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스콧 피츠제럴드, 금주법의 시대, 마천루의 도시 뉴욕

위대한 개츠비 Chapter 1, Chapter 2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The Great Gatsby(1925) by F. Scott Fitzgerald

내가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은 것은 강산이 한번 변하기 전이었다. 당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 숲)를 읽고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유명한 소설이고 영미문학에서 손꼽히는 명작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소설이었다. 나에게 미국문학이란 헤밍웨이와 트웨인이 전부였다.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 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는 물었다.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하고 그는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키 독자에게 위대한 개츠비란 마치 마트의 치킨코너 옆에 작게 진열되어 있는 캔맥주와 같아서 상실의 시대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를 많이 읽었을 터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나가사와 선배의 말은 책 판매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이렇게 멋진 소설이 있을까하며 극찬한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사람들은 위대한 개츠비에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읽었다. 읽고 나서는 음... 이게 왜 극찬을 받을만한 소설인거지? 도대체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것이야?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땐 그랬다.

그리 빅 재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들은 정상적이지가 않다. 제이 개츠비는 한심하며 데이지는 철이 없고 닉 캐러웨이는 색깔이 없다.

조던 베이커는 이기적이고 톰 뷰캐넌은 거만하고 머틀 윌슨은 천박하며 조지 윌슨은 멍청하다. 등장인물들의 개념은 열권을 이탈해 대기권을 한참 벗어나 있다.

묘사는 잔잔하며 그리 속도감이나 큰 굴곡이 없이 지루하다. 나는 숟가락에 각 잡고 있는 엄마가 무서워 싫어하는 반찬을 억지로 먹는 아이처럼 꾸역꾸역 읽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개츠비라고 하면 소설 속의 개츠비가 아닌 다이나믹 듀오 노래 'Ring my bell' 속의 "사랑에 배신당한 개츠비라도~"란 가사와

강도하 만화의 위대한 캣츠비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그 때와는 다른 소설이었다.

지루하게 느껴졌던 문장은 섬세한 문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해되지 않았던 상황과 인물의 행동, 갈등구조도 전부는 아니지만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와타나베가 느꼈던 것처럼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지루한 느낌이 아직까지는 약간이나마 남아있다.

그렇지만 1920년대 미국사회를 아주 잘 묘사한 소설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당연히 치킨코너 옆의 캔맥주가 아닌 당당히 맥주코너에 있어야 할 좋은 소설이다.

이게 맥주코너에서 따로 명품 맥주코너로 분류해야 할지는 더 읽어봐야 알 것 같다. 나가사와 선배와 친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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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Gatsby(2013) Directer by Baz Luhrmann

위대한 개츠비가 곧 영화로 개봉하는 모양이다. 한때 타이타닉에서 뭇 여성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리던 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말이다.

꽤 오래전에 쫄쫄이 타이즈가 어울리는 남자 거미형님이 올백에 양복입고 어떤 영화에 등장하길래 새 영화를 찍었나부다 했는데 그게 위대한 개츠비였다.

토비 맥과이어는 작품 속 화자인 닉 캐러웨이로 나온다. 영화는 상당히 오래전에 촬영을 마친 것 같은데 아직도 개봉을 안 했다. 무려 2011년 9월에 크랭크인하여

원래는 2012년 말에 개봉될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제작사 사정으로 연기되어 올해 5월 16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과연 묵은지의 깊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두둥!

2013년 칸 영화제의 개막작인만큼 꽤 기대가 크다. 소설 속에 묘사된 미국사회가 습자지같이 얇은 내 지식으로는 도통 머릿속에 또렷이 이미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영상으로 구현된 위대한 개츠비가 보고 싶었던 터이다. 게다가 판타지나 액션영화에서 주로 보던 3D 영화라고 하니 영상미에도 꽤 신경쓴 것 같다.

아마도 1920년대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하고 호화스런 파티가 벌어지던 당시 뉴욕의 모습을 화려하고 현란하게 묘사하기 위해 3D로 촬영한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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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 Leonardo DiCaprio as Jay Gatsby, Carey Mulligan as Daisy Buchanan, Tobey Maguire as Nick Carraway

Elizabeth Debicki as Jordan Baker, Joel Edgerton as Tom Buchanan, Isla Fisher as Myrtle Wilson


위대한 개츠비는 이번 것까지 합쳐서 6번 영화화 되었다. 소설은 1925년에 출간되었고 첫 영화는 1926년 무성으로 만들어졌는데 안타깝게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1949년, 1974년, 2000년, 2002년에도 만들어졌는데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이 개츠비로 나오는 잭 클레이튼 감독의 1974년 작품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간단한 줄거리는 가난한 군인이었던 개츠비는 데이지와 사귀다가 1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니 데이지는 딴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 개츠비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저택을 사고 부를 과시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결국 그 자신은 사랑과 사람에

배신당한채 비극적이고 초라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비극의 인물이자 가질 수 없는 꿈을 가진 인물인 제이 개츠비 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아 열연하였다.

포스터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게 빼 입었으며 타이틀은 마치 패션소품처럼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헤어스타일이라든지 패션 등에서 시대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배경으로 그려진 직선적이고 대칭적인 문양은 금속성의 광택을 띈 채 금빛으로 반짝거린다. 이것은 마치 마징가 제트를 개발한 김박사의 광자력 연구소에 있음직한

복잡한 전자 회로도같이 생겼는데 아마도 당시에 유행한 아르데코 양식의 문양이 아닐까 한다. 이렇듯 영화 포스터는 당시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시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왼쪽) 미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인 위대한 개츠비를 썼으며 5:5 가르마를 사랑한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미완성인 유고작을 포함하여

5편의 장편과 160여편의 단편을 남겼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유명해진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그의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오른쪽) 1925년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의 초판본으로 표지의 디자인은 미국문학사에서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아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사인.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생전에 쓴 글과 필적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로 학생들이 배우는 영문학 교과서에 거의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의 20년대를 말할 때

후렌치 후라이의 케첩처럼 거의 빠지지 않는 소설이다. 예전에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20세기에 영어로 쓰여진 가장 위대한 소설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위대한 개츠비가 2위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위대한 개츠비를 다루고 있는 포스팅인만큼 1위를 차지해야 본새가 좀 살아나겠지만 2위도 분명 대단한 것이다.

1위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는데 순위는 순위일 뿐 좋은 작품에는 우열이 없는 법이다. 어쨌든 이 작품을 쓴 작가는 F. 스콧 피츠제럴드다.

