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뜨거웠다고 해야 할까? 작년 한 해 가장 신나게 즐겼던 게임의 강연. 그 게임의 디렉터를 이역만리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만나는 기분은. 일을 떠나서 게이머의 한사람으로 너무나 즐거웠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특히 강연 후에 명함을 교환하며 나눴던 대화는 희열에 가까웠다.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니라고 우기고 있지만, 결국에는 나도 '게임 덕후'였던 거다.

'폴 아웃: 뉴 베가스'를 통해 CRPG에 관심이 별로 없던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조시 소여는 CRPG의 명인 반열에 올라섰다. 그 후 인피니티엔진의 한계 위에서 지금까지의 훌륭한 CRPG들처럼 뛰어난 비선형적 이야기 전개와 상호작용 세계를 구축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를 선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비선형적 이야기 전개나 상호작용, 혹은 감각적인 문장이 아니었다. 주시자가 영혼 세계를 묘사할 때 주관적 시점으로 서술 이동하면서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분리되는 경험에 무척 감명받은 터라 더 놀라웠다. 옵시디안 엔터테인먼트의 조쉬 소여(Josh Sawyer) 디렉터는 '능력치'에 관한 강연을 진행했다. 그 역시 '게임 덕후'였던 거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옵시디안엔터테인먼트 조쉬 소여(Josh Sawyer) 디렉터

'발더스게이트'가 AD&D룰을 기반으로 한다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D&D 4판에서 영감을 받았다. 메모라이즈를 제거하고 전투나 휴식마다 초기화되는 스킬 횟수와 마법 횟수, 그리고 레벨업시 특정 재주를 고를 수 있다. 4판의 토대위에 수치 개념 자체를 조금 바꿨다.

D&D룰은 굉장히 보수적인 룰이다. 때문에 4판 이후, 과거의 '전통적인' 룰을 좋아하는 사람과 4판 이후 '현대적' 감각의 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분화가 일어났다. 조쉬 소여는 후자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특히 능력치와 전투 관련부분에서 말이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강연 제목은 '갓즈 앤드 덤프스'

■ PoE 능력치 배경 - "난 기존 능력치 컨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쉬 소여는 일단 자신이 생각하는 D&D 클래식과 2판까지의 문제점부터 언급했다. 문제점의 시작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고전 D&D의 룰은 스테레오 타입 클래스와 8부터 14까지 버려지는 능력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능 14의 위자드(이하 마법사)는 13레벨에 되어도 7레벨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당신은 대마법사를 꿈꾸며 캐릭터를 만들었겠지만,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 하나. '발더스게이트'의 칼리드처럼 힘 15 능력치를 가지고 전문화 기술을 찍은 파이터를 생각해보자. 18(00)인 파이터와 비교해 보면 데미지는 끔찍할 정도로 낮다. 1d10+2(7.5)와 1d10+8(13.5). 명확하지 않은가? 13레벨에 도달해 그랜드마스터리를 통해 무기에 +4 가 붙어도 데미지는 여전히 암울하다. 1d10+9(14.5) vs. 1d10+15(20.5). 더 이상 논의할 가치도 없다. 이 과정에서 소위 '쓰레기' 능력치가 발생하게 된다. 왜냐면 특정 클래스에게는 특정 능력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대마법사를 꿈꿨지만... 현실은...

능력치는 고전 TRPG는 물론이고 고전 CRPG인 울티마부터 다크소울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를 규정짓는 요소로 정의되어 왔다.

D&D에는 6가지의 능력치가 존재한다. 힘(Strength) , 체질(Constitution), 민첩(Dexterity), 지능(Intelligence), 지혜(wisdom), 그리고 매력 (Charisma) 능력치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랜덤으로 주어지기는 하지만 각 능력치에 추가로 포인트를 줄 수도 있다.

반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힘(Might), 체질(Constitution), 민첩(Dexterity), 통찰(Perception), 지능(Intelligence), 결의(Resolve)가 있다. 전통적인 D&D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데 자세한 것은 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클래식 D&D룰과 AD&D룰을 합병한 3편에서는 룰북에 변동이 생겼다. 일단 규칙 측면에서 고전 D&D 때부터 내려온 애매한 혼동 요소를 제거해 직관적으로 바꿨다. 그전까지 특정 능력치보다 더 낮은 숫자를 굴려야 성공으로 판별하던 기술 굴림과 내성 굴림 체계 등을 개선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좀 더 상식적이게 바뀌었다. 기존에는 3개만 가능했지만, 4개의 능력치를 찍을 수 있는 클래스도 등장했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AD&D 때부터 시도된 종족과 클래스 간의 분리를 구현했고 최적의 멀티빌드를 강요받지 아니하고 구현 가능한, 성장 가능한 멀티빌드가 되도록 변경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지능과 낮은 힘 능력치를 준 코어 파이터는 '바보'였다. 옵션 규칙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있게 할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옵션이니까.

