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왜 너는 나의 노예니까 이게 뭐꼬

책과 드라마와 영화

응답하라 1997 :: 명불허전 추억드라마 명대사, 명장면.

대한민국에 응답하라 1997, 줄여서 '응칠' 열풍이 불어닥칠 때,

나의 카톡친구 목록의 프사들은 죄다 서인국이었고,

뒷북을 즐겨 치는 나는 역시나 그 때 그 열풍에 동참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응칠이 종방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홀로 윤제앓이........................... ㅠ ㅠ 역시 후폭풍은 대단했다.

종편 시청률이 소수점 세자리를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 할 시점에

제대로 빵!!!!! 하고 터진 종편 드라마 응칠.

사람들은 디디알에서부터 다마고치, 삐삐같은 향수 어린 그 시대 물건들과 전설의 1세대 아이돌 H.O.T의 부활에 성시원과 함께 열광했다.

그리고 윤제의 부산 사투리에 여자들은 넋을 놨다.

'만나지 마까? 만나지 마까??'

그리고 깨알같은 방성재 유머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방성재 정말 좋다. 좋다 좋다 진짜 좋다. 방성재만 등장하면 콧구멍이 벌렁벌렁.

정말 간만에 본 웰메이드 드라마 !

서인국과 정은지와 제작진의 모험이 이룩해낸 승리다. 짝짝짝.

박수 쳐 주고 싶을만큼 잘 했어, 다들.

서인국과 정은지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아이돌 배우들이 판판이 욕 먹고 있는 이 시대에, 진짜 엄지 손가락 치켜들어주고싶은 연기였다.

물론 거기엔 사투리가 한 몫 한 것 같더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선 정은지 연기의 감칠맛이 좀 덜 했던 것 같다.

응칠 때문에 선입관이 생긴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단 대사가 너무 좋았고. 스토리도 좋았다.

물론 드라마 후반부에서 태웅이가 갑자기 시원이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 약간 잉?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신선했다.

스토리의 신선함이라기보다는, 추억을 담은 소재들을 신선하게 잘 사용해 20,30대의 구미를 확 돋운 것 같다.

응칠 1회 맨 첨에 나오는 휴대용?디디알.

어렸을 때 아빠가 사 들고 와서 그 좁아터진 아빠 방에서 컴퓨터에 연결해놓고 

신나가지고 미친듯이 발로 꾹꾹 눌러댔던 거 기억난다. 

조금이라도 더 하겠다고 동생이랑 싸우고. 나중에 결국 디디알 장롱에 처박히고. ㅠ ㅠ  

근데 이건 지금도 피씨방에 있는 것 같고.

추억의 마이마이.............

초딩 때 학교 강당에서 마이마이에 핑클 1집 테이프 넣어가지고

애들한테 들려주고 엄청 자랑해댔었는거 기억난다.

그리고 하늘색 풍선 우리들의 지오디.

에쵸티보다 더 열광했던 지오디.

알고보니 이들은 99년도 데뷔란다. 내가 91년생이니까 에쵸티의 전설 시대는 잘 모를만도.

다마고치.............. ㅠ ㅠ

어릴 때 외할머니 집에서 사촌들이랑 잘 때, 작은 외삼촌이 밤에 귀신 얘기 해주는데

다마고치 똥 눴다고 갑자기 삐삐삐삐- 소리 겁나 크게 나서 다 놀라 뒤집어지는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신보다 더 무서운 다마고치 똥알람소리.

어릴 적이지만 이렇게 전부 추억들이 돋아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어느새 이 드라마도 삼탕을 하고 있는 거 보니, 아 이거 포스팅을 할 때가 왔군 하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 앞에 안착 !

어디 한 번 1997년도에 응답해볼까나 !??????

*

- 아저씨가요, 원숭이같이 생깄다 카고, 사회 암적인 존재라 카고

저런 건 대가리 빡빡 밀어가 군대에 쳐넣어야 한다꼬.

- 시워이를? 우리 딸이 그정도는 아이제.

- 아니, 토니가요.

- 아... 그 원숭이 새끼놈.

*

- 야. 게스가 물음표지. 느낌표가 아이잖아. 어?

게..스? 지, 게스!  아이잖아.

야. 우리나라 짜가가 이마이 발전을 했다.

역시 우리 민족은 대가리가 좋은 민족이야, 어?!

