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남아도는 기름 어디 갖다

2. 전북 진안군 성수면 외궁리 김명근(1957년생), 윤화자(1964년생) 부부

진안에서 번 돈 임실 다 갖다주는, ‘지질병’ 나는 마을

앞뒤 전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작은 천이 흐르고 있었다. 명근 씨와 통화를 하는 걸 지켜보던 할머니는 나의 존재를 안심하고 받아주었다. 볕이 뜨거우니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쉬라며 자기네 집 앞마당 평상을 내어주었다. 그늘에 앉으라고 한사코 잡아끌기도 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낯선 사람의 등장을 담너머 구경하고 있던 또 한 명의 할머니(그 옆집 할머니)가 두 손에 찐 옥수수를 들고 왔다. 옥수수 알갱이를 뜯어먹으며 할머니들과 마을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 사람들은 병원에 갈 때면, 마을에서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임실군 관촌면에 있는 전주가정의학과를 찾는 다고 했다. 진안에는 병원이 없냐고 물었다.

“우리는 병원, 시장 다 임실로 가.”

할머니들 말에 의하면, 진안읍 가는 버스는 1800원(왕복 3600원)이고 임실 관촌에 가는 버스는 1150원(왕복 2300원)이라고 했다. 성수면 외궁리 점촌마을은 임실읍과 진안읍의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읍까지 나가려면 거리는 비슷했는데, 버스비는 진안이 더 비쌌다.
“진안에다 돈을 쓰고 싶어도 버스비가 비싸서 못써. 우리는 진안에서 돈 벌어서 임실 다 갖다줘.”

그 사이 옆집할머니는 뜯어진 고추자루를 들고 나와서 실로 꿰맸다. 고추자루가 할머니를 꿰매는지 할머니가 고추자루를 꿰매는지, 눈이 어두운 할머니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바느질을 했다. 앞집 할머니는 평상을 몇 번이고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두 할머니는 나만 그늘에 가만히 앉혀놓고 본인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였다. 혼자 사시는데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물었다.

“혼자 살아도 숟가락만 하나지 다 있어야 돼. 사람은 하난데 일은 다 해야 되고.”
할머니들의 대답은 늘 이렇게 현묘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마을이라고 하자, 할머니들은 화를 냈다. 이런 골짜기에 들어와 살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야단을 쳤다.
“싫증이 나. 스무 살에 이 꼴짜기 들어와서 팔십이 넘었어. 그러니 지질병이 안 나?”

두 할머니는 서로 마주보지 않고 앞집 할머니는 옆집 할머니의 등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을 못가는 이유, 짐승들

명근 씨네 집에는 명근 씨가 ‘응애’ 할 때부터, 아니 명근 씨보다 훨씬 먼저 소가 살았다. 명근 씨는 다섯 살 때부터 소꼴을 베다가 소먹이를 담당했고, 열네 살부터는 소에 쟁기를 매달아 쟁기질을 했다. 서울에 가서 각시를 구해올 때도 소 한 마리를 팔았고, 그 각시는 소가 끄는 꽃달구지를 타고 이 마을, 명근 씨 네 집으로 들어왔다. 95년까지도(불과 9년 전) 소쟁기질로 농사를 지었다. ‘고로롱팔십’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대쪽 같던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소는 남았다. 한 때 열 마리도 넘게 키우던 소를 다 없애고 이제 네 마리가 남았다. 새끼 네 마리까지 합하면 여덟 마리다. 소는 줄었지만, 소를 키우기 위해 드는 비용은 더 늘었다. 요즘 소 한 마리를 팔면 60-70만원 받는다. 근데 사료값이 한 달에 40만원인 것이다. 사료 값 두 달이면 소 한 마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그 놈 팔아 사료 갚고. 몇 년 안에 없어져. 저거. 사료비로 다 가져가.” 명근씨. “소 가격은 안 올라가고 왜 사료값은 올라가나 모르겄어, 잉.” 화자씨.
“소 팔아 미국에 옥수수 값 주고 다시 소고기를 거꾸로 사오는 거야. 사료값으로 우리 소 다 가져가고 나중에 자기네 소고기로 주는 거야. 그 생각만 하면 화가 나서 고기는 먹기도 싫어.” 명근씨.