6가지 능력치는 캐릭터에 다양한 보너스 수치를 주는데, 힘은 근접 무기 공격 시에 데미지 보너스를 준다. 수정치는 매 2포인트마다 +1. 능력치가 10일 경우에는 변화가 없으며 12일 경우에는 +1, 14일 경우 +2로 간주한다. 모든 능력치는 보너스 수정치로 적용되므로 14 힘 능력치는 어택 보너스와 데미지에 2 수치를 더해준다. 그러므로 캐릭터는 반드시 생존을 위해 혹살리기 위해서 '몰방(沒放)'할 필요가 있는 능력치가 존재했다. 다른 능력치를 내리고 필요한 능력치에 더 많은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8~14 구간의 차이가 그전 그 후 구간에서 받는 수치보다 미미하다는 점도 소여에겐 불만이었다.

조쉬 소여가 불만이었던 점은 또 있었다. 바로 BAB(베이스 어택 보너스 시스템). 이 시스템은 캐릭터가 공격할 때 명중률과 관련 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1 BAB를 가지고 20 AC를 가진 적을 공격할 경우 19~20 주사위 굴림을 필요로 한다. 즉 높은 레벨의 파이터가 +20 BAB 보너스를 가지면 20 AC 상대의 적에게 무조건 공격에 성공하며 실패하는 것은 오직 치명타 판정뿐이라는 뜻이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D&D 3.0 BAB 개념 (출처: alesmiter.blogspot.com)

"그래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를 만들 때는 공격 방법을 다분화 했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3편에서 게임을 원활히 생각대로 즐기려면, 생존 가능한 캐릭터를 만들려면 몰아줄 능력치를 몰아주고 버릴 능력치는 버려야 한다. '최소 능력치-최고 능력치의 환희(Min-Maxer's Delight)'라고 할까. 그런데 난 이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이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약간 우습기도 하고."

후에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가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4판이 등장했다. 4판은 일행 내부에서 4개 역할만 제대로 맞춰놓고 운용한다면 엄청나게 '바보같이'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4가지 역할을 프론트라인(Frontline, 탱커), 헤비 히터(Heavy Hitter, 딜러), 리더 (Leader, 버퍼 역할 및 대화를 이끌어가는 리더), 군중제어가(Mob Ruler, 디버퍼)로 정의했다. 이를 11개의 직업군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수행 할 수 있게 했다.

밸런스가 전체적으로 좋아졌다. 전투력이 강한 캐릭터는 다른 부분에 있어 그만큼의 불이익이 붙어있는 만큼 특정 능력치를 강요당하지 않게 됐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특정 클래스를 배척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위 '잉여' 클래스와 능력치의 경계가 흐려졌다.


■ PoE의 능력치 - "근육 빵빵 위자드를 만들고 싶은가? 그럼 만들어라!"


"일단 6개의 능력치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은 순전히 전통적인 면에 기인한 것이다. 팬들도 5개에서 7개 사이의 능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줬다. 사실 남들처럼 전통적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기는 너무 힘들었다. 적어도 겉모습에서는 말이다. 능력치가 3가지 방어 결정 기제와 '명백한 거부 의사가 없으면 동의하는 방식'이 서로 연결되지 않도록 했다."

두 번째 목표는 클래스 특성과 캐릭터 능력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레벨업시 '생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포인트를 투자하는 행동 때문에 클래스 특성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 매력이 낮은 팔라딘같은 경우도 팔라딘의 능력 자체는 사용할 수 있게 말이다.

"아무리 '잉여' 클래스라도 캐릭터 능력치에 따라 활약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 반대로 캐릭터 능력치가 좋지 못하더라도 클래스가 가지는 특성은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쓸모있게."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강연을 듣고 귀국편에 만든 캐릭터. 도적이지만 덱스에 18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

세 번째는 모든 클래스에 걸쳐 연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메커니즘의 개발이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에서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굴림은 4가지가 있다.

