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럿이 모이면 누군가를 괴롭힐까

이렇게도 살뜰한 우리말을

李 勳 鍾 / 전 건대 교수.고전 문학

▷ 깨가 쏟아져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깨가 쏟아지게 하슈?"
    흔히 듣는 얘기다. 결혼하여 새살림을 차리거나, 사업이 번창해 바쁘게 뛰는 이들에게 재미가 날거라는 뜻으로 애용되는 표현이다. 한여름 그 힘들던 농사일을 거의 모두 마치고, 건들바람이 일 때쯤 하여, 맨 먼저 수확하는 것이 참깨다. 밭에서 엔간히 여물면 서둘러 베어다가 주저리를 묶어서 집 위 산소 제절 같은 데 늘어 세워 말린다. 누렇게 색이 변하고 송이송이 입을 벌리면, 홑이불을 펼쳐 놓고 떠는데, 한 줌씩 나눠 쥐고 흔들거나 막대기로 톡톡치면 솔솔솔솔 그 쏟아지는 재미라니! 그래서 재미나는 중에도 제일가는 것으로 뽑힌 것이다.

▷ 조바심을 한다.
    깨 타작과 가장 대조적인 것이 조의 수확이다. 조나 수수는 가지런히 익는 것이 아니고, 또 참새 떼의 극성에 못 이겨서 익는 대로 따라다니며 이삭을 자른다. 그러니까 부지런한 아낙네가 몇 바퀴 거쳐 지나간 뒤에는, 조인지 가라지인지 모를 형편없는 이삭만 고개를 추켜든 채 바람에 흐느적거린다.
    이렇게 잘라서 모은 조 이삭은 이제 떨어야겠는데, 이놈은 귀가 질겨서 여간 도리깨 따위로 두드려서는 곡식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 비비고 문지르고 가진 애를 쓰는데 이것이 조바심-바심이란 타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몹시 초조(焦燥)하여 안절부절을 못하면 '왜 그리 조바심이냐'고 하는 것이다.

▷ 어리깍지동 같은 몸집
    경작지를 지나다 보면 재미있는 것이 콩밭이다. 두럭 지어 심어 놓은 가운데로 으레 키 큰 수수가 줄맞춰 심겨 있는데, 꼭 그래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길섶으로 들깨를 한 줄 심어 놓으면, 지나다니는 소가 냄새를 꺼려 콩을 개개지 못하듯이 말이다.
    콩도 아주 여물어 튀기 전에 거둬 들이는데, 같은 밭에서 자라 이미 목이 잘린 수숫대를 베어 깔고 그것으로 포장하여 동을 짓는다. 그리고 통째로 들어 지게에 짊는 것이다. 미리부터 포장재를 같이 심어서 키우다니 멋진 착상이다.
    빈틈없게 하는 것이 매는 것이라, 쩔쩔맨다, 헤맨다, 꿰맨다, 처맨다, 김을 맨다~맺는다, 매듭을 짓는다, 그렇게 맨 것이 매끼고, 바짝 조여서 꼼짝없이 하는 것이 짜는 것이며, 짜더라도 얼기설기 사이를 떼어 놓는 것이 얽는 것이다.
    한뭇 두뭇 뭇을 짓는 것이 묶뭇는 것이고, 이렇게 덩치 크게 동을 짓는 것이 동이는 것이며, 무척 많던 것이 다 없어져 바닥이 났을 때 동이 났다고 하는 것도 이것이며, 얽어맨다 동여맨다는 복합해서 이뤄진 말들이다.
    콩동을 헤쳐서 마당에 널고 햇볕이 쨍쨍 내리쪼일 때 보면, 누가 건드리는 것도 아닌데 꼬투리가 뒤쳐지며 저 혼자 튄다. 그러기에 제 성미를 제가 못 이겨서 팔팔 뛰는 사람보고는 콩 튀듯 팥 튀듯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널어놓았다가 도리깨로 두드려서 알곡을 거두고 남는 것이 깍지인데, 이것을 거둬 모아 먼저 번수숫대로 다시 포장을 해서 비 안 맞게 세워 놓는다. 이것이 깍지동이고 무게도 별로 안 나가는 것이라 두 개를 얼러서 동이면 어리깍지동이다. 그래 몸집이 하 우람하게 뚱뚱하면 이런 말로 나타내는 것이다.