수입이 나는 것도 아니고 밥 챙겨주는 것도 골치 아픈데 소를 왜 키우냐고 물었다.
“농사꾼은 허던 걸 없앨 수 없어. 아버지 때부터 키웠잖아. 그 때부터 소를 했으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소 밥을 줬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는 일도 소 밥을 주는 것이었다. 소보다 사람이 먼저 밥을 먹는 일은 없었다.
“소가 우리 식구 중에 제일 높아. 밥 일찍 먹고. 일 안해도 주인이 꼬박꼬박 밥주고.” 화자씨.

소와 더불어 닭 25마리를 키운다. 명근 씨 부부는 서른 마리가 넘는 짐승들과 ‘집’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한 번도 휴가를 계획해서 떠난 적이 없었다. 가족 여행은 물론이고 부부가 단둘이 여행을 간 적도 없었다.
“여행 가는 건 어려워. 짐승 때문에. 밥을 줘야 하거든. 옆집에 매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여행’보다는 ‘짐승밥’을 택하는 마음은, 분명 ‘가족애(家族愛)’일 것이다.

집에 남아도는 기름 어디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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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포로 농사를 짓는 마지막 세대

명근 씨는 아버지가 짓던 담배농사를 물려받아 아직까지도 놓지 않고 있다. 그의 나이 57세이지만, 농사를 지은 지는 50년이 넘었다. 담배 농사는 전부 다 수작업이었다. 기계를 못 쓰고 손으로 따고, 손으로 엮고, 손으로 걸어 말려야 한다. 제일 고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물로 바꿀 수가 없는 이유는 담배는 계약농사이기 때문이었다. KT&G와 계약을 해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흉년이 없고 소득이 일정하다.

이곳의 담배는 버레종이고 충청도의 담배는 황색종이다. 버레종은 햇빛에 건조하며 황색종은 건조기에 건조한다. 버레종이 더 작고 야들야들하여 인기가 좋다고. 버레종을 넣어야 담배가 잘 탄다. 담뱃잎을 따서 담배줄기가 딱딱해질 때까지 한 달 정도 말리고 걷는다. 너무 축축하게 말린 담배는 잎의 색이 변해서 KT&G에서 매입하지 않는다. 담배의 수분에 따라 야간에도 걷는다.

아버지가 짓던 농사를 열 네 살에 전부 물려받은 명근 씨는, 그 후에 새롭게 작물변경을 한 일은 없었다. 작물의 변화를 주고 싶지만, 한 번 흉년이 들거나 농사를 망쳐버리면 원상태로 복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3년이었다. 3년을 마이너스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다른 작물에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농사도 우리처럼 고등교육도 못 받은 사람들은 앞으로 못 지어. 지금은 과학영농 아니여? 우리는 막 무대포로 했는데 지금은 뭐든 과학으로 해야 혀. 힘으로 농사짓는 시대는 끝났어.” 명근 씨.

화자 씨도 명근 씨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10년 후에 농촌이, 그리고 농사가 어떻게 변해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내가 쉰일곱인데 내가 젤로 젊어. 전부 칠십 팔십 먹는 노인들이야. 10년 지나면 완전히 없어진다고 봐야지. 평야로 농경지가 잘 되 있는 데는 모르겠지만 이런 다랑이 산꼴은 없어진다고 봐야혀. 사람이 없응께. 우리가 마지막인데, 농사 지러 들어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곳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연령대는 7, 80이 한창이라고 했다. 오히려 촌로들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명근 씨네 부부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고.

“우리들은 일이 빼(뼈)에 안 박아져가꼬. 노인 양반들은 일이 빼(뼈)에 박혀가꼬 더 잘하지. 30년을 넘게 해도 농사라는 것은 끝이 없어. 도로 새 거야. 올해 모다면 내년에 잘해야 되겄다, 그게 맘대로 안돼. 농사는 그래. 하늘이랑 같이 짓는 거니까.” 화자.
화자 씨는 30년을 넘게 지었지만 농사는 늘 새 것 같다고 한다. 고된 노동의 반복일 것만 같은 농사,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부부의 마음은 날마다 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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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 나누는 사람들

“내일 화진 네 꺼 가. 우리? 우리는 쪼끔 더 있어야지. 담배를 돌아가게 해야 겄어. 오늘 병원 가서 재현아빠하고 닝겔 맞았어. 막 피로해가꼬. 그려. 내일 만나요. 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화자 씨가 전화 통화를 했다. 내일 어디 놀러가냐고 물었다.
“고추 품 갚으러 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품앗이라니. 그랬다. 세 개의 마을을 합친 고기리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고,