*

- 내 오늘 유정이한테 고백 받았다.

- 들었다.

- 우짜지?

- 닌 어떤데.

- 모르겠다.

만나지 말까?

- 그걸 왜 내한테 묻는데.

- 만나지 말까?

   만나지 말까?

- 소원이 뭔데.

- 만나지 마라캐라.

*

끊어진 비디오 테잎처럼 찢어진 내 가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걸었던 나이.

열 여덟.

흔히 어른들은 우리 나이를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라고 하지만

그 때의 우린 그 어떤 어른보다 심각했고, 치열했고, 힘겨웠다.

1997년.

우리들의 열 여덟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 비키바.

아 니는 국영수 하는것 맨키로 일상에서 좀 대가리를 좀 굴리바라.

이 코딱까리만한 가방에 들어갔음 뭐가 들어갔겠노?

그거 하나 못 찾아가지고 사람을 이래 오라가라하나. 빙신도 아니고.

- ?

*

- 이래 귀엽게 생긴 아가 노래도 얼마나 간드러지게 잘 하는데.

마 사람 애간장을 살살 녹인다.

잠 못 이룬 새벽- 이게 다 두성이라고, 두성. 어?

함만 들어봐봐, 함만.

- 암만 뜨고 싶어도 그렇지. 시상 천지에 이름이 양파가 뭐고, 양파가.

와. 고마 다마내기라 카지.

*

- 시원아. 안승부인. 내 미안타.

내도 내 HOT 오빠야들 싫어진거 아이다.

내도 모르게 여섯 개의 수정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걸 우야겠노.

*

똑같은 모양을 맞춰야 점수가 나는 고스톱.

우리도 한 때 같아지려 애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우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그 땐 그걸 왜 그리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인간 성장의 법칙.

열 여덟.

우린 성장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서로 달라지고 있었으며,

그 달라지는 서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또 다른 성장통 앞에 직면해 있었다.

*

1997년 봄.

나와 그 녀석의 2차 성징은 시작된 지 오래였고,

우린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난,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이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쭉 똑같이 살아왔던 서로에게

달라진 모습을 들켜버린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소꿉친구를 향해 시작되어버린 내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 때문인지.

- 확인.

*

- 우쭈쭈. 똥 쌌어여?

이 오빠야가 치아줄께여.

- 니 다마고치 억시로 좋은기네.

똥도 마이 안 싸고.

- 아이고. 똥은 마이 안 싸는데 밤에 잠을 안 자서 마 돌아뿌겠다.

 벌써 세 번이나 죽었다니까. 오늘 아침에 또 리셋 했다 야.

*

- 니는 나이가 몇인데 그딴 걸 하노.

- 니 같은 냉혈한은 절대 모르는 그런 휴머니즘이 있다 아나요 아제요. 예?

아제요, 보소.

*

- 친구를 위해 머리를 깎았다.

- 잠시만요.

광고 찍나봐요?

*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오?

- 저는 서울에서 왔구요.

강남 고등학교에서 농구와 야구를 조금 했습니다.

- 저는 부산에서  다마고치 좀 키웁니다.

*

내가 백지 이런 날 주번에 걸리가 정신이 상가로븐께 홀딱 다 이따 비주께.

*

- 야산은 부전공이고 전공은 망가.

- 망가가 뭔데?

- 일본 만화. 이 빙신아.

임마 이건 뭐 하는 놈이고?

- 아버지가 장군이잖아.

- 그게 와.

- 부자라고, 부자.

그 망가를 말이다. 레귤라, 어?

레귤라, 레귤라. 

정기적으로, 어?

다이렉틀리 니뽄. 응?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간단 얘기야.

비행기를 타고 슈욱 날아가, 어?

가서 이-빠이 사 오는거야. 어?

현재 보유중인 망가 테이프 수만 2천 500개가 넘으신단다.

*

- 야. 안승부인.

니 윤제한테 까대기 치지 마레이?

엄마야. 야. 아까 보이까 눈 웃음 요래 헤- 요래 치면서 까대기 치대.

- 불알친구다.

- 엄머, 상스러브라.

자 말하는거 봐라.

저 무슨 뜻인데,니 아나?

*

귀공자 외모와 불꽃 카리스마.

뛰어난 운동신경에 리더십까지.