▷ 밭밑콩
    옛말엔 "언(堰)막이 뚝막이하는 자식 낳지도 말랬다"고 하여 제방 공사를 집안 망할 행동으로 꼽았다. 뜻 있는 일이건만 한 번 개력이 나 터지는 날에는 거덜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날 옥토가 된 냇가의 평지는, 사행(蛇行)하여 유로(流路)가 자주 바뀌는 바람에 거친 땅으로 버려져, 석양에 송아지가 풀이나 뜯는 처량한 경관이 처지에 펼쳐졌었다.
    자연 밭농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흉년에 쫓긴 백성은 화전(火田)을 일궈 먹어서 산림을 황폐시켰다. 조석 끼니에는 으레 콩을 두는 법이어서, 밥할 때 밑에 깔고 짓는다 하여 밥밑콩이란 이름마저 통용되었다.
    그래 지천(至賤)으로 많이 생기는 콩깍지는 자양분도 있어서 겨울철 소먹이로 그만인데, 너무 단단해 먹어 삭일 수 없어 물을 붓고 삶아야 했다. 이것이 소죽이 생기게 된 내력이라, 여물에 등겨나 섞어 먹이면서, 꼭 죽을 쒀야 한다고 고집할 것은 못되는 것이다.

▷ 까불지 마라
    거둬 드린 곡식을 방아에 넣고 찧어 내면, 그것을 나눠서 키에 받는다. 출석출석 솜씨 있게 까부르면 무거운 곡식알은 앞으로 쳐지고 토막 난 싸라기는 바닥에 남으며 가벼운 겨는 날려 나간다. 그러면 킷전을 톡 쳐서 튀어오르는 싸라기를 바가지로 챈다. 기민하게 해야 하는 때문에 낚아챈다는 말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곡식알을 옆의 그릇으로 쏟아 붓는 것이다.
    이 키질하는 동작은 출석출석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것이라, 경망하여 진득하지 못한 아이들을 나무랄 때 동원이 된다. 여럿이서 받고 채기로 별의 별 소리를 다하며 재잘거리면 찧고 까부른다 고까지 하는 것이다.

▷ 달달 볶는다
    옛날엔 며느리 들볶는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다. 들볶다니? 한 번은 콩 볶는 현장을 보았는데, 솥 안의 콩이 타지 않게 주걱으로 계속 부지런히 젓는다. '옳지 조게 바로 달달 볶는 것이로구나!' 고렇게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게 하다니 참으로 곱지 못한 심보다. 음식 조리할 때 볶는 것도 국물을 적게 잡아 타 붙지 않도록 익혀내는 것이다. 떡볶이 닭볶이......
    "왜 이렇게 조련질이냐?"
    이 역시 볶는다는 얘긴데 조금은 점잖은 표현이다. 조련(操練)이란 군사 훈련인데, 훈련 중에도 진법(陣法) 연습하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그러기에 한술 더 떠서 지랄 십진을 한다고까지 한다. 십진은 습진(習陣), 깃대 두르는 신호를 따라 대형(隊形)을 바꿔 적을 포위하는 연습이, 지휘자는 몰라도 열 중의 사병은 죽을 지경이다.