그들은 사람을 사지 않고 서로 돌아가며 품을 팔고 갚으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화자 씨가 시집오던 그때부터 있었던 품앗이가 아직까지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 달라진 것이라면 쌀 한말로 밥을 짓던 새꺼리 준비가 간소해졌다는 것 정도. 이 때, 현관문을 불쑥 열고 옆집 할머니가 들어온다. 대문에 벨을 누르지도 않고, 현관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내 집처럼 성큼 들어왔다. 명근 씨 네 부부도 놀라기는 커녕, 잠시 외출했던 가족이 들어온 듯 자연스러웠다. 낯익은 옆집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가족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게 안 열리네.”
할머니 손에는 농약병이 들려있다. 명근 씨는 뚜껑을 누르고 돌려야 된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어디에 뿌리려고 하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집 뒤에 있는 고추밭 어디(?)라고 말하자, 부부는 앞다투어 말한다.
“그거 몇 개를 뽑아불지 뭘 약을 찌끄려?” 화자 씨.
“뽑아버려?” 할머니.
“그래, 약 버리지 말고.” 명근씨.
“그래? 그래 그럼.” 할머니. 자기 밭 떼기는 몇 개 잊어버려 묵혀도 옆집 할머니의 밭 뗴기들까지도 눈 감고도 보일 듯 다 알고 있는 부부였다.
열 손 가락 안에 드는 농가는 여전히 품을 나누며 농사를 하고, 서로가 서로의 밭떼기를 다 알고 있고, 인기척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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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뜨거운 농번기의 어느 하루, 고추 day


5 : 00 하루의 시작

명근씨는 소밥을 주고 담배밭을 둘러보러 나간다. 화자씨는 아침밥을 짓고 밥이 다 되면 명근 씨를 찾으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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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00 아침식사

복합영농으로 키우는 작물의 개수가 많은 만큼 반찬 가짓수도 많다. 반찬이 쉽게 상하지 않게, 장아찌 종류의 음식으로 만들어놓고 몇 년 동안 먹는다. 부부는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고 커피믹스로 입가심을 한다. 정보를 알려주는 TV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진행자의 말에 몇 번 맞장구를 치는 것 외에 특별한 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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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30 첫 번째 고추 따기

명근 씨는 화자 씨와 ‘고추밭 자가용’을 트럭에 싣는다. 트럭을 몰아 이장네 고추밭이 있는 신리마을로 간다. 해가 뜨기 전, 겨우 어스름하게 사위가 시야에 잡힐 만한 시간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고추밭에는 이미 품을 팔거나 갚으러 온 두 명의 아낙들이 밭고랑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화자 씨는 입고 온 옷에 새로 산 방수복을 덧입고 신발은 고무신으로 갈아 밭고랑으로 들어간다. 뒤이어 자전거를 타고 아낙 한 명이 더 오고 밭주인인 이장 부부가 트럭을 타고 온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밭고랑을 한줄 씩 꿰차고 잘 익은 붉은 고추만 딴다. 해가 떠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맛있는 자두만 찍어먹는 새들처럼 정확하게, 그녀들의 가벼운 손놀림에 고추꼭지가 톡톡 떨어진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그것과 속도를 맞춰 안개가 걷힌다. 여자들이 채우는 고추자루의 개수는 늘어간다. 명근 씨는 일하는 모습을 확인만 하고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가버렸고, 밭주인인 이장만 남아 여자들이 고추자루를 가득 채우면 그것을 옮겨다 트럭에 싣는 일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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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00 스물일곱 가마니의 붉은 고추 수확

그사이 날이 밝고 새벽이슬이 마르고 여자들은 방수복을 벗어던진다. 잠자리가 날기 시작한다. 서른 고랑 정도 되는 고추밭의 잘 익은 고추들이 다섯 명의 여자 손에 전부 떨어져 나갔다. 어느덧 명근씨의 트럭이 여자들을 실어가기 위해 돌아온다. 고추 따기 작업에서 남자와 트럭의 역할은 여자와 고추를 실어 나르는 일뿐이다. 고추밭 주인인 이장의 트럭에는 27가마니의 붉은 고추가 실린다. 명근 씨의 트럭에는 땀과 흙에 젖은 여자들과 ‘고추따기 자가용’들이 짝을 맞춰 실린다. 모두가 떠날 채비를 마치자, 이장은 차에서 내려 밭으로 들어간다. 양품에 수박 두 덩어리를 안고 나오며 함박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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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20 첫 번째 새꺼리

두 트럭은 하나는 앞에 서고 하나는 뒤에 서서 아슬아슬한 농로 위를 달린다. 외줄타기와 같은 기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다. 트럭을 타고 달리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멈췄다 다시 출발했다를 반복한다. 멈출 때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똑같이 외친다.

