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이 자살 하는 방법

2008-10-07

최근 최진실 등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면서 자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살이란 단지 막연한 관심사로 일반인들은 그저 방관자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고 자살미수로 그친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4위였다. 지난해에만 1만3천명이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년 전에 비해 4배가 늘었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수치다.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도 차지하기도 했다.

◆자살(suicide)이란=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의 합성어다. 즉,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자살에는 여러 가지 심리상태가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 인한 고통이다. 특히 상실한 대상과 애착관계가 강할수록 고통은 더한데, 사랑하는 이가 없는 고통스런 이 세상보다 저세상에서 재회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말기암, 만성 동통 등 건강문제, 가정문제, 경제문제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힘든 삶에서 도피해 고통이 없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때로는 타인에 대한 복수심, 적개심으로 인한 자살도 있다. “내가 죽을 것이니 너희들도 고통을 당해봐라”는 보복적인 내면심리가 그것이다. 자기에 대한 요구가 높은 사람이 자신의 기대수준에 현실이 못 미치는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로 인한 절망감, 주위 사람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죄책감 등으로 스스로를 응징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다. 주위로부터의 거절로 인한 박탈감, 자기애적 손상이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을 때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 방법으로 또는 다른 사람을 조정하는 방법으로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의 위험요소=

자살의 위험요소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의학계에서는 적어도 60% 이상의 자살 시도자와 자살자들은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우울증 등의 기분장애이고 다음으로 정신분열병, 알코올 중독 등 약물남용이다. 성격 유형으로는 △완벽주의자로서 실수를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유형, △충동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유형, △남의 비난에 과민하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형 등이 위험성이 높다. 또한 독신, 이혼자 등 주변에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 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군에서 위험성이 높다.
이와 함께, 집안에 양극성장애, 우울증, 정신분열증, 알코올 중독, 자살 등의 가족력이 있을 경우 자살 위험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들어 스트레스가 높은 생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도 위험요인의 하나이며, 최근 1년 내에 자살시도를 한 병력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100배 가량 위험성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자살한다고 위협하거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은 주변의 관심을 얻으려 하는 것으로 무시해 버리고 신경을 안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 약 10%가 실제로 자살에 성공한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자살은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80% 정도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자살 의도를 밝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하기 얼마 전에 주변사람들과의 대화과정에서 또는 성직자나 의사를 찾아가서 자살의사를 직접 밝힌다거나 전과 다르게 식사량이 줄고, 말이 없어진다거나 수면의 변화, 유언장을 쓴다거나 하는 행위는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패턴 중 하나다.
또한 마치 앞으로 긴 여행을 떠날 것 같이 주변을 정리하고 아끼던 물건을 스스럼없이 남들에게 나누어 준다거나, 극도로 힘들어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매우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인다면, 자살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양가감정(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있는 상태) 상태에 있어 매우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자살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느끼며 자신이 자살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숨기려 하면서도 자신의 자살의도를 누군가 알아주고 구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주변의 누군가가 자살 의사를 모호하게 표출한다고 해서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자살, 예방이 최우선=

주변에서 이렇게 자살의 증후를 보이는 사람들을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어떤 방법으로 죽고 싶나?”, “구체적으로 자살방법을 계획하고 실제 시도해 본적도 있나?” 하고 직접적으로 묻는 것은 자살을 부추기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자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자살 충동에 대한 외부 표출과 동시에 이를 대화의 주제로 선택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치료적인 방법이다. 또한 자살의 징후를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왜 죽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로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며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이웃에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야말로 자살에 대한 최상의 해답”이라고 밝혔다.