▷ 골대짓을 한다
    저 잘난 체하는 자더러도 골대짓을 한다라고도 하고, 철모르고 날뛰는 사람더러는 하늘을 쓰고 도리질을 한다고 한다.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농악대의 상모를 달고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냥 내두르는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농악대원들이 모두 고깔을 쓰고 있어도, 지휘자인 상쇠잡이는 언제나 군대식의 전립을 쓰고, 거기엔 짤막한 상모가 달려 있다. 그들의 연기를 눈여겨보면, 상모를 발딱 세&울 적마다, 장단이 바뀌고 그러면 으레 대원들은 진형을 바꾼다. 이것이 옛날 군사 훈련의 기본이다. 그러니까 지휘자는 구령도 손짓도 필요 없다. 말 위에 높이 앉아 고개를 끄떡끄떡, 그때마다 흔들리는 골대짓으로 자신의 부대를 지휘했던 것이다.

▷ 실랭이를 하다니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신래(新來)라 하여 영예가 대단하였다. 그러나 만사에 고도로 충만하는 것을 경계하는 전통이라 "신래 위이"하고 신래를 불리면 옷을 찢고 얼굴을 먹칠을 해 희묵(戱墨)을 하고, 그 괴롭히는 것이 신난다는 것만큼이나 짓궂었다. 그래 몹시 괴롭힐 때 실랭이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십 년을 공부하여 일생일대의 결심으로 과거장엘 나가 노심초사해 짓고 써서 들이뜨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그러나 방(榜)이 나붙으면 모든 게 끝장이다. 이것이 탁방(坼榜)난 것이다.

▷ 감기가 들었다
    아프다 고프다는 앓다 곯다에 브다가 덧붙어서 생긴 말인데, 아픈 데도 많고 종류가 많다. 그런데 감기는 꼭 들었다고 한다. 높은 데서 떨어져 골병이 들었다. 이렇게 원인이 밖에 있어서 몸 안으로 들어온 병은 내어보내야 낫는다. 아스피린이나 웅담(熊膽)을 먹고 땀을 쭉 흘려야 그런 병은 나아간다.
    반대로 몸살이 났다 하는 식의 나는 병이, 원인이 안에서 누적돼 생겨나는 것이라, 푹 쉬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걸리는 병, 예를 들어 피부병 화류병 같은 것은 잘못하면 걸리는 것이라, 아예 조심해서 걸리지 않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그런데 한다로 표현되는 병이 있다.
    "나도 이놈아! 홍역(紅疫)마마 다 한 놈이다"
    옛날엔 으레 한 번을 앓는 병이어서, 이 두 가질 다 했다면 당당한 대장부요, 실제로 앓지 않았더라도 홑으로 보지 말라는 홑은 외겹, 얕이 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병은 꼭 면역성이 있어서 되풀이 해 앓는 법이 없다. 그래서 한다는 것이다. 듣기조차 꺼림칙한 장티푸스, 토속적인 말로 염병(染病), 이러한 유의 병에 걸렸으면 도리 없이 그저 순조로이 곱게 앓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서울 지방의 지독한 욕으로 땀을 낼 놈하는 것은, 이 병은 땀만 흘리면 낫는 것이라, 죽지는 말라는 것이니, 조금은 애교(?)가 있을지 모르나, 하라는 전제가 따르니 욕은 역시 욕이다.
    물고 뽑은 듯이 낳았다
    "그 색시 30이나 넘어 시집가더니, 아들 3형제를 물고 뽑은 듯이 낳았네"
    아기를 어떻게 물고 뽑는담?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오르면, 버들피리-호들기-를 만들어 불었다. 먼저 가지를 꺾어 들고 밑둥서부터 틀어 올라가 적당한 데서 칼로 끊는다. 그리고는 3지(三指) 놓이 정도 길이 되게 칼날을 대고 궁굴린다. 하나 둘 셋..., 그런 뒤에 밑둥 쪽을 어금니로 지긋이 물고 끝의 것서부터 뽑는다.
    "엄마 빠빠 엄마 빠빠"
    그리하여 하나 뽑고 둘 뽑고...이것이 물고 뽑는 것이다. 그 끝을 접어 칼로 훑어서-혀를 내면 피리가 되는 것이다.