“새꺼리(새참) 먹으러 와.”
이장부부도, 품을 나누었던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이장네 집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새참’이라고 했지만, 차려진 건 ‘밥상’이다. 고추볶음, 고사리무침, 파김치, 콩나물무침, 김치, 조기조림, 깻잎절임 그리고 각종 채소들과 밥. 남자들의 음식은 상 위로 올리고 여자들의 새꺼리는 거실바닥에 깐다. 그 사이 명근 씨를 포함해 품을 팔거나 갚으러 왔던 여자들의 남편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 둘 들어오고, 어느덧 열세명이 새꺼리를 함께 나눈다. 여자들은 많은 양의 밥을 물에 말아 빠른 속도로 마시듯 삼킨다. 남자들은 밥보다는 반찬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담배하면서 5kg이 빠졌어. 남들은 돈 주고도 빼는데 돈 벌면서 뺐지.”
으하하, 술 한 잔이 또 비워진다.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여. 어제도 하던 거니까 하는 거야.”
남자들은 소주 두 병, 맥주 2캔, 병맥주 하나를 비운다. 여자들은 망고주스, 콜라 1.5L 짜리 망고주스와 콜라를 비운다. 그 사이 하나 둘 먼저 일어나 자리를 비운다. 농사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점심시간 또한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같이 밥을 먹었으나 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각자의 농사 시계에 맞춰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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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30 풍혈냉천 나들이

명근 씨는 남은 사람들에게 냉천에 가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오자고 한다(아마도 서울에서 온 나를 위해 구경 좀 시켜주자는 뜻인 듯). 여남은 사람들끼리 ‘가네, 마네’로 10분 정도 실랑이를 한다. 이장은 절대 안 간다더니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고, 이장 부인은 새꺼리 하고 남은 밥으로 누릉지를 만들던 중 불을 끄고 따라나선다. 명근 씨 부부를 제외하고 모두 안 간다고 했지만, 안 간 사람은 없었다. 꾸역꾸역 7명이 탄 트럭은 풍혈냉천을 향해, 6km 정도 거리를 10분 정도 달린다.

풍혈냉천, 옛날엔 고드름이 사계절 내내 달려있었다고, 누에씨를 보관하던 곳이라고, 한 마디씩 건넨다. 냉천에 누가 오래 발을 담그고 있나, 시합이 벌어진다. ‘1분 담그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며 내기도 건다. 냉천에 잠깐 담궜던 발을 빼면 전기가 오른 것처럼 따끔거리고 저릿저릿할 정도로 차갑다. 두 번째 담그면 처음보다 더 오래 견디지 못한다.

‘사기점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자기유물터였다는 이야기, 물이 좋은 온천자리였는데 소문 듣고 찾아온 문둥이들이 많아져서 매꿔 버렸다는 이야기 등 저마다 알고 있는 과거 마을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여자들이 고추 품앗이를 가야 한다고 남자들을 채근한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고추따기 자가용을 실어나르기 위해 마지못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킨다. 명근 씨의 트럭이 섬진강 곁을 지난다. 예전엔 밭일 하고 들어와 어두워지면 강에 가서 목욕도 하고 다슬기도 따다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여자들을 깔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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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00 귀례 씨네 집에서 간식 타임

두 번째 고추밭은 귀례 씨네 것이다. 여자들은 귀례씨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 자리에 앉는다. 귀례 씨는 미숫가루를 양푼 가득 타서 내온다. 날씨가 더울수록 달게 타야 맛있다는 미숫가루. 여자들은 한 대접 씩 마시고 조금 씩 더 마신다. 고추밭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여자들은, 마른걸레처럼 몸속 수분을 바짝 말리는 여자들은, 설탕이 많이 든 단 음료수로 수분을 보충했다. 여자 하나가 말한다.
“또랑 치러 가자. 올 겨울에.”
화자 씨와 한 여자가 같이 가자고 한다.

