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얘기 하는 거야 옛날 대충 얘기하는

강남 사는 ‘민이 엄마’의 이야기로 살펴 본 한국 교육의 실상

언제 또 얘기 하는 거야 옛날 대충 얘기하는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민이 엄마(42)가 강남 토박이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시댁 근처에 살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민이 엄마는 ‘강남 엄마’들의 교육방식을 근거리에서 봤다. 거기서 멀어지려 하지만, 가끔 흔들린다. 초등학생인 민이를 국제학교에 보낸 건 타협의 결과물이다.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일하는 강남 거주 주부’가 한국 교육의 실상을 털어놓았다. 민이 엄마는 “민이가 그리 뛰어난 애가 아니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언제 또 얘기 하는 거야 옛날 대충 얘기하는

인성 위주 교육 받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해도,

6살 겨울방학 되면 엄마들 마음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지

초1부터 ‘빅3 어학원’ 보내 미국 교과서로 선행 학습

엄마들은 6학년까지 영어 끝내놓고 중학교 보내고 싶어해

중1·중2 되면 비로소 아이 성적으로 위치를 알게 되고

“엄마가 공부 시켰어야지”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해

그렇게 대학 가고 취업해도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

그런데도 엄마들은 ‘최선을 다해야지’하고 가는거야

- 그걸 느낀 게 언제야?

“여섯 살 겨울. 여섯 살 겨울방학이 되면 엄마들은 불안해져. 아무리 숲유치원, 놀이학교 보내면서 내 아이는 인성 위주 교육을 받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했더라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마음이 바뀌는 거지. 강남·서초에 초등 1학년부터 다닐 수 있는 빅3 어학원이 있어. 좋은 학원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초등 3년에 <해리 포터>를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주거든. 그런데 거길 가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해. 여섯 살 말부터 등급이 나뉘는 거지. 수업하는 영상을 봤는데 일곱 살짜리들이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거야. 발음도 좋고 내용도 좋은데 주제가 무려 다다이즘이었어!”

- 사립초등학교는 선택지에 없었어?

“사립초 간다 해도 요즘은 3학년이면 빼. 사립은 학교에서 예체능 하느라 오후 5시 넘어 끝나서 학원에 보낼 시간이 없거든. 그래서 예체능 많이 시키는 사립초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급이 줄어든다는 얘기도 있어.”

- 국제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영어?

“(교육정책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빅3 어학원을 보내서 미국 교과서로 2년씩 선행을 시키지. 영어유치원에 가서 ‘졸업할 때 애들 레벨 얼마 나와요’라고 물었을 때, 3-1(아, 이건 미국교과서 과정을 얘기하는 거야)쯤 나온다고 해야 보낼 만해. 민이 다니던 영어유치원에서 ‘2-1 정도 나올 거’라고 하니까 엄마들이 애들을 쫙 뺐어. 그 정도에 한 달 160만원씩은 못 내겠다고.”

- 일반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영어 스트레스는 마찬가지겠지?

“사실 초3까지 영어 교과가 없기 때문에 엄마들은 그 전에 가르쳐놓은 게 아까워서 학원 보내는 거야. 3년 동안 까먹으니까. 그러다 4학년 1학기가 되면 파닉스부터 새로 하는 거지. 엄마들은 6학년까지 영어를 끝내놓고 중학교에 보내고 싶어 해. 요즘 영어는 모두가 잘해. 누가 더 돈이 있어서 원어민한테 발음 교정을 받았느냐 정도의 차이야. 또 수학 못하면 문과가 아니라, 수학을 잘하면 문과, 더 잘하면 이과야. 그러다보니 수학은 중1 때 중3 과정이 끝나 있어야 해. 초3에 ‘정석’ 들어가는 애들도 있어. 대치동에서 수학으로 이름난 ○○학원 톱반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거야. 톱반에 들어가기 위해 대치동 애들은 다른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해.”

- 대입 준비를 그때부터 한다고?

“특목고 갈 애들은 초3부터 준비해. 경시대회도 나가야 하니까. 어떤 엄마가 그러더라고. ‘큰애 키울 때 입시제도가 바뀐다 어쩐다 했지만 결국은 다른 거 없이 일찍 시작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학원을 돌리는 거야. 옛날에는 한 반에 한두 명 엄마가 미친 듯이 아이들 공부를 시켰다면, 지금은 한두 명 엄마 빼고 전체가 미친 듯이 공부를 시켜.”

- 그렇게 내달리다 엄마들이 아이의 위치를 알게 되는 건 언제쯤이야?

“중2 중간고사를 보면 엄마들이 비로소 아이 성적으로 위치를 알게 된대. 노력해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도. 13~14세에 진로가 정해진다는 게 너무 슬프지 않아? 아무리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가 되고 싶어도 그 아이는 수의대를 갈 수가 없는 거야.”

- 그 시기에 아이들은 어떻게 해?

