도 에 많아서 특히나는 엿먹이려 그쪽으로만 이송을 보내 생활하여
그런지 충청도와 강원도 지역에 있는 교도소에서는 징역을 살아 본적이 없어 뭐라고 얘기 못하겠어

그런데 청송 2교 에 있던 전라도애가 충청도 쪽에서 징벌을 많이 받고 이송왔데는데

진위여부는 확인할순 없지만 교도관에게 묶이고 린치를 당해 고생했다는 말을 들은기억이 난다
그곳 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면전진정 신청 하고 3일정도 있다
월요일 인가 2하 징벌방 독거에 2명이 있다가 국가 인권위원회 에 서면진정 등기 우편으로 또 보냈지
면전진정 신청은 신청서를 교도관에게 내면 약 2주나 어떨 때는 시간이 더늣게 오기도 하는데 광주 인권위원회에서 조사관이 상담 하러 오고 그때 진정하면 접수가 되는데
서면 진정은 우편을 서울 국가 인권위원회에 직접 진정 사항을 적어 보내면 사건 접수번호가 팩스로 교도소에 전달되어 나에게 오는데 나는 등기 우편으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 서면으로 보냈다
그런데 그전에 국가인권 위원회에 면전진정신청 하여 광주국가인권위원회 에서 오는 국가 인권위원회 조사관은
인권위원할 자격이 없는사람이라고 볼수밖에 없는 너무나 무성의 하게 하여 기피 신청을 하자 그후 교체 되기도 했는데 그 나물에 그밥 이었다 어짜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 우편으로 서면 진정 해도
조사는 광주 인권위원회 에서 가깝다고 조사관을 파견한 덴다
나는 지방의 국가 인권위원회가 광주 대구 이런곳에 새로 생겨 그 지역 교도소에서 진정했을때 조사하는데
공정성에 문제가 있어 조사는 서울국가 인권위원회에서. 직접 내려와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도소의 감사도 교정청 교도관 출신들이 감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교도소에 실시하는 감사를 교정청에서 보내는 전직 교도관 출신들을 보내면
안되고 전혀 다른 사회의 공정성이 인증된 교도관과 법무부와 전혀 관련없는 사회 인권운동을 하는 분들로 제3기구를 만들어 감사를 해야 한다 그래도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내의
교도관들 비리를 밝히는건 힘들다 특별 암행 감찰을 하지 않는 이상
예를 들어 죄수로 위장하고 직접 경험해 봐야 겨우 비리를 밝혀낼 수 도 있다고 본다
그후 교도소 조사과 에서 불러 조사 받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사과 교도관이
3하20실 에서 자칭건달 이라는 놈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폭행 당했다고 누명 씌우는 놈이
사진까지 찍어 멍이 들었다며 조사실 조사관이 보여 주며 날 일방 폭행으로 누명씌우려. 하자
이놈이 자해하고 나에게 누명 씌우려 그런 거라고 하자
그 증거로 나하고 멱살잡이 싸움을 하고 나온 사람을 다시 교도관들이 강제로 그 거실에 집어 넣으려 다가
실패하자 이제는 일방폭행 으로 누명씌우려는 거라며 따지며 일방폭행 했다는 걸 완강히 부인했다
만약에 누군가 거짓으로 증인서줄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꼼짝없이 누명을 쓸뻔 했다
조사실 조사관도 일방폭행 으로 엮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 했는지
사건은 일방 폭행이 아닌 싸움으로 사건을 검찰 송치는 안 시키고 서로 징벌만 받았는데
이건 목포교도소 교도관 놈들 마음이 바뀐게 아니고 삼성그룹 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이 날 엮으려 다가
내가 법무부장관 청원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자 그러한 사실들이 국가정보원 보다 정보가 빠르다는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귀에까지 들어가
날 엮는걸 못하게 했을수도 있다 그래서 목포교도소 교도관 마음이 바뀐것 보다
그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삼성그룹회장 귀에 들어가 회장본처와 장남이 날누명씌워 엮으려는걸 못하게 지시가 내려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입법.행정.사법권을 다쥐고 흔든다는게 삼성그룹회장이라는 말이 있는게 현실이다
삼성회장이 과천 법무부 고위직에 지시하여 지휘체계를 통해 전달됐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당시 목포교도소조사실 교도관들은 나에게 반말을 한 마디도 안하고 내가 교도관이 오타를 쳐 잘못적은 진술서를 고쳐 달라고해도 일일히 다 고쳐 주었다
조사할때 대구교도소 조사과 교도관놈들 보다는 신사적으로 수용자를 대해 줬는데 다른 수용자 에게도 물어보자 똑같이 말하더군 그후 징벌실 에서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11월 중순이 넘은 어느날 새벽인가 거실에서 잠 자다가 마침 깨어 누워 다시 잠을 청하는데 주간 근무자는 퇴근해서 없고

야간 근무자가 수시로 바껴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 늣은 시간에 도우미가 거실들어가 자고있는게 분명해 사동에 있을리도 없고 교도관은 확실한데 직원들끼리 교대 근무 하면서 얘기 하는 건지 아니면 간간이 관구계장이 순시를 도는대 그때 교도관들 끼리 얘기하는 모르지만
소리인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가 게이승 이라며 도저히 엮을수 없게 만들었다며 보내 주라고 그랬다며 씨부리는 소리를 징벌거실 문밖근처 사동에서 들리는 소리를 주어들은 적이있다
일부 교도관중 에서 쓰레기 같은 놈들이 게이도 아닌 사람을 조직적인 음모로
떠드는 소리를 주어 들었는데 그놈 들을 불러다가 누구보고 그런 거냐고 따지면 당연히 나보고 그런게 아니고 그런소리 한적도 없다고 닭발 먹고 오리발 내밀게 뻔하고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나를 미친놈 취급할께 뻔한 수순 아닌가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나보고 난동부렸다고 교도관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수갑채우고 쇠사슬로 묶어 카메라 없는곳으로 끌고가 가혹행위 당한다 거기서 교도관들이 누명씌워 엮으려 계획했다면 오히려 교도관 폭행죄와 업무방해죄 공무집행 방해죄로 누명당하여 검찰에 송치시켜 법원에서 재판받고 추가 징역받고 억울해 하는 사람도 드문일이긴 하지만 존재한다 참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국가공권력을 악용하여 아무 인과관계 없는 한개인을 짓밟으려 하는 야비하고 더러운 놈들이야


이놈들도 높은 놈들이 시켰겠지 그 배후엔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있는게 분명하다
그전에 대구교도소 청송 제2교도소 에서 교도관들 에게 얼마나 당했는가

성경책 에도
관하고 싸우면 손해라고 적혀 있다고 하는데 힘없는 개인이 도저히 이길수가 없는 국가권력을 악용하여 등에 업고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다 내가 만일 교도관 몇놈을 패고 제압하면 이들은 내가 탈옥 한다고 누명 씌워 총까지 들고와 죽이려 할께 뻔한거 아닌가
그리고는 생명의 위협을느껴 정당방위나 도주하여 할수없이 총을 쐈다고 조작할놈 들이야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교도소 소장이 주인공의 무죄를 입증할 죄수가 나타나자 소장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주인공이 밖에나가 발설할까봐 절대 안그런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무죄를 밝힐 죄수을 교도소 단장 근처로 불러 탈옥 누명을 씌우고 죽이는 것처럼

교도소 담장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교도관들이 어떻게 조작하여 꾸미는가에 달려있고 봐도

틀린말은 아니다 수도권지역 구금시설 보다는 특히 한국의 지방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이 그렇다

그곳은 한통속으로 조작 해도 수도권 지역 처럼 밖으로 새나갈 일이 드물다
이렇게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죽이고 자살이나 사고사 등으로 조작한 일은
동서고금을 통해 수없이 있었다는게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도소 에선 어지간한 돈과 권력이 있지않고는 수용자 들이 교도관 놈들을 이길수가 없다 국가권력을 악용한 무리들을 개인이 싸워 승산이 없다
그후 일방폭행으로 조사받은 사건이 싸움으로 바껴 추가 징벌을 받고 징벌이 모두 끝나고
다시 2012년 11월20 몇칠쯤 조사실 2하 대방으로 가보니 지난 신문이 있어 오랜만에 신문을 보자
서울 동부지검 에서 로스쿨 1기생 30살 먹은 검사가 43세 먹은 여성 피의자를 조사 하다가 조사실에서 성관계를 하고 난후 그후 계속 성관계를 요구하여 모텔에서 성폭행 당했다며 피해자가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검찰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 졌다는 기사를 보고 현직 검사를 어떻게 했기에 구속할수 있었나 했더니
피해자가 성폭행 당할 당시 녹음기를 몰래 설치하여 증거를 확보할수 있어 구속 시킬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에 녹음을 못했다고 하면 증거가 없어 검사가 부인하며 오히려 피해 여성을 무고로 추가 기소할수 있었던 상황이다
로스쿨 출신 검사가 2개월간 실무 실습이 끝나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목포지청으로 곧 오기로 발령까지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이게 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목포지청으로 보내 날 누명 씌워 엮으려던 계획이 아닌가 순간 소름돋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저 자격없는 검사가 뜻밖의 사건으로 구속 되어 목포지청으로 오지못하니까

목포교도소 교도관 놈들이 게이승 이라며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가 그랬다며 나를 이송보내라고 허가를 했다며 목포교도관들이 새벽에 내가 자는 상황에서 거실 문밖에서 떠들며 사동을 지나가는걸

내가 우연히 들은 것이다 나의 추측 이지만 아니 피의자 여성을 검사가 성폭행 했다는
엽기적인 사건을 신문으로 보고 또 서울 동부지검에서 실습 2달이 지나면 이미 전남 목포지청으로 발령받아
실습이 얼마 안남아 있을 무렵 이런 사건이 터져 검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 졌다고 한다
원래는 로스쿨생 에게 검사 임용을 주는게 아닌데 로스쿨은 변호사를 늘릴 목적인데

한국은 미국의 로스쿨제도를 들여와 헌국형 로스쿨로 변형시켜

사법고시를 페스한 사시생들이 사법연수원에서 적어도 2년간 연수생활로 무자격 자들을 걸러내어

판.검사 임용을 하는 제도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로스쿨 졸업한 사람을 바로 검사로 임용할수 있는지 고려판 음서제도의 부활인지 한국의 잘못된 로스쿨 제도로 자격없는 판.검사 남용을 막기 위해서도 로스쿨제도는 빨리 폐지 해야 한다

갑자기 법무부에서 로스쿨 1기생 에게 급하게 검사 임용을 시키고 목포지청으로 보내려 했으니 당시 목포교도소에 있던 내가
신문을 보고 법무부에서 저런 자격없는 검사를 목포지청으로 보내려 했던 계획이 이게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생각하며 당행이 하늘이 도왔는지 그놈이 검사를 하기전에

성폭행사실이 밝혀져 처벌을 받게되어 자격없는 검사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이 공권력 악용에 의한 2차피해를 막게 되었는 데 문제는 로스쿨 출신 검사중에 저사람 혼자만 그런가 아니면 또다른 누군가

양심없는 무자격 검사가 있는가 생각할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무자격 검사에의해 많은사람이 누명쓰고 엄청난 피해를 당할수도 있다는 생각을하면
불안한 기분이 충분이 들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천억주고 합의 봤다고 어거지로 명분을 세워 일단 출소 시키라고 지시 했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데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내가 출소하면 자신들이 벌인 음모극이 들통날 까봐
삼성회장이 방해하여 누명씌워 엮으려는걸 못 엮으니까 일단 출소 시켜서 바로 머리카락 등
내 DNA 등을 교도소내 여기저기 떨어트린걸 수집하여 여럿이서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출소 하자마자 엉뚱한곳에 떨어트리고 누명씌워 절도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여럿이서 조작하여
자격없는 검사를 시켜 누명씌워 엮어서 사회와 격리시켜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배다른 막내여동생을 암살한 정황을 감추려 할려고
모함하여 작당 하려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이 최적의 조건이라고 보고 다른 곳으로 이송을 안보낼 려고 했을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설마 내가 이렇게 까지 당시 사건을 추적하여 전세계 양심에 밝히려 할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지가 출소하여 떠둘어 봐야 얼마나 떠들겠냐 나를 무시 했겠지 적어도 한국의 유명하수 신해철 정도가 떠들어야 파장이 크지

나같은게 떠들어야 미친놈 취급받는다고 무시 했을수도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누명못씌우게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막아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이 나를 누명씌워 못엮은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아니였으면 나를 죽이거나 누명씌워 사회에 안내보내려 했을게

분명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한국에서 두려워 하는 유일한 사람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밖에 없다


한국의 삼성공화국 피라미드 탑의 제일꼭대기에 그들위에 있는건 이건희 회장 한사람 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재용은 당시 까지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권과 지분을 완전히 물려준게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명을 어기고 나를 목포교도소에서 죽이거나 누명씌우면

이윤형을 암살한게 이재용이란 증거가 명백해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분노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안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희 회장의 눈치를 볼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이 나의 동태를 살피는 상황에서는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더우기 홍라희 이재용은 내가 진실을 세계양심에 떠드는 소릴를 자신의 거대한 조직으로 충분히 덥을수 있다고 판단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현명해 지기 위해선 진실하라는 전해지는 말처럼 진실의 힘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원래 로스쿨은 변호사를 양성하는 목적인데 검사를 시키다니 물론 법무부 에서 결정한 일이 겠지만 판검사 들은 아무나 시키면 안되는데 어린아이 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주면 사고로 무고한 사람이 죽을수도 있듯이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2년간 사법연수원 생활중 품행과 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판검사 임용을 허락 한다는데 그래도 비리가 많다고 하는데 그런 절차도 없이 로스쿨 출신에게 검사 임용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 에게 실탄이 장전된 총을 주는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물론 무슨 시험을 보겠지만 자격없는 자에게 무소불위의 검사권력을 주는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히 들기도 하는데 그후 나는 조사 징벌방을 전전하며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장관 청원등을 등기 우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교도소에 정보공개 청구서도 여러장 냈는데
정보공개 청구서 하나는 분명이 제출했는데 교도관은 안받았다고 거짓말 하여 인권위원회에 면전진정 했지만 증거불충분 으로 기각처리 되었다 어느덧 12월9일 저녁에 징벌거실에서 잠을 자는데 양쪽방에서 벽을 주먹으로 때리고 오히려 내가 벽을 찻다고 누명 씌우는데 거실 에는 나혼자 뿐인데
이런 안하는 짓을 한것은 분명이 내일 이송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마 교도관이 양쪽에 있는 죄수들에게 내일 이송이 있으니 내거실 벽을 치고 내가 욕을하고 난동을 부리면 무슨 누명을 씌우려 한것은 아닐까
교도관이 계속 내 거실에 와서 왜 남에 방 거실벽을 주먹과 발로 차냐고 하며 뒤집어 씌우는데 내가 찬게 아니고 저놈들이 찬거라고 계속 설명을 해도 나에게 계속 뒤집어 씌우네 근데 자꾸 옆방에서 내가 주먹과 발로 벽을 찬다고 신고가 들어온다고 뒤집어 씌우는데 정말 환장하겠 더라고
내가 왜 거짓말 하냐고 야단을 치고 그래도 계속 뒤집어 씌우네
내 예상되로 아침이 되자 이송 명령이 떨어 졌다고 짐싸라고 하여 징벌거실에 수건등 별로없는 짐을 대충 정리하여 징벌 거실을 나와 이송자 짐 검사장으로 이동하여 보관된 짐검사를 하는데 특별 영치품 당시 주민등록증 통장 여권
USB등이 편지봉투 보다 좀더큰데다 보관되어 있었는데
나를 데리고 이송 가려는 교도관들이 특별영치품은 담당자가 아직 출근 하지 않아 내가 이송가면 그곳으로 우편으로 부친다고 그냥 버스 타고 가라고 하네 네가 그동안 이송을 여러번 다녀 봤지만 이런경우는 처음이라
그러면 담당자 나올때 까지 이송 못간다고 버티고 아니면 그냥 내 사인받고 특별영치품 주라고 하자 특별영치품을 이송버스에 실고 지금가면 파손된다고 그러니 내일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하는 이상한 소릴 를 하길래 아니지금 이송갈때 차에 실고가는게 더안전하지 우체국에 우편으로 부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히려 안전에 문제가 더 많은거 아니냐고 지금까지 이송다니면서 특별영치품 편지봉투 보다 조금더 큰데 들어있는 조그만것을 이송갈때 다가지고 다녔지 이런 경우는 처음 이라고 하자 좀큰 편지봉투 만한곳에 들어있는 특별 영치품을 이송버스에 들고가면 훼손 할것 같으니 우체국 배달로 부쳐준 다는게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니냐
우체국으로 부치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오히려 훼손될 위험이 더크지 지금 이송갈때 교도관이 반듯이 들고 가는게 특별 영치품 이고 그럴경우 더 신속히 안전하게 전달되는 것인데
또 지금까지 이송 다니며 교도관 들이 다른건 몰라도 수용자 특별영치품은 반듯시 챙겨 왔는데 무슨 듣도보도 못한 회괴한 소리를 하냐고 내 특별 영치품 잃어버리면 우체국 배달 실수 라면서 당신들이 책임 않질것 아니냐고
하면서 나는 특별 영치품 없이는 절대 이송버스 못 탄다고 강력히 저항을 했다
저번 징역 살때도 2006년 10월 순천교도소 에서 당시 영등포구치소로 이송갈때도 침낭에 들어있던 내 짐을 버스에 안 실어서 나중에 교도관이 택배로 부친적은 있어도 당시 날 데리고 간 교도관이 특별영치품은 반듯이 들고 탔다 이건 뭔가 음모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 시작 했는데 특별영치품에 내 여권하고 통장이 있는데
특히 가지고 있는 여권은 2010년1월에 발급 받은 걸로 10년짜리 여권으로 2020년까지 인데
이걸 잃어 버리면 저번에 여권 발급을 외교통상부에서 법전에도 여권발급 금지조항에 나는 해당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권 발급을 지연시킨 경우처럼
삼성오너들의 외교통상부에 저번처럼 입김을 불어넣어 사주로 지연시켜 발급 못하게 장난 칠수가 있어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이유 달아서 여권발급을 2009년도 처럼 중지하면 사회적인 약자인 내가 무슨수로 삼성오너들과 외교 통상부를 당해 낼수 있겠는가
내가 외국 나가서 난민 신청을 하려는것을 삼성에서 알고 내 여권을 폐기 시키려 장난치는 것일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통장에는 약 250만원 돈이 있었는데 이돈은 내가 출소 하자마자 바로 외국 나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이송을 지휘하는 계장에게 나는 특별 영치품을 받지 않고는 이송버스에 탈수없고 또 지금까지 이런적도 없다고 말하자 계장이 그럼 담당자 오면 가자고 하자

264P-무슨 이유에서 인지 담당자가 온건지 아니면 계장이 명령하니까 그냥 특별 영치품을 준건지 바로 특별 영치품을 주기로 하고 이송 버스에 탔는데
당시 이송가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 인데 계장 빼고 주임 이하급 교도관이 여러명 주임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 같았고 이송 인솔 책임자로 계장은 한명 인데 계장은 말씨가 서울 말씨 였는데 당시 계장 아니였으면 이들이 순순히 특별 영치품을 주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은 계장이 담당자 오지 않아도 특별 영치품을 가지고 가계 하라고 명령 했는데도 토를 달며 담당자 허가를 맡아야 된다고 핑계를
대는데 그건 말이 안되 거던 이송갈 사람은 전날 저녁에 교도관들이 미리다 정리하고 담당자 사인받고
아침에는 출발만 하는걸로 들었는데 무슨 지금 특별 영치품만 담당자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자가 아직 출근 안했으니 나보고 이송버스 타고 먼저 출발하면 가장 중요한 부피가 작은 특별 영치품만 나중에
택배로 부쳐 준다고 교도관들이 말하는게 지나가는 개가 웃을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만약에 특별 영치품을 우체국택배로 부치다가 분실이나 훼손 될경우 그 책임은 우체국 직원보고 따지라고 닭발 먹고 오리발 내밀게 뻔 하니까
나는 여기서 특별 영치품을 이송 버스에 교도관이 가지고 타지 않으면
나는 절대 이송 버스에 특별 영치품 담당 직원이 오기전 까지는 이송 버스에 탈수 없다고 계속
완강히 저항하자 교도관들 여럿이서 강제로 라도 이송버스에 태울 분위기 였다
그러니까 계장이 담당자 올 때 까지 기다 리 라고 하자
다른 교도관들이 뭐라고 궁시렁 거리며 담당 직원이 와서 사인해 준걸 못 봤는데도 바로 특별 영치품을 가지고 가게 하고 이송 버스에 타는걸 보면
이것들이 내 여권을 폐기 시키려는 뭔가 음모가 있었던건 아닌지 의문이 드네
그후 이송 버스를 타고 경북 제2 교도소로 이송 와서 징벌 기간이 하루 남아 있어서 하루를 마쳐 그곳 에서 5하 징벌실에 수용 되어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에 6개월 있다가 이송 신청하면
이번엔 나의 연고지와 가까운 안양 교도소 쪽으로 이송 갈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징벌 하루를 마치고 6하20실 인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배실 되어 있던중 2013년 1월 4일인가 기독교 자매가 있어 가는데
5하 에서 교도관이 다른 수용자 데리러 온다며 잠시대기 하라고 하여 5하 입구에 있는데
경북 제2 교도소는 조사 징벌실이 각 사동 앞에 몇 개가 있는데 내가 입구 쪽에 대기하고 있다보니
머리가 하얀 얼핏 보기에도 적게 봐도 60살이 다 되어 보이는 징벌실에 갇혀 있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억울 하다며 말을 거는데 말투는 수도권 말씨인데
자신이 교도관에게 엄청 두들겨 맞고 오히려 공무집행 방해인지 교도관 폭행 인지는 못 들었 지만
검사 구형 10월에 판사선고 8월을 받았다고 항소하여 곧 대구교도소로 이송가서 항소심 재판을 받을 거라고 억울 하다고 하네 기독교 자매 신청은 경북 북부 제2교도소 에서는 비교적 쉽게 신청 해주는데
참석하면 한달에 영치금 만원을 넣어준다 그런데 대구교도소 기독교 자매는 다틀리겠지만 내가 참석 했던 기독교 자매는 영치금 만원도 넣어주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공장출력을 나가서 상당기간 생활을 잘한 만기출소가 얼마 안남은 사람중에 탈옥의 위험이 없는사람에게 나는 전혀 경험해 보지못했지만 교도소 밖을 나와서 외부 공장에 일할수 있는 교도소도 있는 걸로 들었다
교도소 재소자 에게 한달에 50만원만 줘도 그돈을 모으면 사회 나가서 자립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국내 3D업종에 외국인 노동자 쓸바엔 교도소 재소자를 노동력 으로 이용하는걸 크게 전국의 교도소 전부에게 활성화 하면 기업이나 재소자에게 서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그후 누군가로 부터 들은 확인 되지않은 사실에 의하면 5하 징벌실에 있던 사람이 교도관이 뭐라고 하자 카메라 있는 사동 복도에서 밀었데 젊은 교도관이 넘어졌데 교도관 한번 밀었다고 주먹으로 때린것도 아니고
교도관들은 약아서 카메라 돌아가는 곳에서는 수용자를 때리진 않고
카메라 없는곳에서 교도관 여러명이 달려들어 쇠사슬로 묶고 폭행하며 가혹행위를 한다
그사람 말대로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에 끌려가 묶여 폭행당하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짐작할수 있지
오히려 가혹행위 당하고 추가징역 8월뜨고 약육강식 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곳이
교도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동 도우미가 바뀔때가 아직 안되 었는데 한놈이 2013년 1월에 바뀌어 보니 작년에 경북 북부 제2교도소에서 나와 싸운놈 이네 이놈이 거실 밖에서 주둥이로 나를 험담하며 장난을 쳐 거실문을 차고 이놈을 불러 이놈에게 호모쌕끼 야 라고 욕을 하자 교도관이 나를 데려가 쇠사슬로 묶고 조사실에 넣었지
이렇게 2013년 1월 이후 부터 7월 이송 갈때 까지 짧은 기간 동안 총5번 쇠사슬 묶여 고생 했는데 이곳은 카메라가 관구실에도 있어서 인지 몰라도 폭행 당한적은 없어 한번 관구실 안쪽에 넓은 이송갈때 수용자 에게 포승줄 묶는곳이 카메라 없는사각지역 이라 교도관이 내가 묶인 상태에서 끌고가려 하다

내가 완강이 버티자 안끌고 갔는데 이들이 어거지로 CRPT 교도관까지 떼거리로 끌고와서 카메라 사각지역으로 끌고265P-가 폭행하려고 하면 그렇게 할수도 있었지 그러나 관구실에 카메라가 있어 카메라 없는 구석으로 끌고가는모습이 카메라 에 찍히는게 두려워서 인지 경북제2교도소에서는 교도관에게 폭행당하지는 않았어
그후 사동도우미중에 문신있는 깡패 생활을 했다는 또다른놈이 또내주변에서 교도관이 시켰는지 징벌거실문을 지날때마다 이상한 욕을 하며 계속 씨부려 불러서 몇번 주의를 줬는데 그런적 없다고 부인하여
징벌중 이라 꼼짝을 못하고 징벌거실에 갇혀있어 일주일에 한번 목욕갈때 거실문을 열어 징벌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교도관 여럿이서 나를 겪리를 시키며 걸어가는 중에도 그놈이 목욕탕 입구 문옆에 마침 서있어 서로 욕을 하며 목아지를 잡고 밀자 요놈도 나에게 욕을하며 달려드는데 나한테는 상대도 안되 더라고
즉시 근처 에 있던 교도관4명이 달려와 싸움을 제지했는데
관구실에 가니 원인제공을 한 사동 도우미 놈은 묶지도 않고 나만 묶고 도우미 놈이 목을 나에게 폭행당해 상처가 있다며 고소 한다고 하여 합의 안보면 날 검찰에 무조건 송치 시킨다고 하여 할려면 하라고 팀실 주임에게 말하자
팀주임이 그놈을 강제로 불러 합의 보라고 하여 그건은 아예 조사 자체도 안했지
사실 원인 제공은 문신있는 사동 도우미 그놈 에게 있는데도 나만 또 쇠사슬로 묶어 고통을 줬다
그곳에 있을때 과거 순천교도소 에서 나하고 다투다 입술이 터진 대구놈이 경북북부 제2교도소 독거에와 있었는데
이곳은 문제수 들만 왔다갔다 하는곳이라 각지역 교도소에서 징벌을 계속받으면 6개월후 이송을 보내는데 다른교도소 갔다가 또 7-8개월만에 이곳에 왔다가 또 다른 교도소로 이송가는 사람들이 주로 많지 전부 급수가 떨어져 4급 수 들 만 들락 날락 거리는 교도소다 이놈은 당시 살인으로 15년 받아 당시 근 10년 가까이 살은것 같은데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인터넷 에서 교도관 들중 누군가가 보고 이놈에게 나와 삼성그룹 오너와 엮인 것을 이놈에게 설명하자 이놈은 내가 순천교도소에 2005년 당시 잠깐 같이 있을땐 삼성 얘기를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사실 그때는 무지개 너머에 있는 삼성오너 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으니
또 당시는 미국 아스카 일식집에서 촞불같은 짧은 만남을 가진 웨이 츄레스하던 젊은아가씨가
삼성회장 막내딸일 꺼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성오너들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교도관이 그런적 있다고 하라고 코치하자 잠시후 대구놈이 갑자기 거짓말로 맞아 저놈이 매일 삼성 회장 막내딸을 천억노리고 최면걸어 죽였다고 얘기 했다며 누명씌워 뒤집어 씌우는데 정말 분노를 느끼는데
정말 저렇게 더럽고 추한 놈들 저런놈들과 같은 하늘아래 산다는것 자체가 엮겨웠다
이놈이 당시 나하고 싸워서 졌다고는 챙피 하니까 말못하고 내 험담만 거짓말로 늘어놓고 대구놈 이라 청송이 같은 경북지역 이라 그런지 지편이 더 많다고 생각 했는지 계속 교도관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거짓말로 내험담을 하며 씨부리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더러운놈 대구교도소 목포교도소 경북제2교도소 교도관들중 일부가 수용자 들에게 은근히 흘리는 조직적음모의 유언비어는 날엮어서 추가 띄우거나 때려 죽일려고 했는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이 날 좋아하다 자살했는데 그래서 나에게 천억주려 했는데 살인미수로 엮는데니까 안 받겠다고 하여 피해자에게 몇억 주고 합의 보고
결국 천억주고 합의 본꼴이 됐다고 적당히 괴롭 히다가 출소 시키라고 했다고 하며 인지능력 떨어지고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한 죄수들 에게 마구 퍼트려 거짓 소문이 마치 진실인냥 떠드는 소리를 주어들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된는 소리를 국가 공무원 이라는
법무부소속 교도관들이 어리석은 죄수들 에게까지 마치 의도작인 것처럼 거짓 유언비어를 마구 퍼트리는건
한국이 삼성가 오너들의 치밀한 계회으로 말미암아 삼성공확국이 됐다는 또다른 정황 증거이다


죄수들이 다른사람을 험담하고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면 못하게 제지 해야할
교도관들이 뭐가 아쉬워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죄수들 에게 마구 퍼트려 밖에 나가 퍼트리겠끔 모함하는가 교도소도 이정도 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삼성오너들 유리하게 거짓 여론조작 몰이가 더욱 심할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배후에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인 삼성오너들이 조종 하겠지 생각하니
화가 치밀지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봐야 나만 쇠사슬로 묶여 고통 받으니 참을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교도관 들이 한통속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기에 내가 다른 죄수가 나의 험당을 하여 싸움이 나도 나만묶는 불공정한 일이 있어 정말 억울했다 싸움의 원인 제공은 내가 아닌데도
교도관들은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나만 쇠사슬로 묶어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 허기야 이런 모함의 근원도 배후에 교도관이 있고 더 큰배후엔
삼성오너 들일 것이다 교도관들이 삼성그룹 비정규직 직원도 아니고 알바도 아니면서 지들도 수십단계 주어들은 확인 되지도 않은 사실을 의도적 으로 삼성그룹.오너들이 유리한 쪽으로 헛소문을 퍼날르고 또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위해 퍼트리는 것은 삼성그룹의 오더를 받은 상당히 높은 고위층의 지시에 의한게 아닌가

266P-의문이 들지만 누군지 확인할 길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일라 생각한다
중국말에 3인 이상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그림으로 그린다고
특히 한국에선 경상도 전라도 애들이 모이면 다른 지역보다 거짓말로 조작질을 잘하는걸 내가 경험으로 겪은 사실이다 한번은 나이어린 20대 중반쯤 보이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문신 있는 사동도우미 놈이 배식때 밥을 적게 주자 밥맛이 없어 가만있자 가면서 적게 줬는데 대들면 잡을려고 했는데 하며 거실 앞에서 씨부리고 가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개쌕끼야 일루와봐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쌕끼가 까분다고 하자 이놈이 배식 하다가 욕을 하며 달려와 내거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차고 지랄하자 거실문이 잠겨 있지 않으면 패주고 십은데 문이 잠겨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교도관이 달려와 나를 관구실로 대려가 쇠사슬로 묶길래
나는 문을 안 찬는데 도우미가 찬는데 하자 내가 사동 도우미 를 폭행할 우려가 있어서
묶는데 그럼 내 거실 문을 주먹과 발로 찬 저놈도 묶어야 하지 않냐고 하자 지들이 알아서 하겠데
그러고는 도우미가 거실문을 발로 찬적이 없대 복도에 있는 cctv보면 다 나오는데 확인해 보라고 했더니
당시 바로옆에 있던 경상도 사투리 쓰는 교도관이 다보고도 사동 도우미 편 들어주려고
사동 도우미가 거실문을 찬적이 없다고 그런것 같은데 cctv보면 다 나오는데 확인도 안하고 교도관 들이 무조건 나에게 뒤집어 씌우네 사동도우미가 지아버지 벌인 나한테 까분것도 교도관들이 시킨짓 이란 생각이 들지만 증거가 있어야지 이런 구조 에서는 무방비로 당할수 밖에 없는 구조야
나는 팀실에서 교도관들 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나이 많은게 나이 어린애 한테 참지 왜 대들었 냐고
이지랄 하네 참 어이가 없어서 뭐 이런것 들이 다 있는지 나중에 물어보니 도우미 그놈도 조사수용 되어 징벌을 받았 다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쇠사슬에 묶이진 않았데 나만 묶긴 거야 근데 사동도우미 그놈이 징벌을 받았다는것도 확인할 길이없어 편파적 이어도 이건 정도가 너무심해 인권 위원회에 면전진정 하자
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하러 나왔는데 당시 도우미가 내 거실을 발로 차는게 사동 카메라에 찍혔는데 나만묶고
나이어린 도우미 놈은 안 묶었다고 정보공개 하라고 진정 했지만 cctv를 확인하지도 않고 교도관 진술만 듣고 제대로 조사도 안하고 전부기각 이야
그래서 왜 cctv 확인을 안했냐고 했더니 내가보낸 진정서에
그 내용이 없데 나는 분명이 적어서 보냈는데
내가 인권위원회에 우편으로 정보공개 청구를해서 내가보낸 진정서를 보내 달라고 했더니
그당시 보낸것은 안보내고 엉뚱하게 그전에 보낸걸 보내서 좀 고의성이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헌법소원 하려다가 얼마 안있다가 뜻하지 않게 바로옆 경북북부 제1교도소로 이송명령이 내려 말았는데
여럿이서 사람하나 바보 만들어 가지고 노는건 일도 아니라 지만 국가 인권 위원회도 믿을수 없는 존재라는게
더 슬펐다 이곳에서 얼마 안된 기간에 5번이나 쇠사슬에 묶였는데 징역 4년 살면서 총8번 쇠사슬에 묶여 고생했는데
5번을 2013년 1월이후 부터 7월 동안 경북 북부 제2교도소에서 묶였다 나는 법무부장관에 청원하여 삼성회장 막내딸은 회장 본처와 장남에 의해 청부살해 되고 만만한 날 희생양으로 엮어
고생 시키니 경상도 쪽이 아닌 나의 연고지 와 가까운 서울 경기지역은 3급이하 교도소가 안양 교도소 하나뿐이라 자리가 없으면 안양에서 제일 가까운 춘천 원주 교도소 도 3급이하 교도소라 그쪽으로 이송을 보내 달라고 청원 하였다 그후 누군가에 물어보니 법무부 장관 청원서는 법무부장관이 바빠서 장관은 거이 읽어보지 않고
과천 법무부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 한다고 하는소릴 들은적이 있다
그러나 2013년 7월17일 인지 경북 제2교도소 에서 바로 옆 경북제1교도소로 이송을 보냈지 청송지역은 1.2.3 교도소가 나란히 있는데 누군가 들리는 얘기로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전두환 정권때 이곳이 권정달 문중땅 이라는데 이곳에 교도소를 짓기 시작 했다고 한다 나는 주소가 수도권쪽 인데도 서울 성동 구치소 에서 미결에서 확정되어 기결이 되자 목포교도소 에서 8개월 보낸것을 제외 하고 대구 교도소 경북 제2교도소 를 두번 그리고 만기 출소를 약 7개월 여를 나두고 경북제1교도소 이송을 가 형기의 대부분 을 경북 지역 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경북 제1교도소는 제2교와 가까워 이송을 점심먹고 오후에 가는데 이송버스가 천천히 가는데도 당시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차로 대략10분도 안된것 같은데 도착 했는데
특히 경북북부 제1.2.3 교도소는 다른 교도소는 교도소 문을 열고 나가면 자유로이 걸어 나가도 되는데 이곳은 1.2.3. 가 나란히 있는데 이곳 입구에 들어 오기전에 무슨 군부대 처럼 검문소가 있는데 그곳부터 국가 땅이라고 일반인은 함부로 못돌아 다닌데 그러니 출소 할때도 청송 버스 정류장까지 교도관들이 테워다 준데는거지
교도소 문을 열고 나가서는 가족이 차로 데려오지 않는 이상 혼자 걸어서 못가게 되어 있데
어느곳을 가나 그곳 분위기가 있는데 경북 북부 제1교도소는 가자마자 교도관들 이나 교도소 분위기가 경북 북부 제2교도소 보다 훨씬 안좋았다 이명박 정권이 바뀌기기 전에만해도 당시는 감호소 라서

267P-교도관들이 심하게 안했는데 감호가 없어지고 무슨이유에서 인지
내가 2010년 구소후 2011년도인가 경북북부 제1교도소가 갑자기 4급수 사동이 2동에 생기면서 엄해지기 시작 했다고 한다 이송자 짐 검사도 까다롭게 하고 특히 후레쉬를 내입속 까지 비추며 혓바닥도 들어 보이라고 하며 입안도
후레시를 비추며 자세히 당시 보는데 이송시 검사는 당시 CRPT교도관 들이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격은 가장 엄격한 이송검사를 마치고 짐을들고 가보니 조사 징벌사동 관구실로 갔는데 관구 계장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사람인데 말투가 청송에서 멀지않은 경북 안동 부근 출신 같았다
컴퓨터를 연신보며 행정소송도 했네요 영치금이 제법 있나보네 그러네 그래서 소송구조 신청해서 했는데 전부 기각 이라고 하자 좋은 방법은 다아네 그러네 그러나 소송구조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자 뒤에서 교도관 한놈이 개쌕끼야 신 똑바로 안신어 하는게 아닌가
여기는다시 계장은 존댓말로 다른 교도소 하고 틀려요 여기서 묶으면 엄청세게 묶는데 그러더니 경북제2교도소에서 이송올때 잔여 징벌이 있으니 끝날때 까지 있으라며
11하 징벌 사동으로 보내는데 가보니 카메라가 설치된 거실 이었지 그안에 60 가까이 되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교도관이 이송자 이니까 이곳생활 잘가르켜 주라고 말하네
고향이 서울 군자동인가 라고 하는데 양반자세 정자세로 가운데 앉아 있는데 이사람이 내가 들어가자 이곳은 여름 인데도 죄수 긴바지를 입고 반바지를 못입게 한다고 하면서
정자세를 안하고 지마음대로 앉아 있으면 끌려가서 묶기는데 이곳은 다른교도소와 달리 포승줄로 세게 조여 묶는데 이사람도 성동구치소에서 교도관에 대들어 묶여 본적이 있는데 이곳처럼 무잡이하게 수용자를 대하며 세게 묶여 본적이 없다고 실핏줄 다 터졋다고 하면서 죽는줄 알았데
그러면서 얼이 나가 있더라고 다른 징벌방에서 10년이나 더어린 부산놈이 먼저 발을치면서 달려들어 주먹으로 몇대 때려 줬더니 그놈 얼굴이 이글어저 추가 뜨는것도 걱정이라며 이곳은 징벌방에서 싸우면 무조건 묶이고
추가 징벌 30일 이상받는다고 하네 말할때도 손가리고 하래 카메라 있는데 교도관 놈들이 말한다고 와서 뭐라그런다고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30대 초반쯤이나 되어 보이는 교도관이 오더니 이사람 이름을 반말로 부르고 이게 아직도 정신못차렸다 하자 이사람이 군기 바짝들은 모습으로 죄송합니다 하는게 아닌가
젊은 교도관이 지나가고난후 내가 카메라 안보이게 경상도놈팻다고 카메라방 집어넣고 교도관이 길들일려고 더갈구는건 아니냐고
살짝 물어보자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고 나에게 대꾸했다
젊을 때는 싸움께나 했을 체형인데 서울 성동구치소에서는 교도관들에게 성질을 부리며 불만을 표시하던 사람이 경북 북부 제1교도소 에서는 자식벌 밖에 안되는 교도관에게 고양이앞에 쥐처럼 행동 하도록 얼마나 가혹 행위를 당했을까 생각하니 너무한게 아닌가 내가 경북북부 제2교도소 징벌싱 에서 경북북부 제1교도소로 목요일 이송을 가서 잔여 징벌 해제는 다음주 월요일 인데 대구교도소 조사징벌실도 점검이나 순시때 30분전에나 차렷자세를 시켜 양반다리로 정좌로 앉은 자세로 거실 중앙에 앉게 하는데 이곳은 계속 정 자세를 하게 만들고 안 하면 욕을 하며 겁을주고 그래도
안하면 끌고나와 카메라 없는 관구실에 데려가 수갑 채우고 포승줄로 세게묶고 폭행까지 당하며
추가 징벌을 띄운다고 한다 그동안 정자세를 안 하다가 이곳에 와서 정자세를 하려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요일 쯤 되자 누군가 심하게 묶여 바로 옆 거실에 집어 넣는데 얼마나 세게 묶였기에 피가 안통해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머리로 문을 차고 비상벨을 누르고 계속 큰 소리로 좀풀어 살려 달라고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고 한참을 애원하며 고통을 호소하며 큰 소리로 떠들자 교도관들이 문을 열고 쌍욕을 하며 조롱을 하더니 한참후 좀 느슨하게 풀어 줬는지 조용해 졌네 나도 여러번 묶여 봤고 또다른 사람들이 묶이는것도 많이 봤는데 경북 북부 제1교도소 처럼 이렇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죽겠다고 하며 살려 달라고 하는건 처음본다
계속 풀어주지 않고 세게 묶는다면 죽거나 병신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낄 정도의 비명 이었다 이곳이 내가 가본 교도소 중에 말로만 듣던 가장 삼청교육대 하고 비슷한 곳이 아닐까
천안 외국인 교도소는 호텔같이 지어놓고 외국인 죄수들에게는 초호화급 서비스를 제공 한다고 어느 인터넷 글에서 본 것 같은데 결국 자국민 죄수들은 급수를 만들어 놓고 돈있고 백있는 것들은 가장 부드러운 2급 교도소로 보내 대접 받다가 출소하고 사회적 약자들은 교도관의 화풀이 대상으로 개 잡듯 잡는구나
저러다 죽으면 격리된 곳이라 상황을 다른 수용자는 알수도 없고 사고사 나 자연사로 처리할께 뻔 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한국 국민 이란게 싫었다 내가 미국인이나 일본이나 중국인 이었다면 이렇게 차별받으며 심한 인권탄압을 당하진 않았겠지 생각하니 씁쓸 했다
2011년도 대구 교도소 징벌거실에 있을때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2010년도에 징벌거실에서 한명이 죽어 나갔다는
얘기를 같이 있던 수용자에게 들은적이 있다 정확한 사인과 원인은 모른다

268P-나에게 말을 전해준 수용자도 누군가에 전해 들었겠지 당시 대구교도소 징벌거실이 너무 더운데 조사징벌실 독방문에 조그만 창문을 이중으로 아크릴로 막아 너무 더워서 죽었다는 소릴 들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후 이중으로 된 아크릴을 하나를 빼 하나로 했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대구교도소 있을때 당노병 환자를 응급 조치를 늣게해서 죽었다 던가
운동 하다가 갑자기 고혈압으로 죽었다 던가 하는소릴 누군가로 부터 들은 기억이 나는데
확인된 사실도 아니고 교도소처럼 격리된 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과거 전두환 정권시절 별 잘못도 없는데 삼청교육 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 돼지처럼
맞아 죽어 나갔을까 생각하니 소름 돋는다
당시 경북북부 제1교도소는 한 여름 인데도 샤워도 아침 점심 먹고난 후 빨리 하고는 그 이후는 저녁 식사후 에도 샤워도 못 하게 했다 벽에도 기대 앉지 못하게 하고 거실 정 중앙에 항상 정 자세 양반 다리로 앉아 문쪽을 바라보며 가운데 앉아 저녁 9시에 사동 도우미 들이 이불을 갔다 줄 때 까지 그러고 앉아 있어야 했다 다리 관절이 아파 조금 이라도 다리를 피면 카메라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교도관들이 욕을하고 달려와 마치 잡아 먹을것 같이 지랄 하는데
거기에 조금 이라도 반항 하면 끌고나가 묶고 카메라 없는 곳에 끌고가 폭행하고 추가 징벌 30일 이상 띄워 직옥같은 징벌실에 30일을 더 있어야 하기에 교도관의 지시를 어기기 힘들다 예를들어 교도관 에게 심하게 반항하면 묶인 상태에서 떼 거리로 폭행 당하고 오히려 공무집행 방해 교도관 폭행죄로 누명 당하여 검찰에 송치되어 처벌받으면 재판에서 누명 당했 다고 해도 어지간한 권력과 돈이 아니면 승소할 확률이 적다 그러나 사실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 거이 오지않고 또 온다고 해도 교도관들이 잘 건들 이지 안 는다 특별한 사항이 아니면 돈없고 백없는 사회적 약자만 교도관들의 장난감 대상이다 이곳에선 교도관에겐 죄수들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나라 판검사 들은 모두 머리가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 판검사가 될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만큼 정의감의 크기도 비례할까
그럴리 만무하다 내가 무식한 탓인지 몰라도 머리 좋은 것과 정의감의 크기가 비례 한다는 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은 학자는 없다 오히려 머리 좋은 사람은 대체로그렇지 몾한
사람보다 약삭 빠르고 자기 잊속 챙기기 잘한다고 보아야 한다 상대적 으로 덜 정의 롭다는 뜻이다 법전과 법률책을 앞에 놓아 두고 공부를 많이 하고 앉아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의감이 무럭무럭 자랄까 그럴리 만무하다는 것은 삼척 동자도 알수있다 오히려 그런공부 오래 하다 보면 가슴속 에는 빨리 시험 합격해 남들보다 잘먹고 잘살아 보라는 욕심만 가득차게 된다
처음에는 정의 감이 좀 있었는데 공부를 오래하다 보면 없어 지기 쉽다는 뜻이다 )
- 제목 천당에간 판,검사가 있을까 저자 김용원 서교출판사 2011-

내가 경북북부 제2교도소에서 경북북부 제1교도소로 이송한지 몇시간 밖에 안 지난것 같은데 징벌사동 에서 정좌세로 앉아 있는데 거실 밖 사동 에서는 사동 도우미들 인지 교도관들 인지 무슨 얘기를 하며 게이 왔다 그러며 뭐라고 험담하는 소리를 씨부리는 걸 주어 들었는데 이놈들은 여기서 생전 처음 본 놈들 인데
삼성 오너들이 돈과 권력의 인맥으로 과천 정부청사 법무부의 어느 고관대작을 사주하여 내가 이송 가는곳 마다 괴롭 히라고 지시를 내리게 아닌가 충분이 생각이 들정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일이 있을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며 분하고 억울 하지만 저놈들을 보고 누구보고 그랬냐고 따지면 당연히 나보고 그런게 아니라고 그럴게 뻔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날 미친놈 취급하며
날 묶고 추가 징벌을 띄워 징벌실에서 계속 나만 고통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을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 징벌이 끝나고 배실되어 가보니 2동 상층 이었는데 2사동은 하.중.상층 모두 4급수 만 수용 할수 있게 누군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 이지만 2011년 부터 만들었 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2011년 초에는 내가 징벌로 인해 대구교도소에서 4급수로 떨어진 상태 였다
2동만 빼고 다른 사동은 3급수 수용자 들이 있었다 또 공장 출력 나가면 3급 4급 수 가 마구 잡이로 수용 되었다
거실은 3인 거실 인데 나까지 3명 이었다 한놈은 3급수로 이송와 싸워서 징벌받자 4급으로 떨어져 4급수 사동으로 왔다고 하고 다른 한놈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놈은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 무기수 김길태 와 싸워 징벌 받았 다고 하는 놈 인데 김길태는 2중에 있는데 그 거실은 2명 밖에 안 집어 넣는데 다른 거실은 3명까지 채우는데 김길태 거실은 2명 밖에 안집어 넣는다고 그러더라고

269P-그곳 에서 일주일도 안 되어 싸우고 다시 11하 조사징벌사동으로 갔는데 그 배경은 같이 있던 거실의 한놈이 새벽에 화장실 가면서 내 다리를 건드려 미안 하다고 그랬으면 될 일을 미안하단 말도 없이 가서 내가 화를 내니까 그놈이 욕을하며 먼저 발로차고 달려들어 주먹으로 볼대기를 한대 때리자
이놈 볼 때기는 돼지 쌕기 처럼 통통한 놈 인데도 내 주먹을 한대 맞고 순간 멍하게 정신을 못 차리며 창문 쪽으로 밀리자 교도관이 와서 둘다 데리고 나가서 자술서 받고 그놈은 11중 조사실로 가고 나는 11하 조사실에 넣었다
조사실에 있는 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 면전진정 신청하게 집필허가 해 달라고 하자 교도관이 거부하여 내가 계속요구 하자 교도관이 날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인 관구실로 데려가 또 구석에 문을 열고 들어가 손끝으로 욕을 하며 내 가슴을 여러차례 찌르고 화장지로 머리를 몇번 내려쳐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법무부장관에게 청원하고 헌법소원을 함께 억울하여 하였는데
전부 기각 각하 처리 된적이 있다 원래 국가 인권위원회 진정 신청은 언제 어디서도 받아 줘야 하는데 징벌 끝나고 본 거실에 가서 하라며 사동 교도관이 받아주지 않아 내가 계속 요구 하자 카메라가 아예없는 관구실 안에 깊숙한 곳에 문을 여고 또 들어가 카메라 없는 사각 지역으로 데려가
나에게 협박하고 폭행한 후 다 행이도 당시 나에게 그 이상의 더 심한 폭행과 린치는 하지않고 추가 징벌은 주지 않았고 나를 다시 거실에 집어 넣은후 마치 선심 쓰듯 인권위원회 면전 진정 신청을 받아준 사건이다 당시 교도관이 나를 때려 죽이거나 누명씌워 추가 징역을 띄우고 십은데 삼성회장의 배다른 막내딸이 날못잊어 자살해서 천억을 주려 했는데 내가 전라도를 무서워 해 천억을 못 준니 일단 출소 시켜야 한 다는 개가 들어도 안 믿을 거짓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끝어야 하기에 교도관이 의도하는데로 나를 때려 잡거나 누명을 씌우지 못하는 것에 분을 삭이는 표정 이었다 당시 나는 싸움으로 20몇칠 징벌을 받고 있는데 또 다른 거실에 누군가 심하게 묶여서 이번에 11하가 아니고 11중 같은데 제발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문을 치며 큰소리로 애원하며 너무 세게 포승줄로 묶여 죽겠 다고 고함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교도소는 수용자를 엄청 심하게 다룬다는 느낌 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까지만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서 묶여 보질안아 실감은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그동안 다른 교도소에서 여러번 묶여 봤는데 고통은 심했지만 저정도 까지는 아닌데 엄살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징벌실에 같이 있던 사람은 일반수도 아니고 벌금 수인데 서울 성동 구치소에서 징벌을 받았는데 4급으로 떨어 지니까
일부러 경북 북부 제1교도소로 이송을 보내 고생 시킨다고 하는데 다른 교도소는 벌금수와 일반수는 분리 수용하는데 여기는 같이 집어 넣나 보네 원례 교정법에 벌금수와 실형이 확정된 수용자와는 따로 수용한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교정법이 바뀐 건가 생각이 들며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닥친 문제도 아니고 그 문제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않했다 만약에 그게 현행 교정법을 어긴 수용이라면 나같으면 이의제기를 법무부 장관 청원 철차를 거쳐 최후 헌법소원 까지 했을 것이다 나는 징벌 끝나기 하루 전에 특히 나에게는 존칭을 쓰며 잘 하는 야간 근무자가 내가 있던 징벌실에서 한 서너개 앞에 있는 사동입구와 내 거실 보다 가까운 거실에 대고 누군가에게 사동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얏 개색끼야 씹 색끼야 하면서 별의별 욕을 하는 소릴 주어 듣는데
그런데 교도관이 그놈 이름을 크게 부르며 여러범 욕을하는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교도관에게 욕을 듣고 야단을 맞는 그놈은 교도관에게 존칭으로 부드럽게 나치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말하듯 대꾸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자 교도관이 지혼자 그 놈에게 욕하고 야단치며 떠들다 대들지 않으니까 지쳤는지
잠시후 지나 갔는데
거기서 대들었다간 팀실에 끌려가 쇠사슬에 묶기고 폭행 당하는 게 수순임을 아니까
대들지 않는게 현명한 일이었다
근데 야간 근무자 교도관이 그놈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하는데
왠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았는데 징벌이 끝나고 본 거실에 배실 되어 가는데 이송 올때 배실되어 들어갔던 그거실 이네 원래 3명이 정원인 거실에 둘이 싸워서 조사 징벌실에 가면 혼자는 안 놔두고 다른 거실로 교도관이 바로 보내기에
둘이 싸워서 나간 거실은 공실이 비워두다 3명을 한꺼번에 배실하여 당시는 거실을 운영하였다 왜 혼자 안 놔두냐면 혼자 있다가 자살 하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명분상 말은 하는데 실제론 수용자 혼자 편이 놔두면 일부러 싸움을 부쳐 지혼자 한동안 있을수도 있고 수용자를 한동안 이라도 편히 안 놔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징벌이 해제 되어 4급수 사동인 2동 상층에 같은날 징벌 해제자 3명이 같은 거실로 배실 되었는데


그중 한놈이 전에 대구교도소 작업 거실에 있던 놈인데 징벌실 야간 근무자 교도관에게 계속 욕을 먹으며 괴롭힘을 당한놈이 누군가 했더니 내가 대구 깡패와 싸울때 대구 깡패 비유 마쳐 주며 편들어 주던 놈이었다
그러니 그놈과 나는 당연히 아는척도 안하고  꺼려 했다
근데 그놈은 2010년 8월 인가 9월인가 그때 만기 출소가 얼마 안남은 걸로 들은 기억이 나는데
저놈이 출소 했다가 다시 들어왔나 속으로 생각 하고도 서로 아는체를 안하다 보니 말도 안하고  물어보질 않았다
그놈도 나를 아는체를 안하 더라고 재수 없으니까 꼴보기 싫은놈과 배실 되네 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저놈과 또 싸워서 지긋지긋한 징벌 사동을 또가야 하나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중에 그후 운동시간에 운동을 하는데 그놈과 친한놈이 운동장을 도보로 걸으면서 하는 소리를 우연히 주어 들어보니 대구교도소 있을때 나와같은 작업거실에서 생활 하는데
당시 사동 담당교도관이 내가 들을수 없게 몰래 거실에 누군가를 은근히 직원실로 불러 삼성그룹 회장의 막내딸이 날 못잊어 자살해서 천억 주려고 했는데
살인미수로 기소 하려하자
내가 천억 안 받겠다고 하여 합의보고 끝냈다고 하면서 교도관이 여러 가지 황당한 소리를 씨부리 더래
어쩐지 그 당시 내가 화장실가서 샤워하고 볼일볼때 여러번 나에 대해서 중상모략 하는 비슷한 소리가 약간 들리는것 같은데 나에대해 전혀 모르던 당시 처음보는 놈들이 그런 중상 모략하는 소리를 한다는것은
나의 과대 망상이 아닐까  설사 내가 그놈들모고 나에대해 험담했냐고 물어보면

안했다고 하면서 정신병자 취급하면 나만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잘못들은걸로 치부 했는데
당시 내가 들은게 정확 했음이 증거로 나타나는 구나
이것만 보더라도 삼성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짜고 회장의 배다른 막내 딸 이윤형을   암살하고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못잊어 자살 했다고 뒤집어 씌웠다는 나의 추리가 점점 더 확실해 지는 정황 증거였다
그리고 그놈은 서울 군자동이 고향 이라고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지혼자 씨부리 더라고
당시 대구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다시 들어온 건지 아니면 추가건이 생긴건지 모르지만
운동장에서 다른 놈과 떠드는 소리를 또 주어 들은 적이 있는데 다 듣지는 못 했지만
다른 놈과 떠드는 소리를 주어들은 말중에
과거 사건에서 DNA가 발견되어 성폭행 한게 들어나 추가 징역 8년을 받아 살고 있다고 하는 소릴 주어 들었다
그러나 출소해서 다시 들어온건지 아니면 만기출소를 얼마 안 남기고 추가건이 떠 연이어 징역을 사는 건지는
못 들었다 그래서 그 놈은 아직 징역이 많이 남아 있어 다시 공장 출력을 나가길 원했다
그래서 나하고 싸움을 살 살 피했다 내가 욕을 하고 야단을 쳐도
꼬랑지를 내리고 피했다 조사 징벌실에 가면 저놈을 괴롭히는 교도관에게 또 끔찍이 욕을 쳐먹고 참아야 하니 오장육부가 썩는 스트레스를 받을게 뻔하니까 징벌실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 같기도 하는데 이놈을 괴롭히던 징벌실 야간 근무자 교도관은 계급이 당시 주임이 못된 부장으로 40이 넘은 이놈과 나이가 비슷 하거나 많아 봐야 몇 살 차이 않나는 걸로 보이는데 이놈과 마치 철천지 원수 진 것처럼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것처럼 말끝마다 쌍욕으로 저놈을 부르고 조롱하며 괴롭혀도 저놈은

말대꾸도 못했다  대들었다간 교도관에게 끌려가 아작이 날게 뻔하니까 저놈이 울며 겨바먹기식으로 참은것이다 그만큼 경북북부 제1 교도소에 저런것들이 어떻게 법무부 소속 교도관이 됐나 할정도로  시정잡배만도 못한 교도관들이 즐비했다

 더구나 저놈은 아직 징역이 많이 남아있어 공장에 출력도 나가야 한다고 매일 담당직원에게 출력시켜 다라고 조르던 중인것같은데  
그러던 중에 그곳에 배실된지 대략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인가 거실에 있던 다른 놈과 말 싸움만 했는데 바로 교도관이 짐 싸라고 하여 다시 11하로 조사 징벌실로 배실 되어 갔는데 그날 기독교 집회에 나가기 전에 사동 도우미가 그날 따라 수번을 미리 제출 하라고 하여
당시 화장실에 있던 나는 수번을 적어 주지 못해 소지를 부르기 위해
종이를 엮어서 만든 사동 도우미 부르는 팻말을 설치하여 부르려 하자
그놈이 오전 9시 이후 설치 하라고 지랄하여
니가 뭔데 팻말 설치 하는걸 막냐고 서로 큰 소리로 쌍욕을 하자
교도관이 둘다 조사징벌실로 보냈다 조사징벌사동에 가보니
그 사이 교도관들 인사 이동이 6개월에 한번 있는데 11하 직원은 다 바꼍는데
11하에 에서 나를 폭행 했던 담당 교도관 부장놈은 왠지 11중으로 옮겼데 11중 역시 조사 징벌사동이다 저놈은 왜 징벌사동을 떠나지 않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가 의문이었다
내가 폭행 당한것을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법무부장관 청원 했다고 내가 다시 조사 징벌실로 오면 보복하려고 11하에서 11중으로 옮긴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사회 나가서 일대일로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게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악용하여 나를 괴롭히는 더러운 놈이라 생각이 들면서 저놈 혼자만이 아니라 배후에 거대한 삼성그룹의 지시를 받는 삼삼공화국의 나를 괴롭히기 위한 치사한 작품 같았다
물론 진정. 청원한 것은 교도관놈이 그런적 없다고 하여 전부 교도관 편이라 형식 적인 조사 이니 기각 각하 처리 됐다


