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에어컨 켜요!”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후텁지근한 여름입니다. 정말이지 선풍기를 최강에 틀어놓아도 훅훅 더운 바람만 쏟아질 뿐 도무지 시원하질
않습니다. 집안의 꽃나무도 시무룩 힘이 없습니다. 아까운 여름방학이 벌써 반이나 지나버렸지만 아빠가 바쁜 탓에 올 여름 정훈이와 정아는 피서다운 피서 한번 가지 못했습니다. 별 수 없다는 듯 정훈이가 냉장고를 열어 빨갛게 익은 수박을 꺼냅니다. 촤아아! 소리와 함께 욕조가 금방 물로 가득 찼습니다. 정훈이가 속옷차림으로 풍덩 몸을 던졌습니다. 깔끔쟁이는 정아는 샴푸거품을 잔뜩 묻힌 채 머리를 감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정훈이가 샤워기를 틀고 머리를 헹구는 정아의 머리 위로 샴푸를 계속 짜댑니다. 아무리 헹궈도 거품이 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정아가 살짝 실눈을 뜨더니 오빠의 등짝을 ‘짝!’ 하고 때립니다. ‘헤헤!’ 정훈이는 맞아도 즐거운가
봅니다. 정훈이가 주방세제를 듬뿍 넣어 만든 비눗물에 빨대를 찍어 후후 불어댑니다. 그러더니 샤워기를 틀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비눗방울을 폭 폭 터뜨립니다. 갑자기 샤워기 꼭지를 정아에게 돌려댑니다. 퐁퐁퐁 물 위로 눈동자 여섯 개가 떠올랐습니다. 주위는 한밤중처럼 어두웠습니다. 왠지 기분이 나쁘고 몸도 으스스했습니다. 아이들은 좁은 통로를 지나 넓은 웅덩이로 빠져나왔습니다. 네모난 웅덩이 안에는 나뭇가지며, 모래며, 비닐봉지며, 스티로폼 조각 같은 쓰레기들로 가득 했습니다. 이리저리 한참을 부딪치며 흐르던 하수는 호수처럼 넓은 곳에서 잔잔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벽으로 둘러싸인 긴 강을 지나 보글보글 물이 끓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넘치는 하수를 따라 또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자, 그럼 살균까지 끝났으니까 이제 밖으로 나가볼까?” 혼자 흘러가던 정훈이는 거친 소용돌이를 빠져나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좁고 긴 관을 통해 밖으로 세차게 뿌려졌습니다. 아이들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푸른 강을 따라 둥둥 떠내려갔습니다. 가끔 물고기가 발을 간질이며 지나갔습니다. 강가에는 갈대가 자라고, 왜가리들이 물속에 주둥이를 박고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한가롭게 떠내려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