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강제결혼이 어떤 조항을 침해 받았을까

동남아시아 강제결혼이 어떤 조항을 침해 받았을까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주거권은 인권…국가의 기본 의무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생활을 누릴 권리를 뜻한다. 주거권은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강조하는 사회적 기본권의 핵심이다. 우리 헌법은 주거권을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을 통해 간접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정부가 주거 면적, 방의 개수, 시설 등 최저주거기준을 설정 및 공고하게 했다.

1948년 국제연합(UN)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해 많은 국제규범에서도 주거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강조하고 있다. UN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점유의 법적 안정성, 경제적 부담 가능성, 물리적 거주 적합성 등 일곱 가지를 주거권 내용으로 구체화했고, 강제퇴거 방지를 위한 각국의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 기본이어야 할 공공시설, 왜 상품이 되었나

손수레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울퉁불퉁 좁은 통로를 미로처럼 헤매고 다녀도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놀이터는 찾기 어려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를 빠져나와 언덕을 5분여 올랐다. 세상은 달라졌다. 직선으로 잘 정비된 길가에서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단지 입구엔 ‘일단 정지’를 알리는 표지와 함께 차량 차단기가 위아래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약 3000가구가 모여 사는 서울 은평구의 대단지 고층 ㄱ아파트였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성’이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일수록 성채는 더 높다.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은 정성스레 가꾸어진 화단과 산책길, 테니스장·배드민턴장과 같은 체육시설, 넓은 놀이터 등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린다. 그러나 ‘성’ 밖은 딴 세상이다. 정부가 도시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를 방기한 사이 삶터의 쾌적함은 건설업자들이 제공하는 ‘상품’이 돼 버렸다.

■ ‘성(城)’이 된 대단지 아파트

“일반 동네에서는 놀이터를 찾으려면 하세월이다. 모든 골목은 주차장화돼 있고, 있는 것이라곤 돈을 내고 가는 헬스클럽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를 소유하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아니라 ‘단지 공화국’이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성냥갑’이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면서도 주택 수요자들이 아파트를 열망하는 이유를 ‘단지’에 집중해 풀이했다. 박 교수는 “아파트가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돼 수요가 몰렸다는 진단으론 불충분하다”며 “도시환경과 주거환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1970~1980년대 급성장한 중산층은 체육·육아·보안·주차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살기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을 보였다. 그러나 중공업 위주 수출 주도 경제성장에 몰두하던 정부에 시민들의 공공 편의시설 마련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자력으로 놀이터·주차장·체육시설 등이 갖춰진 ‘괜찮은 동네와 집’을 찾아 나섰고, 대단지 아파트는 그런 중산층의 욕구를 채워줬다.

그렇게 잘 가꿔진 산책길과 놀이터, 깨끗한 주차장은 사적 소유물이 됐다. ㄱ아파트 역시 단지 내부에 테니스장, 놀이터, 커뮤니티센터를 갖췄다. 1·2단지 사이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가 단지 내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1단지 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마치 내부 편의시설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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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공간 불평등과 구별짓기

잘 구분된 단지 안과 밖의 현격한 생활수준 차이는 일부 입주민들에게 ‘구별짓기’ 욕망을 불러왔다. ㄱ아파트 단지 입주자 커뮤니티에는 외부에 사는 학생들이 단지 사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을 걱정하며 ‘셔틀 엘리베이터 운영비용도 우리가 다 부담하는데… (단지 외에 거주하는 학생이 들어오면) 단지 관리가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는 얘기가 오갔다.

일부 대단지 아파트는 단지 내 놀이터·노인정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기도 한다.

단지의 주거환경은 이미 상품이 돼 버렸고 ‘비구매자’는 주변을 맴돌았다. 판교 고급 주택 단지 근처에 거주하며 두 살배기 딸을 키우는 김정미씨(30·가명)는 “단지 안 놀이터가 시설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와 가 본 적은 없다”며 “거주자들 시선이 부담스러워 늘 생각만 하고 만다”고 했다.