그러나 그보다는

저놈이 혹시 삼성가 오너들이 나를 괴롭히려고 찍어서 보낸 놈 같았다

사회에서 만나 일대일로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놈이 삼성공화국의 패악질에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악용하여 나를 괴롭히는 정말 추하고 더러운 놈이었다

삼성알바들중에 국정원 직원들이 많다고 하는데 혹시

충분히 그렇수도 있다 그후 2014년 4월16일 계획 삼성의 배후로 침몰한 세월호도

국정원이 관리했고 국정원 직원이 깊숙히 개입했다는 증거가 들어났다

271P-당시 조사 징벌실에 있는데 광주애 인데 과거 소년수 징역도 좀 살았다고 하는 고아원출신 이라고 밝히는데
강도죄로 10년 받아 형이 확정 됐다고 하는데 전라도 광주의 모텔에서 다방레지 에게
커피를 시키고 커피 값을 다 줬다고 하는데 확인 되지 않은 사실 이지만 그놈 얘기에 의하면 재판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증인 신청 하여도 참석 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10년 선고가 떨어져 억울 하다고
하는데 내가 그러면 출소해서 증거 기록을 더 수집하여 재심청구 하고 무죄가 입증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라고 하자 사실은 경찰 조사 에서 당시 자신이 다방 레지 가방을 뺏을려고 한 것은 맞는데 레지가 저항하자 그냥 커피값 주고 보내줘서 끝난 일인줄 알고 모텔에서 도망도 안가고 있었는데 다방 레지가 신고하여 경찰에 붙들려가 경찰이 강도를 계속 부인하면 살인미수로 검찰에 송치 한다고 겁을 주자
강도 했다고 시인 했는데 자신이 가방을 뺏으려던건 맞지만 자신이 뺏으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다방 아가씨 제압하고 뺏을수 있었지만 안뺏고 커피값 주고 보내 줬는데 왜 강도로 뒤집어 씌우는지 모르 겠다고 하면서 재판 에서는 계속 강도를 부인하며 피해자를 증인 신청 했는데 증인이 재판에 출석 안 했는 데도
돈은 뺏은 것도 없고 징역만 10년 받았으니 억울 하다고 울며 눈물을 흘리네
강도는 아니지만 강도 미수죄는 되겠네 그런데 징역 10년은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얘기를 하면서 징역 10년 받을짓은 안했다며 억울 하다며 계속 눈물을 흘리네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으니 다른 사람 갔으면 아무것도 안닌 사건을 자신은 징역 10년이나 받았다며
그 유명한 지강헌의 말처럼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네 그래서 그런지 광주 교도소에서 땡깡 부리고 징벌을 받으니 엿먹으라고 하고 경북 북부 제1 교도소로 이감을 보낸 건지 모르지만
이놈이 광주 교도소에서 이곳으로 이송버스를 타고 올 때 깡패 한놈과 같이 타고 왔데는데
역시 똥개도 제집에서 짓는다고 광주에서 청송으로 이송을 오니까 얼어서 그런지

이놈은 경북 북부 제1 교도소 교도관 에게도 잘하는 모습이 조사 징벌실 검방이 와서 거실에 나와서 검방이 끝날 때 까지 쪼그로 앉아 대기하는데 경북 북부 제1교도소 검방나온 경상도 사투리 쓰는 교도관 누군가 이놈과 공장에서 안면이 있는지 이놈에게 욕을 섞어 반말로 하대를 하는데도 이놈은 눈웃음을 치며 공손히 대꾸 하는 모습을 목격한적이 있다 경북 북부 제2 교도소 있을 때 기독교 집회때 예배당에서 누군가 전라도 사투리 쓰는 놈인데
1교에서 이송왔는지는 모르지만 1교에는 지하 고문실도 있다고 하면서 상당히 겁을 집어 먹은 모습을 본적도 있다
이런걸 종합 해볼 때 당연히 자신의 연고지가 아닌 타지역으로 갈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하는건 누구나 부인할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러니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를 연쇄 살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범행을 감추기 위해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전라도 무서워해 천억 날렸다는 말이 얼마나 모순이 크며 말도 안되는 논리라는게
충분히 들어났다

공장 출력 나갔다가 속칭 폭탄 제거반 처럼 공장 실세 들에게 말 안듣고 엉기는 애들 대신 총대매고 조사실 같이 끌고 온건데 이놈이 공장에서 말싸움 하여 데리고 온 놈이 같은 전남 출신 이라나

훈방되어 나가야 한다며 교도관 에게 조사과에 반성문 제출 하게 집필 허가해 달라며
볼펜과 종이좀 달라고 하자 교도관놈 오더니 죄짓고 반성문 쓴다고 용서가 돼냐며 처음부터
쓸필요 없다며 지랄하네 그래도 이놈이 쓰게 해달라고 하자 교도관이 더 큰 소리로
반성문 쓸필요 없다며 겁을주자 꼬랑지 내리고 포기하네
거기서 더 우기면 끄집어 내서 매 타작하고 묶어 버리고 추가징벌 띄우지
거기서 만약에 억울하다고 항의라도 하고 따지고 덤비면 더 큰 폭행과
때에 따라서는 실컷 폭행 당하고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공부집행방해 직무방해 교도관 폭행등
죄를 누명씌워 뒤집어 씌우고 검찰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고 추가징역을 받기에
도저히 수용자가 교도관을 이길수 없는 싸움이라 이놈도 황당해 하며 꼬랑지를 내리네
다른 교도소는 반성문 쓴다고 하면 다 허락 하는데 이곳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반성문 쓰면 교도관이 그걸들고 조사과에 갔다줘야 하고 불편 하니까 그런건지 모르 지만
아무튼 새로 바뀐 교도관 이놈은 이상한 놈 이네 반성문 정도는 제출하게 해줘야 하는데
나는 이놈에게 니가 공장에서 이쁨받고 생활 잘 했으면 반성문 안써도 공장에서 알아서 너를 빼내 줄거라고
공장 담당 교도관이 조사과에 말잘해 놓으면 반성문 안써도 풀려 나니까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내가 싸움으로 조사실 가서 조사를 한건지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한게 조사관이 와서 조사한 건지 법무부장관 청원한게 조사관이 온건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조사를 받고 오자
같은거실에 있던 광주놈이 경고로 나간건지 훈방으로 나간건지 나가고 없었다
그후 조사과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조사실 끝에 상석에 앉자 있던 계장이 내이름을 불러 지도 대구교도소에서 여기로 왔는데 대구교도소 있을때 나에게 맞아 주둥이 피를 흘린놈 이름을 정확히 얘기하며 그때 내가 그놈에게 맞았다고 하는 소문이 있다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그놈은 내가 마음놓고 때렸으면 턱뼈 부러 졌다고 한대 살짝 때렸는데도 그놈이 피투성 이가 되서 추가 징역 안받을 려고 방어만 했다고
그래도 나는 다친곳도 없다고 다거짓 소문 이라고 했지 나는 여기서 처음보는 교도관 놈이 나를 알아보고
귀찮 아서도 관심이 없을 일을 2년전에 있던 일을 그것도
대구교도소에서 떨어져 있는 청송의 경북북부 제1교도소 에서 왜곡해서 씨부리네 이것만 보더라도
내 흠집을 내고 거짓말로 조작하여 깍아 내리려는 조직적 음모가 존재 한다는게
사실로 들어난게 아닌가 이런 확실한 정황 증거를 한두번 겪은게 아니다
내가 삼성 오너들이 날 악의적으로 유명인사 만들어서 깔아 뭉갤려고 별의별 거짓 소문을 만드는구나 경상도 문둥이 들은 나한테 맞아서 주둥이에 피투성이 된 놈을 조작하여 지들 유리한 쪽으로 거짓소문을 퍼날르는 더러운 지역 패권주의를 과시하며 그렇게 까지 해서 날 의도적으로 거짓으로 조작하여 바보 만들려고 하는
이놈 들은 정말 4차원 세계에 있는 놈들 같았다 내가 김대중도 아닌데 말이야
김대중은 정치적인 이권 이라도 있어 빨갱이로 문둥이들이 엮어 괴롭 혔지만 나는 뭐냔 말이냐
일부 경상도 문둥이 들은 삼성그룹이 지들 그룹인줄 착각하고 무조건 삼성그룹.편 이었다 그러니 나는 졸지에 얼굴도 모르고. 만나 본적도 없는 수많은 놈들에게 영문도 없이 험담을 듣는 정말 회괴한 더러운 함정에 빠져 허우적 되는 형국의 연속 이었다

삼성가 오너들의 희생 재물로 누명씌워 대신 그들의 죄를 뒤집어 씌어 욕먹이는 공공의 적이 된거야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할것들은 삼성회장과 이윤형을 연쇄살해한 본처 .홍라희와 .자식들 이재용.이부진 .이서현
그리고 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인데

이런 황당하고 억울한일이 21세기에 존재 하다니
들리는 얘기로는 지충호가 징벌실에 있을때 교도관이 거실문을 발로차고 왜 지충호 보고 문을 차냐며 뒤집어 씌워 지충호 를 폭행 했다고 하는데 들은 얘기라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물론 지충호가 현재 박근혜대통령이 야당대표 시절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폭행은 잘못한 짓이 분명하다
거기에 대한 벌로 징역10년 이상 받았는데 그러면 그걸로 사건은 끝난 것이다
지충호도 본 실형 말고도 교도소에서 무슨일인지는 내가 알수도 없지만 불미스런 일로 여러가지로
추가떠서 추가징역 받은게 여러개 되어 본형을 다 살고도 못나가고 추가징역을 받은걸
다시 살아야 한다고 신문에서 본 기억이난다 알게 모르게 권력의 실세에 대한 공격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한게 아닌가 의문스럽다 물론 테러는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미 사법당국의 처벌을 중형10년으로 톡톡히 받아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루는 지충호에게 제3자가 만약에 이중처벌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권탄압이며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교도관이 죄수들을 에게 폭행할 때는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으로 끌고가 묶고 집단으로 폭행하기에 다른죄수가 볼수가 없다 가끔 사동 도우미들이 봐도
그들은 철저히 교도관의 지시에 따르는 놈들이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허위 진술을 꾸미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가끔 비명소리는 들을수 있어도 사동 도우미 들이야
마치 일제 앞잡이 처럼 무조건 교도관 개노릇을 자처 하기에 그들에게 올바른 증언을 기대 하는건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북한 인권문제로 떠드는데 물론 북한주민의 심각한 인권탄압이 큰 문제이고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고 나도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도 일부 지방 교도소에서 인권탄압이 심각 합니다
이러한 한국내의 일부 구긍시설등에 행애지는 인권탄압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특히 당시 경북제1교도소 일부 교도관들은 점령군이 포로 다루듯 했습니다
천안 외국인 교도소는 시설이 최고 이며 외국인 죄수들에 대한 인권존중을 참 잘한다고
한국이 자랑하고는 자국민은 개잡듣 잡는 국가 공권력은 문제가 크다
교도소 에서는 교도관들이 면회도 안오고 돈없고 백없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교도소 안에서 때려죽여도

밖에서 찾아와 떠져줄 사람이 없는 수용자는


교도관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생각한다
나는 그후 징벌이 떨어져 또 싸움으로 22일 징벌 받았다


엿장수 마음이라고 교도관 마음이라고 조사실이 바로 징벌실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엔 조사실에서 징벌 거실로 옮겨 생활 하는데
앞쪽 거실인지 계속 교도관 에게 욕지꺼리 를 하는데

그냥 내버려 두는게 엄청난 백을 가진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놈인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 이지만 당시 떠드놈 얘기를 적어보면
교도소 환자들을 모아놓은 의무 병사에 있는데

그곳에서 교도관과 실랑이를 하다가 폭행 당했 다고

억울하다고 징벌실로 조사과 에서 온
비교적 젊은 교도관 에게 말하자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폭행 하냐고 하자
그놈이 큰소리로 장난하나 내가 교도소 병사에서 교도관에게 폭행당했는데 무슨 소리 하냐고 입에 개거품 물고
교도관에게 별의별 쌍욕을 해도 그래도 교도관이 내버려 두네
그놈 친형이 3급 공무원 인데 면회올때 지형한테 폭행당 했다고 얘기했데
그래서 지형이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지만
지를 때린 교도관을 옷 벗긴다고 떠들며 욕을해도
교도관들이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계급이 높은 교도관이 그냥 놔두라고 그런건지
이놈 에게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수용자가 그랬으면 무잡이한 응징이 가해 졌다
그래서 나는 교도관 하고는 부딧치지 않을려고 했어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 비리를 밝히는건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다 사회에서도 공무원들 비리를 적발하기 힘든데 사회와 완전 격리된 교도소는
교도관들이 모두 한통속 으로 속여서 증거를 밝히기 쉽지 않다

병사에서 교도관에게 폭행 당했다는 사람은 3급 공무원인 형이 있는 데도 때리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 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다른사람 같으면 끌고가서 묶고 패고 할텐데 3급 공무원이 친형 면회와서 교도관이 폭행하지 못하도록 무슨 조치를 해줬는지 모르지만 교도관과 사동도우미들이 살살 달래며 비유를 마춰주는 당시 정황이었다 더구나 그놈은 간질 환자라 묶으면 안된다나

혹시 저놈 친형이 교도소 과장급 이상 소장급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교도소를 떠나갈 정도로 교도관에게 욕을하고 난동을 부려도 사동 도우미는 물론 교도관도 살살 비유만 마쳐 주는데 교도관들이 간질환자고 지랄이고 묶고 때릴려면 얼마든지 하고 오리발 내밀면 그만이고 교도관에게 욕하면 형사처벌 인데
그렇게 안하는건 저놈을 뭔지 모르지만 많이 서포트 해주는 것같은데
말을 들어보니 저놈은 대구에서 온놈 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앞쪽 조사징벌실에 있는 서울말씨 쓰는 수용자는 교도관이나 사동 소지가 말을 안들으니까 개색끼 라고 별의별 욕을 험하게 하며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 관구실로 데려가 교도관이 가차없는 응징으로 묶고 폭행당했는지 팀실에 갔다 오더니 기가 죽어서 저자세로 좀 조용해 지는것 같았다


그후 노예 12년 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마치 백인과 흑인 노예 처럼 엄청난 차별 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3급공무원 친형을 뒀다는 놈은 가끔가다가 교도관과 사동도우미에게 욕을하고 .자신의 주장을 요구하면 살살달래며 비유를 마춰주는게 두상황이 당시 극과극 이었다
11하 사동도우미 들은 반 교도관 행세를 했는데 경북북부 제1교도소 조사 징벌실은 교도관이 사동 .도우미를 과거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학원가 뿌락치를 연상시키는것처럼
교도관의 지시로 권력을 위임받아 사동을 .돌아 다니며 수용자에게 욕을하며 군기를 잡으며 똑바로 양반자세로 앉아 있으라고 하며 지랄하다가 아니꼬와 수용자가 말대꾸하고 대들면 교도관이 달려와 사동도우미 말은 즉 교도관 말이라고 무잡이한 응징에 들어가고 거기서 더 따지면
관구실에 끌려가 조롱을 당하고 묶기고 때에 따라서는 폭행까지 당하는 응징이 기다리고 있어
거기서 더 게기면 더터지고 적반하장 격으로 공무집행 방해 교도관 폭행으로 오히려 누명써 검찰송치 되어 재판받2고 추가징역을 받아야 하는 억울한 수순이 기다리고 있고 드문 일이지만 교도관에게 게기지도 않았는데 누명을 뒤집어 씌워서 엮는 경우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충신들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역적으로 누명쓰고 죽어 갔는데 그들은 분명 역적짓을 절대 하지 않은걸 누구나 알것이다
여럿이서 작당하여 누명씌워 엮으려고 마음먹으면 빠져 나갈수 있는 사람이
별로없다 더구나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에선
그래서 죄수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참는게 현명한 방법 이었다 교도관에게. 고자질하여 .바로 응징에 들어가도록 ..일제. 앞잡이 같은 놈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드문 일이긴 하지만 허위로조작하여 교도관 에게 말하여 수용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는데
도우미 들은 반 교도관 행세를 하도록 교도관들이 유도했다
이런식으로 돈없고 백없는 사람은 살기어려운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에서 제일 꼭대기에 있는놈을 위해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다른인간들이 톱니바퀴 처럼 돌아가는 사회의 권력구조.이다
이곳 조사 징벌실은 모두 독거실로 운영 되었는데 많게는 2명까지 수용 하였다
징벌이 끝날갈 무렵이 되자 어느덧 2013년 10월이 됐지 이제 만기출소가 4개월도 채 안남았네
경북 제1교도소에 와서징벌2개를 받았 는데 4년 가까이 살면서 총30개가 넘는 징벌을 받았어 정확한 날짜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번 징역 살면서 거이 절반 이상을 징벌방에서 보내서 나이도 나이 이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이젠 피로를 느끼네 저번징역 살때는 징벌을 6개 밖에 안받아었는데


274P-내일이면 징벌이 끝나는데 저녁에 잠을 자면서 새벽무렵 쯤인가 꿈을 꾸었는데 어느층 인지는 모르겠는데 11거실에 배실 되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징벌이 끝나고 배실되어 가보니 2중 5실 이었지 근데 그거실에는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죽여 무기 선고를 받은 김길태가 있었는데 김길태 방은 2명만 집어 넣는다고 전에 들었는데 나까지 3명이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지 내가 들어가자 마자
김길태가 교도관에게 관구실 면담요청을 했지 무슨 정신과 약을 먹는지 잘때 무의식 적으로 발을 차서 옆에 사람이 있으면 싸움이 나는데 그러면 조사징벌거실에 가야하여 관구실에 얘기하여 김길태는 2명이상 집어넣지 말라고 부탁하여 계속 3인거실에 2명만 있어 잘때 가운데를 비워 뒀는데
내가 들어가면 가운데 사람이 누워자야 하는데 고의 적으로 그런건 아니지만 무의식적 으로 발길질을 하면 싸움이 나니까 안된다고 하며 관구실 면담요청을 김길태는 하고 나도 이런 정신 병자와 왜같이 집어 넣냐고 그동안 2명만 계속있었다는데 하며 교도관에게 따지며 전실을 요청하자 교도관이 처음엔 안된다고 그랬다가 팀실과 연락하여 조율하더니 나보고 짐을싸라고 하던데 짐을 들고 가보니 2중11거실 이었네
이상하게 징벌실에서 징벌끝나기 전날에 잠에서 꿈에서 들은 대로 되는것이 우연일가 필연일까?
그곳은 빈방이 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조금뒤 한 사람이 들어오고 저녁에는
상층 3인 거실에서 둘이싸워 나가자 혼자 나두지 않는게 당시 교도관들 방침이라 한명을 내가있는거실로 보내 좀편히 자는가 생각 했는데 하루도 못 넘기고 3명이 쓰게 되어
다음날 오후 한명이 공장 출력 나가고 또 2명이 되었는데 잠시후 마약 사범이 들어와 또 3인거실이 되었네
마약 사범은 집이 부산 이라고 하고 한놈은 대전이라는데 대전이라는 놈은 원래는 집이 대구래
그놈 하는 얘기가 대전교도소에서 들은 얘기 라는데 사형받은 놈 얘기인데 아버지가 부인과 딸을 죽이고
불이 나서 죽은 걸로 위장 할려고 불을 질렀는데 시체를 해부해 보니 폐에 유독 가스가 없이 질식사 하여 추긍끝에 사건의 전모가 들어나 사형선고 받았다는 확인 되지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
마약 사범은 파란 명찰인데 이놈은 나보다 몇살 아래인데 처음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그러 더라고 몇칠후 3인 모두 거실 청소를 하다
그놈이 허리를 잡고 쓰러 지는데 의무과 진료 받으러 다녀오고 약 일주일간 허리 잡고 아프다고 운동도 제대로 못했지 의무과 x레이 사진촬영결과 허리뼈가 좀 휘었다고 하네 이놈 얘기로 는 이거실 오기전 부터 허리가 아팠는데 경북 제1교도소 이송오기 전부터 사회 있을때 농구 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점점 심해 진데나 마약사범 이놈 하는 얘기는 2동 상층에 있을때 담당 교도관 이 바뀌기 전에 2중 담당 직원까지 불러 같은 거실에 있던 수원에서 이송왔는데 고향은 전라도인 사람을
카메라 사각지역 으로 불러내 사동 카메라 없는 사각지역 에서 심하게 구타 했데나 마약사범 이놈은 부산에서 이송온 놈인데 교도관들은 지한테는 구타를 안했데나 3명중에 마약 사범이 영치금이 제일 많은데 먹을걸 사다가 일일이 나눠주고 운동갔다 오면 내신발 정리도 하고 나한테 비유를 마춰주려 노력했다
그런데 내가 저녁에 화장실 간사이 방에 같이 있는놈과 얘기하는 소리를 우연히 주어들 었는데
내 욕을하며 내가 출소하여 미국 캐나다나 등지에 나가서 난민신청 하여
삼성회장 막내딸이 회장 본처와 장남이 청부살해하고 날희생양으로 몰아 누명씌우고 또 나에대한 지속적인 음모를 꾸미려 하여 외국에서 난민 신청하면 삼성이 망할수도 있다고
삼성.이건희 장이 천억주고 합의 했으니 출소 시켜야 하니 지금은 누명씌워 엮을수없고
그놈이 나보다 만기출소가 이주일 빠르니까 저놈이 먼저 출소하여 나에게 허리를 폭행 당하였다고 검찰청에 고소하여 누명 씌우면 거실에 있던 다른놈이 증인으로 나에게 폭행 당하는걸 봤다고 누명씌워 거짓 증언해 주면 저놈이 어느정도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그때까지 날 징벌거실에 안가게 비유 마춰 주고 잘 데리고 있자고 하는 작당하여 모의 하는것같은 소리를 듣고 화장실 문을 열고 방금 날 모함 하는 소릴 얼핏 들은것 같은데 무슨 소리 했냐고 묻자 그놈은 아무소리 않했다고 하여 내가 욕을 하고 화를 내도 이것들은
나한테 아무소리도 않했다고 덤비지도 않고 비유를 맞춰 주려하네
그런데 나이 쳐먹은 대구 놈이 갑자기 나에게 욕 지거리를 하는데

열받은 내가 큰 소리로 왜 네게 욕을 하냐며 나도 쌍욕을 하자

나에게 욕을 않했는데 tv 보고 지들끼리 욕을 했는데

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큰소리냐며 뻔한 소리를 짓거리네

분명이 이것들이 나가 화장실 있는 사이 험담을 한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후 저놈들이 더이상 대들지 않네 그후 마약쟁 이가 나에게 아무소리도 않했다고

거듭 말하며 존댓말로 나를 살살 달래네
나보고 오해 한것 같다면서 그래도 기분 나쁜일 있으면 미안 하다고 대구놈과 같이 사과하네 누구한테 이런말을 해도 믿지 않으려할

듣도보도 못한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후 고민을 했지 저놈들의 말이 사실이면 내가 출소하여 외국 나가기전 출국금지 시켜 내가 외국나가 난민신청 하지도 못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내가 추리한게 맡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교도소 이송을 다니며 겪은것을 보더라도 전무후무 하게 나에대한 조직적인 모함이 존재하는걸 내가 직접 경험하였기에 숨길수 없는 정황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배후는 단한곳이다 삼성그룹 오너들이다


내가 출소해도 외국나가 이러한 사실을 외국에 폭로하여 난민신청이 받아들여 지거나 그렇지 못하 더라도 외국에서 폭로 하면 삼성이 망할수도 있으니 이들이 조직적 음모로 나를 특히 내가 미국 등에 못나가게 모함을 꾸민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약 쳐먹고 유통하여 들어온 놈은 부산이 집이 라는데 날 깡패 두목 대하듯이 잘했다
나보다 만기출소가 2주일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지가 입던 옷이며 장갑을
사회에서 구입한걸 주길래 나는 받기를 거부했다
나중에 돌변해서 저놈이 줘놓고 나보고 훔쳐 갔다고 하면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졸지에 나는 절도범이 되는거야
특히 대구교도소 있을때 포대공장 반장도 2급달고 이송가기 직전에 누군가 모함하기 위해 반장 사물함에 부정물품을 집어 넣고 교도소 내에 신고함에 편지로 신고하여 누명씌워
반장이 부정물품 으로 조사수용 됐다고 내가 징벌방에서 들은 적도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이 징벌 받으면 변호사 까지 사서 고소 한다고 하던데 그후 경고로 나갔는데
사실 고소해 봐야 범인이 자백하지 않는이상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에서 증거를 발견할 방법이 거이없다
왠지 느낌에 마약쟁이 저놈이 주는 사회에서 산 옷이나 장갑을 받으면 나중에 저놈이 훔쳐 갔다고 뒤집어 씌울껏 같아서 거절했다뭐 저놈이 지 영치금 으로산 훈제닭 이나 우유나 소세지 떡갈피 과자 빵 과일 같은거
먹으라고 주는거야 먹으면 소모품 이니까 그만 이지만 옷은 문제가 틀리지
교도관이 그놈과 짜고 엮으려고 들며는 내영치 품목에 없는 물품 으로 확인하고
어디서 났냐고 해서 저놈이 줬다고 말해도 돌변하여 준적이 없고 분실 했다고 거짓말하면
꼼짝 없이 하소연도 못하고 절도범 으로 누명쓰는 거지
이 쌕끼가. 내.앞에서는. 살살기고. 잘하고. 운동.시간이나. 종교활동 .시간에. 딴데. 가서는. 이상한 .거짓말 .하는건 .아닌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라고 .나는 거이 ,확신같은 .생각이 .들었다
삼성회장.본처 .홍라희와 .장남 .삼성전자.부회장.이재용이 . 날. 나훈아. 처럼. 의도적으로 .거짓.소문으로 .깍아 .내리고 .날 누명씌우려고 .치밀한 계획하에. 저놈을 .보냈다는 . 정황이 .점점더 확실성이 .있어 .보였다


-참고로-
(60-프로이트의 행보는 확실성의 주체를 토대로 해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 적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관해 확신할수 있는지 를 문제삼는 것이지요 특히 꿈의 경험으로 부터 무위식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
관건 일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컨대 주체가 꿈에 대해 이야기 할때마다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것 그 꿈의 텍스트를 얼룩 지우고 더럽히고 오염 시키는 것
나는 확신 할수없다 나는 의심한다 - 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실제로 겪었던 것과 이야기 되는 것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존재 한다면 어느누가 주체가 하는 꿈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을수 있을까
그런데 의심은 바로 프로이트 에게 확실성의 근거 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바입니다
프로이트는 어째서 의심이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지를 밝힙니다

-61- 즉의심자체는 무언가 지켜야 -숨겨야 -할 것이 있음을 뜻하는 기호라는 것입니다 - 어쨌든 드러나는 것은 즉 들통나기 십상인 변장이나 가발속 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니 하지만 어찌 되었던 제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데카르트의 행보와 프로이트의 행보가
서로 근접해 수렴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의심하는 바로 그곳에
왜냐하면 결국 그것은 그이 꿈이며 처음에 의심을 품었던 것도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 .이라고. 해야할 .어떤 .생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 .했지요 .무위식적. 이라. 함은
그 .생각이. 부재자. 로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타자들 -다른것들 ? 에관여 62- 하는 순간부터 그는 바로 ㅡ그가. 의심하는 .자리에서 .나는. 생각한다를 .불러. 들이는데 ..바로. 이. 나는. 생각한다를 .통해. 주체가 .자신을 .들어내게. 될것입니다..
요컨대. 프로이트는 .조금 .이라도. 누군가가 .자기대신. - .자기 .자리에서. -. 사유를. 하고있다 면-바로 여기에 도약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사유가 이를테면 그것 자체만의 나는 존재한다 .와 .함께 .그곳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62- 프로이트가 세상을 변혁시킬 만큼의 진보를 완수해 낸것은 그가 - 주체가 거처하는 곳으로서의
그 무의식의 장의 확실성을 단언했기 때문입니다 -62-

63-우리가 주체라는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있는이상 주체의 수준에서 시작된 것은 절대로 무위로 돌아가지 276P-않는 다는것 또한 알고 있음을 지적해 두기로 하겠습니다
데카르트는 이점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그는 그 주체가 이전의 모든 지식을 폐기한 확실성의 주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했지요
하지만 프로이트 덕분에 우리는 무의식의 주체가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그가 확실성을 얻기 이전부터 사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의 상관항은 더이상 속이는 타자가 아니라 속는 타자 라는 사실입니다
63-주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이 우리 -분석가- 를 속일수 있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분석가- 가 속을
64- 수 있다 - 틀릴수 있다 - 는 것이 지요 우리 모습을 보면 여느 세상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속을 -틀릴- 수 있는 사람 들 임이 분명하기 때문 입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는 모든것을 고려 해야 하며 거기서 추구되는 모든 평가 확실한 것과 확실하지 않은것에 대한 모든 평가의 척도로 부터 자유로워 져야 - 그의 표현에 따르면
freimachen- 합니다
무엇인가 장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약간 만 암시 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주체와 관련된 흔적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간주 해야 합니다 69-불안은 실제로 속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석에 있어 중요한 준거 입니다 하지만 불안이 제구실을 못할 수도 있지요 분석 경험 속에서 불안에 잠식되어 버리지 않으려면 불안의 경로를 정리하고 이를 테면 그것을 적절히 조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석가는 주체의 무의식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어
70- 떻게 확인할수 있을까요 프로이트의 저작속 에서 이 사례는 환상의 장면이 바로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각별히 중요합니다
실재는 환상을 지탱하고 환상은 실재를 보호합니다
-72- 지난 시간 에는 무의식 개념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무위식의 진정한 기능은 개념 혹은 본원적인 기능 즉 절단 - 단절 -기능과 시원적이고
창시적으로 깊이 연관을 맺는다는 데 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절단-단절- 을 시니피앙 자체와 구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의 기능과 긴밀히 연결시켰습니다
무의식에 대해 말하면서 주체를 언급한 것이 뜬금 없는 이야기 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것이 하나같이 동일한 장소 주체라는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여러분이
이해 하실 수 있도록 이러한 주체는 최초의 확실성의 토대를 하나의 점으로 환원 시키는 데카르트적 경험을 통해 아
-73-르 키메데스적 가치를 획득 하게 되었는데 이는 특히 그 주체가 뉴턴을 기점으로 과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게 해준 받침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프로이트 본인이 사용한 은유를 따르자면 일순간의 가늠속 에서 나타나는 모든것은 일종의 선매 에 의해 다시 닫힐 운명 달아나 버릴 운명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지요 동시에 저는 이를 통해 이미 물리학에서 이뤄진 뚜렷하고 단호한 결정 작용이 다시 하나 나타나기를 물론 이번에는 주체에 대한 추정과학 이라 부를수
있는 전혀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를 기대 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이란 의식이 잠재 의식적인 것으로 부터 불러내고 펼쳐놓고 판별해내고 꺼내놓는 어떤것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거부된 것에 의해 구성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전에 받침점 이라고 부른것을 가리키기 위해 데카르트가 사용했던 용어인 즉 사유 입니다
-의식 너머의 장에 사유가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의 주체가 나는 의심한다 라는 진술과 동일한 상동관계 속에서 결정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러한 사유를 표상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74-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를 포착한것은 나는 의심한다 라는 언표행위를 통해서 이지 그것의 언표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프로이트의 분석경험은 오로지 그의 행보와 더불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프로이트의 행보를 데카르트의 행보와 비교한 겁니다
프로이트가 주체를 겨냥하는 것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라는 점입니다
여기꿈의 장이야 말로 네가 있는 너의 집이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점입니다
-75-주체는 그것이 있던곳에 자신을 자리매김 하기위해 거기에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있던곳은 바로 실재 입니다
그것이 있던곳에 심리가 아니라 주체가 - 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물망을 식별해내는 것입니다

277P-우리가 그것을 식별할수 있다면 이는 우
-76- 리가 맴돌면서 되돌아 오고 지나온 길을 다시 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교차하기 때문 이지요
꿈의 해석 7장에 -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경험으론 거기서 어떠한 자의적인 것도 확인할수 없다 그것은 우연을 벗어 나도록 서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살과 피부사이라는 표현처럼 의식과 지각사이에 방대하게 펼쳐져 있는 특수한 스펙트럼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이두 요소는 나중에 프로이트가 두번째 지형학을 구상할때 지각-의식
체계를 구성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때 이두 요소를 가르는 간극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간극이 바로 타자가 위치하는 곳이며 주체가 구성되는 곳이니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지각과 의식은 완전히 분리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유추해 냅니다
즉 지각의 흔적들이 기억속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그것들이 먼저 지각속에서 지워져야 하며 또반대로 기억이 지각의 흔적 속으로
-77-들어가려면 먼저 기억이 지워져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적으로 구성 되었음에 틀림없는 어떤시간을 지적합니다
유비를 통해 흔적들이 구성되는 층들이 있음을 지적 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이 공시태에서 문제는 단순히 우연과 인접성의 연합들로 구성된 그물망 만이 아님을 명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둡시다 -77-
-78- 매번 읽는 즉시 이해할수 있었던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의 실마리가 거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우리도 윌과 프로이트를 재발견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79- 우리가 주체를 불러내 무의식의 자신의 집으로 돌려 보낼수 있는것도 - 어쨋든 중요한것은 누구를 호명 하는지를 아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데카르트의 행보 덕분입니다 사멸하건 불멸하건 우리는 항구불변의 영혼을 불어내는것이 아니며 그림자나 분신 유령을 불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방어의 장소나 여타 도식론 들의 장소인 이른바 방벽을 두른 정신세계를 불러 내는 것도 아니지요 호명되는 것은 주체이며 따라서 선택될수 있는것도 오직 주체 뿐 입니다
성서의 우화에서 처럼 부름을 받는 이는 많아도 선택 받는 이는 적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름을 받은 이들만이 선택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프로이트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명되는 자가 주체 바로 데카르트에 기원을둔 주체라는 토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토대는 분석에서 기억하기라 불리는 것이 진정한 기능을 부여해줍니다
기억하기는 플라톤적 의미에서 상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저너머의 최상의 진리에서 유래한 선과 미의 에이도스 흔적 형상등이 회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저속한 만남과 우리보다 앞서 떠들고 있던
모든 사람들 에게서 탄생한 하찮은 무언가의 구조적인 필연성들 그리고 우물거리며 더듬더듬 거리면서도 어떤제약들 -오늘날 수학속에서 그러한 제약들의 반향 모델 스타일 등을 다시 만날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을 벗어나진 않는 구어적인 언어들의 시니피앙적 구조들로 부터 유래 합니다
교차라는 개념에서 보았듯이 회귀의 기능은 본질적 입니다
단지 억압 되었던것이 되돌아 온다는 의미에서 만이
-80-아니라 무의식 이라는 장의 구성 자체가 근거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프로이트가 자신의 확실성을 확보한 것은 아닙니다
확실성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욕망의 법칙을 인식 했다는 사실로 부터 온것 이지요 그의 텍스트 에서 확인 할수 있2듯이 자가 분석을 통해
그가 자신의 욕망의 법칙으로 인도되지 않았다면 그는 이 확실성의 내기에서 앞으로 나아갈수 없었을 겁니다
-82-주체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 가는것 자신의 전력을 회상해 내는것 이 모든것은 실재라 불리는 어떤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 까지만 진행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수준에서 사유로서 적합한 어떤 사유는 비록 나중에 완전히 되돌아 가기 위해서 일지라도 - 항상 동일한 어떤것을 비켜 간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실재란 늘 동일한 장소 사유하는 자로서의 주체 즉 rescogitans 가 그것- 실재 -과 만나지 못한 장소 ?로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반복을 하나의 기능으로 발견 하는 전과정은 사유와 실재의 관계를 이런식 으로 명확히 해야만 밝혀질 겁니다 -83- 프로이트의 텍스트에서 반복은 재생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 93- 꿈의 해석에 나오는 저 비운의 아버지 를 떠올려 보십시요
원문에 따르면 그는 아들의 시신을 백발의
노인 에게 맡기고 옆방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깜짝놀라 잠에서 깹니다 그를 깨운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그를 실재로 불러 들이기 위한 어떤 소리의 현실 쇼크 노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일 즉 촞불이 넘어져
아들이 누워 있는 침대를 불태우고 있는 현실 그 자체와 거의 흡사한 것을 그의 꿈속에서 나타내주는 어떤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테제 즉 꿈은 욕망의 실현이라는 테제를 뒷받침 해주기에 적당치 않아 보이는 무엇인가 가 있습니다
-94- 즉 프로이트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아이가 침대 옆에서 아버지의 팔을 잡고 비난하는 듯한 어조로 속삭인다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게 안보이세요 이러한 메세지
안에는 아버지로 하여금 옆방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실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소리에 들어 있는 것보다 더많은 현실이 들어 있지 않을까요
이 말속에는 아이의 죽음의 원인이 된 어긋난 - 상실된 - 현실이 나타나 있는게 아닐까요 죽은 아들이
- 실제로 -그에게 건넸을 법한 말 죽은 아들로 부터 영원히 떨어져 나온 말을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영원히 마음속에
담아두게 된 것인지 - 프로이트는 아마도 고열때문일 것이라 가정합니다만 - 누가 알겠습니까
그 꿈속의 문장에서 알아봐야 한다고 프로이트가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요
-96-프로이트는 신은 무의식이다 입니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일 즉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던
현실속의 유감스런 사고에 대한 표상 속에서 주체의 의식이
깨어난다는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이사고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두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잠깐 쉬고 싶었던
아버지 아들의 시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사람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때문에 선의를 가진 누군가로 부터 잠이든 것 같군 이란 말을 들었을 법한 사람이 모두가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가지 사실들만 알고 있습니다
즉 모든이가 잠이 들어 있는 세계 속에서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게 안 보이세요
라는 목소리 만이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그 자체가 불쏘시게 입니다 그것이 떨어지는 곳마다 불이 붙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를 알수 없는데 불꽂으로 인해 불길의
즉 실재에 까지 뻗쳐 있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 에게 고통을 안기며 떨어져 나온
-97- 꿈속의 문장속 에서 깨어 났을때의 그의 의식이 될만한 것의 이면을 알아 보게 되며 그러면서 또한 꿈속에서 표상의 상관항 이라
할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문은 우리가 여기서 꿈을 실제로 표상의 이면 이라고 보는 만큼 더더욱 놀라운 것이지요 어쨌든
그 무엇은 꿈의 이미지 적인 측면에 속하므로 바로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에 대해 논의 하면서 본질적 으로 무의식을 결정짓는 것이라 지적 했던것 이것은 표상적 대표자 라고 무미 건조하게 번역 되기도 하지만 표상의 대리자가 적절한 번역 이지요
실재는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고 작은 소음 지극히 사소한 현실에 의해
대표- 대리 될수 있습니다 )
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자크 라캉 저 | 새물결 | 2008년

-내가 징벌이 끝나기 전날밤 꿈에서 들은 11거실로 배실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미래를 예지한 꿈이라기 보다는 교도관들이 새벽에 내 거실을 지나가다 교도관들이 떠드는 소릴 내가 꿈을 꾸다가 주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조직적 음모로 이미 나를 11거실로 배실한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외국.나가서.. 난민신청을. 할것을 .두려워한.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나를 외국 나가기.전에. 출국금지 .시키려고 .치밀한 음모극일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이건희.회장이. 자신이 .밖에서 .낳아. 아기때 .데려와. 호적에 .입적.시킨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을
삼성회장.본처인 .계모 .홍라희와 이복형제인.장남.이재용. 장녀.이부진. .차녀 .이서현과

279P-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회장. 홍석현.등이 자신이. 텍사스.암센터.에서 .폐암.치료.받을때
당시 뉴욕에서 근처에 있던 이재용이 진두지휘하여 이건희회장이 자식들중에 가장총애 하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을자신의 본처인 홍라희와 장남인 이재용이 공모하여 청부살해한 의심에 무게를 두고 파해쳐 그 의심이 사실로 드러날경우 자신의 아버지인 삼성그룹 창업주 경남의령 태생의 이병철 회장.으로 부터 물려받아 힘들게 일군 삼성그룹이 망할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차마 진실을 파해칠 생각은 못하고 진위여부를 알 생각은 없고 누가 봐도 말도안되는
무조건 천억주고 합의 봤다는 본처와 장남의 주장을 인간적으로 정황상 의심이 가지만
위의 설명처럼 어거지로 믿으려 하며 일단 천억주고 합의봤다고 구라를 쳐놨으니 일단 출소 시키라고 하자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 눈치봐서 날 일단 출소시키고 외국 나가기 전에 다시 누명씌워 엮으려고 했던것 같은데 낌새를 눈치채고 조치를 취한 것이지 내가 외국 안나가고 한국에서 머물정 거리다간
한국은 삼성 자체가 정부나 마찬가지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데
전과자인 나하나 시비걸어 싸움등 으로 엮거나 누명씌워 다시 교도소 집어 넣고 사회와 격리시키 려고 더러운 모함을 꾸밀게 뻔하고 대구교도소 징벌거실 에서 우연히 들은 서울 남산 전공을 졸업 했다는 사람처럼 8년 아니라
그 이상도 못나가게 공무집행 방해 업무방해 교도관폭행 등으로 엮어서 누명씌워 추가 징역을 띄울수도 있는 것들이다 전과자는 모든면 에서 불리하다 전과없는 사람과 싸움하면 경찰서 가서 신원조회 하여 전과가 나오면 전과자 라는 이유만 으로 전과자만 구속될 확률이 높고 공권력에 의해 여러가지 차별이 심하다 불이익 당하기 쉽상이다
2012년 목포교도소로 이송 갔을때 경상도 출신 해병대 중사제대 했다는 무기수는 20년이상 살고 감형 받아 출소하여 나갔는데
고시원 사장이 무기수가 가석방 으로 출소하여 사고치면 구속되어 다시 무기수가 된다는 약점을 알고 일방적 으로 당하고 또 다시 구속되어 무기수로 살고 6개월 마다 징벌없이 생활 잘해야
보호감찰 에서 심사하여 다시 출소 시킬지 심사 한다고 하지 않는가 무기수 들은 감형받아 출소하여 나가도
이런 불미스런 일에 엮이면 다시 구속되어 이런 고통을 당하여 대들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했는데도 그랬다고
나에게 억울함을 호소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출소하여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국에 머물면 국가정보원 보다 더 정보력이 빠르다는 삼성구룹에서 내가 가는곳마다
조직적인 모함으로 돈을 못벌게 해방놓고 취직도 못하게 하고 어디 공장이나 공사현장에 일하게 되도
주변에 거짓말로 험담을 흘려 방해하고 누명씌워 자신들 유리한쪽으로 유언비어를 퍼트릴께 뻔하고 또 살살 약올려 내신경을 건드려
시비를 부쳐 다시 구속시켜 교도관들 사주하여 다람쥐 체밖기 돌리듯 계속누명 씌워 엮어 추가징역 띄워 사회와 격리시키려 할께 뻔한데
무슨 만화영화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교도소 안에서도 모함을 당했고 사회 에서도 모함을 당했다
나의 마지막 희망은 외국 나가서 이런 억울한 사연을 해외에 폭로하는 길뿐 이라는 걸 s구룹 오너들이 모를리 없겠지 그래서 나보다 만기가 이주일 빠른 허리뼈가 약간 휜놈을 계획하에 나와 같이 집어 넣은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 했는데 내가 의심 할까봐 김길태 거실에 일단 집어 넣었다가 김길태 나 나의 항의가 들어오면
마지못해 11실에 배실하고 저놈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시나리오 데로 집어넣어 나를 누명씌우려고 그런다 생각하니 생각하니 일단 소나기는 피해 가라고 내가 욕을 하고 지랄을 해도 덤비지도 않고 살살 내비유나 마춰주려 하네 내가 운동갔다 올때마다 네신발을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약 쟁이가 먼저 꺼내 주고 내가 그냥 벗어 놓고 거실에 들어가면 내신을 정리해주고 이놈 영치금으로 먹을것을 사다가 일일이 조리하여 먹으라고 갇다주고 거실도 걸레질도 잘하고 밥그릇도 잘닦고 하는 이놈의 정체가
결국 나를 누명씌워 폭행으로 엮어 외국나가 난민신청 못하게 음모를 꾸미려는게 아닌가 생각들어
나는 다시 그거실을 나와 11동 조사 징벌실에 가자 이번엔 중 층으로 보내네
어쩌면.현재 삼성전자 부회장.이재용.이가 나를 너무과대 평가 했는지도 몰라 내가 외국 나가면 대단한 인맥이 있어 삼성회장 배다른막내딸.이윤형.양이. 청부살해 당한 진실을 파해쳐 전세계 양심에 알려 이재용의 패거리들의
범행이 백일하에 들어날까봐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겁을 집어 먹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런 음모를 계획했을 가능성도 배제를 못한다
조사 징벌 사동인 11동 중 층 교도관 놈은 저번에 날 폭행하여 내가 인권위에 진정하고 법무부장관 에게도 청원하여 저놈이 부인하여 기각 됐던적이 있다 9월에 교도관들 인사 이동이 있었는데 11하 층과 11중층 담당 교도관이 다 바곁는데 저놈만 안 바뀌고 중층으로 간것은

어쩌면 내가 출소하면 나에게 허리를 맞아 다쳤다고 누명씌워 내가 외국 못나가게 출국금지 시키려 작당하여 음모280P-를 꾸미려는데 내가 그전에 조사 징벌실 오면 마약 사범과 허리 아픈놈과 헤어지게 되니 나를 누명씌워 엮을수가 없어 조사징벌실에 못오게 하기위해 나하고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교도관놈을 배치 시킨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 이것들 하는 행동을 보면 충분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드디어 해가 바뀌어 대망의 2014년 1월이 되자 토요일쯤 징벌이 끝난것. 같은데 배실되어 가보니 이번엔 2동 상층 이었다 상층은 3층에 있는데 그 거실에 가보니 내가 경북북부 제1교도소에 이감와서
11하 징벌거실에서 잔여 징벌을 모두 살고 해제되어 4급수 사동인 2동에 처음 당시 배실 되었을때 배실되었던 바로 그 거실 이었다 보니 두놈이 있었는데 한놈은 덩치가 큰 놈 이었다 경북 제1교도소에서 하도 많이 싸워서 폭행으로 추가징역을 받아 만기출소 기간이 1년 이상 지났는 데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지금도 징벌방에
있는 대구놈이 있는데 교도소를 상대로 소송많이 걸어
교도관 들이 싫어 하는 사람을 그놈과 같이 계획적으로 집어넣어 싸움 시킨다며 교도관들이 그놈을 이용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나에게 말하며
지가 그놈과 싸워 법원에서 재판받고 추가징역 4개월 받았다고 지한테 폭행 당했다는 놈이 복싱 했다는데 주먹이 어찌 빠른지 여러대 맞다가 지가 나중에 그놈을 힘으로 제압해서 잡아 때려서
그놈을 이긴 댓가로 징역 4월을 받았다고 은근히 지 싸움 자랑 하는것을 보고
그놈이 몇칠후 나에게 덤벼 싸워서 멱살을 잡아보니 내 상대도 안되는 놈이야 벽에다 밀치고 한방 때릴 려다가 만기출소 날짜가 다되어 엮기기 싫어 때리진 않고 멱살잡고 벽에다가 밀치며 제압만 했다
그래서 그놈과 같이 조사 징벌실인 11동을 갔는데 그놈은 하층으로 나는 중층으로. 배실 되었는데 11동 조사 징벌실 중 층에는 나하고 사이가 나쁜 교도관이 있는데 계속 중층으로 나를 배실하는건
뭔가 나를 괴롭 히려는 의도적인 게 있는것 같은데 당시 나로선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중층에 꼴보기싫은 교도관놈 있는데로 엿장수 마음 이라고 팀실에서 계획적으로 보내는것같은데
다시 징벌 22일을 받고 하층으로 가려고 또 거기서 저녁에 문을 차고 떠들자
묶였는데 팀 실 에서 나를 다시 중층으로 보내네 원래 그 사동에서 소란을 피우면 보편적으로 다른사동으로 보내던데 나는 다시 엿장수 마음 대로 라고 중 층 으로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주간 근무자가 오더니 이놈은 그 전에도 나를 폭행해 진정 청원 둘다 했지만 기각 처리된 놈인데
나에게 감정이 안좋 았는지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나를 잡을려고 술 쳐먹고 출근 했는지 술 냄새가 심하게 나더라고 이놈보다 계급이 높은놈의
배후에 지시가 있는게 농후해 보였다 교도관 놈들은 결코가혹행위를 해서 자신들이 손해 보는짓은 하지 않는다
교도관들이 가혹행위를 해도 무방한 사람만 건들인다
그런데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특히 교도관들이 한통속으로 뭉치는 경북북부 제1교도소 같은경우는
왠만한 권력과 돈이 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교도관 들과 진실 게임을 해서 이길 확률이 극히 적다
오전 점검이 끝나자 갑자기 술 냄새를 품기며 오더니 줄을 너무 약하게 묶었다고 징벌실 문을 열고 나를
관구실로 끌고 갔는데 이번말고 저번에 관구실에 왔을때는 교도관 여러명이 어떤 정체불명의 사람을 잡고 벽에 다가 머리를 세게 여러번 부디치는데 당하는 사람은 비명을 지르 더라고 그 모습을 보는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저렇게 강제로 벽에 다가 교도관 들이 개때 같이 달려들어 잡고 죄수 머리를 벽에 사정없이 쳐박고 만약에 다치거나 죽으면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고 누명 씌울게 물을 보듯 뻔한 것 아니냐
당시 경북북부 제1교도소 11동 담당 관구실 안에는 cctv 카메라가 없었다
두놈이 나를 잡고 발로 내 몸에 다가 데고 있는 힘껏 포승줄을 잡아 댕기며 세게 묶는데 여기는 다른 교도소와 달리 포승줄로 죽일 듯이 세게 묶는데 피가 안통할 정도야 그렇게 세게 묶인 상태에서 카메라 없는곳 에서 교도관놈에게 폭행 당하고 너무 세게 묶여 피가 안통해 정말 이대로 계속 묶여 있으면 죽을것 같았다 너무 고통이 심해 쓰러져 몸부림 치는날 교도관이 발로 밟고 욕을 하고 조롱하는 이것들은 악마 보다 더 잔인한 놈들 이다 약자 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놈들이 머리좋은 공무원 특히 일부 교도관들 습성 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시대때 일본 순사들이 조선백성 에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이런 식으로 심하게 하여
죽거나 병신이 된 독립 운동가가 많았다 물론 일제시대 때는 이것보다 좀더 심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않을 정도로 공권력 악용에 의한 잔인한 가혹행위
와 린치를 당했다 사실 이들은 공권력이 아니라 삼성그룹 오너들 개인 사조직이나 삼성알바들 보다 더한 절대로 공권력 이라 볼수가 없다 나는 그전에 경북 제1교도소 에서 교도관 에게 폭행 당한것을 진정 청원 다
했는데 전부 기각 각하 당하고

여러가지 인권 탄압을 당한거 전부 국가 인권위원회와 법무부장관 에게 청원 했지만 이들의 조사는 거이 형식적 이고 교도관들 편이라 다 각하나 기각 처리 됐는데 그중에 한여름에 목욕을 하루종일 못하게 하다가 저녁먹고 30분만 시키는 것은 심각한 인권탄압 이라고 생각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장관에게 진정서와 청원서를 다 보냈는데 국가 인권위원회 진정서 조사결과 교도관 들이 목욕을 제한 한적이 없다고 나왔는데

(법무부장관 청원 접수번호 13-743- 조사결과-
저녁 6시30분부터 7시까지만 샤워하라고 지시한 것은 하루 30분만 샤워 하라는 것으로 이는 인권탄압 이라는 내용
-청원을 조사하여 심사한 결과 경북북부 제1교도소가 하절기 수용관리 계획에 따라 1일 30분간 거실내에서 냉수용(샤워)을 허가한 사실이 확인 되는 바 이는 교정기관의 내부 사정에 자율적 결정 사정 이어서
정당하다고 판단 되므로 본 사안은 수용자 청원처리 지침 제10조제 1항 제3호에 따라 기각함)

이라고 다르게 결고가 나와 두 국가기관에 진정과 청원을 같은 사안을 동시에 했는데

어떻게 결과가 다르게 나왔는지

국가 인권위원회는 아예 교도관이 목욕을 30분으로 제안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법무부장관 청원결과는 그걸 인정하면서 교정기관 내부사정의 자율적 결정 이라고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교도관이 나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폭행하고 11동 조사징벌실 에는 저녁 9시 까지 양반다리로 정좌세로 앉게 하는등 여러가지 인권침해 청원에 대해서는 전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 법무부장관 청원 조사관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조사가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 안에서는 거이 형식적 이고 교도관들 말을 위주로 듣는 거이 무용 지물에 가깝 다고나 할까
특히 겨울에 당시 징벌실 에서는 하루에 세번 식수를 취사장 에서 끊여 통에 담아 공급 하는데
더운 여름에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주고 추운 겨울은 일부러 환기 시킨다며 한참을 조사징벌사동 바깥 창문을 활짝 열다가 닫고 뜨거운 물은 식혀서 통에 담아 줘 징벌실 수용자를 더욱 괴롭혔다
법무부장관 청원 조사관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처럼 목욕을 30분으로 제안한 적이 없다고 하면
그 만인 것을 실수로 그런 건지
목욕을 하루 30분으로 제한 하는 것은 교도관 권한 이다 라고 조사 결과가 나와
두 국가기관 조사 결과가 틀려 교도관이 거짓말 한게 분명한 증거로 들어났고 조사 징벌실 목욕을 교도관이
여름철에 하루에 30분 이하로 제한 한것을 법무부장관 청원조사 판결문 에서 시인한것으로 나와
이것은 명백한 인권침해 라고 생각하여 헌법 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서와 함께 조사징벌실 하루 목욕시간을 30분 이하로 제한한 것과 국가 인권위원회 진정과 법무부장관 청원 조사
내용이 틀리게 나와 교도관이 거짓말 하며 사기친 부분 등이 관련 법률이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니 위헌 판결을 내려 달라고 등기우편으로 보냈는데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과 헌법소원을 각하 한다고 통보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이상하게 다시 보정명령을 헌법소원 판사들이 나에게 통보하여
7일 안에 사선 변호인을 대리하여 헌법소원 소장을 내라고 하여 나는 등기우편으로 보정명령을 2013년 12월1일 쯤인가 보낼때
교도소에 격리 수용되어 금전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사선변호사를 구할 능력이 못되어
헌법이 허용한 대로 국선 대리인 선임 신청서를 등기우편으로 헌법재판소에 보냈는데
특별한 이유없이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기각 처리 하고 7일 안에 사선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장을 다시 제출 하라는 것은 내가 제출한 소장이 위헌 판결 날 것 같으니까 아니면 그러한 내용에 같이 포함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해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과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내글에 이의 제기가 있으면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 되지 아무 관련도 없는 교도관들에 심각한 인권탄압을 받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자

어거지로 헌법 재판소에서 국선 대리인 선임 신청을 기각 시켜 헌법소원을 못하게 막은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내가 보낸 헌법소원이 받아 들여져 심사가 들어가면 위헌판결이 안나도 세상에 알려져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을 본처와 장남등이 청부살해 했을 의혹을 파해치는걸 그걸 막으려고 하는게 아니냐고 따지며 내가 헌법재판소에 보낸 소장엔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삼성회장 배다른막내딸을 청부살해 하고 그걸 감추려 하고 삼성회장을 속이려 날 황당하게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고생시킨 정황을 같이 적어 보내자 헌법재판소 제2지정 재판부 결정 날짜는 2013년 11월26일 날짜가 찍혔는데 경북북부 제1교도소에서 받아본 날짜는 정확한 것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후 몇칠후 11월29일 쯤인가

-사건. 2013헌사 931국선대리인 선임 신청(2013헌마 772기본권침해 위헌확인) 신청인 김선진 경북북부 제1교도소 수용중 -

(-주문 -
신청인의 신청을 기각한다
이사건 신청은 헌법재판소법 제70조 3항 단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 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13년 11월26일
그후 제70조 3항을 찾아보니 헌법재판소는 국선대리인 신청이 있는경우 헌법재판소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따라 변호사 중에서 국선 대리인을 선정한다

다만 그 심판 청구가 명백히 부적합 하거나 이유없는 경우 또는 권리남용 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을 국선 대리인을 선정 하지 아니 할수 있다-)
이런 이유로 헌법재판소 에서 나의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을 기각 시켰다
헌법재판소는 변호사가 소송 제기 하도록 하여 국선대리인 선임이 기각된 것은
헌법소원 청구 소송을 할수 없게 원천 봉쇄 한 것이다
나는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을 충분이 할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인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으로 헌법소원 청구 소송을 할수 없게 방해하고
이상하게 헌법재판소 제2지정 재판부 에서

(사건 2013헌마772 기본권침해 위헌확인
청구인은 이 명령이 송달된 날부터 7일 안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보정할 사항-
헌법재판소 법에 제25조3항에 따라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아니하면 심판청구를 할수 없습니다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그 대리인 이름으로 헌법재판소법 제71조 제1항의 사항을 기재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끝 )

?