신은 학찬이에게 모든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공평하게도 딱 한 가지를 까먹으셨다.

여자를 야동으로 배운 도학찬.

진짜 여자 앞에선 바보 천치. 상 등신이 된다.

*

그 누군가의 비밀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말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진짜가 아닐 때

비밀은 더 강력해진다.

과연 내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 중

진실은 얼마나 될까.

*

사람들의 마음은 천층 만층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애정을 나누고,

한 없이 호기로운 수컷도

이성 앞에선 그저 찌질할 뿐이다.

그래. 진실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껴안지 않으면

우린 평생 가짜를 진짜로 오해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불편한 진실도 안아주어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

- 오빠. 메리 투 미.

메리 투 미. 몰라요?

내캉 결혼하자고요.

- 메리 투 미가 아니라, 메리 미다.

메리가 타동사니까 전치사가 오면 안된다고 내 몇번을 얘기했노.

*

- 엄마야, 우짜꼬. 야 내 까뭇따.

우짜지? 야, 지금 시킬까?

- 아, 지금 시키면 다음 월드컵 때나 올끼다.

- 아, 우야지.

*

- 내 사실 까뭇따.

오전에 시킸어야되는데 유정이랑 논다고 새까맣게 잊아삐따.

진짜 미안하다. 이건 백프로 내 실수다.

닭이랑 같이 물라고 샐러드하고 있는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치킨 물라고 점심도 안 먹은 아빠한테도 억쓰로 미안하다.

후라이드치킨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초딩입맛 윤제한테도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진짜 미안하다.

내 다시는 이런 실수 안할끼다.

모두모두 억쓰로 미안하다이?

- 아따. 우리 딸래미, 참으로 멋있다.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뻔뻔한 내 딸 참말로 맛있다. 아따.

*

- 이번 달에 백문백답이 누꼬.

지난달엔 강타 했으니까 이번달은 토니안이겠네.

뭐꼬.

이 다마내기 아이가.

*

- 이거 누가 가꼬 가지?

- 원본은 내가, 오빠야는 복사지 줄께.

- 와 니가 원본인데?

-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원본 가져가는기다.

- 그럼 내가 복사해서 니 줄게.

*

- 짜잔.

- 뭐꼬.

- 뭐기는. 렌즈 안낏나. 왜 못났나. 이상하나?

- 아이다. 개안타.

- 안경은 안뇽.

길을 걷다 부딪히고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고르고

누군가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오고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란 특별할 줄 알았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고작 이런걸로 빠지게 될 줄은.

*

1996년 봄, 내 첫사랑은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

그 땐 안경을 안 써서 예뻐 뵀는데,

지금은 안경을 써도 예쁘네.

*

삶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와

뒤통수를 갈긴다.

*

이게 뭐꼬?

우혁은 거칠게 문틈 사이로 승호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승호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하악. 으윽.

승호의 하얀 입술이 빨갛게 부어 올랐다.

이러지마. 너에겐 칠현이가 있잖아. 그만 돌아가. 싫어. 왜.

넌 이제 나의 노예니까.

*

- 현재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 그런 질문도 있나.

- 어, 있다. 현재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 어.. 네.

-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 네.

*

- 대신!

우리가 이래 앉는 대신에

쌤들도 출신 학교랑 임용 성적, 성적순대로 벽에 붙여주이소.

이래 앉는 대신 쌤들도 성적 순으로 벽에 붙이란 말입니다.

- 지금 뭐라캤노?

- 인문계 고등학교에 평등이 어딨고, 교권이 어딨습니까.

*

- 와. 역시 잠은 동아가 최고다.

엘리트는 너무 높고

에센스는 비닐이 쩍쩍 들러붙어가꼬 별론데.

*

- 내일 학찬이가 수능 끝나고 집으로 오란다.

- 저거 집으로? 수능 끝나면은 밤일낀데.

- 이기 무슨 뜻이고?

- 자.. 고 싶다?

- 안돼.

- 당연히 안되지, 가시내야.

- 나 생리중이다.

*

- 니 내일 약속 알제.

까묵으면 안된다이. 운동장에서 여덟 시.

- 아 뭔데. 그냥 지금 주라.

- 안된다. 오늘은 디 마이너스 일이다.

디데이는 내일이다. 하루만 참아라.

*

- 야. 우리 건배나 할까.