2003년엔 아파트 단지 내에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분양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믹스’ 제도가 도입됐지만, 입주민들은 임대동·분양동, 임대층·분양층을 구분해 교류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단지 안팎 환경이 거의 같은 파리와 마드리드의 아파트는 한국처럼 폐쇄적이지 않다”며 “양극화가 심한 나라일수록 (주거환경) 인프라의 공정한 배분이 안 이뤄진다. (아파트 안팎을 구분짓는) 장벽 같은 담장이 있는 곳은 한국과 브라질 정도”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노인정 등의 소유와 유지·관리 책임도 지자체가 하도록 해 단지 주민만이 아니라 지역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를 위해선 정부의 정책 전환과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다. 거주지의 편의시설과 녹지 등은 시민 모두에게 차별 없이 제공돼야 할 ‘공공재’다. 이제는 주거환경의 민주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부동산으로 경기부양” 국가가 만든 투기판 ‘주거권리’가 깨졌다

주부 김화선씨(58·가명)는 평생 ‘가장 잘한 일’로 1990년대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마련한 것을 꼽는다. 관악구 주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항상 ‘이주’를 꿈꿨다. 기회는 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급매로 나온 서초구 한 아파트를 5억원에 샀다. 20년 새 집값은 4배 이상 뛰었고 기존 집터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빌딩을 세웠다. 현재 은퇴한 남편과 월세 수입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2013년 신지영씨(35·가명)는 서울 화곡동 18평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저축 6000만원에 대출을 더해 1억5000만원의 전세자금이 들어갔다. 재계약하면서 집주인이 3000만원을 올리려 했으나 ‘읍소’해 겨우 1000만원으로 깎았다. 하지만 2016년엔 결국 경기도로 밀려나 1억6000만원짜리 전셋집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파주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전세금을 빼더라도 2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돼 양육비와 빚 고민이 마음을 짓누른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344조원에 달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계 대출 중 부동산 관련 빚의 비율이 60%에 이른다. 그만큼 서민을 짓누르는 부동산의 무게가 크고, 가정경제는 물론 국가경제까지 위협하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청년층을 겨냥한 ‘다방’ ‘직방’ 같은 방 구하기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앞 세대가 ‘집’을 찾아 달려왔다면 지금 세대는 지상에 몸을 누일 ‘방’ 한 칸을 향해 전력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도시의 주택 가격은 이처럼 미래세대의 ‘행복추구권’마저 축소시켜 놓았다.

동남아시아 강제결혼이 어떤 조항을 침해 받았을까

1970년대 이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을 투기 광풍에 몰아넣었다. 1990년대 말 구리 아파트 분양 현장에 차려진 ‘떴다방’, 1991년 서울 홍은동 재개발 철거 지역, 1993년 마포아파트 세입자 농성 장면,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너머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단지 모습(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경향신문 자료사진

■ 국가가 만든 투기…‘부동산 불패’라는 신흥종교

하지만 ‘집’이 모두에게 무거운 ‘짐’인 것은 아니다. 김화선씨처럼 어떤 이들은 집값이 몇 배로 올라 월급쟁이 연봉으론 꿈도 못 꿀 거금을 불로소득으로 거머쥐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이들 삶의 격차를 이토록 벌려놓았을까.

“(전농동) 변두리에 토지붐이 일자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자고 일어나면 뛰는 땅값에 채소농사를 짓던 토박이 주민들 중 몇몇은 거부가 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73년 1월23일)

<부동산 계급사회>를 쓴 손낙구씨는 “그 시절(1970~1990년대)에 아파트 신(神)을 모시고 살지 않은 사람은 바보”라고 했다.

1970년대 이래 정부의 부동산 개발 정책으로 집값은 폭등을 거듭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강남·잠실 일대를 개발촉진지구로 정하고 부동산투기억제세 등을 없앴다. 1975년엔 아파트지구 11곳 중 6곳을 강남·잠실 지역에 몰았다. 그 결과 1963~1977년 사이 강남 주택지역 지가는 176배 폭등했다. 당시 국세청은 목화·화랑 등 6개 아파트에서 투기이익을 좇아 전매된 경우가 41.7%에 이른다고 밝혔다.

1980년 경기침체를 택지개발촉진법 등 부동산 활성화로 타개하겠다고 선포한 전두환 정권은 양도소득세 완화 등 투기를 부채질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이에 ‘분양가 인상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고, 아파트 가격이 한층 더 널뛰었다. 한 예로 개포지역 아파트엔 복부인들이 몰려 아파트 값 절반이 넘는 4500만원이란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있는 사람들의 ‘돈 놓고 돈 먹기’판이 된 부동산 정책 결과, 1989년 토지공개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5%가 전체 땅의 65.2%를 소유하게 됐다.