나는 2013년 12월 초에 등기우편 으로 헌법재판소에 보정명령서를 등기우편 으로 보내며
나는 사회와 격리된 곳에 수용되어 있어 금전적으로나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을수 없는 형편이라
헌법에 있는 내용대로 헌법소원 소송장

(2013헌마772기본권침해 위헌확인)

헌법소원청구를 하며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도 같이 보냈는데 기각 시키고
7일 안에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리인으로 심판청구를 하라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요구이다
그리고 기각한 것을 다시 보정명령 하라는 것은 어느나라 법이냐고 따지며
잔악무도한 이방원 이가 신문고를 설치하여 백성의 고충을 들어 준다고 말로는 떠들고 실제로는 도저히 신문고를 칠수 없게 한것과
지금 나의 헌법소원 청구를 막는 방법과 무엇이 틀리냐고 적어 보낸적이 있습니다
물론 교도소에 수용중인 수용자 들도 개과천선 해야 하지만
나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며 삼성그룹의 개를 자처하는 헌법재판소도 개과천선해야 한다며
국민의 인권의 최후 보루 라며 한국 최고 재판소 라고 떠들던 곳이
삼성회장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이재용 등의 범행을 덥어주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면 교도소에 수용중인 나도 정황상 억울한 점이 있어도 이복형에게 폭력을 행사한 부분은 깊이 반성하고 개과천선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나의 헌법소원을 말도 안되게 이상한 논리로 방해한 헌법 재판소의 행동을 보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뭘 보고 배울지 참으로 씁쓸 하다고
개과천선 하라고 적어 보낸 기억이 난다

(참고자료-조선 3대왕 이방원은 여색을 매우 탐했는데
모두 29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그중 후궁에게서
21명의 왕자와 공주를 두었다
태종이 왕이 되기전에 정몽주를 죽이고 자신의 이복동생 둘을 죽였으며
왕이된후에도 임금을 능멸한다 하여 처남 넷을 모조리 죽였다
또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인 심온이 명 의 사신으로 갈때
수레가 지나치게 호화롭고 전송객이 도성을 뒤덥을 정도로 위세 당당하게 굴자
이를 못마땅 하게 여겨 죽여 버리고 장모 안씨를 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들이 바로 세종의 외삼촌들 그리고 장인 장모다
태종 3대 때 신분 차별이 엄격해 지고 호패법을 실시 하였다 일종의 주민등록증 이었다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 했으며 신문고를 달았으나
북을 울리는 절차가 까다로워 별 효용은 없었다 우리가 학교 다닐때
조선에는 신문고 라는 것이 있어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을때 신문고를 치면 왕이 직접 송사에
개입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기찬 제도가 있었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 스토리는 몽땅 소설이다 하긴 역사 시간에 배운것중 소설 아닌것이 별로 없을 정도다
신문고를 치려면 여러군데 관청에 확인서를 받고 친후에도 결과를 보장 받을수 없으니
그 으시시한 관청을 돈들여 가면서 누가 돌겠는가 그리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많은 관청을 돌동안 해결하면

283P-되는것이지 신문고는 왜치냐 신문고를 칠수있는 억울한 일은 제한되어 있었다
친자확인 즉 역모사건 정실인지 첩인지 양반인지 천민인지 구분에 한해서만 신문고를 칠수 있었다
아무리 고소내용이 옳아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엄벌에 처했기 때문에
사실상 일반 백성들이 신문고를 울린 경우는 거이 없었다
더구나 신분고가 설치된곳이 한곳 뿐이 었기에 지방에서 올라와 담당관청 여러 곳에 허가를 거치고. 신문고를
치려면 시간도 한달 이상 걸렸고
거이 외국 여행 하는것만큼 큰돈이 들었다. 결국 신문고는
순전히 폼으로 달아둔 것이 었다
어쩌다 신문고를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양반들 이었고 송사 내용도 토지나 노비의 소유권 다툼이 주였다
백성들에게 신문고는 그림의 떡이 었던 것이다

-왕을 참 하라 (하)(백성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저자 백지원
진명출판사 펴냄 | 2009.02.13 발간 - )


이방원은 조선백성 에겐 잔악 무도하게 공포 정치 하고
명나라 에서 조공을 바치라고 한적도 없는데 왕을 책봉 받기위해
알아서 말을 갇다 바치자 왕을 책봉받고 난후 호구 잡혀
명나라에서 조선여자와 더많은 말을 요구하여
명나라에게 조선여자 와 더많은 말과 조선의 진귀한 물품을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치며
지 아버지 대하듯 한 조선3대 태종 이방원 의 이중 성격이야 말로
신라 김춘추가 같은민족 백제 고구려를 당나라에게 빌붙어 팔아먹은 정신과
같은 양아치 정신이 아닌가
그후 2013년 12월에 헌법재판소 제2지정 재판부로 부터

(사건 2013 헌마 772 기본권침해 위헌확인)
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아 각하 시킨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시한번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의원이 한국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처남인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 엄청난 떡값을 권력층에 뿌리는걸 안기부에서 도청한 녹음 파일을
재미 사업가 에게 넘긴 것을 입수 하여 폭로하자 도둑놈이 부자집 담을 새벽에 넘어 오는 것을 보고 도둑이야 라고 소리 쳤더니
검사가 도둑놈을 불러 도둑질 했냐고 물어보고 안했다고 하니까 왜 도둑질 안했는데 도둑이야 라고 소리쳤냐고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소 하더라고 노회찬 의원이 하소연 한 적이 있습니다
일부 교도관 들은 조지오웰 글 동물농장 처럼 온갖 돈과 권력의 특해로 통 통히 살찐 돼지를 지키는 충직한 개 돈과권력의 충직한 개 노릇을 하는 흉악범도 이런 흉악범이 없더라고
이런게 어떻게 국가공무원 교도관을 하는지 의심 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게 나에게 무슨 원수라도 진것처럼 가혹행위를 했다

결국 국가 공권력은 돈과 권력의 개에 불과 한것을 내가 확인 했다


(참고자료-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는, “진실이 철저하게 우롱당하는 상태는 지옥이다”라는 주제를 다룬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조직이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 불리고, 거짓 세뇌를 총괄 지휘하는 부서가 ‘진실부’(Ministry of Truth)라 불리는 상태…. )

경북북부 제1교도소에2013년 7월 중순이후 이송와서 짧은기간에 징벌을 5개나 받았어
그동안 4년 살면서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징벌을 받은게 총 30개가 훨씬 넘을꺼야

정말 만신 창이가 되어 지금도 그당시 묶여 고통받은 후유증으로 몸여러 군데 통증으로 과거 처럼힘을 못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하게 당했다 경북 북부 제1교도소 징벌거실에서 힘든것


?

284P-중에 또 하나는 겨울에 다른 교도소와 달리
내복도 하나요 양말도 하나요 그 이상은 주지 않았지
다른 교도소 징벌방은 내복도 여러개 껴입고 양말도 여러개 겨입어 불도안들어오는 차가운 마루바닥 냉방에서
견디는데 경북북부 제1교도소는 한개이상 못입게 하고 특히 아침에 환기 시키다며 교도관들은 따듯한 직원실에 있으면서 창문을 활짝열어 더 추위를 타게 만들었다
고문하는 것도 가지가지 라고 밥도 제대로된 밥그릇도 아니고 플라스틱 개밥그릇 같은것에
밥과 반찬을 너무적게 줬다
더 달라고 하면 더적게 주더라고
2013년 부터인가 수용자 들에게 배급되는 쌀량이 100g 줄었다고 그러는것 같더라고
특히 경북북부 제1교도소 조사징벌실은 마음에 안드는 수용자 에게는 식사량과 반찬이
너무적어 허기가 질정도 였는데
식사량이 너무적어 내가 정량되로 달라고 하자
저울을 가져와 달아 교도관과 사동도우미가 거실에 있던 나는 잘볼수 없는 상항에서
정량 이라며 주는건 더 적었다
내가 저울을 제대로 다는지 아니면 저울을 조작했는지 확인할수 없으니
제대로 볼수있게 해달라고 정당한 주장을 하면
난동 부린다며 또 카메라 없는곳에 끌고가 쇠사슬로 묶고 교도관들에게 집단으로 폭행당하며
오히려 교도관을 폭행했다고 교도관 폭행에 공부집행 방해 업무방해죄로 누명써
검찰에 기소당해 추가징역을 받을수도 있는
인권탄압을 당할께 뻔해 엄청난 손해라
억울해도 참을수 밖에 없는 더이상 내주장을 펼수없게 공권력을 악용하여 강제로 만든다

과거에 조작 간첩사건으로 허위자백 받아낸게 죽는것보다 못한 심한 고통의 고문으로 허위자백 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


2014년 2월7일 경북북부 제1교도소 징벌거실 에서 출소했는데 출소 몆칠 안 남겨두고 어떤 교도관중 한명이 내가 징벌 독방 사동을 돌아 다니며 같은 교도관과 대화중에
나를 내 보내면 내가 교도소 비리를 다 알고 있기에 까발리면 골치아프니 누명씌워 엮어서 내 보내면 안되는데
삼성회장이 천억주고 합의 봤다고 일단 내 보내고 다시 들어오면 죽이라고 했다고
어쩔수 없이 나를 내 보내는데 어떤 결과가 올까 걱정 스럽다며 씨부리는 소리를 징벌독발 거실문 밖에서 떠드는 소리를 우연히 주어듣고 법무부소속 국가 공무원 이라는 교도관 일부가 흉악한 범죄 단체에서 떠드는 저런 소릴 떠든다는 자체가
이곳이 거대한 돈과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의 상위 0.1% 사조직 범죄 집단처럼 느껴져 출소하면 하루빨리 이곳을 떠야 겠다는 생각뿐 이었다
출소를 얼마 안남겨 두고 출소자 짐 검사를 하기전에 사동에서 떠드는 교도관들이 소리를 주어들은 적이
남의 물건 훔쳤는지 정밀히 검사 하라고 하는 소릴 우연히 주어 들은적이 있다
징벌실 에서 출소할때 출소자 짐검사를 엄격하게 하여
전에 2중11실에 있을때 2주 먼저 출소하는 마약 쟁이가 주는 사제옷 이나 장갑을 안받고 돌려준게
만약에 그때 주는걸 멋모르고 받았다면 교도관이 출소자 짐검사 할때 장부와 대조해서 특히 내 경우는 꼼꼼하게 일일히 확인 했는데 만약에 장부에 없는 물품이 나오면 어디서 훔쳤냐고 누명씌우면
빼도박도 못할 뻔 했는데 안받고 돌려준게 다행이지
미친놈 이거나 누명 씌우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나보다 겨우 2주 먼저 출소 하는 놈이 나도 곧 출소 하는데 징역이 2년 가까이 많이 남은 사람이 같은 거실에 한명 있었는데 안주고 나에게 주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절대 안받지
내 물품 이라도 교도소에서 쓰던건 재수 없다고 일부러 버리고 갈 판인데 재수 없이 교도소


에서 주는걸 당연히 안 받지 드디어 확수고대 하던 2014년 2월7일 경북 제1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교도관이 봉고차에 태워 청송 버스 정류장 까지 데려 주더라고


?

그동안 내가 이송 다녔던 서울 성동구치소 에서 형이 확정되어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갔다가 경북 제2교도소 이송 왔다가 목포 교도소로 이송 갔다가 다시 경북북부 제2 교도소로 이송 왔다가 바로 옆이나 마찬 가지인 경북 북부 제1 교도소로 이송갔다가
출소는 경북제1교도소 에서 출소 하는데 서울 성동구치소를 제외하고 내가 이송 다닌 모든 교도소에서 일치하게 일부 교도관들이 나하고 아무 원한도 없으면서
내가 출소하면 삼성이 망하니까 나를 때려 죽이거나 누명씌워 엮어서 계속 다람쥐 체밖뀌 처럼 사회와 격리 시킬려고 그랬는데 삼성 이건희 회장이 천억주고 합의 봤다고
출소 시키 라고 그래서 출소 시키는 것이라고 그러며 다음에 또 들어오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는다고 교도관들이 죄수들에게 은근히 흘려 생각이 짧은 놈들이 대부분인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죄수들이 거짓 유언비어를 곧이 곧대로 믿고 사회나가 또 헛 소문을 여기저기 퍼트리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게 삼성 회장 본처와 장남이 은근히 유도하는게 아닌가
뭐 죄수와 일부교도관이 거짓소문을 퍼트려 봐야 거기서 거긴데 거대한 삼성그룹 오너들이 자신의 조직을 총동원 하여 퍼트 렸으니 전국적으로 퍼졌겠지
물론 세계적인 삼성전자 부회장과 그의 모친이 조직적인 음모로 거짓유언비어를 자신들 유리한게 퍼트렸 겠지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떠든다고 거짓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 겠냐고 죄수들이 떠들어 봐야 누가 믿어 개소리로 듣지 나는 2014년 2월7일 금요일 출소하여 2014년 2월12일 수요일 인천공항

에서 하루전날 여행사 에서 예약한 JAL를 타고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출국 하였는데

나리따 공항에서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고 통과 시켜줘 전철을 타고 도쿄 신오쿠보에 15년 만에 와보니 15년 전에 아는 사람이 운영하던 직업소개소를 찾으니 없더라고
15년만에 오니 신오쿠보가 낮 설더라고 과거 알던길도 잊어버리고 그러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과거 알던곳도 조금 생각나고
그러나 15년 전에는 수중에 돈이 없더라도 아는사람이나 직업소개소 에서 일자리가 많아 숙식을 금방 해결하며 돈을 벌수 있어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당시 많던 한국인 들이 다 어디론가 살아지고 영주권자나 노동허가를 받지 않은사람은 절대 일을시키지 않아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굶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니

과거와는 많이 다른 살벌한 상황이었다
과거에는 싼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많았는데 그런것도 다 살아지고 없다
그야 말로 15년전 도쿄 신오쿠보가 아니었다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에 한국인 여자는 정신대로 남자는 징용으로 끌려와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유린으로 죽었다
그런 일본으로 도피하는 내 자신이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졌고
또 일본으로 급히 도피하듯 온것은 미국은 들어가기 힘들고 캐나다나 유럽으로 가기엔 비행기 가격이 만만 찮아서
상대적으로 비행기 티켓 가격이 저렴한
가까운 일본으로 15년 만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예전과 달리 관광으로 들어온 사람은 일본에서 일을 할수 없게 해 놔서
합법적 취업 비자가 없는 사람을 고용 하다가 걸리면 엄청난 벌금과 함께
영주권자는 영주권까지 박탈 당하고 본국으로 추방 시킨다고 하여
과거 15년 전 에는 한국인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넘쳤는데 지금은 거이 없어 아예 직업소개소 에서도 취업비자 없는사람은 쓰지 않는데 1999년도에 일본도쿄를 떠나기 전만 해도 한국사람들이 많았으며
불법체류자도 일자리 구하기가 쉬웠다 또 사정상 소개비가
없어도 사정을 하면 봐줘 숙식제공하는 일자리를 구할수도
있었다 그리고 싼 민박집도 쉬게 구할수도 있었다
그 야말로 재팬드림 이라는게 어느정도 가능했던 시절인데
그러나 15년후 가본 일본은 제팬드림이 불가능해 지고 영주권없고 취업비자 없는 사람에겐 인정사정 없는 살벌한 상황이이었다 과거와 완전 딴판이다 인정도 없고 정식 취업비자가 없으면 아예 채용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미국을 떠난지도 10년이 넘었지만 미국은 그후 가보질 못해 정확한 지금의 현실은 모르지만 미국도 과거와 달리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여권도 보지도 않고 불법체류자 인지 비자가 있는지도 물어보지도 않고
한국인이 라면 고용해 주는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틀리다고 하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세월이 갈수록 인정이 점점 더 좋아 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네
점점 더 각박해 지고 아메리카 드림도 이젠 과거 이야기 일 뿐
지프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음 날 길 거리에 뿌려진 정보지에 난 소개소를 전화로 물어 찾아가 보니

286P-소개소 사장이 나보고 정말 운이 좋다고 딱 한곳 취업 비자 없는 사람도 쓰는 곳이 있다고 가보니
백 공장 인데 일반 가정집 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곳인데 그곳 사장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곳으로 처음 가니까
혹시 내가 돌아 다니다가 잡히 더라도 여기서 일하는 곳 이라고 얘기하지 말고 잠시놀러 왔다고 얘기하래
그러나 나는 아직 채류 기간이 3개월 가까이 남은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자신들도 힘들게 영주권 땄는데 박탈 당하고 한국으로 쫏겨 난다고 일본법이 그동안 많이 엄해 졌다고 한다
한국사람들 가방 공장 이나 백 공장에서 일하던 불법체류자들 많이 붙들려 갔다고 하네
그래서 지금은 관광으로 온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는 거이 안쓴데 그러면서 나보고 운좋다고 하네
취업비자 없는데 쓰는 사람은 지가 유일한데 왔다고 그러나
그곳 사장하고 서로 맞지않아 오사카에 노가다 일을 갔는데 그곳은
숙식 제공하고 일하는곳 네팔 애들이 많고 네팔 애들은 다 정식 취업비자가 있는애들 나는 관광으로 3개월 체류허가를 받아 원칙적으로 일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놈도 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사람 써 본데나 이것이 우연일가 필연일까
내가 교도소 있을때 부터 미국을 가기위해 캐나다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 난민신청 할꺼라고 여기 저기 떠든게
삼성에서 이미그쪽 캐나다 벤쿠버 공항등에 내가 못빠져 나가게 로비를 해놨는데
내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본으로 2월11일 탑 여행사 에서 티켓을 사서 다음날 바로 일본으로 와서 삼성그룹 오너들이 대책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은건 아닌가 ?
나를 부른 놈은 일본여자와 결혼하여 영주권자 인데 믿기 어려운 이야기 인지 모르지만 이놈은 부산놈 인데 일본놈 에게 아부를 얼마나 잘떠는지
네팔 애들 은 지들 말 로 마음대로 떠드는데 나보고 는 한국말로 일본인들 근처에서 하지말래
내가 일본인 이라고 속이고 일하게 했다고 그런다고 저놈 들이 내가 일본사람 이라고 생각 하겠냐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당장알지 차라리 손바닥 으로 하늘을 가리지
그래서 나는 한국말로 더크게 떠들자 이놈하고 말싸움이 심했지 내가 막 욕을 하기도 했어
한대 때려 버릴 래다가 개값 물기 싫어 봐줬는데
아니 더정확히 얘기하면 저놈은 내가 얘기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로 부터 이미 전해 들었는지
나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고 주변 일본인 들에게 거짓 유언비어 를 퍼트리고 있지
저놈이 삼성오너들 끄나플 이라고 생각하고 그후 결국 떠보려고
저놈에게 지금 미국은 바로 들어가기 힘드니까
내가 캐나다 를 거쳐 결국 미국에 난민신청 하려고 한다고 얘기 한적도 있다
그러자 저놈이 나의 예상되로 과거에 한국에 있을때 삼성계열사
현재 CJ그룹으로 분류 되기전에 그당시 삼성그룹 계열사 일때
잠시 삼성그룹 계열사에 근무 한적이 있다고 실토했지
특히 이놈은 일본놈들 에게 무슨 거짓말로 나하고 싸움을 부치려 한건지
그후 나이 어린 일본놈이 은근히 나에게 시비를 걸어 내가 고노야로 박아야로 라고 심하게 욕한적도 있었는데 공사 현장은 오사카성 부근의 어느 빌딩을 리모델링 하는 공사 였는데
우리가 하는 공사는 기존에 있던 석면을 제거하는 공사로
정말 한국 공사현장 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비닐로 보정공사가 잘돼있어 석면이 외부로 나올확률이 적었지 우리는 오전 8시이후 공사를 시작 하는데 이놈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지 무슨 연구소 직원이
아래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연구소로 들어 가듯이
눈만나온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난후 또 장갑을 끼고
방진 마스크 인데 흡사 군대 에서 화생방 훈련 할때 쓰는 것과 비슷한 걸 뒤집어 쓰는데
일본돈으로 3만엔이 넘는 단다 한국돈으로 30만원 가까이 되는데 필터는 하루에 한번씩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데 오전8시부터 10시까지 공사하고 현장에서 무료로 주는 하얀작업복을 옷을 벗고 버리고 밑에 내려와 담배를 피는등 약30분 이상 쉬다가
올라가면 다시 새것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11시 30분까지 공사 하다가 내려와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이후 다시 새옷으로 갈아입고 헌 작업복은 버리고 오후3시 까지 다시 하얀 옷을 벗고 내려와 30분 쉬다가 올라가 다시 새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4시50분 전에 공사를 마치고 내려온다
손에 목 장갑이 아닌 가죽으로 된 장갑을 끼면 하얀 작업복과 장갑사이에
벌어진 틈은 테이프로 봉하고 역시 하얀 작업복이 머리도 뒤집어 쓰는데 머리와 목 부분의 방진 마스크와 벌어진 목 부분은 테이프로 철저히 봉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한다

287P-이렇게 석면이 발암물질 이라고 철저히 노동자를 보호 하는대 막대한 돈이 들어감 에도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한국의 석면 제거 공사 현장에 이렇게 철저히 보호 장비를 착용하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들었다
하얀 얇은천으로 되어 있는 석면 방재 작업복은 가격이 꽤 나갈것으로 추정되는 대도 하루 4번씩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입게 하는 한국 업체가 과연 존재할까 ?
더워서 웃옷을 벗고 쪼기 런닝만 입고 석면제거 공사를 했다는 한국 어느 공사현장에 비교될 만하다
석면을 버릴때는 마대에 담고 봉인하고 그 마대를 다시 두꺼운 비닐 봉투로 담아 완벽히 봉인하여 이중으로 봉인하여 버린다
석면제거 공사 현장은 물론 아래층 출입구 까지 빈틈이 없게 두꺼운 비닐로 보정 공사가 철저히 되어진 상황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했던 일본이 왜 아시아를 다 차지하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영토 하와이를 폭격한 일본 침략전쟁으로 2차대전을 일으킨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으로 미국 영토 하와이를 포격하고 2차세계 대전을
어떻게 치루 었는지 의문이 풀리는것 같았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도 한국역사 왜곡을 많이 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자신들의 역사 왜곡을 반성하기
위해선 먼저 한국내 인권 탄압과 조작 왜곡 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
지금도 돈과 권력에 의한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인을 상대로
인권탄압을 하고 조작 왜곡을 하고는
그들에게 역사 왜곡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소귀에 경 읽기다
한국 내부부터 정치인 들이 노력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떼거리 패권으로 조작과 왜곡을 없애고 인권탄압이 없게
바로 만들고 난후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으라고 따져야 설득력이 있다
지금도 한국은 부실공사 투성 이다
성남 판교 테크노벨리 야외공연중 환풍기에 올라가 구경하던 관중들이 부실공사로 만들어진 환풍기가 무너져 환풍기 위에서 공연을 구경하던 아까운 여러 목숨을 잃었는데
물론환풍기 위에 올라가선 안되지만 조사결과 무너진 환풍기도 부실공사 였다고 한다
서울잠실 제2롯데 월드도 수족관에 물이세니 영화관이 흔들리니 말이많다
세월호 참사로 300여명의 귀중한 목숨을 잃은게 얼마전이다
이명박 정권때 여객선 선박 수명을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지 않았으면
과연 유병언이 과연 일본에서 20년이 넘은 세월호를 구입 했겠냐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규제개혁 이었나
일본은 20년 넘은 배를 여객선 으로 사용 안한다 는데 말이다
유병언이 정경유착 으로 수많은 장난을 쳤다고 많은 사람이 의심 하는데
아무도 손을 못대고 있다
그리고 유병언은 죽은사인도 정확히 알수없는 의문투성이의 미스테리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볼때는 결국 대기업 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만 별치는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이란 환자에 제대로된 처방을 하지 못하는것 같아 안타 깝다

병원의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게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기술이 숙달되는 것이다

자연법칙중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것이다
아랫물이 좀썪어도 윗물이 깨끗하면 시간이 지나면 아랬물도 깨끗해진다
그러나 윗물이 썪으면 아랬물은 더 썩는다
지금 한국은 윗물이 썪어도 너무 썪었다
과거에는 윗대가리들이 잘못하는걸 일반백성이 알수없게 차단하고
조작음폐 하여 마치 신선들이 사는것 처럼 하늘의 특별한 은총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처럼 거짓 포장하여
백성들이 믿게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여 아무리 감추고 음폐해도 삼분의이 정도는 모르더라도 최소한 삼분의일 정도는 알아 일반 대중을 과거처럼 마음대로 조종하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려고 하지

288P-언론과 방송의 여론몰이가 엄청난 영향을 주니까
지금도 도시빈민층인 노동자나 시골에서 농사짓고 고기잡는 농부나 어부들은 이 뭘알아
방송 에서 보도하는거 진위여부를 알수도없고 그런가 보다 하겠지
그래서 서로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도시에 사는 지식인 들도 거이 비슷해 과거에는 그래도 의식있는 학생들이
사회정의를 부르짓으며 독재권력에 싸우다 죽어 갔는데
비싼 등록금에 요즘 학생들은 그런것도 없고 그저 제살길 바쁘다
발암 물질인 석면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물론 외국인이 아니라 자국 이웃를 철저히 보호 하는게 보였고
시간이 걸려도 완벽히 마무리가 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자국민 노동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모습에 그 의문이 풀리는것 같았다
한국의 공사 현장에는 그런 하얀 작업복 입히고 공사 시키는것 난 아직 못봤고
옷을 입혀도 일주일간 아껴서 입으라고 하던가 최소한 하루는 입히지 않을까 ?
일본에서는 한국인 이든 중국인 이든 외국 노동자가 일본인 성질을 건드리면
일을할수 없기에 조심한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꺼구로 한국 노동자가 중국 노동자 눈치를 살피며 일하는 공사 현장이 많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 밀집지역 같은 데서는 한국 여자가 외국노동자 에게 강간당하는 건수가 많아 한국 여자가 저녁에는 겁에 질린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여의도에 편이 사는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고통에 무관심인 경우가 많다
당장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득만 너무 따지는거 아닌가 의문 스럽다
조선을 서로 점령하기위해 벌인 전쟁에서
일본군대는 러시아 함대와 청나라군을 차례로 물리치고
조선을 차지한 일본은 중국대륙을 거이 장악하고 동남 아시아 에서
영국군대와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맥아더 군대까지 물리쳐 동남아를
장악했다 그야 말로 동남 아시아 대분은 일본 군대가 장악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을 장악하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동맹을 맺기도 했다
미국이 현재 두려워 하는 시나리오는 러시아와 중국이 동맹을 맺어
힘이 약해지는 미국을 기다렸다가
세계를 장악하려 들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핵을 폐기 시키려는미국의 가장큰 이유는 핵이 소형화되어 중동의 is같은 잔악무도한 테러리스트들 에게 만약에 유입되어 미국 본토의 대도시나 군사 요충지 등에 테러를 막기위함 이다
베낭에 들어갈수 있는 소형화된 핵베낭 하나가 뉴욕시 전체를 날려 버릴수 있는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핵을 잘 괸리할수 없거나 통제불능한 제3국들 에게도 소유되면 여기저기서 핵이 관리 잘못으로 터져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 하거나 불법 매매로 테러리스들에게 넘어가는 문제가 생길까봐
핵 확산을 금지하는 거다
그러나 한국에 중공이나 북한핵이 터져 방사능에 초토화된 한국에 과연 미국이 개입하여
보복해 줄지는 미지수 이다
물론 중공이나 북한등이 한국을 전쟁으로 점령하여 공격할시는 필연으로 이길수 있는 나름대로 확신이 섰을 때
만이 전쟁을 일으킬게 뻔 하기에 한반도에 전쟁은 쉽사리 나지 않는다는건 누구나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생존권과 완전한 자주 독립국이 되기 위해서는 핵 잠수함 도입과 핵 보유가 필수적 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북한 이나 중공이 한국을 선제 공격하기 위해서는

선전포고를 하고 정정당당 하게 공격하는게 절대 아님을 우리는 6.25전쟁을 통해
이미 학습하여 더이상 설명 안해도 잘 알 것이다
특수부대를 이용 비밀리 침투한 소형화된 핵 탄두와 세균등을 포함한 화학무기를
가져와 한국의 후방의 군 요충지나 전투기 밀집해 있는 비행장 미사일. 부대 대도시 대규모
국가 산업시설
핵 발전소 댐 등에 터트려 아예 회복하여 보복할수 없게 와해 시키고
전면전을 하려 할께 뻔하기에 핵과 핵잠수함 도입을 서들러야 하는것이다

289P-잠수함 특성상 바다속에 잠항 하기에
위치를 추적할수 없어 적이 미리 전면전을 하기전에 한국 해군의 핵잠수함을 공격할수 없어
육지가 완전히 초토화 되더라도
이 소식을 안 한국 해군의 핵잠수함이 적에게 보복 공격을 할수 있기에
적이 감히 한국을 이런식으로 공격할수 없게 만들기위해
핵 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은 전쟁 억지력에 엄청난 효과가 있어 한국이 유사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당당히 주장할수 있는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한국 해군에 핵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 도입을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
이와같이 전력이 불균형한 국가간의 비대칭 전력에 맞설수 있는 핵심전력은 현재는 핵잠수함과 UDT 와 707부대
같은 능력있는 특수전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과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 특수전 요원에 대한 지원이 경찰특공대 보다 더우대 해야 한다 특수전 요원의 양성은 한국이 적에게 점령 당하여도 끝까지 남아 최후의 그날까지
한국을 점령한 적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보복을 할수 있다는 목표아래 국가 차원에서
능력있는 특수전 요원 양성과 대우를 경찰 특공대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특수전 요원이 경찰특공대 등을로 흡수되는걸 막고 전력이 강화되어 적이 두려워하여 감히 한국을 공격하여
점령 한다는 의지를 꺽을수 있는 결국 전쟁 억지력 까지 덤으로 얻을수 있는 것이다

이미 공산주의를 해체하고
민주국가로의 길을 선택한 러시아가 중공과 동맹하여 세계를 정복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않을 것으로 믿고십다
일본군대는 유명한 윌리엄홀덴 주연영화 콰이강의 다리 에서 보듯이 영국군을 물리치고 동남아와 한반도를 점령하고 중국대륙 거이 대부분을 점령하고 난징까지 정복하자
이에 일본군대를 견제해야 겠다고 생각한 미국은
난징에서 대학살을 자행한
일본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난징에서 당장철수 하여 만주이남 으로 내려오면 미국이 일본을 공격 하겠다고 겁을주자
미국과 전쟁을 피하던 일본이 영화 마지막황제 부의 에서 보듯이 꼭두각시 만주국을 세우고
미국과 전쟁을 피하자 미국해군이 해상으로 일본으로 들어오는 석유등 물자공급을 막으려 하자
물자가 부족하던 일본이 이대로 가만있으면 총한방 쏘지못하고 앉아서 진다고 판단하여
대신들이 천황에게 미국과 전쟁을 승인해당라고 하자
일본천황이 대신들에게 미국과 전쟁하면 승산이 있냐고 말하자 필리핀에서도 미국군 맥아더를 물리친 일본군이 승2산있다고 하자 천황이 천재인 일본해군대장 야마모토 에게 문의하자
일년간 미국과 잘싸울순 있지만 그후 결국 물자부족 군사부족으로 질것이라고
하자 고민끝에 물자공급이 막히면 총한방 쏘지 못하고 앉아서 진다고 판단한
일본이 암호명 도라도라 도라(호랑이 호랑이 호랑이) 진주만 을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야마모토 의 말처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천황이 미주리 전함에서 항복문서에 맥아더 장군앞 에서 싸인하고
동남아 중국한국 등 아시아가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자
독립운동가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이승만 박사가
한국으로 오기전 일본에 친분이 있던 맥아더 원수를 만난 어떻하던 한반도 공산화를
막기위해 만약에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꼭참전 해줄것을 약속받고
한국으로 입국 하여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안두희가 김구선생을 암살하는등 여러가지 불미스런 일도 존재했다
당시 한국은 남노당 박헌형 이주화 의 공작으로 내부붕괴 일보직전 이었다
당시 치안이 어수선한 시기 독립군 김좌진 장군 아들 김두환이 자신의 아버지가 공산당에 살해 됐다고 듣고
반공 주의자로 바껴 전국의 자신의 부아를 총동원 하여 남노당을 제압하려 했다
사실 김두환이 김좌진 장군 아들 인지는 자신의 어머니 한테서 전해 들었다고
하는데 김두환이 태어난곳이 개성인데 어릴때 걸어서 서울까지 와서
일제시대때 주먹계를 평정했다 김두환이 아니었으면 6.25 한국전쟁전에
286P-한국은 남노당의 공작에 의해 내부 붕괴로 공산화 될수도 있었다
소련군 중위 출신으로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은 한반도를 공산화 화기 위해 스탈린 에게 허락을 받으려 했는데

290P-1950년 1월 에치슨 라인 으로 트르먼이 한반도를 방어선 에서 제외하자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한국 전쟁을 허락하여
기습 남침으로 거이 제대로된 저항도 없이 서울까지 점령당 하는 상태에서
당시 아무런 대비책도 없던 이승만이 방어에 문제 없다고 거짓말 하여
서울 시민을 안심 시키고 수만은 서울 시민을 죽게 만들고 혼자 몰래 도망가는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
더구나 서울 시민이 수없이 건너던 한강 철교를 폭파시켜 다리를 건너던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 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스테리는 김일성이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하고 난후 3일간 남진을 멈춘 이유가
박헌형 이주화 등이 남노동 의 활약으로 한국이 내부붕괴 될꺼라고 하여
그랬다고 그후 3일간 남진을 멈춘 책임을 김일성이 박헌형 에 물러 숙청되는 빌미를 제공했는데
어쩌면 김일성이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 박헌형을 제거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기위해 일부러 3일간 남진을 멈추고
서울에서 대대적 공산당 정비작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무슨 남노당의 활약으로 북한군이 남진하지 않아도 붕괴될 꺼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같지 않은 소리이며
한국전쟁 승리를 오판한 김일성이 전쟁후 박헌형을 죽이기 위해 누명을 씌우기 그런게 아닌가 추리해 본다
일제시대때 감옥에 갇혀 일본놈 속이려고 미친 놈으로 위장하려 박헌형이 지가싼 똥까지 쳐먹으며
노력하던 박헌형은 결국 한국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에 죽고 말았다
아무튼 김일성이 한국전쟁에 승리할 것으로 오판하여 3일간 서울에서 남진을 멈추며
박헌형과 남노당 잔존세력을 제거하려던 꼼수를 계산하던 김일성 덕분에
정신없이 밀리던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을 방어망 으로 재정비 하는 시간을 벌은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경상도 지역을 지키는데 그후 한국전쟁후
경상도 세력이 급부상 하는 빌미는
한국전쟁 으로 전라도 까지 점령되어 서울 경기가 가장많은 피해를 당했는대 특히 북한군 으로 부터
직격탄을 맞은 서울이 초토화 되고
수많은 인재가 송두리채 죽고 북송되고 뿌리가 뽑혀 그동안 쌓아온 인재와 전통이 와해되어
어부지리로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결국 4.19의거로
서울에서만 130여명 전국적으로 200여명의 시위대가 발포명령으로 죽어 결국 이승만이 화와이로 도망가고 난후
윤보선 장면 정부가 들어섰지만 얼마안되 박정희가 구테타를 일으켜 경상도 세력이
한국 정계.재계에 부각되는 빌미가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일부 경상도 애들은 남한이 전부 공산군에 점령당하고
낙동강 전선을 두고 경상도만 점령이 안된것은
강해서 그랬다고 거짓말 하는데
그럼 임지왜란때 왜구에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부산등 경상도 일대가 넘어간 것은
뭐냐 그것도 대비없이 기습 공격에 무방비로 당한게 아닌가
신라가 당나라에 빌붙어서 역적 김춘추가 같은민족 백제 고구려를 팔아먹은 것도
능력 이라고 지랄하는 경상도 애들이 있는데
이런말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씨부리는건 한민족의 비극의 시발점 이고
양아치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
김일성이 서울서 남진을 3일간 멈춘사이
사실 기습은 비겁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개인이나
정정 당당한 싸움에서는 내가 너에게 이런 억을한 일을 당했으니
전쟁이나 싸움을 해야 겠다고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 하는게 일종의 룰 이라고 하는데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 했을때 선전포고를 했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도 거이 공격과 동시에한 선전포고를 했다면
안한거나 마찬 가지다 1950년 6.25전쟁시 북한의 기습 남침은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비겁하게 전쟁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개인간의 싸움도 아무리 강한 러시아의 유명한 종합격투기 선수 효도르라 할지라도
낮잠자고 있는데 선전포고도 없이 몽둥이 들고와서 때리면 제대로된 싸움도 못해보고 효도르가 죽거나 병신되거나 크게
상처를 입을것이다

291P-더구나 당시 북한 수년간 스탈린이 제공한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비밀리에 전쟁준비를 하고 기습남침한 것이라
더더욱 처음엔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국군이 당해낼 수가 없어
재 정비할 시간이 필요 했던건 사실 이었을 것이다 오합 지졸로 도망가던 국군이 재정비 하고
일본에 있던 미군으로 부터 급히 무기를 공수받고 부모 형제를 잃고 도망오던 피난민 들이
무기를 들고 모두 낙동강 전선에 모여 결사 항전한 덕분 이다
한국전쟁 사망자수 4,519,322명 인데 여기에 누락된 숫자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것 으로 짐작든다
북한군 으로 부터 직격탄을 맞는 서울의 피해가 다른곳과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가장크다
또 북송된 숫자까지 합하면 당시 서울은 거이 와해 되다 십히 했지
나도 부모님 이야 서울에서 천리밖 출신 이지만 이러니 전쟁후 서울에 몰려드는 각지역 출신들이 서울 인구를 대체했다 초기에는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이북출신들이 활개를 쳤고
남북분단 으로 이들이 고령화되자 전국 각지역 등에서 올라와 서울은 그야말로 전국8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된것이다 그러니 당시는 서울에서 서울을 위한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자랄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것이 없듯이 사람들은 생각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처럼 무식하고 모순적인 말도 드물 것이다 초심을 잊지말라는 것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잊지말라는 속담처럼
성공한 사람도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현재 어럽게 사는사람들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지 마음과 생각이 변해서는 안된다는것은 아니다
현대에 사는 인간들은 과거에 진실로 알고 있던 과학이나 사건이나 여러 가지 일들이
지금은 수시로 오류로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 아기때 부터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수없이 변하며 늙어 죽는다
6개월전 인간의 세포나 뼈조직도 계속 변하고 있다
이와같이 인간의 생각이나 과학기술 등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계속 변하고 있고
인간의 몸도 과거의 몸과달리 전부 변한 것이다 이와 비슷 하게 서울도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변하여
서울 인구를 이루던 각지역 출신들의 2-3세 들이 자라 과거 와는 완전히 다른 정서와 현상이다
그들에게 부모님 고향을 그대로 상속받을수 없는 것은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지 않았기에
부모 고향이 지방 이라고 자식까지 부모 고향 일수는 없는 것이다 본적을 옮기지 않는 이상 부모 본적이 자식에게 대물림 대는 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을 회복한 순간 곧 어릴때 자란곳이 곳 고향이다
그렇다고 같은고향 출신 이라고 잘못한 것도 무조건 잘못을 감싸주고 편애(偏愛) 하는 것은
IS 테러범은 자신들과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참수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삐툴어진 잔악무도한 집단 처럼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욕처먹을 짓을 하는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렇게 진화할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환경에 막혀 길이 없던 막막한 순간 자유롭게 여러 의견들을 듣고
실험을 통해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아 지금까지 발전할수 있었던 것이 라고 본다
그런데 자신과 의견이 틀리다고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없게 한다면
그것은 곧 진보의 멸종과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라 민족을 배반한 사건인데
고구려 관계토 대왕이 신라가 같은 언어와 삼신 할머니등을 믿으며 같은 문화권 이라고
신라를 충분히 정복할수 있었음에도 신라를 치고 속국을 만들어 충성맹세 만을 받고 신라를 괴롭히는 왜구까지 물리쳐 줬는데 그후 김춘추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물리치고 고구려 드넓은 영토를 당나라에 헌납 하며 당나라 문화 와 성씨를
대량으로 받아들여 지금 수많은 한국인의 성씨가 조상이 중국에서 도래한 성씨로 왜곡하여 전해지는 불씨를 제공한 것이다 신라가 받아들인 모화사상에 의거하여
족보를 위조하여 중국성씨를 쓰며 마치 자신의 조상이 중국에서 온 것 처럼 왜곡하는 빌미를
신라가 제공하고 당시 백제 고구려 성씨는 지금 전례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탤런트 연정훈 이도 연계소문과 같은 연씨가 아니다
백제 고구려 유민들중 거이 대부분이 자신이 쓰던성을 버리고 중국 성씨를 같다 붙인걸로 보이고
일본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피 하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노예가 되고 학살 당했다고 미루어 짐작 할수 있다
이처럼 사람도 동물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역사는 승자만의 전유물이 되어 후대는
전해지는 모든 역사는 공정하게 재해석 되어야 한다

292p-그러나 신라가 당나라에 빌붙어 차례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과거 드넓었던 고구려땅을 당나라에 뺏기고
성씨가 없던 대부분의 백제 고구려 유민들은
살기위해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인 신라의 영향으로 당나라의 성씨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노예로 전락하고 또 일본으로 많은 백제.고구려 유민들이 망명 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일부 조상들의 원 뿌리중에 일부 김씨와 일부 동이족 가운데
수메르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후손 셈족에서 갈라져 고대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를 지나 온
북방계 아시아인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자료-189-수메르인 아브라함 독일의 저명한 앗시리아 학자인 라이프치히 대학의

알프레트 예레미아스 Alfred Jeremias 교수는 고대 오리엔트 사의 측면에서 본 구약성서

Das AlteTestament in-190-Lichtedes Alten Orients 1930년 및 수메르의 우주 Der Kosmos

von sumer 1932년 에서 아브라함은 셈계의 바빌론니아인이 아니라

수메르인 이었으며 수메르사회에서 기성 종교를 더욱 높은 단계로 개혁하려는 의도를 갖춘

일단의 신앙심깊은 무리를 지도햇던 인물 이라고 결론 지었다

뒤이어 나치스의 집권으로 이 연구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실로 아브라함이 원래 수메르인이었다

는 증거가 성서 자체에 있다

(창세기) 17:1-16 에 아브라함은 야훼와의 계약 아래 셈족으로 변신하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할례 의식을 치루며 그는 수메르 이름인 AB. RAM(아버지의 귀염둥이 자식)을 아카드 셈어인 Abraham(열국列國,의 아버지) 으로 개칭하여 사라이 SARAI(공주)는 사라 sarah 로 바꾸 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99세에 셈인 이 된 것이다

-191-결론지어 말하자면 테라와 아브라함의 가계는 번영했던 우르 제 3왕조

말기 수메르의 최고위 신관직으로서 당시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던 중동의 다신교 풍토를 개혁하며

한편 새로운 신과의 약속으로 선택된 민족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신의 부름을 받았던 특이한 엘리트들이 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Z.시친의 추론이 옳다면 그것은 인류학 신학 -193-역사학적 측면 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곧. 지금까지 서구를 지배해 온 유대 -기독교 신앙 전통이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수메르 문명의 정통 후계자라는 결론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몽골인종 같아 보이는 수메르인이 세계사에서 문명다운 첯 문명의 개척자 였다는 것이다 - 수수께끼의 고대문명 지은이/ 김진영 .김진경 펴낸곳 넥서스 1996년)

(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 가운데 하나로서 한반도 동북부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 위치했던 예가 있었다 이 예 에서는 동성불혼의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여러 습속은 오늘날 영남권 사람들이 갖고있는 풍속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예로 삼베를 삼고 누에를 쳐서 명주를 짜는 풍습은 예전 영남 지역에서
주로 나타 났던 것이다 중국의 후한서에 예는 산천을 중히여기고 산천마다
각각 부락의 경계를 둬 간섭하지 않고 같은 성끼리 혼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베를 삼을줄 알고 누에를 쳐서 명주를 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는 예맥의 약칭이고 이 나라가 우리 민족의 근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나라 사람들은 알타이어계 퉁그스족에 속하는 것이로 보기도 한다 또한 예는 삼국시대 이전의 국가다
다시 말해 신라에서 등장 하였던 왕족의 성과 6촌의 성보다 먼저 성의
문화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동성불혼은 주나라의 풍속 이었음을 고려하면 그런 풍속이 한반도 에도
이미 오래전에 전해 졌다고 볼수있다 역사서 에서 성에 대한 언급을 한것은 종족들이 성을갖는 문화가 단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의 동성불혼 풍속이 실제 있었다면 이는 신라의 성씨 문화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신라에는 골품 제도가 있어 성골진골 등의 위계가
왕위를 계승 하거나 관직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성골끼리 결혼을 해야만 그 자식역시 성골이 될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같은 성의 왕족끼리 혼인하는 일이 잦았다
이 동성결혼 때문에 김씨 왕족이 중국에서 건너온 흉노족의 후예가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의 김씨성은 흉노족에서 최초로 나왔고 또 흉노족 에게 순수혈통 보존 이라는
취지로 동성혼의 괸습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김씨 왕족이 흉노족의 후예가 아닌가
하는 설도 나오는 것이다 몽골족도 일찍부터 근친혼의 관습이 있었다 이 근친혼 역시 혈통 보존의 수단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떤 혈족의 피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근친혼으로 혈족을 잇게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 흉노족 가운데는 몽고계 출신도 있었다 그때문에
근친혼 풍습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신라의 김씨왕족 골품제도를 보면 흉노족 습속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다
한편 일본도 일본도 혈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다른사람과 혼맥을 금하는 일이 있었다
흉노족의 뿌리를 중앙아시아의 스메르계로 보기도 한다
오늘날 아랍계와도 통한다 과거의 아랍계 사람들도 같은 혈통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제목 우리겨례 성씨 이야기 저자 김정현 발행 지식사업사 2009년-)

내 생각에 근친결혼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론 같은 뿌리로 보는건 말이 안된다
사실 과거에는 영국 왕실도 혈통을 지킨다는 의미로 근친 결혼을 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고 그 외에도
다른곳 에도 많다

(왜 우리 한민족의 성과 중국인 성의 글자가 같은가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글자를 쓰게 되었나

293p-이 의문에 대해 간략하게 답하자면 성의 글자가 중국의 한자에서 나왔고 성씨의 문화역시
중국에서 전례 되었기 때문 이라고 할수있다
백제 에서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성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한뒤
왕족과 귀족 가운데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의 성씨가 일본에 전해 졌다고 볼수 있는 것이다
중국인의 성은 한국인의 성처럼 한개의 글자로 쓰는 성이 대부분 이다
두개의 글자로 쓰는 복성은 몽고계나 소수 민족의 성을 표시 할때 하나의 한자로 표기 할수 없기에
두글자 세글자 등으로 성을 만든 것이다 신라인은 중국 당나라의 성씨 문화에 동화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인이 동화된 성씨 문화가 오늘날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구려의 성씨는 단성과 복성 혼합이다 고구려 말기 권신 연개소문이 있다
그의 성을 사서에서 못의 뜻인 (淵) 연 으로 표기 하였다 그런데 이성은 오늘날 우리 민족에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도 이성이 있기는 하지만 희성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많은 성씨 중에 유독 박씨 성 만은 중국에서 유래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삼국 시대의 성은 왕과 특권층에만 주어졌다
통일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는 성이 없이 궁복이란 이름만 썼는데 성이 없어 관직을 얻을수가 없어
당나라에서 흔하던 장씨성을 붙여 썼다는 일화가 있다 고구려와 백제에 사용하던 성씨는 나라가 망하면 함께 사라져 지금은 전례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양홍씨 당홍계는 중국에서 귀화성씨로 분류 하는데 시조는 홍천하이고 토홍계의 시조는 홍선행 이다
토착계는 토착성씨 라고 주장 하는데
그런데 당홍계 에서는 토홍계가 토착호족 이었다는 주장에 이론을 달고있다
당홍계쪽 문중의 주장에 따르면 홍천하의 셋째아들 홍순명이 고구려 유민과 함께
신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실패하자 도피한뒤 신분을 감추고 토착민 행세를 하였는데
그 후손이 토홍계 라는 것이다 족보의 진실성과 관련한 논란은 오늘날 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족보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여러 성씨 문중의 족보에는 그들 문중의 뿌리가
중국 한족과 연계 되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런 내용이 실린 많은 족보를 앞에놓고 살펴보면 과연 우리 조상이 한민족 이었나 하는 의문을 가질만 하다 문중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모두 믿는다면 우리가 중국 한족의 한 분파인양 착각하게 될수도 있다
많은 족보에서 시조 또는 시조의 상계가 중국 방면 에서 들어온 사람이며 그들로 말미암아
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에 고구려사 왜곡뿐 아니라 고려사 왜곡까지 자행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고려사를 왜곡하는 근거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왕건의 선대 조상이 한족 이라는 설 이라고 한다
이 내용에 따르자면 고려 태종왕건의 뿌리는 중국 한족이다
황제 헌원씨의 후예로 (참고자료 위키백과사전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 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설명된다.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1]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실존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며, 생존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

개성왕씨 족보에 적혀 있는
황제 헌원씨는 실존 인물 이라기 보단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국인이 단군을 모시듯 그들도 황제 헌원씨를 민족의 건국 조상으로 받들고 있다
중국의 한족은 고대 전설속 인물 에게도 성을 붙였다
그러고는 그 성으로 부터 다른 여러성이 생겨 났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성씨 제도는 다소간 패권주의 의 양상을 띠고있다
비록 이족 이라도 그들과 같은 글자의 성을 갖고 있다면 그들 조상으로 부터 갈라져 나간
일족으로 끌어넣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왕건이 항제 헌원씨의 후예로 개성왕씨 족보에 적혀있는 것은 모화사상에 의한 위작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의 성씨의 기원을 보면 그들 족보의 기록으로는 많은수의 성씨가
기원을 중국방면 에다 두고 있는것이다

294p-그러한 내용대로 라면 지금의 중국의 공식 역사관이 사실을 왜곡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오히려 사실과 부합 한다고 주장 할수 있다
우리 조상은 황제 헌원씨니 염제신농씨니 소호김천씨니 하는 중국 한족의
전설적 인물로 부터 비롯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성씨의 기원을 글자가 아닌 핏줄의 뿌리를 찾는다면 이는 결과적 으로 우리
한민족의 핏줄이 아님을 밝히는 일이 될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 한국인의 많은 성씨문중 가운데 중국한족 으로 부터 또는
다른 이족으로 부터 귀화한 성씨의 시조들도 있다 왕건은 원래 왕씨가 아니었다
왕건의 5대조 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 용건 조부 작제건 3대조 보육 4대조 강충 5대조 호경 이다
여기서 왕건외에 왕씨성의 사람이 없다
건 이란 글자를 3대가 함께 썼다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이종의 존칭으로 봐야 옳은 것이다
귀화인의 후손이 아닌이상 자기성의 조상을 중국 한족과 연결 한다면
중국인들의 역사왜곡 시도는 분명 힘을 받게 될것이다
양식있는 성씨의 문중 사람이 었다면 족보에 조상등장 내력을 중국쪽에 두는것을
재고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왕건의 조상이 중국한족 출신 이라면 나라를 세울때
왜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우며 나라이름을 고려로 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점을 보더라도 왕건은 분명 중국 한족핏줄이 아니었던 것이다
왕씨 성을 썼다고 반드시 중국에서 왔다는 법은 없다 오로지 왕이란 한자를 사용했을 뿐이다
고려태조 왕건은 왕은물론 일반인도 성을 가져야 한다고 여겼다
왕건은 자신의 이름중에 왕자를 개성왕씨 시조가 되고
그후 왕건의 후대들이 모화사상에 중국에서 건너온 성시로 족보를 위작한 흔적이 들어났다
공신들 에게 성을 많이 하사 했다는 기록역시 그가 성의 가치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성을 갖는다는 것은 벼슬길에 오르는 이상으로 신분상승에 중요한 요소였고
왕건 자신이 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한때 비하된 신분 이었기에 성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였다
왕건이 개국공신 에게 준 성씨는 홍씨. 배씨.신씨. 로 홍유 .배현경 .신숭겸
으로 오늘날 부계 홍씨는 홍유를 시조로 평산 신씨는 신숭겸을 시조로 배현경은 기존 신라 6촌 배씨와 뿌리를 같이하는 경주 배씨라고 한다
일본 에서는 두 글자 곧 복성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형태가 백제의 성씨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있다
일본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귀족에게 부여 되었던 성으로 마히토 .아소미. 스쿠네.
이미키. 마치노시. 오미 . 무라치. 이나키 이다
이성들은 백제의 성씨문화에 영향을 받아 나타 났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백제의 진( 眞 )씨 는 비류계 왕족의 성씨로서 온조의 형인 비류로 부터
비롯 되었다고 한다

(-책.내용과 다른 플래시백 저자의 참고 자료로 -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발해에서 이주한 후손이란 말이있고
고이즈미 전 총리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라고 한다 )

1985년 국세조사 에서 275개 성씨가 있었는데 불과 15년후인 2000년 조사시 453개가 늘었다
수백년을 거쳐오는동안 한국인의 성씨가 300개가 넘지 않았는데
불과 15년만에 거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중국.동남아등 외국에서 노동자들이 대거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이 많이 나타난 것이다
성씨가 급격히 늘어나는것은 좋은현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성씨가 갑자기 늘어나면 전통 성씨의 정체성을 무너트리는것은 물론 국가의 호적업무가 크게 복잡해
지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에서는 박 석 김 경주 배씨 등 육촌의 여섯 성씨가 있었던 것으로만 기록하였지
그 후손들이 누구인가 또는 그성을 누가 계속 잇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 같은것은 없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와의 성을 김씨로 적고 있는데 중국의 여러 문헌에도
진흥왕의 성이 김씨라는 기록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진흥왕 바로 앞서 왕 이었던 법흥왕에 대해서는

295p-진흥왕 처럼 김씨성 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양서의 이 기록에서 미루어 보건데 법흥왕때 까지도 신라는 보잘것 없는 나라였고 따라서 문화도 발달하지 않았음을 짐작해 볼수있다 과거 귀화인 계통이 아닌 한국인 김씨성은 모두 신라와 가락국 에서 뿌리를 찾는다
그런데 金금 이라는 한자를 정상적으로 읽으면 쇠의 뜻인 금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왜 김이라 발음해야 하는가 의문이 생길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 조선 태종이 李 오얏이 나무가 소로 말미암아 잘려 나갈수 있다는
오행의 원리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다
물론이에 대한 문헌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얘기는 낭설 이라고 하더라도 김이란 발음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측은 해볼수 있다
중국어의 金 금 은 진 (jin)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어의 김자와 비슷한 발음이 되는것이다 애초에 이런 발음으로 김씨성이
전래 되었고 중국어 발음이 그대로 정착되어 김씨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진(jin)이 김으로 변했다고 할수도 있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 보았을때 단순히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알지의 시림계림- 이야기와
김수로왕의 구지봉 이야기만을 가지고 김씨성의 내력을 말할수는 없는것이다
조선조에 와서 여진족을 회유하는 정책으로 귀화인이 많았다
한국에 김씨성이 많다 그러나 많은 김씨성 가운데 당시 오랑케 라고 여기던 종족의 사람을 조상으로 모시는 성씨는 없다 사대사상 모화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때
조상을 여진족 이라고 하면 미개 종족 이라며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괴감 때문에 다른 김씨성 족보에다 끼워 놓거나 중국 한족 귀화성씨로 위작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이라 추정할수 있다
성이 없던 조선의 일반 백성도 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 했을 것이라 추정할수 있다


고려는 왕족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적잖게 몽고족과 혼맥을 가졌다
또 몽고의 귀화인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에 고려인은 몽고인과 피가 섞이는 일이 많았다
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특이한 본관을 표기한 사례가 있다
본관을 대원 이라고 한것이다 현재 본관을 대원으로 하는 조씨는 없다
아마도. 원래 대원조씨.였던 사람들이 다른 조씨의 본관에 끼어 들었을 것이다 몽고인의
후예들이. 고려가 망한후 원나라 출신임을 그대로 밝히면
소외 당할것을 우려하여 본관을 짐짓 없애 버렸거나 다른 본관으로 취했 으리라 볼수도 있는것이다
한국의 많은 성을보면 그들의 시조를 귀화인 이라고 언급할때
대계가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몽고족이 통치하는 원나라 사람을
시조로 모신 경우는 거이 없다
이것은 중국 한족과 그들의 문화를 숭상하는 모화사상 때문이었다

-제목 우리겨례 성씨 이야기 저자 김정현 발행 지식사업사 2009년-)

당시 백제 고구려가 남긴 수많은 역사책 등 역사의 진실들이 다 불살라져 없어 졌음을 또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이렇게 역사는 승자만의 전유물이라 역사의 진실은 승자에 의해 거이 상당부분 조작 왜곡 됐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거이 비슷한 시기 일본은 중국으로 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쓰다
중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자주권을 회복하여 천황 칭호를 쓰기 시작한 부분은
신라가 당나라에 빌붙에 같은 민족인 당나라와 당당히 중원의 패권을 겨루던
고구려를 멸망시켜 고구려의 드넓은 땅을 당나라에 넘기고 회복할수 없게 잔인하게 학살하며 말살하고
당나라의 종속국으로 살기위해 당나라 성씨와 문화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게 한부분은 일본과 많이 다른 부끄러운 역사 이다


296p-
(참혹한 세월을 견뎌낸
조선백성들이 피눈물로쓴 500년 조선왕조 동안
일어난 사건중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요
임진왜란 입니다 땡 틀렸습니다 명의 명멸망 입니다 조선보다 그저 몇십년 먼저 개국한 명은 조선 에게는
아비요 할아비 였습니다 조선은 문화 학문 법률 격식 복식등 전분에 걸쳐 명을
그대로 모방했다 아무리 아비를 꼭빼닮은 자식이라도 조선 같을순 없었다
명의 무수한 횡포를 시달려야 했으며
명의 요구에 따라 생산되는 말을 모조리 바쳐야 했고 모든 격식과 용어 그리고 복제를 명의 제후국에 맞도록 고쳐썼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 이름까지 타국에 물어서 결정했다
기자조선과 이성계의 고향 함경도 회령을 명에 보냈고

-명이 조선을 선택해서 조선으로 결정 되었다
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의 번국으로 생각되던 기자조선 에서 끌어다 쓴 것이고
이는 명에 대한 사대의 극치 였다
심지어 명의 사신이 오면 왕이 수창궁 에서 무릎을 꿇고 황제의 글을 받을 정도로 명 이라면
사족을 못써 민족 자존에 크게 상처를 냈다
명에 대한 사대는 명이 멸망한 후에도 조선왕조 500년 내내 계속 되었다
조선의 멸망의 원인은 명에서 받아들인 성리학의 폐단으로 감투 싸움의 극치인 당쟁이 이어졌기
때문 이라고 할수있다
성리학은 단지 사대부들을 위한 학문 이었을뿐 조선백성 90% 이상에 해당하는 양민과 천민 그리고 서얼 등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학문 이었다
조선은 양반을 위한 나라였다 양민은 양반을 위한 수탈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군역과 노역 세금의 원천 이었다
또 노비와 천민은 마 소 대신 부려먹고 상속이 가능한 말하는 짐승 이었다
서얼은 근본적으로 사회 진출이 막혀 아무것도 해 먹을게 없었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민과 천민 그리고 서얼등에게 조선은 참으로 개같은 나라였다
그런데 이 신분차별이 능력이 아니라 출생에 따라 주어 진다는게 문제였다
같은 민족을 출생 신분이 다르거나 단지 가난 하다는 이유로 짐승 취급을 하는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신분차별 카스트 제도는 기원전 2000년 에서 1500년사이
게르만족의 조상 아리안족이 인도 원주민이던 드라비아족을 정복한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위해 조직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카스트제도는 사람을 네가지 계급으로 분류한다 첫번째가 사제계급 인 브라만
두번째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세번째가 생산자 계급인 바이샤 네번째가 노동자 계급인 수드라다
원래는 세번째 까지 밖에 없었는데
후대에 와서 수드라가 추가 되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정복자인 아리안은 양반 계급에 해당되는 첫번째와 두번째
계급이 된것이다 계급을 만든후에 이들은 계급이 사람이 만든것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소설을 썼는데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시는지
중국의 교과서에는 고구려와 발해가 자신들의 변방국가 였다는 거짓 주장과 독도가
일본땅 이라는 주장 이 두가지가 개네들 교과서에 실리면
그냥다 개네들 것이 되는 것이다
하여간 인도 애들도 엄청 웃겨 이와같이 소설을 써놓은 다음
이걸 지키지 않으면 박살을 내는 장치를 마련 했는데 그것이 바로 불가촉 천민 이다
신으로 부터 신성하게 주어진 계급의 의무나 법을 어겨 계급 바깥으로 축출된
계층으로 기본적인 인권의 혜택을 전혀 받을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조선시대 천민과 비슷한 계층을 말하는 것이다
딱하게도 인도에는 지금도 신분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다
그런데 인도 애들은 이계급 차별을 팔자 소관으로 치부한다

297p-자신이 전생에서 현세에 까옹 찰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업으로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생이란 찰나 이기에 잠깐만 참으면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티는 것인데
조선 사람들은 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용케 500년 씩이나
참았다 우리도 종교 국가인 유교 국가라고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윤리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들이 모두 양반의 후예라고 믿고있다
진짜 상층 양반은 전체 5%도 안되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양반의 후예란 말인가
양민과 천민의 후예는 모두 천연두에 걸려 죽고 양반의 후예만 살아남은 것일까
조선의 신분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무너지기 시작 17세기 중반 광해군 15대 시절 공명첩- 빈 .공자로
이름이 안써있는 벼슬첩-을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고 18세기 무렵
화폐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상업이 발달하자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신분제도의 붕괴는 조정에서 팔아먹는 벼슬에다

족보위조 까지 유행 하면서 더욱 심화 되었다 특정성씨의 시조부터 당대인에 이르기 까지 계보를 기록한 족보는 17세기 후반부터 출현하기 시작 했는데
그배경은 출세가 개인의 능력 보다는 문벌이나 배경에 의해 좌우되던
조선시대 임용패턴 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고위 관료는 몇안되는
문벌들이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족보를 만들어 자신을 내세우고 또 후손들에게 가문의 배경을
주지시켜 너희는 보통사람이 아니야 남들과 전혀 달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벼슬을 할수있고 군대같은건 없는집 애들이나 가는거야
라는 확고한 자부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군대 면제는 족보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양반족보는 있는집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족보가 없으면 사람대접 받는데 애로가 있게 되자
족보장사들이 판을 깔기 시작했다 인쇄를 조선초기에는 국가 차원에서 취급하여 어려웠으나
그러나 조선후기 접어들어 인쇄술이 발달하자
비인가 인쇄 업자 들이 출현해 족보위조 인쇄 정도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족보위조는 위보와 별보 그리고 투탁이 있었다
위보는 족보자체를 몽땅 새로만드는 것이고
별보는 정식족보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별책에 쓸쩍 집어 넣는것이다
또 투탁은 망해가는 양반가문 가운데 대가 끊기거나 끊기려고 하는집안에
돈을주고 끼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상업으로 여유가 생긴 양민이나 천민이 새로운 성씨를 갖거나
없던 성씨를 만들어 양반이 되었다
조.일 전쟁 직후인 당시만 해도 양반은 크게 늘고 천민은 많이 줄었음을 알수 있다
졸부가 양반이 되어 그 후손들은 조상이 양반인줄 알고
자신이 양반의 핏줄이라고 침을 튀기게 된것이다
허기야 양반제도 자체가 썩어 빠졌으니 양반이면 어떻고 천민이면 어떤가
이런 신분제도가 조선이 망하면서 사라지자
족보는 당연히 휴지 뭉텅이로 변해 버렸다 족보의 가치가
단순한 사적인 문서로 주저않게 되자 가문에 사람이 적은것 보다 많은것이
낮지 하는 생각에 이놈 저놈 다 끼워 주다보니 족보없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조선후기 까지만 해도 전 인구의 반 이상이 성이 없었다 나머지는 돌쇠나 개똥이 마당쇠 언년이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 조선이 망하면서 신분제도가 완전히 붕괴되자 이들이 한꺼번에 성을
갖게되어 양반층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것이다
그러다 신분제도가 붕괴 되면서 모두가 성을 갖게된것이었는데 그 시기가 겨우 100 여년전 이다
원래성은 왕이나 소수지배 계층만의 전유물이었다
6세기 경 부터 중국성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때 신라장군 이사부나 거칠부등 에게 이름만 있고 성이 없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일반백성들이 성을 갖는다는건 꿈같은 얘기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이 없던 사람들의 성은 부모가 준건 몇안된다고 볼수있다

298p-조선시대 양반이면 누구에게나 노비가 수명에서 수천명까지 있었다 그들은 상속재산이자 매매대상 이었다
그러다보니 재산을 상속할때 노비의 가족들이 생이별을 해야하는 참상이 비일비재 했다
사람같이 생긴 짐승 노비의 가격은 1398년 태조1대의 노비의가격은 말한마리 살돈이면 노비셋을 살수 있었는데
전시때는 그보다 가격이 폭락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는 노비10명 값이 말한마리 값과 같았다
조선말기 동학 동학 농민당시 미모의 계집한사람을 포함한 5명의 노비와 소한마리를 바꾸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어느나라나 노비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전쟁포로나
타민족 이었고 동족을 단지 가난 하다거나 출신 혹은 직업이 천하다는 이유로 짐승같이 사고팔고
상속하는 나라는 조선 말고는 없었다 )

-왕을 참 하라 (하)(백성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저자 백지원출판

진명출판사 펴냄 | 2009.02.13 발간


(19세기 중국인들은 여자를 물건으로 치부했으며 필요에 따라 팔거나 물물교환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1870년대 중국북부 지방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남자들은 아내와 딸을 포주에게 팔거나 사람고기 취급하는 푸줏간에 넘겼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주 제롬케이건이 쓴 정서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

?

