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을 택해도 조삼모사인 결과이다

 

"나는 주가를 보면 자동적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가를 모른 채 항상 투자를 보려고 한다." - 워런 버핏

로또가 제일 쎄다
위싱턴 대학의 캐롤라인 프레스턴과 스탠리 해리스는, 운전자 50명에게 자신의 운전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설문 조사했다. 약 70%의 사람들이 레이싱 선수처럼 뛰어나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모두 병원의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과신은 인간의 여러가지 심리적 기제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본성이다.

또 다른 심리학자 엘렌 랭거는 고전적인 실험에서 '지배 환상illusion of control' 을 자세히 설명했다. 랭거는 두 집단의 근로자들에게 10달러 짜리 복권을 구입할 기회를 주었다. 한 쪽은 스스로가 직접 로또를 선택했으나 다른 쪽은 제 3자가 결정하게 했다. 추첨에 앞서 피실험자들에게 자기가 가진 복표를 팔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전자는 후자에 비해 평균 4배나 높은 가격을 불렀다. 그들은 자기자신의 결정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더 비싼 값을 요구했다. 즉, 본인의 선택이 당첨확률을 높일 거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로또가 추첨식 복권을 몰아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모든 LOTTO는 아래의 결과를 가져온다.

어느 것을 택해도 조삼모사인 결과이다

이를 증권시장에 적용해보자. 내가 사들인 주식에는 유달리 애착이 간다. 다른 종목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듯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초체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고평가 된 상태로 바뀐다 할 지라도 쉽사리 팔지를 못한다. 한 번 내 손안에 들어온 대상에는 자연스럽게 관심과 애정이 들어간다.

이렇게 손때가 묻은 존재는 나의 일부분이다.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쓰지 않고 방치하던 물건도 막상 남에게 주려하면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된다. 하물며 상당한 돈을 투입하고 매입한 애물단지 주식은, 그 애착의 크기와 정도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종종 매도의 기회를 놓치고 고통속에서 신음한다.

가치(장기)투자는 먹히지 않는다.
생태학자인 레슬리 리얼은 다음과 같은 꿀벌의 먹이실험을 했다. 녹색 꽃은 항상 2밀리 리터의 꿀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노란색은 6밀리 리터의 벌꿀이 있지만 3개 중 2개에는 아무것도 없다. 처음에 일벌들은 양쪽 모두에서 고르게 봉밀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녹색 꽃을 찾는 횟수가 84%에 이르렀다. 이 선택의 차이는 녹색 꽃이 매번 동일한 보상을 주는데 비해서, 노란색은 장기간에 걸쳐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크지만 허탕을 칠 수 있는 것 보다는, 작더라도 확실한 수익을 원한다.

단칼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장기투자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그래서 필자는 주가의 등락을 거의 보지 않는다). 당신은 단기매매를 통해서 소소한 이득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가치/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변동성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줬다가 뺏는 것 만큼 우리를 약올리는 일이 없다. 잠시나마 이익을 보고 있던 주식이 하락하여 손실로 바뀌면 무척이나 괴롭다. 이미 확보했었던 조그만한 이윤이라도 지켜야 했었다고 후회를 한다.

때문에 자신에게 부여했던 장기투자의 원칙을 저버리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조언을 해 주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이를 거부하므로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다음과 같은 사악한 정치적인 말을 남겼다. "칭찬과 보상은 조금씩 자주 주어라. 반면에 처벌은 단칼에 끝내라."

이런 의미에서 볼때, 조삼모사의 일화는 '얕은 꼼수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 이 아니고 '인류의 천성에 대한 실례' 라고 새롭게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ㅎㅎㅎ.

 

증시는 블랙홀, 모든 것을 삼킨다.
안전하다는 인식은 자신이 환경을 장악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며, 뇌가 두려움을 느끼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연속해서 이익을 낸 거래는 편도체의 공포반응을 중지시킴으로써 가상의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계속되는 행운은 투자자의 과신과 확신을 고무시켜, 모든 자산이 공중분해가 될 때까지 더 큰 베팅을 하도록 유도한다. 무엇보다 연이은 성공은 '하우스 머니house money(공돈 = 도박에서 딴 돈)' 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령 당신이 매입한 1,000 달러 어치의 주식이 3,000불로 늘었다면 2천$는 공돈인 셈이다. 투자자는 이렇게 딴 돈 일부가 남아 있는 한 --본전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손실을 견대낼 수 있다. 그러나 하우스 머니 효과는 모든 것을 잃을 때까지 일련의 위험을 무릅쓰도록 충동질 한다.