■ 부동산으로 만든 가짜 ‘성장 성적표’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2001년 건설경기 부양에 1조원을 쓸 경우 첫 해엔 0.42% 성장 효과가 나타나지만, 30년 후엔 0.31%의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1970년부터 25년간 투자유형별 경제효과를 분석한 결과였다. 단기 실적을 올리기엔 좋지만 장기적으론 마이너스가 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방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임기 내 실적’에 목을 맨 역대 정권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외환위기 한가운데서 정권을 시작한 김대중 정부 역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1998년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시작으로 3년간 평균 4개월에 한 번꼴로 ‘집 팔아 경기부양’을 하는 대책들을 냈다. 외환위기 한파가 여유자금을 쟁여놓은 일부에겐 역설적으로 ‘최고의 투자 적기’가 된 것이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때도 정부는 부동산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이명박 정부는 무주택, 1주택 보유자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양도세 인하 등을 통해 얼어붙은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런 기조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박근혜 정부에 그대로 이어졌다. DTI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 등 부동산 부양을 골자로 한 ‘초이노믹스’엔 “빚 내서 집 사라는 거냐”는 서민들 규탄이 이어졌다. 그 결과 지난해만 141조원 등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380조원의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심각한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 좌절된 ‘주택시장 정상화’ 시도들

아파트 등 건물을 짓기 위해서 누군가 쫓겨나야 했다.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도시의 ‘잉여’로 주변부를 떠돌았다. 민주화 의지가 들불처럼 일어난 1987년엔 서울시철거민협의회가 생겨나면서 도시빈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싹텄다. 서민들의 폭발하는 분노에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개발이익환수제 등을 골자로 한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1993년 금융실명제에 이어 부동산실명제도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면서 토지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기기 위한 종합토지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했다.

하지만 부동산 안정을 위한 시도들은 건설 세력과 부동산 자산가들의 ‘집값 꺼지면 경기 꺼진다’는 위협에 다시 자취를 감췄다.

1967년 투기열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된 ‘투기억제세’(양도소득세)는 50년 동안 ‘경기부양’ 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십수번의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토지공개념 3법은 불과 10년도 안돼 ‘헌법 불합치’ 딱지를 받고 자취를 감췄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역시 ‘세금 폭탄’이라는 보수세력의 뭇매를 맞고 일부 위헌판결을 받아 유명무실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법을 바꿔 종부세를 크게 약화시켰다.

집값의 폭등과 서민의 고통은 역대 정권과 건설세력, 자산가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과대대표되는 현상이 맞물려 나타났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부동산에 관한 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두지배체제”(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마어마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지만, 누군가는 전·월세 난민으로 떠돈다. 이처럼 부동산은 “하위계층의 소득이 상위계층으로 이전”(남기업)되며 우리 사회 건강성을 위협하는 역분배의 대표적 통로가 되고 있다. 손낙구씨는 “주거권 문제를 민주화 과제로 삼지 못했던 것이 민주정부의 가장 큰 패착”이라며 ‘87년 체제’를 넘어 생활민주주의로 나갈 핵심 과제로 ‘주거 민주주의’를 꼽았다.

>> “임대차보호법·보유세 현실화 필요”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2008년 이미 100%를 넘어섰다. 산술적으로 모든 가구가 집을 한 채씩 갖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체 가구의 절반(46.4%, 2014년)은 주거권 보장 요구를 외면당하는 민간임대주택시장에서 세입자로 남아있다. 이들 ‘주거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거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선 세입자 보호 주택임대차제도 도입과 장기적으로 주택 보유세 강화를 통한 ‘주택시장’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역대 정부는 급등하는 전·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외곽으로 밀려나는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에는 소홀한 채 민간기업에 주택 공급 확대만을 독려했다. 주택 공급을 늘리면 시장이 안정돼 집 없는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집을 가진 자가 매매차익과 임대소득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얻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이들이 얻은 불로소득에 합당한 세금을 물리는 책임도 방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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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와 주택 자가보유자 이해만 대변해온 주택시장에서 주거 약자들의 삶은 적자생존에 내맡겨졌다. 1990년 서울에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지어진 지 27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아직도 5%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유럽 주요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외쳤지만 막상 당선이 되면 재정 부담과 부지 부족을 이유로 계획대로 추진하지 않았고, 업계와 자가보유자는 ‘시장 왜곡’ ‘집값 하락’을 외치며 반대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도 대다수 세입자들은 민간영역에 남아 전·월세를 구할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민간임대주택시장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전·월세 계약기간이 다가오는 2년마다 월세나 보증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는 ‘떠돌이들’을 위한 정책 도입은 번번이 좌절됐다. 10여년 전부터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 주거권 보장 대책이 논의됐지만 “자유시장 원리와 사적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 앞에 매번 무산됐다.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손낙구씨는 “독일은 한국보다 자가보유율이 낮지만 집이 없어도 큰 불편이 없어 특별히 자기 집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며 “주택임대차제도가 세입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자가점유율(46%, 2014년)과 공공임대주택 비중(4.2%)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지만, 임차인의 주거권과 임대인의 재산권이 대등하게 간주되기 때문에 전·월세 부담 때문에 이사를 다닐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와 조세형평성 강화를 위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현실화도 과제다. 보유세 강화는 ‘토지는 공적자산’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어떤 집이 비싼 것은 정부나 사회가 도로·공원·학교 등 인프라를 건설해 가치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며 “그 가치를 향유하는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보유세”라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부동산에 낮은 거래세와 높은 보유세를 매기는 데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국과 비교해 최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를 도입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유명무실해졌다.