지금에 와서야 그의 작품인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문학의 영원한 기념비로 평가받지만 처음 나왔을 때에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리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적 재능이 있었지만 항상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상업적인 글도 마다하지 않던 피츠제럴드는 1924년 위대한 개츠비를 탈고한 후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편지에서"마침내 참으로 내 작품이라고 할 그 무엇을 썼다."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는 작품성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1925년 4월에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말이 되서는 세간에서 거의 잊혀진 소설이 되었다. 그러한 결과는 그에게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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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사회와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보수주의 속에서 획일한 된 사회풍조를 비판하고 기존 세대의 전통적 청교도적 사고관과 결별하면서 스스로 길 잃은 세대라 칭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커밍스 등과 함께 1920년대 프랑스 파리를 문학활동의 중심지로 삼았던 여러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위대한 소설을 낳은 이 작가의 삶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흔히 대문호라고 하면 헤밍웨이나 톨스토이같이 수염에 백발이 성성하고

절제된 삶을 살며 창작의 고통에 매달리는 그런 모습이 연상될지 모르겠지만 피츠제럴드는 미국문단의 플레이보이로 말끔한 외모에 화려함을 쫓았고 사치를 즐겼다.

1920년 그는 데뷔작 '낙원의 이쪽'이 평단의 호평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면서 문단의 주목받는 스타로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당시 무명작가였던 헤밍웨이는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나중에 둘은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면서 갈라섰지만 말이다.

이후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와 '밤은 부드러워' 등의 장편을 집필하였다. 하지만 데뷔작의 영광을 재현할 수 없었고 절제없는 생활에 돈은 쪼들려만 갔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60여편에 이르는 수많은 단편을 집필하였으며 오히려 지금 평가받는 장편에서 벌어들이는 인세보다 단편에서 훨씬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다.

훌륭한 단편도 있긴 하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은 상업적 글쓰기에 소진되어 갔고 빚을 갚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였지만 그가 성공시킨 작품은 없었다.

말년의 그는 아내 젤다의 정신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고 그 자신도 지독한 알콜중독자였다. 그는 '최후의 대군'을 집필하던 중 1940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1900~1948), 딸 스코티(1921~1986)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피츠제럴드 부부

피츠제럴드는 작품을 위해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젤다와 함께 공공 분수대에서 물을 튀기고 택시 덮개 위에 타고 슬픈 곳에서 웃고

금주령 기간에 술파티를 벌이는 등 기행을 벌였다. 이들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인이었는데 이러한 행동은 모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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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를 빠뜨릴 수 없다. 젤다는 1920년대 기존의 보수적인 관습을 거부한채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던 여성을 상징하는 플래퍼들의 아이콘이었고 남편과 함께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 스콧은 그녀를 미국의 첫번째 플래퍼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녀는 미국 남부 앨라버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내일의 걱정보다는 오늘을 즐기고 자기주장이 강한 소녀였다. 1918년 6월 그녀는 앨라배마주에 전속되어 있던 육군장교 스콧을 기차역에서 처음 만나게 되면서 교제하게 된다. 이후 스콧은 해외파병될 예정이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1차 대전이 끝나면서 둘은 약혼한다. 하지만 젤다는 전역 후 가난한 광고장이였던 그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파혼을 통보하지만 스콧의 작품이 출판 계약되면서 다시 약혼을 한다. 1920년 데뷔작 '낙원의 이쪽'이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스콧은 단박에 스타작가가 된다.

 젤다는 스타작가의 아내로 사람들의 선망의 시선과 사교클럽 파티의 화려함을 즐겼다. 남편과 함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고 프랑스에서 거주할 때는 프랑스인 조종사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스콧 자신도 화려함을 좋아하는 취향이었지만 중서부의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그와 비교해 출생부터 남부 명문가의 딸래미로 없는 것이 없이 자란 아내 젤다를 부양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갔다. 게다가 둘은 자주 싸웠다. 젤다 자신도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남편인 스콧은 그녀의 작품을 혹평하였고 무시하기도 하였다. 젤다는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스콧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창작에만 몰두하였다. 젤다는 정신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병원과 요양소 신세를 져야했고 피츠제럴드의 빚은 늘어만 갔다. 광란의 20년대가 지나고 대공황이 열어젖힌 암흑의 30년대가 되면서 더 이상 재즈시대의 감성은 세상에 통하지 않게 되었다. 스콧은 할리우드로 가서 술을 줄창 마셔대면서 시나리오를 써댔다. 젤다는 남편이 사망한지 8년후인 1948년에 사망한다. 그녀는 당시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병원에서 화재가 났고 탈출하지 못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보면 피츠제럴드 부부가 겹쳐 보인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도 그렇고 데이지의 물질관도 젤다와 전혀 무관하지 않게 느껴진다.

스콧은 자신보다 한술 더 뜨는 아내의 사치에 지쳐 자신의 소설로 은근히 디스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애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젤다, 정신 좀 차려!"라고.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젤다에게서 데이지의 미래를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은 작가의 삶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가 사망한 후에야 진정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되었다. 작가 생전에 위대한 개츠비는 추산하여 2만 5천부 정도만이 팔렸을 뿐이다.

피츠제럴드는 제목을 잘못 지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출간 전에 했다면 우리는 '황금모자를 쓴 개츠비'나 '트리말키오'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생전에 유일하게 그림 한점을 헐값에 판 고흐에 비해서는 엄청난 행운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생전과 사후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반응은 하늘과 땅이었다.

제2차 대전에는 병사들을 위해 15만부 가량이 전선에 뿌려졌고 지금은 미국 내에서만 매년 30만부 이상씩 팔리는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평가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의 위대한 개츠비는 그야말로 위대한 소설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죽어야만 사는 모양이다. 간혹 헤밍웨이나 피카소처럼 극소수의 예외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 이 소설의 제목을 지을 때 피츠제럴드는 상당한 고민을 했다.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제목들은 '재의 계곡과 백만장자',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황금모자를 쓴 개츠비', '트리말키오', '높이 뛰어오르는 연인' 등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름이 정해진 후에 제목을 바꾸려고 출판사에 연락했으나 때는 늦어버렸다. 그 때 바꾸려한 제목은 '적과 백과 청 아래에'였다.