중국은 지금도 인육으로 만든 인육캡슐 이란게 보약으로 비밀리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다
적벌되어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된걸 본적이 있다
한국내 수많은 중국계에게 팔려고 그런것 같다
한국사람중에 누가 그걸 먹겠는가
그래도 조선이 여자를 전족으로 발을 묶어 발크기를 강제로 제한하고 사람고기 쳐먹는 야만인 중국보단 났지 않을까 ?과거 중국에 조공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 처녀중에 만두피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으며 썸뜩한 더러운 기분이 든다


재미사학자 백지원은 조선이 같은 동족이란 표현을 썼는데
강원 고성군 문암리에서 밭농사 유적을 찾아 냈다고 한다
5000년전 신석기 시대라고 한다
아시아 에서 가장 오래된 밭농사 유적 발굴 이라고 한다
한반도 에는 그것 뿐만이 아니다 30만년전 인류의 조상인 에렉투스 그러니까 현생인류 사피엔스가 나타나기전
인류의 조상이라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돌도끼가 발견 됐는데
아시아 에서 유일한 가장 오래된 돌도끼 유적 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에렉투스가 약 20만년전 부터 지금 인류인 사피엔스가 나타나자
사라졌다고 추측하는데
학자들의 말을 무조건 다 믿을수 없고 그들도 단지 미세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추측하는 것일뿐
그저 참고사항 일뿐이다 에랙투스가 사피엔스와 혼혈 비슷하게 섞여 전해져 내려오는게 아니가 추측할수도 있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한반도에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무려 30만년전에 인류의 조상인 에렉투스가 돌도끼를 만들어
살아왔고 김씨등 흉노족과 선비족인 이씨박씨등 진시황에 밀려 BC-220년에서 BC-210년경 한반도로
내려와 연명하다 BC-57이라는데 부족국가는 이보다 좀더 앞설수 있다 신라를 건국하기 전부터
한반도에는 여러 부족의 원주민들이 5000년전부터 밭농사를 지으며
존재했다는 증거를 말하고자 함이다 일각에서는 박씨가 인도계 원주민 으로 부여족이란 설도 있다
부여족으로 살던 박씨가 선비족에 흡수되어 지금의 경상도 지방으로 이씨 ,김씨등과
선비족으로 섞여 같이 내려올수도 충분이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 살던 박씨가 미국가서 케네디 박씨가 될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주장하고 십은것은 선비족과 흉노족이 한반도로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오래전 부터 한반도 에는 이미 원주민이 터를 잡아 살고 있었고
중국 한족들을 하도 괴롭힌 다고 흉노족 이라고 한족 들이 이름을 지었다 는
김씨등 일부 동북방 등 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세력과

299p-여러 복합적인 세력 다툼이 한반도에 있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
사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한족이 아니라 고조선의 한 분류인 북방계 선비족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중국놈 들은 이걸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고대 우리민족 전해지지 않은 사건은 진시황이 분서갱유 사건이 그 c첫번째 진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이며 진시황은 조 (趙) 씨 라고도 전해 지지만
진시황의 생부는 여불위로 마르코폴로의 실크로드가 세상에 알려지기 훨씬전부터
그와 비슷한 로드랩 길을 장악하던 거대 상인으로 전형적인 북방계 선비족
진시황이 즉위하자 5년간 섭정한 인물 진시황이 즉위하여 학자들을 죽이고 책을 압수하여 불태운건
진시황의 출생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런 거라는 역사 학자도 있다
그후 신라가 당나라 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 시키는데
그로인해 백제 고구려 역사책뿐아니라 고대 한국 역사서 까지 모조리 불태워짐
유구한 동이족과 고조선의 역사는 명나라를 아비로 보는 조선의 사대부들 에겐
조선의 근간을 더럽히려는 불온서적일뿐 이었다
세종은 명나라 영락제가 죽자 군신관계라며 3주나 상복을 입고 애도 하는 쇼를함
세종도 역사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모화사상을 벗어나지 못함 세조는 전국의 사찰에 명을 내려

(고조선비사)(대변설)
(조대기)(주남일기)(지공기)(안함노)지화록(도선한도참기)(마슬록)
(통천록)등 1백여권을 사서보관 금지령을 내리고 바친자는 2품계를
성종도 세조와 비슷한 어명을 내려
조선은 국가차원 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말살 하였다
이런 국가적 감시와 말살정책에도 운좋게
조선왕실 서고 보관함에 비밀리에 격리되어 있던 우리의 고대 역사서들 마저
일제가 깔금하게 정리하고 사대주의에 의해 작성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만 전해진다
일제는 조선을 영구적 으로 점령하기 위해
찬란했던 한민족의 고대 역사서를 위조하기 전에 불태운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 날조했던 이이, 송시열 등 유학자들이 나라를 그르쳤고,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단군고기>를 <단군신화>로 날조하고,
아직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김부식 등이 지은 <삼국사>를 <삼국사기>라고 속이고 있다. <고려사>, <삼국사절요>, <조선왕조실록>에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용어 '단군신화'가
단 한 번이라도 나오는지 검색해 보라! 역사왜곡과 날조의 주범은 국사편찬위원회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아직도 조선총독부 소속인가

그러나 중국놈 들도
당태종 이세민이가 선비족 이란건 부인할수 없어 인정한다
선비족의 뿌리는 터키방면 에서온 .우랄산맥. 알타이 산맥을 넘은 스키타이 문화의 북방 기마민족 으로 고조선의 한갈래로 당시 북방의 고조선은 청구 부여 말갈 예맥등 다민족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조선에서 갈라져나온
선비족이 세운 나라는 연나라로 왕은 모용
고조선 에서 갈라저 나온 고구려와 형제국 이라 칭하기도함
그후 고구려 관개토대왕이 복속한 연을 고조선에서 갈라져나온 형제국 이라고 느슨하게 고구려가 대함
진시황이 친고조선이나 고조선으로부터 흘러나온 세력이었다
고대사를 잃어버린 한국은 이런주장을 못하는것일뿐이다
이런사실을 알고 고대사를 철저히 왜곡하는 중국 진시황에게 밀려난 중원의 세력들이
신라에 와서 새 나라를 세우는데 바로
6부족이다.
경주 이씨 .경주손씨 . .경주정씨

300p-그리고 경주배씨 경주최씨 일본계로 알려진 석씨신라6촌성씨
설씨는 위구르계로 알려졌다 ?
왕족인 경주김씨 흉노계
밀양박씨는 인도계 원주민설로 이주하여 부여나 북방 선비계에 훝어져 살다가
선비계에 섞인 박씨가 이주하여 신라를 세움

가야의 김해김씨는고구려와 전쟁중이던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
모용의 군사로 1만5천명정도가
내려와 가야를 세움
김해허씨는 인도계 공주와 김해김씨와 혼맥으로 태어난 성씨로 알려짐
이들 중에는 선비계와 흉노계도 있었으며 지금의

이씨와 박씨들은 선비계의 후예이고 김씨들은 흉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 즉 번조선의 후예라고 했다,
위서에서는 선비족의 발상지를 대선비산으로 산 이름으로 족명을 취했다고 했다,
북 흉노가 중앙 아시아 초원으로 이동해 흉노의 본거지인 몽골 고원이 일시적인 공백 지대가 되자
패권을 다투던 여러 족속중 선비족이 패권을 잡았다,
[출처] 선비족출신의 당태종 이세민[후한서]|작성자 지천명)

참고자료(4-5세기 경주.김해 적석목곽분 주인은 '선비족'
2세기 이후 초원을 지배한 선비족이 어떻게 한반도까지 진출했나?)

윤복현 역사칼럼


(적석목곽분은 북방초원세력의 무덤양식입니다. 경주.김해.일본열도의 적석목곽분들은 4-5세기 무덤들로, 보통 흉노족의 무덤들로 인식하고 있으나, 시기적으로 무덤들의 주인은 흉노족을 흡수한 선비족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흉노족은 한나라와 선비족의 연합공격으로 인하여 이미 2세기에 몽골초원의 패권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비족이 2세기부터 단석괴 추장을 중심으로 흉노족을 흡수하여 몽골초원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또한 흉노족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한나라가 동맹관계로 흉노족을 제거한 공로로 인하여 용인하게 됩니다.)

-윤복현 역사칼럼 -

중국의 수.당 모두 선비족 으로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흉노와 가깝다
지금 중국놈 들이 역사 왜곡이 너무나 심하다
중국놈들이 오래전부터 동북공정으로 발해와 고구려 분망아니라 한민족의 고대역사를
송두리채 왜곡하며 심지어 아리랑도 중국꺼라며 왜곡하여 유네스코에 등재하는데
북한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개거품 물고 역사왜곡 한다고 한국에서 욕하는데
그런데역사 왜곡이 가장심한 중국에 대해선 유독 한국 학계는 물론 말 잘하기로 소문난 정치인 들도
뭐가 무서운지 숨죽이고 있다
고고학자 마틴존슨은 역사란 단일하게 내려오는게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세력이 다양하게 수많은 경우의수로 역사의 물줄기가 이어져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일본에 신라에 정착한 선비족이 들어간 이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여 백제세력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그외에도 고구려 신라 가야 또는 중국 동남아 세력이 다양하게 진출 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 실제로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고
수천명이 제주도를 거쳐 일본까지 와서 찾다가 못찾자 돌아가면 책임을 물을껄 두려워해

301p-그냥 일본에서 살았다는게 역사상 최초로 대량으로 진출한 화교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공산당은 중국국민을 모두 한족으로 엮으려
중국에 한족이 94%로 라고 조작 왜곡 하는데 역시 짱게들 답게 거짓말을 밥쳐먹듯 하는구나 조작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있다 중국놈들은 진나라 당나라도 한족으로 역사를 왜곡 하지만
과거 왕조 국가에서는 대다수 국민이아니라 왕족이 어디 출신이냐 에 따라 분류해
원나라는 몽골족이 세운 나라이고 청나라는 만주족 곧 과거 고구려때 말갈족 등으로 불리기도
고려때 여진족으로 조선때 만주족으로 불리며 중국한족을 점령하고 청나라를 세웠는데
어떻게 중국역사라고 뒤집어 씌우는가
중국놈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이 일제에 36년간 지배당한 시절도
같은민족이 지배한걸로 역사를 왜곡하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자 마자 중국 한족들 에게 변발을 시킨 것이다

변발은 영화 황비홍에 나온 이연걸의 머리는 참수형 감이라고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진짜 청나라 사람들의 변발 사진을 바라 머리를 빡빡으로 밀어 머리 뒤통수에 조금만 꼬리를 꽈서 댕기를 만든다 `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멸망한 조선의 아비국가 명나라는 머리카락을 부모가 물려준것 이라고
변발 하는걸 거부하자 처음엔 70만명의 한족을 마구 잡이로 죽이고
적어도 도합 100만명 이상의 한족을 학살하여 길들인다
일본이 난징에서 중국인 20만명을 학살한 만행은
만주족 청나라가 한족이 세운 명나라 사람을 100만명 이상 학살것에
비하면 비교가 안된다 그런데도 지금의 중국 한족들은 청나라가 중국의 일부라며
중국역사 라고 하고 있다
배달 민족이 세운 고구려 발해도 역사 왜곡하여 중국역사로 엮어 버리고
더 나아가 유네스코에 돈과 힘의 중력 작용으로 등재 시켰는데도 한국에서는 회괴하게도 다른 반응이 없다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결국 고구려가 중국역사로 왜곡 한것은 유사시 북한이 붕괴되면 북한을 중국땅 이라며 점령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유치원생도 알것이다
(후 금)은 신라의 유민이 신라가 고려에 망하자 만주로 건너간 후손이 세운 나라라고 한다
원래 김씨가 금씨였데 그런데 조선에서 금씨가 김씨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문 金 그대로 읽으면 김이 아니라 금이다
그래서 고려태조 왕건이 금나라의 도움으로 고려내 신라 유민들이 재건을 노릴지 모른다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의 후예라고 고려라고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혼혈 중국 민족을 왜곡하여 흉노족 선비족 거란족 멸망한 고구려 백재 유민
그리고 당나라에 신라방까지 세우기도 했던 수많은 신라인 원나라를 세웠다 망한 몽골족 청나라를 세웠다 망한 만주족 그리고 동남아인과 이슬람국가의 일부와 극히 일부 이겠지만 유럽의 백인들도 혼혈이 되었을 것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고
만주족 언어도 영원히 사라질 지경 이라고 한다
지금은 만주어를 아는사람이 희박하다고 하며 곧 소멸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외에도 여러민족이 믹서기처럼 혼혈된 지금의 중국인을
그 모든걸 용광로 처럼 녹여서 왜곡하여 지금 중국인이 94%가 한족으로
조작하여 엮어 버린게 지금의 중공 공산당 이다
실제로 순수 혈통 한족은 전부 혼혈화 되어 거이 없다고 봐도 이상한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분류 하자면 절반 이하일 것이다


사실 한족은
계속 이민족의 지배를 당하는 민족 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순수 한족이 세운 나라는 한나라 송나라와 명나라 등이다
명나라를 세운 부랑아 건달 출신의 주원장도 순수 한족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중국역사상 부랑아 건달 출신이 황제가 된건 주원장이 유일하다고 한다
9살에 아버지를 잃고 글을 잘 읽을줄도 모르고 쓸줄도 몰랐다고 전해지는 징기스칸도 거지같이 살기도 했지만
몽골의 족장의 아들 이었다 다 인정해도 한족이 세운 나라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뿐이다
신라나 당나라나 다 뿌리는 선비족으로 흉노를 흡수했다

302p-사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한족이 아니라 북방계 선비족 이라고 한다
고대사를 잃어버린 한국은 중국이 인정하건 안하건 진시황은 터키 방향에서 이주한 동이족의 후예 고조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은 중국사학자도 한족이 아니라 선비족으로 인정한다

당나라 뿌리는 선비족 이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고조선의 한 분류로 초원을 지배하며
일부 흉노족을 흡수했다
예전에는 백성의 다수가 누구냐가 아니라
왕족이 누구냐에 따라 그 지배 세력이 어딘가를 따지던 시대다
신라를 세운 세력은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 선비족과 흉노족 등이 어우러진 세력 들이다
신라를 건국한 경주 이씨와 밀양 박씨들은 선비계의 후예이고 김씨들은 흉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구려 관계토대왕이 백제의 맹공으로 풍전등화에 빠진 신라 김춘주가
고구려에와 구원병을 요청할때 고구려 백제 신라 힘을 합쳐 당나라를 치자고 제의하자 김춘추가 두번이나 거절한 이유는 같은 선비족을 칠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반문하고 십다
이제야 어느정도 이해가 가네 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 시켰는지
결국 나 당 연합군은 선비족과 흉노의 동맹으로 부여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족친 인종전쟁 이었다
한국은 비교적 지진이 안전한 나라이다
그리고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원자력 발전소를 짓지도 않았다
만약에 한국의 동해 최북단 속초 부터 동해를 따라 동해 해안선을 따라서만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으면 일본이 가만이 있겠는가 고의로 원전 터트려 일본에 핵 방사능 바람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부니까
핵물질 일본에 뿌릴려고 작정 한거라고 난리를 칠것이다
비교적 동쪽에 경주에 인가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것 같은데
그게 터진다고 해도 일본 본토에 바람으로 직격타를 날릴것 같지는 않다
강원도 속초나 동해 정도가 그러나 그곳에 원전을 지을 거라는 말을 아직 못 들었다
그러나 중국은 백두산 밑으로 부터해서 서해 바다와 인접한 곳에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원전이
지어졌고 또 지어질 예정이다 그 수많해도 한두개가 아니고 수십개나 된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이다
그런대 그곳이 지진대 란다
만약에 지진이나 부실공사로 지어진 원전이 터지면 바람이 한국으로 불면 중국발 황사나 미세먼지
한국에 덥치듯 무방비로 죽음의 핵 방사능 물질이 대량으로 서울등 서해안으로 직격탄 맞듯이 덥쳐 .한국은 죽음의 땅이 될수도 있다
중국에서 부실하게 지은 아파트가 비를 맛고 무너졌다는 황당한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원래 원전은 지진대 위에 지으면 안되는 걸로
유치원 생도 알텐데 그런곳을 일부로 찾아서 건설한건
중국엔 최소의 피해로 한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묻고십다
만약에 지진으로 터졌 다는데 또는 사고로 터졌 다는데
한국이 중국에 대해 뭐라고 따질가
이런 심각한 상항에 대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에 거이모든걸 침묵하고 있다
서해바다 어민들이 설치한 어망을 중국어선들이 해적선처럼 훔쳐가도 한국영해에 넘어와 서해바다 물고기를 씨를 말리듯 초토화 해도
그저 한국 정치권은 중공 눈치보느라 살살 대하고만 있다 만약에 일본 어선이나 미국 어선이 그랬다면 한국이 뒤집어 질정도로 강하게 처신하자고 친중 세력들이 난리가 나도 벌써 났을텐데
왜 유독 중공 에게만 약할까 ?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나 발해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왜곡하여
유사시 북한이 붕괴하면 북한의 핵을 제일먼저 뺏고 북한을 중국땅으로 만들려고
미국에 비밀리에 미국이 묵인해 주길 로비하고 있다는데
한국의 재계 정계 학계에서 중국에 대해 조금만 비리를 들쳐 비방하면
왕따를 시키며. 집중포화를 하는 실정이다
바야흐로지금 한국의 대세는 중국이고 모화사상의 부활이다


미국이 아직 까지는 중국보다 군사력이 월등히 강해 중국이 미국의 허가없이

북한 붕괴시나 급변시 중공이 북한의 영토를 먹을수가 없다 한 미 연합군에 의해 북한이

지배되는 시나리오를 중공이 가장 안좋게 보는 시나리오라 김정은 정권을 싫어 하며 속으론 붕괴되길 바라면서도 북한이 한미 연합군에 넘어가는걸 바라지 않기애 북한이 핵개발을 해도 북한에 제재를 가하기를 꺼려 하며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북한을 지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양근이 죽었을때 한국 방송과 언론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지랄해도 나는 김정은의 제가로 북한 군부의 반발로 암살되고 교통사고로 위장됐다고 말했다

김양근이 죽자 얼마후 북한의 핵실험이 실시되어 나의 주장이 확실함을 증명 하였다

온건파인 김양근이 핵실험을 반대하자 군부가 암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이다


김양곤 같은 경험많은 협상가가 군부에 암살된후 바로 핵실험과 미사일쇼를 한것만 봐도

김양곤이 반대 했다는 증거이다 물론 북한에선 김양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둘어대지만 말이다

만약에 정은이가 이판사판으로 서울에다 핵한방 쏘면

한국은 그걸로 끝이다

박정희가 핵 보유를 주장하고 김대중이 햋볕 정책을 하고

노무현이 자주국방을 내세운건

결국 미국이 영원히 한국을 지켜 준다는 것은 뜬구름 이라는 베이스에서 나온 정책이다

박정희가 핵보유를 하려 했던것은 중공이 핵 개발을 했기에

한국이 수많은 핵을 보유한 중공에 넘어갈것을 우려해 나온 자주국방 핵보유 정책이고


김대중의 햋볕 정책은 한국은 미국에서 핵을 못만들게 하여 현실적으론 안되고

미국을 언제까지 믿을순 없고 북핵도 문제가 있지만 더큰 문제는

수백발 핵미사일을 가진 중공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데 북핵이 중공핵을 견제 할수도 있지 않을까

김대중이 생각하고 북한이 남한의 지원이 없으면 중공에 자원을 팔수밖에 없다고 보기에 북한이 중공의 영향권에 넘어가지 않도록 북한 경제를 지원하고

남한과 북한의 의지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이 햋볕정책 이라고 보면


노무현은 김대중 정책을 계승하여 더 나아가 박정희의 자주국방 정책을 혼합하려 노력 했던것 같다

그 정책의 기본 베이스에는

북한핵이 한국에 위협적인 존재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핵을 20개 정도 보유 했다고 미국 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핵 보유한 북한을 대책 없이 압박만 하는것은 북한이 조용히 스스로 붕괴할 거라고 믿는거야 말로

유치원생 보다 못한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노무현은 생각 했던것 같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건 주변국 중공등으로 부터 북한을 지키려고 자주권 차원에서 핵보유를 하는 것이라고 보고


북한을 압박하여 붕괴시키면 북한이 조용히 붕괴될 나라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 가장 우려하는 핵 전쟁이 날수도 있고 한반도가 긴장상태에 돌변하면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줄수도 있어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특히 북한이 중공에 의존하지 않고

남한이 주도적으로 북한 경제에 개입하여 어느정도 수준을 끌어 올린후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하는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본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는 무조건 북한을 압박하여 북한이 결국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남,북한 자주적인 의지의 평화 통일을 더어렵게 만들었다고 야당은 보는것이다

한국의 대기업 오너들과 친중 세력들이 당장 경제적 이익만을
따지고 이런 엄청난 문제를 다 무시하고
친중 일변도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정치권에 로비하고. 있는데
한국에 돈만은 친중세력은 중국원전이 터졌다는 소식이 오자마자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도망갈 것들이고
죽음의 핵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에 덥치면
그걸 그대로 쳐 마시며 죽는건 서민들 뿐일 꺼라는게 누구나 추리할수 있는 시나리오다
지금도 중국발 중금속 발암물질 미세먼지가 바람이 한국쪽으로 불어 무방비로 한국인의 건강에
생각보다 엄청 인체에 해롭다는걸 언론과 방송에서 제대로 보도를 하지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갑작스런 경제부흥과 발전으로 10년전보다 자동차 수가 핵분열하듯 늘어나 대기가스를 배출하고 규제없는 무분별한 핵분열하듯 늘어난 공장에서 엄청난 환경오염을 무분별하게 대기에 내버려 지구가 심각한 환경오염에 이은 기후 변화로 한반도가 직격탄을 맞으며


특히 중국 인도등 제3국의 거대한 국가들의 갑작스럼 경제개발로 환경오염도 심각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대륙의 허파 노릇을 하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 들이 인구증가와 경제개발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

지구의 독소를 제거하지 못하여 곳곳에서 엄청난 기온 상승과 흡수되지 못한 독소가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현상으로 인류의 종말을 앞 당길수도 있는 위협이 오는데
반중 여론이 확산될껄 우려하여 될수 있도록작게 보도하고 조용히 넘어가려 하는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왜 그렇게 중국 눈치를 볼까 한국이 이미 경제적으로 중국에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에서 한국에 중국산 수출을 금지만 해도 한국 경제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좋지도 않은 더러운 중국산이 한국에 들여오면서 부터 한국이 엉망이 되었다
점점 망해 가는 것이다 교활하고 음흉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이걸 모를리가 없다
어쩌면 이런걸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많은 놈들은 환경좋은 공간에서 공기정화 하여 중국발 미세먼지 거이 안마셔 서민들만 쳐마시고 일찍 죽지
유사시 바람의 방향을 중국쪽 으로 불수있는 또는 보호막을 상공에 칠수있는 과학적 연구가
시급하고 아울러 사스도입과 핵 미사일 도입을 미국에 로비하여 한국의 사정을 충분이 이해시켜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중국이 갑자기 경제가 부흥하면서 13억이 넘는 인구 대국이 갑자기 물소비량 식량소비량 에너지 소비량이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중국은 인구대국으로 갑자기 경제개발을 하며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나 세계 원자재를 싹쓸이 하다시피
하며 지구의 독소를 제거하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 들이 인구증가와 경제개발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

지구의 독소를 제거하지 못하여 곳곳에서 엄청난 기온 상승과 흡수되지 못한 독소가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현상으로 인류의 종말을 앞 당길수도 있는 위협이 오는데 공장을 무분별하게 돌리고 울창한 숲을 훼손하는 심각한 환경오염 으로 이산화 탄소량이 더욱 많아져 지구온난화가 갑자기 더욱 가속화 되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인류의 종말이 빨라질수 있다
특히 앞으로 석유나 원자재 고갈이나 식량보다도 생명의 근원인 물부족으로 인류가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인류의 종말의 될수있는 3차세계 대전의 빌미가 될수도 있다
다른건 몰라도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수가 없다
그러니 중국이나 인도는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등 제3세계 국가도 미국과 UN 이 지금부터
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인권이나 환경오염.등의 개선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류는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시기가 빨라질것이다
역사적 으로 볼때도 중국과 일본은 신용이 없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게 중국 차관급이 방문하여 사스 도입하지 마라고
한국을 중국 속국처럼 지시하고 가며 나경원이를
외교적 결례로 이쁘다고 장난치는데 나경원이는 중국 차관급에게
귀싸대기를 때려야 대는데 조용히 있더라
한국을 얼마나 알로 봤으면 불과 차관급이 버르장머리없이 까불가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이 오면 조선왕이 무릅끊고 황제의 친서를 받으며
조선 진귀품이나 아리따운 조선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쳤듯시 중국에 사대하듯 저자세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한국을 도와주려던 미국에게는 반미선동하고 한국을 죽이려는 중국에게는 사대하는 무리들보고
정말 분노를 느낀다 마치 IS테러범이 포로를 참수 하기전에 동영상을 보니 포로가 조용히 무릅끊고 있는 모습을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꺼 IS테러범에 저항하다 총맏아 죽은게 났지 왜 저렇게
참수할동안 무릅끊고 가만히 있을까 물론 동영상만 찍는다는 거짓말로 속였겠지 IS테러범개.돼지만도 못한것들 말을 믿는것 부터가 잘못이다
일제때도 깡패들은 징용이나 군대에 잘 안데려 갔데
하도 사고를 많이 치니까 골치아파서 그랬다는 말이 진실이 아닐 지라도
과거 내가 군대 갈때만해도 복무기간 개월수가 지금보다 훨씬 길어서 그런지 현역.입영 대상자가 남아돌아
현역은 고졸 이상에 신체등급 1급 이상에 전과가 없고

304p-물론 정신병력이 없어야 하고 이런 조건을 다 갖추 더라도
신체에 문신이 있으면 현역 입영 대상에서 제외 시켰다
그 이유는 문신있는 사람들이 깡패 기질이 있어 군부대 분위기를 흐린다고 본 것이고
또. 탈영이나 총기사고 등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일제때도 깡패를 군부대나 징용으로 끌고 갔다가 총기들고 탈영하여 사고나 치거나
징용으로 끌려가 탈출하여 일본내 에서 물의를 일으킬 까봐 꺼려 했을수도 있다
한국은 지금은 정치인들이 군대 복무기간을 많이 줄여 현역입영 대상자가 부족하자
중졸로 낫추고 문신있는 사람도 받아준다고 한다
한국은 중국에 나 잡아 가라는 식으로 행동 해서는 안된다
끝까지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고 미래 후세 세대까지 배달민족의 전통을 보존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한다
조선시대 조공으로 중국에 끌려간 한국 처녀들이 인육을 즐겨 쳐먹던. 중국인.들에게
만두피 속으로 얼마나 많이 들어갔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돗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마천에 공자도 인육을 즐겨 쳐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참고자료-유교문화의 종주국 중국에서 꾸준히 이어진 식인 풍습
식인문화는 중국 4천년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한나라가 건국된 기원전 206년부터 청나라가 멸망한 1912년까지, 중국에서는 식인의 기록이 220차례나 정사(正史)에 기록되어 있다.
최초의 식인 이야기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여 육장(肉醬)을 만들어 원수의 아들에게 먹기를 강요한 여인 이야기다. 유교는 복수주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 면이 있어 복수에 의한 식인행위가 있었다.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불구대천, 不俱戴天)는 생각으로 심하면 부친의 원수를 29대까지 갚기도 했다. 복수할 때는 한 칼에 숨통을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잘랐으며
때로는 고기를 잘라먹고 심장과 간을 꺼내어 씹어 먹으며 뼈까지 갈아 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예로, 측천무후 당시 잔혹한 고문과 형벌로 유명했던 내준신이 처형되었을 때에는 군중들(그에게 처형당한 이들의 가족들)이 다투어 그의 고기를 잘라먹었다고 한다. 황제는 법률로 살육의 형을 규정했다. 이는 주나라 때의 율령 체제부터 등장 하지만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식인 기록이 나타난 최초의 정사인 <사기(史記)>는 중국 최초의 역사왕조인 은 왕조(주나라 이전의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이 신하들을 해(인체를 잘게 썰어 누룩과 소금에 절인 고기), 포(脯, 저며서 말린 고기), 자(炙, 구운 고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해, 포, 자는 이후 중국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인육 조리법의 대표격으로 계속 등장한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졌다. 그 후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중국 역사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졌다.
인육은 가끔 약용으로도 쓰였다.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인체 각 부위의 약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통념에다 효라는 유교 사상의 실행으로서,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살 등을 잘라서 봉양하는 일은 더욱 흔했다. 단, 이런 일이 진정한 효행인가 하는 정치적인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의 황제 뜻에 따라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효자로 표창을 받았고, 다른 시대 사람들은 신체를 훼손한 불효자로서 매를 맞은 후 귀양을 갔다. 수· 당대에는 인육시장이 출현했고, 인육애호가가 열전(列傳)에 기록되기도 했다.
송 말기부터 원대에는 <철경록(輟耕錄)>이라 하여 인육 요리법을 자세히 적은 요리책까지 출판되었다. 원나라를 방문한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목격한 복주(福州)의 식인 풍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지방에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주민들이 그 어떤 불결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무엇이건 즐겁고 맛있게 먹는305p-다.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머리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 다음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중국의 식인 풍습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 유명한 중국 고대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삼국지>의 경우, 정사로 기록된 진수의 삼국지에는 유비가 즐겨먹은 음식이 인육으로 만든 포였다고 하며, 여포가 죽은 후 그
고기를 죄인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소설 <수호지>에서는 인육으로 고기만두를 만들어 파는 악한이 등장하고, <서유기>에서는 고승(高僧)의 고기가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하여 삼장법사가 끊임없이 요괴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육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송나라 때에 만들어졌지만,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인육은 시장에서 공공연히 매매되었다.
1918년, 중국 근대의 사상가 노신은 <광인일기(狂人日記)>에 식인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식인 풍습이 만연한 사회상을 폭로했다. 그는 또한 국가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도자 오우(吳虞, 1874∼1949)는 유교 = 식인이라 하며 강력히 유교를 비판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인육캡슐 이란게 보약으로 팔리고있고 영아탕 이라는게 보약으로 만들어져 쳐먹는 놈들이 있다고 한다
갖 태어난 아기의 죽은 시체를 잡아 끌여 보약으로 쳐먹는 야만적인 행동은 당장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참고자료-나이지리아 의 한 호텔에서 인육을 팔다가 적발된 호텔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영국의 인디펜던트 (The Independent) 가 보도했다.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셀로판지에 사람의 머리 두 개가 포장되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11명이 체포됐고 AK-47 총 등 기타 무기는 압류됐다.
인육은 식당의 음식 중 고가의 특별한 음식으로 취급되었으며 “구운 인간의 머리” 도 메뉴 중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올해 초 호텔에 갔을 때 덩어리 째 파는 고기를 판매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은 것이 인육이었다니 충격일 뿐입니다”
그곳을 이전 방문한 목사의 증언이다.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인육을 고기로 취급해 팔다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서워지는군요” 그가 덧붙인 내용이다.
타블로이드 기자는 조사 당국이 식당에서 군인 모자 2개와 총탄 40구, “많은 수의 핸드폰”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었다.)

K신문·박거 기자


어떤 글에는 일부 아프리카 범죄 집단이
다수의 여성을 감금하고 성폭력 하여 어린 아이를.실험실이나 .장기.밀매.용이나. 식용으로. 생산하여 . 키운다는. 믿지못할 경악할 끔찍한 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세계최대. 영유아 .인신매매.와 .장기밀매 .국가 .중국 .공산당은 .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취재파일] '양계장의 암탉처럼'…아기 공장에 갇힌 소녀들
최종편집 : 2013-05-14 09:48
참. 팔다, 팔다 못해 아기까지 만들어 파는 공장이라뇨. 말 그대로 'baby factory'.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이야깁니다.

306p-아기 공장으로 이름 붙여진 나이지리아 동남부 이모주의 한 주택에는 17명의 10대 소녀들이 있었습니다. 소녀들의 나이는 14살에서 17살 사이. 끔찍한 건 이 소녀들이 모두 아기를 가진 상태였다는 겁니다.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또는
초경을 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거죠.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집 안에서는 11명이나 되는 갓난아기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어린 소녀들을 임신시켜 아기를 낳게 한 후 돈을 받고 내다 판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있으니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도 부족할 텐데, 이 소녀들의 영양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 밖에 먹지 못했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감금당한 채 한 끼 식사로 하루를 버티며 아기를 낳을 날만
기다리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겁니다.
누가 꿈 많은 소녀들에게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들을 임신시킨 사람은 모두 같습니다.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토악질이 나올 것 같으니 말을 바꾸겠습니다. 이 소녀들의 배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의
유전자 절반은 23살의 한 젊은 남성에게서 나왔습니다. Oyibo 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이 남성은 경찰에 체포된 상탭니다. 그리고 자신이 집 안에서 발견된 모든 소녀들과 성관계를 맺고 임신시킨 사실을 시인했다고

합니다. 현재 경찰은 이 남성 뒤에서 아기 공장을 운영해온 우두머리 격의 중년 여성의 행방을 잡기 위해 나선 상태입니다.불행하게도 나이지리아에서 아기를 내다파는 공장이 적발된 건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1년에도 아비아주의 경찰이 한 주택을 급습해 32명의 임신 소녀를 구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짐승만도 못하다’는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2008년에는 지역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감금당한 여성들이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요? 유럽연합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우리나라와 인접한 중국과 더불어 인신매매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인신매매에 희생되는
여성들은 종종 성매매에 내몰리는 게 현실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인신매매방지기구인 Naptip은 나이지리아 아기들이 한 명당 1,920에서 6,400달러, 오늘 환율로 치면 우리 돈으로 213만 원에서 710만 원에 팔린다고 밝혔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봤을 때 나이지리아의 1인당 GDP가
1,657달러인 걸 생각하면 아기 매매는 정말 큰 돈벌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도 해 볼 법한 일이 되는 겁니다.
아기들을 파는 소녀들은 그 대가로 얼마를 받을까요? 아기의 성별이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자 아기가 더 비싸다고 합니다.) 보통 16만 원에서 20만 원을 받습니다.
열 달이라는 임신 기간을 견디고 배 아프게 낳는
것도 소녀들인데 수십 배에 달하는 이득을 가로채는 건 정작 다른 사람이라니. 분통 터지는 현실입니다.
소녀들은 왜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걸까요? 바로 가난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세계 10대 석유 수출국 가운데 하나. 이 모두가 나이지리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지만 석유
수출에서 오는 수익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주민의 실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농업 국가였던 나이지리아가 석유로 막대한 부를 구축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일부 정치가와 그 무리에게 돌아가면서 주민은 굶주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한 통계에는 나이지리아
국민의 65%가 불안정한 식량 수급에 시달리고 있고, 5세 이하의 아동 가운데 25%, 즉 4명 중 한 명은 영양실조라고 하니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아픈 현실 속에서 가난한 나이지리아의 여성들은 쉽게 아기 매매의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심지어 병원을 포함한 의료 기관마저 불법적인 아기 거래에 동참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법으로 팔려 나간 아기들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아기들은 불법 입양됩니다. 이건 그나마도 좋은 편에 속하는 경우 상당수의 아기들은 플랜테이션 농장이나 탄광, 공장 등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여자 아이는 윤락가로 보내져 성매매 도구로
전락하는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앞의 일들은 운이 좋은 축에 속할 지도 모릅니다. 일부 아이는 장기 적출을 위해 살해되고, 심지어 흑마술 의식의 제물로 희생되기도 합니다. 영국 BBC 방송국의 나이지리아 주재원의 말을 옮기면
“더 매력적이고 강해지기 위해 아기를 살해하는

주술 의식이 행해지는” 것이 나이지리아의 현실인 겁니다.
유네스코는 나이지리아에서 하루에 최소 10명의 아동이 매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나이지리아 법률은 불법으로 아기를 사고 팔 경우 최대 징역
14년 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체포된
23살의 남성도 그 정도 형을 받게 되겠죠. 쓰레기는 재활용되면 새로운 자원이 되는데, 그만도 못한 행위를 저지르고도 고작 14년형이라니. 비극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요.
아기 공장에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다보니 ‘더 팩토리’라는 이름의 영화가 나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녀들을 납치해 지하실에 가둔 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하는
악랄한 사이코패스를 추적해가는 형사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스릴러라고 합니다. 공포 영화의 소재가 지금도 여전히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을 나이지리아. 큰 눈망울의 소녀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SBS최고운 기자 최종편집 : 2013-05-14 09:48)

과연 우리는 이런 끔찍한 일을 남 일 이라고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런일에 적극 개입하여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세계 인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바마는 왜 비이슬람 교도가 아닌 포로만 장기척출 한다는 is 극악무도한 테러범을 공격하여 해체 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오바마는 잔악무도한 IS테러범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안보이는가
미국이 지상군을 보내지 않으면 한국군 이라도 보내
오합지졸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른 대략 7만여명에 불과하다는 IS 테러범 한국군이 가도
일주일 이내에 점령하여 해체시켜 억류된자 들에게 자유를 줄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인신매매나 불법 장기밀매는 세계에서 그.양이나. 잔인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 지금 현재 한국의 심각한 위협은 일본보다 중국공산당 이다
그런 중국공산당에 더이상 끌려 다니지 말고 한국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중국공산당과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중국공산당 패권 주의에 멸망하지 않고 오래 보존 할수있다
중국이 민주화 된다면 한국이 중국을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 들일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민주화 되지 않는 이상
중국 공산당은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 커다란 위협이다
경제인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중국에 아부 하자고 해도 그래서는 안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기업인들은 믿으면 안된다 그들은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할수만 있다면 나라도 팔아먹을 놈들이다
일부 대기업 들만 좋지 서민들 에겐 아무 도움도 안된다
사실 한국내 친중 세력은 한국의 안보에도 심각한 문제다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에 댓글 올리는놈들 중에 상당수가 중국에서 보낸 간첩일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에서 보낸 간첩이 한국내 만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산 수입금지 하고 신토불이 해도 한국경제 좋아진다 일부 대기업들만 손해 볼뿐이다
더불어 한국 농민 그리고 영세 상인도 장사 잘된다 영세 중소기업 어민 다 살아 난다
지금 중국어선이 2000년대 넘어 서해 동해 바다에서 바다고기 씨를 말리려 하고 한국 어선 어망을 훔쳐가고 해적질을 하고 있다
노태우 때만 해도 당시는 아직 중국과 수교를 하지않아
한국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대만출신 화교들 3만명 정도 있었다
당시는 화교들이 연예계에 진출하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현미는 대만화교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서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화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수 출신 가수라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초 화교가수 진필이 화제 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많아 숫자파악도 안되고
화제가 안된다 그리고 과거 모택동 공산당정부를 피해온 대만화교와
노태우 정권때 북방외교로 중국과 수교하면서 서서히 오기시작

308P-2000대 초반부터 대량으로 들어온 중국 자본과 중국인 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국인 노동자 중국산 수입품 중국산 농수산물
거이 없을때 내수경기 참 좋았다 경제 성장률도 좋았다
한국인 노동자 서민들이 지갑이 두툼 해져 돈을 잘쓰니까 내수경기 참 좋았고 일자리도 많았다
그때 대학생 공부 안하고 매일 데모해도 대학졸업 하면 거이 힘들이지 않고 취직했다
물론 노태우는 12.12 사태를 일으켜 하극상을 일으키며 정권을 찬탄한 군사정권으로. 온갖비리를 저질러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그당시 시대 상황상 중국산수입 없을때
신토불이 할때 내수 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다들 증언한다
그후 노태우가 북방 정책 들고나와 중국과 수교 하면서 중국산과 중국인들이 뚝 무너지듯 조금씩
들어 오던게 오늘날 뚝이 무너지듯 마치 핵분열 하듯 한국을 집어 삼키려는 비극이 시작 된것이다
어짜피 중국이 경제성장 으로 세계 원자재 원유 싹쓸이해서 구매하여 소비하여 불랙홀로
고갈 상태를 대비하여 미래 후손들을 생각 해서라도 원자재 거이 안나는
한국이 그런 사태가 오면 마진이 안되 공장다 문닫아 야돼
이젠 신토불이 시대야 한국산 농산물 한국산 노동자 우대해주고 자급자족 비율을 서서히 높여야
유사시 대비도 되고 내수 경기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군부대나 관공서 부터 천연 에너지를 이용한 자체 발전소를 짓도록 허용하고
민간에는 적극 지원해줘 피크오일 사태와 기후변화로 초래할 식량부족 사태등을 다각적으로 연구하여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은 생각도 안한다
그만큼 한국을 무시한다는 얘기 일본이 두려워 하는건 중국
역사적 으로도 일본이 중국에 난징 대학살등 엄청난 짓을 벌였기에
물론 한국 에서도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국인들은 그때 당한 조상들의 고통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미 대일 청구권으로 김종필이 1억불 받아다 썼다
만약에 일본이 중국에 점령 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일본인들은 내색은 안하지만 엄청난 두려움에 있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서 난징에서 20만명이 학살 당하는 등 한국보다 더큰 피해를 입었지만
대일청구권 신청으로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만큼 벼르고 있다는 얘기이다
런 중국을 북한 한국이 아직까지 잘막아 주고 있으니
일본은 한국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한반도가 중국에 넘어가면 동해 해안에 원전 잔뜩지어 일부러 터트리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 중간에 북한과 한국이 중국의 일본 진출을 막아 주는것에 대해
일본놈들도 잘알아 한국 전쟁으로 일본 경제가 부흥했다는 것도
일본이 중국을 두려워 하기에 중공에 대한 견제는 절대 포기안한다
그래서 재일교포95%이상인 특별 영주자에게만 투표권을 줄려고 했는데
일반 영주권자 에게도 투표권을 포함해야 한다고 해서
없던일로 한거야 일반 영주자 에게도 투표권을 주면 중국인 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없던일로 한거야 그후 일이 어떻게
진행 됐는지 모르지만 일본이 특히 중국인을 두려워 하고 까다롭게 견제하는건 사실이다
그래서 원폭을 일본 열도에 퍼부어 엄청난 사상자가난 미국과 동맹을 맺으며
미국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미국은 믿을수 있거던
일본이 미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것이다
중국이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현재 일본 해상 자위대 전력이 중국 해군에 비해 견주어도 최첨단 무기로 조직이
잘정비되어 있다
현대전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일본은 최첨단 이지스함과 첨단 잠수함으로
잘 정비되어 수적으론 중국에 불리하지만 질적으로 차이가 많아

309P-충분이 승산이 있다 이라크 전때도 미그기 전투기가 뜨지도 못했다
그것은 전자전 장비가 미국 비행기가 월등해
이라크의 러시아제 전투기 미그기 가 떠서 상대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전투기가 이라크 전투기를 먼저 발견하고 쏘기에 이라크 전투기는 영문도 모르고
조종사와 전투기는 죽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전은 정보전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쏴야 이긴다 그래서 바닷속 깊숙이 잠항하며 전세계 바다속을 누비며 핵미사일을 탑재하여 은밀히 상대의 해안에 접근하여 핵미사일 공격을 할수있는 핵잠수함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중국은 엄청난 방위비 투입으로 향후 해군적력을 극대화하여 향후미래는
동북아에 가장 위험한 존재로 남으려 노력하며 위용을 과시하려 할것이다
향후 미래는 중국의 군사력을 일본이 감당할수 없게되며 절대 무시 못한다


(참고자료-디젤 잠수함과 원자력 잠수함의 숨바꼭질, 누가 이겼을까요? 해군은 이 훈련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패 역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 같지만 209급도 만만치 않습니다. 역대 전적이 화려합니다.
1998년 우리 해군 최초로 림팩 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인 이종무함은 미국의 원잠 등 총 13척을 가상 격침했습니다. 2000년 림팩에서는 훈련 참가 잠수함 중 가장 작은 잠수함이었던 박위함이 적 함정 11척을 격침했습니다.
박위함은 황군에 속했는데 황군 잠수함 가운데 유일하게 끝까지 살아남은 잠수함이었습니다. 2004년 림팩에서는 장보고함이 나서서 상대편인 청군 함정 15척을 전멸시켰습니다. 작지만 워낙
조용해서 적에게 잘 탐지되지 않기 때문에 승승장구입니다.
● Silent Shark은 어떤 훈련?
Silent Shark은 키 리졸브, 을지 프리덤 가디언처럼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보도된 적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는 요즘 추세에서는 아주 긴요한 훈련입니다.
잠수함 싸움은 결국은 누가 더 먼저 상대방을 탐지하느냐에 달렸는데 Silent Shark이 그래서 쏠쏠합니다.
그럼에도 Silent Shark은 미군 요청에 따라 시작된 훈련입니다. 홀수년마다 격년제로 실시됩니다. 원잠만 보유하고 있는 미 해군으로서는 디젤 잠수함의 성능을 실전적으로 익힐 필요가 있어서
Silent Shark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번 훈련은 5번째 Silent Shark입니다. 이전에는 괌 Exercise라는 이름으로 진행됐습니다.)
-sbs.뉴스2015년 6월12일-김태훈기자 -


문제는 중국의 핵인데 오키나와에 미국핵이 견제하고
최첨단사드로 미사일 .방어막이 잘 정비대어 있고 미국이 그런 일본의 의중을 잘알아
거이 핵보유국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많이 규제를 미국이 풀어주어
들리는 얘기로는 유사시 일주일만에 핵탄두를 탑재할수 있다는니
미국의 지지로 이미 핵 보유 했다느니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하는사람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중국의 핵잠수함을 일본 영해내에 못들어오게
철저히 봉쇄하고 미국과 공동개발하는 사드만 잘 정비하여 일본 상공만
보호해 준다면 중국과 전쟁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핵잠수함이 일본영해내에 못들어 오게 봉쇄하는건 거이 불가능 하다
그래서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로비 할수도 있다
핵잠수함은 바다속에서 은밀히 적의 해안에 가까이 다가가
핵미사일을 바로 쏠수 있기에 방어 하기가 쉽지않아
현대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체계이며 육지가 적의 특수부대나 핵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되도 바닷속의 핵잠수함은 위치를 파학하기 힘들어 공격하지못하고 그런소식을
뒤늣게 들은 핵잠수함의 보복공격이 있기에 적이 감히 공격을 못하게 만드는 전쟁 억지력에도 큰도움이 된다
일본이 헌법을 바꾸면서 까지 자위대를 증강하며 서서히
무장하는게 미국의 뜻도 있다고 본다

310P-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선택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제 미국이 신용을 못하고 있다
중국 일본 둘다 군사 대국이 되면 한국으로선 위험 국가다
중국은 벌써부터 한국을 속국 다루듯 한다
당장 서울에 수소폭탄 한방이면 서울은 물론 경기도 까지 초토화되어 1000만명 이상이 죽는다고 한다 수소폭탄이 아니더라도 원폭 한방이 서울에 떨어져도 200만명 이상이 죽고 서울이 서을이 초토하 된다고 한다 그런대도 한국은 미국이 아니면 독립도 못했고 지금 당장도 북한과 붙어도 이길수 있다고 말로는 떠들어도
신용이 안간다 북한은 중국을 더겁을 내고 있다
친중파 장성택 세력을 견제하는게 그 이유다
장성택이 기쁨조로 김정일을 쾌락으로 녹이고 북한의 일부 광산등 원자재가있는 땅을 중국에 훨값에 팔아.넘겼다 중공은 장성택등 친중파세력을 교두보로 서서히 중국자본과 중국인을 투입하여 북한을 중국화시켜 병합.시키려던 계획이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지연되었다
이명박이 장쩌민인지 후진따오 인지 만났을 때 중공의 장쩌민이 김정은이 보고 얼마 못갈것이라고 얘기 했다고 한다
중국도 속으론 북한이 빨리 붕괴되길 바라는건 확실하다 그리고 김정은이 사실은 중공엔 눈엣가시다
중공과 장성택은 김정남을 추태하려 했는데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올린 것이다
그러니 김정일이 죽자 친중파 장성택과 김정은이 권력 다툼은 불을보듯 뻔한 것이다 중국이 사실 은근히 두려워 하는건 북한이다 북한은 핵이 있고 10만의 특수 부대는 핵을 소형화하여 배낭같은데 넣고 또는 사스보다 만배강한 페스트 균을 중국의 군사 요충지나 대도시 터트리면 2003년 사스 사태때 증명 되었듯 전염병에 특히 약한 중공에 심각한 타격을 줄수도 있다
그래서 친중파 장성택을 거점으로 북한 내부를 한국 내부처럼 서서히 친중화 시켜
트로이의 목마처럼 스스로 성문을 열게 만들어 북한을 자연스럽게 중국 땅으로 만들려고 공을 들였는데 김정은 이가 눈치채고
북한내 친중세력을 견제 하기 시작 한것 같다
특히 친중파로 북한의 광산등 상당수의 원자재가 있는 땅을 중국에 넘기고 거금을 챙긴 장성택은 김정일을 기쁨조로 녹이고 북한의 권력을 서서히 잠식하며 약간 모자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추대하여 꼭두각시 처럼 부리려 하였으나 김정일의 반대로 김정남의 배다른 동생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하여
결국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 고모부인 친중파 장성택을 제거하고 친중파를 대대적으로 숙청 하였다
그런후 러시아에 발길을 돌리려 다가 북한을 중국공산당의 손아귀에 두려고한 중공 지도부가 러시아에 엄청난 투자를 하며 푸틴에게 그 댓가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하여 북한을 중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고 하고 있다

중공은 미국과 로비를 하여 미국의 눈엣 가시같은 북한핵이 중동 테러리스트들 에게
유입 되는걸 미국이 두려워 하는걸 중국이 알고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점령하여
핵 압수하고 티벳처럼 중국영토로 만들어 잘.관리.하겠으니 유사시 북한 붕괴시 평안도등 북한땅 일부를 점령할수 있게 미국이 허가해 달라고 하며 미국이 묵인해 주면 북한을 확실히 붕괴 되도록 압박 하겠다고
미국과 비밀리 로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변해 미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영토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패권주의 야욕을 알고 북한 보다도 중국을 더 견제하게 되어 미국에서 허가를 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중공이 포기하지 않고 미국내 친중 세력을 이용해 계속 비밀리 미국에 로비를 하고 있는건 사실인 것 같다
중국공산당은 이렇게 한반도를 통채로 먹으려고 오래전부터 동북공정 등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모화사상에 빠진 한국에 친중파들이 과거 친일파들이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대한제국을 통체로 같다 바치듯 과거 친일파가 이젠 대세가 중국이라 보고 친중파로 변해 단지 당장의 경제적이익 때문에 한국을 중국에 같다 바치려 하는 것같은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저급한 행동을 보고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미국이 급변하는 세상에 미국의 정치가 어떻게 빠낄지 미국이 영원히 지켜줄껄로
믿는 놈들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2015년 8월 아베 담화 내용을 보면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사과를 한것같은데 교묘하게 말을 돌려서 한반도의 식민지배를 미화 한것같은데
한국전쟁때 북한 공산군을 도와 내려온 중국공산당에 친중 일변도 변한 한국을 아베가 은근히 비꼬듯이
어쩌피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더라도 중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당장 미국의 보호아래 에서도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려 사족을 못쓰는 한국내 친중파들을 보고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사과하지 않는게 아닌가 해석할수도있다 역시 미쓰비시의 일제때 강제징용자 미국인과 중국인에게는 사과를 했는데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어 보상과 사과를 할수 없다는 회괴한 논리로 한국인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강제 징용으로 일본 하시마섬에 끌려가 수많은 사람들이 개도살 되듯 죽었는데 하시마섬을 유네스코에 등재 하는데 한국 정부에서 반대하지 않은 행동 등은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그동안 한국에서 반미 데모와 한국 정부의 친중정책으로 미국에서 사실 한국을 별로 안좋게 보고있다
그리고 한국을 도와 주었더니 은혜도 모르고 점점
중국에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보고 사대하는걸 보고 미국이 한국에 짜증을 내기시작 하였다
점점 한국에 대해 신용이 없어지며 중화권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강경파에서 나오고
한국을 빼고 중국을 견제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쉽게 한국에서 손을 떼지는 못할 것이다 한반도가 중공에 넘어가면 미국이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로 중공은 엄청나게 막강해 질것이며 그 다음 목표는 일본인 것은 물을 보듯 뻔하다
아무튼 한국은 앞으로 점점더 풍전등화다 미국만 믿지말고 대미외교를 확실히 해서 한국의 핵 보유와 사드 도입부터
서둘러야 하는데 사실 미국이 아니면 한국은 내일 당장도 중국에 점령될수 있는 나라다

