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표 33인 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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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 일생 마칠 것…독립운동 표면 못 나서" 이유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2019-03-01 09:00 송고 | 2019-03-01 11:44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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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표 33인 왜 음식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준비 중인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3ㆍ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에 기미독립선언서가 전시되어 있다. 2019.2.2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의 당위성과 독립국으로서의 조선, 자주민으로서의 조선인을 선언한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전 민족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 맞서 떨쳐 일어난 3·1운동의 시작이었다.

천도교 대표 15인, 기독교 대표 16인, 불교 대표 2인 등이 서명한 선언서는 그해 2월28일부터 2만1000장이 인쇄돼 전국 각지에 뿌려졌다. 이어 3월1일 서울 인사동의 요리점인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각각 열린 선언식에서 낭독됐다.

선언서의 초안은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문인 육당 최남선이 작성했다. 그는 벽초 홍명희, 춘원 이광수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불리는 인물로, 일찌기 도쿄에서 유학하며 신문물과 학문을 접하고 잡지 <소년>을 발간하는 등 출판과 집필 활동을 활발히 벌여 왔다.

천도교 인사인 최린이 그를 선언서 작성자로 추천한 것도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명성과 문장력 등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최남선은 이 일로 3·1 운동의 주동자로 지목, 체포돼 일제로부터 2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남선은 초고를 작성하고도 정작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서는 빠졌다.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언서 작성에는 참여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뒤늦게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 선언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며 자신이 선언서를 쓰겠다고 나섰으나, 이미 선언서 초안이 완성돼 다듬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한용운이 여기에 공약 삼장을 덧붙이면서 우리가 아는 기미독립선언서가 완성됐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인도주의와 민족 자결주의에 입각한 비폭력·평화적 독립을 제시했으며 3·1 운동의 도화선을 당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작 선언서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크게 기여했던 최남선은 1927년 조선총독부 어용단체인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친일 협력에 뛰어들면서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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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서 항거한 민족대표 33인의 활동을 새롭게 기억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문제와 독립운동 전문 연구자인 현 국무총리 비서실장 정운현이 3·1운동을 기획·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한 대중서 『3.1혁명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3·1운동을 조직하고, 거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33인 대표 중 끝내 일제에 굴복해 친일부역자가 된 사람은 겨우 3명에 불과했다고 이야기하며 기존의 편견을 깨고 10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33인의 행적을 당시 재판기록과 신문자료 등을 뒤져 한 명씩 꼼꼼히 재정리하고, 완성된 원고를 유족들에게 회람시켜 감수를 받아 오류를 바로잡아 그들의 행적을 재조명했다. 또 상해 임시정부 등 당시 민족진영에서 3·1혁명, 3·1대혁명이라고 부르던 명칭을 다시 회복시키자고 주장하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대신 3·1혁명으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한다.

작가정보

1959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고려대언론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1984년 중앙일보 입사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입문하여 서울신문 차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을 지내며 2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1980년대 말부터 친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자료 수집과 취재를 해왔으며, 이런 인연으로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상지대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록 군인 박정희』,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전 4권)』, 『임종국 평전』, 『친일파는 살아 있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안중근家 사람들』, 『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 소설집 『작전명 녹두』(전 2권), 『혜주: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대담집 『쓴맛이 사는 맛』 등이 있다.