- 뭘 위해서 건배하노.

- 음... 니의 디데이를 위해.

- 건배.

- 건배!

*

김연아는 올림픽의 4분 10초를 위해 12년을 얼음판 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 날 그 시험을 위해 우리 역시 12년을 기다리고, 달려왔고, 준비했다.

1998년 11월 18일.

 우리의 디데이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 더 이상 모자란 아 갖고 장난치지 마세요.

노래나 들읍시다.

- 장난 아인데.

형은 장난 아이다.

내 시원이 좋아한다. 몰랐나.

니 눈애만 애지, 형한텐 아이다.

안 그래도 이따 시원이 만나서 얘기할라고.

시원이 그거 억시로 놀랄끼다. 그자.

*

혹시.. 이의정이하고 바다?

이것들을 확 받아뿔라.

*

시원아.

오빠랑 연애할까?

*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을

새끼손가락에 묶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실의 끝은 인연의 상대가 묶고 있는데

그 실타래는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끝을 찾기가 어렵다.

*

- 니 앞으로 이라지 마라.

- 뭘!

- 행동 조심하라고.

형 이런거 싫어한다.

어느 남자가 이런 거 좋아하겠는데.

*

- 야는. 니 친구가?

- 내 짝꿍이다.

- 안녕하세요. 윤윤제라고 합니다.

- 잘생깄네. 쳐 무라.

*

- 내가 좀 많이 먹는 편이예요..?

- 적게 먹는 편은 아이제.

- 그래서 싫어요?

- 그럴리가.

- 웅히히히히히히

- 학생. 만두 안 가가나?

- 만두........ 히히힣힝.

*

- 아우, 비가 와서 그런가 어디에서 개가 이렇게 짖어?

개쵸티가 벌써 도착했나? 어우, 개쵸티 냄새. 월, 월월, 월.

야. 부탁 하나 하겠는데 내 말 좀 전해주라.

제발 지들끼리 작사, 작곡한다고 깝치지 좀 마세요.

우리 대한민국 음악계가 썩어가는 걸 더이상은 못 보겠거든요?

곡 하나 받으셔서 입만 벙긋 벙긋 대시는게 차라리 보기 좋았음.

이라고 꼭 좀 전해주세요. 에?!

- 그래. 니들이 우리나라 가요계를 걱정하느라, 그리고 환경 걱정하느라

고생들이 많다. 응?

근데, 그 거적대기들은 어느 쓰레기통에서 줏어다 입힌거니? 응?

너네 헌 옷 줏어다가 걔네 무대의상 만들어 입힌다면서. 응?

근데, 그러면 좀 천으로 잘 엮어서 만들어주지 그랬니.

비닐 바지에 땀 차잖아, 송글 송글.

아니면, 돈을 좀 모아서 옷을 사입히든가.

안 그래도 구린 비주얼이 더 구려지시잖아요.

*

- 그럼 와. 시원이 왜 좋아하는데.

- 이쁘잖아.

이쁘다.

내 눈에.

*

- 내가 왜 좋은데?

- 귀엽고, 이쁘고.

*

- 오빤 제가 왜 좋아요?

왜 좋냐고요.

송주 언니랑 닮아서요?

- 아니.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이다.

이뻐서.

우리 시원이 이뻐서 오빠가 좋아한다.

- 통통하고, 얼굴도 넙대대한데 그래도 좋아요?

- 응, 내 눈에.

근데 남들 눈엔 절대로 아이다.

*

- 니는 내가 왜 좋은데?

- .. 가슴?

*

- 에이, 우리 은도끼 어디가 좋았는데요.

- 음, 어디가 좋았냐면.

이쁘잖아요.

사투리 쓰는 것도 예쁘고,

눈가에 주름 있는 것도 이쁘고.

무좀도 이쁘고.

포진이 꽃 모양처럼 났거든요.

그냥 다 이뻐요.

- 내 눈에 자기는 180이다.

- 내 눈엔 자긴 국민요정이야.

- 이모. 여기 저 찬물 안 줘요, 찬물?!

*

- 니는 시원이가 왜 좋은데.

- 시원이 안 좋아하는데.

시원이 안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다.

- 누구?

- 니.

*

7년만에 불러보는 이름.

아버지와 어머니.

그 날의 사고가 있은 후

난 내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된 관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관계.

