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권단체 업자의 아침 바보에게 바보가

<앵커 멘트>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소유와 분배 일체를 공동으로 하는 공산주의 경제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시장 경제, 중국 내에 마지막 남은 공산사회 마을, 그 허와 실을 진홍순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황허 문명의 중심지, 중국 허난성... 중국의 중원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중국 정부는 공산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존재이유를 24년째 찾고 있습니다. 이른바 공상적 공산주의를 실험하는 마을이 있기때문입니다.

<인터뷰> 리 아이 웨(주민) : “마을에서 준 복지권으로 고기와 식용유등 슈퍼의 모든 물건을 구입할수 있다.”

<인터뷰> 샤 란 푸(주민) : “(복지권은 한달에 얼마나 주나) 한사람에 40위안이다.”

<인터뷰> 샤 란 푸(주민) : “(이것으로 충분한가) 충분하다.여러가지 다른 복지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류 가이 민(주민) : “아파트 사용도 공짜다.사용권만 있고 매매권은 없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학비와 의료비까지 모든게 무룝니다. 생활비와 세금등 모든 비용을 마을이 부담합니다. 1984년 마을 전체 주민이 전재산을 공동 출자해 하나의 마을기업을 세워 운영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마을이 26개 기업들을 거느리는 대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마을 그룹의 총수는 당서기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22년동안 이 당서기를 반장이라 부르며 추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왕 홍 빈 당 서기 :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마을 이익이) 해마다 두배씩 성장해 1991년에 허난성 최초의 1억 위안 촌이 됐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오 저 둥 주석의 대형석상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합니다. 올해가 마오 주석 사후 30년째가 되지만 이 마을은 사실상 마오 주석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마오 주석 석상뒤에는 맑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등의 대형 초상화만 있을 뿐 중국 어느 지도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이 죽은 마오 주석을 다시 불러들여 살아났다고 해 마오저둥 마을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선 자본주의가 여전히 타도의 대상입니다.

<인터뷰> 왕 홍 빈 난제춘 당서기 : “사실이다.우리 마을은 마오 주석을 대대적으로 배우는 것,노동 영웅 뢰봉을 학습하는 것,혁명가를 부르는 것 등을 20년 동안 견지해 왔다.”

마오 저 둥 사상을 중심으로 공산사회주의식 경제발전에 성공한 본보기로 자평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주민들의 저임금이 뒷받침해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인터뷰> 창 젠 웨이(34세.공원) : “(월급은 얼마인가? 230 위안이다.”

<인터뷰> 창 젠 웨이(34세.공원) : “(생활에 충분한가?) 충분하다. 마을에서 먹는것과 자는 것, 학비,의료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사용할 곳이 없다.”

마을 출신이 아닌 외지 노동자의 임금은 월 6,7백 위안입니다. 마을출신 노동자에겐 성과급 지급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중국 전체 평균 임금에도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빌미로 한 노동착취의 전형이며 중국정부가 구시대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벌이고 있는 일종의 정치적 쇼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차오 진 칭(화동공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 “시장화,상업화의 발전으로 개인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게 일고 있다. 난제춘 같은 집단마을을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왕홍빈 반장 사후에도 난제춘이 유지될지는 의심스럽다고 본다.”

실제 마을 주변 전체인구는 만 명이지만 등록된 마을 인구는 2천명에 불과합니다. 마을에서 주는 복지혜택은 전체의 20%에만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난제춘 주민들은 자신들이 8천명의 외지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지인들은 오직 난제춘 주민들만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갈등은 시장자본주의 국가들에 둘러싸여있는 오늘의 중국과 흡사하다고 마을사람들은 주장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개인주의를 버리고 집체주의를 강조한 마오저 둥 주석의 바보정신을 더욱 신봉한다고 말합니다.

‘바보가 박을 심어야 바보 박이 나온다네 이런 바보 정신만이 중국을 구한다네’

<인터뷰> 스 홍 웨이(난제춘 중고 교사) : “학교에서 말하는 바보정신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고난을 이겨내는 정신, 개인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보정신은 인권문제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외지인들은 난제춘을 무시무시한 독재왕국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마을 규약을 어기면 엄한 처벌과 비판을 받고 공장에서 쫒겨나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최근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최후의 작은 공산주의 왕국 난제춘은 언제까지 존재할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 중국, 21세기 공산주의 마을
    • 입력 2006-06-09 13:56:13
    특파원 현장보고

어느 인권단체 업자의 아침 바보에게 바보가

<앵커 멘트>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소유와 분배 일체를 공동으로 하는 공산주의 경제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시장 경제, 중국 내에 마지막 남은 공산사회 마을, 그 허와 실을 진홍순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황허 문명의 중심지, 중국 허난성... 중국의 중원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중국 정부는 공산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존재이유를 24년째 찾고 있습니다. 이른바 공상적 공산주의를 실험하는 마을이 있기때문입니다.