위대한 개츠비의 책 표지들. 주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나 소설 속의 상징들을 표현하고 있다.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이 소설이 혹자에게는 그다지 위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이것은 세기를 넘어 머나먼 20세기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1920년대의 감성이 지금의 우리와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당시에는 새롭게 느껴졌을 기법이 후대에 반복되면서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간적 차이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인 미국이라는 나라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공간적 차이 또한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외국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우선 언어의 차이로 인해 영어가 어순이 상이하게 다른 우리말로 번역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글맛이 반감될 수도 있는 것이고 역자의 역량에 따라 놓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 문화적 차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라야

이해할 수 있는 습관이라든지 공감대도 무시하지 못 할 것이다. 미국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단무지 왜 안 주냐고 따진다면 문신에 해골반지 낀 주방장 곤잘레스가

불 타는 웍으로 폭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시간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며 공간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 문화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분명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롭고 점점 재미 있어지는 소설이다. 당시의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읽게 된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잡았을 때 지루하게 느꼈던 것은 나의 메마른 감성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옛날옛적의 미국에 대해 잘 몰랐던 것도 사소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기서는 곧 개봉될 영화를 핑계삼아 개츠비가 살았던, 시간적으로는 돈 냄새와 술 냄새, 갱들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약 냄새와 피 냄새 등이 버무려져

알 수 없는 꾸리착찹한 냄새를 풍기던 1920년대, 공간적으로는 미국 뉴욕 맨해튼과 동쪽으로 뻗은 롱아일랜드를 중심으로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 위대한 개츠비 배경인 1922년 당시의 성조기는 별이 48개!

책을 다시 젤다에게 바침

그럼 황금모자를 쓰거라,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높이 뛰어오를 수 있거든

그녀를 위해 뛰어올라 보아라.

그녀가 이렇게 외칠 때까지

"사랑하는 그대여!

황금모자를 쓰고 높이 뛰어오르는 그대여,

내가 당신을 차지해야겠어요!"

- 토머스 파크 단발리에 -

(허구의 인물로 이 시를 쓴 것은 피츠제럴드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over since.

내가 아직 어리고 여리던 시절, 아버지가 내게 충고를 해 주셨는데 그 후 언제나 그 말씀을 마음속에 되새기고 있다.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나 이 말을 떠올려라. 세상 사람이 다 너만큼의 특권을 누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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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Nick Carraway)는 증권맨이 되기 위해 고향인 중서부를 떠나 뉴욕으로 올라온다. 

그는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웨스트 에그에 월세 80달러짜리 집을 하나 얻고 핀란드인 가정부를 고용한다.

소설은 이 작품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충고로부터 시작한다.

닉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을 마음에 새겨 모든 일에 판단을 유보하는 신중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상대방에 관대하며 객관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그가 화자로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는 중서부 출신으로 1915년 예일대를 졸업하였고

얼마후 당시 유럽을 휩쓸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넓은 세상을 경험한 그에게 중서부는 우주의 변두리같은 곳이었다.

1922년 봄, 그는 당시 여느 야망이 있는 젊은이들이 그러했듯 꿈을 안고 미국 동부, 당시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던 뉴욕으로 찾아든다.(BGM: 조용필 '꿈')

그는 당시 호황을 누리던 증권업에 종사하게 되고 뉴욕 시내인 맨해튼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베드타운에 월세 80달러 집을 빌리고 구형 자동차를 구입한다.

그가 살던 곳은 맨해튼 동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섬인 롱아일랜드의 돌출된 계란 모양의 지형을 한 곳이었다. 계란은 쌍둥이처럼 2개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닉이 살던 곳이 서쪽의 웨스트 에그이고 동쪽은 이스트 에그로 대학친구인 톰과 그의 부인이자 닉의 육촌동생인 데이지가 살고 있었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1917년의 뉴욕 지도. 빨간색의 지명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며 파란색의 각 장소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이다.

주인공인 개츠비와 닉은 웨스트 에그에 살고 있는데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는 실제로 1922년 10월에서 1924년 4월까지 이곳에 해당하는 그레이트 넥에 살았다.

웨스트 에그와 이스트 에그는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가 창조해낸 가상의 지명으로 작가는 실제로 웨스트 에그에 해당하는 그레이트 닉에 살았었다.

'두 계란'은 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만이 그 사이에 갈라놓고 있는데 이런 공간적 배경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두 지역의 지형은 꼭 닮았지만

그 안의 실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웨스트 에그는 이스트 에그에 비해 '덜 화려한 곳'이었다. '덜'일 뿐 닉의 집 양쪽에는 엄청난 규모의 고급 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웨스트 에그 역시 부유한 동네로 주로 신흥 부자들이 사는 동네며 이스트 에그는 '더 화려한 곳'으로 부를 세습받은 전통적인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웨스트 에그는 청담동, 압구정동이고 이스트 에그는 평창동, 성북동이라고나 할까. 두 지역은 겉으로만 보면 지형이 같고 똑같이 부유하지만

두 동네를 가르는 바다만큼이나 계층을 나누는 바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스트 에그의 성향을 대표하는 인물이 톰 뷰캐넌이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위대한 개츠비의 등장인물 관계도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제이 개츠비 역), 캐리 멀리건(데이지 뷰캐넌 역), 토비 맥과이어(닉 캐러웨이 역), 엘리자베스 데비키(조던 베이커 역)

조엘 애저튼(톰 뷰캐넌 역), 아일라 피셔(머틀 윌슨 역), 제이슨 클락(조지 윌슨 역), 에드레이드 크레멘스(캐서린 역)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방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정지된 것은 커다란 쇼파였는데 거기엔 두 젊은 여자가 마치 붙잡아 매놓은 기구를 탄 것처럼 둥실 뜬 채 앉아 있었다.

둘 다 하얀 옷차림이었는데, 마치 집 근처를 잠깐 비행하고 날아 들어온 것처럼 옷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펄럭이고 있었다.』

닉은 톰의 집 저녁식사에 초대된다. 톰은 승마복을 입은 채로 닉을 맞이한다. 톰은 큰 체격에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서른살의 건장한 남자로

그의 목소리는 거만함과 우월의식에 차 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로 인생의 초반에 절정에 도달하여 오히려 지금은 내리막으로 보일 정도다.

그는 아무 이유없이 시카고를 떠나와 스포츠를 즐기며 외국을 떠돌다가 목적도 없이 동부에 정착하여 여전히 부를 바탕으로 쾌락적 소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닉이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흰 옷차림을 한 두 여인이 둥실 떠있는 것처럼 나른하고 무료한 듯이 앉아 있었는데 육촌동생인 데이지와 초면인 조던 베이커였다.

데이지는 톰의 부인으로 과장된 말투와 행동에서 그리 차분하고 안정된 성격의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친구인 조던은 도도하며 시크한 여성으로 골프선수다.

