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니

이날도 아침 시발 택시 한 대가 찻길에서 인도 쪽으로 굴러들어온다.

맹기호는 발걸음을 빨리 옮겨서 쫓아갔다.

「합승 안해요?」

눈치가 좀 다르다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손님을 청하는 것이 아니요, 독차로 누가 부른 모양이다.

버젓이 오르는 사람은 한 청년 신사다. 이 차를 부른 사람이 분명하다. 맹도 이제는 좀 졸업을 해서 누가 부른 차든지 좀 같이 타자는 배짱을 부리게 되어서 처음엔 물러섰다가 덮어놓고 올라탔다. 택시를 부른 젊은이 눈치가 타도 좋다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앉아 있었다. 어느 틈에 뒤에도 한 사람 타고 앞에도 두 사람이 탔다.

「좀 빨리 갑시다. 응, 이거 늦겠는데!」

아직 아홉 시는 멀었는데 이 택시 부른 사람이 퍽 조바심을 하고 서두르는 걸 보니 어떤 관청에 다니는 사람으로 여덟 시 반까지는 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생각해서 공연히 애가 쓰였다.

차가 종로에 와 닿았다. 그는 화신 앞에 내려 달라고 청했다.

「합승이 아닌데요.」

「일행입니다.」

택시를 부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운전수는 말이 없다.

고마운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목례를 잊지 않고 내렸다.

물론 백 환짜리를 그에게 주었다. 기특한 사람이 있다. 요새 젊은이로 쉽지 않은 사람이다,생각을 하면서 그는 화신 앞을 서쪽으로 돌아 안국동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몇 날 전이었다. 전차는 벌써 만원이 되어서 오는 것이라 매달리거나 떼밀고 비비대고 들어가지 않으면 탈 수 없고, 더구나 버스는 말할 것도 없으니 벌써부터 단념을 한 것이고 합승을 타기로 한 그였다.

요새는 가끔 보통 택시가 와서 합승을 하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해서 이용을 해 왔는데,이날도 좀 큰 차가 하나 굴러서 인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맹은 택시인 줄 알고 달려갔다. 택시가 아니요 합승이다. 노우타이 잠바짜리가 왁 달려든다.

여느 때는 그런 경우에 애써 탈 생각도 아니하고 물러서던 그가 이날따라「에라,한번 대들어 보자」하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타기는 탔다. 정신없이 탔다. 전 같으면 탈 염도 못했지만 타려고 하다가도 밀려나오고 마는 것이었다.

맹을 떼밀어내고 올라가 타는 자들은 모두 삼십 내외의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렇게도 양보할 줄을 모르나!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도의심이 없는가.」

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른 합승이나 택시를 기다려서 늦더라도 천천히 타던 그가 이날은 제법 젊은 축에 끼어서 비비대고 올라앉은 것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되었나.)

팔목에 있을 시계가 없다. 가슴이 섬뜻하다. 좌우를 돌아보아야 전차와 달라서 그럼직한 사람은 없다. 운전수를 찾아서 시계가 금방 없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해보았다.

「아저씨, 시계를 가진 자는 타질 않았읍니다.」

운전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이 앞만 보고 차를 몰고 있다.

「시계를 집에 놓고 온 것이나 아닙니까?」

「바닥에 떨어졌나 보시지요.」

차에 탄 사람들은 가장 동정이나 한다는 것이나 반갑지가 않았다.

몇 번을 팔목을 되보고 바지 포켓을 보고 하면서 정신없이 앉았다가 종로에 와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 속으로 요새 젊은이들이 나쁘고 세월이 고약한 것을 개탄하고 공연히 여러 사람이 밀려드는 차에 덤벼 들어 탄 것을 몇 번이고 후회하면서 썩 기분 나쁜 하루를 지냈다. 왜 이렇게 실수를 하나, 이게 벌써 몇 번짼가,집에 가서 무어라고 하나, 복잡하게 사람이 밀려드는 차는 전차나 합승이나 안 타기로 작정을 하고도 또 이렇게 실수를 하는 자기 자신이 퍽 딱하게 생각 되었다.

「왜 또 그랬어,이담엔 애여 그러지 말어.」

예예,대답하고도 또 그러고 그러고 하는 어린 자식 타이르듯이 맹은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에 가깝고 먼 과거에 실패한 경험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 나와서 마음에 괴로움을 느꼈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손에 붙지 않고 정신없이 지냈다.

다음날이 마침 월급날이라 시계가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덮어놓고 만 오 천 환을 뚝 잘라서 시계를 샀다. 시계장수에게 속으면 안되겠다 생각하여서 장사를 좀 해본 경험이 있는 조카딸을 데리고 가서 샀다.