드디어 2016년7월 박근혜 정부가 사드도입을 공식화 하자

중국과 정은이가 날뛰며 유사시 사드 배치 지역부터 공격한다고 공갈치며 반대하는건 사드 보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 못하게 못만들어 날뛴거야 이번에 사드배치 안했으면 트럼프가 만약에 대면 한국 포기해 서해바다 고기씨 말리듯 날로 한국을 쳐먹으려 할려고 그랬는데 수포로 돌아가니 날뛰는 거야 사드가 한국에 있음으로 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핵미사일을 감시할수가 있고 핵미사일을 미국을 향해 쏘면 한국에서 사드로 감시하여 요격할수가 있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에도 특히 주요해 결코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국이 유사시 사드 배치지역 부터 공격한다고 공갈치는것에 넘어가면 바보다 방어용 무기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는데 저러는데 사드를 배치안하면 오히려 공격을 더욱쉽게

중국과 정은이를 도와주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래서 필히 사드 배치 뿐 아니라 핵잠수함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미군이 철수되고 미국이 한국에서 과거 트르먼이 내세운 에치슨 라인 처럼 방어망 에서 제외 시키면 중국의 태도가 돌변할 것은 분명하다

극악무도한 IS 테러범이 중동에서 설치는데 미국이 과거와 달리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적극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국을 방어망에서 제외시켜 한반도에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니 천하태평으로 미국만 믿지말고 한국도 사드도입과 핵잠수함 도입을 서둘러 안전 장치를 해야 한다
한국내 중국 세력들이 2008년 중국유학생 만명이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한국인과 티벳인을 린치하며 세계 유일하게 한국의 서울 여의도 에서 폭동을 일으켜 테러한 이상으로 상전 노릇을 할께 뻔하고 삼합회 흑사회등 중국 폭력조직을 이용해 반중파 들을 은밀히 제거해 나가 감히 중국에 반기를 못 들도록 분위기를 장악해
우크라이나 친러파들이 러시아에 합병 시킨 것 처럼 한국을 중국에 합병 시키려 할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에 퍼져있던 중공인 유학생과 중공 간첩들이 섞여 만명이
여의도에서 난동을 부리며 티벳인과 한국인 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폭행하며 린치하는 태러의 초유의 사태가 2008년 벌어지자

시민단체나 언론 에서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만일 미국이나 일본 유학생 만명이 서울에서 난동을 부렸으면 한국이 뒤집어 졌을 것이다
여의도에 홍의병이 나타났다고 않좋은 여론이 조금씩 일자
갑자기 광우병 대모를 하기 시작하여 중국인유학생 만명이 여의도에서 한국인과 티벳인을 린치한 사건을 덥기시작하며 한동안 난리굿을 치며 떠들더니
당시 중국 공산당주석 후진타오가 한국을 방문하기 대략 일주일 전쯤인가? 꺼지지않을 것처럼 거세던 광우병 대모는 거짓말처럼.없어졌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미 한국은 친중 세력들이 여론몰이 하며 한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와준 미국에 반미선동 하며 떠들던 이들이 중국 에겐 보복이 두려워 그런건지 아니면 친중세력들이 바람잡아 그런건지 뭐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
감히 나서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시키는대로 사상적 노예가 되는걸 차처할놈 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중국을 지금부터 라도 견제하고 한국내 중국세력.확산을 막아야한다

이 세계에 역사상 미군이 가장 민주적인 점령군 이고 상대적으로
깨끗했다고 아직까지 미국을 상대할 나라는 없다는걸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하기위해
미국 같은 나라는 없다는걸 교활한 아베가 잘알기 때문에 미국의 속국을 자처하는 것이다

내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이윤형을 2002년 미국 아스카 일식당인데
노스케롤라이나주 샬럿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차로 약 40분거리 떨 어져 있는

312p-것같은데 근데 정확한 기억이 안나 그곳에 너무짧게 있었고 아니면 샬럿이 아니고 다른도시인가
인면 사우스케롤라이나 주였던가
그러나 분명한 기억은 일식당 사장이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승용차로 나를 픽업와서
식당으로 대려 가는데 그날 식당이 노는날 인지 영업을하지 않았는데
밖에 식당간판이 영어로 ASUKA라고 적혀 있었는데
식당사장은 내가 문의 하지 않았는데 이뜻이 일본에 전래된 백제문화라는 뜻이라고 하더군 ?-


(아스카 시대는 대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6세기 중엽부터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 행해지기 이전인 7세기 중엽까지로 잡고 있다. 이 시기에는 불교 전래에 따른 불교문화와 불교미술이 발달했다.
이는 한반도 귀화인계인
소가 씨[蘇我氏] 집안과 다른 일본계와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 속에서 소가 씨가 승리함으로써 성취된 것이며 따라서 아스카 시대의 미술 문화 속에서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육조시대와 한국의 삼국시대의 기법·
양식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대륙의 선진문물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일본풍을 혁신시킨 것으로 보인다. 아스카시대 유물로는 금동제 석가삼존불상, 관음보살과 보장전 안의 구다라[百濟]
관음 등이 있으며 특히 구다라 관음은 백제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백제인의 탁월한 조형감각과 세련된 미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 상(조한욱) < 삼국의 성립과 발전 < 삼국의 문화 발달 < 삼국과 주변 나라의 문화 교류-백과사전

역사에 만약이 있을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김일성이 오판하지 않고 3일간 남진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밀고내려 왔으면 한반도가 부산까지 완전히 공산화된 상황에서 미국의 피해가 심각히우려 된다는 핑계를 들어
맥아더의 참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방비 상태로 후퇴하던 한국군도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도 없이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률작전을
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 왔을수도 있다
그랫으면 더욱더 한국전쟁은 한국의 입장에서 어러운 상황으로 빠져들수도 있었겠지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이 트르먼 에게 전화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하자 처음엔 트르먼이 거부 하였다
또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 기독교 선교 단체도 미국정부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고
결정적 으로 맥아더 원수의 3번에 걸친 당시 미국 대통령 트르먼 에게
한국전에 참전하여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간곡한 부탁에 트르먼이 승인하여
인천상륙 작전으로 전황이 역전되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 개입으로
미해병 1사단 역사상 가장큰 피해를 개마고원 전투에서 당하며 1.4후퇴를 하자
원자폭탄을 중국에 투하하자고 말하자 트르먼이 맥아더 원수를 해임하고
한국 전쟁은 휴전으로 끝나고 김일성이 백두산 절반을 중국에 참전한 댓가로 주었다
당시 중공군의 위용은 미군을 겁에 질리게 힐정도 였는데
무기도 없이 꾕과리를 치고 인해 전술로 밀고내려 오는데 죽어도 죽어도 시체를 밟고 내려오는 중공군
당시 중공군의 선발대는 모택동 공산당에게 패한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소속이었던 사람들이 총알받이로 많이 희생 되었다고 한다 어짜피 가만 있어도 얼어죽고 후퇴해도 총맞아 죽고
그럴바엔 앞으로 나가다 죽자고 밀고내려 온거야
당시 모택동 아들도 죽었다고 하더군 미국이 얕보던 중공군을 한국전 이후로 다시보기 시작했어 아무튼
중국의 공산화가 와해되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않는이상 중공군은 한국의 미래에 백해 무익한 존재 들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중국이 하루 빨리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당나라와 짱짱하게 맞서면 민족의 기상을 드놉히던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 트린게 결국 같은민족 신라 인거지

이게 한국 족의 비극의 시발점 이다 그당시 엄청나게 많은 백제 유민이 일본으로 도망 갔음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일본에 한자 문화를 전래한 것도 백제라는 설이 있다
그러니 성씨 문화도 백제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추리할수 있는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설마 하니 같은 민족인 신라가 당라에 빌붙어 그리스도를 은화 30냥에 팔아먹은 가롯유다 처럼
민족을 팔아먹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 놓고는 민족의 역적을 영웅으로 미화하고 지들이 삼국을 통일 했다고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구라를 치니
웃기는 일이 아닌가 당나라와 당당히 아시아의 패권을 겨루며 맞서던 한민족의 기상을 신라가 중국의 속국으로 만든 꼼수의 전통은 아직까지 세계적인 그룹 삼성오너 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놈은 내가 일하자 마자 공사현장 일본놈들 에게도 나몰래 삼성회장 막내딸이 날 못잊어 자살했는데 그래서 천억 주려다 말았다고 하면서 은근히 삼성오너들 유리하게 선전하고
나를 깍아 내리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소릴 여러번 들었다
물론 일본말을 내가 다 알아 들을 순 없지만 일부 알아 듣는것도 있기에
일본에 있던 이놈이 사건의 내막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마치 죽은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에게 직접들은 것처럼 씨부리는지 황당할 노릇이다
이런식으로 전세계 퍼져있는 삼성그룹 조직과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 남동생이 운영하는 중앙일보 홍라희둘째 사위 김재열이 동아일보 명예회장 아들로
한국의 대표적인 신문사 조 중 동중에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두신문사와 방송 JTBC와 채널A등 뿐 아니라
한국 최고의 광고주 와 인맥과 권력으로 한국의 거이 모든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다 시피한 삼성가 오너들에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눈치를 안살필수 없는 현실의 한국은 삼성공화국
얼마나 많은 거짓 유언비어를.국내인은 물론 외국인들 에게도 퍼트렸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더구나 삼성공화국 이라고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주주총회 당시 중립을 지켜야할
지분을 가장많이 보유한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편에 지분을 행사하듯 한국은 이미 삼성공화국 이다

삼성그룹의 전세계 퍼져있는 외국어 유창한 엘리트들 직원등이 거짓 유언비어를 전세계 외국인을 세뇌 시키며 삼성 오너들에게 잘 보일려고 퍼트려도
내가 일일히 만나 그말이 터무니 없는 거짓말 이라고 말.하려고 .해도 언어도. 안되고
일본글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나 혼자서 아무리 떠들어 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 보다 더 어려운게 물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이놈은 3년동안 한국인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이제와 나를 쓴 것은 뭔가 사전에 계획한 느낌이 든다
원래는 도쿄에서 한국인들 여러명을 쓸려고 했는데 내가오자 두명만 쓰고
더이상 부르지도 않았다고 이놈 은 말하는데
누군가의 지시로 인해 기획설이 있음을 암시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보는 놈인데 일본놈 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다니 삼성그룹 오너들의 치사함과
이들이 이렇게 까지 하면서 외국인들 에게 까지 어거지로 거짓말을 퍼트리며 감추려고 하는것은
이들이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청부살해범의 강력한 용의자 라는걸 드러내는 정황 증거인 것이다
한국이야 삼성그룹 손바닥 아래 있기에 한국인 들은 별로 신경 안쓰는데
이러한 사실이 외국에 알려지는걸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이놈은 또 그전에 대만계 일본인 야쿠자 에게 공사대금 한국돈 으로 환산해 대략 1억 5천만원 정도를 못받아
소송중 이라고 하면서 억울해 하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찾아가서 죽이고 십지만 그러면 인생이 끝나기에 참을수 밖에 없다며 몹시 분해 했다
그런후 농담인지 나보고 대신 손좀 봐줄수 없냐고 지랄하네
그래서 난 단호하게 그런 개 돼지만도 못한 쓰레기들 때문에 폭력을 행사 할수는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지금 오로지 삼성회장 막내딸을 계모인 본처와 장남이 작당하여
미국 뉴욕에 유학보내고 전문킬러 브러커를 사주하여 은밀히 청부살해한 하고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아직까지도 은밀히 누명씌우려 하는 억울한 사연을 세계 양심에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진실이 전세계 양심에 알려질때 까지
삼성그룹 오너들의 모함과 음모에 걸려 이런진실을 알리지 못하게 방해하려 들게 뻔해

314p-지금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피해 다녀야 할 판이다
아무튼 이놈이 일본놈들 에게 거짓말로 싸움을 부치려 이간질 시켜서
일본놈 들이 나에게 삐닥 하게 나오자 네가 욕을 하고 큰소리 치자 일본 놈들이 여럿이 합세하여
나에게 공격하기 일보직전 까지 왔는데 일본에게 온고지신 이란 말이 있는데
은혜를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받은데로 돌려 준다고
일본놈 들은 조용한것 같지만 한번 손을 보면 확실히 하는데
이놈들은 결코 지는 싸움을 안하지여럿이서 합세해서 달려들지 비겁하게
허기야 한국놈 들이 더 비겁한 놈들이 많아
삼성회장 막내딸을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회장 홍석현 장남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등이 청부살해하고 나에게 누명씌워 희생양으로 엮은 정황이
뻔히 들어 났는데도 일부 일제 앞잡이보다 못한 문둥이 깽깽이 동원하여 떼거리로 거짓유언비어 퍼트리며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것 보면 어떤 면에서는 한국놈들의 비겁함과 치사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가. 싸워본 상대중.에서 일대일로는 누구한테 져 본적이 없지만
그러나 떼거리로 달려 드는건 힘들다 이제는 나이도 많아 예전같지 않고
사실 전문 싸움꾼 이라도 혼자서 여러명을 상대해서 이기는건
영화 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브라질의 ufc선수가 편의점 에서 여자를 성희롱 하자 여자의 지인들인 일반인 들이 떼거리로 몰려과 싸워 결국 ufc선수가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아무리 전적이 좋은 ufc 최고의 챔피언 이라도
옥타곤 위에 아무리 전적이 나쁜 동급 ufc 선수 2명과 경기를 시키면
바로 상대도 안되게 ko패는 물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처럼 한명이 두명을 상대로 이기는 것도 쉽지 않다
사자와 하이에나가 일대일로 싸우면 사자가 이긴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사자 한 마리가
떼거리 하이에나 무리와 싸워선 못 이긴다
그래서 정정당당한 싸움은 일대일을 말하는 것이다 여럿이서 한사람과 싸워 이긴건 이긴게 아니라 진 것이다

김두환이 축구선수들 20.여명과 싸워서 이겼다는 말은 믿지 못 하겠다
20명이 한꺼번에 덤빈게 아니고 일대일 싸움처럼 한명이 지면 그 다음 상대가 나가는.식으로 했으면 가능.할수도 있겠다 20명이 한꺼번에 한명에 덤빈 다는것은 비겁하여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하던 그당시 시대상에
한명을 여러명이 한꺼번에 덤벼 이기는건 부끄러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한명이 여러명을 이길수도 있다
과거 한국의 전설로 불리는 시라소니 가 혼자서 수십명과 싸워서 이겼다고 하는데
내가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도 못할 일이고 문제는 상대가 누구냐 일것이다
어른이 초등학생 10명과 싸워서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있다 링과같은 좁은 공간이 아니라 넓은 공간 이라면 시라소니 같은 사람은 10명 이상과 싸워서 이길수도 있지않을까

과거 징키스칸의 몽고 기마병 3만명이 러시아 기마병 30만명과 싸워 이기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점령한 유일한 사람이 징기스칸이다
징기스칸 부대는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기동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혈연과 지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혈연과 지연에 관계없이 능력과 충성심만을 보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사람은 몽골인이 아니라도 평등하게 대하며 자유를 주고  고용 했으며 반대로 징기스칸에 대항하는 적은 무잡이하게 진압 했지만
협조하는 이방인은 동등하게 대우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점령국인 중국과 아랍등에서 개발된
고도의 무기들과 기술자들을 활용하여 더욱 쉽게 다른곳을 정복 할수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쓸줄도 읽을줄도 몰랐다는 징기스칸은 자신이 능력이 뛰어나서 정복자가 된게 아니고
상대방이 자신의 전략과 전술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요인은 여러 복합적인 원이들이 작용 한다
그중에서도 징기스칸 기마병의 엄청난 스피드도 큰목을 했다고 본다
당시 중세 유럽의 기사들은 철갑을 둘러 너무 느리고 쉽게 지쳤다고 한다
현대전은 정보전이 최고지만 징기스칸 시대야 말로 스피드가  전쟁에도 중요하지만  빠른 말의 기동력이야   말로 당시는 빠른 정보 였을 것이다

315p-스피드야 말로 도망갈때가 없는 옥타곤이 아닌 넓은 공간 에서의 싸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경기에서 보듯 메이웨더가 비난은 많이 받았지만
스피드가 빠르니 맞지않고 결국 경기에서 승리했다
일단 빠르면 적에게 잡이진 않는다고 본다
나의 몸은 나이도 먹었지만 그보다
삼성오너들의 방해로 지금 상황이 충분한 운동과 영향 섭취가 어려운 형편이라 더구나 요근례 삼성과 듣도보도 못한 싸움을 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교도소에서
교도관에게 떼거리로 쇠사슬로 묶이고 집단 구타를 당하는 린치와 고문을 당하여
관절등 몸이 과거보다 상당히. 나뻐져 과거와 같은 스피드와 힘을 낼수가 없다

이빨 빠진 호랑이 처럼 반사 신경도 늣고 힘을 쓸수 없는 딴 사람이 됐지만

내가 20대 정도때 처럼 몸이 빨랐을 때는 도망 가면서 일대일 각계 격파로
여러명을 상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는 운도 따라야 하고 순간 스피드와 판단력이 빨라야. 한고
단일격이 상대방이 저항을 못할 정도로 충격을 주는 파괴력과 정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상황 에서 개입 하여 응용 할수 있는 전술이 유사시 무의식 적으로 나올수 있도록
무단한 운동의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도망갈수 있으면 여럿에게 잡히면 끝나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럿명과 싸울땐 36계 줄행랑 이다
여러명과 싸워서 이기면 뭐 하겠나
그들이 뭔저 시비를 걸고 원인 제공으로 아무리 정당 방위라고
우겨도 여럿이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모함하면 cctv등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씨끄럽고 고통스러운 송사에 엮여 때론 적은 형량을 구걸하기 위해 자존심을 내리고 재판정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기에 정말 생명의 위급한 순간이나 상황이 아니면 참는게 백번 낮다는 걸
나이를 먹어가며 또 힘든 교도소 생활을 겪으며 점점 깨닫게 된다
혼자서 거대한 삼성공화국  떼거리 쓰레기 공격을 이기는 방법은 영화 람보1 처럼 숲속으로 도망가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매복 음폐 하여 일대일 격파뿐이 승산이 없다


시라소니가 전성기때인 20대 때는 몸이 빨라 도망 가면서 일대일 격파가 가능 했을수도 있다 달리는 기차 에서도 뛰어 올라 타고 내리는 놀라운 스피드를 지녔었다고 전해지는 한국의 일대일 맞장의 최강자 전설적인 인물 시라소니 미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시라소니의 싸움실력은 김두환도 인정했다

전성기가 지난 나이의 천하의 시라소니도 결국 스피드와 반사신경 판단력이 떨어져 당시 자유당 최고권력자 이기붕이 심혈을 기울여 권력으로 키운 정치깡패 이정재 패거리 사무실에 돈을 뜯으러 갔다가
미리 이정재 패거리가 짜놓은 전략에 벽으로 막힌 사물실이 있는 건물로 유인해 시라소니를 떼거리로 공격하고 눈에 소금인가 간장을 뿌려 시라소니가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끼로 시라소니 무릅을 찍어 잡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라소니를 이석재가 시라소니의 단 한군데 성한곳 마져 망치로 때려 재기 불능상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하다
그후 시라소니는 목사로 제2의 인생을 살다 죽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미야모도 무사시를 가장 강한 칼 잡이로 꼽듯시 한국 역사에 일대일 맨주먹 싸움에선 가장 강하다고 누구나 시라소니를 추천한다
그런 특출난 사람도 전성기를 지난 나이긴 하지만 결국 이정재 패거리의 올가미에 걸려 겨우 못숨만을 건지며 주먹계에서 쓸쓸히 은퇴하고 만다
이와같이 중국을 여러 나라들이 경계 하는건 쪽수가 많아서 일것이다

스포츠 경기는 똑같은 인원에 경기룰로 물론심판이 편파적으로 판정하여 승패를 좌우할때도 있지만
심판도 있고 그러나 국가간의 전쟁은 그게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싸운다
그래서 나라가 크고 쪽수가 많은 중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미국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황이 틀리 겠지만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 정권이다
중국이 민주화 되지않는 이상 세계는 중국공산당의 패권을 경계하는게 당연하다
특히 징역 4년을 살면서 고문을 당하여 관절이 많이 나빠졌다 몸 전체가 예전 같지가 않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만신창이로 만든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 등이
한국에서 일도 못하게 거짓소문을 퍼트려 개나 소나 내가 남이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도 아닌데 뒤에서 일부러 수근 거게 만들는 더럽고 치사한 쓰레기 들인 것이다 그렇게 나를 괴롭힐 바엔 내주장에 이의제기가 있다면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 될일이지 그렇게 되면 이건희 회장 병실과 이윤형 검시기록 수사기록을 공개 하자고 할까봐 그런건지 그러진 못하고 아무 관련 없는 수많은 놈들까지 끌어들인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 교활한 수법은
너무 유명하게 일부러 삼성회장 본처와 장남이 만들어놔서 어느정도 괜찮은 곳은 전부 면접에서 탈락.시키고
시비거리를 만들어 다시 교도소에 집어넣어 공권력악용 으로 누명씌워 다람쥐 채바퀴처럼 계속 뺑뺑이 돌려
구속시켜 사회에 안내보려 하거나 죽이고 사고사나 자살로 위장시키려 할게 거이 뻔해 보인다
삼성그룹의 비리를 감추려 나를 사회와격리시키려는 더러운 음모를 꾸미는 삼성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와 자식들 이재용이부진 이서현
한국사회 먹이사슬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에서 사는 홍라희 이재용이 찌라시처럼 조직적 음모로 퍼트린 시장에 떠도는거짓 유언비어를
삼성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 제일높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제대로 들을수도 없었겠지
그리고 특히 법적인 문제가 더큰 걱정인데 떼거리는 모두 한통속 으로 조작하는데
나는 혼자 진실을 얘기해도 진실을 증명 하는건 거이 불가능 하다
15년전 에는 혈기 왕성할 때는 그런 법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 대상도 아니고
또 법을 알수도 없었는데 당시에는 보이지않는 거대세력의 존재도 없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불공평 하다고 화가 나면 큰소리로 떠들고
대들며 싸우던 시절이 벌써 까마득한 뭔 과거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이를 먹으니 이젠 뒤탈을 먼저 생각 하는 겁쟁 이가 됐다
무엇보다 삼성그룹의 거대한 배후세력이 호시탐탐 나를 음해하려 노리고 시비거리를 조장하고있는
증거가 여러곳에서 밝견돼기도 하여 내가 죽기전에 이런일을 세계 양심에 명명백백히 알리고 죽어도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매사에 삼성의 덧에 걸리지 않기위해 더욱 조심하며 변한 내 모습에
역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간다는 과거 선배들의 말이 이젠
뼈저리게 느껴진다 요즘 세상에 주먹자랑 하고 힘자랑 해봐야 지옥같은 교도소 에서 고통받는 바보같은 팔불출 이지 내가 징역을 살면서 겪은 일인데
정말 불공정한 싸움은 교도소에서 요즘은 극히 드문일이긴 하지만 정치적 이거나 경제적인 이득에 의해 외부의 권력자의 입김이나 사주를 받고 수용자를 수갑 체우고 쇠사슬로 묶고 때거리로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가혹행위를 하여 암살하고 자살이나 사고사로 처리하는 경우와 혹은 적반하장 격으로 누명씌워 추가 징역을 띄우는 더러운 작업은 사회와 격리된 교도소에서 공권력을 악용하여 과거 많이 처질러온 악행이고 지금도 드물긴 하지만 간혹 존재 하고 있다

이런걸 보면서 인간은 절대 믿어선 안되는 존재이고 그래서 cctv설치 의무화와
정보공개 의무화와 함께 제3기구의 수시로 암행감사 제도가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견제받지 못한 절대권력 처럼 가장추하고 더러운 불공정한 게임은 없다 -
전날밤 이놈이 나에게 일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왜 자신 한테 불평 불만 하냐며 말실수를 하자 나는
이게 기회다 생각하고 일한것 계산해 달라고 하자 그만두겠 다고 하자 이놈이
월급날 오라고 하네 이놈은 내가 돈이 없는걸 알고
막상 돈도없이 갈수가 없다는걸 알고 그런건데
이놈이 일본놈과 싸움시켜 싸움 일보 직전까지
다 왔는데 그러면 날 일본에서 구속시켜 구속이다 끝나면 한국으로 강제추방 시킬수도 있는데
그러면 내가 캐나다 입국을 막을수 있다고 음모를 꾸민건지 모르지만

317P-갑자기 나보고 가지말고 일하래네
그래서 니입으로 가라고 그래놓고 장난치 냐고 계산해 달라고 욕을하고 돈을 달라고 해도
이핑계 저핑계 대고 돈을 안주고 계속일 하라고 그러다가
내가 계속 욕을하며 완강히 떠들자 다음날 오후 돈을 계산해 줬다
이놈하고 대판 싸우고 3월에 도쿄로 올라오니까 미국 들어 갈려고 미국 경유해서 가는 캐나다 행 비행기표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12만엔 이하 짜리 싼게 있었는데
갑자기 미국 비자가 없으면 미국 공항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안태운다고 하네
물론 내가 알아보는 여행사는 도쿄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인데 왠지 캐나다는 마음이 내키질 않았어 미국을 들어가야 했지
미국을 경유해서 가는 캐나다행 티켓을사면 미국 공항에서 바로 난민신청을 하려 했지
그런데 미국 사증이 없으면 비행기를 안태운다고 하여
좀 이상했다 미국에 입국하려는것도 미국을 경유해 캐나다로 왜 미국사증이 필요해야 한다고 지랄하나
내가 미국을 경유해서 갈때 미국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할것을 안 삼성그룹.오너들이. 일본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에 연락해서 미국을 경유해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팔지말라고 했나

설마 그렇게 까지야 아니야 내가 미국공항에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않고 난민신청을 하면 한바탕소동이나고 티켓을판 여행사나
항공사도 골치가 아프니까
내 신원정보를 흘려 삼성그룹오너들이 미국을 경유해서 캐나다로 가는 티켓을 팔지말라고 했을수도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비슷한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나라다
실제로 세계100대 대학이나 기업에 다수가 미국대학이나 기업 이지만 캐나다 기업은 거이없는 걸로 알고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파워가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더 발휘하는 걸로 알고있고
무엇보다 삼성그룹 오너들이 내가 출소해서 미국으로 들어갈수 없으니까 캐나다 벤쿠버
공항을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가는게 유일한 방법이란걸 알고
벤쿠버 공항에 나를 구속시킬 직원에게 돈이나 그위에 인맥을 움직여 자고치는 고스톱처럼 덧을.놨는데
내가 생각지도 않게 미국을 경유해서 가는 티켓으로 미국공항에서 난민신청 하려 한다는걸
오사카 노가다판 전직 삼성그룹 계열사출신인 삼성그룹 스파이놈에게 잘못 얘기해서
그말이 삼성오너들에게 들어가 내 계획에 심각한 차질로 인해 실패하게 된건 아닐까

결국 미국을 경유해서 캐나다로 가는 티켓을 구할수가 없어서
왠지 캐나다 벤쿠버에 입국 하는게 뻔한 수이기에 이미 삼성에서 덫을 놓은 것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처음부터 캐나다는 마음이 내키질 않았지 왠지 나에겐 안좋은 일이 벌어질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라고나 할까
벤쿠버 가는걸 꺼려 하다가 결국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양의 이상한 죽음의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기 위한 바늘구멍 같은 실마리도 뉴욕을 가야만 희망이 있겠다 싶어
그래도 캐나다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로비에 쉽게 넘어가는 나라가 아닐꺼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캐나다로갈까 영국으로 갈까 하다가 캐나다를 선택 했는데
캐나다 벤쿠버행 비행기 티켓을 사려 여기저기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에 연락하자
티켓 가격이 얼마전 까지 싼것은11 만엔 선에서 구입 할수도 있던 티켓이 38만엔 이나 한다고 그러는데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닛포리에 비교적 싼 에어 캐나다 벤쿠버행 티켓이 있다는데
12만엔 인가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근데 2주후 라네 그래도 모든건 운명의 주사위에 맡기고 벤쿠버행 티켓을 구입했지 당장 도쿄에 기거할 곳도 없는데 신주쿠 장터 근처에나 신오쿠보역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월드 PC방 에서 있다가 낮에는 와세다대 근처 (戶山)공원에 낮에는 근처 편의점에서 켄맥주와 도시락을 사서 먹고 잔디밭에 누워 자기도 하며 시간을 떼우기도 하며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시간을 보냈며
저녁에는 신오쿠보 월드 pc방 에서 돈을주고 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인가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기억 안 나지만 내가 오사카에서 힘들게 올라와 캐나다 벤쿠버로 가기위해 대기 하던중에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횡단보도 건너 조금들어 가면 15년전 에도 내가 가끔 와서 옷을사던 일본인이 운영하는 케쥬얼 옷가게에서 티셔츠와 지금은 잊어먹은 모자를 사서
다시 신오쿠보역에서 오쿠보 역 가는 방향으로 얼마 안떨어진 2층으로 된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먹기 위해

다시 행단보도를 건너오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데 이상한 한국말로 수근거리는 소릴를 듣고 내옆에서 약간 뒤쪽으로 떨어져 있는거리에 돈 좀꿰나 있어 보이는 남녀가 부부관계 인지 애인관계 인지 친구관계 인지
아니면 업무상 만난관계 인지 내가 알길은 없지만 서로 얘기하는 말이 벤쿠버로 가려나 봐 그러는 한국말을 듣고 쌀짝 옆뒷쪽을 보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만 다니다가 자퇴했다
물론 그후로 검정고시 고졸 합격으로 고졸 학력은 인정 받았지만
고등학교 다닐때 피천득의 인연이란 수필을 당시 국어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참고자료 피천득의 인연 중에서 아사꼬(朝子). '인연'의 여주인공이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 여자가 그냥 우연히 씨부린 건가 아는 사람이 벤쿠버를 가나 나는 황단 보도를 건너 맥도널드 가계에서 햅버거 와 콜라를 사서 2층에 올라와 먹으면서도
좀전에 있은 회괴한 만남과 그녀의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히며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과연 진실은 먼가 그냥 우연일까
아니면 삼성에서 보낸 비밀요원 이라 내가 벤쿠버 가는거 까지 알아 냈나
그러나 나는 믿고 십지 않은 불길한 결론에 도달 했다 저 여자가 우연히 내 옆을 스치다 아는 누군가 벤쿠버 가는걸 말했을 확률은 거이 제로에 가깝다 허기야 저 여자가 아는 사람이 벤쿠버에 가는건 바로 나뿐이란 생각이 현실적이었다

나는 이 회괴한 여자가 나를 3번이 아니라 4번째 나를 미행해서 만나게 됐다
첫번째 2003년 미국 미시건 랜싱 99스시 식당 에서
두번째 2004년 서울시청 앞에서 3번째 2009년 강남의 어느 빌라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그리고 네번째 2014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 횡단보도 에서
그러나 나하고는 말 한마디 서로 나눈적이 없다 이 기집에도 처음 볼때 보단 많이 늙었네 그래도 아직까진 이쁘네 그 여자의 느낌은 리듬 체조 선수 신수지 와 좀 비슷 하다고 해야 하나 아주 똑 같은건 아니고 억지로 분류 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그런데 4번째 만남을 국가를 3개국을 바꿔 가며 나를 계속 미행하는 것 처럼 만난게 우연은 아니고 미행이
확실 하다는 나의 결론 이다
그렇다면 저 계집과 옆에 있는 처음보는 놈은 삼성그룹 이재용이 부리는 비밀직원이나 이재용이 부로커를 몇단계 걸처 고용한 삼성직원이 아닌 돈으로 고용한 삼성 고액 알바나 킬러 비슷한 년 놈일 가능성도 있다 저 계집도 마찬 가지고
결국 이윤형을 청부살해 한게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가 확실하다는 또 하나의 정황 증거가 아닐까
내가 캐나다 벤쿠버 가는걸 어떻게 알았지 허기야 삼성에서 못알아낼리가 없지 국정원보다 정보가 빠르다는데

그렇다면 저것들이 미리 방비를 할텐데 내가 난민 신청하려는 것도 뻔히 아는 눈치였다

2009년 서울 강남 리모델링 공사현장 까지 찿아와 날 쳐다보고 윤형이 불상해서 어쩌냐 하며 바람잡으며 전화질 까지 한 년이야 그래서 이건 우연 이라고 볼수가 없었다
이미 캐나다 벤쿠행 티켓은 돈주고 구입했고
수중에 돈도 다 떨어져 가고 제일싸게 주고산 티켓이라 패널티 물어주고 환불해 봐야 그 돈으론 다른 팃켓은 절대 못 산다 그리고 어디서 일할 자리도 없고 일본 체류 기간은 얼마 안 남았다 체류 기간이 넘어 불법 체류자가 되면 일본에서 바로 캐나다로 갈수가 없는건 물론 불법체류자는 과거와 달리 일본에서 벌금등 심한 경우는 형사 처벌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나는 누군가로 부터 얘기 들었는데
아무리 고민 해봐야 나의 벤쿠버 행은 어쩔수 없는 선택 이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는 시저의 말처럼 그런데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이윤형 양의 모습과 느낌을 분류 하자면 벤쿠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김연아 와 좀 느낌이나 생김새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야 하나 김연아 보단 키가 작은
그렇게 2주가 지나 다 보니 지갑에 남은 돈은 거이 바닥 날 지경 이었다
내가 생각을 잘못 했어 오사카 에서 도쿄로 올라오기 직전에
그곳 한국인 정보지를 찿아 여행사에 전화 하자 회괴 하게도 벤쿠버행 티켓은 비싸고 별로 없고 영국 런던행 티켓이 11만원 선에서 몇칠안으로 바로 있다는 말을 듣고 구입해서 런던으로 가서 난민신청 할까 생각도 했다
그랬다면 삼성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라 대비를 할수 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전부 내가 캐나다로 해서 미국으로 들어갈 줄 알고 있으니까
그때 차라리 런던으로 갔으면 근 10만엔 가까운 돈을 교통비나 식비 음료수 담배값으로 낭비 않고 PC방 에서도 날리지도 않고 런던으로 갈수 도 있었는데


(참고자료-''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보구엔 지압 장군은 베트남전에서 패한 미국 언론조차 생존하는 20세기 최고의 명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정받았다
지난 2008년 제레미 블랙이 펴낸 '위대한 군사 지도자들과 전투'(Great Military Leaders and Their Campaigns)에서 블랙은 정규
군사교육을 받지 않은 잡 장군을 줄리어스 시저,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과 함께 59명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로 평가했다
보구엔 지압장군의 작전은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다고 한다 )

2주간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10만엔이 넘는 돈이 날아가고 지갑이 비어있었다
벤쿠버행 티켓을 들고 2014년 4월2일 나리타 공항을 전철을 타고 가서 공항쪽으로 빠져 나가려 하자
공항 직원들 인가 내 여권을 보여 달라니까 보여 주었는데
공항 입구 들어가기 전부터 신분증 보여 달라며 일일히 확인 하는건 처음 보네 당시 말레이시아 항공기 사건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는데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은 비행기 탈때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면되지 공항입구 들어가는 곳부터 여권보여 달라며 전철타고 공항쪽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공항직원인지 어디서 나왔는지 여러명이 서서 조사 하는 것은 그때 처음보내
한국으로 치자면 인천국제공항행 열차를 타고 내려 교통카드를 데고 나오자 마자 검문하여 공항 입구는 아예 들어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문 하는 회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 부터가 뭔가 조짐이 안좋았다 삼성그룹 오너들 이야 일본에 정 재계 큰 인맥들이 있다고 누구나 생각 하는데
그리고 나리타 공항에서 에어캐나다 벤쿠버 티켓팅 하는데 주머니에 지갑을 열어 보니 3만 천엔이 전부 다네
에어케나다 티켓팅 하는데 에어케나다 일본인 여직원이 나를 비행기 안태울려고 통역까지 불러 일일이 물어 보는데 돈도 없는 은행 카드가 마침 있어 보여주며 이걸로 여행경비 할거다고 하니 비행기에 태우는데 그 일본인 여직원이 왜 나를 캐나다 밴쿠버행 비행기에 안태울려고 그렇게 집요하게
나에 대해서 추궁 했을까 내가 그랬지 당신이 캐나다 이민국 직원도 아니고 여기는 에어 캐나다 티켓팅 하는 곳이라고 따지자 마지못해 티켓팅을 하면서 캐나다 입국에서 걸려 다시 돌아올수 있어서
에어 캐나다 직원으로서 물어 본다고 하면서도
캐나다는 춥다느니 고생할거 같아서 그런 다느니 희한한 소리를 짓 거리네 추워도 내가 춥지 일본인 계집애 하고 뭔 관계야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별 희한 일 다 보겠네 일본에 입국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본을 나가 겠다고 하는데
물론 왕복티켓 인데 다시 돌아오는것도 나리타 공항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가
뭔가 있어 아무리 말레시아 기가 공중에서 없어졌다고 해도 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에서 돈을 계산하고 나오자 마자 바로 줄을 서서 마치 국경에서 검문하듯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며 검문하는것도

나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나를 캐나다 입국도 못하게 일본에서 부터 뭔가 입김이 있는건 아닌가 설마 그럴리가 내가 너무 오버하는 생각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아무리 삼성그룹 오너들이 일본에도 짱짱한 인맥을 자랑 하지만 나를 캐나다로 출국도 못 시키게 막을 정도 라는건 과대 망상일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
과거 1997년도 일본에 있을때 일본명 리키도잔 일명 역도산 동상과 묘가 도쿄 근교 도쿄도(東京都) 오타(大田)구 소재 이케가미혼몬(池上本門)사에 있는데 그곳을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북한 함경도 출신으로 본명은 김신락 이라고 한다
브라질에 갔다가 일본계와 혼혈인 안토니오 이노키를 제자로 삼고 김일이 역도산의 명성을 듣고 레슬링을 배우기위해 일본에 밀입국 했다가 걸려 구속되어 추방되기 일보 직전에 역도산 에게 편지하여 구조 요청을 하자
정말 기적적으로 역도산이 김일 편지를 보고 감명을 받고 당시 일본의 대스타로 국민적 영웅이었던 역도산이 정계 참의원 들도 잘아 알아 인맥을 동원하여 구속 되어 추방 일보 직전의 김일을 데려다가 제자로 삼은 사건이 있다
뭐 이런 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내가 캐나다에 난민 신청이 받아 들여지면 삼성이 망할수도 있기에 사운을 걸고
방해하려 들지도 모르기에 전혀 허황된 생각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부품중 상당수가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갤럭시가 많이 팔릴수록 일본의 중소기업도 덩달아 좋다는 것이다
우여 곡절 끝에 에어 캐나다 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장시간의 여행끝에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자


내 짐을 검사해 수거해 가고 나를 몇시간을 놔두고 어디다가 연락을 하는지 지들끼리 무슨 작당을 하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 통역관을 데려와 동양계 조사관이 어떤 사무실로 데려가 조사를 하는데
내가 캐나다 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 등이 청부살해 하고
날 희생양으로 삼아 누명 씌우고 조직적인 음모로 날 누명씌워 구속시켜 사회와 격리 시키려 하거나 킬러를 돈으로 사주하여 죽이려 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난민신청 한다고 옆에 있던 통영관 에게 말하자 당시 조사관이 동양계가 조사를 하는데 삼성그룹.이건희 회장 장남 이재용이 로비를 하여 장난을 친것 같은데
통역관이 제대로 통역을 않하는 느낌이 들고 내 진술을 왜곡 조작하여 내가 천억을 노리고 이윤형을 최면을 걸어 죽였다고 자백하는 것으로 내 진술을 왜곡 조작 한다면
영어를 제대로 알아 들을수도 읽을수도 없는 내가 무방비 상태로 누명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고
그러면 난민 신청도 안될뿐 아니라 내가 누명써 파렴치범이 될수가 있다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면 캐나다 이민국에 접수를 할지 말지를
3일 안에 공항 직원이 결정 하는데
난민 신청 접수가 들어가면 난민 재판이 열리는데 최종결정 날때까지 캐나다 정부로 부터 주택과 보조금 지원이 있는데 난민신청을 허가 안할지 허가 할지를 빠르면 6개월 에서 대략 1년 전후 정도 걸린다고 당시 인터넷 감색으로 읽은 것 같은데
그러데 벤쿠버 공항 이민국 직원이 아예 난민신청을 접수 안 시키고 오히려 날 파렴치범으로 누명 씌우려는 의심이 들었던게 내가 영어를 못하는건 사실 이지만 극히 일부는 알아 듣는것도 있는데 그중에 통역관이 내가 말하는걸 벤쿠버공항 이민국 조사관에게 통역하는 소리에 내가 삼성그룹에 돈을 달라고 그랬다고 지랄하여
통역관에게 한국말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언제 삼성에 돈을 달라고 그런적이 있냐며 왜 거짓말로 나의 진술을 조작하냐고 말하지도 않은 걸 씨부리냐고 말하자
통역관은 그런적 없다고 지랄했다 그러나 나도 영어를 조금 알아 들을수 있어 이놈이 이상한 소리를 한것을 분명 들었다 예를 들어 이것들이 내가 순간 최면을 걸어 말한마디 제대로 못한 삼성회장 막내딸을 나를 만난지 3년후 자살하게 만들 었다고 누명을 씌우려 해도 이건
최면을 수십년간 전공한 최면 박사도 못하는 이론에도 없는 일을 최면걸어 죽였다고 나에게 누명 씌우기엔 무리가 있지 그러나 영어를 잘못하는걸 알고 내진술을 왜곡하여 내가 삼성에 천억을 노리고 이윤형을 최면걸어 죽게 만들었다고 .스스로 자백 한것처럼 내진술을 왜곡 조작하여 짜짜고치는고스톱처럼 적으면 나는 아예 난민신청 접수도 안될뿐 더러 나는 파렴치범으로 누명씌우는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는데
캐나다 벤쿠버 공항 이민국 직원이 내말을 조작하여 아예 처음부터 난민 신청을 안 시킬려고 조작하려는게
보였는데 물론 누구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난민신청이 접수가되면 일단 난민재판이 열려 일정한 시간이지나 재판결과가 나오기전 까지 지원을 해줘야 하니 그걸 방해하기 위해 어느정도난민 신청 접수를 처음부터안시키 려고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동은 짐작할수 있다
특히 공항에서 신청접수를 방해하려는 경향이 있어 공항을 통과하여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이민국에 직접 접수를 해야 신청이 받아들여 지기 쉬운데 나는 당시 그런 형편이 못되어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던건데
어느정도 삼성에서 돈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어느정도 방해할까봐 불안해 하는기분으로 벤쿠버행.비행기를 되돌릴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심정으로 비행기를 탓지만
이정도까지 집요하게 방해 하도록 이재용이가 미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놨을줄이야
설사 삼성에서 미리알고 돈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나의 난민신청을 막으려 삼성의 사운과 홍라희 이재용의 운명을 건다고 할지라도 그저 막연히 캐나다가 인권이 한국보다는 발달해 있고
모든면에서 의식수준이 높아 한국에서 모든길은 삼성으로 통한다는 말처럼 삼성공화국 행세를 못하여
내가 난민신청 하면 난민 인정이 허용이 안되더 라도 심사는 할줄 그저 막연히 기대하며 무작정 왔는데
역시 인간 세상은 동화속의 에버랜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50보 100보라더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 던 돈과 권력과 인맥이 안통하는 곳은 없다고 깨달았다
캐나다 벤쿠버행이 뻔한수라 한국의 국정원 보다 정보가 빠르다는 삼성에서 모를리가 없어 미리 이재용이 음모를 꾸미는건 아닐까?
불길한 기분이 들어 꺼려 하기도 했지만 이미 비행기 티켓도 구하고 돈도 바닥나고 돌이킬수 없는 상황이라 한편으론 내가 너무겁이 많은걸 아닐까? 반문하며 벤쿠버로 발길을 돌렸는데
이런 뜻하지 않은 방해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특히 이상한 것은 조사관이 나의 신상에 대해서 이미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어 다알고 있는것 처럼 전과가 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집요하게 전과가 있는지 묻는데 전과가 있는 사람은 출소한지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난민신청 대상에서 제외 할수도 있다는 캐나다 난민법이 있다는걸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확인했는데
한국계나 중국계로 보이는 조사관이 지금와 곰곰히 생각하면
중국계도 아니고 일본계도 아니고 한국계일 가능성도 크다

당시 그놈 이름과 성씨를 확인 했어야 했는데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에 내가 전과가 있는데 없다고 거짓말 하면 내가 한말 모든게 신빙성이 없어 진다 캐나다는 잘 모르지만 미국 같은 경우는 선의의 거짓말은 몰라도 악의적으로 거짓말 하는 사람을 나쁘게 본다
나는 사실 일본어나 영어를 잘못한다 그러나 내가 영어를 잘못하고 알아 들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전혀 못 알아 듣는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얼핏 주어들은 영어중에 나를 조사하던 한국계로 보이는 조사관이 다른 이민국 직원에게 그전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배후에 삼성오너들의 사주를 받고 조직적 음모로
삼성그룹 오너들 유리하게 조작하여 퍼트리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처럼 삼성회장의 막내딸이 날 얼굴 한번 보고 자살 했는데 나에게 천억 주려다 호모라서 말았 다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누명 씌우는 말을 다른 이민국 직원에 퍼트리는 소리 같았다 전부다는 알아들을 수는 없어 정확히는 몰라도 내가 주어들은 말을 직감으로 조합하여 추리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소리를 듣고 내귀를 의심했을 정도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며 내가 전과자 라고 말하면 아예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 접수도 안시키고 강제 추방 당할게 뻔하여 그 문제는 지금 당신들 에게 말하고 십지않고 난민신청이 접수되어 난민신청 재판이 열리면 난민재판장 에서 진실을 얘기 하겠다고 끝까지 버티며 난민 신청을 캐나다 이민국에 정식으로 접수해 달라고 계속얘기 했다 중국계나 한국계로 보이는 조사관은 캐나다 영주권을 주려 하는데 그 문제를 꼭 확인 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며 끝까지 추긍하며

그 문제를 말하지 않으면 난민신청 접수가 불가 하다고 황당한 주장만 되풀이 했다
그래서 나는 범죄자도 검 경 수사시 묵비권을 행사할수 있는데 인권이 발달 했다고 들은 캐나다에서

한국에서 한국 정부나 마찬가지 위력을 지닌 삼성그룹의 위협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캐나다에 난민신청 하려는 사람에게 묵비권도 인정 안해 주냐며 이건 너무 하는것 아니냐며
통역관에게 통역해 달라고 말했다 그래도 동양계 조사관은 안하무인 처럼 그 문제를 말하지 않으면 절대 난민신청을 접수해 줄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그래도 계속 난민신청이 받아 들여지면 재판받는 과정에서 밝히 겠다고 하자 동양계 조사관은 끝까지 그 문제는 묵비권을 받아 들일수 없다고 다그쳤다 똑바로 얘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난민신청이 불가 하다는 뜻으로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가 인권이 존중 받는 나라라고 생각하여 삼성으로 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신변보호를 하기위해 난민신청을 하려 했는데 범죄자 에게도
인정해 주는 묵비권도 인정 안해주는 캐나다를 인권 선진국으로 잘못생각 했다며
캐나다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라고
하며 포기할 뜻을 밝혔다 만약에 난민 신청접수가 받아 들여져 재판에 최종 허가가 나면 영주권을 받는데
허가가 나지 않더라도 난민신청 재판이 열리는 기간동안 이런 사연이 알려져 세계적인 이슈가 되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의 억울한 죽음이
세계 언론에 재조명을 받게되면
모든 정황상 삼성그룹 회장 본처홍라희와 장남 이재용이 청부살해 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전세계 양심에 알려지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어 이윤형 청부살해범 으로 처벌 할수도 있고 혹은 법적 처벌을 할수있는 결정적 증거는 발견 못해도 정황 증거만 보더라도 얼마든지 도덕적 처벌을 할수가 있어


삼성그룹이 망하거나 적어도 이재용이 삼성 경영권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올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사활을 걸고 방해하려 할께 뻔해 더군다나 통역관이 내 고향을 묻더니 지하고 비슷 하니까
통역을 포기하고 갑자기 통역 못하 겠다고 하여 통역관이 교체되었다

그러자 통역이 왜곡 되지 않았을까 의심이 더했다
영어로 통역 하는데 내가 영어를 몰라 제대로 통역이 되는지 확인할수 없기에
황당한 조작과 왜곡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캐나다 벤쿠버행 티켓을 싼 티켓이 없어 출발하기 무려 2주전에 구입했고

내가 외국으로 특히 미국으로 들어가 난민신청 하려는건 교도소에 있을때 부터 떠들던 얘기고
한국 국가 정보원 보다 더 정보가 빠르다는 삼성이 내가 미국으로 직접 들어가기 힘드니까 캐나다를 통해 들어가 난민신청 하리라 충분히 예상 하고도 남을만큼 주도 면밀하고 치밀한 것들이라
미리. 조치를 취해 놓은것이 농후해 보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은밀히 입김을 불어 나의 난민신청을 방해한 t삼성이 배후에 장난을쳐 난민신청 접수를 방해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수집하는건 힘들다 분명히 말하지만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 신청접수가 안된게. 아니고
내가 말한 진술이 왜곡 돼어 조작될 우려가 있어 내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참고자료-162cm의 작은키 와 볼품없는 외모 중국 항저우 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삼수끝에 정원미달로 삼류 학교에 들어갔고취업에도 수십번 고베를 마셨던
사람 그런 마윈이 1999년중국에서 B2B(기업간거래)인터넷 중개 사이트 알리바바닷컴을 열었다 인터넷이 생소했던 시절 그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마윈은 마술같은 도약에 성공했다 그는 알리바바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키웠다 알리바바의 지난해 매출은 250조원 1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는 기업공개 규모가 217억 달러가 넘어 미증권시장 사상최고기록을 세웠다성공비결에대해 그는 현실탓 하며 불만을 늘어놓기 보다 그속에서 기회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그는 포기야 말로 가장큰 실패 라고 말한다)


-2014년 9월20일조선일보 김승범기자 -장샤오헝 지음 이정음 옮김 펴낸곳 갈대상자
내가 난민 신청을 포기하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난후 참고로 조사할게 좀 있다고 다른 캐나다 벤쿠버 공항 백인 이민국 직원이 나를 뭔가를 조사하며 전과가 있냐고 물어보며 부드럽게 마치 난민신청을 다시받아 줄껏 처럼 나를 도와 줄려고 그러는데 그러러면 내가 솔찍히 얘기해야 된다고 해서
그말에 솔깃해여 넘어가 재차 전과가 있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송골매가 먹잇감을 낚아 채듯시 내가 망설이는걸 눈치채고 옆에 있던 여자 통역관을 통해 솔직히 얘기해야 도와줄수 있다고 재차 은근히 떠보자
나는 그만 전과가 있다고 얘기한 부분은 내가 낚시 미끼에 걸린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생각하며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내가 이놈 전술에 넘어간것 같은데
이미 난민신청을 내 진술을 통역과 벤쿠버 이민국 직원이 왜곡 조작할것 같아
내가 포기 한다는 문서에 사인을 한 상태인데 이러한 나의 진술조차 제대로 번역이 됐는지 은밀히 조작이 됐는지
내가 확인할 길이 없어 불안한 상태에서 당시 불안정한 나의 심리를 이용 내가 전과가 있다고 말하면 솔직 하다고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고 나를 도와서 난민신청을 받아 줄 것 같은 뉘앙스를 은근히 풍겨 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끼에 걸린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캐나다 미국도 전과가 았는사람은 거이가 안그런다고 해도 색안경을 끼고
안좋게 보는건 인간의 심리인데 구구절절한 그동안 겪은 나의 억울한 사연을 그들이 알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 물을 보듯 뻔한데 그들이 내마음 같이 내 억울한 심정을 이해해 주리라 순간 판단 미스를 한 것이다
세상은 내마음 같지 않다는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굳이 전과가 있다는 얘기를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미 삼성의 코치를 받은 그것들이 내가 전과가 있다는 걸 알고 아프리카 정글 밀림에서 이미 약한 모습을 보인 먹잊감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하이에나 처럼 집요하게 나의 아길레스건만 물고 늘어진게 정황상 뻔한데 그래서 그 부분을 말하지 않으려 난민신청 까지 포기 한건데 이제와 그 부분을 말하다니 삼성에서 나를 전과자로 실타래 엮듯 엮어서 캐나다와 미국 등은 서로 정보가 공유되어 다른나라 에서의 난민 신청도 어렵게 할려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이민국 직원을 통해 확인 받으려 했던 정황을 뻔히 경험 하고도 혹시나 하는
미련으로 내가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캐나다나 결코 약자들 편이 아니다 시민단체는 몰라도 이민국 직원은 나의 구구절절한 심정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내입으로 전과가 있다고 말해 놨으니 추후에 다른 나라에 이것들이 정보를 공유하여 여러 가지로 내게 불이익이 있을걸 추리할수 있다
내가 전과가 있는데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난민신청이 받아 들여진후 난민 재판장 에서 솔직히 전과가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고 삼성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구구절절한 나의 사연을
말하려 했는데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결국 삼성그룹오너들이 유도하는 데로 엮인것 같아
그 부분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 부분이 해결되자 2번째 백인 조사관은 나에게 추방명령을 내리고 1년후 다시 캐나다에 올수 있다고 하였다 그후 나는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반 강제적으로 얼굴사진 촬영과 지문 검사와 함께하고
철저한 몸 수색을 하여 수갑을 뒤로 묶인채로 이민국 직원 차의 뒷자석에 탔는데 앞좌석은
나를 첫번째 조사한 동양계 조사관이 앞좌석 운적석 옆자리에 앉고 나를 두번째 조사한 백인 조사관이 운전하고.
공항에서 차로 한 40여분 걸리는 구치소에 도착 하더니 구치소 직원은 못보고 수갑을 뒤로 묶인채 철문을 열고사방이 막힌 곧에 나를
집어 넣으며 나를 조사했던 동양계 캐나다인 으로 보이는 놈이 바이 라고 비아냥 거리듯 말하며
집어 넣었는데 구치소 직원에게직접 인계한게 아니고 철문을 열고 독방 같은데 수갑을 뒤로 묵인채 집어넣자 아무도 없이 사방이 막힌곧에 약10분 정도 있어도
아무도 안오자 이상하여 약간 공포감이 들기도 했는데 약15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들어온 반대편에서 갑자기 철문이 열리더니 구치소 직원이 와서 나를 데려가 또 무슨 독방에 집어 넣었는데 잠시후 손가락이 짤린 몸에 상처 투성이며 찟어진 남루한 옷을 입은 제 정신이 아닌걸로 보이는
나이가 50은 넘어 보이는 백인을 내가 있는 곳에 집어 넣었는데 나와 약간 떨어져 있는곳에 앉은 이놈은 계속 회괴한 신음을 지르고 있네
이곳 구치소 직원들은 수용자 관리를 어떻게 하는건지 이상했다
이놈 몸이 멍 투성이 인데 옷도 찟어지고 이런 회괴한 인간을 왜 내가 있는 독방에 집어넣은 저의가 무엇 인지 혹시 이놈이 나한테 폭행 당했다고 누명 씌우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드는데 방을 바꿔 달라고 구치소 직원을 불러도 들은채도 안하고 잘 오지도 않고
얼마후 구치소 직원이 오더니 나를 데려가 신입 이라고 사진 촬영을 하고 개인 카트를 작성하는지 마치고 다시 다른 독방에 집어 넣는데 나는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하자
짧은 영어로 말하자
여기는 혼자 있게 한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조금전 에는 왜 이상한 놈을 같이 집어 넣었는지 의문이다
내가 난민신청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그놈과 집어넣어 뭔가 누명을 씌우려던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려 던 건지는 모르지만 뭔가 이상했다
나는 과거 경험을 통해 특히이런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는 엿장수 마음 이라고 구속 되어 있는 사람은 구속시킨 높은놈의 의중에 의하여 누명을 당하여도 무방비 상태로 당할수밖에 없는 구조라는걸. 드물기는 하지만 전 세계인이 카메라로 생중계로 보는 올림픽 에서도
조작을 해되는데 대표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라이트미들급 결승전 미국 흑인 로이존스 와 한국의 박시헌의 결승 대결은 누가봐도 완벽히 일방적으로 미국 선수가 우세했고 심판전원일치 미국 선수의 승리를 누구나 예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심판은 박시헌의 손을들어 88서울 올림픽의 최대의 오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1위한 김동성에 헐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뺏어간 오너가 그랬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여자 피겨에서 금메달을 도둑맏은 김연아가 그랬다
그.외에도. 크고작은 .심판의. 편파 판정은 너무도 많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만든 제도중에 인간이 만든 제도와 경기 중에 가장 정정 당당한 페어 플레이를 한다는 스포츠계 에도
이렇게 전세계인이 TV 를 생중계로 지켜보는 올림픽 에서도 심판의 거대한 외부의 힘의 입김이나 개인 감정 경제적이권등에 의해 조작을 하는데 사회와 격리된 구금시설 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구치소가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구치소 직원 중에 중국계가 몇명 있었는데
그중에 남자직원놈은 나에게 말을걸어 자신이 중국계라고.나에게 얘기해서 알았다
이곳은 한국과 다른건 한국은 구치소나 교도소에 여자직원과 여자죄수 들과는 완전히 분리시켜 수용하여 만날수 없는데 이곳은 한국의 구치소나 교도소등 시설과 달리 여직원도 있고 여자 죄수도다른. 독방에 있어 지나 다니는 모습이 자세히는 볼수가 없어도 얼핏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비상벨을 누르면 여직원이 와서 상담을 했다
한국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전에 식수를 주는데 이곳은 식수를 전혀 주지않아 벨을 눌러 따지자 수돗물 받아 먹으라고 그러고 나중엔 벨도 못 누르게 꺼놓기도 했다 벨을 누르면 여자직원이 오기도 했는데 백인 여자직원과 중국계 캐나다 여자 직원이 번갈아서 오기도 했다 여자직원 중엔 중국계도 2-3명 보였는데 구치소 여직원들의 대화 내용을 얼핏 주어들은 내용중에 중국계 여자직원이 계급이 더높아 보였는데 백인 여자직원과 무슨 삼성 말이 들어가고 무슨 얘기를 하며 게임오버 어쩌구 저쩌구 하는것 보니 내 얘기를 하는것 같은데
잘 들리지도 않고 영어를 잘몰라 전체적인 내용을 다 해석 할수는 없지만
내 얘기를 하는게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세상의 판은 더 교활하고 돈과 권력의 지원을 받은놈이 이기게 되어있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 구조는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고 볼수가 있다

그후 2015년 12월10일 캐나다 총리가 시리아 난민 신청자를 토론토 피어슨 공항까지 마중 나와 접대하며 난민들은 캐나다에서 첫날 밤을 호텔에서 머물며 캐나다에서의 생활에 설레인 희망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난민 신청 할때는 범죄자도 아닌데 난민 캠프나

기타 다른 시설도 아니고 범죄자를 수용하는 구치소에 집어 넣어 고통을 주었다 공항이나 항만 등에서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에게 교정시설에 집어넣을 수도 있고 난민캠프나
입국 임시 대기소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고 하다 그러한 판단은 엿장수 마음이라고 당시 조사하는 조사관의 마음인데 통역관이 내가 진술한 말을 조작하여 회괴망측한 나쁜놈으로 왜곡하여 통역을 했다면 나를 좋은곳에
보낼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영어를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언어는 어릴적에 익혀야 하는데 이젠 술담배에 찌들고 스트레스에 찌든 머리가 굳어 영어를 배우긴 너무 늣은 나이이다 일반적으로 난민 신청자를 범죄자 처럼 교정시설에 집어넣는건 이례적인 일로 중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의심이 있을 때 하는 행동 같은데 나를 교정시설에 집어 넣은건 나의 진술이 조작 됐을 가능성에 더욱 의심이 가는 삼성 오너들의 세팅 작품이 아닌가 생각할수 있다 당시 까지만 해도 아직 이건희 회장이 살아 있을때라 그 정도로 끝났지 지금 같으면
프리메이슨 삼변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홍석현 이재용이 국제 조직관 돈을 쳐발라 아예 죽여 버리려 할 것이다
미국 구치소에서 경찰들이 흑인을 척추뼈를 부러트려 죽였다는 뉴스를 본적도 있고 미국경찰이 구속된 백인을
몽둥이로 마구 구타하여 뼈를 부러 트리는 동영상을 본적도 있다 그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 자 들이 었다
얼마전 한국의 어느 방송에 출연한 패널 [panel]이 미국에는 억울하게 누명써 사형 선고 받고누명을 벗기를 바라며 대기중인 사람이 300여명에 가깝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수 예술의 최고봉 르브루 박물관장이 전 세모그룹 유병언의 돈을 받고 만원도 안하는 사진에 온갖 찬사로 거짓말하여 유병언이 계열사에 만원도 안하는 사진을 최고 16억에 강매한 사진도 있다고 한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못한내가 이 억울한 사연을 전세계 양심에 알리려 나혼자 발버등을 쳤지만 결국엔 삼성을 이길수는 없었다 일본도쿄 신주쿠 신오쿠보 길거리 에서도
일본인 인지 재일교포인지 아니면 삼성그룹 일본지사 직원들 인지 아니면 삼성에도 돈을주고 고용한.한국인 유학생인지 알길은 없지만
삼성그룹 오너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거짓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트리려 떠드는 소릴 들었고
오사카 노가다판 에서 전직 삼성그룹 직원이었다는 놈이 나를 데려와 일을 시키며 일본놈들에게 삼성그룹 오너들에게 유리한 헛소문을 퍼트리듯이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려리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최고 유능한 삼성그룹 해외 파견 현지지사 직원들이 유창한 외국어로
삼성그룹 오너들 유리하게 거짓유언비어 소문을 전세계외국인을 상대로 퍼트릴 꺼라고
근거있는 추리를 해본다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이민국 직원이 나를 데려가 가둔 구치소 독방에서 나하고 몇 거실 안떨어져 있는 곳에 여자 죄수 한명이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서럽게 우는걸 봐서는뭔가 엄청난 억울한 일을 당한게 아닌가 알아 들을수 없는 영어 지만 구치소 여직원과 여자 수용자의 대화에서 들리는 소리의 느낌이
설음이 복받쳐 들리는 소리의 감정이 세상의 절망에선 그 전에 듣지 못한 설음으로 엄청나게 억울해 하는것 같았다 캐나다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미국 같은경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징역을 수십년씩 받는 경우가 종종 있고 특히 누명을 써 무고하게 구속 되었다가 30년 이상 살다 무죄가 밝혀져 나온 사람들 뉴스를 여러번 본 기억이 난다
억울하게 누명써 구속된 사람은 대다수가 돈없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 이다
그들은 한 개인이 대항 할수없는 국가공권력 악용에 의해
마치 실헙용 쥐처럼 조롱 당하며 관심사병 처럼 관리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억울한 누명이 운좋게 밝혀져 풀려난 경우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먹으라 주는것은 맞도없고 이상한 냄새나는 제리 비슷한 한국의 쵸코바 크기와 비슷한 것을 두개를
먹으라고 주고 과거 한국에서 팔던 빨대가 달린 피크닉 만한 조그만 팩에 쥬스 같은걸 하나를 먹으라고 직원이 던져 주는데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던져 줬는데 도저히 먹을수 없게 이상한 냄새가 나고

맞이 이상하고 전혀 먹을수가 없을 정도라 처음에 한번 입에 댓다가 바로 뱃어 버리고 그 다음날 아침 나갈때 까지 입에도 안됐다 정말 상상외로 인권침해가 심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난민신청을 포기를 하지않고 계속 밀고 나갔으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 금금하다 그리고 포기한걸 때론 후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벤쿠버 공항 이민국 직원의 방해로 난민신청 접수를 아예 하지 못하고
추방됐을 가능성이 거이 다 반사 였다 또 그렇게 만들려고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거대한 자금과 인맥으로 로비한 정황이 감지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한국에 들아와서 확인해 보니 캐나다에선 한번 포기하면 난민신청이 다시 시도 했을때 허가가 난다는 것이 힘들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참고자료 위키백과 -Refugee.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 및 전쟁, 재난을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해로를 통해 탈출하면 보트피플이라고도 한다.