바로 가족이다.

이젠 내겐 단 하나의 가족 관계만이 남았다.

*

- 짠. 내 어떻노. 처녀 안 같나.

새로 시집가도 되겄제.

- 아야. 너는 뭐 모가지 밑에다가 철물점 냈냐?

새로 시집 가기전에 니 메가지 뿌라져부러겄다.

*

- 얼맙니까.

- 계산 했는데예.

- 계산을 했다고요? 누가요?

- 좀 전에 어떤 학생이 와가 싹 다 계산하고 갔어요.

- 그 학생 어떻게 생겼습니꺼.

- 키는 중간 정도에 머리는 짧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쪼매 있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그라고 서울말 썼어예.

*

- 안녕하세요.

- 누구.. 누구야?

- 아, 얘? 얘.. 아는 여자애.

*

늦어서 미안하다.

가시나. 간땡이 부었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 이제 들어오노.

얼굴이 무기면 낮에 댕기든가.

열 두시 넘으면 집에 일찍 기들어와야될거 아이가.

언제 철들래?

다친 데 없으면 됐다.

*

- 들어가라.

와. 무섭나.

좀 있다 갈까?

- 니 피 마이 난다.

- 됐다. 안 죽는다.

*

- 어제 슈퍼티비 캠퍼스영상 나온거봤나.

- 어. 유진 나왔대.

야 이마가 5000평이라 카더만 이마를 까도 예쁘더라.

머스마들이 환장 안 하나.

- 내는 잘 모르겠던데.

얼굴은 효리가 짱이다.

짠. 내 어떻노?

- 가시나. 니가 효리보다 낫다.

-  맞나. 근데 어제 티비에서 보니까 유진이 결혼할 때

바다랑 슈랑 웨딩드레스 만들어준다 카던데,

니 상상이 되나? SES가 결혼을 하는기.

- 가시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런 날이 오겠나?

- 그체? 한 번 요정은 영원한 요정이다.

*

- 내가 처음으로 산 명품.

오빠 상 받을 일 많잖아요. 높은 사람 만날 일도 많고.

빨간 넥타이 매면 일이 술술 잘 풀린대요. 계약도 잘 되고.

요고 매고 딱 100억만 벌어라.

- 근데 니 넥타이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선물하는기가?

- 방금 말했잖아요.  일 술술 잘 풀리라고.

아니에요? 다른 뜻 있어요?

- 아니, 맞는데. 그건 그냥 평범한 사람 사이에서 하는 얘기고.

연인끼리 말이다.

연인끼리 넥타이를 선물할 때는 다른 뜻이 있는데..

당신을 가지고 싶어요. 그런 뜻이다.

몰랐나?

*

- 니 까뭇제. 작년부터 계속 얘기하고 댕겼는데.

- 그건 형한테 받아라.

그 선물, 나한테만 아니면 되는거 아이가?

와. 니 진짜 잔인하다.

니 지금 나한테 달란 소리가 나오나?

- 왜?

난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겠다.

니가 설명 좀 해도.

*

내 니 좋아하잖아.

니 억쓰로 좋아하거든?

태어난 순간부터 옆에 있었고,

하루도 안 보는 날 없었고

니 첫 생리 터지는 날 까지 기억하는데

그래도 여자로 보이더라.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난생 처음 니가 이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니 주변에서 계속 티 냈다.

니 좋아한다고.

내 좀 좋아해달라고.

근데 닌 모르대.

아 그래. 그동안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고백해야겠구나.

그래서 수능 보는 날 내가 보자고, 학교 운동장에 여덟시에 만나자고 말했잖아.

그 날이 내 디데이라고.

근데 형이 10분 먼저 말하대?

내한테. 니 좋다고.

내 어떻게 할까.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딱 두명 있는데

한 명이 우리 형.

나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한 우리 형이고,

다른 한 명이 니.

닌데.

우리 형이 니가 좋단다.

그것도 마이. 내처럼.

내 어떻게 할까.

어떻게하면 좋겠노.

어떡하냐고 가시나야.

*

- 윤제야.

우리 다시 예전처럼 편한 친구로 지내면 안돼?

니 말처럼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같이 있었잖아.

내가 머리가 좀 나쁘다.

니도 알제.

근데, 니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라는 건 안다.

그래도 내랑 계속 친구는 해 줄꺼제.