「아저씨,물건을 사실 땐 혼자 가시지 말고 꼭 저를 데리고 다니세요. 아저씨는 으레 속으시니까.」

「그래, 너는 물건 시세를 잘 알고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조카딸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믿고 일을 시키곤 한 것이었다. 장사라고 좀 해 보는 것이 잘 안되어서 아이들 데리고 살기는 커녕 국민학교짜리 중학교 일학년짜리 공부도 시키기 어려운 형편이니 무슨 다른 도리가 있어야 하겠다고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조카를 시계장사나 시켜 보았으면 하였다. 같은 교회에 나오는 청년 가운데 상점도 안 내고 시계장사를 해서 곧잘 지내는 사림이 있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무엇이든 해보아라.」

「아무 거라도 할 테야요.」

부모 없고 남편까지 없는 조카가 독립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랐는데,물건도 잘 고르고 값 흥정도 잘하는 걸 보고,

(그만하면 장사를 꽤 하겠는걸.)

하고 다행으로 생각했다.

시계를 잃어서 손해를 보았으나 이 기회에 조카가 시계장사를 하여 장사가 잘된다면 화가 복이 되는 셈이라고 하였다.

「너 누구하고 뭘 해보겠다던 걸로 시계장사나 해보렴, 응.」

시계를 사 가지고 오면서 권해 보았으나 조카는 대답이 없었다.

시계는 샀지만——시계는 도리어 전엣것 보다 마음에 드는 것을 샀지만 돈 문제보다 시계를 잃어버리도록 한 자기 자신이 딱한 것이 괴롭고,더구나 그 시계는 바로 작년에 미국에 교육 시찰로 다녀올 적에 마침 시계를 잃어서 친구들이 사준 것이라 그 친구들 에게도 말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요새 젊은이들의 질이 나쁜 것을 몹시 개탄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특한 청년을 만나서 차를 잘 타고 종로까지 기분 좋게 왔다.

그날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나쁘고 고약한 것만 생각하고 실망하고,실패하는 일만 생각하고 마음을 괴롭히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였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오후 한 시가 지났다. 웬만한 선생들은 다 나가고 학교 일이나 제 일이나 미진한 일이 있는 듯한 선생들만이 사오 인 남아 있다. 교무주임 박선생도 무슨 책을 뒤적거리고 앉아 있다.

「박선생,냉면이나 먹으러 갑시다. 일어나시오.」

옆에 있는 다른 선생까지도 바라보면서 맹은 큰 소리로 박선생을 불렀다.

「교감선생님, 오늘 한턱하시렵니까?」

「그래그래,한턱하지요. 선생님들 일어나셔요.」

「교감선생님을 발라먹으면 되나. 식구두 많으시구 어려우신데…… 우리가 대접을 해드려야지요.」

「별소릴 다 하시오, 황선생은…… 선생님들,어서들 갑시다.」

윤선생, 백선생,차선생 다음 자리에 앉아 있는 국어선생인 황선생이 어물어물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번 큰소리를 쳤다. 「식구두 많으시구 어려우신데……」어쩌구 하는 말이 듣기 싫은 것이었다.

「교감선생님이 모처럼 청하시는데 어서들 갑시다.」

교무주임이 이렇게 재촉을 해서 모두 여섯 사람이 평양루에 가서 곱배기 청하는 사람, 보통 청하는 사람 해서 냉면을 먹고 맹은 천 칠백 환을 치르고 돌아왔다. 주머니에는 겨우 오백 환짜리 한 장이 남았다. 그 누가 볼까봐 얼른 집어넣었다.

「오백 환, 오백 환.」

집에 가면 무얼 사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손주놈을 위해서 무얼 살 것이라든지,마누라가 찬거리 돈 달라고 하면 줄 것이라든지,다음날 출근할 때에 합승값이나 점심값이라 무어라 생각하면 오백 환이란 돈이 셈이 안되는 돈이다.

(왜 이렇게 남자가 대범하질 못하고 옹졸할까.)

맹은 속으로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왜 또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장한 척하고 호기를 뺐는가 하고 후회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르고 지나갔다.

앞뒤를 생각해서 무슨 일을 하지 못하고 마음내키는 대로 기분에 따라서 해버리는 것이 탈이라는 것을 맹은 잘 알면서 같은 실수를 밤낮 되풀이하는 것도 자기의 결점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오후엔 일찍 가서 쉬리라,이런 생각을 하면서 맹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일찍 가서 쉰다는 것은 아침에 나올 때에 아내의 주의를 받고 부탁을 받은 것이요, 좀 쉬고 나서는 자기 방에 창문도 바르고 원고도 정리하고, 시간이 있으면 할일이 많다고, 생각에 예산한 것이 많았다.