국제법상 난민은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에의 구성원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당할 공포로 인해 국적국 또는 상주국 밖에 있는 국민 또는 무국적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이다.
(난민지위협약 제1조a(2)와 UN난민고등판무관규정(UNHCR)도 동일하게 정의)

단, 평화에 대한 죄, 전쟁범죄 또는 인도에 대한 죄를 범한 자나 난민으로 입국이 허가되기 전에 영토국 밖에서 비정치적 범죄를 범한 자나 UN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는 난민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

(동협약 제2조F)

UNHCR이 정한 난민의 요건
* 자신의 출생국 밖에 있어야 하고
*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 박해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정치적 의견의 다섯 가지 사유에 근거하여야 하고
* 박해의 공포로 인하여, 그 국가의 보호를 받거나, 그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원하지 않아야 한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후 UN 난민법을 확인해 보니까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자는 난민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법조항을 보고 벤쿠버 공항 이민국 조사관이 나에게 전과가 있냐고 집요하게 물어본것은

이미 삼성의 로비로 내가 전과가 있다는것을 알고 난민신청을 접수시키지 않기위해서 그토록 집요하게

전과의 유무를 집요하게 물어본것이라는 나의 추리가 정확 했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망명자는 (평화에 대한 죄, 전쟁범죄 또는 인도에 대한 죄를 범한 자나 난민으로 입국이 허가되기 전에 영토국 밖에서 비정치적 범죄를 범한 자나 UN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는 난민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

이걸 다덥고 따지지않는다

( 망명(亡命, 영어: defection, aylum, refuge, flucht)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자국에서 위협을 받는 사람이 외국으로 피신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전쟁이나 혁명, 쿠데타 등이 발생할 때 많이 생긴다.)

그러니까 끼리끼리 논다고 돈과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자들은 유사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고

지들끼리는 망명을 받아준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만약에 망명을 신청해서 받아준다면 히틀러의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정황상 히틀러의 망명을 받아줄 나라는 거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엄청난 중요한 과학적 업적에 등에 해당하는 비밀을 넘겨주는 댓가로

망명을 허용 해달라고 빅딜을 하면 허용 할수도 있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맥아더 원수가 일제의 만주국 731부대의 인간 생체실험 연구기록을 넘겨 받는 댓가로 악명높았던 731 부대 사건을 조용히 덥어 줬다는 말도 있다

나도 되던 안되던 망명을 신청했어야 했다 그러면 전과가 있는지 따지지않고 신청은 접수되어 심사가 이루어 질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은 일본 도쿄로 다시 돌아가는걸로 예매 했는데 돈도없이 다시 갈수가 없어 벤쿠버 공항 이민국직원에 인천으로 바꿔 달라고 하자 가능 하다고 해서 바꿨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확인해 보니 벤쿠버 공항 이민국 직원이 압수해간 sk선불 핸드폰은 돌려받지 못했다
그걸내가 확인 했어야 하는데 깜박하고 잊어버려 돌려 달라는 말을 못했네
짐을 제대로 받았는지 의도적일 정도로 확인할 기회를 안준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짐 좀 확인 할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기다리라고 만 하여 비행기 탑승시간 다 돼서야 짐을 줘 짐을 들고 탑승구로 가기 바뻐 짐을 확인 하는걸 순간 깜빡 했어
내 안경은 공항 게이트 에서 탑승을 기다 리다가 의자에 놓고 순간 깜빡 잊어먹고 않탓네

(KIM SUN JIN

-economy class/classe economlque- ETKT0144661490864-


Flight/vol date From/De Destination
AC 063 03APR VANCOUVER INCHEON

에어캐나다 13;00 게이트 D55 좌석 번호 34D
cabin/ cabine
Y)

돌아 오는 길에 자세한 정황도 모르고 많은 후회를 했다
한국 정부보다 세다는 삼성공화국 오너들이 엄청난 모함이 있을 것이란 것을 예상 하고
가는 곳마다 한국 국정원 보다 정보가 빠른 삼성그룹에서 일도 못하게 방해하고 은근히 약올려 싸움시켜 구속시켜서 삼성가 개밥 쳐먹는 교도관들 시켜서 계속누명 씌워 사회와 격리 시키거나 아예 죽여버리고 사고사나 자살로 누명 씌워 처리할 것들 이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조직적인 음모를 어떻게 나혼자 감당 하려고 다시 들어 오는가
이번 만큼은 끝까지 밀고 갔어야 했는데 하면서도 이미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로비를 해놔서 난민신청 점수도 못하고 나의 진술은 조작 왜곡이 되어 나만 파렴치범으로 누명당하여 고생만 했으리라 짐작은 갔다
한국은 언론과 방송뿐 아니라 모든 부분을 장악한 삼성이 내글을 출판도 못하게 출판사에 압력을 행사하여 부도처리 한다고 하거나 아예 돈줄을 차단하여 말려 죽인다고 협박하여
한국에서는 삼성말을 듣지 않고는 도저히 살수도 없게 오래전부터 은밀히 시스템을 구축한 삼성공화국 아닌가
불안한 기분은 재수 없게도 왜 그렇게 맞는 확률이 높은지
내가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그런 사건이 있은후 한국에 2014년4월4일 인찬국제공항에 입국하고 난후 2014년4월16일 갑자기 세월호 침몰사건이 터진지 채 한달이 안되어

2014년 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암살 의혹이 농후한 갑자기 쓰러져
아직까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을 추종하는 패거리들 말고는 아직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내가 캐나다 에서 난민신청을 하는것을 더러운 로비로 막은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그러나 그러한 사건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귀에 들어가 호적에는 올라와 있지만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홍라희가 낳은 딸이 아니것을 이건희 회장을 잘알고 있어 설마 설마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범행을 의심하다가 내가 개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 하는 사건이 이건희 회장 귀에 들어가 이건희 회장이 가장 총애하던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 들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려 하자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내가 추리한게 정확하다는 증거는 내가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던 사건이 난후 40일도 지나지 않아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에게 암살 당하였다

물론 나의 난민 신청을 더러운 로비로 막은려면 결국 삼성의 비밀 조직을 이재용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건희 회장의 결재없이 은밀히 움직이려 하다가 결국 국가 정보원 보다 정보가 몇배나 빠르다는 이건희 회장에 포착되어 이윤형을 암살한게 이재용이란 확실한 증거를 포착한 것 일 것이다


사실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와 이재용을 은근히 의심하며 그들이 내가 한 헌법소원 소송과 캐나다에서 난민신청 하면 어떻게 나올지 지켜 본 것이다

내가 헌재에 헌법 소원을 몇차례 연속으로 하여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이라고 말하였지만 전부 기각 되었는데 그때도 이건희 회장이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겠지만

홍라희 이재용이 움직이지 않아 의심은 가도 결정적 증거가 포착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내가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여 받아 들여져 심리가 들어가 조사가 진행이 된다면 내가 말한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게 캐나다 언론에 알려지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의 범행이 전세계에 까발려져 끝이라고 생각한 이재용이 이판사판으로

이재용이 운영하던 삼성그룹 산하 비밀조직을 움직여 로비를 하지 않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삼성 이건희 회장에 포착이되어 이윤형을 암살하게 홍라희 이재용 이란 확실한 증거가 들어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조치를 취하려 하자 2014년 4월4일 내가 캐나다 에서 인천공항에 입국한지 채 40 일도 되지 않고 4월16일 세월호가 터진지 한달도 안되어 2014년 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것이 홍라희 이재용 이란 나의 추리가 확실해 보인다


사실 내가 2013년 한국 최고재판소 헌법재판소에 에 헌법소원 하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청부살해 했다고 한것과 2014년 4월 캐나다 벤쿠버로 가는 비싼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여 가서 난민신청 하려 했던 이유는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은밀히 움직이는 정황을 이건희 회장이 포착하여 이윤형을 암살한 배후의 범인이 이재용 이란 사실을 확보하여 진실을 밝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종의 미끼를 놓은 것이다
2014년 4월4일 벤쿠버에서 돌아온지 채 40일도 안되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에 암살된건
내가 벤쿠버에서 난민신청을 하자 삼성비밀 조직을 이용해 난민신청 접수가 못되도록 로비를 하지 않을수 없었던 이재용의 움직임이 정보가 빠른 삼성 이건희 회장이 포착하고 그동안 의심은 했는데 아니길 바라며 설마 설마 하다가 가장 총애 하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이란 확실한 단서를 포착하고 조치를 취하려 하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까지 암살한 이재용 설마 지 아버지 까지 암살할 줄은 누가 상상 이나 했겠냐


지 아버지 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장례도 안치르고 3년째 음폐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내가 다시 난민신청을 하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로비하여 얼마 던지 요리할 수 있다고 이재용은 생각할 것이다

청송 제1 교도소에서 마약사범을 시켜 나를 누명씌워 엮으려던 이유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이재용이 사주한 것일 가능성이 점점 확신이 선다

결국 범행을 감추기 위해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의 파렴치한 범행을 다시한번 세계 양심에 고발한다

내가 난민신청을 하여도 죽이지도 누명씌워 엮지도 못하게 방해하는 이재용의 유일한 걸림돌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제거한게 확실해 보인다 먹이사슬 피라미드 최고 정점에서 유일한 걸림돌인
눈엣가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제거한 삼성가 홍라희와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장남 이재용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 등이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 암살하듯 다음 타킷은 나를 누명씌워 구속 시키려 하거나 죽이려 할 가능성이 커 매사에 불안하다

이제 다시 내가 캐나다나 일본등에 난민신청을 하면 홍라희 이재용이 방해 세력없이 마음놓고 아예 돈이나 국제적인 고위층 인맥을 활용하여 사주하여 구속된 상태에서 죽이거나 누명씌워 법으로 사법 살해 할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후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이 유병언 장학생들이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데
2014년 4월16일 침몰한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장학생이 사회 곳곳에서 유병언의 온갖 비리를 비호해 준게 드러났는데
삼성그룹 장학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비교조차 안되는 세력이다
한국에선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이있다
모든것이 가진자들 편이지 약자들 편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해 하고 분노해 봐야 소용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출세하면
모든것이 해결 된다는 것이다
가진자들은 정말 편하게 살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인천으로 이미 향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 대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이 후회가 된다 죽이되던 밥이되던 끝까지 밀고 갔어야 하는하는 생각이 들지만 밀고 갔어도 이미 삼성에서 돈과 인맥으로 떡 주무르듯 장난을 쳐놨기에 결국 난민신청 접수도 못하고
강제 추방되어 왔다는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예상되로 삼성의 조직적인 방해가 너무심했다 내가 가는곳마다 어떻게 알고 내가 하는일마다 방해하고 주변사람을 포섭하여 시비거리를 조장하여 구속시켜 공권력 악용으로 교도관들시켜 누명씌워 사회와 계속 격리 시키려는 더러운 교활한 짓 거리가 분명 했다
그래서 자주 옮기며 일을 하다보니 돈을 벌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신상을 전국에 삼성공화국에서 조직적으로 악의적으로 까발려 퍼트려 제대로 된 일자리는 아예 면접에서 쓰지도 않고 쓴다고 해도 그것은 나를 여럿이서 나를 조롱하며 시비거리에 희말리게 하여 누명씌워 구속시키려는 더러운 수법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일자리는 아예 면접에서 쓰지도 않았다 일용직도 일을 할만 하면 삼성에서 추적하여 알고 일을 못하게 방해 할뿐 아니라 시비거리를 조장하여 날 다시 구속시켜 공권력을 악용하여 사회와 격리 시키려 엄청난 공작을 꾸미는 정황이 들어나기도 했다
황순원 원작의 소나기에서 소녀를 좋아하던 소년이 잠결에 부모로 부터 소녀의 죽음을 주어 듣드시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서 출소한 나하고 같은 거실에 있던 마약 사범이 나를 출입국을 금지 시키려는게 아니고
내가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서 징벌을 3개 이상 더 받으면 내가 출소하여 3년 이내에 다시 구속되도 경북 북부 제1교도소로 보내서 교도관이 죽일수가 없어 징벌을 더 못받게 하기위해 징벌방 안 보낼려고 사전의 시나리오로 나한테 비유마춰 주었던 거라고 했다며 누군가 떠드는 소리를 주어 들은 적이 있다
그말의 진위여부는 확인할수 없으나 내가 징벌 6개를 받았던 첫징역 살던 전남 순천교도소로는 이송을 안 보냈다

그러나 그놈 설사 그런 말을 했다고 내가 주어듣도록 이렇게 까지 소문이 퍼질까

내가 외국 나가서 난민 신청하여 삼성 이건희 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에 의해 암살됐다고 떠들면 물론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신청만 접수가 되도 한국의 피라미드 먹이사슬 최고점에 있는 홍라희 이재용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일한 사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모든걸 눈치 챌까봐 그것을 가장 두려워 하여 나를 누명씌워 엮으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배후에 삼성이 없다면 이런 쓰레기 같은 유언비어 소문이 이렇게 까지 퍼지는건 불가능 할 것이다
세상의 판은 더강하고 교활한 것들이 유리하게 미리 답을 조작하여 판을 짜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힘없는 사회적 약자가 말하는 진실은 그것이 아니라 조작됐다고 아무리 아우성 쳐봐야
마치 거미가 먹잇감을 노리고 쳐놓은 함정 거미줄에 영문도 모르고 날아가던 나비가 걸려
거미의 먹잇감이 되듯 나는 영문도 모르고 다니다가 삼성의 거미줄 같은 함정에 빠져 헤어나려
몸부림 치는 모습같아 너무 억울하고 분노를 느낀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동서고금은 물론 지금도 수없이 존재한다

가장 쉬운 예로 시리아 난민들일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아무런 영문도 없이 수없이 학살당하여

가족을 따라 유럽으로 목숨을건

탈출을 하는것이다
지금와 돌이켜 보면 오사카 노가다판에서 숙식제공하며 일할때 과거 삼성그룹 계열사 에서 일한적이 있다는
일본여자와 결혼하여 산다는놈이 나를 도쿄에서 불러 일을 시켰는데 그때 나의 머리카락 등 DNA를 나몰래 훔쳐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 현장에 뿌려 누명을 씌우려 했던건 아닐까 ?
내가 도쿄에 올라와 벤쿠버로 갈때까지 2주이상의 갭이 있었다
그안에 엉뚱한 사건현장에 삼성알바가 몰래 훔친 내 DNA를 던지고 누명을 씌우려 했던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하다
더우기 당시 말레시아 항공기 추락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벤쿠버로 가려고 나리타 공항을 들어서려 나리타 전철역에서 내리자 마자 공항입구에서 검문으로 나의 여권을 확인하고 검문하던
기억이 왠지 예사.스럽지 않고 나리타 공항 에어 캐나다 일본인 여직원이 나를 티켓팅을 해주지 않으려 여러가지 꼬투리를 잡으려 하다가
내가 돌아오는 티켓이 도쿄라는 것을 말하자 마지못해 티켓팅을 해주는 모습도 이상했다

(자봐라 작은 나무야 너하는 대로 내버려 둘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송아지를 못사게 막았 더라면 너는 언제 까지나 그걸 아쉬워 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걸 내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저자 포리스터 카터|역자 조경숙|아름드리미디어|2009.-

2014년 4월4일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하자

나의 예상되로 삼성의 방해와 조직적 음모가 심하였다

그리고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더니

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뉴스로 보도되더니

삼성병원으로 급히 옮겨 저체온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니

2016년 4월8일 현재까지 삼성병원 병실 밖을 한번도 나온적도 제3자가 본사람도 없는데

휠체어를 타고다니며 건강이 회복하여 재활훈련 받는다고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순환출자구조 주주총회에서 합병승인을 받기전까지

뉴스보도가 나오더니 합병승인 이후로는 이건희 회장의 뉴스를 본적이 없다

나는 2015년 4월1일 부터 1주일간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시나가와 뉴관에 가서 난민신청을 하려다가 왠지 이상해서 신청을 하지않고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2015년 11월30일 괌에 갔다

비행기를 타기전 까지는 괌이 미국인줄은 생각지 못했다 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나의 불찰 이기도 했다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자 도착하기전에 주는 입국 신고서를 보고 놀랐다 미국 입국 신고서를 주는게 아닌가

그런데 미국에서 오버스테이 한적이 있는가

또는 전과가 있는지 YES나 NO로 답변 하라고 하네

내가 괌에 간 목적은 첫째는 관광이고 둘째는 괌을 통해서 호주나 캐나다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한국에서 사는것보다 훨씬 저렴하지 않을까 그저 막연히 생각하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게 괌에 가는데 미국 입국 신고서를 주는게 아닌가

내가 그토록 미국에 난민신청을 하고 십었는데 왠지 당시에는 반갑지가 않았다

삼성그룹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이윤형을 암살하고 그걸 숨기기위해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정황이 확실한 상황에서 무슨 음모가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할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미국은 현직 대통령 케네디도 암살하고 음폐한 나라가 아닌가

나는 비행기가 도착하여 나와 타고온 일행들이 공항을 다빠져 나갈때 까지도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데 미국 이민국 복장을 한 동양여자가 오더니 한국말로 내가타고온 항공사 이름을 알고 아저씨

일행들은 다빠져 나갔는데 왜이리 시간을 끌어요 하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나를 빨리 통과 시켜 주겠다며 데리고 월반하듯 들어가는 쪽에서 왼쪽으로 나를 데려가면서

지혼자 중얼거리며 호모자식 하며 지혼자 중얼 거리는 뒹에서 따라가는 소리를 얼핏 주어들었는데

그런데 이년은 뭔데 내가 늣게 들어가던 말던 무슨 상관인데 나를 어떻게 알고 찻았고 또 내가 타고온 편명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지 정말 믿을수 없는 일이었다

나를 데려간 동양인 이민국 직원은 상당이 앞줄에다 나를 세워다 놓고 갔다

말투는 함경도 사투리를 비슷한데 중국 연변 출신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사투리가 같은 갈레라고 하고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가 같은 갈레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도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도 많을것이며 그중 조선족도 많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괌 공항 이민국 직원들은 이미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괌에 오는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국 심사에서 나는 걸려 이민국 직원이 데려가서 조사를 받는데

황당하게도 낭짜는 안가르쳐주고 2005년3월에 미국에서 강제추방 당했다며 지랄하는데

2005년 3월14일 나는 안양교도소에서 전남 순천교도소로 이감을 갔는데

안양교도소 아닌면 순천교도소 있을때였다

그런데 내가 유령도 아니고 어떻게 미국에서 강제 추방 당했다고 지랄하는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음모론이 현실로 증거가 들어난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한걸로 되어 있어 영주권자라고 씨부리는 이민국 직원도 있었다

그리고 조사관이 나보고 미국에서 결혼한적이 있냐고 여러번 묻는게 안닌가

미국은 통역은 전화로 했다 그런데 2014년 캐나다에서 난민신청 할때는 통역관이 내옆에 앉아 통역을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난민신청을 포기하자 전화로 통역을 하였다

나는 순간 전화로 하는 통역은 내가하는 한국말이 녹음이 되어 조작하기가 쉽지 않은게 아닌가

괌에서는 난민신청을 하지않아 전화로 통역하는거고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는초장부터 난민신청을 하자 몇시간을 대기하다가

통역관이 오고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진술을 조작하기 위해서 그런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괌에서도 난민신청을 하여 삼성 스토리를 꺼냈으면 캐나다 처럼 그렇게 했을수도 있지 많을까

나는 처음부터 한국에 다시 들어갈테니 최대한 빨리 조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밖에서 들리는 여자 목소리가 아까 나를 데리고 줄을 앞질러 세운 연변 사투리를 쓰는 괌의 이민국 직원 이었다 캐나다에서 심하게 당해 괌에서는 난민신청 안하는 가보다고 또다른 입국 심사에서 걸린 한국 여자와 대화 하는지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조사하는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참고자료 -당시 조사내용을 프린트하여 나에게 준것을 전부 적을순 없고 문제부분만 원문 그대로 적는다

Office:Agana.Guam.POE Event Number:AGA1611000077

Statement by: KIM,SUN JIN File No: A079-086-793

In the case of : KIM,SUN JIN

At:Agana, Guam,POE Date: December 01,2015

Before :W. TANG, CBP Officer In the English to Korean language.

Interpreter: 8482 Gene and 5191 Interpreter employed by: CTS Interpreter

Q: HOW many time have been into United States?

A: TWO time.


Q: Can you tell me when is those two time inside the United States?

A: I came first time 1999 and the second visit was 2003.


Q: when and where did you first came into United States?

A:1999 June, I can"t remember the specific date, it was at San Francisco.


Q: Did you have a United States visa the frist time you enter the United States in 1999?

A: Yes, at the time I have a travel visa.


Q: When did you departed the United States back to Koprea from you first trip in United States.?

A: Sorry I got confused, I departed United States on January 2003 from Kennedy Airport in New York to South Korea.


Q: Where did you enter the United States in 2003 ?

A: Second time I enter from Vancouver, Canada, then I illegally cross the border into

United States.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탕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에게 조사를 받았는데 통역은 사물실에 배치된 인터폰 으로 통역을 하였다 내가 중간에 잠시 짬을내어 통역하는 사람 이름을 물어보자 규정상 이름은 가르쳐 줄수가 없고 번호로 8482 라고 했다 조사가 시작된 시간은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새벽 3시 전후 부터 조사 받은것 같은데

7시간이 넘은 아침 10시가 넘어도 조사가 끝나지않은 이유는

조사관이 질문한 내용을 10번 이고 계속 물어 보았다 미국에서 결혼 한걸로 나오는데 나보고 결혼했냐고 하길래 내가 동명 이인이 아니냐 나는 결혼한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냐고 따지자 조사에 성실히 대답하지 않으면 언제 조사가 끝날지 모른다 그러면 오늘 한국에 돌아갈수가 없고 언제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니 답변에 성실히 대답하라고 협박하는게 아닌가 그러면 자신의 질문에 장황하게 설명을 하지말고 간단하게 yes나 no로만 답변하라고 지랄하네

나는 속으로 오늘 한국에 못돌아가면 2014년 4월 개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처럼 구치소 같은데 수갑차고 끌려가 감방에서 생고생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빨리 조사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십었다 그런 대답을 10번이상 집요하게 물어봐 똑같이 대답하고 나중엔 내가 금금해 정말 내가 결혼한 걸로 나오는지 내가 직접 컴퓨터를 보고 확인하면 안되냐고 하자 절대 볼수 없다며 가르쳐 주지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동명 이인 인것 같다고 하는데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로 미국 같이 철저한 나라에서 동명 이인인것 같은데 나에게 10번이상 집요하게 질문하며 시민권자와 결혼하여 영주권 그린카드가 있는게 아니냐고 검사가 신문하듯 하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그후 받아본 진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상한것은 캐나다에서도 무슨 좋이 몇장을 나에게 줬는데 괌에서와 같이 내가 진술한 내용은 한마디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진술이 왜곡된게 있는지 더욱 의심이 간다

괌에서도 네가 처음부터 난민신청 하여 삼성 이야기를 했으면 나의 진술 기록이 왜곡 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괌에서는 난민신청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처음부터 말하자 이러한 진술서를 준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사 중에 미국에 몇번 입국 했냐고 물어서 나는 두번 이나 미국에 입국한적이 있다고 말했다

괌에서 조사할대는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아 정확한 날자를 적지 못했는데 한번 은

(참고자료-그후 한국에 돌아와 출입국 기록을 찻아 적어보면 1999년 6월25일 미국으로 출국하여 2003년 1월19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였고 또 한번은 2003년5월26일 캐나다로 출국하여 2004년 1월15일 인천 국제 공항으로 입국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4년 4월28일 중국 심양으로 출국하여 2004년5월2일 인천국제 공항에 입국한적이 있었다

일본으로 출국한 기록은 1997년 1월30일 나리타로 출국하여 1999년5월12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4년 2월12일 나리타로 출국하여 캐나다 벤쿠버공항에서 난민신청하다 포기하여 2014년4월4일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기록이 있었다

그리고 2015년4월1일 나리타로 출국하여 2015년4월8일 인천국제 공항으로 입국한 기록이 있었고

2015년 11월30일 괌으로 출국하여 걸려 입국 못하고 2015년 12월1일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기록이 있었다 )

첫번째는 비자를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입국 했는데

두번째 입국은 무비자인 캐나다 벤쿠버를 통해 미국에 밀입국 했다고 말했다

첫번째 비자를 받아 샌프란시스코로 입국은 위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설명이 필요없고


두번째 입국할때 정황을 설명 하자면

나는 2003년1월 뉴욕에서 케네디 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알라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도착하고보니

처음보는 인천 국제공항 이었다 그리고 2003년 4월8일경 셋째이복형과 불미스러운 호미 사건이 생기고 난후

막상 한국에 와보니 미국의 생활이 그리워 다시 가기로 생각하고 미국에서 번돈으로

브로커를 통해 무비자인 벤쿠버에 도착하여 미국으로 밀입국 하기로 하고 브로커 집에 몇칠인가 대기하는데 브로커 집은 벤쿠버 시내에 있었으며 제법 큰 단독 주택인데 당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틀란타에 사는 고모를 만나러 간다는 사람이 먼저와 대기하며 바로 앞방을 쓰고 있었고 나이가 40가까이 되어 보이는 한국인 여성도 다른 방을 쓰며 데기하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제법큰 단독 주택의 지하에 방이 몇개 있었던걸로 기억난다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디데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날은 저녁에 집밖으로 브로커를 따라 나가보니 브로커집 지하방에 대기하고 있던 나까지 3명과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한국에서 바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나는데 생각보다 많은 숫자인데 거이가 여자였다 남자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3-4세로 보이는 사내 아이를 들고 봉고차에 탔다 봉고차는 뒷쪽과 옆은 썬텐이 되어있었는데 아주 진한 색은 아니었다

그래서 봉고차에 동양인이 많이 타고 가면 미국으로 밀입국이 의심 된다고 신고가 들어 갈수가 있다고 조심해서 갔던 기억이 난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캐나다 야간 산길을 대략 5-6시간 이상을 달린것 같다 대략 밤 12시가 막 넘었을까 ?


어느으쓱한 산속 숲길에서 차가 멈추더니 잠시 대기하라며 한명이 먼저 가보더니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모두 내리라고 하며 브러커를 따라 가보니 이제 부터 미국으로 밀입국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하라고 말했다 브로커가 3명이었던것 같은데 한명은 차쪽으로 가고 브로커 2명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데 일자로 줄을 서서가는데 여성과 어린애를 데리고 가는 중년 남성이 맨앞에 서고 내가 맨뒤에서 바로 앞에는 조지아 아틀란타에 고모를 만나러 간다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렇게 캐나다쪽 철조망을 넘고 어느정도 가니까 미국쪽 철조망을 넘었다 철조망 높이는 그렇게 높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어느 가시덤풀 나무들이 많은 곳에서 지나는데 앞에서 브러커를 따라 가며 애를 데리고가던 중년 남성이

어디선가 같이가요 하며 괴성을 크게 지르는게 아닌가 순간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 모두 잡혀 발각되는건 아닌가 엄청걱정 이나서 소리가 나는쪽으로 급히 가시덤풀 숲을해치고 다가가보니 중년남성이 애를데리고 앞줄에서 지혼자 막가다가 가시덤풀에 갇혀 고립되자 괴성을 지르며 찻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소리지르면 모두 잡혀서 가란말인가 한국놈들은 남이야 죽던지 말던지 지밖에 생각 안하는 놈들 천지야 내가 급하게 괴성이 나는 소릴을 찻아가자 가시 덤풀에 갇혀서 괴상을 지르다 소리를 멈추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다잡혀 가라고 그런거라며 내가 막 야단을 치자

조용해 졌다 일행은 다시 일자로 길게 줄을서서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야밤에 넘고 있었다

과거 영화 빠삐용을 보면서 누명을쓴 주인공 스티브맥퀸이 자유를 찻아 일행과 탈출하는 모습을 tv를 보면서 조마 조마 하게 긴장하며 무사히 탈출 하길 바랬던 기억보다 그때가 더 스릴이 있었던것 같다 TV나 영화를 보는거나 직접 경험하는것은 하늘과 땅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4시간 이상을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땅을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었다

해가 일찍뜨는 6월이라 그런지 새벽 4시가 넘자 서서히 날이 밝아 보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미국 놈가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산길을 내려오며 잠시후 브로커가 차가 두대가 대기하고 있으니 차두대에 나눠 타라고 했다 그리고 브로커가 누구는 이차타고 누구는 저차타고 가라며 인원을 정해준것 같다 보고십은 것만 본다고 나는 나에게 정해준 차만 기억난다 나에게 정해준 차쪽으로 와서 얼른 차안으로 들어갔다

브로커 들은 캐나다 국적자로 LA에서 온 다른 브로커에게 우리 일행을 인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러면서 미국 국경 수비대가 경비가 허술한 곳을 찻기위해 산에서 텐트를 치고 밀입국 시키기 좋은 루트를 찻기위해 노력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난다

우리를 무사히 인계하고 그들은 오던길을 다시 돌아간것 같다

이세상에 쉬운일이 어디 있겠는가 브로커는 우리일행보고 최대한 은밀하게 미리대기하고 있는 차로 가라고 했다 우리를 무사히 인계하고 그들은 오던길을 다시 돌아간것 같다 그런데 차가 가는 2시간 동안은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며 의자에 머리를 숙이고 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행운인지 내옆에 아가씨들 중에 키가 제일커 보이고 얼굴이 그중 제일 나아 보이는 아가씨가 내옆에서 나와 몸을 부딪기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아가씨의 유방이 내몸에 뭉개지도록 서로 밀착된 상태로 서로 몸을 최대한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안에서는 성진우의 포기하지마란 노래가 크게 들리며 차는 쨉사게 가고 있었다 오랬만에 맡아보는 그리운 여인의 향기였다 그 아가씨도 내가 싫지는 않은지 내쪽으로 몸을 더욱 밀착 시켰다 차가 가는 방향으로 왼쪽 창가가 내자리고 가운데가 그 아가씨 또 그옆에 아가씨가 한명 더있었고 우측창가에 아이와 중년 남자였다 그어가씨와 나는 서로 호흡을 들어 마시며 입술이 맞다을 정도로 밀착된 적도 있었다

이렇게 LA까지 빨리가도 열몇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데 이런것도 행운 이라면 행운인가

LA 이나 뉴욕의 마사지 팔러나 룸살롱에서 아가씨들이 일하면 저정도 미모의 아가씨들은 한달에 만불 이상을 버는건 일도 아니고 2만불 넘게 버는 아가씨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술집이나 마사지 팔러 등에 일하러 왔다가 떼돈벌어 일식집을 차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온 사람을 데리고 살며 메니저로 쓰는 경우도 보았다

업주들이 아가씨들이 돈을 잘버니까 밀입국 경비를 주고 아가씨 들을 한국에서 데려오는데

한달이면 경비를 값을수가 있다고 한다 그 아가씨는 말투가 연변 조선족 같았다 저 아가씨 뿐아니라

그옆에 있는 아가씨도 말투가 조선족 같았다


일행중 브로커 집에서 몇칠같이 대기하던

30대 후반이나 40전으로 보이는 여자 말고는 조선족 같았다

그런데 이런 행운도 잠시 2시간이 지나 몸을 숨기지 않고 의자에 앉아 가다가 시애틀 맥도널드 에서 간단히 먹을것을 먹는데 다른차의 운전수가 내옆의 앉아 가던 아가씨를 보더니

그러니까 내가 앉던 좌석에 3명이 아니 아이까지 4명인데 아이는 지아버지가 않고 가기에 가운데에 그아가씨가 앉고 내가 창가쪽에 앉아 가는데 아이를 안고 타면 안된다고 그 아가씨를 지차에 태우고 아이를 자리에 착석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쪽에 사람이 너무 많은데 하며 우리쪽 운전수가 반문해도 무조건 괜찮다고 지랄하네

결국 그아가씨가 마음에 든다고 앉고 간다는 말이아닌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처럼

굉장히 서운했다 가면서 말이라도 걸어 한번 꼬셔보고 십었는데

봄날은 갔다 사실 미국에서 한국 아가씨들은 대접 받아도 남자들은 개털이었다

가는 중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누구나 사연은 있겠지만 왜 저렇게 어린애를 데리고 밀입국 하냐고 묻자

어린애는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애엄마와는 이혼했고

그렇게 LA에 도착하자 업주들이 마중나와 아가씨들을 데려갔다

그 아가씨는 차를 바꿔타서 먼저와서 업주가 데려간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갈곳도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유일하게 갈곳인 현대사우나로 가서 사우나를 하고 잠을잤다

두번째 미국에 왔을때 내가 일했던 곳의 기억은 제일먼저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던 식당이다

당시 LA까지 구인광고가 나와서 전화하자 오라고 그래서 과거 플로리다 잭슨필 그레이하운드터미널에서 이미국 직원의 불심검문에 걸린 경험이 있어서 플로리다주와 경계선인 조지아주 에서 만나 데려갈수 없내고 내가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이상하게 허락하여 믿고 먼거리를 가서 전화하니끼 정말 4시간 이후에 승용차로 나를 데리러 왔는데 운전수는 50대가 넘어보이는 서울말씨를 주방장이란 사람이고 그옆에 중년의 아줌마가 있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방장에대한 보수나 예우가 좋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다니며 같이일한 스시쉐프나 주방장 등은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사 살다보니

주방장이나 특히 스시쉐프를 하는경우는 영어가 필수라 있고 한국에서 제법 잘나가던 사람이 미국 이민와서 우여곡절끝에 하는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주방장은 비교적 수준이 높게 살던 사람들의 비율이 한국보단 높다고 봐야한다


승용차를 타고 가던중 운전석 옆에 앉은 중년 아줌마가 히라 하고 맞겠네 하는 소릴하자 주방장이 한동안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그게 뭔소리 인가 했는데 그 식당에 가보니 숙소는 식당에서 좀 떨어진 주택인데 주방장은 자신의 집에서 식당에 출퇴근을 했고 나에게는 식당주인이 독방을 주었는데 쿠바출신 한명도 다른 방에서 자며 디시워셔를 했고 나는 한식 주방핼퍼를 했다 디시워셔가 쉬는날은 내가 디시워셔를 해야 했다 웨이츄레스로 부산 태생에 미군 흑인 아버지와 혼혈인 전문대를 졸업 했다는 히라인지 히로인지 미국인과 이혼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제법 섹시해 보니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보다 몇살 더먹은 미국인과 사는 여자도 있었고 그런데 주방장하고 혼혈인 여자를 나이를 넘어 좋아 하는 걸로 보였다

나이먹은 아줌마들도 있던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혼혈여성이 나도 마음에 있었다 그여자도 나를 싫어 하지 않는것 같았다 역시 주방장이 문제였다 주방장이 질투를 하기시작 하는것 같았다

나는 당시 까지만해도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죽기 살기로 나의 이익을 위해 버티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도망자 였다 물론 주방장을 힘으로나 주먹으로 내가 이길수는 있다 싸움에서 지는게 두려워

간게 아니다 싸움을 하면 내가 이기는건 물을 보듯 뻔했다

하라라는 여성도 나를 좋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런데 나는 또 포기하고 말았다

벌써 이렇게 아가씨가 나를 좋아하는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혼혈 여자는 한국의 흑인혼혈 뮤지컬가수 소냐나 흑인 혼혈 윤미래를 연상할 만큼 그런데로 섹시해 보였다 나도 그 여자를 속으로 좋아하며 같이 섹스하며 살고 십었는데 그것을 눈치보며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돈이 많았거나 내세울것이 많았다면 눈치보지 않고 당당히 표현하며 같이 살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내처지가 그렇게 말할 입장이 못되었다 남자가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자를 좋아하여 섹스하고 같이 살고 십은 마음은 본능인 것이다

그런 식당의 묘한 전쟁 분위기가 싫은건지 나는 포기하듯 그만둔다고 하자 주방장이 제일먼저 반기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 먼거리를 다시 나를 태우고 데려다 주었다

나는 패잔병처럼 플로리다의 주 경계선과 가까운 조지아주의 허름한 시골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떨구어 졌다 그후로도 2달간은 히라 라는 여성을 잊지못해 보고십은 마음에 아련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며 그곳에 좀더 있었으면 그혼혈 여자와 살림을 차렸을수도 있어 좀더 수월하게 미국생활을 적응할수가 있었을텐데 왜 갈때도 없는데 그만 뒀을까 나를 자책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나가고 그곳에 두번다시 갈수가 없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누구라도 그러하듯 그 아픔은 줄어 들었다 그 혼혈 여자가 나를 좋아 했을까? 내 느낌에는 나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처음에 그 식당에 도착했을때 일끝나고 혼혈 여성과

미국인과 산다는 여자 둘이서 노래방 가자고 했을때 왜 아무 대꾸도 못했던 나이다 안간다고 그런것도 아닌데 내가 말을 안하자 가기싫은줄 알고 가지않았다 그외에도 이혼한 혼혈 여성은 나에게 상당한 친근감을 나타내자 주방장이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곳을 그만 둘때도 차로4시간 왕복 8시간을 투자해 나를 플로리다주 경계선을 넘어 바로 있는 조지아주 의 어는 허름한 시골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에 나를 데려다 주는 정성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먼거리를 데려다주는 정성 이었다

그리고 먼저 적은글에 나오는 2003년 11월경 미시건 렌싱 99스시집 에서 있었던 스토리도 두번째 입국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당시 티벳 사자의서의 책을 들고 다니며 읽고 이해하려 했다


두번째 입국때는 당시는 배후를 몰랐는데 지금와 추리하면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방해로

첫번째 입국때 보단 생활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돈이 거이 떨어진 상태에서 2003 12월 초쯤인가 LA의 허름한 싸구려 민박집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당시 크리스마스도 보냈다

그곳에 있다보니 60이 넘은 사람이 들어왔는데 1941년생인데 태어난 곳은 이북이고 한국에서 서울사대부고를 나와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MIT국비 유학생으로 유학온적도 있다며 중앙일보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원을 차렸는데 동업한 친구가 돈을 모두 들고 도망가 거지가 되어

과거 MIT유학온 경험으로 미국에 왔는데 살기가 막막하다고 하며 시민권자와 아는사람이 도와 결혼을 추진중 이라며 미국은 영주권자에게 65세이상자에게 돈을 준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ㅎ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홍사덕 의원과 서울 사대부고 동기 동창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와중에 성균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한국에 있는 넷째 이복형에게 미국에서 일자리가 생겨 일하러 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 한번만 도와달라며 30만원만 송금해 달라고 여러번 사정하자 들어주지 않아 한국에 공중 전화로 카드번호로 전화하려면 저녁에 하여야 시간이 맏기에

저녁에 민박근처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도 받자도 않아 전화기를 내려놓고 민박집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20대로 보이는 히스패닉 한명이 총을 보여주며 히스패닉 말로 뭐라고 떠드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고

당시에는 나도 넷째이복형이 도움을 주지않아 열이 받을데로 받아 다른데 신경을 쓸수가 없었고

히스패닉이 총을 들이데며 나에게 강도질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저리비키 라고 한국말로 하자 그놈이 히스패닉 말로 뭐라고 뒤를 보며 떠들자 약 20m거리에서 망을 보던 한놈이 갑자기 칼을 꺼네며 나에게 달려오자 갑자기 정신이 확들며 이것들이 나에게 강도질을 하려 한다고 생각이 들자 촣을 들은놈의 배을 발로차자 그놈이 아파하며 정신이 없을때 불빛이 있는 곳으로 100m육상선수 처럼 달려가며 도망온적이 있다 그리고 민박집에와 한참후 정신이 들어 주머니에 있던 여권을 찻아보자

없었다 도망오다가 거리에 흘린게 분명해 보였다

주머니에 돈은 거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사실 일하러 가는데 차비가 없어 차비를 도아달라고 한것은 거짓말이었다 당시는 이상하게도 면접 보는곳 마다 쓰지 않으려 했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면접을 보았던 곳에서도 나중에 연락해 준다며 쓰질 않았다

우리 엄마가 거지같은 집구석에 들어가 그렇게 고생했는데 엄마 명의로 데어있던 집과 땅을 팔아 지들은 대학 학자금으로 쓰고 사업자금 장가 미천 들이고

노원구에 아파트도 장만하여 제법 살만한 것들이 내가 자존심을 던지고 상황이 어려우니까 30만원만 빌려달라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전화도 받지않고 어느순간 분노의 화살은 넷째 이복형에게 향하고 있었다

LA영사관에 오랜만에 다시찻아가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신청을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한 건지는 모르지만 당시 한국가는 비행기 티켓가격 편도를 200불도 안주고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마련한것 같았다 그래도 도시락과 음료수등 먹을것은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 괌으로 가는 저가 항공은 환률로 따져도 200불이 넘는데 먹을것을 사먹으라고

그렇게 2004년 1월 중순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2004년 8월27일 서울 노원구에서 넷째 이복형을 찻아가 칼부림을하여 살인미수죄로 3년을 선고 받고 2007년 8월26일 청송제2교도소에서 출소하였다

괌에서 조사받을때 미국에서 불법채류 하면서 일한 식당 이름을 말하라고 하자 갑자기 기억 하려고 하니 생각이 안난다고 말했다 기억나 말하면 그식당에 불이익을 줄까봐 굳이 기억하고 십지도 않았다


Q: Records indicated you were Ordered Removed in Absentia from the United States on or about

May 29,2001 and that you were deported from the U.S.on or about February 03,2005, can you tell

me why your statement is different from our record?


A: Please double check, because I left the United States in 2003,I don`t understand. I got order to

leave the United States in 2001 and then I left the United States in 2003 from Los Angeles to South

Korea.


내가 2015년 12월1일 새벽부터 장장 7시간 이상 괌의 W.TANG 이란 중국계 미국인이 조사하는 과정에에서 미국 이민국 기록에 내가 2005년 3월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전력이 기록되어 있다는 말에 차마 당시에 한국에 교도소에 구속되어 있는 사람이 유령도 아니고 어떻게 미국에서 강제 추방될수 있냐고

동명이인 이나 잘못된 기록인지 확인해 달라고 따져도 내가 맞데는거야

그래서 내가 LA에서 강도당할때 떨어트린 여권을 누군가 악용하여 신분을 세탁한것은 아닐까 ?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0로다

2015년 12월1일 괌 미국이민국 직원이 가르쳐줘 정확한 날짜를 알았는데 나는 이미 플로리다 잭슨빌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서 이민국 직원의 불심검문에 걸려 May 29,2001년에 양옆 얼굴 사진과 열손가락 지문이 다 찍혀 있어

미국이민국에서는 내 신분을 세탁 당할리가 없고 이미 추방재판을 받으라고 통보까지 받았는데 당시 여권은 이민국에 압수 당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추방제판에 여러 여권상 불참한 내 여권은 신분 세탁용으로는 사용할수가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 당할려고

내 여권을 도용하여 이용 했다는건 개가 웃을 말도 안되는 일이다

단 한가지 가능성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 이민국의 철두철미한 조사가 이미 내 얼국사진과 지문이 이민국에 찍혀있는데 누군가 쓸모도 없는 내여권을 도용하여 미국에서 한국으로 강제 추방당하는데 이용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이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의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내가 유령이 되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강제로 추방당했다고 한다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추리할수 있는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해 처음엔 교통사고 죽었다고 위장하려 다가 실패하자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했다고 자살로 둔갑시키려다가 이건희 회장이 안믿으니까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찻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내얼굴 한번보고 자살했다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다

상황이 안좋으면 최면걸어 죽였다고 누명씌워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위해

미국 이민국까지 돈쳐먹여 개처럼 부려 미국의 고위 관료가 개입하여 이민국을 움직여 공문서를 위조하여 2005년3월 한국에 들어온걸로 조작한게 아닐까 2002년도 촛불같은 짧은 마남을 가진 이윤형이 3년 이상 나를 못잊다가 자살했는데

최면걸어 그랬다고 그러면 과학적으로도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이니까 그렇게 조작한것은 아닐까 ?


그래서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는 이건희 회장 속일려고 결혼 하지도 않은 내가 결혼했다고

조작했을 가능성도 크다

허기야 살아있는 권력인 현직 케네디 대통령 까지 암살하고 조작하여 음폐한 미국이 아닌가?

미국은 좋은 것은 아주 좋고 나쁜것은 아주 나쁜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라 이기도 하다


또다른 추리는 교활하고 치밀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암살하고

처음엔 교통사고 사로 위장하려다가 안되면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했다고 둔갑시켜도 이건희가 안믿


을경우 최후의 히든 카드로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위해 만만한 상대를 은밀히 물색하던 홍라희 홍석


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내가 미국에서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보기힘든 듣도보도 못한 무일푼 떠돌이란 것을 전해듣고 노스케롤라이나 주에 있던 아스카란 일식당에서 이윤형을 만나게 세팅 작업은 했는데


이들이 뜻하지 않게 내가 당시 본명이 아니라 가명을 쓰고 다녀

삼성x파일을 터트려 이건희 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정신없게 만들고 이윤형을 암살하려는 디데이는 다가 오는데 희생양으로 누명씌울 나의 본명도 모르고 그러니 어디 있는지도 몰라

나의 정확한 신분과 위치를 확인하고 삼성x파일을 계회작으로 터트리고 이윤형을 암살하려 홍라희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 2005년 2월 주미대사로 부임하여 대사관에 있는 한국인의 사진을 일일히 대조하여 나의 본명과 신분을 확인하고 당시 2004년 8월27일 살인미수 죄로 구속되어 징역3년을 받고 2005년 3월14일 안양교도소에서 전남 순천교도소로 이감을 간것을 확인하고 2005년 7월 삼성x파일 사건을 터트리고 그해 뉴욕현지시간 2005년11월19일 이전에 이윤형을 암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왜 홍석현이 삼성 알바들 시키면되지 굳이 주미대사에 위장취업하여서 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만해도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건희 회장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을때고

돌다리도 두드려가는 음흉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말이 세어 나오지 않기 위해서 직접 주미 대사로 부임하여 알아 본것일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이 부정한 '양자 얽힘' 증거가 나와
한국일보 | 박소영 | 입력 2015.10.22. 17:34

(논문 제1저자 바스 헨슨 엔지니어와 로널드 핸슨 교수가 양자 얽힘 실험을 위한 벨 테스트기를 'A지역'에 설치하고 있다. 출처 델프트공대
양자이론 중의 가장 기이한 특성으로 알려진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 실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나왔다. 21일 뉴욕타임스는
이날 네이처지에 멀리 떨어진 두 개체가 즉각적으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양자 얽힘' 현상이 존재한다는 실험 결과가 실렸다고 보도했다.
양자 얽힘이란 과거에 서로 상호작용했던 전자와 같은 작은 입자들이 멀리 떨어진 후에도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현상으로 1964년 아일랜드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 이론으로 발표했다. 가령 한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 스핀과 같은 특성을 측정한 순간, 이들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한 입자의 해당 특성이 ‘즉시’ 바뀌어 입자의 상태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입자가 오직 즉각적인 주위 환경에 의해서만 직접 영향을 받는다는 표준 물리학의 ‘국소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때문에 이 이론은 ‘물리학’적 연구라기 보다는
‘철학적’연구로 여겨졌으며 아인슈타인도 이 이론을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고 폄하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캠퍼스의 공중 사진. 강조된 부분은 실험실의 위치. 제일 왼쪽은 'A지역'으로 두 개의 다이아몬드 중 하나를 설치했으며 나머지 다이아몬드는 사진 오른쪽 캠퍼스의
다른쪽 끝 'B지역'에 설치됐다. 빔 스플리터는 가운데 'C지역'에 설치됐다. 출처 델프트공대
이번 실험은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카블리 나노과학연구소의 물리학자 로날드 핸슨의 연구팀이 주도하고 스페인과 영국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델프트 대학 캠퍼스
내부 1.3㎞ 떨어진 거리에 두 개의 다이아몬드를 배치하고 각각의 다이아몬드 전자에 자기적 속성인 ‘스핀’을 갖도록 했다. 이후 마이크로파 펄스와 레이저 에너지가 ‘스핀’을
측정한 결과 1.3㎞ 사이의 두 개의 전자가 얽힌 결과가 도출됐다.