◆자살에 흔한 10가지 특징

1. 자살의 흔한 목적은 뭔가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자살은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더 두려운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다
2. 자살의 흔한 목표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의식의 세계를 끝내려는 것이다= 자살은 망각을 제공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생각들로부터 해방시킨다
3. 자살을 유발하는 흔한 자극은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다= 수치심, 죄책감, 분노, 공포,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파괴적 행동을 유발한다
4. 자살의 흔한 스트레스 요인은 정신적 요구의 좌절이다= 자신에 대한 기준과 기대가 높은 사람인 경우 특히 목표가 좌절될 때 자살하기 쉽다. 실망이나 실패를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무능력하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가정불화가 좌절의 큰 원인이 되고, 성인기에는 직업상 또는 대인관계상의 어려움이 자살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5. 자살에 수반되는 흔한 정서는 앞으로 희망도 없고, 도움 받을 데도 없다는 고립감이다.
= 분노나 슬픔 등 다른 어떤 부정적인 정서들보다도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자살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굳게 확신한다
6. 자살의 흔한 인식상태(cognitive state)는 양가감정(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있는 상태)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고 싶은 욕구에도 충실한 반면, 동시에 그들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7. 자살하는 사람들은 흔히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극단적이고 흑백논리적인 문제해결방안을 선택한다.’불명예 이전에 죽음’을 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살을 감행한다
8. 자살에 있어 흔히 취해지는 조처는 공격적인 방식의 도피이다= 자살은 참을 수 없는 환경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한다
9. 자살에 흔한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의미는 자신의 의도를 표출하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편견이 진실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인데,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은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살 시행 전에 자신의 의도를 표출한다
10. 자살도 역시 그 사람의 인생에 걸친 문제 해결 패턴과 일관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만드는 위기상황에서도 역시 인생에 걸쳐 일반적으로 반응했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도움을 요청하기 꺼리던 사람들은 그 패턴을 계속 유지하여 결과적으로 고립감을 증가시킨다.

자살에 대하여 (1) 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반지에 새겨진 죽음의 머리를 굳이 보아야 할까?
내 얼굴에 이미 새겨져 있는 것을.

- 존 던 ‘뜻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한 묵상’ 中

나는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왔다. 약을 증량하며 나아지는 것 같다고 느낀지 불과 한 달 만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살사고도 나를 따라왔다. 나는 죽음을 사랑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으니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깊고도 아이러니한 짝사랑을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도착하기까지 겪어야 할 고통만 아니라면 아마 나는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고통이 제일 적은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자살자에 대한 글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이나,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머릿속에 쌓아나갔다.

조사가 어느 정도 진척된 이후에는 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에도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끔찍한 일도 세상 흥미롭게 얘기할 수 있는 쓸데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자살에 대한 자유연상이 유난히 고조되던 날이었다. 미소도 찡그리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고 침착하게 내 말을 끊었다.

“○○씨는 정말....... 자살사고마저도 자기화시키는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깊게 파고드는 분은 별로 없거든요.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자주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내 얘기가 얼마나 듣기 힘들었으면 이렇게 말을 막았을까 싶었다. 그만큼 나는 끔찍한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디서도 하지 못하는 얘기를 더 들어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하기도 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나는 착실히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거의 매일 생각해요....... 이런 삶을 왜 살아야 할까. 저 약을 먹는 지금도 조금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다리가 아파요. 약을 먹어도 이렇게 아프고 지치고 힘든데, 언제까지 계속 살아야 하나요? 그냥 이젠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어요. 그냥 쉬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살아 있으면 이걸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 다 그만두고 쉬고 싶어요.”

고통 때문에 삶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자살로 얻게 될 필연적인 고통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자살을 망설였다. 삶을 지속하는 것도, 삶을 끊는 것도 그만큼의 고통을 수반한다지만, 자살에 대한 열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 가보기로 했다. 나 스스로가 자살에 대해 얼마만큼 알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방법을 택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고통 없이 자살 하는 방법
사진_픽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지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은 한 개인데,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았다. 만약 내가 어떤 방법을 선택했다 해도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통이라는 감각은 너무나도 주관적이라 누구에게는 참을 만한 것도 다른 누구에게는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나마 덜 고통스럽다는 방법도 그걸 선택한 사람이 ‘내가 이 방법을 썼더니 덜 아프게 죽는 것 같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참고하라’라고 직접 기술한 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짧았으니 이 방법이 고통이 적은 것 같다고 과학에 근거에 추론한 것뿐이다. 그 방법이 제일 쉬운지는 직접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내가 죽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난 것도 아니다. 가족들은 내 시신을 보고 그게 나라는 사실을 확인해줘야 한다. 가족들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려면 그나마 시신만큼은 온전해야 한다. 그래서 신체를 심하게 훼손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제외해야 했다. 그렇게 선택지는 또 줄어들었다. 자살에 대한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해서 자살이 더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멀리 돌아가야 했으므로 결정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었다.