「교감선생님, 손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급사아이의 말을 듣고 맹은 응접실에 들어가 보았다.’

「선생님,안녕하셔요? 아버지가 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쯤 와 보라구 그리셨다구 가 뵈라구 해서 왔어요.」

친구의 딸이다. 취직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우선 이력서를 가져오라고 했고,토요일 오후에 보내 보라고 했던 것을 맹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E여학교 교장과 친하시다지요? 편지를 써주시면 제가 가 보겠어요.」

명함이나 한 장 보낼까 하고 생각하던 차인데 마침 당자가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다. 제가 가 보겠다는 것이 기특하다 하고 그는 서랍에서 양면괘지를 꺼내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가만 있자, 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쓰던 편지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그럴 것 없이 내일 오후에 나하고 같이 가 보지. 편지를 가지고 가서는 안될 거야.」

맹은 다음날 오후에 종로 어떤 다방에서 만나서 대한희망원 원장 집을 같이 방문하기로 하였다.

맹은 지난 봄에 예전 어떤 여학교에 봉직하고 있을 시절의 학생이던 사람의 부탁으로 그 남편의 취직을 시켜 주려고,아는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 교장을 찾아보고, 또 어떤 여학교 교감에게도 부탁을 단단히 했건만 아무 데도 틀려서 몹시 미안했던 일을 생각하였다.

직업이 없어서 곤란한 사람에게 양요리 대접을 받고, 또 집에 고기며 계란 꾸러미를 가져온 것을 받은 것이 늘 마음에 꺼렸던 것이다. 애초에 못한다고 딱 거절을 했더면 좋지 않았던가. 집에 계란 꾸러미를 가져온 것은 옛 선생이라고 찾아오면서 들고 온 것이니 무방하다고 스스로 변명을 하더라도 고급 양식 대접을 받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을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는 취직 부탁은 받지 않으리라. 취직 알선에는 아예 나서지 아니하리라. 그는 얼마나 맹세를 했는지 모른다.

「요새 세상에 친구가 어디 있어요. 그저 돈이 있든지 세력이 있든지 해야지,일개 이름 없는 중학교의 교감으로 있는 당신을 무엇이 대단하다고 청을 들어주겠소. 공연히 부질없이 다니지 마시구 가만히 계세요.」

동창이 교장으로 있는 유명한 중고등학교에 교장을 찾아갔다가 거의 냉대를 받고 돌아와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집에 들어왔을 때에 하던 아내의 말을 생각하였다.

「자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머,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있나! 세상이 다 그런걸 할 수 없지만, 하긴 그 사람이 교장이 된 다음엔 달라졌어,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좀……」

아내에게도 체면을 세워 보느라고 변명을 했다. 개탄을 해보았으나 아내의 말이 옳기는 옳기 때문에 말끝을 맺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들이 예전 선생이라고 생각이나 하는 줄 아셔요. 제게 긴하니까 알랑거리고 찾아다니지, 일이 안되면 성의가 없느니 되지 않을 걸 공연히 찾아댕겼느니 그런다오. 글쎄 왜 대답을 하구 나서요.」

아내에게 이런 핀잔까지 받고 또 한마디 대꾸도 못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맹은 슬슬 걸어서 전차를 타거나 합승을 타려고 종로 화신 쪽으로 왔다. 감기기운이 있고 몸이 거북하기 때문에 이미 예정한 대로, 자기가 예정했다는 것보다 아내의 부탁을 받은 대로 일찍 집에 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합승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선생님 어디 가셔요? 오늘 K여사의 출판 기념회에 안 가셔요? 가십시다. 선생님 같은 문단의 선배가 나가시면 퍽 기뻐할 겁니다.」

「글쎄, 이번 그의 기념회에는 꼭 가 볼려고 하긴 했지만……」

뜻밖에 시인 C를 만나서 깜박 잊어버렸던 K여사의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열시가 지나서야 고단한 다리를 끌고 집에 들어갔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맹은 아침에 어느 날보다도 약간 일찍 일어나서 다음날 주기로 한 원고를 정리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정하고 다니는 교회엘 갔다가 예배가 끝나는 대로 친구 한 사람과 종로로 나왔다. 냉면을 한 그릇씩 먹고 나서 친구는 한강 구경을 가자는 것을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하고 간신히 거절을 하고 병으로 누워 있는 친구의 딸 H양을 만나기로 한 다방을 향해서 바삐 걸었다.