- 사내 새끼가 짝사랑하는 가시나한테

구질구질하이 여기 있는 걸 다 털어 놨다는 거는

다신 안 볼 생각인기다.

*

친구?

지랄하네.

*

10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건,

아직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답을 찾아 이리쿵, 저리쿵 숱한 시행착오만을 반복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 기적적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우린 성인이 되어 크고 작은 이별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해 겨울, 세상은 온통 헤어짐투성이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인류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빠순이들에겐 차라리 종말이 더 나았다.

젝스키스가 돌연 해체를 선언했고, 성난 팬들은 애꿏은 조영구의 차를 불태웠다.

2001년 HOT 오빠들도 해체를 선언했고, 하늘은 무너졌다.

뉴욕 한복판에 비행기가 떨어졌고,

인천공항이 문을 열었으며,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선에 당선되었으며,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KTX로 이제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들의 90년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90년대는 끝나는줄 알았다.

*

- 뒤에 손님, 먼저 주문하세요.

- 아이스 카라멜모카 큰 거 주세요.

- 휘핑 크림은요?

- 완전 많이 주세요.

*

- 어 준희야. 통화 되나.

야. 윤제 여자친구 있나?

아. 금마 원래 내 전화 안 받는다 아이가.

어. 어. 그래. 고맙다.

- 친구. 그, 남자 친구 여자 친구 할 때 그냥 친구.

너도 그런 친구 하나쯤은 있잖아.

- 어. 친구?

친구?

지랄하네.

*

너 때문에 동창회도 안 가고

어버이날도 하루 먼저 내려가고

추석과 설에는 장염이네 눈병이네

지난 6년동안 별의별 생쑈를 다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방에 끝내냐.

성시원 이 망할 년.

다시 모든 게 96년 고등학교 입학식 날로,

97년 첫키스를 나누던 수돗가로,

98년 미친 놈처럼 울부짖던 그 때 그, 그 겨울로 돌아갔다.

정확하게 나는

90년대의 윤윤제로 리셋되었다.

*

저 오빠한테 할 말 있어요.

저 오빠 많이 좋아하는데, 막 가슴이 뛰거나 설레지는 않아요.

제가 아직 어려서 누굴 좋아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 마음은 다른 쪽으로 쿵쿵거리고 있어요.

미안해요, 오빠.

*

- 니 개안나.

- 야. 아버지 아직 짱짱하시더라? 괜찮아?

- 잉. 사투리로이?

- 니 대가리 개안나.

*

- 윤제야.

- 왜? 화장실 가고 싶어?

- 대답해도 지금. 니 아직도 내 좋아하나.

지금도 내 좋아하냐고.

- 너는?

그런 너는 왜 나한테 그런 걸 묻는데.

너는 나 좋아하니?

- 응.

내 니 좋다.

친구가 아이라 남자로. 좋다.

내는 대답했다.

니는. 닌 아직 내 좋아하나?

대답해라. 당장.

*

잊고 있었다.

지금 좋으면 지금 당장의 그 뜨거움을

있는 그대로 주저없이 표현해 내는 녀석이란 걸 잊고 있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될 것을.

내 지금 당신이 좋으니, 내 사람이 되어달라.

지금 당장 이렇게 말해버리면 될 것을.

그 예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난 그저 망설이고만 있었다.

*

-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많이 보고 싶었는데.

너 많이 보고 싶었어.

늦게 와서 미안해.

내가 돌대가리라 졸업하기가 어렵더라고.

멋지게 짠, 하고 나타나려면 졸업장은 있어야지.

그거 따느라고 늦었어.

이젠 어디 안 가.

같이 붕어빵 팔더라도 옆에 있을거야.

사랑해.

- 다시 말해 봐.

- 사랑한다.

- 나 보고.

- 사랑해.

*

- 내가 지은 죄가 있어서 참는다이?

- 니 죄가 뭔데.

-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죄.

야. 이런 죄는 형량이 얼마나 되노.

- 무기.

- 무기? 야. 무기는 너무 심하다.

내가 사람을 죽였나, 쿠테타를 일으킸나.

깊이 반성도 하고 있구만.

- 니가 무기가 아니라,

내가 무기징역이라고.

너 때문에 평생 감방에 살고 있다고.

정해진 기한 없이. 혼자.

죽을 때까지.