근거리 및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어 (Deflection)은 전통적인 개념과 같다. 독과 질병처럼 내상을 입히는 공격은 인내(Fortitude) 파이어볼, 볼트 오브 라이트닝처럼 범위 효과(AoE) 공격에 방어하는 반사신경(Reflex) 그리고 정신 공격에 대한 방어인 의지(Will)이 있다.

인내는 캐릭터의 신체에 가해진 공격에 저항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으로 캐릭터의 직업, 레벨, 힘과 체질 등에 의해 정해진다. 반사신경은 캐릭터가 물리적으로 해로운 범위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캐릭터의 직업, 레벨 통찰 등에 의해 정해진다. 의지는 정신에 기반을 둔 공격에 저항하는 데 사용된다. 캐릭터의 직업, 레벨, 지능과 결의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각종 능력치가 복합적으로 굴림에 영향을 주도록 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각 능력치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

"우리는 나쁜 빌드란 개념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RPG에서 캐릭터성은 상호작용과 아주 가끔 게임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당신이 통찰력 있는 천재 바바리안이라든지, 근육 덩어리 마법사라든지, 어설픈 도적을 만들고 싶다면 만들어서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시스템에서 이를 막아버리면 다양한 컨셉의 캐릭터가 등장할 수 없다. 능력치의 최적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으로 모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컨셉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소여는 통상적이지 않은 캐릭터, 예를 들면 통찰력 높은 바바리안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세계에서는 매우 실용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작업을 용이하게하기 위해, 옵시디언은 모든 속성이 여러 범위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D&D나 AD&D에서 영감을 받은 '발더스게이트',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그리고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모두 D&D와는 좀 거리가 멀다. 옵시디안의 전작 '네버윈터나이츠2' 정도가 D&D 3.5룰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이다. 사실 D&D 룰 자체가 실시간 전투에는 지극히 부적합한 룰이기에(일시 정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게임적 기획이 허용됐다고 봐야한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앞서 언급했듯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에는 힘(Might), 체질(Constitution), 민첩(Dexterity), 통찰(Perception), 지능(Intelligence), 결의(Resolve) 6개의 능력치가 있다.

전통적인 D&D 능력치와 약간 개념이 다른데, 어떠한 상상의 나래도 펼칠 수 있도록 strength가 아닌 might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래서 마법의 위력도 힘으로 결정된다. 지능은 범위 마법의 범위를 결정한다. 즉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에서 전통적인 D&D룰에 따라 지능에 '올인'하는 마법사를 만들었다면 군중 제어 메즈 마법이나 보조 마법에는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공격 마법 위력은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개념상 상상만했던 '근육 빵빵한 약간은 멍청한 마법사'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마법사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캐릭터고 공격 마법에서는 전통적 D&D의 마법사 능력치를 가진 마법사보다 위력이 더 강하다.

전사 역시 힘에만 투자했다가는 잘 방해(Interrupt)당하고 지구력이 낮은 '종잇장'이 되어버린다. 각종 능력치가 얽혀있기에 민첩에서 영향받는 공격 속도와 또는 물리 방어 수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정리하자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능력치 분배는 이렇다. 캐릭터의 직업이 능력치 분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클래스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능력치 분배가 다르고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에서는 진행에 도움이 덜 되는, 덜 중요한 능력치라도 기존 CRPG 게임처럼 섣불리 포인트를 뺄 수 없다.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 내에서 능력치가 발현되는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개성 있는 캐릭터를 연출하고자 한다면 최소 3부터 최대 18까지 총 57포인트를 '올인'해도 된다. 최소-최대 능력치를 고집하는 것은 여전히 강력하다. 다른 부분에서 불이익을 받을지언정.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나는 강력하지만 멍청한 마법사다!

"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능력치의 장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어중간한 '바보'같은 캐릭터를 만들기 힘들다는 점을 꼽고 싶다. 능력치는 골고루 분포되어있지만, 각기 능력치 간에 상호작용을 하면서 어떻게든 쓸모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또 능력치 개념 차이로 인해 방해에 특화된 바바리안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급부로 타격용 바바리안을 만들 수도 있다. 근육 빵빵 마법사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급부로 군중 제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법사를 만들 수도 있다."