(장마 뒤에 한강 구경도 한번 가 볼 만한 것인데, 그러나 어린 사람하고 약속한 일을 지키느라고 거절한 것이니 당연하지. 아무렴, 친구의 딸을 오라고 해 놓고 딴 데를 갈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약속한 다방에 갔더니 친구의 딸은 벌써 와 앉아 있다.

여대 출신이면서도 별로 다방 출입을 안했던 모양인지 퍽 어색해하는 것을 억지로 자기도 마실 겸,코오피 한 잔을 같이 먹고 일어나서 영천 방면으로 가서 불광동행 버스를 탔다.

실상 남을 데리고 가기는 가면서 자기 자신이 길을 잘 모른다. 가는 방향도 집도 잘 모르고 짐작으로 가는 것이다. 불광동 종점까지 갔으나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지서에 가서 물어 보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좀더 가다가 내리면 된다는 것이다. 걸어가도 얼마 안된다는 것이다. 친구의 딸 보기가 미안스럽다. 파주행 버스를 기다려 타고 가서 결국 원장집을 찾았다. 집은 찾았으나 원장 자신이 막 시내에 들어가고 없다는 것이다.

기다릴까, 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원장이 곧 온다고 해서 결국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전화는 없다고 해도 편지라도 하고 올걸, 설사 만난다 해도 될지도 모르는 걸 공연히 왔다고 후회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친구의 딸에게는 그런 체를 내지 않기로 노력했다.

「잠깐 다니러 갔다니까 곧 올 거야. 이원장은 나하고 퍽 가까운 사이요,그리고 상당한 사업가니까 어떻게든지 일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취직을 시켜 줄 거야.」

자기 변명 겸 갑갑하게 앉아 있는 친구의 딸을 위로할 겸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로할 겸 이따위 소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이원장 이란 사람은 예전에 맹이 봉직하고 있던 여학교에서 가르친 제자인데 그때에 여러 학생 중에 유난히 맹을 따랐고 또 맹 자신이 귀애했고 그리고 6•25사변 때 부산 피난 당시에 맹의 신세를 진 사람이었다. 여자라고 해도 웬만한 남자 이상의 활동력이 있고 교제 잘 하고 뱃심이 대단하고 게다가 소녀시절부터 매력 있는 용모를 타고났기 때문에 해방 이후로 특히 동란 이후에 고관들과 미군을 교제하여서 사회사업으로 교육사업으로 눈부신 활동을 했고 놀라운 업적을 보여주었다.

초여름 긴 해가 기울고 어슬어슬 해가 질 무렵에야 원장은 지프차를 몰아 가지고 돌아왔다.

「어떻게 이런 궁벽한 데를 찾아오셨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원장은 반가이 인사를 하고 자기가 경영하는 학원과 고아원의 시설을 대강대강 구경시켜 놓고는 그동안 지낸 이야기,미군부대가 많이 떠난 후에는 그 영향을 받아서 운영이 곤란하기 때문에 사업을 줄여서 요새 학원은 문을 닫아 버렸다는 이야기를 벌여놓아서 맹은 미처 친구의 딸의 취직건은 이야기를 꺼낼 새도 없었다.

「벌써부터 한번 와 보려고 하면서도……」

「바쁘신데 이런 데를 어떻게 오셔요. 선생님이 저를 기억하시고 계신 것만 감사하지요.」

원장은 학교를 갓 나온 듯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취직을 시켜 주려고 온 것을 벌써 눈치채고 그동안 발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취직 부탁을 받고 비로소 찾아온 것을 원망 비슷이 또 우습게 생각하면서 말을 좋게 둘러서 거절하는 것을 맹은 나중에 시내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오래간만에 이렇게 절 찾아오셨는데 여기는 시골이 돼서 아무것두 없어서…… 시내로 들어가시지요,선생님……」

원장은 자기가 타고 왔던 지프차를 타라고 서두르는 바람에 맹은 그냥 따라 들어왔다. 친구의 딸은 자기 집에 가 보아야겠다고 먼저 가 버리고 두 사람은 국제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였다.

(아무려나 나보다 낫구나. 제자요, 여자연만 나보다 낫구나. 결국 오늘도 거절을 당했구나. 사업을 축소한다는 것이 사실 인지,듣기 좋게 말하는 취직 알선에 대한 거절인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장담을 하고 데리고 왔던 친구의 딸에 부끄러웠다.

「선생님, 오늘 더운데 수고 많이 하셨어요. 피곤하시겠어요.」

말이 적은 여자로서 제법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가던 친구의 딸의 표정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댁에까지 모셔다드리지요.」

원장의 친절한 말이 고맙기는 하고 속으로는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하면서도 가다가 볼일이 있다고 딴소리하고 종로 네거리 화신 앞에서 내렸다.

