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악의도 없다면 너는 무슨 뜻인가

선악에 대한 고민

https://jameslaurencedyer.wordpress.com/2014/06/21/the-nature-of-good-and-evil/

 "넌 조금 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인가'라고 물었는데, 그건 이미 '선'에 대한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에 맞는 것이 바로 '선'이라고 인정한 거잖아. 하지만 나는 '선'이 뭔가를 알고 싶어."

 "선과 악의 기준이 결코 절대적이지도 선험적이지도 않아.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선'을 추구하는지도 의문이고."

 "설마 인간이 천성적으로 악을 추구하지는 않겠지요?"

 "'선'은 뭐고 '악'은 뭘까? 네가 말하는 '선'을 추구한다거나 '악'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선'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위지."

 "하지만 '행복'은 또 뭘까? 플라톤의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선'은 하나의 로고스여야 하고, 선이라는 모든 행위도 그 로고스의 표현 형식이어야 해.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자기는 고통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행위를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선이 일종의 행위라면, 그 행위 자체는 선과 악의 구별이 있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위일 뿐이어야지. 이른바 선, 악이란 다만 행위에 대한 평가일 뿐이야. 그 평가는 외부, 즉 행위가 발생한 외부환경에서 나온 거야. 따라서 '선'의 개념은 사회에서 온 거지."

 "네 말이 맞고 각각의 사회가 모두 선을 추구한다면 악은 갈수록 적어지겠네. 하지만 악은 이제껏 사라진 적이 없어, 오히려 더 많아졌지."

 "세라드, 아직 케빈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인류사회의 발전단계마다 사회는 선, 악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달랐어. 악이 많아질 수도 있지. 사회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선'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해서 이전에는 '선'이라고 여겨졌던 행위가 사회에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선'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에 따라 '악'이 증가할 수도 있지."

 "어쩌면 흡연이 '악'으로 여겨질 수도 이겠네요, 어떤 가혹한 사회에서는 말이에요!"

 "'선'과 '악'은 결코 모든 행위를 포함하지 않아. 선도 악도 아닌 행위도 있잖아."

 "맞아, 그게 핵심이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하려는 여지가 생기는 거지.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식이 되면 그 사회에는 단지 두 종류의 인간만이 남지 않겠니?"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어떤 사람은 선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악을 추구하느냐는 거예요."

 "네가 방금 말했잖니. 행위 자체에는 결코 선악의 구분이 없지. 개개인이 어떤 행위를 선택하느냐는 자유야.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악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사회제도야. 좋은 사회제도는 바로 그 사회의 도덕체계 속에서 '선'으로 여겨지는 행위를 장려하고 '악'한 행위를 벌하는 거야.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하는' 것은 아니지, 그건 사회적 교화의 결과야. 현대사회의 악은 한편으로 개인의 임의적인 선택에서 나온 것이고, 그건 이미 발생한 행위를 사회의 기준에 의해 '악'으로 규정한 거야. 다른 한편으로 사회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고, 그건 사회에서 정한 '악'의 기준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한 행위이지. 내 생각에 후자는 '악'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플라톤의 설명과 비슷한 것 같네."

 "어느 사회건 평가의 기준이 있는데, 그런 기준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런 기준이 정말로 존재했었던 걸까, 정말로 보편적인 효과가 있을까?"

 "적어도 현재까지 악을 벌하는 기준은 줄곧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마다 그 기준이 달랐을 뿐이지."

 "무슨 기준인데?"

 "법률."

 "하지만 법률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 법률이 없었을 때는 기준이 뭐였지?"

 "그 이전의 국가에도 늘 제도가 있었어. 분명 유사한 조항들이 있었을 거야. 다시 말해서 군주도 당시에는 하나의 기준이었지. 다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었을 뿐이야.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분명히 존재했어."

 "나는 오히려 그런 기준이 영원히 없었으면 해. 난 인성의 본질은 좋다고 생각하거든."