>> “주택시장 참여 못하는 서민, 정책 대상서도 배제…공공주택 확대가 답”

한국 사회는 1987년 민주화를 성취했고 외환위기 등의 부침이 있었으나 경제는 지속 성장했다. 주택보급률도 100%를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850만 세입자 가구는 보증금·월세 압박에 시달리고, 청년들은 집이 아닌 ‘방’을 찾아 헤맨다.

도시·주거 문제에 천착해 온 조명래 단국대 교수(사진)는 “적어도 주거 부문에서 민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주거를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카페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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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이후 30년간 서민들의 주거권은 얼마나 신장됐나.

“주거 부문의 삶은 더 열악해졌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해졌고 저소득층(1~2분위) 소득의 주거비 비중이 33%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주거비 비중이 20%를 넘으면 주거빈곤으로 본다. 부동산 자산 양극화도 심해졌다. 소득 하위 20%에 비해 상위 20%가 부동산을 64배 더 갖고 있다. 한국인 자산 가운데 80~90%는 부동산인데 그 격차가 이만큼이라는 것은 자녀의 교육 등 삶의 기회가 그만큼 (부동산 자산에 따라)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 주거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주거가 상품화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오너십(소유)을 부추길 뿐 주택을 공공재로 보지 않는다. 서울의 경우 지난 30년간 주택보급률은 30% 늘었는데 소유율은 3~4% 느는 데 그쳤다. 정부는 (건설세력과 자산 기득권층 요구대로) 집 있는 사람들이 더 사도록 끊임없이 부추겨 왔다. 그런데 그런 흐름을 추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의 평균 주거기간이 11년이고 세입자는 3년이다. 왜, 집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헌법상 주거권을 차별적으로 누려야 하는가. 적어도 주거 부문에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부동산 불패신화는 계속될까.

“개발국가 시대를 거치면서 부동산이 국민경제에서 OECD 평균의 두 배 정도 강고한 영역을 구성하게 됐다. 건설업 연관 세력, 이미 부동산으로 자산을 형성한 세력이 기득권화해 집값을 올리도록 계속 압력을 넣어왔다. 사실 2008년 이후엔 집을 사지 않으려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이를 ‘비정상’이라고 보고 굳이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 (실수요가 아닌) ‘가수요’를 일으키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내놨다. 꺼져가는 부동산 불패신화 불씨를 살려놨다. 하지만 이 신화는 곧 무너지게 돼 있다. 올해와 내년 주택시장 공급량이 60만~70만호인데 이는 2020년까지의 연간 적정 공급량 39만호의 1.5배 이상이다. 미분양·미입주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이런 식으로 왔다.”

-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서민들은 주택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니 아예 정책 대상에서 배제해 버렸다. 이들을 대변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없다. 주택공급 때는 청약제도 등으로 피분양자가 더 저렴하게 집을 살 수 있도록 관리하면서 전·월세에 대해선 가격을 신경 쓰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전체 세입자 가구가 850만가구이고 전세보증금이 약 450조원이 되는데 이 부문은 완전히 블랙마켓(암시장)이다. 임대소득엔 과세도 하지 않는다.”

- 서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거정책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 이를테면 주거를 완전히 시장에 맡기지 않기 위한 대책 중 하나가 전체 가구의 15~20%가 공공주택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공·준공공 혹은 건설임대·매입임대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지만, 정부가 돈을 들여 실제 공급하는 양은 연간 2만~3만호 남짓하다. 전체 가구의 반(서울은 60%) 이상이 세입자 가구인데 왜 이들을 위한 정책은 펴지를 않나. 많은 전문가들이 건설업계에 기생하고 있고 국토교통부도 카르텔의 한 멤버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주택정책을 주거권 보호 차원에서 펼칠 수 있도록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