<인터뷰> 리 아이 웨(주민) : “마을에서 준 복지권으로 고기와 식용유등 슈퍼의 모든 물건을 구입할수 있다.”

<인터뷰> 샤 란 푸(주민) : “(복지권은 한달에 얼마나 주나) 한사람에 40위안이다.”

<인터뷰> 샤 란 푸(주민) : “(이것으로 충분한가) 충분하다.여러가지 다른 복지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류 가이 민(주민) : “아파트 사용도 공짜다.사용권만 있고 매매권은 없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학비와 의료비까지 모든게 무룝니다. 생활비와 세금등 모든 비용을 마을이 부담합니다. 1984년 마을 전체 주민이 전재산을 공동 출자해 하나의 마을기업을 세워 운영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마을이 26개 기업들을 거느리는 대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마을 그룹의 총수는 당서기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22년동안 이 당서기를 반장이라 부르며 추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왕 홍 빈 당 서기 :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마을 이익이) 해마다 두배씩 성장해 1991년에 허난성 최초의 1억 위안 촌이 됐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오 저 둥 주석의 대형석상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합니다. 올해가 마오 주석 사후 30년째가 되지만 이 마을은 사실상 마오 주석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마오 주석 석상뒤에는 맑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등의 대형 초상화만 있을 뿐 중국 어느 지도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이 죽은 마오 주석을 다시 불러들여 살아났다고 해 마오저둥 마을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선 자본주의가 여전히 타도의 대상입니다.

<인터뷰> 왕 홍 빈 난제춘 당서기 : “사실이다.우리 마을은 마오 주석을 대대적으로 배우는 것,노동 영웅 뢰봉을 학습하는 것,혁명가를 부르는 것 등을 20년 동안 견지해 왔다.”

마오 저 둥 사상을 중심으로 공산사회주의식 경제발전에 성공한 본보기로 자평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주민들의 저임금이 뒷받침해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인터뷰> 창 젠 웨이(34세.공원) : “(월급은 얼마인가? 230 위안이다.”

<인터뷰> 창 젠 웨이(34세.공원) : “(생활에 충분한가?) 충분하다. 마을에서 먹는것과 자는 것, 학비,의료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사용할 곳이 없다.”

마을 출신이 아닌 외지 노동자의 임금은 월 6,7백 위안입니다. 마을출신 노동자에겐 성과급 지급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중국 전체 평균 임금에도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빌미로 한 노동착취의 전형이며 중국정부가 구시대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벌이고 있는 일종의 정치적 쇼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차오 진 칭(화동공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 “시장화,상업화의 발전으로 개인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게 일고 있다. 난제춘 같은 집단마을을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왕홍빈 반장 사후에도 난제춘이 유지될지는 의심스럽다고 본다.”

실제 마을 주변 전체인구는 만 명이지만 등록된 마을 인구는 2천명에 불과합니다. 마을에서 주는 복지혜택은 전체의 20%에만 돌아간다는 얘깁니다. 난제춘 주민들은 자신들이 8천명의 외지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지인들은 오직 난제춘 주민들만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갈등은 시장자본주의 국가들에 둘러싸여있는 오늘의 중국과 흡사하다고 마을사람들은 주장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개인주의를 버리고 집체주의를 강조한 마오저 둥 주석의 바보정신을 더욱 신봉한다고 말합니다.

‘바보가 박을 심어야 바보 박이 나온다네 이런 바보 정신만이 중국을 구한다네’

<인터뷰> 스 홍 웨이(난제춘 중고 교사) : “학교에서 말하는 바보정신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고난을 이겨내는 정신, 개인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보정신은 인권문제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외지인들은 난제춘을 무시무시한 독재왕국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마을 규약을 어기면 엄한 처벌과 비판을 받고 공장에서 쫒겨나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최근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최후의 작은 공산주의 왕국 난제춘은 언제까지 존재할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