식사자리에서 닉은 톰이 내연녀가 있음을 알게 되고 뷰캐넌 부부가 자신에게 보여준 관심에 닉은 약간 감동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고 불쾌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앉아있을 때 이웃에서 홀로 밤바다를 보고 있는 개츠비를 발견한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멀리서 반짝이는 초록색 불빛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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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중에 나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져 희미하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부두의 맨 끝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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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샘으로 유명한 미국의 제1차 대전 모병 포스터와 전쟁 당시 유럽전선에 파견된 미군.

미국의 1920년대를 열어 젖히자면 제1차 세계대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에서 1918년 11월까지

인류 대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린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국가 간의 팽창과정에서의 충돌로 인해 일어났다.

당시 대두되고 있던 민족주의와 국가간 이해관계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동맹을 맺은 국가가 굴비 엮이듯 줄줄이 딸려 들어가 판이 커져버려

유럽 대륙은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미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 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국민 중에도 유럽 출신으로 가족을 그곳에 두고 온 사람도 많았고

또한 정치, 경제적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황이던 산업은 유럽에서의 군수품 주문으로 인해 호황을 누리면서 미국에게는 호재가 되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오래전부터 유럽 대륙의 일은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는다는 먼로주의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강한 중립을 고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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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타니아 호 격침 사건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와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속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제이 개츠비.

당시 전쟁의 교착상태에서 영국에 비해 해군력이 열세였던 독일은 해안이 봉쇄당하자 잠수함 작전을 들고 나와 무차별적인 선박 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던 중 1915년 5월 1200여명의 승객을 태운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되면서 미국인 128명이 사망하였고 이에 미국은 반독일 여론으로 들끓는다.

미국이 항의하여 독일은 함장들에게 발포전에 경고할 것을 명령하지만 계속 미국인의 피해가 생겼고 결국 최후 통첩까지 하였지만 독일의 무차별 잠수함 공격은 계속 된다.

그러다 독일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멕시코를 동맹국 측으로 끌어 들이려던 사실(치머만 전보사건)이 드러나면서 1917년 4월 미국은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된다.

연합국이 승리하기 직전인 1918년 10월에는 175만명 이상의 미군이 프랑스 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균형의 추는 연합국 측으로 기울었고

1918년 11월 미군은 독일의 힌덴부르크 선을 분쇄한 모이제-아르곤 대공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개츠비가 닉에게 훈장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 전투다.

이미 그해 여름 패색이 짙던 독일은 연합국에 강화제의를 거부당하다가 1918년 11월 11일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길었던 전쟁은 동맹국 측의 패전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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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의 대통령들

제28대 토머스 우드로 윌슨[민주당](1856~1824 재임 1913~1921) 제29대 워런 개메일리얼 하딩[공화당](1865~1923 재임 1921~1923)

제30대 존 캘빈 쿨리지[공화당](1872~1933 재임 1923~1929) 제31대 허버트 클라크 후버[공화당](1874~1964 재임 1929~1933)

패배 다음에 가장 비참한 것은 승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쟁은 번영하던 문명을 황폐하게 만든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도 황폐하게 만들었다.

전쟁 피해를 고스란히 안은 유럽은 아름다웠던 장미밭이 감자밭으로 변해 버렸고 전후처리와 복구로 인해 어수선하고 혼란한 상황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미국이었지만 전쟁 특수가 끝난 미국 사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잦은 파업에 인종폭동이 발생하였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세비키 혁명은 미국 사회를 적색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사회는 점차 보수화되었고 부패되었으며 패쇄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겪었던 불황은 얼마가지 않아 끝나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미국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던 눈부신 번영의 시대를 누린다.

1920년대는 고도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시대였으며 대자본가 승리의 시대였다. 자유방임주의자들이 그들의 견해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시대였다.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하딩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한 대통령 선거였다.

하딩은 능력 있다기 보다는 그저그런 인물이었는데 공화당 파벌의 극심한 대립으로 인해 도저히 후보가 결정나지 않자 '담배 연기 가득한 방'에서

무난한 하딩을 후보로 선출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윌슨의 국제주의와 이상주의에 싫증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공화당의 승리는 명백한 상태였다.

하딩 정부는 관세장벽을 높였고 이민을 제한하였으며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1923년 하딩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쿨리지에 의해서도 계속된다. 쿨리지는 "미국사람들의 주요 비지니스는 비지니스이다."라고 말했듯이 비지니스는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자유방임적 보수주의는 당시 미국을 뒤덮었고 KKK(Ku Klux Klan)단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카톨릭 신자, 유태인, 흑인에 대한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분야 뿐 아니라 교육계에도 보수주의자들의 입김이 거세져 1925년 테네시 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령을 채택되기도 했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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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법 당시 밀주를 운반하다 경찰과의 추격전 끝에 부서진 자동차, 밀주를 제조, 운반하다 검거된 갱들, 적발된 밀주를 버리는 경찰.

이런 보수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19년 1월에 비준된 수정헌법 제18조에 의해 금주법이 시행된다. 미국의 20년대는 금주법의 시대라고도 한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청교도, 즉 프로테스탄트들이 세운 나라였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창문 열면 바로 보이는 그 기독교다.

이들은 성경에 기반한 생활을 강조하였으며 검약과 근면을 미덕으로 삼았다. 예수 가라사대 취하지 말라했으니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마시는게 죄가 아니지만 종교는 신보다는 인간의 해석에 의해 달라지는 법이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술이란 경건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마법사의 도깨비 국물이었다.

금주법 이전에도 보수색이 강한 주에서는 주류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고 있었다. 또한 전쟁이 발발하면서 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곡식을 절약해야 했으며

일부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의 작업능률이 향상되기를 원하고 있었고 반독일 정서로 인해 맥주제조업에 다수 종사하는 독일인들의 부 축적을 막기 위한 목적 등

여러 이유가 얽혀 전국적으로 금주법을 시행하자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다. 1920년 1월 입안자의 이름을 딴 볼스테드 법이 발효되면서 미국에서 술은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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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게 많고 더러운 부엌에 바퀴벌레가 증식하듯이 1800년대 대도시에 부가 집중하고 부패에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갱들의 활동이 빈번해진다.

금주법 시대는 주류 제조와 유통으로 갱들이 막대한 부를 누리고 조직화된 시기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였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역사는 아니다.

왼쪽 동영상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며 오른쪽 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중절모에 코트 차림을 한 당시 갱의 모습이다.