유서를 먼저 쓰기로 했다. 구구절절한 말을 남길 생각은 없었다. 두 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마지막 인사가 되기에 적합한 말이 무엇일지 여러 날을 고민했다. 그러면서 나의 장례식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는 침통한 표정으로 내 영정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거고, 엄마는 아마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할 것이다. 문상객들은 젊은 나이에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 떠났냐며 한 마디씩 보탤 것이며,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을 것이다.

상상력의 범위를 최대한 늘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를 짐작해 본다. 내가 삶을 주었고, 내가 세상을 가르쳤고,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아이가 삶이 싫다며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의 쳇바퀴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내 선택과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증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낳아 기른 부모에게 그런 상처를 줘도 되는 것일까?

다시 자살방법을 고르는 문제로 돌아가자면, 내가 고려해야 할 것은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자살이 실패했을 때 입을 영구적인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살 실패를 방지하려면 가장 치명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시신 훼손이 불가피하고, 나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방법일 가능성이 크다. 시도의 두려움이 커지면 실패의 확률도 그만큼 증가한다.

이런 내가 안락사를 떠올린 건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학 시절 안락사를 다뤘던 책으로 발제를 한 적이 있다. 게다가 자살사고에 가장 격렬하게 시달리던 시기에 읽은 책은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Me before you)’였다. 두 책 모두 안락사를 돕는 단체인 ‘디그니타스(Dignitas)’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디그니타스는 말 그대로 존엄한 죽음을 돕는 곳이다. 자살 실패로 인해 개인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나, 사회적 비용을 경감하기 위해 가장 깔끔하고 고통 없는 자살을 보장하는 이 병원은 이전부터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돈을 내고 디그니타스 회원이 되고 싶었다. 아니, 스위스로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월급쟁이 개미인 내가 죽겠다고 스위스에 가는 건 소설 속에서나 있음직한 얘기였다. 결국, 나는 ‘존엄한 삶을 위해서도,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라는 심오한 결론만 얻고 돈을 더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 ‘White Collar’에는 주인공 카프리와 모지가 돈이 필요할 날(rainy day)을 위해 ‘rainy day account’를 준비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들처럼 나도 나만의 계좌를 만들었다. 그들의 계좌가 앞으로의 도망을 위해서였다면 나의 계좌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충분한 돈이 쌓일 때까지 죽음에 대한 시도는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언가를 거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무언가를 계속해서 미루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미뤘으면 한다. 오늘 죽고 싶더라도, 천장에 끈을 매 두었더라도, 지금 옥상 난간 앞에 서 있더라도 말이다. 한 번쯤 뒤를 돌아보며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을 깜박했네, 숙제를 내야 하는데, 유서를 제대로 쓰지 못했네, 누구와 충분한 인사를 나누지 못했네, 마지막으로 배는 채우고 가야지’와 같은 갖은 핑계를 대며 죽음에 대한 시도와 멀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 언젠가가 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다.

고통 없이 자살 하는 방법
사진_픽셀

오랫동안 고통뿐인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동문서답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영원한 고통 같은 건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permanent pain)’라고 답하려 한다.

고통 속에서의 삶은 영원한 고통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간다. 우리가 불완전하다고, 가장 초라하다고 믿는 모든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며, 기대와 달리 전적으로 완벽한 순간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존재란 불완전함이 모인 덩어리와도 같은 것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힘들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고통과 나를 분리해서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러한 고통이 없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 고통 때문이라면, 고통이 없을 때의 내가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우울증 관련 서적이 언급하는 것처럼 치료와 회복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발휘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해도 달라질 나에 대한 기대를 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스로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해야 한다. 지금의 내가 모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함몰되어 지옥 같은 오늘을 보낼지라도, 내일의 나에겐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선물하리라 다짐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는 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신 죽음을 가려 줄 삶을 소환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전에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냐며 화를 냈지만, 막상 받아들이니 별것 아닌 일상처럼 여겨진다.

슬프게도 나는 계속해서 삶을 붙잡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계발해야 할 능력은 불완전한 나 자신과 고통 속에서 어긋난 순간들도 놓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에게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한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에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푸른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