 "선하다고 하지 않고 좋다고 하는구나. 좋고 나쁜 것에는 기준이 없을까? 그리고 그 기준에는 사회적 요소가 없는 걸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선 자체도 하나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선의 행위를 추구한다면 변화가 있을 수 없겠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변화란 바로 서로 다른 사회에서 서로 다른 '선'이 존재한다는 거잖아요."

 "그럼 선은 알 수 없는 거네. 인류가 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지고 보완되었다는 거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했다는 말이 생각났어. '나는 죽음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선한 일인 것 같다. 나는 그게 두렵지 않다. 다만 나의 본업을 그만두는 것이 악한 일이라는 걸 알 뿐이다. 나는 선한 일을 선택하고 싶지 악한 일을 선택하고 싶진 않다.'"

 "맞아, 선한 일을 선택하고 싶지 악한 일을 선택하고 싶진 않지."

 "방금 케빈이 선악은 어떤 행위에 대한 평가라고 했는데, 그런 평가에는 기준이 따르기 마련이야. 나는 그것을 가치라고 생각해. 가치라는 관념은 행위의 결과로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를 평가하는 거지."

 "어떤 사람의 가치 관념이 그의 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그렇게 하는 목적은 뭘까? 다시 말해서 가치 관념이 이끄는 방향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좋은 삶을 사는 거지."

 "하지만 뭐가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텐데. 그러면 한 사회의 가치기준이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잖아?"

 "분명히 어떤 사람은 즐거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르 높이지만 그건 감정이고 삶은 행위예요. 즐거움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면 오히려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지요. 삶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과정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온함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

 "내 생각엔 행복이 분명해. 선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행복에 대한 갈망이야. 평온한 삶은 행복이지 즐거움은 아닌 것 같거든."

 "행복은 종합적인 과정이어야 해. 한 사람은 인생을 살고 나서야, 즉 생명의 종점에 이르러야만 자신의 힐생이 행복했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

 "왜냐하면 일시적인 득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를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어째 됐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구나. 도덕가치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고, 사회가치는 선과 악을 장려하거나 징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가치는 제도를 통해 확보되고 도덕가치는 사상관념으로 실현되는 거라는 말씀이시죠."

 "고대 중국인의 말이 생각나는구나. '천하가 모두 선한 것이 선이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 때문일 뿐이다.'"

 "그게 무슨 뜻이죠?"

 "사물은 바로 서로 구분에 의해 명확히 드러난다는 거지. 상반되는 것이 있어야 상생하는 거라는 말이야. 높음이 없으면 낮음이 없고, 앞이 없으면 뒤가 없는 것과 같다. 에나 방금 선과 악의 기준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 노자는 더 핵심을 찔렀어. 그는 선과 악이 상대적이고, 악이 없으면 자연히 선도 있을 수 없다고 했어."

 "그럼 인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요? 전혀 속박이 없을 수 있을까요?"

 "자연스러움을 따라야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 '악'한 행위를 낳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나요?"

 "자연스러움을 따른다는 것은 아주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여기서 자연은 결코 현대적인 의미의 자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본래의 모습과 같다'는 의미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욕심도 바라는 것도 없는 것이지. '선'과 '악'은 모두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지.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선악이 있을 수 있겠니?"

 "맞아, '선'을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욕망이지! 사회의 '칭찬'에 영합하는 것 아니겠어!"

 "선악은 물론 사회적 요소이지만 영원한 '선'과 '악'은 존재하나요?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영원히 '선'한 행위이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영원한 '악'이 아닌가요?"

 "비유를 들어볼게. 네가 백 명을 구하기 위해 꼭 한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면 어떻게 할래? 그렇게 했을 때 너의 행위는 선한 거니 악한 거니?"

 "구해야지. 그 사람이 백 명의 생명을 위협했으니 이미 악한 거잖아."

 "네 말은 정확하다고 할 수 없어. 그 사람이 왜 분명히 악한 거지?"