과도한 술은 사회적인 낭비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술은 생산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인류의 거의 모든 역사와 함께 한 신의 선물이기도 했다.

칼은 아이가 잡으면 다치지만 요리사가 잡으면 맛있는 요리가 되고 살인마가 잡으면 사람을 죽이지만 나그네 켄신이 잡으면 사람을 살리듯 술도 그런 것이었다.

좋은 취지라도 현실을 무시하고 소수의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정치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나온 법이 잘 시행될리가 없었고 반발을 불렀다. 지금도 그런 법들이 있다.

도덕적 이상주의 속에서 나온 금주법은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고 많은 범법자를 양산하였다. 번영의 20년대였지만 광란의 20년대였으며 무법의 20년대였다.

술의 생산이 금지되면서 술의 가격은 폭등하였고 밀주제조가 성행하였다. 가짜술과 저급술이 유통되면서 건강만 잃으면 다행이었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피해는 돈이 없는 서민들이 고스란히 받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이전보다 약간의 품과 돈이 더 드는 불편을 겪었지만 술을 마시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밀주제조 이권을 노린 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밀주 수송차를 쫓는 경찰의 추격전, 갱의 뒤를 봐주는 부패 경찰, 이것이 금주법 시대의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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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가블리엘(1899~1947), 별명 스카페이스. 흔히 알 카포네라고 한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자이자 갱 두목으로 금주법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성 발렌타인 데이의 대학살(오른쪽 아래 사진)을 지휘하기도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렸다.

금주법은 알 카포네라는 갱 두목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이탈리아계로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전성기에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이미 20대의 젊은 나이로 도박, 매춘사업 뿐만 아니라 밀주사업에 손을 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1925년의 수입은 1억달러에 이르렀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5달러였던 시대였던만큼 지금으로 치면 최소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평생이 아닌 1년에 말이다.

이런 막대한 부로 정계와 경찰을 막대한 뇌물로 구워 삶았고 경쟁자와 배신자를 냉혹하게 제거하면서 거대 조직을 구축하였으며 암흑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였다.

그는 자선사업가 흉내도 내 무료급식소를 열기도 하였는데 이런 이미지 메이킹은 그를 시카고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범죄는 결국 세간에 드러났고 막대한 비용으로 변호사를 사서 탈세 등 축소된 죄목으로 11년형을 선고받고 7년을 복역한다.

말년의 그는 더 이상 화려한 갱 두목이 아니었고 당시 불치병인 매독을 앓고 있었다. 결국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살해당하지 않은 것은 그의 복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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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법 시행 전날인 1920년 1월 16일 마지막으로 술을 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적발된 술을 버리는 경찰,

금주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피켓시위, 1933년 금주법이 해제된 후 마음껏 합법적으로 술을 즐기며 기뻐하는 사람들.

이렇듯 금주법이 관통한 1920년대는 범죄율이 24% 증가하였으며 살인에 총기난사가 기승을 부린 시대로 번영의 빛 속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금주법 기간에도 하딩은 헌법 때문에 술도 못 마시겠다고 푸념하면서도 백악관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기도 하였으며 미국민은 불법적인 술 소비와 향락에 빠져 있었다.

부유층은 연일 술파티를 벌였고 무허가 술집이 성행하였으며 알콜이 아님을 위장하거나 저급술임을 가리기 위해 과일 등을 섞었으며 칵테일 제조 기술이 발달하였다.

국민들이 금주법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됨에 따라 법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초래되었으며 전국에서는 반금주법 단체들이 생겨나 금주법 폐지를 요구하였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뉴욕 증권시장의 주가 대폭락 사태는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 빠뜨리면서 미국사회는 시장만능주의와의 이별을 고한다.

이런 대공황의 혼란 속에 1932년 미국은 제32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금주법 폐지 여론이 점차 높아가는 가운데 민주당은 금주법의 폐지를 공약하였지만

공화당은 불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결국 민주당의 루스벨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헌법 수정조항 21조가 1933년 2월 의회를 통과되었고 12월 금주법이 폐지된다.

금주법의 실패는 소수의 원리주의자들에 휘둘린 국가가 다수의 욕망을 과도하게 규제하려 함으로 빗어진 촌극으로 국민들은 독배를 순순히 들이킬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법이란 현실에 맞게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시행되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한 금주법은 많은 부작용과 상처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웨스트 에그에서 뉴욕으로 가는 중간 쯤에 차도가 철도와 만나 4분의 1마일 정도 나란히 달리는데, 차도가 철도와 만나는 이유는 어떤 황량한 지역을

피하기 위해 차도가 꺾어지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재의 계곡이다. 재가 밀처럼 자라 산마루와 언덕을 기과한 정원으로 만드는 환상적인 농장이다.

...그러나 잿빛 땅과 그 위에서 끊임없이 떠도는 황량한 먼지의 요동 위로 시선을 높이면 잠시 후 T.J. 에클버그 의사의 눈은 푸르고 거대하다.

망막의 높이가 무려 1야드에 달한다. 얼굴은 없고 눈만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코에 걸려있는 거대한 노란색 안경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랜 세월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채 햇볕과 비를 맞아 좀 바랬지만 여전히 두 눈은 생각에 잠긴 듯이 장엄한 재의 계곡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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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재의 계곡(Valley of Ashes)에 해당되는 장소로 왼쪽은 1920년대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현재의 모습이다. 현재는 뉴욕에서 2번째로 큰 공원인

플러싱 메도시 코로나 파크(Flushing Meadows Corona Park)로 원래 쓰레기 처리장이었으나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결정되면서 1939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안에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와 US오픈 테니스가 열리는 경기장과 함께 시민들을 위한 공원과 박물관, 동물원, 극장 등이 있다.

어느 날 오후 닉은 톰과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다가 톰의 팔에 이끌려 재의 계곡에서 내린다. 톰은 닉에게 애인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황량한 황무지에는 자동차 정비소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생기없는 인상의 조지 윌슨이 있었다. 잠시 후 통통하고 육감적인 매력을 풍기는 여성이 2층에서 내려오는데

그녀는 조지의 부인인 머틀 윌슨으로 톰의 내연녀였다. 톰은 부인이 있음에도 그녀가 알든 모르든 대범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비양심적이고 뻔뻔한 인간이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따로 기차를 타고 뉴욕에서 만나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웃들을 초대해 작은 파티를 벌인다. 닉도 본의 아니게 거기에 있게 되는데

거기서 이웃인 개츠비에 대한 소문(신빙성이 없는)을 듣고 머틀이 내뱉는 남편 욕과 신세한탄을 듣는다. 머틀은 경박하며 상류계층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톰이 데이지와 빨리 이혼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톰은 데이지가 카톨릭이라고 거짓말을 해 놓은 상태로 둘은 다투다가 톰은 그녀에게 손찌검을 한다.