*

야.

니 3초안에 대답 안하면 니 볼에 뽀뽀 확 열 번 해뿐다이?

내 한다면 하는 거 알제?

하나.

둘.

*

- 근데 두 분 무슨 사이예요?

우리 성시원 작가가 어떤 감언이설을 했길래

이렇게 윤 판사님이 재판까지 미루고 한 걸음에 오셨을까.

친척? 동문?

- 아니, 그냥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던..

- 남자친굽니다.

시원이 남자친구예요.

*

- 누구야?

- 내 여자친구예요.

모유정이라고, 제 여자친구예요.

인사해. 우리 엄마.

*

- 니가 들어가서 뭔 짓을 할 지 내가 우째 아는데.

윤윤제 씨.

고마 집에 들어가가지고 발 닦고 코 주무시지요이?

대가리 그만 쳐굴리시고요.

- 가시나. 촉 좋다.

대신 뽀뽀.

- 주디 집어넣어라.

가 민망하겄다.

*

- 왜 형한테 얘기 안 했니.

- 얘기 했으면. 형이 포기했을까?

나처럼. 시원이 포기했어?

- 아니. 난, 포기 안 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그래서 모든 걸 양보할 수 있지만

여잔, 포기 안 해.

그래서 형 아직 시원이 포기 못 해.

*

- 갈게. 갈게.

대신, 키스 한 번만 해주면 가지.

아 진짜 키스 한 번만 해주면 간다니까.

아 됐다.

- 알았다, 알았다.

됐제?

- 하. 가시나 지금 장난하나.

*

- 자기야. 자기야,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

그래.

거의 다 됐다. 다 됐다.

다 됐다. 다 됐다.

- 개뿔.

다 되긴 뭐가 다 돼. 이씨.

이게 다 니 때문이라고.

이 개새.

*

- 내가 토니보다 몬한 게 뭐 있는데?

- 니 지금 토니 오빠랑 니랑 비교를 하나.

- 어!

- 토니 오빠랑 내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아가페적인 사랑.

플라토닉 러브라고.

어따 비교를 하노, 개새가.

- 와. 그럼 내 사랑은.

내 사랑은 뭐 천박하고 퇴폐적이고 뭐 땅바닥에 기어댕기는 사랑이야 뭐야.

*

- 아임 뭐. 니가 따로 받고 싶은 프로포즈라도 있어서 그라나.

뭐 근사한 레스토랑 빌리가 뭐 3현주 현악단에 케이크..

- 하지 마라.

니 이벤트 같은 거 하면 직이삘끼다이.

막 차 트렁크에서 풍선 튀나오고 마

방송국 앞에 시원아 사랑해 플랜카드 날라댕기는 날엔

니 죽고 내 쪽팔려서 죽어삘끼다이.

그러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마라, 아무 짓도.

알았나.

*

- 뭔데.

대답했다 아이가.

- 안다.

- 근데 이게 뭐하는 짓거리고?

- 그냥, 연인들끼리 하는건데?

*

준희야.

나중에 밥 먹자.

*

- 윤윤제, 니 퍼뜩 안 일어나나.

니 지금 잠이 쳐오냐. 빨리 쳐오냐고 지금 잠이.

- 와, 또 와 그러는데. 뭐고.

- 내가 조심하라 그랬제.

조심하라 했잖아.

- 뭔데.

하드 사 왔어?

*

첫사랑.

저마다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사랑의 그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첫사랑의 시절은 영악하지 못한 젊음이 있었고

지독할만큼 순수한 내가 있었으며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당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그 젊고 순수한 열정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은 무모하다.

영악한 계산 없이 순수와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거늘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그래서 극적이다.

다시는 가져볼 수 없는 체온과 감정들로 얽혀진 무모한 이야기들.

첫사랑은 그래서 내 생애 가장 극적인 드라마다.

그리하여 실패해도 좋다.

희극보다는 비극적 결말이 오래 남는 법이며

그리하여 실패한 첫사랑의 비극적 드라마 한 편쯤은

내 삶 한 자락에 남겨두는 것도 폼 나는 일이다.

*

코 찔찔이 소꿉친구에서

첫사랑으로

연인으로

그리고 이렇게 남편과 아내로 만나기까지

우린 같은 시대를 지나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익숙한 설레임.

좋다.

*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가져가실 땐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