▷ 불길을 잡아라
    새싹이 돋을 무렵 산에 갔다가 혼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버린 담뱃불이 번져서 타 나가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고, 솔가지를 젓겨서 빗자루처럼 만들어 들고 앞질러 가면서 후려쳤다. 진로가 막힌 불은 저 혼자 멎었다. 불은 타 나아가는 것이어서, 화재가 났다면 불길을 잡았느냐고 묻지 불을 껐느냐고는 묻지 않는다.
    역시 산에 오르다가 골짜기에 들어, 옷자락이 감기고 손등을 긁히고 가시덤불에 걸려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이없어 웃었다. 산은 타는 것이거늘 골짜기에 들어 고생을 하다니...그래 그 구렁을 벗어나 등성이로 올랐다. 그리하여 등성마루를 타고, 사방의 조망(眺望)을 즐기면서 무사히 하산하였다.

▷ 볍씨를 친다
    산책을 다니면서도 미안한 줄은 알아야 한다. 특히 농사짓는 이들의 일터를 지날 땐 조심이 된다.
    못자리를 할 때면 미리 하루 앞서 볍씨를 담근다. 그랬다가 갈고 써려서 곤죽을 만들어 놓은 위로 볍씨를 친다. 다른 종자처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후려쳐 던지는 것이다. 그래야 볍씨가 콕콕 박혀서 그날 밤 바람이 불어 물이 출렁거려도 씨가 흔들려 몰리지 않는 것이다.
    모를 낼 적이면 논을 갈고 써리고 하여 삶는다. 불에 익혀서 삶는 거나 같은 말이어서 눈이 녹아 길이 무척 질면, 논 삶아 논 이 같다고도 한다.
    못자리에서는 부지런히 모를 쪄내는데, 이것은 그 동작을 해 보면 안다. 빠듯이 뿌리가 뻗은 모를 한 줌씩 바짝 쥐고 짝소리가 나도록 수평으로 당겨야지, 섣불리 추켜들었다가는 모 허리가 부러지고, 흙이 덩이로 달려 올라와 헹궈내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그래서 모는 찢듯이 쪄야 하는 것이다.

▷ 춤을 추는 것이다
    한 번은 어느 회갑 잔치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한축 놀고 난 뒤 장구채를 쥐었던 그 방면 노인이 그런다.
    "어디서 춤을 제대로 배우셨구랴!"
    그런 인사 받을 연유가 있다. 어느 나라고 빙빙 도는 것과 겅중겅중 뛰는 동작으로 구성해 무(舞)와 용(踊)이란 말이 따로따로 있건만, 우리말에서는 그것저것 없이 그냥 춤이다. 춤이란 추켜올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깨를 추켜올리고 무릎을 굽혔다 추어올리는 동작이 장단에 맞아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춤에도 명수인 그 노인은 내 설명을 듣고 감탄을 한다. 평생을 두고 춤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런 오묘(奧妙)한 이치는 미쳐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미안해서 몸둘 곳을 몰랐다.

▷ 신이야 넋이야
    "야! 놈들 한번 신나게 논다."
    "걸신이 들렸는지 쳐먹긴?"
    걸신은 거지 귀신이다. 신이 들렸다는 것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었다는 뜻이다. 모두 샤머니즘 굿 행사에서 온 말이다. 제가 제 말에 도취해 떠들어대면, 넋이야 신이야 넋두리를 한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의 마지막 하직인 지노귀 굿을 할 때, 망인의 넋이 무당에게 들려서, 평생에 못 다한 말을 모조리 쏟아 부어 말하는 과장(科場)이다.

▷ 마무리
    물고기를 트럭으로 한 차를 주어도 그것 다 먹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구를 마련하여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두고 잡아서 먹을 수 있다. 대견하고 고마운 우리말의 참멋을 무슨 수로 다 옮기겠는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 주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왜 여럿이 모이면 누군가를 괴롭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