버논 스미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버블 붕괴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시장에 바로 되돌아와 전체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을 입증했다. 붐이 일어나 행운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두뇌는 엔돌핀과 도파민의 활성화로 두려움을 잊는다.

당신을 흥분시키는 이 자극은 너무나 강렬하다.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이 거품에 손대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번의 뜨거운 맛을 볼 필요가 있다. 단칼 또한 지극히 공감하는 바이다. 일찌기 이를 간파한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 뒤에 수익이 찾아오며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최소한 20년의 투자 경험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후견지명이라는 또다른 본능이 개입된다. 인간은 어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그 사태를 예측했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즉, 다가올 내일을 내다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또는 후견지명)' 때문에 우리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다.

중독은 죽음을 뛰어 넘는다
심리학자들은 설치류를 통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해냈다. 그들은 쥐들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뇌가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미약한 전기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이 천연의 마약에 중독된 놈들은 일체의 모든 행동을 제쳐놓고 --먹고 마시는 생존을 위한 행위조차 중단했음-- 오로지 단추만을 눌러댔다.

도파민 없이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굶어죽는 것을 택한 것이다. 또 다른 신경과학자 한스 브라이터(하버드대)는 코카인을 갈망하는 마약 중독자와, 금융상의 도박으로 이익을 내려는 트레이더의 두뇌 활동을 비교했다. 두 사람의 뉴런은 빛을 발하는 부위와 활동방식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단칼이 보기에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보상이 크면 클수록 도파민은 그 특정한 신호를 영구히 저장한다' 는 것이다. 도박이나 마약, 알코올, 담배 등등을 끊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쁜 방향으로의 항구적인 기억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주식시장에서 차트를 이용해 큰 수익을 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버는 규칙이나 패턴을 발견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비슷한 모형을 발견하면 또다시 큰 이득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며, 이제는 빚을 내어서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여 베팅에 나선다.

만약, 이 대명박 종목이 작전주나 파생상품 이었더라면 상황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50퍼센트 정도의 수익률은 성에도 차지 않으며, 20배 300 배의 뻥튀기를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끝이 좋을리가 없다. 남는 것은 파산뿐이다. 이러한 좌절을 겪은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급등주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즉, 폭등주의 짜릿함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이것이 영구 기억으로 저장되었기에, 돈을 버는 것 보다는 그에 관련된 자극을 갈망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잠시 쉬었다가 3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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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고사성어]개관사정(蓋棺事定)

입력 : 2014-11-21 00:00

蓋 덮을 개, 棺 널 관, 事 일 사, 定 정할 정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사람의 일이란 관 뚜껑 덮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개관사정(蓋棺事定)이 그것이다.

오랜 유랑 끝에 사천성 어느 오지에 정착한 두보는, 그곳으로 유배돼 실의에 빠져 있던 소혜라는 젊은이에게 위로의 시를 건넸다. <군불견간소혜(君不見簡蘇徯)>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시다.

“그대 보지 못했나 길가에 버려진 연못을, 그대 보지 못했나 전에 쓰러진 오동을. 백년 된 죽은 나무도 거문고로 쓰이고, 한홉 썩은 물에도 교룡이 숨어 있다네. 장부는 관 뚜껑 덮고야 일이 정해지거늘(丈夫蓋棺事始定·장부개관사시정), 다행히 지금 그대는 노인 되려면 멀었네….”

이런 격려 덕일까. 소혜는 훗날 유세객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더 길이 이름을 남긴 것은 두보 자신이다. 평생 곤궁과 싸우다 객지에서 하직했지만 지금껏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니 말이다.

10여일 후면 수능 성적표가 나온다. 그때 주변 어느 청춘이 기대와 다른 세자리 숫자 앞에 고개 떨구고 있다면 개관사정 네 글자에 담긴 뜻을 들려주자. 너는 아직 젊다고, 낙담하기엔 이르다고,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손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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