닉은 졸고 있던 손님의 면도크림(내내 신경이 쓰이던)을 닦아주고 아파트에서 나와 펜실베이니아 역의 추운 대합실에 누운 채 졸면서 새벽 4시 기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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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계곡의 항공사진과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에 나오는 재의 계곡의 모습.

위대한 개츠비의 초반부는 주로 배경설명이나 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할애하고 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고개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고 소설의 주인공인 개츠비가 등장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개츠비는 홀로 먼 바다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신비의 인물이며

불확실한 소문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베일에 싸인 의문투성이의 인물로 독자들에게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소설의 1인칭 관찰자인 닉은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촌구석에서 세계의 중심인 뉴욕으로 찾아든 당시의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인물로

주류인 동부사회 속으로 녹아들려고 노력을 한다. 그는 톰, 데이지, 조던, 머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지만 그의 성격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상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신중한 성격으로 인해 완전히 녹아들지는 않고 아직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약간은 회의적이고 불편한 감정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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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1974)에 등장하는 재의 계곡과 에클버그의 눈, 윌슨의 자동차 정비소. 톰과 닉은 함께 이곳을 들렀다가 윌슨 부부를 만나고

뉴욕에서 다시 머틀 윌슨을 만난 후 록펠러를 닮은 노인에게서 강아지를 사고 그녀의 아파트에서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벌인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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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2013) 중 머틀의 아파트에서의 파티.

그리고 피츠제럴드가 외형만 닮은 '두 계란'이라는 공간을 창조하여 그 곳에 사는 인간의 내면적 차이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려 하였듯이

두 계란 지역과 뉴욕 시내를 잇는 재의 재곡이라는 공간도 아무 의미없지는 않을 것이다. 재의 계곡은 황량함과 메마름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이것은 쾌락만을 쫓으며 인간 본연의 마음을 상실한 당시의 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떠도는 잿빛 먼지는 시야를 가려

그 속에서 정당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르게 만든다. 당시 혼탁한 사회는 수많은 범죄와 부패의 가림막 역할을 하는 재의 계곡이었을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고도 가해자와 원인 제공자는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한 채 애꿎은 피해자만 낳게 되는데 진실은 재의 계곡이라는

공간 속에 가려져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묻혀 버린다. 오직 사건의 진실을 목격하고 있었던 것은 재의 계곡 길가에 세워진 광고판 속의 눈으로

커다란 안경을 쓴 이 눈은 흐려진 잿빛 속에서도 오로지 진실만을 보고 있으며 어디에도 현혹되지 않는 지혜를 갖고 있는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속에서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는 신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오직 하나님만은 알고 계신다는 기독교적인 사고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재의 계곡을 지나 닉 캐러웨이의 직장이 있으며 소설 속의 인물들이 오고가는 뉴욕 시내,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으로 가 보도록 하자.

현재의 뉴욕의 모습과 1920, 30년대의 뉴욕의 모습. 그대로거나 원래의 빌딩이 다른 빌딩으로 바뀌었을 뿐 상전벽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빱빱빠바바 빱빱빠바바 빱빱빠바바바 어쩌구 저쩌구 뉴욕! 뉴욕!..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가슴이 벅차 오르고 심장이 뛴다. 미국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자유의 여신상 앞을 지나 뉴욕으로 들어가는 배 위에 있다면 타이타닉의 잭이 영국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세계의 왕이다!"라고 외쳐야 할 것같은 기분이 든다.

또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면 왠지 외계인을 물리쳤다는 기분이 든다. 젠장, 할리우드 영화에 세뇌당해 버렸다. 세상은 미국이 지배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다. Mr. Ban 할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의 돈은 월가로 모여들며 세계 문화를 주도하는 곳이다.

로마가 그렇듯 뉴욕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국 초기 아주 잠깐동안 미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 도시는 이후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급속히 성장한다.

사람과 돈이 모여든 도시는 밀집화가 이루어지고 다시 수직화가 이루어진다. 20세기 초반의 뉴욕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메트로폴리탄으로 당시로서는 신세계였다.

1920년대의 뉴욕은 지금 기준으로도 왠만한 도시는 쨉도 안 되는 화려한 도시였다. 예전에 인터넷 상에는 1920년대의 뉴욕이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충 '1920년대의 뉴욕이 공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1920년대의 뉴욕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여러장이 올라왔다. 해당사진에는 어쩌고 저쩌고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을 "멋있다", "대단하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게 아니구나" 등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뭐 이런 흔한 기사 말이다.

왜 이리 똑같은 양식에 별 내용도 영양가도 없는 기사(?)가 넘쳐나는지 나는 각 언론사마다 일반인이 모르는 기사쓰는 로봇을 숨겨두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어쨌든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의 뉴욕, 고층빌딩이 즐비했던 뉴욕의 중심 맨해튼과 강 건너 동쪽으로 뻗어있는 롱아일랜드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위) 이스트강 건너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으로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가 여러 매체에 많이 등장하는 브루클린 브릿지로 맨해튼과 브루클린 지역을 연결한다.

중간) 위성으로 본 뉴욕시와 뉴욕의 행정구역. 총 5개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북쪽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모습으로 직사각형 구획의 숲이 센트럴 파크이고

그 윗쪽에 빌딩이 모여있는 곳이 맨해튼의 중심지인 미드타운으로 쇼핑의 중심지인 5번가,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등의 관광명소가 즐비하다.

뉴욕, 인구는 현재 830만 정도로 미국에서 제일 큰 도시이며 그 중심인 맨해튼에는 160만명이 산다. 애칭은 빅애플.