 "어떻게 그가 악한 것을 판단할 거냐고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다시 물어볼게. 지금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백 명을 죽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니? 네가 특공대처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야."

 "보아하니 선과 악은 확실히 도덕체계 안에 놓고 말을 해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정의인가를 살펴야지."

 "정의는 그 자체가 의문스러워.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늘 전쟁이 정의라고 하지만, 당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코 그렇지 않지. 넌 전쟁이 정의라고 생각하니?"

 "그럼 어떻게 하죠?"

 "선과 정의는 결코 동등한 개념이 아니야. 맹자가 '춘추시대에는 정의로운 전쟁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어떤 사람은 정당하다는 명분을 가지고 나쁜 일을 할 수 있지. 전쟁도 당연히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악한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럼 전쟁에 말려든 쪽은 어떤가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야. 개개인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가장 정당하다고 여기는 방식을 선택하고 행동을 하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속해 있는 국가도 선택을 해. 개인은 종종 고상함을 추구할 때 자신에게 이기심을 버리라고 훈계할 수 있지만, 국가는 항상 어쩔 수 없이 자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려. 그 결과는 어떤 개인의 선택과는 서로 상반되지 않을 수 없지. 국가가 늘 이기적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반드시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그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판단해야 하니까. 하지만 전쟁은 모두 담판으로 결말이 나고, 그 다음에는 피해를 복구하지. 그렇지 않니?"

 "맞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판단의 결과가 다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선택이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얻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판단은 선과 악 사이만이 아니라 인생의 단계에서도 생기지요."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이곳으로 오는 것을 선택했고, 지금과 같은 문제들을 토론할 시간과 열정을 가지게 되었지. 앞으로도 이런 토론은 계속되겠지. 그 밖에도 어떤 사람들은 장사하는 것을 선택해서 지금 틀림없이 바쁘게 자기 일을 하고 있을 거야. 또 군대에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지."

 "어쩌면 다음 전쟁을 계획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정의의 범위는 국가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내부에도 존재해."

 "세계는 하나의 사회가 아니란 뜻이니?"

 "함부로 사회를 인류 전체와 동등하게 여겨서는 안돼. 사회의 범위에는 크고 작음이 있어서, 여러 국가들의 연맹일 수도 있고 특정 지역일 수도 있지."

 "사회는 폐쇄적이지 않지만 인류 전체는 아니야. 적어도 현재까지는 아니지. 사회는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어. 상대적이란 말에 주의해야 해."

 "정의는 사회 내부에서 분명히 총체적인 개념이에요. 다시 말해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규범이 있고 제도로 보장되지요."

 "음, 문제를 사고하는 것은 개개인에게 평등한 것 같다."

 "잠깐만요. 평등이라고 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적어도 완전히는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 말하는가를 봐야 해요."

 "어? 사고하는 데도 불평등한 것이 있니?"

 "내 생각에 '사고의 자유'는 평등하지만 '사고'는 반드시 평등한 것은 아니야. 개개인이 모두 사고의 자유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누구도 제한하거나 빼앗을 수 없어. 하지만 무엇을 사고하고 어떻게 사고하느냐는 꼭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아. 나는 그것이 개인의 성장환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네가 '개개인이 모두 사고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도 꼭 정확한 것은 아니야."

 "예외가 있나요?"

 "정신병 환자가 바로 예외지."

 "왜 아니지? 그들도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생각할 줄 알면 그게 정신병 환자니?"

 "이건 조금 전에 케빈이 말한 두 번째 문제, 즉 무엇을 사고하느냐 하는 것이야. 정신병 환자들은 문제에 대한 사고나 그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하지만 사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럼 '꼭 정확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무슨 말이에요?"

 "분명히 사고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 하지만 문제는 그 경우 '평등', '자유'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지."