소여는 이어 '선택과 결정'에 대해 언급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대화시스템은 CRPG 선택문 대화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웨이스트랜드2'와 같은 키워드 대화를 간결하게 만든 이 시스템은 지문의 문학성을 향상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또한, 제시된 선택지에서 행동을 골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게임 내 사건이 변화하게 했다. 이는 캐릭터 컨셉의 다양화와 맞물려 다회차 플레이를 해도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대화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투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전투는 끊임없이 합리적으로 턴을 관리하고 플레이어의 전술을 방해하지 않는다. 기존 D&D룰을 기괴하게 억지로 CRPG로 옮기지 않았다. 전투와 대화에서 모든 능력치가 발현된다.

D&D 4판의 명중 판정은 20면체에 수정치를 더한 명중 굴림을 해서 상대의 방어(AC, 인내, 의지, 회피 내성) 중 하나를 맞추는 것으로 통일됐고 BAB 개념도 없어져 모든 클래스가 무조건 레벨의 절반만큼을 기본값으로 더하는 등 3판에 비해 매우 간략해졌다. 4판을 기본으로 디자인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욱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컴퓨터 세대에 맞춘 개념이었다.


■ PoE의 능력치 때문에 받은 비난 -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상관 안 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를 출시하고 확장팩인 화이트마치 1, 2를 출시한 지금도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능력치에 대한 불만의 글을 접하곤 한다."

불만의 첫 번째 이유는 능력치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AD&D의 능력치가 그럴듯하고 직관적인 데 비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능력치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여에게 있어 현실성은 높은 우선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능력치가 뜻하는 바가 서로 엮여서 조금은 복잡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체력 부분에서 이러한 지적은 정점을 찍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체력은 보통 RPG의 HP 수치를 지구력과 체력으로 이원화했다. 체력과 건강 수치는 체질 능력치에 영향을 받으며 클래스에 따라 레벨업 시 증가하는 수치가 다르다.

"지구력은 한 번의 전투 중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표시하는 수치다. 체력과 비교하면 매우 애매하고 모호한 수치로 지구력을 다 잃으면 기절해 전투불능상태가 된다. 체력 수치가 지구력 최대치보다 낮아졌을 경우 체력 수치까지만 회복된다. 즉 체질 능력치에 영향을 받지만, 클래스에 따른 영향도 받는다는 것이다. 체력은 신체적인 손상을 뜻한다. 아마 이런 식의 익숙지 않은 개념 때문에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 같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D&D에서 버려지는 8~14 능력치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 반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데미지 테이블

캐릭터 정보창, 특히 능력에 대한 인지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로 표현되어 직관적이지 않다는 의견이다. 소여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세 번째는 모험을 통해 만나는 동료들이 '애매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말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능력치 컨셉과 연관이 있다.

"나는 동료의 특성이 캐릭터 능력치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게임에서 동료는 '길거리를 가다가 만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떤 한 분야에 최고 능력치를 발휘한다는 것이 조금 웃기지 않나 싶었다. 이들에 적응해서 파티를 꾸려 모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적화된 능력치를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용병이 효율이 높지만, 동료들은 각자의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팔레지나는 다섯 태양의 기사단에 속한 팔라딘이다.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상처를 입힌 팔레지나는 아버지에게 심한 구박을 받다가 특별한 계기로 태양의 형제단에 들어가게 됐다. 덕분에 팔레지나는 일반적인 팔라딘이 응당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믿음보다는 냉철함과 호전성, 모험심과 침착함이 뒤섞여 있다.

그녀는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강한 의지력으로 표현된다. 더불어 게임 내 텍스트를 통해 상당히 유능하고 똑똑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캐릭터성에 맞춰 팔레지나는 힘 12, 체질 13으로 탱커로 쓰기도 딜러로 쓰기도 모호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성장 과정에서 획득했을 통찰은 14, 결의는 15로 비교적 높으며 지식도 13이다. 만약에 팔레지나가 힘21 지능 20 결의 18의 캐릭터로 등장했다면. 과연 캐릭터성을 잘 알 수 있을까? 물론 저렇게 해서 강력한 캐릭터로 사용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

소여는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해줄 게임 디자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청중들의 용인 한계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계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기획적 시도를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순수성, 이를테면 'CRPG는 반드시 이래야 해!'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할 필요도 있다. 이데올로기 잣대를 들어대는 층은 그들만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는 기획 단계서부터 일부 계층에게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소여는 D&D는 아니지만, D&D에 영향을 받은 게임을 만든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가 다른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마 누군가에게 옵시디안이 이러한 일을 또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할 거다.'라고 대답할 거다. 기존에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결하는 일은 꽤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게임 플레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아마 플레이어도 같은 생각이라 믿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하지 않을 거다. 난 클래스 기반의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기계학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