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연구 수행을 위한 연구 기관의 규제 방법



<공학교육> 최근호(제18권 제5호)에 실린 글로, 학회지편집위원과 저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싣습니다.




책임 있는 연구 수행을 위한 연구 기관의 규제 방법
2010년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회 세계연구윤리대회(WCRI). 출처/http://www.wcri2010.org

과학 연구윤리 지침 만들기

-조은희 조선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

“연구윤리라는 것이 밖에서 오는 규제가 아니라 연구자 공동체가 스스로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정한 약속이라 생각할 때, 연구자는 정해진 지침을 아무 생각 않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더 좋은 방향을 향해 개선될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윤리를 연구부정행위 예방과 처리에 국한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기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태도로 연구윤리를 수용할 때 윤리가 연구자를 옥죄는 규제가 아닌 학계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학 연구윤리의 지평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연구자에게 연구윤리란 정직하고 엄정하게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뜻한다. 연구기관에서는 소속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의식을 높이고 연구부정 행위가 발생하였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구지원기관의 몫은 연구가 윤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공정한 연구지원 방식을 모색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연구윤리와 관련한 정책 집행자들의 책무도 있다. 정책 집행자들은 가능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집행하며 이를 위해 공평무사한 태도로 적절한 전문가를 기용해야 한다.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 자신의 뜻을 뒷받침하는 과학 지식은 물론 이에 반하는 증거를 모두 고려해서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과학 연구윤리는 바람직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자의 윤리에서 시작되지만 개별 연구자뿐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소, 학술단체, 그리고 정부 조직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중요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나라별로 국가 수준에서의 규정이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연구 관련 기관마다 자체 규정을 제정하고 있으며, 연구 활동의 세계화에 따라 국제 공통의 연구윤리 지침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도 경주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포괄적이며 긍정적인 방식으로 연구윤리를 해석하여, 윤리적인 연구란 “좋은 연구 수행(Good Research Practice)”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자세로 규정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여러 나라와 기관들의 연구윤리 지침을 보면 크게 연구자의 바람직한 연구 활동을 돕는 연구 수행 지침과 부정행위 예방 및 관리 지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과학 연구 또는 과학 연구윤리의 보편적인 원칙을 살펴본 다음, 연구 수행 지침과 부정행위 예방 및 관리 지침의 내용을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연구자들이 더 나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로 연구윤리 지침의 역할이라는 점을 되새기고자 한다.

과학 연구윤리의 보편 원칙


제 과학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공동연구도 일상적인 연구 방식의 하나가 되었고 국제 학술지나 학술대회를 통해서 전 세계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 환경에서 연구수행의 기본 원칙이 나라마다 크게 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대상 연구나 동물 실험을 제외하고는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윤리적인 과학 연구 수행의 기본 원칙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1) 세계 공통의 과학 연구윤리 원칙을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200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1회 세계연구윤리대회(World Conference on Research Integrity)를 이러한 움직임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연구윤리를 주제로 처음 열린 이 세계 대회에서는 각국의 연구윤리 현황에 대한 보고가 줄을 이었으며 이를 통해 각국의 다양한 연구 환경과 연구윤리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어서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회 세계연구윤리대회에서는 앞서 논의한 각국의 실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어도 참가국 사이에서 공감하는 연구윤리 일반 원칙을 천명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범세계적인 수준에서 연구윤리 기준을 설정한다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고 나라별 분야별 특수성은 여전히 연구는 세계적이되 연구윤리는 국지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2) 그러나 싱가포르 연구윤리대회 참석자들 사이의 난상토론과 이어진 온라인 공개 토론 끝에 “연구윤리에 관한 싱가포르 선언(Singapore Statements on Research Integrity)”이 작성되었다.3)

싱가포르 선언에서 제시하고 있는 연구윤리의 보편원칙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연구자는 연구의 모든 측면에서 진실해야 하고(Honesty in all aspects of research),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타당성을 입증할 책임을 지며(Accountability in the coduct of research), 공동 연구자를 전문가로서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하면서(Professional courtesy and fairness in working with others),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여 연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Good stewardship of research on behalf of others). 싱가포르 선언에서는 이와 같은 네 가지 일반 원칙 아래 모두 14개 항목을 통해서 연구자가 준수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를 열거하고 있다.4)

이들 원칙 가운데 연구 수행에 있어서의 진실성과 타당성 확보 그리고 연구자 사이의 협력과 공정성 유지를 명시한 앞의 세 가지는 대부분의 지침에서 공통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애초에 네 번째 원칙으로 제시되었던 “연구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준수한다”는 항목은 참가자들 사이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5)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 정치적, 사회적 제약이나 편견과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과학 연구의 자율성’이라는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최종 선언문에서 사회적 책임은 “효율적인 연구 관리(Good stewardship of research)”로 바뀌었다. 이로써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소 애매하고 포괄적인 표현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부정적인 정치색을 배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연구 결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등의 연구 수행과 결과물에 대한 관리 책임을 연구자의 덕목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미래 세대와 사회에 대한 연구자의 책무를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에 채택된 싱가포르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제2회 세계연구윤리대회에 참석한 나라들의 공식적인 의견도 아니다. 다만 연구윤리에 대한 국제 지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51개국에서 참석한 340명의 전문가 토론을 거치고 이후 석 달여의 온라인 공개 논의 끝에 작성된 문건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최근의 논의와 의견이 집약된 문건이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하겠다.