실험을 이끈 핸슨 박사는 “이 실험은 1970년 후반 이후 계속 수행됐으나 항상 추가적인 가정의 필요성이라는 장애328p-물이 있었다”라며 “이제 우리는 먼 거리에서 양자 얽힘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그 동안 ‘사고 실험’에 머물렀던 양자 역학 실험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 실험은 현 단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보안이 가능한
양자 인터넷’의 상용화를 위한 진일보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 실험 역시 연구자가 실험에서 선택하는 측정 기준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측정의 임의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소영기자

거듭 하이데거를 인용하며 설명하면 (226- 왜 우리는 깊은 권태나 불안과 같은 기분에서 우리가 그동안 집착했던 3세간적인 가치들과
그러한 가치들을 실현해 줄것으로 기대했던 존재자들을 무의미하고 허망한 것으로 보게 되는가
그이유에 대해서 하이데거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않다
하이데거의 기분은 이해와 말과 함께개시성을 구성하는 하나의구성요소로 이해되고
있으며 이경우에 기분은 우리가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김형효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현존재의 업과 연과니켜서 해석하려 하고 있지만
227-하이데거 에게는 전생에 종자라는 것은 현상학적으로 인정할수 없는 개념일 것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그것이 현존재가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와 연관 시켜서 해석하고 있다
즉 하이데거의 기분분석은 현존재가 자신의 본래적인 실존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는가
아닌가 라는 관점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존론적 분석이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기분분석에서는 현존재가 자신의 본래적인 실존가능성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기분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있는 일상적인 세계가 근원적인 세계가 아님을
고지하면서 우리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과 근원적인 세계를 개현할 것을
촉구하는 근본기분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227)
-원효와하이데거비교연구 저자 박찬국 출판사 서강대출판부2010년

쉽게 간단히 설명하면 세상에는 양자적 얽힘이 존재 한다는걸 빈센트반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고 클래식음악이나 가수의 노래를 감동을 받거나 슬픈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슬픔을 느끼고
시리아 난민들이 겪는 끔직한 고통을 뉴스로 보고 마음이 아프고 뭐 이런게 인간 각자 개인차는 있겠지만 양자적 얽힘의 한종류일 것이다
특히 지진이나 엄청난 자연재해가 있기전에 동시에 짐승들이 알고 불안을 느끼며 미리 대피하는것도 양자적 얽힘의 한현상 일지도 모른다
내가 배후도 알수 없는 상태에서 왠지모를 불안을 느끼던 기분도
어쩌면 양자적 얽킴과 관련 있는건 아닐까 삼성가 오너들이 나에대한 모함을 꾸밀때
양자적 얽힘으로 동시에 나에게 전달되어 왜지모를 불안한 기분을
느낀건 아닐까 위의 기사 내용의불과 1.3km 실험만으로 아직 양자적 얼킴이
확실히 증명된것도 그것이 완전히 증명된다고 해도 모든것을 양자적얽힘.만으로 설명해서도안되는 것이지만 내가 배후도 알지못하는 상황에서 왠지모를 불안한 기분을 느꼈던 경험은 무엇인가 ?
더구나 그후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불안한 기분을 느꼈던것을 증명하기라도 한것처럼 배후에서 세계.브랜드기업 7위인 삼성전자를 보유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본처 리움 미술관장인 홍라희와 장남 .삼성전자부회장,이재용 그리고 홍라희의 남동생인 중앙일보회장 홍석현등의 패거리가
교활하고도 치밀하게 음모를 꾸며 나를 희생양으로 누명씌운 정황이 백일하에 들어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 가 대통령 당선 된다고 꿈을 미리 꾼 사람은 한국에 어쩌면 수백 수천 아니 수만명도 넘을수 있다
그중에 당상수는 그저 찍어서 운좋게 맞춘것 일수도 있다
그러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 는걸 미리 알았다고 사기 치는 사기꾼이

미리 박근혜 당선을 고지 했어도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라고 맞혀도 3대1 의 확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운이 좋으면 누구나 쉽게 맞출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2009년 9월10월 11월인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양이 꿈에 나타나서 삼성그룹일가를 지나 어느묘지로 데려가 나보고 쳐다보라고 하는데 묘지 비석에 정선옥이라고 선명이 적혀 있어서
과거 어머니 묘지에 누나와 매형과 함께간적이 있는데 그때난 돌아가신분 에게
절을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몰랐는데 그때 두번반 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줘
꿈에서도 그 생각이 나서 두번반 절한 꿈
꿈이 너무 선명하여 그후 인터넷에 올리자
삼성그룹.회장이 아무도 모르는 생모 이름을 정확히 맞쳣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지
그런데 만약에 이 꿈이 맞다면 이미죽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막내딸 이윤형 양이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생모 이름을 가르쳐 줬다 그렇다면 영혼이 있다는 얘기야
그리고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딸 이윤형 양의 생모는 이미 하늘 나라에 갔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후 나에대한 영능력자 이니 하늘이 내린 사람이니 하는 유언비어 삼성그룹 오너들이 퍼트린건
그 꿈이 맞다는걸 반증 하는건 아닐까.?
나를 하늘이 내린사람은 잔뜩 구름위에 띄워났다가 결국엔 최면걸어 죽었다고 누명,씌워 삼성 이건희.회장을 속이려던 삼성회장 본처 홍라희와 이재용의 치밀한 계획은 2013년 내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송 하면서 날라갔다
적어도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야 삼성에서 손바닥 뒤집듯 뒤집듯 부인하면 그만이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막내딸이 배다른 딸이란걸 알꺼고 생모 이름도 알 테니지만
그러나. 이꿈이 확실히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너구리 같이 교활한 삼성그룹.오너들이 내 꿈이 맞아도 맞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할 것들이 아니기에
아인슈타인도 백일몽에서 상대성 이론의 단초를 발견했고
폴메카트니는 꿈속에서 예스터대이를 작곡하지 않았는가
동서고금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 수학자 발명가 예술가 철학자 들이 꿈속에서 수많은 가르침을 받은걸 우리는 알고있다 그것이 진화의 한 산물인지 아니면 신의예지 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떤 부분에선 동물이 인간보다 예지력이 훨씬 뛴어난걸 확인할수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이 먼저 대피 하는걸 보면 알수 있다
그래서 진화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지


(타이타닉 이영화 에서 주목하게 되는것은 여전히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래시백을 통해 한사람의 기억속 에서 계속 살아 있는 존재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영화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잭돌슨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한후
어느누구 에게도 기억될수 없는 존재이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스케이치북 한권과
그가 말한대로 어디서나 마실수 있는 공기가 전부이자 흔적 이었다
그뿐 아니라 타이타닉호에 탄것도 직접 돈을 주고 탄것도 아니라
우연히 포커 게임에 응해서 이겨 거져 얻은 행운 이기에 그의 이름은 기록조차 없었다
그는 영원히 잊힐 존재 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배위에서 짧은 시간 만나 로즈라는 여인의 가슴 속에서 플래시백을 통해 80여년 넘게
살아 있었다 반면에 그녀는 한때 약혼자 였던 칼에 대해 물었을때
마치 지금까지 전혀 기억에도 없었던 사람을 기억해 내듯이 말한다
글쎄요 그는 1929년 증권 폭락이 그에게 타격을 입혔죠 그해 입에 총을 넣고 자살해 버렸대요
물론 나도 신문에서 읽은 겁니다
이처럼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이를 기억 속에서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사람들과
이와 반대로 죽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기억되고 얘기되는 사람들을 통해 과거 강렬했던 만남의 체험이 얼마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이영화 플래시백을 통해 잘표현 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로즈라는 여인의 인생에서 잭돌슨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늘 느낄수 있고 볼수 있는 사람으로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주제가는 이영화 주제가 던지는 메세지를 적극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첫회칙

330p-하느님은 사랑 이십니다
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사람 을 만나는
것임을 강조 하신다
바로 우리 기억 속에서 우리 체험 속에서
플러시백을 통해 생생히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긴 역사속에서 그분은 아주 짧은
순간 우리와 만나셨다 우리에게 참생명 을 일깨우고 우리를 위해 희생 하시고 떠난 그분과
의 뜨거운 만남은 그분이 플래시 백 을 통해 우리가 우리 가슴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을때
my heart will goon- 비로소 그의미가 살아난다 )
- 평화신문 -2012년 4월29일 서석희 신부 - )

가 1999 년 일본으로 부터 추방당하기 직전 도쿄 근교 가와꾸치 경찰서 유치장에
그런데 지금와 돌이켜 보면 그곳이 가와꾸치 인지 시나가와 근처인지 헷갈려
당시에는 분명 가와구찌인걸로 알았는데 오래전 일이라
그때 20일 구속되 었을때 당시에는 tv가 없었는데 일본 라디오는 틀어줬는데 테레사 덩이라는 가수의 야래향 노래를 감명깊게 들은 기억이난다
테레사 덩이라는 세계적인 가수가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대만 홍콩등 중화권에서 인기가
최고였던 가수인데 1989년 중국 천안문 민주화 운동시위때 때 위험을 무릅쓰고
죽어갈 시위대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준 테레사덩 등려군은 중국 공산당으로 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을 찍히는데
그후 테레사덩은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3개월간 여행을 떠난후 천식으로 불과 42세 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민주열사 테레사 덩을 추모하며 첨밀밀 가사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는 달콤해요
마치 봄바람속에서 꽃이 피는것 같아요
봄바람속에 있어요
거기에서 당신을 봐요
당신의 미소는 그렇게 익숙해요
나는 잠시 아무생각도 하지 못해요
아....... 꿈속에 있어요.
내 꿈속에서 당신을 봐요.
달콤해요 .미소는 너무나 달콤해요
당신이에요 . 꿈속에서 본것은 바로 당신이에요

(-157-
하이데거는 우리의 삶의 근저에서 규정하는 근본기분은 깊은 권태나 불안과 같은 기분이라고 보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 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의식 하지 못한다
이는 그것들이 우리를 삶의 근저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우리가 그것들을 잠들어 있게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안주 하기를 바라지만 깊은 권태와 불안은 우리에게 부과된
근본적인 과제와 짐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깊은 권태와 불안을 깨어 있도록
놓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331p-따라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근본기분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깊은 권태와 불안은 이미 깨어 있으며 열린 눈으로 우리 현존재 안으로 눈길을 던지고 있다
일상적인 현존재는 그것을 잠들게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잠들지 않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깊은 권태 와 불안이 이렇게 이미 깨어 있다면 그것들은 굳이 일깨워-158-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근본기분을 일깨운다는것은 그것을 새롭게 다시 깨어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어 있게 해주는것 즉 잠들지 않게 하는것을 의미 한다고 말하고 있다)

-M.Heidegger-1983.118쪽 이하 -박찬국지음출판사서강대학교출판부| 2010년 원효와 하이데거 비교연구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도둑이 우리의 양심을 다훔쳐 가기전에 자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또는 약육강식이 137억년전 우주빅뱅이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변하지 않는 법칙인데
인류역사상 최초로 강자인 기득권에 저항한 사회적 약자의 편에섰던 그리스도는 강자의 더러운 음모에 당하지 말라고 항상 깨어 있으라고 외친건 아닐까?

(우리가 느끼는 우리의 삶에 대한 위협역시 보이지않는 영역으로 옮겨 갔는데
이제는 물리적 의미의 적군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과거처럼 단순히 지리적인 국경 너머에만 적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테러리스트 들은 마치 병원균 처럼 보이지않게 우리안에 숨어들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모습의 거대 생물체 라고도 할수 있다 이들은 우리의 마음 뒤편에 잠복해서 우리가 과거에 안전지대 라고 생각했던 곳마저 농락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타격을 가하고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코진은 우리는 확실성의 한계에 다 다랐다고 말했다
이제 진리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고 하나의 개연성 이며 꿈과 같은 것이다 혹은 물리학자 존휠러 의 말처럼 상상의 산물 이라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
휠러 교수는 분자 파동 우주의 무와 같은 물리적 실체에 대한 가장 깊숙한 비밀을 탐구한 몇 안되는 현존 학자중 한 사람이다
휠러 뿐아니라 점점더 많은 과학자 들이 물리적 존재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생각속에 있을 뿐이라고 결론짖고 있다 과거에도 순간성에 대한 애착은 우리 문화의 일부영역에서 언제나 하나의 기준으로 존재해 왔다 세계의 신비 지성 정신세계 죽음 광기 등과 같은
개념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우리 모두가 쉴새 없이 매달려야 하는 규준이 되었다
가상의 현실을 수용하는 동기나 양상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적 혹은 실용적 동기에서 또다른 사람은 재미 또는 영적인 목적을 위해서 아니면 그저 물리적 세계 에서 스크린의 세계로
이동 되었기 때문에 가상 세계에 참여 하게 된다 하지만 그동기가 무엇이든 신선같은 고상한 인물로 부터 흙투성이 손발의 범인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마치 신비한 성경구절과도 같은 가상의 현실에 사로 잡히고 있다
나아가서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며
어떤 유인에도 동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높고 견고한 문화의 요새들 까지도 가상의 현실에 점령되고 있는것이다 이와 같이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로의 이동이 대부분 무의식 중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새현실 로의 전환은 스위치 현상에 의해 마음속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하게 된다 스위치란 일종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대부분 의 중요한
삶의 현실이 물리적 세계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만 볼수 있는 가상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목격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멜린다데이비스 욕망의 진화-
멜린다 데이비스 저 21세기북스 2003년

?

332p-밤하늘에 보이는 별빛들은 이미지난 과거의 별빛이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들중에 이미 수명을 다하고 초신성으로 폭발한 별빛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지난 과거인것이다ㅣ

-소중하다고 생각이 들때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아무리 간절히 보고싶고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도 두번다시 단 일분도 다시 볼수 없는데 그 모든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소중했던 순간을 지난 과거로 밖에 플래시백 으로 추억할수 밖에 없는 당시에 깨닫지 못한 어리석움 과 서러움에 상처의 눈물
흘리며 느낀것 잊지않고 기억하며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이며 도약의 발판이 될것이라 믿으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후회하며 살기 보다
살기위해 후회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운명이 아닐까?
-끝 -

-에필로그겸
글을쓰게된 이유

한국의 sbs 월화 드라마 닥터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살았는데 가난한 집이라고 불성실한 의료 행위로 억울하게 할머니를 수술중 잃은 손녀는 조작된 진실을 밝히길 원해 병원측과 합의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과 떨어져살며 전혀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않던 아버지는 계모와 살며

마음대로 합의하여 할머니가 죽은 댓가로 돈을 마은대로 받아 흥청망청 쓰는 파렴치한 짓을 했다

손녀는 와신상담 사건이 조작된걸 10 여년이 넘는 긴 세월을 오직 할머니의 죽음의 조작된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내용


(참고자료-닥터스' 박신혜, 부디 상처받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길 출처 엔터미디어 | 작성 정덕현 | 입력 2016.08.16. 17:05


닥터스’의 질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유혜정(박신혜)의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의 죽음은 분명 진명훈(엄효섭)의 과실이 있었다. 진명훈도 그걸 인정했고 유혜정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유혜정은 더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과라는 것이 단 한 톨의 진심도 들어가 있지 않은 말뿐인 사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드러난 진실로는 법적으로 진명훈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미 시효가 모두 지나버린 사건들이고, 당시 유혜정의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런 과실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합당한 처벌이나 진심어린 사과가 이어지지 않는 현실. 유혜정은 그 앞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멜로라는 색깔을 전면에 갖고 있는 드라마지만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가 현실에 던지고 있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네 법 정의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에 있어서 피해자인 환자 가족들이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법을 오히려 악용해 약자인 환자 가족들이 끝까지 싸울 수 없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진실을 규명해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집안이 몰락하고 가족들의 미래가 파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닥터스>의 유혜정에게 그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홍지홍(김래원)이 “그만하면 안돼” 냐고 묻는 건 그래서다. 그 현실을 아니까. 유혜정은 과거 할머니가 수술 중 사망했을 때 합의가 아니라 싸웠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지홍은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지금 현재의 그녀는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 싸움이 그녀의 미래까지 파괴했을 거라고. 아픈 이야기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닥터스>에는 왜 우리네 현실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더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은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들어있다. 그것은 법 정의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은 그걸 실현하려 해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오히려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되는 것일까.

유혜정이 하려는 일은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규명이고 그녀가 바라는 건 처단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다. 그러니 마치 유혜정이 하려는 것을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걸 홍지홍도 알고 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는 그녀가 진실규명을 위해 나섰다 다시 상처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잘못된 일을 들춰 바로잡으려 하는 일을 ‘복수’라는 잘못된 욕망으로 치부하며, ‘참고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또 ‘내가 잘 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식의 체념적 사고는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에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들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이처럼 진실규명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잘못은 고쳐지기 보다는 덮여질 테니. 가진 자들의 돈과 권력으로.

<닥터스>의 유혜정이 하려는 진실규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못내 궁금해지는 건 이처럼 이 사안이 우리네 현실의 중차대한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연 바라는 대로의 진실규명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도. 과연?

정덕현 칼럼니스트

[사진=SBS]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 양을 자식들 중에 특히 총애하고 상속을 많이 해주려 하자 회장 본처인 홍라희 와 장남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장녀 신라호텔 사장 이부진 차녀 제일모직 사장 이서현 홍라희의 남동생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패거리들과 이것들 개밥 쳐먹는 패거리들이 작당하여 이윤형을 암살한 정황 증거가 들어 났다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이 갑자기 말도 안되는 유엔 사무총장을 꿈꾼다고 구라 치며 2005년 2월22일 주미대사 부임 했다가 2005년 7월25일 주미대사 공식 사임 주미 대사를 5개월 만에 그만 둔 건 한.미 관계의 중용성을 생각할때 거이 유례가 없는

최단 기간 주미 대사 였다 이례적인 일로 1997년 신라호텔에서 홍석현이 이학수와 삼성 떡값을 여.야를 막론 하고 한국의 권력 실세에게 뿌리는 대화 내용을 고의로 녹음하여 8년후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할수 없는 시점을 택해 2005년7월 한국을 장악한 삼성 공화국에서 삼성 X파일 사건을 계획적으로 터트려 특히 자존심 강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정신없게 만들어 1999년 수술한 폐암이 재발하여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 입원 시키고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등이 공모하여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이건희 회장이 뒤늣게 사건의 전모를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상속세와 삼성전자 경영권 도둑질 작업을 하기위해 암살된 이건희 회장을 저 체온으로 냉동시켜 일원동 삼성병원 20층 특실에 물건 처럼 보관하고 외부인은 금지구역 만들어 접근금지 시키고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방송과 언론에 바다쓰기 보도하게 만들고 쇼를 하며 3년 넘게 속이는 것이다 이윤형은 2005년 초에 미국 뉴욕 대학원 미술 경영학과에 홍라희가 반 강제적으로 유학 보내는게 결정된게 2004년 하반기 정도 됐을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오면 홍라희가 가장 아끼는 리움 미술관을 물려 준다는 명분으로 은근히 소문을 내서 그후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이윤형을 암살한 것을 감추기 위해 특히 그들이 가장 겁을내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해


위해 3가지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꾸민 거라고 판단 되는데


1번으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위장 하려다 불발 되면


2번째- (이윤형이 신수빈이 좋아하다 자살했다고 삼성에서 공식 발표하여 언론에 보도 되도 이건희가 불신 하면)


3번째(이윤형이 신분상 최상류층과 어울려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어렵자 밑바닥 인생 미끼 놓아 낚시 하듯 낚아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려 이건희 회장 속이기 쉽게 하려 이윤형의 생물학적 외삼촌 까지 거금의 당근 작전으로 끌여들어 2002년 이윤형이 암살되기 3년전에 미국 노스케롤라이나에 아스카 일식당을 맡기고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으니 이윤형 보고 꼭한번 놀러오라고 손님잡고 나는 삼성 비밀조직이 아스카 일식당에 일하러 오게 세팅하여 대략 10 여일 정도 일 하다가 일끝나고 저녁에 숙소에서 주방장하고 말싸움하고 갑자기 그만둔적이 있는데 그때 이윤형과 말한마디 제대로 한적이 없는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쉽다고 판단한 이재용이 누명씌워 그때 부터 이윤형이 나를 못잊는다고 미국 에서 부터 삼성알바 들이 은밀히 조직적으로 거짓소문을 퍼트려 이윤형을 정신적으로 괴롭히다가

암살 하려고 적당한 시기를 치밀하게 고른것 같다

그때 이윤형이가 저녁에 잠시나와 웨이츄레스로 일을 했는데 당시는 그 아가씨가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 딸 일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때 이윤형 과는 거이 대화 조차 나눈적이 없는 나를 교활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교활한 음모로 이러한 만남도 그들의 미리 계획한 세팅에 위한 만남으로 내가 미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밑바닥 인생의 떠돌이 인 것을 알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면 이건희 회장이 나를 정확히 몰라 판단하기 힘들고 찻기 힘들고 말 마추기 좋은 미국에서 떠돌이인 내가 무슨 하늘이 내린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하여 날 전혀 모른던 이건희 회장이 판단할수 없게 만들어 못찻게 해방하여 이건희 회장이 날 찻아 확인하기 전에 날 암살하거나 누명씌워 구속 시키려던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를 구사일생의 천운으로 물리치고 결국 이건희 회장이 날찻아 확인하여 시간이 지나자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거짓말을 의심하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의 더러운 범죄를 세계 양심에 고발한다 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면 이건희 회장이 날 찻아 확인 하기 힘들고 한국에서 보단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좋다고 판단하고 희생양으로 누명씌우기 딱이다 생각하고 홍라희 이재용이 나를 히든 카드로 쓰기위해 홍석현이 주미 대사를 하는동안 나의 위치를 파악하자 이미 2004년1월 경에 한국에 입국하여 순천 교도소에 수감중인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날 희생양으로 누명 씌우기에 더욱 잘됐다고 판단하고 홍석현이 미리 계획한 데로 2005년7월 삼성X파일 사건이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자 홍석현이 삼성X파일을 계획적으로 터트리고는 마치 삼성X파일 사건의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

핑계를 되고 2005년 7월 25일

주미 대사 에서 자진 사임 하며 자신도 피해자인 것 처럼 쇼를 한 것은 홍석현이 유일하게 두려워한 인물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속이기 위한 상상을 초월한 치밀하고 교활한 작업으로 음모를 꾸민 것이다


홍석현 패거리들이 삼성x파일 사건을 계획적으로 터트려 이재용이 미리 세팅한 시나리오로 언론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특히 자존심 강한 이건희 회장을 정신없게 만들고 1999년 수술한 폐암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재발하여

미국 텍사스 MD엔더슨 암센터에 입원하여 패암치료를 받던 중에 멀리 떨어져 있던 뉴욕에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참고자료 프리미엄 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1999년 말 이 회장은 건강 검진에서 쇄골 뼈 아래 부위에 커진 림프절이 발견됐다. 이런 경우 결핵성 림프염이거나 몸속 어디서인가 암세포가 전이돼 온 상황을 의심해야 한다. 이에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CT를 찍었다. 폐 CT에서 커진 림프절이 하나 더 관찰됐다. 오른쪽 폐와 왼쪽 폐 사이의 공간을 종격동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서도 커진 림프절이 보인 것이다. 이곳은 흔히 폐암이 있을 경우 암세포가 잘 전이되는 곳이다.

하지만 폐에 폐암 자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의료진은 림프절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전이를 일으킬만한 암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림프절만 커져 있기에 폐암이 의심되어도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때 조직검사를 해서 나온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고 폐암이라고 진단한 의사가 당시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조교수를 하던 안철수 대표의 부인 김미경(현 서울대 의대) 교수라고 한다. 삼성 그룹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 회장 암 발병 여부를 김 교수가 가장 먼저 봤고, 이를 병리과 교수들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결국 종합 토의 끝에 이 회장의 커진 림프절은 폐암이라고 최종 진단됐다. 안철수 대표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만성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다. 2002년 안철수 연구소 소장 당시 간염 증세가 심해서 투병 생활을 몇 개월 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을 개발한 안 대표였지만, 생물학적 바이러스와도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안 대표의 B형 간염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의사가 서울대 의대 선배이면서 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인 ○모씨이다.

안 대표는 당시 B형간염과의 전투에서 몸을 회복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컴퓨터도 무리하게 쓰면 쉽게 망가지고 성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몸도 휴식 없이 혹사하면 제 기능을 잃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간염을 치유한 비결을 묻자, 안 대표는 “주치의가 하라는 대로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김철중사회정책부 의학 전문기자의사 출신 기자다. 영상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와 언론학 석사를..)


삼성x파일 수사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1999년 수술받은 폐암이 재발하여 마침 이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의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를 받는 시기로 마침 히든카드로 숨겨둔 희생양으로 누명씌울 내가 재발로 그들의 텃밭인 전남 순천교도소에 수감중이라 천재-일우(千載一遇) 의 기회로 판단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미국 뉴욕시간 2005년 11월19일 이전에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 하고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 대로 이윤형 시체를 처리하고 1번 교통사고로 쉽게 무마 시키려다 안되자 2번 신수빈과 결혼 문제로 자살로 둔갑 시키려다가 이건희가 불신하자 3번 이건희가 전혀 본적도 생각도 못하던 날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홍라희 이재용 개밥 쳐먹는 삼성 알바들이 이건희에게 말하여 개도 안믿을 말로 희생양으로 누명씌워 마침 교도소에서 격리시켜 이건희가 못 찻게 하기위해 호모로 누명씌우고 누군가 자해하고 살인미수로 죄를 뒤집어 씌워 누명씌워 사회와 격리시키며 이건희가 영원히 못찻게 하려 했는데 하느님이 도왔는지 기적적으로 출소하여 사회에 나와도 나를 죽이거나 누명 씌워 구속 시키려 했는데 역시 구사일생으로 운좋게 그들의 모함을 모두 물리치고 결국 이건희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하였다


2005년 11월 19일 미국뉴욕시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삼성x파일 수사를 피해 미국에서 도피중 텍사스 MD 엔더슨 암센터에서 폐암 치료 받을시기 골라 가장 총애하며 상속을 많이 해주려한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 들이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데로 처음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위장 하려다 뜻하지 않게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용일 기자가 파해쳐 교통사고로 죽인게 아닌것을 확인하고 한국에 기사를 내려 하자 삼성의 압력으로 못내자 대신 뉴욕타임즈에 기사를 줘 보도후 삼성에서 다시 자살로 둔갑 시키고 이윤형이 신수빈 과 결혼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 했다는 거짓말을 삼성그룹이 공식 발표하여 기사가 나가도 이건희가 불신 하자 결국 홍라희 이재용이 직접 이건희에게 말한게 아니고 히든 카드로 남겨든 마지막 작전으로 사전에 꾸민 시나리오 데로 이재용의 사주를 받은 삼성 알바들이 이윤형이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아스카란 일식집에서 만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떠돌이를 얼굴 한번 보고

3년 이상 못잊다 자살한 것 같다고 조작하여 말을 바꾸며 이건희 회장을 속이다가 뒤늣게 이건희 회장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이건희가 가장 아끼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죽인걸 알자 이건희 까지 살해하고 상속세 문제와 삼성전자 경영권을 훔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 들의 음모를 세계 양심에 밝힌다


요한 복음 3장 8절 생명은 인간의 빛이요 목숨이다
생명의 탄생은 아무도 모른다
- 그리스도 의 이런 솔직 함에 나는
신약 성경 의 이문이 3만 건 이 넘어도
그리스도를 믿는것이다

그리스도가
구약을 유태 기득권인 바리세인들이 유리하게 잘못 해석하고 왜곡하여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온것 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자 패배자 에게도 할말은 있다 이게 그리스도의 뜻이다- 라고

닥터 지바고 의 저자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성경을 인용해 말한다
세레요한이 인간중에 가장 큰자 엘리아의 환생인 세레요한에게 세례를 받은건
인간의 죄를 그리스도가 짊어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 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여 준다
이게 기독교 교리
근데 십자가 짊어 지고 가면서 아무 얘기도 안했어
그리스도가 침묵 한것은 스스로 알아서 니들 잘못을 깨달아라 이거야


(171- 하이데거는 이렇게 진정한 세계- 내 -존재 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결의성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결의성 을 자신의 양심에 의해 현존재 속에서 증언된 자신의 본래적인 실존 가능성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침묵속에서 불안 이라는 근본 기분을 인수 하는 것으로 규정 하고 있다 -M.Heidgger-
1972-126-쪽이하 참조 -
-박찬국지음출판사서강대학교출판부| 2010년 원효와 하이데거 비교연구 )

21세기의 과학문명이 갑자기 핵분열하듯 지난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오늘날과 같이 핵분열하듯 발전할수 있었던건 어느 한두사람의 공이 아니라 수십만년 동안 인류의 조상들이 피눈물나는 실패의 반복으로 얻은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얻은 지혜와 지식들의 데이타 베이스가 모여 공유화되어 어느 임계상황에 다다르자
핵 분열 하듯 발전한것임
선구자 들의 꿈과 이상의 산물이 아닌가


( -닥터지바고의 한대목 당신이 슬픔과 회한 같은걸 가지지 않았 더라면 나는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지 않앗을거요
나는 한번도 발을 헛디디거나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사람의 미덕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가치도 없는것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요

저자
제목 닥터 지바고 보리스 빠스쩨르나끄 지음 | 박형규 옮김 출판 열린책들 2006년)


355p-인간의 참된 생명과 진리는 스스로 알아서 깨달아 야지
누가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이거야 극히 소수의 지혜로운 사람은 때론 알아 들을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인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 해봐야 스스로 경험해
고통을 당해보지 않고는 깨달을수 없는 마치 소귀에 경 읽기지
과거 어느책 에서 읽은건데
비구니 여스님이 젊은시절 나이먹은 여스님 들이 사는 절간에서 부처님 에게 절을 하는데
제대로 절을 하지 못하고 삐틀 뻬틀 지그제그로 절을 못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당시 젊은시절 에는 그걸 왜 그러는지 부처님 에게 불경하게 정성껏 절을 일부러 안하는것 같아
이상하게 절하는 모습이 기분이 은근히 나빳는데 그때는 그러한 모습이 도저히 가슴에 와 닳도록 이해가 안됐는데 자신이 나이가 들어 무릅 관절이 안좋아 그전에 나이들은 여스님과 똑같이
제대로 절을 못하자 그때서야 깨달 았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한 글로 인권탄압 당한 정황을 장황하게 설명해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하지도 못할뿐 더러 귀찮게 이해 하려고 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언제 어느때 누가 나와 같은 인권탄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게 현실로 닥치면 때는 이미 늣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전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인권 탄압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미리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성서에도 말하지 않던가 부름을 받은자 많이 선택될수 있다고
수천 만 /분의 일의 확률인 로또복권 1등으로 당첨 되는것을 바라는 마음은
불확실한 미래에 요행을 바란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만약에 로또 복권을 돈을주고 사지 않는다면 그런 확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첮조상이 지구상에 홀로 내 던져 졌을때
얼마나 섬뜩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을까?
과연 살아 남아서 지금의 인류로 까지 진화하리라고 감히 생각도 못했겠지
그러나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오늘날 인류로 까지 진화 했겠지
거듭 말하지만 오늘날 인류의 과학문명 발달과 안락한 삶은
어느 한개인에 의해 하루아침에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조상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노력의 댓가가 쌓여 지금의 안락한 삶을 만드는데
우주빅뱅 이후 138억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거은 의지의 결정체 인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를때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절망 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비로소 알게 된것은 아닐까?
덴마크 속담에 눈물젓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누가 뭐라해도 사람은 시련을 치르고 난 후에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시련 으로 고통을 단지 이벤트 행사처럼 즐기는 체험 켐프 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겪어봐야 알지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해봐야 상대방의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 처럼 십자가를 짊어 지고 고난 을 당해봐야 그 심정을 이해 하지
그걸 가르쳐 준다고 아나
세월호에서 생수장된 단원고 학생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누가 알겠는가 그 고통은 부모 입장 이라도 짐작만 갈뿐이지 어떻게 알겠어
일제 시대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
또는 6.25 전란때 희생자 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
광주사태 제주4.3 사건 4.19 혁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 등등 지금도 음지에서 억울하게 고통 받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 억울한 사람도 많고
중세 1000년간 교황 에게 신성 모독 죄 마녀로 누명써 화형 당한 사람들
자그마치 6000만명 이란다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며 주문을 외어 사악한 질병을 옮긴다는 죄명의 마녀 라는 증거는 지독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과 조직적인 음모로 주변 사람들의 조작된 증언 이란다
지금은 유치원생도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며 사악한 주문을 외어 질병을 옮긴다는 말은 믿지않을 그런 비슷한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거짓말로 누명을씌워
아직도 인도에선 일년에 200명 지난15년간 무려 1500명의 인도의 사회적 약자의 여성이란 이유로 마녀로 몰아
살해 당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기록에 누락된경우도 많을 것이 충분이 예상된 수치에 빠진 숫자까지 합치면
그숫자는 엄청 많을 것이다
나는 누가 기독교를 믿던 불교를 믿던 무슬림을 믿던 본인의 자유의지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슬림은 오직 자신의 종교만을 우선시 하며 다른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단으로 간주해 죽여도 좋다고 극단주의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이
어리석은 신도들에게 가르치며 이단에게 테러를 하고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극악무도한 극단주의 무슬림 종교 지도자 들이야 말로 세계에서 해체 되어야할 사탄의 무리들이 아닌가
무슬림 여성들은 더운 여름에도 눈만 내놓고 히잡을 쓰며
온몸을 가리고 짐승처럼 무슬림 남성에 사육되다 시피 인권을 착취 당하고 수많은 무슬림여성이
명예살인 이라는 중세 마녀사냥 처럼 말도 안되는 죄명으로 수없이 살해 당하거나 불구가 되고있다
일부 무슬림 여성들은 자국 대표팀 스포츠 경기도 남성들에 의해 관람이
금지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숙명처럼 어릴때 부터 당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이들 나라 에만 있는것은 아니지만 -
이슬람은 남자를 위한 종교입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여자들을 성노예로 삼을수있고 여자들은 보따리 뒤집어스고 눈만 내놓고 태어 나면서 부터
동물원에 갖힌 짐승처럼인권을 포기하고 산다
이런 종교는 시정 되어야 하고 인류는 잘못 된 걸 잘못 됐다고 시정 할수 있게 지적 할 줄 알아야 한다
인류는 이런 일 들을 절대 남에 일이라고 침 묵 해서는 안된다
그런 억울한 일들이 남에 일이 아니고 본인이나 가족이 당할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절대 남에
일 이라고 침묵 해서는 안되는 것 이다 인간이 왜 다른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식인 하는걸 극도로 끔직히 경악 스러워 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당할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공포감 에서 나오는 기분일 것이다
사실 나는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 이란 책 내용 비슷하게 윤회사상을 믿지 않는다

항간에 삼성알바들이 이윤형이 전생의 죽은 나의 여동생 이라고 씨부리며 거짓 여론몰이를 하는 것들도 있는가 본데 이윤형은 1979년 4월26일 태어났다고 인터넷 검색으로 알았고 나의 여동생은 1979년 6월27일 쯤에 죽었으니 이윤형이 태어나고 2달후 나의 여동생이 죽었으니

이윤형이 전생의 나의 여동생일 확률은 없다

사실 나는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 이란 책 내용 비슷하게 윤회사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전생이란게 그게 없다고 어느누가 100%로 장담 할 수 있는가
니들이 만약에 다음 생에 개 나 돼지 소 말 로 다시 태어 난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 없는 일 아니냐 그러니 인간으로 있을때
육식을 금하고 동물을 학대 하거나 억압 해서는 안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니들이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나도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도 제대로 교육을 못 받고 아기때부터 동물처럼 사육 당한다면
유명한 정글북 이란 책의 늑대소년 처럼
현실 에서도 비슷해 질수도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에서 동물처럼 사는 원주민들의 삶을 비교해 봐라
중국에서 친자식 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들을 돼지 우리 에서 무려 7년간 돼지 오물을
돼지와 같이 먹이며 거이매일 구타하며 자식을 키우다가
중국의 의식 있는 시민단체가 발견하고 극적으로 구출 했는데 7살이 넘은 아이가 생각과 말을 제대로 못하는
돼지와 같은 수준으로 시민단체에 발견되어 극적으로 구출 됐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본적이 있다
인간도 돼지 우리에서 돼지처럼 아기때 부터 사육되면 돼지처럼 살수도 있는것이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3세 이전의 경험과 교육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일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들을 동물처럼 사육하는 사악한 무리들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해결될때 까지 싸우고 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것이 곧 본인들과 후손인 미래 세대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더 나아 가서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배려도 필요한 것이다 자고로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인간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못봤다 사실 이건 꿈같은 얘기 인데 내가 만약 돈을 20조 이상 벌면
미국 사우스 케롤라이나에 대서양을 바라보는 곧에 대지 200만평을
구입하여 노아의 방주처럼 배로 된 거대한 호텔과
동물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며 연구할수 있는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연구하며 생활.할수.있는 연구 시설을 짓고 만약에 대 홍수가 나서 물이차면 노아의 방주처럼 배로된 호텔이 배처럼 뜰수 있게 설계하고
시설을 잘 만들어 개. 돼지. 말 .소. 닭. 침팬치 .돌고래를 분류하여 최고급
숙소를 만들어 수용하고 전문가 들과 과학자 들을 시켜 체계적 으로 연구하고 교육시켜 똥오줌을 가리고 인간처럼 살수 있도록 어릴적 부터 교육시켜 얼마나 인간처럼 공부하며 살수있나 연구하여 그 모습을 관광객들이 호텔에서 쉽게 볼수 있도록 설계하여 정신과 육체적 건강에 좋은 휠링과 웰빙을 동시에 할수 있는 세계적인 휴향 관광시설을 만들어 연구해 보고 십다 물론 그 시설은 처음엔 각 동물이 어릴적 부터 체계적으로 전문가들이 교육을 오랜시간 시킨후에 어느정도 적응이 된 상태에서 물에서 배를 타거나 물놀이 기구들과 각종 놀이기구를 만들어 동물들이 얼마나 잘 노나도 연구하고 어느정도 교육된 동물들이 함께 모여 관광객과 함께 물놀이등 여러가지 놀수있는 놀이기구 프로젝트도 연구하여
만들어 얼마나 잘섞여 공감하며 놀수 있는지 또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정신과 육체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연구 대상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배타고 물놀이 하거나 그림그리기 등 여러가지 음악이나 놀이가
인간 정서발달과 우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모짜르트의 고음 클래식 음악이
우뇌를 많이 자극 한다고 한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간들 중에는 우뇌를 많이 사용하는 왼손 잡이들이 많다고 한다
각 동물 들은 어릴적 부터 TV시청을 얼마나 잘할수 있는지도 전문가 에게 교육시켜 연구 대상 이다
뭐 그렇게 되면 앞으로 닭은 좀 힘들수도 있겠지만
유명한 배우와 탤런트가 아이돌 스타보다도 개나. 돼지 .침팬치 또는 돌고래가 더 인기가
있어 출연료를 더 받을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들을 어릴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유사시 홍수가 나면 신호를 보내면 질서 있게 배로된 호텔에 질서있게 탑승할수 있도록 한달에 한번씩 훈련을 할것이며
이 모습은 이 모습은 관광객들이 직접보고 또 전 세계에 중계될 것이다

배로된 호텔에서 육식은 금지다 다만 신선한 젓소의 우유와 신선한 야채와 과일 자유로운 상태에서 방목된 닭의 신선한 계란은
판매하고 식당에서 요리하여 매뉴로 제공된다
다만 동물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면 수용 시설이 모자라 산하 제한은 실시한다
물론 동물들이 살수 있는 곧은 최고급 별다섯개 호텔보다 더 고급스럽게 잘 설계하여 만들어 전문가 들과 과학자들의 연구로 설계된 시설을 만들려면 최하 20조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관광객들은 이런 진풍경을 직접 체험하며 구경 하며 정신과 육체가 정화되며 건강해 질것이다
그렇지 못할경우 tv로 시청할수 있다
물론 각각.동물들의 숙소는 별다섯개 인간의 호텔보다 더 고급스럽게
시설을 잘지을 것이며 지금의 인간의 아이들보다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시킬 것이다
적어도 침팬치나. 똑똑한.개 .돌고래 .정도는 미적분과 고차원 방정식을 풀수있는
그런날이 올 것이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동물들이 체계적 으로 인간 처럼 교육을 받는다면 과연 인간의 어느정도 까지
따라올수 있을까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그들은 아직 그런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이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어
잠재력을 발휘 못했을 뿐이다
그런 기회만 주어 진다면 얼마든지 잠재력을 발휘 하리라 확신한다
인간의 어린이와 동물들이 서로 존중하며 물놀이 시설에서 얼마나 밝은 표정으로
재미있게 놀수 있을까 기대된다
동물 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인간이 동물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육하고 잡아먹을 권리는 없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는
마틴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I Have a Dream 1963년 워싱턴 D.C의 유명한 연설처럼 꿈같은 나의 생각이다


(참고자료-마틴 루터 킹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워싱턴 디.씨 1963년 8월 28일)
우리 나라 역사의 위대한 민주주의로 길이 남게될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100년 전에, 우리가 오늘 그의 상징적 그림자 속에 서 있는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 중대한 선언은, 삶을 억압하는 불의의 화염에 그슬려진 수백만 명의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그 선언은 길고 긴 노예상태의 밤을 종식시킬 환희의 새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백년 후(1963년 이 연설이 행해질 때까지), 흑인들은 아직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백년 후, 흑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분리의 수갑과 차별의 쇠사슬로 인해 심하게 불구의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백년 후, 흑인들은, 물질적 풍요라는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외로운 빈곤이라는 섬에 살고 있습니다 One hundred
백년 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사회의 구석에서 괴로운 생활을 하며, 자신의 땅에서 유랑자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치욕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오늘 여기에 모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우리나라의 수도에 왔습니다. 우리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과 독립선언서에 장엄한 단어들을 기록하였을 때, 그들은 모든
미국인이 상속받게 되어 있던 약속어음에 서명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어음은 백인들 뿐 아니라 흑인들까지도 삶과 자유와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제 미국이 그의 유색인종에 관한 한, 이 약속어음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 성스러운 의무를 존중하는 대신에 미국은 흑인들에게 부도수표를 주었습니다; ‘재원부족’
이라는 딱지가 붙어 돌아온 수표를. 그러나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부도난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거대한 기회의 금고에 자금이 부족하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표를 바꾸러 왔습니다. 우리가 요구만 하면 주어야만 하는, 자유라는 풍요와 정의의 안전보장이라는 수표를 말입니다.

우리는 또한 미국인들에게 현재의 격렬한 긴박성을 알려주려고 이 거룩한 성스러운 곳(링컨기념관)에 왔습니다. 지금은 감정자제라는 사치를 부리거나, 점진주의라는 안정제를 먹을 때가 아닙니
지금은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시킬 때입니다. 지금은 어둡고 황량한 인종차별의 계곡으로부터 일어나, 인종적 정의가 실현되는 환한 대로로 나아갈 때입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줄 때입니다. 지금은 인종적 불의라는 모래수렁에서 형제애의 단단한 바위로 이 나라를 끌어 올릴 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을 약속해야합니다. 우리는 돌아설 수 없습니다. 민권운동 옹호자들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 당신들은 만족할 것입니까?”


흑인들이 경찰의 폭력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의 희생자인 한, 우리는 절대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흑인들의 기본 이동거리가, 작은 빈민가에서 큰 빈민가로 옮겨가는 정도인 한 우리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미시시피의 흑인이 투표를 할 수조차 없고, 뉴욕의 흑인이 흑인을 위해서 투표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아니,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고 공정함이 거대한 물줄기로 흐를 때까지는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절망의 골짜기에서 뒹굴게 하지 맙시다.


현재의 어려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박은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나 다음과 같은 신조의 참뜻을 실현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명한 진리로 여긴다”라는 신조 말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 앞에 함께 앉을 수 있으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미시시피 주가, 불의와 압제의 열기로 뜨거운 그 사막 같은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화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네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의 내용에 의해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알라바마주가, 연방정부간섭 배제주의와 주내 연방법 효력 거부라는 단어들로 주정부의 입술이 지금 흠뻑 젖어 있는 이 주가,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형제자매로서,
어린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곳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골짜기가 높아지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고, 울퉁불퉁한 곳이 평지가 되며, 굽은 곳이 곧아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 모든 인간이 함께 그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내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절망의 산을 깎아 희망의 바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소란스런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옹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 나는 그대(조국)를 노래부르네.

즐거운 자유의 땅,

그대(조국)를 난 노래하네.

우리 조상들이 돌아가신 땅,

순례자(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긍지가 서린 땅,
모든 산골짝에서
자유가 울려퍼지게 하라.
그리고 만약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이것이(이 노래의 내용이) 사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뉴햄프셔의 장엄한 산꼭대기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뉴욕의 거대한 산들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펜실베니아의 높은 앨리게니 산맥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캘리포니아의 굴곡진 산봉우리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지아의 스톤 마운틴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테네시의 룩아웃 마운틴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미시시피의 모든 높고 낮은 언덕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모든 산기슭에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십시오.
이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자유를 울려 퍼지게 할 때, 크고 작은 마을마다, 모든 주와 모든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그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유태인이든 이방인이든, 개신교도이든 카톨릭교도이든, 함께 손을 잡고 옛날 흑인영가의 노랫말을 따라 이렇게 노래부를 수 있는 바로 그 날을 말입니다.
마침내 자유를, 마침내 자유를! 전능하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마침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던 바울시대 당시 기독교도 들은 거이가 천대받던 계급이 낮거나 가난한 사람들과
지금도 무슬림 여성들은 거이 사람대접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많은데 바울시대 사람들은 일부 귀족 여성을 제외 하곤 여성을 많이 천대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기독교도 들에게
신분이 낮은 가난한 사람과 여성들이 많았고 조선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천파 됐을 당시 조선의 여자들도 길거리에서 지금의 무슬림 여성처럼 얼굴도 제대로 내놓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핍박을 받던 시절 이라 신분차별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고 회계하면 천국에 갈수 있다는 평등사상으로 인해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여성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인간처럼 동등하게 사람대접을 못받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리스도가 나타나
실패자 패배자 에게도 할말은 있다며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고 진심으로 뉘우치면
사죄받고 천국에 갈수 있다는 평등 사상을 내세우자 그들에겐 그리스도가 구세주 메시아 였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당시 기독교 인들은 사회에서 천대받던 거이가 가난하고 신분이 낫거나 또는

여성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았던 시절에
지금 미국시민권자 보다 더 많은 혜택이 있었던
로마 시민권자 이자 유태의 바리새인 으로 앞길이 보장됐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마구 잡아다가 죽이다가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지나가다 신비 체험을 하며 갑자기 밝은 빛과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장님이 되어 고통 받다가 회계하여 참회의 기도를 하여
다시 눈을 뜨자 의식이 변화하여 갑자기 그리스도 교도가 되어
로마와 중동 이스라엘을 돌아 다니며 그리스도를 전도하다
핍박받고 순교했다
참고로 -마틴루터킹 목사는 1968년4월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흑인청소부 파업을 지원하다
세 암살 당한다
사도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길에서 어떤 신비체험을 하며 변화 였길래
초창기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다가 갑자기 기독교인이 되어
탄탄대로의 인생을 나두고 고난의 길을 선택했나
그때 바울이 어떻게 변했는지 고린도 전서 13장13절에 잘나와 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전해 지는데 바울의 노력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와 같이 제인구달 박사가
미국.시카코 학술회의 에서 수많은 침팬치 들이
실험 연구용 으로 고통 받다가 죽어 가는걸 확인하고
제인구달 박사는 아프리카 정글에서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침팬치를 오랜시간
관찰하여 침팬치가 인간이 느끼는 고통 분노 희망 사랑 등 거이 모든 부분이
인간과 비슷하게 공감할줄 아는 동물인데
아무 죄도 없는 침팬치들이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실험용 으로 너무도 큰 고통을 받으며 자유를 억압 당하고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학술 보고서를 처음으로 확인하고 그동안 미쳐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라


361p-충격을 받고 평생을
침팬치가 받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며 동물보호 운동에 나섰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거이 모든 나라에서 인간을 지금의 개.소.돼지. 닭잡듯이 .노예라고 마구 잡이로 죽이고 학대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노예나 신분이 낮거나 돈이 없는 사람은 자신들과 다른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잔악무도한 짓을 하고도
인간이 동물을 잡아먹고 죄책감을 않느끼 듯시 마구잡이로 죽이고 학대한 인간들과 지금 인간들이 동물을 마구 잡아먹는 것과
뭐가 틀린지 묻고 십다 구약 성경되로 유대 바리새인들의 동물 제사를 그리스도가 혐오 했던 이유도 위와 같을 것일 것이다 과거 미국 유럽,일본 한국이 그랬던것처럼 지금 제3세계가
뒤늣게 경재개발을 하며 마구 잡이로 제대로된 규제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하여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켜
지구 온나화등 심각한 위기가 오고있다 특히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요근레 갑자기 경제개발을 하는바람에
마구잡이로 동물을 학살하고 엄청난 오염물질을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뿌려 지구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으며 세계의 원자재와 석유등을 불랙홀처럼 대량으로 마구잡이로 파해쳐 소비하여 고갈상태가 점점 빨라오며 그만큼 지구의 자연 치유력에 손상도 빨라지고있다
이대로 가다간 인류의 최후의 그날이 상상이상으로 빨리 다가올수도
있다는걸 알아야 한다
인류의 종말을 늣추기 위해 지구를 살리려면 인간들의 의식수준이 친환경으로 이젠 바뀌어야 한다
불과 1963년 마틴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I Have a Dream처럼 흑인도 백인처럼 같은 의식있는 인간이라는 대접을 받고 십다는 꿈이 있다는 연설은 이제는 인간들의 의식수준이 변화하여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 다는걸 공감해야 하며
육식을 갑자기 줄일수는 없겠지만 점차적 으로 육식을 줄이고
동물과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변화가 있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탈린이 2000만명 모택동 이 2000만명 을 공산주의 독재를 위해
죽였 다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게
아니냐 지가 당장 운좋아 잘먹고 잘산다고 해서
그보다 못한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고 게을르다느니 하는 말은 아직 정신 못 차린거다
불교에서나 하이데거 원효도 인간의 근본 기분이나
열반은 지성으로 아는게 아니라
직관 이나 선정 등을 통해서 알수 있다고 했다

(정리해 보자면
유전적으로 부호화된 생존관련 정보와 일상의 경험에서 얻은 주요정보들은 REM 수면기에
뇌에서 처리되고 있다 오늘날의 꿈의 내용이 언어적 이라기보다
주로 감각적 특히 시각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있어서 꿈은 신경처리과정을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신생아때부터 그과정에 의해 행동전략이 세워지고
수정되며 협의되지요 조너선윈슨의 말이다
-융은 꿈의내용이 고대인류의 경험을 반영할수 있다는 의견도 내 놓았다
REM 수면의 진화사 및 생물학적 기능에 관한증거는 그의의견에 동조하는 것 같다
물론 모든꿈이 인류조상의 경험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먹느냐 먹히느냐에 관한 생존 지향적인 꿈은 유전적으로 부호화된 조상의 집단 경험에서 비록된 것 같다
융은 개인과 각 문화권의 꿈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은유적개념은 전인류가 공유하는 발달 경험을통해서 획득 됩니다
-또한 언어가 인류문화 유산의 일부인 엄청난 양의 개념적은 은유적 창고로
점차 발전 함으로써 은유적 개념을 획득하지요
융의 관찰은 바로 그생각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라고 내용분석 전문가인
빌돔호프는 결론짓는다 –217-)
(72-폴크스는 아동이 적어도 7세가 되기 전까지는 의식적인자아 정체감을 갖지 못할수도 있음을

362p-암시한다 5세이하의 아동은 꿈꾸기에 필요한 시공간 인지능력이 부족하다고 폴크스는 주장한다
5세이전에 시각 장애인이 된 아동들은 꿈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경험하지 못했고 5세에서 7세
사이에 시력을 잃은 아동들은 가끔씩 시각적 이미지를 보았다
그러나 7세 이후에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비장애인 못지않게 꿈을 자주 꿨으며
깨어 있을때도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낼수 있게되는 시기가 바로 5세에서 7세 사이라고 주장한다-72
-67-5세이하 아동의 꿈은 주로 짧고 온화하며 정서적인 이미지로 이루어 져 있다 아이들은 꿈에서 동물을
자주보았고 잠을자거나 뭔가를 먹는등 낮의 활동에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67
-76-폴크스는 아동의 꿈연구로 알아낸 사실을 이렇게 요약한다
의식은 사치품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미숙하게 태어난
피조물에게 완제품으로 제공되지 않아요 의식은 우리와 똑같이 여러문제에 직면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의식은 서서히 형성되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때 까지는
그 궁극의영역에 접근조차 할수없어요 활발한 자기표현 자전작기억 자신의 삶에 관한 개인적 기억경험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자아감이 형성되면서 인간으로서 개인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의식을 획득했기에 꿈을꾸는 거라고 폴크스는 말한다 )
-제목 꿈꾸는 뇌의비밀 저자 안드레아록 출판사 지식의숲 2006년-

-끝맺는 말-

지금 현재 세상은 북한같은 권력이 모든걸 지배하는 특수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곤 정계 재계 언론과 방송 학계 뿐 아니라 종교계도

거대한 최상위 자본의 돈으로 잘짜여진 조직이 법과 권력위에 군림하며 진실을 덥고 지배하는 세상 이란걸 누구도 부인할수 없다


데카르트 철학도 이해할수 없는 부분도 섞여 있지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생각은 의심이며 의심은 확실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라는 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내가 왠지 모를 불안을 느껴 의심들며 경험한 여러 정황 들을 추리한게 거이다 사실로 들어났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연쇄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패거리들이 아직도 의식도 없다던 이건희 회장이 휠체어타고 재활훈련 받는다고 가족들이 이건희 75회 생일날 병문안 같다는 거짓말을 유치원생 처럼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 보도하는 한국의 언론과 방송 들을 삼성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과 함께 허위사실 유포밋 청부살해죄로 처벌해야 할정도로 한국의 언론과 방송의 왜곡이 심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휠체어 타고 다니며 재활훈련 한다고 삼성가에서 흘리는 거짓말을 확인도 없이 유치원생 처럼 그대로 받아쓰기 보도를 하는 쓰레기 같은 한국의 언론과 방송 2년간 동영상도 없이 병실밖을 안나온 다는게 개가 웃을 일이고 그런 말도 안되는 보도를 받아쓰기 보도하는 한국의 방송과 언론을 보며 왜 한국이 삼성공화국 이란 말이 나온건지 짐작이 간다


이런 왜곡 보도도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불산의 합병 주주총회에서 승인이 확정된후 한번도 보도된적이 없다 이젠 삼성전자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재용이 더이상 죽은 이건희가 건강하다고 조작된 보도를 무리하게 할필요 조차 느끼지 않는가 보다


이미 죽은 조희팔을 갑자기 중국에서 백명 이상이 핸드폰 없는 놈만 봤다고 사진한장 없다고 허위 보도로 속인 sbs그것이 알고싶다 사기꾼 방송은 죽은 조희팔이 살려서 이재용에 살해된 이건희까지 부활 시키려는 삼성가 개밥 쳐먹는 것들 천지가 지금 슬픈 한국의 현실이다


자신들의 비리를 파해쳐 진실을 말하면 서울시향이 하버드 대학교 졸업한 박현정이를 단원들이 누명 씌우는건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 떼거리로 조작 왜곡하여 누명 씌우려 드는 쓰레기 삼성 공화국


삼성회장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가장 총애하며 키우려 하자 청부 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이건희 속이다가 이건희가 알자 이건희까지 죽인 이재용 쓰레기


작년에 메르스가 갑자기 퍼지자 전염병원 평택 성모병원은 공개하고 바로 영업 중단을 시켰는데 가장 많은 확진환자 나온 삼성 서울병원은 공개하지 않아 서울시장 박원순이 2015년 6월4일 공개 하라고 긴급 브리핑을 하자


(참고자료- 박원순 시장 긴급브리핑 "메르스 의사 1500여명과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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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05 09:46


박원순 시장 긴급브리핑 "메르스 의사 1500여명과 접촉"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대형 행사에 참석하며 15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메르스에 노출되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4일 박원순 시장은 서울 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서울 거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지난달 30일 1565명이 참석한 재건축 조합 행사에 나갔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에 따르면 이 의사는 14번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뒤인 지난달 29일 경미한 증상이 시작됐고, 다음날인 30일 오전 자신이 근무하는 강남구의 대형 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이어 이날 저녁 가족과 식사했고, 오후 7시 서초구 양재동에서 열린 한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했다. 31일 오전에는 병원 심포지엄에 다시 갔다가 몸이 안 좋아 귀가했고, 오후 9시40분 모 병원에 격리됐다.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관련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지난 3일 보건복지부 주관 대책 회의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된 사실"이라며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 등에 사실 공표 및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 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에 대해 3일 서울시와 관계자 회의를 갖는 등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향후 조치 사항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에 서울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한편, A씨는 "보건복지부나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격리 조치를 당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31일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부터는 `엄격한` 자가 격리로 의사로서의 양심을 지켰다"면서 "한순간에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개념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대한민국 의사로서 양심을 걸고 박원순 시장이나 서울시가 주장한 그런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긴급 기자회견으로 메르스가 2차로 대량으로 서울에 전염시키는 전곳이 서울 삼성병원 이란곳을 암시하며

한국 정부인 보건 복지부가 메르스 전염병원을 평택 성모 병원은 밝히고 영업을 중단 시켰는데 2차로 대량 확산되는 병원을 밝히지 않는건 서울 삼성 병원이 관련되어 삼성공화국에서 밝힐수 없었던게 아니냐는 글들이 당시 폭주 했는데 박원순 시장의 긴급 브리핑으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자

갑자기 삼성공화국 아니랄 까봐 회괴한 의료 단체인 의료혁신투쟁 위원회가 2015년 6월5일 박권순 시장을 고발 하더니 2015년 6월15일 발족식을 하기도 했다 만들어 지더니 박원순을 명예 훼손 소송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후 합의를 했는지 어떻게 됐는지 잠잠해 재판 결과를 모르 겠는데

삼성공화국의 위세에 박원순이 꼬리를 내리는 형국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용해 졌다


박원순 고발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정체는?

검찰이 메르스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단체는 지난 6월 5일 박원순 시장을 '허위사실에 근거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면서 수사 의뢰를 했고, 검찰은 6월 14일 사건을 명예훼손 전담 부서인 형사1부에 배당했습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지난 6월 4일 박원순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사실과 다르며 ,허위사실에 근거해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메르스 확산 사태와 국민 불안을 가중시켰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주장이 합당한지, 이 단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5번 환자의 증상은 5월 29일부터 나타났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35호 환자(의사)가 분명 5월 30일 증상이 경미하고 자택 격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원순 시장은 마치 메르스 의심 증상이 심하고 자택 격리가 이루어진 상태인 것처럼 주장, 5월 30일 (의사가) 참석한 행사에 동참한 1565명의 서울 시민들이 중대한 메르스 감염 위험에 놓인 것처럼 국민적 불안을 야기 시키는 허위사실에 근거한 유언비어 유포 행위를 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1]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고발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35번 환자의 증상이 언제부터 나타났느냐입니다.


6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메르스 관련 정례브리핑을 가졌고, 이날 권준욱 중앙에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기획반장은 35번째 환자의 증상이 5월 29일부터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각주:2]


당시 보건복지부는 브리핑에서 삼성서울병원의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고 D병원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언론은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통해 5월 27일 내원한 환자를 접촉한 의사가 29일 증상이 나타났기에 메르스 최소 잠복 사례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각주:3]


6월 4일 저녁, 박원순 서울시장은 35번 환자가 5월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나타났고, 지역사회로 확산하지 않도록 긴급기자회견을 한다고 밝혔습니다.[각주:4]


'정부의 메르스 정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박원순 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동선을 공개하면서 불안을 가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6월 14일까지 메르스 확진자는 총 145명입니다. 이 중에서 무려 71명이 '삼성서울병원'과 연관이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확진자 현황을 보면 의료진과 직원, 환자, 방문자, 보호자,간병인,배우자 등이 42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제외하고도 29명의 체류자들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체류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SBS 뉴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처음에는 '가족이나 간병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들'이 체류자라고 했다가, 하루 만에 '그 체류라는 말이 거기서 근무를 한 의료인'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각주:5]


확진자 중에서 의료진은 의료진이라고 표기를 해야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이 확진자가 의사라고 발표했음에도 의료진이 아닌 체류라고 표기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은 이런 정부의 부실한 정보를 정확하게 해달라는 요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는 오락가락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 의료혁신투쟁위원회 최대집 대표는 자유청년개척단 단장 출신'


'의료혁신투쟁위원회'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최대집 대표는 의사 출신으로 자칭 보수단체가 개최하는 집회를 이끌거나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최대집 대표가 2004년 만든 자유개척청년단을 가리켜 조갑제닷컴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崔대표가 이끄는 자유개척청년단(이하 청년단)은 지난 1월23일 만들어졌다. 자유애국진영 청년 중 ‘피가 들끓는’ 열혈남아(熱血男兒) 10여 명이 주축이 됐다. 인터넷까지 1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청년단은 그간 우파집회의 행동대장 역할을 자청해왔다.


7월10일 자유공원에서 경찰저지선을 뚫고 좌익들의 깃발을 노획해 소각하는 등 집회에서는 청년단의 통쾌한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뛰어난 행동력의 청년단, 그러나 이들을 이끌고 있는 崔대표는 인텔리다. 그것도 서울대 의대를 나온 소아과 의사이다.>[각주:6]


'우파집회의 행동대장', '좌익들의 깃발을 노획해 소각' 등이라는 표현을 보면 서울대 의대를 나온 소아과 의사가 맞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투쟁 강령 '의사 정치 세력화'


보수우익의 행동대장 역할을 자청하던 최대집 대표가 만든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홈페이지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 투쟁 강령[각주:7]을 보면 가장 먼저 '의약분업'이나 '리베리트 쌍벌제' 등의 의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의사에게는 불리하지만,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중의 하나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국내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7%가 쌍벌제 시행 이후 거래처인 의사, 약사의 리베이트 요구가 줄었다고 답했으며, 이에 따라 근무하는 제약사의 리베이트 비용이 실제로 줄었다는 응답은 97.5%(117명)에 달했습니다.[각주:8]


리베이트 쌍벌제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견본품이나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 설명회 등은 법에서 허용하고 있습니다.[각주:9] 그 이상의 대가를 의사와 제약사가 서로 주고받는 일을 허용하라는 주장은 국민이나 환자의 편이 아닌 의사의 편의주의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의학적으로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투쟁 강령으로 내세운 '의사 정치 세력화'나 최대집 대표의 과거 경력을 보면 진짜 국민의 공공의료와 의료혁신을 위해 만든 조직인지는 의문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이미 6월 8일 '지난 기자회견에서 시의 의도와는 달리 메르스 전염이 의사와 병원의 부주의 탓이라는 오해가 야기되었을 수 있다. 그 일이 당사자와 의료진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셨을지 모르겠다. 이 자리를 통해 심심한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힘내십시오'라고 사과를 했습니다.[각주:10]


검찰은 6월 5일 의료혁신투쟁위원회가 고발한 박원순 시장 허위사실 유포 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섰습니다.[각주:11] 무슨 일이든 자칭 보수우익 단체의 고발,고소에는 재빠르게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가 왜 메르스 사태에는 이다지도 무기력할까요?