뉴욕은 맨해튼, 브롱크스,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 섬 이렇게 5개의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브롱크스를 제외한 4곳이 섬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 탐험가들은 황금, 혹은 그 이상의 것을 노리고 뱃머리를 서쪽으로 향하면서 새로운 발견이 잇달았는데

1524년 이탈리아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지금의 뉴욕을 발견한다. 이후 1614년 네덜란드인들이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섬 남쪽 끄트머리에 방벽을 쌓아 요새를 만들고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붙이는데 이곳이 지금의 맨해튼이다. 이들이 방벽을 쌓았던 곳은 지금의 월가로

이곳에 쌓았던 방벽(wall)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점점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거주지를 점점 북쪽으로 넓혔고 1626년 식민지 총재 페터 미노이트는

인디언 카나시족으로부터 60길더 어치의 손도끼, 옷감, 구슬 등의 물건을 주고 섬의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는데 달러로 환산하면 24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카나시족은 맨해튼의 원주민이 아니었기에 이들로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지만 지금 세계의 중심지로 변모한 맨해튼을 생각한다면 어이없는 이야기다.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 어느 것을 쫓았던 것인가
 

1873년의 뉴욕 맨해튼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가 지금도 있는 브루클린 브릿지로 1870년에 착공하여 1883년에 완공한다.

1664년에는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쫓아내고 이곳을 강제로 점령하면서 뉴암스테르담은 요크공(제임스 2세)의 이름을 따서 뉴욕이 된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뉴욕은 계속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인구가 늘어났으며 무역항으로서의 중요성이 커졌다. 미국이 독립할 당시에는 인구가 3만 3천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또한 수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워싱턴 DC가 신생독립국의 새로운 수도로 결정되면서 뉴욕은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대신 1792년에 증권거래소가 생기면서 뉴욕은 경제 수도로 자리잡게 된다. 19세기에는 대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인을 비롯해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즈음 도시계획이 수립되어 지금의 격자구획과 공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이민자의 출신지가 더 다양해졌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뉴욕은 세계를 축소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공업화, 도시화로 인해 농촌인구까지 유입되면서

20세기의 뉴욕은 세계 최대의 도시로 급성장한다. 돈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드는 곳, 하루하루 치열한 생존 전쟁이 벌어지는 정글과 같은 곳, 그곳이 뉴욕이었다.

정글은 빌딩과 공장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피라미드형 먹이사슬의 꼭대기에는 자본가가 있었고 밑바닥에는 노동력을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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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유명한 LOVE 조형물로 미드타운 록펠러 센터 부근 6번가 55스트리트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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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는 남북전쟁 이후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871년 도시를 전체를 뒤덮은 대화재로 시카고는 거의 폐허가 된다.

이후 시카고는 새로운 건축의 경연장이 되면서 철골구조의 건축물이 태어난다. 르 바론 제니가 설계한 홈 인슈어런스 빌딩(오른쪽)은 전체는 아니지만

철골구조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축물로 마천루의 효시가 되었다. 1882년에 세워진 몬탁 빌딩(왼쪽)은 벽체로 하중을 지탱하는 조적식 구조로

높이는 오른쪽과 큰 차이가 없지만 구조는 큰 차이가 있다. 철골구조로 쉽게 건물을 높일 수 있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마천루 시대로 접어든다.

돈과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뉴욕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모습이 빠르게 변해간다. 돈은 많고 사용할 땅은 줄어들면서 도시는 수직화가 되어간다.

도시의 수직화는 이런 요인뿐만 아니라 당시의 급속한 기술의 발달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건축재료는 가벼워졌지만 단단해졌으며 더 싸고 또한 풍부해졌다.

전구가 발명되면서 밤에도 건물 내부를 밝게 밝혀 주었고 엘리베이터는 사람들을 높은 곳까지 실어날라 주었다. 이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 했던 일이었다.

훨씬 이전에도 높은 건축물들이 있었지만, 가령 피라미드나 지구라트, 동양에는 목탑이, 서양에는 고딕양식의 교회 등이 하늘을 찌를 듯 세워졌지만

이것은 거대 권력에 의해 국력을 기울여 세웠거나 종교를 향한 굳은 신앙심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으로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자 한정된 시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세워지기 시작했던 고층건물들은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능성과 효율성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다.

최초의 근대 마천루라고 부를 수 있는 건축물은 1885년 시카고에 세워진 홈 인슈어런스 빌딩이다. 높이 42m의 10층 건물(후에 2층을 올렸다)이었는데 이 건물이

마천루의 효시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철골로 세워졌다는데 있다. 당시 활동하던 선구적 건축가 그룹인 시카고파는 당시 두꺼운 벽으로 하중을 지탱하고 외부를

장식으로 치장하던 기존의 양식주의 건축을 타파하고 철골구조를 사용하여 골격을 짠 뒤 벽은 하중을 지탱하지 않는 유리를 사용하여 내부 공간을 넓혔다.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외부를 유리로 치장한 빌딩들은 커튼월 공법으로 세워진 것인데 이 시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철과 콘크리트의 건축은

비용대비 극대화된 효율성을 무기로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뉴욕 등 미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은 세계의 다른 나라와 연결하는

미국의 주요 관문이었고 급속한 산업발달에 힘입어 회사와 공공기관의 사무실이 급증하면서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에는 세계적인 마천루 경연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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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왼쪽)와 1950년대(오른쪽)의 뉴욕. 비행기가 떠 있는 곳은 맨해튼의 남쪽 끝인 로우 맨해튼 지역이고 나머지는 이스트강 건너편에서 본 모습이다.

뉴욕하면 흔히 생각나는 이미지는 자유의 여신상이나 타임스퀘어 같은 랜드마크 외에도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의 밀집 빌딩군일 것이다.

지금은 신흥 국가들에서 마천루의 경쟁이 불을 뿜고 있지만 뉴욕에서는 이미 100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다. 고층 빌딩을 세우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땅값이 비싸고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것 등 이런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인간의 도전정신과 과시욕 때문이기도 했다. 예전에 촌에 농사짓던 어르신들이

농한기에 모아둔 돈을 추렴하여 서울여행을 떠나면 우선 감탄하게 되는 것이 높은 빌딩이었다. 스케일은 인간을 가장 단순하고 쉽게 압도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건물 하나가 높아지면 주변의 건물이 높아지고 고만고만해지면 튀기 위해 스케일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다시 그것을 압도하는 스케일이 나타난다.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맨해튼에는 해마다 새로운 빌딩들로 채워지고 빌딩은 높아졌으며 또한 화려해졌다. 뉴욕의 마천루 역사에 대해서 짤막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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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월드 빌딩(World Building 1890~1955), 맨해튼 라이프 인슈어런스 빌딩(Manhattan Life Insurance Building 1894~1930),

파크 로우 빌딩(Park Row Building 1899~ ), 싱거 빌딩(Singer Building 1908~1968)

아래) 메트로폴리탄 라이프 인슈어런스 콤파니 타워(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 Tower 1909~ ), 울워쓰 빌딩(Woolworth Building 1913~ ),

뱅크 오브 맨해튼 트러스트 빌딩(Bank of Manhattan Trust Building 1930~ ),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 1931~ )

근대 이전까지 높은 건축물은 대부분 종교 건축이듯이 뉴욕 역시 1890년까지 높이 85m의 트리니티 교회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세워진 106m의 월드 빌딩이 1894년 세워진 같은 높이의 맨해튼 라이프 인슈어런스 빌딩과 함께 뉴욕 최고의 빌딩이었다가

1899년에 세워진 119m의 파크 로우 빌딩에게 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된다. 1902년에 세워진 87m의 플랫아이언 빌딩은 가장 높은 빌딩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가장 유명한 고층빌딩 중에 하나였다. 위에서 보면 삼각형의 특이한 평면과 모습으로 다리미 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당시의 명물이었다.