종로거리는 어느새 네온사인이 휘황하게 번쩍거리고 버스며 합승에는 말할 것도 없고 고급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달려서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니 건너갈 수도 없어서 행은 얼빠진 사람처럼 사방에서 어른거리는 네온 사인을 바라보고 어리둥절해 서 있었다.

「선생님은 약하시고 인제는 나이도 유만하신데 맡은 일이나 보시고 글이나 쓰시고 가만히 계셔요. 웬만한 일은 못한다고 딱 거절을 하셔요. 제가 학교 있을 땐 몰랐지만 나중에야 알았어요. 선생님은 참 좋으시면서도 그게 결점이야요.」

「무얼 알았던가?」

「선생님이 저의 모교를 떠나시게 된 동기랄까 이유가 그게 아니야요? 예스,예스만 하시고 노우 소리를 못하신다는 게……」

(아이 고단하다…… 어떻게 집엘 갈까.)

하던 끝에 바로 전에 호텔 식당에 원장하고 이야기하던 일이,아니 옛 제자의 경고를 듣던 일이 생각나서 맹은 응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혼자서 괴롬을 느낄 때 하는 버릇이었다.

가시처럼 괴로왔다. 원장의 까먹고 닳아먹은 태도가 밉살스럽기까지 했다. 얼마 만에 간신히 길을 건너서 화신 건너편 차를 타는 곳에 건너와 섰다. 마침 길가에 금붕어 가게가 있다.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한가히 아무 짐도 책임도 없이 가볍게 꼬리를 치고 떠다니는 금붕어가 행복스럽구나…… 네가 나보다 낫구나.)

차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에 진열해 놓은 금붕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를 들여다보는 동안 합승을 기다리는 갑갑증도 면하고 아까 원장의 이야기도 잊어 버릴까 하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또 딴 생각을 하게 된다.

(금붕어나 사가지고 가자 !)

애들이 원하고 그리고 아내도 금붕어나 길러 보았으면 하는 소리를 들었고 며칠 전에,

「금붕어 장사가 지나가는 걸 돈이 없어서 못 샀군.」

하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어항과 금붕어 한 쌍을 사가지고 얼마 만에 청량리행 합승을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열 시가 넘어서였다. 근래에 맹이 이렇게 늦어지기는 처음이었다.

몸을 씻고 일찍 쉬려고 마음먹고 들어간 맹의 계획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반가운 손님 오셨어요.」

아내의 말이다. 젊었을 적부터 가까이 지내는 친구로 지방에서 농촌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 밖에도 두어 사람 손님이 있다. 한 사람은 한 사십이 약간 넘은 듯한 여자, 한 사람은 키가 큰 젊은 여자다. 사십이 넘은 듯한 여자는 서울서 다방도 하고 가까운 시골서 여러 가지 사업과 장사를 한다는 활동가이다.

용무는 곧 알았다. 맹이 데리고 있는 조카가 장사를 해보겠다고 해서 맹 자신을 보증으로 돈 오십만 환을 돌려준 사람은 지금 온 친구요,사십대 넘은 여자는 내용으로 그 돈의 전주였다. 친구가 자기 돈을 준 것이 아니요,그 여자의 돈을 얻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눈으로 웃는 모습과, 가끔 보이는 매서운 눈띠가 창기 타입이요, 여우형의 무서운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돈을 곧 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여자는 친척인데 어디 취직을 부탁하는 것이다. 다 골치 아픈 사건이다.

손님은 곧 갔다. 그러자 조카가 울면서 고백하는 것은 기막힌 이야기다.

「그 여자는 글쎄 계를 하다가 빚을 잔뜩 지고 어디로 도망을 했대요,이걸 어떻게 해요?」

「그러게 애초에 내가 안된다고 그랬지. 네가 하두 조르기에 해주었더니 종내…… 잘 됐다. 내가 물지 별수 있니?」

그 여자라는 것은 서울 어떤 변두리에서 다방을 같이 하기로 하고 조카의 돈을 맡았던 사람이다. 맹은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것도 처음엔 반대했고 다방을 한다는 것은 처음엔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조카가 울고 있는 꼴을 보고 결국 도장을 찍어 준 것이다. 결국 맹이 책임지게 된 일이다.

「애들이 어항을 깨뜨렸어요. 금붕어두 죽구 어떻게 해요.」

아내의 걱정소리가 마루에서 들린다.

「아이구,이놈의 팔자야.」

맹은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층층대를 올라가는 발걸음이 몹시 허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