목차

  • 책을 펴내며

    1. 손병희 천도교 창건 후 ‘3·1혁명’을 기획·연출한 민족지도자이자 경세가
    2. 길선주 한국 최초의 목사, 새벽기도 창안한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
    3. 이필주 구한국 군인·체육교사 출신으로, 감리교 대표로 선언서에 서명
    4. 백용성 풍금 치고 ‘찬불가’ 작곡, ‘선농일치’ 실천한 불교개혁론자
    5. 김완규 <천도교회월보> 첫 발행인, 해방 후 다양한 정치·사회활동
    6. 김병조 임정 사료편찬 참여, 해방 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서 사망
    7. 김창준 미국 유학 후 신학교수 활동,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8. 권동진 구한국 무관 출신, 천도교 핵심 3인방으로 3·1혁명 추진
    9. 권병덕 최시형 도와 동학혁명 참여, 시천교 등 거쳐 천도교에 귀의
    10. 나용환 진보회 ‘평양 민회’ 회장, 천도교 중앙총부 중진 역임
    11. 나인협 ‘갑진개화운동’에 적극 앞장, 해방 후 북한정권에 맞서다 월남
    12. 양전백 ‘105인 사건’으로 옥고, 선천 지역 2세 교육에 앞장서다
    13. 양한묵 유일한 호남 출신으로 서대문감옥에서 옥사한 천도교 이론가
    14. 유여대 교육자 출신으로 태화관 참석 대신 ‘의주 3·1만세시위’ 주도
    15. 이갑성 유일한 민간인 출신으로 학생동원·선언서 배포에 크게 기여
    16. 이명룡 ‘105인 사건’ 때 옥고, 해방 후 월남하여 애국선열 현창사업 펼치다
    17. 이승훈 사업가 출신으로 오산학교 설립해 민족교육에 재산과 몸 바치다
    18. 이종훈 33인 중 최고령자, 사회변혁·천도교 혁신운동에 앞장
    19. 이종일 언론인 출신으로 천도교 비밀조직 이끈 독립선언서 인쇄 책임자
    20. 임예환 ‘갑진개화운동’에 적극 앞장, 해방 후 북한에 잔류·사망
    21. 박준승 동학혁명 참여한 천도교 중진, 권동진 권유로 33인 합류
    22. 박희도 독립선언·필화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 끝내 친일로 변절
    23. 박동완 신간회 시절 재만동포 구호사업에 앞장, 하와이에서 타계
    24. 신홍식 이승훈 권유로 민족대표 참여, 절제·청년·농촌운동에도 맹활약
    25. 신석구 신사참배 거부로 구금, 해방 후 북한정권에 맞서다 처형
    26. 오세창 개화파 오경석의 아들, 언론인·서예가로도 이름을 날리다
    27. 오화영 일제 때 세 차례 옥고, 해방 후 정계에 투신하다 납북
    28. 정춘수 기독교 황민화에 앞장, 청주 삼일공원 동상 헐리다
    29. 최성모 신민회 회원 출신, 3·1혁명 출옥 후 만주에서 전도사업
    30. 최린 손병희가 총애한 천도교 핵심, 가출옥 후 친일로 변절
    31. 한용운 시인·승려 출신으로 신간회서 활동, 불교대중화에 힘쓰다
    32. 홍병기 손병희와 동학농민전쟁 참전, 고려혁명당 이끈 천도교 중진
    33. 홍기조 홍경래 후손으로 천도교 포교 활동에 큰 공로 세우다

출판사 서평

●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60년만의 재조명
이 책은 친일문제와 독립운동 전문 연구자인 정운현 선생(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운동을 기획ㆍ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한 대중서이다.
그동안 <3ㆍ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개별적으로 연구한 논문들은 더러 발표되었지만, 33인의 행적을 전체적으로 다룬 책은 1959년에 나온 오재식의 《민족대표 33인전》이 유일하였다. 학계와 대중의 무관심 속에 꼭 60년 만에 33인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하는 책이 나온 셈이다.

● 민족대표 33인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평가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계 2인 등 모두 종교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종교계 이외에는 조직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적 구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33인의 성격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평가해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본래의 계획대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열고 참석한 학생ㆍ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부정적 평가를 부채질했다. 또 33인의 대표 대부분이 이후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친일로 전향했다는 잘못된 선입견도 가세했다.
그러나 3ㆍ1운동을 조직하고, 거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33인 대표 중 끝내 일제에 굴복해 친일부역자가 된 사람은 겨우 3명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편견을 깨고 10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33인의 행적을 당시 재판기록과 신문자료 등을 뒤져 한 명씩 꼼꼼히 재정리하고, 완성된 원고를 유족들에게 회람시켜 감수를 받아 오류를 바로잡았다.

● 기존 연구성과 충실히 반영한 새 대중서
저자는 또 학계의 최신 연구성과를 충실히 반영하여 그동안 잘못 알려진 내용도 바로잡았다.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의 초안은 최남선이 작성하고 <공약 3장>은 한용운이 기초한 것으로 이제까지 알려져 있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최남선이 <독립선언서>와 <공약 3장>을 모두 기초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창준, 오화영 등 해방 이후 월북하여 북한의 국립묘지(애국열사릉)에 묻힌 민족대표들의 묘소 사진도 담았다.
저자는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에 대해 “평자의 시각, 역사관 등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33인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선언서는 한낱 불온유인물에 불과했을 것이며, 전 민족적 거사에 불을 붙이진 못했을 것”이라 평가하고, 3ㆍ1운동을 이끈 공로는 결코 폄훼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 3ㆍ1운동이 아니라 3ㆍ1혁명
저자는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3ㆍ1운동’ 대신 ‘3ㆍ1혁명’으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한다. 상해 임시정부 등 당시 민족진영에서 ‘3ㆍ1혁명’, ‘3ㆍ1대혁명’이라고 부르던 명칭을 다시 회복시키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3ㆍ1혁명’으로 달았다.
일제강점기, 가장 혁명적이고 가장 거족적인 반일운동이었던 3ㆍ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지만, 손병희, 한용운 등 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 인사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책이 일제에 맞서 항거한 민족대표 33인의 활동을 새롭게 기억하고, 3ㆍ1운동에 참가했던 수많은 민초들의 애국적 헌신을 올바르게 새되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ISBN9791186828120 ( 1186828129 )
쪽수472쪽
크기

154 * 225 * 28 mm / 775 g

총권수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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