연구자의 연구역량과 윤리 의식을 높이는 연구 수행 지침


난 10여 년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여러 기구에서 “좋은 연구 수행(Good Research Practice)”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해당 연구자들에게 이를 실천하도록 안내하는 지침을 활발하게 제정해왔다. 윤리적인 방식으로 연구해야 좋은 연구가 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보면, 앞에서 언급한 과학 연구윤리의 보편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라야 ‘좋은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과학 연구윤리의 보편 원칙을 따르면서 보다 더 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항이 지침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의학연구위원회(Medical Research Counsil, MRC)의 “좋은 연구를 위한 지침(Good Research Practice Guideline)”은 개별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으로 참고할 만하다.6) 이 지침에서는 ‘연구 계획’, ‘연구 수행’, ‘자료 기록’, ‘결과 보고’, ‘결과의 활용’과 같이 직접 연구를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각각의 단계별로 매우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연구 계획’ 항목에는 계획에서부터 철저하게 기록하고 규정을 미리 잘 살펴 연구 수행과정에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하라는 원론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지침의 강점은 일상의 연구에서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점들을 환기시켜 준다는 것에 있다. ‘연구 계획’ 항목에 포함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연구가 계획한 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관리할 책임자를 정한다. 필요한 경우에 통계학자 등의 외부 전문가나 대중의 자문은 반드시 연구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구한다.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 점검한다.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출판할 때 누구에게 저자 자격을 부여할지 사전에 협의한다.

연구지원기관에서 만드는 연구윤리 지침이 “우리는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들을 지원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라면, 연구기관에서는 “우리 기관의 연구자라면 이러한 사항을 준수해야 합니다”라는 뜻을 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의 교원연구윤리지침(2007년 제정)과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8년 제정, 2010년 개정)은 소속 연구자들의 연구 수행 방식을 비교적 상세하게 안내하는 연구윤리 지침이다. 이들 지침에서는 일반적인 연구 수행 지침과 더불어 적절하지 못한 연구 방식과 금지 조항을 비교적 명확하게 예시하고 있다. 지침이 만들어질 당시는 여러 연구기관에서 연구부정행위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판정의 어려움과 논란에 직면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비등했고 이 지침은 이런 상황에서 제정되었던 것이다.

만일 연구자가 매일의 일상적인 연구 활동에서 그대로 따르고 참고할 수 있는 상세한 지침을 원한다면 실질적으로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는 연구실이나 연구팀 단위로 연구 지침을 만들 것을 권한다. 연구실의 연구 지침은 “우리 연구실(팀)에서는 이렇게 연구합니다”라는 연구실 구성원 사이의 약속이 될 것이다. 늘 함께 연구하는 구성원 사이의 약속이기에 연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다. 형식이나 내용에 제약을 둘 필요도 없다. 무엇이든 연구실 구성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애매한 문제에 대해 함께 기준을 정해 함께 지키기로 하면 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연구 수행에 관한 내용, 연구윤리, 구성원 사이의 협력을 증진하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도움이 될 것이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실험실 구역의 청소, 폐기물 처리, 저자 결정 원칙이나 시기 등을 미리 정해 사소한 일에서부터 생기는 구성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연구력이 저하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7) 또한 연구실이나 연구팀의 연구 지침은 법적 구속력이나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큼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해 간다면 늘 살아 움직이는 지침의 안내에 따라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부정행위 예방 및 처리 지침


에서 언급한 연구 수행 지침에서는 연구자가 윤리적이고 수준 높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바람직한 덕목과 실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연구자가 이러한 지침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면 또는 적어도 이를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한다면 연구부정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하게 되면 진실성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지식 체계를 훼손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 따라서 연구부정행위를 예방하고 이를 처리하는 적절한 대처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해 전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줄기세포 부정사건을 거치면서 2006년 당시 과학기술부 훈령으로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지침“이 제정되었고 2011년 6월 2일 일부 개정된 지침이 시행되고 있다. 이 지침에서는 연구부정행위를 정의하고 연구윤리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 기관이 지켜야 할 책무, 제보자 보호, 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와 기준, 조사 결과에 대한 후속조치 등에 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지침에서는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와 더불어 연구부정행위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거나 제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 그리고 그밖에 과학기술계에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를 부정행위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위조, 변조, 표절은 어디서나 중대한 연구부정행위로 간주한다. 그러나 처음 지침이 제정될 당시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를 연구부정행위로 규정하는 문제에 대하여 논란이 뜨거웠다. 그럼에도 당시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상당수가 우리 학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연구윤리 쟁점으로 ‘부당한 저자 표시’의 문제를 지목했다는 사실에 무게 중심이 옮겨지면서 결국 연구부정행위에 포함되었다.8) 또 한 가지 논란은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과학연구의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가 혁신이라 할 때 과학 연구 활동이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부정행위로 간주한다는 조항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표현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었다.

제정 당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개정된 지침에도 연구부정행위의 범위를 규정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자신의 연구결과 사용’에 대한 조항이 지침에 따로 추가되었다. 이는 연구논문 등을 작성할 때에는 이전에 발표하지 않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중복게재를 금지하는 조항으로, 필요한 경우 앞의 논문을 밝히고 처음 게재했던 학술지 편집자 허락을 받아 2차 게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는 지침이 제정된 이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중복게재에 대한 혼란을 줄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윤리라는 것이 밖으로부터의 규제가 아니라 연구자 공동체 스스로가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정한 약속이라 생각할 때, 연구자는 정해진 지침을 아무 생각 않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더 좋은 방향을 향해 개선될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윤리를 연구부정행위 예방과 처리에 국한시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기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태도로 연구윤리를 수용할 때 윤리가 연구자를 옥죄는 규제가 아닌 학계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글쓴이: 조

조선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연구윤리정보센터 전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