1908년에는 187m의 싱거 빌딩이, 1909년에는 213m 메트로폴리탄 라이프 인슈어런스 콤파니 타워가 처음으로 200m를 돌파하면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었다.

1913년에는 여의도 63빌딩과 거의 비슷한 높이인 241m의 울워쓰 빌딩이 세워졌고 283m 뱅크 오브 맨해튼 트러스트 빌딩이 1930년에 뉴욕 최고 빌딩에 등극했지만

1931년 319m의 크라이슬러 빌딩에게 왕좌를 물려준다. 하지만 불과 4개월 후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381m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이 빌딩이 세워진 후 뉴욕에서는, 아니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이보다 높은 빌딩은 나타나지 않았다. 1972년이 되어서야 417m의 건물이 쌍으로 위용을 드러냈지만

2001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다시 뉴욕 최고의 빌딩으로 등극하게 된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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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거의 완성되어가는 플랫아이언 빌딩과 하층부 공사 당시의 울워쓰 빌딩의 모습이다. 철골구조는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오른쪽 5장의 사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공사 당시의 모습으로 안전장치도 보이지 않는데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당시 인류 최초로 벌어진 마천루 경쟁은 끝을 보이지 않고 계속되면서 높이의 한계는 모호해졌고 욕망은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기업들은 초고층 빌딩이 그 기업의 현대적이고 성공적인 이미지와 직결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치 올림픽 경기 하듯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강한 빌딩을

세우며 높이를 경쟁하였다. 높이 뿐만 아니라 시선을 끌게 하는 디자인도 중요한 요소였는데 이 당시에 세워지는 빌딩을 보면 돔과 첨탑에 대한

집착이 보이는 듯 하다. 다른 대륙이지만 미국 문명의 기원은 유럽에 두고 있는 것이고 전통이 없던 신생국 미국은 유럽의 오랜 전통에 대해 애착과 선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 뉴욕의 많은 빌딩들은 고전주의나 르네상스, 고딕 등 유럽의 다양한 예술 양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신을 향한 높이를

추구하는 고딕양식은 역시 높이를 추구하는 마천루와 결합하게 되는데 그 중 울워쓰 빌딩은 고딕양식과 근대 건축기술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호평을 받았다.

크라이슬러 빌딩에 와서는 가급적이면 고딕의 참고는 자제하고 직선적이며 기하학적인 추상적 형태미를 띄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모더니스트한 상층부의 장식은 현대 문명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르테코 양식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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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어 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 오른쪽 끝에 보이는 뾰족한 빌딩이 이전까지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크라이슬러 빌딩이다.

마천루의 성공적이며 미래적인 이미지 뒤로 문제점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당시 개발업자들은 좀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한정된 대지에 있는한 최대한으로

건물을 집어 넣으면서 도로 바로 옆으로 바짝 붙여 수직의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서게 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와 저층부는 바람도 햇빛도 들지 않게

되어 버리면서 현재는 흔한 개념인 일조권이나 조망권같은 도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에 1915년 대지 크기에 따라 건물의 면적을 규제하는 지구법이 생긴다.

그 동안 건물이 위로 올라가는데 돈과 기술의 문제일 뿐 남은 신경쓸 필요가 없이 자신을 마음껏 뽐내면 되었지만 법이 처음으로 이런 이기주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 법이 생겨났다고 마천루 붐은 사그라든게 아니다. 법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법을 충족시키는 범위에서 새로운 마천루를 세우면 되었던 것이다.

이 법에 의해 큰 빌딩들은 계단식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띄게 되었고 남는 땅에는 공공을 위한 광장이나 공원을 만들게 되면서 도시환경에 기여를 한다.

이후에도 새로운 건축규제법들이 생겨났지만 신에게 똥침놓기 경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것은 법이 아닌 대공황이었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에서는

전례없던 주식 대폭락 사태를 경험하면서 대공황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마천루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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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그 주변의 모습. 왼쪽 아래는 1933년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선 유명한 장면이다.

오른쪽 아래는 현재의 모습으로 원래 102층에 381m였으나 1953년에 안테나 탑을 설치하여 443m로 높아졌다. 현재까진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19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스위치를 눌려 불을 밝히는 성대한 개장식을 하였고 전망대에는 구경꾼들이 몰렸다.

하지만 정작 빌딩 내부에는 불경기로 인해 입주한 사무실이 적어 상당수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엠프티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살명소(?)로 유명세를 날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날때면 꼭 우산을 펴지. 사람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거든."라며

웃지 못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후로 꽤 오랫동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은 빌딩은 나타나지 않았다. 치열하던 마천루 경쟁은 사그라 든 것 같았다.

하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였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마천루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1972년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세워진다.

타이틀을 뺏은 것이다. 1973년에는 시카고의 시어즈 타워 빌딩이 최고 높이의 빌딩이 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숨가쁜 경쟁이 벌어진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마천루의 저주를 받으면서도 계속되고 있다. 마천루는 인간의 욕망이다.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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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속 뉴욕의 야경.  아래) 1930년대와 최근의 뉴욕 야경 모습. 둘 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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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 끝난 뒤에 오는 서늘함... 위대한 개츠비 OST Lana Del Rey 'Young and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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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봉 당일 시사회에 참석한 캐리 멀리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토비 맥과이어, 조엘 에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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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칸 영화제에 참석한 위대한 개츠비의 바즈 루어만 감독과 배우들.

위대한 개츠비로 보는 1920년대 미국의 역사와 문화 2

http://blog.naver.com/gnass?Redirect=Log&logNo=40189164969

재즈시대, 1922년 뉴욕, 블랙삭스 스캔들과 야구

위대한 개츠비 Chapter 3, Chapter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