“‘내가 아무리 공부를 안 한다고 해도 엄마가 시켰어야지, 엄마가 책임져’라는 얘기가 이때부터 나오는 거야. 중2부터 열심히 하면 4등급이 3등급으로는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상은 어렵대. ○○여고(강남구 소재) 반 5등쯤 하면 공부 되게 열심히 시킨 거거든. 그 정도 해야 서울에서 이름이라도 알 수 있는 대학 간다더라고.”

-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아주 잘해 중견기업 가면 연봉 2800만원을 받겠지. 임원이 못되면 40대 후반에 명퇴할 텐데, 이제 우리는 오래 살 거니까 그걸 다 지켜봐야할 거 아냐? 집 사주고 이런 건 두 번째 문제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놓지 않으면 다 같이 망하는 거야. 요새 애들은 부모보다 잘살 수 없는 세대가 됐잖아. 부모들은 아이 교육에 올인하고 애는 대학에 가면서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아. 애 월세 보증금이라도 해주려면 부모는 집을 줄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최선을 다해야지’ 하고 가는 거야.”

- 엄마들도 갈등이 있겠네.

“여섯 살부터 애를 볶기 시작하면 15~16세에 방전돼. 엄마는 목표가 분명한데, 애들은 목표가 없어. 그러니 엄마에 대한 반감이 쌓이고 그저 ‘이번 시험 끝나면 스마트폰 사주겠지’가 돼. 애들은 하다못해 문방구 스티커라도 사달라며 늘 엄마에게 보상을 원해.”

- 민이 아빠가 월급쟁이인데 국제학교 교육비 부담은 없어?

“강남에서 교육비 많이 드는 집은 조부모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아. 국제학교에서 ‘오늘까지 등록하셔야 해요’라고 하면 ‘저희 아버님을 아직 못 뵈어서요’라는 엄마들이 있더라고. 학비 대는 조부모가 아이 성적표 간섭하면서 ‘선생님 갈아치워라’ 하는 집들도 있어. 민이도 조부모가 학비는 내주셔. 버스비나 식대 등은 우리가 내고.”

- 그래도 국제학교 다니면 한결 여유롭지 않아?

“치열한 경쟁 트랙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제학교를 보냈는데 여기도 나름 문제가 있어. 제주 국제학교는 요즘 인기가 많아서 거길 들어가려면 대치동에서 한 달 300만원짜리 학원에 다녀야 해. 송도 국제학교는 학비가 너무 비싸고. 연 5000만원이 넘으니까. 강남구에 살면서 송도 다니는 애들은 오전 6시쯤 버스를 타고 갔다가 피곤에 ‘쩐’ 채로 대치동 학원을 돌고 귀가한대.”

- 그런 정보는 다 어디서 들어?

“다른 국제학교 엄마들이나 다른 초등학교 엄마들한테 듣지. 민이 유치원 동창 엄마들과 산후조리원 동기들.”

- 공부 대신 시켜주는 사람도 있다며?

“그게 ‘에듀맘’이야. 아이 학업 플랜은 컨설턴트가 짜주고 에듀맘은 그 실행을 맡아. 학원 픽업해주고 밥도 먹이고 숙제도 봐주는 등 공부 관련 모든 걸 해주는 거지. 에듀맘 월급이 보통 300만원부터라고 들었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자기 애를 특목고나 명문대 보낸 분들이나 가능해.”

- 이번 숙명여고 문제 유출 의혹에 대한 엄마들의 반응은?

“엄청나지! 시험 문제 하나 틀린 거에 따라 당락이 바뀌고, 내신 등급 하나 떨어지는 것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는데. 네 자식 하나 시험 잘 보게 한 게 문제가 아니라 ‘네 아이가 올라가는 바람에 우리 아이가 떨어졌다’가 되는 거니까.”

- ‘상대적 박탈감’이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도 ‘나’한테 피해가 없으면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밤잠 안 자고 엄마랑 사이 나빠져 가면서 노력해서 정규직이 됐는데, 너희들은 안 그랬잖아’라고 반응하니까 문제지. 국제학교 다니면서 언어 특례로 국내 대학 준비하는 애들도 있어. 코넬대보다 연세대 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있거든. 그 전형이 어렵기도 하지만 엄마들이 걱정하는 게 수시충이라 불리는 거야.”

- 수시충?

“수시전형 통해서 특례 입학하는 학생들을 지균충(지방 학생을 우대하는 지역균형 선발), 학종충(학생부 종합 전형, 재외국민충) 등으로 부르잖아.”

- 출생률은 줄었는데 어째서 경쟁은 더 심화될까?

“부의 대물림이 결국 학력의 대물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러다보니 임신키트에 두 줄 나오면 준비해야 해. 모든 게 경쟁이야. 애 낳기 전에 돌잔치 예약을 하지 않으면, 유명한 데서 할 수 없고. 대치동에 ○○원이라고 글쓰기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거긴 기본 3~5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어.”

- 컨설팅이나 코치 받은 적 없나?

“아직 해보지 않았어. 정말 컨설팅 받으면 지금부터 쌓아야 하는 스펙을 죽 얘기해준다는데. 기본 300만원인데 회당 가격이 다르대. 친구들 말에 의하면 5학년, 고1, 대학 원서 쓸 때 한 번씩 하라더라고.”