발족식을 하기도 전에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의료혁신투쟁위원회'나 박원순 시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수사를 시작한 검찰이나, 진짜 국민의 안전을 위한 마음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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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해가 바뀌어 2016년이 되자 메르스가 변이가 되었다고
지랄하는데 믿을수가 없다 당시에는 메르스가 변이가 된게 아니라는 뉴스를 봤는데 6개월이 넘어 그동안 내가 여러 신문사에 삼성회장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이건희 속이다가 이건희가 뒤늣게 사태를 파악하자 이건희까지 죽인 이재용이 삼성전자 경영권 훔치려 이건희를 입원 시키고 작년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 물산 합병 주주총회에 사활을
걸었던 이재용이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제일모직 불을 지르고 메르스까지 고의로 퍼트렸다고 폭로하자
6개월 이상이 지난 지금에서야 메르스가 변이가 되었다는 뉴스는 뭔가 짜고치는 고스톰 냄새가 난다
주주총회에서 합병 승인이 안 되었으면 비싼차 타면 대접 받아도 싸구려 똥차는 무시되듯 이재용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그동안 감춘 범행까지 여기저기서 폭로 될판 이었다 그러니 이재용이 제일모직 불지르고 메르스 자작극 이건희 병실사진 조작극 까지 만들어 퍼트려 주주들 시선을 유도 하려 안해도 될 쇼를 해서 증거가 더확실히 들어났다
정명훈 마누라가 서울시향 단원에게 문자로 박현정이 여자가 남자를 성추행 했다고 누명 씌우라고 문자가 발견 안됐으면

하버드 대학교 나온 박현정이 졸지에 성추행 으로 매장될뻔 했네 이런 더러운 짓거리는 깽깽이 문둥이 개처럼 부려 삼성가 이윤형 과 이건희 연쇄살해한 홍라희 이재용이 자주 쓰는 수법 이건희 혼빼고 정신없게 만들어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이 죽일려고 홍석현이 삼성떡값 뿌리는거 일부로 녹음하게 해서 노희찬 한테 테이프가 들어가 삼성X파일 사건이 터졌는데 결국 떡검들에 의해 흐지부지 끝났지

정말 동화속의 이야기 처럼 들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이

날 얼굴한번 보고 못 잊다가 자살해서 나에게 천억을 주려 했다는 거짓 소문을 주어듣기 까지

나는 배후의 실체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하며 듣도보도 못한 불안에 떨며 그후 사건의 단서를 수집하고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추리하여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청부살해한 삼성회장의 본처 홍라희 와 장남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그리고 홍라희의 남동생 중앙일보회장 홍석현 패거리들이 공모하여 날 희생양으로 누명 씌웠다는 합리적인 추리를 할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합리적인 추리를 뒷바침 할수 있었던건 교도소에 수감 중일때 그동안 삼성 오너 들로 부터 누명씌워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당한게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들에게 더욱 손쉽게 당하여 교도소 까지 들어와 고통 당한다고 생각하고 저명한 과학 철학 종교 책을 생애 처음으로 저명한 문학 고전과 함께 열심히 읽으며 중용한 특이점은 메모하여 어떻게 하든 이윤형 양이 홍라희 이재용 에게 청부살해당한 진실을 밝혀 이윤형양의 억울함과 나의 억울함을 세계 양심에 호소 하려 했다

삼성 오너들이 일부 삼성비밀 직원과 정부의 일부 삼성 알바들과 일부 양심없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 삼성알바 공권력까지 악용하여 나를 모함하고 죽이려던 음모를 양자얽힘과 같이 불안으로 나에게 전해져 이정도나마 사건의 진실을 밝힌게 아닌가


아직도 삼성 알바들이 이재용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 나를 구속하여 전라도 경상도 지역 교도소로 보내 교도관놈들에게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돈쳐먹여 나를 죽이거나 누명씌워 사회에 격리 시키려는 더러운 음모를 꾸미 려는데 이재용이 명예훼손 소송을 못 건다고 한다 만약에 이재용이 명예 훼손소송을 걸면 이건희 회장 병실을 열어 공신력 있는 공정한 검증하에 공개해야 하고

이윤형양의 검시기록 수사기록도 공개해야 한다 그러게 되면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를 연쇄살해한 이재용의 범행이 전세계 언론이 추적하여 내글의 정황들이 사실로 입증되어 공개 될수도 있어 이재용이 못거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한국에서 누명 씌우려고 잔대가리를 굴리며 더러운 음모를 꾸미는 이재용 쓰레기


[아하 우주] 2015 우주에서 새롭게 발견된 '블랙홀' 톱 7 본문
[아하 우주] 2015 우주에서 새롭게 발견된 '블랙홀' 톱 7
서울신문 | 입력 2015.12.27. 15:30 | 수정 2015.12.27. 17:45
지난달 천문학자들로 이루어진 다국적 팀이 블랙홀이 별을 통째로 꿀꺽하고는 트림처럼 고속 플라스마를 우주공간으로 방출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은 우리 태양이 1000만년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와 맞먹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3억 광년 떨어진 PGC 43234 -300이라는 은하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우리 태양 질량의 100만 배 정도지만, 초질량의 블랙홀에 비한다면 비교적 경량급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중력을 갖고 있어 우리 태양 정도 크기의 별 하나 정도는 떡 먹듯이 먹어치울 수 있다.
박종익 기자

나는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문학상을 과 노벨 평화상을 동시에 받을 자격이 있다 불랙홀 안에서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이 우주로 나온다는

나의 자서전 제목이 플러시백 의 내용이 불랙홀을 정밀 촬영한 사진이 2015년 12월27일 다음 인터넷에
공개되어 빛마져 빨아들인다는 불랙홀이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며 입증됐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빛조차 빠져 나올수 없다던 불랙홀이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반전의 발견은

서울시립 교향악단 박현정 대표가 관원 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하여
쫏겨난 적이 있는데 모함 이라고 검찰에 고발 하여 수사하는 과정에
지휘자 정명훈의 부인 구씨가 문자로 단원들 에게 박현정을 성추행으로 누명씌워 매장 시키 라고 지시하며
시나리오를 잘 짜라는 문자가 발견되어 사건은 반전 되었다


(참고자료 -박현정 前 서울시향 대표 관련 사건 일지]


▲2013년 2월1일. 박현정 전 대표 서울시향 부임

▲2014년 12월2일.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 전 대표이사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내고 퇴진을 요구

▲12월4일. 박 전 대표, 사무국 직원들이 자신을 겨냥해 성희롱, 인사전횡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은 "직원들의 음해"라고 반박

▲12월5일. 박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정명훈 예술감독이 직원들 호소문의 배후라는 의혹제기와 함께 자신은 정치적인 희생양이라고 주장

▲12월10일. 정 전 예술감독이 서울시향 단원들로부터 박 전 대표에 대한 의혹을 1년 전에 들었다면서 '인권침해'라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 "6주 전 서울시에 '이런 것에 못 견디겠다고 했다. 그래서 (예술감독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밝힘

▲12월11일. 박원순 서울시장, 언론사 사회부 부장들 점심에서 "박 대표, 인권침해 사실이라면 문제"라고 밝힘

▲12월19일. 박 전 대표, 자신의 막말·성희롱 호소문을 작성해 배포한 사람들을 찾아내달라며 경찰에 진성서 제출

▲12월23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박 전 대표에 대한 징계와 함께 피해 당사자들의 피해 회복 조처를 할 것을 권고. 서울시향 직원 10명,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과 성희롱 등의 혐의로 고소.

▲12월29일. 박 전 대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로 대표이사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힘. "내가 잘못한 부분도 많았고 이 부분은 진심으로 사과한다. 여러가지 왜곡과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나도 많이 다쳤고 공정하지 못한 일방적 교사로 많이 힘들었고 억울함도 많지만 서울시향이 앞으로 건전하고 투명한 조직,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고 말함

▲12월31일. 서울시향 이사회, 정 예술감독과 1년 계약 연장 결정

▲2015년 3월11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서울시향 1차 압수수색

▲3월13일. 전년도 예산 삭감에 따른 협찬사 확보의 어려움으로 예정됐던 북미투어 공연 취소 발표

▲3월18일. 서울시향 단원협의회 호소문 발표. 박 전 대표의 성추행·막말 의혹 논란 이후 벌어진 경찰의 압수수색과 해외공연 취소 등에 대한 유감 표명

▲4월14일. 서울시향 직원 2명 출국금지

▲4월15일. 서울시향 2차 압수수색

▲5월12일. 서울시향 직원 2명 출국금지 연장

▲6월10일. 서울시향 직원 2명 출국금지 추가 연장

▲6월11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서울시향 직원 1명 자택 압수수색

▲6월14일. 서울시향 직원 1명 경찰 조사 등에 따른 스트레스로 자살 기도. 영국 클래식 칼럼니스트 노먼 레브레히트가 관련 내용을 블로그에 게시

▲6월. 박 전 대표 명예훼손 진정서 건 관련 서울시향 직원 조사(11월 현재까지 서울시향 사무국 거의 모든 직원 약 30명 소환 조사)

▲7월1일. 최흥식 신임 대표이사 취임

▲8월11일. 최 대표이사 취임 기념 기자회견. 서울시향 직원의 박 대표 고발 건, 경찰 무혐의 의견 송치 보도. 증거 불충분 이유.(박 대표를 고소한 서울시향 직원 10명이 명예훼손 피의자로 전환 수사)

▲8월27일. 정 감독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예술감독 내려놓겠다고 밝힘

▲11월9일. 서울지방경찰청, 박 전 대표를 고소한 서울시향 지원 A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

▲11월12일. 법원, A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12월27일. 무혐의로 결론난 박 전 대표의 소속 직원 성추행 의혹 배후에 정 예술감독의 부인이 구모씨가 관여한 의혹이 드러남. 경찰이 지난 21일 구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할 사실 확인. 일부 서울시향 직원들을 통해 박 전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

▲12월28일. 서울시향 이사회가 정 예술감독과 재계약을 보류하고, 내년 1월 중순 전 추가 협의하기로 함

▲12월29일. 정 전 감독, 예술감독 직 사퇴 의사 밝힘

▲12월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를 끝으로 10년 만에 서울시향을 떠남.

▲12월31일. 정 전 감독, 구씨가 있는 프랑스로 출국

▲2016년 1월9일. 독일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포디엄에 오른 올해 첫 정기 연주회인 '브루크너 교향곡' 성료.

▲2016년 1월17일. 최수열 부지휘자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성공적인 데뷔

▲3월3일. 경찰,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직원들에게 폭언과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의 투고를 작성해 배포한 서울시향 직원 10명을 정보통신망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 투고 유포 지시 의혹이 제기된 정 전 예술감독의 부인 구 모씨는 소재지 문제로 기소중지의견. 서울시향 경찰 조사에 대해 유감 표시)


서울시향 대표 박현정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 시향을 제왕처럼 군림하며 개인 사조직 처럼 운영하여 서울 시민의 세금을 물쓰듯 개인 용도로 마음대로 사용 하면 안된다고 사사건건 정당한 지적을 하자 눈엣가시 박현정 대표를 모함하여 내쫏기 위해


정명훈 마누라 구씨가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문자로 여자인 박현정을 누명 씌우라는 문자가 수사 과정에서 발견 안 됐으면 하버드 대학교


나온 박현정은 졸지에 (2014년 12월2일.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 전 대표이사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내고 퇴진을 요구 하며 매장 시키려는 음모에 걸려 누명당하여 사회적으로 매장 당할 뻔한 사건이다 더러운 모함과 험담은 살인과 같은 더러운 범죄 이다

서울시향의 순수 예술을 한다는 것들이 아무리 위에서 시킨다고 더러운 모함을 하다니


서울시향은 삼성공화국에 비하면 비교조차 불과할 정도로 삼성 오너들은 거대한 조직을 이용하여 나에게 모함을 하는 더러운 것들이다

보리스빠스쩨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소련 공산당의 처참한 현실을 폭로하는 글로 소련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어 이탈리아로 가서 책을 출판하여 노벨 문학 상 까지 탄 작품이다

내글은 닥터 지바고의 소설보다 보다 훨씬 뛰어난 소설이 절대아닌 진실의 글이다


수도권 출신 격투기 선수중엔 경기수원 출신 ufc웰터급 랭킹7위 김동현도 있고 종합 격투기 로드 fc 헤비급 챔피언 경기도 이천 출신 명현만도 있다 사실 대표적인 격투기 올림픽 종목 유도 복싱 레슬링은

한국 선수중에 극소수만 주로 경량급 에서 또는 더욱 소수는 중량급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체급 경기는 저울로 검사하여 중량달아 체중이 똑같은 선수만 경기를 시켜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도 진정한 최강자 라고 할수가 없다

현재 한국인 선수를 통털어 세계적인 종합 격투기 ufc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동현도 웰터급에서 7위 이지만 동급 챔피언과 실력차가 현격하여 챔피언 한번 못하고

은퇴할 확률이 농후하다 그만큼 동양권이 중량급만 넘어가도 흑인이나 백인등 서양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 조건에 밀리는게 사실이다 그러니 중량급을 넘어 헤비급 이상급은

감히 한국인이 넘보기 힘든 체급으로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것을 증명하듯 한국 선수중에 유도나 복싱 레슬링 종목에 헤비급 이상급에서 올림픽 금메달은 커녕 결승전에도 몰라간 선수가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유도는 일본이 종주국으로 과거에는 일본에서 무제급에서 간혹 금메달을 딴걸로 알고 있는데

요근레는 유도도 서양 선수들이 무제한급을 휩쓸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복싱이나 레슬림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올림픽에서 슈퍼헤비급 이상에서 금메달은 커녕 4강전도 올라가기 힘든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선수중 역대 전무후무 하게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복싱 슈퍼 헤비급 결승전에 올라

올림픽 은메달을 딴 백현만은 당시 아시아 최강의 주먹으로 명성이 자자 했다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복싱 슈퍼헤비급 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는데

88년 서울올림픽 복싱 슈퍼헤비급 경기서 백현만 에게 2회 KO의 일종인 RSC로 패하고 동메달을 딴 앤드류 골로타 (폴란드)는 그후 1992년 프로로 전향해 승승장구 하며 월드급 높은 순위에 오르며 미국의 흑인 복서 리딕 보우와 WBC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챔피언 전을 치른 골로타 를 누르고 챔피언에 오른 보우는 홀리필드와 세번 싸워 두번 승리한 후 `핵주먹' 타이슨에 맞설 유일한 복서로 평가받고 있는 보우는 39승(33KO)1패를,


앤드류 골로타는 28전승(25KO)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던 앤드류 골로타를 누르고 슈퍼헤비급에서 은메달을 딴 경기도 출신 백현만

88년 올림픽에서 KO의 일종인 독일 선수를 RSC로 눕히고 준결승에선 폴란드의 강타자

앤드류 골로타 마저 2R RSC로 이기고 결승까지 진출하여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까지 노리게 됩니다. 결승전 상대는 3년속 KO로 올라온 미국의 레이머서

는 그후 WBO세계헤비급 챔피언이 되기도 한 상대


백현만은 레이머서와 대등하게 시합하던중 일격에 쓰러져 바로 일어나 시합을 하려 했으나 주심이 석연찮게 시합을 중시켜 아쉽게 은메달을 땄다 그러나 아시아 최초의 전무후무한 올림픽 슈퍼헤비급 결승전 이었다

그러나 레이머서는 미국의 길거리 파이터와 킴보 에게 종합 격투기로 쉽게 ko 로 졌다


올림픽 슈퍼헤비급 에서 은메달을 딴 경기도 출신 백현만이


역대 한국 복싱 선수중 가장 주먹의 파워가 강하 다고 한다

그후 프로로 전향해서 당시 강타자 마이크 타이슨과 한번 겨뤄 봤으면 어땟 을까

그런데 올림픽 이후 은퇴해서 아쉽다


프로로 전향해 봤자 헤비급이란 체급이 한국엔 없어 상대할 헤비급 프로 선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에서 데려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은퇴한것 같다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연쇄 살해한 홍라희 가 내 계좌번호 핸드폰 도청 이미 다하고 내가 가는곳 마다 위치 추적하여 전화질 해서 여러가지 모함을 하며 방해하고 누명 씌우려 교활한 잔대가리 굴리며 음모극을 펼치며 말려 죽이려 하고 있는데 더럽고 치사한 짓은 다하는 홍라희 가


나이가 어린놈을 나한테 폭행 당하고 구속 시킬려고 유도 하려 나에게 주먹질을 하며 달려드는 젊은 놈을 정당방위로 제압하여 사무실 바닥에 넘어 뜨리고 풀마운트로 젊은놈 허리에 올라타 주먹을 그놈 얼굴에 내려 꼿을 려다가


내가 이놈 한놈과 싸움이 아니라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삼성편을 들꺼라 걱정은 물론 더욱더 걱정은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사주로 교도관 들이 날 갈아 마실려고 할꺼고
나는 특히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출국 금지 당할 수도 있고 정말 이건 너무 불공평한 싸움이다


진실은 삼성알바들에게 중요 하지 않고 삼성오너 홍라희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조작 되어

퍼지는게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고


나정도 되니까 삼성과 이정도 싸움을 하지 다른 놈들 같았으면 진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조용히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살아 졌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싸움도 하기전에 스스로 쓰러질 판이다


더구나 저놈은 그전에 누구에 몇대 안 맞고도 병원에 입원하여 돈을 뜯어 내려 한건지 상대방을 괴롭히려 했던 상습범 이란 소릴듣고 성질 같아서는 한데 때리고 십었지만
저놈이 배후에 삼성의 사주로 계획적으로 나에게 고의로 얻어 맞고 날 구속 시키려는 더러운 음모라고
생각이 들자 주먹으로 저놈을 때리면 징역이 1년 이상 인데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이 바라던 시나리오데로 흘러가는 것이고 더욱 걱정은 구속되면 여러가지 삼성의 음모로 누명 당하여 못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 하니 불안하여 도저히 때릴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의 주적은 삼성가 오너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이다 미국 에서 못살게 음모극을 벌여 접어 지금 이 고생을 하며 그동안 영문도 모르고 당한 모함의 배후는 삼성가 오너 였다고 확신한다

만약에 삼성과 이렇게 악연으로 엮기지 않았다면 젊은 저놈이 무슨 원수라도 진것 마냥 나에게 달려들일도 없고

내가 누구인지도 무슨일을 하는지도 알고 십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삼성과 이런 더러운 악연으로 엮이지 않았는데 저젊은 놈이 나에게 덤벼 나에게 제압당하여 내밑에 깔리게 되었 을때 정말 버르장 머리를 가르쳐 주려고

징역 살것을 각오 하고 얼굴에 정타를 내려 꼿아 턱뼈를 부려 트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삼성과 더러운 악연으로 삼성의 모함에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 했고 그런 과정에서 삼성의 교활한 수법을 어느정도 예상할수 있을 정도로 삼성의 음모에 많이 당했기에 저놈을 이용하여 나를 구속 시키려는 삼성의 짜고 치는 시나리오를 예상할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기에 나의 주적은 삼성그룹 이라 이미 저젊은 놈과 싸울 아무런 이유가 없어 주먹으로 때릴수가 없었다

주변에 있던 여럿명이 말리는척 하면서 날 잡고 늘어져 내밑에 깔렸던 저놈이 빠져나와 계단 밑으로 내려 갔다
그후 뒤에서 말리는척 하면서 날잡고 늘어진 여러명에 의해 지치고 겨울에 두달간 제대로 일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여러가지 최악의 상황 에서도 나보다 훨씬 젊은 놈이 날 때리려는 순간을 정당방위로 제압을 했다 육체적 으로도 최악의 조건 이지만 교활한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의 음모에 정신적으로 너무도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 안에서 나에게 제압 당하여 깔렸던 놈이다 이미 내가 승리한 거다 내가 다시 밖으로 나가자


욕과 주먹질을 하며 달려 드는 놈을 삼성과 엮기지 않던 과거 같았으면 카운터 펀치로 실신ko로 보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설명한 것처럼 삼성과 더러운 악연과 엮인 지금은 오로지 삼성에 대한 나의 승리만을 생각할 뿐이지 저놈과 싸워야 할 아무런 의미도 의욕도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된 나의 공격이 나올리가 없다 그저 정당 방위로 젊은 놈을 제압만 하고 주먹질은 하지 않고 나에게 힘에서 밀리는 상대도 안되는 그놈을 넘어 뜨리기 일보 직전에 갑자기 두 사람이 달려들어 말린다면서 나를 붙들고 늘어져 그놈이 빠져나와 가고 나도 왔다


내가 가는중에 마중해 주던 책임자가 저놈이 내밑에 깔렸을때 주먹으로 치지 않은건 잘한 일이라며
그전 에도 저놈은 누구에게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하여 상대방을 괴롭힌 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주먹으로 때리지 않고 쓰러트려 난동을 제압만 한것으로는 저놈이 먼저 달려 들었기에 책임을 묻기 힘들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를 엮어 구속 시키려는 음모극을 은밀히 꾸민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더러운 계획이 빗나가자

싸움 실력 보려 했다 는니 하며 개가 웃을 더러운 소리를 짓거리는며 비아냥 거리며 바람 잡는게 전형적인 홍라희 이재용 스타일

삼성 스타일


나는 이미 삼성가 오너 홍라희 이재용의 음모에 갈려 엄청 고생한 경험이 있다

과거 2010년 2월8일 처럼 식당에서 술먹는데 삼성알바 여자 두명을 내옆 테이블에 앉혀 지들끼리 수다를 떨며 천억 주려 했는데 셋째 이복형이 때려죽인다고 하니까 벌벌 떨며 인감과 각서를 주며 천억 안받겠다고 그랬다며 거짓말 유언비어를 일부러 내옆에서 떠들어 술취한 상태에서 주어듣고 어리석게

삼성의 함정에 걸려 속아서 화가 치밀어 택시를 타고 셋째 이복형을 찻아가 난동을 부려 징역 4년을 받고 엄청 고생 했다


내가 젊은 놈을 주먹으로 때려 크게 상처가 났으면 그래 너 싸움 잘한다

과거 2010년전 처럼 감옥에서 썪어라 하며 조롱 했겠지

구속 되어 감옥에서 검찰 법원 교도관 일부중 삼성 장학생 세트 시켜 다람쥐 췌바퀴 처럼 누명 씌워 뺑뺑이

돌릴게 감옥에서 썩어라 지랄하며 조롱하려고 했던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쓰레기들 더러운 음모를

내가 젊은 놈을 때리진 않고 정당방위로 제압만 하자


싸움 못하는 겁쟁 이라고 지랄 했겠지 삼성알바들 시켜 거짓 유언비어를 얼마나 퍼날 랐겠냐 이젠 그런 음모를 하도 당해서 안봐도 삼성의 음모를 알것 같다

국회의원도 국민들이 크게 관심없게 사는 쿨한 세상에


전혀 내세울것 없는 보잘것 없는 나에 대한 조작된 중상모략과 험담이


삼성알바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퍼진다는 자체가 삼성의 음모가 아니고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래 홍라희 야 나 싸움 못해 그러나 아직까지도 젊은놈 저놈 정도는

주먹으로 때리지 않고도 충분 내가 이겨 난동을 제압 할수 있다

그러나 이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다리 관절은 청송1교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게 고장나게 만들어 발차기를 제대로 할수가 없을 정도다

싸움을 더이상 무리다 내가 싸울 나이는 지났다

홍라희 이재용아 이런 더럽고 치사한 음모를 꾸미지 말고 내글 이나 내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정정당당 하게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라 그래서 이윤형 타살의혹과 이건희 회장 병실을 공개하여

진실을 밝혀보자 그래서 내가 틀렸으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그러니 더이상 하이에나만도 못한 치사한 방법으로 날 괴롭히며 거짓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듣도보도 못한 교활한 수법으로 당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지쳐 있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있다 그러나 최후의 그날 까지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살해한 홍라희 홍석현의 음모를 밝혀야 하지만

특히 내가 삼성의 음모에 당하는 억울한 누명을 없애기 위해서도 진실을 밝히는 글을 올려야 한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2016년 3월9일 세번재 도쿄 나리타 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번에는 목적이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한 도쿄 시부야의 UNHCR의 전화번호만 알고 무작정 찻아가 난민 신청을 하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일본 정부에는 신용이 가질 않아서 난민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엔 이라면 그래도 좀 났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예약한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무작정 시부야로 전철을 타고 가서 지나가는 일본 인에게 UNHCR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거듭 말하지만 일본 인들은 정말 친절하다 그러나 UNHCR이 뭔지를 이해를 못하자 시부야역에 여행자들을 안내해 주는 ( informations)에 가서 물어 보라고 하자

나는 그곳에 가서 물어보자 컴퓨터로 약도를 복사해서 주어 지나가는 일본인들에게 물어 물어 찻아가보니 그곳은 UNHCR 이 아니라 유엔 대학 이었다 그곳에서 문의하자 금방 알아듣고

찻아가는 위치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는데

어느정도 가자 했갈려 일본인에게 물어보자 일본인도 찻기 힘든지 자신의 핸드폰으로 한참을 직접 전화를 걸어 그 위치까지 데려다 주고 그 일본인은 작별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갔다 한 15분 이상 걸린것 같다

일본인이 친절하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까지 인지 몰랐다

(東京都港 南靑山6-10-11우편번호 107 -0062) UNHCR도쿄 사무실 이다

그곳에 찻아가서 난민 신청 상담을 신청 했는데 한국어 통역이 없어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손짓 발짓 과 짧은 일본어를 동원하여

개다한 삼성공화국 조직이 힘없는 한개인인 나를 모함하여 암살하려 하고 누명 씌우려 하기에 망명신청 하려 한다고 말하자

JAR(Japan Association for Refugees) 찻아가면 도움을 줄거라고 했다

그곳이 UNHCR 도쿄지부에서 지원하는 산하 단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한국어 통역도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곳은 신주쿠 요츠야(Shin Juku-Yotsuya )였다

그래서 바로 전철을 타고 2016년 3월10일 목요일 요츠야 역에 가서 물어 물어 찻아가니 UNHCR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내가 올줄 알고 있었다며

아프리카 출신들이 몇몇이 난민신청을 해서 그곳에서 숙소와 최저 생계비를 지원 받을 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가서 짧은 일본어로 말하며

한참을 기다리자 한국어 통역을 스마트폰으로 연결하여 통역을 해서 내가 전후 사정을 말하며

한국의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이가 범행을 감추려 삼성공화국을 이용하여 나를 암살하거나 누명을 씌우려 하기에 망명 신청을 하려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 신청자가 밀려있어 3월16일 오후 1시에 인터뷰를 예약 한다고 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켁이 3월16일 오전 비행기 인데 마치 내가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날짜를 안 것 처럼 인터뷰 날짜를 정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형편이 어려운데 날짜가 너무 길어 좀더 앞당길 수 없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강력히 거부 했다

나보고 시나가와 뉴관에 가서 난민 신청을 하라고 하기도 하면서 일본에서 하면 다른 나라가서 못한다고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는 (JAR)직원도 있었다 근데 일본에서 난민 신청했다고 다른나라에서 못 한다는건 말이안되는 것 같다

근데 그곳에 나이지리아 인지 케냐 인지와 콩고에서 와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곳은 오전 9시-오후5시 평일만 문을 열었다 직원들은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할수 없이 티켓을 1주일 연장 하려고 신오쿠보의 송금을 해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에 찻아가 주주료 까지 합하여 10만원 가까이

들어간 것 같다 3월24일 로 연장 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 인지 케냐 인지 에서 온 흑인은 나보다 하루 늣게 온것 같은데 인터뷰 날짜가 훨씬 짧았다

11일 금요일쯤 신청한것 같은데 14일 월요일에 인터뷰를 마친 상태 였다

나는 3월10일 목요일 신청했는데 다음주 16일 수요일 오후에 인터뷰 를 하였다

통역으로 온 여자가 저번주 전화 통화한 여자와 목소리가 같았는데

그 여자도 같은 사람 이라고 했다 이름은 마쓰오까 라고 하는데 나이는 30 초중반 쯤 대어 보이는 제법 매력적인 여자 였다

일본인 이라고 말은 하는데 한국말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했더니 한국에서 3년 살았다고 하는데 유학인지 그냥 살은건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통역이 한국인 보다 외국인을 원했다 한국인은 통역을 왜곡할 확률이 좀 더 많은게 아닌가 생각이 들며 그런데 한국말을 저렇게 잘하는데 재일교포나 한국인과 혈연관계가 조금이라도 연관이 없이 순수 일본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심스러웠다 물론 국적은 일본일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계와 외간가나 친가쪽으로 연관의 가능성을 숨기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일본인 마쓰오까 라는 여성 한국어 통영관과 책임자인 중년으로 보이는 미국인 백인 남자 그리고 30대로 보이는 일본인 JAR직원이 동석하여 시작했다 나는 삼성X파일 사건을 홍라희 남동생 중알일보 회장 홍석현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하기 위해 1997년 신라호텔에서 의도적으로 녹음한하여 치밀한 계획하에 8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수 없는 시점을 골라

2005년7월 터트린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이 꾸민 일이며

삼성X파일 사건을 터트려 자존심강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입원 시키고 2005년11웗19일이전에 뉴욕에서 이윤형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 속이다가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희생양으로 누명씌운 나까지 암살하거나 누명 씌우려 음모를 꾸며 망명 신청한다고 말했다

물론 JAR은 난민이나 망명을 신청하는 곳이 아니다 UNHCR도 일본 정부가 유엔의 난민 협약에 가입되어 있어

일본정부에 직접 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 난민 신청을 해도 6개월간 인도 못하게 하고 있어 마땅히 도움을 받을곳이 없는 나는 JAR에서 아파트 제공및 최저 생계비를 지원을 약속 해 줘야 버틸수 있었다


당시 인터뷰 책임자로 미국 백인 남자였는데 내가 물었다 이곳이 비영리 단체라는데 그렇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월급 받고 일하냐고 그랬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심코 JAR미국인 백인 책임자가 한 말인지 통역이 나에게 전해준 말은 직원들 월급도 줘야하고

이곳을 운영 할 려면 애로 사항이 많다고 의미 심장한 이상한 말을 통역이 전했다

장시간의 인터뷰가 끝나자 나는 왠지 내가 인터뷰한 내용을 정보공개 청구 해야 겠다고 생각하여 통역에게 전달 했다 그랬더니 거부감을 표하더니 전체를 해줄수 없고 조금 앞 부분만 해준다고 하여 프린트를 받아 보니

영어로 작성 했는데 내가 삼성그룹에 다니지도 않았고 그런 말도 한적이 없는데

삼성에 다닌걸로 적혀 있어 시정해 달라고 했더니 오늘은 끝났으니 안된다고 다음에 인터뷰를 잡아 해야 한다고 강력히 JAR직원이 막았다

나는 내가 진술한 애용을 왜 정보공개 청구가 안된냐고 통역을 통해 전달하며 강력히 따지자

나보고 그만 가라며 강력히 거부의사를 표하여 그냥 JAR사무실을 나왔다


내가 볼땐 통역은 제대로 전달한것 같은데 미국인 책임자가 지 마음대로 작성한것 같다

여러 정황상 삼성에서 돈 쳐 발라 로비한 정황 이었다

나의 예상되로 인터뷰 날짜를 3월 28일로 잡아 내가 3월24일자 비행기 티켓이 돌아가는 티켓 이란걸

삼성에서 알려져 알고 장난 친 것이다 내가 자금이 얼마 없다는걸 알고

버티지 못하게 장난 치는 것이다

나의 예상되로 통역이 중간에서 왜곡되는 증거를 포착했다

내가 아무리 왜곡 됐다고 해도 증거도 없고 받아 적는 놈이 그렇게 얘기해서 받아 적었다고 하면 그만이고 난민 신청을 하면 6개월 후 일 을 할수 있다는데 그동안 JAR에서 아파트 제공과 최저 생계비를 제공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굶어 죽게 되는 시나리오다


그러니 먼저 이곳에서 통역이 제대로 되어  나에게 지원이 승인이 되야 하는데

여러 정황상 삼성에서 로비하여 JAR 에서 나에 대한  지원을 해주지 못하게 막은 정황이다

그러면 난민신청 심사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손쉽게 나를 일본에서 굶겨 죽이는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에 난민 신청을 한다고 해도 통역이 완전이 돌아이로 왜곡 시킬게 물을 보듯 뻔 한 정황이라 난민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없는건 둘째 치고  적반하장으로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이재용이  나에게 모든 죄를  누명씌워 뒤집어 씌울게 뻔해 보이는

수순으로 생각이 들었다  

2014년 4월 캐내다 벤쿠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방해하기 위해 삼성비밀조직을 로비에 움직이는 정황을 삼성 이건희 회장이 포착하고 자신이 가장 아끼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이란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고 조취를 취하려 하자 2014년 4월4일 내가 벤쿠버에서 돌아와 36일만에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쇼를 하는 것이다

설마 이재용이 지 아버지 까지 암살할줄은 상상도 못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까지 암살한 이재용이 일본에도 고위층의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고 있어

마음대로 장난을 칠수 가 있는 것이다 이재용은 일본 뿐 아니라 미국 유럽등 국제적으로 고위층에 막강한 인맥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일본 정부에 난민 신청을 유보한 것이다

삼성가의 명예훼손을 두려워 한것이 아니다


이재용의 외삼촌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은 프리메이슨 삼변회 소속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걸로 들었다 프리메이슨 삼변회는 미국 일본 유럽이 삼변회로 그곳은 국제적인 최상류층 들의 최상류층 비밀 사교 조직 인 것이다

이재용도 그곳에 비밀리에 가입했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이재용이 보낸 킬러에 의해 암살된 이윤형의 시체를 허위검시로 자살로 처리하게 조작한것도

프리메이슨 삼변회의 인맥 덕이란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재용이 그곳 검시관에게 뇌물을 평상시 엄청 쳐먹이고

물론 이윤형을 암살하는데 도와달라는 어리석은 말은 절대 안한다

이윤형의 시체를 자살이 확실하니 시체에 흠집없이 자살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했겠지

이에 평상시에도 삼성의 은밀한 뇌물을 수도 없이 쳐먹은 뉴욕 검찰과 검시관이

조용히 자살로 허위 검시결과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에서 술취해 쓰러져 있는 여자를 성폭행한 부자집 아들은 징역 6월을 받았는데

돈없는 사람이 음주운전을 9번 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도 종신형에 처하는 미국이다

법의 잣대가 이중적인 미국이다

정신병자라고 풀려난게 아니고 부자병 이란게 있어 풀려난 경우도 있다고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중한 범죄를 지어도 돈을내고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에 불출석하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미국이다

그래서 삼성 이건희 회장 속이려 미국에 유학보내 암살한 것이다

괌으로가는 비행기 안에서 치과 의사가 술에취해 지랄한 사건은 아직까지 미국에 억류되어 재판중이고 중형이 불가피 하데는데 미국땅에서 초유의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일으키며 박창진 사무장과 항공기 여자 승무원 에게 무릅을 꿇리고 폭력을 행사한 한진그룹 회장딸 조현아를 미국에서 재판도 못하게 만든건 결국 돈이 다 라고

누구나 예상하듯 말이다


도쿄의 UNHCR사무실을 찻은건 뭔가 다른길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찻은 것이다

나는 2013년 한국의 최고 재판소 헌법 재판소에


(사건 2013 헌마 772 기본권침해 위헌확인)
헌법소원 하고 법무부 장관에 청원을 하여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하고 속이는게 홍라희 이재용이 확실 하다고 한법소원과 청원을 하였지만 조용히 기각처리 되었다


당시 내글이 확실하기에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이 나에게 명예훼손을 못건다고 적어 보낸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이 이미 이재용에 암살된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삼성 일가 홍라희 홍석현 이재용 패거리들의 거대조직이 마구잡이로 조작하여 퍼트리는 거짓 조작을 무방비로 나에게 누명 씌우는 음모에

제대로 하소연 조차 할수도 없는 약자인 내 처지에

그나마 인터넷 이란게 있어

인터넷에 진실의 글을 올려 세상에 알렸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무고한 누명으로 인한 비방을 그나마 덜 당한다고 생각한다


삼성그룹 오너들은 상상도 할수없는 거짓과 교활함으로 음모를 꾸미며 이익을 챙기고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연출로 바람잡아 세상을 속이며 물건을 팔아먹는데 천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삼성그룹 오너들이 퍼트리는 치사하고 비열한 거짓말을 들을때 불안을 느끼며 의심하며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되는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을 한지가 8년 이다

오바마는 콜롬비아 대학에 어려운 환경에서 운좋게 편입하여 탄력을 받아 하버드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물이다 그렇게 똑똑하고 운이 좋은 인물이 그동안 춤이나 출줄 알았지

정작 미국사회를 안정시킬수 있는 흑인 인권단체의 시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경찰에 대한 수사권을 한국 처럼 폐지 시키고 인종차별 범죄에 대해서는

흑인 인권단체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 철저히 공정하게 조사하여 처벌한다면

절대 미국 경찰의 공권력 악용을 함부로 그렇게 장난삼아 못할것이다

폭력이란것도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한번 그 재미에 빠지면 계속 하게 된다고 누가 그러는데

미국 경찰이 흑인들을 장난삼아 죽이고 셀프디스로 수사하여 간단히 종결처리 하니까

심심하면 그래도 되나보다 하고


개나 소나 그런일이 계속 발생하여 흑인들이 경찰에 대해 공포를 느껴 원인 제공은 경찰이 한 것이다

역시 한국도 문둥이 깽깽이 쓰레기 동네는 수사관이나 교도관까지 한통속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움직이며 미국 경찰이 흑인들 죽이듯

자신들의 비리를 파헤치면 그렇게 조직적으로 장난을 치며 미국의 인종차별 이상으로 누명을 씌우고 조작하는 것들이다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의 시나리오데로 목포해경이 삼성알바 노릇하며 세월호를 침몰시켜


만만한 경기도 단원고 애들 무려 250명을 포함하여 세월호 승객 304명을 산채로 수장 시킨 음모도 홍라희가 깽깽이 세력을 같은 편이라 생각했기에 끌여들였을 꺼고

또한 목포해경이 적극 가담하였다고 생각한다 흑인들은 시위라도 하며 불만을 표출하는데

경기도인들은 억울하게 죽은 단원고 애들을 위해서 진실을 밝히려 얼마나 노력하고 고민하려 무엇을 시도 했는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번에 세월호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래도 되는가보다 생각하고 언제든 다시 재발할수가 있다

어린학생이나 노동자들은 이해를 하지못해 그런다지만 경기도 서울 지식인들은 눈치만 보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 하니 공범이나 마찬 가지로 개가 웃을 일이다

1962년 퓰리쳐상을 받는 앵무새죽이기의 책에

백인을 강간했다고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 하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속 캐릭터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인간의 양심은 강자의 일방적인 다수결 원칙에 없다고 말하며

인종차별과 양심, 인간의 편견에 대해 묵직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야기 글을 적으며 인종차별의 야만성을 기록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미국의 국민적 여성 작가 하퍼 리 가 2016년 2월19일 89세의 나이로 별세 했다

아주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우리는 어머니의 품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대화를 할수있다


역사 교육이란 부끄러움을 배우는 교육이란 말이 있다

그 많큼 인류의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로 왜곡된 부끄러움의 역사이다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과오를 반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상대를 만났을때

비로소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올바른 대화가 시작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2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프렉텔 이론이 뭔지는 설명하면 길어 인터넷 검색해서 봐라

인간들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내 생각에는 우주는 물론이고 

지구보다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늣게 세상에 나왔으면서도

자신들만   생명이있고 지구나 우주는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생명이란 곤충은 물론이고 박테리아도 일종의 생명이다

쉽게설명하면 우주가 살아있기에 지구가 살아있고

지구가 살아있었기에 꽃이 피고  생명이 존재할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경락을 누르면 정반대가 활성화되듯

지구의 땅밑 지층도 인간과 똑같지는 않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해야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풀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상대를 존중해주는 문화에서 창의력이 생기고 위대한 발명과 상상을 언제든지 말할 수 있는것이다

종교들 특히 극단주의 이슬람신도들을 이용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추악함에

분노를 느낀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순진한 이슬람신도들을 극단주의로 세뇌시켜 이용하고 있는 것에 반성하고 참회여 변화하여야 한다

우주가 에너지를 잃고 살아있지 못하면 지구도 그렇고  인간도 생명도 살수가 없는것이다

우주가 살아있고 지구가 살아있었기에 생명과  인간이 나올수 있었던것이라고 생각하는건 절대 무리가 아니다

밤하늘의 별빛이 빛나는것은 우주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전에 헐값에 그림 한점 밖에 팔지 못하고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한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반고흐는 밤하늘의 별빛을 보고 태양의 불빛 같은 것이 아니라

공기 곧 산소가 빛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과학 지식이 지금 같지 않은  시절인데도

그 시대에 그런생각을 하다니 과학은 예술이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  지구와 우주가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 처럼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란 느낌이 드는 증거는

태어나서 처음  인지 하여 본 첫눈을   맞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에서 왠 솜같은것이 자꾸 떨어지나

하는  감격과  신기한  기억과

생애 처음 들은  크리마스케롤 의 감동과 

지금은 하도 먹어서 초코파이가 질려 잘 안먹지만 1976년인가

가계를 하던 우리집에 어느순간 오리온 초코파이가 왔는데 처음 먹는순간과  세상에 이렇게 맞있는 과자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어릴적 들은 처음 들어본 주옥같은 팝송의 노래는 정말 감성적인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면

20살때는 한국에 성매매가 합법이었다   당시 서울 천호동 텍사스 창년촌이 엄청크게 성황이었다

내가 길을 걸어가는데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장녀를 따라

처음으로 창녀촌에서 첫 성관계를  창녀 지만 21세 여자와 섹스를 했던 첫경험도

잊지못한다

누구에게나 첫경험은  잊지 못한다

그중에 무엇이 가장 좋냐고 묻는다면 부모중에 누가 낮냐고 묻는거야 같이 의미가 없다

내가 어린시절 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특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케롤이나

당시 히트 했던 팝송이나 가요를 길거리 상점이나 노점상들이 크게 틀어

어린시절에 듣고 언표로는 표현할수없는 아련한 감성적인 느낌을 어린시절에는 받았다

어린시절은 땅바닥에 자동차 그림을 그려 혼자 타고 놀아도

진짜 탄것처럼 늘 재미있고 세상이 아름다와 보였는데

거기다 아름다운 팝송을 들으면 정말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공감이 쉽게 되던 시절 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러운 세파에 상처를 받아서 그런지 그런 감수성이

어느세 거이 사라졌다 역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뿐 아니라 꿈과 희망도 함께 상실하는것인지 모른다

그 시절 듣던 많은 노래 중에

진주하 (Chelsia Chan)-graduation tears (졸업의 눈물도 있었다

그런 노래들이

삶의 고통에 지친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삶의 용기를 심어줄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저작권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순간부터 도시의 길거리에서 음악이사라졌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도 길거리에서 케롤을 듣지 못한지 오래다

비싼돈을주고 상점안에 들어가야 듣는건가

그러니 주머니 사정이 안좋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도 길거리에서 케롤를 듣지 못해서 그런지

외로움을 달래지 못하고 삶의 희망도 느끼지 못하는

따듯한 정과 낭만이 사라진것같다

우연히 들은 감동적인 노래로 포기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용기를 갇고 다시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허기야 요즘 노래는 그전 사람들이 듣기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과격한 노래들이 많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내글도 쓸땐 감정이 복발쳐서 좀 상스런 표현이 들어간 부분은 나중에 정리할땐 욕지거리는 빼야지

사실 나같이 이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당하였는데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자본주의다

미국은 로스챠일드가 한국은 상성공화국의 최상의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속칭 삼성공화국이 한국을 피라미드 지배구조 최상위층에서

한국의 자본과 권력을 지배하며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을 중지하자

주가가 급락하자 다시  자사주 사들여 삼성전자 주가를 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식들 중에  가장 총애하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이란 진실을 뒤늣게 알자
이건희 회장 암살 직전 파장을 우려해 미리  2014년 4월16일 세월호 계획 침몰 학살 시켜 나라를 뒤집고

한국을 정신없게 만들어   26일후  세월호 추모집회가 한참일때 2014년5월10일

 이건희 회장 암살을 조용히 덮은 홍라희 이재용

삼성알바 깽깽이 놈들이 내글을 매일

삼성그룹 법무팀에 고발을해도 이재용이 주둥이닫고 있는 이유는 내글이 진실이라 그런거야

이윤형이 죽었을때  당시 뉴욕 검.경 수사기록 검시기록 공개하는것도

문제지만

특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최지성에게 휠체어 타고 업무보고 받는다는고

곧건강을 회복할꺼라고 삼성이  조작하여

 뉴스로 보도된적이 있어서  

일원동 삼성 서울 병원 20층 특실 이건희 회장 병실을

검.경 이것들은 이건희 회장이 죽어 있어도 살았다고 구라칠것들이고

국과수도 삼성공화국의 개이고

검.경이나 국과수 이런것들은 자신들이 불이익 당하지 않는 개인과 개인 사건에 대해서나 수사하려 하지 

삼성공화국에겐 무조건 개야

그러니   공신력 있는 단체에 공개를 할수가 없어서 그래

공개하는순간 이건희  암살범으로 처벌 받아야 하는데 이재용이 하겠냐

삼성미래전략실장 최지성에게 업무보고 받고 건강이 많이 회복했다는 휠처어 타고다닌다는

삼성이건희 회장은 2년4개월 이상 년수로 3년째 접어드는 시점에도

삼성병원 병실밖을 한번도 나오지 않는데

삼성가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 왜에는 본사람이 전혀 없는데

아직도 살아있다고 거짓말하는데 한국의 검.경은 이건희 병실을 압수수색을 못하고 있다

삼성가 이윤형과 이건희 회장을 홍라희 이재용이  잡듯

  눈엣 가시인 나를   은밀히 청부살해 하거나 누명을 씌워 구속 시키고

경상도나 전라도 교도소로 보내  

공권력 악용하여 교도관들 시키거나 삼성알바 국정원 직원 교도관으로 가장해 침투시켜  누명씌워 사회에 못나가게 하거나  죽이고 사고사나 자살로 조작하여 처리하고   명예훼손 소송 걸어 구속시켰다고 하고 감옥에서 탈옥하거나  난동부리다 제압하는 과정에서  죽었다고 조작하려

 작당하는 홍라희 이재용 년놈들이 주로 쓰는 교활한 수법이다

프로야구 경기에 벤치 클레이어링  있는데

(벤치클리어링은(Bench-clearing)은 스포츠 경기 도중 덕아웃(Dugout)이나 불펜(Bullpen), 또는 벤치(Bench)에 있던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선수나 심판을 제지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가 싸우는 행동을 말한다. 야구나 아이스하키에서 자주 발생

야구에서는 상대 선수에 의한 빈볼(beanball) 시비나 판정 시비, 기타 상대 선수나 팀 코칭스텝에 의한 고의적인 자극으로 시비가 발생하였을 때 덕아웃이나 불펜에 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가는 경우가 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폭력시위인 것이다.)

경기도중 일대일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양팀선수 모두나와 같은팀 선수를 방어해 주는 것이다

같은팀 선수가 먼저 도발을 하며 잘못을 해도 무조건 편들어 주는것이다

그럴때 상대방 팀은 모두나와 벤치클레이어링을 해주는데

지금 삼성공화국의 더러운 음모에 맞서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나의 경우는

내가 속한 팀의 선수는 도와주질않아 숫적으로 열세로

일방적으로 당할수 밖에 없는 억울한 형국

 상대방선수가 먼저 모함을하고 욕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데 나는 자위권 차원에서 방어만 하는데 상대방 선수팀 떼거리가 모두나와 잘못이 없는 나에게 모든죄를 뒤집어씌우고

공격하는 형국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진실게임에서 나를 이길수 없자  모함하여 뒤집어 씌우려는 증거로

그렇지 않으면 그럽게 잡스럽게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릴 이유가 없다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 된다 그래서

이윤형 검시기록 수사기록 공개하고  이건희 회장 병실을 공신력 있는 단체가 공개하면 된다

그런 간단한 절차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대한 조직적인 모함을 하는것은 더럽고 치사한 짓이다

유명 탤런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나같은 사람을

전혀 보지도 못한 것들이 거짓말 소문을 퍼날르는것 자체가

삼성공화국의  계획적인 작품이 아니면 어떤 미친놈이 그러겠냐

특히 문둥이들은 대구태생의  이건희가 홍라희에게 당한것을 점점 눈치채는 형국이다

  돈받고 일하는 삼성알바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도 아닌데

 개거품 물고 거짓말하며  여기저기에 전혀 본적도 없고 유명인도 아닌

개인을 수많은 거대한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모함을 하는것처럼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은 없다

사실

국가와 사회는 벤치클리어링은(Bench-clearing) 하는

스포츠 경기와는  틀리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 특히 공무원은 더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세훈 전서울시장이 종편채널에 패널로 출연하여

정치적으로 오세훈은 큰피해자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벤치클리어링을 해주는 백그라운드가 있는데

오세훈은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학교에 다니고 조상은  경기 용인 이라

정치적으로 기댈곳이 없다고 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문재인 부모가 함경도가 고향인데

문재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사람이라고 하는데

경기 수도권 지역 출신은 진경준 처럼  서울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친구들에겐 서울이라고 했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는 부모로 이어받는 본적인 목포로 변경했다가 다시 정권이 바뀌니 서울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수도권이라고 하면  크게 기댈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부모의 고향이 그대로 대물림 받는다면 자신의 성씨의 본이 고향이라고 우기는것과 같이 비상식적이다

수도권 인구가 한국에 절반이 넘는다  

앞으로 20년후면  정치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것이다

그런것을 두려워하여 2세 심지어 3세까지

본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의 본적으로 영남인구 호남인구로 도매급으로 은근히 넘기려는  언론과 방송 정치권이 있고

인구를 분산시키려  수도를 세종시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역시 현재 사법고시 합격자의 대다수가 수도권 출신이라

로스쿨을 만들어 분산하려는 의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거듭말하지만 이런 지역적인 이기주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일국 다국가 체제로 법제도를 바꾸어야한다

중앙정권에서 국방과 외교권을 갖고 의원은 각도에서 뽑아 그도를 위해서일하고

그래서 시의원 도의원을 뽑지않아도 된다

각도의 의원은 국방과 외교권 그리고 중대한 발전소나 무기생산공장 연구소  국방 비행장 댐 등 .국책사업으로 돈이 많이 필요할때를   위한 법체계를 만들거나  건설할때만 중앙정부의 권한으로  함께 모여 투표로 결정하고

사법.행정 .경제등에 관한 법률은 각도에서 알아서 결정하고 권한을 행사한다

다만 사법 경찰 국방 인사는  중앙 정부가 행사한다

각도의 시민은 자유로운 이주의 권한을 갖대

귀화 외국인은 다른도로 이주할때는 새로운 이민심사를 받아서 통과한 사람만 가능하다  

죄를 지은 각도의 교도소 수용자는 각도에서만 이동할수 있게 한다

다만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도로 도피중인자는 사건발생 관할지역에서 언제든지 수사할수 있고 각도가 정보공개를 할수 있고 공조수사를 하고  범죄인 인도조약을 할수가 있다  한다 어느도에 투자할지는 기업인이 자유로이 결정한다

이런식으로 한다면 각도의 경쟁률과 애향심이 더욱 높아지고 발전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역간의 적대감은 사라질것이다 그리고 프로스포츠 등이 훨씬 발전할수가 있다

그리고 각도를 지나 여행할때는 외국여행하는 새로운 느낌이 들것이다

수도권은 벤치클리어링 같은것을 할수가 없어  역차별 받으며 불이익을 당할수 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수도권 출신인 나와 경기 안산  단원고 애들을 희생양으로 삼성공화국 홍라희 이재용이

심사숙고 하여  삼은 것이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변한다

6.25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에  똑똑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죽고 북으로 납치되어가

전통이 상실하여 인구부족과 새롭게 터전을 만들어야 했던   서울과 수도권에  지방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빈공간을 차지하여 세월이흘러

그들의 후손들이 토착화되어  한국에 절반이 넘는 인구로 인해  

앞으로 한국에 정치적으로 엄청난 힘을 밝휘할꺼라는건 시간문제라고 누구나 예측할수가 있다

실제로 고교농구 고교배구 고교야구 등  고교 스포츠  전국대회 우승팀과 4강이 가장 많은게 수도권팀이고 서울대 합격생과 판검사 임용자도 가장많은게 역시 수도권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커녕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는다 역시 정치적인 세력의 응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즘 정세균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초유의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다

시정잡배도 아니고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정도 되면 품위를 지켜야

국민들이 본받는다

서민들이 볼때 최고로 출세하여 혜택받으며 편이사는것들이 무슨욕심들이 그렇게 많아

시정잡배만도 못한 행동들을 하는가

물론 국회의장뿐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국민의 세금을 받고 사는것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국민들이 지역이기주의로 이익을 챙기려 할때

그들이 나서서 그렇게 못하게 중립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분열이 안되고 통합의 길로 갈수있는 단초를 제공하는데

위에 있는 것들부터 그렇지 못하니 나라꼴이 말이아니다

2014년5월10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암살하기 오래전부터

홍라희 이재용은 자신들이 불리할때  이용하려

2011년 12월1월  부터  모두 5차례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조작극을 만들은

정말 치밀하고 교활한 것들이다

내가 2011년 10월 초부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배다른 막내딸 이윤형을 암살한게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인걸 확실히 알고 결국 이건희 회장에 알릴 목적으로

여기저기 알리기 시작하자

결국 이건희 회장이 진실을 알꺼라고 판단한 홍라희 이재용이

이건희 암살을 염두에 두고 미리 성매매 조작 동영상까지 만들은 파렴치범들이다

지금까지 내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삼성에서 이건희 회장 병실은 공개하지 않고 계속 거짓말한 증거가 많고

그외에도 여러 증거가 있어

이건희 회장을 암살한 홍라희 이재용 패거리들이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날 희생양으로 엮어 누명씌워

내글이 책으로 나가면 삼성그룹이 망한다고

거금의 현상금을 걸어 날 청부살해 하거나 누명씌워 엮으려   삼성가에서 현상금까지 걸어놓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삼성의 자본에 지배를 받는 방송과 언론의 조작된 뉴스를 맹목적으로 믿으려 하고있다  학력이 낮고 IQ가 낮은 사람일수록 더하다

지식인들은 어느정도 삼성가의 비리를 알면서도 자신들이 살기위해 또는 한국의 경제를 위한다는

핑계로 침묵만 하고 있다

플래시백의 모든 글은 사실을 바탕으로 적은 글이다


사실 이글에 인용된 저명한 인물들이 집필한 과학서적이나 철학서적 종교서적 문학서적은

내가 삼성 오너들에게 당한 일이 내가 무지하고 어리석어 삼성 오너들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어 누명 당한게 억울하여

교도소에 수감중일때 특히 청송2교도소에 있을때 교도소에 배치한 서적을 생애 처음으로 열심히 읽고 특이점들은 메모하여

나의 글에 인용 하였다 삼성공화국 이라는 한국에서 삼성그룹과 관련된 글이라
삼성의 압력에 의거해 책으로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기는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 하면 삼성공화국 에서 출판을 하려고한 출판사를 삼성에서 자금줄 차단 하여 부도처리 하거나
거대한 인맥과 거금을 동원해 당근 작전을 벌여 출판을 못하게 여러 가지 방해 작전이
있을게 뻔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겁을 내지 말고 내글을 세상에 알릴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만약에 삼성에서 명예훼손 소송이 들어 온다면 내가 다 책임 질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를 저작권 자로 내 이름으로 출판해 주기 바랍니다 삼성가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건다면 이윤형 검시기록과 수사기록 이건희회장 병실을 열어 공개 해야 하기에
못거니 안심 하십시오 내글을 읽고 이해하여 내글과 진심이 세상의 양심에 알려져
인류의 후손들은 나같은 누명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주하 (Chelsia Chan)-graduation tears (졸업의 눈물) -click동영상 나옴

Memories" T(Tasha) [English sub (영어 부제)] - YouTube

2009. 6. 26. - 업로더: timed noyb

A subtitled version of a live performance of "Memories" , by Korean rapper T (<wbr />Tasha) 윤미래.

Beyoncé - Crazy In Love (Live) - 길이: 4:05 beyonceVEVO조회수 22,543,875회

BoA - No.1, 보아 - 넘버원, Music Camp 20020420 - YouTube-click -엔딩 곡으로

윤미래 - 하루하루 라이브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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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x) 에프엑스 - Live in Paris - 길이: 13:39 i1we조회수 489,495회

-click

Kpop Star 4 릴리 M If I Ain't Got You 앨리샤 키스 - Video Daily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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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lee (에일리) - Donde Voy [Music Bank HOT Stage ...

▶ 2:57


https://www.youtube.com/watch?v=GqoU6pfqsqc -click- 클릭 동영상 나옴 -이곡을 처음 시작의 주제곡으로

동영상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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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이 완성되어 영화로 제작하면 처음엔 조용히 서울의 동대문 이스턴 호텔 근처와 명동 지하상가와 교보문고 등에서 미국으로 여행갈 물품을 준비하기 위해 007 가방과 양복등 옷과 구두와 미국 여행안내 책자등을 구입하여 월세방을 나와서 지하철을 당시 김포 국제공항 제2청사 로비로 향하는 모습을 아련히 다큐멘타리식으로

김포국제 공항 제2 청사 로비에 올라와 여행객 들과 가이드를 발견할때 까지 아련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배경음악으로 아련하게 나오다가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Ailee Uskudar'a gider iken + U&I + I Will Show You Music Bank in Istanbul - 길이: 9:25 Ibbahh Xinerix조회수 265,922회

Live박화요비화요비 Lie - YouTube

Charice-Listen - 길이: 4:06 2welve4ever조회수 10,937,218회

Mariah Carey - Without You (Official Video) - YouTube- 이부분 클릭하면 노래 동영상 나옴 여동생의 죽음을 알았을때 나와 어머니가 절규 하는 슬픔모습에 배경음악으로 선곡

Elvis Presley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 이부분 클릭하면 노래동영상 나옴 내가 미국 x테네시 멤피스 엘비스프레슬리 고향을

그레이하운타고 지나갈때 잠시 배경음악으로 선곡

Alicia Keys - Empire State Of Mind (Jessica HO Cover)- 이부분 클릭 하면 노래 동영상 나옴 제시카 노래는 미국 맨하탄 도착할때


▶ 3:45


https://www.youtube.com/watch?v=ozeN64sL1ms-click


[Newton Family] 뉴튼 패밀리/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 - click-하면 동영상 나옴


5147429567^http://cafe.daum.net/4050purple/poPz/1352?q=%BD%BA%B8%B6%C0%CF%20%BE%

<g-img class="_ygd">마야 쿨하게 동영상</g-img>▶ 2:58


https://www.youtube.com/watch?v=VLNA1z2W-Sk

<g-img class="_ygd">럼블피쉬 동영상</g-img>▶ 4:05

2009. 1. 12. - 업로더: Kane Kang
OBS 경인TV http://www.obs.co.kr 주철환 김미화의 문화전쟁 라이브. http://www

<g-img class="_ygd">박정현 꿈에 동영상</g-img>▶ 5:53


https://www.youtube.com/watch?v=8crYjX7ea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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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3. - 업로더: mizu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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