여기서 ‘또랑’은 ‘쌍꺼풀 수술’이다. 나이가 드니 눈꺼풀이 쳐지고, 눈꺼풀이 쳐지니 땀이 자꾸만 눈으로 흘러들어 여름농사가 더 괴롭다. 여자들의 ‘또랑’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었다. 여름이면 삼다수 2.0L 패트병을 얼려서 등에 업고 일한다. 등이 시원하고, 언제든 얼음물을 마실 수 있다. 나름 여자들의 여름농사 노하우다.
어느새 새벽의 그 멤버, 다섯이 다 모인다. 명근 씨의 트럭이 다시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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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22 두 번째 고추 따기

여자들을 고추 밭에 내려준 명근 씨의 트럭은 사라진다. 귀례 씨 남편 트럭과 여자 다섯만 남는다. 한낮의 땡볕이 따갑게 박히는 밭고랑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고추를 딴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쉴새 없이 옆 고랑 여자와 수다를 늘어놓는다.

우르르 쾅쾅 마른천둥이 산 뒤에서 울려 퍼진다. 고랑의 중간쯤 앉은걸음으로 진격했을 때 빗방울을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소나기가 쏟아진다.

방울 하나가 둔중한 마찰음을 내며 여자들의 맨살을 찰싹찰싹 때렸다. 고랑마다 웅크리고 있던 여자들은 앉은걸음으로 계속 고추를 딴다. 하늘이 쩍쩍 갈라지며 천둥번개를 내리 꽂았지만, 그녀들을 품은 산과 그녀들은 태평하다. 잠시 해가 반짝 하다 또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트럭 지붕이 뚫어질 것처럼 두드려대는 소음에서 빗방울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렇게 묵중한 빗방울이 쏟아지는데 고추밭 고랑에 움츠린 여자들은 누구하나 고개를 내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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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30 두 번째 새꺼리

“비오다 해나면 더 죽겄어.”
귀례 씨 네 앞마당 자리에 ‘새꺼리’가 차려진다. 이번에도 남자는 위쪽, 여자는 아래쪽이다. 호박잎, 된장, 멸치볶음, 가지무침, 깻잎절임, 김치, 제육볶음, 고구마줄거리무침, 고추잎무침, 그리고 밥. 소주 1병, 맥주 2병, 망고주스, 콜라가 놓여진다. 남편 불러라, 옆집 누구 불러라, 상차림이 끝나고 먹는 순간까지 이사람 저사람을 불러 모은다. 대문 밖을 지나던 마을 사람들까지도 불러들여 결국 또 13명을 채운다. 남자들은 이번에도 안주삼아 반찬을 짚어먹으며 술을 밥 삼아 먹는다. 여자들은 2배나 많은 밥과 반찬을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먹어치운다. 달디 단 망고주스로 후식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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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10 세 번째 고추 따기

남자들은 트럭에 여자들과 고추따기 자가용을 실어다 고추밭에 내려놓고 낮잠을 자러 간다. 고추밭 주인인 남자만 남고, 다시 고추따기는 시작된다. 다시 비는 무지막지하게 왔다가 그치기를 반복하고, 비는 더 세게 더 자주 내린다. 말랐다 젖었다 반복하던 여자들은 결국 쫄딱 젖은 생쥐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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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08 화자 씨 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은 몸으로 화자 씨가 대문을 들어선다. 낮잠을 한 숨 잔 명근 씨는 소 밥을 주러 가는 길에 마주친다. 명근 씨가 소 밥을 주고 돌아서자, 어느새 다 씻고 나온 화자 씨가 호박 두 개를 따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깻잎도 딴다.
“호박으로 ‘적’ 부치게!”
송송 썬 호박의 절단면에 물에 푼 부침가루를 묻혀 기름 두른 팬에 올린다. 기름도 듬뿍, 부침가루도 듬뿍, 그 속에서 호박은 잘도 익는다. 손바닥만한 깻잎도 두 겹씩 포개서 부침가루를 무쳐 바로바로 팬에 올린다. 방금 뒤뜰에서 따온 호박과 깻잎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신선하고 맛있다. 어느새 이웃 할머니들도 들어와 내 살림을 만지듯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같이 적을 붙인다. 네 살림, 내 살림이 따로 없는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럽다. 호박과 깻잎을 다 붙였는데 부침가루 풀어놓은 게 좀 남는다. 화자 씨는 다시 마당으로 나가 부추 한주먹을 뜯어와 다시 부친다. 뭐 하나도 버리는 법이 없다.

화자 씨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저녁밥을 지어 9시쯤 먹고 하루를 정리한다. 비가 온 덕분에 여름 날 치고는 일찍 끝난 날이란다. 오늘 하루 다섯 여자가 딴 고추의 개수는 몇 개일까. 오늘 딴 고추를 이어 붙인다면 지구 몇 바퀴쯤은 거뜬히 돌고도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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