 "의미가 있고 없고는 또다른 문제겠지. 나는 다만 모든 사람이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을 뿐이야. 물론 여기서 사람이란 정상적인 사람을 의미해."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는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우린 지금 인간의 본질을 토론하려는 게 아니야"

 "맞아, 사고에 대해 토론하고 있지."

 "분명히 정상인에게 '사고의 자유'는 평등하고 거기엔 의문의 여지가 없지. 그런데 넌 왜 '사고'가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거니?"

 "개개인의 성장환경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이 사고하는 문제도 다르고, 더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도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 차이가 '사고'의 불평등을 설명해줄 수 있니?"

 "예를 들어볼게. 한 사람은 말을 탈 줄 알고, 다른 한 사람은 말을 끌 줄 안다면 그들은 평등하니? 그들은 단지 '사람'이라는 점에서만 평등할 뿐이고 '사회적 역할'에서는 평등하지 않아. 사고도 마찬가지야.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은 말을 끌지."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 그렇다면 '평등'이란 단지 한 가지면, 즉 살아 있다는 것에서만 존재하는 거잖아.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거야.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어. 노예사회에서 노예는 사람이지만, 노예주의 눈에는 그렇지 않지. 그 둘은 '사회적 역할'에서 불평등할 분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불평등해. 원시사회는 말할 것도 없지."

 "사고가 꼭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유'는 또 어디서 온 거지?"

 "그 말을 들으니 방금 케빈이 '자유'가 불평등하지 '사고'가 불평등한 것은 아니라고 예를 든 것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난 케빈의 말을 대체로 이해했지만, 그중에서 '사고'는 '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구나. 사상은 사고의 내용이고 과거의 경험과 상상력의 제한을 받지. 물론 그런 제한을 빼면 사상 그 자체는 자유롭지. 여기서 또 다른 '자유', 즉 표현의 자유가 거론되지. 사상을 표현하려면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게 돼. 이것은 또 다른 사회문제이고 사회의 제도체계를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어.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거야."

 "어떻게 제한한다는 거죠? 조금 전에는 자유를 말하지 않았나요?"

 "사상이 경험과 상상력의 구속을 받는다면 그런 경험과 상상력을 좀 덜 가져야만 사상의 제한을 덜 받는 건가?"

 "하지만 사고는 자유이고 그건 제한할 방법이 없어."

 "그래서 사고를 잘해야만 그 어떤 힘도 개인의 사상을 제한할 수 없게 만드는 거야. 전시(戰時)의 강권과 압력도 사고를 멈추게 할 수는 없어."

 "좀 천천히 말해줘요. 이해가 잘 안 돼. 자유가 어떻게 불평등하지?"

 "역사적으로 늘 한쪽이 다른 한쪽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한 사람이야말로 '절대 자유'를 누린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기는 했나?"

 "물론 있어서. 폭군!"

 "폭군이라고 해도 그의 사상은 부자유스러웠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었어."

 "그럼 인간은 결국 자유를 얻을 방법이 없다는 말이니?"

 "나는 아무래도 문제가 '자유'라는 용어를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든 문제를 그 하나의 개념으로 귀결시킬 수는 없지 않겠니. '자유'라는 용어 자체에 적절한 사용범위가 필요해. 우리가 하고 있는 토론도 두 가지의 자유를 거론하고 있어. 하나는 사상(사고)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자유제도잖아."

 "맞아요. 자유는 일종의 권리이고 사회성을 갖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비로소 의미가 있어요."

 "물론이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맞아.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도둑질을 하고도 그건 자신의 자유라고 떠들어댈 거야. 그렇게 되면 사회도 존재하지 않아."

 "왜 존재하지 않지? 그건 강도 사회잖아."

 "분명히 존재할 수 있지. 하지만 강도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어. 그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아주 빠르게 사라져. 그런 사회에서는 자신이 어떠한 자유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걸 의식할 테니까."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자유제도 일종의 사회제도로서 대다수 사람들의 자율르 보호하는 제도라고 말이야."

