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마이클 던햄

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마이클 던햄

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마이클 던햄

 중국의 티베트, 위구르인 대학살

여성들은 남편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눈앞에서 강간당했다.

또한 남편들은 사람들 앞에서 아내와 성교하도록 강요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대부분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중공 병사들에게 던져졌다.

비구니도 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알몸이 된 스님은 비구니와 성교하도록 강요당했다.

승려의 대부분은 처형당하고 비구니는 중공 병사들의 먹이가 되었다.

사방에서 여성은 강간, 그것도 여러 번 범해진 끝에 살해됐다.

(마이클 던햄의 ‘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 140 페이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모의 시체앞에서 아이에게 춤추게 하고

인민 해방군은 웃으면서 총살했다.

군사 행동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한 고의로 살해한 것이다.

그들은 총살 당했을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거나 산채로 구워졌다.

혹자는 생매장당하고, 내장을 제거당해서 죽었다.

이러한 살인 행위는 모두 공중의 면전에서 이루어졌다.

피해자와 같은 마을 친구들, 이웃들은 그것을 구경하도록 강요당했다.

중공은 “불교를 믿는 티베트는 야만적” 이라고 규정하고 “해방한다” 라며,

1959 년에 침략해 120 만명을 학살했다.

“중국 당국이 위구르인 2000명 학살” 
2014.08.06  

7월말 신장 사처현서 유혈충돌

망명 위구르족 단체 ‘학살’ 주장
“무차별 사살한 뒤 주검 은폐”
중 정부는 “96명 사망”…진실 공방
96명 대 2000여명 

‘중국 민족문제의 화약고’로 불리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사처현(야르칸드)에서 지난 2014년 7월 28일 발생한 유혈 충돌 사망자 수를 두고 중국 당국과 망명 위구르족 단체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망명 위구르족 단체인 세계위구르협회(WUC) 레비야 카디르 의장은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사처현에서 중국 당국이 최소 2000여명의 위구르인을 살해했다”며 “이는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 당시 숨진 200명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로 국가가 자행한 학살이자 명백한 테러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처현 사태는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유혈 충돌이다. 

중국 당국은 애초 사건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사처현에서 테러가 일어나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짤막하게 발표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엿새가 지난 3일에야 <신화통신>을 통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과 연계된 단체가 경찰서를 포함한 관공서를 습격해 테러분자 59명과 민간인 37명 등 96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고 밝혀, 사건의 진상을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돼 왔다.

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마이클 던햄

 중국의 티베트, 위구르인 대학살

여성들은 남편이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눈앞에서 강간당했다.

또한 남편들은 사람들 앞에서 아내와 성교하도록 강요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대부분이 처형당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중공 병사들에게 던져졌다.

비구니도 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알몸이 된 스님은 비구니와 성교하도록 강요당했다.

승려의 대부분은 처형당하고 비구니는 중공 병사들의 먹이가 되었다.

사방에서 여성은 강간, 그것도 여러 번 범해진 끝에 살해됐다.

(마이클 던햄의 ‘중국은 어떻게 티베트를 침략했나 ” 140 페이지)

경건한 불교 국가 티벳의 지도자인 승려들이 살생을 금지했다.

“부처님을 경배하고 있으면 평화는 유지된다” 고 주장하며 저항을 금지했지만

그 결과 티베트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인도, 유엔에 호소했지만 인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은 침략이다 라고 인정했지만, 그 뿐이었다.

95 %의 수도원이 파괴되고 120 만명의 티베트인이 학살되었다.

“티베트 학살”

1959 년 3 월 티벳의 수도 라사에서 “개혁 개방” 의 이름으로 ‘인종 청소’ 가 시작

살육 · 파괴 · 약탈 · 강간이 이루어졌다.

15 만 명의 승려와 비구니는 공개 학살에 의해 1400 명으로 감소했다.

스님은 도르래를 사용해서 불상의 무게에 의한 교수형

비구니는 5 만 볼트의 전기 충격기를 성기에 넣어 감전사시키고

시체는 벌거벗긴 채로 길거리에 버려졌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모의 시체앞에서 아이에게 춤추게 하고

인민 해방군은 웃으면서 총살했다.

군사 행동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한 고의로 살해한 것이다.

그들은 총살 당했을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고문당하거나 산채로 구워졌다.

혹자는 생매장당하고, 내장을 제거당해서 죽었다.

이러한 살인 행위는 모두 공중의 면전에서 이루어졌다.

피해자와 같은 마을 친구들, 이웃들은 그것을 구경하도록 강요당했다.

중공은 “불교를 믿는 티베트는 야만적” 이라고 규정하고 “해방한다” 라며,

1959 년에 침략해 120 만명을 학살했다.

많은 티베트인은 팔다리를 절단당하고 목이 잘렸고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말이나 차로 질질 끌려다니다 죽었다.

여성들은 반복적으로 강간당했다.

중국 군인들은 승려와 비구니의 성교를 강요했다. 거부하면 팔을 잘랐다.

중국 병사들은 티베트인의 시체위에 대소변을 싸고 그 위에서 춤을 췄다.

1959 년 노동 개조소에 수용된 1 만 3 천명 중에서 4 년 후까지 살아남은 것은 불과 60 명이었다. 

음식은 거의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잡초, 돼지의 먹이, 바퀴벌레를 먹었다.

120만명..

여기까진 서론이고...
파룬궁은 규모가 1억입니다...
전부 현재진행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