- 지금 민이 엄마의 장기적인 계획은 어떻게 돼?

“여기서 저학년 보내고 고학년은 제주 국제학교나 싱가포르 외국인학교를 다니다가 영국 입시를 시킬까 해. 영국에서 대학 나와서 거기서 일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나는 아이가 강경화 장관이 되길 원하는 게 아니야. 그냥 한국인이 아닌 지구인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 전에는 아이가 피부과 의사 되어 동네에서 의원 했으면 좋겠다지 않았어?

“그때는 이렇게까지 대학 가기 어려운 줄 몰랐지. 그런데 의대는 구에서 한 명 가는 곳이더라고. 게다가 나는 일하는 엄마잖아.”

- 일하는 엄마가 이런 거 다 따라잡아서 한다는 게?

“강남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일하는 엄마 둔 아이들은 생일 초대 안 하기도 한대. 엄마들끼리 공유하는 정보의 질이 다른데 그걸 공유하지 않겠다는 거지. 대치동까지 매일 애들 라이딩하는 엄마들은 아이 끝날 때까지 혼자 차에서 김밥 먹고 책 읽으면서 기다려. 그런데 그 엄마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대치동 엄마들 다 그렇게 하니까.”

- 민이는 다른 거 배우는 게 있어?

“워낙 조용히 있는 애라 운동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리듬체조를 시키는데, 거기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어. 압구정 ○○클럽이라는 곳이 제일 유명해. 애들이 불가리아로 훈련도 갔다 온대. 전공할 거냐고 하니, 스펙 쌓느라 그렇게 한다 하더라고.”

- 민이에게 특출한 면을 발견할 때마다 흔들릴 거 같아.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공부 무끼(성향 혹은 체질을 의미하는 일본어) 따로 있는 건 알지? 그런 애들은 대치동 가서 공부시켜야지. 내 아이는 그렇지가 않아. 예민하고 사람 관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기 때문에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 민이는 말을 잘해. 이야기를 꾸며서 들려주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들을 정도로 스토리메이커로서의 장점은 있어.”

- 모국어 능력을 최적화해 사용하는 작가를 꿈꿀 수는 없을까?

“한국에서는 어느 학교 나온 작가인가가 중요하니까. 게다가 학원 다니면서 창의력이나 자율성이 커지길 기대하기는 어렵거든.”

- 변화의 조짐은 전혀 없을까?

“정작 학교에서는 ‘너희들 학원에서 다 배웠잖아? 그냥 시험만 잘 봐. 내신은 잘 챙겨야 할 거 아냐’라고 해. 변별성 있어야 하니까 엄청 꼬아서 삐끗하게 하는 문제만 만들지.”

- 새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대가 있나?

“전혀 없지. 교육은 어쩔 수가 없어. 수시를 확대하고 싶은 사람만큼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거야. 전 국민이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는 거 같아. 저절로 자라서 대학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 지방 엄마들도 알아. 기본적으로 무상교육 받으면서 영어, 수학 학원 하나씩 보내면 한 달에 한 아이 앞에 20만~30만원 들어가. 그걸 한 6년 보내고, 이후 초등학교 가서 학원비 한 달에 60만~70만원 정도 들고. 과외시켜 서울에 있는 대학 가면 제일 고마운 거지. 대학도 입학 등록금은 부모가 내줘도 나머지는 아이가 대출받고 졸업 후 중견기업 정도 가면 그걸 소시민적 삶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너무 어려운 거야.”

- 어떤 의미에서?

“어떤 직업도 아이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는 거야. 기자는 기레기, 국회의원은 국개의원이 됐잖아. ‘돈을 못 벌어도 명예가 있잖아요!’라는 말을 천시하는 사회가 됐어. 조물주 위에 건물주니까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고 연예인까지도 아니고 연습생이 되고 싶은 거야. 지난여름 내 출장이 겹쳐서 민이와 말레이시아로 한 달 살기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초2 아이가 소방대원이 꿈이래. 우리나라 남자애들의 소방관 꿈이 네 살이면 끝나. 부모들이 ‘험하고 위험한 직업’이라고 가르치니까. 결국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능력이 되지 않고 노량진 고시원에서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현실이지. 지금 민이의 꿈은 레스토랑 매니저야. 메뉴 외우고 포스기 탁탁 치는 게 신기하다고. 아마 한국 학교를 안 다녀서 그럴 거라고 생각해. 말레이시아에서 민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압구정의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오너셰프를 원하니?’라고 하더래.”

- 민이 부모는 한마음인 거지?

“민이 아빠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과정이 좋았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는 거라며 그걸 통해서 어느 직업을 갖느냐는 아이의 선택이라고 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으냐고. 그러니 직업을 결정하는 과정으로서의 청소년기라고 생각지 말고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 그럼 내가 이렇게 대꾸해. ‘그런 얘기하면 엄마들한테 욕먹어, 그건 입 밖에 내면 안되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