 "나는 오히려 '한 사회의 자유제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가능한 많은 자유를 향유하게 하는 제도이다'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아."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야. 다시 말해서 전혀 제한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 가장 완전한 자유는 장벽이 없는 거야. 물론 다른 사람의 자유는 영원히 자기 자유의 경계가 되지. 장벽이 없다는 것은 서로 평형을 이루는 조화로운 상태를 의미해.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거야. 좋은 자유제도란 바로 인류 전체가 그런 목표를 향해 다가서는 거겠지."

 "하지만 사회에는 사회제도 이외에 도덕체계가 있잖아요?"

 "도덕은 어떻게 해도 사회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개념이고 평가의 문제가 개입된 체계야. 선과 악은 도덕의 양 극단일 뿐이고, 더 많은 행위들은 모두 그 둘 사이에 있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는 사실 단 하나, 즉 타인과의 관계야. 모든 사회문제는 그로 인해 생기지."

 "여전히 이해가 안 돼. 그런 결론은 어째, 너무 간단한 것 같아!"

 "더 자세한 결론이 있을까? 네가 결론을 잘 내린 것 같아. 하지만 스티븐스 선생님에게 몇 말씀 더 듣는 것이 좋겠다."

 "도덕, 법률 등의 제도는 사회 속의 인간관계를 서로 조화시키고 모두 함께 개개인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낳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 방금 전에 정의를 거론했는데 나는 이런 기준도 정의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처해 있는 현실에서, 혼자일 때는 나타나지 않을 문제가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나타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어. 예를 들어,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네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장싼은 파렴치하다'고 지껄이고 더구나 '장싼'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 장소였고 공교롭게도 그주에는 '장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혹은 그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상황은 몹시 복잡해질 거야. 설사 네가 술에 취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은 아주 많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신뢰해서 '장싼'이 파렴치하다는 말을 받아들이거나 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 어쩌면 모두가 '장싼'이라는 사람을 모르면서도 성이 장씨인 누군가를 연상할 수도 있지.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네가 누군가를 빗대어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네가 분명히 술에 취해서 사리분별을 못하고 허튼소리를 한다고 여긴다면……. 이상의 가정들은 모두 너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신뢰했을 때 가능한 거야. 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이 평소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상황은 갈수록 시끄러워지겠지. 뒤에서 허튼소리를 한다거나 분란을 일으킨다거나 할 것이고, 네가 진짜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술김에 속마음을 말한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잘못하면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해서 조사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 결과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쨌든 문제가 아닌 것이 문제가 되고, 간단한 문제가 복잡한 문제가 된 거죠."

 "원인은 아주 간단해.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어."

 "그건 바로 사회의 개인에 대한 제약의 문제, 즉 사회제도의 출현과 관련이 있지. 어떤 사회제도나 인간의 권리와 각종 요구들을 가능한 한 많이 보호해주려고 노력하지. 사람들 사이의 권인과 요구는 늘 충돌하고 모순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사회제도는 바로 개개인의 이익과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거야."

 "물랐어요, 선생님이 사회문제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하진 줄은. 말씀을 들으니까 정의, 공평, 공정, 평등, 민주 등 사회에 관한 개념들이 잘 이해되네요."

 "양심도 있잖아? 그건 무엇으로 이해하지?"

 "내 생각에 '양심'은 '선'과 사회제도에 대한 인정의 정도이고, 사회가 완전히 규범화하거나 제도를 통해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건 도덕개념이지."

 "모두가 '양심'을 가지면 사회가 평온하지 않을까?"

 "물론이지. 하지만 그것도 바로 사회가 추구하려는 거야,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지. 더구나 '양심'은 사람마다 크기가 다르잖아. 그건 분명 도덕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야."

어떠한 악의도 없다면 너는 무슨 뜻인가

※ 참고 문헌 : 멍윈젠. 《모두를 위한 철학소설, 이지 철학》 책과함께. 2006. 125~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